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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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베이징동계올림픽 한복론난에 대한 재사고 댓글:  조회:390  추천:0  2022-02-24
베이징동계올림픽 한복론란에 대한 재사고   류대식   2월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한복(조선옷)론란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첫째, 이번 일은 한국언론계와 정치권의 한차례 큰실수였다고 본다.우선 언론계의 실수였다.언론의 기본원칙은 진실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사건을 진실하게 잘 보도하려면 사건의 본 면모를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복론란은 바로 그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않고 경솔하게 경거망동하여 보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 왜 올림픽개막식에 한복(조선옷)이 등장하게 되였는가?   중국은 주류민족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총 56개 민족의 다민족국가인데 국기전달식에서 모두 자기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민족복장차림을 하고 등장함으로써  56개민족이 단결하여 오성붉은기의 주위에 굳게 뭉쳐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데 있다. 조선족도 56개민족의 일원이므로 당당하게 민족복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인데 그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보통네티즌의 발견을 두고 사실여부와 시비곡직을 제대로 료해하지도 않고 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언론매체들이 뉴스감을 잡은것 같으니 너도나도 앞다투어 경솔하게 보도한 것이다. 진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한차례의 큰 실수였다.   중국이 또 ‘문화침략’을 하고 있다! 과연 관중청중의 이목을 잡을 수 있는 이슈거리렷다.   뉴스거리가 생기면 관중청중들의 이목을 잡기 위해 과장하고 부풀리고 극대화하여 이슈로 포장하는 한국언론생태의 병폐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또하나의 사 례라 하겠다.   언론보도에만 그쳤어도 일은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언론의 단편보도만 믿고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불만의 태도표시를 하고 지어 대선후보들까지도 조사연구 없이 여론에 떠밀려 국민들의 지지와 득표율을 위해 반중적인 언론을 란발하는 바람에 일파만파로 퍼지며 전 나라적인 실수가 되여버렸다.   이번 일에서 한국정치생태의 병폐 일면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진정 국민의 리익과 나라의 발전을 우선으로 고려하는게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득표률을 위해 국민의 눈치보기에만 우선으로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문제에 대해 다른 례를 하나 들면 코로나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재난지원금이란 말그대로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이런 보상금 대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우선으로 하여 확실하게 경제적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여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야 모두가 전국민지급에 뒤질세라 앞다투어 찬성하였고 전국민 지원금이 되여버렸다. 월급이 꼬박꼬박 그대로 나와 한푼의 경제적 손해도 입지않은 공무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떼돈을 번 사람들, 고만한 지원금액수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부자들에게도 모두 지급하니 말이다. 순 지지률과 득표를 위해서다.   물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에 정치는 결국 국민을 위해 하여야 하지만 득표률을 위해서라면 옳고그름은 둘째고 말그대로 담장우의 갈대처럼 동풍이든 서풍이든 남풍이든 북풍이든 찬바람 더운 바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슨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에 우선 탑승하여 구애부터 하는 한국정치의 병폐가 적라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러시아족, 카자크족, 몽고족, 우즈베크족들도 모국이 있지만 그 모국들에서는 민족복장문제를 두고 반발하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만이 그렇게 ‘유별나게’ 나오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물론 이번 일에서 감성적이고 경솔한 민족적성격특성의 일면도 보여주고 있지만 중한간에 있었던 '사드문제' 등 여러 갈등으로 인하여 중한간 력사, 문화문제상에서  한국사람들이 많이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력사적으로 침적된 피해의식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예민한 신경은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는 민족에게 있어서는 력사문화문제와 민족자존심문제상에서 과격한 반응, 오류적인 반응을 할 소지를 갖추고 있기때문이다.   이번일은 ‘사드문제’봉합이후 많이 완화되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던 중한관계에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나라들의 ‘외교적 보이콧’에 한국은 합세하지 않았고 정계 제2인자인 박병석 의장과 황희 문체부장관을 코치로 파견하여 중국의 큰 환영과 호감을 샀다. 사드배치문제 이전의 밀월의 새로운 중한관계가 열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의 한복론란으로 거의  ‘해방전’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여기에다 올림픽경기 진행 중 음식타발문제, 반칙처벌문제, 재판불복상소문제 등이 합세하면서 중국내에서의 반한정서, 한국내에서의 반중정서가 꾸역꾸역 타래쳐오르는 추세이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상황이라 하겠다.   이번 한복론란은 한국 언론계와 정치계의 소홀과 실수로 펀펀한 생살을 긁어서 커다란 부스럼을 만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이번 한복론란에서 한국언론계의 보도의 시발점은 조선족을 겨냥하여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조선족을 상대하여 너희들이 왜 우리의 한복을 입고나오느냐고 시비를 걸고 생트집을 잡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림픽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한 그자체를 묘준하며 중국 정부를 향해 불만과 항의를 제기한 것이라 본다.   그런데 보면 한국언론과 정치계의 한복론란을 두고 중국의 주류민족과 여론에 비해 조선족권에서 더 일파만파로 퍼지며 부글부글 끓고 숱한 관련 글들이 매스컴을 이글이글 달구고있다고 생각된다.   한복(조선옷)도 우리의 복장이다,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한복(조선옷)을  입지 않으면 중국복장을 입으란 말인가 양복을 입으란 말인가...등 등 한국을 '성토'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번 일이 우리 조선족과도 관련이 있고 본의는 아니지만 조선족의 근원적인 신경을 건드렸기에  중국의 실정과 한국의 실정을 모두 잘 아는 조선족의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바로잡고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필요하고 역시 피할수 없는 사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글들을 보면 그런 객관적이고 공정한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 아니라 아니꼽게 보아오던 옆집 나그네의 그 어떤 허점을 잡은듯 사건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부풀리고 지어는 어떤 피해의식속에 모종의 발설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일부 기회주의 문인들은 자신을 표현할 좋은 기회를 만났다는 듯 사건을 부풀리고 면을 확대하여 붙는 불에 키질하는 글들을 란발함으로써 한점의 불꽃이 료원의 불길로 타오르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얼마든지 사건의 초기에 정확히 해명하고 오해를 풀고 무마할수 있었는데, 개미만한 일이 도미노렬차를 탄듯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산같은 괴물로 둔갑해버렸던 것이다.   필자는 조선족의 각도에서 응당 문제점을 바르게 지적하고 일깨워주고 타오르는 불길에 물을 뿌려 잠화하여 중한관계의 량호한 발전에 이로운 쪽으로 여론을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과 한국이 반목하면 우리 조선족들한테 리로운 점은 꼬물만치도 없다. 오히려 첩첩의 백해(百害)가 앞을 가로막을 뿐이다.   한국의 실수와 더불어 일부 조선족도 적지 않게 실수했다고 본다.   한국의 실수와 조선족의 과분한 반발을 음미하노라니 필자는 한국과 조선족 사이에 놓여진 깊은 계곡을 보는것 같고 각양각색의 불협화음이 들리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은 기분이다.   올해는 중한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한 두나라사이의 물고가 틔이면서 한국과 조선족의 본격적인 래왕도 30주년이 된다는 얘기다. 조선족들의 한국진출과 한국인들의 중국진출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다주었고 조선족사회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혀가 한입안에서 돌아가니 부딛치는 일이 발생하듯이 어우러져 살게 되니 조선족과 한국 사이에  경제, 문화와 습관 등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이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하지만 주류는 긍정적이며 조선족은 한국의 큰 은혜를 입었고 한국 또한 조선족의 많은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한국과 조선족은 장시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정치, 경제, 문화 제면에서 어우러져 함께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나이까’란 말이 있듯이 한뿌리에서 뻗은 줄기와 가지들이니 뗄래야 뗄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현실로 된 착오를 교훈으로 삼으면 그것이 덧거름으로 될수 있지만 착오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큰 착오를 유발하는 기폭제가 될수 있다는 것은 제지하고 있는 도리다.   필자는 조선민족의 일원으로서 이번 일을 교훈으로 한국이든 조선족이든 더는 이런 ‘저급적인 착오’를 범하는 일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중한수교 30주년을 시발점으로 중한관계 그리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융합이 새롭게 업그레이 된 밝은 미래상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글로계정보기
25    생명의 땅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 댓글:  조회:1410  추천:1  2016-04-22
현재 우리 조선족농촌은 말그대로 “나갈 사람은 다 나가고 남을 사람만 남은” 공동화(空洞化)의 극한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흑룡강성의 조선족이 주요로 분포되여있는 오상, 밀산, 해림, 녕안 등 지역의 농촌상황을 료해해본 결과 인구의 공동화는 90%내외에 달하고있다. 조선족농촌의 이런 공동화는 이제는 “신상태(新常态)”를 이루어 사회적 큰 진동이 없는한 장시기 이런 상태가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조선족농촌의 토지를 기본으로 한 “생산의 공동화” 역시 90%내외에 달하고있다는 점이다. 례를 들면 오상시 향양진의 민흥촌은 마을에 한사람도 없을뿐만아니라 토지도 모두 타민족이 부치고있으며 밀산시 동명촌이나 해방촌 같은 경우도 마을에 사람은 꽤나 있어도 농사짓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도시화와 함께 농촌사회의 위축은 필연적추세이다. 하지만 조선족농촌사회는 사회여건의 특수성으로 하여 오늘날과 같은 쾌속발전과 그에 따른 극단적인 상태가 초래된것이다. 한국을 주요로 한 해외진출과 관내 연해도시를 주요로 한 도시 진출을 통해 우리 조선족들은 단시일내에 중국내 어느 민족 보다 빨리 가난을 벗었다.    물론 조선족전통집거구의 해체를 비롯한 대가도 지불했지만 얻은것이 잃은것보다 많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하지만 공동화가 극한치에 이른 지금에 와서 우리는 리성적으로 현실을 다시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 조선족농촌은 우리 민족사회의 기반이 되고 후방이 되는 곳이고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곳이기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 고향을 우리가 지키자”고 텅빈 구호만 웨친다면 호응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우선 생활의 기본인 물질기초가 따라가야 한다. 지금 물질기초면에서 농촌은 어떤 비전이 있을가? 고향에서 정말 나간 사람 못지 않게 보람있는 삶을 살면서 고향을 지킬수 있는 그런 가능성은 있을가? 필자의 생각은 많은 사람과 같이 긍정적이다.    첫째는 지금 농촌의 재부는 농촌의 기본인 농토와 농사이다. 지금 농사상황을 보면 이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농사 짓는 사람이 적고 땅이 많이 남아있기에 기회가 나타난것이다. 수전이든 한전이든 어느 정도의 량을 부치게 되면 농사도 지을만하다는것이다.    보편적으로 보면 헥타르당 평균으로 쳐서 순수입이 1만5000원에서 2만원가량 된다. 이것은 자기 토지를 부치는 경우이다. 만약 남의 토지를 부치게 되면 보통 헥타르당 1만원의 임대비를 줘야 한다. 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만약 15헥타르쯤 부치게 되면 임대비를 줘도 많이 남는다. 이것은 보통농사를 짓는 상황에서이다.    이 면에서 전형적 실례는 흑룡강성 밀산시 덕흥촌의 김장호씨, 흑룡강성 해림시 삼합촌의 김명철씨, 의란현 농장촌의 장수철씨 등을 들수 있겠다. 밀산의 김장호씨는 200여헥타르, 김명철씨는 50여헥타르, 장수철씨는 100여헥타르 논을 부치고있는데 주먹구구만 해도 그들의 1년 수입이 얼마인지 알수 있다. 정말 괜찮은 노다지가 아닐수 없다.    농토가 비교적 많은 밀산시의 경우 조선족농촌의 토지는 근 1만헥타르에 달하고 해림시도 6천헥타르가량 된다. 전 흑룡강성, 나아가서 전국 조선족농촌의 토지면적은 어마어마한 수치이고 그가 안고있는 경제효익도 어마어마하다. 응당 우리에게 속해야 할 재부가 지금 아깝게 밖으로 흘러나가고있다.    농사를 하나의 장사라 한다면 이는 성공확률이 아주 높은 장사이다. 특별한 재해가 없는한 땅은 가꾼만큼 보답을 주는것이다.    그다음 노다지는 농사를 기초로 한 고부가가치의 브랜드농업, 생태농업, 관광농업, 농산품심층가공, 축목업,농산품무역 등을 들수 있겠다. 브랜드농업의 경우, 지금 오상입쌀이나 녕안 향수입쌀은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난 명브랜드이기에 같은 농사를 지어도 2-3배의 효익을 볼수 있다. 생태농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생활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진짜 생태농산품이라면 문제없이 좋은 효익을 거둘수 있다. 농산품 심층가공이나 목축업,농산품무역 역시 큰 가능성이 열려있는 항목임은 틀림없다.    이 면에 보기로 되는 례를 들면 10년간 오리농법을 고집하며 “아스하오리쌀”로 2014년에 성 10대유명브랜드의 하나로 인정받고 유기쌀인증도 받은 아성시 해동촌 백찬호씨, 한국에서 텅빈 고향에 혼자 돌아와 마을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면 농사와 함께 목축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오상시 민락향 동흥툰의 리천우씨, 유기농 농사와 함께 선진적인 농기계기술을 중국 농촌현실과 접목시키고있는 오상익산농기계유한회사 정대일씨…이들은 모두 보다 먼 안목으로 남 떠난 고향에서 노다지를 캐고있다.    그리고 지금 떠오르고있는 농촌관광업은 역시 큰 비전이 있는 산업이다. 심심산골의 벽촌이던 설향(雪乡)의 성공경험은 우리에게 큰 계시를 준다.    셋째로 고향의 노다지는 국가의 여러가지 농촌지원의 정책과 형세이다. 농업세 면제로부터 시작된 국가부농(扶农)정책은 계속 좋은 면으로 발전하고있다. 종자금보조, 농기계금보조, 도로 및 주택건설지원, 수리시설에 대한 대량 투자, 도농일치의 각종 보험제도의 실시, 소수민족정책 등은 우리 농촌의 노다지가 아닐수 없다.    이 면에서 례를 들수 있는것은 밀산시 덕흥촌의 밀산시녹영고려미농민전업합작사가 마을의 환경과 농토수리건설에 정부의 1100만원의 지원을 얻은것, 밀산시 동명촌이 “아름다운 향촌 건설”에 정부의 500만원 지원을 얻은것 등을 들수 있겠다.    코리안드림이 시작되면서 10년쯤 외국에 가 있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정한 밑천을 장만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 새로운 농사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삶의 개척해나가는 사람들로 하나둘 늘고있다. 그들은 분명히 고향에서 희망을 보았기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에 진출하여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역시 재기해볼수 있는 기회가 고향에 있다. 외국이나 도시에서는 가능할수 없는 주인이 되고 농장주가 되고 사장이 되고 지어 회장까지 될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고향에 있기때문이다.    생명의 땅 고향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  흑룡강신문   
24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와 판도의 재 형성 댓글:  조회:1977  추천:45  2015-04-29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와 판도의 재 형성     지난세기 90년대초 중한수교와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본격적 수립에 따른 도시화 물결에 급물살을 탄 조선족전통사회(동북을 주 집거지로 한 농촌과 농경문화가 중심이 된 조선족사회)는 급속한 해체를 맞아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따라서 조선족사회의 새로운 판도의 기본 추형을 형성하였다.   먼저 언급할 것은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비애의 만가를 부르고 있는데 이제는 '눈물을 그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전반 중국사회의 발전추세에서 놓고 볼 때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는 시간상 문제였다. 그런데 중국의 다른 민족에 비해 이런 급작스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바로 모국인 한국이란 존재로 인하여 가속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사회의 판도를 보면 대개 아래와 같다.   첫째는 조선족 전통집거지인 동북3성의 동북권(东北圈)이다.동북권의 조선족사회는 본래 농촌중심에서 도시 중심으로 이전되어 조선족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유지되고 있다.   물론 농촌에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진출과 도시진출로 거의 황폐해진 상황이며 소수의 노인들과 아이들,촌간부, 대면적으로 논을 부치는 사람들,자영업자들이 마을과 땅을 지키는 상황이다.심지어 어떤 마을은 단 한명의 조선족도 없다.   동북의 도시에는 그래도 조선족학교, 조선족단위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족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구성원들을 보면 공무원,사업단위 간부,국유기업 임직원,경제인들 그리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주류이다.인구의 감소로 지금도 계속 위축되고 하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전반 조선족사회의 기반이 되어 있고 후방이고 근거지다.   2010년 제6차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헤이룽장성의 현재 조선족인구는 17만 9천명인데 1990년 제4차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통계된 45만 4천명에 비해 절반이 넘게 감소되었다.지린성의 경우 2010년에 조선족인구가 56만 8천으로 1990년 118만 3천에 비해 절반 밖에 안되며 랴오닝성의 경우 2010년에 13만으로 통계되고 있는데 1990년의 23만에 비해 반을 좀 넘어선 상황이다.   조선족의 인구가 1990년에는 총 192만 3천인데 동북3성에 186만 8천명 거주하고 있어 총인구의 97.1퍼센트를 점하였다.그런데 20년이 지난 2010년에는 동북3성 인구가 87만 8천명으로 총인구 183만 9천명(자연 감소로10년 사이 거의 10만이 감소됐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아직 통계가 없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이보다도 많이 적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다음은 중국의 도시화와 경제활동에 따른 관내로의 대거 진출로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집거지와 조선족사회인데 이런 관내권(关内圈)은 베이징,텐진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칭다오,옌타이, 웨이하이를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권,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삼각주권,광저우,선전을 중심으로 한 주강삼각주권이다. 지금 이런 관내권에 조선족인구는 대개 40만정도로 예산하고 있다.   세번째는 노무,유학,비즈니스 등을 목적으로 해외진출하여 진출국에 장기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형성된 해외권(海外圈)이다.조선족은 해외 많은 나라에 진출되어 있는 데 그중 중점지역은 바로 한국이다. 지금 한국에서 장기 거주하고 생활하는 조선족이 60만에 이르는 것으로 통계된다.   한국 다음으로 해외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이다. 이 3개 지역에 조선족이 각각 3,4만정도로 장기 거주하고 있다.   이런 해외권의 조선족들은 자신들의 집거지를 형성하고 상호연계하고 협력하면서 엄연한 조선족사회를 형성하였다.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사회의 이런 판도는 현재는 이미 온정된 기반을 형성하였고 사회적,자연적 큰 진동이 없는한 계속 이상태를 유지하며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볼 때 각 지역의 조선족사회는 각자로서 우단점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자체의 우세를 계속 발양하고 부족점을 보완하면서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조선족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전통집거지인 동북3성을 놓고 볼때 거주인구감소에 따른 하강세를 어떻게 막느냐,어떻게 현재 실력을 보존하면서 발전을 기하느냐 등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동북지역은 중국 조선족의 고향이고 근거지고 후방이다. 이곳은 조선족들이 장시기에 걸친 피나는 노력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제방면에서 아주 완비하고 든든한 기반조건을 마련했다.집을 놓고 말할 때 기초와 같은 곳이다.때문에 동북3성의 조선족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전반 조선족사회의 온정과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동북지역은 이런 기반조건과 우세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이곳을 지키고 이곳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살도록 제방면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동북의 전통집거지를 계속 보전하고 발전시키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전반 조선족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이다.   둘째는 중국관내권인데 이곳들은 중국의 개혁개방의 진척에 따라 비즈니스가 계기가 되어 조선족들이 새롭게 터전을 만들고 가꾼 제2의 고향이다. 이런 지역들은 경제가 활약적인 연해지구나 대도시들인데 지금 이런 곳들은 수십년의 노력과 분투를 거쳐 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조선족사회의 기본틀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부족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반조건이 많이 부족하고 있다.중국의 호구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 호구가 대부분 동북에 있는 이들은 당지로 놓고 볼 때 외래인이다.때문에 정치적으로 당당한 주인적인 위치와 힘이 부족되고 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 동북지구와 같은 자치구역(자치주,자치현, 자치향 등) 같은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려면 아직도 먼거리가 있다.   문화적으로도 조선족학교를 우선으로 해서 신문,방송,출판,예술 등 면에서 기반시설이 턱없이 모자란다.특히 민족사회의 기초인 학교가 우선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관내권에 국립조선족학교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물론 민영으로 베이징에도 칭다오에도 조선족 학교가 섰고 또 한국인이 세운 몇개의 국제학교가 있어 민족문화교육에서 적지 않은 작용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태부족인 것이다.   민족학교가 없으면 진정한 민족의 후대를 배양하고 건전하고 튼튼한 민족사회를 건설하는데서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관내권의 이런 교육,문화시설의 부족은 정치적으로 위치가 있는 인사들이 나라의 민족정책을 이용하여 사명감을 안고 민족사업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쟁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다음은 동북3성 근거지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동북지역에서 분교,분사,분관을 세운다든가 혹은 폐교 위기에 이른 학교같은 것은 통째로 이전하는 방안도 연구해볼 바이다.   그리하여야 관내권 조선족사회는 더욱 완비한 기반조건을 갖추면서 전면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다음은 해외권인데 규모를 이룬 것은 한국을 위주로한 선진국들이다.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런 곳의 조선족사회는 중국 조선족사회의 경제적인 큰 뒷심이 되고 있다.   전반 조선족사회가 오늘과 같은 발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은 것은 한국진출을 우선으로 한 해외진출이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전통집거지의 해체, 동화진척의 가속화,가정의 파탄 등과 같은 사회적문제도 낳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족사회의 해외권의 인구가 70만 된다는 것은 전체 조선족인구의 삼분의 일이 웃도는 숫자다.때문에 해외권의 조선족사회의 상황이 여하한가 하는 것은 전반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양상에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해외진출의 인원구성을 보면 주로는 노무자이다.특히 한국의 경우는 중국 조선족 농촌의 노동력이 집단이전을 했다해도 관언이 아니다.   한국을 우선으로 해서 해외권의 나라들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중국에 비해 앞서 달리고 있는 선진국이다. 때문에 당지사회의 선진문화를 힘써 배우고 소질을 제고하고 기능을 연마하여 당지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융해되는 것이 우선 중요한 과제다.그래서 건전하고 희망찬 조선족사회를 만들면서 계속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중국조선족사회 발전의 보충이 되고 연계인이 되고 선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여년의 세월 속에 조선족은 보다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하여 엄청난 진통을 겪고 변화를 가져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금 세계는 고정보화시대,긴밀한 네트워크시대,고속 교통시대에 들어섰다. 위에서 제기했다시피 조선족사회는 문제점도 많고 곤란도 많다. 하지만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보완하고 노력한다면 조선족사회의 발전은 계속 관성을 잃지 않을 것이고 미래상은 더욱 바람직한 변화와 양상을 가져올 것이다./류대식          
23    조선족인구의 격감세를 두고 댓글:  조회:2510  추천:19  2013-12-04
  조선족인구의 격감세를 두고   류대식     조선족 인구의 격감세를 두고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연변자치주에서는 둘째를 낳으면 정책적으로 혜택을 주자고 여러번 정부회의 때 제안이 올라왔다고 한다. 2010년 제6차전국인구보편조사에 의하면 조선족 인구는 183만 명으로 2000년 192만 3천명에 비해 약 10만이 감소해 중국 56개민족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민족이 되었다. 그래서 30년후면 조선족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60년후면 조선족이 사라진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왜 감소되는 걸까?필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원인은 저출산이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구가 늘어나고 아이를 적게 낳으면 인구가 줄어든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 그런데 왜 조선족한테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걸까 하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지금 조선족 도시화율은 69퍼센트로 중국 평균수준의 51퍼센트를 앞서고 있는데 이미 세계 선진국수준에 이르렀다. 현대사회에서 도시화율은 사회발전의 체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교육정도와 문화수준도 중국에서 줄곧 앞자리를 차지하며 중국 사회발전의 선두에 서서 발전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놓고 볼 때 조선족사회는 이미 많은 면에서 세계 선진수준에 접근하고 있거나 그 문턱을 넘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개혁개방 이후 사람들의 관념은 어느 민족보다 빠른 변화를 가져왔고 따라서 보다 많은 시간과 정력 물력을 삶의 질과 향상 자아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데 투입하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 저출산일  수밖에 없다.보면 낙후한 지역일수록 인구성장률이 높으며 발달한 지역일수록 저출산, 저인구 저성장이다. 둘째는 대외혼인이다. 대외혼인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국제혼인이고 하나는 국내 타민족과의 혼인이다. 조선족인구 마이너스 성장에서 대외혼인의 영향에 대해 중시를 돌리지 않고 있는데 사실 대외혼인은 조선족 인구 마이너스 성장의 '블랙홀'이다. 먼저 국제혼인을 말해보자.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에서 국제혼인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중한수교이후 그 수가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국제혼인에서 대부분은 조선족 여성이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외에 시집가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대개 10만안팎의 조선족 여성이 외국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서 볼 점은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 성장 수치인데 2000년부터 2010년까지 감소된 인구수가 10만이다. 그러니 만약 국제결혼이 없었더라면 조선족인구 마이너스 성장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이런 여성분들이 평균으로 아이 하나만 낳는다 해도 조선족인구는 오히려 10만이 증가하게 되는 플라스 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국내 타민족과의 혼인인데 이에 대해 통계는 없지만 유의하여 살펴보면 이 숫자도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집안을 살펴볼 때 나는 친형제에 사촌까지 합하면 23명인데 타민족과 결혼한 사람이 4명이나 된다. 그러니 타민족과의 결혼이 20퍼센트에 이른다는 얘기다. 주위를 살펴보면 어느 가정이나 타민족과의 혼인하는 일이 다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타민족과의 혼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여성이 타민족에게 시집가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인구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고 조선족남자가 타민족 여자와 결혼했을 경우 겉으로 볼 때 사람을 벌어들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족은 소수민족이기에 남자쪽에서 서서히 여자쪽으로 동화되어 버리고 그 후대는 호구상에는 조선족이어도 많은 경우에 타민족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내 타민족과의 혼인에서 조선족 인구의 소실도 국제결혼에서 소실되는 수치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 셋째는 싱글현상이다. 중국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싱글들의 수도 놀랍다. 한국은 지금 25퍼센트가 '나노(nano)가족'(일인가족)인데 조선족도 그만큼은 안될 것 같지만 싱글들의 수가 상당히 많다. 20년전에는 20대 후반이 돼야 노처녀, 노총각 소리를 들었고 10년전에는 30대 초반, 중반이 돼야 노처녀, 노총각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40안팎이 되어야 노처녀, 노총각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관념이 많이 변했고 혼인이 늦어지고 심지어 평생을 결혼 안하는 싱글들이 많아지니 조선족인구 저성장에 설상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선족인구가 격감되는 추세를 완화하거나 막을 수 있을까? 첫째는 물론 많이 낳는 것이 관건이고 상책이다. 그러자면 연변주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처럼 정부차원에서 혹은 민간차원에서 생육에 대해 정책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동시에 언론 매체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성원하여 관념상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주위를 살펴보면 경제상황도 좋아지면서 "그래도 자식이 제일 큰 재산이다","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식밖에 없다"...등 생각들이 많아 둘째를 낳는 수가 많아지고 있다.  둘째는 대외혼인 현상을 가능한 줄이는 것이 인구감소를 막는 방도가 아닐 수 없 다. 자고로 사랑에는 경계선이 없어 대외혼인 현상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만 조선족 경우는 그 비례가 너무 엄청난 것이다. 중국사회도 이제는 많이 발전되어 살만하니깐 국내에서 조선족끼리 '평등관계'를 이룰 수 있는 혼인을 될수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의 혼인을 보면 감정도 감정이겠지만 물질적조건이 사람나름으로 차이를 보이며 전제로 되고 있다. 국제혼인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발달한 나라에서 뒤떨어진 나라에서 혼인자를 찾는 경우 대부분은 그 나라에서 장가를 못가서 국제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정시하고 기대치와 엇비슷하게 맞는 대상자를 찾아야 행복하지 그렇지 못할 경우 장미빛 꿈은 깨어지고 인생행복지수가 낮아지고 지어 불행하게 된다.생활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지난세기 90년대처럼 맹목적인 국제혼인을 피한다면 개인적으로도 행복할 것이고 조선족인구증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혼인에서 큰적자가 생기는 국면을 돌려세우려면 우리도중국보다 뒤떨어진 나라에서 신부감을 물색하는 것이 하나의 방도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인구를 버는 것으로 된다. 그리고 타민족과의 혼인을 보면 많은 경우에 합당한 한민족을 못찾아서 타민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민족은 자고로 민족 자부심이 아주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우리민족과 혼인하려 한다. 그런데 중국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족들이 전통집거구를 떠나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니 합당한 우리민족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져 타민족과의 혼인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플렛폼을 만들고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민족 혼인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보화의 시대고 네트워크시대라 얼마든지 가능할 수가 있다. 지금 많은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조선족 우리민족 혼인을 위한 모임 같은 것을 만들고 있고 사이트들에서도 전문란을 개설하고 있는데 활동이 더 활발해 졌으면 좋겠다. 셋째는 싱글 문제인데, 이 문제 해결에서 전통 가정관념이 관념이 강한 가정 이상분들의 '교육'과 '압력'이 제일 효과적일 것이다. 총체적으로 갖은 방법으로 인구감소세를 막아 어렵사리 자리 잡고 가꿔온 중국이라는 이 터전에서 우리 조선족이 세세손손 계속 이어나가고 번영하고 창성했으면 좋겠다.   
22    한국어 '중국 인명, 지명표기'에 대해 댓글:  조회:3819  추천:4  2013-11-13
한국어‘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에 대해 새로운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이 이런저런 시비논란이 많은 가운데 지금은 그대로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지 실행 중에서 상당한 불편함과 오해와 오도를 가져다주고 있다. 새로운 어법을 제정하는 것은 언어를 더욱 과학적으로 활용하고 언어생활과 언어의 발전에 도움을 주자는게 그 목적이다. 그러나 이번의 '왜래어표기법'은 상당한 역효과를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는 한차례 틀린 결책이라 말하지 않을수 없다. 본문에서는 새'외래어표기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외래어표기법'중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의 실제 실행 중에서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본문은 새 '외래어표기법' 실행 이후 요근년의 KBS,MBC방송,연합뉴스,중앙일보,조선일보,daum,naver 등 한국의 대표적인 방송, 신문, 사이트에 방송되고 게재된 글들을 자료로 하였음을 먼저 언급한다. 현행 한국어 '외래어표기법'중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에 따르면 중국의 인명, 지명은 중국어 발음 그대로 적고 발음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중국의 인명, 지명표기가 실제 활용 가운데서 정확하지 않게 표기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대충 통계해 보아도 절반 이상의 인명, 지명표기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래에 필자가 수집한 것들을 몇가지 분류로 나누어 얘기해 보련다.   첫째,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혀를 꼬부려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중국 거물급 인물들인 '毛泽东'을 '마오저둥', '邓小平'을 '덩샤오핑', '胡锦涛'를 '후진타오','温家宝'를 '원자바오'로 표기하고 발음하는데 사실 '모우저뚱', '떵쇼우핑', '후진토우', '원쟈보우' 이렇게 표기하고 발음해야 가장 중국어 원음에 접근한다.지명을 표기함에 있어서도 '辽宁省', '랴오닝성'으로 '青岛'를 '칭다오'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료우닝성', '칭도우'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중국어 원음에 접근하는 것이다.  둘째, 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上海'를 '상하이', '三东'을 '산둥', '深圳'을 '선전', '大连'을 '다롄'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사실 '上海'를 '쌍하이', '三东'를 '싼둥', '深圳'을 '썬쩐', '大连'을 '따롄'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보다 중국어 원음에 보다 접근한다.  인명을 표기함에 있어서도 '마오저둥', '덩쇼핑'으로 표기하는데 응당 '모우저뚱', '떵쇼우핑'으로 표기해야 더욱 원음에 접근하는 것이다.  셋째, 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오히려 되게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绥芬河'를 '쑤이펀허'로,'成都'를 '청뚜'로, 장강의 별명인'扬子江'을 '양쯔장'으로 표기하고 발음하는데 사실 '수이펀허'로, '청두'로, '양즈쟝'으로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중국어 보통말 원음에 접근한다.  넷째, 'ㅑ'로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ㅏ'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흑룡강의 지명인 '牡丹江'을 '무단장'으로, '佳木斯'를 '자무스'로, '浙江省'을 '저장성'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중국에서 태어나서 중국에서 몇십년 산 나의 귀에는 아무리 들어도 '牡丹江'이 '무단쟝'으로, '佳木斯'가 '쨔무스'로,' '浙江省'이 '저쟝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다섯째, 'ㅝㅣ'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정확한 것을 'ㅞㅣ'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威海'를 '웨이하이', '康有为'를 '캉유웨이', '潍坊'을 '웨이팡'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응당'威海'를 '워이하이', '康有为'를 '캉유워이', '潍坊'을 '워이팡'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중국어 원음에 가장 접근한다.  이밖에도 분류속에 넣을 수 없이 틀리게 표기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면 '黑龙江省'(허이룽쟝성)을 '헤이룽장성'으로, '汶川'(원촨)를 '윈촨'로, '即墨市'(찌머시)를 '지모시'로… 등등 수없이 많다. 이렇게 틀리게 표기하고 발음하면 아래와 같은 위해가 있다. 첫째 보다 중국어 원음에 접근하게 표기할 수 있는  것을 표기하지 않았기에 헷갈리고 이런저런 오해를 빚을수 있어 사업과 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을 가져다주며 숱한 웃음거리를 만든다. 둘째로는 중국어를 정확하게 배우는데 많은 지장을 가져다준다. 지금 한국과 중국의 상호교류 상황은 말 안해도 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중국어 붐이 일고 있고 한국인들이 중국에 유학오고 중국어를 배우는 수는 놀랄만큼이다. 그런데 언어특징상에서 한민족이 중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는데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런데 이렇게 중국 인명, 지명을 틀리게 표기하고 말음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어학습이 더욱 어려워지고 설상가상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놀랄만큼 오류가 생기는 걸까? 필자가 생각하건데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한국의 권위적인 중국어학자들의 교육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런 학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나이가 60이 넘은 분들인데 이런 분들은 중국 대륙과 한국이 문이 열리기전에 중국어를 대만이나 홍콩에 유학하여 배웠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땅이 큰만큼 지방방언이 상당히 많은 나라로 각 지방의 방언은 보통말(표준어)와 발음체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북에서 남으로 가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대만이나 홍콩에서 중국어를 배운 이런 분들의 발음은 대만, 홍콩지역방언의 냄새가 배지 않을 수 없고 보통말을 해도 '대만식보통말' '홍콩식보통말'을 할 수밖에 없고  중국어 보통말과 큰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둘째로는 어떤 발음은 한국인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고 어떤 것은 번연히 틀린 줄 알면서도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편안해서 그렇게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가 난무하는 새 '외래어표기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필자의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현애륵마(悬崖勒马)로 현행 '외국어표기법'사용을 중지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는 기어이 현행 법대로 하면 위와 같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으로 축소되었고 우리 조선민족은 점점 하나로 뭉쳐가는 추세다.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도 이제는 한국의 한국어,한국인의 한국어인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 조선민족의 한국어다. 때문에 문제점이 있으면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같이 해결해야 한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언어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언어학자들의 참여가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중국어와 관련된 문제에 있에서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어 언어환경에서 자란 조선족이 절대적 우세가 있다. 때문에 이런 우세를 발휘하여 한국의 언어학자들과 중국의 조선족언어학자들이 마주앉아 한국어에 존재하는 이런 문제를 공동히 해결하고 한국어규법을 더욱 과학적이고 실용성이 있게 제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21    인연(외1수) 댓글:  조회:2036  추천:2  2012-12-03
인연(외1수)              류대식   어느 봄날 아침   그대가 호젓한 기분으로   청신한 아침에 취해 뜨락을 거닐 때   지난밤 봄비에 어지러이 떨어진   하아얀 사과꽃을 서뿔리 밟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천년을 기도하여 얻게 된 저의 소원이   가장 어여쁜 모습으로 그댈 만나려   이 봄날을 기다려 어렵게 어렵게 그대곁에   핀것입니다   어느 가을날 식후   그대가 한가로운 기분으로   빨알간 사과 하나 깎아서 입다심할 때   보다 진한 그 향기를 무심히 삼키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2천년을 기도하여 갖게 된 저의 그리움이   그대의 몸속에 잠시라도 머물고싶어서   모진 진통을 달가이 견디며 정성껏 정성껏 발   효된것입니다   어느 잠풍한 오후   그대가 울적한 기분으로   하얀 눈을 밟으며 외롭게 바장일 때   어깨우에 조용히 쌓이는 눈송이를 귀찮게 털   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3천년을 기도하여 차례진 저의 꿈이   그대의 귀전에서나마 한겨울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싶었던   절절했던 갈망이 잉태한 소중한 연분입니다   아, 썩 오래전 썩 오래전 전생   우리의 오해가 너무 깊었던가요   춘하추동이 아무리 흘러흘러도   이생 연분 고작 이래야만 되는가봅니다   언젠가는 천상에서 만날 날이 있겠지요   하지만 상봉의 그날 우리는 알아볼수 있을가요   수없는 세월의 륜회속에 속눈섭마저 다 하야   져버린   서로의 모습을!                 어    둠   불을 끄니   어둠이 목을 조인다   아악ㅡ   주먹으로 어둠을 치니 주먹이 아프다   발길로 어둠을 차니 발이 아프다   이발로 어둠을 물어뜯으니 이발이 시리다   아악ㅡ   벌컥 불을 켜니   어둠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주먹이 아플뿐이다   발길이 아플뿐이다   이발이 시릴뿐이다.   어둠이 유리창너머에   서 멀거니 집안을 들  여다본다
20    디아스포라삶과 그에 대응한 문학 댓글:  조회:2826  추천:4  2011-12-07
평론 디아스포라삶과 그에 대응한 문학 -1990년대 후 소설문학을 중심으로 류대식 1. 들어가는 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크게 거론되면서 우리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되고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고 그곳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 때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이주와 식민지의 건설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였다. 그후 디아스포라가 유태인의 리산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가리키게 되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유태인의 리산뿐만아니라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차이, 정체성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리해되고있으며 특히 디아스포라의 형성적특성이 보다 강조되여 디아스포라는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가지 외적인 리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리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의미로 리해되기도 한다. 개혁개방이후 사상, 문화령역에서의 질곡이 풀리면서 우리 문학도 사실주의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반영할수 있게 되여 디아스포라로서의 우리의 당시 삶의 상황을 진실하게 문학화할수 있었지만 중한교류전까지, 특히는 1992년 중한수교전까지는 디아스포라삶에 대해 절실하게 성찰하게 하는 외계적자극이 적었으므로 작가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의도적으로 문학적대응을 하지 않았고 하였다해도 많이는 무의식적이였고 함축적이였으며그 표현방식상에도 완곡적이였다. 하지만 중한수교이후,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문제는 절실한 사회문제로 터지면서 보편적현안으로 부상하였고 우리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거론되였으며 작가들은 그것을 의식적이고 주저없이 작품에 다루게 되였다. 디아스포라문학에서 공통적으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건 경계인이자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 현실은 향수의식과 고향회귀의식에 기초를 둔 “온전한 자아”를 지향하는 정체성찾기와 dia(~을 넘어)와 spero(뿌리다)로가 어원으로 된 ‘디아스포라’개념이 말해주듯 리산에 대당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정착”의 내용이중심이 되여 이루어진다. 본문에서는 1990년대후의 소설문학을 중심으로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와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우리소설문학의 양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우리 디아스포라문학의 맥락을 나름대로 거칠게나마 정리해보려 한다. 2. 고향회귀와 정체성찾기 인간은 살면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고통스런 삶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고통스런 경험은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 한다. 중국조선족은 100여년전부터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주민 및 그들의 후예들이다. 때문에 중국조선족은 삶의 시작부터 디아스포라적성격이 규정되였다. 추방당한자의 삶, 어쩔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하는 삶에는 현실에 안주하며 보이는것에만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고통과 그리움이 있으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향수는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할수 없는 영원한 운명이다. 그런 어쩔수 없는 운명적인 삶을 사는 디아스포라들에 있어서 가장 우선으로 가장 강렬하고 영원한 주제로 나서는것은 바로 엑서더스―고향, 고국에 대한 회귀의식이다. 이런 회귀의식은 곧바로 민족정체성찾기로 이어진다. 중국조선족을 놓고볼 때 장시기 민족적정체성의 갈등을 체험해왔으나 사회력사적원인으로 그것을 자유로이 추구하고 표현할수 없었다. 개혁개방후, 사상면에서 문화의식면에서 각종 질곡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1980녀대중기부터 민족성을 과감히 자유롭게 다루면서 민족성확인작업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체성찾기가 서서히 시작되였고 특히는 1992년 중한수교가 확립된후 현실적으로 그 꿈을 실현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였다. 때문에 중한교류이전에는 동질성을 지향하는 민족정체성찾기가 봉페적이고 협애하고 정신적이였다면 중한수교이후는 개방적이고 실질적이고 실천적이였다고 할수 있다. 우리 작가들은 이런 우리의 사회현실을 두고 적극적으로 문학적대응을 하였바 이런 민족정체성의 갈등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였고 우리 문학의 새로운 풍경을 형성하면서 세계적인의미를 부여하게 되였다. 이 방면에 보기로 될수 있는 작품은 허련순의 장편소설《바람꽃》(1996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는가》(2004년), 윤림호의 장편소설《명암의 세계》(2000년) 등이다. 허련순의《바람꽃》은 엑서더스가 선명한 주제가 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관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면서 가장 일찍이 민족정체성찾기를 문학화한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은 홍지하라 하는 지성인이다. 한국이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고향을 한번만 보고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늘 외웠고 고향에 가보는것이 평생소원이였건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생전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홍지하는 아버지의 골회함을 모시고 조상과 혈육을 찾아 한국으로 간다. 하지만 그를 맞아준 친인, 고국은 너무나 차디찼고 고무풍선 같이 부풀었던 그의 꿈은 산산쪼각이 나며 결국 그는 자신의 신원을 승인받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의 해답을 얻지 못한채 다시 자신이 태여난 중국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그 “바람꽃”이라는 제목 그자체가 상징하는것처럼 이곳에도 속하지 않고 저곳도 귀속이 아닌, “이중 정체성, 부재하는 정체성, 반 정체성”으로서의 디아스포라, 끊임없이 “온전한” 자아로서 살아갈수 있을것을 지향하나 그것은 다만 상상의 유토피아밖에 될수 없는 디아스포라로서 중국 조선족의 아픔과 비극을 절실하게 보여주고있다. 장편소설《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는가》는 주제경향에 있어서《바람꽃》과 일맥상통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를 이룩한 소설인데 1990년대 중기에 붐이 일어난 조선족들의 한국밀항의 사건을 다루고있다. 밀항선에 오른 주인공들인 연변녀자 안세희와 연변남자 송유섭, 왕청 녀자 말숙이, 쌍희… 이들은 모두 사회의 최하층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서 중국사회에서는 약세군체(弱势群体)에 속하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안세희는 녀자의 몸으로 가장이 되여 각성받이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데 페트용개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밀항선에 오른것이며 송유섭은 친부모의 버림을 받고 양부모를 찾았으나 결국은 고아의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난과 수치를 씻으려 밀항선에 오른것이며 말숙이는 아들이 무리싸움에 불려나갔다가 그만 권세 있는 진장(鎭長)의 아들 대신 억울하게 루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녀자로서 밀항에 성공하는것이 “일이원밖에 안되는 라면을 죽기 전에 먹고싶었던” “아들의 한을 풀어 주는것인양 그녀는 밀항에 큰 뜻을 부여”하여 성공할 때까지 밀항을 결심한 사람이며... 여하튼 밀항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국행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철저히 개변해보려는 사람들이였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수법을 위주로 하여 진실하고 긴장한 이야기를 엮고있는데 깊은 의미를 담을수 있는 장치들을 잘 선택하여 주제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상징의 내용들을 음페시키고있다. 이런 상징요소들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문학으로서 이 소설의 예술적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역할을 놀고있다. 우선은 소설의 주요환경은 망망 바다에 떠있는 밀항선이다. 떳떳하게 항행을 하지 못하고 시시각각 긴장을 늦추지 못하며 목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그물을 피해다녀야만 하는 밀항선, 이런 밀항선은 중국조선족이라는 군체를 상징한다 할수 있으며 밀항선에 탄 밀항자들은 중국이라는 거주국과 고국 사이에서 약자로 끼여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우왕좌왕하며 방황하고 무서운 모험을 해야 하는 디아스포라로서 중국조선족의 처지와 다를바가 없는것이다. 소설은 이밖에도 적지 않은 상징요소들이 있는데 주요한것들로는 “나비”와 “집”이다. 나비는 집이 없는 생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비는 진정한 귀속처가 없는 디아스포라인 조선족을 상징한다 할수 있고 “집” 또한 민족 혹은 국가와 상호 류추관계가 성립될수 있기에 집의 상실은 민족과 국가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은 고토와 거주국의 중간위치에 살고있기에 나비처럼 진정한 “집”이 없다. 조선반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온 한세기 남짓한 동안에 중국조선족은 중국이라는 거주국에서 피와 땀의 노력을 하였건만 철저한 중국의 일분자로 될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족이 자기의 민족정체성을 고집한데 근본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렇다하여 고국의 철저한 일원으로도 되지 못하고있다. 즉 “이곳”은 비록 나를 길들였으나 나의 소속이 아니며 그렇다하여 “그곳”도 귀속되 못하는, 고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변연군체”로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의 갈등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소설은 결국 미칠 사람은 미치고 죽을 사람은 죽고 하면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데 현실을 지나치게 암울하게 과장하여 표현한 제한성도 없지 않으나 디아스포라들의 본질적인 운명-비극성을 역(逆)적으로 전률하게 전하여주었다는데 현실적가치와 보편적의의를 증강하고있다. 윤림호의 “명암의 세계”는 중국 조선족이 한국사회에 더욱 실질적인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정체성갈등을 경험고 정체성찾기를 시도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낀바를 소설화한것이다. 한국과의 교류의 물고가 트인 처음의 중국조선족들의 한국행은 순수한 엑서더스였다. 후에는 그 목적성이 복잡해져 중국보다 발달한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잘살고 꿈을 실현하려는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였다. 문제는 왜 다른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한국에 그렇게 쓸어가는냐 여기에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 조상의 나라이고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처럼 혈연관계로 얼기설기 엉킨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나라이기때문이다. 중국조선족들의 마음기저에는 거주국보다 잘사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자신의 위치를 찾고 리상을 실현하는것은 당연지사이고 응당 동정을 받고 관심받아야 하며 덕을 입어야 되고 응석을 부려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것이다. 이런 마음이 바로 모체회귀의식이고 정체성지향의 내재적본질이다. 소설은 부동한 계층의 인물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을 쓰고있는데 모두가 큰 희망을 품고 한국에 왔으나 현실은 그들의 아름다운 상상과는 많이 달랐으며 중국교포라는 신분 때문에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있고 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간벽 때문에 주류사회에 따돌림을 당하며 용해되지 못한다. 이들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건 청삼이란 인물이다. 그는 “침구의술도 괞찮고 한때는 영화배우도 찔금거려보았던” 꽤나 인물인 사람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숙자라는, 얼굴이 얽고 고정직업도 없는 한국녀자를 알게 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그 어떤 결과를 목적했을 때 숙자는 “...만약 한국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리 조직되여갈수도 있겠지만 교포 아니예요? 교포의 운명은 역시 그럴수밖에 없는거겠지요.” 하며 청삼을 매정하게 버린다. 결국 청삼은 자기의 꿈을 실현못하고 고국땅에서 비명횡사하고 만다. 청삼의 비극적 운명은 바로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그어떤 결과도 이룩할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방황할수밖에 없는 현실모순과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있는것이다.    3. 민족화합과 공존의 세계 디아스포라들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복수(复数)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디아스포라의 본질이 리산이라 하지만 디아스포라인들이 항상 떠도는 것은 아니며 어디든지 정착하여 “그” 국가나 문화에 속하게 된다. 그런 정착과정중 주체 복수와의 갈등과 모순, 타협은 불가피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중국조선족을 놓고볼 때는 중국이라는 이 대국의 소수민족일원인 동시에 세계조선민족의 일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어떻게 잘 조화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중요하고 현실문제가 나지고있다. 이런 민족정체성의 지킴과 화합의 갈등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소설은 조성희의 단편소설《동년》(1997년), 리여천의 중편소설 “누나를 알기까지”(2003년), 박옥남의 중편소설《마이허》( 2006년) 등을 들수 있겠다. 《동년》은 “그”라는 소년의 시각으로 한 마을의 “석국이형”이라는 조선족총각이 웃마을에 사는 “얜”이라는 왕씨네 미모처녀와 도적련애를 하는것을 묘사하고있는데 신수는 멀쩡하나 실속은 건달인 조선족총각이 일등 한족처녀와 련애하는것에 강샘을 한 한족마을총각들이 어느날 “석국이형”을 늘씬하게 두드려주고 한족처녀는 결국 다른데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런데 이와 선명하게 대조되는것은 한족마을의 검정수캐는 “그”네 재빛암캐와 짝짓기를 하고 그러다 어느날, 검정수캐는 조선마을의 뭇개들에게 물려죽는다. 그런데 희안한 일은 조선마을의 암캐가 새끼를 낳았는데 세마리는 검정강아지요 세마리는 재빛에 검은 점이 얼룩진 강아지였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이항대조적구조(二项对照结构)를 조성하여 그리면서 디아스포라들이 불가피적으로 겪는 주체민족과의 갈등과 반목 및 숙명적인 융합과 공존의 현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동년》에서 민족간의 갈등을 보다 비극적으로 그렸다면《마이허》에서는 문화적이질성과 갈등을 보여주면서도 숙명적인 화합과 공존의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있다. 소설은 “마이허” 즉 개미허리처럼 생긴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마을―물남 마을인 조선족동네와 강북 한족마을인 상수리동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고있는데 소설은 한폭의 민속화처럼 상호 다른 두민족의 풍속습관, 인정세태를 그리고있다. 강에 빨래하러 나오는것을 보면 상수리녀인들은 빨래를 옆구리에 끼고 나오지만 물남녀인들은 머리에 이고 나오고, 상수리녀인들은 남편을 개떡같이 여기는 습관이 있으나 물남녀인들은 남편의 말을 성지처럼 받아들인다... 하여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은 완연 다른 생활양상을 갖추고있다. 이런 문화의 이질성과 갈등은 결국 상수리마을의 두부집 아들과 물남마을의 도술의 딸의 사랑을 비극으로 매듭을 짖게 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부분에서 연해도시진출과 외국나들이로 물남마을이 점점 황페화되고 처녀씨가 마르게 되자 물남마을의 총각은 상수리동네처녀에게 장가를 가게 되는데 이것은 민족화합과 공존의 숙명적이고 적극적인 메시지가 아닐수 없다. 우의 두소설에 비해 리여천의 “누나를 알기까지”는 민족화합과 숙명적인 공존의 삶의 현실을 디아스포라의 수난의 력사와 결부시키면서 더욱 절실하게 전형적으로 보여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해서 쓴 실화소설로써 이야기와 인물들의 진실성으로 깊은 감명을 주고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누나”는 조선전쟁때 부모를 따라 압록강을 거너오다가 비행기의 폭격에 놀란것이 쩍하면 까무러쳐넘어가는 병을 얻게 된다. 게다가 가정 또한 때시걱도 이어나가기 어려운 형편이라 방법없이 자식이 없는 한족집에 “누나”를 주게 된다. 처음에는 한족집으로 사랑으로 그럭저럭 배를 곯지 않고 살수가 있었으나 생각밖으로 그 한족집에서 자식을 보게 되자 천대꾸러기 “하녀”로 굴러떨어져 갖은 고생을 하게 되며 이어 민며느리로 다른 한족집에 팔려가게 되고 10살에 소위 시집이라는것을 가게 된다. 하지만 어려서 너무 고생한 탓인지 습관성류산으로 자식하나 못보게 된다. 허나 불행중 다행으로 “누나”의 남편은 좋은 사람이여서 “누나”를 사랑해주고 부모찾기에 열성을 아끼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부모를 찾아 부모형제들과 상봉하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의 “누나”는 민족만 조선족이지 완전히 한족화된 “한족”이였다. “나”의 가정은 이렇게 “한족” 친누이가 있게 됐고 한족 친매부가 있게 되며 서로 의지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자식하나 없는 누나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쓸쓸하고 고통스런 만년을 보내면 결국 비참하게 생을 종말짓는다. 이와 같이 “누나”의 형상에는 중국 디아스포라들의 피눈물나는 이민사와 간거한 정착과정의 상처가 응집되여있고 “나”의 가정사에는 류이민으로서 디아스포라가 겪는 피할수 없는 민족적갈등과 어쩔수 없는 숙명적공존과 화합의 운명이 전형적으로 체현되고있다. 우의 소설들에서 보여주고있는바와 같이 정착과정중에서의 민족적 화합과 공존은 어쩔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혼종성(Hybridity)도 보여주고있는데 자칫하면 문화적변이를 일으켜 본래면모를 잃고 동화되기 쉬운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찬란한 변두리”란 말이 있듯이 디아스포라의 삶은 “모체에서 찢겨나간자의 상처”인 동시에 “일종의 특권이며 다시 얻을수 없는 우세”로 부동한 문화의 합수목에서 보다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보다 특출한 문화를 창출할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있는것이다. 4. 나오는 말 1990년대 이후,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을 예민하게 성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문학은 사회적효능적으로도 적시적이고 세계조류와도 어울린다. 요즘 와서 디아스포라문학이 크게 거론되는건 전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있는 세계화와 갈라 놓을수 없겠다. 글로벌화로 인한 외부여건과 문명충돌은 약소민족이나 그 개체로 하여금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수 없게 하며 동시에 인류가 보편적으로 “자기가 추방, 망명의 몸이라는것을 싫어도 생각하게” 하는 디아스포라의 본질적특성을 체험하고있기때문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것도 바로 인류의 이런 보편적 아픔에 대응하고있기때문이다. 디아스포라문학의 이런 의미는 우리들에게 현재 우리문학의 위치와 새로운 방향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고있다. 디아스포라로서 중국 조선족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앞으로도 우리의 문학이 계속 디아스포라글쓰기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풀어나가야 할 중요하고 큰 숙제임이 틀림 없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 /
19    2007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 댓글:  조회:2887  추천:74  2009-01-14
 머리말 올해도 어김없이 한권의 책으로 해마다 한번씩 우리 중국조선문단을 점검하고 총화하는 계렬 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의 세번째 작품집인《2007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이 출판되게 되였다.《2007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의 출판 역시 2007년도 우리 조선족문단의 경사라 할수 있겠다. 사실 10개의 잡지, 신문의 우수작품을 한권의 책으로 모아묶는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우리 출판사의 인력, 물력의 투입이 우선이지만 여러 잡지, 신문사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결여된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각 신문, 잡지에서 약속했던대로 열성스레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기에 일이 예상보다 많이 쉬웠고 좋은 결실을 보게 되였다. 참으로 감사하다. 여러 잡지, 신문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본 우수작품집의 작품은 여러 잡지, 신문사의 편집위원들이 당해에 본지에 발표된 우수작품을 선정해서 보내고 편집과정중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다시 엄선한것이다. 한권의 책으로 모든 문학쟝르를 아우른다는 취지에 따라 당해의 소설문학, 시문학, 수필문학, 아동문학, 문학비평의 우수작품을 포함시켰고 전반 작품집에 대한 총평, 그해에 발표된 문학작품의 목록도 수록하였다. 구체적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한 쟝르에 여러 편이 추천되여 올라오는 경우가 나타났는데 편폭의 제한으로 소설과 수필, 문학비평은 한편만 싣는것을 원칙으로 했고 아동문학은 아동문학작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정황을 고려하여 한 쟝르에 한 사람의 작품을 두편까지도 실었으며 시작품은 최다 외 3수 즉 네수만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독자들의 열독, 연구 편리를 위해 작품의 발표 일자, 작가략력, 그 작품의 수상정황 등을 일일이 밝혔다. 이리하여 작품집은 근 백명 작가의 백여편(수)의 작품에 60여만자분량의 무게있는 작품집이 되였다. 중국조선족우수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은 그해의 조선족문학의 양상이 한눈에 안겨온다. 물론 이 작품집에 그해의 모든 우수작품이 다 포함되였다고는 할수 없지만 이 우수작품집이 당해의 우리 조선족문학을 대표할수 있는 작품집으로서는 손색이 없을것이다. 앞으로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에 기여가 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갈것이며 따라서 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도 계속 우리 조선족문단의 양상을 일목료연하게 료해할수 있는 창구로,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는 권위성적인 자료집으로 될것이다.                                                           2008년 6월                                                          편집자로부터                        차   례 편집자  머리말/1 소설문학 조룡기  항주를 지나면 천당? /3 량춘식  정신무진 /35 구호준  하루살이의 인생 /74 리  휘  울부짖는 성 /91 김서연  4am /112 김춘택  한 녀자가 끓이는 아이칭마라탕 /124 허련순  그 남자의 동굴 /140 김동규  리촌장의 고민 /157 김금희  개불 /170 강호원  쪽빛 /176 림원춘  보이는 소리 /184 시문학 김동진  말하는 이끼 /209 김  철  산사(山寺) /211 석  화  길을 걷는 나무(외 1수) /212 리문호  봇나무, 그리고 까치둥지(외 1수) /214 김  파  소생(외 3수) /216 설  인  녀자 /219 리상각  뼈다귀 /221 최룡관  돌.22(외 3수) /222 전춘매  성밖도 성이다 /226 김영건  침묵하는 산을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마라(외 1수) /229 김일량  가을밤.40(외 1수) /231 김학송  겨울의 또 다른 풍경(외 2수) /233 리범수  잔돈은 지갑을 만나면 늘 게면쩍어한다 /237 리홍규  겨울나무의 가슴에(외 1수) /239 김응준  연변사람 /241 김응룡 시골의 새마을(외 1수) /251 심예란  쓰레기장 풍경 /253 전은주  소라(외 1수) /254 심명주  벼랑끝 고목(외 2수) /256 김창희  어둠의 색을 보았습니까(외 1수) /258 리임원 대록섬 /260 최화길  순진한 미소에 그늘이 지면 /261 윤청남  잔디빛소리 잔잔히 향수로 저려오면 /263 강철영  산사의 봄 /264 류대식  숙명(외 1수)/265 김룡환  고드름 /268 최은희 방황(외 1수) /270 리근영  만들기 순서와 사유 /272 박룡철  나의 밤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273 유  천  쑥나무고개 /274 박경상  시월애 /275 수필문학 김홍란 혈연와(血燕窝) /279 양은희  한송이 무덤으로 언덕에 피여(외 1편) /282 리영애 “오로라”를 향한 풍경 /288 신현철  죽음을 알라, 그리고 類底?살자 /291 오태호  혁명의 교과서는 없다 /295 조광명  당신은 도시인입니까 /299 김동진  노을강을 건너가는 무아의 날개 /307 김양금  늙은 버드나무 /310 현춘산  “책도적”이 그리워지는 세월 /313 남영도  그 남자의 블로그 /316 김두필  고향유정 /319 엄정자  현대인과 음악 /321 로춘애  내가 살아가는 리유 /326 장련춘  죽음도 사랑으로 /330 채영춘  송년론 /333 오옥련  산산이 부서진 그 이름이여 /335 리주천  떡갈나무 /339 서정순  필회와 밤낚시 /341 허무궁  자유의 공간, 누드신사 /344 김경화  리조트해변의 아름다움은 /347 김태현  이슬이 머물다 간 자리 /350 귀  향  조선된장과 조화인생 /353 아동문학 허두남  도시락에 담긴 사랑 /359 박룡원  아야 /364 박일호  노랑새네가 부러워요 /370 강  길  복짐이와 거울속에서 나온 아이 /385 전광하  백조왕국의 이야기 /390 박영옥  영민이와 단추흑판 /394 리영철  괴상한 흡진기 /397 한석윤  바다(외 2수) /402 최문섭  새의 노래 /405 김철호  산그늘 /406 김현순  봄날 /407 리  순  나는 알죠 /408 지영호  어버지의 유모아 /409 최룡관  봄은야(외 2수) /410 조룡남  제비네 학교 /412 림  철  잔디 /413 리종복  쥐약 /414 함창도  하늘을 아시나요 /415 김영능  저수지 /416 허송절  향기 /417 문학비평 김관웅  중한수교이후 중국조선족 시문학에 끼친                                  한국 시문학의 영향 /421 장춘식  청출어람 /465 김호웅  조선족소설문학, 1986-2006년의 풍경 /479 산  천  우리 시단에 존재한 문제를 두고 /487 엄정자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서더스 /495 김호웅  민초의 고뇌와 울분, 그리고 그 끈질긴 생명력 ―《2007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읽고 /509     [부록] 2007년도 중국 조선문 잡지, 신문 문학작품목록 /519
18    방문취업제 시험,이렇게 하면 안되나? 댓글:  조회:2663  추천:122  2008-06-06
  방문취업제시험, 이렇게 하면 안되나?      2007년부터 실행된 무연고자방문취업제는 범조선민족의 화합과 발전도상나라 동포사회의 보다 풍요로운 생활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장을 펼쳤다고 보편적으로 긍정하고있다. 고국의 따사로운 동포애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좋은 정책이다.하지만 구체실시에서 이런저런 여의치 못한 점들이 나타나 이런저런 론난이 일고 있다. 많은 문제점들이 많은 언론인들에 대해 언급되여왔지만 내가 말하려는건 방문취업 시험장소문제다.     중국 전영역에 18개 시험 장소가 설치되였는데 그중 조선족이 많이 살고있는 동북3성에 연길, 할빈, 장춘, 대련 4개만 설치되였고 그것도 몇천명으로 시험좌석이 아주 제한되여있는것이다. 그리하여 타지방에 등록한 수험생은 방법없이 불원천리하고 몇천리밖에 가서 몇천원의 비용을 팔며 시험을 봐야 하는 로고를 치러야 했다. 지어 전용뻐스를 파견한다던가 연길역에서는 전용렬차를 증가하는 등 큰 거동을 일으키지 않으며 안되였다. 경제상에서도 그렇다. 대충 짐작잡아도 한번 시험에  인민페 몇천만원이 소비되는 큰 경제활동이다.     관건은 시험좌석문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먼거리를 가지 않도록 본지방에서 시험을 치를수 있도록 수험생을 집중시키면 안되는가 하는 말이다.즉 연변의 사람은 연변대학 시험장에서 모두 치르게 하고 흑룡강사람은 할빈시험장에서, 그리고 관내에 사람들은 자기가 치르고싶은 곳에서 모두 치르게 하게 말이다. 시험장소의 좌석만 늘이면 되는는것이 아니겠는가? 교실은 얼마든지 있으니깐. 어떻게 시험주관부문이 정부와 협상하여 본지방에서 시험을 치르게 할수 없겠는가?그러면 경제뿐만아니라 여러면에서 수험생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수 있을것을.
17    창의적 시도와 다채로운 풍경 댓글:  조회:2549  추천:127  2008-06-05
  창의적 시도와 다채로운 풍경 2007년도 “도라지” 6호에 청년작가특집으로 구호준,한영남,리진화,김서연,김춘택,김경화 등 6명작가의 소설이 실렸다. 6명 모두가 소설, 시, 수필 등 분야에서 적잖은 성취를 거둔 청년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소설특집은 우리문단 젊은 작가들의 소설문학양상을 일정하게 대표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청년작가라면 우선 떠올리게 되는것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과 새로운 사물에 대한 빠른 접수 그리고 정열적인 탐구와 창조력이다. 6명작가들의 작품들에 모두 이런 기상이 보이면서 다채로운 풍경을 형성하여 사뭇 정서를 즐겁게 한다. 1.본질에 대한 해체와 구원에로의 탈출 우리는 지금 불확실의 시대속에 살고있다고 다들 말한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세계일체화의 정보시대 ,하나의 질서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새로운 질서가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과 함께 그 합리성을 팽창하는 혼돈과 무질서, 다원가치 공생공존의 미로, 이런 시대속에 살고있는 인간은 여느때보다 삶의 곤혹을 느끼며 방황한다. 구호준의 “바람의 대화”는 이런 실존 상태를 마주하고 존재의 구원을 본질적인것에 대한 해체를 통한 탈출에서 찾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작품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포스터모더니즘(후기현대주의)수법에 많이 기대여 완성시킨 작품이다. 그것은 포스터모더니즘은 가치서렬의 전도 내지 붕괴에서 그 특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기때문이다.  “바람과의 대화”의 주인공은 2인칭으로 되어야 할 너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너”다. 어느 회사 내부신문-직원이 모두 두명-의 주필인 “너”는 그리 잘나가지 못하는 가난한 지식인이고 “하층” 엘리어트이다. 때문에 이런 “너”는 외롭고 “아픔이 있어 너는 고통스러웠고 고통이 있어 너는 절망을했다.” 이럴 수밖에 없는 “너”다. 마음의 높이에 비해 쇠외된 현실,이런 “너”를 구원하는 길을 “너”는 본질적인것에 대한 반역과 해체로 찾고있다. 본질이란건 풀어서 해석하면 기성의 진리 혹은 진리적인 원칙이나 가치관념, 이런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인생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사랑을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자유분방한 녀인과 해후의 한번의 대작에서 살을 섞고 이어 결혼하게 되며 녀인은 임신하게 되고 임신을 알던 날 너는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이 막막”해나며 집을 뛰쳐나와 30대의 나이에 40대의 기녀를 찾아 외도하고 안해가 아이를 낳자 오히려 “허탈감에 너자신을 지탱하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진다.” 기본줄거리뿐만 아니다. 소설은 처처에서 반역과 해체가 보인다. 자식공부를 위하여 몸을 판다는 40대 기녀에 대한 변태에 가까운 긍정, “녀인, 자식, 돈, 명예, 삶자체도 무의미한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너”의 인생관, 더욱이 전률을 느끼게 하는것은 “아기가 아빠를 닮으면 리혼하겠다“는 “너”의 안해가 담담하게 내던지는 말이다. 이런 기존 질서와 본질적인것에 대한 반역과 해체는 결국 기존 본질에 회의를 느끼고있는 존재주체의 구원을 위한 탈출의 시도에 다름아니다. 특히 소설은 폭풍우속의 나비라는 교묘한 장치를 잘 리용하여 주제를 탄력있게 조응시키고있다. 나비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전환 사이사이에 부동하게 등장하는데-처음은 “창밖의 호랑나비 한마리가 창을 향해 돌진하고있다. 유리에 부딪쳐 잠간 물러났다가는 다시 창문을 향해 돌진한다. 폭풍우전야의 하늘을 보면서 어떤 알수 없는 위기감으로 안식을 찾는 모습이다. 옆으로 한뼘만 더 비켜서면 열린 창인데 나비는 그것을 보지 못한채 생의 마지막 모지름을 쓰고있다.” 그다음은 “호랑나비는 이젠 지친 모습이다. 요란하던 날개짓 대신 창문유리에 매달려 힘없이 날개를 퍼덕이고있다.” 그다음은 소설의 결말인데  “그리고 유리 한 장 사이두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모지름을 쓰고있다. 바람은 말이 없는데 나비는 바람이 두려워 도망간다. 자신도 모르는 아득한 곳으로.” 이렇게 소설은 나비에 대한 묘사에서 전반 소설의 몽롱하고 담담하며 우울하고 회색적인데 비해 정열이 일고있으며 지치고 곤혹스런 현실 삶에 대한 강렬한 몸부림을 나비에 의거하여 말하고있다. 바람은 정처가 없고 나비는 귀속이 없다. 바람은 불확실한 방향을 제시하는 불확실한 존재다. 때문에 “나비”는 바람과 대화에서 답안을 못찾고 바람을 떠나가며 따라 존재 주체의 구원을 위한  탈출과 몸부림은 계속 진행될것이다. 소설이기때문에 허구의 특권을 지닐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예술이 닿지못하는 내용을 소설적허구로 말할수 있었다. 언어에서도 참신성이 돋보인다. “바람이 손끝을 할고 지나간다”, 미소를 “녀인의 입가에는 하얀 장미 한송이가 피여올랐다.” 고 비유했다던가, 흐린 얼굴을 “녀인의 얼굴에서 락엽덜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했다던가, “파산신고를 들은 녀인의 얼굴에는 회오리바람이 불어쳤다”, “초췌한 몸태에 하얀 머리까지 빠져 한여름 땡볕에 시든 풀잎을 떠올리게 한다” 등등은 작자만의 언어로 낯설기에 성공하여 별미를 음미하는 기분이다. 문화적인 철학적인 이미지를 많이 깔고 인물들을 좀 더 진하게 부각(?)하였다면 좀 더 심도가 깊어질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해본다. 2. 시간과 공간, 감각의 포위속의 존재의 실상 우리는 보통 절대적시간과 상대적공간속에 살고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간은 초, 분,시, 하루, 일년 이렇게 흘러가고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은 물질의 끊임없는 운동으로 하여 상대성을 띠고있기때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상대적시간 절대적공간으로 될수 있으니. 독특한 풍경의 소설들을 쓰고 있는 리진화의 “에레베터”가 눈앞에 나타난다. 한 직장녀인이 한밤중에 직장에 나왔다가 직장의 허름한 엘레베터의 고장으로 에레베터속에 장밤 갖혔다가 이튿날 구원되는 이야기를 쓰고있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의 엘레베터라는 밀페된 공간에서의 감수와 생각을 의식흐름의 방식으로 진척시키고 꾸며나가고있다. 과학과 물질의 급속한 발전으로 현대인은 보편적으로 여느때보다 자아주재의 시간과 공간을 떼우고있다. 특히 드바쁜 현대생활과 절주는 코를 꿴 송아지처럼 타의에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며 물질적부의 풍요로움을 얻는 대신에 마음과 령혼의 자유는 점점 협소하게 박탈되여간다. 진정한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공간의 자유를 소유한다는건 현대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치인가? 엘레베터속의 젊은 녀인-감수가 예민한 지성인-은 남의 눈에는 행복한 녀인이다. 결혼을 앞둔 괜찮은 남자친구가 있고 건강한 부모가 있고 주위인간관계도 나쁘지 않고 좋은 선후배도 두루 있는 녀인이다. 하지만 떨쳐버릴수 없는 진한 피곤을, 말할수 없는 “어딘가 상당히 불편”함을 늘 느끼고 있는 녀인이다. 녀인이 에레베터속에 갖혔을 때 그녀는 진정 어디도 자신의 구원을 청할수 없는 고독한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오직 에레베터문이 스스로 열리는것이 자신이 구출되는 가장 좋은 방도가 됨을 깨닫는다. 녀인은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에레베터속에서 자신의 실존상태와 몸과 마음과 령혼을 깐깐히 성찰하며 잃었던 시간과 공간을 찾아간다. 느낄수 있는건 시간의 흐름과 진정한 자아와 존재의 실상이다. 감각은 여느때보다 밀도 있게 나래친다. 외로움, 억울함, 무료함, 공포, 귀신의 이야기, 귀신과의 대화, 잃어버린 밤을 찾은 잠, 령혼과의 대화,  “나는 왜 여기 왔는가”, “나는 무엇을 찾으러 왔는가”, “나는 무엇이 그리워 왔는가” 이런 끊임없는 물음과 함께 존재 주체의 과거, 현재, 미래의 가장 겉면적인 표상과 가장 심원한 본질이 이 한마당에 모이게 되며 따라서 시간은 절대성이 풀리고 상대적시간으로 이화하며 녀인은 열반의 희열속에 자아를 찾으며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상대적공간도 그 상대성을 잃고 새로운 탄생의 절대적 집이 된다. 예민한 감수성의 자유분방한 사변과 질서있는 언어표현론리, 작가의 천부를 잘 말해주고있다. 계속 좋은 작품을 기대하면서 이야기성의 상실은 소설에서 일종의 모험임을 귀띰하고싶다. 3. 상처의 치유와 생명의 완성 김서연의 “내인생의 고양이 한 마리”는 또 하나의 색다른 풍경이다. 한폭의 상징주의 유화작품을 흔상하는것 같은 소설이다. 어지간히 산만하고 어지간히 혼란스럽고 어지간히 몽롱한, 그러나 꼭 그렇게 표현해야만 작자 내심의 격정과 심령의 웨침을 작자식으로 최대한 물화할수 있을것 같은 리해심이 저도모르게 열리는 그런 소설이다. 그마큼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소설이다. 다섯살적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열두살에 할머니를 잃고 열네살에 “당신”이라 대호가 되여있는 남편을 만나서 끝내 귀속을 찾은 녀인의 성장과정을 쓴것이 이소설의 경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건 줄거리가 아니다. 중요한것은 여러가지의 몽롱한 상징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이 어떻게 내재적련계를 갖이면서 소설을 완성시키는가 하는 궤적을 살펴보는것이리라. 기대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작자는 명료성을 애써 소멸하려 하였고 “총체적상상”을 주저없이 서술하면서 여러가지의 상징물을 애매하게 등장시키고있다. 코스모스, 고양이, 녹쓴 자물쇄와 열쇄, 꽃씨 등이다. 우선 등장하는 코스모스, “코스모스 나붓거리는 들판의 아름다움으로 내마음을 뒤흔드는”“코스모스가 그 꽃잎을  나붓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그 코스모스는 죽은 부모의 몪까지 담당하고 있는, 부재를 채워주고있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그에게 끼치는 모든 영향범위-사랑, 관념 등등- 같은것을 상징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모스는 주인공의 성장의 보금자리일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죽고 보금자리가 깨여지면서 “할머니가 회색 구름이 되던 날, 그  회색구름이 처음으로 비를 내려주던 날” 제목의 고양이가 등장하며 “코스모스 그 꽃밭에서 울고있던” 고양이가 “나를 따라 쫄랑쫄랑 집까지 왔다.” 그후 고양이는 주인공녀인의 인생과정에 처처에서 참여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고양이는 할머니-코스모스가 사라지고 그 부재를 대체한 정신기둥적관념, 인생철학 아마 이런것들을 상징하리라. 보편적으로 인간과 가장 친밀하게 살고있고 귀염을 받고있는 고양이라는 소도구에 이런 상징의미을 부여한다는건 소원감은 없을것이다. 그후 열네살이 되던해에 스스로 고양이를 죽이고-새로운 질적인 비약을 위해서는 버림이 있어야 할것이다- 고향을 떠나 다른곳-도시로 갔는데 그곳에서 “혼자인 나”는 “혼자인 당신”을 만나고 나의 탈가, “당신”의 자살기도 등 우여곡절을 통해 끝내는 “녹쓴 열쇄로 녹쓴 자물쇄”-상처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상징할것이다-를 “당신”과의 화합속에 열고 마음속의 “꽃씨”-새로운 생명의 상징이리라-는 “날개를 펼쳐 푸른 하늘로 가볍게 가볍게 날아오르”고 “당신의 눈물은 별처럼 빛나고” “나, 그 눈물로 내안에 어여쁜 꽃 한송이를 피우고싶”으면서 부재의 공간을 “당신”으로 채우면서 상처의 치유와 함께 과거자아의 멸각속에 새로운 나의 생명이 탄생되게 된다. 꽤나 힘들게 읽었지만 다 읽고난후 진하게 미적인 충격을 주는 소설이다. 계속 좋은 작품을 기대해보며 소설은 필경 소설이기에 소설의 기본을 너무 탈리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4. 기타작품 시인이 한영남씨가 소설을 쓰고있다. 소설의 제목 “소설만들기”처럼 시인나름으로의 소설을 만들고있다. 소설은 가난한 지식인의 일상적인 삶을 파편적으로 서술하고있는데,두부도 따져가며 사야하고 화장터 문지기직업도 반가와해야 하는 가난한 지식인 가난한 서민의 생활, 애환도 많고 불평도 많으련만 너무도 담담하게 세상을 지켜보고 사색을 하고있어 두렵기까지 하다.“침묵속에서 사멸하지 않으면 침묵속에서 폭발하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침묵속에서 사멸하지도 않고 폭발하지도 않을것이다. 그것은 주인공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기때문이다. 여러수의 이미지시를 배태하고있는듯한 미학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소설이 너무나 담담하게 흐르고 이미지도 어지간히 우유부단하여 좀 곤혹스럽다. 어쩌면 격정이 사라지고 리상이 무마된 현실사회의 한단면을 이렇게 써야만 공평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은 그어떤 갈등구조 같은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가? 좀 더 선명한 소설을 기대해본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닌 시인의 소설을. H시인이 김춘택의 “H시인의 7선 종점 월세방”에서 걸어나온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금전을 초개 같이 여기는 가난한 H시인, 호방하고 유모아적이며 완세불공(玩世不恭)의 H시인, 하지만 시와 령혼에 군더더기가 생겼을 때에는 가차없이 몽골도로 군더더기를 썩뚝 베여버리는 H시인, 신비한 원시린에서 걸어나오는 원시인같은 H시인, 이런 H시인은  물질의 부와 반비례로 인간성 사막해져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스스로의 비춰보며 반성케하는 좋은 거울이 되지 않겠는가? 독특한 인물형상을 부각하여 인상깊다. 김경화의 “춥고 긴 어느 겨울날의 기억”은 인물일대기식으로 쓴 소설이다. 담약하고 소심스럽고 착하고 부지런하나 큰능력이 없는 아버지,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링게르 하나 맞는것도 아까와 하는 기막힐 정도의 자린 고비 아버지, 절름발이 병신이란 리유도 안해의 외도도 묵인하는 아버지, 어렸을적 할아버지 탈가로 하여 병태에 가까운 가정애를 갖고 자식들을 옆에 두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지난날 우리의 어두웠던 그림자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며 작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밉살스럽고 안타까운 아버지지만 이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질 가정이 미래를 예견하며 비애에 잠기는 결말은 정체성이 해체되는 현실을 영사(影射)하는것 같아 사색의 여운이 짙다. 이렇게 6명작가의 소설특집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런저런 표현, 기교 등 면에서 성숙이 모자라고 과분한 자아세계로의 한정과 사회참여의식의 결여로 무게감이 제한되여있고, 소설의 기본을 너무 떠난것 같은 등 부족점이 보이지만 이색적인 한상의 향연이요 창발적인 시도가 놀라운 다채로운 풍경임은 사실이다.
16    약한자의 슬픔 댓글:  조회:3416  추천:136  2008-06-01
  약한자의 슬픔 류대식   내가 연변대학 조선-한국학연구중심사무실에 홀로 있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낯선 두남자가 들어섰다. 앞에선 키도 좀 크고 꽤 실한 중년남자가 허리를 굽석굽석하며 “왜람되지만,저 일본에서 왔는대요,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하며 자아소개를 했다. 좀 더듬거리나 꽤나 류창하게 하는 조선말이였다. 나는 우선 자리를 권하며 용건을 물었고 명함장도 교환했다. 그 남자의 명함장에는 이름이 요리노(吉野)고 일본 모방송국의 보도담당 부부장이라 씌여있었다. 그리고 몇 년째 한국 모대학에 주재하고있다는것도 알게 되였고 이번에 중국에 온 목적은 여러 계층의 중국 조선족이 조선과 한국에 대한 태도를 료해하러 왔다면서 시간여유가 있으면 저녁에 같이 식사하면서 얘기를 좀 나누자고 했다. 나는 확실한 약속을 할수 없었으므로 그때 가서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인츰 갔고 나는 그일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 다섯시쯤 되자 그 일본사람한테서 저녁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저녁에 별다른 일이 없고 그래서 일어회화훈련도 할겸 연변대학부근의 흥콩식당에서 배동한 통역과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였다.그는 거의 조선어를 했고 나도 거의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요시노는 내인상속의 정밀하고 빤빤한 일본 사람과 달리 차림새나 모양부터 좀 텁텁한 그런 류형이였다. 그래서 우리사이는 인츰 가까워질수 있었고 우리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화기애애했다. 그는 중국 조선족들의 조선, 한국과 중국에 대한 태도, 조선족의 현황과 앞으로 타산 등등 문제를 물었는데 내식으로 적중하다고 생각되는 대답을 주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사이에 우리의 식사는 끝나서 옆집 커피점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는 어느덧 일본의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 야스구니진쟈참배, 위안부문제 등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피할래야 피할수 없는 민감한 문제로 넘어가게 되였다. 왜 너희 일본은 철같은 침략사실을 진심으로 참회하지 안고 아직도 교과서에다도 침략사실을 외곡하고있으며 전쟁범의 령위가 안장되여있는 야스구니진쟈를 수상부터 계속 참배하는냐 왜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안느냐 등 질의를 나는 어지간히 격해서 성토했다. 그러자 그는 교과서가 여러종류 되는데 대부분 교과서는 침력사실을 외곡하지 않았고 지금 젊은 일대들은 대부분이 일본이 아세아국가를 지원했지 침략했다고 인정하고있지 않으며 그동안 일본은 아세아국가에 경제상 많은 지원과 보상을 했으니 빚을 많이 갚은 셈이고 야스구니신쟈참배문제도 그들은 전쟁을 일으켰지만 죽었기에 죽은 다음에는 응당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해줘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변명을 했는데 그의 태도는 나의 정서와는 달리 점잖으면서도 겸손하였고 그러면서 그어떤 자부감과 우월감이 몸자세와 얼굴표정에서 진하게 우러나고있었다. 그의 변명을 들으며 나는 화기애애하던 우리사이를 갈라놓는 게센 파도가 철석이는 차디찬 동해바다를 보았고 그물빛속에서 어른거리는 군인과 총칼과 포탄의 작렬을 보았다. 나는 지금 원쑤와 마주하고있는것이다! 개개인을 떠나서 화제가 나라와 민족의 원칙적인 문제의 초점에 닿았을 때 비록 그것이 비공식적인 일상대화에 지나지 않다만은 서로가 자기의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한 조금치의 양보도 해서는 안될것이였다. 연발사격을 하듯 일본의 침략만행과 현재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성토하던 나는 불현듯 나의 성토가 요시노의 그 점잖은 자부감과 든든한 겸손함에 부딪쳐 산산히 흩어지는것을 보며 나의 분노가 얼마나 무력하고 비참한가를 뼈아프게 깨달으면서 허탈감에 빠져버렸다. 나는 지금 강자앞에서 “때려야할” 상대를 때리지 못하고 약자로서 약한자의 슬픔만을 하소연하고있는것이다. 내가 약한자의 슬픔을 하소연하고있는것은 결국 강자에게 무엇을 시사할것을 바라고있는것이고 지어는 가련하게 무엇을 구걸하고있는것이다. 어이하여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요시노처럼 강한자의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고 일본앞에서 항상 약한자의 슬픔만을 하소연해야 하는가? 일본에게 내가 바라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건 무엇인가? 아마도 우리의 원한이 풀릴만큼의 사죄와 반성과 배상이리라! 물론 우리가 요구하는만큼 일본은 영원히 사죄하고 반성하고 배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그만큼 사죄하고 반성하고 배상한들 어쩌랴. 약한자의 슬픔으로 가득찬 우리의 상처와 력사는 영원히 지울수 없는것을! 제지하다싶이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약소민족이였고 시종 대국사이에 끼여 약한자의 슬픔과 한으로 가득찬 력사를 살아왔다. 물론 자부감을 갖게 하는 자랑찬 력사가 없은것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여금 항상 강한자의 겸손을 갖추도록 하기에는 그 질량감이 많이 부족하다. 사람마다 국가마다 민족마다 다 이런런저런 각색을 맞고 력사를 써가고있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은 항상 약한자의 슬픔을 하소연하며 살아야 하는것이 숙명이란 말인가? 머리를 수긍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인생을 돌이켜 살수없듯이 력사도 돌이켜 살수 없다. 바람직한 자세는 희망차고 강한 래일을 기약하는것이리라. 약한자가 강해지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원래 약한데 흩어지면 더욱 약해질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선반도뿐만아니라 전지구촌의 모든 우리민족이 상호 단합하고 상호 보완하고 굳게 뭉치는길밖에 없으리라. 그래야만 약한자는 강해지고 약한자의 슬픔을 딛고 강한자의 겸손함을 여유있게 갖출수 있는 길이 열릴것이다. 약한자의 슬픔, 강한자의 겸손앞에서 비참해진 그날의 그 약한자의  슬픔은 아직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 굳은 응어리로 맺혀있다!
15    '2006중국우수문학작품집'출간 댓글:  조회:3317  추천:127  2007-07-29
  해마다 한권의 책으로 당해의 중국조선족문학의 우수작품들을 보여주는 계렬우수작품집의 두번째 작품집인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이 출판되였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선은 문학지인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비평지인 <<문학과예술>>, 아동문학지인 <<아동문학>>, 그리고 언론지인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료녕조선문보>>, <<길림신문>>, <<중국조선족소년보>> 등 10개의 잡지, 신문에서 2006년도 본지에 발표된 작품중 우수작품을 추천하였고 그중에서 편집위원회와 심사위원회에서 다시 엄선하여 최종 본작품집을 묶게 되였다. 본작작품집에 선정된 작품들로는 소설문학에는 리혜선의 <<터지는 꽃보라>> 등 10명작가의 10편작품, 시문학에는 강효삼의 <<초불엔 재가 없다>>를 비롯하여 26명 작가의 42수 작품, 수필문학에는 김호웅의 <<한그루의 무궁화>>를 비롯하여 19명작가의 19편 작품, 아동문학에는 최동일의 아동소설 <<정말 싫다>>를 비롯하여 16명작가의 20편(수) 작품, 문학비평에는 김관웅의 <<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비롯하여 6명평론가의 6편작품이 실렸고 부록에는 2006년도 중국조선문, 잡지에 발표된 문학작품의 목록도 올랐다.   이책의 출판 역시 2006년도 중국조선족문단의 또 하나의 경사라 할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2006년도 중국조선족문학의 양상을 일목료연하게 료해할수 있고 동시에 이책은 우리문학의 성취와 부족점을 옳바르게 가늠하면서 앞으로 우리문학의 새로운 비전을 기하는데 큰역할을 할수 있을것이다.  차   례 남영전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문학                              -머리말을 대신하여 /1 소설문학 리혜선  터지는 꽃보라 /3 김동규  촌놈 /35 량춘식  달도 /62 박옥남  마이허 /94 최홍일  닉명신 /106 양은희  타지마할 /133 정형섭  기러기문신 /169 림원춘  골회 /204 박초란 바나나의 날개를 찾습니다 /223 박  일  모녀의 세계 /234 시문학 강효삼  초불엔 재가 없다(외 2수) /241 김일량  여름산은 새소리 따라간다(외 2수) /243 리삼월  소나무(외 3수) /246 김  철  세상만사 /249 석  화  손가락 까딱하면(외 3수) /250 김  파  착란증 /253 리임원  아침 /256 김응룡  기다림(외 1수) /259 김춘택  계절을 반역해야 그대가 내게로 온다면 /261 리성비  기도 /263 지영호  생기를 도적맞힌 시골의 얼굴 /264 한영남  어느날 그 사람 만난다면(외 1수) /265 김룡칠  백발 /268 신현철  멈춘 심장들의 웨침 /269 김응준  백마야 /271 김영건 아픈 너를 위하여(외 1수) /272 조광명  외도의 돌멩이 /275 김창영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280 최화길  가을날의 사색(외 1수) /282 심예란 10월이 열립니다(외 2수) /284 윤하섭  시래기 /287 리승호  고향의 진달래 /288 강철영  시골길(외 1수) /290 김창희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 /292 김승광  락수물소리 /294 김  옥 가을편지 /295 수필문학 허무궁 신사의 호주머니는 쓰레기통 /299 김호웅  한그루 무궁화 /302 양은희 가을, 그리움으로 정착하며 /311 남호손  나를 찾아 홀로 떠난 려행 /314 김점순  발 /322 리선애  리별의 연길정거장 /326 신기덕  셀프스타터 /330 김경희  계절은 소리없이 다가오나봅니다 /334 오경희  흔들리는 미학 /337 장춘식  문학의 위축, 해법은 없는가? /340 김홍란  나를 깨운 들국화 /343 김동규  라고하강반에 뿌려진 작가의 혼령 /346 최정옥  아가야 우지 말어 /349 김의천  태항산기슭에서 /352 장련춘  엄마의 강 /355 최순희  렬차따라 레루끝까지 /359 주향숙  감히 아름다운 인생이라 부를수 있기를 /362 조광명  딸아, 무지개 없는 하늘이래도 너는 사랑하여라 /366 김춘실  믿닫이 /371 김  군  인생은 과거만들기 /374 아동문학 최동일  정말 싫다 /377 전춘식  반달 /388 김을석  복수 /392 김춘택  사이버공간에서 회전하는 지구들 /398 박일호  평화새 /411 김계옥  개구리동네의 풍파 /418 한석윤  삼복놀이터(외 1수) /421 최길록  꽃밭(외 1수) /423 김득만  텅 빈 운동장(외 1수) /425 최문섭  마라손경주 /427 김일량  짬짬이시간 /428 리상각  가을메뚜기 /429 림  철  이슬(외 1수) /430 김현순  어둠 /432 김학송  봄을 부르니 /433 어  진  봄마을 /434 문학비평 김관웅  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437 산  천  그 어느 울밑에도 채송화는 피여난다 /462 장정일  자유로움에서 건져낸 진실 /471 조성희  새시기 중국조선족 녀류소설문학에 대한                                     통시(通时)적연구 /478 강  걸  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브에 대하여 /500 김호웅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중심으로 /512 [부록] 2006년도 중국 조선문 잡지, 신문 문학작품목록 /527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문학                -머리말을 대신하여                                                   남영전    중국 55개 소수민족중 200만 인구에 500여명의 작가군을 가진 조선족의 문학창작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상대적으로 활발한것이 하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현하 중국조선족문단에서는 문학지인《연변문학》, 《도라지》, 《장백산》, 비평지인《문학과 예술》, 아동문학지인《아동문학(별나라)》, 그리고 언론지인《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료녕조선문보》, 《길림신문》, 《중국조선족소년보》등 잡지, 신문에 해마다 많은 문학작품이 발표되고있고 적지 않은 잡지사와 신문사에서는 해마다 우수작품평선활동을 통하여 작자들을 고무하고있다.  비록 중국조선족문학원지가 많다고는 할수 없지만 독자나 연구자가 그해 우리 문단의 우수작품을 알려고 이상 5개 잡지와 5개 신문을 한손에 다 챙긴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번씩 우리 문단 점검과 총화의 필요, 문학사료의 축적과 홍보의 필요로 한해에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우수문학작품집이 필요한것이다.  고마운것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가 중국조선족문학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이 일을 구상했고 또한 실천에 옮긴것이다. 출판사에서는 2005년 하반년에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관계잡지사와 신문사의 의견을 청취하였고 12월부터 각 잡지사와 신문사로부터 우수문학작품을 모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금년 3월에는 출판심사위원회와 편집위원회 성원들의 모임을 출판사에서 가졌다. 애초부터 관계자들은 이 일에 성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이번 모임에서는 구체적인 세절문제에 관한 진지하고 책임성있는 토의를 하였다.  출판사에서는 2006년을 시점으로 매년 해당 잡지사, 신문사들로부터 추천해오는 작품들을 모아 소설편(중편 망라), 시편, 수필편, 아동문학편(아동소설, 동시, 동화 망라), 평론편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그해에 발표된 문학작품목록을 첨부하여 50만자좌우분량으로 해마다 한권의 예쁘고 가치있는 작품집을 묶기로 하였다.  해당 잡지사, 신문사와 출판사 그리고 관계인사들의 합심과 노력으로 첫 작품집인《2005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이어 두번째 작품집인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이  독자들과 대면하게 되였다. 이 책의 출판 역시 중국조선족문단의 경사가 아닐수 없다.  중국조선족문단은 매년 어김없이 하나의 문학의 산을 쌓게 될것이고 독자들과 연구가들은 이 수려한 문학의 산책속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것이다.  참으로 축하드려야 할 일이다.  재삼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 감사드리고 해당 잡지사, 신문사와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2007년 3월 장춘에서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중심으로                                                                                                               김호웅    2006년 우리 작가, 시인들은 디아스포라1)로서의 자기의 문화적신분, 자기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자각하고 자기의 작품을 통해《나(또는 우리)는 누구인가?》,《나의 삶의 방식과 진로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왔으며 문학의 언어, 이미지, 구조, 기법에 대한 쟁론을 통해 문학적형식미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였다.    아래에 평론, 시, 소설, 수필 순으로 2006년 우리 문학의 전개양상을 륜곽적으로 살펴보고저 한다.     1. 우리의 문학비평,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라     2006년 한해 동안 문학비평은 다른 장르에 비해 자기 구실을 잘한것 같다. 조성일, 최삼룡, 전국권, 장정일, 한춘(산천), 김월성, 전성호 등 원로 평론가들이 꾸준히 현장비평에 참여해 로익장의 정열을 과시하였는가 하면 김관웅, 김호웅, 윤윤진, 서영빈, 장춘식, 김경훈, 조일남, 리광일, 우상렬 등 중년 평론가들이 새로운 사조와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우리 문학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최룡관(필명 최흔), 조성희 등은 창작과 비평 량쪽에서 모두 빼여난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며 강걸, 최미성 등 신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우리 문학비평은 단순한 작품론적범위를 훨씬 벗어나 우리 문학의 기본성격, 류파와 사조, 판도(版圖)에 관한 문제, 지어는 문단의 비리와 비정에까지 날카로운 메스를 가했다. 그리고 문학비평은 갑론을박의 쟁론을 통해 처음으로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게 되였다.    할빈의 비평가 산천은《그 어느 울밑에도 채송화는 피여난다》라는 평론에서 산재지구 우리 문학의 생성, 발전사를 되돌아보면서 십분 도전적인 견해를 내비치고있다. 그는 중국의 주류문학에 비할 때 연변문단은 변두리의 존재라고 할수 있다면 또 연변의 문단에 비해볼 때 산재지구의 작가들은 소외된 존재로 된다고 하면서 산재지구의 작가, 작품들에 대한 연변문단의 독선과 오만, 무관심에 유감을 표시한다. 뿐만아니라 이제는 시장경제, 지식정보화시대이니만큼 조선족문학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앞으로 조선족문화 내지 문학의 구심점은 연변이 아니라 외국 또는 중국 주류문화와의 합수목에 살고있는 류학파, 연해파, 도시파들에 의해 형성될것이라고 추단하고있다. 이 글은 산재지구 조선족문학의 형성, 발전의 지형도(地形圖)를 일목료연하게 그렸고 산재지구 조선족문학에 내재한 디아스포라적인 성격을 어렴풋하게나마 지적하고있어 주목된다. 하지만 연변문학의 하위(下位) 개념으로 산재지구의 문학을 설정하는데는 무리가 따르며 심지어 우리 문학 자체의 내부분렬을 야기시킬 위험을 안고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의 리론으로 연변문학과 산재지구문학을 아우르는 전반 조선족문학의 특성과 창조성을 깊이 있게 구명하는것이 오히려 이 글의 과제로 남는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과제는 허련순의 장편《바람꽃》, 김재국의 장편수기《한국은 없다》의 경우와 같이 1990년대 중반부터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김관웅, 김호웅, 장춘식 등 비평가들에 의해 리론적으로 활발하게 론의되고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디아스포라는 우리 조선족의 존재방식이요, 이중적인 아이덴티티의 갈등은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고 말하고있다.2)    연변의 비평가들이 산재지구의 문학을 소외시키고있다는 산천의 그릇된 견해를 시정하기라도 하듯이 연변의 소장학자 강걸3)은 북만지역의 대표적인 소설가 윤림호와 그의 소설을 비중있게 다루고있다. 그는《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브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윤림호는 청소년기의 불우한 체험을 자기 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삼고있는데 그의 소설의 기본모티브는 불우한 출신성분, 소외된 불구자, 농촌청년의 콤플렉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윤림호의 소설은 이러한 기본모티브에 의한 다양한 인물성격과 갈등, 플롯과 장면의 전개를 통해《좌적사조와 편견으로 말미암은 사회의 허황함과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에 의한 민중의 재생을 예언》한것만큼 윤림호는  20세기 80~90년대 조선족문단의《대표적인 소설가의 한사람》으로 된다는 정당한 결론을 내렸다.      조성희의 평론《새시기 중국조선족녀류소설문학에 대한 통시적고찰》은 최초로 조선족녀성소설을 주제학적측면에서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분류한 력작이다. 이 글은 1980년대부터 활약한 수십명 녀성소설가의 무려 200편에 육박하는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그 경개와 특징, 특히는  주제의식의 변화를 설득력있게 분석했다. 하지만 이 글은 녀성의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녀성소설에 고유한 환유와 묘사의 섬세성을 지적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있다.     장정일의 평론《자유로움에서 건져낸 진실》은 2005년도《도라지》잡 지 에 실린 수필들중에서 허무궁, 한영남, 리진화의 수필을 높이 사주고있는데 상기 3편의 수필이 성공할수 있은것은 수필 본연의 특징인《자유로움》을 실천했기때문이라고 하면서《방자하면서도 랭철하고 느슨하면서도 절제가 있는 정신의 자유로운 비상의 권리, 여의치 않는 삶의 모진 풍랑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새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꽃들의 행복한 미소를 표현할수 있는 기쁨, 이는 모든 수필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은총이요, 특권이다.》고 말하고있다. 수필의 본질과 묘미를 갈파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김관웅의 평론《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최룡관과의 쟁론을 거쳐 우리 시단의 현황과 향후 진로에 대한 생각 및 시의 본질과 특성 및 기법에 대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진술하고있다. 그는 우리 시문학의 렬악한 생존환경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나서 우리 시문학의 페단을 현실도피의 경향, 탐미주의적인 문자유희, 서방의 문학사조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등으로 진단하고 그 치유책(治癒策)을 내놓고있다. 즉 시인은 뜨겁게 사회와 현실을 포옹하면서 우리 민족의 의식과 그 생활과 정서를 노래함과 아울러 인간의 아름다운 감정을 생동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시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 시인들이 창작한 수작들을 엄선해 주제학적 비평과 형식주의적인 비평을 균형감있게 조화시켜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있다.          2. 우리의 시문학, 삶이 불평스러우면 울어라     2006년의 시단은 다사다난한 가운데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해란강문학상》,《정지용문학상》심사결과를 두고 시시비비가 란무했고 지어는 어처구니없이 법정놀음까지 일어날번했다. 현대시의 본질과 특징에 대한 쟁론이 벌어졌고 연변시인협회가 발족해 연변작가협회 시분과위원회와 더불어 여야(與野) 대립구도를 이루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렸다. 남영전의《토템시》가 중국 주류문단에서 공전(空前)의 찬양을 받은 대신 조선족시단에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시단의 춘추전국시대는 자연 이군돌출의 기인들을 배출해 김응룡의《둥지》, 석화의《연변》련작시를 비롯해 좋은 시작들을 선보였다.       공자는《시는 원망스러움을 노래한다(詩可以怨)》고 했고 한유(韓愈)는《삶이 불평스러우면 울어야 한다(不平則鳴)》고 했다. 고금중외 그 어느 시대이든지 참다운 시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삶과 그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공자나 한유의 말 그대로 시인은 시절이 한스러워 울고 민중이 불쌍해서 운다. 이 작품집에는 김철, 김응준, 강효삼, 김파 등 원로시인들과 김응룡, 리임원, 석화, 김영건, 조광명 등 중견시인들의 얼굴이 두루 보이지만 우리민족의 실존적상황과 희로애락을 대변한 김응룡과 석화, 김일량의 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고저 한다.     우선 주목되는 시인은 김응룡이다. 그는 최근 몇년래 농촌, 농민, 농업이라는 삼농(三農)의 문제를 시적소재로 다루면서 우리 농민과 농촌을 대신하여 구슬프게 울었다. 우리 민족의 실존적인 상황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고 하면서 유미주의의 상아탑속에서 코노래만 부르고있는 그러한 시인과는 달리 김응룡은 민족적 사명감과 량지를 가진 참여파 시인이다. 하여 그는 시《둥지》로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저 그의 시《기다림》을 보자.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 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 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김응룡,《기다림》    김관웅이 지적한바 있지만 이 작품은 세련미와 함축미를 갖고있어 진한 감동과 더불어 긴 사색의 여운을 남겨준다. 녀성이 증발해버린 농촌에서《외기러기 사내》들만이 살아가는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이 나타난다. 남정들은《행여 마누라가 돌아온게 아닌가?》하고 동일한 기대를 건다. 리농향도(離農向都),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 리별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민가정의 해체를 얼마나 잘 보여주었는가. 우리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 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김응룡,《시골개구리들의 울음》전문    이 시에서 시골 여름밤의 개구리울음소리는 초상난 집에서 애고애고 들려오는 곡성처럼 청승맞기 그지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구리소리는 시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감정이입의 표현수법을 아주 잘 구현한 수작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처럼 김응룡은 날로 황페해지고있는 우리 농촌과 날로 령락해가는 우리 농민들을 대신해 슬피 울어주고있는 시인이다.    이전에 탄광의 광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렸다고 한다. 민족적 사명감과 우환의식을 가진 우리 시인들은 탄광의 카나리아와 비슷한 존재이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고있는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김응룡시인의 시들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것이다.4)    이제 석화의 시를 보자. 석화는 최근 몇년간《연변》련작시들을 부지런히 써내고있다. 그에게 있어서 연변은 시인이 나서 자란 고향이고 영원히 묻힐 땅이다. 특히 그는 연변이 가지는 디아스포라적인 의미를 포착해 다각도로 이미지화한다.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嗚)5) ―/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6)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분다//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석화,《연변 2, 기적소리와 바람》전문    이 시는 상이한것들이 갈등이 없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혼종성, 쉽게 말하자면 조선족과 한족이 연변땅에서 공존, 공생해야 하는 숙명 내지 필연성을 유머러스하게 이미지화하고있다. 제1련에서는 기차와 바람을 의인화하면서《붕―》과《우(嗚)―》,《바람》과《퍼~엉(風)》의 대조를 통해 조선족과 한족의 언어적 상이성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제2련에서는 미물인 새들도, 납골당의 귀신들도 서로 상대방의 소리와 언어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두 문화형태간의 대화와 친화적인 관계를 하늘을 날며 즐겁게 우짖는 새와 납골당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귀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몽환적인 색채를 십분 살리고있다. 제3련은 이 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내적 구조에서 보면《전(轉)》과《결(結)》에 속하는 부분인데 연변의 풍물시라고 할수 있는《6.1》아동절날,《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갈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고 색채적인 이미지를 구사함으로써 다원공존, 다원공생의 론리로 자연스럽게 매듭짓고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야말로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석화의 다른 시《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연변》은 더욱더 감칠맛이 난다. 김응룡이 풍전등화 같이 스러져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두고 구슬프게 울었다면 석화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애기엄마 젖꼭지만큼 하다// 하얗게 피여났던 춘삼월 꽃잎/ 하늘하늘 나비처럼 내려앉은 가지마다/ 어제 오늘 다르게 굵어지는 열매들// 알알이 노랗게 단물이 들기까지/ 아직 한철 남았고/ 새콤새콤 입안을 톡 쏘는 싱싱한 맛/ 새색시 입술만 감빨게 한다// 오얏나무집 할배 입이 귀가에 걸렸나/ 오가는 길손마다 손목잡고 건네는 말씀―/ 이제 아기 울음소리에 동네가 들썩할거요/ 십년, 십년만의 경사라니깐//                           ―석화,《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연변》    기승전결의 내적 구조를 가진 한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시다. 제1련은《기(起)》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칠월 장마뒤끝의 오얏이 애기엄마 젖꼭지만큼 하다는 기발한 착상과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분홍바탕에 자주빛이 감도는 오얏을 애기엄마 젖꼭지에 비유한것은 아마 석화시인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게 바로 모양과 색갈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이질적인 사물들간의 비유가 성립될수 있는 까닭이요 낯설게 하기이다. 제2련에서는《기》를 받아 물고 꽃잎을 나비에 비유했고 오얏이 어제 오늘 다르게 굵어진다고 했다.《승(承)》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쉽게 말하자면 분위기를 조성하고 능청을 떨었다. 제3련과 제4련의 첫 구절에서는《노랗게 단물이 들》었다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입안을 톡 쏘는 싱싱한 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술을 감빨고 있는 새색시와 좋아서 입이 귀가에 걸린 할배를 등장시킨다. 이는《전(轉)》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무엇이 좋아서 입이 귀가에 걸렸을가? 이제 아기 울음소리가 들썩할것이고 이는 십년만의 경사이기때문이란다. 이는《결(結)》에 속한다. 아무튼 이 시는 미구하여 소생할 조선족농촌을 비유적인 이미지와 다양한  감각적이미지 및 기승전결의 내적 구조를 통해 그린 수작이라 하겠다.    김일량의 시도 시적이미지의 창조에서 일가(一家)를 이룬다고 하겠다. 김일량은 안도현 시골에 묻혀 사는 농민시인이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청빈락도(淸貧樂道)의 자세로 고향의 청산록수(靑山綠水)와 벗하며 살고있기에 청산의 새소리같은 청아한 시편들을 지을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파운드(1885-1972)는《방대한 저작을 남기기보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훌륭한 이미지를 만드는게 낫다》고 말한바 있다. 김일량의 서정시《여름산은 새소리 따라간다》는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조를 취하지 못해 뒤부분이 좀 처진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력을 보이고있고 참신한 이미지를 창조하고있어 주목된다. 이를테면《여름산에 새소리는/ 동화같이 화창하다》와《청 맑은 새소리가/ 동전잎처럼 반짝인다》와 같은 비유는 그 내적구조를 보면《새소리》라는 청각적이미지를《동화(童畵)》나《동전잎》과 같은 시각적이미지로 전환시킨 기발함을 보이고있고,        새소리 붉은 석양 물고        나무숲속에 잠을 감추면        익는 수박속같이―        달콤한 향기가 모이는 꿈 꾼다.    여기서는 새소리를 의인화함과 더불어《붉은 석양》과 같은 색채적이미지, 익는 수박과 같은 미각적이미지, 달콤한 향기와 같은 후각적이미지를 조화롭게 구사해 그야말로 선경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미저리를 창조함으로써 시인의 탁월한 언어구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처럼 우리 시인들은 다작(多作)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금중외 그 누구도 구사한적 없는, 단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나 새로운 메타포를 창조, 개발할 때만이 시인의 이름에 값할수 있을것이다.    3. 우리의 소설,《빛나는 변두리》그리고 우리 말의 묘미         를 살려라    소설분야는 림원춘, 류원무, 박선석 등 원로작가들이 지속적인 활약상을 보이는 가운데 최홍일, 우광훈, 량춘식, 정형섭, 김동규, 박일 등 작가들이 가세를 하고있다. 특히 허련순, 리혜선, 박옥남, 양은희 등 녀성작가들의 소설들은 주제의식이나 기법에 있어서 남성작가들을 무색하게 만들고있는 형국이다.    우리 조선족사회는 여전히 자체의 경제적기반을 가지지 못한채 도시화, 산업화의 길목에 서있으며 이민과 리산(離散)의 아픔을 안고 우왕좌왕하고있다. 2006년의 소설들은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조선족사회의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고있으며 그러한 현실과 상반되는 유토피아를 지향하고있다. 여기서는 주로 정형섭, 리혜선과 박옥남의 소설들을 보기로 한다.    정형섭의 소설《기러기문신》은 신판《심청전》을 만들만한 귀한 소재를 다루고있어 주목된다. 절세의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량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림당수에 풍덩 빠졌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윤순은 불구자인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장가들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는 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시집을 가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한국에 데려간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변태성욕자로서 멀쩡한 윤순에게 자꾸만 성형수술을 시킨다. 그녀는 눈과 코를 수술하고 나중에는 젖무덤까지 수술한다. 하지만 의외의 의료사고로 염증이 생겨 윤순은 두 젖무덤을 척출(剔出)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젖무덤은 녀성의 신비요, 상징이라고 할 때 그것까지 바쳐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의 뒤바라지를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희생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그녀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지금의 수많은 조선족녀성의 한 전형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오랜만에 윤순을 찾은 옛 련인의 철없는 시선을 통해 윤순의 젖무덤에 난 수술자리를 탐미주의 시각으로 묘사, 감상함으로써 작가의식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따라서 인물성격의 론리를 위반하고 주제의 분렬을 가져왔다. 다 쓴 죽에 코를 풀었다고나 할가. 하지만 현명한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조선족사회의 실태를 알수 있으며 윤순의 비극적운명에 커다란 동정을 보내게 된다.    최홍일은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로서《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랴》라는 투철한 작가의식을 가지고 소설창작에 몰두하고있다. 그의 단편소설《닉명신》은 취중에 두 동료와 함께 부패한 권력자를 고발한 닉명신을 썼다가 술이 깬후 보복이 무서워 후회막급, 전전긍긍하는 한 퇴직교원의 나약한 모습과 모순된 심리를 다룬 작품인데,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장면과 주인공의 기형적인 인간상에 대한 생동한 묘사를 통해《좌》적인 정치운동과 권력의 횡포에 의해 인간들의 심령이 얼마나 병들고 기형화되고있는가를 극명하게 묘파한 수작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정치운동은 인간에게 명철보신의 처세철학을 갖게 했다. 사람들은 권력의 비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증오하나 앞장에 서서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기만을 바랄뿐 선뜻이 나서지 못하는게 오늘을 사는 인간들의 생리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회적 병페와 인간의 몰락상을 야유, 풍자하면서 새로운 시민정신의 각성을 촉구하고있다. 작품은 3인칭을 택했으되 작자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특이한 고백체 담론방식을 구사함으로써 한결 더 진실성과 친근감을 기할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심미적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 그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 매도보다는 그러한 정신적기형을 만들어낸 좌적인 사조와 비틀린 사회풍조를 고발하는데 포인트를 둠으로써 휴머니즘의 세계를 지켜내고있다.     리혜선은 우리 소설문단의 중견소설가다. 최근 몇년간 단편《병태씨네 빨래줄》, 장편《빨간 그림자》와 같은 실험적인 소설들을 썼고 그러한 실험정신에 평단의 찬반이 엇갈렸다. 필자는 좀 실망을 가졌던편이였었는데 이태전《도라지》잡지에 실린《매니큐어》라는 수필을 보고 리혜선씨의 문학적재치를 다시 긍정하게 되였다가 2006년《장백산》에 실린 중편《터지는 꽃보라》를 보고 우리 문단의 사라졌던 재녀(才女)를 다시 찾은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의 작중인물들은 모두는 진짜 이름을 쓰지 않고 익명이나 별명으로 통한다. 오늘의 대중사회에서 개개인은 익명으로, 기호나 수자로 존재함은 더 말할것 없다. 가끔 현금인출기에서 비밀번호를 넣고 돈이 나올 때마다 우리 모두 익명으로만 통하는 자신의 실체를 실감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이 작품의 경우에도 작중인물들은《오징어파티》에《고구마》,《별난 녀자》,《안니》,《제이》로 통한다. 이러한 익명의 조건에서 이들은 자기의 욕구를 거침없이 분출한다. 천사가 악마로 변한다. 모든 탈을 벗어던지고 추악한 몰골을 드러낸다. 황차《3.8》절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익명의 네 중년녀인들이 쏟아내는 성적 기갈과 음담패설은 읽는이들을 포복절도케 한다. 기실 그들은 가정을 위해 한국에서 10년씩이나 허둥대면서 일했지만 일단 귀국하자 자식과 남편, 사회에 의해 소외되고마는 이방인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보면 눈물 어린 미소를 짓게 된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진통과 해체, 그리고 소외의 주제를 익명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미있게 풀이했다고 본다.    박옥남은 최근 혜성같이 나타난 녀성소설가로서《둥지》,《목욕탕에 온 녀자들》,《마이허》등 3편의 단편소설로 작가적 기량을 충분히 인정받게 되였다. 소설은 인문적배경을 실감있게 그려 갈등을 설정하고 소설적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마련인데 박옥남은 한족과 조선족의 잡거지역이라는 문화적 혼종성(hybridity)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강세요, 주류문학의 공백을 파고드는 작업이다. 디아스포라적인 인간 또는 민족공동체는 경계적인 삶, 변두리의 삶을 살고있기때문에 부동한 문화와의 모순과 충돌 또는 교류와 영향 관계속에 놓이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디아스포라의 개체 또는 민족공동체는 자기의 고토와 고유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와 집착을 갖는 동시에 다른 문화에의 동경과 접목을 피할수 없게 된다. 그 결과 디아스포라의 개체 또는 민족공동체는 문화적 변이(變異)를 일으키게 되며 혼종성 또는 다중문화신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년)는 디아스포라의 삶은《모체에서 찢겨나간자의 상처》이고 아픔인 동시에《일종의 특권이며 다시 얻을수 없는 우세》로 된다고 하였고 호머 바바(1949년- )는 새로운 문화는 다양한 문명들이 교차되는《걸출한 변두리》에서 파생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리론으로 볼 때 박옥남의 단편《마이허》는 개미허리와 같은 강 하나를 사이를 두고 살고있는 중국인 마을과 조선족 마을의 색다른 풍속을 아주 생동하게 그리면서 한족과 조선족의 공존, 공생의 원리를 너무나 재미있게 그렸다고 할수 있다.    4. 우리의 수필,《녀성의 글쓰기》우세를 살려라    수필분야에는 남호손(본명 황유복), 허무궁, 양은희, 장춘식, 최순희, 조광명 등 중견수필가들의 얼굴이 보인다. 특히 남호손의 수필《나를 찾아 홀로 떠난 려행》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물음에 깊이 있는 대답을 준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한 사례로 되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김점순, 리선애, 오경희의 수필을 통해 녀성의 글쓰기와 그 매력에 대해 살펴보고저 한다.    김점순은 중학교 교원으로 지내면서 짬짬이 많은 글들을 써왔고 최근 몇년간 여러가지 문학상들을 석권해오면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 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수필부분 본상으로 뽑힌《발》은 그 동안 일편단심 문학을 사랑하면서 부지런히 글 농사를 지어온 작자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본다.   《발》은 전형적인 서사수필이다. 작자는《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라는 정지용의 시에서 수필적 계기를 얻고 자연히 아버지의 발을 련상하게 된다. 아버지를 그리되 아버지의 전모를 그리지 않고 아버지의 발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의 발을 몇개의 장면을 통해 간결하지만 다각도로,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계기적인 사건, 장면만을 다루고 그것을 의미화하는 수필 본연의 특징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모내기철 논뚝길을 휘청거리며 뛰여다녀서 누런 흙물이 줄줄 흐르는 발, 노란 개흙과 새초를 뒤섞어 맨발로 이긴 나머지 황토로 반죽된 발, 그리고 겨울철 새하얀 눈길에 땔나무를 해온 아버지가 땀내 물씬 배인 솜신을 거꾸로 들고 흔들면 하얀 눈가루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싱그러운 산기운을 풍긴다고 했다.    이처럼 천진한 동심으로 아버지의 발을 그리는가 하면 오래만에 시가지에 살고있는 딸네 집에 온 아버지에게《주디안마(足底按摩)》를 시키려 했던 일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나서 의론을 전개하는데, 계기가 적절하고 거기서 탄력을 받았으니 의론 역시 감칠맛이 나고 설득력을 가진다. 여기서 아버지의 발은 그의 근면하고 순박하고 희생적인 부성(父性)을 대변하는 상징체로 작용하며 작자에게는 물론이요, 독자들에게도 무궁한 여운을 남겨주고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리선애의 수필《리별의 연길정거장》은 한국의 유명한 대중가요《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패러디하고있다. 하지만 이 수필은 몬따쥬7)의 기법을 십분 활용해 서로 모순되는것 같지만 론리적으로 서로 련계되는 세개의 장면을 교묘하게 련결시키고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장면묘사는 녀성 작자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연길 정거장에서 아버지인듯한 사람의 팔에 안긴 녀자애는   《엄마, 한 밤 자면 오나?》    라고 묻는데 그녀가 차마 3년이란 말을 못해서 세 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그러니 그 애는   《세 밤?》    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그녀는 차마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러자 철모르는 애는   《야 좋다. 엄마, 나 세밤 안자고 기다릴거야.》라고 하는데 옆에서 그 장면을 보는 나의 가슴마저 옥죄여든다.    뿡! 렬차가 떠나는 기적소리가 울렸다.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가, 수천명의 인파가 북새통을 이루고 리별의 눈물바다를 이룬 연길정거장을 구구히 설명하기보다 열배나 더 감동을 주는 장면묘사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작자가 연길 청년호를 지날 때 본 다정다감한 련인들과 원앙새 한쌍, 어느 전통혼례식 때 본 전안례(奠雁禮)의 장면을 그리면서 그러한 풍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륜리와 도덕을 찬미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현실은 엄청 다르다. 원앙의 사랑을 꿈꾸어왔던 수많은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고 기러기사랑을 맹세했던 수많은 부부들이 외기러기 신세로 되여버렸다. 여기서 작자는 부부간에 서로 천만리 떨어져있어도《늘 간절하고 애절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심해지지 않도록 다가서는 자세가 중요》하며 부부간의 사랑은 각자가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만이 지속될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부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꽃나무와 같이 알뜰살뜰 물을 주고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기때문이란다. 녀성 작자의 섬세한 눈길과 청순한 감정이 생동한 형상으로 녹아있는 깜찍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본 김점순의《발》을 서사수필이라고 할수 있다면 오경희의《흔들리는 미학》은 전형적인 서정수필이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남성중심주의의 통념을 부수어버린다. 남성중심주의적인 봉건적례교와 관습에 의한다면 녀성은 흔들려서는 아니되는 존재다. 렬녀 춘향이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렬녀는 불사이부라고 했듯이 흔들림이 없는 충성과 사랑은 자고로부터 절찬을 받은것이다. 하지만 만고의 렬녀 춘향에게 부족한것은 피와 살이다. 하기에 오경희는 종(鍾)은 흔들려야 종노릇할수 있고 갈대는 흔들리면서 세상과 맞선다고 본다. 그리고 흔들려서 강물에 허리를 적시고 청초함을 자랑하는 싸리꽃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게 바로 거꾸로 보기의 시학(詩學)이요, 남성중심주의 고루한 사고 패턴을 전복시킨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뿐만아니라《똑바로 산다는것이 흔들리는것이고 부드럽게 휘여져서도 꺾이지 않는것이 스러지지 않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똑바름이 아닐가. …단단하지 말고 억세지 말고 잘 흔들리는 치마처럼, 활짝 피여서 잘 감탄하는 꽃처럼 살았으면 좋겠네요.》라고 했듯이 변증법적인 철리와 작자의 소망까지 깜찍하게 풀어내고있어 더욱더 감칠맛이 나는 수필로 되였다.     5. 맺는 말     2006년의 우리 문학을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다루어보았다.    우리는 중국 주류사회와 조선반도 사이에 살고있는 디아스포라적인 존재이다. 이제는 페쇄된 지역에 갇혀있다는 고독감, 상실감,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두개 이상의 문화를 아우를수 있는《빛나는 변두리》에 살고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할것이다. 석화나 박옥남의 경우처럼 자기의 지역적 우세를 변증법적으로 살려 우리 문화의 토착성, 다른 문화형태와의 갈등과 공존의 실존적 상황을 형상적으로 다룰 때 비로소 다원문화시대 우리 문학의 독특한 가치를 창조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첨단적인 주제라 하더라도 문학성을 떠나서는 그 존재가치를 론할수 없는 법이니 작가들 모두가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아 새로운 비유와 상징,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개발하고 새로운 문학적 장치와 기법을 구사할 때만이 우리 문학인 개개인을 살리고 우리 문학 전체를 살찌울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아동문학분야를 다루지 못한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2007년 5월 2일, 연길에서   
14    '한류'는 막대한 재부 댓글:  조회:2561  추천:116  2007-05-20
  ‘한류’는 막대한 재부 류대식     2006년도 할빈빙설제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개최하게 되여 빙설대세계속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경복궁, 첨성대가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세인들 앞에 나서면서 중국의 한류(寒流)속에 몰아치는 한류(韩流)의 열풍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했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점점 거세지는 ‘한류’다. 중국의 방방곳곳에서 한국상품이 판매되고있으며 한국 텔레비죤드라마, 영화가 련속부절히 방영됨과 동시에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있고 이미 중국 백여개의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개설했고 많은 한국기업의 진출과 더불어 60만의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장기 거주하고있다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한국을 알고 한국말을 몇마디라도 하는것을 일종 류행으로 알고있다. 옛날에는 자본주의 나라, 적대의 국가, ‘남조선’으로만 미약하게 알려지고 한국이라는 그 나라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얼마 안되던 한국이 짧은 십여년 사이에 이제는 960만평방메터의 광활한 중국대지를 휩쓰는 ‘명브랜드’로 되였다. ‘한강기적’을 뒤이은 또 하나의 기적-‘한류기적’라고 하겠다. 그만큼 경제적면에서도 큰 재부를 산출했음을 의미하고있다. 중요한것은 앞으로의 비전이다. 중국에서 ‘한류’ 그자체는 바로 막대한 재부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태하고있는것이다.     수요가 있고 접수가 있고 공급이 되고 구매를 하고 따라서 리익을 창출하는것, 이것은 아마 간단하면서도 철같은 경제법칙일것이다. 이가운데서 접수라는 연인소가 접착제와 같은 관건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아무리 수요가 있고 공급이 따라가도 접수하지 않고 따라서 구매하지 않으면 경제의 흐름은 단절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한류가 중국대륙에서 거세게 불어치고있다는것은 바로 중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호감과 함께 접수되고있다는것이다. 두말할나위없이 이것은 대중국비즈니스의 호세다. 남은것이란 이런 한류의 동풍에 어떻게 배를 띄우고 닻을 올리며 더욱 가세를 가하는가 하는것이리다. 그런데 이런 ‘한류’현상을 랭정하게 살펴보면은 그 기세에 비해 실리적인 결과가 뒤처지는, 우뢰만큼 소나기의 비례가 따라가지못하는듯한 감을 준다. 이것은 중국에서의 미국과 일본의 정황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개혁개방이후 중국과 가장 빠르게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또 목전까지 협력관계가 가장 높은 수치를 올리고있는 나라다. 하지만 개혁개방부터 지금까지 회고해보면 사회생활가운데서 미국과 일본의 존재를 시시각각 느끼면서도 ‘미류’, ‘일류’ 같은 붐은 인것같지 않다. 미국은 그 막강한 힘으로 어쩔수 없게 중국의 경제기반을 뭉청뭉청 차지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거부감속에서 반발이 끊임없었지만 홀연 어느날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 깊이 침투된 인자(忍者)처럼 조용히 다가선 일본을 발견하게 되였던것이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현상을 ‘한류’와 비해보면 미국과 일본은 많이는 ‘선진적인 힘’에 의거했다면 ‘한류’는 ‘선진적인 힘’도 힘이겠지만 우선은 중국인들이 결여되고있는 감정색채가 짙고 섬세하고 화려한 한국의 ‘표현주의문화’가 감정적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은것 같다. 때문에 실리적인 비즈니스는 그 기세에 비해 포말이 많이 섞이게 된것이다. 하지만 어쨌던 ‘한류’자체는 막대한 재부를 배태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한류’는 대중국비즈니스에서 한국뿐만아니라 중국 조선족 나아가서는 전세계 모든 조선(한)민족의 재부이다. 이 재부를 어떻게 발굴하는가 어느만큼 발굴하는가 하는것은 실력을 기초로한 구체적인 실천에 달렸다. 특히 중국 조선족들은 자신의 특수한 우세를 잘 발국한다면 이런 ‘한류’속에서 보다 많은 성공의 기회를 잡을수 있을것이다.
13    중국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댓글:  조회:2727  추천:142  2007-04-16
중국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류대식        1992년도에 중한수교가 정식 확립되면서 중국과 한국간의 제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대폭으로 발전해오고 지금에 와서는 한국은 중국의 제5무역국,중국은 한국의 제3무역국으로 상호 부상되고  앞으로도 량국의 협력이 계속 가강될 추세다. 하지만 협력과정중 불가피하겠지만 이런저런 여의치 못한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고 대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70-80프로 실패했다는 놀라운 수치가 나와 저으기 안타깝게 한다. 그것은 조선반도가 고국이라는 점뿐만아니라 우리 중국조선족의 발전과도 아주 밀접히 관련되여 있기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쌍방의 이러저런 원인이 다 있겠지만 중국조선족이라는 제3자의 립장에서 한국측의 원인을 찾아볼 때 한국인들이 우선은 중국에 대한 전면적이고 올바른 인식이 결여되여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면은 많은 한국인들은 아집의 한국적인 시각과 사유방식으로 중국을 접근하고 인식하고 판단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국 왕왕 리상적이 못되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지 않아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우선은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현시점의 앞선 한국의 차원에서 뒤떨어진 중국의 현실만을 보지말고 력사적으로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고 세계최정상의 문명을 창조했던 나라라는것을 선입견으로 가지고 그 무궁한 문화저력을 인지하면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150년전 청말전까지는 중국이 시종 세계의 강대국이였다. 크게 굴러왔고 크게 굴러가고있는 대국이기에 한국같은 소국에서는 미칠수없는 가능성도 창조할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무슨 일이든 겸손하면서도 확장하여 생각하여야 한다고 본다. 물론 자신심의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쩍하면 “우리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국민”하면서 호기를 부리는 경박한 태도같은것은 많이 삼가야 할것이다. 절대대부분 한국인들이 중국에 오는 목적은 사업에서 성공하자고 온것이지 그어떤 ‘발설’을 하자고 온것이 아니 잖는가?정말이지 나는 중국에서 몇십년 살면서 일상 사업, 생활에서 중국인들이 “우리중화대국”, “우리대중국” 하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리성적이고 현실적이고 내실적이다.    다음으로는 중국은 960여만 평방킬로메터에 56개민족으로 구성된 큰나라기에 천차만별의 지역적 특수성이 존재하는 나라라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통성도 있다. 면적을 보면 중국은 한국의 백여배가 된다.그래서 한국처럼 서울에서 번개치면 부산에서 비가오는 식의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북을 좀 알았다해서 중국을 다 알았다 할수 없고 북경을 알았다해서 대도시를 다 꿰뚤었다고 장담할수 없는것이 바로 중국이다. 그만큼 중국은 지역성적인 차이가 크다. 편벽산골에서는 일인당 일년수입이 인민페로 몇백원이 되는데도 있지만 북경, 상해, 심수 같은 대도시에서는 보통 월급이 몇천원에서 만여원에 이른다. 서북지구의 일부 락후한 곳은 아프리카의 락후한 곳을 방불케하지만 북경, 상해,심수, 대련 같은 대도시는 그 발달수준이 발달한 나라의 일류도시들과 비길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에 비해 물가가 그만큼 싼 나라이라는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절대적수입은 발달한 나라와 큰 차이가 있지만 물가가 싸기에 승용차, 외국유람같은 고급소비는 보편화되고있지 못하지만 입을건 다 입고 먹을건 다 먹고 흉내는 다 내면서 유유작작하게 산다.좀과장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서민들이 제일 살기좋은 나라의 하나가 중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 와 장기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재한국 중국인들보다 3배나 되는 60만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셋째, 경제상황의 표면과 리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아직 법제가 완비화되지 못했기에 엉성한 공간들이 많다. 따라서 발전도상나라들이 다 겪는 “암경제현상”이 엄중하다. 물론 이런 암경제는 비법적인것도 있고 합법적인것도 있고 그가운데 있는것도 있다. 어쨌던 많은 사람들이 업여수입이 다다소소 있는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표면상 한달 천여원수입, 몇천원 수입으로 실질경제 정황을 가늠하면 정확치 않다. 보통 월급쟁이들도 주먹구구로 따지면 먹고 쓰면 남는것이 없겠건만 실제생활은 입을건 다 입고 먹을건 다 먹고 자식공부 다 시키고 아빠트를 사고 그렇게 빠지지 않고 산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함께 어울려 사는우리 조선족들도 늘 고개가 삐딱해지고 리해안갈 때가 많다. 물론 이런 암경제는 정확한 통계수치를 내올수 없다. 하지만 놀라운 어마어마한 수치로 돌아가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때문에 중국의 평균 GNP나 GDP는 한국의 십분의 일정도지만 지금 중국의 수준에서 부유하게 잘사는 사람들의 수자는 한국의 인구보다 더 많다고 한다.  넷째,중국의 세계적인 영향력과 경제규모의 절대적수치와 미래의 비전도 보아야 한다.지금 중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제4위로써 절대적수치는 세계11위인 한국보다 많이 앞서고있다. 그리고 국제영향력에서도 그 작용이 점점 커지고있고 세계적으로 미국과 감히 <<동등하게 대화>> 할수 있는 몇개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그리고 지금 중국은 시종 급성장을 하고있으며 적지 않은 분야는 잛은 시일내에 선진국을 따라잡을것이다.   때문에 한국을 인식하는 사유방식으로 중국을 판단하고 처사한다면 왕왕 예산과 빗나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중 한국기업의 성공률이 가장 낮은것이 이문제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니 절대 중국을 만만하게 보고 간단하게 보고 편면적으로 보아서는 안될것이다. 많은 면에서 중국이 뒤떨어졌다해서 앞선것과 가능성을 보지 못하면 안될것이고 뒤떨어져도 어느만큼 뒤떨어졌는가를 공정하게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것이다. 이면에서 한국인들의 판단은 왕왕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다. 례를 들면 북경역을 보고 “중국은 한국보다 50년은 떨어졌어.” 하는식의 결론를 내린다거나 위생정황을 보고 지금의 중국을 한국의 60년대와 등호친다거나 하는식의 종적이고 편면적인 판단같은것이다.   때문에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중국진출 및 대중국협력에서 성공할수 있는 기초적인 관건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12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5) 댓글:  조회:2543  추천:116  2007-03-27
  5.아름다운 함정 해남도에서 분망한 려행을 모두 끝내고 우리일행은 해구로 돌아와 첫날에 묵던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자게 되였다.그사이 모두들의 행장은 많이 불어났고 어떤이들은 물건꾸러미가 서너개씩 되였다.려행이란 원래 구경과 함께 물건을 좀 사는것은 상례인데 이렇게 짐들이 많게 된데는 우리의 려행성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목전 국내의 려행은 네가지부류로 나눌수 있는데 첫째는 호화형으로 말그대로 높은 비용에 최고급 써비스를 제공하는 유람이고 둘째는 전문형인데 전문적으로 골프나 해수욕, 온천욕, 잠수…등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전문적으로 하는것이고 셋째는 유람과 물건구입을 결합시킨것이고 넷째는 보동형인데 말그대로 최소한 비용으로 하는 려행이다.우리의 려행은 세번째부류에 속하는 려행으로써 목전 국내려행의 팔십프로이상을 점한다.때문에 우리의 려행코스는 유람명소와 해남도특산구매지점이 엇섞어 안배되여있었다. 우리의 가이드 아신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봐야겠다.외지에서《고향사람을 만나니 두눈에 눈물이 글썽거려라(老乡见老乡,两眼泪汪汪)》란 말이 있듯이 우리일 행은 해남도 한끝에서 동북사람을 만나니 그래도 한고향사람이라고 반가와했고 우리의 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아신도 열정적이였는데 어쩐지 그 열정은 좀 매끌어웠고 그 어떤 직업적인 세련됨이 은근히 풍겨나왔다. 비행장에 마중나와 우리일행을 뻐스에 안내한후 그는 해남도의 구체풍토에 대해 깜깜인 우리에게 먼저 이렇게 해남도를 소개했다.해남도는 4다도인데 모기와 쥐가 많고 특히 커서 주의해야 한다.빈대도 북방의 빈대보다 배나 크다.그리고 거리에는 치안이 좋지 않아 오터찌클을 타고다니는 날치기강도(小飞盗)가 많아 될수 있는한 거리로 나가지 않는것이 좋겠다.무슨변이 생기면 려행사는 책임안지기로 되여있다. 이런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슬그머니 두려움의 음영이 비낀다.그리고는 지기네려행사의 규모와 해남도가이드항업의 규범화상태를 소개하면서 가이드의 수입에 대해서도 이실직고하는데 해남도가이드의 봉급은 수수료제(佣金制)로써 유람객들이 구매한 물품의 가치에서 5프로를 때내고 또 5프로에서 1프로를 떼내여 세금으로 바친단다.그러면서 매개가이드의 정황은 인터넷에서 찾아볼수 있다며 번호표같은것과 수수료은행카드까지 보여주며 목에 걸고다닌다.그리고 원체 문명하고 착하게 보였는지라 이쯤되니 우리일행은 그를 와전히 신임하게 되며 그의 말이라면 성지처럼 곰상곰상 들으면서 코꿴송아지처럼 그만 졸졸 따라다니게 되였다.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간 첫물품구매지점은 흥륭의 커피가공공장이였다. 흥륭은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제일 많이 심는 곳인데 주은래,등소평 등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다녀간적이 있었다.우리가 간 공장은 규모가 크고 현대화설비를 갖추고있는 공장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판매마케팅이 참 묘하게  잘 짜여져 있었다. 우선은 우리에게 번호가 적힌 참관허가증을 달게 하였는데 후에 안일이지만 이번호가 있음으로 하여 유람객이 누가 데리고온 유람객인가를 가를수 있었으며 또 산물건의 가치에따라 가이드에게 수수료를 계산하여주었던것이다.그다음은 커피,야자 및 각종해남특산식품생 산현장을 참관하게 하고 또 하나하나 맛보게 하고는  슈퍼식으로 된 구매장으로 인도 한다.천평이 거의 되는 구매장에는 역시 사람들 붐이다.모두들 한꾸러미씩,지어 몇꾸 러미씩 사는 사람도 있었다.중국사람들이 원체 먹는것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는것도 있겟지만 유람을 나온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그래도 다다소소 생활여유가 있는 사람들  이라 소비의식이 자연적으로 높았다. 《우리 책이 이렇게 잘 팔렸으면 얼마나 좋겠소.》,《장사는 이렇게 되여야 한다 니깐!》모두들 거저 감탄뿐이다.생각해보시라 일년사시장철 유람객은 끊이지 않을것이고 계속 이렇게 판매가 잘될것이니 그 경제효익은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유람코스의 사이사이 우리는 선후로 진주공예회사, 옥석수정회사,해산물가공회사, 상어어간유회사,해남도의 유명한 오지산쿠딩차(五指山苦丁茶)회사 등을 걸쳤는데 두번 다시 해남도에 오는것은 요원한 일이기에 재삼의 품질보증앞에 많이들 샀다.어떤 유람객은 1만원씩 하는 보석반지까지 사는데 우리 월급쟁이들로서는 혀를 내두를 일이였다. 저녁을 먹고 해구시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다.그런데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처음인상처럼 다 못난것이 아니라 말쑥하고 곱고 잘난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우리동북사람들처럼 시원하게 생기지는 못해도 그로서의 아담하고 깜찍한 매력을 갖고있었다.보매 사람을 못나게 만드는것은 천생이 아니라 직업이고 가난인가보다. 해구시에서 손꼽히는 상업거리 명주(明珠) 광장을 돌아보고 그부근의 과일난전에서 길림에서 왔다는 서른살쯤 되여보이는 녀성을 만났는데 대화가운데서 해남도의 가이드들이 받는 수수료가 아신이 이실직고한  5프로가 아니라 보통 10프로,20프로이고 어떤것은40,50프로에 달한다는것을 알았다.우리려행단만 보더라도 매인당 천원쯤 썼으니깐3,4만원의 소비액이 나오고 그러면 며칠동안 가이드가 얻은 수수료는 우리의 몇달월급과 맞먹는 수치가 되는것이다.물론 가이드가 모두 제주머니에 넣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윤액이 엄청난것만은 사실이다.그제야 나는 가이드 아신이 우리들이 개인행동을 하는것에 무척 민감해하였는데 대해 깨도가 된듯 싶었다. 우리들의 안전 문제를 고려한것도 있겠지만 수수료의 진실이 밝혀질가봐에 하나의 원인이 있지 않았겠는가? 이튿날 아침, 우리는 아침 여덟시의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일찍 출발하여야 하였는데 며칠 고락을 나눈 가이드 아신은 오지 않고 다른 가이드가 나와서 아신은 바빠서 못오니 자신이 대신 배웅하러 왔다는것이다.그리고는 《여러분들이 해남도의 경제발전을 위해 공헌을 한데 대하여 해남성인민들과 해남성정부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깍듯이 인사도 했다. 《정말 해남도의 경제발전에 기여를 했지. 함정에 푹 빠졌다가 나왔거던.아름다운 함정에 말이요.호호호… 》우리일행 누군가의 말이였다. 정말 아신은 사무가 바빠서 안왔을까?아니면 우리들이 해구에서 돌아다닐 시간이 있으니 수수료비밀이 밝혀졌으리라 생각되여 좀 무엇해서 안나왔을까?기실은 가이 드의 엄청난 수수료비밀이 밝혀져도 우리는 접수할수 있었다.생각해보시라. 5박6일에 3,4성급호텔의 주숙에 삼시세끼를 포함하여 려행비용이 매인당 인민페로 2천4 백원!개인단독려행을 하려면 왕복비행기값도 모자란다.그러니 물건울 좀 비싸게 샀다지만 그래도 얼마나 수지맞는 려행인가! 해남도려행,그 아름다운 함정에 한번쯤은 빠져봄즉 하다. 또 독자여러분들도 생활의 여가를 짜내여 그 아름다운 함정을 한번 체험해볼것을  권고한다.그러나 진짜 사기의 함정에는 정신을 차리고 빠지지 말아야 할것이다.   록음의 나라 해남도,오늘도 꿈속에서 그 영원한 매력으로 나에게 손짓한다.      
11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4) 댓글:  조회:2544  추천:99  2007-03-25
  4.해남도의 명소들(3) 우리의 마지막 유람코스는 해남의 제일산이라는  동산령(东山岭)이란 산이다.동산령은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였지만 수려하고 웅위로와 보였다. 가이 드는《산은 높은데 있는것이 아니라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고 물은 깊은데 있는것이 아니라 룡이 있어야 령험하다 (山不在高有仙则名, 水不在深有 龙则灵)》란 성구를 쓰면서 동산령의 유명함을 우리에게 선전하기 시작했는데 해남도에 유람오는 사람치고 이곳에 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어어 이곳의 유람객은 천애해각의 두배가 된다는것이다.그것은 이곳이 동산이니 이곳에 오르면 동산 재기(东山再起)가 되기때문이란다.     우리일행을 인계받은 내부가이드는 산으로 오르며 동산령의 력사에 대해서 소개했 다. 동산령이 이름나기 시작한것은 남송때부터였다 한다.남송때 리강 (李纲)이란 사람이 항금명장인 악비를 두둔하다가 화를 입어 이곳으로 류배오게 되였는데 황제의 암매무능에 절망한 리강은 동산령(원래 이름은 필가산<笔架山))의 절에 출가하여 불문에 귀속하려 하였다.그런데 절의 주지가 그의 관상을 보고 불문의 사람이 아니고 오래지않아 동산에서 재기하여  크게 출세할것인즉 기다리라며 받아 주지 않았단다.과연 열흘째되는 날에 황제의 성지가 도착하고 그길로 조정에 입궐하여 4품 참장 (参将)으로부터 일약 일품 재상을 맡게 되였던것이다.이때로부터 동산재기 (东山再起) 라는 성구가 더 널리 쓰이게 되였다 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리강을 기념하기 위해 리강이 머물었던 그 절자리에다 다시 큰절을 지었는데 조음사(潮音寺)라 이름지었다. 조음사는 력대로 내려오며 시종 향불이 끊어지지 않고 유명하였지만 개혁개방이후 더욱 유명하게 되였는바 그것은 불교가 국교로 되고있는 태국의 유명한 활불인 승왕(僧王)이 친히 와서 개광(开光) 하였다는것이다.그 활불이 개광한 곳은 전세계적으로 세곳밖에 없는데 두곳은 태국에 있고 한곳이 바로 이 조음사란다.그리고 개광할 때는 전국가부주석 영의인 (荣毅仁)의 아들이고 중국의 으뜸갑부인 영지건(荣智键)과 전군사위원회 부주석이였던 지호전(迟浩田)상장도 참석했다는것이다.그리고 해남도는 화교가 제일 많은 곳으로써 특히 석가모니탄생일같은 때는 참배하러 오는 화교가 너무 많아 국내인들은 아예 참배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과연 명산에 명찰(名刹)이렸다.정말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곳에 왔구나하고 모두들의 마음속은 행운스러움과 경의로움으로 부풀게 되였다.     우리를 인도하는 내부가이드는 스물대여섯되여보이는 청년인데 불문에 귀의 (皈依)하여 속가제자로 된지 5년이 된다고 한다.가이드는 아주 열정적이고 진솔해보여서 불가의 제자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층계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가이드는 일찍 오기보다 면바로 와야 한다(来的早不如来的巧)고 하면서 오늘이 바로 관음보살의 탄생일(음력 2월1 9)이여서 여느때보다 사람이 많단다.올라가면서 가이드가 오른쪽으로 좀 먼곳에 개구리모양의 유명한 바위가 있다고 소개해서 바라보니 과연 앉은 개구리모양의 큰바위가 있었다.누군가 《홍루몽의 배경같다.》해서 찬찬히 보니  십여년전에 찍어 크게 인기를 누렸던 텔레비죤드라마 《홍루몽》의 자막의 바로 그 배경이 틀림없 었다.     과연 명산은 명산이렸다! 가이드는 또 올라간다음 조음사의 득도고승(得道高僧)들이 무상으로 점꽤를 해석해주고 관상,길흉화복을 보아주는데 용하다해서 감사의 뜻으로 돈을 주면은 모욕 하는것으로 되니 절대 돈을 줘서는 안된다고하면서 북경대학의 어느 교수의 례를 들어가며 신신당부를 한다.     오오 과연 인간세상의 정토(净土)로다! 조음사의 대문입구안에 들어서니 큰미륵불상이 모셔져있었는데 옆벽에는 개광때 찍은 태국의 승왕,영지건,지호전 등의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는 가치가 5억인민페가 된다는 오목(乌木)으로 조각한 18라한의 조각상이 사람들이 만져서 행운을 얻을수 있도록 맞춤하게 진렬되여있었다.     조음사안 정원에 들어서니 일요일장마당같이 붐비였는데 점괘를 뽑고 점괘해석지를 얻는 곳은 설기간 렬차출입구처럼 사람들이 땀을 철철 흘리며 밀고닥치고 하며 복새판이다.너무 밀치니 참을수 없었던지 토황색스님복을 입은 나이도 지긋하고 신분도 꽤 있어보이는 스님이 《밀치지 말어!》하고 버럭 성을 낸다.나는 득도고승이란게 어이하여 저리 참을성이 없을까 하고 좀 마뜩잖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츰 그도 아직 속세인간인데 하고 리해의 마음을 갖는다.     관상을 보고 점괘를 해석하는 곳은 옆사랑채인데  가이드가 말한 득도고승 일여 덟명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상대하여 하나하나 접대하고있었다.그런데 득도고 승들은 거의가 삼사십쯤 되여보이는 젊은 스님들이였다.내 상상속의 득도고승은 나이 도 지긋하고 은빛수염을  흩날리며 속세를 초탈한듯한 선풍도골(仙风道骨)의 모습을 한 형상이였는데 이 고승들은 옷도 암회색의 보통스님옷을 입고 기질도 뛰여난데 없는데다가 좀 경박하게 눈을 두리번거리며 때로는 녀유람객들에게 귀속말도 하고 하는것이 어쩐지 많이 실망이 갔다.하지만 원체 심히 경건한 마음을 품었던지라 부처님을 노엽힐가봐 애써 실망의 마음을 누른다.     두번째줄에 섰기에 두번째스님이 나를 보아주었는데 두루두루 좀 맞는것 같았다.밖에 향을 올리는데 가서 고향(高香)을 올린후 다시 오라해서 향을 올리는데 가니 향은 세가지 종류가 있었다.평향(平香)은 10원,중향(中香)은 100원, 고향 (高香)은 160원이란다.고향은 아무에게나 차례지는것이 아니라 했는데 내게 차려졌으니 별로 잘난것처럼 생각되며 어깨가 좀 으쓱해졌다.올라올쩍에 가이드가 향돈얘기를 피뜩 했는데 모두 재해지구에 기증한다했다.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부조한 셈치고 돈을 내고 엄지만큼 굵고 한발이나 되는 향 세대를  받은후 불을 붙이고 합례한후 향로에 꽂았다.사모무대방정을 열개쯤 한데 붙여놓은것 같은 향로에는 향들이 수수대처럼 빼곡히 꽂혀있었고 울안은 불난집처럼짙은 연기가 꽉 차서 하늘로 서서히 피여오 르고있었는데 그야말로 향불이 왕성하다(香火旺) 하겠다.     향을 파는데서 준 초대같은것을 되돌아가서 나를 보아준 스님에게 주었더니 스님은 기린이 그려진 종이장을 주면서 가서 기린을 모시면 모든일이 다 잘될거 란다.밖을 나오니 가이드가 내손의 종이장을 보고 나를 안내하여 건너사랑채로 안내 하였다.공예품같은것을 진렬해놓은 매대뒤에는 역시 속가제자인듯한 녀성이 여럿 서있었는데 종이장을 건네주라해서 건네주니 나무기린이 없어서 금기린을 주니 사백오십원을 내란다!또 돈을 내라다니.나는 속이 좀 섬뜩하였다.사기의 함정으로  빠져드는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피뜩 뇌리를 쳤다.또 이곳은 마지막 코스라 가져온 돈도 다 써가고있었던것이다.내가 좀 주춤하니 《잃는것이 없으면 얻는것도 없습니다! (不失则不得)》하고 그 녀자가 말했다.내가 어색해하며 정말 없다고 하자 그럼 나무기린을 줄태니 2백원을 내란다.금방 나무기린이 없다고 해놓고는 나무기린을 주겠단다.(줄가?어쩔가?)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 없다고 했다.《불가는 거짓말을 안합니다!(佛家不讲谎言)》하고 그 녀자는 좋지 않아하며 매섭게 쐐기를 박는다.나는 속이 뜨끔했다.기실 내호주머니를 다 털면 2백원은 있었던것이다.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견결히 없다고 했다.그러자 그녀인은 그러면 나가라 하는것이였다.나오며 보니 집안에는 적지 않은 유람객들이 있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속이 좀 찜찜했다.내가 정말 대자대비한 부처님에 대해 성의가 모자라지않나 하고 량심적 가책도 느껴본다.     사람들은 계속 밀고닥치며 점괘를 뽑았고 득도고승들앞에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의 대오는 줄어들줄 몰랐다.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좀 후회되는 마음도 들었다.두번 다시 오기 어려운 이 유명한 곳에 와서 불사(佛事)를 끝맸지 못했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운가.하지만 나의 불교에 대한 인식으로 이곳의 소행들을  검토해보면은 이곳의 모든것이 군생을 제도하는 불교의 본의와는 어긋나게 순전히 돈벌이를 위해 돌아가는 사기극이 아니냐하는 생각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불교에 대해 좀 말해보자. 불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인도에서 산생되였는데 그 창시자는 고다마 싯다르타(각자(觉者),성자라는 뜻에서 존칭으로 석가모니 <释迦牟 尼>라 부름)이다.그는 원래 인도의 왕자인데 이세상의 군생들을 륙도륜회(六道 轮回)의 고난에서 영원히 해탈시키기 위해 결연히 부귀향락의 생활을 버리고 왕국을 떠나  수년을 갖은 고생을 겪으며 탐색하며 수련하다가 보제수(菩提树)아래 칠칠사십구일을 좌선한후 크게 깨달아(大彻大悟) 즉석에서 부처가 되고 그법을 세상에 널리 전수하기 시작했던것이다.수련방법은 계(戒)를 행위규칙으로 삼고 집착심을 버리며 공의 마음으로 층차를 제고하여 우선 자신이 정과(正果)를 얻고 그다음 군생들을 제도하는것이다.때문에 수련자에게 있어서는 몸가릴 옷만 있으면 되였고 굶주림을 달랠 동냥밥만 있으면 족했다.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나 명리같은것은  분토같은것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이 동산령의 조음사는 어떠한가?마치 돈찍는 공장같이 돌아가고있지 않는가? 스님들은 모두 돈찍는  공정사가 되여서말이다.따져보라.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이 하루에 6,7 만에 이른다. 그 사람들이 거의 이 동산령에 올것이고 또 부자들이나 돈있는 화교들은 가난한 선비인 나처럼 째째하게 놀지 않을것인즉 그 향돈만해도 어마어마한 천문수치가 되는것이다.정말 그들의 말처럼 모은 돈을 자선사업에 쓰는지?듣자니 요즘 어떤 스님들은 벤츠를 타고 오성급호텔에 들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대부자라는데 이 동산령의 스님들이 그 부류에 속하는 스님들이 아닌지?     에라,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렸다.덕(德)과 업(业)은 쌓은대로 갈것인즉 구중천에 계시는 부처님께서 속속들이 내려다보시고 옳고그름을 낱낱이 가리시겠지.     차에 앉아 떠나며 동산령을 되돌아보니 유람객들은 끈임없이 개미떼처럼 올라가 고있었고 조음사에서 피여오르는 향불의 연기는 하늘을 태울듯 뭉게뭉게 타래쳐 오르고있었다.
10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3) 댓글:  조회:2748  추천:121  2007-03-24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                                                 류대식3.해남도의 명소들(2)   이튿날의 첫려행코스는 유명한 원숭이섬(猴岛)에 가는것이데 아세아에서 제일 길다는 공중삭도를 타고 해협을 지나야 했다.공주삭도에 앉아가면서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옹기종기 모여있는 해상어가(海上渔家)는 한폭의 그림같이 안겨왔고 눈을 들어 일망무제하게 끝없는 푸른바다를 바라보노라니 왕지환 (王之焕)의 시《관작루에 올라(登鹳雀楼)》의 《눈뿌리 아프도록  천리를 보자면 한다락 더높이 올라야 하리라(欲穷千里目,更上一层楼)》라는 시구의 진정한 경지를 깊이 터득하게 된다. 섬에 오르니 그야말로 원숭이왕국이였다.길이나 나무나 원숭이들이 욱실거렸는데 제세상이라고 거드름까지 피우는것이 사람들이 오히려 원숭들이의 눈치를 슬슬 봐가며 행해야 했다.섬에는 야생원숭이가 천여마리가 살고있는데 스물하나의 무리집단을 이루고 원숭이왕도 있고 그로서의 사회,생활질서도 있다는 것이였다. 언젠가 텔레비죤에서 원숭이섬의 원숭이들의 생활을 찍은 프로를 본것이 생각 키웠다.그중 인상깊은것은 원숭이왕 왕위쟁탈전이였는데 그야말로 너 죽느냐 나 사느냐의 싸움이였다.한산에 두 호랑이가 있을수 없다더니 한산에 두 원숭이왕도 있을수 없나보다.결과 패자는 원래의 왕이였는데 승패가 갈라지자 패자는 뭇원숭 이들의 공격대상이 되여 맞고 찢기우고 몰리우고하여 결국 물에 빠져죽고만다. 그러자 뭇원숭이들은 새왕을 옹위하여 소리를 지르고 뛰고 하며 자기식으로 새왕의 탄생을 《경축》하는것이였다.하지만 유독 원숭이왕후만은 그래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원원숭이왕의 시체를 건져놓고 애처롭게 우는것이 보는이들의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배신과 몰인정, 정의(情义)가 뒤엉킨것은 인간세상이나 동물세계나 대개는 비슷했다.    그다음 려행코스는 려족(黎族),묘족(苗族)의 민속촌을 구경하는것이였다.입구대 문으로 들어가 숲이 우거진 민속촌구역에 들어서니 십여명의 묘령의 려족처녀들이 줄러러니 나와서 엄지손톱만큼한 술잔에 담긴 당지소주를 권하며 결혼하지 않겠 는가고 열정적으로 물어온다.그들이 말하는 결혼이란 진짜결혼인것이 아니라 남성 유람객이 신랑이 되고 려족처녀가 신부가되여 려족전통혼례과정을 체험하는 것인데 한시간쯤의 소요시간에 신혼방으로 들어가는것으로 끝이다.비용은 매인당 오십원. 모든것이 다 상품화되고있는것이다.    우리일행은 모두 거부하고 계속 앞으로 좀 가니 길옆 려족전통귀틀집에서 십여명의 남성유람객들이 옆에 한사람씩 려족처녀들을 앉히고 한창 결혼식을 하고있었다. 둘러앉은 상우에는 과일,땅콩같은 음식이 간단히 차려져있었고 텔레비 죤에서 보던그대로 려족처녀들이 우리로서는 알아듣지못할 려족사랑노래같은것을 성수나게 부르고있었다.좀 어색한 기분이 없지 않았지만 로련한 려족처녀들이 잘 이끌어나가는듯한 분위기였다.    그곳을 지나 좀가니 길옆 의자옆에 려족인지 묘족인지 민족옷차림을 곱게 하고 역시 코등이 꺼져들어가고 코구멍이 하늘로 향한,그러나 눈이 별같이 빛나는 어여쁜 아가씨 몇이 서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자 두아가씨가 슬그머니 내곁에 다가와 각각 나의 한쪽팔을 꽉 끼여잡고 사진을 찍자며 의자로 마구 잡아끌어 앉힌다. 싫다며 몸을 빼려했지만 다가붙어 딱 잡고 놓지 않는 사이에 팍!팍! 사진사는 사진을 막 찍어댄다.또 한아가씨는 막 달아나는 유람객의 뒤허리띠를 딱 잡고 잡아끌어 역시 사진을 찍히고말았다.좀 반강제적이였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못이기는척하며 흡족하 게들 찍었다.사진을 찍는데 한아가씨당 5원이라니 접수할수 있는 가격이였다.    첫고비를 넘어 좀가니 이번에는 대여섯살되였을가 빨간색의 민족옷차림을 한 인형같이 생긴 쌍둥이가 또 사진을 찍자고 매달린다.얼마나 세련되였는지 거절하기 어렵게 딱 잡고 놓칠않는다.아이들은 한사람당 2원이라니깐 그까짓 2원쯤이야 하고 두아이를 무릅에 하나씩 앉히고 실물소를 메운 소수레옆에 앉았더니 엄마인듯한 녀자가 다가와 빨간색 민족양식 쟈케트를 입혀주고 빨간모자까지  씌워주는데 써비스는 좋구나하고 흡족하게 생각되였다.사진을 찍은다음 두아이니깐 4원을 주었더니 새물새물 웃으며 복장값 5원을 합해서 9원을 내란다.잔돈이 없어서 10원짜리를 주었더니 자기도 잔돈이 없다며 나머지 1원은 줄렴 안한다.나는 좀 어이없어서 웃으며 없으면 관두라고 지나쳤지만 어떤사람들은 소행이 괘씸한지 기어코 1원을 받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다음은 려족,묘족의 전통가옥인 다락집같은것이 있었는데 돈도 받고 별로 볼것이 없는것 같아서 구경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곳에서 좀더 가니 꽤 큰 시장이 벌려져 있었는데 민족가무공연과 옷,장식품파는것이 한데 어우러져 꽤나 흥성거렸다.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열대식물,섬,해양동물 같은 도안이 화려하게 찍힌 시원한 도복(岛服)들을 샀다.    그다음 우리가 간곳은 열대식물원이였다.이곳에서는 열대에서 자라는 식물 이4천여가지가 있는데 우라나라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종이 거의 다 있는 셈이다.우리가 익숙한 바나나나무,파이내플,커피나무,고무나무,후추… 텔레비죤에 서만 보아오던 식물들을 모두 실눈으로 볼수 있었다.어떤 식물은 동북의 실내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고있는것들인데 같은 식물이라도 이곳의 식물들은 기를 쫙쫙 펴고 생기있게 자라고있는것이 파리리한 동북실내 분재열대식물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자유란 식물한테도 통하는 정신생활인가보다.    그 다음날 려행코스는 삼아의 해변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것이였다.해남도에서 해구다음으로 두번째로 가고 50만 인구를 소유하고있는 삼아는 신흥의 도시라 새로 지은 건축들은 현대식으로 깔끔했고 세계제2에 손색없게 공기는 메였던 코도 활 열리게 깨끗했다. 우리가 삼아만 해변가에 갔을 때는 벌써 사람들이 차고넘쳐있 었다.파도가 쳐서인지 사람이 많아서인지 해변가의 물은 많이 흐려져있었는데 그래 도 사람들은 좋다고 구명대를 빌려끼고 개발헤염을 치고 물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하는것이 여간 즐거운 모습들이 아니였다.보매 거의가 바다에 굶주린 륙지사람 (旱鸭子) 들이였다.    그다음으로 간 해변가는 동방의 하와이(夏威夷)로 불리우는 아룡만(亚龙湾)해수 욕장이였는데 환경과 시설이 여느곳보다 좋았고 바다물도 다른곳보다 깨끗했 다.부드러운 석양을 맞받아 마가을의 해당과처럼 사박사박하게 부드러운 백사장을 맨발로 걸닐며서 확 트인 먼바다로부터  쏴- 소리치며 철석철석 몰려드는 집체같은 파도를 보노라면  마음과 령혼은 저도모르게 말끔히 세척된다. 동방의 하와이라는 그 칭호에 걸맞게 아름다운 곳이였다.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는 또 해남도에서 제일 좋다는 골프장도 있단다.특히 이곳은 설모테가 되면은 북방의 돈있는 사람들이 우선 선호하는 곳으로써 보통 호텔방값이 하루에 몇천원씩 한다고 한다.못사는 사람들은 밥도 겨우 먹는데 잘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남들의 일년 지어 수년의 수입을 쓰며 인생을 즐긴다.《그렇다.인생은 바로 그렇게 불공평한것이다.》란 어느 명인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다.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외국인 유람 객도 더러 눈에 띄웠다    그다음으로 간 해변가는 우리나라의 제일 남단인 유명한 천애해각 (天涯海角) 이다. 천애해각으로 가면서 우리는 《세계아가씨선발대회》의 지점인 《미의 계관(美丽之冠)》 을 보게 되였는데 국제수준급이 되게 독특하고 호화롭게 잘지은 건축물이였다. 우리는 또 나이든 분들은 다 아는 유명한 홍색랑자군(红色娘子军)의 조각상도 지나가며 보았다. 하지만 높이가 3.7메터에 둘레가 6.8메터되는 조각상은 《미의 계관》에 비하면 많이 초라하였다.지난날 중국에서 제일 용감한 녀인들이 짚신을 신고 죽립을 쓰고 피를 흘리며 목숨받쳐 싸운 이땅에 오늘은 세계의 미녀들이 초사치의 패션을 입고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아름다움을 비기고있다. 이것이 바로 전쟁과 평화의 차이인가?어쨌든 해남도는 녀인들로 유명한것만은 사 실이다.    처애해각도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붐비였다.몇만년전에 화산이 폭발하며 형성되였다는 해변가는 집체같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는데 오랜세월의 바람 과 비에 할퀴워서 바위돌들은 일매지게 밋밋하고 둥그스럼한 모양을 하고있었 다.그중 가장 큰 두바위에는 천애(天涯)와 해각(海角)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씌여져있었고 바위주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자기 차례를 기다리 고있었다.그런데 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은 이곳에는 꽤나 급있는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는것이다.그것은 이곳은 대륙의 끝인데 끝이라는 그 의미가 벼슬길의 끝을 유발하지 않나하는 위구심에서이란다.    다 그땅 그 바다련만은 최남단의 땅과 바다라는 그 미묘한 매력에 사람들은 물장구를 치며 물보라를  맞으며 생명의 한순간을 즐기고있었다.허위와 가식의 면구를 벗어버리고  이것저것에 구애됨이 없는 삶,아마도 이것이 바로 서민들만이 특유하는 자유와 락인가보다.  
9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2) 댓글:  조회:2351  추천:95  2007-03-21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                                                                류대식2.해남도의 명소들(1)      3성급호텔에서 해남도의 첫날밤을 편안히 자고 이튿날아침 간단한 식사를 한후 우리일행은 전용뻐스에 실려 유람의 첫코스인 유명한《박오아세아론단 (博鳌亚洲论 坛》의 회의지점인 박오(博鳌)로 향했다. 해년마다 진행되는《박오아세아론단》은 아세아의 구역적협력을  가강하고 아세아와 세계와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국제 성적인 회의이다.    차창너머로 우리는 무르익고있는 한여름의 풍경을 만끽할수 있었다.길량옆에는 줄기가 미츨하고 머리부분에서 한발씩이나 되는 잎사귀들이 아래로 처진 야자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있었는데 나무마다 아기골만한 야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이곳의 야자는 사시장철 달리고 여무는데 동북의 감자보다 더 흔한것이 야자란다.     가는 도중 해구의 인물명소인《오공사(五公祠)》를 지나게 되였는데 려행코스에 없었으므로 가이드는 간단히 소개했다.오공사란 당,송 때 해남도로 적강되여와 해남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당나라 명상(名相)인 리덕유(李德裕),송나라 명상들인 리강 (李纲), 리광(李光),조정(赵鼎),명신(名臣) 호전(胡诠) 을 기리여 지은 사당인것이다. 또 해남도의 인물명소로는 명나라때의 청관 해청천(海青天)으로 불리우는 해서(海瑞)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해서는 해남도가 고향인 사람이다.역시 우리의 려행코스에 없었으므로 갈수가 없었다.    가는 도중 우리 시야에 안겨오는 해구의 건축물들은 원래의 상상과는 많은 거리를 갖고있었는데 160만의 인구에 성소재치고는 규모가 좀 작았고 어순선한데가 많았다.해남제도는 원래 광동성에 소속되여있다가 1988년에 해남성으로 부상되였는바 1990년대초 대폭적인 도시건설중 포말경제로 하여 건축업에서 나라에서 몇백억의 손실을 입었고 그래서 이만큼의 회복도 요근년의 일로 쉽지가 않았다고 가이드가 소개했다.그리고 관광유람도 해구로부터 삼아에 이르는 동부해안선에 치중되고있는데 중부와 서부는 한창 개발중이란다.    도시를 벗어나자 한여름의 대자연이 시야에 안겨왔다.길옆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만발하였고 유유한 산들은 울창하지는 않았지만 푸르싱싱한 열대나무들로 뒤덮 혀있었다.더우기 우리에게 신기하게 안겨오는것은 전야의 풍경이였다. 한쪽에서 한창 벼모를 꽂고있는데 한쪽에서는 다 여문 곡식을 가을하고있는것이다.보통 일년에 삼모작을 한다한다.그야말로 사시장철 여름이고 여름속에 봄과 가을이 엇섞인 록색의 왕국,록음의 나라였다.    그리고 해남도는 한국의 제주도처럼 바같일은 대부분이 녀성들이 한다는데 남성 들은 집에서 아이나보고 일이 없으면 차집에 나가 차나 마시며 소일한다고 가이드는 소개했다.그렇다고 여기고 눈여겨보니 과연 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에 얇은 수건을 두른 녀인네들이였다.   《…보십시오. 모든 남성분들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어려있습니다.해남도에 와서 살고싶지요?》    가이드가 묻자 《예!》하고 모든 남성분들은 약속이나 한듯 일치하게 대답했다.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했다.정차장에는 벌써 몇십대의 관광뻐스가 와있었고 해변가는 유람객들로 붐비였다.매년 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은 인차수로 2천만이 된다는데 해남성 인구의 두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자이다.그러니 유람업에 힘입는 경제효익도 가히 짐작할수가 있었다.    박오는 만천(万泉),룡곤(龙滚),구곡(九曲) 세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입구로써 물속에 섬이 있고 섬속에 물이 있는 기묘한 조합의 명승으로 이름이 높다.푸른바다를 마주 하고 야자나무에 둘러쌓인 《박오아세아론단》의 주회장이 멀리서 보였다. 깔끔 한 현대식풍격이 주체가 되고 중국고전풍격이 이곳저곳에 슴베인 그리 높지 않은 아 담고 매력적인 건축물들이였다. 《생각하던것보다는  못하지. 텔레비죤에서는 또 얼마나 멋있소.!》    누군가 조금은 실망이 담긴 말이였다.다 사람이 사는 곳인것만큼 아무리 명소라도 상상속의 세계보다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나는 몇번의 경험으로 명승에 림하여 현실적인 마음자세를 갖추고있기때문에 모든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될수가 있었다.    우리는 바다가로 갔다.구수하고 시큰한 바다냄새가 페부를 시훤히 가셨고 춤추듯 넘실대는 푸른바다는 모든 사람의 시야를 신선하게 자극했다.아,몇년만에 오는 바다였던가?그렇다,십년전 북대하에서 첫바다를 본이후 나는 다시는 이 아름다운 바다와는 연분이 없을번 했다.그런데 이렇게 또 다시 바다와 만나게 되였으니 나의 마음은 저도몰래 격동되며 가슴과 눈굽이 찡— 해난다.인생은 무상한 법,살아있다는 그자체만으로 얼마나 행복스러운가를 가슴 뿌듯이 느끼는 순간이다.    걷어올린 다리를 시원히 만져주는 밀물썰물, 사람들은 물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고하며 려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있었다. 유람객들 사이로 조개껍질공예 품,진주 목걸이 같은 것들을 들고 사라고 지꿎게 따라다니는 당지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였 는데 모두가 키가 작고 여위고 가맣고 동글납작한 얼굴에 코등이 푹 꺼져들어가고 코구멍은 하늘로 벌름 쳐든것이 못나보였다.한 당지남자가 조선솟뚜껑만한 거부기를 안고있기에 희안해서 만졌더니 우호적으로 넘겨주며 일없다고 사진을 찍으란다. 그래서 우리일행 몇이 너도나도 거부기를 안고 사진을 찍었는데 다 찍고나니 매인당 5원씩 내란다. 《공짜가 없구만!》   우리 모두 마주들 웃고는 돈을 주었다. 《박오아세아론단》주회장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는 만천하(万泉河)가 에돌아흐르 고있었는데 중국의 유명한 남고음가수 리싸강(李双江)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그《나는 오지산을 사랑하고,나는 만천하를 사랑하네(我爱五指山,我爱万泉河)》의 만천하이다.우리 려행코스속에는 만천하의 참대뗴목놀이가 있었다.   강은 꽤나 넓었고 물은 푸르고 깨끗하였고 깊어보였다.떼목 한척에 여덥명씩 구명의를 입고 타는데 7,8척이 하나의 그루빠가 되여 똑딱선이 앞에서 끌었다.떼목에 시름놓고앉아 푸르른 물과 수풀이 우거진 량안의 풍경을 번갈아보며 선선하고 아늑한 기분속에 잠겨있노라면 이것이 신선노름이 아니냐하는 초탈의 유아무아경 지속에 빠져 들어가며 첨벙!개구리처럼 물속을 뛰여들고픈 충동을 느낀다.오고가는 떼목우의 유람객들은 스쳐지나갈때면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이곳의 관습대로 우호 적으로 서로 물을 치고 물총을 쏘고하며 웃고떠드는데 꽤나 즐겁고 화락한 분위기가 강심에 넘쳤다.    지정코스를 따라 한바퀴 돌고오면 사람들의 옷은 거의 물에 젖게 된다. 《보십시오..해남도려행 첫날에 벌써 지키지 못하고 정조를 잃었 (湿身→失身) 습니다.》     가이드가 또 우스개를 해서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그날저녁은 흥륭(兴隆)이란 자그만한 진의 금엽(金叶)대주점에서 묵게 되였는데 금방 지은 호텔이라서 4성급에 걸맞게 호화롭고 환경 또한 좋았다.려행사에서는 해남도에 유람온 유람객들을 거의 흥륭에 하루 묵도록 안배하는데 그 리유인즉 이곳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허가한 태국(泰国)의 국수(国粹)라는 인요(人妖)공연이 있기때문이 란다.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은 대부분이 국내손님인데 그것은 세계적으로 열대지방의 유람지가 많고많아서 다른곳에 비하면 해남도는 아직 시설,써비스 등 제면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외국손님들이 아주 적다는것이다.그래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중의 하나가 바로 인요공연을 허가하고있다는것이다.    인요들은 주로 태국에서 물색해온다 한다.국내의 많은 사람들의 인요에 대한 인식은 중성인이다,변성인이다라는 정도에 그치고있는데 인요는 태국에서는 주류사회에는 못들어가 있지만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접수되고있는 부류인바 그 이름도 우리가 부르고있는 좀 모욕적인 색채를 띠는 인요라 하지 않고 홍예 인(红艺人),람예인(蓝艺人) 혹은 귀염둥이(小可爱)라고 한다 한다. 그만큼 인요들의 아릿다움은 남성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녀성들이 스스로 무색해할 정도란다.또 태국에서는 해마다 인요미인선발대회도 있단다.지금 태국의 인요수는 상당한바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20세기 90년대말에 그수가 이미 2만이 된다고 한다.태국의 인요는 대개 두가지부류로 나눌수 있는데 한부류는 군대,경찰을 위주로한 중산 층가정의 남자애들이 어머니와 많이 있게 되여 기질이 녀성쪽으로 기울어지며서 인요가 되고싶어 되는것이고 한부류는 가정이 가난하여 가정을 먹여살리기 위해 인요로 되는것인데  어려서부터 전문학교에 들어가 정규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받고 일단 기예가 뛰여나서 인기를 누리기만 하면 한사람이 온집식구를 잘살게 할수 있다는것이다.하지만 인요들이 원래는 남성인데 변성을 위하여 녀성호르몬을 주입받으며 변태적으로 녀성화 되는것이기에 자식이 있을수 없고 또 대대부분이 수명이 짧아 사십중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듣고보니 좀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세상이 넓다보니 별난일이 다 있는것이다. 호기심 많은 몇사람이 구경울 가고 대부분은 힘든지라 일찍이들 쉬였다.나는 몇년전에 대련에서 피뜩 본적이 있는지라 가지 않았다.  어둠이 어슬어슬 깃들자 사람들 자취도 드물어졌다.문득 침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이상하다 하며 문을 열고보니 화장을 짙게 한 아가씨가 안마를 받지 않겠는가고 물어왔다.낮에 차에서 가이드가 저녁이면 안마아가씨들이 돌아다닐것인데 명색은 안마지만 들여놓으면 색정봉사로 유인하기에 알아서 처리하라고 귀띰을 주어서 두말없이 거절하고 문을 닫아버렸다.보매 색정봉사가 반공개화되고있는것 같았다.    열어논 창문으로 시원한 해풍과 함께 듣기좋은 풀벌래의 울음소리가 멀지 않은 다른 호텔에서 나는 흥겨운 음악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들려왔다.속담에 《30년 하동이고 30년 하서이다(三十年河东,三十年河西) 》 더니 본세기 50,60에는 남방의 사람들,바다가의 사람들이 흑토(黑土地)를 찾아 《촹꽌둥(闯关东)》으로 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밀물처럼 밀려들던것이 지금에 와서는 동북의 사람들이 반대로 남방으로 해변가로  밀물처럼 쓸어들고있는것이다.세상이 돌아가는 주기가 대개 이러할진데 30년후에 우리 흑룡강,동북은 무엇으로  열점이 되여 재다시 호황을 누릴까?경제로는 남방을 릉가하기 어렵고,그렇다면 자연환경,기후,인구밀도?깊이 생각해볼 큰 문제다.    줄기차게 흥성발전할 해남도의 래일을 암시나하는듯 멀지 않은 호텔에서 나는 흥겨운 음악소리는 밤의 정적을 휘젓으며 장밤 그치지 않았다.  
8    [기행수필]록음의 나라 해남도(1) 댓글:  조회:2296  추천:110  2007-03-19
 기행수필 록음의 나라 해남도(1) 류대식 1.출발 새벽 3시 정각, 우리일행 39명을 실은 뻐스는 목단강에서 출발하여 어둠을 헤가르며 할빈비행장으로 향했다.우리의 해남도려행은 이렇게 서막을 열었다. 느릿느릿 한참 에돌아 본활주로에 들어선 비행기가 넓뛰기를 뛰는 선수처럼 갑자기 용을 쓰며 맵다 달리다가 리륙하여 울렁울렁 고도를 높이자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아이구머니, 속이 다 뒤집힌다.호호호…》하며 행복스런 비명들을 뽑았다.많은 사람들 이 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우리가 북경비행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한시쯤이였는데 려행사의 뻐스가 마중나와 비행장부근의 호텔로 안내하여  휴식하게 하였다. 해구행 비행기는 저녁 일곱시라 장장 여섯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릴수 없었던것이다.보매  려행사들 사이에 합작이 잘되여 주도면밀게 돌아가는것 같았다. 어둠의 밤하늘을 날아예는 북경-해구행 비행기에서 내다보이는건 오직 검푸른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이였다.비행기에서 내다보는 밤하늘은 너무도 맑았고 총총 별들은 너무도 또렷했는데 어떤 별들은 반디불처럼 살아숨쉬듯 명멸하였고 어떤별들은 조금만 더 가까이하면 당금이라도 손에 잡힐듯 저만치에서 가물거린다. 한분을 내놓고 나머지분들은 해남도행이 처음인지라 모두들의 마음은 부풀어있었다.텔레비죤에서만 보아오던 해남도의 푸른바다, 설레이는 야자숲,백사장…상상속의 해남도는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기만하다. 우리가 해구의 미란(美兰)국제비행자에 도착했을때는 밤 11시가 거의 되였다.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첫느낌은 더위와 습기였다.3월중순이라 초봄이라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흑룡강은 밤에는 기온이 령하 십여도씩 내려가고 때로는 눈꽃이 흩날리고 찬바람이 몰아치는것이 겨울이나 다를배 없는데 이곳은 잔디가 푸르싱싱하고 독오른 록음이 한창 짙게 우거져있고 열기가 땀을 짜며 피부를 핧는것이 완연 한여름의 풍경이였다. 개찰구로 나가자 미리 련계가 다된 해남도의 강홍(康弘)려행사의 가이드가 마중 나와있었고 우리일행을 고급관광뻐스로 안내하였다. 《여러분, 려로에 수고가 많았습니다.저는 우선 우리려행사를 대표하여 여러분들이 조국의 최남단 해남도에 오신것을 열열히 환영합니다!》   모두들 피곤한지 맥빠진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띄염띄염 났다. 《여러분들이 려로에 피곤하실텐데도 이렇게 열열한 박수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 다.흑룡강은 아직도 털내의를 입는다고요?려로에서 여러분들은 기온의 변화에 따라 한벌한벌 벗으며 왔습니다.이제 호텔에 도착하면 마음대로 시원히 벗어도 됩니다.하지만 벗을것은 벗고 벗지 말아야 할것은 벗지 말아주십시오....》 가이드는 언변이 좋고 유모아적이여서 차안은 인츰 화애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가이드는 키꼴이 훤칠하고 눈이 크고 꽤나 잘생긴 서른살쯤 되여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은 해볕에 그을러서인지 검실검실했는데 착해보였다.말투가 표준어여서 고향을 물어보니 길림이란다.다 동북사람이니 한고향사람-로썅(老乡)이 된다. 성은 소(肖)가이고 당지의 습관대로 마지막 이름자에 아(阿)자를  붙여 아신(阿辛) 이라 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해남도에서는 이름의 끝자앞에 모두 아(阿)자를 붙여부르는데 남자는 아꺼(阿哥)로 부르고 녀자는 아매이(阿妹)가 되는것이다. 가이드는 해남성의 정황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해남성은 중국의 최남쪽에 위치 해있고 년평균기온이 23.8도의 열대계절풍기후에 령역은 해남도, 중사, 서사, 남사군도가 포괄되는데 해역면적이 200여평방키로메터로 전국해역면적의 삼분의 이를 점한다.그중에서 해남도가 주체고 면적이 3.4만평방키로메터로써(대개 한국의 삼분의 일) 인구는 803만,한족,려족(黎族),묘족(苗族),회족(回族)등 민족이 살고있다.4200여종의 식물이 있고 살림피복률은 53.3퍼센트,우리나라 최대의 야자,후추,커피생산지로써 풍부한 광산도 매장되여있단다.세계환경보호기구에서 최근에 공포한 전지구 10개의 공기질이 제일 좋은 도시중 중국이 두개를 점하고있는데 모두 해남도에 있는 삼아(三亚)와 해구이다.삼아가 쿠바의 하와나를 이어 두번째고 해구가 다섯번째에 뽑혔다. (계속)  
7    [평론]우리 소설문학의 새로운 양상 댓글:  조회:2115  추천:98  2007-03-19
                                      우리소설문학의 새로운 양상                       ‐《2005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의 단편을 두고                                                            류대식 2006년도부터 해마다 한권씩 전해의 우리문단을 점검하는 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 품집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묶어내기로 하여 일목료연하게 우리조선족문학의 흐름을 볼수있게 되였다. 본지에서는 2005년도 중국조선족우수문학작품집에 실린 몇 편의 단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단편이 모두 5다섯편 선정되였데 그중4편이 녀성 작가의 작품이라는데는 녀성문학의 궐기라는 말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마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4편의 녀성작가의 작품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째,박옥남의 《둥지》를 보기로 하자. 사실주의수법으로 일인칭의 어린이 시각 으로 현재 우리농촌의 실상을 묘사하고있는 이 소설은 현재 우리농촌사회의 축도라고 할수있겠다.일방이 한국진출로 인한 단란했던 가정의 파탄상,도시진출과 저출산으로 인한 조선족농촌교육의 쇄락상,한족들에게 조선족농촌의 전통기반이 야금야금 잠식되여가는 현황… 우리농촌의 피페상이 한눈에 안겨온다.가정은 파탄되고 부모는 돈을 위하여 자식곁을 떠나고 성장의 터전인 학교마저 한족들에게 팔리여 양우리로 변하여 버렸으니 둥지 잃은 아이들은 어떻게 하여야하며   전통적 삶의 기반이 허물 어져가는 조선족사회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깊은 사색의 질문을 던져주는 소설이다.15,16년전 둥지와 비슷한 풍격의,연변일보제일당대상을 안은 김명윤의 《민들레동산》이 바야흐로 향상하는 조선족농촌교육의 상황과 활기로 넘치는 밝은 조선족농촌사회의 생활상을 그렸는데 겨우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조선족사회는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또 얼마나 심각한 진통을 겪고있는가?단편이란 작은 편폭에 이처럼 다면적인 내용과 심각한 주제를 담고있다는 그자체부터 이소설의 성공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면서도 짙은 우환의식속에 꾸지람도 아끼지 않고 남의 일손도 잘돕는 칠성이 할머니의 존재, 긍정인물은 아니지만 수완과 능력이 있어서 남 다 떠나는 농촌에 덩실하게 기와집 짓고 잘사는 지부서기‐야림이 아버지,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밝은 심성 등은 비애만이 아닌 우리 조선족사회와 조선족농촌의 밝은 미래의 가능성도 제시해준다.    무었을 썼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썼냐도  중요한바 이소설의 성공은 공명을 일으키는 예술적기법도 묵과할수 없다.우선 소설의 언어풍격은 전통적인 조선언어의 구수한 흐름이지만 표현이 순후하고 류창하면서도 생신한 언어사용으로 하여 사뭇 열독의 열의를 뚱겨주고 미감을 느끼게 한다.《풀방구리에 쥐드나들듯》,《허리를 갑삭거리다》,《꼴깍 잠이 들다》,《물뿌린듯 잠누룩하다》,《슬픔을 그들먹 채워놓다》,《발기발기 찢어놓기 시작하다》,《검은 흙이 굴뱀처럼 꿈틀굼틀 뒤집혀올랐다》,《오밀조밀 부탁도 많다》,《볶은 머리》,《눈가를 찔금찔금 문지르다》,《미꾸라지가 박신거리다》,《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자냥스럽게 들려오다》… 등등의 구체적인 언어사용에서 표현되고있다.그리고 향토냄새가 짙게 풍기는 방언의 사용은 소설의 사실주의 맛을 짙게 해주었다.다음으로 소설은 이야기전개에서 몬따쥬식의 표현수법도 쓰면서 스케치식 묘사를 하고있는데 일정한 거리감을 산생시키며 소박한 모호성의 미감을 불러일으키고있다.소설은 이야기전개에서 적당히 절제하였고 주요인물에 대한 외모나 심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고 있다해도 《짱짱한 편》,《군밤둥구리같은 어뎅이》 등 같이 간단하고 응집된 언어로 개성을 표현할뿐인데,그리하여 소설속의 인물들에서 현실속의 수많은 류사한 사건과 인물들을 상상하고 겹쳐놓을수 있는 보다 큰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이야기구성에서 도식화경향도 보이지만 요근년에 보기드문 사실주의문학의 수작임은 틀림없다. 그다음은 허련순의 《그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를 말해보자. 《그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는 둥지와 완전히 다른 풍격의 소설로 생활의 론리를 떠나서 작품자체의 론리에 의하여 질서가 이루어지는 소설이다.소설의 녀인은 온순이라는 고양이같이 생겼고 고양이같이 행동하며 서른이 되도록 셈 셋도 못세는 백치인 딸과 일상을 살아간다.물론 행복한 일상은 아니다.아니,괴롭고 고통스런 일상이라 해야 적절할것이다.《서로 할말도 없고 늘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지난 삶과 악몽이 수시로 떠오르게 하는 존재가 되여》 살아가며 그래서 《딸이 영 집을 나가기를 바랄 때도 있었고 버릴려고도 생각해보았지만  자신의 손으로는 버릴수 없었고 누가 버려주던지 아니면 스스로 없어주었으면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그래서 《두사람은 그렇게 서로 섞이고싶은 사람들이였지만 누구의 잘못도 없는데 이몸과 이가 들뜨듯이 무엇도 씹기 괴로운 사이였고 서로를 서서히 질식시켜가고 망가지게 하고있는 악의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누구의 잘못도 없는걸가?그런것도 아니다.고양이와 심통한 아이를 낳게된 경위부터 살펴보자. 녀인은 열여섯살부터 신열이 나고 신다리 안쪽이 부어곪아터지는 이름모를 병을 알았는데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큰병원에 가지 못하고 민간처방대로 허연 두꺼비,말린 두꺼비,지렁이,노래끼 그리고 고양이까지 닥치는대로 먹는다.비극은 고양이를  먹은데서부터 시작되였다. 사람들 관념속의 고양이는 령물스런 존재로 사람의 귀여움을 받으며 함께 살아왔고 어떤민족들에게는 토템적으로 받들리우고 신성시되기도 하는  동물이다.그래서 고양이를 잘못다치면 화를 입는다는 민간설들이 있다.그래서인가 《녀인은 가끔씩 이미 씹어서 소화가 된 고양이살점들이 짝짓기를 하여서는 몸속에 뛰여나와 자신의 목을 물어뜯는 환각에 시달리기도 하고》 후에는 《아버지의 망치에 맞은 고양이가 머리에 선지피를 철철 흘리면서 찾아와서 목을 물어뜯는 환각》으로 《거의 밤마다 환각으로 헛소리를 질러 집식구들을 깨워놓는 사단을 일으켰다.》불행은 여기서 끝난것이 아니다. 먹은 고양이 마리수가 열번째에 이르렀을 때 온집안은 그어떤 희망의 흥분속에 잠기게 된다.그것은 회색얼룩을 띤 열번째고양이가 특별히 커서 호랑이새끼같았는데 또 연분적으로 얻게 되였다.하지만 열번째고양이는 더욱 큰 불행의 화근으로 되였다.땅에 이틀씩이나 묻었는데도 살아나서 도망가고 밤에는 앙칼진 저주의 울음을 울다가는 녀인의 집문앞에 스스로 찾아와 꽁꽁 얼어죽어서 녀인의 약으로 먹히운다.공포에 신비함까지 씌워주는 열번째고양이다.열번째고양이를 먹은후 고양이 얘기를 꺼낸 옆집할머니는 갑자기 돌아가고 이듬해 녀인의 아버지도 돌아가며 녀인은  《얼어죽으면서 부릅떳던 고양이의 눈이 자기 몸속에서 죽어있는 고양이 아홉마리를 불러내여 뜯겨져나간 자기들의 살점과 몸둥아리를 찾아서 아우성치는것 같은 환각에 빠지군 하였》고 《그럴 때마다 신열이 나면서 온몸이 비틀리듯 아팠다.》 이런 괴로운 생활이 지속되던 서른살이 되던 해 환락이 찾아들었으니  뒤집의 친척이라는  잘생긴 남자와 짧은 사랑이 있게 되고 그래서 고양이 같이 생긴 딸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물론 소설자체는 황당하지만 토속적인 신앙에 기초를 두고 그자체의 예술론리가 잡히면서 황당속의 합리한 상징으로 충격적이고 몽롱한 미감과 깊은 사색의 예술적효과를 일으키고있다. 그렇다면 소설의 흐름을 끌고나가는 고양이는 무엇을 상징하고 소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고양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물이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고양이는 인간생존과정중의 보편적인 상관물을 대변하고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부단히 상관물들을 상해하고 파괴하고 소모한다.지어 어떤 경우는 생존을 위해서는 부득불 자신들마저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과분하다고 생각되는 소행마저 자행하게 된다.그래서 소설속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영악스런 동물이라 하면서도 고양이까지 잡아먹는것이다.결과는 에네르기대등법칙처럼 얻은만큼 잃게 되고 아픔을 준만큼 아픔을 받게 되며 고양이딸은 임신까지하고 아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탈가까지 하므로써 자기세대에서 결속지으려던 비극은 끈질기게 연장해나간다.이렇게 소설은 생태주의문학의 특점을 띠면서도 주제는 그 범위를 벗어나 인간세상의 보편적인 선과 악, 생존과 파괴, 운명과 해탈을 위한 모지름,인과보응 ,어쩔수 없는 모순과 막무가내한 갈등 등 보편적인 주제내용까지 암시하고있다. 그다음은 조성희의 《리탈》이다.리탈은 대도시로 진출한 당대조선족청년들의 하층생활상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그》와 윤이라는 청년인데 《그》 는 고향에서 복장장사에 숱한 빚을 지고 안해와 리혼하고, 윤이는 사기치기를 일삼다가 안해와 리혼하고 모두 대도시(북경)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그 삶이란 《빨래감이 쌓이고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져있》고 《물에 불궈놓은 빨래감에 선 퀴퀴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세집에 눈이 맞은 녀자들을 데리고 와서는 얼마간 사랑놀음을 하다가 정리해버리고, 《낮이면 분명히 하는 일없이 동분서주하며 저녁이면 이 친구 저 친구 만나 술먹고 심심풀이로 카드놀이 하고 아니면 마작으로 시간을 때우면서 시시껄렁한 이야기 혹은 온갖 음담패설을 주고받고 낄낄대다가 카드놀이에서 딴 돈중 얼마쯤 꺼내여 술을 마시고》, 《어찌어찌해서 돈을 벌게 되면 서로 찾아서 술을 마시고 그날로 다 탕진해버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다.물론 그들도 《한몫 단단히 잡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빚진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자고》 생각하고 《금의환향하여 로모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로모를 모 시고 힘들게 사는 누나네 가족에게 행복을 주》려는 아름다운 념원을 갖고있다. 하 지만 《날마다 펑 뚫린 고속도로처럼 고속으로 질주》하는 대도시에서 성공이란 쉽지 않았으며 더구나 하층에서 헤매는 그들은 《실패만 거듭》한다. 물론 그들이 실패를 하는데는 객관적원인도 있지만 주관적원인이 더 클것이다.특히 그들과 같이 경제기초,인맥 등이 박약하고 특수한 재능도 없이 대도시의 하층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더욱 큰 노력을 지불해야 할것이다.그래서 그들도  그런 도리를 알고있고 새출발을 해보려 하지만 고질을 고치고 새출발을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소설은 윤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가 고속도로에 뛰여들어 교통사고로 죽었으므로 교통부문에서는 자살로 인정했다.정상적인 추리로는 맞는 결론이였 다.하지만 성격적으로 볼 때 윤이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쾌활하고 무슨 일이나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살할 사람이 아니며 비록 사고 며칠전에 가이드사업실패로 타격이 있었지만 자살의 원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리유가 빈약 했다.소설은 이렇게 서두에 궁금증을 달아주며 전도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던중 《별로 장원한 타산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그들에게,특히 윤이에게 새생활의 메시지가 보여졌으니 그것은 《이젠 이런 생활이 신물이 나》고 《이렇게 사는데 질》린 윤이에게 《죽도록 따르겠다는 녀자가 있》게 되여 참된 생활이 시작될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새생활이란 쉽지 않았고 또 사업에서 실패를 하게 되며 윤이는 또 《맘을 잡지 못》하게 된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였다. 《그》는 윤이와 절친한 사이다.그래서 《윤이 동거녀》에 대해 의무감적으로 관심하게 되고 어느날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윤이의 죽음을 두고 기절할 지경으로 오열을 터뜨리고 《며칠전 야밤에 흐느끼》며 전화하던 녀자답지 않게 명랑하고 천연덕스럽다. 둘은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되며 《그》는 그녀를 자기가 사는 세집에 데려오게 되고 이어서 둘은 육정을 나누게 된다.일이 끝난다음 《그》는 심한 량심적가책을 받게 되며 이런 《자신이, 이 집, 이 생활이 역겨》워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떠난다.그런데 가던중  고속도로에 갑자기 안개가 쫙 깔려서  5백메터쯤 앞이 보이지 않는데 그곳을 벗어난후 《그》가 놀랍게 발견한것은 그곳이 바로 윤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현장이였다는것이다.즉 윤이의 죽음은 자살인것이 아니라 역시 《그》처럼 《이런 생활에 신물이 나서》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몽유하듯이 무작정 뛰쳐나가다가》 안개때문에 차량을 보지 못하여 변을 당한것이다.소설은 이렇게 윤이의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결속되는데 윤이의 이런 죽음의 설정은 당대 대도시로 진출한 하층생활인간들의 참된 생활개척의 어려움과 새출발 간거성의 주제를 묘미 깊게 제시하여주면서 《각성소설》, 《새생활출발소설》의 새로운 모식을 창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하지만 인물들의 형상을 사회환경과 더 긴밀히 결부시키며 좀 더 돌출하게 풍만하게 표현하지 못한것이 유감이면 유감이라 하겠다.. 그다음은 리진화의 《바늘》이다. 《바늘》은 언어라는 화필로 그린 한폭의 인상 파유화같이 평온함속에 조금은 우울하고 그러면서도 밝은 힘이 내재되여있는 소설이다.소설의 주인공은 수놓이로 살아가는 30대의 녀인이다.물론 로동은 모두 신성한것이지만 차원이란것이 존재하는바 수놓이란 직업은 평범한 삶이라 함이 정확할것이다. 그래서 수놓이를 하던 녀인의 할머니도 어머니도 남편의 버림을 받았고 그녀 역시 남편의 버림을 받게 된다.《처마밑의 거미처럼 아무리 짜고 엮고 붙잡으려 발머둥쳐도 비바람이 불면 스스로 엮은 한가닥 미련을 붙들고 울수밖에 없는 운명, 녀자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녀인은 어쩔수 없이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본능적인 욕구에 가까운 충동때문에》 수놓이를 하게 된다.하지만 수놓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바람직한 삶이 아니기에 자페증을 앓게 되며 수놓이 한점이 완성되면 바늘로 자신의 팔을 찌르는 자학행위로 심리평행을 잡아간다.그의 이런 변태심리는 또 손님들에 대한 심드렁한 태도와 자신보다 천해보이는 신깁기로인에 대한 괄시로 전이되기도 한다.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녀인이 또 한번의 곡경을 치른후 업수보던 신깁기로인에 대해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하고 바늘을 그리워하고 수놓이를 하고싶어 하면서 새롭게 바로잡은 삶의 자세를 밝게 보여주면서 평범한 삶을 긍정하는 주제도 제시하여주고있다. 특히 이소설은 바늘이라는 녀성적인 장치를 교묘하게 리용한데도 묘미가 있지만 언어구사에서 바늘과같이 예리하고 섬세한 언어로 이미지들의 핵을 유연하게 꿴것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제한된 언어 넘어로 무한한 환상을 펼쳐주며 평범한 내용을 유화같이 함축하여 은근하고 힘있게 표현했다는건 새로운 탐구와 우리문단의 새로운 풍경이라고 본다. 《남자가 두번째로 감탄을 할 때 녀자는 호수우에 뜬 물오리처럼 가만히 앉아있다.사유는 그렇게 소리없이 흘러가고 잔잔한 물결밑에서 별의별 괴상한 생각들이 오리의 발과같이 빨갛게 요동치고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놓이 바늘은 공중에서 표류하는 환각의 빛줄기와 흡사하다.가느다란 금속의 내면에서 녀자는 분명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추락하는 새의 부리처럼 빛나는 금속 하나가 허공에서 완미한 포물선을 그으며 곧추 그녀의 하얀 팔우에 내리꽂힌다.》… 무척 인상깊은 화폭들이다.하지만 조선족적인것이 부족된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다. 이렇게 네 녀작가의 네편의 작품을 살펴보았는데 가히 요근년 우리문단 단편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네작품은 제재상 풍격상 서로 판이하게 다른 각이한 특점을 갖고있지만 동시에 아래와 같은 공통점도 갖고있다. 첫째.네작품은 모두 결말의 불명확성과 불투명성을 갖고있다. 《둥지》 와 《그 녀 몸속의 열마리 고양이》가 전형적일뿐만아니라《리탈》과《바늘》도 어떤 결론이 있는것 같으면서도 역시 비슷한 경향을 다룬 재래의 소설에 비해 다방면적 가능성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있다.때문에 이런 결말의 처리는 작품의 방사성적인 여운을 남기는 예술적 매력을 가첨하여주었다.이런 특점은 단일한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중심이 해체된 현시대생활에 대한 더욱 본질적인 반영을 위한 수요에서 생겨난 예술의 법칙에 따른것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녀성 글쓰기의 섬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는것이다. 네편의 작품이 모두 녀성의 글인데 모든것이 세분화로 그질서가 분산적으로 복잡해지는 현시대의 흐름을 두고 이런 녀성글쓰기의 특점은 본질적인 세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예술적으로 펼쳐주는 무기로 되지 않겠나 생각된다.그리고 오직 녀성의 체질로 녀성의 감수로 녀성답게 쓰는 글이라는 여기에 바로 남성문학과 대립할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것이 아니겠나 생각 된다. 무엇이든《헤겔로인이 말한 바로 그것》일때 바로 독일무이(独一无二)의 경지에 다달을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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