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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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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백성은 하늘이다 댓글:  조회:941  추천:1  2019-03-03
유교의 시조 공자는 화위귀(和为贵)를 주장했다. 무슨 일이든 사람과 사람의 조화가 없으면 되는것이 없다는것이다. 맹자에 이어 유교의 대통을 이은 순자는 인위귀(人为贵)를 갈파했다. 이 세상 만물중에 유독 사람에게만 기(气), 생(生), 지(智), 의(义)가 있기에 천하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론리를 폈다. 중국의 력대 통치자들은 충군사상 정립을 위해 유교를 제창하면서도 치국에 있어서는 법가를 행하였다. 유교는 덕정(德政), 례치(礼治)와 인치(人治)를 강조해 도적적 감화를 내세우는 반면 법가는 무자비한 진압과 폭력통치를 강조하였다. 기원전 260년 진나라와 조나라는 장평전역을 벌였다. 결과 조나라는 참패하였는데 진나라는 조나라의 포로 40만명을 생매장하였다. 진시황은 6국을 멸망시키고 7국을 통일한후 사상통제를 가강하기 위해 유생 460명을 생매장하였다. 당시의 유생은 지금의 중국사회과학원 원사에 해당하고 460명의 유생을 생매장했다는것은 전국의 과학원 원사를 거의다 죽여버린것으로 된다. 20세기 중후반에 발생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서도 수많은 백성들이 비자연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백성들은 말이 없었다. 위정자들이 백성들에게 심어놓은 법가의 통치사상은 자연히 백성들의 의식속에 녹아들었다. 백성들은 위정자들의 폭압통치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자기의 목숨이든 타인의 목숨이든 가벼이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중국에서 사람의 목숨은 값이 없었다. 인종과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였다. 선진국들에서는 오래전부터 자동차리콜(回收)제도를 실시하고있다. 미세한 결함으로 자동차가 주행할 때 행여 사람의 안전에 위협이 될수 있다고 판단되면 엄청난 경제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가차없이 리콜한다. 인명을 지고무상의 지위에 놓는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아직까지 자동차를 리콜했다는 소식을 들어본적이 없다. 그렇다면 국산자동차들이 과연 아무런 흠집도 없는  최고품질의 자동차들이란 말인가? 자동차공업을 주관하는 국가기계국의 한 관원이 “자동차리콜제도는 중국의 국정에 맞지 않는다. 자동차를 리콜하면 기업의 손실이 너무 크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책임감없이 내뱉았다. 1996년 4월 9일. 내몽골에서 후거지러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공안, 검찰, 법원의 착오적인 판단과 잘못된 판결로 후거지러투는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14년 12월 30일 국가는 잘못된 판결을 인정하고 후거지러투의 부모에게 지금으로서는 거액인 200만원을 웃도는 금액을 배상했다. 매우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백성이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는다는것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2014년 12월 31일  23시 35분, 상해시 황포구 외탄에서 36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정부는 구제위로금 표준을 바로 공포하고 매 조난자가족에게 80만원씩 발급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명을 돈으로 계산할수는 없다. 허나 정부의 이런 처사는 전에 없는 류례라 국민은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보내고있다. 올해 3월, 아라비아 예멘의 안전형세가 위태로왔다. 중국정부는 민간선박이 아닌 정규 해군군함을 아덴만에 파견하여 571명의 중국공민을 안전하게 철거시켰다. 군함에 오른 중국공민들은 “조국만세!”를 목청껏 웨쳤다. 진정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감격의 목소리였다. 나라가 백성을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품어줄 때 백성들은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만세삼창을 하는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민심이다. 지난 6월 1일 21시 28분, 운행중이던 “동방의 별” 려객선이 불시에 전복됐다. 사고발생후 리극강총리는 모든 일정을 미루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새벽에 도착한 리극강총리는 침식을 잊어가며 현장에서 며칠동안 구조작업을 진두 지휘했으며 구조작업의 원칙을 확정했다. “생명은 하늘보다 크다. 분초를 다투어 사람을 구하라!(生命大于天, 争分夺秒救人!)” 총리의 불철주야 애쓰는 모습에 국민도 감동했고 하늘도 감동했다. 옛 성현들은 이민위천(以民为天)이라 했다.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성심성의로 섬기는것은 정치인의 덕목이요 치국의 근본이다.  사람의 가치가 인정받고 백성의 인격이 보장되면 국민의 응집력도 그에 따라 가강된다. 공민의 생명이 보호를 받고 존중을 받는 사회, 이것이 진정 민주사회요, 인민공화국이다. 그럼으로써 나라와 백성이 신뢰를 구축하고 일심협력하여 밀고 나간다면 중국꿈은 결코 꿈으로만 끝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다! 2015-6-10
23    탐관과 간신, 그리고 아첨 댓글:  조회:926  추천:0  2019-03-03
강대한 칭키스칸의 후예들이 중원을 정복한후 자기의 민족문화를 고수하면서 한문화(汉文化)를 거부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한인(汉人)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의 민족을 지켜냈다. 그 대신 몽골인들은 중원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몽골대초원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몽골인들은 중원을 떠나가면서 한인들에게 한가지 문화를 남겼다. 바로 ‘파이마피(拍马屁)’라는 몽골식 인사법이다. 말을 끌고 마주 걸어오던 몽골인들은 서로 만나게 되면 상대방 말의 궁둥이를 한번 두드리고는 “훌륭한 말이웨다.” 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존경을 표시한다. 아무리 포용력이 강한 한인들일지라도 이민족의 문화에 한해서만큼은 배타적이였는데 이상하게도 한인들은 몽골인들의 인사법만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몽골인들의 이 소박한 인사법이 한인들에게 전수된후 본의와는 다르게 외곡됐다는것이 흥미롭다. 속궁리가 깊은 한인들은 대국인답게 묵직한 성미를 지니고있으나 이와 함께 바람에 따라 돛을 달며 상대의 비위를 잘 발라맞추는 옅은 천성도 갖고있다. 상대방의 말이 훌륭한 말이 아니거나 여윈 말일지라도 “대인(大人)의 말은 훌륭하오이다.”하고 말하는 한인들이다. 그래서 ‘파이마피’는 한인들에게 수용된후 아첨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순박한 몽골인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실제로 중원에서 ‘파이마피’란 말이 사용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한인들은 아첨에 능했다. 아첨을 함에 있어서 그 방법이 교묘하고 수단이 다양하며 형식이 은페적이다.  그래서 타민족이 도저히 따라갈수 없고 아예 흉내조차 하기 어렵다. 유구한 중국의 력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탐관과 간신들이 배출됐음을 금방 알수 있다. 탐관이자 간신이였고 간신이자 탐관이였다. 또한 이들 모두는 아첨의 고수(高手)들이였다. 아첨을 해서 권력을 잡은후 간신이 되였고 간신이 된후 더 큰 아첨을 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탐관이 되였다. 탐관과 간신, 그리고 아첨은 3위1체를 이루었다. 중국력사에는 유명한 간신들이 있다. 다름아닌 백비, 조고, 리림보, 진회, 엄숭, 위충현, 화신,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아첨으로 ‘출세’한 간신이자 탐관으로서 그 탐욕이 끝이 없었고 너무나 간교하여 충신으로 보였으며 (大奸似忠) 전횡과 패도를 일삼았고 겉과 속이 달라 종잡을수 없었다. 만물의 령장인 인간은 예리한 판단력이 있음에도 듣기 좋은 말에 쉽게 현혹당하는 허점이 있다. 량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간언을 들으면 우선 귀가 즐겁고 그에 따라 마음 또한 흐뭇하다. 그러나 바른 말은 듣는 이가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심기가 대단히 불편하다. 중국이 자랑하는 충언을 경청하기로 유명한 천하의 성군 당태종도 황제의 잘못을 꼬집어 직언하는 충신 위징을 참다못해 몇번이나 죽이려 했다. 회뢰에는 물질적회뢰와 정신적회뢰가 있다. 금전을 주고 받는것은 물질적 회뢰요, 아첨을 주고 받는것은 정신적 회뢰다. 금전을 받는 자는 탐관이요, 아첨을 하는 자는 간신이다. 탐관과 간신은 충신을 모함하고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린다. 간신 한놈이 설쳐대면 수많은 생령이 없어질수도 있고 심지어 력사의 흐름이 바뀔수도 있다. 그래서 탐관을 숙청하고 간신을 제거해야 한다. 얼마전 중앙TV에서 방송한 반부패특집 다큐멘터리 “영원히 반부패의 길에서(永远在路上)”에는 많은 탐관과 간신, 그리고 아첨으로 출세했던 전직 당간부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는 암암리에 뢰물을 끝도 없이 받아먹다가도 민중들 앞에서는 뻔뻔스럽게 반부패를 누구보다도 높이 웨치던 파렴치한 자들이였다. 지난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중공 18기 6차 전원회의에서는 당간부들에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춰주기도 하면서 서로 결탁하고 아부해서는 안된다”, “관직을 얻기 위해 뛰여다니고 관직을 팔고 사며 회뢰하는 행위를 견결히 금지해야 한다”, “지도간부들은 수양을 중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렴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반부패 사정(司正)의 칼이 아무리 예리한들 그 많은 탐관오리들을 무슨 수로 다 베여버린단 말인가?  하오니 당간부들 스스로가 수양을 쌓고 렴치를 알아야 한다. 렴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으라 했다. 지금 어느 때인가! 지도간부라면 자신이 과연 정직하고 청렴한 사도(仕途)의 길을 걷고있는지, 간신을 중용하고 있지나 않는지 력사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반추하면서 랭정히 자성해볼 일이다. 그럼으로써 이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것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할것이다. 2015-4-16  
22    탐관, 이제는 수치를 느껴야 할 때 댓글:  조회:969  추천:0  2019-03-03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은 남경을 점령한후  40여일간에 30여만명에 달하는 중국군민들을 학살했다. 그래도 그들은 죄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패전했을 때 적지 않은 일본군들은 할복자살했다. 죄악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패배했다는 수치심때문이였다. 몇해전 양계장을 운영하던 일본인 로부부는 요행심리로 병든 닭을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것이 들통났다. 로부부는 즉각 국민들에게 사죄한후 자살했다. 역시 수치를 느꼈기때문이다. 그래서《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를 비롯한 문화인류학자들은 일본인들의 국민성으로 수치심을 꼽았다. 그렇다면 중국인은 어떠한가? 죄악감은 느낀다.살인상명(杀人偿命)이란 말처럼 살인을 했으면 자기의 목숨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것은 중국인들의 굳어진 처세철학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웬만해서는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그 일례로 돈이 되는것이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이다. 타인의 생명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가장 신성시해야 할 식품이나 약품에도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시름놓고 먹을 음식이 별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외국에 나가서도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다. 타인의 립장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렴치를 모르고 수치를 느끼지 않는것, 안타깝게도 이것은 중국인의 고질적인 국민성이다. 유교를 숭상하는 중국에서 수치문화가 급속하게 쇠락한것은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실시한후 문화의 기강이 무너지면서부터였다. 렴치를 모르고 수치를 느끼지 않는 현상은 우선 관리들에게서 나타났다.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정치를 펼 궁리는 하지 않고 부정축재에 혈안이 되였다. 나라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 서한때부터 시작된 부정축재의 풍기는 청나라때에 이르러 극에 이르렀다. “ 청나라 지부 3년 하면 10만냥 은이 생긴다 (三年清知府,十万雪花银)”, “권리있는 자가 편리를 행하지 않으면 보물산에 들어가도 빈손으로 돌아오는것과 같다(当权若不行方便,如入宝山空手回)”는 말은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관리들은 일단 권력을 잡았다 하면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렴치불구하고 뢰물을 받아먹으며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관리들 대부분이 그러하니 백성들도 관리라면 의례 그러려니 여기며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어쩌다 청렴한 관리를 보게 되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바로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있다. 만약 사람들마다 부정축재를 일삼는 탐관들을 부러워하고 이러한 탐관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멸망을 자초할것이다. 탐관들을 잡아내는것은 나라의 일이다. “파리도 잡고 호랑이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탐관들을 무슨 수로 다 잡아낸단 말인가? 때문에 반탐(反贪)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탐관들 스스로가 이제는 수치를 느끼고 여기서 그만 멈추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탐관들은 아직도 수치심 없이 철면피하다. 잡혀나오는 탐관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할 대신 재수가 없어서 잡혔다고 여기면서 자기에게 요행수를 두는것이다.“나보다 엄청 많이 해먹은 놈 많고도 많다.”면서 자아위안을 하는 탐관들이 있는가 하면 잡혀나온 탐관들 중에는“나보다 더 많이 받아먹은 놈도 잡히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억울해하는 탐관들도 있다.   부패는 두가지 뜻을 담고있다. 썩을 부(腐)와 망할 패(败)다. 썩었으면 망해야 하고 또 망할수밖에 없는것이 세상의 리치다. 그러나 썩었는데도 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력사의 아이러니다. 그래서 당중앙에서는 부패척결의 칼을 빼들었다. 주영강, 서재후, 소영, 령계획 등 최고위관리와 50여명 부장급 거물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민중은 환호하고있다. 나라를 좀먹고 민중의 리익을 해치는 탐관들을 척결하며 서민적인 행보를 하는 습근평주석을 민중들은 습대대(习大大)라고 친근하게 부른다. 얼마전 반부패잡지 렴정료망(廉政瞭望)에 따르면 작년(2014년)에 자살한 공직자수는 40명을 넘어 30년래 가장 많았다고 한다. 올해 들어 자살하는 탐관들의 수가 전에 비해 현저히 늘고있다. 죄를 덮어감추기 위해서일가 아니면 죄값을 치르기 싫어서일가. 수치를 느끼고 자살했을리는 만무하다. 중국탐관들이 진정으로 수치를 느끼자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을 거쳐야 할것 같다. 이것이 중국의 비극이다. 2016-11-6   
21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 듣고 싶다 댓글:  조회:1336  추천:0  2019-02-28
사슴은 비록 약한 짐승이지만 다른 동물보다 특이한 점 하나 있다. 자기의 새끼를 류달리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짐승 모두가 자기가 낳은 새끼에 대해 끔찍하겠지만 사슴 같은 동물은 드물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새끼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도 지극한 사슴에게 어느 축목사가 실험했다. 새끼를 낳는 어미에게 무통분만(无痛分娩)을 시킨 것이다. 약물을 사용해 어미사슴으로 하여금 고통없이 새끼를 낳게 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 어미사슴이 금방 낳은 자기의 새끼를 전혀 돌보지 않더라는 얘기다. 즉 모성애의 본능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그렇구나. 모성애는 산고의 아픔과 동반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랑중에서 우리는 모성애를 가장 거룩한 사랑으로 인정한다. 그 어떤 사랑도 모성애와 비견하지 못한다. 부성애도 위대하지만 모성애에 비해 손색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생명을 낳는 일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해산할 때 녀자는 죽음을 각오한다. 그래서 녀자는 약하지만 모성은 강하다. 중에 부모님의 은혜 열가지를 들었는데 대부분은 모성애에 관한 글귀이다. ‘아이를 잉태하여 품고 있는 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지키고 보호해주며 태교를 베풀어주신 은혜’, ‘순산하지 못할가 두려워하며 해산할 때 괴로움을 받으시는 은혜’, '서말서되(三斗三升)의 피를 쏟는 산고 속에 낳고서도 오히려 즐거워하시며 출산으로 인한 아픔과 괴로움을 모두 잊으시는 은혜’, ‘자식에게 혈유(血乳)를 먹이며 길러주신 은혜’… 이처럼 녀자는 출산할 때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의학이 발달 못했던 옛적에는 난산도 많았다. 산모와 아기 두 생명중 택일해야 할 때 산모들은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자기의 생명은 뒤로 한 채 무조건 먼저 아이를 살리겠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녀성의 위대함에 또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새 생명의 탄생은 분명 기쁨이고 축복이지만 출산은 옛날도 지금도 산모나 아기에게는 목숨을 건 고난의 행로이다. 때문에 산모가 탈 없이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경사이다. 새해에 좋은 소식들이 날아든다. 우리 나라가 올해부터 무통분만 병원을 시험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건강위원회에서 전국의 일부 병원을 중심으로 분만진통 치료의 시험운영안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전국범위로 확대운영하게 된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분만과정에서의 체력소모와 고통을 줄이는 ‘무통분만’의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에 대한 적시적인 조치이다. 녀성들에게 좋은 세상이 왔다. 전에는 출산의 고통을 줄이려고 자연출산을 거부하며 제왕절개 수술을 선택한 산모들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출산의 고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물의 최고 령장인 인간이 ‘무통분만’을 한다고 해서 인류의 모성애가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해에는 나젊은 엄마들이 출산을 많이 할 것을 기대해본다. 요즘은 녀성이 참으로 편한 시대이다. 밥도 전기 밥솥이 스스로 감칠맛나게 지어주고 빨래도 자동세탁기가 알아서 해주며 식은 음식도 전자레인지가 깔끔히 덥혀준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세상이고 이젠 산고의 아픔도 없게 된다 하니 안 낳을 리유가 궁색해진다. 새해는 기해년이다. 기(己)는 황(黄)이고 해(亥)는 돼지이니 노란 돼지의 해이다. 세상은 ‘황금돼지의 해’ 라고 모든 것이 좋다고 하는 판에 이 천시(天时)를 꽉 잡고 출산을 많이 하기를 소원한다. 올해 태여나는 아기는 제 먹을 것을 충분히 가지고  나온다고 하니 밑바닥까지 추락한 우리 민족의 출산률이 상승해 령기있는 아기들이 고고성을 울리며 세상을 요란케 했으면 좋겠다. 총명하고 령리하며 똑똑하고 날쌔며 야무지고 끼가 있는 우리 민족 아이들의 출생은 우리 민족 뿐 아닌 세계 인류에 대한 공헌으로 된다. 알고 보면 사람이 저세상으로 갈 때 가지고 갈 것 하나 없다. 공수래 공수거이다. 명예도 헛 것이요 권세도 잠간이며 금전도 다 남의 것이 된다. 남는 것은 자식 뿐이다. 자식이 진정한 재산이다. 아이가 있지만 돈이 없는 자는 진짜 가난한 것은 아니다. 올해 태여난 우리의 아기들이 몇해 지나 골목골목 여기저기서 뛰놀며 재잘거리는 소리는 산새들의 지저귐소리보다도 더 귀맛 좋게 들릴 것이다. 세상을 깨우는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 참으로 그것이 실컷 듣고 싶다. 연변일보 2019-2-28
20    투혼이여, 다시 한번! 댓글:  조회:1244  추천:3  2018-08-16
월드컵이 다가오니 마음이 설레이였고 월드컵 기간에는 밤잠을 설쳤으며 월드컵이 끝나니 여운이 짙다. 이번 월드컵축제는 류달리 화려했고 볼만 했다. 다음 월드컵이 올 때까지 4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다.   이번 로씨야 월드컵에서는 적잖은 이변이 있었고 화제도 많았다. 한국은 카잔경기장에서 전력의 렬세를 뒤집고 경기 막판 두꼴을 몰아치며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2대0으로 멋지게 잡고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세계는 크게 한번 놀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꼽은 력대 월드컵 중 가장 충격적인 13선(选)에 한국과 독일의 경기가 2위에 올랐다. 가장 충격적인 경기 1위는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이였다. 당시 독일은 브라질을 7대1로 완파했었다.   필자에게 있어서 한국과 독일의 경기는 이번 월드컵 결승전 보다도 더 넋을 잃게 하는 명승부였다. 피를 나눈 민족의 동질성때문이여서일가? 하여튼 여러가지로 사색을 주는 경기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0대1로 메히꼬에 패했던 독일은 2차전에서 스웨리예를 2대1로 역전승해 사기가 잔뜩 올라있었고 독일은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 하며 1대0으로 이겨도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였다. 반면 한국은 2련패를 당했고 게다가 “한국팀은 한꼴도 넣지 못하고 전패 탈락할 것”, “세계의 망신거리가 될 것” 등 루머로 선수 개개인들은 나라 안팎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형국이여서 선수들의 정신적 부담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기에 앞서 세계의 도박사들은 한국이 이기기 보다는 독일이 7대0으로 승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점 쳤다. 하지만 한국팀은 투지를 밑거름으로 투혼을 불사르며 사력을 다해 반전 드라마를 엮었다. 김영권의 결승꼴에 이어 손흥민의 쐐기꼴, 패색 짙은 경기를 펼치던 독일은 꼴키퍼 노이어까지 꼴문을 비우고 공격에 일조하러 나왔지만 패전을 면치 못했다. 손흥민이 질풍같이 달려 쐐기꼴을 넣는 기 막히게 아름다운 그 명장면은 살아 생전 잊혀질것 같지 않다.   한국은 118킬로메터룰 뛰여 115킬로메터를 달린 독일을 앞섰다. 경기후 한국선수들은 내장이 밖으로 나올 정도로 죽기살기로 뛰였다고 말했다. 경기를 관전한 세계인들은 독일팀을 두고 독일답지 않은 경기를 치렀다고 평했다. 원래 독일팀은 불굴의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으며 마지막 1초까지 최선을 다해 역전을 만들어내며 무서운 집중력과 승전의 집념으로 한치의 흐트럼이 없이 교과서처럼 과학적인 경기를 하는 팀이였다. 독일축구가 갖는 세계적인 위상 또한 대단하다. 잉글랜드 력대 최고의 축구스타중 한명인 게리 리네커는 독일축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축구는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니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이다.”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잉글랜드 축구전설의 평가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사색을 준다. 그러나 승전에 대한 한국선수들의 간절한 소망과 기세에 눌려서일가? 천하의 독일팀이 한국팀에게 어이없이 무너졌다. 자만심, 체력부족, 단조로운 전술, 주력선수들의 부진 등이 주요 원인이였다. 핵심선수 외질과 뮬러의 두 눈은 경기 내내 빛을 잃고 초점없이 풀려있었으며 기고만장했던 크로스도 기 죽어 있었으니 패전은 당연지사일터. 독일은 자기들의 자만심을 자인했다. 경기 후 독일팀 주장 노이어는 “독일답지 않았다. 우리는 조별리그 무게에 대한 존중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 팀들을 깔보며 건방 떨었던 것은 확실했다. 독일은 80년만에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으며 한국팀은 월드컵에서 독일팀을 소조예선에서 도태시킨 유일한 아시아 국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정신력의 힘이 무엇이며 투혼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경기였다. 축구분석의 선구자인 미국 코넬대학의 크리스 앤더슨 교수는 1938년 이후 수만건의 국제축구대회의 경기결과를 분석하고 “축구는 ‘50 대 50’의 게임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운이 절반, 실력이 절반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팀은 운도 ‘별로’였고 실력 또한 독일에 비해 한수뿐 아닌 한참 아래다. 그런 한국팀이 독일을 격파했으니 과연 운과 실력으로 격파했을가? 답은 하나, 투혼으로 사활을 걸었다. 전반전을 득점없이 끝낸 상황에서 손흥민이 휴식실에서 크게 웨쳤다. “봐! 지금 독일이 우리 보다 더 긴장했어. 쫄지마.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그전까지 긴장해있던 팀동료들의 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들면서 투지를 다시 끌어올렸다고 경기후 선수들은 확언했다. 연변팀은 2015 갑급리그 우승을 따내 슈퍼리그에 진출했고 2016 슈퍼리그에서 금원축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민족 특유의 불굴의 투혼으로 강팀들을 쩔쩔 매게 했다. 거만하던 광주항대도 연변팀에게서 수모를 당했다. 원정에서는 지지 않고 홈장에서는 이기는 연변팀, 선꼴을 먹고도 역전승하는 통쾌한 경기들을 펼쳤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원정에서는 패하고 홈장에서도 졸전을 치르는 상황이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선꼴을 넣고도 역전패 당하는 분루(愤泪)를 삼켜야 하는 현실이다. 투혼으로 번뜩이던 선수들의 눈빛은 사라졌고 자신감으로 몸놀림이 원활하던 선수들의 모습도 기억에 희미하다. 경기장 변선에서 승전욕을 불태우며 격정으로 진두 지휘하는 감독의 모습도 옛날 얘기다. 기술이 안되면 체력으로, 체력이 안되면 투혼으로 싸우던 그제날의 모습은 어딜 갔나. 남자가 투지를 잃는다면 그는 이미 남성성을 잃은 것이다. 연변팀이 투혼을 잃는다면 그는 이미 연변팀이 아니다. 포효하던 장백 호랑이가 야웅하는 고양이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곪은 부위는 놔둬봤자 살이 되지 않는다.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연변팀의 모습이 애타게 그립다. 그래서 다같이 납함해보자. “힘내라, 연변팀!”이 아닌 “투혼이여, 다시 한번!” 연변일보 2018-8-15
19    밤시간은 인생의 덤 댓글:  조회:1174  추천:0  2018-04-13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평생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우면서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다. 이토록 평범한 사실을 굳이 다시 언급한다면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마음 먹고 다시한번 음미해보면 새삼스럽다.   동한(东汉)의 저명한 사학가인 반고(班固)의 《한서(汉书)》 식화지(食货志)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겨울이면 백성들은 집안에 들어앉게 된다. 부녀자들은 밤에 길쌈을 하였는데 한달에 45일을 일했다.” 여기서 의문 하나. 옛날 중국사람들은 한달을 30일이 아닌 45일로 획분했을가?   수당(隋唐)시기의 력사학자 안사고(颜师古)는 연구 끝에 주해를 달아 “한달 가운데 밤시간을 15일로 합산하고 추가한 것으로서 한달은 모두 45일이 된다.”고 밝혔다.   옛날 사람들은 밤시간을 덤으로 알고 리용했으므로 하루의 절반 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가산함으로써 한달에 15일이 첨가된 것이다. 과연 그렇다고 할진대 밤시간을 잘 리용하면 인생을 덤으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   서한(西汉)의 문학가 류향(刘向)의 설원(说苑)에 의하면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정치가들이 ‘덤’으로 얻는 밤시간을 리용해 독서에 대단히 열중했다고 한다.   《북사(北史)》의 려사례전(吕思礼传)에도 북주(北周)의 대정치가 려사례가 밤시간을 리용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기재되여있다.“전쟁과 나라 일에 힘 쓰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낮에는 정사를 돌보고 밤에는 독서를 하였는데 초가 탄 초농이 하루밤에 수되씩이나 쌓였다.”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어둠을 밝히는 객관적 조건이 좋지 못했음에도 밤시간을 가볍게 보지 않고 촌음도 린색하게 쪼개여썼다.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은 사람들이 잠을 자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각자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잠 자는 것을 ‘시간과 활력, 기회의 손실’이라고 늘 아쉬워했다. 그래서 고심한 연구 끝에 발명한 것이 백열전구이다. 백열전구가 대량 생산되면서 급속히 보급되자 세상은 한순간에 바뀌였다. 해가 지면 할 일이 없어 잠자리에 들던 사람들의 라태한 관습이 사라졌다.   독일작가 괴테는 “밤이여, 낮에 잃은 것을 돌려다오”라고 웨쳤다. 낮에 흘러보낸 시간이 아까워 밤에 보충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괴테 본인은 그렇게 살았다. 밤낮으로 창작에 집념해 독일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간이 중년기에 들어서면 예전과 다른 이상(异常) 징조가 나타난다. 진취심이 사라지고 의욕이 저조하며 현실에 안주하면서 분발향상하려는 정신이 퇴색한다.   중년의 또 다른 특징은 세월의 가속도를 실감하면서도 밤시간만은 류달리 길어보이는 모순되는 느낌이다. 분주히 보내던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없어 자지 못했는데 중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밤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넉두리한다. 밤이면 거실에서 서성이거나 리모컨을 들고 목적성 없이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새벽을 맞는다.   생물학적인 견지에서도 그렇고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잠이 오면 달게 푹 자야 한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어찌 할 것인가? 시간랑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러가지 방도가 있겠으나 요즘처럼 여건이 좋고 편한 세월에 밤시간을 허송하지 않으려면 정신적인 삶을 살면 된다.   정신적 삶은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일상중 각양각색으로 그중 가장 플라스적인 것은 독서하는 삶이다. “이 나이에 무슨 독서냐?”하면서 반론을 제기하는 중년들이 적지 않겠으나 실은 ‘독서의 재미’를 못 봐서 하는 얘기다. 독서를 하게 되면“아,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난 왜 이런 지식을 여태까지 모르고 살아왔지?”라고 저도 모르게 자탄하게 된다. 하나 하나를 알고 깨우치는 이쯤 되면 단순히 ‘재미’라는 차원을 넘어서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독서를 하면 할수록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독서를 하면 인류의 선철들과 만날수 있고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 력사학자들과 조우할 수도 있다. 공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소크라테스와 변론할 수도 있으며 리백과 격정을 나눌 수 있고 대듀마의 구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밤시간이 지루하기는커녕 동지섣달 긴긴 밤도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중년이 되면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년의 뇌는 가장 똑똑한 뇌라고 뇌 과학자들은 력설한다. 기억력만 다소 떨어질 뿐 판단력이나 리해력에 있어서 오히려 성장기를 릉가한다는 것이다. 독서의 최적기가 바로 중년시대라는 의미이다.   중년의 밤시간을 활용해보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중년도 로년과 비하면 역시 황금시대이다. ‘10년만 더 젊었으면…’하는 회한 섞인 생각은 아예 집어던지고 밤시간을 인생의 덤으로 알고 활용하면서 장우단탄(长吁短叹)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제와 깔끔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 중년의 명지한 처사일 것이다. 연변일보 2018.4.11
18    중국상인, 정직한 상도를 걸어라 댓글:  조회:1887  추천:0  2017-09-28
영국이 자랑하는 쉑스피어는 대표희곡 “베니스상인”에서 유태상인 샤일록을 안토니오의 살점까지 도려내려는 간교하고 지독한 수전노로 부각했다. 유태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선입견은 아마도 “베니스상인”을 읽은데서 비롯됐을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것은 쉑스피어가 생전에 유태인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쉑스피어가 생활하던 당시 영국에는 유태인이 없었다고 한다. 쉑스피어는 그저 상상속에서 유태인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것이다.   실제로 유태인은 상업에서는 귀신이였다. 유럽인들은 장사에서만큼은 유태인이 최고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경제가 어렵게 되면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목적으로 유태인들을 일부러 류입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끌어들인 유태인들이 타고 난 재주로 그 나라에서 지나친 경제적 부(富)를 달성하면 주재국 국민들의 미움을 사게 됐고 결국에는 유태인을 박해하였으며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하기에 이른다.   유태상인 이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인들을 손 꼽으라면 중국상인, 아라비아상인, 인도상인들일것이다. 그러나 유태상인과 비견할수 있는것은 중국상인이다. 유태인과 중국인은 천성적으로 상인DNA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뼈속에는 장사군기질이 녹아있으며 상업적 능력이 체질화되여 있다.   상업에서만큼은 같은듯 다른 이 두 종족을 들여다 보는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샤일록이라는 문학적 인물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실 유태인은 정직하게 장사를 한다. 또한 조건이 되는 한 의식주 생활에서 최고를 행하며 한번뿐인 인생을 향수하면서 살아간다.   유태인과 비교하면 중국인들은 검소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수전노이다. 중국인들은 거금이 모아지기 전에는 절대로 돈을 허투로 쓰는 법이 없다. 한푼이라도 아끼고 푼전을 모아 저금하는데는 도사가 돼있다. 외관상 중국인들은 전혀 부자티가 나지 않는다. 요즘이야 많이 달라져  중국인들이 해외 관광에서 큰손으로 부상해 거액을 풀고 있으니 구두쇠 근성을 지닌 중국인들의 수중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할수 있는것이다.   푼돈을 긁어모아 협력하면서 거대 금융을 이뤄 주재국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화교 화인들의 그 무서운 경제력을 우리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볼수 있다. 하여 화교 화인들은 주재국 국민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유태인들은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신용을 신성시한다. 물건을 판매한 후에는 끝까지 책임진다. 중국상인들은 여기서부터 차이가 난다. 물건을 팔기 전까지는 좋은 비지니스 태도로 고객을 대하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다가도 판매한 후에는 완전 딴 판이다. 물건을 팔아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산 물건을 물리려거나 환불하려면 거의 불가능해 고객과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온갖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일용품들은 짝퉁이라도 괜찮다 치더라도 먹는 음식이나 약품에까지 악렬한 수단으로 손을 대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으니 치졸하기 그지없다. 개인은 물론 큰 기업도 독약과 같은 유아식품을 생산해 세상 빛을 얼마 보지도 못한 아까운 생령들의 목숨마저도 앗아가고 있으니 지탄받을 일이다.   오랜만에 일본을 다시 찾았다. 일본은 표면상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변화 하나를 짚으라면 도처에 중국인들이 널려있다는 사실이다. 관광지에는 고성을 지르는 질서없는 중국인들이 바글바글 했다. 특히나 놀라운것은 일본의 곳곳에 중국상인들이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다. 틈만 보이면 파고드는 중국인 특유의 국민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짜상품이 없는 일본땅이라 여기는 중국관광객들은 아무 생각없이 중국인이 경영하는 점포에서 “일본제” 상품들을 많이 샀다. 귀국후 확인해보니 가짜 상품들이 많았다. 중국상인들은 일본에서도  뻔뻔스럽게 짝퉁상품을 진품으로 속여 팔고 있었다. 중국상인들이여, 정직한 상도를 걸어라! 상혼이 혼탁하고 상덕이 없이 정직한 상도를 걷지 않는다면 상술이 아무리 교묘할지라도 잠시적일뿐 장래는 없다.   중국이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기는 하나 중국인들은 존대를 받지 못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7    사돈, 가깝지만 멀어야 하나 댓글:  조회:1322  추천:0  2017-08-16
사돈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의 혼인으로 발생하는 인척관계 또는 이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상대편의 친척을 일컫는 호칭”이다. 그러나 사돈의 어원은 의미심장하여 그냥 넘어가기에는 심히 아쉽다.   고려시대의 명장 윤관(尹瓘)과 명신 오연총(吴延宠)은 1107년 나라의 부름을 받고 북방의 녀진족 정벌에 나섰다. 윤관은 도원수, 오연총은 부원수로서 생사를 같이 하며 어깨 겯고 싸워 녀진을 평정했다.   피로써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더없이 돈독하였는데 나중에는 서로의 자녀를 결혼시켰으며 그 뒤에도 좋은 사이를 한결같이 이어갔다.   백화가 만발한 어느 봄날, 집에 담가둔 술이 향기롭게 잘 익은것을 본 윤관은 문득 오연총이 간절해져 하인에게 술동이를 지우고 오연총의 집을 향해 떠났다. 가는 길에 개울이 하나 있어 윤관이 개울가에 이르니 간밤에 내린 비로 개울은 불어서 건널수가 없었다. 윤관이 서성이는데 마침 오연총도 술을 들고 개울 맞은켠에 서있었다. 오연총도 윤관에 대한 그리움을 못이겨 윤관을 찾아 떠난 길이였다.   개울을 건널수 없어 서로 안타까워 하던 차에 윤관이 먼저 “각자 가져온 술을 상대가 가져온 술이라 여기고 마시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두사람은 등걸나무(查)에 걸터앉아 서로 머리를 좋아리며 (顿) “한잔 듭시다”하고 권하면서 스스로 술을 따라서 마셨다. 이로부터 서로 자녀를 결혼시켜 맺은 사이를 사돈(查顿)이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친밀한 사이와 지극한 우정을 내포한 사돈의 연원과는 달리 우리 민족의 전통사회에서 사돈관계란 조심스럽고 불편한 관계였다. 사돈을 만나면 분위기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서 “사돈네 안방 같다”라고 표현했고 구속스레 먹는 음식은 “사돈과 함께 먹는 음식”에 비유했으며 사돈은 정중히 모셔야 한다는 뜻에서 “사돈 모시듯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듣기 거북스러운 표현 하나 있으니 다름아닌 “사돈집과 뒤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돈이기에 ‘멀수록 좋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사회는 이 속담과는 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거주조건의 변화로 아파트문화가 형성되였기에 실내에 화장실(뒤간)이 있으며  계획생육정책하에서 태여난 요즘 세대들은 대부분 독생자녀들이라 사촌도 없어 사돈 사이가 자연히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사이로 되여 가고 있다.   사실 사돈이란 남남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워야 하고 또한 가장 가까울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이다. 혼인이란 쌍방이 귀한 아들, 곱게 키운 딸의 결합인데 이 이상 더 후한 선물이 어디에 있으며 이 이상 더 중한 의리가 어디에 있을가마는 이것을 망각하고 여의치 못한 사돈사이로 살아가고 있으니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사돈들이 합작하여 한건 이루자고 해도 힘에 부치는데 사소한 일로 노여움에 젖어 서로 흉허물 보면서 껄끄러운 사이로 한 세상 살아간다.   자녀들이 부부싸움을 할라치면 인생선배로서 합리한 조언을 곁들여 젊은 부부를 화해시키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만을 두둔하다보니 오히려 부부 사이를 악화시키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그뿐인가? “집 사달라고 해라”, “차 사달라고 해라”, “아이를 봐달라고 해라”라고 자식을 사촉함으로써 사돈을 머리 아프게 만든다. 부모들의 작간으로 자식들이 리혼까지 가는 경우가 과연 적지 않다.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추억에 젖어 동창회를 자주 갖게 된다. 얼마전 고중동창회에서 화제는 돌고돌아 자연히 자녀들의 혼사얘기로 이어졌는데 특히 내지거나 국외에 거주하는 동창들은 자녀들의 혼기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선족 사위나 며느리를 삼아야 하겠는데 조선족이 희소한 곳이다보니 타민족과 통혼할가봐 크게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대화중에 서로 자식들의 나이를 묻다가 그러면 조건이 비슷한 자식들을 맞선 보여 동창끼리 사돈 맺으면 될거 아니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일이 쉽게 풀린다고 쾌재를 부르는 판에 한 동창이 재를 뿌렸다. “여태까지 좋게 지내던 동창 사이가 사돈을 맺은후 사이가 비틀어지면 어쩌나? 예로부터 사돈사이가 매끄럽지 못했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들 서글퍼졌다. 과연 사돈이란 가깝지만 멀어질수밖에 없는가.   사돈관계가 맺어지면 서로 리해하고 서로 상의하며 모든 일들을 둥글게 만들어가면서 젊은 부부들에게는 방향판이 되여주는것이 사돈의 도리인데도 말이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돈에 관한 고루한 속담들을 이제 우리는 잊어야 할 때다. 연변일보 2017-8-16
16    보건품시대, 국민은 그렇게도 허약한가 댓글:  조회:1267  추천:3  2017-05-10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은 아편을 피워 얼굴이 노랗고 육신은 겨릅대처럼 되였으며 정신은 멍청했다. 군대는 규모상 덩치만 컸지 전투력을 잃고 투지를 상실했으며 무기력했다. 허약한 체질, 저하된 정신. 굴욕적인 심리는 선명한 시대적 특징을 형성했다. 그러나 흥미로운것은 당시 중국을 대체하여 아시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된 일본의 국민들은 아편을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갑오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완패한후 사상가 엄복(严复)은  적자생존 우승렬패(适者生存 优胜劣败)라는 사회다윈주의 리론으로 중국을 해부하였다. 그는 천진 ‘직보(直报)’에 글을 발표하여 “중국은 병들어 있으며 중국인은 병부(病夫)”라고 처음 밝혔다. 엄복은 그러면서 중국의 상황에 맞는 ‘약’을 써서 국민들을 치료해야 한다고 력설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것은 엄복 자신도 아편을 과다 흡연하여 만병을 얻고 불귀의 객이 됐다는 사실이다. 청말민초(清末民初)의 소설가 증박(曾朴)은 ‘동아병부(东亚病夫)’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로신, 진독수 같은 문화인들도 중국을 ‘병국(病国)’, 중국인들을 ‘병부(病夫)’라고 칭했다. 그리고 한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거리에서나 TV에서 보건품광고들이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칼슘보충, 비타민보충, 뇌를 보양하고 신장을 보양한다는 각양각색의 보건품들로 세상은 시끄럽다. 보건품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로소 모두가 보건품을 복용하지 않으면 생명의 지속에 큰 영향이 미칠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전국의 1/2의 국민이 칼슘이 결핍하고 1/3의 국민이 빈혈이며 1/4의 국민은 철을 보충해야 하고 1/5의 국민이 체내에 아연이 결핍하다는 과장되고 협박에 가까운 광고들이 란무한다. 또한 남성들의 70%가 신장이 부실하며 녀성들의 8할이 체내에 독소를 가지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광고내용들이다. 먹거리가 너무나도 풍부해 오히려 무엇을 먹을가 행복한 고민을 하며 건강관리가 최대의 관심사로 되여 신체단련에 각별히 신경 쓰는 요즘 세태인데 우리의 육신은 이전 시대에 비해 오히려 퇴보를 가져왔단 말인가? 과연 우리 국민이 이처럼 허약한 21세기의 ‘동아병부’란 말인가? 세계위생기구(WHO)의 최근 평가보고에 의하면 중국 국민들의 평균수명은 남성 74세, 녀성 77세이다. 14억 인구의 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평균수명은 참으로 놀라운 수치다. 평균수명이라는것은 한 나라 국민의 총체적 건강수준의 기초지수(基础指数)이다. 국제위생기구가 중국 국민에 대해 과학적으로 좋은 결론을 내렸음에도 우리는 모르고 있거나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것이다.   국민들의 이런 심리적 허점을 리용하여 보건품 판매상들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건품은 이름 그대로 보충제이지 치료약이 아니다. 그러나 판매상들은 만병통치약인것처럼 교묘하게 선전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시중에 류통되는 국산 보건품은 원가(成本)에 비해 가격이 아주 높다는것인데 선진국들에서 판매되는 보건품들의 가격과 막상막하거나 오히려 더 높기도 하다. 거기에 중국 국민들이 받는 로임과 비례해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찔한 가격이다.   판매상들의 공략목표 1순위가 로인이다. 로인들을 모여놓고 ‘전문의’의 강의로 세뇌를 시킨 후 감언리설로 보건품을 판매하거나 저가려행을 시켜주며 잔뜩 흥분시켜 놓고는 로인들이 미처 제정신 차릴 사이 없이 보건품판매를 밀어붙인다. 신변에 자식이 없는 외로운 로인들을 목표물로 정해 깍듯이 대하고 극진히 섬기면서 환심을 산 후 로인들이 아껴 모아두었던 현찰을 인정사정없이 털어낸다.   로인들에게 격장법을 쓰기도 한다. 어느 로인의 자식은 부모에게 얼마짜리 의료기기를 사드렸다며 경쟁심을 조장하거나 보건품을 다량 구입한 로인들을 한껏 치켜세움으로써 천진한 동심으로 되돌아간 로인들의 승벽심을 자극해 판촉한다.   현지 명문고중의 학생들, 그것도 공부 잘하는 수재들을 미리 렴탐해서는 대학입시전 무료로 보건품을 얼마간 공급한후 그들이 명문대학에 입학하면  홍보전략을 본격적으로 펴면서 마치 그 수재들이 여차여차한 보건품을 복용했기에 명문대학에 입학한것처럼 오도한다. 허위광고를 믿고 거액을 들여 보건품을 복용시킨 자식이  대학입시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두자 속히웠다며 락루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약보(药补)보다는 식보(食补)가 기본이요 근본임을 과학은 우리를 일깨워준지 오래다. 육류나 수산물, 채소, 과일을 적당히 먹으며 즐거운 기분으로 자신의 신체상황에 맞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또한 싱싱한 청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면서 신생사물과 접촉하고 생기를 나눈다면 세월의 흐름에도 떨지 않을것이다.   병은 없는데 신체가 허약하다면 의사의 권장에 따라 보건품을 리용해야 함은 천만지당하다. 그러나 건강하고 신체의 면역시스템이 잘 돌아가는데 무턱대고 보건품을 애용하는것은 무리다. 외부물질에 의존하기 보다는 신체의 내성과 면역력을 키우는것이 누구나 다 아는 건강장수의 비방이다. 연변일보 2017-5-10
15    각자지불, 아직 불편한가 댓글:  조회:1296  추천:5  2017-03-17
20년전 일본에서 고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일본인들의 생활문화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그중 한가지는 식대(食代, 음식값) 지불방식이였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자리를 함께 했던 손님들이 식대를 각자 평균으로 나누어 지불한다. 혹은 자기가 주문한 음식의 식대만 딱 잘라 지불하기도 한다. 년말이 되여 회사원들이 망년회(忘年会)를 열고 회식할 때면 그 지불방식 역시 특이하다. 위계질서를 엄수하는 일본인들은 급별이 가장 높은 상사가 식대를 제일 많이 지불하며 말단직원은 소정의 식대만 지불하거나 아예 지불하지 않기도 한다. 나름대로 정과 배려가 풍기는 지불방식이다. 식대를 지불함에 있어서 녀직원도 자기의 몫을 가차없이 지불한다. 녀자라고 해서 공짜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속 좁고 째째한 일본인들의 모습으로 비쳐질수 있는 한 대목이다. 와리깡이라 부르는 일본인들의 이 결산방식이 합리하며 실제적이라고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수요된다.   와리깡을 우리말로 순화시켜 부른다면 각자지불, 각자내기, 각자부담 정도로 되겠다. 유럽에서는 더치페이(Dutch PaY)라고 부른다. 더치페이의 시작은 네덜란드(화란)였다. 다혈질적인 네덜란드인들은 생활에서는 근검절약하는 정신이 강하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를 뜻하는 영어인데 더치페이는 ‘네덜란드식 계산법’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처음으로 더치페이를 실행하자 영국인들은 신사풍도가 없다고 조소하며 깔봤다. 그러던 영국인들도 점차 더치페이가 합리적임을 인정하며 수용하기에 이른다. 현재 동서양의 선진국들에서는 더치페이를 실행하고있는데 심지어 자기가 식사를 초대하고도 더치페이를 하는 정도여서 우리의 립장에서 보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기의 언어를 고수하며 외래어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중국인들은 더치페이에 관해서는 “AA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AA”는 “Algebraic Average”의 략칭이다. 대수평균(代数平均)이라는 뜻이다. 검소하기 그지없는 중국인들은 식탁에서만큼은 대범하다. 중국인들은 많은 일들을 식탁우에서 해결한다. 감정을 쌓으면서 사업상 애로사항들을 술상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들이 통 크게 한턱 내는것은 은혜를 갚거나 혹은 상대에게서 보답을 기대하거나 무엇을 이루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설사 좀스러운 중국인이라 할지라도 식탁 앞에서만큼은 통쾌하고 호방하며 인심이 후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AA제는 아직 잘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농경시대의 마을공동체는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거주이전이 어렵게 만들어 한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살게 했다. 그래서 이웃이 ‘사촌’이였고 마을주민이 ‘친척’이였다. 더우기 우리민족은 정이 많아  네것내것 없이 나누어 먹기를 좋아했으며 성질 또한 급하고 화끈하여서 좀스럽지 않으며 통이 크다. 그러니 각자지불은 인간적이 못되고 너무 계산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민족기질상 수용하기 힘들다.   인심이 전에 비해 크게 각박해졌다는 요즘에도  음식값을 내겠다며 서로 우기는 훈훈한 인정이 아직도 녹아있으며 식사전에 미리 카운터에 선금(押金)을 맡기거나 식사중 슬며시 나가서 남몰래 결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심은 아직도 넉넉하지만 현실은 살아가기에 빡빡하다. 사석에서 조사를 해보면  각자지불이 좋다는 응답이 늘 절대다수이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모두들 주저한다. 각자지불하자는 말을 누가 먼저 꺼내는것은 아주 난처한 일이다.   음식값을 낸 사람이나 그냥 얻어먹은 사람이나 궁리는 따로 있다. 얻어먹은 사람은 미안한 마음이 생기며 나중에 나도 사야지 하는 심리적 부담이 따르고 음식값을 낸 사람은 상대도 언젠가는 사겠지 하는 기대가 은근 슬쩍 생긴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섭섭함이 쌓여 인간관계가 꼬일수도 있다. 각자지불은 정이 삭막해보이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상대에게 빚을 지우거나 상대로부터 빚진 관계가 아니여서 부담없이 다음 만남을 약속할수 있다.   혼자서 한턱 내는것과 각자지불은  모순되지 않는다. 경사나 뜻깊은 일로 혼자서 한방 쏠 땐 통쾌히 쏴야 한다. 이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일상 가운데 친지모임, 동창모임, 명절모임 등 다양한 행사에서 한사람이 밥값을 다 내는것은 미덕이기도 하지만 부작용 또한 크다. 부담이 과중하여 다음 모임을 주저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고향 떠나 외국이나 내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의 신세대들이 각자지불을 선호하며 실행에 나섰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기성세대들이 도저히 따르지 못할 지혜로운 우리의 신세대들인것이다.   각자지불, 아직은 어색하고 실행에는 불편하며 체면이 구기는 일이지만 거부하고싶지 않는 합리적인 이 생활문화의 보편화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우리사회가 건강하고 공존공생하는 사회가 될것임을 확신한다. 연변일보 2017-3-15
14    말보다 행동을 댓글:  조회:1281  추천:2  2017-01-05
“이미 작성된 원고로 장편연설을 몇시간씩이나 하는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꺼린다. 그대신 말은 짧지만 백성의 마음에 와 닿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말을 하는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원한다. 더우기 말은 어눌해도 백성의 리익을 도모하기 위해 불철주야 두발로 열심히 뛰는 그런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두손 들어 옹호한다. ”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 민주정치의 리상을 간결하지만 뜻깊게 표현해 자주 인용되는 이 명언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게티즈버그에서의 연설에서 나온다.   게티즈버그는 미국 펜실바니아주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서 남북전쟁의 대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1863년 가을, 이 력사적인 싸움터에 국립묘지가 만들어졌고 기념식이 거행되였다. 여기서 링컨은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연설’을 했다.   그날 당대 최고의 연설가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이 먼저 연설했다. 그는 두시간 동안이나 열변을 토했다. 1500여개나 되는 구절들로 꾸며진 화려한 연설이였다. 에버렛이 연설을 마치자 천지를 진동하는 박수가 터졌다. 그다음 등장한 링컨은 272개 단어, 10개의 구절로 구성된 짧지만 의미깊은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는데 2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링컨이 연설을 마쳤지만 청중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청중들은 링컨의 연설이 너무 짧아 연설이 계속될것으로 여겨 박수치지 않았던것이다.   에버렛의 열변은 끝나는 순간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어떠한 내용이였던지 청중들은 나중에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링컨이 한 짧은 연설은 불후의 명연설로 남아있다. 미국의 소학생들은 링컨의 이 게티즈버그 연설의 전문을 암송하도록 되여있다고 한다.   연설의 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토마스 윌슨은 짧은 연설일수록 어렵고 준비도 그만큼 필요하다는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총화했다. “한시간의 연설에는 아무런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20분 정도의 연설에는 두시간 가량의 준비가 필요하다. 5분간의 연설에는 하루밤의 준비가 필요하다.” 연설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수 있는 대목이다. 긴 연설은 마음속에 주제가 서면 어떻게든 이어나갈수 있지만 짧은 연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심사숙고와 음미를 거듭거듭 거치지 않으면 청중에게 감명을 주지 못한다.   알고보면 모택동은 연설의 달인이였다. 전문적인 저술을 제외하고 그의 연설은 알아듣기 쉬웠고 구수했으며 짧았으나 강한 선동력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가 없는 홍군전사들이나 심지어 무식한 농민들도 다 알아들었고 그를 따랐다. 모택동의 연설은 쏘련류학을 거치고 맑스주의리론을 강마르게 되풀이하면서 장황하게 늘여놓는 기타 지도자들의 연설과는 풍격이 크게 달랐다. 결국 모택동은 무식하다고 세상이 깔보는 농민들을 이끌어 국민당정권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1949년 9월 21일 ‘개국성전’으로 불리우는 전국정협 제1기 전체회의에서 모택동은 짧은 연설속에 “중국인민은 일떠섰다”는 한마디와 1949년 10월 1일 ‘개국대전’에서 “중앙인민정부는 성립되였다”는 천곤(乾坤)을 정하는 구절로 신중국의 탄생을 만천하에 선고했다. 어디 그뿐인가. 모택동의 제사(题词)는 기본을 언급하나 핵심을 찔러 박력이 강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자’, ‘위대하게 살고 영광스럽게 죽었다’, ‘학습을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 ‘제국주의와 일체 반동파는 모두 종이범이다’는 제사는 시대를 풍미하는 력사적인 제사로 남아있다.   말을 막힘없이 줄줄 이어가고 재치있게 빨리 하며 달달 외우는것은 연예인들의 화술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간부라면 통소리, 빈소리, 헛소리, 큰소리를 삼가하고 실속있는 말을 해야 한다. 원고도 없이 몇시간이고 연설하는것을 지도간부의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한참 잘못됐다. 말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현장을 대충 둘러보면서 몇마디 나누고는 이미 작성된 원고로 장편연설을 몇시간씩이나 하는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꺼린다. 그대신 말은 짧지만 백성의 마음에 와 닿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말을 하는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원한다. 더우기 말은 어눌해도 백성의 리익을 도모하기 위해 불철주야 두발로 열심히 뛰는 그런 지도간부를 백성들은 두손 들어 옹호한다.    요즘 지도간부들의 기바꿈이 한창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지도간부였으면 하는것이 백성들의 간절한 소원이다. 그래서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백성들이 초유록을 늘 외우고 절절히 그리는것이다.    ‘말보다 행동을’, 이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이기도 하지만 특히는 지도간부들의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연변일보 2017-1-4  
13    작은 정성 큰 기쁨 댓글:  조회:1172  추천:3  2016-08-04
공자가 외유할 때 어디선가 슬피우는 소리가 들려서 찾아가보니 고어(皋鱼)라는 젊은이였다. 공자가 그 사연을 물어 고어가 대답하기를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나무가 조용히 서있고싶어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싶어도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않습니다 (树欲静而风不止 子欲养而亲不待). 흘러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것은 세월이고 돌아가시매 따라갈수 없는것은 부모님입니다. 이제 저는 이 세상을 하직하여 부모님을 섬기지 못한 죄를 조금이라도 씻어볼가 합니다.” 고어는 말을 마치고 한참 통곡하더니  죽고말았다.   고어의 죽음으로 인해 공자의 문하생중에서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는 제자가 열세명이나 되였다.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은 자신이 부모가 돼봐야 부모님의 은혜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며 부모님의 은혜를 깨우치는데는 수십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인생의 절반 남짓 지나야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늦게 나마 깨우치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저 할 때면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아니한다. 그래서 가슴 미여지는 일이요 평생의 여한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짐승의 세계에서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것이나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성은 인간에게만 있다. 세상의 많은 인종중에서 우리 민족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류달리 극진했다. 세계 그 어느 민족에 비해서도 으뜸이였다.   세계적인 문명사학자인 토인비는 한국에 와서 효강의를 듣고 흐느끼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제도는 한국에 있다”고 감탄했으며 “만약 지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꼭 하나 가지고 가야 할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의 효문화이다.”라고 극찬했다.   우리 연변은 유교의 시조 공자를 배출한 중국내에서도 가장 먼저 로인절을 제정한 지역이다. 해마다 로인절이 되면 우리는 농후한 명절의 분위기속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자매 온 가족이 모여 즐긴다.   나라에서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阳节)을 곁들여 ‘로인절’로 정한것은 한참 뒤의 일이며 그 효과도 역시 미미하다. 그래서 상해시는 부모와 따로 사는 자식이 정기적으로 부모를 방문하도록 의무로 하는 조례를 제정해 2016년 5월부터 시행했다. 조례에 따르면 자식이 찾아오지 않아 외롭다고 느끼는 부모는 자식을 제소할수 있다. 판사는 사정을 파악해 자식에게 부모방문을 명령할수 있다. 법원의 명령을 받고도 부모를 찾지 않는 자식은 금융거래상 신용에 문제가 없어도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된다.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것을 리유로 우리는 부모에 대해 소홀하다. 부모에게서 받아가질 때에는 당연한것으로 여기며 고마운 마음 별로 없이 넙적넙적 받다가도 부모에게 드릴 때에는 묘한 계산이 앞선다. 얼마간 해드리고는 생색내기에 바쁘다. 인간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은 짝사랑이라 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식들이 자숙자계해야 할 일이다.   의문이망(倚门而望)이라는 말이 있다. 문에 기대여 서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바라본다는 뜻이니 이렇듯 간절한 심정을 지니신 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사는 어느 한 아들은 어머니에게 깜짝 기쁨을 드리려고 미리 기별을 하지 않고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크게 놀라셨는데 그후부터 어머니는 마당에 인기척만 나면 아들인줄 알고 뛰여나가군 했다. 이런 우리의 어머님들이 그 많은 그리움을 다 나누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학문과 출세를 위하여 부모를 잃었던 고어의 통곡이 어쩌면 나중에 하게 될 자신의 통곡일지도 모른다. 세월은 흐르는 물같아 순간도 그 흐름을 멈추지 않고 흘러만 가니 부모를 섬기는 시간도 결코 길지는 않다. 부모님의 건강은 잠간이다. 평생 갈것 같던 부모님의 건강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때문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한시 바삐 서둘러야 한다. 부모를 여의고나면 ‘불효자는 웁니다’를 아무리 불러봐야 무슨 소용있으며 땅을 치고 하늘을 부르짖어도 어찌 다시 부모의 얼굴을 볼수 있으랴!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것이 어르신(로인)들이다. 자식들의 작은 정성에도 큰 기쁨을 느끼시는것이 부모님들이다. 미효(微孝)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에게 소박한 옷 한벌 사드리는것도 효도요, 부모님이 신변에 계신다면 자주 찾아뵙고 얘기를 나누는것도 효도이며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있다면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는것도 효도요,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냥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떡이는것만으로도 효도이다. 이런 미효들이 모여 대효(大孝)를 이룬다. 굳이 일시불로 거금을 드리는것만이 대효인것은 아니다.   부모님께서 로쇠하여 자식에게 의뢰하려 할 때, 늙으신 부모님이 부담스레 여겨질 때 그동안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희생을 떠올리면 일순간 생각이 바뀔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는 법. 부모님의 은혜를 보은하려 노력할것이다.   8월 15일은 효의 본고장 연변의 ‘로인절’이다. 이날 하루만의 반짝효도에 그치지 말고 평소 부모님에게 작지만 정성 담긴 효도를 꾸준히 해드리자. 작은 정성이라도 부모님에게는 크나큰 기쁨이 되고 여생의 락이 될것이다. 연변일보 2016-8-3
12    커지는 어머니 작아지는 아버지 댓글:  조회:1596  추천:1  2016-06-22
사자가족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나면 느끼는바가 많다. 어미사자는 새끼를 낳고 키워야 할뿐만아니라 먹이감도 사냥해야 하는 고단한 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비사자는 게으른 낮잠을 자기가 일쑤이다. 허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단 외래침략자가 들이닥치면 가족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며 사투를 벌린다. 승자가 되면 가족을 지켜내지만 패자가 되면 가족구성원을 비롯한 모든것을 빼앗기고 령지에서 쫓겨난다. 승자 수사자는 어미사자를 차지하는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끼사자들을 모조리 잡아죽이고는 새로운 후대를 번식시켜 새롭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것이다. 21세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치렬한 경쟁시대이다. “남자는 밖에 나가면 일곱 사람의 적이 있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불꽃 튀는 경쟁속에서 남자들은 인생의 패자가 되여서는 안된다는 심리적 긴장감과 함께 늘 경쟁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남자는 결혼하면 일순간 사명감이 생기며 자식이 생겨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 되면 불시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자나깨나 가족을 먹여살리는 일에 골몰하면서 정신없이 뛰게 된다. 요즘에는 남자의 능력이란 주로 경제력이다. 경제적으로 실력이 없으면 남자는 버림을 받는다. 사랑도 잃고 가정도 잃는 불쌍한 인생이 되기 십상이다. “가난이 방안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가버린다”는 서구자본주의의 격언이 들어맞는 요즘이다. 전통적으로 남편은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안해는 가사와 자녀의 양육에 힘썼다. 그러나 남편 혼자 벌어서는 먹고 살기 힘든 각박한 세월이 도래하면서부터 안해도 밖에 나가 일해야 하는 “맞벌이부부” 세상이 돼버렸다. 이때로부터 안해의 입김이 세졌고 어깨에는 힘이 실리게 됐다. “녀성도 절반 하늘을 떠멘다”는 정치적 슬로건때문만이 아니였다. 안해에게 경제력이 생기면서 그에 따라 자식들의 눈에 비치는 어머니의 형상은 점점 커지는데 그에 반해 아버지의 형상은 오히려 작아진다. 가정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틀어쥐고있는 어머니는 실질적인 1인자로서 거의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고있다. 자식을 하나 더 낳고 안 낳는가도 안해가 결정하며 경제재테크도 안해의 한마디면 완전 끝이다. 자식양육이나 아이의 과외공부 선택도 어머니가 주도한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해야 하며 어머니의 눈치 보기에 바쁘다. 한자의 부(父)자는 손에 회초리를 들고있는 상형문자이다. 회초리로 자녀를 치면서 가르치고있는 아버지의 모양을 그렸다. 그러나 요즘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교육권도 상실되고있다. 예로부터 아버지는 가업을 돌보고 가풍을 이루면서 가장으로서의 중책을 짊어졌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위가 컸다. 그러나 요즘에는 경제토대에 따른 어머니의 권위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다. 특히 남보다 적게 벌어오는 아버지의 어깨는 늘 처져있고 신경은 항상 긴장하다. 이 극도의 긴장감과 예민한 경쟁의식을 풀어줄수 있는것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가정분위기뿐이다.  지난해말에 새해를 맞으면서 아버지에게 “가정의 금상”을 수여한 한국의 어느 초등학교(소학교) 1학년 어린이가 상장에 또박또박 쓴 금상수여내용이 세상의 아버지들로 하여금 왈칵 눈물을 쏟게 했다. “금상수상자: 우리 아버지 이 어른은 1년 동안 아파도 참고 회사에 가서 우리를 먹여 살렸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때 한국의 아버지들은 혈루(血泪)를 삼켜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속에서 아버지들이 마시는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였다. 이때 만들어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동요는 기운을 잃고 어깨가 처져있던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힘을 주었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버지들은 어린 자식들의 간절한 노래를 들은후 눈물을 쓱-닦고는 또다시 전쟁터와도 같은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군 했다. 앞서 “어머니의 날”에는 자녀들로부터 이런저런 선물을 받았다고 세상은 어머니들의 자랑 일색이였다. 이번 “아버지의 날”에 자식들은 과연 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드렸는지, 모두들 “아버지의 날”도 있다는것을 알고나있었는지…  연변일보 2016-6-22
11    힘내라 청년백수 댓글:  조회:1494  추천:3  2016-04-01
조선왕조 중종시절때 절제없는 과거선발로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해  허송세월하는 한량들이 많았다. 놀고 먹는것도 하루이틀 좋을뿐 허구한 세월 할 일 없이 보낸다는것도 심히 괴로울터. 참다 못해 이런 한량들은 끼리끼리 조직을 구성해서 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다녔는데 이것이 바로 백수(白首)의 어원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별로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청년들을 쉽게 볼수 있다. 백수의 어원이야 어떻게 됐든 우리는 이런 청년들을 청년백수라고 부른다. 중국의 매년 대학졸업생수는 이미 700만명을 돌파했다. 그중 300만명은 취업을 하지 못한다.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인 중국에는 일자리가 넘쳐나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경제는 지금 “류이스의 전환점”에 들어섰으며 “창조성파괴” 단계에 진입했다는것이 경제학자들의 해석이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더 류이스는 한 국가의 경제가 고속성장을 이룰 때 취직률이 오히려 대폭 감소된다는 리론을 제기했다. 일자리가 있음에도 높은 로임이나 월등한 로동환경이 아니고는 취업하려 하지 않기에 실업률이 증가한다는것이다. 오스트리아(奥地利)의 경제학자 요셉  숨피터도 “창조성파괴”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경제고속성장기에 시장경제는 기업가들의 창조성행위에 의하여 균형이 타파됨으로써 새로운 일자리가 생성됨과 동시에 전통적인 일자리뿐 아닌 중고등직위의 일자리도 대량 감소한다는것이다. 과연 경제학자들의 리론처럼 현재 청년들의 앞에는 취업절벽이 가로막혀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다. 어렵게 취직해도 로임은 적다. 청년들은 학창시절 부풀었던 희망이 랭혹한 현실로 바뀌자 실망속에서 직장을 그만두며 본의 아니게 청년백수가 된다. 청년백수는 그 류형도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도전정신과 투지를 잃은 청년백수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세대들과 다르다. 풍요의 시대에 태여났고 자랐기에 고생을 못해봤다. 때문에 곤난을 이겨내려는 용기와 근기가 없이 무맥하다. 극한의 경쟁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늘 불안하고 암울한 미래만 상상된다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한다. 유럽에는 니트족이 있다. 일하지도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들이다. 일본에는 사도리세대가 있다. 의욕과 도전의식보다는 자기만족에 뭍혀 사는 젊은이들이다. 한국에는 ‘3포세대’가 있다. 직장과 가정, 집의 꿈을 포기한 청년세대이다. 대만에는 딸기세대가 있다. 너무 물러 쉽게 상처를 입는 무기력한 청춘세대이다. 우리의 청년세대들이 이런 세대로 전락될가 심히 걱정된다. 청년을 청년이라 부르는것은 진취심과 도전정신이 있기때문이다. 진취심과 도전정신이 결여되여 있다면 그는 이미 청년이 아니다. 청년이라면 험난한 세상과 부딪히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도전하고 분투해야 한다. 짧디짧은 인생에서 쓰라린 실패를 겪으면서도 웃으면서 재기할수 있는 시간은 청년시절뿐이다. 청년이란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한탄하지 말아라. 청춘만큼 값지고 큰 밑천이 없다. 청춘같은 한 밑천을 가지고도 한번 해보지 않을 리유가 없다. 곤난 앞에서 인생이 끝났다며 기죽지 말아라. 인생이 끝난것이 아니라 이제 금방 시작일뿐이다. 미국프로야구 뉴욕메츠팀의 전설적인 감독 로런스 피터베라는 력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것이 아니다.” 인생이 끝나지 않는한 재기의 기회는 반드시 돌아온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젊음이 있는한 어디까지나 기회요 가능이요 반전이다. 포기라는 단어만은 절대로 사용할수 없다. 청년백수에게 있어서 흘러간 지난날은 불안과 고통으로 모대긴 세월이였을것이다. 이제부터는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격정있는 청춘특유의 용기로 재기하고 도전해야 한다. 노력한것만큼 얻느냐 아니면 노력한것보다 많이 얻느냐, 적게 얻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노력하면 꼭 얻게 돼있는것이 세상의 리치이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노력하는 인생을 살면 나중에 후회가 없다. 청년백수들이여, 자신에게 기합을 주고 드넓은 세상을 향해 크게 한번 다짐하라. 청춘을 밑거름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2016, 힘내라! 청년백수. 연변일보 2016-3-30
10    사력을 다해 끝까지 댓글:  조회:2682  추천:7  2015-10-29
지난 세기 50년대, 유럽의 한 유명한 녀수영선수는 전세계에서 영국해협을 횡단한 첫 사람으로 되려고 맹세했다. 그녀는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력사적인 순간을 위해 착실히 준비했다. 마침내 그날이 돌아왔다. 녀선수는 세계의 수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심 가득히 바다에 뛰여들었다. 시초에는 날씨가 아주 좋아 녀선수는 순조롭게 목표를 향해 헤염쳐나갔다. 그러나 대안에 가까와올수록 안개는 점점 짙어져 나중에는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녀선수는 망망한 대해에서 방향감을 완전히 잃었다. 그녀는 아직도 얼마만큼 더 헤염쳐나가야 대안에 도달할수 있을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공허해졌고 정신력마저 무너져 기진맥진했다. 마침내 그녀는 해협횡단 포기를 선포했다. 구명뽀트가 다가와 그녀를 구할 때 그녀는 이제 100m만 더 헤염쳐 나간다면 대안에 이를수 있었다는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지척에 두고서도 포기한 그녀를 보면서 대단히 애석해 했다. 성공은 그녀와 그렇게도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2008년 북경올림픽 100m 결승전에서 져메이커의 우사인 볼트는 9초 69라는 불가사이한 성적으로 올림픽 100m 세계기록을 쇄신했다. 그러나 우승의 리면에는 크게 아쉬운 점 하나 있었다. 볼트는 70m선에 이르렀을 때 1등은 이미 확정된것임이 판단되자 속도를 죽였고 심지어 종점과의 20m 거리에서 “회두망월(回头望月)의 동작을 취했는가 하면 라스트선에 이를 때에는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세레모니를 취하기에 급급했다. 볼트는 당시 프로로서의 미숙함을 보였던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이듬해에 있게 되는 세계륙상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을 또 한번 깨뜨린다면 거액의 상금을 탈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것도 하나의 큰 원인이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전성기를 맞은 볼트가 라스트선까지 사력을 다해 질주했더라면 100년 가는 올림픽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일이였다. 참으로 아쉬운 한 대목이다. 올해 우리 연변축구팀 용사들은 와신상담의 장장 15년만에 중국슈퍼리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런 눈부신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데는 물론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신화를 직접 만들어낸 연변축구의 “구세주” 박태하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연변축구팀 용사들의 각고의 노력과 탄탄한 응집력, 강한 승부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히나 돝보이는것은 경기종료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불사르는 불요불굴의 정신이였다. 3월 22일, 연변팀과 하북화하팀간의 원정경기는 그야말로 짜릿한 경기였다. 경기 58분경 우리의 흑진주 스티브가 선꼴을 넣었다. 그뒤 연변팀은 87분만에 하북팀의 라두비치에게 동점꼴을 허용하였다. 93분경(보충시간)에는 하북팀 밀리아스에게 역전꼴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승전을 확신하면서 남은 1분 시간소모를 위한 축하세레모니를 펼치던 하북팀의 기쁨도 거기까지, 최후의 한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연변팀은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다가 마침내 하태균이 천금같은 동점꼴을 성공시켰다. 그와 동시에 경기는 끝났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였다. 그뒤에 있은 경기도 이를 증명했다. 5월 2일 홈장에서 있은 할빈의등팀과의 경기는 완전히 격동의 드라마였다. 후반 5분 상대팀의 레노쏘선수가 선제꼴을 뽑았다. 우리 팀은 내내 고전을 거듭하다가 90분 경기시간도 끝나고 추가시간 5분마저 거의 끝나는 순간 또 한번 기적을 일으켰다. 스티브의 패스를 이어받은 하태균이 력사에 남길 기막힌 동점꼴을 터뜨린것이다. 경기결속 몇십초를 남겨두고 인간으로서는 예상할수 없는 이 유종의 미를 거두었을 때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으며 열광하는 관객들의 환호성은 천지를 진동했다. 전체 연변인민들과 나아가서 해내외의 조선족동포들은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 이젠 다 졌다고 여겨져 경기관람을 포기하고 미리 퇴장한 일부 축구팬들은 너무나도 감격적인 그 순간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게 됐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세운 목표를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한 순간까지 기회로 삼아 정진을 멈추지 않고 용왕매진한다면 소원했던 바를 이루지 못할리가 없다. “최선”이나 “열심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력을 다해 인생길을 뛴다면 이루지 못할 꿈도 없는것이다. “사력을 다해 끝까지!”, 이것이 올 한해 연변축구팀 용사들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여태까지 걸어온 인생길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는가? 정말 사력을 다해 끝까지 분투했는가? 모두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랭정히 생각해볼 일이다. 연변일보 2015-10-28  
9    하는 일 즐겨라 댓글:  조회:1651  추천:3  2015-05-19
  저명한 언론인이였던 독일계 유태이민 아돌프 옥스는 1896년 부도직전의 뉴욕타임즈(纽约时报)를 인수한후 철저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는 외신종합뉴스를 강화했고 독자들이 관심하는 경제와 금융에 관한 열점화제들을 크게 다루었으며 잡지란을 추가하는 등 종합신문으로 격조를 높였다. 하여 뉴욕타임즈는 마침내 세계 10대 유력 일간지로 탈바꿈했다. 아돌프 옥스가 성공한후 사람들은 그에게 성공비결을 물었는데 그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려행객이 길을 가다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일하고있는 3명의 석공을 만나게 되였다. 려행객은 그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있느냐고 물었다. 첫번째 석공은 “보면 모릅니까? 이렇게 돌을 가공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할수 없이 일을 합니다”라고 거칠게 대답했다. 두번째 석공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고된 일임에도 자기가 받는 월급이 너무 적다고 푸념하였다. 그런데 세번째 석공은 밝은 표정에 긍지에 찬 목소리로 “사원(寺院)을 짓고있습니다.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은 보람찬 작업입니다. 보잘것 없는 돌덩이가 내 손을 거쳐 생명력있는 작품으로 다시 태여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고있기에 매우 즐겁습니다.”라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분석해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우선 일에 재미를 느끼고 일을 즐겼음을 보아낼수 있다. 스위스의 장인들은 세계 최고품질의 시계를 만든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평생을 하루같이 즐겁게 일을 한다. 독일에서는 꿀뚝수리공도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느끼며 평생 갈고 닦은 기술이 실전되지 않도록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일지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기술을 전수한다. 아들 또한 흔쾌히 받아들인다. 일본인들은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애착하는 정도를 넘어 혼을 부어넣는다. 일본에는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자기만의 기술과 비법을 축적하며 전승하는 전통이 있다. 일본에 100년 이상 되는 기업이 2만여개가 되는데는 출세욕이 적은 일본인들의 장인정신이 밑밭침되고있기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력사가 1000년이 넘는 기업은 8개뿐으로 그중 7개가 일본에 있고 나머지 1개는 다름아닌 독일에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세계최고의 제품들을 쏟아내면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있는것이다. 생각한 다음 뛰는 타민족과는 달리 우리는 뛰면서 생각하는 능동적인 민족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알아주는 우리 민족 특유의 결단성, 순발력과 추진력이 강한 강점이 있는 대신 인내심이 부족하고 지구력이 결핍하며 하는 일에 인츰 싫증을 느끼는 약점도 있다. 또한 자기가 하는 일의 장점은 보지 않고 단점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적지 않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다른 일을 하면 했지 자기가 하고있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그나마 가졌던 기술이나 비법은 전수되지 못하고 당대에서 대가 끊겨 결국 실전되고마는것이다. 후대들 또한 선대에게서 마음 먹고 기술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여 한때 반짝하던 우리 기업들이 어느 사이인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춘다. 기술을 익혀 립지를 굳힘으로써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고 “여기가 아니면 밥 벌어먹을 곳이 없겠는가…”라고 하면서 걸핏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이곳저곳 자리를 옮긴다. 현재의 직장과 현재 하고있는 일은 생각여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막심 고리끼는 말했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락원이다. 그러나 일이 의무라면 인생은 지옥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즐겁게 펼쳐진다.” 일을 하다보면 지겹고 싫증날 때가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이럴 때면 자신이 하는 일에 특정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미래와 가족을 위하여 보람있는 일을 하고있다고 생각해보자. 오늘의 고생이 필연 래일의 값진 열매를 맺게 된다고 확신해보자.그러는 순간 따분함은 일소되고 정신이 분발되며 기운이 솟구칠것이다. 하는 일이 즐거우면 진취심도 개발된다. 진취심이 있는 사람은 눈빛부터 빛난다. 무엇인가 자꾸 발견하려고 애쓰기에 투지가 높다. 빛나는 눈빛의 소유자와 썩은 명태처럼 희멀건 눈빛의 소유자가 있을 때 누가 성공할것인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하는 일 즐겨라. 한없이 즐겨라. 그러면 아침 출근길 즐겁고 저녁 퇴근길 거뜬할것이다. 즐거운 하루하루가 모여 후회없는 보람찬 인생을 이룰것이다. 연변일보 2015년 5월 13일
8    우리, 살아남을것인가 댓글:  조회:1671  추천:2  2015-01-24
일본에서 여러해동안 생활하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잊고 살았다.일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하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정신없이 일본어에만 매달려있었던것이다. 그러는 사이 내몸에는 저도 모르게 일본문화가 흠뻑 배게 되였고 나는 그렇게 “일본인”으로 살아갔다. 언어와 문자의 위력은 과연 대단한것이여서 멀쩡한 조선족사나이를 어느 사이에 반쪽 “일본인”으로 확 바꿔버린것이다. 어느날 문득, 나는 너무나 변해버린 자기를 발견하고 한없이 서글퍼지면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있고 문자에는 그 민족의 령혼이 박혀있다.그래서 언어를 잃고 문자를 잃으면 그 민족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것이 아니요,결국에 가서는  망하게 돼있다. 중국의 5천년 력사를 들여다보면 금방 알수 있다.그 옛날 질풍노도와 같이 대륙을 달리며 북방대평원을 호령하던 민족들도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버렸기에 나중에는 씩씩한 기상을 잃은채 그림자처럼 배회하다가  어느 순간인가 사라져버렸다. 한 나라,한 민족을 완전히 정복하는데는 총칼보다도 노화교육이 최고수단이다.노화교육의 골자가 바로 언어와 문자의 말살이다.때문에 정복국은 피정복국민족의 언어 문자부터 강탈하고 말살한다.과거 제정로씨야가 뽈쓰까에 대해 그랬고 프로시아가 프랑스에 대해 그랬으며 일본이 조선에 대해 그랬다.일제는 창씨개명까지 서슴치 않고 우리 민족을 말살시키기에 광분했던것이다. 민족의 언어와 문자,둘 다 지켜낸다면 그 민족은 살아남는다.그런데 언어만 있고 문자가 없다면 그 민족은 매우 위험하다.어떠 의미에서는 문자가 언어보다도 중요하다.어렸을 때 배운 언어는 쓰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그런데 배운 문자는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으며 문자와 같이 배운 언어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위대하다.훈민정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동화된지 퍼그나 오래 됐을것이다. 리순신장군은 무(武)로써 나라를 구하신 분이요, 세종대왕은 문(文)으로써 민족을 구하신 분이다. 한국 서울의 광화문 앞거리에는 원래 리순신장군의 동상만이 외롭게 서있었으나 얼마전에 세종대왕의 석상도 모셔놓았는데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튼튼히 지켜나가는데는 한인(汉人)들이 으뜸이 아닌가 한다.중국내의 한족은  더 말할것도 없고 세계 각지에 널려사는 화인(华人),화교(华侨)들도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고수(固守)하는데는 그 열성이 대단하다. 화인,화교들은 주재국의 언어를 구사하는것이 그 나라 사람들과 전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능란하면서도 자기네들끼리만 같이 있다하면 무조건 한어로 대화한다. 주재국의 언어를 일체 쓰지 않는다.그래서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내가 한국에서 사업할  때 그곳 화교들은 내가 중국조선족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를 중국인으로 간주하면서 항상 나에게 중국어(한어)로 말을 걸어왔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내 친구가 한번은 화교친구네 집에 초대받아갔더랬는데 소학교에 다니는 그집 아이가 무심결에 영어로 제 엄마와  대화했던 모양이다.아이의 엄마는 냉큼 아들애의 귀뺨을 치면서 화어( 한어)로 말하라고 호통치더란다. 그랬다.그들은 주체의식이 뚜렸했고 자기의 철학을 갖고 살았다.기나긴 중국의 력사에서 소수민족이 완전 통치했거나 거의 통치한 시간대는 1/3을 차지한다. 그랬어도 한인들은 동화되기는커녕 역(逆)으로 이민족(异民族)을 동화시켰다. 이렇게 큰 대국임에도 현재 55개의 소수민족밖에 남지 않았다. 베트남같은 작은 나라에도 6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있는데도 말이다. 한인들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자기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애쓸뿐만 아니라 발양하기에도 진력한다. 세계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공자학원”을 보면 알수 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어떠한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민족의식이 그다지 투철하지 못하다.저출산으로 조선족어린이가 감소되는데다가 하나뿐인 아이마저도 한족학교에 보낸다.정부,은행,서비스 업계의 조선족임직원들은 고객이 조선족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어로 말한다.게다가 관념의 “갱신”으로 타민족과의 통혼도 쉽사리 이뤄지고있으니 우리의 혈통,우리의 문화를 전승(传承)해나가는데는 참으로 힘겹고 숨차다. 중국내 조선족도 문제거니와 해외에서 살고있는 우리 부모들 또한 책임이 크다.자식들이 이민족으로 변해가는데도 전혀 걱정이 없고 가슴 아프지 않다.오히려 자랑에 가깝다. “우리 아이는 조선말을 안해.한족아이 다 됐어.” “우리 아이는 조선말을 몰라.영어(일어) 하나만은 잘해.” 오호라, “대범”한 우리 부모들이여,부끄러워해라! 장국을 먹고 김치를 먹으면 조선족인가? 민족의 넋이 살아숨쉬고 민족의 얼이 간직돼야 조선족이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모르면 그는 이미 조선족이 아니다. 우리 언어와 우리 문자를 모르면 조선족간부로서의 자격이 없다. 명견(名犬)도 혈통이 있고 족보를 이어가는 시대인데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이룬 총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민족이 소실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고향은 여러가지로 변화가 많다.그러나 그중에는 절대로 변해서는 안될것도 변해있었다. 백두의 기상을 안고 호연지기를 키우던  민족의 숨결이 미약해졌다. 우리는 살아남을것인가? 언제까지 살아남을것인가?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며 살아남을수밖에 없다. 우리는 원래 우수한 민족이니까.
7    내 운명은 내 손안에 댓글:  조회:1739  추천:2  2015-01-23
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어느 겨울방학때 그들 부부는 명산대천을 유람하다가 “ 백인사묘(白印寺庙) ”라는 유명한 고찰에 머물게 되였다. 덕고박학(德高博学)으로 원근에 소문난 백인선사(白印禅师)가 이 고찰에 있었다. 고찰정원에는 백인선사의 전신조각상이 세워져있었는데 백인선사에 대한 사람들의 숭경을 보아낼수 있었다. 부부는 백인선사를 례방했다. “ 선사님께서는 정말 운명이 있다고 믿습니까? ” 부부의 물음에 백인선사는 “ 있습니다.” 라고 명확히 대답했다. “ 그럼 우리의 운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백인선사는 부부더러 손바닥을 펴라고 한뒤 생명선, 애정선, 사업선을 가르쳐준후 부부로 하여금 폈던 손바닥을 천천히 거두어 주먹을 쥐게 하였다. 백인선사는 물었다. “ 생명, 애정, 사업, 이 세가지 선이 어디에 있습니까? ” 부부는 대답했다. “ 당연히 우리의 손안에 있습니다. ” 백인선사는 다시 물었다. “ 그럼 운명은 어디에 있을가요?” 젊은 부부는 홀연 깨우치는바가 있었다. 그랬다. 사람 개개인의 운명은 모두 자기의 손안에 장악되여 있는것이다! 그들은 이번 례방의 경력을 교수안에 적어 수업시의 생동하고 심각한 사례로 삼았다. 여름방학때 그들 부부는 다시 백인선사를 찾았다. 백인사묘의 정원에 들어서니 백인선사가 한창 자신의 조각상을 향하여 합장하고 기도를 하고있었다. “ 선사님께서는 왜 자신에게 기도를 올리십니까? ” 부부의 물음에  백인선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 나도 난사(难事)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있지요. 다른 사람에게 빌기보다 나 자신에게 비는것이 낫다는것을(求人不如求己).” 부부는 또 한번 소스라치게 깨달았다. 그렇다. 사람 개개인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요 조종사이다. 때문에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신에게 빌고 타인에게 바라는것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구함을 얻는것이 낫다.  오늘날 미개했던 옛날보다도 미신업자수가 늘어나고있고 미신을 믿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지고있다. 결혼을 하거나 새집에 이사오거나 가게를 오픈할 때도 점쟁이나 풍수쟁이를 찾는다. 선진국도 미신을 믿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수많은 철학가를 배출했고 과학적인 사고가 투철한 독일인들도 점, 해몽, 점성술에 관심이 많다. 도꾜의 최고 번화가인 긴자거리에 가면 점쟁이들이 줄지어 앉아있고 새해 첫날이면 사찰에 가서 기도하고 점을 보는것이 일본인들의 관례다. 한국은 도시와 시골 구분없이  점을 보는 《철학관》이 도처에 널려있다. 사람들은 왜 점을 보게 되는가?  만물의 령장인 인간이라지만 허점은 하나 있다. 1분뒤의 일도 예측불가능한 존재인것이다. 무식한 사람만이 점쟁이를 찾는것이 아니다. 학자, 사업가, 정치인들도 점쟁이를 찾는것이 요즘 우리들의 현실이다. 점을 믿는것은 유식무식의 차이가 아니고 그 사람의 정신적요소에 달려있다. 문명의 수준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일전에 국가행정학원 문화교연부에서 밝힌데 의하면 “중국 현처급공무원 과학소양조사” 에 참여한 900여명의 현처급공무원중 47.6%의 공무원이 미신을 믿지 않을뿐 절반 이상의 공무원은 “제비뽑아 점치기” “관상” “주공해몽” “풍수” “성좌예측”등을 믿는다는것이다. 적지 않은 관원들은 승급, 전근, 이사, 장례를 치를 때 우선 점쟁이나  풍수쟁이의 의견을 묻고 그대로 행하는데 심지어 사무실에 테이블을 놓고 출입문을 만드는데도 위치선정때문에 풍수쟁이를 청한다는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점을 믿으면 여러가지로 부작용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든다는것이 가장 해로운 점이다. 자기의 인생을 남에게 저당잡히고 자기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겨버려 질질 끌려다니는 피동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것이다. 점을 믿다보면 자기의 모든 문제를 신의 탓, 운명의 탓,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의 문제를 도피한다. 결국 독립심을 잃고 의뢰심만 조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점을 믿는 사람들의 최대 약점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수 없는것이 인간이거늘 점쟁이도 신이 아닌 사람이라 자기의 앞날을 예측 못하는데 어찌 점쟁이에게 자기의 인생을 맡길것인가? 점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불안이나 괴로움은 그것이 환경이나 외부에서 온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나오는것이다. 점을 보고 일체를 운명에 걸기보다는 곤난에 직면해도 극복해나가는 강건한 마음의 자세와 정신적의지가 바람직하다. 내 운명은 내손안에 있다. 내 생명의 주재자는 바로 내 자신이다. 믿어도 자기를 믿어라! 빌어도 자신한테 빌어라! “우리는 하느님도 신선도 임금도 믿지 않는다”는 에렌 뽀찌에가 작사한 《국제가》중의 이 한 구절은 오늘도 래일도 언제까지나 유효하다.           
6    이제는 우리도 웃을 때 댓글:  조회:1583  추천:2  2015-01-23
20세기 30년대의 일이다. 유럽의 어느 시골마을에 유태인 전도사가 이사를 왔다. 그는 매일 아침 마을길을 거닐면서 신체를 단련하였는데 어떤 사람을 만나던간에 웃음을 지으면서 “안녕하십니까?”하고 깍뜻이 문안인사를 올리였다. 마을사람들은 낯선 유태인 전도사의 인사에 십중팔구는 응대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랭혹한 표정을 짓기까지 하였다. 당시 유럽의 많은 곳에서는 유태인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못했고 심지어 반감을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에는 차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전도사의 웃음에 반응을 보였으며 나중에는 서로 모자를 벗으며 공손하게 맞인사를 나누게 되였다. 전도사와 마을사람, 마을사람과 마을사람 사이에는 서로 웃음으로 화답하고 문안을 주고받는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되였다. 몇년후 독일나치스당이 집정하였는데 유럽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에 독일군이 덮쳐 전도사를 포함한 마을주민 전체를 붙잡아 집중영에 보내지게 되였다. 기차에서 강제적으로 내린 사람들은 독일군 군관의 지휘봉에 의하여 좌우 량켠으로 나뉘게 되였다. 이 간단한 배렬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였다. 왼쪽에 배렬된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길이 놓여있었고 오른쪽에 배렬된 사람들에게는 살길이 열려있었다. 군관이 전도사를 불렀을 때 전도사는 오싹 공포를 느꼈다. 그가 절망적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군관의 눈길과 마주쳤다. 전도사는 평소 몸에 배인 습관대로 본능적이다싶게 군관에게 신사적인 웃음을 지으며 “안녕하십니까? 군관선생.”라고 인사를 올렸다. 군관은 순간 멍해졌다. 비록 군관의 굳어진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군관도 조건반사적으로 “안녕하십니까? 선생.”하고 전도사와 맞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유태인 전도사에게는 죽음의 길뿐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군관의 지휘봉은 너무나도 뜻밖으로 오른쪽을 가리키고있었다… 그래, 그렇지. 웃음은 즐거움을 공유할뿐만 아니라 생명도 구하기까지 하는것이다. 고등동물이라면 감정은 다 가지고있다. 그러나 즐거운 감정을 얼굴표정에 나타낼수 있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쉽게 평가할수 있는 기준은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일것이다. 웃음 가득한 표정은 사람들에게서 후한 평가를 받게 된다. 우리가 상대방을 보고 미소 지을 때 그 상대방은 자신이 가치있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송나라때 유명한 관상가로서  마의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의는 근심 어린 얼굴을 가장 좋지 않는 안상(颜相)으로, 즐거워하고 웃는 얼굴을 가장 좋은 안상으로 여겼다.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원활하게 맺어주는 핵심적역할을 하는것은 바로 미소,웃음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따뜻하고 진실한 미소를 보내는것이다. 미소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기분을 좋게 만들며 상대방과 자신의 인격을 서로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웃음을 띤 밝은 표정의 얼굴보다는 무표정한 얼굴을 할 때가 더 많다. 정부부처에서도, 서비스업소에서도 웃음 띤 친절한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에서 동료들이 서로 마주쳐도 미소는 커녕 무뚝뚝한 인상이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남보다 더 잘 살겠다는 욕심에,승진을 해야겠다는 야욕에,오르지 않는 자녀의 성적때문에,로임은 크게 오르지 않고 물가만 치솟아 사람들은 세상 살맛을 느끼지 못한채 우울하다. 이런 우울한 기분을 전환할수 있는 방법은 웃음밖에 없다.때문에 우리는 웃어야 한다. 웃으면 즐거워진다. 즐거워서 웃기보다는 웃다보면 즐거워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어주자. 그중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하여 웃어보자. 그 앞에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이 보일것이다. 패전의 상처를 딛고 경제도약을 이룬 일본인들은 1964년 도꾜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웃었다. 오랜 세월 가난에서 허덕이던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1988년 서울올림픽때부터 밝게 웃었다.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의 얼굴은 웃음을 잃은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개혁개방에 힘입어 대굴기를 이룬 중국인들은 2008년 북경올림픽때부터 깊이있고 넉넉하며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되찾았다. 중국인들의 웃음은 세계인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고 세계인들을 사색하게 만들었다. 북경올림픽때의 우리 국민의 웃음이 올림픽특수로 인한 반짝효과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여,많이 웃자. 활짝 웃자.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 이제는 우리도 웃을 때가 되였다.       
5    물질적풍요와 정신적빈곤 댓글:  조회:1592  추천:1  2015-01-23
인당 국민소득이 800~1000딸라에 달하면 출국관광을 하려는 념원이 생긴다는 경제학자들의 연구보고가 있다. 2000년에 우리 나라의 인당 국민소득은 825.8딸라에 이르렀다. 1996년부터 우리 나라 국민들의 국내려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였고 2000년부터는 중근거리 출국관광이 스타트를 떼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2020년에 가면 중국은 세계 4대 객원국으로 될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의 관광발전템포는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다. 중국인 해외관광객수는 2000년 1000만명에서 2012년 8030만명으로 급성장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관광객시장으로 자리매김했고 해외관광지출은 1020억딸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출경관광시장으로 우뚝 섰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국내관광시장을 보유했다. 현재 중국관광시장의 자신감이 아주 높으며 관광에 대한 국민들의 주목도와 관광념원은 최근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있다.이 모든것은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밑받힘되고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작 중국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문제다. 중국인해외려행객들은 어디서든 문명치 못한 습관을 고수하는 통에 외국인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독일의 한 호텔에서 중국려행객들이 식사를 하면서 소음에 가까운 높은 소리로 얘기를 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호텔측이 중국인투숙객 전원에게 ‘식사중 떠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매 사람에게 배당되는 빵쪼각이 한정량이 있음에도 과도하게 수차 요구해 독일인들의 선의의 조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한국 서울의 주요관광지가 중국인관광객의 길거리흡연으로 몸살을 앓고있다. 명동,동대문,종로,이태원,잠실 등 관광특구 5곳은 물론 경복궁같은 문화유적지도 중국인들의 무분별한 흡연에 시달리고있다. 프랑스에서는 루브르궁 분수대에서 중국려행객들이 발을 씻는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자 프랑스네티즌들의 중국인비판글이 쏟아졌다. 그러자 중국의 한 뉴스사이트에는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군인들이 원명원을 불지른건 문제없고 분수대에 발 담근것만 문제냐”는 내용의 억지주장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한 중국남자관광객이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황소동상우에 올라타 기념사진을 찍어 물의를 일으켰으며 캘리포니아의 유명관광지인 허스트캐슬에서 중국단체관광객들이 조각상을 손으로 마구 만지다가 관리인에 의해 쫓겨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려행객들은 국내에서도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있다. 이화원에서 10여명 되는 남성관광객들이 이화원담벽을 마주하고 소변을 보고있는것을 외국인들이 보고 도저히 납득할수 없어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화원관리처에 따르면 이화원에는 150여개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몰상식한 관광객들이 마구 락서를 하여 만리장성이 몸살을 앓고있는가 하면 북경향산 “단풍절”에 금지구역인 야산길을 무단횡단하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 단풍잎을 뜯기도 하여 아름다운 환경이 파손되였을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자체에게도 불편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5월에는 남경의 중학생이 3500년전  애급 고대유적 룩소르신전 부조물에 락서를 한 사실이 확인돼 애급언론의 비판이 거셌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국인관광객앞에서 한국 제주도의 자연은 점점 속수무책이 되고있다. 중국인단체려행객이 지나간 려행지는 상처투성이가 되군 한다. 이러한 모든 현상들은 우리 나라 국민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함을 나타낸다. 문명세계를 유람하고 관광할수 있는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려행객들의 시민의식결핍이 국가이미지를 훼손하고 국격손상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한 우리 정부는 비상조치를 강구하고 나섰다. 10월 1일부터 시행한 새 관광법은 려행자가 려행중 사회공공질서와 공중도덕을 준수하는것은 물론 현지풍속과 문화,종교를 존중하고 교양있는 려행을 위한 관련 규범을 지키도록 명시하고있다.아울러 “문명관광공약지침”을 발표하였다.공약내용에는“유적지건축물에 기여오르거나 만지지 말아야 한다.” “ 길거리에서 침이나 껌을 뱉지 말고 흡연이 금지된 지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 공중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웃옷을 벗고 다니지 말고 새치기를 하지 말고 줄을 서야 한다.”등 구체적인 행동규범을 내놓았다. 세계경제침체기에 씀씀이 큰 중국인들은 상업적인 면에서 만큼은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는 손님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무질서한 중국관광객을 내내 거부하다가 최근 용단을 내려 중국인관광객에 대한 비자발급간소화를 약속했다. 경제침체기에 경제수익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운가 보다.    중국인해외관광객은 래년 1억명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하지만 공중도덕교육과 자연을 즐길 준비가  되여있지 않는 중국인들이 현의식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세계에 나쁜 이미지만 널리 퍼뜨리게 된다. 문명한 관광객으로 되기까지는 정부차원의 제도적조치 및 다양한 교육수단,특히는 국민들 개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물질적풍요뿐 아닌 정신적풍요도 이루어 교양있고 수양있는 관광매너를 갖춘 세계 그 어느 나라에 가도 환영을 받는 문명국민이 되는것이 당면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이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라를 대표하는것임을 항상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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