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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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변의 발전에는 인재유치 전략과 정책대안이 시급한 과제 댓글:  조회:3056  추천:94  2008-10-11
연변의 발전에는 인재유치 전략과 정책대안이 시급한 과제 리강철 일본 호쿠리쿠대학 교수, 조선족연구학회 회장      들어가는 말   금년 8월28-30일 기간 연길시에서 투자무역 박람회가 성대하게 개최되였다. 이번 박람회에 필자는 일본의 중국조선족기업가대표단(OKTA치바지회)을 인솔하여 참가하게 되고 연길시정부로부터 [경제특사 및 홍보대사]로 임명받았다. 이러한 임명장은 돌연적이고 생각밖이여서 놀라움을 금할수 없는 동시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였음을 느꼈다.   사실 나는 이런 짐을 메고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연길이나연변을 위하여 공헌할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않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사실말해서 나는 연변을 떠난지도28년이 되고 또 연변의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떠난놈이기에 연변에 대한 애착심도 없었고 친구나 사회관계도 기본상 없었다. 다만 부모형제가 있으니 매년 고향방문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놈이 이렇게 중대한 임명장을 받다니.   하지만 기실 나도 연변의 발전과 변화에 대하여 은근히 관심을 돌려왔던 것이다. 리유는 91년에 북경에서 대학강사직을 사직하고 일본에 류학와서 선택한 연구 테마가 [두만강지역의 국제개발문제] 였기 때문이다. 현지시찰로 두만강하구의 훈춘의 방천, 권하, 장령자 등지에 뻔질나게 드나들고 라진/전봉이나 울라지보스톡에도 자주 다니게 되였다. 하면서 점차적으로 연변의 경지발전에도 관심이 깊어지고연변에 대한 애착심도  커갔다. 연변에는 가족친척외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아짐을 느꼇던것이다. 그러니 나도 연변에 더욱 마음이 끌리고 연변을 사랑할수밖에 없는것이다.   또한 나는 연변이라는 배경과 조선족이라는 특징을 살려서 일본이나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자기의 활동기반과 무대를 넓혀왔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연변과 조선족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민족과 고향의 발전에 자기의 힘을 의바지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였다.    이번 연길방문에서 절실히 느껴진것이 조선족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인재의 부족이다. 시장이나 공공장소에 가면 보이는사람10명중 조선족은 2명정도라고 당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연변의 통계에는 조선족 인구비률이 37%정도지만 실재인구는 20%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수한 인재들이류출이 심하다. 연변대학의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도 우수한 인재가 대량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길시가 금후5년내에  IT선도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는데 우수한 인재가 없다면 공중루각으로 끝날 것이다. 일본에는 중국조선족이 6만명정도나 와 있으며 절대다수는 류학이나 IT기술자들이다. 조선족들이 설립한 회사가 수백개가 되며 그중에서 동경지역에 있는 IT회사만 해도 백수십사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조선족인재와 IT기업을 연길에 유치할수없겠는가? 이것이 필자의 제일큰 관심사항이였다. 연길시위서기와 연변주부주장과 회견할때 내가 그들에게 제출한 제안이 바로 인재 유치적략과 정책을 시급히 제정하는 문제였다.    1. 사고방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개혁개방이후 부터 연변의 인재류출은 가급적으로 증가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시장경제에로의 전환이 초래한 필연적인결과이고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추세였다. 많은 사람들이 국문이 열리여 눈을 뜨고 보니 연변이 외국이나 국내 타지역에 비하여 많이 뒤떨어지고 또한 외국이나 타지역에 진출하여 발전할수 있는 문이 열려져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일본과 로시아의 문이 열리고 90년대초반에 한국의 문이 열리자 조선족들에게는 최고의 대외발전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일부 통계과 추계에 의하면 2008년 현재 조선족의 해외진출자는 50만명을 넘어선다(한국약37만, 일본약6만, 미국 약3만, 로시아 약3만 그외나라들 약 2만). 또한 동북3성에서 국내타지역으로 한국기업이나 일본기업을 향하여 그리고 국내기업이나 창업으로 류출한 조선족인구도 약50만명정도 된다.   그중에서 적지않는 사람들은 현지에 정착하여 성공적인 사업과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더욱많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와 살고싶어 하는것이다. 또 고향을 위하여 공헌할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고 본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어느 나라나 지역을 보면 인재가 류출로부터 유턴(회귀)하는 사이클과 타이밍이 있는것이다. 대만이나 한국은 90년대가 그 시기였고중국은 근년에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중앙정부과 각급 지방정부가 인재유치전략이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발달한 지역에 비하면 연변은 인재유턴하는 사이클과 타이밍이 좀 늦어질것이다. 허지만 이번 연길에서의 참관방문을 통하여 연변이 많이 발전하고 있고 또한 발전잠재력이 있음을 직감했다.    다른 한면 해외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고향에 와서 투자하는 경우가 보이고 있다. 이번 일본의 기업가대표단중에도 일본에서IT기업을 성공하여 거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연길개발구에 지사를 설립한 사장 한명이 참가했다. 그는 연변에서의 발전에 크나큰 희망과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외에도 또한 해외에서 선진적기술과 경험을 배웠지만 안정된 직업을 구하지 못한 기술자나 지식인들에게도 연변은 고향으로서의 매력을 가질수도 있다. 즉 인재유턴의 환경과 시기가 연변에서도 조성되고 있는것이다.    허나 유감스러운것은 연변의 당정령도나 대학의 령도들이 아직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에 인재유턴을 적극추진하는 전략과 정책을 제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것이 나의 솔직한 감상이다. 례를 들면 연변주의 령도나 연길시의 령도가 일본을 방문할때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그들에게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인재들의 힘을 활용할려는 의식이 기본상에서 결핍하며 그들을 보배로서 연변에 유치하려는 생각도 절실히 느껴지지 않는다. 연변대학의 령도들이 일본을 방문해도 같은 상황이다.   연변에도 인재가 유턴하는 천시(天時), 지리(地利)가 다가왔다는 것을 당정령도들과 지성인들이 인식해야 한다. 이제 한발작 더 나아가서 인화(人和)의 환경을 조성해야 된다. 그러자면 해외나 외지에 진출한 우수한 인재가 연변에 돌아올수 있다는 인식과 판단으로 사고방식을 바꾸고 천방백계로 인재를 유치할수있는 방법을 강구하며 조건과 환경을 만들기에 주력해야 할것이다. 즉 중장기적인 인재유치전략과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2. 외국이나 타지역에서의 인재유치 전략과 방법   그렇다면 어떠한 전략과 방법으로인재유치를 추진할것인가? 나는 이방면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뾰족한 수가 있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사람의 경험에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 배울수있는 것이다.    9월말에 한국서울에 방문하던차로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비서관을했더 DH선생을 만났다. 매번 한국에 갈때마다 선생과 만나 연변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되는가를 의논한다. 연변에 깊은 사랑의 마음을 같고있는 로선생이며 국가나 민족의 높은 차원에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또 실제적으로 연변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분이다. 선생을 만나서 내가 연길에서 활동한 상황과 연길시와 연변주의 령도들에게 제안했던 인재유치전략과 정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연변의 지성인들과 손잡고 꼭 추진해 봅시다. 한국에서도 60-70년대에 인재가 모두 미국으로 류출해서 인재부족으로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인재유치정책을 제정하여 한국에 필요한 인재는 집도 주고 자동차도 주고 그들이 외국에서살기보다 못지 않게 조건을 마련하여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했었습니다] 라고 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과 판단이 일리가있고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일을 적극 추진해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어떤 경험을 배울수 있겠는가? 깊은 연구는 아니지만 내가 자료수집을 해서 얻은 내용을 간단히 소개 할려고 한다.   (1) 먼저 중국에서는 어떤 인재유치전략과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가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한 연구보고 郭玉'�u'�'"フ海外人材"ア"�フ新政策"v"w-ァ-ス館�際'n域研究"x'�23号"A2005"N3月"B"@에 의하면2001년 강택민 국가주석은 [인재의 경쟁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아주 엄연한 조전(挑战)이다]라고 지적하고 적극적인 인재유치를 강화할것을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 2003년까지 16만명의 각전문분야의 해외인재를 유치했다. 2003년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과학원 원사, 중국공정과학원 원사, [9차5개년계획]기간의 [863계획] 등 연구그뤂의 책임자 이상 과학자 가운데 해외귀국 인재가 각각 81%,54%,72%를 점한다. 10여년래 전국각지의 류학생 귀국자를 위한 창업원지가 70여개 설립되고유치한 인재는1만5천명이 되며 설림한 기업이 4천개가 된다. 물론 중국전체를 보면 약120만의 인재가 해외에 류출되고 리턴한 인재는 30만명정도로 4분의1이다. 아직도 많은 우수한 인재가 돌아오지 않은것이다.    (2) 하문시(廈門)의 해외인재 유치의 경험과 정책을 보자. 2001년 하문시가 유치한 해외인재는 1천명도 않되였다. 거기에는 인재의 공급과 수요 량측에서 의욕이 높지 못했다. 그래서 하문시정부는 2002년 6월에 지방정부의 법규형식으로 [류학인원의 하문에서의 창업장려규정]을 발표하여 아래와 같은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해외인재가 사업부문에 취직하는 조건으로 (1)채용기간중에 매달 본인의 월급총액의 10배이내의 특별수당을 발급하며 특수기능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더 높은 월급도 지급할수 있고 (2)하문시재정지출에서 부담하는 사업부문에 근무하는 고급인재에 대해서는 5년이내에 매달1,500원이상의 생활수당을 지급하며 (3)전문기술직은 직위수의 제한을 받지않고 상황에 따라 파격적 승급이 되도록 하며 (4)출국전과 귀국후의 근속년수를 련속하여 계산할수 있다는 등 적극적인 인재유치정책을 펼쳤다.  또한 해외인재가 설립한 기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우대 조치를 취했다. (1)10만원 이상의 무상원조를 받을수 잇다. (2)등록자본금총액의 49%에 상당하는 조합자본금을 대출받을수 있으며 3년이내에 우대가격으로 그 주식을 회수할수 있다. (3)우선적으로 창신기금을 신청할수있다. (4)임대한 공장건물 200평방메터이내에 관해서는 1년째는 임대료가 면제되고 2년째와 3년째는 각각 시장가격의 50%와 80%로 임대료를 지불할수있다. (5)리익을 얻은해부터 기업소득세는 처음2년간 전액면제되고 그후 3년간 반액면제된다. (6)기업설립에 관한 각종 수속비가 전액 면제된다. 그외 해외인재의 자식의 취학과 주택구입등 생활면의 우대를 향수한다.  이런 우대정책으로 하문시의 해외인재채용이 2002년의 117명에 비해 03년에는 249명 즉 배가늘어났다(그중 박사학위나 고급직을 가진 인재가 123명이나 된다).            다른 례를 들면 2001년말 심천시에서는 26개의 부국장급간부의 선발을 전부 해외인재에 공개하고 그중에서 3개의 직위를 해외전문인재에게 제공했다. 그후 길림성, 강소성, 호북성에서는 선후로 해외인재를 부청장급이하의 직무에 채용하고년봉을 10몇만내지 수십만원으로 하였다. 2004년6월 절강성정부는 19명의 부청장급 간부와 5명의 현장급간부를 해외인재에서 채용했다. "@한국이나 대만에서도 발전과정에 많은 인재들이 류학등으로 유출하였었다. 그러나 90년대이후에 정부의 각종 우대정책과 해외에서의 인재유치활동을 통해 젖지않는 고급인재들이 돌아와 모국과 고향건설에 의바지하고 있다. 편폭관계로 더이상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3. 연변의 인재유치 전략제정이 시급    연변이나 연길시가 중국의 선진지역을 다라잡고 릉가할려면 제일 중요한 고리는 우수하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유치하고 등용하고 활약시키는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최근 몇년 연길시나 연변주에서는 투자무역 박람회를 중시하고 매년 상당한 재력과 인력을 투입해서 진행하고 있다. 물론 투자유치는 중요한 일이다. 외국의 선진기술과 인재가 일부 따라 들어 올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투입한 재력, 인력과 물력에 비해 상응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국내의 초상인자(招商引资) 붐에 날려있지 않는가? 정부가 당면의 정적을 올리기 위하여 시민의 세금을 망탕쓰고 있지 않는가?    연변의 지속적 발전을 가능하게 할려면 훌륭한 기술과 능력과 경험을 가진 인재를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외자를 유입하는데만 신경쓰는것이 아니라 연변과 연길을 지속적으로 가급적으로 발전시키는데는 해외에서 류학이나 사업경험을 갖고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뿐만 아니라 행정, 교육, 의학, 과학연구부문등에 많은 인재가 필요한것이다. 정부가 사유방식을 전변하고 해외인재를 유치하는 중장기 전략과 당면의 우대정책을 시급이 제정해야 한다.  또한 해외인재들도 고향의 인재유치 신호를 기다리고있지 않는가고 본다. 물론 대부분은 당분간 고향에 회귀하지 않을 것이같다. 허지만 고향의 부모들때문에 돌아 올려고 해도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수 있는 좋은 자리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도 적지않다고 본다. 또한 해외에서 류학하여 학문을 배우고 회사에 취직하여 경험과 기술을 배웠으나 문화적환경에 적응되지 않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서 발전할려고 하는 젊은이도 적지않다. 그들이 안심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힘을 낼수있는조건을 지금부터 마련해줘야 할것이다.     4. 인재를 중시하는 사회적 풍기 조성과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1) 인재를 중시하고 해외 고급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하자.   10여년전에 내가 연변대학에서 개최되는 학술회의에 참가한적이 있다. 회의에서는 해외 류학인재를 어떻게 취급하겠는가 하는 의논이 있었다. 모 교수의 말에 의하면 연변대학에서 강사를 하다가 일본동경대학에 류학한 K씨가 연변대학에 돌아올 의향이 있는데  해당한 지위와 집을 마련해 줄것을 대학당국에 제기하였는데 결국에 대학에서는 그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하였기에 그는 결국 북경의 일류연구기관에서 취직하여 지금은 중국일류의 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때 회의에서 연변대학 교수들의 K씨에 대한 비난같은 의논을 들으면서 너무나도 옹졸하게 느껴져서 나는 죽어도 이런 대학에는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한 사례를 들면 면년전에 연변대학의 국제교류협력처에 일본에서 석사를 마치고 돌아온 Y씨가 있다. 몇년간의 공작을 통하여 훌륭한 사람이라고 대학내외에서 부터 인정받았다. 헌데 금년봄에 소문을 들으니 그는 연대에 사표를 내고 일본에 다시돌아와 회사에 취기했다는 것이다. 관계자에 그 연고를 물었더니연대의 기준에는 처장이 될려면 고급직함이 필요하기에 석사졸업한 그로서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교수가 되기전에는 처장으로 승급할 가는성이 전혀 없었던거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직장에서 발전전도가 막혀있는 것이였다. 무엇때문에 대학의 행정직을하는사람이 꼭 고급직함을 갖고 있지않으면 안되는가? 많은 사람들은리해가 가지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인재등용 제도가 합리한것인가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연변의 유일한 고급인재 양성 대학에서 마저 이처럼 인재를 중시하지 않고  불합리한제도적 장벽으로 인하여 휼륭한 인재들을 놓쳐버리고 있다면 연변의 발전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심사숙고할 일이다.            (2) 연변의 각급정부와 여러사업단위에서는 시급히 인재유치 전략과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것이다.    인재의 류출을 방지함과동시에 연변의 발전에 진정으로 필요로하는 인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는 중국의 대도시에 비해 일류의 대우를 해주어면서라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일류의 인재들이연변에 많이 돌아 온다면 중장기적으로 연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것이다.   하문시 같은 지방도시에서 할수 있는데 왜서 연변이나 연길시가 못하겠는가?     맺는말: 매력있는 연변을 만들자    연변에서 왜서 인재들이 해외나 국내 연해지역이나 대도시로 류출하로 있는가? 또 해외에서 양성되 인재들이 왜서 연변에 돌아오기를 꺼려 하는가? 필자 당신은 왜 고향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참가하지 않는가? 왜서 연변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돌아갈수 없는가? 내가 직감하는 원인에 대하여 약간 언급하면서 이글을 끝맞히겠다.    1980년대 중반에 북경에서 학업을 마치고 방향선택을 할때 고향에 돌아올 선택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당시에 고향선택을 꺼린 제일큰 리유는 연변에 가면 [주정뱅이가 되여 일생을 일생을 망치지 않겠는가] 라는 우려에서 였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연변의 술문화가 연변의 발전을 저애하는 제일 중요한 요인이 않이겠느냐? 고생각한다. 즉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회적 풍기이다. 지금은 시장경쟁이 치렬한 시대에 먹고 놀며 허송세월을 보내느라면 일생을 망쳐버리기 쉬울것이다. 사업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술독에 빠지면 헤여나오기 힘들것이다. 듣는 소문에 연길시의 모 령도는 옆방에 닝겔병과 호사를 준비해 놓고 손님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한다. 이와 류사한 이야기가 연변에는 많을것이다. 우스깨 소리로 들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다. 허나 밖에서 보면 너무나 우숩고 공포스런 이야기며 그런 소문을 들으면 외국인은 연변을 웃을 것이며 연변에 투자하기는 커녕 연변사람과 교류하는데 공포감마저 가질것이다. 내가 사귀고 있는 일본친구들 중에도 연변을 사랑하며연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들과 만나면 연변에 가서 술독에 빠져 병원에서 닝겔을 맞은 일을 미담으로이야기하곤 하지만 동시에 공포감으로 다시 한번 연변에 갈려고 하지않을 것이다. 내자신도 연변에 갈때 제일 근심하는것이 어떻게하면 술상을 피할수 있겠는가 하는 과제이다. 금후에 연변이 선진화하고 연변인민이 문명화 하자면 술풍과 놀고먹는 문화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생활이 풍부하여 먹고 놀고 하는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허나 그런 기풍 때문에 연변의 발전이 뒤떨어지고 연변의 인재가 류출해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연변을 떠나 품팔이를 하지않으면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또 그들이 힘들게 품팔이 하여 벌어온 돈이 놀고 먹는 문화속에서 깜짝할새에 날려나서 가난하게 되면 또 다시 품팔이를 나간다는 소문을 자주 들을수 있다. 또한 월급쟁이가 한달월급의 절반이상이 주변의 생일,회갑,잔치에 부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만약 일본에서 그렇게 한다면 그 가정은 생활하기조차 어려우며 파탄나고 말것이다.    이런 리유 때문에 연변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려고 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닐것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리유의 하나는 경제발전 수준이다. 허나 기실 연변의 소득 수준도 많이 향상되여 살기가 막막한것도 아니라고 보여진다.    연변의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연변을 전국에서도 선진화 행렬에 세워 놓을려면 아직도 해야할 있이많다. 해외에서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살며 고향발전을 위해 일해 볼려는 사람들이 적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해외에서 배운 지식와 경험을 발휘할수 있는 사업조건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또 어떻게 그들이 연변에 돌아가서사업에 성공할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밀어 주겠는가? 이러한 문제차원에서 매력있는 연변을 만들기, 연변을 개조하기에 많은 지성인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정부나 사업단체들은 그것을 정책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2008년 10월 5일 일본 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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