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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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소통의 힘 댓글:  조회:4762  추천:0  2017-04-18
소통이란 트일 소(疏)에 통할 통(通)으로 사물이 막힘이 없이 서로 잘 통한다는 말이다. 혈액이 잘 통하는 신체가 건강하듯이 소통이 잘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해석된다.   그런데 지금 조직화, 거대화, 정보화, 공동체의 사회에서 시야와 공간의 제약을 뛰여넘어 위챗, 큐큐, 블로그 등 SNS의 보편화로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불통으로 인한 잡음이 여전히 끊이지 않으며 오히려 SNS 등의 모바일채널을 통한 소통문화가 확산되면서 상하, 동료 간의 대화 단절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대화 단절과 갈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서고 있다.   간단한 례를 든다면 한 50대 농촌과부가 두 자녀를 데리고 궁색하게 살다가 10여 년간 한국로무로 번 돈으로 아들을 장가보내고‘자립’ 하여 지금은 ‘그만하면 괜찮게 산다’는 상황이다. 모자(母子)간은 언제부터인지 “엄마 돈을 썼다”, “안 썼다”로 분규가 생겨 지금은 서로 ‘불통’으로 아들은 설명절은 물론 어머니의 생일에도 나타나지 않는 남남으로 지내고 있다. (하긴 친척들의 조화로 몇번 ‘소통’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설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설득력이 강한 사람이 사람을 더 얻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더 크게 미치게 한다.   그렇다면 공감을 주는 설득력,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이에 필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소통의 능력”이라 답한다.   소통이란 그저 말로 대방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아닌, 긴밀하게 하나로 련결된 마음과 서로간 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는 자세에서 만이 이뤄진다. 상기 모자관계를 례로 한다면 어머니의 아픔과 기쁨을 아들도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면서 서로간 배려하고 의지하는 마음과 환경이 주어질 때 만이 원할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의 련속으로서 사람은 ‘배려와 소통’으로 자신의 인격을 표한다. 소통의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인격으로서 소통의 방식에 따라 삶의 길이 달라진다.   소통이 잘 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소통을 위해 서로가 배려하는 부부는 사이 좋은 부부이며 소통을 잘 하는 리더가 훌륭한 사업가이다.   소통은 용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의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한다. 용서하는 사람 역시 용서받는 대상이므로 용서는 결국 자기를 위함이다.   소통에 도움이 되는 경구라 하겠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면 뒤에서도 하지 말라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 진다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뜻이 외곡된다 귀를 훔치지 말고 가슴을 흔드는 말을 하라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라 뻔한 얘기보다 편한 얘기를 하라 입술의 30초가 마음의 30년이 된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뱉은 말이 나를 다스린다 사랑이 담긴 소통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달팽이도 뛰게 한다. 길림신문 2017-4-17
209    '백성을 위하는 일은 잊을수 없습니다!' 댓글:  조회:3879  추천:0  2017-04-18
지난 3월 31일 저녁 6시, 필자는 곡수ㅡ도문행 택시를 탔다. 60대 기사(한족)가 손전화로 한참 동안이나 누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한심한 세상일에 원망을 표하였다.   인사말 얘기중 필자의 "…그렇다면 기사분이 곡수촌 사람인가?"는 물음에 자기는 한평생 곡수촌의 농민이란다.   지난 70ㅡ80년대에 필자가 도문시 홍광공사(지금의 향)기관에서 사업했던 인연으로 당년의 곡수촌(그때는 행정구역이 홍위대대, 홍위남새대대(한족대대), 곡수남새대대로 나뉘였음)사람들의 현황을 물어 보니… 자기 성이 주씨로 80년대 홍위남새대대 민병련장이라며 "지금까지도 그때 공사당위의 오기활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며   지난 일을 회포 하였다.   그야말로 인연이라 할가?    내가 바로 오기활이라고 답하니 기사는 놀라는 모습으로 필자를 쳐다 보더니 "그렇다면 손님이 30여 년 전에 참관 유람바람을 막아 달라는 글을 신문에 냈습니까?"며 반문했다.   지금부터35년 전의 일이다.    1982년 8월, 필자는 당년에 날 따라 세차게 불어 치는 참관유람바람을 제지 하고저 편집부에 "참관유람바람을 막아주시오"라는 제목으로 래신을 보냈더니 두 달 후인 10월 19일 조문판 1면에 편집자의 말과 함께 필자의 편지를 실었다.   "참관유람바람을 막아주시오"가 신문에 발표되자 많은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0월 24일, 는 편자의 말로 주당위와 주인민정부에서 "전 주범위에서 근검절약, 간고분투 교양을 전개할 데 대한 통지"를 발부 했다는 소식과 함께 "참관유람바람을 견결히 막아버리자"는 "독자래신"전란으로 "우리 마음속의 말을 하였다", "가슴 아픈 일", "유람경비는 자부담을 해야 한다", "어디에서 앞장을 다툴 것인가?" 는 제목의 여러편의 기사와 함께 "신문의 비판에 근거하여 참관유람풍을 막을 대책 강구"라는 제목의 중공도문시위 판공실의 태도표시 글까지 실었다.   이날 택시기사는 그때 조문판신문을 읽지는 못하고도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기억속의 사람을 생각에 만나니 정말 반갑다고, 백성을 위하는 일은 잊을 수 없다며 오늘 택시비를 절반만 (5원) 받겠다며 기뻐하였다.   필자는 택시기사의 "백성을 위하는 일은 잊을 수 없다"에서 "백성은 언제나 옳다"를 다시금 실감하면서 "기자는 사회의 병을 진맥하는 의사이다."의 사명을 명기, 또 명기하게 된다.   오기활
208    '누구가 선생(교사)일가?' 댓글:  조회:5783  추천:0  2017-04-04
지난2월 28일자 은 "연변대학 따분한 정치학과에 실천교육 도입"을 1면 톱기사로 올렸다. 기사는 연변대학 사상정치리론학과는 실천교육을 민족고등정치학과에 도입해 학생들로 하여금 실천교육이 정치학과의 배움에서 , 으로 단맛을 본다”는 실례를 다루었다. 기사는 과거의 사상정치리론과는 대학생 의 하나로서 리론중심의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 대세였다.”, 아무리 풍부한 교육내용일지라도 리념교육으로 인한 교수의 일방적 전달이나 학문과 지식 중심의 주입식 교육방법으로는 교육 성과를 기대할수 없다”, 리념교육의 성과는 삶의 실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머리속에 기억되고 시험답안지에 기록되는 지식내용외에도 인간적인 접촉과 대화 및 토론중심 실천을 통한 자아 성찰이 아주 필요하다는 것이 연변대학 사상정치리관학과 실천교육의 체득이다”고 다루었다. 미국의 기자이며 학자인 찰스 E 실러먼은 교실의 위기”(인간화를 위한 교육, 2004년 출판)라는 조사보고 저서에서 인간교육을 제창함에서 1은 학교 및 교실분위기의 변혁이고 교육의 질을 높임에서 물질적인 것은 2차적인 것으로서 새로운 교사(敎師)가 있어야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교육을 할수 있다. 교사는 학교를 연구해야 하며 그것이 인류문화 전체를 공부하는 것이다. 오늘의 교육문제 해결의 초점은 첫째도 교사요 둘째도 교사다”는 교사상(敎師像)을 제시 하였다. 그렇다면 참된 교사는 어디에 있는 누구일가? 한국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한양대학 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윤재근교수가 공자의 론어(論語)를 바탕으로 하는 "선생은 누구인가?”이다. ㅡ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다”로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를 알면 둘을 알아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선생은 누구일까? 선생은 무엇은 맞고 무엇은 틀린다를 가르치는 일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새겨 보게끔 가르치려고 한다.  선생의 가르침은 사람이 되는 길로 인도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ㅡ 요사이 학교에 선생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학교에 지식을 전달하고 쌓게 하는 교사나 교수만 있을 뿐 진정한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분은 제자에 의하여 압도당할 여지가 있지만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절대로 압도당하지 읺는다. 공자께서 옛 것을 좋아했다고 밝힌 것은 정오(正誤)로 분별되는 지식이 아니라 선악으로 분별되는 인생이요 삶의 길이다. 이러한 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생이라고 부른다.  갓 핀 꽃을 보고 시든 꽃을 생각하는 마음은 만물을 선생으로 모실 방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새롭다는 지식은 낡게 마련이지만 살아가는 바른 길은 낡을 수가 없다.  삶을 사랑하게 하는 길로 걷게 하여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삶을 올바르게 하는 길로 걷게 하여 사람을 올바르게 할수 있는 것이면 길가에 버려진 것이라도 선생인 것이다. 세사람이 함께 길을 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선생이 될만한 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에서 좋은 점은 골라서 내가 따르고 그른 점은 거울로 삼아 고치도록 한다”(공자)  선생은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꼭 실천하기를 바란다. 이로 보아 교사, 선생이란 실천이고 대중이다는 말이다. 필자는 연변대학의 정치리론교육 + 실천교육”에 단 얼마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가는 생각에서 실러먼의 교사상과 윤재근교수의 선생은 누구인가?”를 올리는 바이다. 오기활
207    한자로 읽어 보는 남존녀비사상과 문화 댓글:  조회:5159  추천:5  2017-03-17
한자(漢字)는 뜻 글로 형상문자로 불리고 한글(韓字)은 언문(言文)이라 불린다. 필자는 인 3월을 맞으며 녀성을 대상한 漢字의 자의(字義)를 나름대로 풀어보았는데 계집 女로 합자된 한자가 녀성을 모욕하고 억압하는 자의가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우선 종 노 奴자부터 파자(破字)해 본다.  종 노(奴)자는 계집 女와 또 又의 합자로서 종이란 녀자란 뜻으로 풀이된다. 남자가 종살이를 해도 女자를 붙인 노예(奴隶)로 불리니 종이란 곧 녀자며 노예라는 뜻이라 하겠다. 간사할 간(姦)자는 女자 셋으로 합자되여 녀자는 곧 간사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녀 사이의 밑통(密通)을 간통(姦通)이라고 하는데 姦通을 파자하면 간통이란 녀자가 셋이 오간다는 것으로 姦通이 어쩐지 녀자들게 문제를 돌리는 느낌이 든다. 요망(妖妄)스럽다는 妖자 역시 녀자를 대상해 만들어진 글로 보인다. 이밖에도 간사(奸詐)스럽다는 간(奸)자나 질투(嫉妬)라는 嫉자도 녀성을 대상한 글로 생각된다. 이로보면 한자속에 숨어 있는 녀성은 요망스럽고 간사하며 질투가 많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맡길  委자를 파자하면 委는 女자와 벼 화(禾)자의 합자로 이는 녀자란 벼이삭처럼 고개를 숙이고 모든 일을 남성에게 “맡긴다”는 것으로 풀이 되여 녀자란 운명, 사랑, 생명을 남성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같을 여(如)자를 파자하면 如는 계집(女)과 입(口)의 합자로서 女자의 口에서 나오는 말은 삼종지도(三從之道)가 가르키는 대로 어려서는 부모의 의견에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의 마음에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의 뜻과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같을 如로 보아 녀자의 입은 영원한 대변인의 입으로서 자기 주장을 절대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편안(便安)할 安자나 안전(安全)할 安자도 그렇다. 남자를 놓고 말하면 집안에 녀자가 있으면 편안하고 녀자는 집안에 두어야 안전하다는 뜻이다. 좋다는 好자도 파자하면 女자가 아기(子)와 함께 있어서 좋아한다는 뜻이다. 필자의 이런 "한자녀성론"에 혹자가 왜 위엄(威嚴)을 나타내는 威는 멀리하고 별난 한자(漢字)들만 골라서 풀이하느냐고 반론 할 수 있다. 이에 威자를 파자해 본다.  威는 개 술(戌)에 계집 女의 합자로서 威란 “녀자는 집을 지키는 개와 동급이다”는 뜻, 威는 녀자가 威嚴있다는 것이 아닌 녀자를 슬프게 하는 글자로 풀이 된다. 이로 보아 회수가 까다로운 한자의 숲속에는 남녀불평등의 사상과 문화가 슴배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중국문화권으로부터 뿌리가 내렸다는 우리 민족이 문자로까지 남긴  "암탉이 울면 가문이 망한다"는 속담도 중국의 이런 남존여비문화와 사상의 뿌리에서 뻗어진 것이 아닐가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남녀평등을 주장한 녀성해방운동의 위대함과  "녀성이 절반하늘을 떠 인다"는 모택동주석의 말씀의 위대함을 피부로 느낀다. 하긴 오늘의 조선족사회에서 오가는 "지금은 남녀평등이 아닌 녀남평등이다"는 신조어까지 생겼으니 필자는 이 신조어에 슴배인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면서 이 글의 마무리로 모든 녀성들에게 "3.8"명절 인사를 올린다.  
206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왔습니다!” 댓글:  조회:4236  추천:3  2017-03-01
일전에 어느 생일상에서 모두가 “박철이 어머니 언제 돌아왔습니까?”는 물음에 50대 녀성 최영희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몇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간병일이 쉽고 돈벌이도 된다는 친구의 소개로 한동안 간병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할머니의 간병을 하면서부터 눈앞에 90대 친정어머니가 얼른거려서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돈이 뭐길래 친어머니도 멀리하고 타남의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가고 생각하던차 마침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나를 두고 하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늦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왔습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친구는 로인간병을 했습니다. 몇년전에 친정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집에 가지 않은것이 종신 죄로 느껴지며 늘 후회의 눈물을 흘린답니다.” “늦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왔다!”는 최영희는 “종신 죄를 졌다”며 눈물로 후회한다는 그녀 친구의 말에서 부모효도란 말로 하는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것임을 알게 되였다. 효란 부모를 모시는것으로서 입으로만 모시는 시늉을 하는것이 아닌 내 몸처럼 부모를 모시는것이다. 왜 몸으로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가? 그것은 부모가 생명을 준 은인이기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헌신은 나의 목숨에 대한 은공의 베품이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없다. 부모들의 자식사랑은 그 자식이 자식농사를 해봐야 진정 알게 된다. 우리 민족의 상례문화 핵심은 “효”이고 주체는 “례”이다. 그런데 “포기”시대인 현실은 상례문화마저 “낡은 습관”, “낡은 전통”이라며 포기하는것이 문제다. 조상들이 “효”로 만들고 “례”로 가꾸어온 “제사법”이 후세들을 잘 먹이기 위해 선조들이 만든 법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근거란 제사상에 정성껏 올린 제물을 결국은 망자가 먹는것이 아닌 산사람이 먹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상례를 지키는것마저 부담이나 시끄러움으로 멀리하니 문제가 아닌가? 돈이나 지위, 명성 따위로 부모사랑을 저울질하려는 풍조를 인간의 마음이 황페화한 징조라 하겠다. 인간으로 마음이 황페되면 으르렁거리며 사는 짐승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효는 이를 제일 무서워한다. “늦었지만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왔다.” 최씨녀성에게 있어서 “늦었다고 할 때가 시작이다”, “종신죄를 졌다”며 후회하는 최씨 친구녀성에게 “후회에는 약이 없다”를 건네고싶다. “망자를 생각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든것을 후회한다.” 부모생각을 하면서 눈굽을 적시던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길림신문 2017-2-28  
205    청렴의 대명사 리정문을 그리며 댓글:  조회:4858  추천:3  2017-02-21
일전에 필자는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전임 회장 신봉철이 부쳐 보낸 “리정문기념문집”을 받았다. 고 리정문 “리정문기념문집”에는 중국조선족의 “로신”으로 불리우고있는 고 김학철선생의 글 “정문이 잘 가오”로 시작하여 리정문의 동료, 지인, 친척들의 회억록, 리정문작품선 등 21편이 실렸다. 리정문이 연변을 떠나 장춘으로 전근할 때 김학철선생의 “정문이 잘 가오”중의 몇단락을 적어본다. 우리 연변에서 리정문이 떠나간다… 량수청풍(两手清风)의 사나이, 두 소매에 맑은 바람만 감도는 사나이, 줄줄은 알아도 받을줄은 모르는 사나이, 달랄줄은 더더구나 모르는 사나이, 그래서 밤낮 구차하기만 한 사나이, 이런 살림살이의 “락제생”이 떠나간다. 청렴(清廉)의 대명사 리정문이 떠나간다. 촌놈의 근성이 종시 가시지 않아 자동차를 타면 뭐가 잘못 되는것만 같아서 도무지 마음이 안 놓인다며 아침저녁 궁둥이에 못이 박히도록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괴짜같은 사나이가 떠나간다. “우리 연변은 민족자치를 실시하는만큼 민족간부의 비률을 조금이라도 낮춰서는 절대로 안됩니다!”며 맞바람에 갈기털을 날리며 포효(咆哮)하는 수사자, 언제나 겸손하고 또 살가운 사나이, 못나보이는 사나이가 떠나간다… 고 리정문은 2013년 7월 13일에 73세를 일기로 정열의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변고무공장의 일반 종업원으로부터 연변대학 교원,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선전부 부장, 주당위 부서기, 길림성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 등 직을 력임하면서 청렴의 대명사로 불리우며 삶을 마감하였다. 글속에서는 리정문을 이렇게 쓰고있다. 리정문주임은 촌을 시찰할 때 먼저 생활이 구차한 집 세호를 선정한후 한집한집씩 찾아 방문하고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라며 현금 200원씩 건네주면서 이야기를 나눈후 나중에야 촌지부서기를 찾고 마을을 돌아보군 하였다. 장춘에 간후 수행인원(우평)이 그의 돈을 결산해 주려고 하니 “나 개인의 명의로 드린것이기에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리정문주임이 눈병을 치료하러 혼자서 북경으로 떠날 때 그만한 직위에서 수행인원들이 모시고 전용차나 비행기로 갈수도 있었지만 그는 침대표는 물론, 좌석표도 없는 표를 겨우 사서 렬차에 올랐다. 성인대에서 사업할 때 남이 내놓는 자전거를 50원에 주고 사서는 그걸 타고 조깅을 하고 또 그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였다. 리정문은 자녀, 부모, 동생들을 위해 조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을 단 한번도 내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망한후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았고 장례식 때 일가친척들외에 소식을 알고 급히 찾아온 문상객들까지 합쳐 도합 20여명밖에 참가안했다. 생일도 가족들만 모여서 식사를 하는것이 전부였다… 내가 들은 리정문은 이런 사람이였다. 고 정경락: 리정문부주임은 연변에 사업시찰을 가면 소문없이 혼자서 이란에 계시는 부모를 찾아뵙고 또 종종 산에 가서 땔나무를 마련하군 했습니다. 북경정법대학 김룡하: 2003년 5월에 있은 나의 동북사범대학 박사론문답변의 날 아침 5시에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기에 깜짝 놀라 나가보니 글쎄 리정문부주임이 찰떡을 들고와서 박사론문답변에 꼭 합격되라며 나를 응원하지 않겠습니까! 리정문주임은 나를 위해 어제 저녁에 아들을 구태현 음마하의 어느 한 조선족집에 보내 하루밤을 재우면서 새벽 일찍 찰떡을 챙겨가지고 오도록 하였답니다. 내가 만난 리정문은 이런 사람이였다. 필자는 “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부문에 다리를 놓아준다”는 리정문의 덕을 본 수혜자다. 2001년 9월말, 필자는 자치주정부 일본고찰방문단의 수행기자로 출국수속을 밟으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때 기타 단원들은 이미 일본비자를 받은 뒤였다. 이에 필자는 당일에 주급수속을 끝내고 이틑날에 장춘에 가서 성급수속을 밟으려 했다. 그런데 장춘에서는 국경절공휴일때문에 공무출국수속을 접수하지 않았다. 안달아난 필자는 방법을 생각하던중 사처에 수소문하여 그 당시 성인대상무위원회 비서장으로 계시던 리정문의 전화를 알아내고 도움을 청했다. 전화를 했더니 손님접대중이니 15분후에 다시 전화를 하라는것이였다. 약속대로 15분후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아무개와 련계를 해놓았으니 그를 찾아가란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 갔더니 그분은 리정문비서장의 분부대로 수속을 밟아주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자 생각밖으로 또 리정문비서장께서 나에게 전화(핸드폰)를 걸어와 일이 잘 되였는가, 더는 도울 일이 없는가, 연변을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국경휴가를 잘 보내라는 명절인사까지 하였다. 리정문은 참다운 정(政)으로 한생을 지킨 우리 민족의 참다운 간부이며 정문(正文)으로 민족을 빛낸 학자이며 관리이며 인민의 공복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대상무위원회 전임 부주임 리득룡의 평가로 글을 마무리한다. 리정문동지는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자기를 엄격히 대하며 선량한 사람을 사랑하고 악의에 혹독하며 꼬물만한 리익마저 탐낼줄 모르는 정파다운 사람이다 리정문동지는 남앞에서 굽실거리지 않고 남을 춰줄줄을 모르며 뢰물을 돌릴줄을 모르는 “3불(3不)”지도자다. 리정문동지는 “하나의 당심에 ‘강철의 필’과 ‘철의 입’으로 당의 의지와 주장을 선전하고 변강의 특점과 민족의 특색을 선전해야 한다”고 늘 부탁하였다. 리정문동지는 온당하면서도 용맹하고 용맹하면서도 지혜로운 참다운 지도자다. 길림신문 2017-2-20
204    “남을 탓하지 말라” 댓글:  조회:4276  추천:1  2017-02-13
“절대로 남을 탓하지 말라”, 이는 30여년을 줄곧 공장장, 경리로 있는 경영의 귀재, 혁신의 선두주자, 투자유치 유공자로 불리우는 기업가 (미국독자 연변범서방플라스틱유한회사) 조광훈(63)총경리의 사업 좌우명이다.   조광훈은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남을 탓하고 환경을 원망한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문제로 잘못된것이 분명하지만 그 상황을 대처하고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노력함은 단지 책임지는것만이 아닌 타인과 주변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란다.   행, 불행 선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다. 더 이상 타인을 책망하지 않을 때 인생이 즐겁고 편안하다는것이 그의 주장이고 체험이란다.   남을 탓하기에 바쁜 사람은 자신의 삶과 성공을 타인에게 맡기는것으로 된다고 한다.   조광훈은 사업성공의 비결을 사고와 행동의 지침으로 “2,5,6정신”을 소개했다. “2” 사고의 기본정신으로 “남이 보는 나를 알자, 문제는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 “5”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과학적, 합리적, 론리적 , 상식적 , 도덕적”이다. “6” GOOD WILL(친선, 선의) 정신으로 “외모는 단정히, 표정은 명랑히, 대화는 친절히, 대방에게 관심, 열의과 성의를 다해 진실성이 있게 상대를 대하는”것이다.   “아름다움은 자기의 아름다움입이다”는 조광훈은 “2, 5, 6정신”에서 “남이 보는 나를 알자”는 객관적 립장, 옳바른 자세로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시정하는 자기개발, 자기반성의 정신이며 “문제는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문제의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해결하는 겸손과 봉사의 마음, 남을 원망하지 않고 문제를 자기에게 돌릴 때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의 품위를 더욱 높이게 되는 사고의 정신이라고 부언했다.   “남을 탓하지 말라”는 “2, 5, 6 정신”을 사업의 성공비결이라고 정의하는 조광훈의 처세철학에 귀맛이 당긴다.  길림신문 2017-2-9
203    우리 말 하지 않는 “덜된 대표” 댓글:  조회:5407  추천:6  2017-01-19
희망찬 정유년의 벽두에 연변에서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 제11차 대표대회”, “정협연변조선족자치주 제13기 제1차 회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5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 대회”를 원만하게 잘 치렀다.   실로 향후 5년간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 건설과 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될 희망의 “3회”라 하겠다.   그런데 필자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송한 “3회”관련 인터뷰 화면을 보고 대단히 유감스러웠던 나머지 “덜된 대표”로 실망을 표하고싶다.   필경 인터뷰 출연 대표들의 족별과 복장차림으로 보아 조선족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그네들이 자신의 신분과 민족을 지키지 않고 자기 민족언어를 포기하고 한어만 하는지를 알수가 없다.   기자들이 그네들을 조선말을 하지 못하게 했을가? 아니면 그네들이 보도부문의 번역일군들에게 일거리를 더 챙겨주려고 그럴가?   하긴 조선어방송때는 방송인들이 한어말 발언을 조선어로 대역하거나 조문자막을 배합하고 한어방송때는 반대로 조선말 발언내용을 한어로 대역하거나 한문자막을 배합하니 말이다.   우리 말에 “덜된 사람”이란 말이 있다.   “덜됐다”는 아직 “채 못됐다”로 “덜된 사람”이란 그가 아직 원숭이로부터 사람에로 채 진화되지 못했다는것으로 해석된다.   세상에 완전완미한 사람이 없듯이 누구를 막론하고 덜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덜됐다”는 표준이 사전에 없기에 필자는 한 인간의 “됐다”, “덜됐다”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지내다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취재하고나서 항간에서 어떤 사람을 “덜된 사람”이라고 하는가를 알게 되였다.   리광남대좌는 군령이 40여년이 넘지만 조선말을 하도 잘하기에 원인을 물었더니 “부모님의 덕분”이라고 하였다.   그가 참군하던 날 부모들이 하는 말씀이 “광남아, 조선말을 잊지 말라. 군대에 갔다와서 조선말을 잘 안하는 사람을 동네에서 덜된 사람이라며 욕을 한다.”   부모들의 재삼 부탁을 명기하고 “덜된 사람”이 안되기 위하여 항상 노력했다는 리광남, 두 딸을 참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조선말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리광남이다.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취재시 기사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면 절대 안된다”를 전제조건으로 했다는 리광남이다.   몇년전 필자는 “덜된 사람”이란 글을 썼더니 독자들의 반향이 그렇게도 컸다.   한 독자의 댓글이다.   “조선글을 모르는 정부내의 조선족간부들은 조선어문조례와 연변조선족자치법의 위배대상입니다.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을 모두 소학교에 다시 보내 조선글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조선족들이 자기의 “발전”을 위해 한어나 외국어를 배우는것은 좋은 일이다. 필자는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한어말아나운서 조송매를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느낀다.   문제는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조차 모르면서 나서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며 떠드는 “덜된 사람”, “덜된 간부”, “덜된 ..장”(국장, 시장…)과 “덜된 대표”들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4기 인대 상무워원회 9차 회의는 “사회적으로 자치민족언어습관을 존중하고 조선어발전의 량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민족단결사업을 추진하고 민족전통을 계승하며 민족의 우수한 문화와 특색경제를 발전시키고 조선어문자사업을 번영발전시키기 위하여 매년 9월 2일을 ‘조선어문자의 날’로 결정한다.”고 하였다. 결정은 조선족으로 자기 민족의 문자를 홀시하고 잃어버림에 대처하는 하나의 법적조치라 하겠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민족이란 언어의 공동체다. 청나라를 세운 만족은 본 민족의 언어를 쓰지 않은데서 만어가 소실되여 지금 중국전역에 만어를 아는 만족이 겨우 10여명밖에 없다니 만족이란 공동체를 운운할수 있을가?   “언어문자를 상실하면 민족정체성도 사라진다.”   이는 북경민족출판사 전임사장 우빈희의 말이다.   “문화의 정체성은 우리가 지키려고 해서 지켜지는것이 아니라 언어시장에 의해 좌우지된다. 즉 경제론리에 의해 결정된다. 언어문화가 시장가치가 있다고 할 때에는 꼭 사람들에 의해 지켜진다.” 이는 중앙민족대학 박광성교수의 말이다.   필자는 현실에 비춰 우리 민족의 언어문화를 포기하고 자멸시키는 주범은 다른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 민족 자신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하는 필자의 뇌리속에 자리한 몇몇 조선족의 사례다.   얼마전에 있은 “연변조선어방송애청자협회 도문분회 설립식”에서 도문시 인대에서 퇴직한 80대 로간부 박운수옹은 조선민족의 넋을 강조했고 한문으로 된 회원등록표에 몽땅 조선글로 등록했다.   남상복 전임주장은 조선글이 아주 미숙했는데 조선말로 주인대보고를 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으로 조선글을 배우고 끝내 조선어로 정부사업보고를 하였다.   어릴적부터 한족학교에 다녀 우리 말, 우리 글을 모르는 간부들이 있다. 그러나 조선족들이 집거한 연변에서 사업하려면 남상복 전임주장처럼 늦게라도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림신문 2017-1-17
202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길 댓글:  조회:5629  추천:2  2017-01-05
해마다 설명절이면 가내는 물론 동네까지 자식들의 부모효도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집집의 자식들에 대해 “잘한다”와“못한다”로 평이 내려진다.   이에 비춰 필자는 아들과 딸이 외국에 있는 “리산가족 부모” 의 립장과 시각으로 이 글을 쓴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운 부모로 다 큰 자식들에게 크고 작은 기대를 가지는것은 물론이겠지만 문제는 자식의 처사가 좀 서운하면 부모들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노여움부터 앞세우는것이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는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당연한 책임인데도 무작정 자식에게 기대하고 집착하니 그게 문제이다. 기대와 집착을 버리면 당신도 편안하고 자식도 정신상 부담이 없이 가정을 더 잘 꾸리기 위해 노력하겠는데 말이다.   자식들이 련락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며 좋게 생각하고 “너희들이 달라고 안하는것만도 효도다.”라고 칭찬하면서 사는 인생이 보람이 있을것같다. 아니면 “온갖 고생을 다하며 키워 놓으니 한놈도 명절에 오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표달하면 삶이 항상 불안해진다.   쩍하면 자식들을 욕하지 말라. 자식을 욕하면 결국 자기를 욕하는것이다.   자식의 허물을 아무리 캐고 또 캐도 결국은 그 자식은 내가 낳아 키운 친자식이니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자식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고맙다고, 용돈을 주면 액수와 관계없이 마음을 써줘 감사하다고 칭찬하면 자식들도 신나서 더 잘하기 위해 애쓴다.   자식이 나이 들면 독립을 시키는것이 자연의 섭리다. 새들도 새끼를 품고 키워서 날려보낸다. 어미새는 날아간 새끼가 다시 찾아 안온다고 원망을 안한다.   자식들이 가정을 이루면 부모들이 정을 “끊어야” 한다. 물론 경제실력에 따라서 보태줄수 있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뼈돈을 벌고와서 자식한테 집을 사주고 자가용을 사주기 위해 또다시 한국에 간다는 부모들이 가련해보인다.   부모에게도 부모의 인생이 있고 자식에게도 자식의 인생이 따로 있다. 부모가 자식들의 일에 너무 관여하는것은 사랑이 아닌 간섭이다. 주는것도 좋게 말해서 사랑이지 기실은 간섭이다.   손군까지 애나게 키워준다음 나중에는 갈등까지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자기가 낳은 자식은 자기가 키워야 하며 자기가 낳은 자식의 이름도 자기가 지어야 한다는것이 필자의 원칙이다.   그래서 일본서 출근하는 아들며느리가 네돐짜리 손녀와 두돐짜리 손자를 힘들게 키우는것을 알면서도 나는“바빠서 죽는 법은 없다”고, “청춘고생은 만금을 주고 못바꾼다”며 모르는척 한다. 단 부모효도는 관계치 말고 시름놓고 자식만을 잘 키우라는 부탁을 할뿐이다.   아들내외도 자녀를 잘 키우는것을 부모효도로 간주한다. 아들내외는 부모들이 손군들과 소통을 잘할수 있도록 요즘 애들에게 조선어와 한어까지 배워주느라 무진 애를 쓰고있다.   자식은 홀로서기를 잘하는것이 부모에 대한 최대의 효도고 부모는 자기 건강을 잘 지키는것이 자식에 대한 최대의 도움이다.  길림신문 2017-1-4
201    녹쓸지 않는 삶 댓글:  조회:4422  추천:0  2017-01-03
“책과 차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가싶다. 책이 말벗이 되고 때로는 길을 인도하는 스승이 된다. 한편 차를 마시면서 생각을 가다 듬는다. 좋은 책을 읽으면 내 령혼에 불이 켜진다. 읽는 책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 복속에 책도 함께 들어 있기를.” 이는 법정스님의 “녹쓸지 않는 삶”이란 글의 머리글과 꼬리글이다. 필자는 가는 해 병신년(丙申年)을 병신년(病身年)이라 칭하며 레오 버스카글리아교수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령혼의 불로 읽으면서 생각하고 치유하며 마감을 했다. 병신년(病身年)에 “녹쓸지 않는 삶”을 만난 것이 다행스럽고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가 령혼의 불, 삶의 지침서, 말벗으로 되여 준 것에 감사하다. 독서는 누구나 쉽게 접할수있는 탐구의 지름길이다. 옛글에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유익하고 젊어서 책을 읽으면 늙어서 쇠하지 않으며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어서 썩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 영조때 유중림은 “독서 권장하기에”라는 글에서 “글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사리를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해진다. 흔히 독서를 부귀나 공명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는 속된 무리이다.”고 했다. “태여나서 아는 자(生而知之)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는 그 다음이며 살다가 어려움을 겪고서야 배우려는 자(困而學知)가 그 다음이고 살다가 어려움을 겪고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자(困而不學)는 가장 아래이다.” 이는 “론어”에서 배움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리극강총리는 “전민독서”를 언급하면서“열독(閱讀)은 일종의 생활방식으로 열독과 사업방식이 결부되면 발전의 혁신력이 증가되고 사회의 도덕력량을 증강할수있다”고 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란 사자성어는 눈을 비비고 본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재주가 전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였을 때 쓰는 말이다. 사람이 배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정신적 식량으로 책을 “먹어야”한다. 1년 365일을 책다운 책 한권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의 삶은 녹쓴 삶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요, 그 복속에 책도 함께 있기를” 법정스님의 새해 인사말을 다가오는 정유년에 명기 또 명기하고싶다. 길림신문 2016-12-29
200    비교에 대하여 댓글:  조회:4750  추천:0  2016-12-27
대학교 교수직에 있는 아들이 흔히 많은 부모들이 자녀교육에서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자기 자식을  탓하면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요”고  당부 했다. 비교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는 등 역반심리를 초래한단다. 그런데 인간은 사람들과의 공존사회에서 살면서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수는 없다. 문제는 남과의 비교에서 자기(우리)보다 잘 나가는 사람(남)과 비교하는데서 결과적으로 내(우리)가 가난하다고, 내(우리)가 불행하다고, 내(우리)가 남보다 못하다는 비애감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비교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재산을 비교하는데서 사촌이 밭을 사도 배가 아파하고 책가방 끈을 비교하는데서 학벌이 판을 치고 외모를 비교하는데서 성형수술이 성행한다. 이런 신문기사가 있다. 한국의 모 녀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부모가 일등을 소원하는 압력으로 천신만고 노력끝에 일등을 쟁취하고 그날 밤에 자살하였다. 그녀는 그렇게도 갈망했던 일등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빼앗기게 될것같은 우려가 있어 누구에게도 그 일등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히 차지하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유서까지 남겼다. 또 어느 올림픽대회 수상식에서 1, 3등석의 선수는 두손 들어 환호를 하는데 2등석에 오른 한국선수가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기자가 “왜 고개를 숙였는가?”고 물으니 “금상을 수상하지 못한것이 너무 아쉬워서...”라고 대답하였다. 남들은 국제경기에 참가한 것만해도 영광스럽고 행복하다는데 말이다. 운동경기를 하고(보고)나면 어른들은 승부차로 아쉬워하지만 승부의 개념이 없는 아이들은 그냥 기뻐한다. 문제는 생각에 달렸다. 돈, 지위, 학벌 등의 비교는 불행을 초래하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인간이 서로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옳바른 비교는 물질적, 외면적인것은 나보다 못한(아래) 사람에 비교하고 정신적, 내면적인것은 나보다 우수한 사람(위를)과 비교하면서 따르는 삶이 사회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 유태인의 격언이다.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량쪽을 다 죽이지만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량쪽을 다 살릴수 있다.” “천재적인 아이는 학습을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른 아이다.”   오기활             길림신문 2016-12-26
199    '성탄선물' 유감(有感) 댓글:  조회:4233  추천:1  2016-12-27
성탄절이 다가오면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게 된다. ㅡ 델라는 남편 짐에게 꼭 훌륭한 성탄선물을 사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도 별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의 눈이 광채로 번득이였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무슨 중대한 결심을 내린 듯이 낡은 자켓을 걸치고 급하게 밖으로 나가더니 자기가 그렇게 아끼며 가꾸던 긴 금발머리채를 잘라 팔았다. 그리고 상가를 돌아 다니며 줄이 없어서 시계를 차지 못하고 다니는 남편을 위해 품이 있고 순박한 백금시계줄을 샀다.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는 설레임과 기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그저 남편이 짧은 머리를 한 자기를 이전과 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남편이 돌아왔다. 조그마한 선물을 사들로 집에 들어선 남편은 맥이 빠진 서운한 표정으로 안해를 바라보았다. 남편의 서글픈 표정에 그녀는 울상이 되여 겨우 말문을 열었다. “ …성탄절에 당신에게 선물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머리채를 잘라 팔았어요. 나의 성탄선물을 받으세요, 머리는 곧 자라게 될거에요.” “오! 델라. 머리가 길든 짧든 우리의 애정만은 변할수 없소. 다만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사가지고 온 이 선물이 당분간 소용이 없게 되여셔 잠시 망설였을 뿐이야.” 짐이 사가지고 온 선물은 그녀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아름다운 머리빗이였다. 안해의 성탄선물을 손에 받아 쥔 남편은 너무나 목이 메며 솟아 오르는 감격을 어찌할수 없서 그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델라, 우리들의 선물을 그대로 잘 간직해 둡시다. 지금 당장 쓰기엔 너무 아까워요. 당신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머리빗을 사기 위해 내가 그 시계를 팔았소.” “ 자, 배고픈데 먹을것이라도 좀…” 맛있는 요리 냄새가 풍기는 속에서 델라와 짐의 눈물 섞인 행복한 웃음소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요히 퍼지고 있었다.   필자는 델라와 짐이 가꾼 사랑나무에 주렁지게 달린 알찬 열매를 쳐다보는 느낌따라 “성탄선물 ”유감을 피로한다. 첫째로 “성탄선물”은 참다운 부부애란 그어떤 가난, 질고, 시련, 환난이 닥쳐도 깨질수 없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젊은 층들의 리혼률이 신혼려행지에서 파탄을 맞는 정도로 높다고 하는데 대체 무엇으로 부부를 꽁꽁 묶을수 있을가?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둘이 서로 마주보는 바람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희망으로 그 어떤 시련이나 상황에서도 깨지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둘째로 “성탄선물”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준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돈, 명예, 지위를 꼽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는 요소로는 되겠지만 그것이 행복을 담보하는 조건이라고는 말할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배금사상에 젖어 갖은 부덕한 짓들을 하는데 분명한 것은 가난은 무죄(게으름적인 가난은 유죄라고 한다)로서 단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이 파괴된다고 할수 없다. 셋째로 “성탄선물”은 선물의 참된 의미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오늘날 뢰물을 받은 것으로 고위 공직자들을 포함한 사회지명인사들이 구속되고 법적제재를 받는 사례가 많다.  사회가 서로간 뢰물로 통하는 사회로 되면 이 사회는 종당에 부패한 사회로 몰락하게 된다. 물론 서로가 함께 살아 가면서 진정한 사랑과 은정이 담긴, 뢰물성이 없는 선물이 없다면 그 사회는 “사람냄새”가 없는 얼음처럼 차갑고 경직된 사회로 된다. 문제는 선물이란 그 속에 참다운 정성과 사랑, 감사의 정이 듬뿍 담겨있을 때 주는 이의 마음이 받는 이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전달 된다. 콩씨 한 알이라도 선물은 선물이다. 성탄절을 맞으며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속의 살아있는 주인공들이 반갑게 손짓하며 마중을 오는 기분이다.  
198    경쟁의 정적 사업의 파트너 댓글:  조회:4135  추천:3  2016-12-19
일전 모촌 당지부서기가 하는 말이다. “선거경쟁은 싸움이다. 사업을 잘 하려면 싸움대상(政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월전에 새로운 촌로인협회 회장을 선출할 때 지금은 촌로협회에서 촌을 운영하는 현실인데도 나는 나의 정적을 촌로인협회 회장으로 선출했다. 경쟁의 정적이 사업의 파트너로 되여야 한다” “‘적’을 포옹하려면 내가 성격을 죽여야 한다. 성격을 죽이려면 힘들지만 결국 죽이고 보니 지금 우리 서로가 직무를 부르는 관계가 아닌 이름을 부르는 관계로 친근해졌고 서로간 개인적인 악의가 없다보니 서로간 흠집을 알려주는 친구로 되여 마음이 편안하다” “경쟁에서 정적이 사업의 파트너다” 그야 말로 원칙도 있고 도량도 넓은 말이고 처사라 하겠다. 똘스또이와 그의 친구들의 인생수첩으로 불리는 책 “세상의 지혜를 얻는 황금률”에 있는 말이다. “적이 때로는 친구보다도 유익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친구는 언제나 그대의 잘못을 눈감아 준다. 그러나 적은 그대의 잘못을 들추어내 멸시하려고 한다. 그 멸시에 분노하지 말고 멸시를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라. 성자는 한마디 말을 천금같이 아끼고 또 하잘것없는 사람의 말이라도 가벼이 여기는 일이 없다” 길림신문 2016-12-5
197    “포기”시대의 포기해서는 안될 지킴 댓글:  조회:4116  추천:0  2016-12-15
중국조선족상여문화협회(사이버두레모임)주최,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후원으로 지난 10월 22일부터 이틀간“제1회 중국조선족상여문화축제”를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주최측에 경하를 드린다.   한 인간의 죽음은 고인이 일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 친지들과의 영별로서 슬픔의 영별을 질서있게 표하는 례가 곧 상례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세기 60~70년대까지만 해도 망자에게“풍수 좋은 “집터”를 마련해 드리고저 묘자리 선택부터 등한치 않았다.   그런데 나라의 개혁개방 및 화장(火葬)정책실시로 오늘에 이르러 우리 민족의 전통상례문화가 날따라 모습이 사라지고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근년에 참석했던 몇번의 조선족상례는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었다.   병원서 환자가 운명하면 조선족의 상례문화를 모르는 타민족들이 와서 상례도우미를 했고 부모의 유골을 날려보내고는“시름을 놓았다”는 자식들이 한심했다.   아니면 정성껏 고인을 모시는 전통상례마저 오늘에는“두렵고 부담스러운 일”로 되였으니 말이다.   몇 년전 한국에서 보았는데 고인을 영별할 때 상주가족에서는 고인의 유체를 랭동시설이 마련된 호화로운 장의차에 모시고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음악을 방송하며 고인의 고향, 고인이 생전에 즐겨 다니던 고장을 돌며 고인한테 안내말씀을 하면서 전송하였다.   우리 민족의 전통상례문화의 핵심은 《효》고 주체는 《례》다.   전통문화가 없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조선족장례풍속은 2009년 6월에 길림성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여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   필자는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과 길림성 매하구시의 일부 조선족로인협회에서 실행하고있는 례(禮)봉사소조, 상여계(喪輿契)를 적극 활용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상례문화를 지켜오는 효도문화를 제때에 총화, 보급하여 대대손손 이어 갈것을 간절히 기대한다.   “결혼포기”“출산포기”“상례포기”…의 “포기시대”에 우리 민족의 전통상여문화 지킴 역시 우리 민족의 “효문화”지킴이다. 길림신문 2016-12-14
196    직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돈을 벌면 안해를 바꾼다? 댓글:  조회:5615  추천:1  2016-12-06
인터넷 《길림신문》에 실린 박영옥씨의 글 안해의“위병” 이다. 남들로부터 박식하다는 평가를 받은 모 남자가 괜찮은 직위에 오르자 자기 안해가 배운것이 없고 불민하다서면 배우자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던 그가 위병에 걸려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많은 의사들로부터 좋다는 약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호전되기는커녕 몸이 점점 야위워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신체가 튼튼하고 위가 좋던 안해마저 위병으로 남편이 못먹는 음식을 자기도 못(안)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안해더러 빨리 위병치료를 받으라고 하니 안해의 말이 병원에 다니며 의사들이 좋다는 약을 다 먹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볼라니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는 안해가 맛 좋은 소고기를 한창 먹고있었다. 그날의 소고기는 큰딸이 소고기를 즐겨먹는 안해를 위해 사온것이였다.점심에 남편이 밥상에 올린 소고기를 못먹으니 안해도 먹지 않았던것이다. 정신없이 소고기를 먹는 안해를 본 남편은 가슴이 메여지는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은 안해가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위병”이라며 좋아하는 음식을 못먹는다고 가장한것을 알고 진주같은 안해를 흙으로 여긴 자신을 자책하였다.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못 버린다"는 고사가 있다. 중국 후한(後漢) 때 광무제(光武帝)의 신하에 송홍(宋弘)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송홍은 비록 천한 출신이였으나 보기 좋은 풍채와 걸맞는 인격으로 광무제의 맘에 들어 나중에는 군사를 다루는 벼슬에까지 올랐다. 그때 광무제에게는 남편을 사별하고 과부로 지내는 녀동생인 호양공주가 있었는데 호양공주는 이미 부인이 있는 송홍과 재혼하고싶었다. 이에 하루는 광무제가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 두고 송홍을 불러 이렇게 말을 하였다. "사람이 신분이 높아지고 부귀해지면 안해를 바꾸는 것이 흉이 되지 않으니 안해를 바꾸는것이 어떻겠소?" 이에 송홍이 "예로부터 천했을 때의 사귐을 잊어서는 안되고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며 그자리에서 거절했다. 조(糟)는 술지게미를 말하며 강(糠) 쌀겨를 말한다. 즉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으면서 고생을 함께한 안해를 신분이 높아지고 부귀해졌다고 해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에 보면 광무제가 말하던 "사람이 신분이 높아지고 부귀해지면 안해를 바꾸는 것이 흉이 되지 않는다."가 현실로 되여 "직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돈이 많으면 안해를 바꾼다."는 신조어가 형성된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에 직위가 높다고 친구를 바꿨거나 돈을 많이 번 다음 안해를 바꾼 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안해의 ‘위병’"이나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송홍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떻게 생각할가? 그때는 별수가 없었다고? 아니면 그래서 후회 한다고?   오기활    
195    임금 6책 대통령 6칙 인민령수 6품 댓글:  조회:4856  추천:0  2016-11-22
“임금이 자책하면 하늘이 용서한다.”는 고사가 있다.   중국 고대 은나라 성탕왕이 7년째 가뭄으로 상림에서 기도하기를 “정치를 하면서 절약을 잊지 않았는가, 백성들이 직업을 잃지 않았는가, 궁실은 엄숙한가, 녀자들의 청이 너무 많지 않았는가, 뢰물이 만행하지 않았는가, 참소(讒訴)하는 이들이 많지 않는가”라는 육책(6責)으로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였고 한다.   말하자면 7년이나 되는 가뭄은 다름이 아닌 임금의 부덕으로 하늘에 그 죄를 고하며 근신하려는 뜻을 밝힘으로써 백성의 원망을 풀고자 시도를 하였다는것이다. 결과로 임금의 자책이 하늘의 용서를 받아 그 제사 이후 비가 전국을 적셔 천리가 풍족해졌단다.   그 후부터 동양의 제왕들은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그것을 곧 하늘의 진노로 생각하고 자신의 부덕을 자책하군 했단다. 리조500년 력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 세종대왕마저 궁궐을 영선(營繕)할 때 채석하는 군사 한명이 압사했다는 보고를 듣고 자기를 크게 자책하였다니 말이다.   피터 드러커가 대통령에게 제시한 6칙(則)이다.   (1993년에 오스트랄리아계 미국인 작가이며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199.11.19 ㅡ 2005.11.11) 가 제시한 대통령이 지켜야 할 여섯가지 원칙)   1,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이는 트루먼대통령(33대)이 종전후에 국내문제보다 국제문제를 우선시킨 것을 례로 하였다.   2,대통령은 관심과 노력을 분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는 죤슨대통령(36대)이 윁남전쟁과 국내 빈곤과의 전쟁을 함께 벌려 모두 실패한것, 루즈벨트대통령(32대)이 히틀러의 위협을 알면서도 경제문제에 전념하여 성공한 것을 례로 하였다.   3,대통령은 겉으로 쉽게 보인다고 만만히 보지 말라.   이는 클린톤대통령(42ㅡ43대)이 동성련애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군내 동성련애자의 권리를 옹호한데서 군대의 전투력을 상실한 것을 례로 하였다.   4,태통령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참견해선 안된다.   대통령이 아니 해도 좋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5,대통령은 정부 안에 친구를 둬서는 안된다.   피터 드러커는 이는 링컨의 교훈이라며 부언을 하였다.   정부 관리들은 “대통령의 친구”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고작 대통령을 위한 고자질군일 뿐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신임을 방자해 권력을 람용하기 쉽다. 대통령자리는 외로운 자리로서 대통령은 믿는 친구를 곁에 두고 싶어한다. 허나 그런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6,대통령은 인기작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는 트루먼대통령(33대)이 케네디대통령(35대)에게 한 충고란다.   리은교가 모두어 낸 인민령수 6품(品)이다.   리은교(李銀橋)는 모택동주석을 따라 다닌 시간이 제일 길고(1947년부터15년간) 모택동의 제일 마지막 호위병조장으로 자기의 저서(신격화한 모택동)에서 이렇게 밝혔다.   1,모택동은 생명의 위험 앞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셨다.   호종남의 군대가 연안을 폭격할 때 모택동은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연안을 떠나렵니다”며 기관간부들과 군중들이 모두 철거한 다음에야 제일 마지막으로 연안을 떠났다.   2,모택동은 모든 것을 혁명사업에 바치였다.   모택동은 “누구나 그를 모택동의 아들이라고 부른다오, 그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소?”라며 아들 모안영을 항미원조전선에 보내였다.   3,모택동은 세가지 경우에 눈물을 흘린다.   섬북에 계실 때 한 말씀이다. “나란 사람은 평소에 눈물을 흘지리 않소. 단지 세가지 경우에만 눈물을 흘려 보았소. 첫째는 구차한 살림에 모대기며 흐느끼는 백성들을 보면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소. 둘째는 나의 신변에 있던 통신원을 떠나 보낼 때면 아쉬운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소. (리은교가 떠날 때도 리은교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고 통신원이 희생되면 괴로워 눈물을 흘리였소.”   4,모택동은 백성들과 동고동락을 하셨다.   섬북에 계실 때 “나는 타고 다니던 말이 늙었거나 병들어 죽어도, 쓰던 만녈필이 낡아 빠져도 모두 버리기 아깝단 말이요”>라고 말씀하셨고 1957년에 “전국 인민들이 모두 정량식사를 하는데 나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겠소. 첫째로 고기를 먹지 말고 둘째로 알류를 먹지 말며 셋째로 정량을 초과하여 먹지 않겠소!”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엄격히 지켰다.   나라의 형편이 어렵던 나날에 여러날이나 낟알 구경을 하지 못하였고 일곱달이나 돼지고기를 한끼도 잡숫지 못하였다.   모택동은 널침대를 사용하셨고 기운 자리가 수두룩한 잠옷과 기운 자리가 수두룩한 수건담요를 입고 덮었으며 고급 비누와 치약을 쓰지 않았고 1963년까지 10년간이나 새옷을 한 벌도 해입지 않았다.   5,모택동은 돈을 만지지 않았다.   1962년 리은교가 모택동의 신변을 떠날 때 눈물을 닦으시며 서랍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봉투를 가리키면서 “동무가 천진에 가서 사업하면서 살림을 꾸리자면 돈이 필요 될거요. 그러니 돈을 좀 가져가오. 이 돈이 800원인데 동무에게 좀 도움이 될거요.”라며 하는 말씀에 리은교가 “난 싫습니다. 나는 돈이 딸리지 않습니다”며 거절하니 모택동은 “어서 가지오. 동무도 알지만 나는 돈을 만지는 사람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모택동은 “나는 돈을 제일 시끄러워하오”라고 말씀하면서 한번도 돈을 만지지 않았단다.   6,모택동은 인류는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고 하셨다.   1958년 모택동이 13릉 저수지공사장에서 의무로동에 참가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류는 자연을 개조해야 할뿐만아니라 자신도 개조해야 한다. 인간은 사리사욕에 빠져서는 안된다.”   “인류력사에 몇 천년동안의 사적소유제도가 있었기에 사유관념을 개변시키자면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어려울수록 이를 꼭 개변시키려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공산당원들은 무엇을 하겠는가?”   오늘에 다시 돌아 보는 임금 6책, 대통령 6칙, 인민령수 6품이야 말로 유효기가 없는 “세가지6”으로서 오늘의 대통령, 국가수령들이 엄하게 당을 다스리고 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책, 칙, 품이라 하겠다. 길림신문 2016-11-21
194    '조선족을 선족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댓글:  조회:5521  추천:3  2016-11-02
일전에 중국정법대학 교원(校園)발전사무실 책임자인 김룡하씨한테서 이런 전화가 왔다.   “오선생님, 최근에 국내 조선말신문과 인터넷에서 ‘조선족’을 ‘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에 나는 매우 유감럽습니다. 이에 나는 즉시에 관련 신문매체들에 문제를 반영하며 시비를 가릴려고하니 대방에서는 원인을 출처에 밀뿐 큰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긴 몽고족을 몽족, 위글족을 위족이라고 간칭을 할려니 조선족이 자기 민족을 ‘조족’이 아닌 ‘선족’이라고 간칭(?)하다니 말이 됩니까? ”   “우리가 자기의 민족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켜 줍니까?...나는 협애한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안면이 없는 필자한테 신문사를 찾아서 전화번호를 알고 문제를 반영하려는 김룡하씨의 애족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래서 “선족”이란 어원을 찾아 봤더니 “선족”이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 일정(日政)때 조선족을 멸시하여 일본사람들이 조선족을 “선족”이라 불렀다고 해석하였다.   연구테마가 “조선족의 다중언어(多言語)교육”인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정형규회장(교수)이 조선족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있다.   ㅡ 조선족은 자신의 신원과 존재의 의의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조선족과 한인, 코리안은 전혀 다르다. 조선족이라는 언어는 중국에서 생긴 고유명사로서 중국국적을 가지고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조선족과 조선민족은 다르며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조선민족은 조선족이 아니다. 례하면 로씨야에서 사는 조선민족은 조선계 혹은 한국계 로씨야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조선족은 한인, 코리안이 아닌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필자는 신문지상이나 사회상에서 조선족 언어문자의 람용과 외래어 란무(한국식이나 영어로 표기된 상호, 간판, 성씨, 이름)에 아주 반감한다. 프랑스인들의 “국어사랑법”을 곁들어 본다.   프랑스사람들은 국어 “방위”를 국가의 지상 의무로 여기고 있다.   1994년에 가결된 “프랑스 말 사용법안”에 따르면 프랑스인이 텔레비죤광고에서 “디스크 지키”라는 영어를 쓰면 최고로 6개월의 금고형(禁稿刑)을 받고 국제회의에서 “컴퓨터”라는 말을 쓰면 8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은 컴퓨터를 “오르디나툴”이라 하고 “디스크 지키”는 “아니마툴(활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바꾸었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이 법안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어는 늘 국가적 과제였다. 이대로 나간다면 우리는 프랑스어를 틀림없이 잃게 된다.”고 하였다.   프랑스의 총리도 “프랑스어의 수호는 프랑스의 미래를 믿는 행동”임을 강조했다.   “프랑스어의 옳바른 사용법” 책의 저자인 풍피두 수상은 일찍 1967년에 “국어정책은 정부의 단순한 부차적인 사업이 아닌, 공화국의 기본원칙, 곧 국가의 독립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영국의 사회비평가이며 사상가인 존 러스킨(1819.2.8 ㅡ 1900.1.20)의 말이다.   ㅡ 위대한 민족은 자기의 자서전을 세가지 원고로 쓴다. 한 권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가를 쓰고 다른 한 권에는 자기네 예술에 대해 쓰며 또 다른 한 권에는 자기네 언어에 대해 쓴다   언어는 살아있는 잔디와 같아 끊임없이 손질하고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아니면 어느 사이에 벌레가 먹고 잡초만 무성해진다.   언어는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려주고 그 나라, 그 민족이 얼마나 문화를 아끼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조선족 언어문자사용의 규범화가 하루속히 기대된다. 길림신문 10월 31일자  
193    “조상들 은혜를 잊지 않으면 자손이 빛난다” 댓글:  조회:4256  추천:0  2016-10-26
일전에 재미로 1분간에 감동을 느끼는 도서ㅡ “1분간의 성격테스트(사람들의 학력, 지능, 능력을 알아보는 책)”을 보니까 원숭이 해인 올해 (丙申年)에 돼지띠는 상복을 입을 운이라고 하였다.   “1분간의 성격테스트”가 맞든 틀리든 관계없이 아무튼 돼지띠인 필자는 올해에 특별히도 상례식에 많이 다녀왔다.   그런데 상례식에 참고하고 나면 이런 의문들이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친인을 모시는 슬프고 엄숙한 상례인데 무엇때문에 상주들이 많은 돈을 퍼주면서 타민족의 도우미들을 대행시키는지? )   (왜서 상주가 친인의 유골을 하늘에 날리고나서 시름을 놓았다고 할가?)   (왜서 부모의 유품을 처리할 때 부모들의 자애로운 생활사진들까지 함께 태워버릴가?)   (왜서 부모의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자식형제들이 울퉁불퉁 다툴가?)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현상이 거의 과반수였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서 들어온 얘기로 우리 민족은 사자(死者)를 생자(生者)처럼 모시고 돌보는 민족으로서 옛날엔 부모가 돌아가면 탈상할 때까지 3년간 상청을 차려놓고 조석으로 밥을 차려올렸다…   집에 불이 나면 불에 갇힌 사람보다 신주를 먼저 보호하는것을 법도로 불에 타죽은 효자, 렬녀까지 있었다…   사계절 성묘(조상의 산소를 돌보는 상례)하는 민족으로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7월 15일), 가을에는 추석, 겨울에는 동지에 성묘를 했다…   사자를 생자로 대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상례풍속만이 아니다.   한국 《조선일보》 론설위원을 지낸 이규태씨의 얘기다.   일본 사람들은 사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죽은 친구 집에 들렸더니 미망인은 불단(佛壇)에 차려놓은 위패상의 문을 열고 아무개가 수박을 사가지고 왔다고 산사람에게 올리는 말을 하였다. 언젠가 려객기 옆자리에 50대의 일본 녀인과 나란히 앉아 미국행을 하였다.   그녀는 하와이 려행을 위해 3년간을 준비한 남편이 우연한 교통사고로 죽어서 혼자서 간다며 돌아간 남편을 생각하며 울다가 려객기가 하와이상공에 이르니 핸드백속에서 남편의 위패를 꺼내 창문에 대고 “
192    지명은 땅에 새겨진 우리의 문화유산 댓글:  조회:4976  추천:0  2016-09-30
월전에 도문시 석현진 향양촌 달라자툰 책임자로부터 마을에서 석비를 세우려니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달라자(大磊子)는 필자의 출생지로 필자는 지금까지 고향의 경제문화건설에 등한치 않고있다.   필자는 고향에 석비를 세우는 일을 고향에 대한 력사적 책임으로 정중히 대하고 지명유래의 력사적문헌 근거로 1960년에 작성한 왕청현 석현진 수남대대 달라자호구부(大磊子戶口簿)와 1963년 신문에 발표된 기사 등 사료를 찾아서 구체적인 일을 책임적으로 추진하였다.   1960년에 책으로 묶은 “달라자호구부”에 따르면 달라자의 본명은 지금에 있는 석비의 대립자(大砬子)가 아닌 대뢰자(大磊子)였다.   왕청현 석현진 수남대대 “달라자호구부”의 표지는 한자로 “大磊子戶口簿”로 씌여있고, 1963년 12월《소년아동》신문에 실린“일을 찾아 하는 우리 마을 소녀들” 이란 기사에는 “왕청현 석현진 수남대대 대뢰자”로 밝혀있다.   그리고 달라자호구부(大磊子戶口簿)에 밝혀진 호주들의 적관을 보면 1887년생 리룡칠의 적관은 석현진 영창(石峴鎭 永昌), 1913년생 김종섭의 적관은 석현진 수남(石峴鎭 水南), 1919년생 량학송의 적관은 석현진 달라자(石峴鎭 大磊子)로 밝혀있다.   《신화자전》에 따르면 “磊”는 돌이 많다, 마음이 청백하다, 정정당당하다, 광명정대하다는 뜻으로 풀이했고 “砬”는 큰 돌바위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지난 세기 80년대에 해당 부문에서 달라자에 세운 석비는 당년에 아무런 사회조사나 지명개명 관련문건도 없이 “大磊子村”을“大砬子村(대립자촌)”이라고 개명했다.   이에 달라자촌의 원주민들은 “청백, 정당, 광명정대”를 뜻한 고향문화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며 해당 부문의 처사에 불만을 표했고 2005년 8월 13일 “달라자촌 원주민 제2차 고향모임”에서 최정금할머니가 달라자의 현 원주민들이 “자기 마을의 이름을 지키지 못했다”며 시비까지 생겼다.   필자는 이런 력사적인 사료와 배경을 근거로 지난 8월 18일에 세운 석비를 달라자(大磊子)로 할것을 제의했고 비석도 세웠다.   그런데 일전에 달라자의 책임자가 “진민정부문에서 대립자촌(大砬子村)으로 석비를 세우라고 한다”며 필자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문해왔다.이에 필자는 책임을 본인이 감당하겠으니 시름을 놓으라고 대답하였다.   한 지역의 지명은 그 지역 선조들의 지혜, 풍속과 생활상이며 지명은 땅에 새겨진 그 지역의 문화유산이다.   한국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주둥개산에는 “말(言)무덤”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 지명의 유래는 이곳 마을에 주민들간에 말싸움이 너무도 많은데서“주둥개(주둥이의 사투리)”산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말무덤”을 만들었더니 그 후부터는 마을에서 입씨름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 《연변일보》에서 련재로 내보내고있는 북경의 김호림선생이 쓴 “연변지명이야기”가 독자들의 인기를 끄는것도 바로 그곳 지명에 새겨있는 흥미진진한 고향문화때문일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고장의 지명은 우리 민족, 우리 말과 운명을 같이한 문화유산이다. 때문에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한다고 해도 우리는 고향의 문화유산문헌에 남아있는 지명을 참답게 지키며 옛 지명 찾기와 옛 지명지도 제작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필자는 1981년 6월 27일에 중국공산당 제 11기 6중전회에서 채택한 “중국공산당 건국이래 약간의 력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에서 “문화혁명은 당과 인민에게 수많은 재난과 혼란을 준 내란”이라는 결론에 따라“내란”때 마구 개명했던 많은 지역의 지명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싶다.   “문화혁명”때 도문시 홍광향만 하더라도 고려촌(高麗村)을 흥진촌(興進村)으로,곡수촌(曲水村)을 홍위촌(紅爲村)으로, 신기동(神奇洞)을 홍신(紅新)으로, 남양(南陽)을 향양(向陽)으로, 상탄(上灘)을 일광(日光)으로, 집중(集中)을 농안(農安)으로…마구 개명했던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길림신문 2016-9-23
191    “0 0좋은 사람”을 “0 0좋은 본보기”로 부르면 좋지 않을가? 댓글:  조회:4521  추천:1  2016-09-12
필자는 지금도 자신을 나라 법을 지키고 국민의무를 리행하며 사회질서를 준수하는 공민으로 자신한다. 그런데 근년에 종종 “나는 중간부류사람인가? 아니면 나쁜부류의 사람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원인은 이렇다. 최근 2, 3년간 필자는 도시의 공공장소나 신문지면에서 “좋은사람”(..好人), “좋은 사람협회(호인협회)”라는 프랑카트, 선전판, 신문기사를 보게 되였다. 도문기차역광장의 대형선전간판ㅡ“도문좋은사람 도시문명 새풍조를 이끌어 간다”가 일례다(사진제공). 알아 본데 따르면 한 개 지역에 “좋은 사람”의 수자가 “0 0 10대 호인”선발… 으로 지역주민의 총수에 비해 아주 소수적이였다. 무릇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세개 부류(상, 중, 하)의 사람이 있다. 즉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중간부류사람으로 분류하게 된다. 그러니까 0 0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 비춰 기필코 “ 나쁜사람”, “중간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과 중간사람이 많고 나쁜 사람이 극히 적다. 그래서 동네가 사람이 살아가는 향기가 풍기고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 한개 지역에 응당 많은 “좋은 사람”들이 적은 수자로 불리는 것은 “좋은 사람”을 선정하는 관계부문의 인위적인 행위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개 지역의 “비(非)좋은” 사람들이 “그럼 나는 나쁜사람인가, 아니면 중간사람인가?” 는 반문을 하거나 불만을 갖는다. 지난 세기 60년대에 모주석께서 전국 인민들에게 “뢰봉을 따라 배우자”고 호소하니 전국민들은 “뢰봉동지의 좋은 본보기를 따라 배우자”(學習雷鋒好榜方樣)며 “혁명에 충성하고 당에 충성하며 애증이 분명하고 립장이 견정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뢰봉동지의 “좋은 본보기”를 노래로 부르며 따라 배웠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부터라도 “0 0 좋은 사람(호인)”을 “0 0좋은 본보기”로 개칭하자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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