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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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조선족 동포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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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공생지혜 모아 갈등 극복해야 댓글:  조회:4462  추천:47  2009-08-31
<조선족동포에게 고함>-31(끝) 공생의 지혜를 모아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곽 승 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지구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살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관계맺기를 도모합니다. 살아가야할 무대로서 생태계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지요. 종(種) 간 혹은 집단 간 경쟁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며 만들어내는 이들의 관계를 생태학자들은 대체로 여덟 가지 정도로 구분합니다.(<숲 생태학 강의> 참조) 하지만 이 같은 구분의 기준을 확장할 경우 중립과 경쟁 그리고 공생 등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듯합니다.    중립은 말 그대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경쟁은 생태계의 가장 일반적인 관계로서 두 종 혹은 두 개체군, 또는 같은 종 내에서 서로 다른 개체 사이에 발생하는데 서로 억제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주는 관계입니다. 공생은 경쟁의 대척점에 있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공생을 절대적인 관계인 상리공생과 임의적인 관계인 협동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한쪽만 이익이 되거나 한쪽만 손해가 되는 형태의 편리공생과 편해공생의 관계도 있습니다.   생태계 뿐 아니라 사람이나 국가 간의 관계 역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국제관계의 행위 주체인 국가 간의 기본관계에 대해 통상 적대관계와 공존관계로 나누는 것이 한 예입니다. 적대관계는 전쟁상태를 포함해 갈등이 진행 중인 상태를 말하고 공존관계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를 지칭합니다. 공존관계 중에서 대립적 상태에 있는 경우를 적대적 공존으로, 대립적이지도 우호적이지도 않은 상태를 중립적 공존으로, 그리고 상호의존적인 우호적 관계를 동맹적 공존으로 세분하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상호의존적 동맹을 통해 국가 간의 공존을 모색함으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데 힘써왔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세계 평화가 유지되고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공존을 희망하며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갈등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공존의 필요성을 익히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 왔다는 것이지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그런 만큼 갈등의 원인 또한 특별한 것 같습니다.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지난세기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에서 비롯된 민족 내부의 요인이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 국민인 점을 감안하면 국가 간 관계의 범주에서 갈등요인을 헤아려야 합니다. 관계의 특수성 및 복잡성이 갈등요인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관계맺기는 생태계에서 종 간 혹은 집단 간 관계맺기 유형이 복합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문제는 특수하고 복잡한 갈등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생태계에서 절대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의 지혜(?)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더욱이 생태계의 일부 공생관계는 관계 당사자에게는 물론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콩과 식물에 해당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기 단백질의 3분의 1이 질소고정 박테리아와 식물과의 공생관계의 결과라는 것은 공생의 긍정적 가치를 말하기에 충분합니다.   보잘 것 없는 미물들마저 공생을 통해 자신은 물론 주변을 이롭게 하고 있음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무엇보다 공생의 긍정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 범위와 수준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공생을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는 나를 너머 우리를 확장함으로써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갈등 극복을 위한 공생의 지혜를 모으는데 함께 나서야 합니다.
31    [30]갈등은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만 해소됩니다 댓글:  조회:3786  추천:42  2009-07-07
<조선족동포에게 고함>-30 갈등은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만 해소됩니다                             21세기 정보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으로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할 뿐 아니라 대립하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목격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갈등을 야기하는 주체와 갈등의 이유도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감안하면 갈등은 일견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며 그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보는 뭇사람들의 모습이나,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역사가 발전하는 이치를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따라서 갈등현상을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지나치게 문제시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갈등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갈등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화되거나 고착화되고 있다면 얘기는 조금 심각해집니다. 문제의 본질이 바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싸움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좋은 것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작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방치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도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갈등이 있다면 미리 이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는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본격적인 관계맺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언 17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양자 간의 관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지만 관계의 질도 그에 비례해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갈등현상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공히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쩌면 갈등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만큼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약이겠지요’를 되 뇌이며 저절로 치유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감안할 때, 오늘날의 갈등현상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문제가 얼마나 더 심각하게 될 런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듭니다.   갈등이 저절로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는 치유 과정의 어려움을 미리 염려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상대가 먼저 치유에 나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치유과정을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갈등현상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통해 갈등의 원인을 밝혀 이를 공론화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의 치유는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상대를 이해하며 역사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를 탓하거나 상대가 먼저 행하기를 바라며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단할 수 없으며 또 예단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역사적 소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가 의도하는 바람직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함으로써 의도하지 않는 역사적 결과를 배격해야 한다는 대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조선족 당신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역사적 소명을 다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만드는 시대의 선구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0    [29]조선족만의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댓글:  조회:3588  추천:43  2009-07-06
<조선족동포에게 고함>-29 조선족만의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인문학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란 없다고 말합니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역사성을 갖는 인간의식의 시스템(체계)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주로 어떤 현상에 대한 의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의미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역사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는 개인과 집단에 대한 것으로 구별되는데, 각 개인은 서로 다른 역사를 갖기 때문에 동일한 집단 내에서도 개개인에 따라 역사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치’ 역시 의미의 문제이기 때문에 물리적 토대에 기초하지 않는 한 ‘보편적 가치’란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조선족의 보편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일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선족 개개인의 가치를 말할 수는 있지만 집단으로서 조선족 전체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논리로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특수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상황을 뛰어 넘는 파격이 통하기 마련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염원하고 또 지향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그것을 공유한다면 이는 파격일 것이고 결국은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될 겁니다.   난해하고 딱딱한 표현을 써 가면서 조선족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는 것은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족동포 개개인은 21세기의 새로운 환경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를 무대삼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주어진 상황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조선족 개개인의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미래가 밝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조선족 개개인의 미래가 밝다고 해서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개개인의 의미와 집단의 의미는 구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새로운 환경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추동합니다. 조선족사회 역시 변화의 거센 파도에 휩싸여 있습니다. 조선족 동포끼리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80년대 초에는 90% 이상의 조선족동포들이 동북 3성 지역에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해외로 또는 중국 연해지역의 개방도시로 거주지를 옮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이 조선족 동포사회의 해체와 조선족동포 개개인의 탈조선족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경제활동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지역공동체를 견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포사회의 해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탈조선족화는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탈조선족화를 막을 수 있다면 지역공동체를 정신공동체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동포사회를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조선족동포 모두가 공유하는 조선족만의 보편적 가치를 서둘러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문제는 조선족만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조선족동포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점일 겁니다. 조선족만의 고유한 가치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조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지만 분명히 한국인과 다릅니다. 중국 국민으로서 중국의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아왔지만 여타 중국인과도 다릅니다. 이런 점에서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의 어느 극단을 쫓을 것이 아니라 양자를 동시에 취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1세기는 동북아시아시대라고 말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동북아시아시대를 추동할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족은 바로 한국과 중국을 아우를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를 조선족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미래도 조선족 개개인의 미래 못지않게 밝게 빛날 것입니다.
29    [28]고정관념 버려야 새 세상 만난다 댓글:  조회:3617  추천:34  2009-06-19
<조선족동포에게 고함>-28고정관념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얼마 전 한 휴대폰 회사가 이 광고 문구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사랑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세태를 풍자해 이를 광고에 접목시킨 것이지만 새로운 사회현상에 비추어 볼 때 나름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움직여 왔습니다. 사람들이 애써 그 움직임을 외면했을 뿐이지요. 사랑만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데 움직임은 곧 변화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이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마음)이 변했음을 뜻합니다. 생각의 변화는 변절 혹은 변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이들은 나쁜 것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선비정신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든, 좌우로 나누는 편 가르기에 길들여져 있든 지난 세월이 우리에게 부여한 ‘규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 즉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유독 너그럽습니다. 초지일관하고 의리를 지키고 일부종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덕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보시대는 새로운 상황에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변화의 폭과 깊이 그리고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여 대처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으로 유연한 사고를 주문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지요.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간부들에게 삼성의 비전을 말하는 가운데 ‘마누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주문한 일화는 변화를 위한 유연한 사고가 얼마나 절실한 시대적 화두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전제로 합니다. 자유로워야 한 곳에, 한 생각에 머물지 않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생각이 자유로워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자유로움은 정보시대의 중요한 트렌드(경향)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움직인다는 것은 힘의 작동을 수반합니다. 그 힘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로부터 분출되는 힘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힘입니다. 외부의 간섭과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에 의해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행동에 책임이 따르듯 생각을 바꾸는데도 일정한 책임이 따릅니다. 변절과 변심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데 대한 책임 추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임 추궁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기존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문제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삼성그룹이 모든 것을 바꾸려는 각오로 변화를 추구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외부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기존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또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메여 살아간다면 결코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습니다.   조선족 당신은 지금 21세기 정보시대가 초래한 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당신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겁니다. 이것은 일견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는 것과 같은 세상의 일반적 이치와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보시대의 변화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더 많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당신을 지배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고의 유연함이 당신을 새로운 세상의 주연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28    [27]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소통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댓글:  조회:3652  추천:33  2009-05-22
<조선족동포에게 고함>-27   21세기를 흔히 ‘소통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극단적 단절의 시대였던 20세기를 경험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한 인류가 새로운 세기를 맞아 이를 시대적 트렌드(경향)로 추동하게 된 것이지요. 소통의 시대가 도래하게된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염원과 함께 소통을 가능하게 한 정치사회적 및 과학기술적 변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탈냉전적 상황으로 이념적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세계화를 위한 환경이 마련됐고 인터넷과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확보된 것이지요.   새로운 상황은 우리의 삶에 실로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를 구분 짓던 국경은 점점 느슨해져 더 이상 소통의 장벽이 아닌 상태로 변하고 있습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 짐에 따라 다문화사회가 국제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환은 미래에 대한 더 큰 희망을 품게 합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이 소통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통을 가로막으며 갈등을 조장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그중에는 상대와의 서툰 관계맺기로 인해 빚어지는 무수한 갈등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소통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는 않는지요. 소통의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관계맺기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맺기를 위해 보다 정교하고 진지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소통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갑작스레 찾아온 소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부족한 소통의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소통이란, 관계맺기의 당사자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상호작용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소통의 기술이 부족한 것은 갈등 당사자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갈등의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를 믿으며 함께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소통의 기술을 구성하는 핵심은 ‘말하는 것’과 ‘듣는 것’ 입니다. 소통은 말하고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관계맺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잘 말하고 잘 듣기만 하여도 소통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관계는 말하고 듣는 것에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을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절망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말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한 종교인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말을 할 때는// 지위로 말하지 말고/ 욕망으로 말하지 말고/ 화를 내면서 말하지 마십시오.// 자애로움으로 말하고/ 내용을 알면서 말하고/ 상대를 고려하면서 말을 하십시오.// 잘못했다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 짧은 글 중에서도 특히 화를 내면서 말하지 말고 내용을 알면서 말해야 한다는 대목은 크게 공감이 갑니다.    듣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합니다. 외부의 소리를 듣는 것과 자기 안으로부터 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그것입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귀를 열어야 합니다. 어떤 소리든 귀를 열지 않으면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과 행동이 마음과 달리 표현되는데서 기인되는 많은 갈등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 간의 갈등요인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소통의 기술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를 대할 때 화를 내면서 말하지 말고 내용을 정확히 알고 말하기만 하여도 갈등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다보면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소통의 기술을 익힘으로써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함께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섭시다.
27    [26] 행동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댓글:  조회:3728  추천:45  2009-05-08
<조선족동포에게 고함>-26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길 기다리지 말고, 뛰어나가 일을 저지르십시오. 최상의 삶, 당신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강렬히 원하는 삶은 오직 당신의 선택, 확신, 그리고 행동에 의해서만 현실화됩니다. 당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은 매일 매일 당신이 가진 꿈을 조금이라도 키워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가 쓴 책 <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짧은 글을 통해서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간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던 바처럼 인생은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현재의 삶은 오롯이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삶이 뒤틀릴 경우, 문제의 근원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로 돌리며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선택을 뒷받침할 적절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선택도 소용없게 됩니다. 올바른 선택 못지않게 그 선택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여행자가 목적지를 정했으면 그 곳을 향해 부단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는 없습니다. 또한 농부가 추수하여 얻고자 하는 곡식을 선택했다면 그 곡식이 성장하기에 적합한 토지를 찾아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서는 자신이 원하는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없습니다. 하찮은 것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무엇하려고 말하냐며 책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동했냐는 질문을 받을 경우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생각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의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현자들이 지행합일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온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지행합일, 즉 생각(아는 것)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지식인들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지식인들은 여론을 이끌 뿐 아니라 대중들의 삶에 음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일반대중에게 있어서 선택과 행동은 대체로 개인차원의 일인 경우가 많지만 지식인들의 경우 사회적 쟁점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일반 대중들이 지식인들을 주목하는 것 역시 자신들의 귀감이 되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은 난세에 더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조선족 동포사회의 언로를 살펴보면 조선족이 처한 현실문제를 다룬 글이 넘쳐나는 듯합니다. 특히 지식인들이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글쓰기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 중에는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매우 유용하고 의미있는 글들도 자주 눈에 뜨입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글들이 구체적 행동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례를 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선족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글을 쓰는데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무른다면 늑대가 다가온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조선족 당신이 드러난 문제를 헤아리고 또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특히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행동하여야만 조선족사회의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26    [25] 당신의 성을 허물어 당신을 지키라 댓글:  조회:3775  추천:46  2009-04-24
 <조선족동포에게 고함>-25 당신의 성을 허물어야 당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복잡합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가져온 다양한 문명의 이기와 세상살이를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갖가지 제도들은 온갖 형태로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 우왕좌왕하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며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헤매기 일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잿빛 하늘처럼 희미하고 침침하여 헷갈리기에 딱 좋습니다. 오늘날을 불확실성의 시대니 혼돈의 시대니 하고 이름붙인 것도 이러한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명료한 것을 찾기는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식대로 살아가는 고집불통의 기인들이 호감을 사기도 합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도 복잡한 세상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데 동의하는 것이겠지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설정한 삶의 방식을 나침반 삼아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세상살이처럼 보입니다. 삶이 간단하고 명료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희미하고 침침한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밝고 명료한 빛을 찾기 위해 쉼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살이이니까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성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은 자폐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자아의 성장을 말합니다. 자아의 의미는 자아의식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자아는 자존심이기도 하고 자기중심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자아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고 싶고, 지키고 싶고,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아의 성장이란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사회정치적 환경이 복잡한 사람일수록 자아의 성장을 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재일동포 최초로 동경대학교 정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 역시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동포로서 청년시절 정체성 혼란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갇혀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 인정’에 의한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서로 소통하지 않는 일방적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자기의 성’을 단단하게 만들고 벽을 높게 쌓으면 ‘자기’라는 것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역설적으로 자기의 성을 허물고 다른 사람의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자기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족 당신을 대할 때마다 당신이 지키려는 성이 너무 견고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소수자 또는 약자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런 모습에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만을 주장하는 자기중심주의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당신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자기중심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와 소통해야 합니다. 강상중교수가 말한 바처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와 마주앉아야 합니다. 당신의 성을 허물고 상대를 진지하게 대하여야 당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습니다.
25    [24] 현재를 극복해야 행복한 미래가 있습니다 댓글:  조회:3507  추천:43  2009-04-09
[조선족 동포에 고함24-현재를 극복해야 행복한 미래가 있습니다.-곽승지(연합뉴스 기자)]사람들은 늘 행복을 말합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꿈이며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서슴없이 행합니다. 그런데 그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무한한 욕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부자인 구두쇠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나 9백99석을 농사짓는 부자가 천석꾼이 되기 위해 가난한 농부의 곡식을 탐한다는 이야기도 바로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역설적으로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한 선각자들은 욕심을 줄여야만 행복할 수 있음을 설파해 왔습니다. 플라톤은 일찍이 행복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며 부족함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살아가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기에 약간 모자라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때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필가 김소운은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를 경계하며 ‘물 한잔의 행복’을 말한 바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찮은 것에서조차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행복론자들에 따르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와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만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야만 합니다. 자신이 구축해 놓은 작은 세상에 갇혀 그 너머의 넓고 의미있는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제시한 ‘인생에서 중요한 세 가지’는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현재)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접점인 현재를 살아가기에 항상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역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임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조선족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당신은 현재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와 더불어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혹시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현재를 달가워하지 않거나 지금 만나는 사람을 원망하며 그에게 분풀이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요. 또 자신의 생각과 관계의 범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사랑을 말하지는 않는지요. 현재가 고통스럽다면 함께 하는 사람에게 충실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더 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와 손을 맞잡을 수도 없겠지요. 그런 아픔은 또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제한하려 할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의 한계에 갇혀있는 한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조선족 당신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현재의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24    [23] 오늘의 선택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 합니다 댓글:  조회:3537  추천:47  2009-03-29
[조선족에게 고함2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한국 광고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던, 십 수 년 전 한 전자제품의 광고문구입니다.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이 광고문구로 그 회사는 물론 갓 데뷔한 모델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광고가 성공을 거둔 이유를 찾자면 열손가락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헤아리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입니다.  세상살이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준 것이지요. 우리는 매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깨어있는 동안 끝임 없이 무엇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과정은 물론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조차 무심하기 일쑤입니다. 선택과정이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따른 관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벼운 선택도 심히 복잡하고 무거운 결과를 낳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취하는 선택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개개인의 삶이 되고 또 세상의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한 시인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선택하지 않았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것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엄중한 의미를 헤아렸기 때문일 겁니다.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은, 선택의 결과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알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과 달리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기에, 최선의 선택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완전하게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최선의 선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존중함으로써 후회를 줄이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우선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삶의 지표를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 정직과 성실, 상대에 대한 배려, 공공선의 추구 등과 같은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더해야 합니다. 최선의 선택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감언이설을 쫓거나 세상이 흘러가는데 편승하여 어림잡아 선택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향은 특히 전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상품을 선택하는 일이라면 그 상품의 가격과 수명의 범위에 한하여 영향을 미치지만 삶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조선족 당신에게 잘못된 선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봅니다. 아마도 당신이 처한 전환기적 상황이 그 같은 선택을 부추겼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부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잘못을 알고 이를 고치는 사람과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조선족 당신의 삶이 헝클어졌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올바른 선택입니다.
23    [22] 존중받기 위해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댓글:  조회:3476  추천:37  2009-03-29
[조선족에게 고함22]오늘날 사회가 복잡해지고 또 다양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똘레랑스(관용)를 말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그로 인한 갈등요인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이를 극복하여 너와 내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염원하는데 따른 현상입니다. 똘레랑스란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마라” 라는 똘레랑스를 위한 기본적 규율이 이를 잘 말해 줍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국가 간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세상은 이제 그야말로 지구촌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소통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그러나 소통이 원할해진 만큼 그로 인한 갈등도 늘어나 국제사회의 또 다른 골칫거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도전이 다시금 시험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똘레랑스는 그러한 상황을 치유할 새로운 묘약으로 각광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똘레랑스를 말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의 실천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람의 이기적 속성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나아가서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 대한 맹목적 사랑을 낳습니다. 이는 결국 나와 너, 내편과 네편으로 나누어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화하도록 이끌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적 속성이 상대를 포용하는 것을 어렵게 하여 똘레랑스의 실천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또 이해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고 또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이해받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똘레랑스의 실천은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보다 바람직한 것은 힘 있는 쪽이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힘 있는 쪽이 손을 내밀 때까지 상대를 원망하며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약자는 자신의 작은 아량만으로도 똘레랑스를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똘레랑스(관용)의 실천은 내가 먼저  조선족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도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특히 고국과 고국의 동포들로부터 존중받고 또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조선족동포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조차 견디지 못하고 금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합니다. 반면 조선족동포에 대한 맹목적 찬사와 하찮은 인사치레에도 반기며 한껏 기뻐하기까지 합니다. 당신이 살아온 과정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움직이게 하였음을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러나 존중받고 또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은 보다 현명해져야 합니다. 눈앞에서의 작은 관심에 일희일비하기 보다 조선족동포가 진정으로 존중받고 이해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조선족 당신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당신도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 보다 당신이 존중받고 또 이해받고 싶은 사람을 더 존중하고 이해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바라는 바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간혹 당신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의 애정어린 충고에 대해서조차 섣불리 가시돋친 말을 쏟아 부어 상대를 불편하게 합니다. 당신의 어설픈 행동으로 당신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귀하게 만드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22    [21] 바른보기 위해 마음 열어야 댓글:  조회:3608  추천:41  2009-02-25
[조선족 동포에 고함 21]올바른 바라보기를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사람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의 지각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말할 때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몇 단계에 걸친 지각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무엇보다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 안에서 바라보기를 하게 되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느낀 바에 따라 생각하고 또 행동한다는 것이지요. 아는 것이 힘일 뿐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보는 만큼 보인다”며 보는 것 자체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맞는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주의에 기초하면 사람은 보는 것을 통해 대부분의 것을 인지하고 또 학습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그러나 여타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사람다움의 핵심적 사안이라 것을 전제로 할 때 알고 보는 것과 사전 지식 없이 그냥 바라보는 것은 생각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는 것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는 것 보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쓰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는 것을 올바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면 아는 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바른 바라보기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올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상대의 행동에 대한 불만이나 오해 혹은 자신의 욕심이나 편견이 올바른 바라보기를 방해합니다. 상대에 대한 무지나 애써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외면하려는 태도도 커다란 걸림돌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문제의 근원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상대의 일면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기중심적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를 넘어서지 않고는 올바른 바라보기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조선족동포들은 조선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너그러운 반면 한국과 한국사회를 평가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인색한 듯합니다. 심지어 마음을 열고 한국과 한국사회를 이해할 것으로 믿었던 동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벽이 너무 높고 두텁다는 생각에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한민족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요원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조선족동포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한국과 한국사회의 일면만을 바라봄으로써 올바른 바라보기가 원초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옳은 길 가면 상대도 반드시 그 길 따르게 마련   조선족 당신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국과 한국사회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면만을 보면 부정의 힘이 작용하여 상대의 허물을 들추게 되지만 전체를 보면 긍정의 힘이 작용하여 이해하고 또 감싸 안게 됩니다. 당신이 한국과 한국사회의 전체를 바라봄으로써 올바른 바라보기를 하여야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왜 내가 먼저냐고 선후를 가르거나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먼저 느낀 쪽에서 먼저 행하여야 합니다. 옳은 길을 가면 상대도 반드시 그 길을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조선족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어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을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1    [20] 한국사회를 올바로 봐야 댓글:  조회:4429  추천:40  2009-01-31
조선족동포에 고함 20한국사회를 올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곽 승 지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정치학박사                 <동북아시아 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저자    이분법적 사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합니다. 선과 악의 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는 물론 내편 네편으로 편을 가르는데 이르기까지 가히 그 한계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고방식의 편의성이 한몫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제한된 사고력도 이러한 매력에 가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분법적 사고가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분법의 역사이자 저항의 역사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문명사적 진보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새로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분법적 기준이 집단적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갈등 역시 심화되는 형태로 발전하는 데서 그런 사례를 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확장된 기준은 그 집단의 지배논리로서 집단 내부의 결속을 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단 간 소통을 가로막아 상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구조화함으로써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기능을 낳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갈등도 이분법적 사고로 인한 상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과 조선족 공히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사고에 매몰되어 상대를 올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으려는데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신 홀대하고 배척함으로써 자신만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그릇된 생각마저 합리화합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책임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한 조선족사회의 인식은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과도 같습니다. 일부 조선족동포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평가되고 곧 조선족사회 전체에 일반화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니까요. 한국사회의 양극단만 바라보지 그 중간에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현상들 중에는 한국을 지독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흔히 접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다분히 감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올바른 바라보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사정이 달라졌지만,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국가들 중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은 세계 6개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인터넷시대의 선두주자답게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역시 세계 6위에 올라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수출 4천만 달러를 이룬 세계적인 수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1964년에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후 44년 만에 40배 증가된 경이적인 기록입니다. 한국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난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 부침의 시련은 있겠지만, 한국의 미래 또한 창창할 겁니다.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    조선족 당신이 한국사회에 대해 갖는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만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한국인과 한국사회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잘 압니다. 그러나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조선족사회와 엄격히 구별하여 부정적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민족으로서 한국인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당연히 한국사회를 당신의 마음속에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20    [19] 조선족 당신이 진정 행복한 한해가 되소서 댓글:  조회:3753  추천:41  2009-01-27
 조선족동포에 고함 19 조선족 당신이 진정 행복한 한해가 되소서 곽 승 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2009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은 지금 어김없이 다가올 미지의 시간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적어도 이때만은 순백의 마음으로 모든 근심과 고뇌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한 해 동안 이루어갈 일들을 하나하나 그려봅니다. 다소 무모할지라도 스스로 세운 모든 계획들을 능히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우기도 합니다. 또한 이 세상은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고 있기에 이를 위해 올 한해도 더욱 낮은 자세로 주변을 돌아보며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깁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비슷할 겁니다. 하여 조선족 당신도 새해를 맞아 소망하는 일들을 발원하고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랜 전통이 보여 주듯 새해에는 응당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2009년이 처한 특별한 상황은 한가롭게 덕담만 나누게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좋은 관계맺기를 위한 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들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두가지 점이 걱정됩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과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여전히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점입니다. 조선족동포들이 많은 부분에서 직간접적으로 한국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전자는 필경 조선족동포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 마음이 각박해지고 이는 곧 상대에 대해 더 많은 억지를 부리게 되는 요인이 될 테니까요. 후자는 만성화된 문제입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간의 좋은 관계맺기를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덕담(德談)이 아니라 진담(眞談)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드러내 현실을 올바로 진단한 바탕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덕담( 아닌 진담을 나누어야할 때입니다.   올바른 바라보기를 통해서만 좋은 관계맺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귀에 즐거운 얘기는 가슴과 머리를 울리지 못합니다. 귀를 거스르는 얘기는 당장은 기분을 상하게 하지만 가슴과 머리를 울려 새로운 변화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담이 통하려면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오해하지 않고 그것이 진심어린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족 당신은 행복해야 합니다.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당신 가슴속에 있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아야 합니다. 다만 그 말에 가시를 담지는 마십시오. 가시가 있으면 그 말은 다시 당신 가슴에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또한 조선족 당신이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쏟아 놓는 말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 말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여도 그것은, 당신이 쏟아놓은 말들이 결코 악의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당신에 대한 서툰 사랑의 표현임을 알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2009년 내내 조선족 당신의 마음속에 진담이 통함으로써 진정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19    [18] 내일의 희망을 말합시다 댓글:  조회:5900  추천:42  2008-12-29
조선족동포에 고함 18아쉬움 보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곽 승 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2008년이 저만치 지나갑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저립니다. 즐겁고 기쁜 일 보다 슬프고 아쉬운 일들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끌어안았더라면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을 텐데....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이해했더라면 이웃을 바라보며 더 밝게 웃을 수 있을 텐데.... 조금 덜 욕심내고 조금 덜 시기했더라면 마음속 한 켠에 남아있는 세상에 대한 쓸쓸함이 크게 줄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를 자책하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으며 미래를 기약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맞는 것 역시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적인 자연의 섭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마저 특별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구속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해를 보내는 것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그런 마음은 달력(Calendar)의 역사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역법인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도 불과 416년여 전인 1582년에 이르러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45년, 그러니까 약 2,050년여 전에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시간의 기준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늘 시간을 말하지만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내 로라 하는 석학들도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한 부분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만큼 시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 또한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특정한 시간의 경계에서 사람들은 때로는 한없이 엄숙해 지기도 하고 때로는 들떠 호들갑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무한한 영겁의 시간 속에서 고작 한 순간만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유한성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는 20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앨버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증명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두 차례에 걸쳐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예컨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보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의 시계가 더 더디게 간다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물리적 시간보다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선용할 수 있는가 일 것입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잠만 자는 사람과 시간을 쪼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사람간의 시간의 가치는 천양지차일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보다 그것을 통해 반성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주어진 자신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또 의미있게 사는 것이 될 겁니다. 같은 세월을 살아도 삶의 결과는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선족 당신은 2008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2008년의 끝자락에서 후회없이 지난 세월을 돌아볼 수 있습니까. 혹시 후회가 더 크더라도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의 후회스런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2009년의 희망찬 새해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과 한가지만 약속하세요. 1년 후 이 맘 때는 후회하지 않고 당당하게 한해를 보내겠다고.
18    [17] ‘나’를 너머 ‘우리’에 희망이 있습니다 댓글:  조회:4036  추천:40  2008-12-06
조선족동포에 고함 17                                      ‘나’를 너머 ‘우리’에 희망이 있습니다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버락 오바마가 44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가히 혁명적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백인중심 사회인 미국에서 불과 13퍼센트 남짓밖에 안 되는 흑인 중에서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경이로운 결과는 물론 이로써 지난 45년여 동안 흑인들이 꿈꾸어온 백인과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선거과정도 혁명적 상황을 연상시킵니다. 오바마가 흑인사회를 움직이고, 흑인들은 모든 유색인종과 차별받는 사람들을 움직였으며, 이들은 다시 미국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상승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이제 전 세계가 그런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등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언급했을 뿐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이 앞 다투어 찬사를 보내고 있기에 더 이상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과공(過恭)이 될 것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바마의 등장에 대해 이와 같이 힘을 보태고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부시행정부 8년간의 독주에 대한 미국국민들의 염증과 변화 욕구, 선거기간 중 촉발된 금융위기 등 오바마 외적 요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바마 개인이 보여준 탁월한 소통의 리더쉽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첫손가락으로 꼽고 싶습니다.   오바마는 어린시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원망하며 타락의 길에 빠지기도 했으나 곧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세속적 출세가 보장된 길을 마다한 채 어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흑인공동체 운동에 뛰어 들어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흑인사회 내의 소통은 물론 세상의 모든 편견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합니다. 그가 공동체 운동을 접고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그 같은 생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소통을 통한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꿈은 선거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사람들은 그의 꿈에 화답했습니다.  흑인공동체 소통의 꿈 키운 오바마“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   소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오바마의 비전은 그가 선거운동의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 구호는 우리가 흔히 접해온 “Yes, I Can (나는 할 수 있다)”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나’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서구 자유민주주의국가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Yes, I Can”이 개인의 능력과 개인적 성공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Yes, We Can”은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루려는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 한계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보듬어 안고 모두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조선족 당신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은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특히 현실의 벽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그 벽이 너무 두껍고 높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체념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령 ‘나’를 너머 설 경우에도 ‘우리’의 범위를 크게 제한함으로써 그 가치를 무색케 하기 일수이지요. 이미 말했던 것처럼 ‘나’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으로서 나는 ‘우리’ 속에서만 의미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 큰 ‘우리’를 만들어 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17    [16]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댓글:  조회:4357  추천:50  2008-11-19
조선족동포에 고함 16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어찌 보면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 인듯합니다. 정의도 없고 정도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면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진동합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헤아리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들은 왜 원망만 하는가. 왜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고 앞장서 노력하지는 않는가. 그들은 세상이 잘못된데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그들 또한 할 말이 많겠지요.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요. ‘노력해도 안 되더라.’ 그리고 그 다음은 ‘혼자 용 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일겁니다. 자신의 존재를 비하하며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어’ 라는 말도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노력해도 안 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혼자의 힘으로 안 되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묶어내어 힘을 합하면 어떨까요.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결코 비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또 변화시켜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도 나이고 변화의 대상도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 이니까요.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적힌 다음과 같은 글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 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시켰을지!”  쉬운 일과 쉽지 않은 일   세상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만을 삭이며 문제의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 문제가 나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이를 드러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자성과 화해의 따뜻한 마음보다 불만과 다툼의 감정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문제의 근원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를 더 많이 헤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공회 주교의 회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선족 당신은 세상에 대해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 불만 때문에 세상을 원망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불만이 무엇이든지 간에 문제의 중심에 혹은 한 언저리에 당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보십시오. 그리고 문제투성이인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만큼 세상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16    [15] 힘들고 어려울수록 서로 믿고 격려해야 합니다 댓글:  조회:4392  추천:65  2008-10-25
조선족동포에 고함 15힘들고 어려울수록 서로 믿고 격려해야 합니다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누군가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당연히 일의 능률도 오르게 마련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로젠탈 효과’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이 단지 선생님의 기대와 격려만으로도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밝힘으로써 이름 붙여졌습니다.   ‘자기충족적 예언’으로도 불리는 이 현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한 조각가의 일화에서 차용해 ‘피그말리온 효과’로도 불립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여인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대신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해 놓고 자신의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사랑에 감동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으로 환생시킴으로써 피그말리온은 사랑하는 여인을 얻게 됩니다. 이로부터 유래한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브라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울로 코엘료도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것” 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간절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으며 격려해 주어야 그가 보다 수월하게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소망을 이루는 일일지라도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욕심을 차리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암시하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소망을 이룰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게 될 테니까요. 같은 이치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고 격려해 주지 않는다면 나의 소망 또한 실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살기 힘들어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믿고 또 격려해야 합니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관심과 배려에 목말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작은 관심과 배려로 누군가가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시 코엘료로 돌아가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조선족 당신은 지금 무엇인가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까. 또한 다른 누군가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그를 믿으며 격려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군요. 그러나 겸연쩍어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이루고 싶은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 바람이 하늘에 닿아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을 맞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들을 믿고 격려하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격려가 있어야 당신의 소망이 실현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15    [14] 세상의 변화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댓글:  조회:4377  추천:68  2008-10-25
조선족동포에 고함 14                                      세상의 변화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러나 저절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시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원인이 있게 마련이지요.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양과 질이 늘 같지는 않습니다. 변화를 초래하는 원인에 따라 그리고 그 힘의 크기에 따라 변화의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인간세상에서의 변화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은 주체적 능동적으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의 크기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변화의 시대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변화의 크기와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하니까요. 핵심적인 요인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들곤 합니다. 하나는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탈냉전체제에 의한 정치경제적 소통의 시대가 도래 한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정보통신 및 교통의 발달이 소통의 시대를 추동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늘날의 변화하는 세상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조선족사회와 연변을 포함해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도 그러한 변화의 대상입니다. 조선족사회와 연변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의 지문화적 및 지정학적 상황을 감안하면 핵심적 변화 대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가장 정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미치는 파급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조선족동포들도 이미 그러한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동포 개개인의 삶에서의 변화는 물론 조선족사회 전체에도 그 파급이 간단치 않습니다.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 있는 것 역시 그러한 영향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변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입니다. 변화의 크기는 물론 그 결과 또한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화의 방향을 미리 가늠하여 변화의 길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와 개별국가 그리고 지역국가 간 관계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변화의 내용과 속도를 감안할 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소홀히 할 경우 시대적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변화 하돼 중심을 잃지 말아야   오늘날 조선족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변화의 물결이 지니고 있는 위력이 큰 만큼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냉정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리고 다가올 변화의 흐름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 변화의 물결이 미칠 파급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선족사회가 당면한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선족 당신의 몫입니다. 한 가지 제언하자면, 조선족 당신이 변화의 흐름을 쫓되 결코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한 채 허우적거린다면 도도한 변화의 물결에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조선족 당신이 한민족의 일원임을 굳게 믿으며 미래를 직시하는 것도 중심잡기의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14    [13] 조선족사회의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댓글:  조회:4162  추천:72  2008-10-25
 조선족동포에 고함 13조선족사회의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연변과 조선족사회에는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발전을 위한 축적된 자본과 자원이 없고, 미래를 꿈꾸며 그것을 디자인(계획)할 사람이 없으며, 그래서 미래를 열어갈 비전(미래상)도 없었습니다.”   연변과 조선족사회에 대한 이 당돌한 평가는 제가 지난 2월에 출판한 저서 서문에서 언급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 글을 접한 적지 않은 조선족동포들이 불쾌해 하고 또 분노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이 무례한 평가를 철회할 생각이 없습니다. 대신 누군가가 나서 저의 평가가 잘못됐다며 오만방자함을 질책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수히 많습니다. 또 상황에 따라 각각의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한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기도 하지만 추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그 사회는 흥하게 되기도 하고 또 쇠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세상이 아름다워질 뿐 아니라 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또한 발전을 위한 자본을 축적하고 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미래를 열어갈 비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    연변과 조선족사회에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분명히 지나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표현한 것은 오늘날 연변과 조선족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저의 판단 때문입니다.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 있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선족 개개인의 미래는 있을지언정, 전체로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가늠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두 가지 요인이 눈에 띕니다. 하나는 조선족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밝힐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통상 꿈과 희망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한 사회가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비전이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꿈과 희망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사회 전체를 결집시키고 또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족사회에 비전이 없는 것은 지도자가 없는 것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지도자 부재’와 ‘비전 없음’이 조선족사회의 위기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건강하고 부강한 조선족사회’를 가슴에 품자   지도자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혁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염원하며 조선족 모두가 ‘지도자 후보’가 되어 그 공백을 메워가자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고 지도자 부재에 대해 누구를 탓 할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또 다른 과제로서 ‘비전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비전 제시는 지도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지도자 후보로서 조선족 당신이 나서야 합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당신 개인보다 조선족 전체를 품는 것으로 비전 세우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건강하고 부강한 조선족사회’를 만드는데 비전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와 함께 반드시 한국사회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전제해야 합니다. 조선족 당신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13    [12] 함께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댓글:  조회:4434  추천:49  2008-10-14
조선족동포에 고함 12함께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곽승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지난 8월 28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흑인 최초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수락연설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역사는 꿈꾸는 자의 편임을 실감했습니다. 오바마의 후보지명에 열광하는 흑인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스케치한 한 기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오바마 상원의원이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순간 덴버 인베스코 미식축구경기장은 터져 나오는 환호 속에 검은 눈물이 흘렀다.” 8만여 명의 청중 가운데는 백인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에 검은 눈물이 흘렀다고 표현한 것은 흑인 대통령후보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에 흑인들이 느꼈을 진한 감동을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바마의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은 실로 엄청난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흑인들이 염원해온 차별없는 세상이 이루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바로 45년 전 이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들의 가슴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고 그 꿈이 드디어 실현됐다는 사실이 이 역사적 사건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흑인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인 킹 목사가 워싱턴광장에서 행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을 들으며 가슴속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4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오바마를 대통령후보로 내세움으로써 그 꿈을 현실로 승화시켰습니다.    흑인들이 꿈을 이루어낸 과정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꿈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일장춘몽과 같이 허망하지만 꿈꾸는 사람이 많을수록 현실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는 것이지요. 구성원 모두가 함께 꿈꾸기 위해서는 그 꿈이 대의(大義)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가르쳐줍니다. 뭇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만 그 대열에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그러한 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킹 목사와 같이 구성원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는 계속된다는 믿음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 역사가 고단하였고 당장의 삶이 버거울지라도 한민족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한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미래를 꿈꾸어야 합니다. 비록 당장은 이념이 다르고 감정이 상해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아픈 현실을 여하히 극복하여 한민족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민족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어쩌면 눈앞의 장벽이 너무 높아 그 꿈이 부질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킹 목사의 꿈이 흑인 모두의 꿈이 된지 45년이 지나 현실이 된 것처럼 우리가 지금부터 함께 그 꿈을 꾸기 시작한다면 이 또한 멀지 않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킹 목사와 같이 한민족 모두를 하나로 묶어 한민족공동체 건설의 꿈을 꾸도록 인도할 존경받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지금부터라도 그런 지도자를 염원하며 그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들 모두가 스스로 ‘지도자 후보’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하는 겁니다. 혹시 ‘내가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어’ 하고 겸연쩍어 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도 마음만 먹으면 조선족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지도자가 되어 함께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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