정신철
http://www.zoglo.net/blog/zhengxinzhe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54 ]

14    땅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정신철13) 댓글:  조회:4541  추천:127  2007-09-20
땅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현재 도시화와 국외진출에 따른 인구이동으로 조선족농촌은 날로 축소되어가고 있다. 농민들의 대량적인 리농현상은 사회발전의 추세라고 하나 민족집거지 농촌 땅의 소실은 민족의 운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민족집거지 농촌의 땅은 민족적 삶의 기반이며 민족적 특징을 지키면서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이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조선반도를 떠나서 중국 동북땅에 발을 붙이기 시작할 때 빈주먹밖에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당시 그들은 봉건세력의 압박과 착취, 동북지역의 렬악한 자연환경, 마적들의 무자비한 략탈 등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간하고 집거촌락을 세우면서 타향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시작이 100여년의 세월이 지나가면서 현재는 중국 56개 민족 대가정의 일원으로 공인받는 우수민족의 하나로 되었다.    조선족이 중국의 우수민족의 하나로 부상될 수 있었든 주요한 리유의 하나가 바로 조선족은 시종일관하게 민족교육을 중요시함으로 교육보급수준이든가 인구당대학생비례이든가 모두 중국에서 으뜸되는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민족교육의 진행과 발전은 민족집거지 농촌과 갈라놓을 수 없다. 민족집거지 농촌은 민족교육의 주요한 장소이었으며 민족의 언어, 문자보급과 민족성 보존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민족집거지 향촌은 민족교육의 근거지로 자기 사명을 착실히 리행하여 왔다. 때문에 민족교육에 있어서 민족집거지 향촌의 중대한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여도 과분하지 않다.    그럼 이러한 민족집거지 농촌의 현 상황은 어떠한가? 개혁개방의 흐름속에 조선족농촌도 몰라보게 변화되었고 도시진출, 국외진출 등 인구이동 원인으로 농촌인구감소와 토지양도문제가 아주 돌출하게 대두되었다. 인구이동으로 민족촌 책임자 선출마저 힘들어졌고 타촌, 타지역 한족들이 조선족촌 토지를 임대한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 가운데 토지양도는 응당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할 문제가 아닌가?  민족집거지 농촌의 토지는 우리선조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것으로 민족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땅을 무분별하게 타민족에 양도할 경우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실될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토지양도에서 본 마을, 본 민족에게 우선적으로 양도하고 될수록 타민족에게는 양도하지 말아야 후환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농촌토지정책을 보면 농민 매 개인에게  토지사용에 대한 권리를 더 부여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자의 권리는 더욱 확대되고 토지를 잃은 사람은 “지주”에서 “소작농”으로 륜락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많은 조선족농민들이 토지를 한족에게 양도하고 도시로, 국외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볼 때 당사자들은 눈앞의 물질이익을 향유하고 상대적으로 윤활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또한 토지상실로 도시빈민으로 추락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마치도 자본주의 원시축적시기 “圈地运动”으로 인한 파산된 농민들이 도시무산자로 륜락하듯이 우리가 토지를 잃으면 역시 이러한 운명 피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도시진출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 정말 “소작농”이 아니면 도시빈민으로 되는 신세밖에 다른 출로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약 우리가 농촌의 땅을 상실한 경우 민족적으로는 설자리를 잃은 것과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볼 때는 지금의 당사자들은 아무리 하여도 문제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만약 그 후세들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을 경우 성공한 자들은 다행이지만 출로가 없는 자들의 경지는 아주 어렵게 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 현 시대 사람들의 잘못으로 그 후세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조선족은 정말 순환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선조들이 중국동북에 이주 와서 삶의 터전을 개척할 때 모두 빈곤한 농민이였다. 그들은 억척스럽게 싸워 삶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현재 도시화과정에서 땅 잃은 자의 후세들이 도시무산자로 되었을 때 역시 빈곤의 처지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중국조선족이 빈곤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 결국은 우리선조들이 피땀을 헛되이 흘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즈음에 와서 우리는 도시화과정에서의 득과 실을 재삼 따질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 우리에게 민족집거지 농촌의 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필자는 본다. 우리는 현재 아무리 도시화과정은 필연적이라고 말하지만 농사지어야 할 사람은 역시 있어야 한다. 도시에 나갈 사람은 도시에 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역시 농사를 짓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시진출농민들은 자기 담당의 토지를 남아 있는 조선족에게 맡겨 두고 절대로 타민족에게 맡겨두지 말아야 한다. 남아 농사짓는 사람은 될수록 규모경영의 길을 모색하여 적은 사람이 많은 농사를 질수 있도록 강구하게되면 수익도 더 많아 질 것이다. 우리는 농사를 짓는데 현존의 유익한 조건과 정책을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현재 중국정부는 농업, 농촌, 농민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있으며 농업발전과 농민들의 생활수준인상을 위하여 많은 우혜적인 정책제안들을 추진하고 있다. 례컨대 농업세 면제와 농업보조금 지불이든가 농촌의 의무교육을 지원하고 학잡비 등을 면제해 주는 정책이든가 새농촌건설사업추진 등은 조선족농촌에 현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아주 좋은 여건과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과 기회를 활용하여 우리농촌을 더욱 아름답게 건설하고 민족집거지 농촌의 땅을 지키는데 유력한 힘으로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가령 땅을 잃고 집거지가 없을 질 때 우리민족은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두 심사숙고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3    조선족사회, 어디로 가야 하나? (정신철12) 댓글:  조회:4532  추천:95  2007-09-10
조선족사회, 어디로 가야 하나?정신철 필자가 처음 조선족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90년대 중반이후였다. 그 때는 조선족사회에서 개혁개방이후 나타난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위기설”, “해체설”이 돌기 시작한 이후이었고 필자 또한 이에 대응하여 당시 조선족사회에 로출된 문제를 중국의 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불가피면적인 “진통”이라고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이미 10년좌우의 시간이 지난  현재 조선족사회는 더욱 어려운 사정에 부딪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이것을 아직도 “진통”속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다른 한면 “진통”이 아니면 또 무엇이지? 조선족사회는 정말로 “위기”상태에 처하였는지?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에게 조선족사회발전문제를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물음을 던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개혁개방이후 중국조선족사회는 엄청 난 변화를 초래하였다. 조선족사회는 인구의 대량적인 류동, 민족집거지의 인구감소, 농촌실체의 약화, 민족교육의 축소 등 어려움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 뿐만은 아니다. 조선족사회는 개방과 도시화과정 및 국외진출에서 경제적 실력을 키워왔고 새로운 관념과 시대의 흐름을 터득하였으며 중국사회 및 지역발전에 대한 공헌도 이전 못지 않게 하였다.   조선족사회는 중국 개혁개방의 앞장에 섰기 때문에 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새로운 문제, 새로운 곤란이 기타민족 먼저 우리민족사회에 대두하였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에 당황하지 말고 문제에 대한 참다운 해결방안을 강구하여 민족발전과정에 나타난 문제들을 원활히 풀어 나가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여기서 몇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그 하나는 현재 조선족사회의 어려움을 어떻게 리해하는가에 대하여  “진통”시간이 다소 길다는 감이 없지 않으나 필자 역시 “진통”속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 중국 기타민족사회에서도 우리가 이미 체험한 문제점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조짐을 보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우리민족 특유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발전과정에서 겪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진통”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중국에서 조선족의 위치를 어떻게 확정할 것이며 집거지 농촌의 토지 어떻게 보존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조선반도에서 이주 온 우리 조선족은 중국에서의  력사는 불과 백여년밖에 되지 않지만 이미 중국에 뿌리를 튼튼히 박았고 혼신의 정열을 기우려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혁명 및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민족의 피와 땀을 수많이 흘렸으며 중국에서 공인하는 우수한 민족으로 발돋움하였다. 현재 우리민족이 잠시 어려움 처지에 있을지라도 중국에서의 이러한 기반은 민족자신이 먼저 흔들리지 않으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자신이 당황하지 말고 여유있게 나타난 문제들을 윤활히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중국에서 조선족의 확고한 위치는 집거지 농촌의 토지보존과도 관련된다. 집거지 농촌은 우리 선조들이 당시의 사회체제, 렬악한 자연, 마적들의 략탈 등 어려움을 이겨가면서 성스럽게 개척한 땅이고 생활의 터전이였다. 우리는 이 터전 때문에 민족고유의 특징을 살리며 지금까지 올 수가 있었다. 사실 민족집거지 농촌은 중국에서 조선족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큰 기반으로 되어 주었다. 가령 과거 민족집거지 농촌이 없었다고 한다면 현재 조선족은 운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집거지 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튼튼히 지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민족성원가운데서 과거 자본주의 원시축적시기 파산된 농민들이 도시 무산자로 륜락하는 운명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셋째,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한국은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혈연의 발상지로 갈라놓을 수 없는 연대감을 갖고 있다. 중한수교와 경제문화교류의 물꼬가 확 터인 현시점에서 조선족은 한국, 한국인과의 교류연대 및 한국진출로 민족의 정을 돈득히 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이러한 와중에 일련의 불화합음도 없지 않았는바 례컨대 일방적인 기대감과 무작정의“코리안 드림”, 국민성의 약화, 투기와 사기행위 급증 등 많은 현안들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즉 한국은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우월한 외부조건이다. 이것은 중국 기타민족이 부러워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중심이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 모든 것을 한국에 의거할 수는 없다.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정립에서 조선족은 응당 자주성을 수립하고 자체중심을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이란 우월한 외부조건을 민족발전에 활용하여 조선족이 중국사회에서 더 빨리, 더 크게  발전하는 계기로 되게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민족의 분산화 와중에서 어떻게 민족적 특징을 보존, 전승할 수 있는지? 현재 조선족사회는 다그치고 있는 중국의 도시화과정에 합류하여 도시진출에서 앞장서고 있으며 조선족사회의 도시화정도는 중국에서 제일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농경민족인 조선족은 농촌에서 집단적으로 생활을 영위하여 왔기 때문에 민족적 특징을 상대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화과정에서 과거 농촌의 집단적 생활방식은 점점 해체되고 도시진출의 농민들은 점점 분산 거주하게 되었다.    중국 특정의 환경에서 도시화는 소수민족의 분산화정도를 재촉함으로 민족적 특징의 보존전승문제가 민족발전에서 새롭게 대두하게 되었다. 조선족사회도 인구이동과 도시진출 등 과정에서 민족거주상태가 날로 분산되면서 민족적 특징의 유지, 전승이 날로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반면에 민족특징은 한 개 민족이 타민족과 구별하는 주요한 요소로 민족특징의 약화는 민족동화를 재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민족이 존재하려면 민족특징을 보존, 전승하여야 한다. 민족특징보존에는 민족의 상대적 집거지조성, 민족적 활동의 광범위한 조직, 민족적 긍지감과 자신심 고양 등에 주목하면서 민족성을 강조하고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의 매체, 우리의 지성인들이 응당 큰 역할을 하여야 한다.    중국조선족사회는 현재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 인구이동과 도시화 등에 따라 나타난 어려움을 발전과정의 “진통”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에 잘못 대응하면 위기를 초래할 위험도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위치, 현 상태 등을 잘 파악하고 우세와 약세를 명확히 나누고 이에 대한 정확한 대책을 탐구함으로 조선족이 중국사회에서 더욱 튼튼한 입지를 조성하는데 우리 모두 힘써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중국조선족발전가운데 어려움도 많지만 발전의 촉매제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미 20여년간의 발전축적이 있으며 발달국가로 향한 고국--한국이 있다. 더욱이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의 정확한 민족정책, 최근에 와서 농업지원정책, 농촌교육지원정책 등이 새롭게 실시되면서 과거의 농촌발전 부진으로 인한 농토포기, 자녀교육부담으로 인한 생육포기 등 현상이 많이 줄게 될 것이며 이는 조선족농촌발전, 조선족인구감소문제해결 등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상술의 각 항 정책과 우월한 외부환경을 활용하여 민족의 더 큰 발전에 뒷받침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집거지 농촌토지 보존, 민족적 특징 유지 등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있는 것을 보존, 유지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우나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점이다.   이상의 글은 문제제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 것인즉 전체 민족의 지혜를 합치여 우리 민족발전과정에 현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윤활히 해결하고 민족의 더 빠르고, 더 큰 발전에 약간의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    방취제시험 아무래도 부당하다 (정신철11) 댓글:  조회:4342  추천:114  2007-05-03
방취제시험 아무래도 부당하다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동포들의 고국방문취업을 자유롭게 한다는 취지의 한국방문취업제가 시행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즈음하여 <흑룡강신문>은 “한국방문취업제 어떤 파장 몰고 올가”라는 주제의  시리즈기사를 8차로 나누어 실었다. 기사를 본 필자는 마음이 많이 아팠고 또 많이 혼돈스러웠다. 왜 동포을 생각해서 제정 실시한다는 방문취업제가 이렇게 많은 물의, 불만과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지? 한국의 해당 정책제정자들은  중국실정 및 조선족사회에 대하여 왜 이렇게도 무지하고 무감각인지? 참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방문취업제의 취지와 동기에 대하여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제정과 실행에 관하여서는 많은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 가운데 소위 무연고 동포 대상으로 시행하려는 “한국어시험”이 제일 큰 문제로 되고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처음에는 필자도 한국어시험이 민족언어, 문자장악에 일정한 기여가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꼭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어시험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방문취업제에 한해서 한국어시험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첫째, 한국어시험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은 거의가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기에  특별히 한국어시험은 치르지 않아도 취직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령 한국어시험을 통하여 일차적으로 한국에 꼭 나간다고 보장하면 시험준비, 과정에서  좀 어려움을 당하여도 사람들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시험합격후에 또 무작위 추첨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위 한국어시험자체에 큰 기대를 걸지 못하는 한편 신청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시험장소선정에서 조선족이 제일 집결된 동북에 중점을 두지 않은 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처사이다. 여기서 전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시험과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을 분명히 갈라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을  중국고시중심에 위탁한 것은 완전히 무리인 것이다.   셋째, 한국어시험에 따른 소위 한국어학원, 훈련반 및 각 종 브로커들의 성행은 조선족사회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는‘악’의 장본인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시행은 이득보다 폐단이 더 크기에 아직 때가 이르다고 본다. 한국어시험을 치르지 않고 직접 신청자에 대한 무작위 추첨으로도 선정할 수 있다. 우리는 신청자에게 있어서 일차적 무작위 추첨이나 한국어시험이후의 2차적 무작위 추첨이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지만 지불한 대가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방문취업제 실시초기에 신청자들의 쇄도를 감안하여 꼭 조건부를 단다면 우선적으로 한국에 한번도 가지 않은 자, 가정상황이 아주 어려운 가정의 중, 청년 등 신청자에 한해서 우선 무작위 추첨을 통하여 선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한국어시험을 꼭 실시한다면 동북지역위주로 시험장소를 정하고 그 지역 민족교육기구을 통하여 진행하는 것이 리치에 맞는 처사일 것이다.   총괄적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중국조선족에 관한 일련의 조치에서 보면 행동보다 말이 많이 앞섰으며 “빛 좋은 개살구”마냥 보기는 좋지만 하등의 실리도 없는 저급적인 시행과오를 많이 범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당국의 해당자들에게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재외동포정책, 특히 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 등을 제정실행 할 때  꼭 사전에 세밀한 조사를 거쳐 중국실정과 조선족사회실제에 부합되는 정책을 제정실시하여 될수록 시행과오를 피면 또는 적게 범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선족문제는 항상 조용히 “내부”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로 이를 가지고 중국정부 상대로 협상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조선족사회에서도 “한국행”을 단지 생활향상의  하나의 기회로 간주하되 절대로 모든 희망을 “한국행”에 걸어서는 안 된다. 과거 우리 선족들이 중국 이주초기 땅도 없고 집도 없었지만 그들의 불굴의 의지로 중국 동북땅을 삶의 터전으로 개척하였고 우리민족은 중국 기타민족 못지 않게 또는 더욱 풍요스러운 생활을 누리면서 우수한 민족으로 중국에서 기타민족의 부러움을 받고 살아왔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민족 전체의 피 타는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다. 이전에 비해 더 유리한 여건을 갖춘 우리는 왜 중국에서 더 튼튼한 기반을 닦고 더 우수한 민족으로 발돋움하지 못 하겠는가? 현재 중국은 분초를 다투며 성장발전하고 있으며 세계 각 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발전은 이미 중국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린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노력만 하면 중국땅에서 우리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1    조선족문화발전의 현황 및 대책 댓글:  조회:2571  추천:125  2007-04-27
중국조선족문화발전의 현황 및 대책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인류학연구소 교수머리말 개혁개방이후 중국사회는 몰라보게 변해가고있다. 더우기 중국속의 소수민족사회는 과거의 페쇄로부터 개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면한 새로운 문제들로 하여 많이 고민하고있다. 소수민족문화의 발전도 인구의 도시화와 경제의 시장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경우 과거 그들의 경제와 문화교육발전상황이 중국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이후 그들 역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있으며 문화발전상황도 락관적이 못되였다. 그럼 아래 조선족문화의 과거를 회고하고 현실을 점검하며 미래를 위한 대책을 검토하는 과정을 통하여 중국조선족문화의 바람직한 발전상을 그려보려 한다.   조선족문화발전에 대한 회고  1) 중국공산당의 민족문화에 관한 정책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당과 정부는 중국내의 각 민족은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하에 비교적 정확한 민족정책을 제정하고 중국 각 민족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방면의 발전에 관심을 부여하였다. 당과 정부는 민족지역자치정책하에 동일민족이 집결한 곳에 민족자치지역을 세우고 민족내부의 사무를 민족 자신이 처리할수 있게 조건을 마련해주었으며 각 민족의 언어와 문자, 풍속습관 등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각 민족의 언어, 문자의 자유로운 발전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1949년 9월 중국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한 당시 헌법역할을 담당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통강령》의 제50조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경내의 각 민족은 똑같이 평등하고 단결과 협조를 실행하고, 제국주의와 각 민족내부의 인민의 공적(公敵)을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각 민족의 우애와 합작의 대가정으로 건설한다》고 규정하고 제53조에서는 《각 소수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발전시키고 풍속과 습관을 보존 또는 개혁하며 종교신앙의 자유가 있다. 인민정부는 응당 각 소수민족의 인민대중을 도와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건설사업을 발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民族政策文件匯編》第一編, 人民出版社, 1958, p1 민족평등정책가운데 민족지역자치제도는 민족전통문화의 보존과 발전, 민족교육의 실시 등에 중대한 의의를 갖고있는 정책이다. 민족구역자치법은 중국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정책이며 국가의 중요한 정치제도의 하나로 한족 이외 기타 민족이 집결한 지역에 해당민족자치지역을 설치하는 정책이였다. 당과 정부는 이 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일찌기 《공동강령》에서 《각 소수민족의 집거지역에는 응당 민족의 지역자치를 실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195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실시강요》를 반포하였다. 1954년에 제정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은 민족지역자치를 하나의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시켰다. 1984년에는《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법》을 제정, 공포하고 국가의 하나의 기본법으로 취급하였다.민족자치지역의 특징은 자치민족의 민족화이다. 민족자치정책에서는 민족자치정부의 인원은 자치민족 인원을 위주로 구성하고(12조) 정부기관의 직권 행사에는 주요하게 지역내에서 통용하는 민족어를  사용하며(16조)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를 사용하여 민족의 문화교육사업을 발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16조).《中華人民共和國 民族區域自治實施綱要》, 《民族政策文件匯編》, 제1편, 人民出版社, 1958년, p68-69또 민족구역자치법에 의하면 민족자치지방의 자치기관에서는 《민족문화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 발양하여 민족특징이 있는 사회주의정신문명을 건설하며》(제6조), 《본 지역 각 민족이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발전하는 자유를 보장하며》(제10조), 《자주적으로 민족교육을 발전시키고》, 《민족사범학교, 민족중등전업학교, 민족직업학교와 민족학원을 설립하여 각 소수민족의 전문인재를 양성하며》, 《소수민족학생 위주의 학교에서는 여건이 되면 응당 소수민족문자로 된 교재를 채용하고 소수민족언어로 수업하여야 한다》(제37조)고 규정하였다.   민족문화면에서는 《자주적으로 민족형식과 민족특징을 구비한 문학, 예술, 신문, 출판, 방송, 영화, 텔레비죤방송 등 민족문화사업을 발전시키고》, 《민족서적을 수집, 정리, 번역, 출판하며 민족의 명승고적,  귀중한 문물과 기타 중요한 력사문화유산을 보호한다》(제38조)고 규정하였다. 《中華人民共和國 民族區域自治法》, 國家民族事務委員會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新時期民族工作文獻選編》, 中央文獻出版社, 1990, 237-245 참조. 이러한 민족지역자치정책은 중국 각 소수민족 민족문화의 전승과 민족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과 민족구역자치정책에 의하여 조선족 집결지역에도 민족자치정부를 건립하였다. 민족자치지역에서는 자치정부기관를 세우고 자치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리고 조선족이 비교적 많이 집결한 향에서는 민족향을 건립하였다. 민족향정부는 민족자치정부에 속하지는 않지만 민족이 상대적으로 모여있기때문에 역시 일반 향과는 다른 특수정책을 실시하였다.  현재 조선어로 근무를 집행할수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1952년 건립)와 장백조선족자치현(1958년 건립) 등 지방정부도 있고 동북의 조선족집결지역에는 민족언어로 수업하고 민족의 언어, 문자를 배우는 조선족유아원으로부터 대학교까지 있다. 그리고 우리말 잡지, 신문 출판, 방송 등이 있다. 이러한 여건들은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화와 민족특성을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발전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조선족문화의 발전조선반도 주민들이 중국 동북에 이주, 정착하면서 민족문화계승과 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을을 중심으로 집중거주하였기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과거 일제의 통치과 현지 관헌 및 봉건지주들의 압박과 착취 등으로 생계유지에도 힘든 그때 민족문화조직과 민족학교의 운영은 자발적인 상태로 아주 어려웠다. 단지 이국 타향에서도 민족문화와 민족교육이 단절되지 않고 맥을 이어왔다는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1945년에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 1945년 일본이 패망한후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또 여러 원인으로 중국에 자리를 잡은 조선인도 적지 않았다. 특히 동북지역의 조선인들은 그 지역을 개척한 연유로 많은 조선인들이 정착의향을 보였다. 하여 조선반도로 돌아가지 않은 조선인들은 중국 국내전쟁의 환경속에서도  민족의 문화와 교육발전에 열정을 보였다.   당시 동북지역의 조선족사회는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진행한 토지개혁과 더불어 민족 전체의 노력하에 문화교육에도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당시 조직된 문예단체들로는 연변지역의 《불꽃극단》, 《길동군구정치부문공단》(연변문공단의 전신), 흑룡강성의 《목단강민주련맹문공단》, 통화지역의 《료녕군구 리홍광지대 선전대》 등이 설립되였다. 문예지로는 《연변문화》, 《대중》, 《해방》, 《건설》, 《불꽃》, 《신청년》 등 민족문학잡지들이 발행되였다.   그리고 민족의 방송, 신문, 출판 등 사업도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의 투항직후 《연길신화방송국》(연변인민방송국의 전신)이 연길에 설립되여 민족언어 방송이 가능하였다. 이외에 조선문신문들이 발행되였는데 연길에는 《연변일보》, 목단강에는 《인민신보》, 할빈에는 《민주일보》, 단동에는 《단결보》 등이 있었다. 1949년에는 상술한 신문들이 여러차례 합병을 통하여 《동북조선인민보》로 출간되였다. 또 1947년에는 연변교육출판사가 연길에 설립되여 동북 조선족 중, 소학교의 조선어로 된 교과서와 기타 서적들을 책임지고 출판하였다. 조룡호 박문일 주필:《21세기로 매진하는 중국조선족발전방략연구》, 료녕민족출판사, 1997, p199-204 참조. (2)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과 민족문화교육발전에 대한 지원정책으로 조선족문화과 교육은 더욱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먼저 조선족문화기관인 문화관, 예술관 등이 중화인민공화국성립직후 동북3성의 조선족지역에서 재빨리 설립되였다. 1949년말에서 1953년까지 길림성 소속의 연변 각 현, 시와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 흑룡강성의 할빈시조선족문화관과 료녕성 심양시, 무순시의 조선족문화관이 륙속 설립되였다. 조선족문화관외 대중적인 문화보급시설 례컨대 문화실, 선전대 등도 조선족농촌에 많이 세워졌다. 연변 농촌에만 하여도 1300여개의 문화실이 설립되였고 300여개의 농촌선전대가 조직되였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6 《창업》, 민족출판사, 1994, p5401949년이후 조선족의 문학창작활동을 위한 기구들도 많이 설립되였다. 1950년 연변문예연구회가 조직되고 1953년에는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가 구성되였으며 1956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가 설립되였다. 그리고 문예잡지로는 1951년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가 《연변문예》, 《장백산》 등 조선문 문예월간지를 창간하고 1956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에서는 《아리랑》문예잡지를 창간하였다.   조선문신문으로는 1955년 《동북조선인보》가 《연변일보》로 개칭되고 이외에 《연변청년보》, 《연변소년보》가 창간되였으며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등 대학 신문들도 발간되였다. 기타 지역의 조선문신문으로는 흑룡강성에서는 《목단강일보》,《흑룡강신문》이 발간되였고 료녕성에서는 《료녕신문》이 발간되였다.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조선말방송도 중앙과 동북지역 지방방송국에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51년 연길인민방송국이 연변인민방송국으로 개칭된후 중앙인민방송국의 중요한 프로를 중국어로 중계하는외에 전부 조선말로 방송하였다. 이외에 1950년에 중국국제방송국 조선말방송이 개시되였고 1956년에는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이 시작되였으며 흑룡강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은 1963년에 시작되였고 길림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은 1965년부터 개시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조선문 출판사업도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건국전에 세운 연변교육출판사가 1949년말에 민영출판사로부터 국영출판사로 되였고 1951년에는 연변인민출판사가 따로 나왔다. 그리고 북경민족출판사에서는 1953년에 조문편집실을 내왔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 상대적인 안정속에서 민족문화사업은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족문화사업은 1950년대 중반이후부터 들이닥친 《반우파투쟁》, 《민족정풍운동》 등 정치운동가운데서 많은 좌절을 당하였다. 특히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가운데서는 민족정책이 소외되고 민족특징을 말살됨으로써 민족자치구역은 유명무실하게 되였고 민족교육, 민족언어와 문자 및 풍속습관 등도 완전히 무시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원래 민족자치정책에 근거하여 각 행정기관에서 조선어가 우선 사용되는 관례를 없애버리고 대부분 행사에서 한어를 우선 사용하였으며 각종 공식장소에서도 민족특성을 거의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그리고 민족문화사업의 명의하에 진행된 사업들은 거의모두 철폐되였거나 크게 축소되였다.  민족문화사업의 현황  1) 개혁개방과 중국조선족문화발전에서 제기되는 문제개혁개방이전 중국은 계급투쟁리론의 지도하에 많은 정치운동을 겪어왔다. 이러한 정치운동은 사회주의로선과 공산당의 령도를 견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정치운동가운데서의 계급투쟁의 확대화, 절대화 경향은 조선족의 많은 우수한 인재, 지도자들이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반혁명분자》, 《반역자》 등 모자를 쓰고 박해받았고 눈을 감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차 제3기 전체회의에서 등소평을 비롯한 1세대 혁명가들이 당내에서 주도적지위를 확립하고 당의 사업중점을 경제건설에로 전환하면서 중국 대지에는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였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조선족사회도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였다. 더우기 시장경제의 물결속에서 원래 계획경제의 틀에서 보장받던 조선족문화, 교육 사업은 준엄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조선족의 사회변동은 다방면이나 민족문화, 교육 분야에 미친 영향은 아주 엄중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언어, 문자는 민족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중국조선족의 민족정체성유지와 민족공동체발전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민족의 언어, 문자를 보존, 발전시키는 민족문화사업과 민족교육사업이 사회적, 경제적 원인으로 빠르게 축소되고있다.   그 주요한 현상을 렬거하면, 조선족 집거지역 농촌에 많이 분포되여있던 문화관 등 문화시설의 점차적인 소실, 조선문 도서 출판의 급격한 축소, 조선문 신문, 잡지 발행량의 급격한 감소와 운영의 어려움 그리고  민족학교 학생래원의 고갈과 교육질의 하강 등을 례들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시장경제의 충격과 조선족의 인구이동, 인구감소 등이 제일 큰 원인이라 하겠다. 따라서 현재 조선족문화사업은 그 특수성과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많은 애로사항에 부딪쳤다.   그러면서 여기서 특별히 더 제기해야 할 문제는 우리 조선족문화기관이 직면하고있는 엄중한 재정난이라고 할수 있다. 과거 민족문화기구들과 매체들은 모두 각급 정부 재정에서 책임지고 모든 사업비용를 지출하였는데 현재는 그 체제를 바꾸고 민족문화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이 점차 줄어들고있는 형편이다. 거기에 정년퇴직인원들의 월급지불, 생활복지 등 원래의 체제가 남겨놓은 문제, 물가상승이 사업경비에 반영되지 않는 등으로 하여 사실 현재 신문, 출판, 방송, 문화관 등 민족문화기관 등은 현상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그리고 민족문화사업의 불경기와 더불어 이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것도 하나의 큰 문제라고 볼수 있다. 민족문화기관과 조선말 매체들의 경영난, 자금난과 집거지역의 조선족인구의 감소 등은 민족문화사업의 불경기와 하락을 초래하고 그것으로 하여 또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많이 《하해(下海)》 또는 다른 분야로 전근하고 새로운 인재들은 모집하기가 어려워져 현재 우리 민족문화사업은 일종의 악순환에 빠져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의 대책 1) 민족문화의 중요성민족이란 그가 지닌 여러 특징에 의하여 존재한다. 한 조상을 모시고 같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며 그리고 어느 한 민족집단에  함께 속하여있다는 의식 등은 한 민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언어, 문자를 포함한 민족문화는 한 민족이 기타 민족과 구별되는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사실 한 민족이 기타 민족에게 동화되였다는것은 그 민족의 문화가 소실됐다는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민족이 살아남고 발전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조선족의 경우 백여년 동안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민족정체성을 지키며 떳떳이 살아갈수 있었던것은 바로 우리 언어, 문자, 예술 등을 지키고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내렸기때문이였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련대감을 강화시켰다.   2) 민족문화발전의 제 여건중국은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다민족국가이다. 중국 소수민족중의 하나인 조선족은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의 지원하에 끊임없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 민족문화의 발전을 도모하여왔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문화의 발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희망도 없지 않다.   첫째, 현재까지도 우리 민족문화의 기반이 든든한것이다. 민족문화발전의 기초로서 민족교육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동북지역에는 조선족교육이 유아교육에서 대학교교육까지 민족교육의 체계화가 형성돼있고 민족성원들의 노력으로 동북조선족 집거지역에는 많은 조선족문화관이 설립돼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조선족들은 중국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자기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려고 노력하고있다. 대부분 조선족은 자기가 조선족임을 잊지 않았고 혼인에서 배우자를 조선족가운데서 찾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식생활에서는 여전히 자기들의 전통적인 식습관을 따른다. 둘째,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이 있다. 이는 우리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법적보장이다. 당과 정부는 소수민족 경제, 문화, 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매 시기마다 상응한 정책과 제도를 내오고 소수민족사회의 발전에 힘을 기울여왔다. 가령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과 소수민족사회발전을 위한 지원이 없었다면 민족학교, 민족출판, 민족신문, 민족방송 등 사업이 현재처럼 발전되지 못하였을것이다. 때문에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과 각종 지원은 민족문화와 교육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수 있는 유력한 보장이다.셋째, 한국 등 국외 조선민족사회와의 활발한 교류는 우리 조선족문화의 발전에 적극적인 요소가 된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민족의 한갈래로 이미 중국 다민족국가의 일원으로 되였지만 고국이 있는 과계민족(跨界民族)으로 력사적으로 형성된 본 민족의 기본적인 의식과 감정을 국외 조선민족과 공유하고있다.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중한 량국의 경제, 문화 등 방면의 활발한 교류는 중국조선족들에게 민족동질성을 자각하게 하고 민족적자존심과 자신감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현재 전국적으로 부는 《한류》바람은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화발전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여하고있다.3) 민족문화발전을 위한 대책우에서 보다싶이 현재 조선족의 민족문화 발전과정에는 많은 어려움도 있지만 유리한 여건도 적지 않다. 도전과 기회가 우리 앞에 동시에 기다리고있다. 우리는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여 도전을 무사히 넘겨 민족문화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첫째, 튼튼한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경제는 모든 사업의 기초이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 발전과정에서 생기고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거의 모두 인구이동에서 비롯되였으며 그것은 또한 경제생활의 취약함에서 기인된다. 조선족부녀들이 낳으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것도 경제문제가 주요한 원인이며 특히 한족이 절대다수 차지한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이 민족 집거지역을 떠나 타지역으로 떠나는것도 경제가 주원인이였다. 가령 본고장에서 수입을 높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수 있다면 누구도 낯설고 동포가 없는 타민족지역에 돈 벌려 나가지 않을것이다. 따라서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고 조선족지역의 경제토대를 튼튼히 하는것은 우리 선조들이 개척하고 생활의 뿌리를 내린 민족의 전통적인 집거지역에서 민족의 얼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민족집거지의 재조성과 새로운 형성도 경제와 밀접히 연결되여있으며 민족문화사업도 튼튼한 경제토대가 뒤받침되여있으면 더욱 확대발전시킬수 있는것이다.   둘째, 조선족의 상대적인 집거지를 조성하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민족의 일정한 집거지역은 민족성과 민족을 보존, 유지하는 근거지라고 말할수 있다. 현재 조선족사회는 인구이동과 인구감소에 따라 민족 집거지역이 점차 축소되고 민족교육이 위기에 직면하였으며 민족문화의 보존과 발전에도 큰 제동이 걸렸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좋은 방법은 원래의 민족 집거지역을 지키고 또 새로운 민족집거지를 건설하는것이다.   민족 집거지역 지키는 방법은 기존의 인구가 비교적 집중한 마을을 중심으로 인구가 많지 않고 산재한 조선족마을사람들을 그곳에 집결시키는 일을 참답게 추진하는것이다. 다른 한면 우리 민족이라고 한평생 농촌에서 오리처럼 논밭에서 헤매라는 법은 없다. 현재 도시화과정은 하나의 필연적추세라고 할수 있는바 농촌인구가 도시로 흐르는 추세는 막지 못하고 또 막을 필요도 없다. 문제는 소수민족성원으로서의 도시진출이 민족인구의 분산화를 초래하므로 도시에서 민족성원들의 상대적집거를 위하여 새로운 민족 집거지역을 만드는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도시로 진출한 조선족들을 될수 있는대로 모여 살도록 민족사회 내부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함께 모여 생활할수 있는 여건마련에도 힘을 기울려야 한다.   셋째, 자기주체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 거주민과 동일민족으로서 심리, 성격, 언어 등 다방면의 동질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그대로 우리 중국조선족은 우선 중국 국민이다. 때문에 조선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자기주체성을 명확히 세우고 《감상적인 동포정서》에 집착하지 말고 선조들이 개척한 땅을 영원히 지킬 각오를 하여야 하며 이 땅의 주인으로 민족의 우수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소질향상에 힘을 기울려야 한다. 그리고 과경(跨境)민족의 특수성을 하나의 우세로 리용하여 조선반도와의 각종 교류와 협력이 민족문화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넷째, 민족문화 보존, 계승의 토대는 민족교육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민족사회에서 민족성원들 모두 민족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을 널리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민족성원들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강조하여야 한다. 민족문화와 교육발전에 당면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누구나 할것 없이 민족 전체가 힘을 합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성원들이 자각적으로 민족문화보존과 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 조선족은 우리가 지닌 문화적우세 그리고 기타 여러 우세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앞장선 양상을 보이고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구이동에서 비롯된것이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국내 어느 민족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활약적이다. 도시화과정에서 소수민족인구가 자기 집거지를 떠나 도시 진출하는것은 민족인구의 분산화와 희석화를 말하며 이것이 민족경제발전과 민족교육실행 및 민족문화 보존, 계승에 많은 제한을 주고있는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에 더욱 힘을 기울려야 한다. 더우기 글로벌시대에서 있어서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은 민족문화을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발전에 크게 기여할수 있으며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수 있다.  
10    한국정책, 이래도 믿어야 되는지? 댓글:  조회:3750  추천:125  2007-04-03
한국의 재중동포정책, 이래도 믿어야 되는지? 정신철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과 더불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 지난달의 재중, 재러 동포에 대한 방문취업제를 실시함에 따라 이제는 정리되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방문취업제와 관련하여 한국어시험도 한국어 위상을 높이고 중국조선족문화보존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질의는 있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한국어 시험장소선정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생각되는 바를 적으려 한다.   첫째, 한국어시험의 취지는 무엇인지? 만약 방문취업제에 따라 무연고 동포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한다면 그 장소를 조선족이 제일 집결된 동북지역에 대부분을 두어야 하지 않는가? 현재 국외진출과 산해관이남 진출로 동북의 조선족인구는 이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이 동북지역에 집결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험장소를 보면 동북지역에는 장춘과 대련 두 곳 밖에 없다. 사실 동북조선족인구의 분포상황을 볼 때 연변조선족旼≠翎?제일 집결되 있는 외에 길림성의 길림지역과 통화지역, 흑룡강성의 목단강지역에 비교적 많이 집결되어 있고 도시로는 심양, 하르빈,  길림, 장춘, 대련 등 곳에 많이 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동북지역에 적어도 시험장소를 연길, 목단강,  심양, 하르빈, 길림, 대련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어시험 대상을 무연고동포라고 할 때 왜 그들이 많이 집결된 연변, 목단강 등 지역에 시험장소를 정하지 않았는지? 사실 무연고동포라 할 때  조선반도 북측출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제일 집결된 연변, 목단강 등 지역은 완전히 제외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셋째, 선택한 시험장소를 볼 때 이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시험이 아닌가 싶다. 시험장소 11곳 가운데 산해관이남에 9곳으로 북경, 청도, 연대, 천진, 상해 등 지역은 그래도 조선족이 많이 분포되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꼭 무리라고 말 할 수 없으나 남경이든가, 중경 등 곳은 원래 조선족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지역의 진출한 조선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자들이 많으므로 꼭 한국에 가려는 자들도 동북지역에 비하면 아주 적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만약 한국어시험대상이 중국인이 아니고 무연고 동포라고 하면 한국어시험장소를 동북지역에 적어도 2/3이상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제안을 내놓는 자에 대하여서는 중국실정에 너무 깜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시도가 있는지 질의하고 싶기도 하다. 중한 수교 15년, 더욱이 중국조선족문제로 하여 한국에서도 그렇게 많이 물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제정자들은 중국조선족실정을 이렇게도 모르는지 참 답답한 일이다. 조금만 유의하면 위의 시행착오 같은 것은 범하지 않을텐데!    
9    한국방문취업제를 둘러싸고 댓글:  조회:3903  추천:117  2007-01-10
얼마 전 한국국회에서 고용허가제 개정안을 공식 통과함에 따라 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이 더욱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제도시행은 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이 더욱 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시행을 위해 사전준비가 잘 되었는가가 문제이다. 즉 다시 말하면 방문취업제의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또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도 명확치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그럼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1.선정대상에 대하여 현재 한국에 10여만의 조선족이 있고 또 연인수로 수십만이 한국행을 이룬 현황을 볼 때 일정한 능력을 가지고 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한국행을 이루었다고 본다. 중국에 남아있는 조선족, 특히 농촌에 있는 청장년들은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돈을 쓰고 갈 형편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먼저 가정상황이 어려운 농촌청장년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경제력 등의 결핍으로 장가를 가지 못한 농촌 노총각에 대한 보살핌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는 조선족농촌청년들의 대상자 찾기 어려운 상황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조선족인구증가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다음은 고급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 또는 직업학교까지 졸업한 청년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이는 중국조선족농촌아이들의 상급학교진학과 직업교육접수에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지금 많은 조선족아이들이 초급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현상을 제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2.한국어 능력시험에 관하여 한국어 능력시험에 관하여 찬성과 반대가 엇갈려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어시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중국조선족아이들의 민족언어와 문자를 배우는 열정을 불러일으킴으로 민족문화보존과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시험은 문법보다 대화와 민족문화상식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어 능력시험을 단지 선정의 제반조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3.선정방법에 대하여 현재 시행방안으로 한국어시험을 통한 무작위 추첨방법을 거론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건대 어느 한 가지에 기울이는 것 보다 종합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구체방법으로 첫째, 조선족언론지를 통하여 선정조건, 방법 등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홍보함으로 일부사람들의 암거래를 차단한다. 둘째, 농촌이 우선적 대상으로 먼저 조선족향촌위원회에 선정대상의 상황소개와 추천을 위탁한다. 세째, 위의 기초하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 지역조선족단체 또는 지성인모임과 지역한국영사관해당인사들이 회동하여 피선정인 상황에 대한 심사와 확인을 통하여 최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위조사건, 부당 행위 등 비리가 생겼을 경우 당사자의 모든 혜택을 취소하는 등 매우 엄격하게 처리하므로 재발을 방지하도록 한다. 4.선정대상에 대한 교육문제 현재 중국조선족농민들은 한국행으로 생활수준을 많이 높이였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아껴 쓰지 않은 경향이 심하다. 심지어 동북지역에는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 번 돈을 현지 한족들에게 다 주고 만다”는 말이 흔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중국에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눈에 차지 않아 빈둥빈둥 놀다가 또 한국행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선정대상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에 가서는 부지런히 일하고 될 수록 한가지 재간이라도 터득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중국에 와서는 번 돈을 재생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해당한 교육기구 또는 단체의 설립도 중요한 일이다. 사실 중국조선족은 한국이란 고국이 있어서 중국 기타 민족보다 행운스럽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이 이것을 잘못 이용하면 폐로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돈이 있는 불량한 소비는 오히려 돈 없는 것보다 못하다 때문이다. 우리 조선족사회에는 한국에 가 번 돈을 돌아와서 탕진해 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본인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선족위상에도 불리하다. 한 가지 현상을 들면 현재 한국에서 번 돈으로 도시에 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순전한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면 무턱대고 집을 마련하기에 현지의 집 값을 높여 한족들의 원망도 듣고 있다.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다.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한족들에게 다 주면서 또 원망까지 듣지 않으면 안되니 말이다. 우리는 한국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한국에서 번 돈을 가정의 생산성, 생활상승과 민족사회발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 조선족들은 다시 한번 참답게 반성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싶다.
8    도시민족교육의 중요성 댓글:  조회:6063  추천:86  2006-10-16
1.문제의 제기 조선족은 문화를 숭상하고 교육을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과거 그처럼 간고한 이주정착시기에도 마을이 생기면 서당이나 학교가 바로 생겨 글 읽는 아이들의 낭낭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족이 절대다수 차지한 이 땅에서 우리의 농촌 집거지와 수많은 민족학교는 현재까지 민족의 언어문자와 문화를 잃지 않고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는 토대이었고 민족사회의 유유한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 토대도 도시진출과 인구감소 등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다. 농민들의 도시진출은 농촌집거지 민족교육약화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되었고 동시에 도시민족교육문제를 더욱 돌출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도시민족교육의 현 상황은 어떻고 문제점을 무엇이며 어떻게 도시민족교육을 발전하는가 하는 등 문제는 전반적인 민족교육문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민족교육, 특히 산해관이남의 도시민족교육에 대한 파악과 연구도 아주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하겠다. 2. 민족교육의 흐름 우리 선조들은 지난 긴 세월에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터득하고 자녀의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굶어도 자식만은 공부를 시킨다는 굳은 신념을 안고 공부하자는 자식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과거 우리농촌에는 촌마다 학교가 있을 정도로 민족교육이 크게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있었기에 지난 한 세기에 조선족교육은 어느 민족보다 앞장에 설 수가 있었다. 더욱이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이후 민족교육을 중요시하는 우량한 전통과 중국공산당의 정확한 민족정책의 지도하에 조선족교육은 더욱 빛을 낼 수가 있었다. 조선족지역에서는 1952년에 소학교보급을 하였고 1958년에는 중학교교육을 기본상 보급하였다. 그리고 1949년 설립한 연변대학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민족대학이고 1958년에 용정에 설립한 려명농업대학 역시 전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농민대학이었다. 20세기 90년대 중반 연변의 각 대학이 합병하기 이전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연변예술학원, 연변사범단과대학 등 5개소의 대학이 있었다. 하나의 지구급 지역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있다는 것은 아주 의례적이며 중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중국조선족의 교육열은 민족의 소질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중국조선족의 교육소준은 기타민족보다 크게 앞섰다. 예컨대 매 만명당 인구에서 연구생, 대학생, 중학생 등 소유량을 보면 조선족수준이 기타민족보다 평균 2-3배가 높았다. 3. 도시민족교육의 현황 과거 우리민족교육의 중요한 장소는 농촌마을이었다. 농촌마을은 우리의 상대적인 집거지로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지이었다. 이와 같은 민족교육의 판도는 과거 몇 십년 동안 여전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민족교육의 환경이 전에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에서 나타난 제일 돌출한 현상이 인구이동이었다. 농민들이 시골에서 현성으로, 현성에서 대, 중도시로, 동북집거지에서 산해관을 넘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한 이동은 끝이 없었다. 도시로 향한 인구 대이동이 낳은 중요한 결과의 하나가 농촌 민족교육의 축소이었다. 다른 한면 농촌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은 동북지역 도시의 민족교육규모를 상대적으로 확대하였지만 산해관이남에는 민족교육을 접촉할 장소마저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변하기 위하여 조선족교육인사들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끝에 현재는 청도, 북경, 천진 등 도시에 몇몇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어 있다. 하지만 거주분산, 정책환경, 학교신축, 재정곤란 등 어려움으로 도시민족교육은 아직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었다. 4. 도시민족교육의 출로 도시화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민족의 도시화과정은 필연적이다. 현재 몇 십만명에 달하는 조선족인구가 산해관을 넘어 중국의 대, 중 도시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만약 동북 3성의 여러 도시에 집결된 조선족인구까지 합하면 우리민족의 도시인구는 이미 상당수에 달할 것이다. 조선족인구의 분산과 민족문화의 약화에 따라 도시민족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크게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민족교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민족교육은 민족 언어문자의 사용과 보전, 민족문화전통의 유지와 발전 및 민족연대성을 강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여건의 하나이다. 도시화와 더불어 우리의 민족교육은 과거의 농촌중심에서 점차 도시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도시 민족교육의 사명은 더욱 중대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도시 민족교육을 진행하고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이 토론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도시 민족교육의 진행과 발전을 위하여 현재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것인즉: 첫째, 도시민족교육의 필요성과 현실상황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하여 기초성적인 자료를 작성하여 널리 홍보하고 정부와 민족성원들의 도시민족교육에 대한 중시와 호응을 얻어야 한다. 둘째, 당과 국가의 민족정책 및 민족교육정책을 참답게 활용하여 행정당국에 민족교육의 중요성, 절박성을 호소하고 당의 민족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조치의 하나로 정책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도록 노력함으로 민족교육진행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려야 한다. 셋째, 민족교육은 어디까지나 민족내부의 일로 민족의 전체성원이 이를 고민하고 힘을 합쳐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동북해방이후 조선족민중들이 일떠서 민족학교설립에 모든 힘을 이바지하는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 매 개인이 힘이 자라는 데까지 도시민족교육의 진행과 발전을 성원하고 지원하였으면 한다.
7    우리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댓글:  조회:5942  추천:115  2006-09-22
도시화물결과 “한국바람”은 우리사회에 아주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예전에 생각하면 곧 무너질 것 같기도 한 우리의 전통 집거지인 농촌마을도 많이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에게 희망의 불꽃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흑룡강성 목단강지역 조선족농촌들을 약간 돌아보았다. 여기의 조선족농촌도 기타 지역과 같이 인구, 교육 등 방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마을도 스산한 감이 없지 않으나 농촌을 지켜가고 있는 우리겨레들이 장하게 보였다. 이 자리를 빌어 녕안시 와룡조선족향 영산촌의 일을 좀 적어볼 까 한다. 영산촌은 녕안시에서 41키로, 와룡향소재지에서 15키로 떨어진 아담한 산촌으로 40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촌 이름은 마을의 한 열사의 이름으로 명명한 혁명전통이 있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 와서 제일 인상깊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마을발전을 위하여 뛰고있는 촌지도부 성원들의 어엿한 모습이었다. 촌장 겸 촌당지부서기의 경우 현재 마흔을 갓 넘은 걸걸한 사나이로 19살 때부터 장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썩 크게는 하지 않았지만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었다. 2000년부터 촌장직을 맡아 마을일에 관심을 돌리고 어째든 마을을 잘 꾸려보려고 노력하였다. 하여 원래 촌의 채무 20여만원을 모두 갚고 현재는 20여만원의 축적까지 있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촌장은 이전부터 하든 장사를 현재도 하고있으며 일정한 수입이 있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유가 있지만 현재 논을 2.5헥타르나 경영하고 있다. 촌장의 말을 빌리면 “마을에서 장가 못 가고 흥정망정 세월만 보내고 있는 총각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면 장가도 가고 가정생활도 윤활하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신심을 불러 일르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향건설을 위하여 촌장은 도시와 해외 진출한 영산촌 출신인사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들이 고향건설에 힘을 이바지할 수 있는 길도 구상하고 있다. 영산촌의 회계 또한 젊은이의 본보기로 될 수 있다. 올해 역시 마흔을 갓 넘은 회계는 2001년에 30만원을 대부하여 논 9헥타르를 마련하고 농사짓기에 집념하였으며 현재는 15헥타르의 논을 경영하고 있다. 이외 회계는 촌의 일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촌 지도부의 헌신적 노력과 촌민들의 협력으로 호적인구 1400명이나 실제 800명밖에 되지 않은 영산촌은 지금도 조선족마을의 순수성을 지키고 조상들이 개간한 땅을 자기 힘으로 경영하고 있다. 영산촌이 우리에게 주는 계시를 귀납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촌지도부 성원들이 조선족마을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마을들은 보통 몇 세대를 유유히 이어서 지금까지 건설하여 온 우리의 근거지였다. 촌지도부 성원들이 먼저 마을은 선조들이 개척한 땅에 세운 마을로 우리세대에 와서 무너지면 안 된다라는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마을을 지키려는 마음과 실제적 노력이 있을 것이다. 둘째, 마을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 땅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규모경영의 길밖에 없다. 소수 사람이 마을의 논을 모두 경영할 수 있다면 마을이외의 사람들이 들어 설 곳이 없고 땅이 그들에게 넘어갈 리가 없을 것이다. 셋째, 고향마을을 지키는데 마을의 남은 사람뿐만 아니라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항상 관심과 심혈을 기우려야 한다. 어디가나 잊지 못하는 것이 고향의 정다움과 그리움일 것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단지 고향의 정다움, 그리움에만 집착하지 말고 고향을 위하여 힘을 기여하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남아서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떻게 하면 고향건설에 힘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등 문제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도시화는 시대흐름의 거세 찬 물결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농경위주인 우리민족도 이제는 농경민족의 탈을 벗고 도시민족으로 발돋움해야 하며 현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 후방”인 농촌집거지 건설에도 등한하여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땅은 영원한 것이고 조상들이 개척한 땅인 전통집거지는 우리민족의 대물림 보배이며 우리민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혹시 “세계가 지구촌”이라고 운운하고 있을 때 민족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항상 “민족이란 인간공동체가 있음으로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는 것이며 세계인으로 되려면 먼저 훌륭한 애국자와 애족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조선족의 도시진출과 해외진출로 일부 학자들은 더 큰 안목으로 중국조선족을 “세계 조선족”, “동아시아 조선족”으로 구상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의 발전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먼저 중국조선족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바 그것이 날로 축소돼 가는 우리농촌을 국가의 새농촌 건설구상과 더불어 사람은 적어도 원래의 땅을 지킬 수 있고 살기 좋은 마을로 건설하는데 우리 모두 힘을 기울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농촌마을에 영산촌처럼 부지런하고 앞을 내다보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농촌이 왜 피폐화해 지겠는가? 그리고 밖에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전통집거지가 더욱 훌륭히 발전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있고 미래가 보인다.
6    장원한 타산과 지속적인 개척정신이 필요 댓글:  조회:3728  추천:113  2006-06-15
얼마전 흑룡강신문에 실은 “파리 조선족 귀국후 뭘 하려 하나”(2006.06.07)라는 기사에 ‘꿈이 없는 해외나들이, 조선족 언제면 품팔이신세 면할가’라는 질문 아주 인상깊었다. 사실 필자도 이러한 질문을 오래전부터 던지고 싶었다. 한마디 더 보충한다면 우리 조선족이 ‘떠돌이 신세, 품팔이 행세’에서 어서 빨리 탈출하였으면 한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모습 몰라보게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 해외진출과 갈라놓을 수 없다. 현재 조선족인구의 약 3분지 1이 원 거주지를 떠나 국내 기타지역 또는 해외로 움직이고 있는 사실이 조선족사회의 심각한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 민족성원들이 농촌을 떠나, 지방 소도시를 떠나 대, 중 도시 또는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진보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시대흐름에 발걸음을 같이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 거주지를 떠나는 사람들 ,특히 해외로 향한 로무자들은 왕왕 이렇게 말한다.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입은 것 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농사지어서는 자식공부도 못 시킨다’ 또 ‘좀 더 잘 살려서 역시 밖에 나가야 한다’등등, 물론 이러한 생각 틀리지 않다. 여기서 제출하고 싶은 의문은 현재 해외로무에서 상술의 욕망을 실현하였는가, 또 가령 실현하였다면 그 후에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해외로무의 결실은 어떻고 또 미래를 위하여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유감스러운 일이 많다. 그 조목들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 로무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데 그친다. 그들은 돈을 벌어 그냥 써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돈이 없을 때는 또 출국을 시도한다. 둘째, 해외 로무자 대부분은 항상 노무자로 자처하고 미래에 대한 구상이 결핍하다. 그들은 우리가 또 뭘 할 수 있나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 터득을 등한시한다. 셋째, 많은 해외로무자들의 가정, 자식 등 현실을 보면 소망달성보다 문제가 더 많다. 만약 위의 조목이 아주 틀리지 않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해외로무자들이 번 돈은 이국에서 각종 학대를 받으면서 긴긴 시간 일을 한 피와 땀의 대가이고, 가족들에 대한 근심과 그리움의 안타가운 마음을 달래면서 일한 대가이며, 특히 자식들을 잘 돌봐 주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일한 대가이다. 이러한 대가에 비해 그 결과 과연 지당한가? 그리고 해외 노무에 따른 가정의 해체, 자식들의 텅빈 마음 및 이에 따른 타락, 부모를 모시지 못한 불효 등 어찌 돈으로만 계산할 수 있으랴! 이에 대하여 우리 한번쯤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족은 민족의 여러 우세로 도시진출, 해외진출에 앞장을 섰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해외진출은 조선족가정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경제발전의 자금축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는 기타민족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우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세 영원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귀중히 여기고 장원한 타산으로 힘들게 번 돈을 가정과 민족 경제기반 닦기에 잘 이용함으로 조선족사회 재발전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외로무를 통하여 자금 축적이 일정히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민족발전에는 기타 유리한 여건들도 마련되어있다. 그 하나는 당중앙의 동북재진흥 정책이고 또 하나는 새 농촌건설의 정책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을 이롭게 활용하여 민족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고 동북아지역개발구상도 민족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을 보면 우리민족 성원들에게 결핍한 것은 장원한 타산과 지속적인 개척정신이다. 때문에 힘들게 번 돈을 더욱 유용하게 쓰지 못하고 흔적없이 날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돈은 향락을 조장하고 의지를 소침하게 하는 장본인으로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년에 우리 선조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동북지역에 생활하게 것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악착스럽게 이 땅을 개척하였기 때문에 정착하게 된 것이고 또 현지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불굴의 개척정신이다. 물론 우리에게 개척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개혁개방에 앞장선 것도 개척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첫 단계의 개척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지속적인 개척정신이 결핍한 것은 장원한 타산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이 격렬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자면 반드시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민족의 립지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5    우리의 주체성을 지켜야 댓글:  조회:3653  추천:111  2006-05-20
우리의 선조들이 조선반도에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동북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한지도 어언간 근 2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수 세대를 이어 온 조선족은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문화, 교육 등 여러 면에서 앞장 선 어엿한 민족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이러한 조선족사회도 개혁개방이후, 특히 한국과 활발한 교류가 시작된 후에는 전에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에서 앞선 한국과의 교류에서 조선족은 한국진출과 국내에서의 합작 등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다른 한편 이에 따른 폐단 또한 적지 않게 노출되었다. 그 가운데 민족의 주체성을 점점 잃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사회에는 한국을 너무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에게 한국이란 고국이 있는 것은 하나의 큰 우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기반이 중국에 있다는 것마저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재 한국 국적가입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옳은 처사인지 의문이다. 물론 이들은 한국진출, 체류의 편리를 도모하는데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조선족이 한국에서 림시적으로 돈벌이하는 것은 별문제이지만 한국에 정착하여 생활하는데는 사회, 경제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면 한국에는 조선족의 설자리가 없다. 우리의 기반은 중국에 있다. 우리는 중국에서 각 분야 주류사회에 많이 진입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한국바람에 비단 농민들뿐만 아니라 지식인, 기층 공무원까지도 이에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의 많은 기업인들도 거의 한국만을 대상하는 경향이 있어 국내시장과 기타나라 시장 개척에는 등한한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IMF시기 연변경제에 큰 곤혹을 초래한 원인이 한국에 너무 기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조선족은 한국을 떠나지 못 하고 한국과의 연계가 단절되면 즉시 무너질 것처럼 보여진다. 우리의 올바른 길은 중국에 립각하고 중국의 큰 시장을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과의 깊은 혈연, 인연을 충분히 활용하여 중국의 경제, 사회 등 영역의 주류사회진출에 더욱 큰 힘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국에만 집착하여서는 중국 주류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 중국조선족의 미래 한국에만 의탁할 것이 아니다.
4    <화합과 공존>의 이념을 위하여 댓글:  조회:3389  추천:114  2006-01-23
세계화의 흐름속에 화합과 공존의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동한 환경에 처해있는 세계의 각 국가, 각 민족간의 화합과 공존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시일도 오래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겨레 앞에 놓인 현실과제에 화합과 공존 이념의 실천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겨레는 냉전체제하에 남북이 분열되었고 근대 외래침략으로 여러 나라에서 재외동포사회를 형성시켰다. 지금에 와서 남북이 교류하고 화해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지만 분열현상은 개변되지 않았다. 재외동포사회도 부동한 정치, 경제체제하에서 민족동질성이 결핍돼가고 있으며 이질성에 따른 갈등과 불화를 많이 낳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겨레의 내일을 위하여 남북이 통일되고 재외동포사회와 모국과의 윤활한 관계도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화합과 공존의 이념은 서로의 조화를 제시하고 화합과 공존의 실천은 서로의 힘을 합치게 하므로 우리 겨레의 앞날을 더욱 밝게 할 것이다. 그럼 화합과 공존의 과제는 어떠한 것이며 또 어떻게 실현해 나아가야 하는가? 과제의 목적성과 중요성에서 보면 첫째, 남북한의 화합과 공존이고 둘째, 한국과 해외동포간의 화합과 공존이고 셋째, 한국지역민과 재한 조선족의 화합과 공존이며 넷째, 재한 조선족문제해결을 둘러 싼 시민단체간의 화합과 공존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실천성에서 보면 위와 반대로 해당시민단체간의 화합과 공존, 한국 지역민과 재한 조선족간의 화합과 공존 등으로 올라가는 문제해결 방향을 설정하고 우선 서로의 갈등과 불화를 낳는 원인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재 재한 조선족유학생 네트윅과 가리봉 중국동포타운이 나서서 재한 조선족과 한국 지역민과의 갈등해소와 상호이해의 장을 만드는 실험이 아주 중요한 계기로 될 것이라 본다. 그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한 활동은 곧 다가오는 추석명절에 의 문화학술행사이다. 문화행사는 재한 조선족유학생의 위문연출과 지역민과의 체육경기이고 학술행사는 중국조선족사회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로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재한 조선족의 이미지 개선과 한국 지역민과의 상조, 상생을 도모하는데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작이 있는 법이다. 그 시작이 비록 초라하고 미소하지만 그 목적이 명확하고 행동이 올바르다면 시작이 절반이라고 그 일은 꼭 성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재한 조선족유학생과 가리봉 중국동포타운의 을 위한 노력도 현재는 아주 미미하지만 시간의 지남에 따라 요원의 불길처럼 훨훨 타올라 한국민과 조선족사회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 묵직한 결실을 맺어리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중국, 일본, 미국 등 동포사회에서도 한국인, 조선족, 조선인, 재일조선인, 재미조선인 할 것 없이 모두 서로 협력하고 공조하여 민족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민족의 미래가 더욱 밝을 것이고 세계에서 민족의 위상이 더욱 빛날 것이다. (본 글은 필자가 2003-2004년 한국체류중에 쓴 것이나 현재도 과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띄워 본다.)
3    도시화과정과 우리민족 댓글:  조회:3149  추천:89  2006-01-17
개혁개방이후 중국사회는 몰라보게 변모되었다. 이 가운데 제일 뚜렷한 현상은 도시화과정의 가속화이었다. 과거 중화인민공화국성립직전까지 중국사회는 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낙후한 농업국가로 현대공업생산액은 공농업총생산액의 10%밖에 차지하지 못하였다. 발달하지 못한 공업경제는 현대도시발전의 발걸음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 중국의 도시화건설은 궤도에 들어섰으나 정치운동에 너무 기울인 탓으로 도시화건설에 뚜렷한 성과를 취득하지 못하였다. 1980년대 이후 본격으로 실시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도시화과정을 가속화시켰다. 하나의 인구현상으로 도시화과정는 인구가 도시로 부단히 집중하는 과정이다. 인구이동의 흐름은 농촌인구의 도시진출이 위주이었으며 이것은 또 도시의 규모를 확대하였고 도시의 경제활동을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 급속한 도시화 진전에 따른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도시화과정의 일반적 영향, 즉 도시인구의 팽창, 교통체증의 증가, 생활시설의 역부족, 도시진출가정자녀들의 교육시스템의 결핍 등을 뛰어넘어서 도시화과정이 중국소수민족사회발전에 주는 영향을 나렬해 보려 한다. 먼저 그 전제를 보면 중국은 한족인구가 절대다수인 다민족국가로 절대숫자를 보면 소수민족인구가 적지 않지만 소수민족이 각기 한족속에 섞이면 바다속의 좁쌀에 불과하다. 때문에 소수민족인구가 자기 집거지를 떠나 도시 진출하는 것은 민족인구의 분산화와 희석화를 말한다. 이에 따른 현상들을 보면: 첫째, 소수민족인원의 도시진출은 현대 시장의식과 새로운 가치관 수립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나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에는 많은 허점이 생기고 있다. 둘째, 도시화발전은 도시인구의 증가와 인구의 집중거주를 현실화하고 있지만 소수민족인구는 더욱 분산되고 희석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셋째, 소수민족인원의 도시진출은 더욱 개방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경제발전의 기회, 선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및 매 개인의 경제수입확대의 가능 등은 있지만 민족인구의 분산화는 민족경제발전과 민족교육실행 및 민족성유지에 많은 제한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고 도시화를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도시화과정은 인류역사의 흐름속에 막을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소수민족 성원들이 전체적인 도시화의 큰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일부 사람들은 흔히 세계화가 진전되고 세계를 지구촌으로 비교하고 있을 때 국가, 민족 등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며 의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국가와 민족의 소실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겠다. 국가와 민족이 존재하는 한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태여 나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누구이면 어느 인간단체에 속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뿌리가 없는 부평초와 다름이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가 서서히 다가오고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고 있을 때 무슨 민족을 논하랴 하는데 사실 자신의 조상, 자신의 민족 나아가서 자신이 살고있는 나라를 생각하고 않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세계인으로 될 수 있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물론 현재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과거와 같은 협소한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시장이 있을 수 없다. 그럼 중국조선족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개혁개방이후 특히 1990년대이후 중국조선족사회는 몰라보게 변화하였다. 과거 농경민족인 조선족은 벼농사를 하면서 주위 기타민족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여왔다. 하지만 우리민족이라고 한평생 농촌에 있으라는 법이 없으며 또 그럴 수도 없다. 조선족의 안온한 전원생활은 개혁개방이후 원래의 면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족은 그들이 지닌 문화와 여러 우세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앞장 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구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약 200만명의 중국조선족인구가운데 50-60만명좌우가 농촌에서 도시로, 동북지역 집거지에서 산해관이남지역으로 또는 국외로 진출하였다. 이는 국내 어느 민족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조선족인구의 분포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른 문제는 조선족농촌의 공동화(空洞化), 민족교육의 축소, 민족인구의 감소와 분산화, 민족성 약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발전과정에서 부딪친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인구이동은 도전과 더불어 희망도 부여하고 있다. 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은 민족문화를 널리 전파하였고 민족경제영역을 넓히었으며 매 개인의 경제실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국외 진출은 민족의 세계적인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동포들과의 교류를 강화하였으며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자급자족위주의 생활양식하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네트웍이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시대 정보흐름과 물류 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정세에 발걸음을 맞추자면 네트웍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세계가 날로 정보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네트웍형성은 국가와 민족발전에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글로벌시대에 있어서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날로 분산화되고 있는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더욱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지금 중국조선족은 중대한 전화기에 서 있다. 조선족이 처한 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실한 대책의 강구는 아주 시급하다. 그럼 중국조선족에게 무엇이 약세이며 무엇이 결핍한가? 환경론적 각도로 보면 중국은 한족인구가 절대다수 차지한 나라로 한족들은 국내 어느 지역으로 가나 문화의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원래대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국내 기타지역 진출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의 접수와 민족문화의 계승 등 이중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다른 한면 중국현실과 민족자체의 원인으로 중국조선족은 선천의 약점을 갖고 있다. 그것인 즉 세계가 날로 정보화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민족적 중심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 하고 민족적 네트웍이 결핍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민족인구가 날로 분산화되는 이 시기 가장 큰 약세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나타난 민족발전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저 많은 민족성원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민족교육의 축소를 대비하여 규모있는 집거지 건설의 구상를 내놓고 실천에 옮기는 곳도 있고, 선조들이 개척한 땅과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하여 조선족가정 특히 어린이 있는 가정의 이사를 환대하는 조선족마을도 있으며, 또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코리안 타운 구축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도시에서 민족학교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청도 조선족학교, 북경조선족학교 등이 세워졌으며 조선족 기업인들지간의 네트웍도 점차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또 어떤 도시에서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함께 사는 동네에서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조선민족 집거지 형성에 동조하는 기미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민족발전을 관심하는 학자, 전문가들과 민족사업가들은 많은 학술회의를 통하여 민족발전문제를 깊게 토론하고 좋은 대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우에서 보다시피 많은 민족성원들과 여러 민간단체에서 민족발전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적 중심의 구축과 네트웍형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민족적 중심이 있고 네트웍이 형성되면 민족인구가 비록 분산되어 각 지역에 흩어져 생활하여도 세계 유태인들처럼 민족성보존과 민족정체성확립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다.
2    인구이동에 따른 영향과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대한 역할 댓글:  조회:3439  추천:80  2006-01-13
1.민족적 네트웍 형성의 중요성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은 각 민족의 발전에 크다란 기회를 주었다. 원래부터 문화소질이 높고 시대적응에 빠른 중국조선족은 이러한 계기를 활용하여 재빨리 농경문화에서 리탈하고 도시화과정과 개혁개방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또 민족인구분포의 확산, 민족경제영역의 확대, 민족문화교육의 축소, 민족성의 약화 등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때문에 날로 분산화되고 있는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자급자족위주의 생활양식하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네트웍이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시대 정보흐름과 물류 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정세에 발걸음을 맞추자면 네트웍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세계가 날로 정보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네트웍형성은 국가와 민족발전에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시대에서 있어서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중국국내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범위내에서 민족적 네트웍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조선족은 그가 처한 여러 특징으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중국조선족의 특징 중국조선족은 비록 조선반도에서의 이주로 시작되었지만 중국에 정착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첫째, 중국조선족은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의 일원이고 다민족국가의 일원이면 또 사회주의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나라의 일원이기도 하며 신속한 경제성장과 종합적 국력의 신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의 일원이기도 하다. 둘째, 중국조선족 선조들은 조선반도의 출신으로 조선족은 현재 한국과 조선이라는 고국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셋째, 지정학적으로 볼 때 동북아세아는 세계강국의 각축속에 깊이 휩싸인 지역이고 또 조선민족이 집중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조선족은 동북아세아의 중심지역의 하나인 중국동북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동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 및 미국 등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나라들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과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및 미국 등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과도 더욱 밀접한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특징은 중국조선족이 조선민족 네트웍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3.조선족인구이동에 따른 영향 과거 중국조선족은 중국의 특수한 체제하에 많지 않은 공식적 이동이외 한 지역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하였다. 1980년대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과 개방은 중국인들이 국내 각 지역의 이동을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로 향한 발걸음도 재촉하였다. 중국에서 문화소질이 높고 정세적응에 빠른 조선족은 그가 지닌 여러 가지 우세로 개혁개방에서도 국내 기타민족보다 앞장선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국내 기타민족에 비할 바 없는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현재 약 200만의 중국조선족인구가운데 50ꡞ60만정도가 동북 집거지역을 떠나 이동에 가세하였다고 말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아래의 숫자에서 보다시피 하나는 동북지역 조선족인구비례는 1990년의 97.14%에서 2000년에는 92.27%로 떨어졌다. 다시 말하면 1990년 동북3성의 조선족인구는 186.8만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177.5만명으로 감소되었고 기타지역의 조선족인구는 1990녀의 5.5만명에서 14.9만명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통계속에 든 숫자일 뿐 통계에 들지 않은 숫자를 계산하면 동북지역외의 조선족인구가 더 많은 비례를 차지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필자의 여러 차례 현지조사에 의하면 현재 조선족 집거지역의 농촌인구가운데서 약 1/3좌우의 인구가 원 지역을 떠난 사실이 보인다.2005년7월초 필자는 료녕성 대와현 영흥조선족향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선족이 집결된 중앙툰촌과 해빈촌의 인구이동상황을 보면 중앙툰촌의 전체인구 1610명에서 촌을 떠난 사람이 511명으로 전체인구수의 31.7%차지하였고 해빈촌의 전체인구 1315명에서 촌을 떠난 사람이 512명으로 38.9%차지하였다. 그리고 흑룡강성 해림현 해남향의 남라고촌사에 의하면 2002년 마을인구 1941명에서 촌을 떠난 자가 716명으로 36.9%차지하였다(리수학 편저《개척의 70년 발자취--남라고촌사》2002.7). 셋째로 조선족의 국외진출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역시 상술한 촌의 상황을 보면 이동인구가운데 국외진출자의 비례가 중앙툰촌은 41.7%차지하고 해빈촌은 86.7%차지하였으며 남라고촌은 74.3% 차지하였다. 그리고 한국 법무부의 통계와 혼인이동 등 여러 추측에 의하면 현재 재한 조선족이 약 15만명이 되고 일본에도 4-5만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현재 약 200만의 조선족인구가운데서 국내이동이 약 30만ꡞ40만명이 되고 국외이동이 약 20만명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조선족사회의 극심한 변동과 진통은 인구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고국인 한국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조선족의 국외진출에서 보다시피 대부분이 한국이었다. 중앙툰촌의 경우 국외진출자 가운데 한국진출자가 89.6%차지하였고 남라고촌의 경우는 94.9%차지하였다. 사실 “코리안 드림”은 조선족사회의 평온을 허물는 장본인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급속한 인구이동에 따른 조선족 집거지역 농촌인구의 격감, 수많은 부녀자들의 유출, 기타민족에게 경작지의 양도 등은 민족 전통집거지의 축소, 민족기초교육의 약화, 총각들의 혼인의 어려움, 장기출국에 따른 가정파탄의 위기, 도시진출에서 민족성보존의 어려움 등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민족의 애착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로 근심하고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족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합쳐서 당면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천이야말로 민족이 살아 남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4.조선족의 역할과 기여 중국의 개혁과 개방에서 조선족이 앞섰다는 것은 새로운 문제들을 먼저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같으며 동시에 개혁개방의 과실을 먼저 향수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다. 현재 중국조선족은 봉착한 문제들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다른 한 방면 또 발전의 희망도 보이고 있다. 도시화, 현대화는 사회발전의 막지 못하는 큰 흐름이다. 인구이동은 중국조선족의 이러한 과정을 기타민족보다 앞서게 하였고 현대의식도 기타민족보다 빨리 터득하게 하였다. 이러한 여건들은 조선족사회의 비약적 발전을 초래하고 조선족이 현대민족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조선족은 민족이 지닌 특수한 우세로 세계화흐름 속에 가세하고 있다. 그 일례로 조선족전체의 약 1/10에 달하는 인구가 현재 중국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제화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의 국외이동은 그들의 시야를 넓이고 세계적 감각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또 그들이 다 민족, 다 문화 환경에서 터득한 경험을 살려 세계 기타 여러 나라의 동포들과의 교류를 추진함으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족의 네트웍형성은 민족의 화합과 공존,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발전,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조선족은 부동한 지역, 부동한 체제하에서 오래동안 생활하여 온 여러 나라 동포, 특히 한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갈등과 오해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갈등과 오해도 점점 적어질 것이다. 지금 중국조선족과 한국인과의 화합이 중국에서, 한국에서 서서히 이루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은 한국이란 동일국가와 해외동포들과의 깊은 연계를 잘 활용하여 민족발전의 큰 힘으로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한국과 한국인들도 해외동포에 대한 전통적 시각과 정책을 재정리해야 한다. 과거 중국조선족은 국내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평판 받았고 기타민족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현재 중국조선족은 발전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맞고 있지만 민족전체가 힘을 합쳐 민족적 네트웍을 형성하고 민족발전에 활용하면 여전히 민족의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사회발전에, 민족의 화합에,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와 공존에 큰 힘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2005년11월13일 일본동경에서 개최된 제2차 재일본 중국조선족 국제심포지엄에서 한 발언요지이다.)
1    프로필 댓글:  조회:3997  추천:121  2006-01-12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사업하는 정신철입니다. 조글로포럼의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과 교류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과 충고 부탁합니다. 그럼 자아소개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인류학연구소 연구원, 대학원 교수. 주요 연구분야: 맑스주의 민족문제이론과 중국소수민족 사회문화발전문제 및 조선민족연구 zhengxz@cass.org.cn, xinzhe58@hanmail.net 1958년 8월 길림성 반석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역사학부 졸업,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법학 석사 졸업. 연변대학 역사학박사 졸업. 사회직무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회장 중국민족이론학회 상무이사 부비서장, 중국인류학&민족학연구회  민족관계전문위원회 비서장, 중국사회과학원 한국연구중심 이사, 한국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객원교수(2003.9-2004.8). 저서: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1999),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조선족》(2004), 《동북어렵민족현대화 과정의 탐색》(공저,1994), 《한국-안개속의 국가》(주필,1995), 《중국소수민족현황과 발전의 조사연구 총서:용정시조선족권》(공저,1999) 《조선족사회의 현황과  미래》(2010) 중국소수민족인구총서《조선족》(2012)등 저작, 역저를 출판. 논문: 《중국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동서부의 발전격차를 축소하는데 관한 사고》, 《조선족사회발전의 현황과 대책연구》등 130여편의 론문과 번역문 등을 국내외 잡지와 신문에 발표. 연구에 참여한 과제: 중국국가사회과학기금과제《동북어렵민족의 현대화도로 탐색》, 중국국가사회과학기금과제《개혁개방과정에서의 중국민족관계》 국가“8차5개년 계획”사회과학중점과제《중국당대민족사》, 중국사회과학원중대과제《중국소수민족현황과 발전조사연구》, 중국사회과학원중점과제《등소평이론과 민족문제》등. 책임연구과제: 중국사회과학원 청년기금과제《조선족인구유동과 사회안정문제에 관한 연구, 중국사회과학원 기초연구과제《중국소수민족인구유동과 도시민족관계연구》, "동북공정"2003년과제 중국사회과학원 중대과제《청말민초의 중국민족주의 사조와 국족 구건》등.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