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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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강산 댓글:  조회:3383  추천:40  2011-03-09
문화강산 -김희관  (원 연변문화국 국장) “문화강산”을 가꾸고싶은 심정으로 필을 들었다. 자고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21세기 첫10년 세월이 흘러가고있는 지금 우리의 강산을 두루 밟아 보면 먹고 살기 바쁘던 세월은 다 흘러가고 이제는 음식문화, 복식문화, 주택문화, 건강문화. 영상문화 등 눈앞이 현란할 정도로 많은 문화를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여가고있다. 새로운  조류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문화강산>을 가꿔 나가야 할것이다.   <문화강산>을 가꾸려면 우선 대중문화의식을 키워야한다. 30여년의 개혁개방속에 우리의 의식주와 생활환경 등 물질문명 면에서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정신문명과 문화수양 면에서는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있다. 앞으로는 사람마다 한백년 살아 가야 하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문화의식을 심어주는데는 가정교양과 신문TV 인터넷 등 미디어를 통한 사회교양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강산>을 가꾸려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창의력은 무한한 상상력과   새로운 기술을 부단히 접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것이다. 문화는 시대의 맥박이고 색채이다. 하기에 문화의 생명력은 시대의 맥박과 색채를 부단히 디자인하고 연출해내는 창의성에 있다.   최근에는 3D 영화<아바타>가 흑백영화에서 칼라영화를 거쳐 디지탈영화에까지 진화한 영화를 또 한차례 <혁명>해서 3차원 립체영상로 승화시켜 세계 영화시장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월19일에는  국제육상대회가  실시간  3DTV를 통하여 생중계 방송되면서 역시 흑백TV, 칼라TV, 디지탈TV에서 또 한걸음 더 나갔다. 요즘 세계 대도시들에서는 아이패드를 주문하고 구입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이러한 최신 문화현상들은 창의력은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며 <소프트파워> 를 키워주는 비방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3D영화 <아바타> 감독 제임스 캐머린은 원래 기계공을 하면서 물리학을 배웠고 자동차운전기사를 하면서 치과의사들의 자금을 모아 영화감독을 배웠다. 그 과정에 그는 자신의 물리학지식과 영화예술을 부단히 접목시켜 왔다. 그 유명한 영화<타이타닉>도 그의 성공작이다. 그는 바다에 실제 타이타닉 크루즈와 같은 크기의 세트를 세우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연출해 전세계를 감동의 도가니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번에는 6년 동안 광학, 디지털과 상상력이 넘치는 스토리 등 영화예술을 접목시키며 3D영화<아바타>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다. 영화<아바타>는 전세계에서 28억딸라라는 수익을 올리는 기적을 낳았다. 얼마전 그는 <상상력과 기술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한다>라는 특강에서 <3D는 모든 형태의 콘텐츠에 가치를 더한다>고 단언했다.    영화<아바타>에 대해 국내 권위적인 감독 장예모는 < 영화<아바타>는 영화력사상 절세의 대작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아직 아득하게 뒤떨어져있다. 중국의 영화가 발전하려면 창의적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을 알고 현대정보화기술을 숙지한 복합적이고 외향적인 인재를 양성해내야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문화는 유서깊고 두터워서 많은 콘텐츠를 세계에 보여줄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속에서 진수를 찾아내여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형상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무형문화재의 발굴과 정리에 큰 힘을 쏟아붓고있는데 이러한 작업도 긍국적으로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본다.   지난 세월 우리도 수많은 훌륭한 문화예술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아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앞으로 우리가 새시대에 발맞추어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정보기술(IT)과 문화기술(CT)를 잘 활용한다면 문화예술적 품위와 경제효익이 높은 영화, TV드라마, 다큐멘타리, 뮤지컬,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캐릭터 등을 국내외에 출품할수 있다고 확신한다. 문화예술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식을 존중하고 인재를 존중하고 그들의 창작할동을 적극 지원해야 할것이다. 특히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고 개척정신이 있으며 기획과 경영에 능란한 인재를 많이 키워내야 할것이다.   <문화강산>을 잘 가꾸려면 국제적인 문화예술교류사업을 활발히 전개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시장을 겨냥하여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창의적인 문화예술 산품을 개발하여 우리만의 문화예술브랜드로 문화교류와 문화무역을 추진해야 할것이다. 또한 외국의 문화예술그룹들이 우리를 찾아와 교류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광범한 대중이 세계의 문화예술을 앞마당에서 직접 체험하게 해야 할것이다. 최근 신화넷 홈페이지에서는 <지금은 세계적범위에서 문화”전쟁”이 진행중이다>라는 <환구>잡지의 문장을 소개한바 있다. 이 문장은 세계는 이미 문화전쟁의 시대에 돌입했다. <문화전쟁>에서 미국을 이길 나라는 아직은 없다는고 전재하면서 그 원인과 성과 그리고 우리가 배워할 과제를 제시하고있다.   문화는 민족의 유전자가 피여나는 터전이다. 하기에 문화을 잃으면 민족도 없다. 필자는 <아리랑>,<진달래>,<장백산> 등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이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는 문화예술경전으로 다시 태여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이 수려하고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살거리가 많은 <문화강산>으로 탈바꿈하게 될것이고 그러면 국내외벗들이 구름처럼 몰려올것이다.   2010-6-8    
9    천년송 댓글:  조회:3338  추천:21  2011-03-09
천년송 -김희관(원 연변문화국 국장)                                지난해 10월 31일 아침,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함박눈이 아침까지 계속 내리면서 온누리가 새햐안 세상으로 변했다. 늦가을에 첫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나는 카메라배낭을 지고 등산화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연길시 소하룡 동산으로 천년송을 찾아 달려갔다.   천년송은 밤새 내린 함박눈을 한송이도 헛되이 하지 않고 모두 내려받아 커다란 눈갓을 쓰고 우뚝 서 계셨다. 아무도 없는 이 동산, 산아래 마을도 강 건너 성자산도, 저 멀리 연길시가지도 모두 눈안개속에 사라진 이 동산에 이렇게 조용히 우뚝 서있는 천년송을 보는 순간, 아, 당신은 과연 산신령이외다… 하고 저절로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 숙연히 합장을 하고 천년송주위를 천천히 도보하면서 속으로 중얼댔다.   천년송이시여, 당신께서 천년을 장수하셨다고 나라에서 명찰을 달아주셨네요. 당신은 산신령이 되시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당신의 년륜이면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던 그 단오날을 기억하실것이고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에게 절을 올리고  임당수로 떠나던 그날을 기억하실것이고 흥부네가 부자되고 놀부네가 망신을 하던 그날도 기억이 생생하겠네요. 당신은 진짜 세상을 굽어보는 산신령이외다…   천년송의 수령은 년륜으로 기록된다. 나무는 원래 목질부와 인피부 사이에 형성층이 팽창하면서 나무가지가 굵어져 자라나는데 그것이 한해를 지나면 년륜으로 기록이 된다. 가물거나 척박한 해이면 년륜문양이 가늘고 수분과 영양분이 충족한 해이면 년륜문양이 좀 넓게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러니 나무의 년륜을 보면 지난 세월의 흉풍작을 짐작할수 있다.   우리에게도 년륜이 있다. 우리가 중국조선민족으로 살아온 년륜이 이제는 150여년이 됐다는 얘기이다.  초창기의 년륜을 들여다보면 조상들이 <월강곡>을 부르면서  이 땅으로 이사와 화전농사을 지으면서 정착을 하던 고난의 세월이였다. 그래도 뒤이어 서전서숙 명동학교에서 낭낭한 한글 읽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드디여 청년학생들이 일송정에 모여 일제의 탄압에 맞서는 <3.13반일시위>의 용기를 키웠다. 이러한 년륜은 청산리항일대첩, 항일련군, 조선의용군, 동북민주련군 , 해방군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년륜을 쌓아 우리는 비로소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되였다. 건국전 우리의 력사는 참으로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찬사에 손색이 없는 년륜을 쌓아왔다.   건국이래 민족자치권리를 행사하면서부터 우리는 <교육과 문화가 발달한 민족>, <가무의 고향>,  <근로하고 지혜로운 민족>이라는 참으로 오색찬란한 년륜을 새겨왔다.   개혁개방 30여년의 년륜을 돌리켜보면 우리는 새로운것을 배웠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였고 새로운 문제에도 봉착했다.   앞으로 우리의 력사적 사명이라면 천년송처럼 년륜을 장원하게 그려가는것이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민족의 년륜을 그려갈수 있는 좋은 붓대들이 있다. 례하면 민족자치, 선도구경제개발전망, 민족교육과 문화진흥사업, 정보화와 신지식개발사업, 참신한 인재양성 등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과학적발전관에 따라 실천에 옮겨진다면 앞날은 찬란할것이다. 물론 겨레들이 화목하고 민족단결을 도모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는것도 필수적인것이다.   지금 우리는 연변과 전국 각지에서 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에서 살아가고있다. 이제는 우리의 집집마다 국내외에서 류학하거나 사업을 하는 식구가 있어 매일 인터넷을 떠날수 없고 화상채팅이 반갑기만 한 세월이 됐다. 그러니 고향을 떠나 국내외에서 살아가는 겨레들이 별처럼 다이야몬드처럼 살아가는데 대해 필자는 경의로운 마음을 금할수 없다. 그러면서  고향을 잊지 않고 고향을 위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리라고 믿는다. 또한 우리가 겨레의 생태문화를 더욱 잘 개발하여 고향의 년륜을 곱게곱게 새겨가노라면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듯이>  더 훌륭한 인재, 더 참신한 과학기술, 더 많은 자본이 서서히 고향을 찾아올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다 같이 우리의 년륜을 새겨가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천년송처럼 년륜을 새겨가노라면 겨레들의 <천년아리랑>소리가 울려퍼질것이다. 2010-5-11
8    아기울음소리 (김희관) 댓글:  조회:3402  추천:31  2011-02-23
아기울음소리    -김희관 아기울음소리를 듣기싶다. 오래동안 아기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설명절에 아빠트 어느집에서 흘러나오는 아기울음소리를 들으니 아름다운 동요를 듣는 기분이다. 작년에 길림성 인구및계획생육조사단이 우리 주에서 조사를 한 결과 조선족인구가 마이나스성장을 하는 상황이 엄중하다고 했다. 우리의 민속사를 살펴보면 자고로 조상들은 “기자신앙(祈子信仰)”을 첫째로 중히 여겼다. “기자신앙”이란,  자식이 없는 집안에서 자식, 특히는 아들 낳기를 기원하여 행하는 신앙을 말한다. “기자신앙”은 기자행위로 이어졌는바 크게는 사찰이나 성황당 아니면 명산옥천을 찾아 비는것,  장닭과 잔대, 밤 등을 삶아 먹는것,  몸에 기자부(祈子斧)나 장도를 지니는것 등이다. 고중시절 필자의 한 동창생은 3대 독자였다. 그는 할머님께서 천도끼를  벼린 덕분에 겨우 태여났다고 하면서 그 “천도끼”를 가보로 간직하고있었다.   천도끼는 “기자부(祈子斧)”의 일종인데 엄지손가락보다 좀 작은 크기의 무쇠도끼 3개였다. 아들 셋을 상징하는 천도끼 3개는 청실홍실로 꿰매여 정교한 나무함에 고이 담겨있었다. 동창생은 할머님의 옛말을 이렇게 전했다. 시어머니가 앞으로 후손들이 독자신세를 면하게 하기 위해 며느리에게 아들 여럿을 낳아주기를 바라는 지극정성을 담아 천도끼를 벼렸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천도끼를 벼르기 위해서는 천신만고를 치러야 한다. 매일 이른새벽 시어머니는 샘터에 나가서 남들 먼저 곱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어 올린다음 정한수를 떠놓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향하여 큰절을 올린다. 그후 그는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면서 바늘을 동냥하기 시작하는데 바늘은 반드시 한집에서 “복바늘과 화바늘” 두개씩 동냥해야 하고 그 집이 멀어지면 화바늘은 내가나 심산에 버리고 복바늘만 집에 가져다 복바늘함에 고히 보관한다. 이러한 복바늘은 며느리를 들이기 100일전에 반드시 천개 이상을 모아야 하며 또한 잔치날 한순전에 이름난 야장을 찾아가 천개의 복바늘을 내놓고 사연을 고한후 천도끼를 벼러달라고 부탁을 한다. 잔치날 저녁 아들과 며느리가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시어머니가 소반에 천도끼함을 들고 신방에 들어가 며느리의 허리에 청실홍실을 드린 천도끼를 처매여주면서 적어도 아들 셋은 낳아달라고 덕담을 한다.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고히 절을 올리고 바랜후 신랑은 신부에게 비슷한 덕담을 하면서 천도끼를 풀어내여 신부의 베개밑에 고히 넣어준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어도 동창생은 결국 독자로 태여났다. 후날 그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다. 필자가 농촌에 취재를 다닐 때 야장을 만나면 천도끼에 대해 물어봤는데 한 야장은 옛날에 할아버지가 수레바퀴철을 찍어내서 “천도끼”를 벼리는것을 본적은 있다면서 복바늘을 모으는것은 정성이고 바늘로는 천도끼를 벼릴수 없다고 했다.지금 세계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이 저출산, 로령화라는 사회적난제에 직면해있다. 우리도 저출산,  고령화가 커다란 이슈로 떠오른지 몇해 된다. 저출산은 대체로 독신자들이 늘어나거나 만혼을 하면서 생육을 거부하거나 혹은 직장일이 너무 바빠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초래된다. 더욱 중요한것은 경제적 부담과 어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부부가 국내외에서 얼마동안씩 떨어져 살고있다. 또한 우리에게 예비엄마들이 부족한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한가지 홀시할수 없는것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가공식품의 악영향 등 원인으로 하여 청년부부들의 생육건강에 엄중한 부작용이 있다는것이다. 하기에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한 맞춤형복지를 대폭 늘일 필요성이 절박하다. 지난 2월 15일자 “연변일보”에 “주내 54개 향진 중심유치원 건설”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다소 위안을 받았다.1952년 5월, 주덕해서기의 “부녀들을 가정울타리에서 해방시켜 사회에 진출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육원과 유치원을 창설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주부련회 김찬해주임은 쏘련의 선진적인 보육경험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연변보육원과 6.1유치원을 창설했다. 주덕해주장은 조선의용군 제3지대시절 부하였던 주당위 선전부 간부 김정순을 연변보육원 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연변보육원과 6.1유치원의 선진경험은 전국부련회계통에서 찬사가 자자했다.  그때 연변보육원에서 자란 애기들이 지금은 벌써 60세가 넘었고  6.1유치원 제1기 졸업생중에는 연변대학의 전임 당위서기 김희정, 동북아연구원 전임 원장 박승헌도 있다. 김정순원장님도 이제는 86세 할머님이신데 즐거운 만년을 보내고 계신다.  그때는 “모성영웅”을 장려하는 사회풍조여서 “칠선녀의 아버지”, “열두남매의 어머니”가 영광스러웠다. 우리가 인구 마이너스성장에 관한 뉴스를 보기 시작한지 벌써 몇년이 된다. 이렇게 백년후이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되는건가?  참으로 기우의 심정이다. 필자는 조선족 엄마들이 아기를 둘은 물론이고 둘이상 낳아도 근심없이 키울수 있게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간곡한 심정이다.  앞으로 아기울음소리가 동요대합창처럼 들렸으면 좋겠다.              
7    연길다리(김희관) 댓글:  조회:7222  추천:59  2010-12-25
연길다리김희관 원 연변주문화국 국장12월1일 <연길다리>가 100년만에 <연길대교>로 다시 태여났다. 개통 첫날이라 구경군들이 하도 많아서 시민들의 <연길다리>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길대교>가 아직은 미완성이라 앞으로 부속시설과 주변 공원조성, 봇물가두기 등 공사를 완공하면 디자인이 괜찮은 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새로 건설된 <연길대교>는 손자벌이다. 일찍이 1909년 2월 연변변무공정국의 감독하에 처음으로 부르하퉁하에 목조다리를 놓았는데 그다리를 <연평다리>라고 불렀다. 그 때는 하북에 주민들이 많았기에 습관적으로 그냥 <하남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1934년 <연평다리>는 아쉽게도 큰홍수에 떠내려갔다. 그래서 림시방편으로 걸쳐놓은 나무다리가 하남다리 역할을 했다.1934년부터 일위통치자들은 군사전략의 수요에 따라 철근콩크리트구조로 된 연길다리와 공원다리를  설계하고 건설하기 시작했다. 1936년6월에 완공된 <강평다리>는 다시 <연길다리>로 바꿔 불렀다. 1957년에는 <연길다리> 서북쪽 기둥이 홍수에 내려앚는 사고가 발생해 한동안은 불편했다. 1986년 <연길다리>는 폭을 넓이는 보수공사을 했다. 올해 초부터 시공한 <연길다리>는 사상 최대규모의 <연길대교>로 재건됐다.<연길다리>는 유서깊은 다리이다. <연길다리>는 묵묵히 누워서 연길의 력사를 100년동안이나 치켜봤다. 청나라말기의 연길, 손문시대의 연길, 일제시대의 연길 그리고 해방후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길과 연길사람들의 변천사를 모두 지켜봤다. 만약에 백년전부터 연길다리에 CCTV가 설치되였더라면 그 보다 더 좋은 영상력사자료는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하남다리의 몇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50년 4월하순의 하루 필자는 양마차를 타고 연길다리를 건너 연길에 입성하였다.  그때는 아버지가 중공연변지위 서기 겸 전원이신 주덕해동지의 비서로 계셔서 어머님이 우리 형제들을 이끌고 흑룡강성 상지에서 연길로 이사오게 되였다. 우리가 연길역에 내려 지위에서 마중나온 양마차를 타고 하남다리를 건너는데 여덟살나이의 필자는 <아, 이렇게 큰 다리…>하고 입을 못 다물었다. 상지 하동에서는 불과 50여메터되는 보동다리를 건너다가 이렇게 긴 다리를 양마차를 타고 건너게 되니 더없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날의 놀라움과 기쁨은 평생을 잊을수 없다.지난 세월 매일 아침이면 수많은 로동자들이 자전거 짐받이에 도시락을 끼우도 하남다리를 건너 여러 공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였다. 그때 그들은 우리의 믿음직한 산업대군이였다. 어느해인가, 하루는 수많은 당나귀들이 새하얀 주둥이를 가쭌하게 이어대고 집채같은 보일러시설을 끌고 연길다리를 건네는 보습이 너무나 기특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단결은 힘>이라는 그런 장면이였다. 그때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좋은 사진작품을 남겼을것이다.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잊을수 없는 장면은 1982년 6월, 경애하는 주은래총리께서 하남다리를 오가시면서 우리의 삶은 보살펴주시던 나날이다…지난 30년 세월, 필자는 세상의 많은 유명한 다리를 건너면서 즐겼다. 국내의 장강대교와 황포대교는 물론이고 미국 센프랜시스코의 금문교(골든 게이트브릿지), 뉴욕 맨하탄의 부루클린브릿지, 홍콩의 청마대교,조선평양의 대동강다리, 한국의 한강다리, 인천대교, 도꾜만의 레인보우브릿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유명한 하버브릿지 등이다. 지금은 바다에 몇십키로메터의 다리가 건설되여 섬들을 이어가는 세월이라 다리의 공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리는 도시교통의 요충지이다. 여러갈래에서 몰려온 사람과 차량들이 다리로 빨려드는 광경은 도시의 일상풍경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즐겁게 건널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화석연료시대여서 차량들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뻔질나게 질주하지만 인행도를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고역이다.  앞으로 전기차시대가 온다다고 하니 한동안을 내심하게 기다려야 하겠다. 다리는 도시문명의 중요한 상징이다. 국내외의 도시들을 돌아보면 다리가 있는 도시에는 강물이나 바다물이 있어 공기가 맑고 습윤하며 활기가 넘친다. 도시는 문명한 시민, 풍부한 물자원, 아름다운 도시 디자인, 활발한 시장경제 그리고 다채로운 민속풍경과 문화예술로 하여 유명해지는것이다. 그러한 도시들에는 유명한 다리와 관련되는 수많은 스토리가 생겨나고 전해진다. 그러한 스토리들은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로 승화되여 보석같은 문화예술진품으로 남는다. 미국 할리우드의 경전적 영화 <화테루브릿지(魂断蓝桥)>는 영국 런던의 화테루다리를 배경으로 세계대전이 연인들에게 가져다준 비극을 비장하게 그려냈다.<연길다리>가 이제는 <연길대교>로 다시 태여났다. 연길이 그만큼 번영해졌다는  상징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국내외 귀빈들이 <연길대교>를 건너 우리를 찾아오기를 바라며 국내외에서 살고있는 <연길사람>들이 고향나들이 자주 하기를 바란다. 또한 누군가 <연길다리>라는 홈페이지를 열어 <연길다리>가 사이버다리가 되여 월드네트워크를 구성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100년동안 <연길대교>에서 좋은 드라마 스토리가 엮어지기를 기대한다.
6    순진한 사랑 (김희관) 댓글:  조회:4227  추천:49  2010-11-24
순진한 사랑김희관 전 연변주문화국 국장영화 “산사나무아래(山楂树之恋)”는 올해 영화감독 장예모(张艺谋)가 출품한 야심작이다. 9월16일부터 전국에서 상영되기 시작해 반응이 뜨거웠고 10월초에는 부산영화제에 개막식 상영편으로 추천되여 관중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장예모감독은 이 영화의 남녀주연배우를 데리고 참석해  “부산영화제는 아세아 최고 영화제”라고 극찬했다.영화 “산사나무아래”는 애미(艾米)의 소설 “산사나무아래(山楂树之恋)”를 각색한 영화작품이다. 장예모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한 초심은  “력사상 가장 순진한 사랑” 을 그려내는것이라고 했다.“문화혁대혁명”이라는 암울한 시기, 현성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정추라는 녀학생이 혁명전통교재를 쓰기 위해 해방전 혁명렬사들이 산사나무아래서 장렬히 희생됐다는 농촌마을에 하향한다. 정추는 생산대장의 집에 투숙하면서 로싼(老三)이라는 지질대 청년을 알게 된다. 로싼은 정추의 습작과정에 잉크가 새는 만년필이며 희미한 전등불까지 신경써주면서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다. 정추가 학교에 돌아온후 뜬소문에 로싼은 성도회지 고급간부의 자식이며 애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로싼의  “애인”설은 뜬소문이였고 오히려 미적인 향수를 추구하던 로싼의 어머니가 세수를 깨끗히 하고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리고 고운옷까지 입고 자살을 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얼마후 학교 선생인 정추의 어머니가 정추와 로싼이 사랑의 늪에 빠진것을 발견하고 호된  “심문”을 한다. 엄마가 정추와 로싼을 다  “심문”해 봐도 남은것은 남자랑 손만 잡아도 임신하는줄 아는, 키스 한번 못해본  “순진한 사랑”뿐이다. 그때는 출신이 서로 다른 청춘남녀의 “순진한 사랑”마저 용납못하는 세월이라 “우파”인 남편은 두말할것 없고 자신도  “로동개조” 중인 어머니는 가슴이 더 아파한다.얼마후 지질탐사를 하던 로싼이 혈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로싼은 정추의 장래를 위해 자기를 영원히 감추기로 작심하고 조용히 정추의 곁을 떠나 성도회지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인다. 어느날 정추가 교학을 하는데 성도회지에서 짚차를 보내여 정추를 큰병원으로 안내한다. 군부대 수장인 로싼의 아버지가 정추에게 로싼을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정추와 로싼은 몇번  “순진한 사랑”의 스토리를 엮어왔지만 정추가 로싼을 어떻게 호칭할지에 대해서는 약속한적이 없었다. 하기에 정추는 로싼이 운명하는 시각에 그저 하염없이  “나 정추예요!” 를 련발한다. 로싼은 마지막 뜨거운 눈물을 남기고 영원히 떠나간다. 필자는  “순진한 사랑”을 믿는다. 그 동란의 세월, 필자는 북대황 한복판에 있는 옌워도에서 몇년간 농사를 지었다. 어느날 우리 련대에서는 북경에서 온 국민당 장군의 아들과 당지 빈농의 딸이  “순진한 사랑” 을 꽃피우는  “사건”이 터졌다. 모두들 말렸다.  “너희들은 참 좋은 청년들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부부가 되여 살아간다면  너희들뿐만아니라 너희 자식들까지 한평생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갈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순진한 사랑”은 그칠줄 몰랐다. 몇년전 강소성 무석에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바로 그들 부부였다.  “그 시절에 많이 관심해 줘서 감사해유… 우리 행복하게 살고 있어유!” 이 영화에 끌린 또 한가지  리유는 영화의 주제곡이 소련가요 “산사나무”여서 반가웠다. 가요 “산사나무”는 지난세기 50년대부터 중학생들이 즐겨부르던  “카츄사”,  “오솔길”,  “축배”,“귀환병”,“모스크바교외의 밤”   등 소련가요중의 한곡이다. 그러나 암울한 동란의 시대에는 금지곡으로 되였다. 지난 80년대 “문예의 새봄”을 맞으면서 한때는 가수들이 소련가요를 많이 불렀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미국이나 외국의 가요가 많이 흥행하고 있어 참말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드카를 마시다가 불시에 위스키를 마시는 기분이다. 이번에 영화에서 가요 “산사나무” 를 들을 때는 옛날을 추억하는 기분이다.영화는 예술이다. 예술은 문화의 꽃이다. 오직 두텁고 비옥한 문화적 토양이 있어야 예술은 곱게 피여날수 있다. 이 영화는 영화예술에서 아주 “평범” 해 보인다. 시나리오는 소설에서 개작되였고 스토리의 구성도 그렇게 놀라운것이 없을 정도로 평범해 보인다. 영화의 몽타쥬 기법도 특별한것이 거의 없이 엮어내려가는 양상이다. 더우기 중간중간 자막으로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는것은 마치도 챠프린의 무성영화를 보는듯 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록영화같은 풍격이라 할가. 바로 그속에  “순진한 예술”이 있었다. 또한 전국의 7천여명 청순남녀중에서 뽑았다는 정추역을 맡은 녀배우는 영화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고중3학년 녀학생인데 대학고시를 포기하고 이 영화에 뛰여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순진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5    련애편지 (김희관) 댓글:  조회:4232  추천:45  2010-10-16
련애편지 김희관 <련애편지>라고 제목을 써놓고 씩 웃었다. 너무 촌스러운 제목이여서다. 사실 <련애편지>란 낱말은 이제는 소설에서나 찾아봐야 하는 유산이 되였다. 옛날 학창시절 한 동창생이 고민끝에 큰 결심을 내리고 용기를 내여 짝사랑하는 녀학생에게  <련애편지> 한통을 부쳤는데 며칠후 답장이 두곳에서나 왔다. 편지를 우편국에 달려가 부치는 그날 마침 엄마에게도 잘 있다면서 <돈을 좀… > 하고 편지를 같이 부쳤는데 그만 편지장을 바꿔 봉하는바람에 엄마에게는 천기를 들키고 그 녀학생에게는 돈을 좀 달라는 호소문이 된 격이였으니 야단이 난것이다. 소통은커녕 큰 화를 불렀기때문이다.21세기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하게 데이트를 통해 애정표현을 하거나 아니면 채팅이나 문자메세지로 얼마든지 저희들의 애정을 표현하니까 구태여 또박또박 <련애편지>를 써서 우편국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오늘 새삼스럽게 <련애편지>라는 유산을 들고 나온것은 우리 시대의 소통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사실 <련애편지>는 사랑하는 련인들끼리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더없이 좋은 소통수단이다. 오늘 필자는 유산이 된 <련애편지>의 의미를 저변까지 넓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례하면 부모형제, 사랑하는 련인, 친구와 동창생 그리고 동업자들에게 띄워보내는 <사랑의 메세지>로 삼는것이 어떻겠는가를 제안한다.며칠전 한국법무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날 7월 현재 한국에 진출한 중국조선족인구가 38만 2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미국, 일본, 카나다, 유럽, 호주, 남미, 중동 지어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겨레들을 주먹구구해보면 아마  50여만명이 해외에 진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니 200만 중국조선족인구의  4분의 1이 해외에 진출했다는 얘기이다.국내에서는 많은 동포들이 연변을 비롯한 동북3성의 전통적인 집거지를 떠나 북경, 상해, 산동반도, 심수 등 지역에 진출해 새로운 집거지를 창설했으니 국내동포들의 분포판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동포들이 이렇게 국내외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위해서나 가정의 안녕, 친구간의 우정 그리고 사업상의 윈윈전략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원활한 소통이 매우 필수적이다.소통은 의사소통을 말하는것인데 다른 말로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휴먼네트워크라고 할수 있다. 의사소통이란 다른 사람과 믿음과 정보를 서로 나누는것이다. 의사소통은 상호간에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뿐만아니라 눈빛, 몸짓, 손짓, 자세, 침묵까지도 포함한다. 지금은 속달우편, 택배, 전화, 핸드폰, 인터넷 등이 있어서 의사소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사실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는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소통이 잘되면 부부사이, 부모형제, 련인들이 천해지각에 떨어져 살아도 감정세계에 골이 생기지 않고 오해도 초래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이웃사촌>들은 이웃에 살면서 의사소통이 잘되니까 사촌 맞잡이로 사이가 좋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살면서 의사소통을 잘 안되면 친혈육끼리라도 멀어지기마련이다. 그래서 정은 줄수록 두터워진다고 한다.의사소통에는 하향소통이라는 <내리사랑>이 우선되여야 할것이다. 어른이 자손과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동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것이다. 직장에서는 상의하달이라는 의사소통으로 상관이 하급에게 명령계통에 따른 지시적 의사소통이 중심을 이루고있다. 특정 업무를 지시하고 조직, 절차 및 실행에 대한 정보를 주며, 부하의 업무성과에 대해 언급하며  조직목표를 주입시키는데 목적을 둔다. 이런 방식에서는 게시, 기관지, 작업지시서, 연설 등의 매체를 리용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소통에는 비록 엄격한 조직적요소가 있지만 역시  하급에 대한 상급의 믿음과 기대가 안받침되여야 할것이다.다음은 횡적인 의사소통이다. 부부사이, 형제자매사이, 동창생사이, 직장동료사이에서 서로 정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교류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성취하는것이야말로 횡적인 의사소통의 진수라 하겠다.상향적인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이러한 의사소통에는 민주적이고 화합의 기분이 보장되여야 가능한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말을 잘 들어주고 선배가 후배의 정서를 잘 헤아리고 상급이 하급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충분히 존중해주는 기분과 환경이 조성되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야 하급과 상급의 의사소통이 잘되여 모든것이 형통할것이 아니겠는가.우리가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 사랑하는 겨레들에게 <련애편지>를 많이 보내주는 신사숙녀들은 찬양을 받을것이다.
4    유대인의 지혜 (김희관) 댓글:  조회:3407  추천:71  2010-09-16
유대인의 지혜김희관 원 연변문화국 국장맑스, 데이비드 리카도,아인슈타인,프라이드,키신저,올브라이트, 스필버그,피카소, 채플린 등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유대인이다. 유명한 유대인 100인 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유대인들은 인류사회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것을 금방 알수 있다.2009년10월의 통계에 의하면 력사상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가 180명을 넘었다. 하여 세계인구의 0.19% (2007년 전세계 유대인인구 약 1,800만명)밖에 않되는 유대인의 노벨상 수상자가 22.3%를 점했고 그중 경제학 노벨상 수상자가 무려 42%을 점하는 기적을 낳고 있다. 뉴욕은 유대인 자본의 본산지이며 유대인의 금융이 미국과 세계의 금융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허구가 아니다. 9.11테러에 붕괴된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바로 유대인 자본의 본산지 상징이였다. 하기에 옛날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지금은 모든 길이 뉴욕으로 통한다. 유대인들은 제2차세계대전이후부터 근 2천년전에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되찾고 두차례나 국적법을 반포하여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맞이하고 있다.유대인은 어찌하여 이렇게 능란할가 ? 유대인들은 사람마다 남다른 지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이런 옛말을 듣는다고 한다.   < 얘야, 집이 불에 다 타버리면 너는 무었을 가지고 살아갈거니 ?> 만약 아이가 돈 아니면 진주보석따위를 챙겨서 살아가겠다고 대답한다면 빵점을 맞는다. 엄마는 아이에게 < 얘야, 지혜를 살리면서 살아 가거라!> 라고 타이른다. 유대인의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것일가?  탈무드는 바로 유대인들의 유구하고 거대한 지혜의 보고이며 교육체계이다. 탈무드는 1만 2천 페이지의 방대한 경전이다 .기원전 5백 년부터 기원후 5백 년까지의 구전을 10년동안 2천명의 학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탈무드는 유대인 5천년의 지혜이며 모든 정신의 샘터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경전은 순수한 학자들에 의해 문화, 도덕, 종교적 전통을 전승해 왔다. 그러면 탈무드란 무엇일까? 탈무드를 책이라고만 말할수는 없다. 탈무드는 위대한 문헌이며 웅장하고 화려한 문화의 모자이크다. 또한 탈무드는 엄연한 문학이다. 탈무드는 법전은 아니지만 법을 설명하고 있고 력사책이 아니지만 력사를 설명하고 있으며 인명사전도 아니면서 여러 인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또한 인생이 갖는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5천 년래 유대인 지혜의 보고이다. 이스라엘 제3대왕 솔로몬은 역사상 <지혜의 왕>으로 불려왔다.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탈무드에 대한 교양을 한다. 또한 학교에서 리성적인 교육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사회교양에도 무척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교육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었인가? 그것은 바로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지혜와 리더십에 대한 교육이다. 목전 국내에는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한명도 없다. 몇년전 CCTV에서는 뜨거운 토론을 거쳐 중국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아직도 20여년이 걸려야 할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2005년3월29일 저명한 과학자 전학삼선생은 생전의 마지막 담화에서 국내 대학들은 아직도 창의정신과 상상력을 가진 학생들을 배양하지 못하고 있어 원초적인 발명창조를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2010년8월4일 저명한 교육가이며 국가 교육부 대학교육사 사장을 지낸 류도옥선생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청소년들은 컴퓨터기술은 세계에서 일등인데 상상력은 세계에서 꼴지이고 창조력은 마지막으로부터 5등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8월30일 중국뉴스넷에는 국가 문화부 부장의 문장이 실렸는데 요점은 <중국문화는 경전명작이 결핍하고 도사라고 뫼실만한 문화권위가 없으며 저속하고 거짓과 너절함 게다가 천박한 졸작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2010년4월19일 신화넷에서  <중국사람은 왜 참말을 하기 싫어하는가?>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상해방>의 길이 아직은 아득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니 우리의 청소년들은 무었을 배우겠는가?  잡아준 고기는 잘 받아 먹어도 고기를 잡는 방법은 배우지 못하기에 원초적인 발명창조와는 거의 담을 쌓고 있다. 현대문명에서 우리가 원초적으로 발명창조해낸것은 거의 없다. 창의정신과 상상력이 부족해 현대문명에 기여못하는 민족은 국내외의 치렬한 경쟁속에서 밀리기 일수다. 세계는 지금 창의정신과 상상력이 넘치는 <디지털영웅>들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리고 있다.7월중순, 겨레의 미래를 념려하시는 원로 지도자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앞으로 젊은이들은 유대인처럼 과학기술과 경제,금융을 잘 배워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것이다.> 
3    저녁노을 (김희관) 댓글:  조회:3330  추천:48  2010-08-17
저녁노을김희관 전 연변주문화국 국장북대하에서 교학을 할 때 필자는 바다가에서 노을을 촬영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일주일 일기예보를 챙겨서 어느날 새벽에는 구름이 없어 아침노을이 붉을것이고 어느날 저녁에는 노을이 붉게 타겠는가를 예측한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도 바다 수평선에서 붉게 타오르는 아침해를 카메라에 담아냈고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사라지는 멋진 저녁해도 찍었다. 어느날 강의 끝에 학생들에게 무심코 바다노을 사진 몇장을 파워포인트화면으로 비춰보였다. 그 순간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아, 아침노을…"” 하면서 감탄한다. 스무살 대학생들이라 아주 감성적이다. 그런데 한 학생이 "“선생님,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이 어떻게 다른가요?"”라고 묻는다. 그때 나는 글쎄 하면서 정확한 답을 못 줬다. 며칠후 바다가에서 어부에게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이 어떻게 다른가고 물었다.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아침노을은 붉고 참신한데 저녁노을은 후덥지근하고 피곤해보인다." ” 어부의 말이 옳았다. 새벽 3시에 바다가에 나가 바다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노라면 먼저 동녁에 피여나는 찬란한 아침노을을 보게 되는데 붉고 참신해서 장엄한 기분에 숙연해진다. 이윽고 쟁반 같은 아침해님이 수평선에서 붉은 얼굴을 서서히 떠올린다. 그때면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대면서 " “해님, 오늘도 오셨네요, 천만년을 이렇게 오시네유…"”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저녁노을을 촬영할 때는 웬지 저녁해님이 많이 피곤해보여서 측은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아마 우리의 인생도 그런가보다. 아침노을은 분명히 청춘의 빛이고 저녁노을은 당연히 노인의 빛이다. 옛날 중학시절에는 "“아침 8 ~9시 해와 같은 세대"”라고 치켜세우는바람에 신나서 열심히 뛰였는데 이제는 "“저녁노을 세대"”라고 하니 억울해도 할수 없다. "“저녁노을 세대"”는 건강이 제일이다. 건강에는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이 있다.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은 어느것이 먼저라고 딱히 말하기 어럽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신체건강 조건에서는 정신건강이 앞서야 할것이다. "“저녁노을 세대"”의 정신건강에서 첫재는 정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情-—마음 심에 푸를 청)은 푸르른 마음이다. 푸르른것은 광합작용을 하면 재생한다. 누구나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있겠지만 그래도 고운 정을 많이 키워야 할것이다. 정은 사랑의 원천이다. 정이 많으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생활을 사랑하게 된다. 또한 욕심을 버리게 되고 남에게 관용을 베풀면서 봉사하게 되고 가족은 물론이요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갈수 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새 지식을 배우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새로운 문제를 사색하는 습관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매사에 너무 흥분하거나 너무 비관하지 말아야 할것이며 더우기 기우의 심리를 버려야 할것이다. 아주 중요한 한가지는 제2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는 직업처럼 간주하는 건전한 취미생활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 열심히 배우고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참된 인생이 이어져야 할것이다. 이 모든것을 즐거운 마음, 배우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으로 엮어나갈 때 우리의 여생은 보람이 있을것이다. "“건강 100세"”시대가 펼쳐지면서 사람마다 의식주행, 관혼상제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필자는 우리 인생에는 아마 평생동안 먹어야 할 식량이 어머님께서 주시던 밥그릇처럼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년퇴직부터는 제2인생이라고 하니까 이제는 아마 평생 먹고 살아야 할 식량이 절반가량 남아있을것이다. 그러니 매일 적당히 적게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오래 먹을수 있을것 같다. 동시에 여러가지 건강한 식습관을 배우고 신체건강에 해로운 낡은 습관을 고쳐나가야 할것이다. 필자는 매일 파워워킹(힘차게 걷기운동)을 할 때 "“이렇게 매일 건강을 다진다면 인생의 지평선에 늦게 도착할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바람난다. "“로인절"”을 맞아 바다가에서 찍은 저녁노을 사진을 다시 보니 하늘은 붉게 물들었는데 저녁해님 자신은 오히려 오렌지색이다. 아마 자신의 붉은 에너지를 죄다 하늘에 뿌려줘서 그럴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 "“내 몸의 끓는 피로 저녁노을을 붉게 물들이리라…"
2    아리랑축제(김희관) 댓글:  조회:3667  추천:64  2010-07-21
아리랑축제김희관 전 연변문화국장 축제는 대중문화의 한마당이다. 옛날에 광대들이 정월 대보름이나 오월단오 아니면 추석대보름에 동네방네를 찾아다니면서 흥겨운 농악에 꼭두각시까지 놀아주는 마당놀이야말로 현시대 축제의 원조라 하겠다. 필자가 외국에서 보아온 축제들도 그러한 대중문화의 한마당이였다. . 뉴욕에서는 매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축제를 펼친다. 1620년 풍랑을 무릅쓰고 살길을 찾아 뉴욕일대에 상륙한 영국인들은 이듬해 봄에 인디언인들이 가져다준 옥수수,콩, 보리 씨앗을 심어 풍년을 맞았다. 그 때로부터 인디어인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생겨나 지금까지 축제를 벌리고있다. 필자가 뉴욕에 머물 때 마침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볼수 있어서 너무나 흥분했었다.  도꾜 하라쥬끄에서는 일요일이면 모든 기동차는 통행금지를 시키고 청년들이 저들의 악기와  쟁기들을 다 들고나와 “장기표현축제”를 마음껏 즐긴다. 필자의 친구인 NHK일본방송회사 프로듀서는 “이런 축제야말로 젊은이들이 자기의 장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기회이며 우리는 TV방송인재를 물색하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서울에는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축제가 하두 많아서 어느 축제를 말해야 할지 망서리게 된다. 그중에서도 이천에서 열리는 “도자기축제”를 말하고 싶다. 도자기축제에서는 구경군들도 천년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고려청자, 이조백자, 분청자기 등 도자기를 빚고 거기에 자기의 소원과 이름까지 새겨넣고 구워내 영원한 기념품을 남긴다.시드니에는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시드니축제, 불꽃축제 등 일년 사시절 축제가 끊일날이 없다. 우리가 유람선에 올라 오페라하우스 주변의 푸르른 바다를 유람하면서 느낀 감상이라면 이 도시는 아예 문화와 예술로 쌓아올린 축제의 도시라는것이다. 더 재미있는것은 시드니 시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님들을 위해 교외에 수많은 미니 게이트볼장 (문구장), 미니 골프장을 마련해놓고는 일주일에 4일 이상 운동에 참가한 할아버지 할머님들에게는 주말에 축제를 열어 축하해드린다. 이러한 축제로 인해 시청에서는 로인들의 의료보험 투자를 어느정도 절약할수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1984년 여름,  우리는 10년 동란이후 문예부흥의 새봄을 맞은 우리의 문화예술 성과를 과시하고자 “연변의 여름” 예술절을 창설했었다. 그 때 전 주의 20여개 문화예술단체의 문화예술인들이 모두 뛰여들어 창작과 표현 그리고 세미나까지 그렇게 진지하게 몰두했다. 그 때 국가문화부 예술국과 민족사무위원회 민족문화사에서 마침 연변고찰을 나왔기에  “연변의 여름” 예술절을 창설하게 된 경유를 설명해드리고 자문을 받았고 그들과 함께 예술절 활동에 참석한 나날이 새삼스럽다 . 아쉬운것은 “연변의 여름” 예술절이라는 민족문화예술의 한마당이 3기를 끝으로 력사에 남았다는것이다.근간에는 중앙으로부터 관영축제를 절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가 하면 문화예술적내포가 없고 대중의 참여가 없는 축제를 외면하자는 사회여론도 사실이다. 실제 일부 축제는 대중들속에서 우러나오는 문화예술의 향연을 발산하는 한마당이 아니라  행사를 위한 행사에 불과하기에 인기가 없고 대중이 참여할 기회가 없는것은 물론이고 재정랑비도 놀랍다.우리는 아직 축제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축제는 문화예술을 핵심으로 하고 대중을 주체로 하면서 관광을 결부하여야 할것이고 시장경제원리에도 부합되게 기획되여야 할것이다. 그러한 축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정기적인 축제로 성숙해 우리와 함께 동행하게 될것이다.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한다면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우리 문화의 유전자를 가장 잘 발산할수 있는  “아리랑축제”을 기획했으면 좋겠다. “아리랑축제”는 우리 겨례 남녀로소가 천명이고 만명이고 정기적으로 산에, 들에 ,강가에 모여 여러 곡조의 아리랑을 목청껏 고창하면서 농악과 춤판을 벌려 우리의 력사를 자랑하고 우리의 삶을 자랑하고 우리의 미래을 동경하는 한마당을 펼치면 어떨가 하고 생각해본다. 운남의 “퍼수이제” 내몽골의 “나다무”도 다 그렇게 자란난것이다.  2007년 여름부터 룡정시 개산툰진의 어곡전에서 벌리는 “농부절”은 짙은 민족민속색채를 보여주어 매우 참신 하다. 올해는 여러 현,시에서 참가하는 농악한마당을 벌린다니 기대된다.. 축제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이지 남에게 보여주자고 꾸미는 행사가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즐거움에 흥겨워 축제의 한마당을 꾸준히 펼쳐 나간다면 “아리랑축제”는 무르익을것이고 세상의 구경꾼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것이다. 《연변일보》에 실린 2010 ”연변의 여름”두만강축제 보도를 읽으면서 축제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원한다.
1    신《춘향전》(김희관) 댓글:  조회:4540  추천:138  2007-09-21
신《춘향전》김희관 문화평론가7월초, 연변문화교류원에서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의 지원하에 《제2차조선족중학생전통문화체험캠프》를 열어 연길시13중의 30여명 중학생을 대상으로 전통문화교양을 진행하였다. 필자는 캠프 개막식을 축하하면서 중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춘향전을 읽어본 학생 손 들어보세요.》 결과 두 학생이 우물쭈물하며 손을 들었다. 며칠후 캠프 졸업식에서 필자는 깜짝 놀랐다. 화려한 한복을 입고 무용실에 도열한 중학생들을 보는 순간 아, 춘향이 따로 없구나, 도령님들도 저렇게 멋지구… 졸업식회보공연에서 성춘향과 리도령이 다소곳이 학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올리는 큰절은 그렇게도 공손하고 춤사위는 청산을 즐기는 나비를 련상하게 했다. 우리는 전통문화가 있는 민족이다. 《춘향전》은 수많은 전통문화예술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대표작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정조와 애정관을 가장 잘 담은 고전명작이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춘향전》은 작자와 창작년대는 미상이지만 한글본, 한문본, 한글한문혼용본 등 70여판본이 전해왔다고 하며 짧게는 7000여자, 길게는 무려 10만자나 된다고 한다. 그 제목도 춘향전, 춘향가, 렬녀 춘향 수절기, 광한루기 등 다양하다고 한다. 그리고 남원부사의 아들 성의성이 옛 사랑을 못잊어 자기의 성씨를 옛 련인에게 붙여주어 성춘향을 부각해냈다는 연구성과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얘기다. 《춘향전》은 몇백년간 전해오면서 여러가지 문예형태로 변신하면서 조상들의 끈질긴 문화전통을 보여주었다. 판소리, 창극, 연극, 가극, 무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형식으로 부단히 변신하면서 전승해왔다.  지난 50년대 연변연극단의 연극 《춘향전》은 소학생이였던 필자의 눈물도 자아냈었다. 10여년전 연변가무단의 무극 《춘향전》은 북경의 예술무대에 광채를 한껏 뿌렸고 대상도 받았다. 실로 민족문화의 유전자가  대물림하는 기록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지난 30년대부터 1995년까지 로씨야, 핀란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웽그리아 등 나라들에서는 저명한 로씨야 안무가 포킨이 《춘향전》을 안무해 창작한 발레 《사랑의 시련》을 공연해왔다는 사실이다. 실로 가장 민족적인 명작이 바로 세계적인 명작이라는 명제를 잘 실증해주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통문화와 문화전통은 참으로 훌륭했다. 문제는 어떻게 후대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잘 배워주어 그들이 《전통문화 전승》이라는 세기적사명을 감당하게 하는가 하는것이다.  문화가 쇠망하면 민족이 쇠망한다는 근본적인 도리는 물론, 전통문화는 조상들이 대물림해준 문화유산이며 우리 문화의 뿌리라는 도리를 깨우쳐주어야 한다. 세계경제 일체화시대에  전통문화를 잘 지켜내야  민족혼의 토대를 고수해낼수 있다는 문화관념을 확고히 세우도록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세상얘기를 하다보면 《지금은 춘향이 서울 가는 세월》이라는 말이 가끔 나온다. 여러가지 사회현상과 가족형편을 시사하는 시체말이다. 리도령만이 한성으로 간다는 법은 없다. 문제는  고향에서 맺은 백년가약을 지키고 자식을 사랑하며 고향을 잊지 않고 때가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오듯》고향을 찾아오는것이 기본 레드라인(저지선)이 아닌가 한다. 그래야 우리 200만 동포사회가 대를 이어 이 땅에서 번영해나갈것이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청소년전통문화교양캠프》활동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면서 《춘향과 도령들》에게 천지샘물을 먹물 삼아 대를 이어 신《춘향전》을 써내려 가라고 권장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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