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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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청년경찰'과 ‘색안경' 댓글:  조회:3810  추천:0  2017-09-23
어느 때인가 한 심리학자가 어느 때 가장 분노하는가를 테마로 500명 대상으로 단순임의추출법(简单随机抽样法)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76%가 인격 무시와 인간 차별시었다는  결과를 본 기억이 있다.인간의 일상생활이나 사생활을 살표보면 이 결과치가 뒤틀린  결론이 아닌 같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청년경찰’ 영화가 조선족을 악역으로 내세우고 전체 민족을 악당으로 매도하여 조선족들과 지역 지성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냈다.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로골화한 영화이다.한국인들이 외면하는 힘들고,위험하고,더러운 로동의 고통을 감내해야 되고 싸늘한 시선과 차별과 싸우는 조선족을 범죄 집단으로 취급했다는 이것이다.영화는 손쉽게 사실화 된다는 리치에서 보면 그는 조선족의 민감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한국의 발전, 문화의 동질성 이 3대 요소가 조선족이 한국에 대량 진출한 원동력이었고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출입국 정책 완화와 한국 내 주류사회의 배려도 강대한 외적 추동력이었다.이 물결 속에서 오늘의 조선족 한국 생활은 생계형에서 정착형과 생활형으로 변하고 있다. 이 나날은 조선족이 현지 사회와 상호 이해를 심화하고 자체의 위상을 높여 가는 과정이었고 공동 발전의 력사를 창조하는 장면이었음이 분명하다.이 주류를 불고하고 사라지는 불화에 부채질하는 작태는 시대를 역행하는 반동 소행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요즘 한국의 조선족들도 현지 사회에 부응하고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환경 개선,현지인과 화합,범죄 방지 등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따라서 현지인들의 리해도와 만족도도 높아가고 범죄도 대량 감소되고 있다는 한국 사회의 적극적인 평가도 나온다.그런데 조선족의 개별적 범죄를 민족 전체에 대입하면서 500만의 관객을 향해 왜곡되고 저급한 흥행을 벌였으니 이것은 로동과 차별의 이중고에서 시달리는 량민들의 가슴을 허비는 매무시가 아닐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좋은 사람 속에 나쁜 사람들이 잔존하는 법이다.조선족 속에 분명 불량자가 혼재되고 한국인들 속에도 오합지졸이 뒤섞인다.현실이 이러하니 개별적 강력범죄자를 조선족 전형으로 묘사한다면 한심한 언어도단이고 조선족을 순결무구의 인간군으로 그려놓아도 희극 놀음이 된다.그렇다면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는 그 사물의 속성에 기초하여 연출되어야 함이 기본의무일 것이다.   책임을 진 문화콘텐츠(文化产品) 생산자라면 색안경을 던지고 악당이 있지만 영웅도 있는 근로한 조선족 모습을 가감도 없고 더덜이도 없이 그대로 극화(剧化)하면 어떨가. 상업성,대중성,사실성,예술성이 일체화 된,한국 땅 조선족의 진실한 영상을 본질적이고 미학적이고 해학적인 시나리오로 각색하시기를 한국 예술가들에게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길림신문 2017-9-22  
143    검정개 도투 숭 하라! 댓글:  조회:1866  추천:0  2017-09-14
‘검정개 도투 숭’이란 속담은 ‘검은 개 돼지 흉’이란 사투리적 표현인데 피비판자가 비판에서 모면하기 위해 비판자의 비판을 되받아치는 ‘진공형 방어무기’로 널리 쓰이고 있다.역반응 심리를 반영하는 이 관념이 아직도 민간이나 사회에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맥락에서 보면 그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미 합리한 도덕률이 되는 듯 하다.실생활에서 누가 나를 비평할 때 ‘너 그 주제에 남을 왈가불가할 체면이 되냐!’고 일격을 가하면 상대방은 곧바로 ‘서리 맞은 호박잎’이 되어 쥐구멍을 찾는 장면을 늘 보게 된다.   어느날 사이트를 번지다 타인의 비판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글귀들을 보았다.어느 댓글 란에는 분명 선의적인 비평인데도 불구하고 ‘니 다 뭐라고 지껄거리냐! 진짜 검정개 도투 숭이다’며 역공을 들이대는 위인이 있었다.다른 한 어른은 분명 비난하는 욕설이었으나 “비판을 환영합니다”며 어른답게 화답한다.어느 나라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재야당 의원들이 후보자를 추궁하며 비판하자 이쪽 동아리들은 ‘너는 그리 깨끗하냐? 말할 자격도 없으며 무슨 지적질이냐’라며 말 폭탄을 쏟아냈다.내가 검은 건 사실이지만 너도 검은 색이니 내 검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고속으로 나가는 디지털 시대에 현대 문명의 발전에 부응되는 과학적 비판관을 수립하기 위하여  비판리론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 절실하다고 느끼였다.   보아하니,결함이 있으면 비판할 자격이 없고 자격이 없으면 입을 닫으라는 사이비 리론이 대방의 입을 막는 저지력이 크지만 방어력도 만만치 않다.너희도 검기는 나와 일반인데!라고 면박을 주고 지청구를 들이대면 그 타격에 확실히 배기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그런데 이것이 도리라면 지고지순한 부처님이나 거룩한 하느님 손자 이외에 남을 비판할 수 없을 것이고 인간 공동체에는 결국 비판이 사라지고 온 세상은 너나없이 입은 막고 무언으로 사는 동물세계여야 한다.반전하여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대드는 사람에게 너는 완전무결한 투명인간이냐 질문한다면 그 대답이 어떨가.이 탈시대적 주장이 순환을 이룬다면 오류나 차질은 묻혀버리고 결국 어디가 잘 못 되어 피차가 공도동망(共倒同亡)하는 패착을 두게 된다.    비판에 대한 역공 무기의 하나가 ‘제 코도 못 씻는 주제에 남의 코 씻으려나’는 식의 신경질적 반박이다.모든 인간은 복잡한 자연적 사회적 제한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타인의 시각이 서로 부동하므로 하여 여러가지 사회적 평판과 시비곡직 세평이 뒤따를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당신의 몸무게를 검증하는 지표가 저울추이듯이 내가 어떠한가는 타인의 눈에 나타나는 법이다.비판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세론이야말로 그의 미숙성을 보충하고 오류를 개정하는 최고의 정화제이다.비판에 대한 척력(斥力)이 센 사람일수록 그의 내심 세계는 더욱 황량한 페허이고 행동은 좌충우돌하는 란탕(乱荡)이고 제조물은 불량품이 아니면 말짜 조악품이 된다는 사실(史实)이 너무 많다.   사실상, 찬양을 기피할 인간이 없고 비판을 소납(笑纳)할 인간이 없다.사람은 칭송을 받을 때 흥분신경이 즐거워지고 지적을 받으면 본능적인 심리적 방어기제(防御机制)가 작동하는 것이다.이런 비판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비판,비난,비방 사이의 경계도 상당히 모호하므로 대방의 의도에 대한 판단이 늘 흐려지면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인간이다.이런 원인으로 비판이 사람 사이의 트러블씨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그리하여 리론상에서 비판은 권장되나 그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때문에 사회에는 비판을 보호하는 법제적 장치와 자체적인 의식개혁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며 자아억제를 유력하게 추동하는 문화 환경과 사회적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건전한 비판,이것은 사회의 발전을 추동하고 민주적 조화를 실현함에 있어서 불가결의 전재조건이다. 위하여 ‘검정개 도투 숭’을 해야 하고 ‘도투도 검정개 숭’을 하고 ‘검정개가 붉은개 흰개 숭’도 서슴없이 진행해야만 개방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때문에 이 비판 론리는 생활의 전반에서 불가결의 철칙으로 수립되어야 한다.모택동이 말한 “할 말은 다하고,아는 것은 다 말하고,말한 사람이 죄가 없고,듣는 사람이 삼가해야 한다”는 명언은 우리의 비판문화의 핵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그를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승화시키는 추진기(推进器)로, 문화 대기를 거르는 려과기(过滤器)로 되도록 해야 한다. (끝)   연변일보 2017-9-13
142    조선족 인재의 희귀성 댓글:  조회:1882  추천:0  2017-08-31
사막과 계곡에서 음료수 한병의 가치는 천양지차 이상이다.계곡에서는 물의 실존량이 크고 체내 수분의 소모가 적기에 수요가 적고 값도 싸며 지어는 무상으로 취득할 수 있다.그러나 사막에서는 물의 소모가 크나 존재량이 적고 욕망이 절박하기에 비쌀 수밖에 없다.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상승하고 요구가 박절하면 고가를 호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부르는 값을 내라며 강매(强卖)를 당해도 어쩔 수 없이 수긍 해야 한다.사막에서 목이 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한병의 물과 한덩이 금 가치를 대비할 때 전자의 무게가 얼마나 더 클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유용하고 가치를 가진 재화(혹은 서비스)가 수요에 비해 수량이 적다면 고가로 거래되는 것을 ‘희소성 원리’라고 말한다.다시 말하면 량적으로 한정된 어떤 재화에 대해서 꼭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경제적 주체가 있다면 그는 시장의 평균가격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현상을 흔히 보게 된다.그 재화가 더 가질 기회가 없다거나 적다고 생각할수록 더 희망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고가의 지불도 감행하는 경향은 이 시장법칙이 부추기는 필연적인 구매 심리이다.석유가 물보다 더 비싼 것은 그가 인간에게 대하여 물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데 있지 않고 그가 필요하면서도 희소하기 때문이다. 희소성 원리는 경제 생활에서 이러한 특유의 반사작용을 가지기에 우리들 생활 속에서 시종 세차게 숨쉬고 있다.제품의 재조업자나 서비스 제공자를 포함한 모든 납품자들은 자기의 상품에 희소성 요소를 침투시키기 위해 머리를 짜고 있으며 구매자들을 향해 그 희귀성을 주장하며 우월한 가성비(价性比)를 만들어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다. ‘한정된 공급, 제한된 시간,마지막 몇개’ 등등 구매욕을 부추기는 문구들이 희소성 원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광고 수단이 교묘해지면서 장사에 이골이 튼 상업가들은 적고,귀하다는 수식적 미사려구를 쏟아내면서 소비자를 매료시키는가 하면 날뛰는 재주까지 부리며 리속을 챙기는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는‘일대일로’ 전략의 구도에서 동북아세아 지역의 무역과 물류의 허브(Hub-枢纽)로 급부상한다며 도처에서 정부와 기업이 련동되여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있다.그런데 이 연선에 60여개 나라가 망라되고 사용되는 관변언어만도 60여종이나 되는데 우리 나라 고등학교에 아직 개설하지 못한 언어학부가 18종이고 한개 대학에만 개설된 학부가 20가지라는 정보이다.이리하여 나라 전략의 실시가 언어 인재 부족의 상황에 당장 부딪치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원래 충분한 언어 인력이 보장된다던 조선족 인재마저 딸리고 있다는 현실에도 부딪치게 된다. 오늘의 조선족 구직자들 대부분은 80년대 아니면 90년대 출생인데 당시는 조선족의 대이동,출산기피,민족어 외면 등 이상(异状) 물결을 이루던 혼돈의 년대였다.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데 인수가 적고 수준이 낮은데다 높은 대우로 영입하려 해도 마땅한 인재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이 력사를 돌이켜보면 후대들이 선택해 준 길에서 에돌아 나오려면  장장 20~30년이 걸리는데 오늘 조선족 인재의 부족이 바로 그 당시 아이들의 미래 선택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 원연(远缘)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민족문화를 탈리하였거나 외면한 이 교훈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후대들의 인생길을 잡아줄 때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그 앞날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선족이 수량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는 여전히 현재지속인 엄연한 현실이다.따라서 조선족 인재의 희귀성은 증가의 일로에 놓여있다.총명하고 성공했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재주는 자기를 잘 알고 자기의 기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비싸게 될 이중언어라는 이 천혜적인 귀한 물건을 지속적으로 고이 간직하고 부가가치를 추증(追增)해야 한다.다시 말하면 조선족은 중한 이중언어를 핵으로 한 이 민족문화의 희귀성을 살리는 데 힘과 마음을 쓰고 돈을 아낌없이 쏟아야 한다. 우리 후대가 민족문화의 가치를 잘 인식하고 그를 자기발전의 자본으로 충분히 활용하는 기반을 구축해 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임을 명기해야 한다.물건은 희귀하면 비싸지고 또 고와진다.값이 가고 아름다운 자원을 영원히 독점한다는 특권이 바로 민족의 양양한 전도를 대변하는 것이다. 연변일보 2017-8-30
141    이중언어는 지능화시대의 부스터(助推器) 댓글:  조회:1525  추천:0  2017-08-31
인공위성이 예정한 궤도에 진입하려면 시동하는 바로 그 시각에 초강력 추진력을 수요하는데 그 장치가 부스터(助推器)이다. 조선족이 변혁과 빈곤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속히 해탈할 수 있었다면 이중언어가 부스터작용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지능시대를 체감하며 조선족만의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의 곱셈작용을 다시 부각시키게 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 련결화, 지능화 등 기능을 주축으로 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통합시키는 생산력의 변혁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云计算), 빅데이터(大数据), 모바일 (移动通信) 등 지능 정보기술이 기계, 제품과 인간을 인터넷에서 융합시켜 사회의 모든 산업 및 행정관리가 소인수화 혹은 무인화 조건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현재 선진국들에서 흥기하는 로봇공장, 무인자동차와 우리 신변의 무인매표기, 무인행정서비스 등도 지능사회의 발단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인간의 창조 령역까지 뛰여들었다. 이 변화는 최우선으로 일자리 지형에 충격파를 몰아오게 된다. 과학연구를 포함한 모든 분야의 인력 수요가 급감하고 산업체는 지역 제한이 없는 원격 관리가 가능해 지며 취직도 국제화되고 있다. 근무 방식도 자택근무, 다회사 근무, 시간제 근무 등 형태로 변화될 것이다. 대개 10~20년 후면 현 직종의 70%가 사라지고 새 일자리들이 등장한다는 예측이다. 미구하여 인간은 인간 자체, 인공지능과 동시 경쟁해야 한다. 지능기기의 도움으로 연구개발과 업무습득이 ‘손바닥 뒤집기’로 쉬워진다. 대신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 대량 수집하고 타인을 리해, 설득시키고 감동시키는 교류 기능이 최고 대접을 받는다고 실천가들이 말한다. 그러면 언어 강자가 일자리의 선택과 피선택에서 우선권을 가진다는 결론을 끌어낼수 있다. 20년을 배우고 30년 써먹는다는 고금어(古今语)도 이제는 옛말로 되고 있다. 로동시장이 글로벌화 되고 로동형태도 와렬되는데 먹고 살려면 일생동안 5개 이상의 직장에서 근무하고 2개 이상의 회사를 동시 근무해야 할 준비가 되여야 한다. 이 절박한 상황을 대비하여 우리는 조선어와 한어 이중언어 진지를 더 튼실하게 구축해야 한다. 준비가 잘 된 자에게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차례지는게 인간세계의 일상사이다. 초읽기로 변하는 시대의 국제화 교류 마당에서 우월한 립지를 다지고 대량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정리하며 협력의 공간을 넓여가는데 필수인 이중언어의 가치는 무량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저쪽의 변화를 ‘강 건너 불 보듯’지나치지 말고 훌륭한 2개 언어의 원어민으로 되는 돌파 작전을 펼쳐야 한다. 길림신문 2017-8-30
140    저급 1등주의의 허와 실 댓글:  조회:1562  추천:0  2017-08-22
지금은 한창 대학 입학생들의 피로연이 분주한 시절이다. 그런데 좌석에 참가해 보니 1등 찬사가 판을 친다. 대학도 1등, 성적도 1등, 대우도 1등… 1등이 아니면 전부 패배자 취급을 당하는 혼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같은 1등주의는 나라의 교육방침과 인재 양성의 터전을 멍들게 하는 기류로서 뿌리를 뽑아야 할 적페인 것이다. 1등주의는 창조와 기여를 간과하고 최고, 최대, 최다라는 허울을 량산하며 다수인의 희망과 도전정신을 무시한 결과물이다. 1등이 우선이고 그들만이 절대적 우세를 점하는 승자독식(胜者独食)의 사회는 혁신과 공생의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진다. 침묵하는 2등, 3등과 꼴찌라는 절대다수의 잠재력이 외면 당하면 필연적으로 인간관계 격차가 확대되고 사회는 심각한 대항성 모순을 안게 되여 대립, 불안, 불만 같은 대중심리가 차넘치게 된다. 지금의 신세대들은 부모의 힘과 재력의 도움으로 1등이 되려거나 또는 1등이 되는 현실을 피면할 수 없다. 또 그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률,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우렬에서 우위에 처하는 경향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공공교육과 사회교육은 1등 편향주의에서 탈피하여 진정 모든 분야의 수요에 따르는 인재교육을 실시하고 창조성과 발전성에 공정한 평가를 내리는 여론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와 교사들이 1등 자트러이너(指导教师)가 되는 성향을 단호히 극복해야 한다. 1등이 찬양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민의 자질교육을 유지부동의 주선으로 지켜야 하고 약자들의 재능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사회적 보장체제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인생살이의 3대 요소는 부모의 힘, 천부적 유전자, 본인의 노력이다. 그중 부모와 유전자는 본인의 선택이 아닌 남이 준 것이지만 본인의 노력은 자신 선택의 몫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부모와 유전자는 상수(常数)이고 본인의 노력은 변수(变数)이다. 리론과 실천적  의미에서 볼 때 누구를 막론하고 이 변수의 크기를 얼마만큼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복불복(福不福) 여부와 삶의 가치의 대소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교육분야마다 인생의 변수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철학을 전달하고 관철해야 한다. 사람마다 어느 한 부분에서 혼자만의 1등이 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과학적 분석이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찾아 기량을 련마시킴과 동시에 계발을 주는 교육을 도입함이 시급하다. 그렇게 나온 1등은 고급적이며 마땅히 제창할 바이다. 바다의 룡과 개천의 룡도 평등하게 룡으로 변신하는 제도와 가치관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길림신문 2017-8-22
139    실향자(失乡者)의 넋두리 댓글:  조회:2605  추천:0  2017-08-11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고향 동네의 보스(首领)가 마을 총회가 있으니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도착하여 출석하도록 하쇼!  지령을 보내왔다.마을의 전답들이 도시 개발의 저변에 깔려 들어간다는 부언이다.하여 내 유소년 시절의 희노애락이 서려있고 청춘의 꿈을 키워주던 고향으로 허겁지겁 찾아떠났다.    사나운 시류에 떠밀려 바닷가 어느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누구이다.오래 동안 부평초 방랑살이의 빗바람을 실컷 마시고 타향살이의 쓴맛 단맛을  만끽하며 떠돌았어도 고향을 전혀 등지고 산 것은 아니다.고향의 변천에 시시로 눈을 주고 그 뉴스를 무시로 렴탐하면서 사모불망(思慕不忘)으로 지나왔다.타지에서 생계가 급하여 허둥대면서도 조용할 때면 늘 진한 향수(乡愁)에 젖어 고향 모습을 그리었고 가고파의 회포로 가슴을 젖히군 하였던 나다.   마을에 들어서니 추억은 살아 숨 쉴 뿐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낯선 아스팔트의 량켠에 주인을 잃은 빈집들이 수두룩하고 세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해 땅으로 가라앉은 집들과 서까래가 처진 모습도 보이는데 빈터에 자란 무성한 잡초가 삭막한 풍경을 그려내며 정신적 공황을 불렀다.뜰과 마당을 어림할 수 없는 터전에서 길건너에 줄지은 현대화 건물을 보며 가슴 속의 고향은 옛날과 오늘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였다.어느 때일가 돈에 혈안이 된 개발자가 돈다발을 내던지고 삼켜버릴 신세,내 사랑하는 고향이 분명 새로운 숙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중 나온 친구와 술좌석으로 직행했다.고향을 떠나 장장 30여년,강산이 세번도 더 변하고 마주한 친구 향친들의 머리에는 폭설이 내렸다.그래도 술잔을 기울이며 안부를 확인하고 깜박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덕담에다 잡다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말 꽃을 피웠다.말말결에 동네에서 아기의 도고한 고고성이 울린지는 어느 옛날이고 70대면 장년,60대면 청년,50대면 소년,40대면 어린애라는 소리다.거의가 땅을 버린채 현대판 디아스포라(离散的犹太人)식 류랑민으로 전락하였는데 인구의 격감으로 기존의 년령대 구분 문법이 허물어 진 것이다.향민들이라 해야 세부득이 사정으로 본가를 지키는 로년자들, 팔자 사주에 따라 움찍거리는 약자들, 고향의 돈벌이도 짭짤하다는 몇몇 젊은이들이 탯자리 파수군으로 남아있다.그러나  어느 땐가 무슨 낌새가 나면 철새처럼 날아갈 그들이다.고향의 존망이 불보듯 뻔하다는 말이다.   농업이 나라의 기본이라며 정부는 갖가지 진흥책을 단골 메뉴로 등장시키나 돈이 으뜸인 향민들에게는 외쳐본다 해야 버럭질이고 군짓이다.역빠르고 잽싸고 상황에 따라 비굴해지기도 해야 하는 세태인데 그 땅뙈기는 언녕 어느 전문인에게 이양되고 모두가 삶의 바다에서 산산히 흩어져 나간다.그들에게 있어서 가난의 티를 벗고 상류층 향상을 위한 생존 투쟁은 아직도 필연적인 미완의 과제인 것이다.이 선량한 향민들이 언제면 희망의 피안에 이르고 그 가족단란의 소박한 꿈은 언제나 이뤄질 것인가.   유명을 달리 하신 우리 선조들,  보리고개 춘궁기(春穷期) 때면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뜨시면서 일년에 300일을 웃도는 고된 로동에 부대끼셨다.그들은 이 땅을 옥토로 만들어 해해년년 풍작을 이룩하고 후세들에게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 풍의족식의 태평성대를 만들어주려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셨다.하늘 땅과 싸워 이 고장을 산좋고 물맑은 안락정토로 건설하여 세세대대의 자자손손이 이 땅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들의 최고 리상이었었다.이 선조들의 혈한으로 얼룩진 희망의 땅들이 건설의 세찬 물결에 말끔이 사라진단다.   그 세월이 남긴 난감한 기억들을 말끔히 지우고 싶다.지난 세기의 50년대 우리의 유치원 시절은 농업합작화의 초기, 어른들이 밤교대 탈곡을 하시다 잠간 휴식이 되면  허기진 배를 채우시려 삶은 무우를 간장에 찍어 드시던 희한한 장면이 새삼스럽다.이 옛일을 젊은 넘들에게 들먹거렸더니.”아니,그 사람들이 머리가 열번 돌고 얼이 백번 빠진거 아니여요? 자기의 땅에서 자기 힘으로 지은 자기 곡식인데 왜 쌀밥을 지어 배 터지게 안 먹어요?!” 라며 두눈을 동그라미로 만든다.“아니야!배부르면 좋은 걸 그들이 왜 몰라! 그것은 그 시대인들의 기성도덕이었고 그 세대가 떠멘 운명이었어.바로 그 나날의 력사를 창조하는 길에서 그이들이 그렇게 쌓아 온 행복의 열망이 개혁개방의 장엄한 서막을 세차게 열어제낀 원동력이 아니였겠냐?” 나의 궁색한 답변이었다.   오늘의 력사를 이어가는 후대들,이들은 풍요의 시대를 즐기면서 비단 같은 포장도로 위에서 자가용을 슬슬 몰고 다니며 그 옛날   장원급제했던 반가(班家) 도령의 금의환향(锦衣还乡)에 짝질게 없다고 자신하며 고을 원님도 부러울 게 없다고 자부할 것이다.현대화 정보기기를 휘두르며 고기 반찬 속에서 야채만 골라집는 세대들이다.새로운 시대,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목표를 가진 후예들 어깨에 가늠이 어려운 고향의 미래가 놓여 있다.   정보사회를 대변하는 스마트폰도 알기 전에 지능사회가 물살을 일구며 몰려오는데 다음 시대의 고향 모습은 무엇일 것인가. 오래지않아 고향 주소는 지도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인터넷 가상공간에나 한줄로 남을 것만은 틀림없다.그때면 우리는 완벽한 실향민이 될 것이 아닌가.   인생의 모년에 파 들고 싶던 안식처,영고성쇄(荣枯盛衰)의 만장 력사를 침잠한 기억의 낚시터,락엽귀근(落叶归根)의 본거지, 이 고향이 가속으로 사라진다. 만감이 서린 가슴을 안고 집에 돌아온지가 이슥한데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위인은 아직도 심한 열병을 앓고 있다. (끝)     연변일보 .2017-08-11일
138    민족문화로 기회비용의 최소화 댓글:  조회:2186  추천:0  2017-07-27
개인 진로의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데 그를 기회비용(机会成本)이라 부른다.인간은 동일한 시간에 두가지 이상의 선택이 불가능하기에 하나만을 택하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대안은 포기해야 한다.례하면 타민족 학교를 선택하면 조선족 학교를 포기하는데 이 결정이 대가로 된다.다시말하면 타민족 학교를 선택한 결과로 조선족학교에 입학하여 얻을 수 있었던 리익 이것이 바로 지불되는 기회비용이다.그러므로 여러 대상 가운데서 최대의 가치항을 선택해야만 기회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이 동네에 70년대에 태어나 유치원부터 타민족 교육을 받은 조선족 친구가 있다 조선어가 깜깜이고 번지는 말구절이란 ‘밥 먹어? 밥 먹어라!’ 이 정도인데 그나마 반버버리 더듬이다.부모는 순수 조선족 고학력자들인데 조선족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조선어와 완벽하게 리탈시켰다.시대적 원인이었을가 조선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아집이었다.그는 동년배 조선족 친구들 거개가 외향형 기업에서 일하거나 외향형 창업을 하고 있는데 수입,사회지위,소비와 문화생활 전반에서 자기는 그들의 바닥을 돈다고 말한다.지불한 기회비용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초년의 진로 선택은 틀림없이 한생을 좌우하게 된다.조선족은 두개 문화 속에 융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책지원을 받는 우위에 서 있다.이 문화가 조선족을 중국내서 한민족 교류의 교두보 지위에 떠밀어올린 것이다.특히 중한 이중언어는 만인이 선망하는 보고이고 노다지이다.이 언어는 배워두고 당장은 필요 없더라도 일생을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도구이고 무기이고 ‘구명보트’이다.인공지능 로봇이 몰고오는 지능사회를 마주하며 이중언어와 민족문화를 멸시하던 패착을 재범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조선족의 이동과 인구감소는 여전히 진행형에 처해있으나 중국의 발전과 세계 일체화의 추세에는 도리어 가속도가 붙고 있다.이것은 조선족 문화에 더 큰 중요성과 필요성을 실어주고 있으며 특히 후대들에게 이중언어를 잘 할 것이 아니라 출중하게 해야 한다는 가치 방향을 제출하고 있다.조선족은 중한 이중언어 분야에서의 패권자라는 충족조건과 민족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충분한 가능성과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중언어의 문화는 민족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지키는 감제고지(瞰制高地)라는 점 명심하고 명기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길은 멀고 느리지만 긴요한 대목은 한 걸음이다”.이 걸음을 정확히 내디디도록하는 부모의 책임은 태산 이상으로 무겁고 높다.자식의 미래 창조는 부모에게 할당된 천직이지만 천혜적인 민족문화로 기회비용을 절감한다는 진리를 한번 쯤 강조해 보고 싶다.  (끝) 2017-07-25길림신문
137    비속해 지는 부조 문화 댓글:  조회:1640  추천:0  2017-07-19
지난 4월 26일 연변일보 6면에서 축의금 부담에 젊은이들의 고민이 깊어간다는 기사를 보고 뒷맛이 씁쓸했다.확실히 오늘의 부조는 명목이 많고 회수가 잦고 액수가 크고 정성이 희박하고 시야비야가 많다는 핫뉴스(热点新闻)이다.말그대로 우리의 부조문화는 이기적 속계산을 앞세우며 빚을 지고,지우고,받고,갚고 하는 천박한 비지니스 관계로 변해가는 현실이다.   원시적인 부조(扶助)는 자연경제 시대에 인근이나 친인들의 관혼상제 행사에 보탬을 주는 뜻으로 약간의 물품을 증정하거나 일손이 모자랄 때 서로 돕는 교환로동이었던 ‘품앗이’가 발단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이 증답의례(赠答仪礼)적인 호조정신이 기반이었던 가치관은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서 당시 미의식으로 민간의 륜리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결과적으로 그들의 부조에도 상부상조라는 교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래도 남을 돕는다는 데 무게를 둔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이고 우수한 문화유산이 틀림없었다.   대략 20여년 전부터 우리의 부조는 명색이 과다하고 부담이 과중하다는 말썽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음주가 과도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었다.얼마도 안되는 돈돈을 부짓돈으로 들고 다니며 취생몽사(醉生梦死)의 나날을 보내고 길바닥에서 후주잡기(酗酒杂技)를 연출하며 술집 순례를 다닌다며 떠들썩하기도 하였다.이 타락적 소비는 어느 일부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였는바 민족 문화로 고착되다시피 하여 조선족 사회가 술에 망한다는 우려의 소리가 무성하였었다.그러나 조선족의 술소문은 해외에까지 자자해도 부조로 진정을 드린다는 성의만은 다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의 부조 사상은 이상하게 번지는데 사람들은 속셈을 굴리고 이해관계를 앞세우는데서 증정의 의미가 반감(半减)으로 줄어들고 낯가림 때문에 부득이 억지로 수응하는 것이 다부분 부조자들의 진실한 자세이다.부좃돈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눈치놀음을 놀고 내가 했으니 받아야 마땅하다는 적라라한 대가적 금전관계로 발현되고 있다.청첩이 ‘채무고지서’로 변하고 ‘강매’ 당하는 불요물(不要物)이 되었고 다수가 눈을 찌프리며 참가하는 것이 오늘 조선족 부조문화의 현주소이다.‘부조인플레션(膨胀)’은 사람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멍에로 되었고 우리의 전통문화는 허위와 탐욕이란 악충(恶虫)에게 잠식당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진실한 호조호혜 기능을 발휘했던 부조문화가 어쩔수 없이 끌려가며 주억거리고 어느 땐가 돌려받는다는 보상 속셈이 뒤따르는 졸부 문화로 변질하는 엄연한 사실, 이것은 간과할 수가 없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초청장이 두려워 지고 회피하고 싶은 일로 되어버렸으니 부조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미 악변(恶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남이 하니 나도 따라야 체면이 서고 부조를 받았으니 변상해야 한다는 되풀이 반복이 오늘 부조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레한 양상이다.상부상조의 문화 세포에 악성변이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묻지않을 수 없다.   조선족의 부조 풍속에는 독균이 감염되었고 금전만능의 혼탁한 세태 속에서 신속한 세포분렬이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오늘의 이 민폐는 결코 순간 지나는 일진풍(一阵风)이 아니고 갑을 사이의 간단한 수수관계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마당인데 지도층에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시대적 사명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문명사회 건설을 추진한다는 취지에서 정책적 대안을 수립하려 한다면 안 될 것인가?풍속이란 ‘상풍하속(上风下俗)’으로서 위에서 바람을 쏘면 민습으로 고착된다는 말이 있다.그렇다면 사회를 선도하는 공직자들이 총에 맞을 비장한 각오를 수립하고 솔선수범하여 적게 주고,적게 받고,적게 참가하고,적게 청하는 모범이 되지 못할가?하물며 사람마다 찬사를 보낼 터인데야….   부조는 인간의 삶에서 피치못할 통과의례(通过仪礼)이고 세상이 뭉개지듯 변해도 영원히 존속할 문화이다.위하여 우리 민족은 누구도 기형적으로 주고받고으며 회전상승하는 부조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아픈 결단을 내려야 한다.우리의 부조문화 토양에서 비속한 속물주의 세포를 단연히 제거해야 한다.  (끝) 연변일보 2017-7-19
136    연변축구, 어제의 자신을 이겨라! 댓글:  조회:1633  추천:1  2017-07-11
인류의 4분의 1 이상이 관전하거나 시청한다는 월드컵세계대회를 보면서 축구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팬들이 열광하고 온 지구가 달아오르는지 리해하지 못한다.스포츠라면 숙맥불변(菽麦不辩)이고 구경해도 ‘물 건너 불 보듯’하는 관조자인 나에게는 다만 체육일 뿐이다.뽈과 같이 들썩거리는 정서 변화와 피끓는 함성 그리고 스릴이 넘치는 공방 순간의 격정을 보면 확실히 축구가 그 민족과 국가에 있어서 고도의 합창을 끌어내는 장엄한 교향곡인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 중국슈퍼리그에서 연변 축구의 실패 빈도가 높아지면서 연변의 최고 자랑이라며 축제 기분에 들뜨던 축구팬들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승리와 희망의 함성을 울리던 극력분자들마저 장탄식을 늘어놓는데 김빠진 뽈을 련상시킨다.매체를 살펴봐도 선수들의 사기가 상당한 저조에 처했다는 강한 신호를 감지하게 된다.만약 이러한 정서가 자신감까지 떨어뜨린다면 향후의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고 연변축구의 이미지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잃어버리긴 쉬워도 찾아오기란 결코 쉬울 수 없다.   축구는 간단한 골 개수로 승패를 가름하고 수준의 높낮이를 명료하게 평가한다.그러나 그의 준비,진행,결과 판정의 과정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작용을 하게 된다.속도,력량,기술,팀웍(团队协作),전술,심리소질,운수 등 가시적 요소들과 경제수준,문화특성,사고방식 등 음성적 요소들도 강력히 작용한다.거기다 운이 안 따르고 재판의 오심을 당해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그러기에 최강을 자랑하던 선수단도 삽시에 나락에 떨어지고 셈에도 안 들던  팀이 수상대에서 우쭐하는 장면도 보게 된다.실패와 승리를 예측하기 어렵고 천만갈래 불가예측의 우연성도 축구의 묘미와 매력이 아닌가 본다.   이처럼 변화불측의 축구에서 실패했다면 단순히 감독이나 축구팀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제,정책,문화 환경과 관중 축구에 대한 관념 등 다방면의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그리고 관계 부문들과 관중과 팬들도 반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이리하여 승패이 여부를 떠나 축구의 각종 요소의 발전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이렇다면 대표당하는 그 군체의 기대 속에서 최대의 성과와 최대의 행운을 끌어내는 축구 단체 즉 사실상 우수팀이 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축구 강자의 최종 징표는 승리이지만 강자가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약자가 꼭 지는 것이 아닌 것이 축구이다.그렇다면 진정한 강자는 실패를 담담히 받아 들이고 자기의 부족을 지속적으로 메우며 내일에 더 나은 내가 되는 팀이라 말할 수 있다.위하여 남을 이기기 앞서 지속적으로 어제의 나를 이기는 연변축구야말로 진정 필승불패적 지위에 섰다고 단언해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끝) 길림신문 2017-7-11
135    ‘조선어경제학’ 댓글:  조회:2248  추천:0  2017-07-07
고향에 용무로 갔다가 친구 모임에 참가하였다.모두가 지긋한 년상약(年相若) 은퇴자들인데 잡다한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말말결에는 ‘자랑중의 으뜸’이란 아들딸 자랑이 상당한 비례를 차지한다. ‘자식 자랑이 많아지면 쓸쓸한 로년’이란 사실감이 곧이곧대로 드러난다.   그 중 한 친구의 이야기가 귓맛을 당기었다.아들은 조선족 학교가 없는 고장에서 태어나 애초부터 조선어 교육은 뒷전이었고 부모들이 자모음과 생활어  몇마디를 배워준 것이 고작이었다.그래도 대학문은 나왔는데 일자리가 여의치 못하여 고민하는 와중에 친척의 주선으로 부산의 한 회사에 입사하였다.초기에는 의사 불통으로 심각한 충격과 트러블로 고민했으나  건성으로 배워둔 뜯개말들이 밑천이 되어 목잘리는 봉변은 모면하였다.이리하여 한국어 공부에 정진했더니 불과 2년 만에 이중언어를 소유자로 받들리어 대중국 업무 담당자로 발탁되는 행운이 따랐고 매달 월급에다 두툼한 보너스를 얹어 받는다는 얘기다.대수 배운 말 덕에 대박몽을 이뤘으니 ‘호박이 넝쿨째’로 떨어지는 재수가  붙었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한국 업체의 대중국 진출과 조선족의 외국과 도시에로 대이동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였으나 이것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피치 못할 단계이고 경제난으로 고전을 겪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정확한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생계가 박절했고 돈벌이가 급선무였다.이 사회적 대류동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새생활을 꾸려가는데서 최우선인 경제적 기초를 확보하게 되었다.바로 이 생계 전쟁에서 다른 게 아닌 이중언어가 제일의 장사 밑천이었고 산전수전을 이겨가는 최상의 도구였다.오래 동안 페쇄된 체제 속에서 홀대를 받던 조선어가 개방과 국제화 물결을 헤가르는 악전 속에서 참값을 발휘한 것이다.   신구 체제 전환의 고비에서 조선족의 이중언어의 막중한 작용은 조선족이 국제 교류와 모든 경제 활동에서의 맹활약을 끌어내는 촉매였고 결과적으로 민족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튼튼한 경제 기반을 구축하여 선진 민족의 실력을 키우는 데서 복합영양제의 역할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이중언어를 확보하였기에 개혁개방에서 제시한 경제발전과  빈곤해탈이란 목표를 앞장에서 달성하고 나라 전략에 급속히 부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을 추동하는 선두주자로 될 수 있었다.국내건설,해외진출, 대외교류에서 물론이고 생산,교환과 소비의 전반 과정에서 일으키는 경제적 효과를 본다면  우리 민족언어의 자본적 역할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가시화가 될 것은 틀림없다.   국제적 시각에서 조선족을 중국내 세계 한민족의 교두보로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명실이 상부되는 평가이다.한민족 사회가 중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특히 경제적 교류를 진행하는 방면에서 조선족 사회는 튼튼한 기반이 되여왔고 우리 나라의 발전과 국제적 위상을 수립시키는데서 자타가 공인하는 기여를 하였다.오늘 우리나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일대일로’ 경제공동체에서 새로운 거물로 부상하고 있다.이 14억 인구의 땅에서 우리 민족사회가 한민족의 대중교류의 확고한 근거지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나라의 발전과 민족사회의 동시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장원한 의미가 있다.여기서 결정적인 에너지 원천은 이중언어에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일반적 경향을 보면 민족어를 단순히 사유와 교제의 수단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러나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 지고 언어의 보급 응용도 선명한 산업화 추세로 이루는 형세에서 보면 언어의 경제자원적 성격이 증폭되고 있으며 그를 리용하여 경제적 효과성을 추구하는 패러다임(新时代思想)도 신속히 확산되고 있다.이것은 경제가 발전하고 국제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언어의 산업적 작용이 고양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최소의 투입으로 특정된 경제적 목표를 성사하고 그 성과를 극대화시키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조선족의 발전 과정을 보면 경제와 언어 사이에는 밀접한 련동 관계가 발생하고 언어 역시 경제적 가치,효용,비용,수익 등 활약적인 요소로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만약 어느 학자나 문사가 경제학 시각에서 ‘조선어경제학’  론저를  펴낸다면 열심히 읽을 심산이다. (끝) 2017-07-06 연변일보
134    대학 진학과 일터 댓글:  조회:2149  추천:1  2017-06-21
년부년(年復年)으로 치러지는 대학 입시장 문어귀에는 자식의 대박을 기원하여 몰려든 부모들이 어디다 찰떡 도배를 하는 장면이 가관 그 자체이다.아이의 피가 되기 싶은 갈망과 타오르는 향학열을 잠재울 길 없어 안절부절하는 그 모습에다 누가 야유하고 시야비야 론지를 부칠 리유가 없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나 모두가 공주이고 왕자인데 립신양명(立身扬名)하고 출세 가도를 달리라는 어시들의 주옥같은 애심에야 티끌 하나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던 옛날에 누가 대학에 진학했다면 온 동네 남녀로소가 누구 집 누구가 하늘의 별을 따왔다고 서로 전하며 야단을 때리던 기억이 그냥 새삼스럽다.말그대로 대학 진학은 신분의 수직상승을 위한 사닥다리이며 선망하는 직업을 꿰차는 지름길이고 번듯한 지위를 예약하는 보증수표였다.사무직이나 공무원 혹은 웬만하면 엄두도 못내는 전문 직종의 화이트칼러(白领层) 계급은 굳혀놓은 것이고 그 부모들도 이 세상 복을 독차지하는 기분일 것은 당연하였다.이처럼 대학이란 학위효과를 통해 사회의 상류에 오른다는 고착 관념은 바로 력사를 초월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인의 시대사상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변하여 지금은 중증 장애자 이외에 줄에만 서도 대졸 모자 쯤은 걱정이 없다.도리어 우수생 고급인력마저 공급과잉인 시대가 도래하여 석박사의 기발을 들고 다녀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탄식에 거세지고 있다.이리하여 대졸자 실업이 갈수록 뚜렷한 사회 문제로 되어 현재까지 탄탄대로를 달리듯 확 풀리는 해법을 내놓은 위인이 없다.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인간세계 통치자로 군림해도 근본적 해결 묘책이 없다는 맥빠진 소리들 뿐이다.그렇다면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적 의식의 변화나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않는 자체적 노력이 선결되어야 취직의 오리무중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이다 .   생계가 급하여 허둥대는 사이에 디지털정보시대도 뒤로 밀려가고 제4차산업혁명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무인매표소,무인은행창구,무인자동차,로봇생산라인 등등 새 세기를 상징하는 차디찬 기기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 전통적 일자리에서 인간을 몰아내고 있다.지능화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주의보이다.첨단기술이 현재의 대부분 직종을 력사의 저변에 매몰시키고 새 형태의 직업이 속속 만들어 질 것임이 틀림없다.이제 바로 사회의 산업 풍경이 뒤집히듯 바뀌고 문화 생태와 삶의 방식이 ‘뽕밭이 바다 되듯’ 변해 갈 것이다.오늘 등을 밀어 대학문에 들여보내는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극소수 최정예 그룹을 제외한 이외 모든 학문적 지위가 바닥을 치는 삶을 살아야 한단다.   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대학의 초기부터 자기개발에 몰두해야 한다.자신의 능력,적성 및 특성 등을 확인하여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세심하게 진행하여 학교 시절에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기초 직업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오래지 않아 판단과 추리 등 인간만의 지적 령역의 다부분마저 인공지능이 담당하고 일반적 직종 거의는 지능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때문에 자신만의 개성적 목표를 수립하고 외부 세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상호 협력을 진행하는 인맥을 구축하고 여기에 수요되는 감성교제 능력을 육성하는 것으로 참신한 직업 세계를 대비해야 한다.   조선족의 이중언어는 두 개 외국어로 충분히 이용되고도 남음이 있다.새 시대에는 지능화 기기들의 강력한 도움으로 기술이나 실무 기능을 장악하는 것은 전례없이 간단해 지게 된다.그러나 언어는 글이나 보고쓰고 하며 일조일석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 환경 속에 푹 젖으며 온몸에 스며들어야 장악되는 것이다.우리의 이중언어는 이런 특정한 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존속하는 데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다.이리하여 두개 언어의 원어민으로 불리어지는 조선족의 민족 가치는 국제화 속도와 정비례로 상승하는 사실이 날로 선명해 진다.조선족의 이중언어는 력사적 급변의 선와(漩涡) 속에서 침몰 탈출을 위한 ‘비상구명구(应急救命具)’가 아니었던가!   100년은 몰라도 10년, 20년 앞은 보며 살아야 할 세대들, 다가오는 불확실성 세계를 사는 기법을 배워야 하고 기성 새대도 이 시대적 사명을 함께 안아야 한다.오늘의 대학 진학은 과거 식자관(识字关) 수준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지금 키워드(关键词)는 대학이란 계관이 아니라 심각한 자기개발과 정통한 이중언어이다.이것은 과제가 아니라 과업임을 가슴벽에 새겨지도록 명기하자! 2016-06-16일 길림신문
133    인재관의 재정립 댓글:  조회:2344  추천:0  2017-06-15
인재가 지식,지혜와 지력의 담체(担体=载体)이며 사회 발전을 추진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관념이 보편적 리성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더우기 국제화 경쟁 속에서 그 가치는 가파로운 상승선을 긋고 있으며 인적 자원에 대한 전략과 정책도 나라마다 끊임없이 다원화 다양화로 나가고 있다.   1.인재의 정의. 중국어와 한국어 사전에서는 인재를 학식,능력이나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며 人才 혹은 人材로 표기되는데 이는 동일한 단어의 두 가지 표기이다.그러나 최근 사회적 분업과 계층이 복잡해 지면서 인재는 성숙된 인재(人才)와 인재의 소지를 갖춘 인재(人材)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짝 제기되고 관련 연구는 반드시 人才와 人材를 부동한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 견해는 일반적인 동조를 받고 있는바 보건대 현실의 변화에 부합되는 의미확대 해석이다.그리하여 기존의 인재란 개념의 내포를 세분화하고 외연을 확장하여 적재적처(适材适处)에 쓰이는 모든 기능자들을 마땅히 인재 범주로 분류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된다.   2.협의적 인재와 광의적 인재 일반적으로 고층차 전문인들을 인재로 지칭하는데 이것은 기초사회 각 분야의 선행자(先行者,善行者),걸인(杰人),달인(达人),장인(匠人)들이 외면되는 협의적 인재관이다.최고 과학기술의 집적인 우주선도 우수한 연구 개발자와 수만개의 최정밀 수제(手制) 부품을 제조하는 순수경험을 루적한 노동자들이 수요된다.이 비행물의 어느 부분에 극소 오차에 생겨도 훼멸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그러므로 불가결 필수적이라는 의미에서 지위의 고저를 떠나서 참여한 전체 성원들에게 인재 가치를 부여하는 광의적 인재관 수립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재의 개발과 육성의 사업은 사회의 모든 계층을 대상하여 누구도 인재로 편입될 수 있다는 리념을 동시에 보급해야 한다.광의성,층차성,상대성,군체성 이것이 새시대 인재 군체의 특성이다.   3.인재의 선발 중국 고대의 ‘천리마는 상존인데 백락은 드물다’는 명언은 사회 생산력이 락후하고 지역 간 소통이 페쇄된 환경에서 산생한 한 시인의 한탄이다.그러나 아직도 인재의 선택에서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 의뢰하는 이 관습과 경향이 상당히 농후하다.   ‘백락의 말 선택’의 구습을 타파하고 ‘경기장에서 말을 선택’하는 법적 제도를 확립되어야 한다.인재 선발에서 공개성,공정성,공평성과 경쟁성을 가진 메카니즘(机制)를 구축함으로서 인재들이 백락의 출현을 애처롭게 기다리는 현상을 근절해야 한다.   4.인재의 자아교육 디지털 지능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오늘 지공공자금을 대거 투입하여 후속적 교육을집중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비효률적이고 다량의 랑비를 조성하게 된다.지속교육 혹은 평생교육은 자아의 몫에 맞기고 불적격자는 가차없이 탈락되는 위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특수한 전문 교육을 제외하고 이미 선발된 권역(圈域)내 성원의 범위에서 진행하는 공공교육은 종식되어야 한다.   인재들의 활력소는 우승열패(优胜劣败)의 법적 장치이다.오직 이 기초에서만 인재들이 부단히 자아 제고를 시도하며 그의 소질과 덕행을 제고할 수 있다.   인재 영입의 다원화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인재의 영입에는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는데 특히 호구,주택,높은 대우 등을 조건으로 인재를 본지에 영입하는 방식은 신속히 락후로 되도 있다.지역적 장벽을 타파하고 기술자문,기술지원,지재권 이양 등 계약 형식으로 필요한 기술적 혹은 전문적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대적 방식으로 부상되고 있다.   현재 소속 관계와 거주지를 불변하고 여러가지 계약을 리행하는 탄력적 방식으로 과학 기술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이 광범히 류행된다.이것은 인재를 영입하고 지혜를 인입하고 연구성과를 도입하는 하는 것으로서 선진적이고 다각적인 영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인재 문제에서의 악재 뒷문거래와 친분에 따라 사람을 등용하는 인재 문제에서의 완고한 적폐를 제거해야 한다.이 진부한 악습은 직위를 사고 파는 부패의 배양기(培养基)로서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요컨대, 공공인재,관리인재와 전문인재에 관련된 모든 사업에서 공공인재 전략은 전 사회 인재 정책의 축도로 되고 있다.그러므로 공공인재 등용 정책의 최적화,제도화,법제화는 시종 그 사회의 인재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끝)
132    물질과 정신의 량극화 댓글:  조회:1580  추천:0  2017-06-11
이 동네의 막심한 교통 정체와 체증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부서가 수고하는 모습은 확연한데 그냥 일가월증(日加月增)의 일로를 걷고 있다.보이는 원인은 차량의 폭증에 있으나 리면을 보면 유형적인 물질과 무형적인 시장의 수급관계,관리체제,시민문화 등 수많은 ‘부품’들이 치륜같이 맞물리어 일어나는 련쇄반응의 결과이다.그 중에서 물질과 정신의 격차가 두말없이 중요한 발생 요인이 되고 있다.   어느날 운전 중, 사거리에서 차가 막혀 전진할 수 없었다.영문을 알아보려 내려가 보니 어느 택시가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려다 접촉사고를 일으킬뻔했는데 분노한 뒷차 기사가 BMW(德国宝马)차를 택시 앞에 가로 세우고 운전사에게 욕설을 퍼붇는 연출이었다.주인공은 40대의 미끈하고 번듯한 미남인데 택시 기사가 미안하다고 굴신 동작을 반복하며 사죄하는데도 마다하고 그냥 쇠막대같은 식지로 찌를 자세를 취하고 된욕에다 쌍욕을 섞어가며 몰아세운다.한참 “불 덴 소 날뛰듯’하다가 곁사람들의 항의가 어린 권고를 듣고서야  ‘ㅁㄹㄱㅂ’ 육담을 뱉아버리며 차에 오른다.사건의 원인 제공이 누구 몫인지를 떠나 근본은 강자가 약자를 경멸하는 모욕극(侮辱剧)이었다.   혼잡한 거리에서 택시가 곡예비행을 하는듯 빠져다니는 것은 례사로운 일이고 뭇사람들이 속으로 힐난하면서도 묵인하는 것이 이 동네의 관례이다.하루살이가 급급한데 원래 질서를 고지식하게 고집하다 보면 ‘밥 먹고 죽 벌이’도 모자란다는 것이 택시들의 론리이다.그렇다 보니 교통사고의 상당한 부분은 택시차의 차질이라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그건 그렇다쳐도 외제 고급차를 버젓이 몰고 부를 뽐내면서 약자의 차질을 틀어잡고 올리치고 내리치며 욕보이는 그 모습이 가소롭기만 했다.대방이 죽도록 사과한다면 꾸중 쯤으로도 지나치는 건 항간의 상식인데 자기 힘에 턱을 대고 치욕을 안겨주는 작태가 아닌게아니라 볼만하게 꼴불견이다.이 강자와 약자의 격돌에 우리 사회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단면이 응축되었다고 사무치게 느꼈다.   사회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려객운송 택시업이 부단히 흥성하고 부유층의 외제차들도 다량으로 증가되고 있다.하지만 차량의 증가에 대비해 운전 문화가 너무 미흡하다는 현실이다.위의 사례들이 바로 삶의 수준이 높아졌으나 심적 소양이나 행위 방식은 갈 길이 멀다는 명증이다.물량의 절대적 증가와 의식의 상대적 락후라는 이 차이가 지나치면 경제 활력의 발목을 잡을 것은 물론 사회의 안정에도 거대한 역작용을 한다는 도리는 유물사관적 정의이다.특히는 빈부 격차에 부채질하고 계층간의 대립을 조장하는 호르몬(激素)로 전화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 발전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으로서 이것은 물질과 정신의 두 방면의 풍요를 전제로 한다.재물의 방대한 집적과 화페의 대량적 축적이 결코 행복도를 가늠하는 수치로 될 수 없다.빈자와 부자간,강자와 약자간의 소통이 단절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사람들이 리해관계에 급하여 나만의 터전에서 해매일 때면 탐욕,불안,공포,침체와 파괴등 사회악이 성행하고 사회는 대항적 정면충돌이 폭증하는 어수선한 세상이 된다.때문에 정신적 에너지를 키우는 것은 행복을 바라는 인간들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도덕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총재부의 량이 커질수록 소외 계층의 반발 심리가 정비례로 커진다는 법칙도 명기해야 할 바이다.    성숙된 사회란 부의 대량적 루적이 아니고 물질과 정신이 완미하게 결합되어 공정과 평화가 넘쳐나고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다.이것이 바로 과학적 발전이고 경제적 성장 의지와 도덕적 성장 의지가 이어진 리상 사회이다.즉 잘 살려는 의지와 정확히 살려는 의지가 불타는 공동체이다.정신과 물질의 격차를 줄이는 사업을 전투처럼 벌이어 망각의 대기 속에서 부서진 인륜 도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풍요라는 리(利)와 문명이라는 의(义) 정신이 동시에 빛나는 사회가 우리의 발전 목표이다.그렇다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량극화를 해소하는 시스템 공정, 도덕의 빈곤을 뿌리 뽑는 프로젝트,이 과업을 물질적 가난 구축을 위해 진행하던 전략적 사업과 동일한 시점에서 정복하는 전역을 벌어야 할 때인 같다. (끝)   연변일보 2017-6-7
131    디지털 시대의 창의성 배양 댓글:  조회:2614  추천:0  2017-05-24
요즘, 90년대생들과 80년대생들의 업무 특성을 보면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하였다. 전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는 무결한 악돌이나 독서나 필기에선 여무진 베돌인데 문장을 만들라면  단문을 쓰라해도 오사(误写),오자(误字),별자(别字)투성이라는 이것이다.문제가 생겨도 전자 기기를 뒤적이며 기성 해법이나 해답을 찾느라 헤매인다.후자도 물론 정보 기기가 필수지만 그래도 책을 보고 메모에 정성을 넣고 문장도 잘 만들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머리를 굴리며 분석하고 해결책을 고안해 낸다.물론 다른 상황도 있고 세대와 경력의 차이도 있지만 기본적 창의력 차이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이 동네 고등학교 교사와 이 현상을 담론하였는데 그는 디지털정보 기기의 광범히 보급에 따라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부수적 현상이라고 단언하였다.지식과 지력의 성장 단계에 처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얻은 짧은 정보에 익숙해 지면서 기억하려는 의지가 약화된 두뇌 현상으로 보고 있다.현재 젊은이들의 정보 수집과 처리 과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검색, 복사, 붙여넣기로 일관된 단순한 조작 과정으로 되어버리고 장문 읽기,쓰기와 기억의 뇌력적 심로(心劳)를 외면한 이것이 직접 원인이라는 것이다.그러니 자체로 새 정보를 만들기보다 외부적인 기존 정보 찾기에 물젖어 있다고 한다.결국 실시간의 간단하고 피상적인 정보가 란무하고 짧은 문장에 유혹된 결과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덴마크·노르웨이 등 서구 선진국의 젊은 층들의 지능지수(IQ)가 199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는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의 지능이 상승하리라는 기대와 정반대 결과이다.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게임기,컴퓨터,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구의 과도한 사용이다.하여 IT 업계의 거장들도 자녀들의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며 극력 종이책 독서와 필기 및 사고를 권장하고 있다.독서를 하고 책장을 펼치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어야만 주의력을 배양하고 감각 기능을 발달시키고 사고의 융통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보 기술의 신속한 발전에 따른 디지탈 기기의 등장에 따라 전통적인 교사(教师)와 책 중심의 아날로그식 교육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오해하는 세태이다.그러나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데서 아날로그식으로 읽고,쓰고,풀고,토론하는 식의 교육은 영구불변의 진리라고 심리학자들도 말한다.교육은 분명 미래 지향적 사업으로서 지식에 대한 습득과 지능의 기본 전제인 주의력과 기억력과 사고력을 배양한다는 영구적인 의무를 완수하여야 한다.위하여 정보기기의 지지아래서 책장을 번지는 독서와 손을 써가는 필기와 풀기를 기본으로 한 새 사물의 창조 기능을 키워야 한다.이런 정보야만이 장기간 두뇌에 남아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적 사유의 ‘원자재’로 승화된다는 진리는 기억해야 할 바이다.   창조적인 지식과 정보로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승자가 되는 길이다.교육 단계에 있는 후대들에게서 발생하는 독서의 감소와 단문 중심의 글읽기 습관은 우려해야 할 심각한 사안이다.책에 의한 공부는 단순히 글읽기를 넘어서 사색,평가,추론 그리고 문제 해결을 포함하는 복합적 론리적 과정이다. 디지털 교육이란 이 아날로그 교육이 중심이라는 이 방침을 이탈하면 창의력 인재가 아닌 오직 정보의 전달 기능만 소유한 로동자로 자랄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디지털 기기에도 익숙하고 아날로그식 활동에도 능한 창의성과 감수성을 키워야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일군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은 명기해야 할 바이다.   현재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리용이 인류의 지적 능력을 훼멸하는 ‘판도라상자(潘多拉魔盒) 로 된다는 개연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인류가 디지털 문명의 풍요 속에 사고를 게을리하는 둔부(钝夫)로 된다 한다면 ‘기나라 사람의 하늘이 꺼질 근심’일테지만  지능화 디지털이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서 아날로그식 교육을 지켜가야 한다는 필연성과 필요성이 눈앞의 현실로 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후대들에 대한 아날로그식 교육 특히는 독서와 필기는 선택이 아닌 필연의 교육적 가치이다. 우리는 차디찬 디지털을 감성이 풍부한 아날로그 교육에 적용하여 지능화 시대를 주도할 글로벌 인재를 키워가야 한다.. (끝) 2017-05-20 훅룡강신문
130    효도의 최선책、차선책、차차선책 및 발전책 댓글:  조회:2351  추천:0  2017-05-17
전통적 효도에는 선조를 공대하고 타계 후에도 어김없이 봉상(奉尝)하는 효행이 포함된다.그러나 세월이 변천을  거듭하면서 오늘의 그 내용에는 심각한 변화가 발생하고 방식도 다양해 지고 있다.과거에는 선배들을 잘 모신다는 덕목에 도덕적 무게가 실려있었지만 오늘에는 노인들의 노후 보장이라는 합성명제로서 풀이되고 있으며 법제와 도덕규범을  주선으로 하는 노인복지란 과제로서 정부사업의 의사의정에 오르고 있다. 사회의 변천으로 가족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화에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평균수명의 증가、인구의 고령화、사회구조의 변화、 경제구조의 변화,경제의 파동성 등으로 하여 노인에 대한 가족의 직접적 부양 기능이 날로 약화되고 자식들이 부모와 동거하는 환경이 대대적으로 축소되어 재래적인 가족관은 거의 전복되고 있다.하여 가정이 노년 부양의 주요 책임을 지지만 정부와 민간적 차원에서도 참여한다는 여러가지 대안들을 제출되고 있다.따라서 노년 생활도 자식과 동거,독거,양로원 및 기타 복지시설의 의탁 등 그때그때 자기 형편에 알맞는 시의적절한 대책으로 방향을 찾고 있다. 하여,사회 관념과 생활 환경이 하루 다르게 변하는 때  불거지는 노년부양 문제에 대하여 효도를 정신 골자로 하는 부양자와 피부양자 및 정부와 사회가 공감하는 적실한 시책과 새로운 가정철학의 확립이 절실하다.   A.최선책 부모들의 제일 희망은 자식들이 공부、명예、권력、금전 등 모든 것을 거머쥐는 영재가 되는 것이겠지만 결국은 제 노릇을 거뜬히 해내며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때문에 자식으로서 내가 잘 자라는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 첫째 효도이고 ‘자식농사 풍년’이란 자랑거리를 안겨 주는 것이 최상의 공경이다. 자기 사업을 정착시키고 번영시켜야 힘이 커지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 부모에 대한 말그대로의 부양이 이루어진다.내 지갑이 두둑해야 대접 받는 부모가 흡족할 것이고 내 주머니가 달강거리면 효행은 효행이되 부모님의 가슴앓이로 전화된다.돈이 제갈량인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러한 세태인데 ‘궁하면 조상 제사 못 지낸다’는 세상사를 명기해야 한다. 어느 나라는 설문조사로 효도의 베스트3(最优前3位)을 뽑았는데 ‘부모 걱정을 없애는 것、자기 육신이 건강한 것、부모님을 자주 방문하는 것’ 등 순위었다.현실미가 풍기는 이 잠언은 들어 둘 말이다.   B.차선책. 노인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부양자 노인들의 의식변화도 부차적으로 중요하다.부자간에 바라는 효도 목표와 기준이 변화되고 있으며 신세대가 개성을 추구하고 전통과 리탈하는 어쩔수없는 경향을 인정해야 한다.노인들은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는 기회가 급속히 줄어드는 현실에 립각하여 그들과의 관계를 정립함으로서 오해 발생을 피면해야 한다.  노년자들은 그때그때의  생활 문제를 자식들과의 관계를 상경하애(上敬下爱)와 지독지정(舐犊之情)이라는 륜리 기준에서 되도록 독자적으로 타개해야 한다.자식들께 의존하지만 최대한의 자력으로 노후를 만들어가고 자신만의 생활 령역을 지켜기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결국 어떤 방식이든지 모두가 한계점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자식들의 복잡한 상황을 잘 고려하면서 자기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특히는 부양을 받지만 자식과 사회의 형편을 염두에 두고 걱정하고 심려해야 한다.   C.차차선책 전통적인 윤리는 변화에 흔들리어 이젠 그 효도관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으로 되었다.​이 과정에서 부모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혹은 유산이나 돈에 눈이 멀어지는 일부 겨레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더구나 독거하거나 자립이 어려운 부모를 내물라라는 패륜적 남녀들이 있다는 소문도 간혹 들려온다. 이 사실은 노년자 권익의 보호를 위하여 특정 책임자들에게 자율적인 도덕적 책임을 강요하는 동시에 타율적인 법률로서 강제집행을 명령할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물론 이런 상황은 복잡한 조건에  따라 조성되지만 사회는 여론이 질타하는 륜리적 분위기를 만들면서 부양 의무에 대한 법제적인 위엄성을 조성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을 대비하여 부모자식 간에 자산을 구분하여 소유하거나 어색하고 씁쓸하더라도 부자간 혹은 자녀들 간에도 효도계약서를 작성하여 책임을 확인하는 것도 까다로운 처리에 도움이 되게 된다.   ​ D.발전책 노인복지는 개인과 가족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여 풀어야 할 사업으로서 안정된 국가적 시스템이 필요하다.여기는 유력한 정책 수립과 강력한 여론 환경이 수요되며 행정수단으로 각 당사자들의 책임을 고착시키고 형평성을 조절하는 정부의 행동이 필요된다. 노인복지는 돈을 준다는 사은(赐恩)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시스템공사이다. 여기는 문제 발생 이후 해결해 나가는 수동적 서비스와 현실과 미래를 파악하고 사전 대책으로 예방하거나 발생 즉시 비상시스템이 작동하는 주동적인 정부 서비스가 포함된다.이런 주수동(主受动)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대응 구조는 노년문제에서 악재 발생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고 사회적 원가도 대량 절감하는 특효를 보게된다. ​  무의탁 노인들은 정부가 꼭 부담할 사안이지만 전체적인 의무에서 보면 가정、사회와 민간이 분담하고 각종 상업방식을 도입하여 유한한 자금과 자원이 노인복지에서 최대의 작용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례하면 정부 경로시설,민간 양로원,노인복지 기업,노인복지 학교 등등의 방법으로 노인들의 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그들을 고립감과 소외감에서 해탈시키는 최대의 환경조성을 해야 한다.그들에게 최대한의 자립적 능력과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고 불의의 사건에 자아 대처하는 기능을 제고시켜여야 한다.이러한 다양한 조치들의 종합적 관리는 오로지 정부만의 몫이다.   귀납한다면, 효도는 력사에 따라 시대색을 가지게 된다.자식,부모,정부가 튼실한 일체화 관계를 이루며 노인복지를 풀어간다면 정부는 인륜적 가치를 부흥시키는 효도 수호신이 되고, 자식은 효도를 숭상하는 효자효부로 되고, 불효자는 불치인류(不齿人类)의 마크를 달고 다니며,노인 자신은 만년을 즐기는 사회 구성원으로 되게 된다.이 사회는 바로 효도 사회이다.  (끝)
129    두뇌 "기억부전"의 예방 댓글:  조회:1695  추천:0  2017-05-10
내 머리에 기억해 둔 전화번호가 몇개 되는지 더듬었더니 본인 핸드폰과 사무실 전화번호는 떠오르는데 아들의 핸드폰번호와 집 전화번호는 어떻던지 아리숭숭했고 기타는 애당초 새까맿다.필요한 련락 정보는 기기내에 저장하고 통신을 한지가 꽤 오래되다보니 별로 기억할 핖요를 느끼지 못했던것이다.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음성 영상통신은 말말고 웬만한 업무도 길을 걸으며 뚝딱 속결하고 궁금한게 있으면 수시 검색이 가능한가 하면 초행길도 누구와 물을 걱정이 없는 호세월이다.그런데 정보 취득이 너무 간단하다보니 사람들의 기억 의지가 희박해지고 기억 강도가 약해지고 기억 량도 대폭 줄 것은 당연하다.이리하여 정보과학의 은혜를 헤아릴 수 없이 입는 인간이 기억력을 잃어간다는 우려가 소리소문없이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지식정보시대의 중요한 표지로서 사회 발전과 인민 생활의 향상에 특유한  추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예측이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고기능화로 발전하면서 생활에 막중한 편의와 편리를 가져올 것은 틀림없다.그러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과분한 의존과 애착으로 지식과 지능이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는 교육 리념과 상충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로출되고 있다.   최근 매체들이 디지털의 과도한 리용으로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이 쇠락하는 현상을 자주 쟁점으로 다루는것이 그 방증이다.특히 스마트폰의 주력인10~30대 세대들의 중독되는 경향이 창의력 배양에 심각한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학자들의 지적이다.디지털의 사용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이 대대적으로 빨라지고 확장되지만 지혜의 원동력인 인간의 생리적 기억력이 훼손의 일로를 걷고 있다.이것은 후세 육성에 관련된 중대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인정되면서 과학이 기억력 퇴화를 부른다는 의미로서  ‘디지털치매’라는 신조어가 탄생되였다.   인간의 기억력도 근력과 동일한 원리에 따라 존속하는 바 그 유지와 발전은 단련과 활동을 전제로 한다.지능의 발육과 학습의 전성기인 젊은 시절에 디지털 기기에 집착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저장하고 리용하면서 기억하는 의욕과 노력을 버린다면 기억인자의 급감으로 기억과 기억량의 지속적 감소를 초래하게 되고 따라서 사고력의 저하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기억력의 쇠퇴가 발생하게 된다.하여 뇌신경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이 디지털 기기에 대한 과도한 의뢰는 외인성 기억장애를 불러올 것이고 나아가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등장할 가능성까지 제기한다.오늘 도처에 보이는 스마트폰 심취자들을 보며 그 소견은 결코 로파심에서 나오는 군걱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살아야만 하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후대들의 두뇌가 총기로 넘치는 창조적인 샘터로 육성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미국 학자들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종이책을 주요 자료로 학습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위주로 한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월등하였다고 설명하였다.한국 서울대에서 우수생들은 고찰하였는데 그들의 공통점 하나가 정보기기를 리용하지만 주요하게 책을 읽고 손으로 메모하는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이다.바로 전통적 독서가 뇌의 주의력을 갑절로 제고시키는 동시에 독서 과정에서 반복적인 사고의 기회가 많이 조성되기 때문이라 한다.정보기기가 학습의 불가결 요소지만 종이책에 열중하고 필기하고 명상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학습 효과를 제고하고 기억력을 배양하는데서 필수 조건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모든 학습자들은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있어도 그 파도에 휘말리지 말고 디지털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고를 병행하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을 포기하여서는 안된다.특히 독서하면서 나타나는 난제와 난점을 반복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상상 속에서 미묘한 명제들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뇌력의 로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현대인들 특히는 성장 단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뇌력 단련의 최선책이고 지식 습득의 최상책이다.   창조의 지지대는 기억력을 기반으로 한 두뇌의 사유이다.경쟁이란 결국 "두뇌싸움"이라는 시점에서 우리는 후대들의 두뇌가 기억과 멀어지는 상황을 보고 넘길 수 없다.후대들의 기억력을 보위하고 향상시키는 책임을 지는 것, 비범한 지력적 인간으로 키우는 것,두뇌의 "기억부전"을 예방하는 것,이것은 기성세대들의 신성한 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연변일보 2017-5-10
128    지식의 류통기간(保质期) 댓글:  조회:1837  추천:0  2017-04-26
한가하면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게 제식동작(制式动作)이 되어버린지 오랜데 종이책을 훓어보며 정독해 본  때도 어느 때던지 기억이 아련하다.혹시 무슨 책이 필요하다 싶으면 온라인서점(网络书店)에 들어가 보이는대로 사버리면 고작이고 책방이 어디 있던지 거의 잊고 살아간다.전자책이나 온라인서점(实体书店)의 부흥으로 전통 서점들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경영난을 못 이겨 페점했다는 책장사들의 죽는소리도 쟁쟁하게 들어왔다.거기다 스마트폰 기능의 급속한 향상과 영상 문화의 번영도 책사기와 책보기 거부를 조장하여 도서 시장을 사양길로 내몰았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날이었던가 이 동네 서점마트 앞에서 서성대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시간을 때울 겸 책구경이나 해볼 겸 하는 료량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그런데 생각과 달리 끔찍하게 쏟아진 신간 도서에 괄목하고 말았다.모든 분야의 책들이 상상 외로 세분화되어 참신한 언어와 마인드로 수없이 출판되었고 제본 역시 썩 정교로왔다.눈을 비비며 서가를 둘러보니 시대가 새 지식을 부르고 새 지식은 또 변혁을  떠밀며 상전벽해의 혁신과 창조를 부추기는데 우리 사는 역사가 일신월성하는 맥박을 확연히 감지할 수 있었다.무수한 새 멧세지는 어제의 정보와 지식을 진부한 구닥다리로 취급하여 고물이 아니면 구물로 심지어 폐물로 만들어 력사의 뒤안에 몰아넣고 있다.책 한권을 골라 가지고 돌아와 읽어가며 인터넷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경화되고 경직되어 천박해진 나의 사고방식을 발견하였다.   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핵분열을 일으켜 고차원의 새 정보를 낳으면서 현대 사회에는 분명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정보 혁명의 패러다임(范式)으로 형성된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무용물이 되어 써먹으면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지성인들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지혜와 경험이 오늘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파다하다.어느 노벨 물리학수상자는 요즘 지식의 류통기간이 2년으로 짧아졌는데 계속 짧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인터넷과 디지털 정보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각종 소셜네트웍(社交网站),블로그(博客),트위트(微博),위챗(微信) 등등 신형 학습 수단들은 새로운 문화꽃을 피워가고 있다.지나간 아날로그시대(模拟时代)와 디지털시대라는 오늘의 알량한 지식에 휩쌓여 있는다면 결국 제4차산업혁명 시대와 담을 쌓게된다는 예감에 부쩍 말려들었다.   이젠 학교 중심의 현대 교육도 서서히 막을 내리어야 될 듯 싶다.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던 세월은 다만 역사로만 남게 된다.교육은 상시교육,평생교육이라는 관념과 체제에로 전화해야 하지 않을가.바야흐로 몰려오는 지능화 시대의 교육이란 결코 학교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학교 교육이 교육의 핵심 표준이 될 수도 없다.현대인들은 교육의 전담 기구에 의거하던 타률적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수동적이 아닌 주동적이고 자률적인 학습의 존재로 탈피하여야 하고 매개인은 자체가 학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패턴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학습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산지식을 발견하여야만 탈시대적 지식과 사유를 폐기처분할 수 있다.이리하여 지난날 만들어진 관념의 틀을 수시로 바꾸는 각오를 갖춰야 하고 모든 지식에 대하여 예리한 분석 감각을 키움으로서 고물단지들은 발견하는 족족 버리는 관습을 키워야 한다.배우기 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이런 이유로 이미 형성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려는 본능적 관성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지금부터 쏟아야 한다.   그러나 신물을 흡수하고 구물을 폐기한다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듯’하는 기존의 것을 무작정 갈아엎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우리는 토고납신(吐故纳新)과 온고지신(温故知新)의 철리적 지혜로 묵은 지식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창조적인 포기를 선택해야 한다.다시말하면 지식을 부단히 승화시키는 선순환(善循环)적 지식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과거의 지식은 여전히 새 지식과 사유의 밑바탕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지식의 류통기간이 축소의 일로를 걷고 있다.제4차산업혁명 시대도 파고를 높여가며 밀려오는 때 끊임없는 탐구와 추구는 우리들이 반드시 떠메고 가야 할 숙명이 되였고 우리 삶에서 필수일과(必修日课)로 되고 있다. (끝) 길림신문 2017-4-25
127    부패 범죄의 내외적 원인 댓글:  조회:1941  추천:0  2017-04-25
‘새도 림종 때 울음이 애처롭고 사람도 운명 때 마음이 착해진다’는 격언이 틀림없는 같다.최근 몇년에 줄줄히 락마한 탐관들이 엄벌을 받고 ‘이럴줄 알았으면 왜 그랬갰어!(早知今日,何必当初)’를 들먹거리여 땅 꺼지듯 장탄식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이 위인들의 삶의 궤적을 보면 그래도 다수는 원래 인간다운 인간들이었다는 인식을 떨칠 수 없었다.그들이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초기에 원천적 방지책과 방화벽이 적용되었다면 나락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나라와 인민에 기여하는 사표(师表)로 될 가능성이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죄인들의 반성문이나 편집자들의 평론을 보면 대체로 범죄 원인을 세계관 개조.인생관 수립,가치관 오판,자률 정신의 부족 등등 관념적 요인이거나 사상 교육의 부재와 같은 외부적 작용에 귀결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이는 인간의 본성과 외부 조건간의 인과 관계를 도착(倒错)시키는 사고 방식으로서 ‘병을 오진하고 투약이 무효’되는 결과를 배태하게 되고 부패 척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사물의 발생과 발전에는 내외적 원인이 동시 작용하며 내인은 주인(主因)이고 외인이 부인(副因)이며, 내인은 변화의 근거이고 외인은 변화의 조건이며, 외인은 내인을 통하여 작용하고 일정한 조건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오늘의 반부패도 이런 인과순환분석의 철학적 시각에서 착안해야만 정확한 실마리를 찾아내고 유력한 방침을 수립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 생리욕망 외 여러가지 자아 발전과 명예 추구의 욕망을 가지게 된다.이 욕망은 인간이 생존하는 기본 조건이며 사회 발전 동력이기도 하다.그러나 그는 외부의 자극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전환하고 끊임없이 높아가는 특성이 있다.이 욕망은 긍정적 발전을 추동할 수고 있고 혹은 탐욕으로 변하여 사회의 법제와 윤리의 한계를 넘는 악행과 부패의 근원지로 된다.어느 인간에게 권력이 부여된다는 것은 이 지배력과 강제력이 욕망을 추구하는 개체와 ‘공사합영(公私合营)’의 통일체로 된다는 것인데 권력과 사욕이 종이 한 장을 사이 둔 이웃으로 자리잡게 된다.그중 인간 육체에 내포된 자기 욕망 우선 만족의 본능이 바로 직무 부패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권력은 타인에게 자기 뜻을 관철하고 그를 유도하거나 통제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그는 사회와 타인에게 재부를 창조하는 기회도 만들거니와 자기의 사익을 차리는 기회도 만들 수 있는 특수한 다기능을 가지게 된다.권력의 이런 특성으로 하여 우선 권력자의 본능적 욕구를 수시로 유발시키고 외래적 유혹을 야기하는데 어느 순간 ‘공기,온도,습도’ 3자가 걸맞는 임계점이 형성되면 팽창하여 부패의 검은손으로 변한다.권력자에게 대해 말하면 부패의 기회는 유무가 아닌 다소일 뿐이다.만약 제도와 그 운행에 결함이 있거나 혹은 심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공포가 없어 사상적 브레이크를 상실하였다면 부패 독버섯은 수시로 틈을 찾아 아귀를 내밀게 된다.이것이 바로 부패의 외인이다.   그러나 본능적인 욕망을 부정적으로 과장하여서는 안된다.인간은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체로 개인적 수요를 조절하여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고 도덕적 영예와 자아 가치를 실현하려는 희망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이 정신은 야망을 억제하는 강대한 힘이 된다.이 긍정적인 욕망의 에너지를 발휘시키기 위하여 권력 운행의 투명한 환경을 조성하고 감독,고무,장려,승진,처벌,징계 등 법적 환경과 완벽한 대중적 감독 평가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행정관리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개괄하면 권력을 새장에 가두는 동시에 행위 규범의 레드라인(红线)하고 설정하고 감독,고무와 경고의 경종이 끊임없이 울리도록 하여야 한다.   인간의 욕망에는 만족이라는 지표가 없다.반부패의 투쟁의 본질은 결국 부당한 욕망을 억제시키고 긍정적인 욕망을 부활시키는 지속적인 영원한 사업이다.그러므로 부패 척결 방식은 간단히 타격한다는 보수적인 방법이 아니라 방미두점(防微杜渐)이란 예방 대책과 발본색원(拔本塞源)으로 견결히 적발하는 ‘콤비네션블로(组合拳) 전법’이어야 하는 것이다.이렇다면 아름다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문명,민주,법제 정신이 관철되고 공직 사회에 록색 환경이 조성되면서 표리겸치(表里兼治)란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등소평의 ‘좋은 제도는 악인을 호인으로 전화시킬수 있고 나쁜 제도는 호인을 악인으로 만들게 된다’는 론단의 의미를 곰곰히 새겨봐야 한다.우리가 정치적,경제적,법제적,문화적,사상적 면에서 제도적 합력(合力)을 형성한다면 부패는 설자리가 없어 해매일 것이고 ‘상병자를 치료하여 사람을 구하고’ 동지들의 륜락을 저지하게 된다.더 유의미한 점이라면 공직 사회에는 우승열패(优胜劣败)의 선순환(善循环)이 형성되어 반부패의 장기효과메카니즘(长效机制)이 형성되는 전략적 의미가 있다는 이것이다.  . (끝) 2017-04-22 흑룡강신문
126    탐관참회록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972  추천:1  2017-04-13
손 가는대로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적거리다 탐관들의 참회록 몇편을 읽어 보는 시간이 있었다.거개가 아츠라한 권좌에서 번뜩이는 권력을 휘두르며 일세를 풍미하던 고위자들이었는데 한결같이 후회막급을 중언부언 되뇌일가 눈물을 짜내 볼기를 적시기도 한다.간대로야 요행을 바라다 으슬으슬힌 법정에서 의사봉의 피타(被打)를 당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는 이구동성 하소연이다.인간성에 내포된 선과 악의 량면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재판장의 판결문과 죄수의 참회문을 번갈아 보며 어쩐지 혐오와 측은의 잡감이 교차되며 갈마들었다.   참회록에서 출현 빈도수가 제일 높은 키워드(关键词)라면 신앙의 상실, 법의식의 약화,신념의 결여,사상개조의 방임 등등 반성의 말구절들이다.대개가 이런 원인으로 범죄의 길에서 갈수록 깊이 빠졌고 결국 쇠고랑 신세를 진다는 고백이다.현재 일반적 여론도 부패 범죄의 원인을 그 개인의 각오 수준에 몰아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돋아나면 자른다는 의식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현상만을 고찰한다면 그럴 법도 하겠으나 진정 청렴한 공직 사회를 건설하려면 복잡한 요소에 의하여 산생하는 이 독버섯을 움이 트고 아귀가 트는 시각부터 ‘뿌리가지자르기’를 해야 한다는 과학적 방법론이 오늘 제기된다.즉 사전 예방하고 조기 제거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념의 정화도 필히 수반해야 한다.   소수의 인간 말째들을 제외하고, 이 위인들의 공동성이라면 사업 초기에는 대체로 열혈 사업자로서 업적을 쌓으려는 리상주의적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이다.그들은 선진분자로부터 범죄자에로 전락되는 기나긴 과정을 걸어왔고 죄의식을 가지던데로부터 범죄 불감증 단계를 거치며 죄악을 쌓았다는 력사가 력력하였다.만약 이 전부의 과정에서 고무,감독,적발,징계 조치가 있었다면 개인도 타락의 심연에 떨어지지 않고 공적 자산의 대량적인 류실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회 자원의 막대한 손해도 피면했을 것이다.가능하였다면 그들이 완미한 인간으로 육성되었을 지도 모른다.호랑이도 파리도 잡아야 한다.그러나 위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애기 호랑이와 애벌레 파리를 일소하는 소탕 작전도 지극히 중요한 반부패 투쟁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체면을 중시하는 의리 문화의 뿌리가 너무 깊다.이 친구들 역시 집권 초기에는 친구,동향,동창 등의 의리에 얽매여 대충 권력을 써가며 방조하던 데로부터 서로 결탁하며 부패 덩어리로 전화되는 것이었다.이리하여 직권을 람용하여 패거리를 확장하고 꺼리낌없이 근친 번식을 하며 그 동맹에 말려들어 간다. 초기에는 그래도 두려움을 앞세우며 무가내로 합류하다가 공동범죄로 나갔다며 울먹거린다.물론 범죄의 책임은 당신이 지고 대가도 당신이 지불해야 할 몫일 것이나 정과 체면 앞에서 원칙이 무력해지는 체면 문화가 부패의 상당한 호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은 간과할 수가 없다.누구나 고민해야 할 중대사가 아닐가 본다.   우리 다수인들은 대인관계에서 연줄에 연연하는 전통적 의식에 푹 젖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일이 있으면 정책,법제와 륜리의 루트에서 해결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연줄을 찾고 연줄을 만들고 연줄의 힘으로 풀어가려 하는 의지가 보편적이다.그리하여 나중에는 연줄이 부정 축재의 막대한 자본으로 전화되는 것이다.연줄 중시의 사회 풍토는 부패가 형성되는 우순풍조(雨顺风调)의 호천후(好天候)이다.연줄로 법규의 굳은 잣대를 연화(软化)시키고 휘둘러야 할 곤봉을 솜방망이로 일변시키는 사례는 어디서도 볼수 있다.공권력이 연줄에 매어 휘둘리어 부패가 둥지로 형성되고 그 일당이 부패의 전리품을 분배하는 범죄는 사법 전선에서의 적발 난제로 되고 있다.   부패는 인간의 견물생심(见物生心)이란 본능적 욕망과 외부적 유혹이 결합되어 산생되는 것이다.만약 욕망 측이 그 유혹에 끌려도 어떤 위협이 없다고 인정되면 즉시 요행심이 발동하여 야합하게 된다.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공권력과 개인권리가 그의 일신에서 집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만약 이 공사(公私) 사이에 어떤 완벽한 브레이크 장치가 없다면 이 권력자는 즉시 부패의 위험 요소를 안게 된다.만약 외부적으로 유력한 제도적 감독이 부재할 경우라면 극히 미약한 ‘촉매제’의 작용에서도 공공재부를 점유하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게 된다.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란 하나가 실현되면 더 높은 욕망으로 치닫는 법칙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국, 부패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합리한 한도 내에 제어하지 못한 결과물이다.우리나라의 반부패 투쟁의 목표는 ‘감히 못하고,할 수 없고,하려고 하지 않는(不敢腐,不能腐,不想腐)’의 제도적 장치를 건립하는 것이다.앞의 량자는 제도적 감독을 핵으로 한 타률(他律)적 강령이고 후자는 자률(自律)에 속하는 관념 제고의 방침이다.   비분한 야망을 다스리는데서 간단히 징계의 외적 작용만으로는 과부족이다.완벽한 제도로서 조기 척결하고 동시에 전민의 문화 의식을 제고시켜 내적억제와 외적억제를 동시에 유발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바라고 있는 청정 사회임을 다시 력설한다. (끝) 연변일보 2017-4-12
125    다가오는 지능정부 댓글:  조회:1907  추천:0  2017-04-03
현재의 전자정부는 시간、공간、부문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신속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인민의 복지 향상과 사회의 변혁을 추동하고 있다.그런데 이것이 태어난지 언제인데 지능정부가 느닷없이 부상하여 새로운 변혁을 재촉하고 있다. 이미 많은 나라들에서 지능정부 건설을 제4차산업혁명의 선행 사업으로 확정하고 국가적 전문위원회를 설립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국가적 전략으로 강력히 추동하고 있다.   제1, 2차 산업혁명은 오프라인(现实空间)에서의 인간 생태의 변화이고 제3차산업혁명은 온라인(网上空间)에서 이뤄지는 세계화 변혁이라 한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시킨다는 정보통합 혁명이다.공무원이 부재인 조건에서 인공지능이 사물인터넷(物联网), 클라우드(云计算), 빅데이터(大数据), 모바일(移动电话),로봇 등 기기들을 연결하여 진행하는 참신한 공공 사무가 보급이 시간적으로 좀 남았을 뿐이다.전자정부 조건에서 공무원이 정확、투명、신속、편리의 원칙에서 작동하였다면 지능정부는 지능기기들이 무인 상태인 좁디좁은 공간에서 방대한 정보 자원을 자율적으로 검색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도출해 내며 어떠한 부정이나 불량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변화의 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사례로, 영국에서 자기 주택의 신축을 신청하는데 자기의 신원을 인증시키고 지점을 입력해 넣으면 챗봇(聊天机器人)은 자동으로 모든 지리환경、관련정책、주의사항、지속서비스 사항들을 제시해 주는 동시에 수요에 따라 서면 답복 서류를 제출해 주고 수속의 비준 여부를 즉시 마무리 한다.신청 사안들을 종이 서류가 필요없이 신청자 인증 하나로 원패스(一次性通过)식 쾌속처리 행정을 벌이고 있다.현재 우리 주변에서 핸드폰으로 음성통신,화상통신,서류전달.문서작성,전자결재까지 수행하는 가상 행정을 지능정부 맹아로 보아도 무방하다.   지능정부 조건에서는 지능기기들이 모든 분야와 부문의 지리적、시간적、공간적인 장벽을 부시고 관련 정보를 통합하여 자률적으로 행정적 방법론과 해결안을 제시하고 추후의 모든 필요 사안까지 고지하는 역을 담당한다는 것이다.이는 불가피적으로 전통적인 정부 구조의 개혁을 압박하고 사업 인원의 대량적 감축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의 관리 방식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초래할 것은 불 보기보다 더 뻔하다.맑스의 유물사관대로 고민한다면 새로운 생산력의 탄생은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를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인 바 이러한 충격적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참신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를 선도해 가는 공무원들은 비록 자신의 업무에 안주하여 소관을 챙기고 다양한 리해 관계를 따지더라도 지금부터 반드시 변하는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립체적 사고로서 그려야 할 것이다.아직도 제2차와 제3차 산업혁명시대의 관습과 행태가 농후한 현실은 넘겨야 할 고비지만 이것이 미구하여 사회 적폐(积弊)가 된다는 밝은 사상으로 미래를 위한 효과적인 자극제와 촉진제를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을 지어야 한다.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미래를 주도할 내 아이들을 위하여 구격화되는 어정쩡한 대졸자를 만드는 구습에서 벗어나 참신한 세월을 리드할 수 있고 창조성이 있고 소통 능력이 강한 일군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부어야 한다.   이다.인공지능이 판을 쳐도 사회가 인간 중심이라는 주류는 개변될 수 없다.우리는 눈앞에 다가온 미래를 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내 후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명철한 사색을 일으켜야 한다.특히 공직자들은 추격 전략에서 벗어나 개척자로 화려히 변신하고 신생사물을 포옹하며 시대를 선도해야 사회와 백성들이 시대 물결을 순리롭게 타고 간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끝) 2017-03-04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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