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권의 책으로 당해의 중국조선족문학의 우수작품들을 보여주는 계렬우수작품집의 두번째 작품집인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이 출판되였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선은 문학지인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비평지인 <<문학과예술>>, 아동문학지인 <<아동문학>>, 그리고 언론지인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료녕조선문보>>, <<길림신문>>, <<중국조선족소년보>> 등 10개의 잡지, 신문에서 2006년도 본지에 발표된 작품중 우수작품을 추천하였고 그중에서 편집위원회와 심사위원회에서 다시 엄선하여 최종 본작품집을 묶게 되였다. 본작작품집에 선정된 작품들로는 소설문학에는 리혜선의 <<터지는 꽃보라>> 등 10명작가의 10편작품, 시문학에는 강효삼의 <<초불엔 재가 없다>>를 비롯하여 26명 작가의 42수 작품, 수필문학에는 김호웅의 <<한그루의 무궁화>>를 비롯하여 19명작가의 19편 작품, 아동문학에는 최동일의 아동소설 <<정말 싫다>>를 비롯하여 16명작가의 20편(수) 작품, 문학비평에는 김관웅의 <<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비롯하여 6명평론가의 6편작품이 실렸고 부록에는 2006년도 중국조선문, 잡지에 발표된 문학작품의 목록도 올랐다.
이책의 출판 역시 2006년도 중국조선족문단의 또 하나의 경사라 할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2006년도 중국조선족문학의 양상을 일목료연하게 료해할수 있고 동시에 이책은 우리문학의 성취와 부족점을 옳바르게 가늠하면서 앞으로 우리문학의 새로운 비전을 기하는데 큰역할을 할수 있을것이다.
차 례
남영전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문학
-머리말을 대신하여 /1
소설문학
리혜선 터지는 꽃보라 /3
김동규 촌놈 /35
량춘식 달도 /62
박옥남 마이허 /94
최홍일 닉명신 /106
양은희 타지마할 /133
정형섭 기러기문신 /169
림원춘 골회 /204
박초란 바나나의 날개를 찾습니다 /223
박 일 모녀의 세계 /234
시문학
강효삼 초불엔 재가 없다(외 2수) /241
김일량 여름산은 새소리 따라간다(외 2수) /243
리삼월 소나무(외 3수) /246
김 철 세상만사 /249
석 화 손가락 까딱하면(외 3수) /250
김 파 착란증 /253
리임원 아침 /256
김응룡 기다림(외 1수) /259
김춘택 계절을 반역해야 그대가 내게로 온다면 /261
리성비 기도 /263
지영호 생기를 도적맞힌 시골의 얼굴 /264
한영남 어느날 그 사람 만난다면(외 1수) /265
김룡칠 백발 /268
신현철 멈춘 심장들의 웨침 /269
김응준 백마야 /271
김영건 아픈 너를 위하여(외 1수) /272
조광명 외도의 돌멩이 /275
김창영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280
최화길 가을날의 사색(외 1수) /282
심예란 10월이 열립니다(외 2수) /284
윤하섭 시래기 /287
리승호 고향의 진달래 /288
강철영 시골길(외 1수) /290
김창희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 /292
김승광 락수물소리 /294
김 옥 가을편지 /295
수필문학
허무궁 신사의 호주머니는 쓰레기통 /299
김호웅 한그루 무궁화 /302
양은희 가을, 그리움으로 정착하며 /311
남호손 나를 찾아 홀로 떠난 려행 /314
김점순 발 /322
리선애 리별의 연길정거장 /326
신기덕 셀프스타터 /330
김경희 계절은 소리없이 다가오나봅니다 /334
오경희 흔들리는 미학 /337
장춘식 문학의 위축, 해법은 없는가? /340
김홍란 나를 깨운 들국화 /343
김동규 라고하강반에 뿌려진 작가의 혼령 /346
최정옥 아가야 우지 말어 /349
김의천 태항산기슭에서 /352
장련춘 엄마의 강 /355
최순희 렬차따라 레루끝까지 /359
주향숙 감히 아름다운 인생이라 부를수 있기를 /362
조광명 딸아, 무지개 없는 하늘이래도 너는 사랑하여라 /366
김춘실 믿닫이 /371
김 군 인생은 과거만들기 /374
아동문학
최동일 정말 싫다 /377
전춘식 반달 /388
김을석 복수 /392
김춘택 사이버공간에서 회전하는 지구들 /398
박일호 평화새 /411
김계옥 개구리동네의 풍파 /418
한석윤 삼복놀이터(외 1수) /421
최길록 꽃밭(외 1수) /423
김득만 텅 빈 운동장(외 1수) /425
최문섭 마라손경주 /427
김일량 짬짬이시간 /428
리상각 가을메뚜기 /429
림 철 이슬(외 1수) /430
김현순 어둠 /432
김학송 봄을 부르니 /433
어 진 봄마을 /434
문학비평
김관웅 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437
산 천 그 어느 울밑에도 채송화는 피여난다 /462
장정일 자유로움에서 건져낸 진실 /471
조성희 새시기 중국조선족 녀류소설문학에 대한
통시(通时)적연구 /478
강 걸 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브에 대하여 /500
김호웅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중심으로 /512
[부록] 2006년도 중국 조선문 잡지, 신문 문학작품목록 /527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문학
-머리말을 대신하여
남영전
중국 55개 소수민족중 200만 인구에 500여명의 작가군을 가진 조선족의 문학창작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상대적으로 활발한것이 하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현하 중국조선족문단에서는 문학지인《연변문학》, 《도라지》, 《장백산》, 비평지인《문학과 예술》, 아동문학지인《아동문학(별나라)》, 그리고 언론지인《연변일보》, 《흑룡강신문》, 《료녕조선문보》, 《길림신문》, 《중국조선족소년보》등 잡지, 신문에 해마다 많은 문학작품이 발표되고있고 적지 않은 잡지사와 신문사에서는 해마다 우수작품평선활동을 통하여 작자들을 고무하고있다.
비록 중국조선족문학원지가 많다고는 할수 없지만 독자나 연구자가 그해 우리 문단의 우수작품을 알려고 이상 5개 잡지와 5개 신문을 한손에 다 챙긴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번씩 우리 문단 점검과 총화의 필요, 문학사료의 축적과 홍보의 필요로 한해에 한권의 책으로 보는 중국조선족우수문학작품집이 필요한것이다.
고마운것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가 중국조선족문학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이 일을 구상했고 또한 실천에 옮긴것이다. 출판사에서는 2005년 하반년에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관계잡지사와 신문사의 의견을 청취하였고 12월부터 각 잡지사와 신문사로부터 우수문학작품을 모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금년 3월에는 출판심사위원회와 편집위원회 성원들의 모임을 출판사에서 가졌다. 애초부터 관계자들은 이 일에 성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이번 모임에서는 구체적인 세절문제에 관한 진지하고 책임성있는 토의를 하였다.
출판사에서는 2006년을 시점으로 매년 해당 잡지사, 신문사들로부터 추천해오는 작품들을 모아 소설편(중편 망라), 시편, 수필편, 아동문학편(아동소설, 동시, 동화 망라), 평론편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그해에 발표된 문학작품목록을 첨부하여 50만자좌우분량으로 해마다 한권의 예쁘고 가치있는 작품집을 묶기로 하였다.
해당 잡지사, 신문사와 출판사 그리고 관계인사들의 합심과 노력으로 첫 작품집인《2005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이어 두번째 작품집인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이 독자들과 대면하게 되였다. 이 책의 출판 역시 중국조선족문단의 경사가 아닐수 없다.
중국조선족문단은 매년 어김없이 하나의 문학의 산을 쌓게 될것이고 독자들과 연구가들은 이 수려한 문학의 산책속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것이다.
참으로 축하드려야 할 일이다.
재삼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 감사드리고 해당 잡지사, 신문사와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2007년 3월 장춘에서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
―《2006중국조선족문학우수작품집》을 중심으로
김호웅
2006년 우리 작가, 시인들은 디아스포라1)로서의 자기의 문화적신분, 자기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자각하고 자기의 작품을 통해《나(또는 우리)는 누구인가?》,《나의 삶의 방식과 진로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왔으며 문학의 언어, 이미지, 구조, 기법에 대한 쟁론을 통해 문학적형식미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였다.
아래에 평론, 시, 소설, 수필 순으로 2006년 우리 문학의 전개양상을 륜곽적으로 살펴보고저 한다.
1. 우리의 문학비평,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라
2006년 한해 동안 문학비평은 다른 장르에 비해 자기 구실을 잘한것 같다. 조성일, 최삼룡, 전국권, 장정일, 한춘(산천), 김월성, 전성호 등 원로 평론가들이 꾸준히 현장비평에 참여해 로익장의 정열을 과시하였는가 하면 김관웅, 김호웅, 윤윤진, 서영빈, 장춘식, 김경훈, 조일남, 리광일, 우상렬 등 중년 평론가들이 새로운 사조와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우리 문학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최룡관(필명 최흔), 조성희 등은 창작과 비평 량쪽에서 모두 빼여난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며 강걸, 최미성 등 신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우리 문학비평은 단순한 작품론적범위를 훨씬 벗어나 우리 문학의 기본성격, 류파와 사조, 판도(版圖)에 관한 문제, 지어는 문단의 비리와 비정에까지 날카로운 메스를 가했다. 그리고 문학비평은 갑론을박의 쟁론을 통해 처음으로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게 되였다.
할빈의 비평가 산천은《그 어느 울밑에도 채송화는 피여난다》라는 평론에서 산재지구 우리 문학의 생성, 발전사를 되돌아보면서 십분 도전적인 견해를 내비치고있다. 그는 중국의 주류문학에 비할 때 연변문단은 변두리의 존재라고 할수 있다면 또 연변의 문단에 비해볼 때 산재지구의 작가들은 소외된 존재로 된다고 하면서 산재지구의 작가, 작품들에 대한 연변문단의 독선과 오만, 무관심에 유감을 표시한다. 뿐만아니라 이제는 시장경제, 지식정보화시대이니만큼 조선족문학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앞으로 조선족문화 내지 문학의 구심점은 연변이 아니라 외국 또는 중국 주류문화와의 합수목에 살고있는 류학파, 연해파, 도시파들에 의해 형성될것이라고 추단하고있다. 이 글은 산재지구 조선족문학의 형성, 발전의 지형도(地形圖)를 일목료연하게 그렸고 산재지구 조선족문학에 내재한 디아스포라적인 성격을 어렴풋하게나마 지적하고있어 주목된다. 하지만 연변문학의 하위(下位) 개념으로 산재지구의 문학을 설정하는데는 무리가 따르며 심지어 우리 문학 자체의 내부분렬을 야기시킬 위험을 안고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의 리론으로 연변문학과 산재지구문학을 아우르는 전반 조선족문학의 특성과 창조성을 깊이 있게 구명하는것이 오히려 이 글의 과제로 남는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과제는 허련순의 장편《바람꽃》, 김재국의 장편수기《한국은 없다》의 경우와 같이 1990년대 중반부터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김관웅, 김호웅, 장춘식 등 비평가들에 의해 리론적으로 활발하게 론의되고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디아스포라는 우리 조선족의 존재방식이요, 이중적인 아이덴티티의 갈등은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고 말하고있다.2)
연변의 비평가들이 산재지구의 문학을 소외시키고있다는 산천의 그릇된 견해를 시정하기라도 하듯이 연변의 소장학자 강걸3)은 북만지역의 대표적인 소설가 윤림호와 그의 소설을 비중있게 다루고있다. 그는《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브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윤림호는 청소년기의 불우한 체험을 자기 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삼고있는데 그의 소설의 기본모티브는 불우한 출신성분, 소외된 불구자, 농촌청년의 콤플렉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윤림호의 소설은 이러한 기본모티브에 의한 다양한 인물성격과 갈등, 플롯과 장면의 전개를 통해《좌적사조와 편견으로 말미암은 사회의 허황함과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에 의한 민중의 재생을 예언》한것만큼 윤림호는 20세기 80~90년대 조선족문단의《대표적인 소설가의 한사람》으로 된다는 정당한 결론을 내렸다.
조성희의 평론《새시기 중국조선족녀류소설문학에 대한 통시적고찰》은 최초로 조선족녀성소설을 주제학적측면에서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분류한 력작이다. 이 글은 1980년대부터 활약한 수십명 녀성소설가의 무려 200편에 육박하는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그 경개와 특징, 특히는 주제의식의 변화를 설득력있게 분석했다. 하지만 이 글은 녀성의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녀성소설에 고유한 환유와 묘사의 섬세성을 지적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있다.
장정일의 평론《자유로움에서 건져낸 진실》은 2005년도《도라지》잡 지 에 실린 수필들중에서 허무궁, 한영남, 리진화의 수필을 높이 사주고있는데 상기 3편의 수필이 성공할수 있은것은 수필 본연의 특징인《자유로움》을 실천했기때문이라고 하면서《방자하면서도 랭철하고 느슨하면서도 절제가 있는 정신의 자유로운 비상의 권리, 여의치 않는 삶의 모진 풍랑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새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꽃들의 행복한 미소를 표현할수 있는 기쁨, 이는 모든 수필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은총이요, 특권이다.》고 말하고있다. 수필의 본질과 묘미를 갈파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김관웅의 평론《우리의 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최룡관과의 쟁론을 거쳐 우리 시단의 현황과 향후 진로에 대한 생각 및 시의 본질과 특성 및 기법에 대한 견해를 종합적으로 진술하고있다. 그는 우리 시문학의 렬악한 생존환경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나서 우리 시문학의 페단을 현실도피의 경향, 탐미주의적인 문자유희, 서방의 문학사조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등으로 진단하고 그 치유책(治癒策)을 내놓고있다. 즉 시인은 뜨겁게 사회와 현실을 포옹하면서 우리 민족의 의식과 그 생활과 정서를 노래함과 아울러 인간의 아름다운 감정을 생동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시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 시인들이 창작한 수작들을 엄선해 주제학적 비평과 형식주의적인 비평을 균형감있게 조화시켜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있다.
2. 우리의 시문학, 삶이 불평스러우면 울어라
2006년의 시단은 다사다난한 가운데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해란강문학상》,《정지용문학상》심사결과를 두고 시시비비가 란무했고 지어는 어처구니없이 법정놀음까지 일어날번했다. 현대시의 본질과 특징에 대한 쟁론이 벌어졌고 연변시인협회가 발족해 연변작가협회 시분과위원회와 더불어 여야(與野) 대립구도를 이루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렸다. 남영전의《토템시》가 중국 주류문단에서 공전(空前)의 찬양을 받은 대신 조선족시단에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시단의 춘추전국시대는 자연 이군돌출의 기인들을 배출해 김응룡의《둥지》, 석화의《연변》련작시를 비롯해 좋은 시작들을 선보였다.
공자는《시는 원망스러움을 노래한다(詩可以怨)》고 했고 한유(韓愈)는《삶이 불평스러우면 울어야 한다(不平則鳴)》고 했다. 고금중외 그 어느 시대이든지 참다운 시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삶과 그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공자나 한유의 말 그대로 시인은 시절이 한스러워 울고 민중이 불쌍해서 운다. 이 작품집에는 김철, 김응준, 강효삼, 김파 등 원로시인들과 김응룡, 리임원, 석화, 김영건, 조광명 등 중견시인들의 얼굴이 두루 보이지만 우리민족의 실존적상황과 희로애락을 대변한 김응룡과 석화, 김일량의 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고저 한다.
우선 주목되는 시인은 김응룡이다. 그는 최근 몇년래 농촌, 농민, 농업이라는 삼농(三農)의 문제를 시적소재로 다루면서 우리 농민과 농촌을 대신하여 구슬프게 울었다. 우리 민족의 실존적인 상황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고 하면서 유미주의의 상아탑속에서 코노래만 부르고있는 그러한 시인과는 달리 김응룡은 민족적 사명감과 량지를 가진 참여파 시인이다. 하여 그는 시《둥지》로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먼저 그의 시《기다림》을 보자.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 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 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김응룡,《기다림》
김관웅이 지적한바 있지만 이 작품은 세련미와 함축미를 갖고있어 진한 감동과 더불어 긴 사색의 여운을 남겨준다. 녀성이 증발해버린 농촌에서《외기러기 사내》들만이 살아가는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이 나타난다. 남정들은《행여 마누라가 돌아온게 아닌가?》하고 동일한 기대를 건다. 리농향도(離農向都),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 리별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민가정의 해체를 얼마나 잘 보여주었는가. 우리 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 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김응룡,《시골개구리들의 울음》전문
이 시에서 시골 여름밤의 개구리울음소리는 초상난 집에서 애고애고 들려오는 곡성처럼 청승맞기 그지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구리소리는 시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감정이입의 표현수법을 아주 잘 구현한 수작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처럼 김응룡은 날로 황페해지고있는 우리 농촌과 날로 령락해가는 우리 농민들을 대신해 슬피 울어주고있는 시인이다.
이전에 탄광의 광부들은 갱내 일산화탄소 농도를 알기 위해서 카나리아 새장을 들고 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렸다고 한다. 민족적 사명감과 우환의식을 가진 우리 시인들은 탄광의 카나리아와 비슷한 존재이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고있는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김응룡시인의 시들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것이다.4)
이제 석화의 시를 보자. 석화는 최근 몇년간《연변》련작시들을 부지런히 써내고있다. 그에게 있어서 연변은 시인이 나서 자란 고향이고 영원히 묻힐 땅이다. 특히 그는 연변이 가지는 디아스포라적인 의미를 포착해 다각도로 이미지화한다.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嗚)5) ―/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6)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분다//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석화,《연변 2, 기적소리와 바람》전문
이 시는 상이한것들이 갈등이 없이 공존하는 다문화적 혼종성, 쉽게 말하자면 조선족과 한족이 연변땅에서 공존, 공생해야 하는 숙명 내지 필연성을 유머러스하게 이미지화하고있다. 제1련에서는 기차와 바람을 의인화하면서《붕―》과《우(嗚)―》,《바람》과《퍼~엉(風)》의 대조를 통해 조선족과 한족의 언어적 상이성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제2련에서는 미물인 새들도, 납골당의 귀신들도 서로 상대방의 소리와 언어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두 문화형태간의 대화와 친화적인 관계를 하늘을 날며 즐겁게 우짖는 새와 납골당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귀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몽환적인 색채를 십분 살리고있다. 제3련은 이 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내적 구조에서 보면《전(轉)》과《결(結)》에 속하는 부분인데 연변의 풍물시라고 할수 있는《6.1》아동절날,《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갈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고 색채적인 이미지를 구사함으로써 다원공존, 다원공생의 론리로 자연스럽게 매듭짓고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야말로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석화의 다른 시《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연변》은 더욱더 감칠맛이 난다. 김응룡이 풍전등화 같이 스러져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두고 구슬프게 울었다면 석화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애기엄마 젖꼭지만큼 하다// 하얗게 피여났던 춘삼월 꽃잎/ 하늘하늘 나비처럼 내려앉은 가지마다/ 어제 오늘 다르게 굵어지는 열매들// 알알이 노랗게 단물이 들기까지/ 아직 한철 남았고/ 새콤새콤 입안을 톡 쏘는 싱싱한 맛/ 새색시 입술만 감빨게 한다// 오얏나무집 할배 입이 귀가에 걸렸나/ 오가는 길손마다 손목잡고 건네는 말씀―/ 이제 아기 울음소리에 동네가 들썩할거요/ 십년, 십년만의 경사라니깐//
―석화,《칠월, 장마뒤끝 오얏들이 ―연변》
기승전결의 내적 구조를 가진 한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시다. 제1련은《기(起)》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칠월 장마뒤끝의 오얏이 애기엄마 젖꼭지만큼 하다는 기발한 착상과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분홍바탕에 자주빛이 감도는 오얏을 애기엄마 젖꼭지에 비유한것은 아마 석화시인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게 바로 모양과 색갈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이질적인 사물들간의 비유가 성립될수 있는 까닭이요 낯설게 하기이다. 제2련에서는《기》를 받아 물고 꽃잎을 나비에 비유했고 오얏이 어제 오늘 다르게 굵어진다고 했다.《승(承)》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쉽게 말하자면 분위기를 조성하고 능청을 떨었다. 제3련과 제4련의 첫 구절에서는《노랗게 단물이 들》었다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입안을 톡 쏘는 싱싱한 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술을 감빨고 있는 새색시와 좋아서 입이 귀가에 걸린 할배를 등장시킨다. 이는《전(轉)》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무엇이 좋아서 입이 귀가에 걸렸을가? 이제 아기 울음소리가 들썩할것이고 이는 십년만의 경사이기때문이란다. 이는《결(結)》에 속한다. 아무튼 이 시는 미구하여 소생할 조선족농촌을 비유적인 이미지와 다양한 감각적이미지 및 기승전결의 내적 구조를 통해 그린 수작이라 하겠다.
김일량의 시도 시적이미지의 창조에서 일가(一家)를 이룬다고 하겠다. 김일량은 안도현 시골에 묻혀 사는 농민시인이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청빈락도(淸貧樂道)의 자세로 고향의 청산록수(靑山綠水)와 벗하며 살고있기에 청산의 새소리같은 청아한 시편들을 지을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파운드(1885-1972)는《방대한 저작을 남기기보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훌륭한 이미지를 만드는게 낫다》고 말한바 있다. 김일량의 서정시《여름산은 새소리 따라간다》는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조를 취하지 못해 뒤부분이 좀 처진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력을 보이고있고 참신한 이미지를 창조하고있어 주목된다. 이를테면《여름산에 새소리는/ 동화같이 화창하다》와《청 맑은 새소리가/ 동전잎처럼 반짝인다》와 같은 비유는 그 내적구조를 보면《새소리》라는 청각적이미지를《동화(童畵)》나《동전잎》과 같은 시각적이미지로 전환시킨 기발함을 보이고있고,
새소리 붉은 석양 물고
나무숲속에 잠을 감추면
익는 수박속같이―
달콤한 향기가 모이는 꿈 꾼다.
여기서는 새소리를 의인화함과 더불어《붉은 석양》과 같은 색채적이미지, 익는 수박과 같은 미각적이미지, 달콤한 향기와 같은 후각적이미지를 조화롭게 구사해 그야말로 선경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미저리를 창조함으로써 시인의 탁월한 언어구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처럼 우리 시인들은 다작(多作)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금중외 그 누구도 구사한적 없는, 단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나 새로운 메타포를 창조, 개발할 때만이 시인의 이름에 값할수 있을것이다.
3. 우리의 소설,《빛나는 변두리》그리고 우리 말의 묘미 를 살려라
소설분야는 림원춘, 류원무, 박선석 등 원로작가들이 지속적인 활약상을 보이는 가운데 최홍일, 우광훈, 량춘식, 정형섭, 김동규, 박일 등 작가들이 가세를 하고있다. 특히 허련순, 리혜선, 박옥남, 양은희 등 녀성작가들의 소설들은 주제의식이나 기법에 있어서 남성작가들을 무색하게 만들고있는 형국이다.
우리 조선족사회는 여전히 자체의 경제적기반을 가지지 못한채 도시화, 산업화의 길목에 서있으며 이민과 리산(離散)의 아픔을 안고 우왕좌왕하고있다. 2006년의 소설들은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조선족사회의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고있으며 그러한 현실과 상반되는 유토피아를 지향하고있다. 여기서는 주로 정형섭, 리혜선과 박옥남의 소설들을 보기로 한다.
정형섭의 소설《기러기문신》은 신판《심청전》을 만들만한 귀한 소재를 다루고있어 주목된다. 절세의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량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림당수에 풍덩 빠졌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윤순은 불구자인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장가들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는 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시집을 가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한국에 데려간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변태성욕자로서 멀쩡한 윤순에게 자꾸만 성형수술을 시킨다. 그녀는 눈과 코를 수술하고 나중에는 젖무덤까지 수술한다. 하지만 의외의 의료사고로 염증이 생겨 윤순은 두 젖무덤을 척출(剔出)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젖무덤은 녀성의 신비요, 상징이라고 할 때 그것까지 바쳐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의 뒤바라지를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희생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그녀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지금의 수많은 조선족녀성의 한 전형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오랜만에 윤순을 찾은 옛 련인의 철없는 시선을 통해 윤순의 젖무덤에 난 수술자리를 탐미주의 시각으로 묘사, 감상함으로써 작가의식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따라서 인물성격의 론리를 위반하고 주제의 분렬을 가져왔다. 다 쓴 죽에 코를 풀었다고나 할가. 하지만 현명한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조선족사회의 실태를 알수 있으며 윤순의 비극적운명에 커다란 동정을 보내게 된다.
최홍일은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로서《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랴》라는 투철한 작가의식을 가지고 소설창작에 몰두하고있다. 그의 단편소설《닉명신》은 취중에 두 동료와 함께 부패한 권력자를 고발한 닉명신을 썼다가 술이 깬후 보복이 무서워 후회막급, 전전긍긍하는 한 퇴직교원의 나약한 모습과 모순된 심리를 다룬 작품인데,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장면과 주인공의 기형적인 인간상에 대한 생동한 묘사를 통해《좌》적인 정치운동과 권력의 횡포에 의해 인간들의 심령이 얼마나 병들고 기형화되고있는가를 극명하게 묘파한 수작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정치운동은 인간에게 명철보신의 처세철학을 갖게 했다. 사람들은 권력의 비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증오하나 앞장에 서서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기만을 바랄뿐 선뜻이 나서지 못하는게 오늘을 사는 인간들의 생리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회적 병페와 인간의 몰락상을 야유, 풍자하면서 새로운 시민정신의 각성을 촉구하고있다. 작품은 3인칭을 택했으되 작자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특이한 고백체 담론방식을 구사함으로써 한결 더 진실성과 친근감을 기할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심미적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 그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 매도보다는 그러한 정신적기형을 만들어낸 좌적인 사조와 비틀린 사회풍조를 고발하는데 포인트를 둠으로써 휴머니즘의 세계를 지켜내고있다.
리혜선은 우리 소설문단의 중견소설가다. 최근 몇년간 단편《병태씨네 빨래줄》, 장편《빨간 그림자》와 같은 실험적인 소설들을 썼고 그러한 실험정신에 평단의 찬반이 엇갈렸다. 필자는 좀 실망을 가졌던편이였었는데 이태전《도라지》잡지에 실린《매니큐어》라는 수필을 보고 리혜선씨의 문학적재치를 다시 긍정하게 되였다가 2006년《장백산》에 실린 중편《터지는 꽃보라》를 보고 우리 문단의 사라졌던 재녀(才女)를 다시 찾은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의 작중인물들은 모두는 진짜 이름을 쓰지 않고 익명이나 별명으로 통한다. 오늘의 대중사회에서 개개인은 익명으로, 기호나 수자로 존재함은 더 말할것 없다. 가끔 현금인출기에서 비밀번호를 넣고 돈이 나올 때마다 우리 모두 익명으로만 통하는 자신의 실체를 실감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이 작품의 경우에도 작중인물들은《오징어파티》에《고구마》,《별난 녀자》,《안니》,《제이》로 통한다. 이러한 익명의 조건에서 이들은 자기의 욕구를 거침없이 분출한다. 천사가 악마로 변한다. 모든 탈을 벗어던지고 추악한 몰골을 드러낸다. 황차《3.8》절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익명의 네 중년녀인들이 쏟아내는 성적 기갈과 음담패설은 읽는이들을 포복절도케 한다. 기실 그들은 가정을 위해 한국에서 10년씩이나 허둥대면서 일했지만 일단 귀국하자 자식과 남편, 사회에 의해 소외되고마는 이방인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보면 눈물 어린 미소를 짓게 된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진통과 해체, 그리고 소외의 주제를 익명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미있게 풀이했다고 본다.
박옥남은 최근 혜성같이 나타난 녀성소설가로서《둥지》,《목욕탕에 온 녀자들》,《마이허》등 3편의 단편소설로 작가적 기량을 충분히 인정받게 되였다. 소설은 인문적배경을 실감있게 그려 갈등을 설정하고 소설적분위기를 고조시키기 마련인데 박옥남은 한족과 조선족의 잡거지역이라는 문화적 혼종성(hybridity)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강세요, 주류문학의 공백을 파고드는 작업이다. 디아스포라적인 인간 또는 민족공동체는 경계적인 삶, 변두리의 삶을 살고있기때문에 부동한 문화와의 모순과 충돌 또는 교류와 영향 관계속에 놓이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디아스포라의 개체 또는 민족공동체는 자기의 고토와 고유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와 집착을 갖는 동시에 다른 문화에의 동경과 접목을 피할수 없게 된다. 그 결과 디아스포라의 개체 또는 민족공동체는 문화적 변이(變異)를 일으키게 되며 혼종성 또는 다중문화신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년)는 디아스포라의 삶은《모체에서 찢겨나간자의 상처》이고 아픔인 동시에《일종의 특권이며 다시 얻을수 없는 우세》로 된다고 하였고 호머 바바(1949년- )는 새로운 문화는 다양한 문명들이 교차되는《걸출한 변두리》에서 파생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리론으로 볼 때 박옥남의 단편《마이허》는 개미허리와 같은 강 하나를 사이를 두고 살고있는 중국인 마을과 조선족 마을의 색다른 풍속을 아주 생동하게 그리면서 한족과 조선족의 공존, 공생의 원리를 너무나 재미있게 그렸다고 할수 있다.
4. 우리의 수필,《녀성의 글쓰기》우세를 살려라
수필분야에는 남호손(본명 황유복), 허무궁, 양은희, 장춘식, 최순희, 조광명 등 중견수필가들의 얼굴이 보인다. 특히 남호손의 수필《나를 찾아 홀로 떠난 려행》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물음에 깊이 있는 대답을 준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한 사례로 되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김점순, 리선애, 오경희의 수필을 통해 녀성의 글쓰기와 그 매력에 대해 살펴보고저 한다.
김점순은 중학교 교원으로 지내면서 짬짬이 많은 글들을 써왔고 최근 몇년간 여러가지 문학상들을 석권해오면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 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수필부분 본상으로 뽑힌《발》은 그 동안 일편단심 문학을 사랑하면서 부지런히 글 농사를 지어온 작자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본다.
《발》은 전형적인 서사수필이다. 작자는《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라는 정지용의 시에서 수필적 계기를 얻고 자연히 아버지의 발을 련상하게 된다. 아버지를 그리되 아버지의 전모를 그리지 않고 아버지의 발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의 발을 몇개의 장면을 통해 간결하지만 다각도로,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계기적인 사건, 장면만을 다루고 그것을 의미화하는 수필 본연의 특징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모내기철 논뚝길을 휘청거리며 뛰여다녀서 누런 흙물이 줄줄 흐르는 발, 노란 개흙과 새초를 뒤섞어 맨발로 이긴 나머지 황토로 반죽된 발, 그리고 겨울철 새하얀 눈길에 땔나무를 해온 아버지가 땀내 물씬 배인 솜신을 거꾸로 들고 흔들면 하얀 눈가루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싱그러운 산기운을 풍긴다고 했다.
이처럼 천진한 동심으로 아버지의 발을 그리는가 하면 오래만에 시가지에 살고있는 딸네 집에 온 아버지에게《주디안마(足底按摩)》를 시키려 했던 일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나서 의론을 전개하는데, 계기가 적절하고 거기서 탄력을 받았으니 의론 역시 감칠맛이 나고 설득력을 가진다. 여기서 아버지의 발은 그의 근면하고 순박하고 희생적인 부성(父性)을 대변하는 상징체로 작용하며 작자에게는 물론이요, 독자들에게도 무궁한 여운을 남겨주고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리선애의 수필《리별의 연길정거장》은 한국의 유명한 대중가요《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패러디하고있다. 하지만 이 수필은 몬따쥬7)의 기법을 십분 활용해 서로 모순되는것 같지만 론리적으로 서로 련계되는 세개의 장면을 교묘하게 련결시키고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장면묘사는 녀성 작자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연길 정거장에서 아버지인듯한 사람의 팔에 안긴 녀자애는
《엄마, 한 밤 자면 오나?》
라고 묻는데 그녀가 차마 3년이란 말을 못해서 세 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그러니 그 애는
《세 밤?》
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그녀는 차마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러자 철모르는 애는
《야 좋다. 엄마, 나 세밤 안자고 기다릴거야.》라고 하는데 옆에서 그 장면을 보는 나의 가슴마저 옥죄여든다.
뿡! 렬차가 떠나는 기적소리가 울렸다.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가, 수천명의 인파가 북새통을 이루고 리별의 눈물바다를 이룬 연길정거장을 구구히 설명하기보다 열배나 더 감동을 주는 장면묘사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작자가 연길 청년호를 지날 때 본 다정다감한 련인들과 원앙새 한쌍, 어느 전통혼례식 때 본 전안례(奠雁禮)의 장면을 그리면서 그러한 풍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륜리와 도덕을 찬미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현실은 엄청 다르다. 원앙의 사랑을 꿈꾸어왔던 수많은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고 기러기사랑을 맹세했던 수많은 부부들이 외기러기 신세로 되여버렸다. 여기서 작자는 부부간에 서로 천만리 떨어져있어도《늘 간절하고 애절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무심해지지 않도록 다가서는 자세가 중요》하며 부부간의 사랑은 각자가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만이 지속될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부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꽃나무와 같이 알뜰살뜰 물을 주고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기때문이란다. 녀성 작자의 섬세한 눈길과 청순한 감정이 생동한 형상으로 녹아있는 깜찍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본 김점순의《발》을 서사수필이라고 할수 있다면 오경희의《흔들리는 미학》은 전형적인 서정수필이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남성중심주의의 통념을 부수어버린다. 남성중심주의적인 봉건적례교와 관습에 의한다면 녀성은 흔들려서는 아니되는 존재다. 렬녀 춘향이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렬녀는 불사이부라고 했듯이 흔들림이 없는 충성과 사랑은 자고로부터 절찬을 받은것이다. 하지만 만고의 렬녀 춘향에게 부족한것은 피와 살이다. 하기에 오경희는 종(鍾)은 흔들려야 종노릇할수 있고 갈대는 흔들리면서 세상과 맞선다고 본다. 그리고 흔들려서 강물에 허리를 적시고 청초함을 자랑하는 싸리꽃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게 바로 거꾸로 보기의 시학(詩學)이요, 남성중심주의 고루한 사고 패턴을 전복시킨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뿐만아니라《똑바로 산다는것이 흔들리는것이고 부드럽게 휘여져서도 꺾이지 않는것이 스러지지 않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똑바름이 아닐가. …단단하지 말고 억세지 말고 잘 흔들리는 치마처럼, 활짝 피여서 잘 감탄하는 꽃처럼 살았으면 좋겠네요.》라고 했듯이 변증법적인 철리와 작자의 소망까지 깜찍하게 풀어내고있어 더욱더 감칠맛이 나는 수필로 되였다.
5. 맺는 말
2006년의 우리 문학을 디아스포라의 삶과 문학의 형식미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다루어보았다.
우리는 중국 주류사회와 조선반도 사이에 살고있는 디아스포라적인 존재이다. 이제는 페쇄된 지역에 갇혀있다는 고독감, 상실감,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두개 이상의 문화를 아우를수 있는《빛나는 변두리》에 살고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할것이다. 석화나 박옥남의 경우처럼 자기의 지역적 우세를 변증법적으로 살려 우리 문화의 토착성, 다른 문화형태와의 갈등과 공존의 실존적 상황을 형상적으로 다룰 때 비로소 다원문화시대 우리 문학의 독특한 가치를 창조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첨단적인 주제라 하더라도 문학성을 떠나서는 그 존재가치를 론할수 없는 법이니 작가들 모두가 자신의 언어를 갈고 닦아 새로운 비유와 상징,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개발하고 새로운 문학적 장치와 기법을 구사할 때만이 우리 문학인 개개인을 살리고 우리 문학 전체를 살찌울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아동문학분야를 다루지 못한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2007년 5월 2일,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