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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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및 기타 (류감나) 댓글:  조회:12325  추천:0  2013-01-23
                                        摘 要       被誉为20世纪的天才作家——罗稻香,在他短暂的一生中创作出了一系列杰出的作品,从前期的浪漫主义文学到后期的现实主义文学,展现出了他非凡的文学才能。这一转变主要体现在后期的短篇小说《桑树》、《水碓》、《哑巴三龙》、《池亨根》等中,描写工人、农民、店员、仆人等下层社会人民的生活,同情他们的遭遇,揭露了剥削阶级的丑恶本质和社会黑暗。而《哑巴三龙》是他的代表作,是浪漫性与现实性双重结合的佳作。 本稿主要通过对《哑巴三龙》的人物形象分析,进一步增进大家对罗稻香的了解,并对他的浪漫文学和现实文学进行剖析,向大家传达一种爱的真谛。在当代现实情况下,无论室哑巴三龙对主人的忠诚还是对少奶奶的真情,都是值得回顾和吟味的。   关键词:三龙 创作思想 浪漫性和现实性 爱的真谛                                        초 록   20년대 조선의 천재 작가 나도향은 그처럼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일계열의 수작들을 남겼다. 초기의 낭만주의 문학에서 사실주의문학으로 도약하여 비범한 문학적 역량을 과시했다. 이 도약은 주로 후기의 단편 소설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예를 들면《뽕》,《물레방아》,《벙어리.삼룡이》,《지형근》등, 노동자、 농민、상점 판매원、하인등 하층사회 인민의 생활 묘사를 통하여 그들의 불행을 동정하고 착취계급의 추악한 몰골과 사회의 어두움을 폭로했다. 그중에서《벙어리 삼룡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낭만성과 사실성이 결햡한 훌륭한 작품이다. 소설《벙어리 삼룡이》에서 주인공은 못생겼지만 마음이 매우 착한 하인 이다. 늘 새서방의 학대를 받는 새색시에 대한 그의 감정은 처음의 인간적인 동정으로 부터 차츰 사랑으로 변한다. 그 시대 이런 사랑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천방야담에 불과한 것이었다. 삼룡이는 주인집 아들에게 쫓겨난 주인집에 불을 지르고 불속에서 구해 낸 새색시의 품에서 웃음을 머금고 죽어간다. 지금까지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문학적인 가치라든가 예술 특색만 연구 하였는데 작품이 가지는 중요 사회 가치와 현실적 의의는 소홀이 하고 있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소설은 조선 하층인민의 무지몽매를 묘사함 으로써 그 시기 사회 현실과 여자의 비참한 사회 지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사람들 에 하나의 진리를 밝혀 주었다, 즉 진정한 사랑 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다는 것이다. 소설이 “불”을 결말로 한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절정을 이룰 뿐만 아니라 주제를 승화시켰다. 본논문은 《벙어리 삼룡이》의 인물형상분석을 통하여 나도향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한층 넓혀주고 그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분석함으로 써 인간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라든지 새색시에 대한 진정이라 든지 모두 재음미 할 가치가 있다.   키워드: 삼룡이 창작사상 낭만주의문학과 사실주의문학 사랑의 의미   차례 서론.. 4 1. 연구목적 및 의의.. 4 2.연구내용 및 방법.. 5 3. 나도향과 그의 작품세계.. 5 본론.. 6 1. 소설의 경개.. 6 2.인물형상 분석.. 7 2.1.삼룡이.. 7 2.2새색시.. 9 2.3새서방.. 9 3. 나도향 문학의 사실성과 낭만성.. 9 4.사랑의 의미.. 10 5.  '불'의 이중적 의미.. 10 결론.. 11 1. 작품의 주제와 중심갈등.. 11 2. 나도향 문학의 특질.. 11 3. 나도향 문학의 사회적 의의.. 12 감사의 말.. 13 참고문헌.. 14                                            서론 1. 연구목적 및 의의   20년대의 천재 작가 나도향(羅稻香)의 문학사적 평가는 이미 보편화 되고 확고한 성과를 구축했다 할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에서 사실주의 문학으로 도약해서 비범한 문학적 역량을 과시했던 나도향은 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수작들을 남겼다. 최근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유럽 한국학회에서 폴란드의 바르샤바대학 교수 오카레크 최 여사에 의해 밝혀진 바와 같이 나도향의 작품이 북한에서 출판되어 뜻밖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윤식이 “우리 문단에서 추도사를 제일 많이 받은 문인으로는 나도향 오른편에 나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듯이 그는 1920년대 ‘天才 文士’ 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이다. 나도향의 초기작품은 그 치졸함으로 문예사조상 어떤 호칭도 붙이기 어려울 뿐더러 작품이전, 혹은 소설이전이라고 혹평을 받기도 하였고, 센티멘탈의 과잉 또는 감상적 낭만주의 경향으로 일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나도향은 과소평가 되였거나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미완성 이기는 하지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인 탐구를 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 을 발현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일찍 요절한 도향의 작품세계나 경향에 대한 해석이나 논의는 주로 낭만 적 경향과 사실적 경향이라는 문예사조적 측면, 이와 관련된 미학적 성격 내지 사회 학적 측면에서 진행되다가 70,8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방법으로 발전하여 도향 소설의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의 단편소설 『벙어리삼룡이』를 중심으로 한국 문학사에서의 작가적 이미지와 문학 적 가치에 대해 재조명하고자 한다.   첫째, 작가의 작품은 그가 살아온 삶과 유리되어 쓸 수 없는 것임을 염두에 두고 나도향의 생애에서 비롯된 창작사상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둘째, 단편소설 『벙어리삼룡이』에서 표현된 순수한 사랑과 비극적 결말을 중심 으로 소설의 낭만성과 근대의식을 살펴보며 작품이 한국문학에서 지니고 있는 가치 를 재평가하면서, 낭만미학으로서 본 단편소설을 재음미 할 수 있는 근거을 논술 하고자 한다. 나도향에 대한 학자들의 평론문장은 많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다 인정한다. 필자는 작기의 창작사상과 미학적 추구를 다시 발굴하고 천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본과제의 연구를 통하여 나도향에 대한 현대독자들의 인식을 한층 높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김윤식, 『염상섭 연구』, 서울대 출판부, 1987, p.337 ) 2.연구내용 및 방법 나도향은 1925년 《여명》 창간호에 한국 근대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중의 하나인 를 발표하면서 사실주의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본과제는 선인들의 평론과 연구성과를 비롯하여 현유의 재료에 근거하여 나도향의 단편소설 『벙어리삼룡이』의 주요내용과 예술성과를 재조명하려 한다. 3. 나도향과 그의 작품세계 나도향(羅滔香, 1902~1926)은 1902년 서울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 났다. 그의 본명은 경손 (慶孫)이고, 도향은 호이며, 성인이 되어서는 나빈 (羅彬)이라는 필명을 썼다。1902년 출생하여 1926년 요절함으로써 불과 6,7년의 짧은 문학 활동을 하였지만, 20년대 활발한 창작활동을 보여 주었다. 3·1운동 이후 「백조」 동인으로 문단활동을 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중편소설 「청춘」 (1920년 탈고, 1923년 단행본 발간), 장편소설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단편소설 「벙어리삼룡이」  (『여명』,1925.7),「물레방아」 『조선 문단』, 1925.9)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소설30여 편과 수필 · 평론 20여 편을 남기고 있다. 나도향은 물질로 인해 파생되는 인간성의 상실 등 현실과 환경에 의해 변모해 가는 인간 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대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었는데, 그러한 결과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변모되는 인간 속성에 대한 탐구와, 성을 물질과 교환가치로서만 인식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나타났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파의 동인이 된 나도향이 선택할 수 있는 문예사조는 낭만주의였지만, 후기에는 차츰 자성적 객관성을 띠기 시작한다 모두어 말하면 작품들보다도 사실주의에까지 지향해서 도향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다.                          (조동일, 『한국문학 통사5』, 지식산업사, 1988, p.123. )                                              본론 1. 소설의 경개 소설은 '나'라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해서 15년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자의 존재는 비일상적인 삼룡의 행위와 그가 관련된 소설의 스토리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변형된 액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 부분을 제외한 소설의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적 시점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점 통일의 결여성이지만 이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적인 갈등과 사건의 극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이러한 시점의 혼용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은 착취사회에서 돈이 없는 “죄”로 인간 이하의 천대와 모욕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난한 사람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그는 보기 역겨 우리만치 추하게 생긴데다가 귀머거리이고 벙어리이다. 그는 주인을 섬기고 위하는 것이 자기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있으며 마을 아이들이 놀려대고 주인아들놈이 무턱대고 때려도 묵묵히 순종하기만 한다.   그러나 그는 착하고 아름다운 새아씨가 주인아들놈에게 학대를 받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한다. 나중에 새아씨를 비호한 것이《죄》가 되어 죽도록 매를 맞고 쫓겨 나게 되자 마침내 반항에로 나간다. 분노한 삼룡이는 주인집에 불을 지른후 그 속에 뛰어들어 구원을 바라는 주인아들놈을 밀쳐 버리고 새아씨를 구해내오나 심한 화상으로 숨지고만다. 삼룡은 스물 세 살이 되기까지 아직 이성과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해 가을 오생원은 영락한 양반의 딸을 삼만 냥의 거금을 주고 자기 아들과 결혼 을 시킨다. 새색시는 아름다운 외모에 참한 인품을 지녔다. 그러나 새색시는 새서 방으로부터 매일 맞으면서 산다. 삼룡이는 새색시가 왜 맞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 다가 주인 아씨를 동정하게 된다. 삼룡은 어느 날 먹지 않던 술에 만취되어 실컷 얻어맞고 길에 자빠진 어린 주인 을 업어다가 방안에 뉘인다. 새색시는 삼룡의 충직한 마음에 감동하여 비단 헝겊 으로 부시 쌈지 하나를 만들어 준다. 이 비단 쌈지를 본 새서방은 삼룡과 새색시의 관계를 오해한다. 그는 새색시를 마당에 내동댕이 치고 부시 쌈지를 갈갈이 찢는다. 말도 못하고 코가 땅에 닿도록 용서를 빌던 삼룡은 의분이 솟구쳐 새서방을 내어 던지고 새색시를 둘러맨 채 주인 영감에게 달려가서 하소연을 한다. 이튿날 아침 새서방은 삼룡을 채찍으로 마구 때린다. 그때부터 벙어리는 안방 출입이 금지되나 자기의 내면에서 이상한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 어느날 계집 하인으로부터 주인 아씨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삼룡은 안방으로 뛰어들 어 자살하려던 아씨를 말리려 실랑이질 한다. 이 일로 삼룡은 더구나 오해를 사서 어린 주인에게 쇠몽둥이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쫓겨난다. 삼룡은 드디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 라는 사실을 알며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기 역시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날밤 난데없이 오생원의 집이 화염에 쌓인다. 삼룡은 주인을 구한뒤에 새색시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매달리는 새서방을 뿌리친다. 마침내 불길 속에 서 새색시를 구해내나 색시를 땅에 내려놓자 곧 목숨이 끊어진다. 집은 모조리 불타고 그는 새색시 의 무릎위 누워 있었으며 울분은 불과 함께 사라졌는지 그의 입가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엷게 나타나 있었다. 2.인물형상 분석 2.1.삼룡이 →  “벙어리 삼룡이”는 나도향의 초기 경향인 낭만적, 감상적 정신과 “여이발사” 등에서의 자연주의적 객관적 관찰의 정신이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세계 인식은 현실적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불구자로서의 운명과 하인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가지고 있고 아가씨는 아름다운 외모의 정상인으로써 주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어 그 단절은 확고하다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 소설의 낭만적 요소는 삼룡이라는 인물의 설정이다. 즉 삼룡이는 비록 불구이고 보잘것없는 인물이나 그의 혼만은 순결하다. 이는 문학사에 있어 불구자, 혹은 백치의 천진성, 충직성과도 연관된다 하겠다. 앞서 말한 신분적 제약과 신체적 불구의 벽은 소설의 결미에 가서 삼룡의 순결한 사랑에 의해서 그 벽을 없애 버린다. 즉 그의 죽음은 현실적인 醜와 고난의 마침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그 찰나에서 작품이 멈춤으로 인해 낭만성은 더욱 고조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고뇌의 대명사인 삼룡이. 그는‘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여 일어섰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 같이 숨차 보이고 더디어 보인다.’라고 되어 있다. 주인공 삼룡이는 벙어리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못된다. 그러나 그는 착하고 충직하다. 자신의 신분적 굴레를 인정하고 개인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는 박해를 받고 그 박해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으로 통해 그때 사회의 렬근성과 하층인민의 무지몽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하인으로부터 새색시에 대한 학대와 자신에 대한 가혹한 행위에 점차 반항하게 되고 끝내는 주인집에 불을 지르는 인물로 변모해가는 동적 인물이다 어느 한 구석도 사랑스런 구석이 없는, 그야말로 인간으로서는 가장 비참한 모습의 삼룡이이건만 그의 영혼은 너무나 순결하여 결국엔 죽음 앞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 넘어 새색시를 가슴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이, 아니 죽음이 모든 고통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으로서 많은 혜택을 받고 태어난 자신에 감사하며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은 벙어리 삼룡이들을 따뜻한 마음 으로 감싸 주는 새색시 같은 여자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사람이 될것을 다짐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에 너무나 충분하다. 2.1.1사랑을 위해 미친 삼룡이 주인공은 추한 외모에 벙어리이고 보잘 것 없는 하인이지만 영혼만은 순결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이것은 불구자 혹은 백치의 천진성과 충직성을 그래도 보여준다. 이러한 삼룡이가 연모하는 주인 아씨는 신분적 제약과 신체적 불구라는 벽 저편,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러나 삼룡의 순결한 사랑은 이 벽을 없애고야 만다. 불 속에 타 죽고자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주인 아씨를 구해내고,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띈 채' 죽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는 현실적 죽음이 갖는 추(醜)와 고난의 이미지가 없으며, 사랑이 완성되는 짧은 순간으로 나타난다. 이 찰나의 낭만성에서 작품이 멈춤으로써 짙은 낭만성을 가지게 된다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 않는 주인 아들은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가며 주먹으로 허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를 찬다.그러면 벙어리는 어린 것이 철없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 의 무쇠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증하기도 하여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툭 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버린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 하고 참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른 잊어버리었다. 그러 다가도 동넷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 아들이 울고 들어올 때에는 그는 황소같이 날 뛰면서 주인을 위하여 싸웠다. 새색시에 대한 사랑에 빠진 삼룡이는 어떤 날 밤 자던 몸으로 마당 복판에 머리 를 푼채 내동댕이가 쳐지고 온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맞은색시을 보고 의분의 마음이 뻗쳐 올라왔다. 그래서 미친 사자와 같이 뛰어들어가 새서방님을 내어던지 고..새색시를..둘러메었다.. 평소의 삼룡이답지 않은 모습은 진정한 사랑의 힘이 비할 바 없이 위대하다는 진리를 밝혀준다 2.1.2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삼룡이. 삼룡이는 내쫓길 때 “벙어리는 죽은 개 모양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대갈빼기를 개천 구석에 들이박히면서 나가 곤드라졌다가 일어서서 다시 들어오려 할 때에는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음으로는 주인 영감을 찾았 으나 부를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갈 것을 알았다. 그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을 것을 알았다”.이런 대우를 받은 삼룡이는 얼마나 슬픈지 잘 알게 된다.  자신이 지른 불이지만 생명의 위험에 불구하고 제일 먼저 구할 사람이 주인 영감이다. 여기서 매를 맞고 쫓겨나면서도 끝내 불길 속에서 주인 영감을 구해내는 삼룡이의 충직한 성격과 주인에 대한 깊은 감정은 남김없이 드러난다. 보다시피 작가는 삼룡이의 낭만주의적인 형상을 통하여 자본주의사회가 인간을 얼마나 못살게 굴고 모욕하며 학대하는가를 날카롭게 폭로, 비판하 였으며 참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속에서도 가슴 깊이 간직되고 빛을 뿌리는 근로인민들의 깨끗한 양심과 도덕적 우월성을 힘있게 긍정, 확인한있다. 보다시피 삼룡은 입체적 성격의 인물이다. 즉 삼룡에게 있어 주인 아씨는 애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주인의 부당함과 자신의 처지를 일깨우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품의 진행에 다라 점차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각성해 가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방화로 이어진다. 즉 부당한 억압에 대한 복수와 반항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신의 애정을 승화시키는 이중의 의미를 담은 방화이다. 2.2새색시 영락한 양반의 딸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와서 남편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학대를 받는 여인이다. 벙어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만큼 선녀같은 색시는 그렇게 예쁘고 유순하고 얌전하다. 이처럼 인정이 있을뿐만 아니라 사리에도 밝아서 삼룡이를 싫어하지 않고 잘 해 주는 착하디 착한 녀인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의 완미한 여자가 남편에게 매일같이 학대받고 나중에 더러운 누명을 쓰고서도 해명할 길이 없어 끝까지 참고 견디다는 것은 당시 여자의 비천한 사회 지위에서 기인되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안해는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유가사상의 영향으로 반항정서가 결핍한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3새서방 오생원의 삼대 독자로, 버릇이 없고 새색시와 삼룡이에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주인 아들이다. 하인과 여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주인 아들은 그 시대에 일종인물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그 시대의 악습을 철저히 폭로해 낸다.   상기한 인물형상분석에서 알 수 있다싶이 작가는 착취사회에서 학대받 고 유린당하는 근로인민들에 대한 깊은 동정과 사랑, 당대사회에 대한 예 리한 비판과 항거의 정신, 이러한 인민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사상감정을 강한 낭만주의색조와 생활과 인간성격에 대한 간결하고 섬세하며 생동한 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하여 주어지고있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한 특점이다. 3. 나도향 문학의 사실성과 낭만성 기존의 많은 평가들이 나도향의 문학을 이분화시켜서 전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짙은 낭만주의적 경향을 띠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주의로 경도되었다고 주장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향 문학은 사실성을 근간으로 한 낭만주의 성향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총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에서 머슴 삼룡이가 지닌 외모나 신분의 열등 의식은 현실에서 도저히 그 장애를 뛰어넘을 수 없는 운명적 한계로 규정되고 있다. 정당한 이유없이 새색시에 대해 열등감에 휩싸인 새서방의 구박과 냉대를 받는 새색시에 대한 삼룡의 연민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하게 되지만 삼룡이 그것을 현실적 구현 행위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일은 죽음밖에 없다. 삼룡의 주인집 방화 사건은 사전에 치밀하게 주도된 행위가 아닌 순간적 감정의 결과이다. 결국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새서방을 뿌리치고 새색시를 안고 화염 속에서 죽어가는 삼룡이의 개인적인 비극이 인 것이다. 4.사랑의 의미 작가 나도향이 추구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에서 백미를 이룬다, 불구의 벙어리 신분 또한 머슴이라는 천민 출신의 삼룡이, 그런 삼룡이가 보이는 주인에 대한 충직은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 삼룡은 새색시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차츰 눈을 뜨게 되지만 결국 방화로써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가 문학사에 남긴 뚜렷한 발자취는 작가의 명료한 시대 인식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순박한 벙어리 삼룡이의 신분을 뛰어 넘는 새아씨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있다고 불 수 있다. 그것은 흉측한 몰골의 외양을 지닌 삼룡이의 정열과 사랑을 미학적으로 표현한 나도향의 문학 정신과 천재적인 구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룡은 죽음을 통해 자기를 속박해 온 모든 것들로 부터의 해방과 그 해방을 통해서 근원적인 생의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을 통해 참된 삶을 찾는 삼룡이에게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오묘한 신비감이 도는 유머적 낭만 미학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삼룡이의 방화를 통해 새 서방에 대한 간접 살인과 그토록 연모하던 새아씨를 품에 안고 죽음으로써 대담한 자기 구현의 낭만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5.  '불'의 이중적 의미 이 소설에서의 '불'은 여러 가지의 상징성을 띤다. 삼룡이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열정을 불로 비유하여, 언젠가 폭발하게 될 연정이 '휴화산'처럼 잠재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고, 나중에 이 불길은 걷잡을 수 없는 연모의 감정으로 화하고, 그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모든 소멸케 하고자 하는 파괴의 본능이 꿈틀거리게 되며, 드디어 불을 통해 삶을 청산한다. 그러므로 불은 연정과 울분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하겠다. 즉 ‘불’은 무화(無化)를 통한 재생, 죽음을 통한 부활, 불행의 청산을 통한 평화, 슬픔을 사르는 행복 등으로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다. 불을 통해 자신을 억압해 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근원적인 결말 처리 방식은 1920년대 중반 신경향파 문학의 한 조류와도 연관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주, 소작의 관계라는 대립적 구성을 기본으로 살인과 방화로 끝을 맺는 이른바 '살인, 방화 소설'이 유행한 바 있는데 이 작품도 결말은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6.작품의 주제와 중심 갈등 1.1주제: 이 작품의 주제는 크게 ‘신분적 불평등에 대한 항거’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과 죽음을 통한 합일의 희열’, 이 두 가지 측면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신분적 불평등에 대한 항거의 경우에는 중심축의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초점화된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오생원의 집에서 쫓겨난 뒤 불을 지르지만, 그 행동은 계급의식의 각성보다는 인간적 울분의 표현에 가까운 것이고, 삼룡에게 애정을 보였던 주인을 살려 내는 행위는 삼룡이가 그토록 바라는 것은 인간적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의 주제는 사랑을 포함한 인간적 삶의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1.2 중심 갈등: 1.2.1 내적 갈등: 몹시 애상의 정서가 그의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한 번이라도 아씨를 뵈올 수가 있으면 하는 마음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넋은 느끼기를 시작하였다. 센티멘틀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것과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1.2.2 외적 갈등: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굴을 몹시 얻어맞아서 한쪽 뺨이 눈을 얼러서 피가 나고 주먹같이 부었다. 그 때릴 적에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측한 벙어리 같으니, 내 여편네를 건드려!” 하고 부시 쌈지를 빼앗아 갈가리 찢어서 뒷간에 던졌다. 주인 아들의 오해와 학대로 터무니없는 억눌림을 당하게 된다. 2. 나도향 문학의 특질 낭만성과 사실성의 경계를 중심으로 살펴본 나도향의 문학의 특질과 작가적 개성을 결론적으로 살펴본다면 도향의 단편들은 네개 특점이 있다. 첫째,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 성향과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간적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둘째,등장인물의 개성과 성격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역사와 행위의 동기가 꾸준히 대중의 호기심과 정시를 자극한다. 셋째, 사건의 극단성을 들 수가 있는데 에서 보이는 결말 부분의 방화나 에서 보이는 근친 살인 등의 반전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넷째, 나도향이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인물들의 개성과 사건, 배경, 동기 등이 어우러져 창출한 소설 미학의 독창성과 입체성이다. 여하튼 도향이 초기에 낭만주의로 출발하다가 후기에는 사실주의로 극단에서 극단으로 비약한 데는 자신이 갖는 작가적 기질에서보다, 낭만주의가 소설 문학에는 부적당하다는 점에서 와, 당시의 문학적 사조가 일변된 것에 순응하기 위한 것이 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 론   나도향의 문학 세계를 결산하는 데 있어서 그 문학적 가치의 우열을 논하기 보다도 그의 작가 수업을 통한 작풍의 비약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문학은 앞으로 더욱 새로운 각광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점쳐 본다. 보다시피 나도향의 소설은 초기의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에서 후기에 이르면 대상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변모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를 기조로 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기법과 정신이 공존하는 나도향의 후기 소설이 지닌 특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벙어리의 운명과 맹목적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입체적인 성격 창조와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개를 통한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 정신과 사실주의적 기법이 종합된 이러한 성취는 '불'이라는 적절한 상징적 장치의 사용과 더불어 이 작품을 나도향의 대표적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방화(防火)를 저지르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즉, 삼룡이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하인으로 전형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발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들어 고결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죽음에 의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예속적인 관계가 청산되는 극한적 결말 처리 방법이다. '불'과 '죽음'에 의한 종결은 당대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 처리 방식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를 계급 의식의 고취라는 도식적(圖式的)인 주제로 확대시키지 않은 점이다. 방화와 죽음이라는 결말 처리 방식이 신경향파의 소설과 유사한 것일 뿐이지, 결코 그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삼룡이가 주인 아씨를 안은 채 웃으면서 죽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한 순간이나마 이루는 결말 처리는 이 작품을 낭만적인 소설로 읽히게 하는 것이다.  나도향에게 이 작품은 초기의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실한 애정과 그것이 주는 인간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모두어 말하면 바보 스러운 외면 속에 숨겨진 진실성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일종의 '바보 문학'인 셈인데, 바보스러움은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취해지는 일종의 이면적(裏面的) 공략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소설은 이색적인 것이 되었다.  [출처] 벙어리 삼룡이|작성자 철앤서 감사의 말   논문집필 과정에서 최균선 선생님의 사심없는 지도를 받아 순리롭게 완성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 기본자료 1. 주종연 외 엮음, 『나도향 전집 상 · 하』, 집문당, 1988. 2. 나도향, 『환희』, 소담출판사, 1996. 3. M.S. 까간, 진중권 옮김, 『미학강의 I』, 샛길, 1989. 4. J.Salsby, 박찬길 역, 『낭만적 사랑과 사회』, 민음사, 1985. 5. 김윤식, 『염상섭 연구』, 서울대 출판부, 1987. 6. 김학동, 「한국 낭만주의의 성립」,『문예사조』, 문학과 지성사, 1986. 7. 박상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신경향파』, 소명출판, 2000. 8. 이재선, 『한국단편소설연구』, 일조각, 1975, 9. 이재선, 『한국현대소설사』, 홍성사, 1986. 10. 정호웅외, 『장편소설로 보는 민족문학사』, 열음사, 1993. 11. 구인환, 『한국 근대 소설 연구』, 삼영사, 1977. 12. 김상일, 「나도향 해설」, 『나도향 단편선』, 을유문화사, 1973 ※ 논문 1. 곽순애, 『1920년대 전반기 소설의 현실인식 방법연구-김동인 ,나도향, 2. 염상섭, 현 진건의 소설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박사논문, 2002. 3. 김경희, 『나도향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논문, 1977. 4. 김지희, 『나도향 중 · 장편 소설연구』, 상명대학교 석사논문, 1998. 5. 김충실, 『나도향 작품연구』, 경희대학교 석사논문, 1982. 6.남기홍, 『나도향 문학의 전기적 고찰』, 인하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211    한국어계 본과생 졸업논문집 (참고용) 댓글:  조회:8674  추천:0  2013-01-23
    한국어를 배우는 전국 각지 본과생 여러분께 산동성 청도시 빈해학원 동방언어학원 2010년 졸업생, 2011년도 졸업생들의 일부 논문을 묶어서 여기에 올리니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널리 이용해 주시기 바람니다.                        편자 :  최 균 선
210    (단편소설) 세우지 못한 비석 댓글:  조회:2559  추천:0  2013-01-23
                                        세우지 못한 비석                                                    최 균 필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십여년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지산소에 비석을 세워 불효자식의 때늦은 죄책감을 다소나마 덜기도 하고 영원을 기하려는 심정으로 백사불구하고 귀향길에 올랐던것이다. 고향마을로 가는 마지막 뻐스를 탔을 때는 해볕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누렇게 익어 고개숙인 탐스러운 벼이삭들이 땅꺼지게 실린 논밭이며 오동통 살진 아기를 두세개씩 업고 있는 무성한 옥수수밭들, 양지바른쪽 과수원에 사과들이 가지가 휘여지게 주렁주렁 달려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촌의 풍요로운 모습은 농사군의 아들인 그에게는 마냥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였다. 농민들이 잘 살게된 세상, 농촌이 풍요해야 시내월급쟁이도 밥상걱정 없이 살터이니 말이다. 앞마을에서 한무리 한족사람들이 내리고난 뻐스안은 휑뎅그레했다. 옛날엔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구작작 내리던 조선아낙네들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얼굴의 로인몇이 마을어구에서 내렸다. 뒷산은 그대로 번들이마를 자랑하고 있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울퉁불퉁 달구지길 그대로 누워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철수는 한숨을 토했다     중학교 시절에 심은 길가의 백양나무, 수양버들이 인제는 바람잡는 거목으로 자라나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있었다. 우수수 락엽이 스치는 바람에 흩날린다. 갑자기 그는 자기 마음도 락엽처럼 황이 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외할머니네집은 몇십년전 초급합작사때 지은 초가집이다. 오래동안 손질하지 않아서 헌삿갓을 눌러쓴듯 지붕은 축처져있었고 밭고랑이 패여있었다. 네기둥이 땅속으로 잦아들 면서 벽체도 기울어지고 있었다. 낯모를 손님이 들어서자 검둥개가 컹컹 짖어댔다. 개짖는 소리에 정주문이 삐걱 열리더니 외할머니가 힘겹게 문설주에 기대여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짐짝을 든채로 달려가 금방 넘어질듯 문턱을 넘어서는 외할머니를 와락 부등키였다. 나를 업어키운 외할머니의 여윈 어깨가 가냘프게 떨고있었다. 아들 며느리 모두 한국에 돈벌러 나가고 집에서 손자 뒷바라지를 하는 외할머니는 몹시 지쳐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이렇게 되여지도록 무심했던 자신의 죄책감에 할말을 잃었다.     외할머니는 자리에 앉으면서부터“이거 어디 분통이 터져서…”하면서 푸념부터 늘여놓았다. 사연을 듣고보니 정말 주먹이 쥐여졌다. 마을에는 문화혁명때 우쭐렁 거리던 방길만이라는 개포수가 있었다. 몇년전부터 현성에 들어가서 개장집을 꾸리고 얼렁뚱땅해서 돈깨나 쥐였다는 방길만이가 한국에 로무나간 나의 사촌형을 전화로 구슬려서 도맡은 과수원을 한족사람에게 팔아넘겼다는것이였다.     외할머니네집 혼자만 당하는 일이 아니였다. 압록강을 건너서 산설고 물설은 이 료하벌에 괴나리보짐을 내려놓은 조상들이 망국노의 설음을 짓씹어삼키며 수렁땅에 한뙈기 한뙈기 피땀으로 일궈놓은 수전이 야금야금 중국사람들의 손으로 녹아 들어 간다는것이다. 아무 미련도 없이 조상님들이 물려준 땅을 한족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고 고향을 훌쩍 떠나간 얼빠진 마을사람이 미워났다. 촌장도 눈이 멀었거니와 촌간부들은 어느 구석에서 마작판에 갇혔는지 바야흐로 무너져가는 마을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앞마을에 한족사람들은 새 농촌건설에 열의충천하여 벽돌집을 짓는다. 세멘트 길을 닦는다 온마을이 야단법석인데 여기 조선족마을은 초상난집처럼 한산했다. 하긴 고향마을에 동전한잎 보태주지 않는 놈이 괜스레 야단이니 제절로도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대학을 나와서 대도시에 배치받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백평도 넘는 아파트에서 근심걱정 없이 제멋에 살면서 언제 어느때 한번 고향생각이나 했던가? 고작해서 제아비산소에 비석을 세워 효자얼굴이나 빛내자고한 놈이 무슨 발언권이 있어 이러쿵 저러쿵 하는가 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개포수가 한족사람 두셋을 데리고 마을에 들어섰다. 한국에 로무로 나간다고 수속을 마친 김국철이를 찾아온것이다. 땅을 촌정부에 들여 놓으면 한정이 없다고 자기에게 팔라고 몇번이나 찾아와 구슬렸던것이다. 눈껍쩍하면 한국행 비행기표값 공떨어지는 꿩먹고 알먹기라고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국철이의 마음이 동하는듯 하자 소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며 자기 야마하 오토바이에 국철이를 달고 현성으로 올라갔다.     물론 자기네 개장집에 모셨다. 개내포, 개혀…말짱 개고기붙이로 한상 떡버러 지게 차려놓고 따끈한 술잔을 마주하니 마음이 둥둥 떴다. 도깨비장물을 꿀꺽꿀꺽 넘기며 무어라 자꾸 씨벌거리는 한족친구의 입을 건너다 보며 주판알을 튕기였다.      국철이는 논이 한쌍반이 있었다. 개포수는 한쌍에 4000원, 10년기한. 현금은 일식지불 6만원, 중도에 파약하는 경우 벌금 50% 배상조항이 쓰인 계약서를 내놓 았다. 땅거래 해먹은 방길만이는 국철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삶아놓았다. 술상가운데 놓여있는 인민페 여섯묶음에 국철는 눈이 홱뒤집혔는지 군말없이 지장을 꾹찍고 돈을 챙겼다. 난생처음으로 만져보는 돈뭉치이라. 방길만이는 국철이를 쫓다싶이 돌려보내 고는 돌아 앉아서 절강사람한테 한쌍에 6천원씩 받고 넘겨주었다. 그는 쥐도새도 모르게 해먹었다싶어 수염을 뻑 씻었다.     국철이가 한국으로 떠나기 며칠전에 방길만이와 마을에 왔던 왕씨가 찾아왔다. 왕씨는 조용한 길모퉁이에서 자기는 농사군이 아니라는것, 그날 얼굴이나 빌려주고 계약서를 만들어주었다고 실토정을 했다. 방길만이는 량심없이 거간돈을 혼자 챙기고 자기에게는 인삼패 담배 두어보루를 사주더라는것이였다. 자기는 인젠 손을 싹 씻겠 다면서 량심을 속일수 없어 알려주니 용서해달라며 죄지은 놈처럼 굽썩하고는 휭하니 가버렸다.     국철이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참 세상이 변해도 더럽게도 번져있구나. 한때 형님 동생하면서 한마을에서 큰가마밥을 먹고 살았는데 우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돌까지 던져넣을수 있단말인가. 국철이는 씩씩 황소숨을 몰아 쉬며 단걸음에 촌장을 찾아가 시비를 캐달라고 하였다.     “씨팔것들, 언제는 제좋아서 개장국물까지 얻어 처먹고 와서는 날보고 어쩌란 말인가. 서울판에 가서 봉창이나 콱해라.” 이렇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면서 촌장은 귀찮다는듯 씽 나가버렸다. 국철이는 스스로 함정에 뛰여든지라 더 어쩌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사람 이 너무 고지식하면 남이 머리우에 올라 똥싼단 말이 있다. 국철이는 길만이가 괘씸했지만 다 쑤어놓은 죽을 밥으로 만들 용빼는 수가 없었다.     흰종이에 배상금 50%라는 검은 글씨가 적혀 있으니 벙어리 랭가슴 앓듯 자신만 원망스러워졌다. 한국으로 떠나면서 ‘(너같은 토비가 촌장질 하기에 이 조선마을이 망한다 망해. 벼락이나 맞고 뒈져라.)하고 듣지 못하는 욕만해댔다. 그렇게 자기의 보금자리를 내버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어찌 한사람뿐이랴.     개포수가 한족사람들에게 땅을 되넘기치기를 한다는것을 촌장은 알면서도 단속하지 못했다. 먹은 놈이 똥을 싼다고 방길만이는 마을에 들어와 땅거래를 할때 마다 집짓는데 보태쓰라고 만원, 아들이 장가를 간다해서 몇천원씩 남몰래 쥐여주었 던것이다.     마을은 스산할대로 스산해졌지만 촌장은 마을복권에 번듯한 벽돌집을 짓고있었다. 큰 간부는 크게 해먹고 배탈이나서 영창에 끌려가고 부스러기 촌간부는 농민들의 땅에서 고혈 을 짜내는 이 세월에 조선족마을은 무너지고있었다. 글읽는 소리 랑랑 하던 소학교가 문을 닫고 운동장이 염소, 돼지, 게사니 놀이터가 되였으니 어찌 가슴 이 아프지 않으랴. 나는 무심결에 책상우에 내버린 어린 조카의 작문책을 뒤져보다가 눈물을 쏟고말았다.                              봄은 왔건만   강남제비 학교 처마밑에 집을 지었어요. 제비는 둥지 틀지만 학교는 문을 닫았어요 땡땡 상학종 울리던 우리 학교 페교된대요 단발머리 우리 선생님도 떠나간대요.   뒷산에 울긋불긋 핀 진달래 한아름 꺽어 선생님께 드리던 봄놀이가 눈에 삼삼해요. 꽁다리연필도 나누어 쓰던 우리 교실 웃음도 노래도 사라지고 문을 닫는대요   정다움던 학교 문닫으니 운동장도 싫어졌요 진달래도 보기 싫고 공부하기도 재미없어요 누나같던 우리 선생님 떠나시던 날 마을친구들 눈물로 길을 적셨어요   선생님 우릴 두고 어딜 가나요 가지 말아요 우리 모두 공부 잘해 선생님 기쁘게 할래요 선생님 팔목에 치마자락에 동동 매달렸어요 선생님도 울고 우리도 울었어요   고향땅 버리고 한국간 엄마야, 아빠야 난 멋진 옷도 싫어요. 개도 안먹는 돈도 싫어요 우리 선생님 누나선생님 빨리 찾아와라 산에 들에 들으라고 소리쳤어요.        어린 조카의 작문지는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학교가 페교되고나서 고개넘어 한 족학교에 다니게 되였지만 한족말을 못해서 새 선생님에게 꾸지람듣고 머리 큰 한족애들이 업신여겨서 무리싸움하고 코피가 터져 집에 돌아오는 어린 학생들은 학 교를 죽어라 안가고 염소무리만 쫓아다닌단다 저애들이 철없이 보내는 세월도 잠간 이리니 커서 셈이들면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는지…     슬금슬금 기여드는 한족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우리 조선족들이 떠도는 집시가 될 날이 과연 오고야 마는것일가? 무너진 고향, 슬프게 사라지는 고향, 아서라, 돌비석을 세운들 구천에 아버지가 고향땅을 지켜줄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묘를 파헤쳐 박스에 해골을 담아메고 고향을 떠났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골회를 강물에 띄워보냈다. 넋이라도 물결 따라 고국산천에 가게 하고싶었던것이다.                                                                                                                  2008. 2. 7   (청도에서)                                                                                                                        
209    (단편소설) 아버지의 소원 댓글:  조회:11193  추천:4  2013-01-19
                            아버지의 소원                                      최 균 필                                                   1            오늘도 아버지는 간편한 운동복차림에 태양모를 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환갑이 래일모레인 아버지가 열심히 아침달리기를 시작한것은 두달전이였다. 그래서 인지 별스레 저녁마다 기상예보는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보시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어떤 날에는 낚시가방에 도시락까지 챙겨가지고 다니셨다. 아버지가 심기 편해서 하고싶은 일을 하시는데는 식구들이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애 해련이가 야외활동에 갔다와서는 늘 재잘거리던 참새입이 한발이나 되여있었다. 애에미가 웬일인가고 물어보아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다가 느닷없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 난 래일부터 다른 학교에 전학할래요 우리반 애들이 나를 마루탠스 (马路天使)손녀라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놀려대요》 《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냐?》     애어머니는 금시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서 다급히 물었다. 《정말이예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왔다면서 왜 길바닥을 쓰는 일을 하나요? 아직도 돈을 더 모아야 하나요?》      어린애의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엄마, 할아버지가 누런 쪼끼를 입고 공원거리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길을 쓰는 걸 제가 직접 보았단 말이예요, 애들도 알아보고 수군거렸어요. 아이, 창피해!》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늘 종달새처럼 은방울을 굴리더 죄꼬만 입에서 뚱딴지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자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할말을 찾지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두달간 나는 아버지가 아침운동을 하러 다닌다기에 “한 백살 앉 으세요”하고 은근히 축원까지 하였는데 아버지가 길바닥을 쓸다니?세상에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남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늙은 애비를 거리에 내쫓아 길을 쓸게 하지  못할것인데 이게 무슨 괴변인가?     나는 오리무중에 빠져들면서도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번져간다는 예감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해났다. 이제까지 고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나로서는 고생을 사서 하는 아버지가 전혀 리해되지 않았다.    《여보, 일의 내막을 알아보기전에는 아무것도 모른체 합시다. 해련아, 너도 까딱 말하지 말아야 돼, 알겠니?》이렇게 다짐장을 눌러두고 서재에 들어가 피울줄 모르는 담배를 두대나 태우면서 이 두달 동안의 아버지의 행각을 추적해보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매달 로임을 타면 아버지에게 꼬박꼬박 500원씩 소비돈을 드리였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소비돈이 모자라서 청결대에서 부업을 하다면 우리가 돈을 더 드 리면 될일이지만 마작도판도 모르고 담배도 끊으신 아버지가 그럴리 없었다. 점잖은 아버지가 생각없이 행동해서 자식의 얼굴을 깎는 일을 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 다면 아버지는 우리 몰래 무언가 작정하시고 “돈벌이”를 하시는게 분명하였다. 그게 무어길래 아들며느리의 눈마저 속이려드는것일가?     평시 아버지는 아침운동을 하고 간이음식점에서 기름튀기 두어개에 콩물로 아침 을 에때우고 낚시질하러 가신다고 하면서 보통 집에서 아침을 들지 않았다. 이제보니 며느리의 부담을 덜어주느라고 그런 연극을 노시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더없이 민망스러웠다. 자식은 그냥 사랑나무의 곁가지에 불과한것일가?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낚시질을 하셨다는 분이 아침에 입고나간 운동복에 더러 워진곳 하나 없었고 쇠치네 한마리 없이 그냥 마른 낚시주머니만 달랑 들고 들어 오셨다. 옛날 동북에서는 줄낚시에 반두까지 떠서 강물에 고기를 씨를 말린다는 소리 도 듣던 아버지의 솜씨에 죽은 고기 하나도 걸리지 않는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아침 달리기를 하면 집주위에서 해도 되겠는데 하필이면 자전거를 타고 공원거리에 가서 하신다고 한다. 그 모든것에 주의를 돌리지 못한 나도 한심하다. 그 수수께끼가 오늘 우습게 풀리면서 가슴에 유감과 아픔이 주렁주렁 맺혔다.     하여간 신체단련이나 하시고 소일거리로 낚시질을 하는것이지 식탁에 반찬깨나 보태자고 하는 일도 아니니 무심하게 지나쳤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강 줄거리를 세워보고나서 식구들과 무언극을 벌리면서 며칠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기다리던 일요일이 돌아와자 옆집에 자전거를 빌려타고 아침단련을 나가신다는 아버지를 미행했다. 해련이 말대로 정말 길바닥을 쓰는 아버지의 모습이 확인된다면 어쩌지? 하는 근심에 페달마저 천근같이 무거워났다.     해련이가 헛본것이나 되였으면, 그리고 아버지가 젊은이들처럼 열심히 달리는 강건한 모습을 보았으면 우리 마음속에 비구름이 싹 가시련만…하는 마음으로 요행에 턱걸이를 하고있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가 아버지는 아빠트구역을 벗어나 리촌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공원거리를 벗어나 골목어귀에 있는 허술한 신수리부 옆에 자전거 를 세우더니 노동복에 누런 조끼를 받쳐입더니 신수리부뒤에서 커다란 참대비자루를 꺼내들고 천연덕스레 큰 길을 쓱쓱 쓸어나기시작했다.     환갑나이가 코앞이지만 노망 쓸 나이는 아니다.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이 청도에 모이고 그런 자식들을 따라와서 만년에 복을 누리는 조선족들이 20만도 더 되지만 이런 창피스러운 일을 하시는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나의 요행심리는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졌고 그 밑에서 나의 문드러진 체신과 자존심이 버둥거렸다.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비자루를 분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명치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한평생 아글타글 아들을 대학공부를 시켜서 당당한 공무원으로 만들고 자가용을 굴리며 내노라하는데 이건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명에 없는 호강을 누리는것도 아니고 아무리 일에 전 인생이라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동료들이 알면 나를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뒤소리를 할것이니 생각만해도 얼굴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다고 고향마을에서 아버지와 이웃으로 절친하게 지내던 낯 익은 아저씨가 내버려도 주어갈 사람이 없을만큼 형편없는 자전거를 타고 오더니 신 수리부에 척 들어앉지 않는가. 우리 아버지는 최덕보라 하고 그 아저씨는 최덕팔이라 하지만 본이 달라서 사돈에 팔촌도 아니다. 그러나 공교롭게 이름자도 비슷하고 해서 모르는 사람은 친형제로 오해할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세월의 소 용돌이속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오늘까지 붙어다니였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참군했다가 퇴오한후 흥안령기슭에 있는 군마창에 배치되여 월급쟁이가 되였다. 그 덕에 고향마을 원근에서 손꼽는 미인이였던 어머니에게 장가 들어 우리 남매들을 낳았다. 덕팔아저씨도 그때쯤 가정을 이루고 생산대장을 하면서 부지런한 농군으로 인생을 영위했다. 두사람은 자식을 낳기전부터 아들딸을 낳으면 사돈을 맺자고 약속까지 한 사이였다. 그런데 두 집에서 다 대포를 찬 놈들이 태여나 는바람에 사돈간은 웃음거리로 남고 분김에 아예 결의형제를 맺았단다.     고향마을 사람들은 거개 일본놈들의 이른바 개척민으로 이 땅에 오게된 사람들의 후손들이였다. 그러다보니 동성동본은 별로 없고 성씨가 같은 집이 여러호 있었다. 생일이 조금 늦은 덕팔아저씨는 동생이 되였다고 한다.  두분의 우정이야 어찌되였든 나는 눈앞에 벌어진 일에 신경이 쓰이며 속이 왈칵 뒤집혀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저만치 멀어지자 덕팔아버지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불쑥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     《아니? 늬 룡호아닝겨? 간부어른이 이 아침에 웬 걸음인기여?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 아저씨는 반색하면서도 무슨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저으기 불안해 하는 얼굴이였다.    《아저씨네도 이 청도에 와서 살게되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인차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참, 한국에 나가시여 돈도 잘벌었다는 소식을 풍편에 들은것 같은데요. 그런데 어찌하여 신수리를 하나요? 》 《말두 말게나. 내일은 말할라치면 장편소설이 될기여, 8년을 불법체류자로 있으면 서 돈깨나 벌었지만 운수가 꺼벅거려서 나중에 공사장에서 부상입고 이렇게 절를발이 빙신이 되고 수지도 않맞는 신수리를 하는 신세가 되였당께. 아따 그런데 인제 과장님도 되였다꼬 자가용까지 타고다닌다면서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능교? 아버지는 잘 있능겨?》     제법 능청을 떠시는 덕팔아저씨의 얼굴엔 불안과 의혹이 물결치고 있었다. 《예. 잘 계셔요. 근데 아저씨는 로인협회에 다니면서 마작이나 노시고 문구나 치면서 향수해야 할 년세에 이게 웬 고생이십니까?》     아저씨는 대답을 하기 싫은지 흐릿한 하늘을 쳐다보시며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연한지 분명 말못할 사연이 있을것 같았다. 아저씨의 곡절많은 인생에도 찬란한 한페지가 있었다. 원근에 소문난 힘장수인 그는 해마다 씨름판에서 황소를 타던 분이였다. 그러던 아저씨가 세월과의 씨름에서는 맥꼴없이 지레 패배한듯 너무 조로한 모습에 가슴이 알찌근해났다.     하긴 아저씨만 불쌍한게 아니다. 지금 길바닥을 쓸고있는 아버지도 한국로무 10년을 인생고해를 헤쳐온 고달픈 “선장”이 아닌가? 수십만을 헤아리는 조선족 남녀 동포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있다는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가히 상상할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을 하든간에 개도 안먹는 그 돈때문에 온갖 기시와 홀대를 받으면서 고역을 겪어야 하는 처지이다. 아저씨가 벽돌장을 등에 지고 가파로운 발판 을 오를때 삼킨 눈물인들 얼마며 흘린 땀인들 얼마였으랴,     더구나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으면 뼈빠지게 일해도 돈을 받지 못하기가 일쑤이고 녀자들은 릉욕당해도 그 돈때문에 그냥 당하고마는 경우가 푸술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눈물에 젖은 돈인줄 모글고 그냥 덕대에서 내려온 뭉치돈인가 할수도 있다. 그러나 울며겨자먹기로 코리아드림에 넋을 잃은 사람들의 그 모순된 심정을 어찌 나혼자의 주관판단으로 가늠할수 있으랴,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드디어 입을 여시였다.    《참, 나 팔자가 드러워서. 나도 본래는 이런 신수리쟁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어, 근데 늬 아버지가 이런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우격다짐해서 이런 꽃 가마에 들어앉았지 뭐냐? 》   덕팔아저씨는 불만아닌 불평을 한숨에 버무려 토해냈다.  《우리 아버지는 아침운동도 하시고 낚시질에 재미를 보는데 아저씨는 잔돈 버는 재미를 보는것 같군요》     나는 짐짓 모른체 하고 변죽을 쳤다. 그러자 덕팔아저씨는 성난듯이 구시렁거리 다가 마침내 실토정을 했다.  《룡남이 늬 지금 모르고 하는 소린디, 사실 말이야, 우리 다 계획이 있고 시작한 일인거야, 하긴 몇날 며칠 목에 피대를 세우며 다투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우린말야 고향갈 채비로 이렇게 푼돈벌이라도 한당께, 자네 모르는 모양인데 늬 아버지 저 기서 지금 길청소를 하고 있지 않나뵈? 》     덕팔아저씨는 턱짓으로 저 멀리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고향에 돌아가다니요? 공기좋은 청도에서 손자손녀를 돌보며 만년을 편안히 보내는게 오죽 좋으셔서 그럽니까? 저희 아버지가 그래요? 고향가신다고? 고향얘기 는 가끔씩 하셔도 고향에 가시겠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요》    《이런 젠장, 늬 아버지 제아들도 속였단말인겨? 그러게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릴 하고 앉았구먼, 우리 고향가서 목장사업 한번 해보자꼬 약속한기여, 자네 정말 몰랐는기여? 시방? 한국에 못사는 사람들 소꼬리 구경도 못하고 산다네. 잘사는 사 람들도 가물에 콩싹나듯이 큰맘 먹고 사치를 부린다네. 나 말야, 자네 아버지서껀 고향가서 목장 한번 본때나게 꾸려놓고 소꼬리 한국에 수출할라꼬,그래서 푼전 이라도 보탤락꼬 이 짓을 시작했지 뭐야,》    《그런 셈판이였군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언제부터 길바닥을 쓸었는가요?》  《이런, 귀신곡할 노릇있나, 자네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의 동의를 얻어서 시작한 걸로 아는데, 그래서 대학문을 나온 놈이여서 인정사정 다 안다고 칭찬했는디…》    《이런 내막 감감 몰랐습니다. 그저 아침달리기를 한다니까 그런줄로만 믿었 지요. 아버지두 참,》나는 우거지상이 되여 목소리를 낮추었다.    《응 그런 일이였군, 늬아버지와 난 말이네 대구에서 백리가량 떨어진 가야산 기슭에 있는 거창소목장에서 한 5년 같이 일했다네. 깊은 산골이여서 불법체류자가 숨어살기로는 제격이였네. 평생 소궁둥이 두드리면 산지라 하는 일도 재미났고, 》     덕파아저씨는 하던 일감을 밀어놓더니 이야기주머니를 풀 잡도리였다.     …동북지구에서 한국에 나간 사람들 거개가 호미대학 출신들인지라 건설현장이나 어장이나 목축장 같은데서 말등 일을 하기가 보통이였다. 고국이라고 허위단심 찾아 가서 돈보따리 챙길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꿈이 너무 알락달락 했다. 그래서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고 인정미가 말라버린 못살곳이라고 욕사발 퍼붓는다.     가지고 간 웅담이랑 록태랑 선물받은 친척들이 입이 반색했지만 그때뿐, 괜히 지들에게 부담이 될가봐 차차 멀리하더라는것이였다. 고리대로 수만원을 내메치고 갔는데 진짜 생각해주는 친척도 없고해서 혼자 여기저기 노가다판에서 개돼지 소리를 들으며 피땀을 흘렸다.     그는 제 뚝힘을 믿고 한국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피하는 일을 하다가 그만 사고가 나서 다리를 상하게 되였다. 오고갈데가 없게 된 덕팔아저씨의 사정을 안 아버지가 목장의 사장에게 사정하여 함께 일하도록 주선해주어 함께 끓여먹으며 5년 세월을 형제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덕팔아저씨는 불법체류자신고를 내고 먼저 귀국하였다.     덕팔아저씨의 고생담을 마음에 새기니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났다. 아버지의 피땀에 절은 돈으로 명문대학을 나와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였고 아빠트도 사놓고 승용차까지 굴리면서 제잘난듯 살고있는 자신을 다시 한번 질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 철부지인 해련이마저 손바닥만한 얼굴이 깎인다고 할아버지가 하는 일에 입이 한발이나 나와 있으니 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가?      아버지가 아침마다 쓸어놓은 공원거리에 자가용을 굴리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였고 아이러니였다. 하느님이 내려다보고 코웃음칠 일이요 황천에 계시는 어머니의 빈축을 살 일이였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더 듣고 앉을수가 없었다. 나는 상점에서 맥주병이랑 통졸임이랑 가득 사서 덕팔아저씨에게 건네고 자리를 떴다.    《아버지에게는 제가 왔다갔다는 말 잠시 하지 마세요. 두분을 보기가 부끄럽 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의 뜻을 이제 더 잘 알았습니다. 》     심한 자책감에 뜨거워진 얼굴을 돌리며 나는 자전거를 밀고 터벅터벅 걸었다. 아스팔드길우에 보이지 않지만 자국마다에 착잡해진 내마음이 찍히고 있었다.                                                                         2.     아버지는 인생의 초년에는 그래도 행운아였다. 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한 이듬해 군대모집에 합격한것이였다. 전공사에 참군지원자들이 수십명이였는데 경쟁을 이기고 마을처녀들의 흠모의 눈길을 받으며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의 배낭에는 공개 할수 없는 많은 비밀들이 들어있었다. 딸을 둔 집집마다에서 우리 아버지를 사위감 으로 찍어놓고 은근히 벼르고들 있었던것이다.     그 시절, 참군하려면 3대에 이르기까지 성분이 좋아야 하였다. 빈하중농에서도 극빈이였던 우리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인지라 거칠것 없었다. 그즈음 웃음거리가 하나 있었다. 마을에서 내노라하던 덕보와 덕칠이라는 두 젊은이가 입오신청서를 내고 은근히 경쟁을 불태우고 있었다. 덕팔이도 가정성분에 나무릴데 없고 허우대가 훤칠해서 징병을 책임진 군관의 첫눈에 들었단다. 어디서 소문이 새였는지 눈치빠른 집들에서는 딸을 덕팔에게 주려고 서로 다투어 중매군을 띄우는 판이였다.     아버지는 신청해놓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속셈을 해두고는 속이 든든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신체검사를 하던 날 아버지는 무사통과되였는데 소문난 잔치 먹을게 없다는 격으로 자신만만하던 덕팔이는 평평족이여서 미역국을 먹게 되였던것이다. 당장 군인가족이 된듯싶어 떡치고 닭잡고 야단법석을 치던 덜팔이네는 락담실망했다.     이튿날 공사 무장부간사와 징병온 군관이 덕팔이네 집을 지나쳐 덕보네 집을 찾아오자 마을이 들썽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원래 되여도 좋고 안되여도 좋다는 뱃심 을 가지고 있던차라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흥안령변방부대에서 3년간 복무하고 퇴대하여 흑하군마창에 배치받았다. 조상대대로 땅을 뚜지고 살던 농사군의 집안에 국록을 타먹는 사람이 나왔으니 마을사람들이 부러워할만도 하였다.     아버지가 취직한 군마창은 원래 일본관동군 기병대의 병영이였다. 그래서 군마 사양실은 철갑모를 줄지어 엎어놓은것같은 구조였다. 그 당시 값으로 해방패자동차 한대와 맞먹는다는 종자말들은 매일 좁쌀에 홍당무우를 먹였다. 아버지는 손에 선 일 이였지만 열심히 일하였다. 월급쟁이가 된 아버지는 저마다 눈독을 들이던 마을에 일 등 미인에게 장가들어 군마창에 새살림을 꾸렸고 거기서 내가 태어났던것이다.     몇해후 내가 학교갈 나이가 가까워오자 아버지는 한족사람들 천지인 흥안령 골짜 기에서 하나 아들을 한족아이로 키우는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월급봉투를 던져버리고 지구를 수리하려 마을로 돌아오고말았단다. 마을사람들은 어렵사리 얻은 철밥통을 제발로 차던진 아버지를 두고 뒤공론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오리는 오리무리를 따라야 한다며 후론이야 여하튼 죄다 귀등으로 흘려버렸다.      그러나 제일 기뻐한것은 덕팔이였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친구가 남모르게 반 가웠던것이다. 생산대에서는 아버지가 농사일에는 숙맥이라고 양돈장사양원을 시켰다. 무슨 일을 하나 직심인 아버지는 아무 군말이 없이 맡은 일에 열심하도 했다. 그러나 농사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건달농사군취급을 하였다.     남들이야 콩팔칠팔 하든말든 아버지는 돼지죽을 끓인다 돼지불을 깐다, 씨붙임을 시니킨다 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군대까지 갖다온 놈이 결국 이노릇 밖에 못하는 신세가 되였다고 깨고소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술 더 뜨는 식으로 생산대장인 덕팔에게 두방을 차리자고 건의했다. 두부팔아 푼돈을 벌고 사료도 해결하는 일거량득인지라 덕팔이는 대찬성이였다.    물론 처음으로 집체두부방을 차리자니 곤난이 많았다. 다행히 이웃 한족말을의 인심고운 생산대장이 기술자를 파견하여 두부방도 꾸려주고 가마도 걸어주고 기술전 수도 하여주어서 무난히 두부앗기에 들어가게 되였다. 첫두부를 앗는 날, 마을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구경거리나 생긴듯 두부방의 뜨시한 구들에 모여앉아 아버지의 첫솜씨를 구경하였다.     사람들이 눈길아래서 첫두부를 앗자니 조금 긴장하기도 했지만 워낙 눈썰미가 빠른 아버지는 한족기술자에게서 어느새 솜씨를 익혔는지 첫시작에 대성공이였다. 마을사람들도 덩달아 환성을 올렸다. 두부방은 여러가지로 인기를 끌었다. 비누도 표제를 하던 시절인지라 마을 아낙네들이 머리를 감거나 빨래를 하는데 제격이였다. 그래서 두부콩을 갈기도 전에 다투어 물통이랑 대야랑 갖다놓고 대기하고있었다.    아버지는 한족두부를 앗는 기술을 배웠지만 차차 순조선족두부를 만들어내게 되였다. 우유빛도 아니고 그대로 눈덩이같이 하얗고 아기의 볼기짝처럼 야들야들한 두부는 대환영을 받았다. 집집에서 드문히 콩이랑 쌀이랑 들고와서 두부를 바꿔 가면서 흥성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끼니마다 두부를 먹을 형편이 아니여서 어떤 날은 잘 나가지 않으며 소수레에 싣고 중심툰에 가서 팔았다.     아버지가 《사구려》를 부르지 않아도 중심툰에 사람들이나 공소부에 물건사러 왔던 아낙네들이 조선두부를 먹어본다고 곧잘 모여들군했다. 그러노라니 구설수에 많이 오르기도 했다. 한족사내들이나 하는 일을 멀쑥하게 생긴 조선나그네가 앞치마 를 두르고 두부장사를 하니 어디 모자란다는둥, 월급을 팽켜치고 콩물이나 주무는 신세가 되였다는둥 벼랄별 의론이 귀전을 때렸다. 그러나 아이를에게 민족교육을 시키려는 아버지의 속심을 곁사람들이야 어찌 알수 있으랴, 그래서 그따위 후론에 아예 마이동풍이였다.    한편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소문이 소문을 낳아서 최두부쟁이, 조선두부라면 귀를 가진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이웃마을들에서 주문이 들어오게 되자 하루 한판씩 하던것을 두세판이나 하게 되였다. 두부찌끼가 남아돌게 되자 소들에게도 먹이게 되였다. 바싹 여위였던 소들의 엉덩짝에 살이 오르고 힘꼴을 쓰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칭찬이 자자해졌다. 그래서 모범사원이 되기까지 하였다.    그런 경력을 가진데다가 돌꼭대기에 올려놓아도 살 사람이라는 평판이 자자한 아버지는 호도거리농사가 시작되자 양돈장과 두부방을 도맡았다. 물론 도맡았대야 사양장에 득시글거리던 크고 작은 돼지들이 제비놀음에 뽑혀 개인집으로 시집을 가다보니 텅빈 돼지우리와 엉성한 두부방뿐이였다.     아버지는 대부금을 내여 전기화 두부방을 꾸리고 굴암퇘지 다섯마리에 새끼돼지 스므마리를 사다넣고 사육하기 시작했다. 도거리농사 2.3년에 쌀독이 넘쳐나고 인심 이 풋풋해졌다. 머리를 잘쓰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벽돌집을 짓고 텔레비를 산다 모터 찌끌을 산다하며 야단이였다. 한편 로동력이 없거나 농기계, 성축이 없는 집들에서는 점점 살림이 각골해져서 빈부차가 나기시작했다. 그리하여 일컬어 신지주들이 나타났 고 땅값으로 쌀이나 받아먹는 신빈고농들이 륙속 나타났다.     아버지는 땅과 씨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치부계획이 있었다. 두부방 을 확대하고 마을에 김과부를 조수로 쓰면서 양돈장의 몫인 사료지에 배추까지 심 어서 김치장사도 벌였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철교공사장이 생겨나자 거기 식당에 두부를 공급하게 되여 한동안 재미를 짧짤하게 보았다.     아무튼 아버지는 극성이였다. 노인들이 돼지우리에 관자널을 마판으로 깔면 돼지 들이 탈없이 잘 큰다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뒤공론이 분분하건말건 면례해간 낡은 묘지를 쫓아다니며 관자널을 파내다가는 돼지우리에 마판으로 깔아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진탕속에서 자고 먹던 돼지들이 깨끗한 널판자위에서 딩굴고 자면서부터 돼지 들이 무럭무럭 잘도 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귀신사촌이라는 별호를 달게 되였다. 그 바람에 담차기로 이름난 김과는 해가 설핏하면 일손을 팽개치고 줏자를 놓았단다.     그렇게 몇해가 꿈처럼 흘러가고 조선족들은 돈냄새에 깊이 절어들어갔다. 땅을 팽개치고 도시진출한 사람들이 늘어나기시작했다. 상점을 차린다. 파마점을 한다. 식 당을 경영한다…하여튼 돈이 될만한 구멍을 다 뚫어가고있었다. 처녀애들이 먼저 시내바람을 일으키더니 논과밭에서 땀흘릴줄 밖에 모르던 아낙네들의 치마폭에도  돈바람이 감돌아치기 시작하였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할 때 아버지는 고향 땅에 심을 남다른 꿈을 키우기시작했다.                                                                     3.   마침내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한국문이 열리고 코리아드림이 만주대지를 휩쓸어 갔다. 그러지 않아도 시내바람에 농토가 버려지고 처녀들의 씨가 마르게 된 판에 한국에 시집가는 바람마저 불어쳐서 숙성한 처녀들은 꿈에 천보기보다 더 드물게 되 였고 마을에 남은것은 장가들곳 없는 로총각무리들뿐이였다.     바람이 세찬데 고요히 서있을 나무가 어데 있으랴. 한국로무수출바람이 불어칠 때 아버지는 남산언덕 무연한 초판에 목장을 꾸릴 타산을 하고 부지런히 양돈장을 경영했으나 한판 크게 해보자면 꽤 큰돈이 있어야 했다. 이리저리 궁리를 짜던 아버 니도 마침내 조류에 휩쓸려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     외가의 가까운 친척들이 한국에 있는게 다행이였다. 한달에 인민페 만원씩 벌수 있다는 대구 가야산속의 목장에 나와 일하라는 편지가 오자 부랴부랴 수속을 마친 아버지는 10년을 기약하고 한국땅에 들어서게 되였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일하게 된 거창이라는 목장의 사장은 한국인치고 보기 드물게 후덕한 사람이였다고 한다. 게다 가 아버지가 제집을 하듯이 직심으로 일하는 바람에 작업반장까지 시키며 신임했다.     먹고 자는데도 돈이 들지 않고해서 한달에 만원소시가 남았다. 일은 고되였지만 저금액수가 불어나는 재미로 외로움과 향수의 감정을 말리며 일하고 또 일하였다. 아들 룡남이가 서안과학기술대학에 붙게 되자 더구나 힘이 솟았고 금자탑과 희망탑이 나란히 솟게 되였다.     남사장이란 사람은 경상도 대지주의 아들로서 한국농축협회 리사로 덕망도 높고 뜻도 높은 사람이였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동북의 송화강류역에 자기의 해외목장을 하나 차리고 싶어하던차였다. 그런데 인연으로 얽힌 세상에서 아무 반연도 없이 거금을 투자하기가 주저되여 여태껏 벼르고만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속만 앓던차에 좋은 인연으로 부지런하고 직심인 최덕보라는 사람이 제발로 찾아와서 여간 기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무슨 속셈이 있어 서였던지 명절때면 아버지를 청하여 술상을 마주하고 속심말을 털어놓는 무랍없는 사이가 되였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도 고향에 목장을 꾸려볼 꿈이 있다며 젊은 시절에 군마창에서 말을 사육하던 이야기랑 해주었다. 마침내 소리를 낼수 있는 두손벽이 마추치게 된셈 이다. 그때부터 남사장은 음으로 양으로 목장경영기술이랑 방법이랑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 색출하려고 면에서 사람들이 내려온다는 정보가 있으면 아버지를 산속 방목장에 빼돌리고 내려온 내무서사람들에게 소꼬리탕도 대접하고 소갈비짝도 쥐여주면서 감싸주다보니 아버지는 10년을 내 무사하게 일할수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드디어 불법체류자 신고를 내고 아들집에 돌아왔던것이다.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였으련만 아버지는 별로 늙지 않고 끼끗하셨다. 산좋고 물이 맑은 가야산 산속에서 산탓인지 아니면 고향에 목장을 꾸리겠다는 꿈을 안고 산탓인지 모른다. 아무튼 손녀를 안고 눈물이 글썽한 아버지의 모습에 다하지 못한 효성을 다짐한 나였다.    10년세월을 가족과 떨어져 세월을 쪼개며 살면서 아글타글 돈을 벌어 나의 뒤바 리지를 해주셨고 공직생활후 100평도 넘는 너렁청한 고급아빠트까지 마련해준 아버 지는 나에게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그렇게 위대한 아버지의 목장꿈은 이 아들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깨여버렸을것이다.     그러나 본성은 버리지 못한다고 그렇게 가석하게 깨여진 꿈끄트러기를 아버지가 가슴깊이 품고있다가 다시 그 꿈을 부풀리게 되고 별로 가망이 없을줄 짐작하면서도 길을 쓸어서라도 돈을 모아 고향을 지킬 목장을 꾸리겠다는 집착을 다시 먼지와 땀으 로 보듬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수 없다. 옛말 그른데 없다고 부무님들은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그런데 나는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고향꿈을 얼마나 챙기였는가? 아무리 자문해도 대답이 궁한 나이다.     절름발이 덕팔아저씨의 어설픈 꿈도 눈물겹지 않으랴, 나는 천방백계로 이 노인 들의 꿈을 이루어드리리라 다짐했다. 무거운 짐을 부리워놓은듯 가슴이 저으기 개운 해졌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앉아 페달을 힘있게 밟았다. 바람이 씽씽 귀전을 스친다. 그날 저녁 나는 안해와 딸애를 몰래 불러내다 산책하며 아침에 내가 보았던 아버지 의 모습과 속사정, 덕팔아저씨의 갸륵한 마음을 자초지종 이야기해주었다.     《듣고 보니 우리가 너무 리기적이였어요. 아들며느리는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데 아버님은 길을 청소하고 계시다니 말이 안돼요. 여보, 우리 무슨 방도를 댑시 다. 네?》안해는 딸애를 꼭 껴안으며 비장한 결심을 내리는듯 진지해졌다.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요?아버지는 10년의 피땀을 한순간에 우리 아빠트에 소모해버렸소. 아버지는 돈은 내주었지만 그분 자신의 꿈은 내버리지 않았으니 내가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구려》     사실 여기 리창구에 새 아빠트를 살 때 아버지를 노엽게 했더랬다. 아버지는 고향 에 대한 아집을 버리지 못해 하였고 나는 만년에 향수시킨다는 실속없는 말로 아버지를 설복했다. 예로부터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아버지는 눈물을 몰래 삼키면서 나에게 지고말았을것이다.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라고 며느리말이라면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할 아버지 자신도 며느리마저 어린손녀에게 그럴듯한 집에서 자라게 하는게 않좋으냐며 간청하는 바람에 큰맘 먹고 꿈을 접으셨을것이다.     새집에 들어서서 한동안은 무엇인가 내켜하지 않는 모습이였지만 차차 시내사정 에 익숙해지고 손녀의 손을 잡고 바다구경도 나가는 멋이 새롭던지 차차 기색이 좋아 지셨고 나도 만금심을 다 털어버렸다…더구나 해련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아침 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무럭무럭 커가는 두벌자식의 사랑에 모든것을 체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보니 아버지가 구부정해서 거리를 쓸며 나가는 모습이 흡사 무언의 항의를 하는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나는 할말을 잃었다.                                                                    4.   산에들에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두고 공교롭게도 나에게 할빈 출장갈 기회가 차례졌다. 나는 할빈에서 공무를 마치자바람으로 10년만에 외 할 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벌, 고개 를 푹숙인 탐스러운 벼이삭들이 풍년을 자랑하고 있었고 길가 옥수수밭에는 오동통한 아기들을 서너개씩 없고 근엄하게 서있는 옥수수대들이 유별나게 정겨웠다. 역시 농 민의 피줄은 속이지 못하는가보다.    그러나 마을풍경은 이색적이다. 옛날같으면 머리에 보퉁이를 떠들썩 뻐스에서 오르내릴 조선족 아낙네들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얼굴의 노인 몇분이 나와 함께 차에 서 내렸을뿐이다. 마을뒤 높지 않은 산언덕은 민둥산 그대로였고 마을길은 울퉁불퉁 수레길 그대로였다. 그대신 여기저기 한족마을들은 번듯한 벽돌집들로 꽉차있었다. 황페해진 고향마을, 시대의 추세인가?  아니면 변해버린 인심의 걸작들인가?    중학교때 우리가 심은 수양버들만이 가지를 흐느적이며 어서오라 반겨주었다. 거목이 된 버드나무를 보노라니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저 버드나무들이 백양나무들처럼 쭉쭉 빠진 재목들이였다면 언녕 베여졌을것이다. 그러면 나같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잘 생긴 나무들인가? 꼭 그런것만은 아닐것이다. 지금 아버지가 못생긴 저 버드나무처럼 고향에 돌아와 땀 으로 걸구고 피로써 지켜낸 고향땅을 다시 지켜나서려고 하는것이니 어찌 아버지 세대들의 마음을 못났다할수 있으랴,     바람에 우수수 락엽이 날린다. 나의 마음에도 락엽같은 스산함이 고패쳤다. 외할 머니네 집은 인민공사때 지은 초가집 그대로다. 오래동안 손길이 가지 않아서 지붕은 헌삿갓을 눌러쓴듯 했고 군데군데 밭고랑이 깊이 패여있다. 벽체는 주저앉을대로 주저앉아 당금이라도 와르르 무너질것 같이 위태롭다. 낯선사람이 들어서자 검둥개가 대달아오며 컹컹 짖어댔다.     찌그러진 정주문이 비시시 열리며 외할머니가 문설주를 집고 내다보았다. 나는 짐짝을 든채로 달려가 외할머니를 부축했다. 나를 업어 키우신 외할머니의 여윈 어깨 는 가냘프게 떨고있었다. 외삼촌내외가 한국에 나간후 손자의 뒤바라지를 하며 살아 가는 할머니는 몹시 지쳐있었다. 외할머니가 이렇게 되도록 너무 무심했던 자책감에 할말을 잃었다. 옛말에 외손자를 다 키워놓으면 개를 추긴다더니 내사 그 쪽이다.     방안에 들어가 앉기바쁘게 외할머니는 하소연했다.    《이거 분통이 터져 어디 살갔어? 산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죽은 사람도 쫓기는 세월이 되였으니 말이다.》듣던 소문대로 농촌사회가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였다. 문화대혁명때 개잡은 포수처럼 우쭐대던 방길만이라는 자의 일은 더구나 격분을 자아 냈다. 약삭빠르기로 소문난 그는 몇년전 한국에 시집보낸 딸의 덕분에 현성에 올라가 개장집을 차리고 얼렁뚱땅 돈뭉치나 쥔 자였다. 그자는 외삼촌을 전화로 어떻게 구슬 렸는지 도맡은 과수원을 헐값으로 넘겨받은 자리로 한족사람에게 10년동안 경영권을 팔아넘겼단다. 과수원 임자가 된 그 한족은 과수원 가운데 있는 나의 어머니의 산소 마저 옮기라고 호령질했단다.     외가집 한집만이 겪는 일이 아니였다. 개척민시절부터 일구기 시작한 논밭들이 야금야금 한족들이 차지하고있다. 특히 방길만같은 자들의 롱간질에 넘어가 농토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버린 사람들이 얼만인지 모른다. 그러는 사람들을 내가 무엇이라 고 평판해야 하는가? 나도 고향을 벗어나 도시민이 되려고 기를 쓰고 공부했고 뜻대 로 도회지인이 되여 떵떵거리며 살지 않는가?     인생에 무슨 규률이 없듯이 삶의 방식은 저마끔이고 선택은 자유이다. 흘러가버 린 조선족마을들, 이런 살풍경에도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려고 로심초사하신다. 늙 으막에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는지, 걱정에 앞서 의구심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여지 껏 동전한푼 고향건설에 보태지 않은 자신으로서는 스스로 가소롭기도 하다.     나는 그때까지 마을에 남아 농사짓는 중학교동창 용호를 찾아 촌민위원회를 찾아 갔다. 그는 어릴때부터 뜨개소였는데 의협심도 강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이였다. 그가 촌장으로 있을 때 방만길이가 기신기신 기어들어 또 수작을 꾸밀때 논도랑에 거꾸로 처박아놓고 다시 마을에서 얼씬거리면 모가지를 비틀어놓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단다. 그말을 들으니 해묵은 체증이 다 가셔진듯 속이 시원했다.     마을에 김국철이라는 어리숙한 사람이 있었는데 한국수속을 마치고 촌정부에 땅 을 뜰여놓으려고 하던차에 어디서 낌새를 챘는지 방만길이가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들 어 6만원 현금을 내놓으며 10년기한부로 임대계약을 하자고 쑥덕이고 있을 때 용호가 들이닥쳐 다짜고짜 밖에 끌고나가 논도랑에 처박았던것이다. 그후 방가는 다시 마을에 얼씬거리지 못했다며 마을사람들이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내가 용호에게 찾아온 사연을 말했더니 그저 사람좋게 웃기만 하다가 대꾸했다.    《여, 동창생, 생각은 좋지만 한발 늦었네. 일전에 덕팔아저씨가 찾아와서 땔나 무골과 산등성이 한전 10쌍을 70년기한으로 도맡겠으니 잠시 아무에게도 주지 말라 고 했네. 선불금은 불원간 갖다바치겠으니 단단히 부탁해놓고 갔어…》    늙은소 콩밭쪽으로 한다더니 아버지가 덕팔아저씨를 보내서 목장자리까지 맡아놓 은 판이다. 참대빗자루와 목장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으니 참말로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의 가슴속에서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라는 결심이 룡트림하였다.    《허, 빈대떡이 안팎이 있나. 역시 고향사람이니 잘된 일이군, 그런데 나 송아 지 300마리를 실어가지고 온다면 나와 계약을 맺을수 있는가? 》     나는 뒤처리를 제쳐놓고 장훈을 불렀다. 용호는 눈이 휘둥그래서 꿀먹은 벙어리 상을 하다가 일이 아이들 장난이 아니니 촌민위원회에서 토론하여 결정하겠다고 좀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이튿날 촌민위원의 결정을 거쳐 내 요구대로 협의서를 작성하 였다. 목장은 주식형태로 하기로 하고 20% 주식을 땅값으로 치고 투자측은 80%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생산경영권을 행사하며 총투자액 100만원을 현공상관리국에 등록하고 법인이 법적보호를 받는다는 조항을 덧붙이고 락착을 지었다.     나의 통큰 설계에 어안이 벙벙해진 촌위원들은 일이 성사되면 민둥산은 무상으 로 내줄수 있다면 선심을 썼다. 역시 고향에 뿌리깊은 정을 가진 마을사람들은 고향 에 찾아와서 고향을 지키겠다는 진심된 마음과 한줄로 이어진것이다. 이튿날 나는 어머니 산소에 올라가 술을 부어놓고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눈아래 내가 처음 배움의 첫걸음을 뗀 소학교가 한눈에 안겨왔다. 지금은 페교가 된지 오래되여 운동장은 염소나 게사니들의 놀이터가 되여있다. 나는 어제 저녁 조카 의 작문책을 들춰보다가 본 구절이 떠올랐다. 누나같은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떠나가 고 학교가 페교된 일을 두고 쓴 글이였다. 글은 서툴렀지만 내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 했다. 《…누나같은 우리 선생님 떠나가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우리는 인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다…》     조선족학교가 페교된후 아이들은 고개넘어 한족소학교에 편입되었다. 중국말 잘 몰라 선생님께 꾸지람 받고 머리큰 아이들에게 놀림당하여 어린것들이 무리싸움도 드문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가기를 싫어하다못해 버들숲에 책가방을 팽겨치고 뻥을 치다고 집에 돌아오군 했다. 저 어린것들이 철없이 보낼 시간도 잠간 이다. 장차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누구를 원망할가? 아무 뒤생각 없이 농토를 버 리고 무작정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누가 담보할수 있을가?    청년들은 거개 한국기업에 목매고 당분간은 호의호식하며 멋스럽게 산다. 그러나 그것도 절대적은 아니다. 일전에 청도에 진주한 한국중소기업들이 백여개의 기업주가 야반도주를 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그바람 기업에 붙어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조에 실업자가 되고말았다. 글로벌시대, 우리 조선족들이 자기 기업은 없이 남에게 얹혀사는것이 장구지책이 될수 있는가? 나로서는 해답이 막연한 의난문제일수밖에 없다. 이런 형편을 아버지네 세대들이 고향에서 버티면 얼마나 버틸수 있는가? 지금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고향을 다시 찾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그 꿈을 뒤받침해주는 길밖에 없을줄 안다.                                      5.          출장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나는 안해와 토론하고 차를 팔았다. 아버지에게는 차가 크게 고장 나서 수리소에 입원시켰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기업가 친구에게서 빌 고 저축통장까지 털어서 기본자금 50만원을 마련했다. 조만간 기회를 보아서 작은 집으로 옮겨가고 집값에서 위돈을 벗길 작정이다. 이제 내가 할일은 때가 될떄까지 일요일마다 아버지 대신 길을 쓸어놓는것이였다. 오늘도 일요일날 나는 아버지 먼저 공원거리에 달려가 길을 쓸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자루를 꽉 밟는 사람이 있었다. 올려다보니 독기어린 아버지의 눈이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일요일마다 이상하게 길이 깨끗하다 싶더니 과연 네 수작 이였구나. 내가 너희들을 속이고 이일을 하는것은 해석이 필요없지만 너는 어쩌자고 이러는거니?》 《아버지, 이렇게 하는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 지의 꿈을 알아냈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그 꿈의 한자락이 되고싶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벌써 붉어있었다. 《그래, 여기서 긴말을 할수 없으니 이만하고 집에 돌아가 얘기하자꾸나》     그날 저녁 나는 그동안의 일을 말씀들였다. 촌위원회와 맺은 계약서와 저축통장 을 내놓으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겠노라고 결심까지 곁들었다. 아버지 는 나무람하시면서도 대견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면 감격해마지 않아했다.     아버지도 그동안 길만 쓸고있은것이 아니였다. 남사장의 투자를 다구쳐서 거의 성사시키고 있던차였다. 아버지는 남사장이 먼저 송아지 500리를 살 돈과 목장의 시 설물 건설비로 따로 돈을 보낸다는 확인서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송금승인서도 청도 한국총령사관에 인편으로 보내왔다고 하셨다.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아버지는 일단 일을 시작하면 정부의 목축업장려정책에 따라 중국농업은행에서 대부금을 낼수 있다면서 저금통장을 안해앞에 밀어놓으셨다. 70년 계약을 했으니 나도 아버지 목축장에 주식을 가지고 싶다며 도로 통장을 아버지앞에 갖다놓았다. 50만원에서 20만원은 해련이 명의로 해놓고 30만원은 아버지 주식으로 해야 앞으로 리사회에서 발언권이 있다고 도리를 따져드렸다. 아버지도 역시 손에 쥔 돈이 사업의 길에 든든한 지팽이라는것을 아시는지라 나중에는 접수하고 말았다. 한껏 즐거워지신 아버지는 꼬마주주인 해련이를 무릎위에 앉히고 농담삼아 말했다.   《너 아빠말 알아들었냐: 이제 대학가서는 목축업을 배우거라. 그래야 네가 덕보목축장의 리사장이 될수 있거든, 안그래? 허허허》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만시름 털어내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꿈자락을 한귀퉁이 들어준다는 자호감에서 나도, 안해도 밝게 웃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형통하다는 고훈을 상기하며 나는 아버지의 귀향길이 활짝 열릴것을 기원하였다.     한달후 모든 일이 다 성숙되자 아버지는 즐거움은 앞세우고 석별의 정은 뒤에 남기고 덕팔아저씨와 귀향길에 올랐다. 뿌리박은 터, 사랑하는 고향을 못잊어하시다 가 드디어 고향으로 가시는 아버지의 그렇게 밝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가 고향으로 가기까지는 너무도 먼길을 걸어오셨던것이다.     덕팔아저씨도 다리를 저는 사람같지 않게 팔팔했다. 내가 작은 어머니라고 부르 는 덕팔아저씨의 안해는 그저 좋다고 덩덕꿍이다. 그렇다, 고향이란 우리 모두에게 피줄처럼 당기는 길이 아니랴! 아버지는 홀가분한 차림이지만 수많은 금빛송아지들을 몰고가는것이다. 멀지 않은 앞날 남산덕이에 포동포동 살찐 송아지떼가 구름처럼 흐를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위에 아버지의 드팀없는 향토애가 무지개처럼 곱게 비낄것이다. 나는 속으로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하는 날, 고향으로 곧추 달려가리라고 속다짐했 다. 내 다짐은 결코 헛말로 되지 않을것이다. 인제 내 마음속에서 나서자란 고향이 새로운 모습으로 부상되였음에랴!                    2010년 6월 1 일 수화에서 탈고                     2012년 연변문학
208    한국드라마 한계에 이르렀나? 댓글:  조회:10965  추천:2  2013-01-18
                           한국드라마 한계에 이르렀는가?                                       진 언      드라마는 행동하는 인간을 내세워 생활, 정감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예술형식으로서 사회, 인간의 인생화랑이다. 그래서 시대적상황에 근사한 인물과 내용으로 오락성만 아니라 반성할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 드라마제작의 첫목적이 리윤의 추구이 지만도 동시에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줄수 있는 유익한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대부분 한국드라마들은 극정을 이루기 위하여 조작된 어거지삼각관계(약 99%), 불치병, 교통사고, 거의 모식으로 된 인위적인 기억상실계기, 신데렐라스토리…등이 기본모식이 되여있다. 한국드라마의 고질병인 뻔연한 설정 즉 입양 등을 계기로 한 출생비밀, 주요인물의 돌발사, 자극을 시도한 비론리적,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인 선악대결의 구도, 시대착오적인 전통적가치관념, 결혼관, 재벌집안의 반대, 고부간의 갈등, 구시대적인 캐릭터의 반복, 지루한 일상대화를 비롯한 진부한 에피소드의 전개등은 한국드라마가 새돌파구를 찾지못하고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 한다.     드라마의 기본선은 애정의 갈등, 결혼풍파, 삼각관계와 지극히 리기적인 자기 보호에서 출발한 모략 등이다. 애정은 문학예술의 영원한 주제이지만 그먼저 인생의 주제이다. 한국드라마의 거의 모두가 애정풍파 스토리의 기본선으로 되여있고 기타 사업 등 생활내용은 애정선을 이어나간는 가교(架桥)로 설정되여있다. 드라마를 보면 한국사람들은 애정ㅡ이성지합을 위해 죽고사는것처럼 인지된다. 애정은 생활의 기본내용이고 인생의 동력이지만 삶의 목적자체일수는 없으며 인생자체일수 없다.     태여나 남녀간의 사랑을 위해 산다는것은 너무 단순한 인생이다. 인생이 있기에 애정이 있지만 애정이 있기에 인생이 있는것은 아니다. 남녀의 결합을 도외시하고도 인생을 빛나게 살아간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마다 애정이 주선이라면 전형성을 잃는다. 전형환경과 전형인물이란 말을 쓰기싫고 쓰지 않는다해도 그 모든, 온갖 예술은 종국적으로 전형성을 모르고 형성될수 없다.     말하자면 가정적연극의 울타리를 좀 벗어나 사회문제까지 소급되여 예술창작의 외연을 넓혀가야 복잡다단한 현실생활에 밀착될수 있다. 거기서 거기이고 그나물에 그밥인것같은 묵은 소재가 아닌 더 독특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어야 좋으련만 그냥 스토리가 비슷비슷하게 순환적이 되고있다. 모두어 말하면 시청자에게 말초신경적이고 무의미한 메시지가 아닌 보다 의미로운것을 전달하여야 한다는말이다.     많은 드라마를 접한것같지만 드라마속의 전형인물과 더불어 련상되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전형환경속에 전형인물의 부각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고 생동하고 진실하게 그려지지 못한 인물이 대부분이기때문이다. “사랑이 뭐길래”,“달빛 가족”과 같은 많은 우수한 드라마들은 세월이 오래가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형성을 띤 인물들과 그들의 생활적인 대화ㅡ정감교류의 진행과정과 장면들이 생생하다.     며칠전 상영이 끝난《메이퀸》은 여느드라마보다 생활적이고 스토리가 잘 짜였지만 악행의 전개가 더 어찌될수 없는지경에까지 올라가서 결국 악이 저절로 포기한듯 선에 사과하고 선은 악을 용서하고 포용하는것으로 총총히 막을 내렸다. 다른 드라마처럼 일상대화의 련속으로 한집의 용량을 채우려하지 않고 스토리위주로 시종 긴장성을 유지하다가 보니 흡인력이 강하게 되였지만 그만큼 모순갈등의 절정에 치달아오를수록 그 해결이 막연했을것이다. 결국 권선징악이 아니라 중용지도이다.     물론 캐릭터,에피소드 위주이면 갈등요소가 빈약하다고 느낌을 줄수도 있겠지만 소토리 위주의 한계의 극복에서 드라마의 성패가 결판나지 않을가 생각한다. 스토리의 긴밀한 전개로 하여 초반에는 재미있지만 갈등이 해결되면 앞에서 극에 이르도록 진행된 악행의 의미가 흐지부지해지고 결국 “그렇구 그렇지 뭐”하는 허무감만 안겨주면 좋지않다.《동해야 웃어라》는 결말을 보며 시청자들이 공연히 신경질적이 될 소지가 많아 시간을 랑비하고 정신건강에 리롭지 못한 실락감을 안게 된다.     끝에서 동해와 도진이가 얼싸안고 화해할게면 왜 그렇게 갈등을 격화시켜 권선징악의 정당함을 유인해놓고 결국 한바탕의 인위적조성이였다는 사실로서 시청자들의 정서를 희롱했는가? 왜 갑자기 새와가 지고지순한 녀자가 되는지 이렇게 갑작스러운 캐릭터의 변화는 감정발전의 론리에 맞는지? 생명의 은인인 동해에게 인간으로서 차마 해선 안될 악행을 자행했음에도 인과보응은 왜 두루뭉실인가?    보느라면 갑자기 바뀐 홍사장과 봉이엄마의 캐릭터가 결말을 이상하게 몰아가는듯 하다. 홍사장은 갑자기 량심의 가책(?)을 느끼고 동해에게 자기의 지분을 몰아줄것이며 봉이엄마의 가정적인 설득에 빠진 김선우가 잘못을 뉘우치고 자수할것이고 이로써 도진이 처리문제가 남는데…김준국장의 암투병이 형제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열쇠가 되여 화해하며  동해가 용서해 줄것이라는 예감이 짙어가고…     입만 열면 “이 자식이”란 말이 튕겨나오는 도진이나 그럴때마다 꼬박꼬박 존대하는 멍청한 동해나 서로가 용서하지 않을것같아 보이는데 나중엔 어이없게도 시청자들을 화해무드에 마주앉힌다. 하긴 칼을 놓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왜 선량한 사람만이 관용해야 하는가? 악인 갑자기 모든 죄과를 참회하고 선인이 되는모식, 이것은 관용의 미학도 아니다. 동해는 태생적으로 모지라는 사람인가? 동해는 머슴같은 처지를 천성적으로 달게 접수하고 즐기는것는 바보로 되여있다.     물론 인생이 론리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므로 정답이 있을수 없고 정감이 고정불변이 아니기에 고정적모식이 있을수는 없지만 무릇 어떠한 드라마이든 인물의 성격발전의 론리, 심리변화의 론리, 인식발전의 규률, 더나아가서 생활의 론리가 지켜져야 인물의 정서생활과 그로써 전개되는 장면, 장면들에 진실감이 확보된다.     작가들이 서로 합작한듯 현실적으로 보편적이 아닌데도 마냥 상류층의 가정을 전형환경으로 삼고 재벌가에 들어가려는 녀자들의 추구가 공동한 주제이고 한국사회에 삶의 모식인듯이 비싸게 구는 녀자들에게 필이 꽂히는듯한 비현실적인 갈등들… 한국인들의 혼인관, 특히는 재벌가의 혼인생리가 드라마처럼 돼먹었다면 한국사회가 미시적으로 야단난다는 싱거운 우려심까지 안겨준다. 이는 거의 관례로 되였다.    드라마《반짝반짝 빛나는》은 별다를것 없는 뻔한 스토리에 감질나는 녀자들의  흥미유발이 목적인듯 애정행각에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음 작가 개인의 미흡한 가치관을 비벼넣은것같다. 우선 개념이 정립되여있지 않다. 원칙적으론 애가 바뀌는 바람에 덕을 본 정원이가 대박이 난 “신데렐라”이고 그덕에 불행해졌다가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금란이의 조우는 너무나 조작감이 느껴진다.    친딸의 캐릭터를 악녀로 형상화하고 가짜딸을 선한 품성과 이미지의 녀자로 부각하였는데 이는 혈통에 대한 부정인가? 또 가난한 남자는 아빠자격도 없는것처럼 그림으로써 현실성, 진실성을 등져버렸다. 이런 억지스러운 설정에 설득력이 떨어져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로 분위기를 창출해도 작가의 전지적인 서술이 한계를 넘었기에 지각있고 개념있는 시청자들은 작가가의 시도에 넘어가지 않는다. 배우들의 캐릭터가 자주 바뀌여 혼란되고 우롱당하는듯한 느낌들을 주고있다.     구도상에서 공통점인 출생의 비밀과 선정적으로 자극하려는듯 바닥없는 악행의 련속, 그리고 선천적으로 부족하여 늘 당하는 약자들, 거의 어머니와 다름없는 이상 녀자(자기스승)와 열련에 빠지는 년하남의 현실성없는 애정극 등은 한국청년들의 진실한 애정가치취향을 오도하고있다. 그러나 녀자들의 형상들은 결국 전통관념에서 대남자주의가 뒤집어져 “대녀자주의”가 군림한듯한 인상을 주면서 한국녀자들은 다 암펌이고 악녀였다가 천사처럼 거룩하게 변하는 스토리뿐이다.     현재 드라마작가들중 90%이상이 녀성들이라니 결국 거의 모든 가정드라마가 잘못은 남자들만 저지르고 남주인공들은 쩍하면 뺨을 얻어맞으면서도 항상 녀자들을 남자종처럼 배려하는 인상을 주는데 녀성작가들의 리상향을 지양하는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작품성이 뛰여난 수작들도 있지만 총체적으로 여전히 한계점에 이르렀으며 그 개선의 여지가 불투명하다고 여겨진다.     요즘 상영되는 “사랑했나봐”는 제목에서 보여주다싶이 사랑을 위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한 악녀의 형상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해석할수 있는가? 모순갈등의 초점은 선정이가 윤진에게 딸을 보여주느냐 마느냐로 잡아놓고 극정을 끌어나가는데 마치 선량은 나약성이고 선량함은 악을 전승하지 못하며 선량한 자는 무능하고 악한 자는 언제나 한수 앞선다는 격이 되였다.  작자가 선악의 의미를 바람직하게 해석하지 못하고있다. 선정이의 끝없는 모략과 악행의 성공, 그리고 그냥 기만당하는 여러 인물들, 끝에 가서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제목처럼 누가 누구를 “사랑했나봐”인가? 드라마가 길어질수록 짜집기가 분명해지고 구멍이 더 많이 생긴다. 선정이가 설정한 교통사고, 어리숙한 경찰, 유진의 지력부족의 설정 등등....반대로 선정이는 무소불위이고 온 사회체계가 그의 손길에 따라 운행되는듯싶다. 한국 사회가 정말 그럴가? 오도하고 있을뿐이다.       사건의 발전속에 관중이 예상하지 못한 돌발사건으로 극정을 부단히 고조에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저지르는 악행이 인간의 도를 넘어서 “저럴수 있나?”하는 의문이 앞서면 벌써 생활의 론리. 인간감정의 발전론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어긋나게 되고 드라마를 연장하기 위한 억지로 해석될수밖에 없다. 더 물러설자리가 없게 함으로써 아무 여지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질질 끌어가다가 역시 “제가 잘못했어요. 그럴수밖 에 없었어요. 용서해 주세요…”등 틀에 박힌 수법으로 끝낸 다면 역시 관중의 감정은 우롱당한것이고 유치한 오락성이 목적이였다는 결론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각색과 각색지간의 충돌은 갈라놓을수 없는 관계로 얽혀서 돌아가고 심지어 악연으로 맺어지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이는 악과 선의 투쟁으로 될수도 있고 “악”으로 락인 찍힌 선과 인습과의 투쟁이 될수도 있다. 흔히 선이 악을 전승하는것이 관례이다. 어떻게 긴장한 국면을 조성할것가?     흔히 드라에서 보다싶이 관중은 알고있는데 이야기속의 인물은 그런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례하면 일촉즉발의 시각에 관중들은 주인공을 위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흔히 시간제한의 수법을 쓰는데 이야기속에 모종 사건을 이야기속에 묻어두고 잔뜩 곪기게 하거나 때아닌 때에 폭발하게 하면 관중을 긴장속에 잡아둘수 있다. 그러나 론리성에 맞게 끌고나가면서 긴장을 고조시켜야 한다. 그냥 복선을 깔고나가면서 관중을 안타깝게 만드는데 이것은 상용수법이다.     텔레비죤드라마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본질적으로 한가지인바 곧 관점이고 태도이며 동작이다. 인물의 실질인즉 동작으로서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가이다. 인물의 행동이 인물의 성격을 극화한다. 인물은 또한 일종 계시이기도 하다. 작가의 직책은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부동한 인물들의 부동한 품성과 성격 특징들을 관중앞에 현연시켜 인생현장을 체험시키는 일이다.      인물은 관중과 함께 극적동작을 이끌어가는 정절점을 찾게 한다. 동일성도 역시 인물의 한개 방면인것이다. 동작인즉 인물이다. 한사람이 하고있는 일은 말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표명한다. 이처럼 인물은 씨나리오의 근본적인 기초이고 이야기의 심장이며 령혼과 신경계통이다. 인물의 진실성결여는 령혼의 문란과 같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특수하고 보기드문 사람이 아니라 극히 흔하고 평범한 인물을  택해야 한다. 선정이같은 악녀가 전형성인가? 많은 영화들에 악녀들의 악행으로 드라마가 도배질는데 인간악이 극도에 이르렀고 사회악으로 번져가고있지만 사회, 시대의 주류로 될수는 없다. 악녀가 횡행하는 드라마를 보느라면 한국은 악녀들의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토리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혹자는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로 보면 되지 실생활과 련계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하지만 너무 무지한 언동이다.     반면적인 교육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긍정적인 미학가치는 반상적이다. 악에서 진,선미에 대한 지향이 더 강해지게 하지만 여기서는 벌써 별개의 문제이다. 이렇게 된데는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 에도 불구하고 사전제작이 아닌 당일치기식제작으로 총총하게 쓰이고 드라마의 완성도가 미흡, 독창성부재, 관중의 이목만 노린 코드의 적용, 캐릭터의 개연성의 미달 등에서 드라마가 외곡된다. 근원은 상업병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혹평할게면 왜 한국드라마를 보느냐? 하고 반문할것이다.      필자가 전문 시간을  파하여 연구성각도로 보는것은 아니고 띄이는대로 건너뛰며 본다해도 전후의 맥락을 이어볼수 있다. 드라마의 절주가 느리고 느리다는 설명이 되겠다. 햄리트는 하나이지만 천명의 관중에 천명의 햄리트가 있듯이 오가는 대화를 귀동냥해도 극정의 흐름을 짐작할수 있다. 여주니 본다거나 보이니까 눈에 띄는것이라 한다면 구차한 해석이겠지만...     각설하고, 텔레비죤드라마의 생명력은 인문정신과 인성의 본질을 시사하는 영원한 주제발굴의 심도와 광도에서 고양된다는것을 밝히고싶다. 자타가 모르는바는 아니겠지만도 이는 창작기교문제가 아니라 창작사상, 정신경지의 문제이다. 텔레비죤극은 응당 내재정신과 건전한 정감내함이 융화되여야 상품화된 텔레비죤극으로서는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 여기서 드라마의 한계선이 그어지는것은 틀림없다. 아무튼 소감도 각각이요 비평도 각자 시청자들의 고유된 권리라서 일가견도 아닌 감수를 횡설수설 적어보았다.                                                  2012년 12월 26일ㅡ 013년 1월 29일 수정 
207    (중편소설) 봇나무 댓글:  조회:3319  추천:0  2013-01-16
                                                         봇나무                                                              최 균 필       인생은 만남과 리별이 엇갈리는 희비극의 극장이다. 웃으면서 만났다가 울면서 헤여지고  울며 만났다가 웃으며 헤여지기도 하는 인생무대, 나만의 인생고로 점철된 인생극, 내가 극본을 쓰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관중으로도 되였기에 아무 허구도 없이 구구절절 진실한 얘기로 극정을 이룬것이다. 연분은 아니였지만 아무튼 인생극에 등장하는 두녀인과 얽히고 맺힌 사연들이 그번의 기우로 하여 추억의 쪽배에 가득 실려올줄 누가 알았으랴! 오랜 세월이 흘렀 어도 마음 한구석에 깊숙히 간직하고서도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 녀인을 만났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다만 까닭을 알수 없는 오열과 함께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얽혀도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참으로 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요 체험하는 인생은 비극인것이다. 지나간 일체는 친절한 회억으로 변하는가? 돌이켜생각하기도 끔찍스러운 그 세월에 얽히고 맺힌 사연이니 어찌 한두마디로 다 말할수 있으랴, 두번째 녀자는 내가 군마사육장에 만났지만 그녀를 만나게 된 계기를 서술하자면 아무래도 그 먼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다.                                                                        운명의 전주곡                                                        ㅡ 인생은  만나는 일과 잊어버리는 일 ㅡ       나는 까막골이라 부르는 군마창에 오기전에는 할빈농업기계학원의 재학생이였다. 일망무제한 북대황의 농장벌을 또락또르로 갈아엎고 꼼바인으로 밀수확을 하는것이 나의 푸른 꿈이였다. 그때는 온세상을 독차지한듯 청춘의 랑만과 희열을 가슴가득 안고 살았다. 그리하여 돈지갑이 늘 말라있는 신세였지만 일요일이면 무작정 친구들 과 작동하여 여기저기 거리를 쏘다녔고 상점에도 들락거렸다.     내가 단골처럼 다닌곳은 할빈의 번화가에 웅좌를 자랑하는 로씨야식 석조건물인 유명한《츄린(秋林)》이라는 백화상점이였다. 매대에는 쏘련상품들이 많이 진렬되여 있었는데 명멸하는 네온싸인의 불빛속에 소비를 유혹하고있었다. 게다가 매대의 점원들도 일매지게 요란한 젖가슴과 호마궁둥이에 날나리 허리를 한 로씨야처녀들이 였는데 특유의 냄새를 피우며 크고 아름다운 눈으로 유혹해서인지 중국사람들도 제일 많이 몰려드는 곳이였다. 그때만도 외국녀자들의 그 독특한 미를 눈요기라도 하는 것이 일종 향수였던지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츄린을 자주 찾는데는 그럴만한 사연도 있었다. 거기엔 나의 노랑머리 미인이 있었던것이다. 어느 날, 오래동안 벼르고 별렀던 루바슈까를 사려고 첫손님으로 들어섰다. 루바슈까란 로씨야젊은이들이 즐겨입는 전통 여름옷이다. 한창 허영심에 들떠 살던 때이고 쏘련식멋이 류행이던 때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여러 매대에 녀자들이 날리는 미소에 왼눈 한벌 팔지 않고 곧추 나의 미인이 서있는 매대로 달려갔다. 올랴라는 로씨야처녀는 보는 사람마다 첫눈에 홀딱 반하게 하는 금발미녀였는데 그 꿈꾸는듯한 파란 눈을 마주하면 금방 심장이 멎을듯 사람의 넋을 빼앗아갔다. 올랴가 반색하며 맞아주었다.   《도 브레이젠(안녕하세요?》     나는 바보처럼 그저 벙실거리기만 했다. 내가 하얀루바슈까를 가리키며 사겠다고 하자 그녀는 상글거리며 매대안에서 새것을 꺼내여 입혀주고는 거울앞에 끌고가서 연신《하라쇼!》를 뽑아냈다. 옷이 날래라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스스로도 멋져 보였다. 기분이 둥둥 뜬 나는 일요일 날 친구들을 불러올테니 함께 태양도로 야영을 가는게 어떠냐고 초청했다. 믿었던대로 올랴는 흔쾌히 응낙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일요일이 돌아왔다. 루바슈까를 떨쳐입고 두리모까지 쓰고나선 나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송화강으로 달려갔다. 세친구와 함께 강가에 이르니 올랴가 벌써 친구들과 함께 나와있었다 낯익은 금발머리가 멀리서 손저어 불렀다. 멋지게 눌러쓴 태양모깃에 손을 얹고 방글 웃는 그 모습은 예이제 눈이 부시였다.     《야! 저 노랑머리가 정말 대단한 미인인데》     친구들속에서 감탄성이 터져올랐다.     《이자식, 너 언제부터 노린내에 취해버렸니? 새침데기 시골내기인줄 알았더니 능구렝이 담을 넘었네. 그러구두 아닌보살 했구나. 하하하 》     《음, 저 처녀말이야 모디얼호텔의 무도장에 내 단짝이야, 올랴라고 하는데 어때? 백조아가씨같지?》     내가 로씨야식으로 어깨르 으쓱하고 두팔을 벌려보이자 코를 싸쥐고 킥킥거리는 녀석에, 입안에 물었던 음료를 확! 내뿜는 녀석에 아무튼 내가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며 믿지 않았다. 나는 오기를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저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 다. 올랴가 달려오며 가볍게 포옹했다. 나는 이쪽을 주시하는 친구들의 눈길을 의식 하며 호기를 피웠다. 《도 브레이젠(안녕하세요?》하고 올랴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쓰빠씨바(감사합니다.》 내가 로씨야식으로 례절을 차린후 내 친구들을 불러왔으니 함께 뽀트놀이를 하는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대환영이였다.   《하라쇼, 야오체라드 와스위쩨지 (당신을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올랴도 자기 련인이나 되는것처럼 내 팔에 매달리며 퐁퐁 뛰였다. 그제야 친구들 이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친구들은 제각기 짝을 지어 뽀트에 앉아 강심으로 노저어 갔다. 비록 말은 서로 다르고 잘 알아듣지 못해도 젊은 심장들은 잘도 어울렸다. 눈짓, 손짓 벙어리시늉을 해가면서 청춘의 랑만을 꽃피웠다. 태양도가 저만치 보였다. 처녀들은 흥이나서 노래를 불렀다.《볼가강의 노래, 모스크바교외의 밤, 공청원의 노래 …》노래시합이라도 하듯 겨끔내기로 불러대는데 빨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은방울소리가 그처럼 귀맛좋을수 없었다.     한창 흥이 도도한 때에 강심을 질주하던 화물선이 씽하고 지나가며 격랑을 솟구 치는바람에 우리가 탄 뽀트들이 뒤집어질번했다. 처녀들은 엉겹결에 남자들을 부등켜 안으며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올랴도 내가슴에 와락 안기였다. 그바람에 몸을 가누 지 못하고 그만 뽀트가 번져지며 둘다 물에 빠졌다. 물속에서 솟구쳐나오니 올랴가 허우 적거리며 아비규환을 질러대고있었다.     평온을 찾은 다른 뽀트에 처녀들은 언제 위험이 있어냐는듯 깔깔댔다. 나는 올랴와 함께 안깐힘을 써가며 겨우 뽀트를 바로 번져놓았다. 그제야 친구들이 거너와 배안에 물을 퍼내느라 야단법석을 캤다. 물병아리가 된 우리의 모습이 우습다고 다시 웃음소리가 배전에 넘쳤다. 나의 새 루바슈까는 올랴의 입술연지로 그만 꽃적삼이 되고말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간, 물결치는 푸른 송화강처럼 나의 정열은 굽이쳤고 랑만으로 넘치였다.     우리는 배놀이를 마치고 다시 쓰딸린공원으로 갔다. 친구들의 기분은 맑은 하늘 에 둥둥 떠가는 구름같았다. 나는 갑자기 생활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유보도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달리 정다워보였다. 웃고떠들며 실랭이치는 사이에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처녀들도 우리들도 서로 헤여지기 아쉬워했다.    《도스위다냐(다시 만납시다.)연신 뒤돌아보며 손을 젓다가 인파속에 사라지는 노랑머리리 말괄냥이들과 하루동안 쌓은 정이 그렇게 련련할줄이야, 친구들의 얼굴 에도 다시 만나고싶어하는 심정들이 력력했다. 순결한 청춘의 가슴에서 설설 끓는 정열에는 민족도 국경도 따로 없는것이리라.     나는 겨울에는 올랴와 함께 스케트장으로 다녔다. 할빈의 긴긴 겨울날에 올랴와 함께 남강체육장 스케트장에 다니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겨우겨우 보내오는 빠듯한 식비를 절약해서 고물상점에서 노르웨제스케트도 한켤레를 샀다. 거기엔 올랴친구들도 단골이였다. 나는 개구장이시절부터 송화강 얼음판에서 굴러먹은지라 스케트 하나만은 멋지게 탓다. 배고픈고생을 톡톡히 했지만 올랴가 기다리는 스케트장에 들어서면 대번에 기분전환이 왔다.     머리에서 김이 문문 나도록 몇바퀴 씽씽 돌고나서는 나의 파랑눈을 찾아 슬며시 다가간다. 내가 그를 스치면서 슬쩍 밀쳐놓으면 올랴는 영낙없이 내 허리를 붙잡는다. 때론 둘이 함께 넘어져서 한덩어리가 되기도 했다. 파란 눈과 검은 눈이 부딪치며 작열할 때 그 감수란 참으로 오묘했다. 그렇게 얼음판에서 뜨거운 정을 키운 우리들 인지라 마침내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다. 어느 날 올랴가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언제부터 로씨야인들이 사는 신비의 집에 가보고 싶던차라 나는 쾌히 응낙했다.     어느 날 우리는 련인처럼 전차에 딱붙어앉아 마쟈커우라는 로씨야인들의 마을로 갔다. 집들은 일매지게 목조건물인데 지붕이 뾰족하고 창문들은 좁고 길었다. 널다란 뜨락에는 젖소들이 두세마리씩 매여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정로씨야시절의 백계출신들이여서 쏘베트로 되여진 조국에 돌아갈수 없는 망향민들이였다. 그들은 젓소를 길러 우유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천성적으로 락관주의자들이였다. 구멍이 펑 뚤린 털스카트를 입고 다니는 딸애의 몰골에도 《하라쇼》를 내뱉았고 전차에서 내리면 쭉 찢어진 내 바지 가랭이를 보고도 구새통같은 몸집을 흔들며 웃어대였다. 그들은 어린 딸애가 낯모를 남자친구를 제집에 끌어들여도 반갑게 맞아준다. 나는 초면강산의 불청객이였으련만 대환영을 받았다. 올랴의 어머니가 손수 구웠 다는 헐레브에 빠다를 발라서 먹는 맛이란 정말 별스러웠다. 그것도 젓가락에 습관 되였던 내가 칼고 포크로 먹는 멋이 별로였다. 식사후 따끈한 우유에 설탕을 놓아서 내놓는 로씨야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보노라니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피부색을 물론하고 사랑의 화신들이 아니겠는가?     혼솔기가 터져버린 내 바지가랭이를 손마선으로 박으며 그렇듯 정답게 웃어주는 올랴의 어머니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나같이 참하게 생긴 아들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외동딸을 둔 아쉬움을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휴식일 이면 자주 놀러오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첫대면에 벌써 이 로씨야어머니에게 끌렸다.     나는 올랴외에도 다른 로씨야계 젊은이들과 친숙하게 지내였다. 그것은 나의 로씨아어실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족젊은이들이 세상에 두려울 것 없다는듯이 무리를 지어다니는것이 언녕 공안국에 소식이 들어가서 은근히 주시 하고있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내가 로씨야처녀들을 홀려내여 제좋은 멋에 놀아나고 건달풍기마저 있다고 쉬쉬하였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한창 쏘련형님들을 따라배우는것이 시체멋이였던지라 여름이면 루바슈까에 두리모를 쓰고 모디얼호텔 무도장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겨울에는 쏘련제목구두에 까자크털모자까 지 얻어쓰고 징을 박은 구두뒤축으로 돌길을 떨꺼덕거리며 쏘다녔다. 그래서 허파에 바람이 든 청년으로 보이기 십상이였을것이다.     나는 본래 쏘련숭배자였다. 그래서 올랴의 권고에 따라 로어를 열심히 배우면서 얼마후엔 올랴와 로어로 대화하는 수준이 되였다. 하여《안나까레니나》,《전쟁과 평화》,《고요한 돈》《죽은 넋》,《어머니》등 많은 로씨야명작들을 번역본과 대조해가면서 열심히 탐독했다. 아직 정식으로 구혼하지는 않았지만 올랴를 미래의 안해로 점찍어두었기에 그에게 조선말도 배워주면서 자신은 로어에 능통하려고 마음 을 도사려먹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랑이란  원만할수 있으랴 싶었다.     그때 우리 학교의 맞은켠에 조선실습생청사가 있었는데 오리가 오리무리를 따르 고 게사니가 게사니무리를 따른다고 나는 기회만 있으면 운동장에 넌지시 찾아가서 함께 배구도 치고 뽈도 차면서 조선실습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할빈타빈 공장, 보이라공장 등에서 실습하고있는 나어린 학생들은 나를 멋쟁이 큰형이라고 부르면서 무척도 따랐다. 나도 그들을 사랑해주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것이다.     어느 일요일 저녁무렵, 내가 여느때처럼 조선실습생들과 배구를 치고있는데 안면 이 있는 실습지도교원이 나를 불러내야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갔다. 그는 나를 쏘련을 따라배우는 멋쟁이 젊은이라고 칭찬하고나서 조선실습생들의 한패가 모스크바로 류학가게 되였다면서 로어통역이 필요한데 갈생각이 없느냐고 내 의중을 떠보았다. 출국수속은 자기네들이 다 책임지고 해줄테니 동의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는 대뜸 긴장해졌다. 중국공민으로서 그렇게 하는것은 조국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때 무슨 애국심이 어떻고 할 높은 각오는 가지고있지 못했지만 어쨌든 량심이 그렇게 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량심이란 인생의 가장 완전한 해설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할수 없어서 아직은 로어수준이 발바닥이고 더구나 중국공민으로서 어찌 갈수 있겠는가고 좋게 사양했다. 지도교원은 입에 침이 마르게 설복하려 들었다. 전쟁이 금방 끝나서 국내엔 인재가 형편없이 모자라는데 해외동포로서 좀 지원해주면 좋지 않겠는가고 사정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도 전쟁후 복구건설을 위해 재일동포들도 현해탄을 건너오고 중국에서도 조선족청년들이 자원해 두만강을 건넜다는것을 들어서 알고있다. 그중에는 물에 빠져 비명횡사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나자신도 일제놈들에게 나라잃고 고향을 빼앗기고 살길찾아 두만강을 건넌 망향민의 후손이여서 고국에 남모르는 감정을 지니고있은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이제 2년후이면 농업기술자가 되여 북만의 국영농장에 배치받게 될판인 데 생각지도 않게 중국이냐, 쏘련이냐, 조선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 나타날줄 어찌 생각했으랴. 나의 태줄이 묻힌 이 흑토에 내가 마시고 자란 송화강이 흐르고 홀 어머니와 나어린 동생들이 나를 하늘처럼 믿고 사는데 내가 어찌 혼자의 영화를 위해 소홀히 행동한단말인가?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못가겠다고 단연히 잘라말했다. 그러자 실습지도원이 갑자기 책상을 탕 치며 무뚝뚝한 평안도 말씨로 닥아세웠다.    《네래 조선놈씨종자가 옳아? 네래 조국은 조선인거다. 알갔어? 》    그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오자 원래 성미가 강퍅했던 나도 맞불을 놓았다. 《당신 일본순사처럼 왜 꿰닥거리는거요. 내 혈관속에서도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것 은 사실이요. 나의 두삼촌도 조선전쟁판에서 희생되였소. 당신만 애족하는줄 아는가? 그러나 나는 월경분자가 될수 없단말이요.》     나는 그와 더 싱갱이질 하고싶지 않아서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후로 다시는 그 운동장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일이 나의 운명에 흑점이 될줄이야.     1957년 봄부터 중국대지에 운동바람이 휘몰아쳤다. 정풍운동, 대명대방, 대변론 등 정치기후가 대번에 어두워졌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고 노루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학술계에 번져지는 대변론에 뛰여드는 어리광대들이 학교에 나타났다. 그때까지 나에겐 무슨 정치견해란것이 없었다. 일년이 지나서 대약진이란 회오리 바람까지 몰아쳐서 그야말로 눈이 어질어질해 날지경이 되였다.     그해 겨울방학에 고향마을에 갔다. 공산주의대문에 들어섰다고 생산대마다 공동 식당이 생기고 집집의 굴뚝들에 밥짓는 연기가 사라졌다. 누룽지 한덩이도 얻어먹을 수 없었고 가마목은 싸늘했다. 대대로 물려왔다는 쇠가마도 공사의 용광속에서 녹아 버렸다. 나는 고향마을에서 많은것을 보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린 소견에도 너무 황당한 짓거리들이 진행되고있었다.     학교에 돌아온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친구들에 말하고 그들의 소감을 들으려했다. 그러나 그처럼 믿었던 친구들속에서 고발자가 생기여 마침내 입덕을 톡톡이 입게 될줄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대변론에 입한번 뻥긋하지 않았건만 세폭의 붉은기를 모독하고 자산계급사사을 전파하려 날뛴 새끼우파로 전락되고말았다. 후에 안일이긴 하지만 원래 학교에 내려온 우파명액을 채우지 못해 끙긍거리던차에 나를 우파로 몰아부쳤던것이다. 거기에 조선사람과 내통하여 나라를 배반하려 하였다는 죄명에 백계로씨야처녀와 련애하는 반동조직성원이란 얼토당토않는 죄까지 씌우다보니 드디어 공안국에 체포 되였다. 예나제나 사람들은 헐뜯는다. 참말을 하면 참말을 했다고 징벌하고 말이 없으면 그래서 또 음해한다. 적당하게 말해도 무슨 죄명을 씌울지 누가 알랴, 참으로 황당한 세월에 황당하게 비틀어진 내운명이였다.     밤에 갑자기 숙사에서 체포되다보니 올랴는 물론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할새도 없었다. 나는 미결수감방에 갇혔다. 이때나 그때나 새 죄수가 들어서면 로죄수들이 행패부리는 악습이 있었다. 일반 형사범도 아니고 쉬쉬한 말이 도는 죄수인데다가 햇 내기 청년인지라 더 만만하게 여기는 눈치들이였다. 원래 근육질의 체질인다가 주먹 쓰기도 좀 하는지라 떨리지는 않았지만  중과부적이여서 은근히 겁나기도 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안배였던가 아니면 어떤 전생연분이였던가 거기서 올랴의 아버지를 만나게 될줄은 정말 꿈밖이였다. 내가 올랴네 집에 몇번 놀려다니며 정분을 틔운데 로어까지 웬간히 하였던지라 나를 극히 좋게 보아오던 그였다. 나에겐 더없이 반가운 만남이였지만 슬픈 조우이기도 했다. 그렇게 순박해보이던 그가 언제 무슨 죄로 체포되였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뭇귀가 무서워 자세히 캐물을수도 없었다.     아무튼 덕지가 땅크같은 사람인데다가 백계군대의 군관이였던 그인지라 잰내비 같은 조무래기동양인들을 아주 우습게 보는터였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곳인데가 타민족들이여서 늘 경각성을 괴우고 밤잠을 설치던차 자기가 잘 아는 조선 족청년이 곁에 있게 되자 그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였다. 나도 그의 보호를 고맙게 여기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힘꼴이나 쓴다해도 암암리에 해꼬지하자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속에 우리 《꼬리방즈》들에게 선입견 을 가지고 공연히 으르렁거리는 악질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묵결을 맺았고 매사에 서로를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연히 트집을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을 적게 주고받았다. 어느 날 한밤중,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진후 그가 내곁에 다가와 귀속말을 했다.  《젊은이, 내가 어째서 갇히게 되였는가는 자세히 말할수 없고 또 말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기에 간략해두고 부탁이 하나있소. 아무래도 저사람들이 나를 쉽게 내놓을 것 같지를 않소. 원인은 묻지 마오. 내 력사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소 》 그러면서  내귀에 대고 간청하듯 말했다. 자기의 외동딸인 올랴도 나를 좋아하고 자기도 훌륭한 청년이라고 믿으니 사위삼아 아들삼아 되여 올랴를 평생 지켜달라며 눈물이 글썽해 하였다. 나는 무어라 말할수 없이 가슴이 옥죄여서 올랴아버지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그는 품에서 절반짜리 손수건을 꺼내여 건네주면서 이것이면 올랴에미도 마지막 부탁인줄 알고 허락할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씨좋은 로씨야로인의 당부를 실현할수 없었다. 비록 몇달후 내 일이 다행스럽게도 해명되였지만 결국 로동개조대상으로 군마창에 끌려가게 되였던것 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올랴에게 편지를 하였지만 공안국에서 중도 뜯어보고 깔아두었는지, 아니면 올랴가 회답을 했는데 창부에서 깔아두었는지 모를 일이였다. 일체를 잃은 후에도 미래는 의연히 존재한다지만 나와 올랴와의 인연이 다시 맺어질 길은 그렇게 묘연해졌다.                                                                                            2. 인생고 제1막                                ㅡ 인생은 일종 징벌이기도 하고 고험이기도 하다. ㅡ       여기는 쏘련과 흑룡강을 사이둔 고장이지만 지역우세때문인지 여기저기 군대농장이 많이도 개설되였다. 내가 소속된 군마사양장은 대흥안령에서도 오지인 까막골이라 부르는 곳이였다. 원래는 일본관동군의 기병대본영이였던곳이다. 여기서 나의 기구한 운명의 길이 시작되였고 청춘이 엉망으로 되였다. 말몰이군으로, 군마훈련원으로 되여 7년세월이 흐르는 동안 애숭이청년으로부터 서른살을 저만치 바라보는 로총각 으로 변하였고 정신궁전도 철저히 무너져버렸다.     신주대지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10년광란이 이 오지에도 살벌한 흑풍을 몰아왔다. 사람마다 열에 들떠서 위대한 망발질에 정신없이 뛰여들었다. 그들로 말하면 일종 성스러운 마음에 숭고한 사명을 안고 짓부시고 족치고 죽이고 하는 모험들에 열불이 나있었겠지만 내 보건대는 다시없는 광란이였고 문화비극이였다.     나는 더구나 죽어지내야 했다. 자신을 믿는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북대황의 거친비바람속에서 타고난 개성도 색바래였고 범이라도 잡을것같던 청춘의 패기도 사라져버렸다. 오직 넋이 없어져버린 빈 육체를 끌고 다니 는 산송장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그저 죽어갈수는 없다고 몇번이고 이를 사려물었다. 한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나쁜 상태는 자기에 대한 인식과 파악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나는 현실을 접수해야 했고 생존철학을 터득하려고 밤마다 잠을 설치였다. 이중인격인이 되는것도 꺼리지 않은만큼 귀신을 보며 귀신말을 하고 사람을 보면 사람말을 하며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살기로 작심했다. 지금 내 처지에서 일체 곤난에 대응되는 가장 좋은 약으로 위장술밖에 더 있겠는가? 매사에 근신해야 한다. 생활의 본질은 불안이며 세상만사는 늘 사람들의 뜻과 상반대로 돌아가는 법이 다. 나는 인내로써 내 운명의 신을 달래려고 작심했다. 참아야 한다. 참자. 인내가 언젠가 꽉 막힌 내 미래의 쪽문을 열어줄지 어찌 알랴, 준엄한 생활은 이내야말로 지혜의 맏아들이라는것을 처처에서 증명해주었다.     참을수 없는 인생고를 겪는 나에게는 세월이 너무 더디였지만 어느덧 8년세월 을 저믈었다. 그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머리에서 발끝까지 군장을 한 병사아닌 한무리 병사들이 붉은기발을 휘날리며 군마창에 들어섰다. 머나먼 상해에서 재교육을 받으러 이 광활한 천지에 군림하게 된 홍위병맹장들이였다. 비록 계속혁명 의 투지로 앙양된 모습들이였으나 내눈에는 가엾다고 보면 너무 당돌해 보였고 불쌍 하다고 보면 너무 유치해보이는 애숭이들이였다.     무산계급사령부를 목숨으로 지킨다며 혁명의기 충천하여 종횡무진하며 모든것을 들부시던 맹장들, 이른바《잡귀신》을 잡아내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천안문광장 에서 붉은 태양의 사열을 받으며 감격의 눈물에 목이 메여하던 그들이 동북변강에도 막바지인 여기 대흥안령골짜기에 떨어질줄 생각이나 했을가? 신격화된 영원한 태양의 만수무강을 외우며 중국의 풍운을 휘여잡는다던 그들이 결국에는 영광스럽게 재교육 의 광활한 천지에 진군하게 되였으니 말이다.     우리 군마사양장에 농업대대장의 명언이 있었다. 지식청년들이 여기 북대황의 만두를 먹는것도 혁명세례를 받는것이란다. 그가 자기의 명언대로 지식청년들에게 더 많은 만두를 먹이려고 그랬던지 새로 황무지를 개간하려고 날치였다. 새초밭에 불을 질렀는데 그만 방화선을 치지 않은탓으로 료원을 불길로 타번지던 혁명의 불길이 그만 산으로 치달올라 산불로 번지게 되였다. 불은 그래저래 진화되였지만 재주를 쓰다가 메주를 쓴 격으로 된 농업대대장은 방화범으로 수갑을 차고 수인차에 실려 가고 말았다. 참으로 황당한 세월에만 있을수 있는 흑색유모아였다고나 할런지…     쏘련기계화부대가 일단 쳐들어온다하면 한시간도 안되여 득달한다는 국경지대여 서 유사시에 수천마리의 군마를 안전지대로 피신시키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는데 봄파종이 끝나면 방목원들이 말들을 훈련시키기에 눈코뜰새없이 보내야 한다. 게다가 전시구호아래 집집에 방공굴까지 파놓고 있어서 인심은 늘 뒤숭숭했다.     첫날 그 대오속에 죽지부러진 새처럼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섰던 가냘픈 소녀 애가 어찌 그리도 눈길을 끌었던지 모를 일이였다. 사람에게 무슨 륙감각이란게 있다더니 그래서인지 첫눈에 그애의 신상이 은근히 안심되지 않았다. 후에 알았지만 진소연이라는 그애는 자본가의 딸이여서 또래들중에서도 못생긴 새끼오리였다.     그래서 종래로 처녀애들에게는 시키지 않는 말몰이군으로 내려보내였다. 다행히 내가 있는 방목소조에 배치된 그애에게 저도모르게 왼심을 쓰게 되였다. 동병상린이 라고 무리에서 떨어진 백조같은 처녀애를 남몰래 보호해주고 싶었고 그만큼 신경을 써가며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심장이 시키고있었다. 그렇게 나와 두번째 녀자와의 인연이 시작 되였다. 역시 황당한 세월에 있을수밖에 없는 황당한 인연이랄가.    소연이는 요란한 미인은 아니였지만 특유한 매력을 가진 녀자애였다. 황포강물을 마시고 자란 상해처녀들에게만 있을수 있는 희고 보드라운 살갗의 얼굴은 버들잎같이 갸름하였는데 웃을때마다 폭폭 패이는 보조개는 그저 있을때에도 웃는듯한 한쌍의 흑진주같은 커다란 눈과 너무도 잘 조화되였다. 아직 어린 나이건만 조숙을 말해주듯 남달리 붕긋한 가슴은 뭇사내들의 눈길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시기의 류행으로 단발을 하고있어 더구나 금방이라도 포르르 날아나 버릴것같은 파랑새를 련상시켰다.     그 어떤 반발심에서 지어낸것인지 몰라도 소연이는 함께 배치받아온 다른 두 처녀애들보다 활발하였고 무척 소탈하게 처사하고있었다. 원래는 성분이 좋은 녀자애 들은 처음엔 위생소 아니면 식당같은 후근부나 채소대에 배치하는게 관례였다. 소연 이는 자진해서 우리 방목대에 왔다고 하였다. 고생을 사서한다고 핀잔삼아 말했더니 자기같은 문제아는 밑바닥에 묻혀사는게 제일 안전하다고 제법 도리있게 해석했다. 소연이는 학교때 흔해빠진 홍위병에도 못들고 짓몰리며 살아왔단다. 그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었으려만 아무튼 부모의 덕을 단단히 입고있었다.     군마창에서 제일 하바닥일이 방목원이다. 방목대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수백필 의 말들에게 밤풀을 뜯긴다. 이슬풀을 먹인다하며 헛눈 한번 팔세라 잘 지켜야 하는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처음 한두달은 말타기에 신이 날지 모르나 진종일 말잔등에서 내릴새가 없이 맴돌아쳐야 한다. 천고마비의 호실절인 초가을에는 더구나 벌판에서 살다싶이 해야 하는데 승냥이무리가 무시로 출몰하는 이 고장에서 섬약한 처녀가 말떼을 몬다는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였다.     도시에서 곱게 자란 상해처녀들에게 말타기를 배워주기란 쉽지 않았다. 비록 불 을 깐 순한 말들을 골라주었지만 원체 성깔스러운 숫말들에게 정을 붙이는 일부터가 어려운 일이였다. 강냉이 이삭이나 홍당무우를 입에 물려주며 머리와 귀서껀 두루 쓰다듬어주기. 맑은 물로 물을 먹이며 말을 다독여주기, 손바닥에 알소금을 놓아 핥 아먹게 하여 주인의 체취에 익숙하게 하기 등 예비훈련을 시키고 어느 정도 친숙해진 말에게 자갈을 물리기. 안장을 얹기 등을 세심하게 가르쳤다.     말배때끈이 풀린다거나 느슨해지면 인명사고가 날 일이다. 그래서 각별히 명심 하게 하고 승마할 때 말등자에 어떻게 발을 디밀고 어떻게 발끝에 힘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여러가지 기본규률을 지키도록 엄격하게 요구했다. 다른때 같으면 어림도 없으련만 말을 처음 태울때는 허리를 안아 올려주거나 엉덩이를 받쳐주면서 련습시켰지만 수집음많은 계집애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이미 어지간히 친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한것이다. 소연이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것을 더 좋아하는 듯 하기도 했다. 물론 나의 직감이긴 하지만도 말이다.     말타기는 확실히 예술이 수요된다. 말이 달리기 시작하면 들뛰는 말의 동체의 률동에 따라 박자를 맞추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이 네발뜀을 할 때에는 발끝에 힘을 주면서 될수록 말잔등에 중력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말이 힘겨워하는것은 둘째치고 말잔등에 궁둥방아를 찧을라치며 오장이 뒤집어지는듯 메스꺼워 배겨내지 못한다. 가령 그런 우직한 주인이 엉덩이를 말잔등에 깔고앉으면 말도 허리의 충격이 귀찮아서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말은 등허리힘이 약해서 잘 아껴주어야 한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한달이 안되여 소연이는 물론 두처녀애들도 능란한 기마수가 되여 방목임무를 얼마든지 담당할수 있게 되였다. 방목장에서 처녀애들에게 가장 난처한 경우는 숫놈들이 무시로 배아래에서 커다란 방망이를 꺼내들고 웅성을 과시 하는 때이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써서 재때에 경고를 주지만 촉기빠른 처녀애들은 볼것을 다보고있었고 어떤 련상속에 제무안에 취해 얼굴을 붉히고들 있었다. 그러나 말못하는 짐승들에게 어찌 일일이 도덕교육을 할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처녀애들도 심드렁하게 보고지내기 마련이였다.     아무튼 말떼를 몰고 방목하기란 힘겨운 일이다. 여름에는 불볕에 타고 등에의 성화에 시달려야 하고 저녁이면 모기에게 죽어지내야 한다. 종자말들은 우리에 너무 오래 가두어두면 오금에 녹이 쓴다고 눈이오나 비가오나 한바탕 달리기를 시켜야 한다. 시베리야 찬바람이 뼈속을 파고드는 엄동설한에도 말떼를 몰고 풀숲에서 맴돌 아쳐야 한다. 노루꼬리만한 해가 어느새 서산에 꼴깍하면 어둠이 깃드는 심산속은 아무리 담큰 대장부라해도 소름이 끼치게 한다. 어둠이 깃들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시퍼런 눈을 번뜩이는 승냥이들이 말떼주변을 감돌며 호시탐탐하기때문이다.     총소리가 울리고 화약냄새가 풍기면 꽁무니를 빼지만 대신 마을에 내려가서 닥치는대로 가축을 물어간다. 이런 무시무시한 사지판에 애어린 도시청년들이 빈하 중농의 재교육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것이다. 하지만 이미 리성을 잃어버린 시대인지라 군간부들도, 전사들도 지식청년들도 저마다 목숨으로 혁명사령부를 보위 한다며 웃음속에 칼을 갈았고 남을 잡아서 득세하려고 피눈이 되여있었다.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였어도 자연의 섭리는 내 알바가 아니라는듯이 거친 북대황 에 봄은 봄마다 어김없이 깃든다. 여기 흥안령기슭에는 5월에 접어들어서야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봄이 늦게 드는 대신 가을은 부른듯이 일찌기 찾아와서 9월중순이면 흰눈꽃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먹이로 연맥을 심는외에 겨울에 청사료를 보장하기 위해서 콩과 옥수수도 심는다.  꽁꽁 얼어붙었던 흥안령기슭에 따스한 바람이 불기시작하더니 묵은 덤불속에서 새싹이 움트는 봄날이 서서히 다가오고있었다. 그런 경사로운 봄날 뜻밖에 하늘이 무너질듯한 불상사가 생겼다. 내가 속한 방목대에서 말한필이 잃어졌던것이다. 만약 말이 강을 건너 월경하는 날엔 그날 방목한 사람이 뛸데없이 반혁명 감투를 쓰고 감옥행차를 해야 한다. 그날 하느님이 보살펴주었는지 나는 사양실당번을 서다보니 들판에서 벌어진 일에 끌려들 일은 없었지만 수백마리 말중에서도 내가 제일 아끼던 준마였던 깜장말이 없어졌다. 가슴이 섬찍했다.     그놈은 워낙 성깔이 몹시 사나워서 노상 제멋대로 뛰여다니는 놈이였다. 한 보름 지나면 관례대로 불알을 까기로 되여있는데 그놈이 그만 암내를 맡고 정처없이 떠나 버린것이 틀림없었다. 자칫 사랑하는 조국을 배반하고 강을 건너 수정주의나라에서 복무할수도 있었다.  말떼를 몰고나간 방목군이 몇이 되지만 약한 다리에 침질이라고 불똥이 소연에게 덮씌워질게 뻔했다. 소연이가 땅에 엎어져 엉엉 우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뿌직뿌직 찢기는듯 했다. 소연이의 운명이 결딴나게 생긴것이다.      그저 강건너 맥을 놓고 소연이를 얼없이 지켜볼 일이 아니였다. 나는 이왕의 경우를 돌이켜보며 깜장말의 행적을 추측해 보았다. 문득 어떤 예감이 뇌를 스치였다. 우리 2분대에서 사오리쯤 떨어진 골짜기 너머에 말짱 암말만 사양하는 3분대가 생각났던것이다. 그놈이 봄바람을 타고 실려온 암냄새를 맡고 색시사냥을 간게 틀림 없었다. 나는 저녁을 먹을념도 없이 어둡도록 풀언덕에 엎드려 그냥 서럽게 우는 소연이에게 슬며시 다가가 위로에 위로를 거듭했다       《쑈진. 울지말아라. 이 아저씨가 날이 밝으면 찾으러갈게, 응? 그런다고 말이 이 밤에 절로 돌아올것도 아닌데 어서 저녁이나 먹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지? 간대루야 무슨 사단이 생기겠니? 내 말을 들어라. 어서,》     그러나 겁에질려 불안에 떨며 흐느끼는 소연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붙잡고 싱갱이질하다가 남의 눈에 들키는 날엔 공연히 일을 버르집어놓을수 있었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침소에 돌아왔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소연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잠도 잘수 없었다. 어떻게든 말을 찾아오고 소연이를 구해야 했다. 타민족이지만 인정상으로도 의지가지없는 처녀애가 너무 안스러웠다. 남들이 딴 생각이 있어 발벗고 나섰다고 오해하여도 물러설수 없는 일이였다. 내 량심이. 내 뜨거운 가슴이 용서하지 않을 일이였다.    닭이 세홰를 치기전에 슬며시 침소를 나와서 힘세고 날랜 나의 적토마에 안장을 얹었다. 길량식이랑,물이랑, 소금이랑 초저녁에 준비해두어서 크게 지체될 일이 없었다. 길량켠에 수북히 자란 밀의 싱그러운 냄새가 페부를 찔러 잠기를 말끔히 가셔주었다. 날이 희붐히 밝는듯싶더니 뒤이어 동녁하늘이 붉게 타오르고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느라 천천히 걷기던 말의 배때기를 걷어차며 급보려 달리려는 순간 난데없는 말발굽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얼결에 돌아다보니 소연이가 먼지를 일구며 달려오고있지 않는가? 소연이도 자지않고 있다가 나의 뒤를 밟은게 분명했다.    《따거, 떵이덩. 》     몇리길을 단숨에 달려온듯 말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고 소연이의 얼굴도 한껏 상기되여 있었다. 다른 처녀애들은 나를 다 아저씨라 불렀지만 소연이는 단둘이 있을때면 《따거》라고 불러주었다. 그럴때마다 야릇한  느낌이 들군하는 나였다.    《아니, 소연이! 어쩌자구 따라나선거요. 얼마나 돌아다녀야 할지 모르는 길인 데. 어서 돌아가우, 나 혼자라도 꼭 찾아올테닌 이 따거를 믿어, 응, 》    《아니예요. 따거를 혼자 고생시킬수는 없어요. 원래 저의 일인데…아니 더 말하지 말고 어서 가자요. 쨔쨔!》 내가 더 무어라 말할새 없이 소연이가 말에 채찍을 안기면 질풍같이 앞질러갔다. 말타기가 제법인 소연이의 뒤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할수 없이 뒤따랐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3분대에 거의 이르렀을 때 3분대의 말들이 한골짜기를 가득메우고 이슬맺힌 풀들을 뜯고있었다.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네눈이 뚫어지라 고 살폈으나 깜장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말을 천천히 몰아 방목군에게 다가갔다. 들판에서 서로 면목을 터두 고 지내는 사인지라 찾아온 사연을 말했더니 희한하게도 3분대에서도 어제 암말 두 필이 새여나가서 자기네 분대에도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하였다.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며 왕청같은 궁리가 빠져나왔다. 녀자가 바람이 나면 젖먹이도 가슴에서 떼여놓 고 야밤도주 한다더니 이놈의 말들도 발정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게 분명했다.     봄이 되면 암말들이 먼저 발정난다. 제때에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궁둥이를 나무에 비벼대며 방구까지 빵뻥 뀌다가는 제방귀에 놀라 네굽을 안는데 그럴때면 아무리 날랜 말도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말을 들어보니 깜장말이 암말을 꾀여내여 어느 아늑한 곳에서 제재미를 보는라 여념이 없을것이 분명했다. 나는 소연이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타일렀지만 기어이 따라간다고 우겨댔다.   《소연이, 내 말 들어라. 먼저 이 3분대에서도 먼 여러 골짜기까지 훑어보아야 하고 없으면 온 대흥안령숲속이라도 헤매야 할것이다. 며칠이 걸리든간에 승냥이가 먹다 남긴 말대가리라도 찾아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가 둘다 말까지 타고 말없이 분대를 떠났으니 지금쯤 야단법석일거다. 네가 먼저 가서 오해를 풀어주어야지.》    그러나 죄꼬만 계집애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할수없이 말에서 내린 나는 망태를 끌러서 물병이랑 만두랑 꺼내여놓고 대수 요기나 하자고 하였다. 소연이도 배가 고팠던지 먹자는데는 반대가 없었다. 만두를 씹으며 다시 설복하려 들었지만 외려 제쪽에서도 망태를 헤쳐보이면서 따거보다 더 잘 준비해왔노라고 자랑질이였다. 그리고 죽어도 살아도 함께 한다며 눈물을 찔끔 쥐여짰다. 그모습에 가슴이 찡해나서 무어라 더 말할수 없었다. 우리는 묵결속에 눈길을 마주치고 말잔등에 올랐다.     여기 흥안령 가근방의 여러골짜기는 손금보듯하는 나는 길을 잃을 념려도 없이 말발굽이 찍힌 곳이면 이리저리 다 찾아다녔다. 그렇게 천방지축 쫓아다니다가 흑룡 강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하루해가 자기의 긴 려정을 마치고 서서히 이국땅의 산봉에 걸터앉으려 하고있었다. 일출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락일은 철학적 사색과 묵상을 안겨준다던가? 나는 때아닌 명상에 잠겼다.    소연이도 바야흐로 지려는 저녁해를 넋없이 바라며 처연한 모습을 짓고있었다. 나는 슬며시 소연이의 심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석양에 물든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 가 하나의 정묘한 조각상같았다. 그린듯 굳어져있던 그녀가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갑자기 돌아서며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꽃같은 무엇이 작열하고있었다.     나는 나의 그 파랑눈을 내놓고는 그렇게 정나미도는 녀자의 눈길과 마추진적이 없었다.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온몸에 피가 설설 끓어올랐다. 그러다 자신을 찾은 나는 스스로를 호되게 꾸짖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무안에 취해버린 나는 슬며시 눈길을 돌려 흑룡강을 굽어보는체 했다. 로씨야 사람들이 아무르강이라 고쳐부르는 흑룡강의 호한한 물결우에 고기잡이 발동선들이 대안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석양을 실은 고기배들의 모습도 한폭의 수채화였다.     다시 강을 따라 앞장서 달리며 강기슭을 살피던 나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세놈의 말이 볼일을 다보고 여흥을 즐기듯이 사이좋게 풀을 뜯으며 갈개고있었던것이 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굴러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풀숲에 주저앉았다. 소연 이도 환성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떨어져 달려오더니 무작정 내가슴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리고 소리없이 흐느끼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들먹이는 어깨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미동도 없이 오래오래 부등키고 앉았다.     한시름 놓은 우리는 해저문 흑룡강기슭에서 환희로운 저녁만찬을 시작했다. 웃음을 되찾은 소연이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보기가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는 말들을 놀래우지 않기 위해 잠시 지켜보기만 하였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소연에게 흑룡강의 특산인 따마하라는 고기얘기를 했다.     따마하는 산란기가 되면 빨간 눈에 심지를 켜고 바다에서 강을 따라 물밀듯이 올라온다. 지금이 바로 따마하을 잡는 호시절이다. 큰놈은 열댓근이나 된다. 따마하 는 잔뼈가 없고 속살이 빨간데 맛은 고래고기 사촌이라 한다. 바다물속에서 커가지고 다시 고향인 흑룡강에 돌아와 산란하고는 흰배때기를 뒤집은채 바다를 향해 무리로 떠내리는 명물이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소연이가 몰래 춤을 꼴깍 삼키고있었다.        나는 싱그레 웃으며 기회가 있으면 몇마리 잡아서 먹여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면 서 소연이를 떼놓고 혼자 여기까지 왔더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가 생각하며 그녀 의 고집이 얼마나 고마운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자 소연이도 말없 이 일어섰다. 어둡기전에 말들을 몰고 귀로에 올라야 한다는것을 그도 느낀것이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저녁안개가 산허리에서 감돌고있었다.    우리는 용케도 세마리 말을 얼리고 닥쳐 귀로에 올랐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말에 대해 강의했다. 개나 소들은 자기가 온 길은 꼭 기억하고있어 길을 잃는법이 절대 없다. 개는 코로써 길을 찾아가고 소는 퉁방울같은 눈으로 경물을 찍어두었기에 길을 외끼지 않는다. 그러나 말은 어느 짐승보다 영물이다. 말은 앞발족 안에 메추리알만한 혹이 각질속에 싸여 붙어있는데 그게 눈의 작을 한다. 그래서 길바닥을 환히 내려다보며 발밑에 무엇이든 밟아죽이는 법이 없고 네굽을 안고 달릴때에도 걸채여 넘어지지 않는다.     말은 개보다 더 충성스러워 주인을 배반할줄 모른 짐승중에 군자이다. 몇년씩이 나 갈라져있어도 에미말은 자기 배속에서 나온 자식을 알아본다. 혹시 새끼말이 제에 미를 몰라보고 외람되게 올라탔다가는 에미에게 물어뜯기거나 뒤발로 쫓아버린단다. 하건만 못된 숫말은 눈이 멀기시작한다고 한다. 말이 일단 사람과 정분이 나면 생사 관두에 주인을 구해낸다. 나는 내가 본 쏘련영화 《용감한 사람》의 경개를 말해주면 서 말의 충성을 증명해보였다.     내가 깜장말을 극구 찾아나선것은 사이비한 애착심도 있다. 로총각이 다 되도록 따스한 말을 나눌수 없는 나로서는 이 성깔사나운 깜장말이 친구였고 련인이기도 했다. 새벽에 떠날때는 어디서 호랑이밥이나 되지 않았는지 해서 몹시 걱정했다. 그러나 3분대에서도 두필의 말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저으기 안심했다. 적어도 외롭게 혼자 떠돌지 않을것이였으니까.     이 흥안령오지에 운명이 처박히면서 여지껏 속심을 나눌 친구도 하나 없는 나였 다. 말떼를 풀밭에 몰아놓고 풀언덕에 큰 대자로 누우면 먼산에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에 내마음도 더없이 간질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나같은 감투쟁이에게 누가 감히 련정을 느낄것인가? 속절없이 세월네월이 가는것을 한탄하며 못다하는   사나이 가슴에 수없는 못을 박고 또 박아왔을뿐이였다.     어둠이 이 끝없는 대흥안령산맥을 완전히 휩싸버렸다. 앞에서 건정건정 걸어가던 세필의 말이 갑자기 뒷발질하며 울부짖는것이였다. 우리가 타고있던 말들도 두다리를 떨고있는게 알렸다.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무시무시한 시퍼런 불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소연이가 낌새를 채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얼결에 안장에 걸어두었던 나무하는 칼을 꺼내들고 말에서 뛰여내렸다. 길기에 나무를 잘라낸후 누더기솜옷소매를 떼내여 홰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꽁무니에 차고있던 술에 적셔 불을 달았다.     주위에 어둠이 훌쩍 물러섰다. 소연이가 어느새 내 뒤에 붙어서서 발발 떨고 있었다. 내가 겁을 먹고 주밋거리면 소연이는 기절하고말것이다. 용기가 있으면 액운도 물리칠수 있는것이다. 나는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불방망이 쳐들고 승냥이들 쪽으로 내달렸다. 불방이에 질겁한 승냥이들 이 저만치 퇴각했다. 잠시 숨을 돌린 나는 소연에게 홰불을 맡기고 허리에 감았던 바줄로 부들부들 떨고있는 말들의 발목 을 돌아가며 묶어놓아 제마끔 내뛰지 못하게 하였다. 일은 삽시에 끝났다. 아마 고도 의 긴장감이 폭발력을 재촉했을것이다.      소연이를 말배때기에 딱 붙어서있게 하고 승냥이들쪽으로 둥그렇게 불을 질렀다. 그렇게 세곳에 불을 달아서 승냥이들을 가둘잡도리를 보여주었다. 아닌게아니라 역어 빠진 승냥이들은 사람이 한창 함정이나 덫을 놓는것으로 착각한것같았다. 그것도 활활 타오르는 불함정이라고 생각되였던지 비실비실 물러서는듯 싶더니 두목이 먼저 돌따서서 내빼자 졸개승냥이들도 우르르 골짜기아래로 도망쳐버렸다.     사색이 다 되여버린 소연이를 안아서 말잔등에 앉힌후 내 말곁에 바싹 다가서 몰게 하였다. 혼쭐이 난 세마리 말도 고분고분 따라섰다. 깜장말은 더구나 말꼬리를 물듯이 하고 졸졸 묻어왔다. 나는 수시로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승냥이무리가 다시 쫓 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등줄기가 후줄근해진것을 느꼈다. 나는 어스름 달빛을 빌어 발을 급보로 달리였다.     마침내 군마창이 저만치 굽어보이는 산등성이에 도착했다. 삼태성도 기울어지고 초생달이 깜박깜박 조으는 별무리를 거느리고 새벽으로 가고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청해 한것은 오로지 소연이를 위한것이였고 깜장말에 깃든 정때문이였다. 내가 그렇게 위험한 밤길을 헤치며 말을 찾아와도 결코 한마디 치하도 없을것이다. 나는 소연이를 먼저 숙소로 쫓아보냈다. 말들을 일일이 말뚝에 매여놓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무너져내렸다.     나의 숙소란 마구간 한켠에 칸을 막은 사양원실이다. 따스한 물이나마 따라줄 사람도 없고 다리를 쭉 펴고 누울 따스한 온돌방도 아니다. 옛날 지주집에 머슴을 살던 홀아비도 나처럼 처참하지 않을듯 싶었다. 두눈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 지상에는 책과 녀인의 가슴과 말잔등, 세가지 락이 있다고 유럽의 어는 명인이 말했다. 말잔등에서 누리는 락은 나에게 남아돌지만 칠정륙욕을 가진 칠척장한에게는 녀자의 가슴에서 누리는 락이 무엇보다 소중한것이 아니랴,      내 나이 아직 스믈여덟밖에 안되였는데도 청년애들이 우파아저씨라고 부르니 얼마나 복창이 터질 일인가? 이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고생보다도 마음 고생이 그만큼 나를 겉늙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로 말하면 적당한 호칭도 떠오르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그런들 어떠랴. 불구덩에서 사는 사람 연기내를 마다하랴,     나는 말떼에 익숙할뿐 사람축에 들지 못한다. 가슴속에서 부글댄것이 지금 생각 하면 사회불만이였는지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문화혁명까지 이토록 치렬하니 내 인생은 여기서 볼장을 다본것같다. 비록 32원이란 보잘것없는 월급이지만 나를 개조시킨다는것 자체가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여기 나의 보금자리에서만 굴릴수 있었으니 죽지 못해 사는 내 목숨은 또 얼마나 너절한가?    이 오지에서 할빈멋쟁이가 완전히 쿠리가 되였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헌솜옷을 걸치고 말잔등에서 세월을 보내는 나에게는 봄날의 잔디풀밭이 다시없는 보금자리 였다. 봄바람이 스쳐가는 봄날의 언덕에 누워서 정처없이 떠도는 흰구름에 나의 사랑 과 그리움을 실으면 저도 모르게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속태우실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절을 넘기였고 올랴를 생각하며 두번째 절을 부른다.      나는 다른 노래를 모른다. 배우고싶지도 않았다. 내 입에서 붉은태양의 노래가 나와서는 안된다. 그게 오히려 내마음을 편하게 했을수도 있었다. 한창 폼을 내며 살던 할빈시절, 올랴와 함께 불렀던 《모스크마교외의 밤》도 가사를 잊어버렸다. 기억하고있는 노래란 아리랑뿐이다. 혼자 멀리까지 말을 몰고가서는 말잔등에서 가슴 이 터지라 부른 아리랑, 그렇게 서럽게 부르고 부르다가 말목을 부여안고 통곡한것도 몇번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 한가로이 풀을 뜯던 말들도 무슨 귀신의 울음소리로 들렸는지 그 커다란 눈들을 씀뻑거리곤 했다.     새벽늦게야 굳잠에 빠졌던 나는 늦게 눈을 떳다. 밖에서 왁자지껄 고아대는 소리에 깨여났던것이다. 3분대 방목원들이 나에게 눈인사를 보내올뿐 멀고 먼 흑룡 강기슭에까지 가서 세필의 말을 찾아왔다는 희소식이 총부의 스피카에서 울려나왔 지만 일등공신인 이 우파분자의 이름은 물론 진소연의 이름도 없었다. 의례 그러려니 하고 미리 마음을 챙기고있은 나이지만 가슴에서 불뭉치가 굴러대는것을 참기란 정말 힘겨웠다. 나는 씁슬한 울분을 삼키며 마구간으로 들어가버렸다.     한바탕 땅치며 통곡하고 싶었다. 그러나 울수는 없는 일이다. 웃음마저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 살벌한 비상시국에 눈물이 가당한가? 눈물마저 흘릴곳이 없다는것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유석이라는 작가가 말했던지 모르겠다. 가령 사람들 등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던 소연이의 이슬머금은 크고 까만 눈을 의식 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버럭버럭 소리라도 질렀을지 모른다.     선행도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하면 덕행으로 평가되지 않는 법이다. 그 망할놈의 세월에는 더구나 그랬다. 그러나 운명이 영영 비틀어질번했던 한 애어린 처녀을 곤경에서 구해주었다는 그 인간적인 장거만이라도 스스로 만족할수 있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였던지 그 모든 사람들이 미쳐있었던지 모른다. 어찌되였든 나에게는 나갈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게는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없다. 내가 볼수 있으면 또 한번 실족하여 넘어질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과신하는데서 대세를 잘못 보고 더욱 기로에 빠져들수 있다. 살아있다는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3.  초지에서의 조우                                 ㅡ  인간은 운명에 의한 불행은 벗어날수 있지만                                    스스로 가한 불행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다. ㅡ         해마다 여름한철은 종마창에서 가장 분망한 계절이다. 말복전에 청초를 베여두어 야 하기때문이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여 산넘어 벌방의 사원들도 이 골령에 밀려들 어 벌판의 여기저기에 풍막을 쳐놓고 풀베기부업을 하는데 한 반달가량은 흥성흥성하 여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것 같다.     고무바퀴뜨락또르가 들어설수 있는 곳은 기계로 풀을 베여눕히지만 육중한 기계 를 받아당하지 못하는 습지쪽은 사람들이 갈구리같은 로씨야식 낫으로 베여눕혀야 한다. 그렇게 베여놓은 청초를 쇠스랑이로 끌어모아 단을 묶어서 버섯모야으로 옹기 종기 무져놓는다. 흥안령기슭의 초지에는 여기저기 천연함정이 기다리고있기에 걸음 마다 조심해야 한다. 아무데나 시름놓고 발을 들여놓았다간 대번에 발목이 잠기면서 누런 물이 괴여오른다. 몇천년을 그렇게 썩고 고여서 사람이나 짐승을 저승으로 보내 기기 십상인 사지판이였다.     청초베기가 한창 고조에 달하였던 어느 날 점심무렵이였다. 온몸이 땀에 후줄근 해지고 속에서 열불이 타올라서 견딜수 없었다. 나는 송화강에서 익힌 물재간을 믿고 꽤나 넓어보이는 늪에 풍덩 뛰여들었다. 인츰 물위로 솟구치려했건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밑으로 빨려들어가는것이였다. 내가 뛰여들면서 괴여오른 감탕물에 눈과 코가 대번에 꽉 막히면서 숨이차고 눈앞이 캄캄해났다. 안깐힘을 써서 한쪽눈을 뜨고보니 기슭이 어렴풋이 보이였다.     풀뿌리가 썩어 말오줌보다 더 역한 냄새를 풍기는 감탕물이 입안에 넘치는것도 아랑곳할새 없이 젖먹던 힘까지 내여 솟구쳐올랐다. 요행 발이 감탕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정신이 아찔해 냈다. 온몸에 맥이 다 흘러나가는듯 했다. 아무리 허우적거려 도 도무지 앞으로 헤여나갈수 없었다. 나는 리지를 잃을번했다. 참으로 짚오래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물우에 뜬 풀줄기를 휘여잡으며 버둥질쳤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서른살전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수는 없었다. 이 역시 운명의 장난질인 지 모른다. 운명앞에 두손들고 사신을 맞을수도 없거니와 자기 젊은 생명을 두고 락엽같은 정서를 가진다는것은 너무나 비겁한 일이였다. 절망에 반항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의 욕구를 가지고  희망의 언덕을 바라보며 박투하려는 그 심정은 비장한 법이다. 나는 물속에 갈아앉지 않으려고 이판사판 물장구를 치였다.     누군가 소리치는듯 싶더니 사람들이 오구작작 몰려들었다. 그러나 너무 돌연적인 상황이여서 구원의 손길을 뻗칠생각이 미처 나지 않았던지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사람살려요》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니, 이미 입안 에 더러운 물이 가득차서 소리조차 나갈수 없었다. 혹시 사람들의 눈에는 진구렁에 빠진  황소를 보는 그런 마음이였는지 모른다. 이 사회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우파분 자라는 불청객이야 죽건말건 그들에게는 그저 생사박투의 단막극으로 보였 을수도 있다. 분명 그런것 같았다. 생의 욕망보다 더 강한 어떤 반발심이 욱 치밀어올랐다.     심사는 심사대로 멀쩍하였지만 나는 점점 기진맥진하는것을 절감하며 오열을 토해냈다. 눈물인지 더러운 오수인지 내 눈언저리를 즐벅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흐릿 해졌다. 내가 최후로 모지름을 쓰려고 작심하는 찰나에 난데없는 바줄이 날아들었다. 진소연이 마차에서 바줄을 얻어내여 나에게 뿌려준것이였다. 방목하다가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에게 올가미를 던지는 기술을 배워준것이 은을 내였다. 나는 허허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구명대를 얻은 사람처럼 요행 바줄을 거머쥐고 헤여나왔다. 소연뒤에서 함께 방목대에 내려온 두처녀가 바줄을 잡아당기고있었다.     목숨은 겨우 구해서 언덕에 올라와보니 이게 또 무슨 일인가? 팔다리는 더 말할 것 없고 사타구니에까지 흉측스러운 찰거머디들이 다닥다닥 들어붙어 곁사람들이 질겁할지경이였다. 나는 껄끄러운 새밭에 딩굴면서 팔다리나 사타구니에서 피를 빨아 대는 놈들을 겨우 털어버렸으나 등허리에 찰싹붙어 살을 파고드는 놈들은 어떻게 털어낼 방도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사람들이 인제 욱 몰려와 서 동물원의 원숭이가 재롱을 피우는것을 보는듯이 구경하며 희희닥거렸다.     이번에도 소연이가 나를 구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아랑곳없이 나의 등허리에 거마리들을 찰싹 찰싹 때려서 하나하나 해결해주었다. 거머리가 붙었던 자리가 콩알처럼 불어났다. 아프고 쓰리여 참을수 없었다. 소연이가 옆낭에서 보드랍 게 빻은 소금을 꺼내여 내 가슴과 잔등을 문질러주었다. 다른 처녀애들이 무어라 손가락질하며 수군댔다. 난생 처음 닿아보는 녀자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괴로움이 대번에 가셔지는듯 하였고 형언할길 없이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전통관념이 도사리고 있는 그 세월에 처녀의 몸으로 한 로총각의 몸에 손길을 대인다는것부터 불가사의한 일이였고 더구나 사람마다 온역신을 피하듯 하는 존재에 게 따뜻한 정을 안고 다가선다는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인간의 정을 전해주는 처녀의 손길을 피부로 느끼며 나는 내 한목숨을 구해준 이 상해처녀를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지켜주리라 심장으로 다졌다. 그번의 생사를 건 사건은 우리 둘 사이에 성스러운 묵결을 맺아주었다.     이듬해 어느 쾌청한 봄날, 새로 무어진 우리 방목조의 여섯명이 처음으로 머나 먼 방목길에 올랐다. 날씨가 잘해주는 때라 우리는 멀리 새로운 풀판을 찾아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저마다의 배낭에는 만두랑 짠지랑. 넉넉히 채워져있었다. 나는 누구 도 모르게 낙시줄과 지렁이통, 작은 냄비를 챙겨넣었다. 말떼의 앞장에는 언제나 깜장말이 서서 기세좋게 달리였다. 소연이가 신명이 났던지“푸른 하늘에 흰구름 뜨고 초원에 말 달리네”라는 몽고노래를 불렀다.     창림림업국과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에는 들꽃이 만개해서 가관이였다. 처녀들은 신이나서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깔깔댔다. 나도 방목이 아니라 처녀들을 배동 하여 들놀이를 떠난듯한 기분이였다. 말떼들도 저쪽에 맛나는 풀들이 있는것을 알기 나 한듯이 잘도 달리였다. 소연이는 내곁을 떠나지 않고 생글거리며 말을 달리고있었 다. 군모같밑으로 흘러나온 가랑머리가 봄바람에 보기좋게 날리였다. 그가 연신 보기 좋게 채찍소리를 내자 산새들이 하늘에 날아오른다.     세패로 나뉘여 말떼를 공제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는 마치 천군만마를 거느리 고 돌격전에 뛰여드는 기분이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골짜기이지만 오늘 따라 어이 이리 기분이 싱숭생숭해나는지, 내가 배양해낸 방목원처녀들의 말탄 모습 이 대견해서일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8년 세월 이 골령에서 청춘을 썩이고있었 지만 내 가슴에는 청춘의 희망이 살아서 꿈틀대고있다는 그것을 놀랍게 재확인할수 있은것이다. 그렇다. 생명은 그저 호흡인것이 아니라 줄기찬 활동인것이다.     내 비록 자유인은 아니여도 심장이 돌이 된것이 아니다.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게 맞다들린 조우는 한바탕의 폭우이고 운명은 곧 구멍이 숭숭한 우산이라고나 할가, 그리고 사랑은 그 우산을 곱게 곱게 기워가고…나는 과연 사랑을 하고있는것일가? 언제부터인가 소연이의 아릿다운 모습이 로총각의 가슴에 서서히 들어서고있다는것을 느끼였을 때 그것이 행우인가? 불행인가? 나로서는 종잡을길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 다. 나는 자유롭던 랑만의 시절을 회상하지 않기로 마음을 도사려먹은지 오래다. 불행할 때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는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내가 제좋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 소연이의 새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머리를 들어보니 말떼들이 방향을 잘못잡고 있었다. 《말머리를 돌려라!》조장의 명령이 쩌렁 울려왔다. 나와 소연이는 서쪽산등성이를 향해 질풍같이 내달렸다. 먼지구름을 일구며 제일 앞에서 달리는 말은 예이제 말썽꾸러기 깜장말이였다. 나는 소연이를 데리고 산등성이를 내리여 말떼앞을 가로질러 나갔다. 서쪽관목림에 들어서기전에 말 떼를 막아 동남쪽으로 돌려야 했다.     채찍소리가 연신 하늘을 찢었다. 우리가 엄엄하게 막아서면 위압을 느끼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릴줄 알았는데 고집이 센 깜장말이 서쪽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앞발 을 쳐들며 울부짖었다. 말이란 놈은 눈동자가 다로 째져서 무슨 물건이나 크게 보인 다. 그래서 말의 눈에는 사람이 전선대처럼 높게 보이여 무서워하는것이다. 그런데 망할놈의 깜장말은 우리를 우습게 보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소연에게 서쪽을 막아서라고 지시하고 말떼속으로 돌진해서 깜장말의 대가 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그제야 겁이 났던지 몇번 대가리를 흔들어대더니 동남쪽으로 내달리였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지만  한편 속이 께림직해났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사정없이 휘두른 채찍에 깜장말이 상하지 않았는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가슴을 움켜쥐였던것이다.     말몰이군들이 말을 후려칠때 제일 겁나하는것이 말이 눈을 다치는것이다. 일단 말의 눈을 못쓰게 만들면 농장에서 쫓기는것은 둘째치고 무슨 징벌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면 지방에 역마로 팔아버리게 된다. 숨이 한줌만해서 말을 달리던 나는 방목지에 도착하여 풀을 뜯는 깜장말한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령리한 놈은 나에게서 맞은 봉창이나 하려는듯 궁둥이를 돌리며 뒤발로 일격을 가할 잡도리였다. 그런대로 그냥 다가가서 강냉이 이삭과 소연이가 내주는 홍당무우로 말을 얼리였다.     먹거리를 탐낸 깜장말이 한번 용서한다는 셈인지 투레질하면서 슬금슬금 다가왔 다. 대가리를 쓰다듬어주며 살펴보니 다행으로 귀도 째지지 않았고 눈도 상하지 않았 다. 말은 정은 정대로 받아주었다. 참으로 될성부른 준마였다. 한시름을 놓은 나는 제자리에 풀썩 들어앉아버렸다. 기분좋은 봄날에 기분잡친 일이라고 할가?    처녀애들은 오래동안 말등에서 싱갱이질했건만 내리려고 하지 않고 그냥 맴을 돌고있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들은 한동안 말을 달리 고나면 돌출부가 안장코숭이에 짓쫗이면서 대단히 불편하지만 녀자들은 말을 타면 은밀한 곳이 자연적으로 애무를 받게 되여서 걷잡을수 없이 흥분된다고 한다. 기분이 날듯이 좋아지고 사지가 나른해지지만 그냥 행복감에 잠겨있는것이다.     방목조내에서도 육담으로 소문난 늙은 총각은 평생 홀아비로 되였지 몽골녀자는 거저 준다해도 가지지 않는다고했다. 어릴때부터 말잔등에서 굴러먹고 커서도 그냥 말잔등에서 살다싶이 하다보니 거기가 더없이 굳어져서 아무 멋도 없다고했다. 그래 서 몽골족녀자들은 한족녀자들처럼 아이를 무우뽑아내듯 출산하지 못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서양녀자들은 그렇게 가둑나무껍질처럼 될가봐 말을 타도 한쪽으로 비스듬히 걸터앉는다고 했다. 참 아는것도 많은 괴짜친구였다.     각설하고, 방목장에 멀지 않은 곳에 흑룡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한갈래 있었는 데 낚시질이 식은죽먹기였다. 나는 조장의 허락을 맡고 강가로 내려갔다. 내가 지렁이 미끼를 끼운 낚시를 던져넣자마자 고기가 물려나왔다. 미처 미끼를 바꿀새 없이 분주히 돌며 련해련속 버들치들을 낚아올리는데 어느새 뒤를 밟아왔는지 소연이 의 달콤한 입김이 뒤덜미를 덥히고있었다. 한참 구경만하던 그가 한번 해본다고 낚시 대를 빼앗았다. 여기 눈먼 고기들은 햇내기낚시군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버들가지를  꺾어서 낚시대를 하나 더 만들다보니 한시간도 안되여 한냄비를 꼭 채우게 낚아냈다.     내가 고기를 많이 낚을줄 알고있던 조장은 벌써 삭정이랑 가득 준비해놓고있었 다. 녀자애들이 국을 끓이는 사이에 우리는 버들치들을 가득 구워놓았다. 상해판에서 어찌 이런 원시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야외만찬을 할수 있었으랴. 그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공연히 입맛이 당기였다. 이 산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꽃다운 쳐녀애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때는 먼후날에 아름다 운 추억이 될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수 없었지만 하여튼 좋기만했다.     방목에서 돌아온후 늘 한적하던 사양실이 녀자들의 웃음소리로 넘치였다. 소연이 네가 자랑질 했는지 휴식일이면 녀자애들이 대여섯씩 몰려와서 말타기를 배워달라고 졸라대였다. 그애들고 그 희한한 기분상태를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는지 몰라도 아무튼 말타기열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렇게 자주 사양실로 오다보니 해괴한 장면들도 많이 구경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발정난 숫말들이 그 희한한 명물을 빼들고 용을 쓸때면 녀자애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볼것은 다보며 깔깔대였다. 때로 말들이 처녀들한테 다가 오기나 하면 나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내 등뒤에 딱 붙어서서 호들갑을 피웠다. 소연이가 자연히 기술지도원이 되고 내가 고문이 되였다. 그런데 결국 긁어서 부스럼 을 만든셈이 되였다. 회색옷을 입은 우파분자가 붉은 후계자들을 잘못 인도하는가고 창부에서 조사단이 내려왔다. 그러나 해박한 처녀애들이 나를 감싸고 돈바람에 화가 복이 되였다.     며칠후 스피카에서 상해처녀들이 위험도 무릅쓰고 휴식날 말타기를 배우고있는데 이는 전쟁준비을 위해서 좋고 앞으로 유사시 수천만마리 말을 전이시키는 준비사업도 된다는것이였다. 또 한바탕 닥달질 당할줄 알았는데 내가 시키지도 않은 좋은 일을 한셈이였다. 물론 나에 대한 칭찬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창부 지도부에서는 숱한 말안장과 자갈, 말굴레를 각분대에 내려보내면서 더욱 많은 기마수들을 훈련해내라고 지시했다. 나는 정식기마훈련원이 되였고 소연이가 조수로 되였다. 소연이가 위신이 하늘만큼 높아졌다. 나도 십년만에 처음으로 몰래 음미 해보는 영광이였다.                                           4. 인간성은 다 죽지 않았다.                                  ㅡ 바라지 않았던 일이 바라지 않던 일보다                                      더 자주 생기는게 인생마당이다. ㅡ         또 일망무제한 북대황 곳곳마다에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을이 왔다. 대추수회 전을 앞두고 군마창지도부에서 사흘휴식을 선포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성미인 나는 힘깨나 쓰는 말네필을 메운 마차에 상해처녀들을 가득 싣고 개암을 따러 산으로 향했다. 처녀애들이 웃고떠들어대는 복새판에 어느새 내 뒤에 붙어앉은 소연 이가 대생산패담배 한갑을 웃옷주머니에 슬며시 밀어넣었다. 가슴이 뜨거워났다. 그것은 담배한갑이 아니라 순결한 이민족처녀애의 포근한 정이였다.     나는 내가 잘 알고있는 개암밭에 이르러 처녀들을 부리워놓고 주의사항을 몇마디 주고는 산으로 올려보냈다. 나는 마차에 붉은기를 높이 꽂아놓아 집합점을 잃지 않도록 잡도리해놓고 개암뜯으러 나섰다. 나는 따온 개암을 미리 보아두었던 소연의 자루에 가득 채워주고나서 소연이가 사준 담배를 피워물었다. 가끔씩 사서 피우던 담배였거만 그렇게 향기로울수가 없었다.     이번엔 흥안령의 특산물인 원숭이버섯을 캐여 소연이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보내려 고 말을 타고 먼산으로 갔다. 이 버섯은 산속에 고기라고 칭송받는데 돼지고기와 섞 어서 볶으면 돼지고기같고 닭고기와 볶아도 어느것이 닭고기인지 가려내기 어려울만 큼 특유한 버섯이였다. 그만큼 캐기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내 정성이 산신령을 감동시켰는데 나무숲을 얼마 헤매지 않고도 호함지게 생긴놈을 여섯송이나 캐였다.        원숭이버섯은 한곳에서 발견하면 마당삼처럼 홀로 돋지 않는법이다. 그래서 나는 새해에도 찾아올것을 생각하고 여러곳에 표적을 해놓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상할세 라 적삼을 벗어 버섯을 싸메고 산을 내렸다. 처녀애들은 주머니마다 개암을 가득 채워놓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하얗던 손들이 개암물이 들어 퍼렇게 되였지만 잔뜩 신들려있었다. 돌아오는 겨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집에 부쳐보낸다고 설레발 을 놓으며 들까불어댔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며 인제 이 처녀애들만큼 숙성했을   녀동생을 생각하며 눈굽을 적시였다.     풍년이 든데다가 날씨마저 잘해주어서 밀가을도 제때에 마치고 청사료랑 채소랑 다 걷어들였다. 총부마당에서 풍년가을을 경축하는 대회가 열렸다. 꽹과리 북소리가 동북변강의 하늘에 메아리쳐갔다. 저녁에는 영화도 세편이나 돌리였다. 영화를 돌리 는 그 긴긴 시간을 소연이는 내곁에 붙어앉아서 쏙닥거렸다. 나만 공연히 민망스러 워졌다. 하건만 소연이는 남들이야 수군거릴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듯 나와 접근하는것 을 거의 숨기지 않고있었다. 참으로 인정있고 도담한 녀자애였다.     고난이란 평등을 낳는다. 고난을 겪고있는 사람을 동정하는것은 녀자들이 천사들 과 같이 가지는 감정이다. 또 다른 시점에서 처녀의 동정심이란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하인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언제 시작하든 내가 그 동정심을 사랑으 로 승화시킬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소연이의 진속을 확정할수 없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좋아하고 생각해주는 아릿다운 녀자가 있다는것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소연이가 찌들어가는 내 생명에 고목봉춘같은 소생의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것에 목이 메였다. 나는 확실히 소연이의 말없는 그 힘에 받들려 자칫 무너져 내릴 내 생명을 오를처럼 활기차게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 어둠속에서 소연이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손이 내 북두갈구리같은 손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가슴이 후둑후둑 뛰고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생각같아선 녀자애를 설설 끓어번지는 가슴 에 꼭 그러안아주고 싶었다. 아니 이 복마전같은  세상을 피해 말잔등에 싣고 천리 고 만리고 도망쳐서 우리들만의 락토를 찾아가고싶었다.    국경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였다. 생각밖에 별명이 쥐새끼라는 상해지식청년이 사양실로 찾아들었다. 그 애의 손에 큼직한 들가방이 들려있었다. 돈이 급히 수요된 다면서 싸게라도 처리해달라고 간청하듯 청탁해왔다. 내가 후과를 념려하여 거절하자 거의 울듯이 매달리며 따거까지 개여올리는데는 밀막아버릴수 없었다. 만약 이 일을 처리해주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보아하니 사정이 급한것같았 다. 나는 울며겨자먹기로 응낙하고야 말았다.    가방을 헤치고보니 모두 침직물이였다. 세수수건 하나도 천표를 내고 사야 하는 판에 천표도 받지 않고 팔아치우겠다는것을 보아서 이만저만한 사연이 아닌것같았다. 나는 선걸음으로 가방을 들고나가서 농장원들의 숙소나 집에 찾아가서 어렵사리 다 처리해버렸다. 천표도 내지 않고 베개수건이나 침대보같은것을 산 집에서는 딸애의 지참품을 마련했다고 좋아들 했다. 그런데 물건은 적고 임자는 많은 탓에 세수수건 하나 사지 못한 한 사람들이 입귀가 뒤틀리며 수군덕거리더니 이튿날로 창부에 고해 바치고 말았던것이다. 진실이 장화를 신고있는 동안 헛소문은 온 농장을 돌아다녔다. 우파분자가 어디서 후무려온 물건인지 몰라도 암거래를 하다가 들통이 났다는것이다.     그날 밤중에 2분대의 간부 몇이 민병련장의 령솔하에 나의 숙소로 들이닥쳐 수색을 벌렸다. 내가 사연을 말하며 해석하려 하였지만 한켠에 밀치고는 쥐구멍마저 샅샅이 뒤지였다. 아무리 수색해봐야 홀아비냄새가 나는 이부자리에 헌옷가지들밖에 없었다. 일기책을 뒤져냈지만 몽땅 조선글인지라 그대로 땅바닥에 동댕이치고 한참 짓밟고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공연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였다. 정직한 마음의 단 하나의 약점은 남을 쉽게 믿고 동정하는것이였다.     이틑후 2분대 구락부에서 투쟁대회가 열렸다. 사면에 《지식청년재교육방침에  마수를 뻗친 우파분자를 타도하자. 》《조선수정주의개다리를 타도하자》등 요란한 구호들이 나붙어있었다. 그런 엄엄한 분위기속에서 한메터나 되는 고깔모자를 쓰고 나서니 두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사달은 쇼펑이 국경절에 고향집에 방문할 청가를 받지 못하자 상해로 도망쳐버린데서 크게 번져진것이다. 기차표를 살돈이 모자라니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팔아서 보태였다고 한다.     내가 그저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도 일호차 착이 없이 고스란히 돌려주었는데 내가 무슨 죄란말인가? 그러나 입이 열개라도 말할수 없는 준엄한 상황에서 그저 당 할수밖에 없다. 평시엔 힘꼴깨나 쓰는줄 알고 감히 어쩌지 못했던 본지방지식청년들 이 이번 기회에 앙갚음하려고 윽윽 벼르고있었다. 옆구리에 2백근짜리 밀마대를 끼고 3층집높이만큼한 밀두주에도 씽씽 올라가는 장골인지라 한둘이 달려들어도 별로 버거울것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내 등뒤에 체육학교의 선수단출신이라는 왕복래, 진대성을 비롯한 상해지 식청년들이 8대금강처럼 버티고 선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였다. 그들의 얼굴은 본지 청년들에 못지 않게 살기등등했던것이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던 할빈패들이 단박이라도 내대갈통을 까부시지 못해 우둘대면서도 감히 행패를 부리지 못하는것이였고 상해청년들은 입으로만 타도를 부르며 기세를 돋굴뿐이였다.     비판대회가 끝나서 사양실에 돌아온 내가 의기소침해서 한숨을 쉬는데 소연이가 도적고양이처럼 새여들었다. 그애의 말에 의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은 상해청년들이 단합해서 은근히 보호해준탓이라고 알려주었다. 후에 안일이지만 그들을 동원한데는 소연이 힘이 컸던것이다. 소연이가 나를 두번 살려준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후 나는 그런 투쟁은 열번 당해도 두려울것 없다고 배포유해졌다.     쇼펑의 사정도 듣고보니 후회할 일이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가 급병에 들어 림종 전에 막내아들의 얼굴을 보고죽겠다고 해서 전보를 보내왔는데 총부에서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던것이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그가 어찌 도망치지 않을수 있으랴, 같이 온 친구들도 자기가 가지고있던 물건들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 사정을 다 알고있으 면서도 하나를 허가하면 련쇄반응이 일어나서 수백명의 요구를 막아낼수 없을것으로 단정하고 각박하게 굴었던것이다.     한창 호미난방이던차 나를 잡아내여 간접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던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창부지도부나 지방세력들에게 반감을 가지고있던 상해청년들이 공공연하게 나서지는 못하고 소연의 호소대로 음으로 양으로 나를 보호하기로 단합된것이였다. 나는 평시에 상해아이들에게 별로 호감을 가지고있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을 거치고 나서 마음이 확 바뀌였다. 그들도 소연이를 통해서 내가 그저 우파도 아니고 량심이 있는 조선청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고 차차 친구로 지내게 되였다. 참으로 말들보다 못한 인간들이 인간성을 말아먹고 있는것이 아니랴, 나는 그저 깜장말의 목을 그러안 고  소리없이 울었다.                                                          6.렬화속에 생사련                                        ㅡ 고난은 참된 인간이 되여가는 과정이다. ㅡ       동토지대의 겨울은 일찌기 찾아든다. 첫눈이 소복히 내리였다. 아침에 일어나보 니 북극의 풍광 천리에 얼음얼고  만리에 백설이였다. 꿩사냥에 알맞춤한 날이였다. 총이 없어 네발가진 짐승은 못잡아도 꿩사냥은 불이 번쩍나게 잘 했다. 나는 동남산 에 올라가 콩밭을 여기저기 쓸어내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콩알들을 뿌려놓았다. 콩알은 물론 청산가리를 속에 넣고 잘 다듬어놓은 미끼들이였다.     얼마후 잔뜩 굶주렸던 꿩들이 무리지어 내렸다. 콩알을 주어먹은 꿩들이 하나들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식경이 안되여 열다섯마리나 자루에 잡아넣었다. 사양실에 돌아오자바람을 꿩의 배를 가르고 내장들을 말끔히 걷어냈다. 조금만 늦추어도 청산 가리가 온몸에 퍼지면 큰 일이 나는것이다. 나는 개털모자를 펄럭이며 공소사라 향했 다. 꿩을 팔아 필수품서껀 서너가지 사고 술병도 채웠다.     밤, 창밖에서는 죽을놈은 나오라고 눈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고독한 나그네처럼 잠잠하던 바람이 마침내 노호하기 시작한것이다. 때국이 흐르는 남비에 꿩고기탕을 끓여놓고 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삼라만상이 동장군의 호령속에 움츠러 들고 오직 바람만이 이 동토지대를 휩쓸며 요동친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앉았 노라니 또 다시 슬픔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나는 슬픔의 덩이를 눈덩이처럼 굴리며 예이제 내 운명과 고통에 몸부림쳤다.     가슴속에 파고드는 고통은 넋마저 얽어매는 쇠사슬이다.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것인가? 고통속에서 얻어진다는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한것으로 만든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가? 이 우주에 어떠한 폭풍도 잠잠해 질때가 있는 법이지만 문화대혁명인지 광란인지 하는 이 지랄은 언제면 끝이 날건가? 나에게 있어서 고통의 보수가 경험이 될수 있단말인가? 참을수 없는 이 지리 한 아픔은 갈수록 피가 림리하다.     오래동안 아팠다는것은 과연 가벼운 상처라는 설명인가? 나는 알고있다. 고통을 이겨내려면 죽음보다 더 강한 용기가 수요된다는것을, 과연 나에게 그것을 이겨낼 신념이 어디서 생길수 있는가? 운명은 개연성을 비웃는다. 《운명에 굴복하는 얼빠진 자들이여, 슬픔이 있으라》라는 명구가 뇌리에 맴돌이친다. 나에게 신념이 살아있다 면 누구도 나를 넘어뜨리지 못할것인가? 그 신념이 과연 나를 태양에도 가는 인생길 에 매한걸음을 비쳐줄수 있을것인가? 상념은 상념을 불러오고 그 상념은 마침내 흐느 낌과 눈물을 몰아올뿐이다. 나는 술한병을 굽내고 그자리에 폭 꼬꾸라지고 말았다.     북위 51도선에서 살아도 내 마음의 위도는 북극권에 그어졌으니 내내 얼어붙어 녹을줄 모르건만 다섯달씩이나 행패부리던 지독한 동장군도 물러가고 또다시 새 봄은 이 땅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사방 백리를 차지하고도 성차지 않은지 지도부에서 올해 또 땅을 개간한다고 설쳐댔다. 인간이 자연을 너무 혹독하게 닥달질 하면 그 보응을 받게 되는 법이다. 방화선도 제대로 치지 않고 불을 놓기에만 급급해 한 탓으로 벌판 에 놓은 불이 화광이 충천해서 산으로 치달아올랐던것이다. 밀파종도 방목도 다 중지 시키고 진화작업에 총동원되였다.     그날 내가 방화지휘부에 지원물자를 부리우고있는데 스피카에서 긴급통지를 내고 있었다. 아침에 동서풍이 불길을 몰아 흥안령기슭으로 달리던것이 점심때부터 서북 풍으로 바뀌면서 군마창의 뒤산으로 불길이 돌아섰다는것이였다. 짐을 다 부리웠지만 곧장 2분대로 돌아갈수 없음을 직감했다. 키를 넘는 풀숲으로 양밸같이 오불꼬불한 좁은 길로 마차를 몰고가다가는 산불에 갇히기 십상이였다.     말이란 워낙 불만 보면 떡 뻗치고서서 엉덩이에 칼이 들어가도 죽여줍시사하고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였다. 할수 없이 말세필과 마차를 방화지휘부창고지기에게 맡기 고 물에 젖은 마대와 만 두를 넣은 자루를 안장에 비끄러매고 나의 적토마에 올랐다. 얼마가지 않아 산등성이에 연기가 자욱한것을 보았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길을 따라 말을 달리노라니 발굽이 뜨거워난 말은 네굽을 안았다.     산등성이에 도달하였지만 말은 제자리에서 맴돌아칠뿐 더는 앞으로 나가려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자욱한 연기속에서 저녁해가 어렴풋이 보이였다. 말은 두귀를 쭝깃거리며 두발을 높이 쳐들더니 연신 효용했다. 말을 진정시키며 귀를 기울여 동정을 살피노라니 서쪽켠에서 무엇이 울부짖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면 흔히 만나는 승냥이들이지만 온산에 불길이 타번지고 해도 아직 넘어가지 않았는데 승냥이가 울부짖을리 없었다.     말잔등에 거의 올라서다싶이 하며 방향을 잡지 못해하는데 산아래 새밭쪽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오는듯 싶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타래쳐오르는 연기속에서 한무리 사람들이 이쪽으로 뛰여오는 모습이 보이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침에 소연이가 불끄기대오와 함께 북쪽산으로 갔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게다가 들려오 는 소리가 녀인들의 새된 울부짖음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이 젖은 마대와 만두주머니를 끌러내린후 말고삐를 말목에 친친 감은다음 말배때기를 죽어라고 냅다질렀다. 호된 충격을 받은 말은 얼결에 네굽을 안고 오던길로 들고뛰였다. 말은 이제 더 근심할것 없었다.     나는 저만치 뒤에서 불기둥을 솟구치며 쫓아오는 불길앞에서 허둥지둥 내달리는 녀자들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혁명열의 하나만 안고 불끄기에 나선 상해처녀들이 분명했다. 한초도 지체할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산아래 로 내리뛰였다. 오직 애어린 녀자애들을 불속에서 구해야 하겠다는 일념을 안고 걸음 에 바람을 일구었다. 래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래도 유일한 방도를 댈수밖에 없었다. 즉 맞불을 놓는것이였다. 그리고 녀자들쪽으로 천방지축 달려갔다.     짐작했던대로 진소연네 짝패들이였다. 나를 발견한 소연이는 내 목에 와락 매달 렸다. 그러나 그의 응석을 받을새가 어디 있는가? 혼비백산해 갈팡질팡하는 녀자애 들을 돼지몰듯 불길이 내놓은 커다란 공지에 들이몰았다. 뒤미처 불길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기세사납게 달려오던 불길은 량옆으로, 머리우로 비껴지났다. 여느때 같으면 얼굴에 먼지가 좀 끼였다고 킬킬대던 녀자애들이 연기속에서 서로 부등켜안고 엉엉 울어댔다. 홍보서를 넣고다니던 해방군가방들은 어디 팽개쳤는지 손에는 싸리나무 가지들만 달랑 들고있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숨막힐듯 매캐하던 더운 공기도 차츰 물러갔다. 그대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종일 굶었을 그들에게 만두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처녀애들은 부끄러움 도 계급의식도 잊은듯이 내 가슴에 매달리며 엉엉 울어댔다. 그러는 녀자애들을 가볍 게 다독여주느라니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젊은 생명들을 구했다 는 한없는 기쁨에서였으리라. 마른 만두나마 요기를 말린 처녀들이 조금 진정되자 귀로에 올랐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타나남은 짐승의 똥들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여오르고 있었다.     불에 맞아 밑둥이 거멓게 그을린 봇나무를 만나자 칼로 삼각형모양으로 껍질을 벗겨냈다. 맑은 물방울들이 맺거니 덧거니했다. 나는 우스개삼아 봇나무에 입을 맞 추라고 권고했다. 처녀애들은 목이 말라 마른 입술을 감빨면서도 반신반의하는듯  주춤거렸다. 내가 알아듣기 쉽게 해석해서야 저마다 봇나무즙으로 타서 갈라진 입술 들을 나무에 대였다. 시내물도 없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무의 가지를 살피면 살길이 나진다. 참나무나 봇나무를 살펴보면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한 쪽이 남향작이 다. 그리고 나무에 파란 이끼가 돋은 쪽이 틀림없이 북쪽인것이다.     그제야 도시처녀들이 탄복하며 감탄성을 지르는것이였다. 여기 대흥안령속에서는 아무리 맑아보여도 웅덩이물을 마셔서는 안된다. 비상을 풀어놓은 물처럼 대번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수 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처녀들의 정신을 홀려내며 걸음을 다그쳤다. 드디어 아득히 먼곳에서 불빛이 깜박이였다. 군마창총부였다. 그런데 제일 나어린 처녀애가 발을 몹시 쩔뚝거렸다. 신바닥들을 검사해보니 불에 녹아빠져서 구 멍이 펑 뚤려있었다. 나는 다시 봇나무신세를 지지지 않을수 없었다. 분홍색속껍질을 벗겨내여 신바닥에 깔게 하였다. 그제야 모두 발이 편해서 길을 축내였다.     우리가 한창 산등성이를 내리려는데 풀숲에서 버스럭 소리가 났다. 승냥이 같지도 않은 덩치가 커다란 물건이 스적스적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기겁한 녀자 애들이 이번에도 내 등뒤에 몰려들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하나만 믿고 에워싸는 녀자 애들이 측은해져서 나는 앞을 막아나섰다. 험악한 이 고장에서 벼라별 일을 다 겪은 나는 웬간히 담이 커져있었다. 손전지를 꺼내여 비춰보니 이게 웬일인가? 참으로 귀 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언녕 창부에 가있으리라고 믿었던 나의 적토마가 아닌가?     나는 너무 감동되여 말의 목을 와락 그러안았다. 말못하는 짐승도 내 감동을 알아챘는지 연신 코투레질하며 주둥이를 비벼댔다. 불속에서 요행 살아나왔는데 애마까지 가지 않고 마중왔으니 어찌 감동되지 않으랴. 나는 입속으로 속삭였다. 《내 사랑하는 애마야, 정말 고맙구나. 너는 우리 박정한 인간들보다 더 났구나》 나는 호주머니에서 소금알을 찾아내여 나의 애마를 위로해주었다. 아무튼 소설같은 장면이였다. 발을 상해서 잘 걷지 못하는 처녀애를 말에 태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나는 거의 말목을 안다싶이 하며 걸었다. 절친한 친구하나 없이 소외당하고 사는 나에게 말보다 더 미더운 친구가 있으랴, 며칠후, 해방군보에는 동북변강의 군마창의 녀상해지식청년들이 죽음도 겁내지 않고 산불끄기에 나서 혁명청춘의 기개를 떨쳤다는 요란 기사가 실렸다. 진소연이 네는 모두 3등공신이 되였다. 그러나 그 공신들을 누가 불속에서 구해냈던가? 나는 또 한번 환멸에 치를 떨며 오열을 삼켰다.                                                  6.  세월의 저 언덕에서                                 ㅡ 서로 마주보는 청산은 만날수 없어도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만날수 있는것이다. ㅡ       재난의 십년세월이 흘러가고 새 시대의 첫봄이 왔다. 내 인생고가 력력히 찍힌 수난많은 고장에 다시 소생과 약동을 안고 새 봄아 찾아왔다. 겨우내 얼고 멍들었던 산과 벌은 마음껏 푸르러간다. 온 세상이 푸름을 안고 생명의 약동으로 끓어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 해의 봄은 나에게는 심드렁하게 느껴졌다. 짓밟힌 넋에도 정녕 봄이 깃들수 있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봄날일수밖에 없으리라.     여느때처럼 말떼를 몰고 동남산으로 방목을 떠났다. 그런데 마음은 더업이 허전했다. 3년세월을 밤낮 없이 얼굴을 맞대고 살며 알뜰히도 키워낸 깜장말을 비롯 해서 수십필의 군마들이 어느 기병대에 복역하게 된것이다. 사람들과는 정을 나누지 못하고 짐승들과만 정을 나누며 살아온 나로서는 마치 절친한 친구들과 헤여지는 그런 석별의 정을 안고 떠나보냈다.     내 손에서 마지막으로 강냉이 이삭을 받아먹고 손바닥에 놓은 소금을 받아먹는 말들도 헤여짐을 알기나 한듯이 주둥이를 내 가슴에 들이밀다가는 앞발로 땅을 탕탕 차는것을 보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소연이도 불끄기에 공신이 된 덕분 으로 상해에 돌아가게 되였다. 말잔등우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소연이가 추천받아  상해상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아안게 된것이다. 나는 제일처럼 기쁘기도 하면서 마음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리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소연이의 마음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고히 보내게 되였지만 사실 나의 마음은 시종 모순되여 있었다. 거의 가망이 없는 올랴를 잊지 못하는 탓도 있거니와 보다는 소연이와 한길로 걸어갈수 없다는것을 자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불붙는 처녀의 순정이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 고마움에 보답하려는 커다란 희생이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비록 그애가 소원이여서 자기를 헌신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리기적으로 점령해버릴 용기가 나지않았다.     동남산마루의 커다란 봇나무아래 헌솜옷을 펴놓고 벌렁 드러누워 허허 창공에 정처없이 떠도는 쪼각구름에 향수를 얹으며 구슬픈 명상에 잠겨있었던지라 내 발치에 눈에 익은 점백이의 미끈한 앞다리가 오래 서있은것도 몰랐다. 말이 요란스레 투레질 해서야 소스라쳐 일어났다. 언제 왔는지 들꽃 한묶음을 꺾어든 소연이가 정깊은 눈길 로 나를 굽어보고있었다.     《오빠, 축하해줘요, 그리고 나도 오빠를 축하할게요.》    꽃다발을 내가슴에 안겨주며 예이제 사람의 넋을 사로잡는 고운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소연이는 이 몇해동안 나에게서 몰래 조선말을 배워왔다. 나의 안해가 되자면 조선말을 잘해야 된다면서 열심하던 그였다. 원래 총기좋은 애인지라 글자까지 알게 되였고 단둘이 있을 때면 별로 막힘없이 조선말로 의사를 표달할수 있었다.     곱게 차려입은 소연이와 말몰이군아저씨의 초라한 모습을 누가 보았으면 영화장 면을 찍는가고 착각할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게면쩍게 웃으며 그의 통통해진 어깨에 두손을 가볍게 올려놓고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같이 서느러운 두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이 오빠가 축하해줘야지. 참 잘 되였어, 내가 대학가는만큼 기쁘다. 그런 데 네가 날 축하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    《오빠, 나 신새벽에 총부의 정치부에 갔다가 이제 돌아오는 길이예요. 상해로 돌아가는 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정치부 왕주임이2분대에 내려보내는 공문을 나에게 부탁하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공문인지 어디 한번 맞춰봐요.》     그가 아이처럼 졸라댔지만 내가 그냥 시무룩해 있자 내 어깨에 동동 달리며 어서 맞춰보라고 새롱댔다.     《요, 장난꾸러기야. 내가 무얼 맞춰낸단말이냐? 세상이 돌아가는 일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 않니? 그리고 기어이 더 축하라면 위대한 부통수가 운두루한에 승천하고나서 그렇게 기세부리던 맹장들이 기가 푹 죽어지내는 꼬락서니이지. 》                          《아이참, 누가 그걸 말하나요, 쥐구멍에도 볕이 들게 되였단 말이예요. 그 누더기 솜옷을 훌훌 벗어던지게 됐단말입니다.》 그래도 내가 오리무중에 빠진 바보상을 짓고있으니 성미 급한 소연이가 기관총을 쏘아대듯 말을 뱉아냈다. 《 보고, 특대소식, 최해동지의 잘못된 판결을 시정함. 1972년 5월 1일부터 군마창자제중학교 교원으로 취임할수 있음을 통지함, 보고 끝》     말을 마친 소연이가 제비처럼 내 가슴에 날아들었다. 너무 갑작스레 들이닥친지 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연이을 안은채 뒤로 벌렁 넘어졌다. 소연이가 깔깔대며 내 두볼에 키스벼락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급급히 웃옷단추를 끌러댔다.   《소연아, 너 지금 뭘하는거야? 》    《오빠, 나 오늘을 기다렸어요. 인제 우리가 누구의 눈치를 보겠어요? 둘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판인데. 우리 결혼하자요, 지금 당장 결혼해요, 나 다 내여줄게, 다 가지세요.》 나는 얼결에 소연이를 와락 끌어안고 소리없는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미동없이 있다가 리성을 되찾은 나는 소연이를 살며시 떼여놓고 일어나앉아 하얀 가슴을 드러 내고 있는 소연이의 옷에 단추를 천천히 천천히 끼워주었다.   《그럴수 없어, 이 바보같은 파랑새야, 우린 길이 달라, 넌 이제 대학생이구 상해아가씨가 될 사람이야,》   《아니야요, 내가 언녕 말했잖아? 나 당신의 안해가 되고싶고 당신처럼 잘 생긴 아들을 낳아서 키운다구,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것을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일게 응? 인제 우리를 방해할 아무것도 없잖아, 왜 내가 마음에 안들어?》    《그런게 아니야,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처녀야,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너 아니? 사랑은 두사람이 마주 쳐다보는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것이다. 난 이미 시들어버린 사람이구 넌 곧 하늘에 날아올라 생명의 찬가를 부를 종달새란 말이다. 난 너를 어디까지나 친녀동생처럼 여기고싶다. 내 마음을 알겠니? 요 귀염둥이야,》   《아니예요, 흥안령의 기념으로, 아니 봇나무의 사랑으로 우리 두사람의 심장을 이자리에서 새겨다질래요. 결혼은 천천히 하더래도 먼저 당신의 아들을 가지고 싶어요, 상해에서 키우면서 당신을 기다리겠어. 당신의 꿈처럼 먼훗날 당신의 고국이 통일되면 아들딸 앞세우고 함께 찾아가자요, 응?     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말을 잃어버렸을 때 나를 살려준 사람이 오빠였지요. 지난번 산불이 났을 때 우리를 구하려 달려온 오빠, 봇나무즙으로 내 입술 추겨주던 오빠, 내 신발에 봇나무껍질을 곱게 깔아주던 오빠, 내 자루에 개암을 가득 채워주었던 오빠, 원숭이버섯을 몰래 말리워서 내 가방에 넣어주던 오빠, 너무너무 고마운 사람, 조선남자들은 범처럼 무섭다던데 당신은 생긴것처럼 보살님이였어, 아니면 범가죽을 쓴 양이였나? 오빠, 내 사랑을 받아줄거지? 나 당신의 허락없이 절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을거야. 》     소연이는 다시 단추를 벗기였다. 그리고 내가슴에 폭싹 안겨들었다. 한껏 부푼 젖무덤이 주는 이름할수 없는 감각이 가슴에 뭉클 부딪쳐왔다. 오래동안 묵어자빠 졌던 웅성이 욱 일어서고있었다. 그러나 그냥 이렇게 밀고나가서는 안될일이였다. 나는 책략을 바꾸기로 작심하고 소연이를 구슬렀다.     《그래, 나도 소연이를 좋아했어, 오래동안, 아니 사랑했어, 하지만 결혼은 천천 생각해자구 응? 나도 이제 자유의 몸이 되였으니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거다.자 우리 이렇게 할가? 넌 먼저 상해에 돌아가서 학교다니구, 난 할빈에 돌아가서 가정 일이랑 잘 처리해놓고 널 찾아갈게, 그럼 안돼? 그러나 오늘 이런 곳에서 내가 목숨처럼 아끼던 널 허투루 꺾고싶지 않아, 너를 위해서, 또 나의  인격을 위해서 말이다. 자, 너 내 말을 잘 듣는 애였잖아, 내가 단추를 채워줄게, 우리 신비의 화촉동방을 남겨두자구, 응? 이 루추한 곳에서는 네가 너무 아까워, 안그래?》     나의 진심어린 말에 소연이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내 품에서 오래오래 떨어지지 않았다. 한식경이나 지나서 자리를 털고일어난 우리는 봇나무에 우리 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방금 인간들이 어떤 희비극을 벌렸는지 알배없다는듯 말들은 저 희들끼리 갈개고있었다.     며칠후 소연이는 눈물을 머금고 수난의 고장을 떠났다. 나는 처지가 처지인지라 배웅해주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눈길로 바래기만 했다. 얼마후 나도 꿈처럼 차례진 교단을 사절하고 떠난지 십여년이 되는 할빈에 돌아왔다. 그러나 가도와도 슬픔과 괴로움을 안겨주는 내 운명의 궤적이였다. 그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숙성한 동생 들이 눈물로 맍아주었다. 집안일을 두루 배치해놓고 올랴를 찾아나섰다.     올랴가 그 란시판에 츄린에 그냥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고 곧장 마쟈커우마을로 찾아갔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나를 기다린것은 허무였다. 올랴는 그곳에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당국에서 로씨야사람들을 추방해버렸다. 조국으로는 갈수 없었던 그들이였던지라 몽땅 카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하였다. 올랴네도 그 틈에 끼여 카나다로 날아간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 선량한 로씨야령감이 감옥에서 풀려나와 가족들과 함께 이민으로 떠났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올랴도 잃게 되였다. 사랑은 아름다운 꿈이라지만 나는 꿈꾸는 호시절을 빼앗긴 불행아였다.     …고달픈 인생길에 어느덧 30년 세월이 굴러갔다. 소연이는 처음 몇해는 사흘이 멀다하게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여러가지 사연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만 극동지구에 주저 앉아 농민질을 하다가 장가들어 가정을 이루었다. 신주대륙에 개혁개방의 춘풍이 불었다. 나는 새 시대의 서막을 열어놓은 등어른의 혜택을 단단히 입었다. 흥안령골 짜기에서 말몰이군질 하던 우파가, 극동지구에서 가난을 파먹으며 농사짓던 농부가 수도 북경에 국제무역회사를 꾸리고 장사길에 오른후 내 후반생에 또 다른 인생극을 쓰게 되였다.     십여년의 분투끝에 북경에 진출하여 민족무역공사를 차리게까지 되였으니 산천 은 의구해도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가보다. 그동안 국내에서의 장사길이 차차 넓어지 면서 대만기업가, 향항, 마카오의 대상인들과도 인맥을 맺고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벌려나가게 되였다. 지난세기90년대초반 대만의 굴지기업사장단과 평양사이에 려계 를 달아주고 대표단을 거느리고 무역협정을 맺으러 나갔더랬다. 그것이 반연이 되여 헤여진지 30년이나 되는 소여이를 만나게 되였으니 인생이 희비극이 아니겠는가?     평양서 벌린 일이 순조롭게 성사되였다. 그런데 대표단속에 상해에서 수천명의 로동자를 가진 봉재공장을 경영하는 채선생이라는 재벌이 있었는데 나의 출신경력을 대개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못하며 흥안령숲속에 말떼나 방목하던 죄인이 어엿한 무역 일군이 되였다는것은 개천에서 룡마난격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안해도 그 군마창의 출신이라 하였다. 놀라운 소식이였지만 소연이와 련계시킬 상상은 못했다. 화성그룹은 조선에 무진장한 고령토개발에 투자하기로 하고 채선생은 평양에 대형피복공장을 세우기로 합의를 보았다. 협정을 원만히 마치게 된 대만화성그룹의 총재가 기분이 난김에 대북에 돌아가자마자 김일성주석에게 고급위생실설비를 300틀 이나 선물하는 바람에 조선땅에서 나의 위상도 크게 올라가게 되였다.     조선서 돌아와 얼마 안되였는데 생각밖에도 상해의 채선생이 북경 ㅡ상해왕복비 행기표를 보내면서 가급적으로 빨리 왕림해달라고 당부해왔다. 그동안 상해에 갈 때 마다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 소연이가 떠올려져 옛날 주소대로 두루 수소문도 해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이미 중년사나이들이 되였을 상해친구들도 바다에서 바늘찾기였다. 채선생이 어째서 오라는 말은 아니했지만 상해는 나에게서 늘 충격 적인 도시였다. 이번에도 착잡한 심정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천천히 출구를 나서니 내 이름자가 큼직하게 박힌 패쪽을 든 멋진 젊은이가 기다리고있었다.   《북경에서 오시는 최선생이지요. 오시여 반갑습니다. 채총재를 대신해서 마중 나왔습니다. 자 어서 가시지요》   《감사하오. 신세를 좀 집시다》     수인사를 마친 나는 그가 안내하는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일제 벤츠자가 대기 하고있었다. 차는 오래동안 달려 채선생이 경영한다는 커다란 공장구내에 들어섰다. 그런데 채선생이 공장대문에서부터 사무청사까지 화려하게 차림한 녀인들을 내세워 환영까지 할줄은 몰랐다. 나는 난 생처음 꽃을 흔들며 환영해주는 특혜를 받아보았다. 버릇처럼 뒤몰리며 살았던 어제와 오늘의 나이 처지를 대비하게 되면서 감구지회가 괴여올랐다. 어깨를 으쓱해야 하는가? 아니면 틀거지를 피워야 하는가?     사무청사어귀에 채선생이 만면춘풍이 되여 서있었다.     《최선생, 이렇게 한사에 모시게 된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길에 수고많으 셨습니다. 자, 안으로 드십시다.》     호화로운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전부터 채선생은 극구칭찬했다.    《나는 세계각지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최선생의 주선으로 처음 가보게 된 평양이 제일 인상이 깊습니다. 사람들이 교양이 높고 례절도 발고 책임의식도 높아서 정말 놀랐습니다.》     나는 혹시 말말가운데 무슨 민감한 문제라도 튀여나올가봐 그저 례절스럽게 웃기만 하였다.    《그랬던가요, 좋은 인사을 받았다니 시름을 놓았습니다.허허허…그런데 채선생께서 이번에 무슨 일로 소인을 초청하셨는지 궁금합니다그려.》     채선생은 그저 《호와, 호와…자 술이나 한잔 하면서 천천히 회포를 풉시다. 하 하하…》하면서 신비롭게 눈웃을 짓기만 하였다.     나는 이름을 알수 없는 호화유람선연회실에 안내되였다. 금방 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굳어져버렸다. 세월은 오래 흘렀어도 늘 보는듯 생생히 떠오르던 소연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던것이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지숙한 녀인이 되였건만 아직도 그때의 아름다움이 성숙에 받들려 더 눈길을 끌었다. 소연에 게 있어서 미모란 용모, 몸매, 넋이 조화된 통일체였다. 표면적인것이 아니라 개성적 인 거동에서 나타나는 예지와 정열이기도 했으리라. 채선생이 례의 그 신비로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최선생. 이 사람을 잘 알고있겠지요? 나의 부인 진소연입니다. 참 좋은 인연 들이여서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였으니 하느님의 안배가 아닐가요? 허허허》     소연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엎어질듯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두손을 꼭 부여잡았다.     《오빠.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이게 몇해만이예요, 난 영영 못만날줄 알았는데 흑흑…정말 반가워요》     오랜 세월속에 조선말을 싹 잊기도 했으련만 아직도 잊지 않고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나의 눈에도 뜨거운것이 줄을 타고내렸다. 사람이 일생 에서 몇번이나 정신적인 희열을 느낄수 있는가? 천지가 개벽하여 지금 서로의 처지가 달라졌지만 세월속에 얽힌 사연과 정은 변할수 없는것이다. 나는 소연이가 돈많은 부 자의 부인이 되여서 기쁘기보다 채선생같은 신사의 부인이 되여 행복하게 보낼것이라 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더없이 기뻤다. 년장자로서만 지을수 있는 자애로운 나의 눈길속에서 소연이는 또 한 번 어깨를 들먹거렸다.     《따거,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먼저 소연이가 부어드리는 술을 받으세요.》      굽높은 커다란 술잔에 붉은 포도주가 철철 넘치게 부어졌다. 나는 포도주 한잔 에도 관운장의 대추빛얼굴이 되지만 금구를 깨기로 작심하고 부어주는대로 마셨다. 나는 처음 기분으로 마시는 술은 취하지 않는다는 음주예술의 묘미를 터득할듯 싶었 다. 풍도가 있는 신사인 채선생은 식사가 끝내기 바쁘게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소연이가 손가방에서 사진을 꺼내보였다. 사진은 누렇게 색바래있었다. 그러나 하얀 봇나무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있는 한 애된 처녀의 모습은 결코 색바래지 않았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노라니 색이난 군복에 혁띠를 띠고 군모를 단정히 눌러쓴 군마창의 천덕꾸러기 진소연이를 다시 실물로 보는듯해서 코마루가 시큼해졌다     선창으로 나갔다. 유람선룡머리란간에 딱 붙어서서 출렁이는 물소리에 온 마음을 실었다. 두눈이 다시 흐릿해지며 황포강에 어른거리리는 불빛이 수십갈래로 갈라지고 산산히 부서지는것 같기도 했다. 소연이가 나를 홱 잡아채여 돌려세우더니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세차게 흐느꼈다.    《오빠, 니 쩐 화이야, 왜 그렇게 기다리는 나를 버렸나요? 얼마나 오래동안 기다렸다구요, 단 한번이라도 회답하구 내한테 와서 어째서 결합될수 없다는 리유를 접수할수 있도록 해석했어야 도리가 아닌가요? 그럴 자신감이 없으신거지요? 내가 나중에 당신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아요?》      나는 소연이를 살며시 밀쳐내며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소연이,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내가 미안하게 했으니까 오늘 상해녀인 소연이 가 있게 된거아니요.》     《그런 창백한 변명을 하지말아요. 물론 나 지금 남편을 나무리지 않아요. 그러 나 훌륭한 남자라해서 다 미만한 사랑은 아닌거예요. 그리고 한 처녀의 순결한 첫 사랑은 단 한번이듯이 나의 첫남자는 당신 하나뿐이얘요. 인젠 다 쑤어놓은 죽이니까 밥이 될리야 없지요. 아무래도 천생배필이 아니였던거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였지만 나 정말 당신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어요. 더구나 남편이 점점 풍류객으로 나돌 때 그렇게 충성스러운 사나이였던 당신생각에 가슴이 찢긴단말이예요. 흑흑…》     채선생이 평양에서 돌아와 여기저기서 찍은 기념사진들을 안해에게 보여주었는데 대동강변에서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에서 어덴가 본듯한 모습을 보고 반신반의 하는데 조선족이고 북경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단다. 게다가 자기처럼 흥안령의 군마창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이라고 말하자 대번에 확신이 가더라는것이였다. 물론 몹시 놀랐다고 했다. 사시장철 헌솜옷을 오래기로 질끈 동여입고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멋지 신사로 되여 남편곁에 선것이 꿈같이 느껴졌단다. 그리고 울면서 자기를 구해준 은인을 찾았으니 담방 상해에 모셔오라고 졸라댔단다.    소연이는 다시 화제를 돌려 하소하듯 원망하듯 지난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가 상학원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해서도 여느 처녀들처럼 일찍 시집을 가려는것이 아니라 결혼소리라면 아예 귀를 막고 돌아섰다. 원래 재산가였던 할아버지는 남은 재산은 별로 없었지만 집안 재산이 밖으로 흘러나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는 옛풍속대로 대만의 재벌아들인 이종조카와 짝을 맺아주었단다.     그렇게 대상자는 결정되였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또 몇해가 흐른뒤 세월이 좋아지고 량안의 래왕길이 트이여서야 결혼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아이도 아직 어리다고 하였다.   《당신도 무역을 한다니까 얼마나 돈을 모았는지 몰라도 돈이 곧 사랑이고 행복 인것은 아니예요. 성실한 남자는 돈이 없는게 문제이고 돈많은 남자들은 믿을수 없어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도 형편없는 풍류였대요. 나의 혈관속에도 자본가의 피가 흐르고  있겠지만 내가 바란건 사랑이였어요. 불속에도 뛰여들어 자기 녀자를 구할수 있는 용기와 충성심을 가진 당신같은 남자에게만 있을수 있는 그런 사랑말이예요, 그 날을 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그때 당신은 철없는 계집애의 충동이라고 여겼지 요. 아니, 정말 소원했던거애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 나도 이미 생리적으로도 다 성숙한 녀자였잖아요. 우습게 여기지 말아요. 나 당신이 할빈에 가자고했더면 그냥 따라갈 용기도 있었던거래요. 그러나 당신은 고집불통이였지요. 이제 더 말해 무었하 겠어요. 추억은 아름답다지만 나에겐 가슴아픈 추억만 가득 남았다구요. 매정한 사람 같으니라구…》    소연의 말에서 평양에 갔을 때 채선생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채선생은 평양에 갔을 때 도금한 18k짜리 가락지 몇개를 넣고다녔다. 외국의 호텔이나 커피숍에서 가락지 하나쯤 내놓으면 아가씨들을 키스할수 있는것은 물론 마음대로 손이 들어가도 문제없 고 딸라 한장이면 아가씨와 함께 온밤 침대를 망가뜨릴수 있다고 하면서 평양엔 그런 서비스가 없는가고 탐문했다. 아닌게아니라 고려호텔에서 식사할 때 채선생은 중국처 럼 믿고 예쁜 복무원처녀의 손을 강다짐으로 잡아끌고 가락지를 끼워준다고 싱갱이질 했다. 난생 처음 외국남자에게서 봉변당한 처녀는 울상이 되여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례절을 차릴새 없이 가락지를 빼앗아 채선생의 호주머니에 넣어주며 엄숙하 게 해석해주었다. 이 지구촌에서 에이즈병이 없는 나라가 조선이다. 세상에 비대증이 없는 나라가 조선이다. 저 아가씨가 채선생의 가락지를 받았다면 밥통이 깨지는것은 둘째치고 벌을 받게 된다. 가령 선물을 받았다면 곧추 책임자에게 받치게 되여있으니 주나마나 하고 아무 보상도 없다고 했다. 그제야 수긍이 가는듯 점직하게 웃으면서도 입속을 두덜거리는것은 잊지 않았다. 《참 좋은 곳인데 녀자가 없는 도시야, 헝》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소연이 푸념비슷한 말을 가슴아프게 들었고 그 마음 을 얼마든지 헤아려볼수 있었다. 내가 서글픈 생각에 담배연기만 뿜어올리는데 소연 이가 느닷없이 나직히 아리랑노래를 불렀다. 상해의 황포강의 유람선우에서, 그것도 이민족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상해악센트가 섞인 아리랑선률을 듣는다는것은 참으 로 이색적이고 의미로웠다. 소연이는 여전히 목소리가 고왔고 노래도 곡조가 맞게 정서적으로 부를줄 알았다. 가슴이 뭉클해났다. 저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도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탈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지금도 그곳은 그렇게 락후할가요? 그곳의 골짜기들과 풀판과 동남산에 가보고 싶어요. 우리가 이름을 새긴 봇나무는 지금도 있는지…우리 기회를 마련해서 같이 가보자요, 네? 》    《그것참, 좋은 생각이요. 채벙당하지 않았다면 하늘을 찌를것이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 한번 가봅시다. 나도 몹시 보고싶소. 지나간 일체가 아름다운 추억이라 더니 가보면 감개무량할거요. 설사 아픈 추억이라도 기억하고 슬퍼하기보다 잊어버리 고 새롭게 기억하면서 웃는게 나을지…》    《오빠, 정말 오늘 돌이켜 생각해보면 리별은 시간을 어김없이 지키는 선생같고 만남은 지각하는 아이같잖아요, 호호호》 우리는 눈길을 마주치며 의미있게 웃었다. 그렇다. 웃음도 눈물도 그렇게 오래가 는것은 아니다. 욕망도 사랑도 미움도 한번 스치고 지나면 마음속에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하는것이다. 인생은 저마다의 무대이다. 그 무대우에 남녀는 모두 배우에 불과하다. 그만큼 등장할 때가 있고 퇴장할 때가 있다. 무정한 세월이 가고 사람은 남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속에 새겨진 진정은 오래 남아있으리라.     밤을 모르는 불야성의 도시, 유유히 흐르는 물결이 배전을 철썩이고 있었다…                                                 2008 년 2 월 1 일                                                                                      청도에서                                                                         (연변문학)    
206    깎아내리기와 춰올리기 댓글:  조회:8463  추천:5  2013-01-13
                                                  깎아내리기와 춰올리기                                                           최 균 선        인류가 차차 개화되여 남을 깎아내리는 기량을 터득하면서 모두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심리가 되였고 교만성은 인간의 불치의 의난증이 되였다. 그 괴이한 심사는 또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 음모와 궤계의 뿌리가 되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남을 깎아내리는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는데 특별히 특장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있다.     현시대엔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타방의 허물을 후벼내거나 실수할 때를 기다리는 자들이 더구나 지천으로 득시글거린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파내려는 그들의 저의는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려는것으로서 더 이상 과시할것이 없을 때 쓰는 얄팍한 수작질이다. 그네들은 결국 은닉한 위선자로서 수요에 따라 올무를 놓고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가로 전락한다. 제딴엔 아무리 잘난척해도 실제는 못난이들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대화시 대방을 무지한자로 취급하는데 습관되였다. 례하면 “당신은 모르고 있을테지만…당신은 알턱이 없으니…”라는 식으로 허두를 떼면서  대방의 기를 죽이려하며 그러는것이 능사인줄 안다. 혹시 제3자는 화자가 무불통지한 전문가라고 오해할수도 있겠지만 높이 뛴다고 해야 장판방에 벼룩에 불과하다. 이처럼 입만 열면 남을 비방하고 깎아내리려 급급해 하는 그네들은 다른 사람을 검지 하나로 손가락질 할때 나머지 세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걸 모르는 우자들이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 헐뜯는(貶毁ㅡ폄훼)본성은 자고로 어느 계층보다 문인들의 특허이다. 중국 남조의 소통(蕭通)의 ≪문선(文選)≫에 수록된 론문(論文) 에  “문인(文人)들이 서로 가볍게 여기는것은 옛날부터 그리해 온것이다.(文人相輕, 自古而然) 반고는 동생 반초(班超)에게 보냈다는《여제초서(與弟超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사람이란 자신의 좋은 점을 드러내는데는 뛰여나지만, 문장이란 한가지만 있는것이 아니므로 모든 종류를 두루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점때문에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경시하는것이다. 속된 말로 “자기 집안에 있는 몽당비자루는 천금처럼 여긴다(家有弊帚,享之千金)”라고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보지 못한데서 생긴 페해이다.”보다싶이 문인들이 자기 문장을 내세우고 다른 동료의 문장을 깍아내리는것은 고금이 따로 없다는것을 알수 있다.     남을 깎아내림으로 상대적으로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것은 일종 자위일수도 있지만 너무 너절한 자위이다. 유독 우뚝한 가로수를 우듬지를 잘라 키를 낮추는것과도 또 다른 유치한 작동이니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존재하는듯 유리한 모든것이 자신을 위한것으로 생각하기에 남이 제보다 못나기만 바라고 실제적으로 남보다 “잘나려고” 욕심부리지만 체질상 포용력이 부족하기에 구제불능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실제 형편없으면서도 탁월한체하면 착시(错视)현상,착각현상이 생기게 할수도 있는데 비정한 심리이다. 누구나 제잘난 멋에 살고 아니면 잘난척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이기에 적당히 자기를 홍보하는것은 있을법한 일이나 노상 잘난척하면 과유불급이라 곁사람들의 비위만 더부룩하게 만들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로부터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고싶어한다. 이는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남이 잘되는 꼴은 한사코 못보아주는 통병때문에 천방백계로 남을 헐뜯고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리고 그러지 못하면 배가아파 실면하는것은 인격심리문 란이다. 그렇게 남을 헐뜯고 나서는 스스로 비겁함을 자각하고 허탈감에 빠지기도 할것이니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진짜 잘난 사람을 흠모하기전에 질투의 가시가 온몸에 돋히는게 인간심사인데 잘나지도 않으면서 젠체하면 너무나 허무하지 않으랴,     왜냐하면 심보가 그렇게 돼먹었다는것은 자기가 인격장애자이고 근원적으로 자신감의 결핍증에 걸려있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남을 속이면 약빠르다는 일면이 있지만 제속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자신을 기편하는것은 우자중에서도 제일 상받을 우자이다. 수림이 깊으면 벼라별 새가 다있고 사람은 천층만층 구만층이니 인간사회에 무슨 사람들인들 없으랴만 그네들을 위해서는 장송곡처럼 슬픈이 일이다.     시도때도 없이 드러내고 잘난척하는것도 보기가 되우 거북하거니와 대방을 깎아내리며 은근슬쩍 자기를 춰올리는 작태는 간능하고 고차원적이라 하겠으나 더없이 야비하고 가증스럽다. 이 부류의 사람들의 상투적수법은 대방을 무조건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것인데 그 역효과로 자기를 높인듯이 생각하며 말투가 늘 훈계조이다.     나는 이런 사람과 상종해본 체험이 있는데 자기 전공이야말로 최고의 학문인듯이 자고자대하며 타인의 지향, 이를테면 문학창작같은것을 “소인”이나 할짓이라고 여기였다. 사이비도 아닌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조개떡하나 가지고 서울가랴, 하는 속담이 있던지…기초의 기초학과를 가지고 너무 거센체하는 그 자태가 가소롭다고나 해야 하나? 작정하고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춰올리려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심한 장애가 온것이므로 맹물에 명태대가리가 놀듯이 제멋에 놀아대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각설하고, 국제사회에서도 타방을 깎아내려 자기의 약점을 미봉하려 하거나 그로써 자기를 춰올리려는 얄팍한 짓거리들이 진행형이여서 세인들을 웃기고 있는데 이 지구촌에서 양키들을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것이고 버금으로 그 추종국을 천거해야 할것이다. 례컨대 근간에 제리속에 따라 중구난방 지어내는 도무지 일관되지 못한 언론들에서 남을 깎아내리는데 우리 배달족들이 달인수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리속이 배배꼬인들 왜 저정도밖에 안되는가 개탄이 나온다.     자초에 의사소통을 위해 창제된 언어이지만 인식이 선행된다. 환언하면 하나의 사물을 잘 나타내는 여러 관념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 즉 개념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 개념의 사용에서 형상성, 생동성보다도 정확성을 더 강구한다. 존재가 곧 리유이다. 특정된 창조물의 존재에 자존심이 삶은 시래기가 되였단들 개념을 바꾸면 존재가 사라지는가?     그러나 단순한 개념문제가 아니라 관념, 내지는 리념문제로 하여 개념을 외곡하는것은 참으로 비릿하다. 타방을 깎아내리다 못해 더 깎아내릴것이 없던지 대방의 성과물이 자기네것을 닮은것 같다고 자아를 위안하거나 기술은 있는데 외계의 압력을 의식해서 남의 손을 빌었고 그래서 실패한것처럼 타발하는둥 구지레한 변명에 침방울을 튕기는데 기자님들의 일가견인가? 오늘은 또 종주국의 소위 전문가의 입을 빌어 지난세기 50년대 구식기술수준이라느니 등유를 썼다느니 실패할것이라니 희망사항들을 추단하며 아픈 배에 자위의 부앙을 덧붙이고있다…     그렇다면서 왜들 호들갑인가? 어용문인이 정치메가폰 아니면 앵무새로 충당되였는가? 그런데 앵무새는 제혀를 씹는격의 헛소리는 하지 않는다. 눈감고 야웅도 분위기에 맞게 해야 재미있다. 개체사이에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춰올리는 심사는 역시 인지상정이니 그리 생각하면 되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렇게 얄팍하게 나오면 곁에서도 빤히 들여다보여 민망스럽다. 초민에게도 그렇게 보이는데 국제적인 안목이야 오죽하랴 싶으며 역시 우리 민족의 원초적비애를 짓씹어보지 않을수 없다.     농촌에서는 “앗사리, 아싸리(그럴 바에는 오히려) ”그만두라고 충고하는 말을 잘 썼다. 일본어에도 “あっさり” 가 있는데 깨끗이,  선선히, 산뜻하다의 뜻이다. 심통이 비틀어진 난쟁이가 키다리의 목을 쳐서 키를 낮추려하던들 제키가 커지는가? 참으로 우스운 사유방식이다. 그런 작태는 참으로 꼴불견이요 너무너무 가련하다.                                                                           2013년 1월 13일
205    《개척 100년 기념탑》아래에서 댓글:  조회:7711  추천:1  2013-01-12
                                      《개척 100년 기념탑》아래에서                                                      (청도)최 균 필       지난 봄, 20여년만에 흑룡강성에 있는 처가마을에 다녀왔다. 청도의 중산공원에 벗꽃이 만개하여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북국의 명주, 할빈 지구에 들어서니 아직도 음달진 곳에는 겨울장군이 퇴각하는 흔적인듯 채녹지 않은 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수화현 흥화민족자치향으로 떠난 뻐스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빈자리를 실었건만 3시간이나 숨가쁘게 내달렸다. 처가마을의 변천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그중에서도 질척거리던 흙길이 세멘트로 잘 포장되여있는것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신작로 량켠 에는 금방 물이 오른 수양버들이 여윈 가지를 흐늘거리며 나를 반겨주는듯 하였다.     차에서 내려 마을어구에 들어서던 나는 저도모르게 못박힌듯 서버렸다. 동시에 감동 그 자체인 탄성이 터져나왔다. 상상밖에도 우리 글로《흥화개척100년》이라고 큼직하게 쓴 검은 대리석 기념탑이 우뚝 솟아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것이다. 글자마 다 금빛으로 빛나고 탑꼭대기에는 전형적인 조선황소가 남향하고 호기롭게 누워있 었는데 디자인이 잘 조화되여 있어 하나의 예술품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누가 주도하여 내놓은 걸작인지 모르나 여기 흥화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기발한 창조물이였고 개척민의 후대들이 튼튼히 뿌리박고 있음을 말해주는 력사의 견증물이 기도 하였다. 비록 대도시인의 신분에 걸맞는 정장을 하고 있었지만 껍데기를 벗기면 뛸데없는 농민의 아들인지라 마음이 숙연해지고 머리가 숙여지였다. 고향떠나 타향살 이 한평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격이여서일가 눈물까지 핑 돌면서 가슴이 찡해났다. 그렇게 이윽토록 굳어져있는데 처조카가 마중나와 나의 감동을 깨뜨렸다.     나는 조카에게 이 탑을 언제. 누가 세웠는가 하는 등 많은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려는듯 무더기 질문을 들이댔다. 조카의 말에 의하면 15년전에 마을사람들이 한국으로, 연해지구로 대거 떠나면서부터 천여호가 넘던 조선족대집거지가 일시에 무너지고 이젠 겨우 180호 남짓이 남았다고 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북방의 어미지향, 뿌리박은 옛터가 풍전등화가 되는것을 가슴조리며 지켜보던 마을어른들이 잡초가 무성하던 빈집터와 내버리고 간 터밭들에 2년동안 콩과 강냉이농사를 지어 모은 돈으로 이렇게 기념탑을 세우고 주위에 각가지 꽃들을 심어놓아 더욱 이채를 띠게 하였다.     천하지대본인 농사로 세세대대를 이어오며 이 땅을 가꾸어온 향토에 대한 애착심 은 근간을 굳게 지키려는 로세대들의 충정이였다. 일찍,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허허 만주벌판이였던 이 땅에 새삶의 첫괭 이를 박아 어언 100년의 력사를 기록해왔다.     흑토지대에서도 곡창으로 이름높은 어미지향으로 가꾸어온 긴긴 세월 그들이 흘린 피땀인들인들 얼마랴! 그렇게 일떠세운 가원은 후대들에게 물려준 값치를수 없는 대물림보배이다. 이런 땅에《개척 100주년 기념탑》을 일떠세운것은 여러가지로 깊 고 깊은 함의가 새겨져있다. 그래서 더욱 하나의 력사적장거인것이다.      마을은 이미 돌이킬수 없이 황페해졌지만 기름진 논벌에 생명수로 넘치는 거도는 세멘트로 잘 포장되여 있고 량켠에는 애솔들이 불철주야 농토를 지키는 초병인양 줄져서있다. 선진농업국인 일본땅에서나 볼수 있는 수전지대의 현대화농토건설의 모 습이 여기 조선족집거지인 흥화민족자치향에서 새롭게 보니 새농촌건설을 도모하는 정부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땅의 로농들의 웅숭깊은 향토애 가 얼마나 끈덕진가를 절감하게 되였다.     청도에 앉아서 풍문으로 듣던바와는 여러가지로 다르게 민족혼이 뿌리채 날려 간것이 아니고 아직도 남은 사람들이 가꾼 향촌의 풍경화는 농민의 아들인 나의 가슴을 달구고도 남음이 있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지만 자기 가원을 굳건히 지켜가는 흥화사람들은 켤코 못난 사람들이 아니다.     땅을 뚜지며 사는 농부에게는 흙이 하늘밑의 전부이고 삶이며 생활의 가락이고 혼이고 숨결이다. 그뿐이 아니다. 피와 살과 뼈에 이르는 농부의 생명 그 자체이다. 땅이 있어야 고향도 있고 나라도 있고 민족도 있거늘 그 옛날 우리의 보습대일 땅 한 뙈기 없는 비애를 지금 젊은이들은 미처 알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선배들이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이땅을 지켜 로심초사하는것이 아니랴,    하지만 시대의 역설인가? 여기저기 반상적인 정경 또한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흥화민족향에서 제일 인기를 끌던 민족중학교와 소학교의 햇빛 찬란하던 창가마다에서 랑랑하게 울려나오던 글소리도 시들해지고 민족의 생력군들이 미래를 떠멜 새싹들이 생기발랄하게 뛰놀던 운동장도 괴괴하고 다만 꽃씨 들을 멀리 날려보내고 말이 없는 민들레의 처연한 모습만 나의 지성을 후벼대였다.     환득환실의 섭리로 시린 가슴을 달래야 하는가? 천여명 학생들이 오구작작 떠들며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우던 민족교육의 보금자리가 어이 이렇게 되였는가? 지금은 고작 16명 학생을 붙안고 맴돌며 완전페교를 기다리고 있다니 염통이 번져질 일이 아닌가?  민들레밭이 되여버린 학교운동장만 상심을 불러오는것이 아니였다. 흥화향 의 2천정보도 넘는 수전에 벼농사짓는 조선족농민은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촌민위원회는 대지주가 되고 촌민들은 작은 지주가 되여 밭머리에도 얼씬하지 않고도 정보당 7천원을 꼭꼭 받아내며 도시사람들처럼 쌀을 사먹으니 삶의 질적향상일가? 비전이라 할가? 제땅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들이 모두 건달농사군으로 환골탈태 하였으니 변화무쌍한 이 시대의 명물이라 할가부다. 그나저나 흥화촌의 로농들은 외국으로 연해지구로 돈벌러 나간 자식들의 메마른 가슴에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을 안겨주려고 해마다 식수하고 알뜰히 가꾸면서 조상의 개척지를 지키고 있는것만으로 도 다행이요 곁에서 보는 내 마음에도 믿음이 태산처럼 높아졌다.     더구나 흥화민족향에 2천정보의 수전을 한족들이 일정기간 임대하여 농사는 지을수 있으나 빈집을 사거나 세를 들어사는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흥화촌의 토 정책이 에누리없이 시행되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한족집이 한호도 없어서 불행중 다행이랄가. 그렇게라도 자기의 터전을 지키려는 그 마음이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혈관속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는 탓인지 몇십년만에 처가의 터밭에서 괭이를 잡아보았다. 이랑을 짓고 강냉이, 원두, 감자같은것을 심노라니 땀벌창이 되였지만 넥타이매고 농부의 흉내를 내는것만으로도 기분이 별로였다. 지금은 청도에서 사무한신으로 남부럽지 않게 만년을 호강하며 보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고향에 돌아가서 아담한 기와집이나 사들고 터밭이랑 가꾸고 닭개짐승도 키우면서 인생의 겨울철 살아온 한생을 정리하면서 한적한 농가생활을 하고싶은 충동이 가끔 이는것은 농민의 아들이기때문이리라.     처가마을을 떠나기전 다시 기념탑아래 오래오래 서있노라니 생각의 갈피들이 억천갈래로 얽히고 서리였다. 세월이 흘러 기념탐을 세운 늙은이들이 세상을 떠나고나 면 산지사방에 뿔뿔이 흩어졌던 후손들이 고향의 땅을 찾아올런지 쓰잘데없는 걱정과 소망에 마음이 더구나 착잡해지는것은 내가 너무 감성적이여서일가? 나는 들꽃 한묶 음 돈독히 묶어서 기념탑언저리에 놓았다. 그리고 흘러가는 백년 조선족마을, 모래알 처럼 흩어져가는 민심의 이변을 이제 또 백년만큼은 지켜달라고 두손모아 빌었다.      타지방에 적을 둔 로옹이지만 농토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다를데 있으랴, 우리가 스스로 자기 가원을 버린다면 물러설 자리가 없다. 천애지각에 흩어져있더라도 조상  들이 물려준 보배로운 땅을 잃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에 돌아와 울바자 말뚝 을 다시 튼튼히 박아다오. 타향에는 민족의 넋이 잠들 자리가 없느니라.                                                                2011년 9월 10 일                                                                                                청도에서    
204    (교수단론) 한국어 읽기 기본지식 댓글:  조회:9590  추천:1  2013-01-08
                                       한국어 읽기 기본지식   ※ 낭독훈련의 필요성:     한국어교수에서 읽기(낭독)훈련은 문장을 읽고 이해, 터득시키는 기본적인 교수 수단이다. 낭독은 한국어 표준말과 문화어의 의미를 올바르게 장악고 어휘를 비롯한 다른 지식을 섭취하고 누적하며 글에 담겨진 사상감정에 감화되면서 어감능력을 제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어로 사유하고 기억력제고시키는 등 좋은 점이 있는 것은 물론 작품 감상의 입문이라 할 수 있다. 1. 단어발음에서의 음절의 력점(力点)    말할 때 단어안에 있는 음절들은 꼭같이 발음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다른 것 보다 높거나 길거나 세게 발음되는 것이 많다. 예: 《도라지》에서 “라”는 다른 음에 비하여 높게 발음되며 《개미》에서 “개” 가 길게 발음되며 《침략자를 타도하자!》에서는 “침”,“타”가 다른 음절에 비하 여 세게 발음된다.     이와 같이 하나의 단어안에서 어느 하나의 음절을 특별히 두드러지게 발음하기 위하여 그것을 다른 음절보다 좀 높거나 길거나 세게 발음하는 현상을 력점  (소리 마루)이라고 한다. 단어의 력점에는 고저력점 (높이마루), 장단력점(길이마루) 강약 력점(세기마루)이 세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아버지,》《어머니》에서 “버”와“머”는 다른 음절에 비하여 높게 발음된다. 하나의 음절로 된 어근(말뿌리)의 뒤에 토가 붙으면 그 어근은 높은 소리 이다. 예: 《낫이 잘 든다》에서 《나》가《시》보다 길고 높게 발음된다. 그래서 《나》에 길이로 나타나는 소리마루가 있게 된다. 또 《배우자》에서 “배”에 힘을 주어 발음하게 된다, 1) 고저력점: 이란 다른 음절보다 특별히 길게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  두개의 음절로 된 단어의 경우에는 보통 첫음절에 높이마루가 온다. 예:   。    。     。     。       。   。    。         집에,  날다.  먹다.  잡으면,  조국, 나라, 혁명, 세개의 음절일 경우에는 보통 가운데 음절에 고적력점이 온다.      。     。      。       。 예:  혁명화, 나라일, 학교문,  붉은기.  ※  네개의 음절로 된 단어에서는 보통 세번째 음절에 고저역점이 온다. 예:      。        。       。         。   해바라기, 버드나무, 믿음직한,  조국통일 ※  네개 이상의 음절로 된 단어인 경우에는 마지막으로부터 두번째 음절에 고저력 점이 온다.        예:        。           。            。          。     항일유격대,  현대화건설,  사회주의건설, 2) 장단력점: 단어안의 음절들 가운데서 다른 것보다 특별히 길게 발음되는것이다. 예: 《멀리》에서 “멀 ㅡ리” 나무열매를 나타내는 “밤”은 “낮과 밤”이라고 할 때의 “밤”보다 길게 발음한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모든 단어들이 장단력점이 있는 것 이 아니라 일부 단어에 굳어져서 규범화 된것이다. 예:                                     사람,  모든,  환히,   덥다. 좋다, 예: 눈(과 귀) , 눈(~과 비), 밤(~과 낮), 밤(~과 대추), 4. 강약력점: 이란 단어안의 음절들 가운데서 다른 음절에 비하여 특별히 길게 발음함   예:   、       、       、     、 침략자를 몰아내고 조국을 해방하자, ※ 단어의 세기마루는 발음을 우아하게 하는가 못하 는가, 말소리흐름을 아름답게 하는가 못하는가를 규정짓는 기초단위이다.     ※ 조선말의 길이마루는 모음을 발음하는 시간적 길이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일정한 단어에 고정되여 나타난다. 례하면 《눈과 비》에서 《눈》은 길게 발음하며《눈과 코》에서 《눈》은 짧게 발음하여 그 뜻을 구별한다.     ※ 조선말의 길이마루는 발음을 유창하고 여유있게 만들며 모양, 행동, 정도, 생각 등을 길이로 나타내거나 강조할수 있어 어조의 명료성을 적극 보장한다. 길이마루는 고정된 길이마루와 형상적인 길이마루가 있다. 례하여《아버지》는 일상 생활에서 길이마루가 잘 나타나지 않게 발음하나 영화대사나 시읊기에서는 감정의 기조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지”에 길이마루나 세기마루가 온다.     고정된 길이마루는 어근의 첫소리에만 오며 길이마루가 있는 어근뒤에 다른 단어 가 합쳐졌을 때도 그 길이를 유지한다. 례: 물,(야, 물, 물을 가져오너라)에서는 속도, 세기마루가 달라질수 있다. 사람, 곱다, 대단하다. 알다. 말 ㅡ말썽군, 끌다 ㅡ끌리다. 눈 ㅡ눈서리     향상적길이마루는 형태, 소리의 모양을 나타내는 단어의 임의의 소리마루에 올 수 있다. 례: 노르스름하다. 환하다. 보들보들하다.  ※ 역점의 갈래: 역점에는 단어역점과 문장역점이 있다. ※ 읽기에서는 흔히 어느 한 뜻을 강조하기 위해 떨어지는 논리적력점이 있다. 예: 김파씨는 내일 북경으로 가십니까?      김파씨는 내일 북경으로 가십니까?     김파씨는 내일 북경으로 가십니까?     김파씨는 내일 북경으로 가십니까? ※ 표현적끊기(심리적끊기)도 있다. 예: 그의 동 그 란  얼굴에는 웃음이 함빡 담겼다. 5.ㅡ절음현상:이란 받침으로 된 자음이 일단 끊어졌다가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즉 한 단어안의 형태부와 형태부가 이어질 때 앞형태부의 끝에 오는 자음이 일단 막힘소리로 되었다가 다시 그 소리가 뒤에 오는 형태부의 첫소리모음에 이어져서 발음되는 것을 말한다. 예: 부엌안 → (부억안 →부어간) 옷안(옷안 → 옫안 → 오단 ) 웃어른 → (욷어른 →우더른) 홑옷(홑옷 →혿옷 →호돗) 끝없이 → (끋업씨 →끄덥씨) 닭우리 (닥우리 → 다구리 6. 동화현상: 한 단어안에서 어느 한 소리가 다른 소리의 영향을 받아 그와 같거나 비슷한 소리로 바끼어 발음되는 것을 동화현상이라 한다. 한국어의 동화현상에는 순행동화, 역행동화, 호상동화 등 여러가지가 있다. ※ 순행동화: 순행동화란 앞에 있는 음이 뒤에 있는 음을 동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 달나라→(달라라),  설날 →설랄, 들놀이 → 들로리, ※ 역행동화란 순행동화와 반대로 뒤에 있는 음이 앞에 있는 음을 동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 십년 → 심년,  톱날 →톰날,  옆문 →염문,  돕는다 →돔는다 맏누이→ 만누이,  밭머리 →반머리, 벗나무숲에 토끼네가 화목하게 살았네 → 번나무수페 토끼네가 화모카게 사랃네, 나무를 깎는다  → 나무를 깡는다. ○천리→철리, 농업산량→ 농업살량 , 진리 → 질리 ※ 그러나 한자어의 형태부와 형태부 사이에서는 “ㄴ”가“ㄹ”로 동화되지 않는다. ○ 생산량→ 생산량 , 모순론 →모순론, 손노동 →손노동 ※ 그러나 한자음 “렬”과“렬”과 관련된 발음에서는 “ㄹ”이 발음되지 않는다. ○ 대렬→ 대열 , 규률 →규율,  가렬하다 →가열하다 비률 →비율 ※ 호상동화란 린접되어 있는 음들이 서로 영향을 주어 동화되는 것을 말한다. ○  십리 →심니,          학력 →항력→ 항녁 폭력 →퐁력 → 퐁녁, 법률 → 범률 → 범뉼 7. 된소리화 현상에도 주의해야 한다. ○ 삽자루 →삽짜루 , 핵심 →핵씸, 닦자 →닦짜, 늦봄 →늦뽐 , 빛갈 →빛깔, 있소→ 있쏘, 걷기 →걷끼, 옷감 →옷깜, 식당 ㅡ식땅 등등 8. 자음의 약화 및 탈락 현상 ○ 아홉→아옵, 일흔살 →이른살, 간단하다 →간다나다, 대담하다 →대다마다, 가히 →가이, 용감히 →용가미, 일이 많아서 힘겹다 →이리 마나서 힘겹따, 중앙인민정부 →주앙인민정부. 영웅인물을 노래하자→ 여웅인무를 노래하자 9. 자음의 탈락현상 ○ 덧이 →던니, 앞이마 →암니마, 홑이불 →혼니불, 부엌일 →부엉닐, 나무단→ 나묻단, 뱃사공 →밷싸공 등,→→→ ※ 발음훈련: 5. 말의 끊기:    문장안의 여러 단어들 사이에서 생기는 잠시적 휴지를 말한다. 례: 《우리는 오늘 계획을 완성했다.》에서《오늘》뒤에 휴지를 두지 않으면《오늘의 계획》을 완성한 것으로 되며 휴지를 두면 《어떤 계획》을《오늘》완성한것으로 된다. ※※※호흡과 띄여쓰기 예: 아버지가방안으로들어간다.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가방안으로 들어간다. ※ 한국의 띄어쓰기는 호흡관계와 탈절된다.  예: 네가 그렇게 나를 대할 줄 몰랐다.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므로 한국식 띄여쓰기대로 휴지를 두면 말이 류창해질 수 없다. ※ 끊기의 네가지 갈래 1) 긴 끊기《///》, 문장이 끝났늘 때 쉬는 대목으로서 문장부호 점《.》, 느낌표 《!》물음표《?》,줄임표《……》등이 오는 곳에 오는데 그 길이는 두박자 혹은 세 박자이다. 2) 보통끊기《//》,문장안에서 비교적인 언어단위 뒤에, 독립성분의 뒤, 쉼표,주격토, 호칭어, 제시어, 뒤에 떨어진다. 그 길이는 보통 한 두박자이다. 3) 짧은 끊기 《/》언어적단위 사이에 떨어진다. 그 길이는 한박자이다. 4) 순간끊기: 는 문장안에서 단위들사이의 호상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끊기가 있는것을 모를 정도로 짧다. 휴지와 같다. 례: 나는 조선족이다. // 우리는 자기의 민족을 사랑한다. ///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민족이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아니 그런가? 례: 과문에서 풍경을 그린 구절을 찾고// 이런 묘사의 작용을 말하시오/// 례: 물질문명/ 정신문명/ 문명의 꽃이 만방에/ 향기를/ 풍긴다// 5) 논리적끊기: 논리적끊기는 맞물림성분, 독립성분, 제시어, 확대된 문장성분, 복합문을 이루는 단일문, 인용어의 앞뒤 등에 둔다. 례: 아버지께서는 //《그렇다. //이것이 //너의들에 대한 //나의 희망이다//》라고 하셨다./// 례: 아// 얼마나 애절하게 그렸으며 //얼마니 애타게 기다렸던가/// 6) 형상적끊기:는 격동된 감정을 나타낼 때 긴끊기를 둔다. 례: 오, 어머니 조국이여/// 4. 읽기투: 글을 읽는 형식으로서 독보식읽기투, 연설식읽기투, 느낌식읽기투, 입말식 읽기투 등이 있다. 입말식 읽기투는 말과 같이 생동하게 들리며 이야기의 논리성 이 강하게 표현되며 억양의 이름이 입말과 아주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소설, 실화, 수필 등의 환경묘사, 심리 묘사를 전달할 때에는 입말식일기투와 흐름식읽기투를 경우에 맞게 조화시켜야 할것이다. 5. 억양: 예:  에루화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      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환호하네      에루화 두둥실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민족 자치주 세웠네.      이런 가사를 읽을 때는 억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억양이란 말소리의 높낮음으로 나타나는 음악적 흐름을 말한다. 억양은 말소리흐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민족적감정과 직접적으로 련관된 중요한 언어 요소이기도 하다. 억양의 바탕으로 되는 요인은 단어발음의 높낮이와 문장의 소리마루 그리고 끊기 등이다. 억양의 문자론적 기능은 문장의 갈래를 갈라주는것과 같은 구조의 문장에서 뜻을 가려주는것이다.     례: 《연희학생 공부하세요》↘     《연희학생! 공부하세요?》↗ 연희가 공부하고있다는 것을 알려줄 때《공》에 힘을 주고 《하세요》 를 급격히 낮추어 알림을 표현하 면 연희가 공부를 하는지 다른 무엇을 하는지 따져 물을 때에는 《하》에 힘을 주고《세요》를 높인다. 례:《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에서는 《무슨》을 좀 높이며《니까》를 낮추어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뜻을 나나태고 《일》을 높이고 《니까》를 높이여 사건이 있었는가를 묻는 뜻을 나타낸다. 억양의 정서적기능은 높낮이 흐름선에다 목소리의 빛갈이 섞이여 긴장과 정서를 함께 전달하는것을 가리킨다. 정서적 억양은 문장의 모든 단위에서 다 표현될 수 있으며 문장안의 어느 한 소리토막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같은 구조의 문장안에서 여러가지 정서로 나나타 어조를 달리한다. 례: 라성교의 국제주의 정신은 얼마나 인심을 격동시키는가! ↗     례: 개혁개방정책은 얼마나 좋은가. (감탄) 례: 그게 정말이요? ↗ (의혹과 놀램) 억양의 형태에는 흐름억양과 맺음억양이 있다. 흐름억양은 문장안의 어느 한 단 위에서 이루어지는 높낮이 흐름선이다. 흐름억양은 소리토막, 또는  소리 매듭들의 사이를 이어주거나 끊어준다. 흐름억양은 뜻억양과 느낌억양으로 나눈다. 맺음억양은 말의 매듭을 짓거나 문장이 끝났을 때 쉬는 대목에서 이루어지는 억양이다. 맺음억양 에는 말끝을 낮추는 형태(↘ ), 말끝을 높이는 형태 ( ↗ ), 말끝을 낮추었다가 올리는 (↘↗)형태 , 말끝을 평평하게 끄는 형태( ㅡ )가 있는데 문장의 끊기와 맺음에서 두루 쓰인다. 억양은 소리의 높낮이가 기본이 되면서 소리의 장단, 강약, 음색도 첨가된다. 억양은 문장의 끝에서나 중간에서 나타나면서 문장의 내용을 정밀하게 전달하며 다양한 사상감정과 태도를 나타낸다.     억양의 기본형태는 하강억양, 상승억양,평행적억양, 하강상승억양 등이 있다.                ↗ 례: 하나, 둘, 셋이나 된다.     철남이랑 영숙이랑 모두 간다니? ↗     영호는 왜 아직 안올가? ↗ 난 못갈것 같은데요. ↘ 옛날 옛적에 개와 고양이가 살았는데…     뭘? ↗ 6. 말의 속도 말(낭독)의 속도란 단위시간내에 발음하는 말소리의 많고 적음이다. 글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그 기준속도가 부동하다. 전달하는 글의 읽기는 1분동안에 250 ㅡ260자, 설명하는 글의 읽기는 240 ㅡ250자, 선동하는 글의 읽기는 230 ㅡ240자, 예술적산문 의 글 읽기는 220자 ㅡ230자, 신문독보는 240 ㅡ250자, 시읊기는 150 ㅡ170자이다. 첫 네가지의 글을 말로 할 때에는 1분동안에 각각 10자씩 더해준다.즉 말하는것은 어쨌든 글을 읽기보다 좀 빠르게 되여있다. 글을 읽거나 말을 할 때 중요한 단어와 차요한 단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의 높이,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 등이 작용하여 자기도 모르게 완급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단어는 느리고 기타는 빠르다.    례: 김군!나는 더 참을수 없다. 나는 나부터 살리려고 한다. 이때까지 는 최면술에 걸린 송장이였다. 제가 죽은 송장으로 남(식구)들을 어 찌 살리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시려고 하는것이다. 7. 말소리흐름의 율동성: 말소리흐름의 율동은 말소리의 높이, 세기가 대조되고 균형을 이루면서 이루어 진다. 즉 음절에 주는 힘의 량과 세기에서 나타난다. 율동성이란 음절에 힘을 주고 안주는 것이 끊임없이 대조되면서 흐름을 힘있게 끌고나가는 음악적 선율이다. 한국 말 (조선말) 의 율동성은 소리마루의 특성과 거의 같다.단어의 세기마루는 첫음절에서 온다. 그래서 첫음절의 세기는 율동감을 주게 된다. 례: //  // /   // // /    // //      // /. // / 집, 파도, 말마디      두힘으로도 나타난다. 례: 학교로.간다.  강은 깊다. // //, // //, // //.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한국의 표준어와 조선의 문화는 여러면에서 차이를 보이고있는데 특히 표준어와 문화어는 억양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표준어에서는 음의 높낮이 변화가 심하 지 않고 음절사이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아 물흐르듯이 말을 한다, 문화어에서는 음의 높낮이 변화가 분명하고 단어나 음절군을 끊어서 강하게 말한다. 례:위대한 지도자동지께서는 오늘도 천리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황해남도 재령광산을 시찰하셨습니다. 8. 낭독에서의 감정 낭독에서의 감정: 우선 감정의 집중표현단위를 잘 찾아야 한다.. 기쁨을 표현하 거나 분노를 나타낼때 모든 말마디에 감정을 똑같이 분배하여 표현하지 않고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하여 본질적인 감정, 정서를 표현한다.. 례하여 《너도 갈래?》라고 의문과 불쾌감을 표시할 때 감정을 토 (어미)《도》 에다 집중시키고 그밖의 말마디들은 상대적으로 약화시킨다. 낭독형상기교 존경과 흠모의 감정은 깊은 소리빛갈을 기본으로 하며 속도는 좀 느린편이고 높낮이는 미미하나 그대신 깊은 소리빛갈이 높이마루를 대신 한다. 억양은 느낌식 투가 좋다.  만족과 긍지의 감정은 맑은 소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만족과 미소를 지은 표정을 짓고 소리를 억제하는 기분상태를 유지하는것이 좋다. 기쁨과 자랑으로 가득찬 격정의 감정을 맑고 힘있는 목소리빛갈을 배치한다. 발음상태는 웃으면 서 이야기할 때와 비슷하다. 사랑의 감정은 맑은 소리빛갈에 속하나 세지 않고 부드러운것이 특징이다. 시종 웃는 표정을 가져야 한다. 적개심, 증오의 감정은 맑고 탄력있는 소리     빛갈이다. 슬픔과 비분의 감정은 어둡고 들뜬 빛갈이여야 하며 말소리는 코에 울리고 우울하다. 비분을 나타낼 때에는 목소리가 굵고 낮으며 웅숭깊다. 숭엄한 감정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형상할 때에는 깊은 소리바탕에 낮고 부 드러운 사색적인 빛갈을 표현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형상할 때는 목소리는 얕은소리를 가볍게 낸다. 9. 낭독에서의 소리빛갈 맑은소리: 정확한 발음법에 의한 가공이 없는 목소리빛갈이다. 속삭임소리: 날숨을 골고루 솔솔 내면서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는 소리이다. 깊은소리: 밑배에서 울려나오는 날숨을 극도로 억제하면서 목청을 가볍게 울리는 목소리이다. 얕은소리: 깊은소리에 비해 목청을 많이 진동시키며 음색은 맑다. 거센소리: 목을 조이는 솔이다. 부저인물을 형상할 때 자주 쓰인다. 뜬소리: 입이 크게 벌려지지 않고 목청에서 울리는 소리가 목구멍과 코안, 앞이마 쪽으로 울려나가면서 불안정하게 울리는 소리이다. 굵은소리: 자기의 원래의 목소리보다 굵게 내는것을 말한다. 코소리: 코의 공명을 받아내는 소리빛갈이다. 이외 여러가지 소리가 있으나 략한다.  례문: 례문: (변학도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연신 감탄한다.) 과연 선녀가 하강하였도다, 과연 춘향이렸다,  으하하하ㅡ어디 보자, 춘향아, 뜯어볼수록 한군데도 나무랄데가 없고나. 오늘부터 네가 수청을 들도록 할터이니 그리 알라. [춘향] 그 무슨 말씀이오이까. 소녀 비록 천기소생이 오나 연전에 구관사또 자제와 백년가약을 맺은터라 지금은 유부녀이옵니다. 소녀 죽어도 송죽 같은 마음 변할리 없아온즉 그런 분부 거두시옵소서. [변학도] 허, 고년이 목소리 또한 은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는듯 하고나. 내 네 뜻을 알겠다만은 굴러오는 떡함지를 차던지지 말고 수청들도록 하라 [춘향] 사또님 아무리 위협해도 오동추야 달밝은 밤 님생각에 잠못들고 눈물이 바다되고 한숨이 모여 바람 되는 춘향이니 그리하지 못합니다. [변] 에라,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그래 수청을 들터이냐, 아니 들터이냐? [춘향] 물에 비친 달은 잡을수 있어도 이 춘향이 마음은 변할리 없으니 그리아시오。 저는 백번죽어도 한번 먹은 마음 변치않나이다. [변학도] 뭣이?  못해!? 네 이년, 관장의 명을 거역함은 곧 죽을 죄임을 모르느냐! [춘향] 사또님,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가 아니오이까? [변학도] 저런저런, 저년이 죽고 싶어 환장했는고? 이년 듣거라, 반역하는 죄는 릉지처참하라 하였고 관장을 조롱하는 자는 엄한 형벌에 처하라 하였니라. 죽는다고 억울해 하지 말어라. [춘향] 법이 그러하오면 유부녀를 겁탈하는 죄는 어찌 다스리라 하였나이까? (변학도 너무 분해서 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래고래 소리치니 탕건이 벗어지고 단마디에 목이 쉬였다.) [변사또] 무엇이 어쩌고 어째? 저년을 형틀에 달아매고 호되게 쳐라, 례문: 내가 나선 고향은 우물에서 룡이 날아올랐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새기고 있는 룡드레촌에서 엎디면 코앞인 룡강동, 마을앞에는 맑디맑은 해란강이 흘러 쇠치네도 흔했고 서쪽으로 비암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어서 산좋고 물맑은 고장이였다. 더구나 유서도 깊은 비암산은 걸음발을 타면서부터 수없이 오른 락원의 봄동산이요 내 좁은 가슴에 높이높이 솟아있던 불멸의 기념탑이였다.     봄이면 진달래 꽃불이 산을 불태우고 여름이면 개나리, 함박꽃이 흐드러지던 비암산 구석구석을 참빗질하며 돌아다녔고 아스라하던 칼바위를 푸른 하늘에 우짖는 종달새처럼 포르르 날아오르기도 했다. 가을이면 산포도,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연지 곤지 바르던 옆집에 귀동녀며 뒤집에 조앙녀랑 오구작작 즐거움을 휘뿌리던 꽃동산 이요 수난의 동년시대였건만 그냥 정답기만 하였던 동화속에 에덴이였다.                   님의 침묵         한용운 ↗↘↘↘ ↘↘ ↘↘ ↘↘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  ↗↗    ↗↘↘↘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  ↗↘↘ ↘↘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  ↘↘↘ ↘↘↘↘ ↘↘↘↘↘↘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 ↘↘↘↘↘↘↘ ↘↘↘↘↘↘  적은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한국어교원들을 대상한 특강 2009년 3월 20일
203    (교육에세이) 조선족소학교 교재의 한어성어실태 댓글:  조회:13984  추천:2  2013-01-05
                   조선족소학교 교재의 한어성어실태                                      최균선   조선족소학교단계에서 현대한어상용자1300-1800자 좌우, 상용단어, 3000-4000개 좌우를 장악해야 하고 적어도 20만자의 과외독서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 기되고있는데 교과서에는 학생들을 계발, 인도할수 있는 성어도 포함되여있다. 현재 조선족소학교 한어교과서에 학년별로 장악해야 할 성어를 보면 개인으로서는 곤혹을 안겨주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래에 작성한 성어도표를 보자   조선족소학한어교과서의 성어의 사용실태             一年级成语 四面八方, 五颜六色, 七上八上, 九牛一毛, 车水马龙, 刀山火海, 目不识丁, 左右开弓, 一叶扁舟, 十全十美, 百战百胜, 百里挑一, 千千万万, 万水千山, 喜闻乐见 ,山清水秀, 鸟语花香 ,欢天喜地, 一帆风顺, 心明眼亮, 坐立不安, 万紫千红, 急中生智, 当机立断, 舍己为人, 鸦雀无声, 守口如瓶, 自高自大, 自以为是, 如鱼得水, 鱼米之乡, 鱼水情深, 众所周知, 自作聪明 ,狼吞虎咽, 虎头蛇尾,  良师益友, 言而有信, 言行一致,  一言为定, (共 40个)              二年级成语 助人为乐, 大吃一惊, 龙争虎斗,  五谷丰登 ,春华秋实, 瓜果飘香, 天高云淡, 泪如雨下, 繁荣昌盛, 心宽体胖, 顶天立地, 不速之客, 念念不忘, 手舞足蹈, 追根究底, 集思广益, 顺水推舟, 拔苗助长 , 万事大吉, 张灯结彩, 天寒地冻, 眉开眼笑, 火烧眉毛, 冷言冷语,  千家万户, 鸦雀无声, 福如东海, 寿比南山, 脚踏实地, 装模作样,  妙手回春 ,心服口服, 奇思妙想, 刮目相看, 居心不良, 固步自封,  碌碌无为, 披星戴月, 亡羊补牢, 饱经风霜 ,筋疲力尽, 改头换面,  改天换地, 袖手旁观, 交头接耳, 汗马功劳, 移山倒海, 百感交集,  熟视无睹, 莫名其妙, 虎口脱险, 风吹日晒, 温故知新, 无微不至,  豁然开朗, 出尔反尔, 刨根问底, 含苞欲放, 落叶归根 ,居安思危,  今非昔比, 开诚布公, 水泄不通, 赞不绝口, 惹是生非, 心甘情愿,  按兵不动, 深思熟虑 ,胆大包天, 问心无愧, 稳操胜券 ,滚瓜烂熟,  察言观色, 坐井观天        (共 74个)      三年级成语 进退两难,  内柔外刚,  得不偿失,  惟妙惟肖,  狡兔三窟,  遥遥领先  得过且过,  得寸进尺,  得天独厚,  得心应手,  得道多助,  狐假虎威, 守株待兔,  刻舟求剑,  狗仗人势,  瓜熟蒂落,  画龙点睛,  生龙活虎,  锦上添花,  板上钉钉,  语无伦次,  名副其实,  君子一言,  驷马难追, 别具一格,  遮天蔽日,  独树一帜,  出手不凡,  胡作非为,  悠然自得, 梦寐以求,  调兵遣将,  羊肠小道,  抛砖引玉,  添砖加瓦, (共35个)      四年级成语 泪如泉涌,  拾金不昧,  变幻莫测,  熟视无睹,  不计其数,  数九寒天,  求同存异,  忍无可忍,  女娲补天,  嫦娥奔月,  后羿射日,  精卫填海,  开天辟地,  夸父追日,  鹊桥相会,  疑邻偷斧,  掩耳盗铃,  杯弓蛇影,  画蛇添足,  自相矛盾,  愚公移山 ,  惊弓之鸟,  弦外之音,  百家争鸣,  笨鸟先飞,  一石二鸟,  如饥似渴,  马不停蹄 ,  大器晚成,  文武双全,  雷厉风行,  忆苦思甜,  绳之以法,  心照不宣,   风调雨顺,  心灰意冷,  语无伦次,  油腔滑调,  隔墙有耳,    (共39个)       五年级 碧血丹心,  促膝谈心,  过犹不及,  手足无措,  雨后春笋,  万木逢春  莺歌燕舞,  阳春三月,  闻鸡起舞,  滥竽充数,  大智若愚,  掌上明珠,  浑水摸鱼,  龙飞凤舞,  羊肠小道,  蛇影杯弓,  鸡飞蛋打, 兔死狐悲,  猴年马月,  马到成功,  牛刀小试,  聊胜于无,  有口皆碑,  抛砖引玉,  添砖加瓦,  废寝忘食,  正中下怀,  老态龙钟,  衣冠楚楚,  笑不露齿, 心驰神往,  鹬蚌相争,  郑人买履,  口若悬河,  (共 34个)       六年级成语 蒸蒸日上, 所剩无几, 欣喜若狂, 大喜过望 ,殊途同归 ,百川归海, 来龙去脉, 骑马找马, 化险为夷, 虚无缥缈, 物极必反, 乐极生悲, 平分秋色, 大相径庭 , 一针见血,   言不及义,  淋漓尽致,  掌上明珠,  故弄玄虚,  以卵击石,  健步如飞,  异口同声,  坐立不安,  提心吊胆,  无可非议,  盖世无双,  屡见不鲜,  司空见惯,  十拿九稳,  谆谆教导,  囫囵吞枣,  无可厚非,  因人而异,  络绎不绝,  滴水成河,  积水成渊,  饮水思源,  细水长流,  孜孜不倦,  琢玉成器,   畏首畏尾,  如释重负,  冰释前嫌,  忐忑不安,  富丽堂皇,  雕梁画栋,  鳞次栉比, (共47个)     첫째, 학생들의 년령특징, 인지규률, 학년학습요구, 그리고 매개 성어자체에 함유 된 의미에서의 심도, 수량 등에 근거하여 정밀하게 계산되고 수록한것이라고 보기에 는 문제가 있는것같다. 도표에서 보여주다싶이 각학년에서 배울 성어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많은 성어를2학년에 안배한데는 무슨 특정된 요구, 규률성이 있는지? 각각의 교과서를 보면 일차성적인 대비가 없기에 그런줄 몰랐는데 이렇게 학년별로 비교 해보니 납득이 안되지 않을수 없다. 2학년생인 손자가 성어해석을 물어올때마다 난색을 짓지 않을수 없다. 중국어의 성어는 거지반 그 형성된 유래가 있기에 그것부터 말해주자면 력사배경, 력사인물, 이야기자체내에 난해한 어구들이 있어서 해석에 설명이 붙게 되고 설명에 구구한 풀 이가 따라야 한다. 이 점은 해당학부모들이 공동하게 느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둘째, 한자를 거의나 오려붙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난해하기도 한 성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있으며 아이들은 또 얼마나 고달플것인가 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한것은 한어성어의 형태, 의미, 조선어성어와 다른 특 이성, 공통성, 상사성 등 여러 측면에서 연구되여야 하는 문제기때문이다. 그 실제를 필자의 수준이 닿는정도로 대략 고찰해 보았다.     난점 1) 동형동의(同形同义): 동형동의성어는 조선어에 한자성어와 한어성어의 형태와 의미 등에서 비슷한것을 말한다. 조선어성어와 한어성구의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거의 같은것도 적지 않다 례하여   “ 四面八方 (사면팔방)”  “百战百胜 (백전백승)” “万紫千红  (만자천홍)” “言行一致 (언행일치)” “万事大吉 (만사대길)” “万寿无疆  (만수무강)”  “袖手旁观 (수수방관)” “温故知新 (온고지신)” “震天动地  (진천동지)” “乘风破浪 (승풍파랑)” “深思熟虑 (심사숙고)” “过犹不及  (과유불급)”  “雨后春笋 (우후죽순)” “不计其数 (부지기수)” “画蛇添足  (화사첨족)” “百家争鸣 (백가쟁명)” “一石二鸟 (일석이조)”  “大器晚成  (대기만성)”  “狐假虎威 (호가호위)” “守株待兔 (수주대토)”  “锦上添花 (금상첨화)” “异口同声 (이구동성)” “天真烂漫 (천진란만)”  “龙头蛇尾 (룡두사미)” “天下无双 (천하무쌍)” “有始有终 (유시유종)”  “不可思议 (불가사의)” “千变万化 (천변만화 )”“千山万水 (만수천산 )” 등등이다. 난점2) 조선어에서 한자성어는 일부분이 한어에서 기원되였지만 필경 다른 언어이므로 뜻 은 같지만 성분이 다른 때도 있다. 례하면 아래와 같다. “山清水秀(산자수명)””  “穷奢极欲 (흥청망청)”  “念念不忘 (오매불망)” “拔苗助长(조장발묘)”  “眉开眼笑 (파안대소)”  “开天辟地 (천지개벽)“ “大公无私 (대공무사)” “得不偿失 (촉진척퇴)”  “崇山峻岭 (태산준령 )” “乐极生悲(흥진비래)” “络绎不绝 (련락부절) ” 등이 있다.    난점3) 조선어성어와 한어성구에 일부분은 표현한 뜻은 같지만 표현방식이 전혀 같지 않다. 중국어에서는 성어이지만 조선어에서는 속담으로 나타날수도 있다. 례를 들면 “隔墙有耳”은 조선어성어에 없지만 같은 뜻을 표현하는 속담이 있는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이다.  이런 속담은 사자성어의 의미해석이다. 사자성어가 추상성을 가지고있다면 속담 이 아주 형상적이고 구체적으로 그 성어의 의미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조선족학생들 이 이런 성어를 배울때 뜻을 잘 모르면 또는 의미를 더 잘 리해시키려면 조선어 속담 으로 번역하되 의역해야 하는데 저학년 아이들로 말하면 두가지가 다 난제이다.  俗语意译型도 그렇다. 례하여“目不识丁” 은[《구당서·장홍정전(舊唐書,張弘靖傳)》에 나오는바 “지금 천하가 태평하니, 그대들은 활을 잡고있는것보다 정(丁) 자 한자를 아는것이 더 낫다.”라는 말에서 유래함] 낫놓고 기윽자도 모른다. 일자무식 과 대응된다. 더 례를 들어보자.  ○ 鸦雀无声: 쥐죽은듯이 조용하다  ○ 亡羊补牢: 소잃고 외양간 고치다    ○ 隔墙有耳: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 以卵击石; 계란으로 바위치기  ○ 对牛弹琴: 소귀에 경읽기, 소귀에 해금타기  ○ 易如反掌: 땅짚고 헤염치기/누워서 떡먹기/식은죽먹기  ○ 华而不实: 빛좋은 개살구  ○ 挥金如土: 돈을 물쓰듯 한다.   ○ 形影不离:  바늘가는데 실간다  ○ 胆小如鼠: 노루가 제방귀에 놀란다.   전설이나 우화나 신화에서 유래된 이런 성구들을 학습시킬 때 자세한 아야기를 들려주면 그 뜻을 보다 쉽게 알수 있고 잘 기억할수 있겠으나 저급학년 아이들에게는 “우이독경”이나 소귀에 해금타기가 되기 십상이다. 례를 들어보자. “画龙点睛”: [량 (梁)나라 때의 화가 장승요(張僧繇)가 네마리 룡을 그렸는데 그중 두마리에 눈을 그려넣자 룡이 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고사,      “闻鸡起舞”:《진서·조적전(晉書·祖逖傳)》에서 유래된것이다. 동진(東晉)때 조적(祖逖)과 그의 친구 류곤(劉琨)은 늘 서로를 고무격려하여 한밤에 닭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서 무예를 련마하였다는 고사,     “刻舟求剑”: 초나라 사람이 배에서물 속에 칼을 떨어뜨리고 배가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하였다가 나중에 칼을 찾으려했다는 고사,     “滥竽充数”:《한비자·내제설상(韓非子·內儲說上)》에서 제선왕(齊宣王)이 피리소리를 좋아하여 삼백명이 같이 연주하도록 시켰는데, 남곽(南郭) 선생은 원래 피리를 불줄모르면서 그 무리에 끼여들어 머리수만 채웠다는 고사,     “杯弓蛇影”:옛날, 진(晉)나라의 악광(樂廣)이란 사람이 손님들을 식사에 초대하였는데, 손님중 한사람이 벽에 걸린 활이 술잔에 비친것을 술잔속에 뱀이 있다 고 오인하고 뱀을 삼켰으니 독에 중독되였다고 생각하여 병에 걸렸다는 고사,      精卫填海: 정위조(精衛鳥)가 동해 바다를 메우다. [《산해경·북산경(山海經·北山經)》에서,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에 빠져죽은후 원한이 맺혀 그 령혼이 정위조로 변하여 서산의 나무가지와 돌을 물어다 동해바다를 메우고자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 하였다.  回头是岸: 불교에서 말하는 ‘苦海无边,回头是岸(고해는 끝이 없으나, 깨달으면 극락)의 뜻은 괴로움과 고난은 바다와같이 한도 끝도 없으나 불법을 깨닫기만 하면 그런 고해(苦海)에서 해탈할수 있음을 말하는 고사, 夸父追日: 《산해경·해외북경(山海經·海外北經)》에 나오는 신화적인물인 과부가 태양을 좇다가 목이 말라서 황하(黄河)와 위수(渭水)의 물을 다 마시고도 갈증이 풀리지 않아 북쪽으로 물을 찾으러가는 도중에 목이말라 죽었는데, 그가 남긴 지팡 이가 드넓은 숲을 이루어 그 숲을 등림(鄧林)이라고 부르게 되였다는 고사, 등등은 해석에 해석을 덧붙여야 하고 해석해도 웬간한 어른들도 잘 기억될수 없는것들이 많아서 소학교아이들에게는 더구나 막연할것이 틀림없다. 이한 문제들은 학부모로 써 곤혹스럽지 않을수 없으며 심사숙고를 자아내지 없을것이다. 난점 4: 소학교한어교과서에 나타난 성구사용환경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동태환경 즉 문 장에서 나타난것(극히 적음)이고 다른 하나는 정태환경 즉 단독으로 나타난것이 다. 성구가 정태적으로 나타난 상황에도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본문에서 나온 성어 를 복습하기 위해 제기된다. 례컨대 련습중에 “读一读,写一写”등이다. 이 부분은 학생들에게 배운단어들을 귀납하고 공고하기 위해 설계한것같고 또 한가지는 본문 뒤에 “读读背背” “背诵积累”등 형식의 련습문제에서 나타난다. 이 형식은 한족소 학교어문교과서의 성구출현모식과 상사하다. 민족어이든 외국어이든 단어공부는 구체적어경 즉 문장속에 그 쓰임과 함께 습득 해야 리해가 빠르고 잘 기억되며 활용하기 유리하다. 이것은 언어학습의 규률이다. 하지만 우리 소학교의 한어교과서에서 성어학습은 기계적인 암송을 전제로 하기에 옛날 서당에서 뜻을 알고모르고 대구 외워두었다가 차차 그 뜻을 익히는격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횡적, 종적으로 비교하면서 편찬했으리 라 생각되면서도 필자로서는 그냥 곤혹스럽기만 하다. 현재 교과서에 나타난 성구들은 한어지식이 웬간한 학부모들이여야 지도가 가능 할것은 사실이다. 왜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기억이 사라지기도전에 한어학원 으로 뛰여가는가 하는 문제는 심히 심사숙고할 일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상술한 서술 에 담겨진 이런저런 의문들은 한어전문가로서의 일가견도 아니고 엄밀한 론리결구를 가져야 할 론문이 아니라는것을 먼저 언명해 둔다. 잘 모르긴 하겠지만 조선족소학교의 한어교수는 한족학교어문을 기준치로 삼고 될수록 동보(同步)를 지양힌것이라 사료된다. 아래에 한족소학어문교과서에서 성구의 사용실태와 대조해보면서 조선족소학교한어교과서들보다 더 실제적이고 더 실용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한족속학교어문교과서에 성구들은 기본상 과문에서 나오는것을 기준으로 한것같다. 한족애들은 우리 아이들의 학습환경보다 우월할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외국어”를 갓배우는 소학생들의 년령특징과 그에 따른 인지능력의 계단문제 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하긴 혼자 끙끙거려보는 문제이지만도…. 전업자도 아닌 일개 학부모의 시점에서 2학년에 다니는 아이의 한어숙제와 복습 을 지도하면서 매양 부딪치는 난제이길래 소감은 각별하지만 체득은 천박하여 지식점, 인식점 등에서 틀린곳이 많으리라 생각하면서 읽는 이들의 량해를 구하는바이다.     新课标成语表   小学一年级成语 百花争艳,  春意盎然,  春暖花开, 湖光十色, 跋山涉水,  亭亭玉立, 生机勃勃, 千姿百态,  花枝招展,  姹紫嫣红, 连绵不断, 莽莽苍苍,  无边无际, 江山如画, 汹涌澎湃,  锦绣河山,  崇山峻岭, 高耸入云, 巍然屹立,  赤日炎炎, 繁星闪烁, 皓月当空,  花好月圆,  群星灿烂, 旭日东升, 阳光明媚, 艳阳高照,冰雪消融 草长莺飞, 春光明媚,春回大地,春色满园,春色宜人, 落叶纷纷,鸟语花香, 秋高气爽, 天寒地冻,万籁俱寂,银装素裹,莺歌燕舞, 雨后春笋,白雪皑皑春回大地, 万物复苏,柳绿花红,莺歌燕舞, 冰雪融化,泉水丁冬,百花齐放 百鸟争鸣, 三心二意,七上八下,五颜六色,山清水秀,万紫千红, 和风细雨 鸟语花香, 千山万水,千方百计,东张西望,万里无云, 欢歌笑语,春暖花开 百花齐放, 春风拂面,古往今来,尊老爱幼, 亭亭玉立,美丽动人,花枝招展 心满意足, 爱不释手,长命百岁,小巧玲珑,生龙活虎, 年幼无知,千奇百怪 日里万机, 人命关天,勤奋好学,废寝忘食,百读不厌,相敬如宾, 团结友爱 活泼可爱, 五谷丰登,欢天喜地, 热血沸腾,经久不衰,垂手可得,叶公好龙 塞翁失马, 守株待兔,亡羊补牢,画蛇添足,蒸蒸日上飞黄腾达, 呼风唤雨 美不胜收, 滥竽充数   小学二年级 成语 万象更新, 抱头鼠窜, 鸡鸣狗盗, 千军万马, 亡羊补牢, 杯弓蛇影, 鹤立鸡群, 对牛弹琴, 如鱼得水, 鸟语花香, 为虎作伥, 黔驴技穷, 画龙点睛, 抱头鼠窜, 虎背熊腰, 守株待兔, 鹤发童颜, 狗急跳墙, 鼠目寸光, 盲人摸象, 画蛇添足, 鹤立鸡群, 鸡鸣狗盗, 鹬蚌相争, 蚕食鲸吞, 蛛丝马迹, 龙争虎斗, 龙马精神, 龙飞凤舞, 龙腾虎跃, 龙骧虎步, 龙潭虎穴, 龙跃凤鸣, 车水马龙, 指鹿为马, 兔死狐悲, 鸡犬不宁, 心猿意马, 狼吞虎咽, 眼高手低, 目瞪口呆, 胸无点墨, 头重脚轻, 手足轻深, 口是心非, 手疾眼快, 手疾眼快, 耳闻目睹, 头破血流, 眉毛清秀, 袖手傍观, 口出不逊, 飞蛾扑火, 金蝉脱壳, 积蚊成雷, 蟾宫折挂, 蚕食鲸吞, 蜻蜓点水, 螳螂挡车, 蛛丝马迹, 螳螂捕蝉, 黄雀在后, 见多识广, 察言观色, 高瞻远瞩, 左顾右盼, 调兵遣将, 粉身碎骨, 狂风暴雨, 旁敲侧击, 千辛万苦, 眼疾手快, 生龙活虎, 惊天动地, 七拼八凑, 胡言乱语, 改朝换代, 道听途说, 千呼后拥, 东倒西歪, 眼高手低, 口是心非, 头重脚轻, 有头无尾, 前倨后恭, 东逃西散, 南辕北辙, 左顾右盼, 积少成多, 同甘共苦, 半信半疑, 大材小用, 先人后己, 有口无心, 天经地义, 弄假成真, 举足轻重, 南腔北调, 声东击西, 转危为安, 东倒西歪, 反败为胜, 以少胜多, 由此及彼,手无缚鸡之力   小学三年级语文(下)成语和四字词语   群芳吐艳,姹紫嫣红,落英缤纷,郁郁葱葱,喷薄而出, 旭日东升,夕阳西下,皓月当空,崇山峻岭,悬崖峭壁, 层峦叠翠,苍翠欲滴,光彩夺目,万紫千红,挨挨挤挤, 小巧玲珑,成千上万,饥寒交迫,皑皑白雪,长途跋涉, 各式各样,应有尽有,沉默不语,不约而同 亡羊补牢,南辕北辙,惊弓之鸟,孤单失群,和颜悦色,连绵不断,恍然大悟,买椟还珠,各式各样,光阴似箭,日月如梭,受益无穷,鸦雀无声,情不自禁,人山人海,诚心诚意,博览群书,孜孜不倦,勤学好问,学而不厌,坚持不懈,竭尽全力,业精于勤,专心致志,聚精会神,废寝忘食,锲而不舍,脚踏实地 异口同声,神气十足,四面八方,七嘴八舌,迫在眉睫,喜出望外,端端正正,如愿以偿,蹑手蹑脚,左顾右盼,匆匆忙忙  寸草不生,夜幕降临, 古往今来,五湖四海,迫不及待,目不转睛,应有尽有,恋恋不舍,无影无踪,荒无人烟,趔趔趄趄,名不虚传,游人如织,栩栩如生,琳琅满目,爱不释手,清晰可辨,一模一样, 感激不尽,交口称赞,闻名遐迩,五官端正 栩栩如生,翩翩起舞,恋恋不舍,历历在目,面面俱到,头头是道,源源不断,彬彬有礼,息息相关,蒸蒸日上,津津有味,滔滔不绝,天地荒芜,人烟稀少,提心吊胆,面如土色,熊熊大火,零零星星,夸父追日,女娲补天,金光四射 四面八方,七嘴八舌,成千上万 人山人海,诚心诚意, 惟妙惟肖,零零星星,结结实实,郁郁葱葱, 异口同声,大惊小怪,南辕北辙,   小学四年级成语 德高望重,为人师表, 因材施教, 良师益友, 言传身教, 诲人不倦, 良师益友,春风化雨, 润物无声, 循循善诱, 潜移默化, 和蔼可亲, 无微不至,亲密无间, 形影不离, 亲如手足, 情同手足, 一见如故, 不分彼此,推心置腹, 心心相印, 明月清风、 春花秋月、 浩月千里、 风清月朗,皓月当空, 玉兔东升, 金风送爽、 雁过留声、 秋色宜人、 天朗气清,一叶知秋, 秋风萧瑟、 秋雨绵绵、 秋风习习, 文思敏捷, 聪明过人,一鸣惊人, 足智多谋, 才华横溢, 出类拔萃, 亭台楼阁, 富丽堂皇,雕梁画栋, 古色古香, 别有洞天, 鳞次栉比, 金碧辉煌, 高楼大厦,人山人海, 摩肩接踵, 万人空巷, 座无虚席, 门庭若市, 高朋满座,车水马龙, 川流不息, 水泄不通, 络绎不绝, 举袖为云, 挥汗如雨,人声鼎沸, 花团锦簇, 繁花似锦, 百花齐放, 万紫千红, 五颜六色,含苞欲放, 百花齐放, 五彩斑斓, 迎风吐艳, 姹紫嫣红, 拔苗助长,守株待兔, 自相矛盾, 掩耳盗铃, 亡羊补牢, 滥竽充数, 夸父追日、嫦娥奔月、 后羿射日、 精卫填海、 女娲补天、 哪吒闹海, 四面楚歌、纸上谈兵、 背水一战、 负荆请罪、 卧薪尝胆、 洛阳纸贵, 数九寒冬、寒气逼人、 冰天雪地、 天寒地冻、 滴水成冰、 鹅毛大雪, 鹅毛大雪、粉妆玉砌、 冰天雪地、 银装素裹、 大雪初霁   鸟语花香、 百花齐放、繁花似锦、 桃红柳绿、 春色满园、 春意盎然, 喜上眉梢, 兴高采烈,眉飞色舞,.喜笑颜开、 欣喜若狂、 心花怒放,  湖光山色、 山清水秀、山明水秀、 青山绿水、 山水一色, 山水相依, 妙手回春,. 华佗再世,扁鹊重生,.悬壶济世、 杏林高手,  精忠报国、 爱国如家、 为国捐躯、碧血丹心、 保国安民, 忧国忧民, 五彩缤纷, 五彩斑斓, 五颜六色,五光十色, 姹紫嫣红, 万紫千红, 多姿多彩, 色彩斑斓, 绚丽多彩,花红柳绿, 流光溢彩, 手不释卷, 孜孜不倦, 凿壁偷光, 不耻下问, 废寝忘食, 悬梁刺股,桃李满天下,国家兴亡匹夫有责、   六年级语文上册成语   波澜壮阔, 水平如镜, 拔地而起, 奇峰罗列, 形态万千, 云雾迷蒙, 连绵不断, 危峰兀立, 怪石嶙峋, 云横秦岭, 孤风突起, 目之所及, 千山一碧, 日益密切, 兴国安邦, 高不可攀, 盛气凌人, 万古长青, 千锤万凿, 排山倒海, 一涌而出, 翻天覆地, 天之骄子, 小心翼翼, 颇负盛名, 和蔼可亲, 纹丝不动, 居高临下, 满腔怒火, 一如既往, 绞尽脑汁, 随心所欲, 一本正经, 应接不暇, 粉妆玉砌, 彤云密布, 返朴归真, 苟延残喘, 蹑手蹑脚, 不拘一格, 罪魁祸首, 晨钟暮鼓, 神秘莫测, 遮天蔽日,   五年级上册成语 临危不惧, 披头散发, 淋漓尽致, 争先恐后, 惊心动魄, 近在咫尺, 鬼斧神工, 无与伦比, 不可思议, 浩浩荡荡, 人声鼎沸, 风和日丽, 绚丽多姿, 耀眼华丽, 多姿多彩, 纵横交错, 盘根错节, 翩翩起舞, 焕然一新, 昂首阔步, 至理名言, 心旷神怡, 出其不意, 冥思苦想, 汗流浃背, 镇定自若, 面面相觑, 莫名其妙, 人困马乏, 喜从天降, 得意忘形, 万籁俱寂, 丢盔弃甲, 眉开眼笑, 神机妙算, 叫苦连天, 惊慌失措。 闻所未闻, 围魏救赵, 破釜沉舟, 隔岸观火, 调虎离山, 烟熏火燎, 翻来覆去, 新陈代谢, 吐故纳新, 应接不暇, 惊恐万状, 汹涌湍急, 势不可挡, 不可开交, 井然有序, 舍己救人, 巍然屹立, 生死攸关, 不堪设想。 不知深浅, 刻舟求剑, 郑人买履, 懊悔不已, 气急败坏, 畏缩不前, 和蔼可亲, 闻明遐迩, 落荒而逃, 津津有味 郁郁葱葱,暴风骤雨烈,   六年级语文下册成语 书声琅琅, 议论纷纷, 人才济济, 大名鼎鼎, 千里迢迢, 风尘仆仆, 文质彬彬, 衣冠楚楚, 世世代代, 日日夜夜, 原原本本, 浩浩荡荡, 曲曲折折, 口口声声, .聚精会神, 千钧一发, 五湖四海, .满目琳琅, 顶天立地, 流光溢彩, 沁透心脾, 锱铢必较, 悬崖峭壁, 赞叹不已, 嘘寒问暖, 波澜壮阔, 非分之想, 初出茅庐, 如饥似渴, 成竹在胸, 迫不及待, 别具一格, 不假思索, 接二连三, 莞尔一笑, 始料未及, 无拘无束, 无价之宝, 同心协力, 伶伶俐俐, 端庄典雅, 富甲一方, 困惑不解, 出乎意料, 腰缠万贯, 解囊相助, 寒风呼啸, 汹涌澎湃, 忐忑不安, 天涯海角, 无济于事, 无怨无悔, 泣不成声, 工艺精湛, 宏伟杰作, 阡陌纵横, 波光粼粼, 屋宇错落, 古柳参差, 宛若飞红, 车水马龙, 人声鼎沸, 驻足观看, 鳞次栉比, 摩肩接踵, 熙熙攘攘, 戛然而止, 一丝不苟, 惟妙惟肖, 狂涛骇浪, 暴风骤雨, 腾云驾雾, 壮志豪情, 步履沉重      조선족소학교의 한어교수에서 성어(성구)교수는 의연히 창조적실천과 개혁을 요구하는 일대 난제이다. 교사는 한어교과서의 특점에 근거하여 학생들의 인식규률과 결합하여 편집의도를 모를것은 없지만 실제적인 교수모식을 탐색해야 하리라 생각다.                             2012년 4월 20일
202    고시조와 현대시조 댓글:  조회:12279  추천:2  2013-01-02
                                 고시조와 현대시조                            (특강재료)                    여러분, 특강이라고 할 것은 없구요 함께 조선시대를 풍미하였던 “시조”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합시다. 자기 민족의 언어환경 속에서 자라온 여러분은 이질적인 한국어 (조선어)의 정형시인 시조를 흔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를 배우고 한국의 시조에 깜깜이면 좀 곤란할 것입니다. 긴말 접어두고요, 자, 그럼 이제 시조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시조(時調)는 고려 중엽에 발생한 전통시 양식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유행한 시가이죠. 고려 후기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경기체가 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이념을 표출하기 위해 또 다른 표현 형식을 개척하는 과정 에서 창안된 순국문학 양식입니다.     시조의 기원은 한시기원설, 별곡기원설,민요기원설,향가기원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어요.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조’에서 나온 것으로서 시절가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뜻인데요 여기에 곡조를 뜻하는 조가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옛 가락, 또는 본디의 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고조에 상대되는 개념을 지닌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시조를 가리켜 단가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래의 길이가 짧은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시조의 명칭이 ‘가락’ 또는 ‘노래’와 연관이 깊은 것은 시조가 본래 노래로 향유 되었던 사실과 관계가 깊은데 오늘날 한(조선)민족이 시조라고 부르는 것은 본디 가곡이라고 부르는 음악의 노랫말, 똑같은 노랫말을 가지고 시조라는 음악으로 노래 하기도 했기때문인데 이것은 오늘날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음악적 관습이에요.    시조의 형식은 전체가 초, 중, 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3-4자 정도로 된 네 개의 단어 또는 어절로 되어 있어요. 이 말 덩어리들은 마디 또는 토막 혹은 음보라 불려요. 따라서 시조의 한 장은 대체로 15자 안팎이 되며 작품 한 편은 대체로 45자 안팎이 되지만, 이런 형식을 글자 수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칙은 없었기 때문에 글자 수에 변화가 많은 것도 형식적인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종장의 첫째 마디는 반드시 3자로, 종장의 둘째 마디는 대체로 5자가 넘도록 표현하는 경향이 굳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시조의 형식을 설명할 때 두 개의 마디가 합쳐야 뜻이 있는 말이 되여야 하기에 이를 ‘구’라 하여 시조를 3장 6구의 형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3행으로써 1연을 이루며, 각 행은 4보격으로 되어 있고. 이 4보격은 다시 두 개의 숨묶음으로 나뉘는데, 그 중간에 사이쉼을 넣게 되어 있고. 각 음보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음절로 구성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초장 : 3, 4, 3, 4 중장 : 3, 4, 3, 4 종장 : 3, 5, 4, 3     하지만, 이 기본형은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기준형일 뿐, 고정적인 것은 아니지요. 즉, 기본형이라는 거예요. 음수율을 살펴보면, 3, 4조 또는 4, 4조 기본운율인데 이 기본운율에서 1음절 또는 2음절 정도를 더 보태거나 빼는 것은 무방해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시조의 종장에 제1구는 3음절로 고정되며, 제2구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한는 규칙이 유전되어 왔습니다. 종장의 격식도 격식이려니와 시조의 주제가 심화, 확충되는 부분이므로 특히 알심들이는 부분이 됩니다    흔히 초장의 3,4,3,4 하는 이것이 바로 자수율로서 말 그대로 시조 율격을 이루는 근간으로 보았던 것인데 한국 조윤제선생이 이 자수율로 고시조의 1,000여편을 분석해 본 결과 자수율에 맞는 작품의 수는 30%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수율을 대신해서 나온 것들이 음수율, 음보율 하는 것인데, 즉 시조의 율격은 소리의 길고 짧음으로도 조화시킵니다. 음수율외 소리의 장단이 서로 잘 어울려도 율격이 이루어집니다. 이상의 형식적 전형은 평시조를 가리킨 것이고, 이와는 달리 그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사설시조는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시조의 종류를 일반적으로 다음 같이 분류하고 있습니다.     평시조 : 전체 (초장 · 중장 · 종장) 45자 안팎의 단형시조.     엇시조 : 평시조의 초장, 중장 중 어느 한 구가 길어진 시조.     사설시조 : 사설 시조 : 3장 중 두 구 이상이 평시조보다 길어진 시조.     양장시조 : 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변형된 시조.     단장 시조: 종장만으로 멋을 내려고한 변형 시조. 그 밖에 형식적 특징으로 내용 상 연결된 2수 이상의 기본형을 나열하여 한편의 작품을 이룬 경우를 연시조라고 합니다.     옛시조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교적 충의사상을 노래한 시조들이 많죠. 말하자면 절개와 의리, 회고, 경물을 읊는것, 안빈낙도, 풍류 등 관념적인것이 대부분입니다…자연 속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삶을 노래하는 작품들도 많은데 이러한 작품들 역시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교적 충의이념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기녀들의 작품에는 그들의 애정 세계가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반·귀족처럼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생활이 중심이 된 재담(才谈), 욕설, 음담 (淫谈),애욕 등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풍자하고, 형식 또한 민요,가사, 대화 등이 섞여 통일성이 없는 희롱사(戏弄词)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시조는 조선시대의 특유의 문학양식이지만 지금도 그 전통을 살려 시조창작이 맥을 끊지 않고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요. 고시조의 형식이 갖는 자질 가운데서 오늘에 남겨진 것이 있다면 첫째는 시조가 3장으로 씌어진다는 것, 둘째는 시조의 각 장이 대략 15자 안팎이라는 것, 셋째는 그러한 형식에서 글자의 수가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형식성을 낳게 만들었던 여러가지 조건들은 시대 발전과 더불어 이미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시조는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든가, 정해진 음악이 있어 그 음악성에 부합하는 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그 노래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시조의 기본 자질이 아니라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시조는 시대별로 갑오(甲午)1894년 이전 시조를 '고시조'(古時調)라 하고, 그 이후 시조를 '현대시조' 라 부릅니다. 현대 시조는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에 가장 알맞은 문학 양식인 시조를 민족시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시조의 형식상의 제약을 탈 피하여 현대인의 생활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한 시조로서 노래 가사라는 면을 벗어나 명확히 시라는 의식하에 씌어졌는데 작가(시인)들이 읊었고 평시조가 주류를 이루며, 연시조가 많습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점이 무언가구요? 네, 고시조가 주로 유교적 충효사상을 다룬데 비해, 현대시조는 주제가 다양하고 개성적 자아의 내면을 표현하였는 데 현대인의 다양한 정서와 가치관을 다루지요. 다음 사색적이고, 관조적이며 이미지, 상징 등 현대시의 기법을 도입한것입니다. 내용상 감각적이며 실제적인 생활을 다룬만큼 현실에서 많이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식상에서도 정형성을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자유시에 접근할 정도로 파격을 하는 경우도 있고 3연6행(句别排行)의 시조가 많으며 자유시 형태를 취합니다.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한것이 이채롭고 표현상에서 회화적,시각적이고 제목을 달고 작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개화기 이후 3.4.3.4 의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감정에 알맞은, 비교적 자유로운 리듬으로써 지어졌습니다. 근년에 자유시와 비슷한 형태로 행과 연을 나누어 배치, 구성하여 짓는 경향이 강하며 현대적인 생활 용어로 느낌이나 생각 을 표현하고 있어요. 또한, 개인 정서와 생활에 밀착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며, 다양한 표현 기교를 사용합니다. “비”'  라는 시조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대  (2)  그리움이(4) 고요히(3) 젖는 이 밤(4)                  한결(2) 외로움도(4) 보배인양(4) 오붓하고(4)                  실실이(3) 푸는 그 사연(5) 장지 밖에(4) 듣는다(3)        그런데 이 시조의 시행을 현대시처럼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인양 오붓하고                               실실히                                푸는 그 사연                                    장지밖에 듣는다                  원문보다 감각상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또 시조면서도 현대맛이 나이지요. 진행상 매끄럽지만, 기본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니와 더구나 초월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대시조에서 추구할 것은 중요하게 사상(철리)이에요. 그냥 옛시조처럼 음풍영월하 거나 일상잡사, 연정을 읊조릴 수도 있으나 현대시조인만큼 정형시로서의 시조의 특색을 살리면서 지성적인 계시성이 있어야 읊조려볼 가치가 있게 될테죠.     그냥 “달아 달아 밝은 달아”하면 리태백이 노던 달이 나오게 될 것이고 광한궁에 상아의 고독쯤밖에 더 나올게 없을 것입니다. 시조라는 형식은 옛것이지만 문화전통 인만큼 계속 계승 발양되어야 한다면 현대시조의 현재적 좌표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시조는 그저 현대+시조라는 명칭에 그칠게 아니라 현대성과 시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명실상부하게 역사적 사명을 다한 고시조의 빈 공간을 메꿀 수 있는 충전이 되고, 되돌아와 시조성을 확보해야 자유시와 또 다른 현대시조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성을 무시하고 시조성만 고집하면 현대인의 까다로운 미의식에 걸맞는 공감대를 확충하기 어렵거니와 복고주의 혹은 국수주의 경향에 맴돌게 될것이고 반대로 시조성을 무시하고 현대성에만 편향한다면 자유시와 한물밥이 되여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자유시의 변종쯤으로 되고말 것입니다.     현대시조라면 시행배렬 같은 형식미, 표면적인 현대감각이 문제인것이 아니죠. 고시조가 갖지 못한 현대적 사상, 정감을 침투시켜 시조가 거듭나야 할 이유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대시조라면 그냥 글귀나 맞추고 감정을 희롱하는것으로 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시조는 현대사상을 담는 그릇이 될뿐입니다. 약탕관은 옛것이라도 새 처방으로 지은 령약을 얼마든지 다릴수 있다는 말이지요. 시조의 뿌리는 깊으나 새롭게 가꾸지 않으면 뿌리부터 썩고 나중에 꽃도 피지못하는 고목이 되여질테니까요. 자유시와 경쟁하려면 문제는 어떻게 가꾸어야 고시조가 우리 민족의 문학의 백화원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느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현대시조라면 무엇보다 현대인이 공명하고 기꺼이 받아들여 새겨보는 사상(일상적인 것이라도) 이 담겨 명멸해야 할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시조 한수 예로 들어보자요.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가쟈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닢에서나 자고가쟈        이 시조에서 드러난 의미는 어느 한량이 나비에 기탁하여 꽃과도 어울려 보려하고 잎과도 어울리려는 방종한 기질을 호탕하게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선비의 호탕한 의미지향이 아니예요. 작품의 의미지향은 나비와 함께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은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지친 몸을 꽃에 의탁해야 하고 거기서 박대를 받으면 잎에라도 의탁해야 하는,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한 고단하고 암울한 행로를 노래하고 있는것이 심층적 주제입니다.     시인은 단 세 줄의 시행에서 바로 이러한 관계를 꿈꾸고 이러한 대동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의 시적 자아는 개체의 욕망으로 일그러진 마음이 아니라, 갈고 닦은 마음이며, 자연이나 우주 같은 마음이라야 가능합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갈고 닦은 깊은 생각을 담은 것이 이 시조의 궁극적 “의미”이며 이러한 시적 의미가 독자의 정서와 완벽하게 부합되어 노래처럼 불리워진 것입니다. 시가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란 말이 여기서 확인된 것입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음악적 음율을 상실하고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 전환됨에 따라 남은 것은 시조가 갖는 '형식장치' 뿐입니다. 이제 현대시조는 고시조처럼 시조 창의 변주곡에 담아 시적 의미와 정취를 심오하게 하는 수단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으므로, 악곡적 음율이 사라진 공백을 언어의 음성적 자질로 미봉하여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를 실현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시창작, 특히는 시조창작에서는 시어 하나의 선택과 배치에서도 음악적 율조를 활용해야 하고, 듣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으로, 시각적 조형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내적 질서를 바탕으로 고시조의 선율적 기능에 버금 가는 율동적 실현과 공간적 조형미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언어의 음성적 질서에서 구해야 하므로 그만큼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것이지요.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은 음악적 율동에서 언어의 음성 자원을 동원한 율동으로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시적 표출에서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사정은 현대시조나 현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어시도 운률을 중시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지향점은 정반대였으니 현대시는 이전의 전통시가였던 고시조의 엄정한 형식 장치에 대한 반발과 거부의 시정신으로 나아가고, 현대시조는 그것을 적극 수용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현대시가 전통적 율격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념으로 삼아 개성적 율동을 지향하면서 과격하고 극단적 방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자유시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현대시의 이러한 자유율적 행로도 시의 멋과 맛이고 전통율격에 대한 이탈과 거부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소월, 한용운, 김영랑, 서정주의 절창은 전통율격을 철저히 외면한 데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는 데서 오히려 가능했습니다. 소월시 [진달래꽃]이 시조는 아니지만 그 아름다운 조선말의 음률미를 지금까지 따를 시가 없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월시에는 친근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의 정서에 공감되기도 하거니와 4음3보격이라는 전통율격에 바탕을 두고 엮어졌기 때문이죠. 전통율격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 말의 율동적 아름다움을 가꾸어온 경험적인 미의식의 결정체로서 우리 민족의 심미적 공감에 의해 공유하던 율동형이 양식화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고, 전통율격양식의 리듬을 타고 실현된 것이기에 여러분도 감미로움을 느끼고, 또 쉽게 암기하여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시조이든 현대시조이든 그저 음풍영월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형식미 추구에서 체현되는 현대멋이 아니라 사상, 시조의 주제적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이라면 구별일것입니다.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어적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열심히 청취하고 의문점을 구김없이 제기하면서 적극 호응해준 여러분들이 돋보이고 대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3일                                                                           빈해대학 한국어연구쎈터 ( 최균선)     
201    명상시조(100수) 81-100 댓글:  조회:9498  추천:1  2012-12-30
  (81-100)    81.  지금은 함박꽃을 촌스럽다 하는때라              창턱에 인조꽃도 그보다 좋다하네                  돈바람 요괴풍이라 그럴만도 하오리   82.  내공로 네것되고 네잘못 내해이냐                  고기는 내해이고 웅장만 네몫이냐                 우자야, 도깨비세상 되여진줄 모르냐   83.  물막이 따로하고 고기잡이 각각인가                 건국의 피어린뜻 육탄으로 이루더니                 선렬들 피뿌린 땅에 잡풀들이 무성타   84.  가난에 속상해도 명이라 삼키지만                  불평등엔 못참는것 민심이 아니던가                득인심 득천하임을 위정자는 알리라 85.  사노라 살아온일 허황해 허망한듸                 욕심아 늬놈만은 바라바락 용쓰느냐                 물불을 가리지않고 날치다가 죽을라 86.  허허한 이 세상에 류성같은 과객이라                   허무한 만단회포 청산에 묻어두고                웬쑤의 인생살이를 류수처럼 살리라                   87.  새벽잠 늦꿈속에 날샌줄 몰랐노라                동산의 노을빛에 하늘이 너무밝아                밤새운 음풍영월이 제무안에 취하네   88.  높은들 어떠하며 낮은들 어떠하랴                 죽이야 풀어져도 가마에 있지않냐                 권귀도 비천한자도 저승길엔 동행자   89.  참새떼 재깔댄들 꾀꼴새 되여지랴                   잰나비 흉내낸들 인간이 되여질고                 제노라 으시대여도 못난꼴은 본새라     90.  기재도 불운하면 초야에 썩어있고                  기회가 틀어지면 불우가 탄식하리                 나쁜때 나쁜인간이 득세하면 황당해   91.  호박에 줄을긋고 수박이라 하는자나            사슴을 말이라고 회유하던 조고이나                허위로 리득챙기니 가증하다 하리라   92.  들은말 半信하면 현자라 하여이고                     어느말 믿어얄지 잘알면 지자인데                가짜가 진짜되는 때 허허실실 몰라라   93.  잡초는 무더위를 탓하지 않거니와             나무도 추풍락엽을 원망하지 않거늘                 늙음이 촉급하다고 개탄하니 우습다    94.  황련맛 모르고야 꿀단줄 어이알리                     인생의 단열매는 苦生树에 맺히나니                  살다가 중도이페면 어리석다 하리라   95.  실농군 등허리에 구슬땀 고랑질때                    게으른 가난뱅이 게침에 목이멜라                매미가 얼어죽는데 이상할것 있나뇨   96.  독주를 마실이가 세상에 있으랴만                    웃으며 독배하는 毒주는 美色주라                탐관이 탐색하노니 그와같다 하리라   97.  독재는 만성독약 차차차 병들리라                    환상증에 걸려들면 천하에 독존이요                망상증 당겨올때는 치매증이 오리라   98.  세계는 부한자의 세계가 아니란다                          소수의 권력자의 세계도 아니란다                 마음을 가진 사람의 세계란다. 아닌걸,   99. 자기를 낮춘다고 낮아질리 없건마는                        발꿈치 돋우면서 키자랑 해야하노               스스로 낮추는자가 높은줄을 모르냐   100.  권력을 람용할 때 진미를 만끽하냐                          때때로 절제하면 다른멋이 풍기느냐                   알괘라 절대권력은 절대적인 부팬줄                                     2010-2012년 7월  30일     
200    명상시조(100수) 61-80 댓글:  조회:8766  추천:1  2012-12-24
                           (61-80)              61. 꽃닢이 지는모습 하롱하롱 슬프다만                 때되여 자리내는 뒤모습은 의로워라                륜환의 신구교체가 아쉬운들 어이리    62. 꽃잎이 지는도다 화사한 그 한철을                향기로 만방하며 꿀즙을 빚어주고                열매로 락화의 뜻을 새겨두니 갸륵타   63. 분분한 락화는 눈물진 결별인가                  스스로 져야함을 분명히 아는꽃을               자리에 련련한이들 보옵시면 좋으련   64. 록음은 승화시라 흥망은 섭리로다               조용히 스러져서 열매를 맺어주는               꽃들의 희생정신을 눈물겨워 하노라   65. 이른봄 먼저웃는 진달래 반가웁고            눈속에 만개하는 매화꽃 장하도다                우리도 저와같으면 멋에겨워 살리라   66. 생명의 흥망성쇠 아쉬워 아니건만                  병들어 절로지는 락엽이 다시뵈네                목숨은 부대끼관듸 조락이란 이러해   67. 사막의 불사신이 생명을 죽이도다                   사구에 묻혀버린 억겁이 허무하여                뜨거운 모래바람에 펄럭이는 넋이여 68. 본연의 원시성을 그뉘가 말할손가                생명은 촉급하고 회귀를 모르나니                사람이 자성하던들 속절없는 인생요 69. 지기란 희귀하야 하늘에 별따기나                언제나 너도좋고 나좋은 호인이면                지음이 없으매로 평생두고 섭하리   70. 청운몽 간절한들 연줄없이 이뤄질고                    알뜰한 남가일몽 깨지니 아쉬우리                두어라 운수소관을 탓하던들 어이리   71. 늙도록 풍월짓고 웅문도 별렀건만                    되짚어 생각하니 부질없고 속절없다.                명성을 날린다한들 부운같지 않으랴 72. 울울한 락락장송 보니난 숙연하다                     사람은 늙어지면 저같지 못하리라               어찌타 장생불로에 애솔같이 되리오   73. 천궁은 가도가도 못미칠 미궁인데                  인류의 정복욕은 갈수록 난당일세                   화성도 목성이랑도 지구촌을 만들려   74.  강술에 담배안주 빈입을 다신후에                      취기에 조을듯이 송림에 앉았더니                청풍이 불러왔느냐 남가일몽 오는다 75. 숫사자 개지낳고 암탉을 불러내고                      흰구름 고기되여 바위를 낚아채는                시상이 기특하시여 몽롱시라 하는가   76. 소쩍아 밤새웠냐 부엉도 울었단다            뻐꾹아 남둥지에 알낳고 좋았더냐                 황페한 시골마을은 이것저것 한이라 77. 못참은 그리움에 만장지서 띄웠더니                 핸드폰 하는말이 “잘있슴다” 한마디네                지금은 혈육의정도 함축하는 시댄가        78. 만월도 스러지니 야위여 못보것다                 둥글고 스러지는 섭리를 말리랴만               풍만해 아름다움을 저리보고 알괘라   79. 청풍은 간데없고 구름만 오락가락                 공수래 공수거를 바람이 전하는데                나는야 돈바람타고 갈곳몰라 하노라   80. 탐욕에 검어졌냐 흑심에 끄을렸냐                  백조도 먹물독에 빠지면 가마귀라               풍조를 따랐노라고 변명하면 되리라
199    명상시조(100수) 41-60 댓글:  조회:9289  추천:1  2012-12-19
                                    (41-60)    41. 내 지금 하는 일에 어느게 맞는건지            어느게 틀리는지 죽을때 알게 될가                몰라도 좋아하는 일 슬카장 하리로다   42. 인생이 울적하야 가슴답답 괴로울제           서선생 마주하니 마음이 밝아지네               세상에 배우기보다 확실한것 있으랴   43. 소원의 희망봉에 내먼저 오르려면            남들이 장기놀때 시간을 쪼개거라                흘린땀 성공의 꽃을 만개하게 하리라   44. 인간의 됨됨이에 시금석 무엇일고            유혹이 꼬실때에 거부심 아니고녀                탐욕은 눈이 멀어서 천길나락 모르디   45. 성공은 쌓아지지 날아오지 않더니라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탐해서야                개천도 차차 합수로 창판만경 이룬듸   46. 사람의 얼굴이란 조물주의 걸작인데           웃을줄 몰라하는 얼굴도 인면인가               맹수도 웃는 얼굴을 알아본다 하는듸   47. 좋은길 따라걷고 좋은 말 골라하고           두손를 놀릴제는 좋은 일 하리로다               마음에 계률로 삼고 안빈락도 하리라   48. 하늘은 제스스로 돕는자를 돕거니와           게으른 치부몽은 빈궁을 비웃나니               가난에 한탄을 말고 뿌리부터 캐거라   49. 제복이 그 사람을 만든단 말씀이야            자리가 구실을 시킨다는 뜻이련만                밭머리 허수아비는 참새들도 웃더라   50. 차지한 위치덕에 한몫을 챙기고도            제잘나 이룬듯이 뽐내니 우습지라                현대판 고아내들이 그들인가 하노라   51. 인간이 우매하야 하느님 눈감는데            하느님 탓이라고 불평을 부리면서                알뜰히 기도하시니 허황하다 하리라   52. 어떨궁 좋다마는 김치국 찾지마라           공상에 환상업고 망상에 목매달면               살아도 껍데기밖에 없을줄로 아노라   53. 멀리를 내뛰려고 물러선 태세인데           우자는 나가기만 고집하니 가련할사               부차의 와신상담이 옛말뿐이 아니여   54. 제멋에 피여나서 무심히 웃는꽃을            날반겨 웃는듯이 져혼져 좋아하네               두어라 감각시댄들 자기조차 속이냐   55. 사람이 먼저 나고 돈이라 생겼건만           주객이 전도되니 세상사 기특하네               돈주인 어느 뉘시고 노예들은 누군고                             56. 막히면 수심깊이 고이며 기다리고           넘치면 차고흘러 바다로 가는물은               골골이 모이고 합쳐 장강대하 이루네                   57. 인생은 환득환실 많은것 잃더라도           량심을 개먹이면 남는것 뭣이던고                   유인이 최귀라함은 량지때문 아니랴 . 58.  아래물 흐린것이 웃물이 탓이라면             정계천 흐린물은 어드메서 흐렸을가                 탁류라 썩은 물에는 상중하가 없더라   59. 태산이 치솟은들 하늘에 가닿으며           곤륜이 아아한들 창공을 뚫을손가               소인이 제노라한들 군자될줄 있시랴   60. 나지나 않았더면 죽을일 없으리라                  득중유실 실중유덕 득득실실 실이복득               (得中有失,失中有得,得得失失,失而复得)                  얻음에 죽기살기냐 얻었던들 잃는것을        
198    명상시조(100수) 21 ㅡ40 댓글:  조회:8929  추천:1  2012-12-16
                     ( 21-40 )   21.  태없는 산봉인데 다가올리 있으랴            스승도 웅좌처럼 받을어 모시려면                천리길 마다할소냐 한달음에 뵈오라   22.  처처에 부글부글 거품의 시대로고             허위는 둥둥 뜨고 진실은 억눌리고                  물거품 거품마다에 허황함만 요란타   23.  기회를 기다릴제 혜안은 밝혀두라            인내가 지혜이니 신념은 일관하고               충실을 쌓아간다면 때가 절로 오리라   24.  스스로 해부하여 아집을 내치거라             자존도 아닌것이 독선될가 저어되네                 자기를 알고나서면 방향이야 외낄가   25.  인품은 관후하되 정의는 신장하소             仁자를 새겨가는 정의란 小义이고                 단군님 홍익인간을 大义라고 하니라   26.  사랑의 상록수는 믿음이 옥토거늘             리해의 해볕아래 성실로 맺혀지면                주렁진 행복의 열매 새콤달콤 하리라           27.  사랑해 포용하면 세상을 얻을테요            공연히 미워하면 모두를 잃으리라                사람의 爱爱憎憎은 그토록이 무서워   28.  진실에 눈을 뜨면 세상사 시끄럽고            진리를 지키려면 고통이 따르리라                백년도 못사는 인생 대바르게 살잔다     29.  타인을 진솔하게 착하게 대하리라             덕이란 쌓은데로 간다고 일렀거늘                 리기에 아득바득은 고달파서 못살리                    30.  류수는 순리대로 낮은곳 좇아가고             일월은 륜환하고 별무리 오손도손                 억겁의 운행법칙에 위배됨이 없더라   31.  운명이 얄궂어도 부디나 절망마라             불행은 단골인즉 락심하면 바보니라                 험난한 가시밭길도 끝날날이 있나니   32.  알차서 고개숙인 조이삭 숙연한데            저보아 허수아비 가라질 웃는구나                속비고 으시대는꼴 보기조차 싫에라                                33.  동장군 눈날리며 만리를 호령한들            오려는 양춘가절 당할줄이 있으랴                세사도 이같을진저 순리대로 하리라   34.  실실히 내리는비 방울방울 감로수라             새움이 푸릇푸릇 봄잔치 흐드럽다.                 호시절 구십춘광에 록음방초 승화시   35.  오고파 오는봄도 갈때는 미련없고             제멋에 피던꽃도 질때면 락화인데                 권좌에 련련하시니 섭리마저 모르셔   36.  토선생 낮잠잘때 거부기는 일심불란             사람도 분발하여 일구월심 진취해야                 유치를 갈아번지고 성공일랑 꽃피듸   37.  시작은 유예말고 내밀손에 확 밀어라               관둬야 할때이면 애석할일 없을진저                 설자리 앉을자리를 못가리여 욕볼라 38.  천리마 한번굴러 백리를 뛴다더냐            첫걸음 떼였다면 뗀김에 내처가소                황소도 걸음다그쳐 천리길을 가느니   39. 준비도 요긴타만 시작이 절반이요            배움에 때있어도 그칠날 없노매라                아희야, 평생배우며 스스로를 가꿔라   40.  어두워 우왕좌왕 갈길몰라 당황하면             별빛에 길을 물어 믿음따라 그냥가라                 밤새워 걸은 사람을 아침해가 반기리
197    (칼럼) 원, 저리 얄팍한 심통이라구야! 댓글:  조회:10137  추천:2  2012-12-15
                                  원, 저리 얄팍한 심통이라구야!                                                         최 균 선        심통(心统)이란 마음의 자리라는 말이지만 흔히 부정적으로 쓰인다. 례하면 “심통이 사납다”. “심통이 놀부같다.”등이다. 사람의 심리를 일컬어 심사, 심정이라 하는데 심통은 온당하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인 심술과 배짝이 맞는것으로서 거개 남에 대한 긍정, 부정심리에서 금그어지고 또 그렇게 체현된다.     긍정과 부정은 론리학에 속한 개념으로서 사물의 내부에 내재한 두가지 완전히 상반된 규정성일뿐만아니라 대립적이면서도 변증통일관계에 처해있다. 량자는 호상 포함하고 있고 호상 전화되기도 한다. 즉 긍정속에 부정이 포함되여있어 일정한 의의에서 긍정은 곧 부정이 되며 긍정적사물에 자아부정의 인소도 내포하게 되여있다.     반대로 부정속에 긍정도 포함되는바 일정한 의의상에서 부정은 곧 긍정이 되는바 부정은 긍정을 소멸하는 환절이다. 우리가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판단할 때 “이것”이라고 긍정하게 되며 동시에 “그것”이 아니라는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긍정과 부정은 쌍둥이자매이다.     시비가 분분하고 각자 주장으로 시끌벅적한 시대라해도 긍정, 부정이 없으면 어떠한 력량도 생길수 없는 그만큼 긍정이 전무하면 역시 명백한 부정도 없게 된다. 풀어말한다면 명확한 긍정이 없다면 당연히 유력한 부정도 나올수 없다는 설명이 되겠다. 백사에 긍정도 바람직하지 않으나 만사에 부정도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시시비비에서 긍정과 부정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하는가? 두말할것없이 사심ㅡ자기 리해득실이다. 대부분의 언어상황에서 긍정과 부정의 뜻이 이어지면 부정문이 되고 부정에 부정의 뜻이 이어지면 긍정의 뜻이 된다. 물론 두개의 긍정의 뜻이 합쳐져서 부정의 뜻이 되는 언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긍정, 부정에는 반긍정, 반부정이란것도 있는데 내키지 않지만 반긍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얄팍한 속창이 다뒤집어 보이기에 긍정은 하되 “그런데, 그러하다지만, 한것같기도 한데, 그렇게 보이는듯 하다, 그런것같기도 한데…”라는 식으로 토를 달아야 시름놓는다. 반부정도 “그렇기는 해도, 하지만, 그런데, 그런듯 하지만…”등 군더더기로 내심의 공허를 덮으려 하며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소리로 자신의 저의를 얼머부린다. 반긍정이나 반부정은 오십보 백보차이로서 자아인격의 폭로이다.     밉다고, 내편이 아니라고 내비위만 내세우면 눈에 콩깎지가 씌우게 되고 판단의 기준이 사악한 리기에 기울지고만다. 무조건 “너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색안경을 써야 한다. 타방을 긍정할줄도 안다는것은 인간의 덕목의 하나인 겸허성을 겸비했다는것을 의미한다. 부정으로 빚어진 사람은 남보기에 도고한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리함으로서 그의 인격에 무슨 도금이 되는것도 아니고 빛이 나는것도 아니다.    “아참, 저렇게 가시가 많은 나무에도 저토록 예쁜 꽃이 피는구나!”하고 감탄하면 긍정의 마음을 가진것이고 반대로 “저리도 예쁜 꽃이 피는 나무에 젠장 무슨 놈의 가시가 저리도 많아?”라고 나무리면 부정적인 심태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정, 긍정의 사유모식이 있고 그만큼 그의 자유적판단결과이다.     그러나 만약 긍정의 력량을 착오적인 곳에 쓴다면 부정이 된다. 물론 부정의 힘을 쓸수 없고 오직 긍정적력량만 써야 된다는것은 아니다. 한즉 우주만물의 음양의 도리를 잘 알고 긍정, 부정의 력량을 사용해야 한다. 대방이 밉다는 아집으로 남을 부정하려들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관념, 시각을 긍적적관념, 시각으로 전환해야 정면적인 인간이 된다. 불원이면 영원히 크지 못하는 미숙아가 될것이다. 부정의 다른 결과는 멸시가 되겠지만 결코 그 존재마저 훼멸되는것은 아니다.     남을 무조건 부정하는것으로 자기를 긍정하며 심리평형을 가지려 하지만 남을 긍정할줄도 앎으로써 역으로 부정의 힘도 유력해진다는 도리도 모르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특히 나와 사이가 틀어지고 앙숙인 경우에는 지어먹은 마음으로 무작정 부정의 몽둥이부터 휘두르면 얼핏 보아도 내심의 허약성을 드러낸다는것이 뻔해서 민망스럽다. 덮어놓고 상대방을 부정하려드는 사람들은 거개 사촌이 기와집을 지으면 배아파 한다는 속담의 주인공들이다. 말하자면 질투의 화신들이다.    그저 부정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감을 상실한듯 여기는 자들은 남을 부정할 건덕지가 정없을 때는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같다고 나무린다는 속담처럼 이것저것 얼토당토않게 깎아내리고야 심리평형을 찾는다. 이런 심통은 그야말로 얄팍하여 가소로움을 자아낸다. 이런 심리적렬근성은 아마도 세계민족지림에서 우리 민족이 특허권을 따냈다고 해야할것 같다. 그만큼 유일한 비애의 족속으로 남아있고…     례를 든다면 자기가 맹종하는 “권위자”혹은 세인들이 거개 콩이라고 언명하는데도 자기의 리속과 엉큼한 심통으로 하여 한사코 팥이라고 우겨댄다면 이런 언동은 해설이 필요없이 “내심통은 이렇게 얄팍하오”하고 자아를 폭로하는격이 된다. 설사 콩이라 해도 콩으로 메주를 써서도 안된다고 억지를 쓴다. 진짜 콩을 삶아 메주를 쓰면 필경 뜰것이고 메주가 뜨면 메주냄새가 나고 그게 향긋한 냄새라도 내게는 공기오염이라고 억지를 써야 한다. 장은 오래되면 냄새가 난다고 신발견을 한듯이 고아대는 이런 심태에서 “나의 실패는 경험쌓기이고 남의 실패는 잘코사니다”라는 론리가 아닌 궤변이 난당이다. 이런 무조건 부정의 저의는 너무 비릿하다. ­   친구의 가살스러운 칭찬보다 적의 뼈저린 비평이 더 낫다는 말이 있던지…자신심에 넘친 사람은 결코 불문곡직하고 부정의 방패를 내들려하지 않는다. 그 방패는 나의 시각도 가리울수 있기때문이다. 아량 즉 도량이 전혀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넋을 가진 허접스러운 존재이다. 적에게서도 따라 배울것은 배우는것이 현대적관념이고 현대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워야 할 심리자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묵어빠진 격언대로 처사하면 황당무계할뿐만아니라 가증하기까지 하다. 감탄, 탄복에는 필경 사적인 감정인소가 작용하기 마련이지만도 판단의 정당성에는 객관성이 선행해야 한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다. 남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면 은연중에 긍정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부정이 된다. 이것은 절대진리이다. 따라배울바도 부정적으로만 대한다면 그저 경멸이 따를뿐이다.     아량ㅡ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정하고 아량이 좁은 흉금으로 젠체하면 참으로 귀찮은 존재일수밖에 없다. 부정에 찌뜰린 심태가 전민 족적인것, 나아가서 국가적인것이라면 그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며 그 나라는 국격이 여실히 들여다보이는 “소인국”으로서 미래가 없다. 과언인가??? ­    내게 넘치는 존재감, 자신감이 없을수록 남을 긍정할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미련보다 더 미련한 일은 없다! 아량을 갖추는 그만큼 세계가 넓어진다. 긍정의 힘은 내삶의 라침반이자 원동력이다! 남을 긍정할줄 알아야 자유경쟁도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글로벌시대, 실력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성이다. 힘의 론리시대, 대방에 대한 부정적태도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사대주의자들의 곰팡내나는 암투에 그치고말것은 당연하다. 긍정과 부정은 론리학개념이지만 세사의 철칙이기도 하다.                                                                       2012년 12월 13일
196    명상시조 (100수) 1ㅡ20 댓글:  조회:8974  추천:1  2012-12-12
                                                          명상시조 (100수)                                       최 균 선                                  ( 1 ㅡ20 )   1.  은하수 흐르는 밤 명상도 얼기설기          늙으면 만단회포 류성같이 흐르는가              감탄표 없는 인생에 물음표만 걸려라                                      2.  네박자 인생에 긴타령 엮어지랴          세월이 살같아여 목숨도 초로인데                 괴롭고 슬프던 일도 식후한담 되더라                     3.  인생길 굽이굽이 고생은 장고생이          락이면 장락인가 삶이란 운무산속             지각한 晚年享受란 꿈속에도 네뚜리        4.  세상사 다사다난 행불행 무상이라          가던길 오던길은 돌아서면 기점인데             욕망아 너는 어찌타 돌아설줄 모르냐    5.  산사람 그럭저럭 살기가 마련인데          죽으면 어제런듯 가뭇없이 닞히리니              생시에 좋은 인상만 산흔적이 되오리   6.  몰라도 아는체요 못살며 잘사는체          없어도 있는체요 위선자 군자인체              체체체 분식하는게 현시대의 풍조라   7.  잘난놈 점지받고 못난놈 숙명인가          몹쓸놈 난놈되고 착한놈 뒤몰리고              각투장 인간세상이 이런줄을 알겠네   8.  비애와 즐거움은 동전잎 앞뒤여라          개이면 청천이요 구름끼면 비내릴라              만남에 헤여짐이요 리별끝에 상봉이   9.  태여나 나는 울고 부모는 웃었니라          살다가 죽어가면 곁사람 우느니라              무상한 인생살이는 희노애락 범벅이                      10. 후회병 고질되면 불치증 되리로다           후회를 심었으면 참회를 거두시라               뒤늦게 깨우친다면 후회막급 되리라 11. 서산에 해가지고 동산에 달이 뜬다           기뻐도 그하루요 슬퍼도 한밤이라              기분은 가질탓인즉 그럭저럭 사세나      12. 가진것 얼마냐로 인격이 흥량되냐            됨됨이 말종이면 부자도 개차반이               없어도 적덕하는이 칭송받고 살리라       13. 군계에 봉황되면 그아니 좋으랴만           운좋아 평지돌출 眼下에 무인일세                아서라 조이밭속에 가라지를 보았지 14.  만권책 읽었다고 천리를 내다보랴            세상을 두루돌며 한가지 보고오면                인생에 유익한 배움 더없을가 하노라   15. 웃고파 피는웃음 심신의 보약이요           울고파 솟은눈물 심령의 강장제라              스스로 애끓지 말고 속달하며 사자네   16. 망각의 맷돌이야 저절로 도는것을            새길것 새겨두고 잊을것 닞으시라                엊저녁 지던 해님도 아침같이 웃나니 17. 골짜기 없다면야 높은산 치솟을가            결함이 없는사람 세상에 없더란다                정도로 돌아온다면 랑자회두 금불환                                            (浪子回头金不换)   18.  망망한 원항선에 순풍만 있으리요             항로가 일관하고 마음이 안정되면                 역풍도 순풍이 되여 등대곶에 이르리   19.  오락에 신들린듯 밤낮을 몰두하면            사람이 오락노냐 오락이 사람놀지                인생은 장기두기도 촉급하야 한인데   20.  마작이 병이되야 좌불안석 못참것다            마작쪽 섞는소래 세월도 오락가락                미쳐야 미친다건만 마작만은 불가라
195    (중편소설) 밀림의 련가 댓글:  조회:11566  추천:1  2012-12-09
                                          밀림의 련가                               ㅡ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요                                 느끼는 인생은 비극이여라ㅡ                                              최 균 선                                 나는 운명과 박투하며 살았네.                               자국자국 한과 눈물로 찍어온                               가시밭속 서러운 나의 인생길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 저리네                                      나는 운명에 도전하며 살았네                               사나운  비바람에 휘둘리우며                               지그재그로 걸어온 내 인생길                               이제다시 가라면 나는 못가네                                            1. 고동하의 달밤       뿡ㅡ덜커덩, 칙ㅡ푹…     목재를 실어나르는 가소린차는 드디어 팔가자역을 떠나 좁고 구불구불한 소철길을 호똘거리며 고동하림장으로 달리기시작했다. 이렇게 위태위태하게 달리는 기차는 처음 타보는지라 기분이 별로였다. 화집령을 바라고 산굽이를 기여오르는 기차는 더구나 꿈떴다. 차창으로 울창해진 삼림의 정경이 환영처럼 스쳐갔다.     목재판이란 어떤곳인지…어른들 말로는 사지판이라 하는데 힘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는것만은 알것같다. 그런 사지판으로 좋아서 가는것이 아니지만 가야 한다니까 울며겨자먹기로 가는판이다. 하긴 모아툰에 이사를 와서 든 집값 180원을 그냥 물지 못해서 원집주인 엄동기가 하루같이 성화를 대는 판에 차라리 목재돈을 벌어다 탁 둘러메치고싶은 역반적인 심정이기도 하였다.     자그만한 차바곤은 선발대로 들어가는 목재군들의 걸걸한 롱담, 욕지거리로 떠들썩했다. 팔가자역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거구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50대의 령감이 내앞에 앉아 련신 곰방대만 빨고있다가 침을 찍 내뱉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ㅡ애, 긍께이제 니가 목재판 일할러 간다끼가? 허허 요상허디, 늬 열여덜이라고예? 늬 아부지두 답답한 량반일다, 뭐라꼬? 아부지 없다고? 그라모 늬는 고생문 단단히 열렸구마이, 늬같은 종내기가 우예 목재판 다 간다꼬 덤비치기가? 아, 이 내옆에 얼라도 늬맹키로 어리지만 밥하러 가능기라. 아따 사정이 그캐도 한창 공부할 나이에 만다꼬 가노? 늬들은 다 몬갈곳이구머이,…허허, 참…     전라도사투리인지 경상도말투인지 한마디 건너 알아들을수는 없어도 성미가 걸걸한 령감님이 관심조로 하는 말인줄은 가슴에 뜨겁게 안겨왔다.     ㅡ 고맙수꾸마, 관심해주어서…저 그런데 어른앞에서 담배피워도 되겠수꾸마?     ㅡ 아, 긍께 늬고향은 함북도인가베…말끝마다 꾸마랑게 뭔말이꼬? 암튼 니캉 내캉 인자 다같은 목재군잉게 뭐 갠타. 피우거라이, 내사 좀 잘란다.    령감은 곰방대통을 담배주머니에 넣고는 왕방울같은 눈을 꾹 감더니 잠을 청하는 모양이였다. 그냥 령감곁을 떠나지 않고있다가 차에 올라서도 령감곁에 앉은 낯모를 처녀가 내가 못알아듣는 말을 해석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간접적으로 안면이 트이게 되였다. 초면에 처녀와 허투루 말을 건네는게 실례이겠지만 같이 노가다판으로 들어가는 신세인지라 마음에 가까이 다가선다.     ㅡ 이분 말씀을 나는 잘 못알아듣겠던데 동무는 어떻게 그리 잘…     ㅡ 우리 웃집에 사는 아바임다. 그냥 들어서 잘 알아듣슴다     ㅡ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목재판에 가게 되였소?     ㅡ 동녀라고 불러도 됨다, 그렇게 된 사정이 있어요. 말하기는 저…     나는 말끝을 흐리는 처녀에게 캐묻는게 실례인것 같아서 말을 사렸다. 그녀는 나를 직시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더없이 부드럽고 순수하고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여 있었고 치렁치렁한 량태머리는 중들이 가슴에 늘어뜨린 념주처럼 가슴의 볼록한 곳을 가리우있었다. 아직 활짝 핀 얼굴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워 순수한 자연미가 너무너무 보기좋았다.     열덟살이나 되였을가? 얼굴이 하도 해맑아서 농촌태생이라고 믿기가 어려울만 큼 청초하였다. 새초롬해진듯 꼭 다물린 입술, 량볼에 볼우물을 파며 웃을때면 머루 알같은 눈이 먼저 웃었고 눈속에 티없이 맑은 순정이 흘러넘쳤다. 이런 생김새는 단순한 녀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듯했지만 진주가 녹아흐르는 듯한 눈에서 내비치는 은연한 빛은 나이보다 너무 일찍 숙성한 처녀애라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그린듯이 아릿다운 한 처녀의 모습이 눈이라는 창문을 거쳐 내마음의 골방에 통채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걸 첫눈에 정들었다고 하는것일가?…      기차가 다시 꽥ㅡ하고 멱따는 소리를 내는걸 보니 림장조도실(调度室)이 있는 고동하역에 도착한 모양이였다. 목재군들이 수선수선 이불짐서껀 둘레메고 내릴차비를 하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대약진때 인수거도로 유명해진 화집령이 저 만치 보이고 물도 흘러보지 못한 거도가 죽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수림속에로 숨어들었고 동쪽으로 훤히 열린 개활지대에 새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남도령감이랑 목수일을 할줄 아는 장정들은 고동하에서 서북으로 뻗은 소철길 을 따라 70리를 더 들어가고 새초를 베기 위해 남은 우리는 풍막도 치고 화식칸으로 쓸 간이건물도 짓느라 서둘러댔다. 어느새 팔월의 긴긴 해가 저물고 고동하기슭에 밤의 장막이 드리우는듯 싶더니 보름께 달이 화집령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녁을 대충 얻어먹은 나는 목이멘듯 주절대는 고동하에 발을 잠그고 유일하게 다루는 퉁소로 한곡조 넘기다가 제풀에 싱거워서 그만두었다. 스스로 무슨 목가적기분을 돋구려는것은 아니고 그저 혼자의 애원성이고 밸풀이로 내뿜는 소리이다.     늦여름 시들해진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밀림의 밤의 소야곡으로는 더 좋았기때문이다. 맑은 물결에 별들이 튕기고 바위숲에 부엉이가 고독을 울어싸고있는 고동하의 달밤은 쓸쓸하였다. 밀림을 비추는 달빛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어둑어둑한 숲뒤의 봉우리들은 “가둘양차”라고 하던 말을 증명해주는듯 사면팔방에 첩첩하다…     이튿날 낫이랑 내주었지만 산판에 도착하면 준다던 로동신은 언제 주려는지 주지 않았다. 헝겊신 하나를 달랑 신고 떠난 나는 맨발로 새판에 들어서지 않을수 없었다. 아침녁 발이 선뜩한것은 둘째치고 굵고 징글맞은 미추리가 어찌나 많은지 휘두르는 낫에 허리가 동강나 꿈틀거렸고 며칠전에 베여놓은것을 묶을때도 풀밑에 똬리를 틀고있어서 기겁초풍할 지경이였다.       그렇게 열흘쯤 견디다 못해 광신대대에서 왔다는 두젊은친구들과 의논이 맞아서 도망길에 올랐다. 화집령에서 룡수평역까지 하루에 대였다. 그렇게 도망쳐나왔지만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걱정처럼 천대장이 그밤으로 사원대회를 열고 목재전선 의 “도주병”이라며 한바탕 닦아세우는 바람에 이틀후 다시 집을 떠났다. 팔가자에 도착하니 방정맞게도 며칠전 폭우에 고동하로 들어가는 소철길이 끊겼다고 했다.     야단이 났다. 주머니엔 얼마간의 잔돈이 남았는데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잔단말인가? 해가 거의 질무렵까지 길거리에서 속을 태우다가 목재지휘부로 찾아들 어갔다. 마침 나와같이 도망쳤던 친구도 하나 와있었다. 지휘부에서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사발을 퍼붓는데는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였다.     ㅡ네가 도망쳤단 그 자식이냐? 너희들 도대체 무슨 사람이야? 어디라구 함부로 도망친단 말이야? 지금은 옛날 목재판이 아니라 목재생산제1선이란 말이다. 오늘은 초대소에서 자고 래일 생산대로 돌아가라, 마침 각생산대에서 목재소 한마리씩 먼저 들여보내게 되였어, 너희들이 생산대의 목재소를 몰고들어갈 임무를 맡으면 되겠어, 립공속죄도 할겸말이야, 다시 도망쳐봐, 아예 감옥에 처넣고 말테니…     죄지은놈이 무슨 할말이 있으랴! 이튿날 생산대에 돌아와서 목재지휘부의 명령을 말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통지를 받고 소를 몰고갈 사람을 고르는 중이라면서 차라리 잘되였다고 하였다. 한이틀 엄마곁에서 자고 사흘째 되던날 이른아침, 이틀분 사료랑, 이불짐이랑 쳐맨 소두마리를 몰고 마을을 떠났다…                                                    2. 심산의 밤길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던 그 시절을 산 사람들치고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요 먼먼 밤길을 걸으면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의 뜻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게다. 그러나 나의 밤길은 례사 밤길이 아니다. 혹떼러갔다가 혹을 붙인격이랄가? 아니면 도망친 업보인가? 밤길에도 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운 밤길을 가는 체험은 참으로 각별하였다.     여드레 팔십리라 둥글이는 과시 량반걸음을 하였다. 룡수평서 하루밤 묵고 다시 화집령을 넘어 사흘째 되던날, 고동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판을 향해 길을 재우쳤다. 서북쪽으로 옛소철길을 따라70리쯤 가면 우리 공사의 산판이 나진다고 해서 소들을 채질했지만 길은 축나지 않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몇십리나 걸었는지 가고가도 산판에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둠만 이 천고의 밀림을 무겁게 휩싸고있었다.     안내할 이도 없었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가다가는 서고 주밋거리다가 다시 걷노라니 흐릿한 밤하늘인지라 남쪽도 알수 없고 북쪽도 알수 없고 몇리나 남았는지도 알수 없는 외가닥길만 숨박곡질하듯 어둠속에 숨어버리였다. 그냥 갈가?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무시무시한 밀림의 밤, 그 고요와 적막함과 으스스 등곬을 파고내리는 공포의 전률은 생전 처음이였다.     그런대로 힘센 둥글이만 믿고 불안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멀리 수림사이로 한오리 불빛이 새여나와 내눈에 닿았다. 천만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쥐여짜면서도 시름은 여전히 바장거리였다. 고요하면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더구나 적막한 법이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속에 고요가 뒤따라서고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움직이는것으로 희망의 등불을 부르며 허둥지둥 앞으로 걸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하였지만 누군가 걸어서 길이 생겼거늘 막다른 골목에야 이르랴싶었다. 길을 알지 못하여 길이 헛갈렸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발길 시키는대로 소궁둥이에 희망을 얹고 마음이 앞서달렸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른 골령에 들어섰 더라도 다시 돌아나오면 될것이다. 마침내 무주공산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지지 않고 목재군들의 장막이 웅기중기 들어선 개활지에 이르렀다. 숨이 활 풀리였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그곳은 지신공사의 산판이였다. 십여리 골안을 헛탕친것이였다. 그러나 빈궁이 독판치는 그 시대였어도 인정은 푸근했다. 앳된 청년이 겁도없이 허둥댄것이 안쓰러웠던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주던 식당아줌마가 그렇 게 고마울수 없었고 새 날이 밝으면 가라고 극진하게 말리는 인부들의 풋풋한 인정도 가슴뜨겁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약정된 오늘 도착하지 못하여 공연히 야단칠 지휘부의 박창장은 둘째치고 어른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 더 앉아뭉갤수가 없었다.     골안을 빠져나가서 오른쪽 골로 한 20리 들어가면 광신공사 목재판이 나진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여 떠났다. 인제 방향이 서고 목적지가 정해져서 무서움도 멀찍이 물러섰다. 소고삐를 허리에 매고 련이어 말아문 담배불로 어둠을 쫓으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산짐승도 잠든 시간, 별빛을 빌어 걷는 길은 인생길이 어떠한가를 암시 하는듯 싶었다. 심산속의 길은 적막을 깔고 누워있다. 캄캄한 산에서 외롭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체대가 덜썩 큰 검정소와 얼룩배기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내처 걸으면 귀속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밀림이 일깨워준듯 싶었다.    나는 허위허위 걷고 내상념은 저만치 앞에서 껑충거리였다. 인생길에도 산속의 험난한 밤길이 있기마련이다. 오래동안 돌아설수도 없는 역경에 처한 사람의 인생행로는 혼자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밤길이다. 그러나 나는 휘적휘적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남보다 제일 먼저 새벽을 맞기위한 지어먹은 행보가 아니다. 그러나 밤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새벽은 나에게로 먼저 손짓하게 되여있다.    이처럼 일단 인생길에 오르면 좋든궂든 내처 걷게 되여있는 삶의 도보요 주막은 멀어도 어디에든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끈기를 지팽이로 삼고 걷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의 길이다. 남이야 지름길로 가든, 탄탄대로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가든 내앞에 놓인 길만을 걸어야 한다. 되돌아설 리유가 없다. 돌아서도 동서남북 세상은 넓어도 내가 가야 할 그 어둠속에 뻗은 불가피면의 밤길이다.    먼먼 밤길을 걷는것은 어스레한 외눈박이 가로등아래에 소풍처럼 그렇게 기분이 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다. 먼길에는 동반자가 있으면 길이 꽤 줄수 있다. 그런데 함께 가다가 곰을 만나서 아무말도 없이 먼저 나무에 올라간 친구같은 그런 동반자라면 홀로 걷기만 못하다. 이미 나진 길이라도 낯선 곳에서 혼자 걷는 길이라면 초행길 이요 더구나 어두은 밤을 헤치며 가야하는 산속의 길은 절실한 체험의 길이다.     아무도 내다리를 대신할수 없다. 숙명으로 이어진 길이요 그 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다. 안내자가 없다. 나혼자서 걷는다. 눈을 싸맨 나귀가 석마돌을 돌리며 먼길을 떠난듯이 내처 걷는 길일지라도 그냥 걸어야 한다. 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지표는 정신으로서 내육체안에 무엇이 있다. 그것은 정신만이 아니다. 나를 앞으 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보이지도 잡을수도 느낄수도 무게도 없는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고 자존의 끈기이다. 인생길에는 그것이 요긴하다…     마침내 허위단심 우리 우리공사의 산판에 이르렀을 때는 한밤중이였다. 흰자위가 커진 아바이들의 핀잔반 칭찬반을 들으며 잔뜩 얼어든 몸과 피곤을 난로가에 뉘였을 때 안도의 한숨도 침먹은 지네처럼 게나른해졌다. 극도로 지친 나그네에게는 한귀퉁 이 잠자리가 행복의 보금자리였고 등걸잠을 잤지만 꿈도 곯아빠진 숙면이였다.                                                             3, 밀림의 련가             소는 전직사양원들이 거두게 되였으니 나는 할일이 없었다. 명령에 따라 다시 화집령초지에 내려가 이불짐을 풀었지만 신이 없다(기실 그동안 3원주고 로동신 ㅡ찌까다비를 사신었다)는 구실로 화식칸의 잡부로 되였다. 마른나무를 주어다가 패고 불도 때는게 내가 하는 일이였다. 그러다보니 동녀와 더 친숙해졌다.     동녀는 곁에 사람이 없을 때 환영한다는 뜻인지 원망하였다는 뜻인지 한바탕 푸념질했다. 그러는 동녀가 밉지 않은것은 무슨 심사인가? 동녀는 나의 옷견지도 씻어주고 양말도 기워주었다. 횅창 달이 밝은 밤, 다른 친구들은 트럼프를 치며 육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나는 고동하물소리와 동무하며 퉁소로 심산의 적막을 달래였다.     그런 밤이면 동녀도 나의 퉁소리에 홀린듯 묻어나와 저만치 비켜앉았다. 실로 목가적인 정경이였다. 그러나 그러는 동녀와 나를 아니꼽게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나보다 두어살 이상인 유신촌에 신철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동녀에게 반해서 혼신이 허궁 떠있던차였다. 그러다보니 나를 드러내놓고 미워했다. 그런 눈치를 모를리없는 나였지만 짐짓 모르는체 하면서도 마찰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벼르고있었다.     어느날 밤, 동녀가 고동하버들숲에 숨어앉아 제빨래를 하고있는것을 알고 은연중 가까이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호시탐탐하던 신철이가 따라섰다. 신철이는 직방배기로 자기와 약혼하자고 욱다짐하는듯 녀자를 풀밭에 쓰러뜨리고 손을 놀리기시작한 모양이였다. 나는 퉁소를 불며 그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열이 올라 황소처럼 씨근덕거렸을 신철이가 화닥닥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이였다. 그러나 나는 동녀가 창피해 할가봐 나서지 않고 퉁소소리로 오래오래 달빛 차거운 밤의 평화를 축원했다… 목재소들이 한겨울 먹을 새초를 다 장만하자 우리 젊은패들은 천수동으로 옮겨가 이전에 늘였던 전화줄을 거두라는 임무를 맡았다. 떠나기 전날 내가 앉은 강가에 동녀가 살며시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달빛아래에서 똑똑히 분별할수는 없었지만 애수에 잠긴듯한 눈길이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고동하급류는 소용돌이치고 고패치며 부글부글 끓는듯싶었다. 천년을, 만년을 흘렀을 고동하 세찬물결은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있다. 문득 산다는게 흐르는 강물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고 오욕의 거품이 걷히고나면 결국 침전되여 남는건 자신을 거쳐갔던 기쁨과 슬픔들 그리고 그 대상들. 닿을 인연이면 누가 어찌해도 닿을것이지만 떠나야 할 인연이라면 잡을수 없다는 리치를 이 밤 고동하가 가르쳐주는듯싶었다.     강물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가노라, 같이 가자고, 뒤물결이 앞물결을 밀며 흐르는 급류, 출렁출렁 처절썩, 나의 빈가슴 울리며 밤낮을 모른다. 내청춘의 격정도 저리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밤에도 고동하는 흐른다. 두꺼운 어둠 속에서 풀숲에서 잠든 산천어의 지느러미를 쓰다듬으며 흘러흐른다. 은색달빛도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동녀도 (내침묵이 강물처럼 흐른다 해도 당신을 말없이 사랑하며 진정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넓은 가슴에 바다를 닮은 마음으로 머물께요)하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련애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시인을 만든다고 하였던가? 녀자들은 아무리 눈물이 헤퍼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앞에서는 절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저 봐! 동녀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번쩍이고 있잖아?     부엉부엉ㅡ부엉이 울음소리가 더없이 처량했다. 나는 강기슭에서 물러나와 주위 를 둘러보았다. 산봉우리들이 높이높이 솟아오른다. 산은 검푸른 하늘아래에서 고독을 참아가며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묵묵히, 우두커니 서있을수밖에 없었던 결박당한 노예무리를 련상시키였다. 울분은 쌓이고 쌓이여 삶에 대한 슬픔을 낳고 망연은 자실을 얹어주고 역으로 삶에 대한 더욱 집요한 갈망을 낳아준다. 그리하여 침묵과 고독속에서 노래하는 고동하가 나져서 지금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며 기슭을 차분히 적셔주고있다. 강은 그래서 인류의 생명의 젖줄기로도 되는것이다.      ㅡ 아이참, 무슨 생각을 혼자서 그리 오래 하나요? 사람이 서있는것 안보여요? 참, 나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흔해빠진 동무라고 할수두 없구…     ㅡ 그럼, 이름을 부를께, 정우라구 말이야,     ㅡ 아이ㅡ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나이는 비슷하지만…     ㅡ 그럼 내용만 말하면 되겠네. 하하하…     ㅡ 웃긴? 천수동으로 간다면서요? 거기 없으면 나는…어떻게 해요?     ㅡ 걱정마오, 이번에 신철이도 함께 가니까 시끄럽게 굴 기회가 없을터이니…     ㅡ 높은 전선대에랑 올라간다는데 몸을 주의하세요. 아이, 내가 싱겁게…     ㅡ 고맙소, 동녀도 진짜 산판에 들어가면 감기에랑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오.     ㅡ 고마워요, 이렇게 날 지켜주고 관심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나도 동녀에게 늘 고마움을 품고있었다. 가마목에 앉은년이 떡하나 더 먹는다고 화식칸에서 만두하나라도 더 얻어먹기 마련이지만 동녀는 가끔씩 자기몫의 만두를 남겼다가 나를 주군했다. 그게 내게는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만두만이 아니다. 나는 이런게 사랑인지 알수 없었지만 동녀가 그저 좋았고 늘 마음이 따스해지였다.    …한 보름이면 된다던 일이 뜻대로 끝나지 않아 스므날을 넘겼다. 천수동어귀 마을의 농가에 숙소를 정하고 긴 천수동골안을 오르내리며 전선줄을 거두었다. 우리 절로 “모다까”라 부르는것을 낡은 철길우에 올려놓고 운수도구로 썼다. 먼곳에 갔을 때는 내리막에서 올라앉기도 했다. 제동장치가 없는 도로꼬가 바람이 날라치면 속수 무책으로 가속에 명을 맡길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일을 치고야 말았다.     늘찬 내리막에 들어서자 모다까는 “어디 한번 호사해봐라”하듯이 냅다구르는 데는 등곬에 얼음이 비껴갔다. 이대로 그냥 가다가는 올리막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슨 사고가 날것같았다. 속도가 더 나기전에 뛰여내리기로 작정했다. 소조장의 명령일하 에 일제히 뛰여내렸다. 량켠에 덤불들이 두툼해서 괜찮으려니 했지만 겁이 많은 문씨가 힘껏 내뛰지 못하여 철길에서 굴러떨어지며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를 상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병원도 없는 허허 천수동에서 여럿이 함께 고생할번했다.     그럭저럭 전선줄을 다 거두었을 때는 10월에 들어섰다. 가을만큼 짧은 계절이 있을가, 여름이 끝났는가 싶으면 어느새 늦가을이다.  천수동의 산천도 가을 끝자락에 섰다. 오색단풍이 짙게 물든 련산련봉, 단풍은 어디서나 단풍이지만 일송정에서나 모아산에서 보는 단풍은 비길바가 못된다. 수십종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심산유곡답게 특이한 절대경이였다. 가을의 절정, 산기슭, 산중턱, 산봉에 민낯을 드러낸 기암과 절벽이 산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대조를 이루기도 하거니와 조화를 이루기 도 하여서 내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름해살은 바늘처럼 내리꽂힌다면 열기가 다바랜 가을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게 내려앉는다. 숲속, 아침이 열려오는 그 찬란하고 황홀한 빛의 기막힌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푸른 음향마저 흐를것같은 10월의 깊은 하늘만이 열이 식어가는 해를 높이 띄우고있다. 나는 어줍잖게 일기장에 서투른 시줄을 끄적였다.                                     불붙는 저 단풍은 내마음이런가                 심산속 색채가 고운 시월단풍은                 무정한 서리가 그린 걸작이건만                 나는 어이하여 가슴을 불태우나      봄은 공연히 싱숭생숭해 나는 계절, 가을은 움직이는 계절, 무언가 무르익히기 위해. 다른 한번은 충만된 푸름을 위해서 온다. 그래서 봄에는 처녀들이, 가을에는 남자들이 흐물거리는것일가? 사실, 단풍든 심산속에서 동녀의 얼굴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마치 열련에 빠져있다가 전선에나 나온 전사의 그것처럼 사뭇차게 생각나 면서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뭉클거린다. 동녀가 내주머니에 편지같은것을 넣어놓고 얼굴이 홍시가 다 되여서 돌아서던 일이 생각나 웃음이 칵 물리였다.     …지금도 무어라 불러야 내마음에 꼭 들지 몰라요. 그리고 내가 어린 처녀로서 이런 편지를 먼저 쓴다는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 쓰지 않을수 없어요. 전번처럼 간다는 말 한마디없이 훌쩍 도망치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도 천수동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가봐 겁이 났거든요.     리해하여 주어요. 내마음을, 처음 볼때에는 나이답지 않게 후리후리한 체대에 크지는 않으나 매서워보이는 눈이 좀 서먹서먹했지만 날이 가고 눈에 익어갈수록 떡 벌어진 어깨, 넓고 두둑한 앞가슴, 그리고 장작을 팰때 불뚝거리던 억센 두팔…그 모든것이 무섭고 강한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것을 얼싸 껴안아줄수 있는 그런 남자라고 믿어졌어요, 우리 집엔 남자 하나 없고 언니 둘이 있었는데 인제 다 시집을 가서 나는 외롭고 고독하게 컸어요.     초중생인 나는 수준이 형편없어요, 그러나 이런 편지는 진실한 마음으로 쓰는게지 미사려구로 엮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줄줄 잘도 내려가네요. 호…남자라는 존재에 어섯눈을 뜬 처녀로서 제일 행복한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사랑을 하고있다는 그것이 아닐가요? 사랑, 정우, 이 두단어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하는 단어이고 나의 혼을 빼가는 소리예요.    얼때기없이 이 목재판에 와서 하냥 걱정이 가슴을 꽉막히게 하고있었는데 오빠를 만나게 된후 마치 하느님이(우리 엄마 교를 믿거든요) 안배해 놓은 연극같아요. 나로 말하면 산다는게 오빠를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된것 같고 내가 훌쩍 철이 들어버린것 같아요. 웃으면 안돼, 나 거짓말을 모르는 녀자이니까….                                                        4, 산판의 풍경       산판에 돌아와보니 토장(저목장)은 대강 닦아놓았지만 목재군들이 들어야 할 숙소는 아직 몇채 더 지어야 하길래 분주히 돌아치였다. 나는 남도치령감님의 조수로 귀틀집을 짓는 일을 거들었다. 동녀는 화식원으로 있다보니 따로 만날수는 없었지만 밥을 타는 구멍으로 아침저녁 눈대화는 할수 있었다. 혹간 점심시간에 만나면 큰 나무뒤에 숨어서 몇마디씩 나누고 다 기운 장갑같은것을 건네받군 했지만 그저 좋기만 했다.     첫눈이 내리면서 각 공사에 목재군들이 꾸역꾸역 들이닥치였다. 골골에 밥짓는 연기, 숙소의 난로연기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였다. 발구길을 닦는 일이 끝나자 나는 남도령감의 지도를 받으며 채벌군질 한다고 덤벼쳤다. 보통 키가 40-50메터 나가는 아름드리 홍송, 백송, 가문비나무를 도끼질로 깊숙히 턱을 떼고 엉덩이에 쳐맨 개가죽을 깔고앉아 헐씨근 톱질하느라면 무슨 큰 일이나 하는듯 느껴졌지만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싫증이 나고말았다.     나무를 넘어뜨릴 방향을 잘못잡아서 얼른 넘어가지 않고 그루에서 빙그르르 돌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찔하군 하였다. 그럴때에 무작정 들고뛰면 나무에 딱살을 맞을것이니 침착하게 그루를 안고돌며 나무초리를 올려다 보라는 어른들의 교도가 귀에 못박혔지만 그저 외우면 되는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재수없이 나무가 넘어지면서 맞은켠 나무가지에 걸려 덕대를 지워놓는 날에는 목숨을 내걸고 앞에 나무를 또 재껴야 했다. 진땀이 빠작빠작 나는 일이였다.     집재가 시작되자 생산대 소이니 내가 부려야 한다는 핑게로 집재군이 되였다. 기실 집재군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욕심낸것이다. 나무를 싣고 굵은 바로 칭칭 동인후 탕개를 단단히 틀어야 한다. 그 모든 일은 남도령감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일도 오래하지 못하였다. 웬간히 큰 무티는 두대씩 싣고 너무 큰놈은 땅을 파고 발구도매를 들이밀어 간신히 싣기는 했지만 소가 아무리 버둑거려도 나무가 꿈적하지 않을때가 있었다. 다른 집재군들은 인정사정 없이 소궁둥이가 피터지게 두드려패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할수 없었다.     더구나 경사도가 강한 빙판길을 내려올 때 사람은 뒤에서서 안전하지만 바들바들 떠는 소가 너무 불쌍해져서 눈물이 다 나오군 했다. 한번은 그리 크지 않은 나무를 실었건만 토장에 들어서는 가파로운 길목에서 얼룩이가 낑낑거리며 한발작도 더 내디려하지 않았다. 뒤에 발구군들이 늘어서서 재촉한다. 나도 성이 나서 어깨에 메였던 둔장으로 얼룩이 궁둥이를 팬다. 그래도 소는 겁이 나서 맴돌뿐이다.     나는 앞에가서 코뚜레를 거머쥐고 죽어라고 당겼지만 끙끙 소리만 냈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가득차 있었다. 소가 울고있는것이다. 소가 운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것 이다. 아니, 나의 얼룩이는 분명 울고있었다. 몰고 들어올때보다 바싹 여윈 몸둥이가 전률하고있었다. 뒤에서 재촉이 성화같았다. 누군가 소궁둥이를 북두드리듯 두드려 팼다. 소귀에 경읽기란 말은 딱맞는 말은 아니다. 얼룩이는 결심내린듯 두어걸음 떼더니 두무릎을 착꿇고 미끄럼질로 내려갔다. 얼마나 엮어빠진 소인가!     평평한 길에 이른 얼룩이가 뒤에 오는 충격을 어찌 감당하고 그랬는지 앞다리를 훌쩍펴고 일어서는게 아니겠는가? 기적이였다. 그러나 두무릎은 살이 거의 나올 지경으로 되여 붉은 피가 질펀하다. 나는 얼룩이목을 안고 쓰다듬어주면서 저목장으로 들어갔다. 그후부터 나는 돈을 못벌더라도 소를 혹사시킬수 없었다. 혹여 소까 지 잡는 날에는 그 후과가 어떨지 너무나 뻔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알맞춤한것만 골라 싣다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립방수를 올리지 못하였다. 매일 지휘부회계에게 립방수를 보고할 때는 락후분자로 되였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집재할게면 다른 사람에게 소를 넘기란다. 그럴가하고 생각하다가 나날이 여위여가고 마냥 휘청이는 얼룩이가 불쌍해서 차마 남의 손에 맡길수 없었다. 드디어 얼룩이가 지쳐버리자 지휘부에서는 병약자와 함께 하산시켰다. 무슨 일이나 잘 안되는 판이라 뚝심이 있으면 해낼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저목장에 원목을 쌓아올리는 목도군으로 되였다. 물론 누구에 짝지지 않는 목도군이 되기까지는 많이 몰리였다.     대식품을 먹으며 겨우 목숨을 연명해가는 지방보다는 좀 나은편이였지만 목재군들로 말하면 먹는것이 말이 아니였다. 쏘련에서 들여왔다는 무슨 록두알같기도 하고 풀씨같기도 한것을 섞은 수수밥에 국이란 소금물에 삶은 시래기 한덩이씩 놓아주는게 고작이였다. 겨울이 깊어지자 샘줄기도 숨어버려 물고생이 막심했다. 그래서 눈을 퍼들여다가 녹여서 세수물로 쓰고 밥을 하여야 했다.     소금국에서는 솔잎냄새가 풍기였지만 두어사발씩 들이키는 사람도 푸술했다. 긴긴 밤 썰썰해진 사람들은 사양원으로 들어온 엄동기가 난로곁에서 두병을 썰때면 몇개씩 후무려서는 난로에 구워먹었다. 손바닥같이 넙적한 두병을 굽는 냄새가 그처럼 구수할수 없었으며 구운두병이 그렇게 맛이 있을수 없었다. 엄동기는 량표를 절약려고 밥을 타내다가는 두병을 섞어서 죽을 쑤어먹었다. 배고픈 고생이야 누군들 다르랴만 그러는 엄동기를 곱게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방에서는 대약진운동이 마침내 흐지부지해졌지만 산판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인력으로 “小头木”을 끌어내리는 야간작업이 밤마다 계속되였다. 한공이라도 더 벌려고 열성을 부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휘부에서 내리먹이는 바람에 억지춘향이 되는격이였다. 동녀도 밤작업에 나서서 한대라도 더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다. 나와 그는 자연스럽게 짝패가 되였다. 그러나 립방수를 적을 때면 나는 그냥 동녀에게 양보하였다. 그것이 고마워서 동녀는 나의 밥사발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고 장갑이랑 가져다 기워주면서 여러가지로 왼심을 써주었다.…     목재군들은 물론 소들도 지쳐 하나둘 죽어나갔고 새로 생력군의 소들이 들어왔다. 토비굴같이 기다랗게 지은 귀틀막은 썰렁했다. 쇼루즈(烧炉子)령감이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도목나무를 때여 난로가 벌겋게 달아있지만 겉바람이 세차서 난로 가까이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무슨 불을 제정신없이 때는가고 불평이였고 난로에서 멀리 구석진 곳에 누운 사람들은 춥다고 욕설질이였다. 인심이란 참으로 종잡을수 없는것이다.     나는 난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데다 마침 기둥머리에 석유등이 있어서 얼마간씩 책줄이나 훑을수 있었다. 내가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였다. 후비대로 소를 몰고 들어온 방령감이 량표를 절약하려고 길에서 거의 굶다싶이 했다더니 저녁에 빈속에 “무철알”밥을 우겨댄게 탈이였는지 급성위장염같은 증세를 보이며 배를 안고 맴돌아쳤다. 촉한에 걸려서 그런가고 난로가에 자리를 옮겨주었지만 그새장새였다.     밤인지라 10리길도 넘는 곳에 있는 의사를 데려올수도 없고 해서 소화제를 얻어 먹인다하며 법석을 떨어도 배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의사질을 하다가 우파로 몰려 쫓겨났다는 의사가 두루 살펴보더니 이대로 두면 곤난하다며 홍문으로 비누물을 불어넣어 “灌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누가 남의 홍문에 비누물을 입으로 불어넣는단 말인가? 사람이 죽는다 산다하며 괴로워하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모두 안타까운 얼굴을 짓고있었으나 아무도 선뜻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대지휘부 박창장이 들어오더니 한 사람을 지명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온 송권준이라는 한족이였는데 젊어서는 연길별동대에 들어가 삼도만 토비 숙청에도 참가한 사람이였지만 출신때문에 부대에서 밀려나와 다시 농민이 된 사람이 다. 사람이 마음은 고왔지만 조금 교활한데가 있었다.    상급이라면 껍적 죽는 시늉도 하는 그인지라 “예, 예”하며 의사가 풀어준 비누물 을 고무관즈로 빨아들여 방령감의 홍문으로 불어넣었다. 비누물이 꽤나 들어갔는데도 방령감은 효험이 없는지 그냥 쩔쩔 매였다. 그러다가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고말았다.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지만 후사를 처리해야 했다. 그냥 사람 들속에 시체를 뉘여둘수는 없었던것이다.     급히 관을 짜서 입관시켜야 하는데 관널이 문제였다. 선톱질로 널을 켜내서라도 밤새 관을 짜기로 하였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기승부리며 죽을놈을 나오라고 휘파 람을 불었다. 누가 이 추운밤에 톺틀에 올라가 선톱질을 할것인가? 역시 톱질에 의력 이 텄다는 송권준이가 자원해나섰다. 밑에서 톱을 당겨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결국 내가 나서게 되였다. 나를 찍는듯한 박창장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방령감의 아들인 소학교동창 봉만이 낯을 보아서도 모른체할수 없었다. 그렇게 두어시간 역사질해서 홍송널을 두쪽을 뽑아 대충대패질하고 관을 짜야 했다. 한참 뚝딱거려 관이 만들어진 다음 입관하였다. 몸이 너무 불어서 겨우 넣고 대못질 한다음 밖에 내다놓았다. 그런데 밤중에 오줌누러 나갔던 나그네가 기겁초풍해서 뛰여들었다.     ㅡ 저, 저 밖에 관널이 돋기고 있수다.     늙은이들이 시체에 부증이 오면서 그런게라 하였다. 촘촘히 박은 대못이 돋아날 정도이면 가히 짐작이 갔다. 이젠 큰망치로 못을 박아넣어도 그냥 관뚜껑이 들리며 삐걱삐걱 무서운 소리를 내고있었다. 모두 소름이 끼쳐 몸을 떨어댔다. 남도령감이 제안을 내놓았다.     ㅡ 거시기 법대루라면 안되능기지만 8호쇠줄로 관을 두세곳 묶을수밖에 없당께. 재게 철사를 얻어서 묶어놓음세.     그의 제안에 따라 몇몇이 나가서 관을 철사로 칭칭 동여놓았더니 관널이 더 돋기지는 않았다. 이튿날, 나와 권준이가 발구에 관을 싣고 고동하역에 가서 가소린차에 실어 팔가자로 보냈다. 그렇게 난 자리인지라 아무도 탐내지 않았던것이다.                                                                                5. 생사의 고비       자리는 명당인데 말째인것은 한사람 건너에 자리잡은 신철이가 밤이면 바이얼린을 꺼내 턱에 끼고 활을 당기며 제감정에 도취하는 꼴통이였다. 괜찮게 켜는듯했지만 진종일 고역에 시달리고 추위에 부대끼던 일군들은 질색하는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누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는 판국이였다. 삑삑거리는 소리에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저녁은 보다못해 내가 한마디 하였다.     ㅡ 어이, 신형, 당신은 제감각이 좋아 고개를 흔들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장가가 아니란 말이요, 옛말이나 좀 듣다가 잠을 잡시다.     ㅡ이 새끼, 네가 뭔데 감히 누굴보고 흥소리야,     현철이가 거칠게 나왔다. 누워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어둠컴컴한 숙소안이 대번에 긴장이 감돌았다. 말은 내가 먼저 건것이니 해결도 내가 지어야 했다. 문티를 굴리고 목도를 하면서 나는 신철이가 키는 커도 맥살은 못추는것을 보아낸지라 드잡이를 해도 겁날게 없다고 자신하고있었다.     ㅡ네입은 마구낸 창구녕이냐? 입만 벌리면 누운소 똥누듯 욕설이 나오니? 내가 널 무서워할줄 아니? 하겠으면 어디 밖에 나가 볼가?     내가 악지 세게 나온것도 있지만 잔뜩이나 불평이던차라 거의 다 내편을 드는 판이 되였다. 입살이 더러운 남도치도 한마디 께끼였다.     ㅡ남다 자는 이 밤중에 그 무신 지룰들이가? 젊은눔들 노는 꼬라지들허군, 그랑 버르장이 없으면 어떡케 사람질하노? 둘다 종아리 확 부찔러뿌릴라, 어험 !     아무리 노가다판이라도 이상제하는 챙겨야 하는 판이라 말다툼을 미루기로 했다. 말다툼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더구나 앙숙이 되고말았다. 그런데 결국 꼴을 먹은것은 나였다. 양력설전에 있은 일이다. 동녀가 하루 일을 쉬는 새에 기워준다고 가져간 벙어리장갑을 가지러 화식칸에 갔다가 곧 돌아섰는데 그것이 빌미로 되여 사달이 났던것이다.     이튿날 국에 조금씩 썰어서 넣어주려고 삶아놓은 큼직한 돼지고기덩이가 감쪽같이 축났던것이다. 그날밤 내가 화식칸에서 무엇을 들고나오는것을 본사람이 있다고 해서 적발비판회에 나서게 되였다. 증명인이란 바로 신철이였다. 재수가 없을라치면 소똥에 엎어져 개똥에 코를 깬다더니 내가 그 꼴이였다. 내가 아무리 청백을 증명하 려 했지만 출신이 나쁘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마구 몰아부치며 탄백을 받아내려는 판이였다. 누구보다도 한마을에서 온 엄씨가 두팔을 걷어부치고 열을 올리였다.     ㅡ저눔의새끼 원래 나쁜눔이우, 내가 한마을서 살기에 속창을 잘 아는데 저자식 고개는 숙여도 속은 퍼렇게 산놈이라이, 마을에서 비판을 받을때도 한번 잘못했다고 승인하는 법이 없었소. 저 자식이 내가 썰어놓은 두병도 몇번을 후무려서 구워먹기도 했소, 손버릇이 나쁜놈이니 필경 고기를 훔쳤을게요. 이 새끼야, 고기덩이를 어데다 감추었는지 바른대 자백하지 못하겠니? 내 저눔을 그저…    곁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주먹까지 휘두를 잡두리였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고목 이 벼락을 맞는다더니 속담 그른데 없었다. 그러나 지도부에서 아무리 비판의 불길을 지피려해도 원체 서로 다른 대대에서 온 사람들이고 평시에 서로 척을 진일도 없기에 거지반 반신반의하며 마지못해 앉아있는 판이였다. 게다가  나의 잠자리밑이랑 두어번 뒤졌지만 고기가 없었던것이다.     ㅡ 보지 못한 도둑놈은 함부루 찍어말하문 안된당께, 증거를 가지고 사람 족치소.     통말을 잘하는 남도령감이 장훈을 불렀다. 밤깊도록 비판해봐야 거개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게 비판하는 바람에 회의가 싱겁게 되였다. 한이틀 불러내여 꼭 죄가 있어야 한다는식으로 이런저런 갖잖은 일까지 꿰여들고 닥달질하더니 웬영문인지 더 내세우지 않았다. 후에 안일이지만 신철이가 자기를 불러내느라 왔다갔고 정우동무도 기운 장갑을 찾으러 왔지만 문밖까지 함께 나왔노라고 동녀가 증명해나섰던것이다. 일은 그렇게 해명되였지만 동녀는 말밥에 오르면서 처지가 난감하게 되였다. 게다가 지도부의 눈에 나서 식당에서 밀려나 검척원으로 되였다. 강추위속에서 손시린 고생, 발시린 고생을 하는 동녀를 보느라니 가슴이 아팠다.    돼지고기사건후였다. 신철이는 더구나 동녀에게 행패질하지 못해 안달했다. 눈을 뜰수 없을지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날 점심무렵이였다. 손발이 너무 얼어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동녀는 집재군들이 좀 뜸해진 틈을 타서 바람막이움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정맞게도 뒤미처 집재군이 들이닥쳤다. 순서대로 하면 검척을 한 다음에 나무를 굴려서 쌓아야 했다. 내가 동녀를 부르거나 저쪽에 다른 검척원을 대신 시키자고하니 신철이가 픽 랭소를 던졌다.     ㅡ이 빌어먹을 토끼새끼년은 어데로 바라간거야? 자, 추운데 이 문티를 제꺽 굴려다놓고 점심먹으러나 갑시다. 년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라구 헝,    저목조의 조장인 신철이가 우기는바람에 모두 덩둘해서 시키는대로 했다. 동녀가 미구에 달려나왔지만 다른 집재군들이 련속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 나무를 미처 돌볼 사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집재군이 자기 나무가 얼마인가 차문하게 되였을 때는 이미 나무무지속에 묻힌뒤였다. 성이 독같이 난 집재군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나왔다. 마음이 여린 동녀는 할수 없이 목재무지로 다가갔다.     파리길에서 경사진 높다란 언덕을 수평으로 채워나가면서 나무를 쌓아가기에 그 나무는 아래서도 우에서도 재일수 없게 묻혀버렸다. 그러나 동녀는 듥쑹날쑹한 나무 를 밟으며 내려서야 했다. 잠풍한 날에도 위험한데 사람이 막 날려갈지경인 사나운 날씨엔 더구나 위험했다. 내가 대신 재여가지고 올라오겠다고 해도 기어이 제가 잰다 고했다. 눈보라는 더욱 기승부렸다. 팔을 뻗쳐 나무를 재려던 동녀가 발을 빗디디며 떨어지는 찰나 얼결에 삐죽이 나온 나무초리에 허궁달리게 되였다.     내가 잽싸게 내려가 동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눈보라가 휙 몰아치면서 둘다 평형을 잃고말았다. 내가 먼저 떨어지고 동녀가 내몸에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무등걸에 허리를 박아서 한동안 눈속에 누워있었다. 동녀가 울음을 터칠때 우에서 낄낄거리는 신철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의 열흘이나 10여리 길을 걸어서 림장병원에 침을 맞으려 다녀야 했다.     핑게핑게 도라지캐러 간다고 그낌에 하산하겠다고 신청하였지만 박창장은 오히려 꿰병이라며 웬간하면 일하라고 독촉질했다. 다행히 척추는 다치지 않아 그런대로 일할수 있었지만 그동안 숱한 공을 잃고말았다. 자리에 누어있어야 했던 며칠은 동녀가 밥을 타다가 주었다. 나와 신철이의 사이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팽팽해졌고 언젠가 한번은 둥글쇠싸움이 나야 할 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끝내 일이 터졌다. 큰 목재는 여섯이 아니면 여덟명까지 목도하게 되였는데 큰나무는 방치라는것을 매고 목도하였다. 그래야 올리막, 내리막에 무게게 자연적으로 조절되는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철이가 방치를 매는 날에는 어쩐 셈판인지 무게가 나와 갈경갈경한 조령감이 메는 뒤쪽에 쏠리여 허리가 받아당하지 못할 지경이였다. 맥골을 못쓴다고 늘 구박받던 조령감이 가만히 알려주었다. 신철이가 방치를 맬때 무슨 롱간질을 한다는것이였다. 다음 나무를 멜때 내가 신철이네와 위치를 바꾸자고 하였다.    ㅡ 왜?    ㅡ 좌우간 좀 바꾸기우, 우리가 그냥 뒤쪽에서 메야한다는 법이 없지 않소?    ㅡ 너 무랄이니? 메라면 멜게지 뭔 즌소리야? 즌소리는?    ㅡ 뭐라구? 다시 말해보라,    ㅡ 다시 말하자면 너같이 성분이 나쁜 새끼는 내마음대로 짓밟을수 있단말이다.     개니 돼지니 욕해도 참을수 있지만 성분소리만 나오면 참지 못하는 나였다. 중학교 2학년때도 그랬다. 한어시간에 곁에 애와 구시렁거리다가 선생이 불호령을 내렸다. “정우, 일어섯!” 나는 얼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나가! 당장! ” 나는 수업을 지연시킬수 없어 복도에 나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복도는 한지나 다름없었다. 변변 히 입지 못해서 잔뜩이나 추위를 타는 나는 한참 서있으려까 금방 온몸이 언명태가 다 되였다. 창피를 무릅쓰고 교실에 들어갔다.     ㅡ 왜 들어왔어? 시간이 끝날때까지 복도에 서있으란 말을 못들었어?    ㅡ 듣기는 했지만 너무 추워 얼어죽을것 같습니다. 저 못나갑니다.    ㅡ 뭐? 이 새끼, 선생과 땅땅 접어들구, 야, 임마 넌 성분이 나쁘다더니 아주 질이 나쁜 놈이구나, 이 자식, 너 공부 좀 잘하면 다야? 나쁜놈의 새끼…    아이들의 눈길이 내한테 확 쏠리였다. 이런판에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가릴게 없었다. 내입에 생각하지 않던 말이 불쑥 튕겨나갔다.    ㅡ 에씨, 자기는 쏘련포로병이 돼가지구..    ㅡ 뭐야? 이 새끼?     한어선생이 한걸음에 달려내려와 내귀쌈을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ㅡ 왜 때려요? 학생에게 반주임도 하지 않는 말을 해서 됩니까?    한어선생님은 들었던 손을 내리웠다. 나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너부죽한 얼굴에 칼자국이 나있고 구레나룻이 짙은 한어선생님은 학도병으로 끌려나갔다가 쏘련군이 만주리로 넘어오자 두손을 번쩍들고 포로되였다고 소문나 있었다. 하학시간이 되자 나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교장선생이 나늘 한바탕 닦아세우고 내보낸후 한어선생님을 비평하는 소리가 귀결에 들렸다. 다음은 체육시간이여서 스케트를 타는데 한어선생 님이 나를 불러 구석쪽으로 끌고가더니 먼저 사과했다.     ㅡ정우야, 내가 실언했다. 아무 죄없는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참 안됐다. 하지만 너두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였어…     나는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ㅡ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ㅡ 그래? 너도 잘못을 뉘우치면 됐어, 하긴 너의 그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어…     한어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혹간씩 공사소 재지에서 맞띄우면 진심으로 인사하였다. 한어선생님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렇게 맺혔던 원한은 흘러간 세월에 떠나가버렸지만 그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판이다. 나는 우선 참기로 하고 그냥 목도채를 어깨에 걸었다.     몇걸음 나가던 나는 조령감에게 눈치질하고 불시로 목도채를 어깨에서 탁 내렸다. 그바람에 앞에서 메던 넷이 뒤로 훌렁 나자빠졌다. 신철이가 악을 먹고 달려들며 털모자를 쓴 내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이제 나도 더 무엇을 고려할게 없었다. 옆으로 훌쩍 비켜서며 목도채로 신철이의 등때기를 후려쳤다. “아이쿠 !”소리와 함께 신철이가 고꾸라졌다. 원래 훗대가 돈독하지 못한 나였지만도 우선 속이 후련했다.     나의 살기띤 험상궂은 얼굴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 서있었다. 내가 다시 목도채를 추겨드는데 조령감이 내팔을 잡고 극구 말려놓고는 신철이를 눈속에서 안아일으켰다. 신철이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나왔지만 함부로 짓밟을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조금 느낀듯 겁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런 막노는 노가다판에서는 약하게 보일수록 더욱 짓밟히기 십상이다. 거세지는 못해도 악지세게 나와야 아무도 기시하지 못한다는것을 그동안 체험으로 느꼈던것이다.     쉬는참에 둘이서 따로 떨어져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데 조령감이 이야기를 했다.     ㅡ 자네에 하는 말이네만 나 젊어서는 조선팔도에서 이름있는 전문목도군이였네.     우리 짝패가 딱 여덟이였는데 형제의를 맺아 수족같은 친구들이였지. 우리는 전문 기차에 원목을 메여올리는 일을 찾아했네. 한번은 광고가 나붙었네. 무산역에 아주 큰 무티를 기차에 싣지 못하고 2년이나 묵어있었다네. 일본목재경영소에서 아주 많은 돈을 준다고 광고하였지. 그래서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갔네.     나무는 과연 소문대로 거물이였어, 거의 가슴까지 올라오는 놈이였는데 직경이 거의 90이 나간다던지, 그놈을 차바곤에 메여올려야 했네. 우리는 사흘을 걸려서 받침대서껀 빈틈없이 준비하였네. 무티를 메느날 무산읍에서 숱한 구경군들이 나왔네. 목도채를 어깨에 올려놓으니 나무와 땅사이가 한 한뽐 푼히 되였네. 앞에 선 친구 둘이 차판에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네.     그러나 허기영, 치기영 하고 먹이는 선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나무는 한걸음 한 걸음 움직이였네. 차바곤에 나무를 돌려서 내려놓자 제일 나이 어린 막내가 졸도하였 네. 병원에 가보니 목덜미에 박힌 주먹같은 썩살이 문드러져 피가 터졌던거야, 그때 그 막내가 목도채를 벗어메치면 뒤에 우리는 다 죽었을거야, 무티가 워낙 이만저만 한 놈이 아니였거든, 그때 돈은 꽤나 받았지만 거지반 그 아우의 치료비에 들어갔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나? 이런 시시한 목도판에서는 되는대로 메면 메는 거지만 목도라는게 말이네 힘을 합쳐 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합쳐야 하는거라구. 그런 데 저 신철이라는 젊은이가 사람이 참 못됐어, 노가다판에서 굴러먹은 내가 저런 햇송아지를 두려워 가만있는줄 아나? 나도 출신때문에 그저 죽여줍시사, 하는거라구, 저애숭이가 심통이 바르지 못한게 분명하니 앞으로 사달이 나지 않게 주의하게…     조령감과 나에게 각별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역시 천지가 아득하게 눈 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날이였다. 내옆. 제일 바깥쪽에 나무를 굴리느라 둔장질하던 조령감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발이 미끌며 평형을 잃은 조령감이 그만 바람에 휘 감겨 나무무지 사이에 떨어진것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팍까지 싸인 눈속에서 눈사람이 다된 조령감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무를 타고 내려가 부축했을 때 조령감은 눈섭이고 수염이고 눈범벅이 되여있었는데 남의 일이라도 가슴이 찡했다. 일이고 나발이고 조령감을 업어 숙소에 가져다 눕히였다. 옆구리를 박아서 켕길뿐 허리는 일없다고 하였다. 조령감은 그렇게 한 열흘 쉬고 나서야 목도판에 나올수 있었다. 그후 조령감은 자기가 가져온 토담 배랑 나누어주면서 남달리 살갑게 굴었다.     며칠후였다. 나무를 일정한 높이로 쌓아야 하기에 다음 층을 시작할 때에는 끝 머리에 조심조심 올려놓아야 했다. 자칫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지기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서 모두 헐겁게 여겼는지 힘이 합쳐지지 않았다. 나무가 거의 올라 앉는 찰나 내가 우쩍 힘을 쓰다보니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한발을 내디고말았다. 내친김에 경사지게 쌓인 나무들을 건정건정 뛰여넘는데 뒤에서 동녀의 새된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텅, 퉁탕!”하는 소리에 뒤돌아보지 않아도 사태의 엄중성을 직감했다. (인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쳤다. 그 무서운 절망감이 폭발력을 올리뿜 었는지 아무튼 나는 두세 걸음에 나무무지 끝머리에서 2메터쯤 아래에 있는 소철길 위로 힘껏 뛰여내렸다. 사신을 앞세우고 굴러내린 문티가 쿵, 하고 내뒤에 떨어졌다. 철길이 조금 높았기에 홈차기에서 더 튕겨오르지 못했기망정이지 나는 떡돌에 치운 개구리가 될번했다. 정신이 아뜩했다. 짓쫗은 무릎이 아파났을뿐 사지가 멀쩡한것 같았다. 그러나 얼이 나간뒤라 한동안 엎어진채 있었다.     ㅡ 정우야, 아무데도 상하지 않았지?     ㅡ 정우동무!!     조령감의 다급한 소리와 동녀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간신히 머리를 들어보니 모두들 위에서 내려다보며 련신 무어라 소리쳤다. 어느새 뛰여내렸 는지 동녀가 내팔을 잡아 일으키려 애썼다.    ㅡ아무데도 상한데 없지요? 응? 그렇지?     나는 천명이라고 생각하며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릅팍이 쑤셔났지만 극력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언덕을 올라갔다. 후에 동녀가 알려준데 의하면 그날도 검척 할게 없어 남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무가 굴러떨어질가봐 도비로 잡아당기고 있는듯 했는데 신철이가 손동작을 하는듯 싶더니 나무가 굴러떨어진 그런 위험한 일이 벌어진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가슴이 섬찍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이상 무엇을 어떻게 캐여볼 계제가 못되였다. 저녁에 낮에 있었던 일을 누가 꺼냈는지 하늘이 도운 목숨이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남도령감은 내무릎을 살펴보았고 우파의사도 요도팅크를 꺼내여 가득 발라주었다. 그후부터 신철이를 지켜보는 나의 눈길은 분명 험악했을것이다.     얼마후, 쌓아놓은 문티들을 헐어서 기차에 싣는 일을 하던 날이다. 문티들은 쌓 기도 힘들지만 허물기가 더욱 위험했다. 내가 조금 사선으로 끼인 나무끝을 도비로 끄적거려 파내자 원목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나무한대가 철길가에서 지휘하던 신철이 앞에까지 굴러가는 순간 “아이구!”하며 그가 발목을 안고 맴돌이쳤다.     욱 모여들어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저 아파 죽는시늉만 하였다. 당장 업어서 대대위생소라도 호송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상한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말없이 등을 들이댔다. 신철이를 없고 꽤나 먼 숙소로 돌아왔을때는 나의 솜내복까지 흠뻑 젖었다. 의사가 와서 살펴보려 하니 신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다치게도 못했다.     그렇게 신철이는 엄중환자가 되였고 나는 의무간호원이 되였다. 일을 하고 돌아 와서는 밥도 타다주고 요강으로 쓰는 세수대야까지 섬겨야 했다. 며칠 지나자 앓음소 리는 뜸해졌으나 약을 바르고 칭칭 동인 붕대를 다시 풀어보지 못하게 아우성쳤다. 그렇게 열흘간 누워있다가 송엽장을 짚고 변소출입을 하게 되였다. 지휘부에서 하산 할수 있다는 증명까지 떼주는 바람에 나는 한시름을 푹 놓게 되였다.     문제는 신철이를 소발구에 앉혀서 70리 떨어진 고동하역까지 실어가는 일이였다. 나는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있어서 호송을 자원 해 나섰다. 걸음가벼운 소를 주어서 길이 잘 축이났다. 앞에서 소고삐를 당기며 걷는 나는 속으로 이 산속에 콱 처박아버리고싶은 생각이 불쑥 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속에서 끓어번진 증오심에 그치고말았다.      그러데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은 뒤에 있었다. 늦은 오후에 고동하에 이르렀는데 마침 기차가 원목을 가득싣고 금방 떠나려는 참이였다. 급해맞은 신철이는 내가 부축하기도 전에 굴러떨어지듯 하더니 이불짐을 들고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차를 향해 내뛰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한참 뛰던 신철이가 내게 대고 소리쳤다.     ㅡ 야, 이 개새끼야, 그날 네놈이 그 문티에 치여죽지 않은게 다행인줄 알아라. 나는 간다, 그동안 잘 부려먹어서 감사하다. 너 그년과 콱 잘살아라.     그가 무어라고 자꾸 지껄여댔지만 나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못하고 쇠말뚝처럼 섰을뿐이다. 나는 굶은 속으로 그냥 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나만 부엏게 속히워 벙어리 랭가슴을 앓은것도 그렇지만 하산증을 떼주 면서 치료를 잘하라고 당부하던 박창장도 속창이 터질일이다. 말씨 한번 걸죽한 남도령감이 듣지 못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ㅡ 세상에 저런 문딩이 다 있다니? 어허, 나참 디러워서, 그동안 고양이 불알앓는 소리에 잠을 설친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숫구멍까지 솟구친당께. 짜아식, 능구렝이라두 그런 능구렝이 봤나? 암튼 정우, 늬 고생많았다. 그래두 사람은 먼저 착하구 보능기여, 그런 놈의 새끼는 아무데가도 싹수가 없는 놈인게루 업보를 받지 않나 보래이, 어참, 나 제정때 벼라별 노가다판에서 굴러다녔지만두 저런 버러지같은 놈은 못보았당께. 속은 우리가 분하고 분하디. 에익, 칵…        사실 지도부에서는 내말을 반신반의 한다고 하였다. 내말이 사실이라면 괘씸한 “도주병”을 다시 잡아들여야 한다고 벼르던차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소식인지 신철 이네 온가족이 한창 불어치는 조선바람에 두만강을 건너가버렸다고 하였다. 신철이가 꾀병을 앓은 원인이 거기에 있은것이다. 박창장은 닭쫓던개 울쳐다보는격이 되였고 나는 또 한번 인간의 내심속에 들어찬 이런저런 악과 허위를 절감하며 가슴을 쳤다.                                                                                                                            6. 함께 걷는 길                                  춥고 지리한 심산의 겨울도 3월에 접어들면서 따스해지기 시작한 양광에 맥을 못추고 봄기운이 겨울이 누웠던 자리에 서서히 들어서기시작했다. 겨우내 목재를 실어내리던 발구길은 한낮이 되기도전에 눈석임물로 질척거려서 집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건만 하산명령이 없었다. 목재생산임무를 넘쳐 수행해야 한다는것이다. 집재 군들이 소를 다죽이겠다며 쉬는날이 잦아졌다.     인심도 뒤숭숭해졌다. 채벌군중에 위성을 날리는 날에 70립방을 베여 넘겼다고 황통을 불어 지휘부의 표창까지 받아서 별호가 70립방이 된 사람이 그만 본의 아니게 제형을 죽인 변고가 생겼다. 70립방의 형은 베여 놓은 나무를 따라가며 토막 내는 “절통군”이였다. 어느날 점심무렵 벌목하던 동생이 배가 고프고 맥도 진했는지 《넘어간다.넘어간다.》라는 하산도(下山到)를 웨치지 않고 벙어리채벌을 하는 바람에 바로 아래쪽에 앉아 톺질하던 형이 그만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나무초리에 치여 목마른 죽음을 당했던것이다…     아래골안에 지신공사에서도 인명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후에 알고보니 내매부네가 있는 승지촌에서 온 오령감이 한낮결에 난로에 땔 강대나무를 베러나갔 는데 날씨가 따뜻한지라 안전모는커녕 털모자도 쓰지 않았단다. 마침 오래 말라있던 강대나무를 발견하고 도끼질했는데 명이 그뿐이였던지 썩은 옹이가 울리면서 거꾸로 떨어져 맨수건을 동인 정수리에 박히는통에 끽소리 못하고 죽었다 한다. 지휘부에서 막판일수록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며 최후의 결전을 동원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     실어내리는 나무가 없으면 저목장에서 목도군들도 일손을 쉬여야 했다. 남들은 하산준비로 떡구시를 판다 떡메를 만든다 하며 분주했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흥심이 없는 나는 쉬는 날이면 별목적없이 도끼를 차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한나절씩 앉아있었다. 목재생산임무를 초과완수한다고 수종을 가리지 않고 마구 채벌한 밀림은 새봄을 맞고있건만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눈이 녹아버리면서 여기저기 파괴와 아픔이 젖어들고 있는 끈끈한 습기속에 모든것이 탈진한듯 수림은 미동도 없다. 오직 절망적인 하소연과 적막과 공허만이 짙게 안겨들뿐이다.    목재생산이란게 무어냐? 결국은 삼림을 파괴해버리는 우둔한 짓이 아니던가? 나로서는 생산과 파괴의 오묘한 경제학적인 원리를 알수 없었지만 이제 3십년이 못 되여 이 땅에 림업자원은 결딴나고 말것임을 분명하게 느껴졌다. (까짓걸, 내같은 하층인이 알게 뭐냐, 잘들 해봐라.)      나는 체념을 털어버리며 수림깊숙히 걸어들어갔다. 들어갈수록 태고적에 우수가 고즈넉하여 더없이 좋았다. 나는 알지 못할 위안을 받군한다. 눈앞의 리익을 챙기기 에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는 생각하는 략탈자들의 침해를 받지 않고 아직은 순수의 그것대로 남아있는 밀림의 내연성이, 고목들의 침묵과 사색하는듯한 그 자태가 좋았 다. 수림이야말로 대자연의 걸작이며 청산이야말로 대자연의 기념비가 아니던가?     심산의 나무들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듯싶다. 완고하게 그리고 금욕적으로 기 다리며 세월과 더불어 침묵의 힘을 키우고있을가? 그러나 나무들이 언젠가 닥쳐올  종말을 예감하고 말이 없다고 앞질러 생각하면 공연히 서글퍼지는 마음이다. 도끼에 밑둥이 찍히고 톱날에 허리가 동강나고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끌려가서 오리오리 갈리 는 자기네들의 운명을 자각하고있기에 저 가문비나무는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며 저 봇나무는 늘 창백한 모습으로 서있는게 아니랴!     또 그래서 더 빽빽히 어깨를 겯고 더 키돋움을 하며 애목들을 키워가는게라고 생 각하면 밀림의 그 웅숭깊은 넋이 한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숲은 강하고 억세고 저 오래오랜 침묵은 많은 무엇을 의미하고있는게 사실이다.     나는 하얀 봇나무아래 절로 넘어진 진대통에 걸터앉아 애수와 고독에 흐는끼고 있었다. 내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른 나무가지를 밟는 소리가 났다. 이 깊은 숲에 누가 들어왔을가? 화들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동녀가 나무뒤에서 살며시 나타났다.     ㅡ아니? 동녀였구만, 내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고…     ㅡ난 요즘 정우동무가 숲에 들어올 때마다 슬며시 따라서군했어요. 그저 멀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을뿐이였어요. 그런데 그냥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혹시 집생각을 하나요? 마을에 사랑하는 처녀라두 두고 왔나요?     ㅡ이 나이에 처녀가 다 뭐야?       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았지만 동녀에게 정들대로 정들어 상상병을 앓는판이다. 나에게 있어서 동녀는 어쩐지 생소한 사람같지 않았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어덴가 아렴풋한 기억속에 남아 있던 그 사람같았다. 그러나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여직 그냥 옛날만 더듬다가 말군하였다…       ㅡ참, 동녀도 집에 가고싶겠지뭐? 산에 들어온지도 여덟달이나 되였으니 어째 집생각이 나지 않겠소? 그런데 어떻게 이런 노가다판에 다 오게되였소?       ㅡ그렇게 되였어요. 집이 하도 구차해서 엄마가 가지말라는것을 내고집대로 왔 어요. 결국은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우리 목재군들이 뜯겨도 너무 많이 뜯긴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저기 회계질하는 신학무가 신철이 삼촌이래요. 그들은…     ㅡ쉿, 누가 듣겠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근거도 없이 말하다가… 나는 대견한 눈길로 동녀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주머니에서 정교하게 만든 나무통을 꺼냈다.     ㅡ자, 이걸 받소. 준다준다하면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오늘은 어떻게 만나면 줄가하고 가지고 나왔더니… 전번 고동하에 량식을 실러갔다가 공소부에서 산거요.     ㅡ 아니? 아이, 고와라. 고급분과 구름이네. 비싸겠는데 날 주자구 샀단말이예요?     ㅡ 고맙긴, 내가 그동안 너무 신세져서 오히려 고마운편이요. 오빠가 주는것으로 여기고 받아두오.     ㅡ 오빠라구요? 언제 오빠가 됐는데? 그럼 난 이걸 받을 생각이 없어요.     ㅡ 왜?…그럼 한 남자가 주는것으로 주면 받겠단말이요?      동녀는 얼굴이 일년감빛이 되여 입속으로 종알거렸다.     ㅡ그래요, 그런 마음으로 준다면 아까워서 쓰지 않고 두고두고 보겠어요…     며칠후 저녁무렵에 하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몇개월을 솔잎냄새 나는 눈녹인물을 먹으며 고역에 지쳐버린 목재군들속에서 70리도 넘는 고동하에 가서 소철을 탈게면 아예 이밤으로 떠나 관지역에 가서 화룡차를 타는게 낫다는 의론 이 벌어졌다. 그러자면 험한 남산령을 넘고 게굴라즈(계관리자산)라는 몇십리 골안을 빠져나가 천수동에 떨어지고 와룡동을 거쳐 관지역까지 200여 리길을 이튿날 오후 두시까지 대야 했다. 하건만 산판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이 한시가 급하다며 아예 저녁을 먹고 그냥 떠난다고 설레발쳤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걸직한 육담을 하는것을 잊지 않은 목재군들이였다. 말하자면 몸이 허약해져 먼저 집에 돌아간 덕신공사의 한 나그네가 역전까지 마중나온 안해와 함께 령을 넘어가다가 골짜기에 끌고내려가 해토무렵의 언땅에 자빠뜨려놓고 몇달 가물었던 운우지정을 쏟았는데 “범의 촉한”에 걸려서 집에 돌아간 며칠만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으니 모두들 집에 돌아가면 “범의 촉한”에 걸리지 않도록 너무 덤벼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알수 없었지만 한심했다. …소를 몰고 가야 할 사람들이 남고 모두 너도나도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나도 덩둘해서 이불짐을 꿍졌다. 다른 사람들은 매우시랑, 떡구시랑 넣다보니 짐이 무거웠 지만 나는 책몇권을 넣은 이불짐 하나뿐이였다. 내가 떠난다니 어디서 소식을 탐문 했는지 동녀도 부득부득 따라나섰다. 남도령감을 따라가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늙은이의 길동무인줄 아는가고 성냈다. 밤길을 갈만하냐고 다짐땄지만 한사코 간단다.    …사실 마음이 급해서 밤길에 나서긴했지만 그렇게 경쾌한 걸음은 아니였다. 동녀는 잘 걷는가싶더니 두어고개를 넘어서부터 휘청거렸다. 그러다보니 앞사람들과 점점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단둘이 걷는 심산의 밤길은 무시무시했다. 부엉이 울음에도 와뜰 놀라는 동녀는 나에게 매달려 걷다싶이 했다. 나는 동녀 앞에서는 사내라는 체면을 잃을수 없어 극력 의젓하게 보이려 애썼다.     ㅡ 아무 소리도 말고 걸음을 재우치오. 저기 어딘가 어른이 나타난것같소. 쉬ㅡ     ㅡ 아이 무서워, 오빠 어쩔가? 돌아설수도 없고…    ㅡ 언제는 오빠가 싫다더니 갑자기 오빠소리는?    ㅡ 아이, 미워라, 언제 그런걸 따질경황이 있나요?     동녀는 나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으며 좀처럼 걸으려하지 않았다. 등뒤에 서라 해도 그저 오돌오돌 떨기만 했다.     ㅡ 그리 무서울걸 밤길을 떠난게 잘못이지. 참, 못된 계…     ㅡ 아니, 정우오빠가 있는데 왜 무서워요? 하나도 무섭지 않네. 자, 가자요!     나는 피씩 웃었다. 그제야 속히운줄 안 동녀가 내가슴을 주먹질하다가 내킨김에 와락 안겨들고말았다. 나도 얼결에 힘있게 껴안았다. 아무말도 없이 그대로 섰다.     ㅡ 아이, 정말 맥이 다 빠져서 한걸음도 걸을수 없네. 좀 쉬였다가자요.     ㅡ 이제 겨우 5십리나 걸었을가? 앞에 간 사람들을 놓치면 나도 길을 모른단 말이요. 그 이불짐 인주오. 내 멜빵을 잡고 눈을 감은채 걸으면 좀 나을거요.    ㅡ 정말 졸려서 죽겠어요. 여기서 한잠 자고갔으면…     나는 못들은체 했으나 웃음이 나왔다. 동녀는 거의 매달리다싶이 하며 걸었다. 그렇게 서로 부축하고 끌고하면서 천수동에 들어서니 날이 활짝 밝았다. 동녀가 간장에 졸인 짠지를 넣은 주먹밥을 내놓아 걸으면서 먹었다. 와룡촌에서도 길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동녀가 아니였더면 나는 그냥 빈배로 걷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막 쓰러지려는 동녀를 끌고 오후 두시께 관지역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동녀를 거의 안아올리다싶이 하고 겨우 차에 올랐다.     동녀는 기차가 떠나기전에 내 어깨에 머리를 얹고 곯아떨어졌다. 사람들이 야릇한 눈길로 보았지만 그런걸 따질 정황이 아니였다. 룡정역에 내리니 동녀의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동녀가 나를 인사시켰다. 모진 세파에 시달린 늙수그레한 동녀의 어머니는 처음에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일별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면구스러울 정도로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하며 딴전을 부렸다.     ㅡ참 이러구 있을게 아니라 어디가서 좀 요기나 합시다. 우린 하루 종일 굶어서 걸었거든요. 제게 량표도 있고 돈도 있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앞장섰다. 정말이지 말할맥도 없었다. 그냥 빈속으로 모아산 아래까지 걸어간다는것은 안될일이였다. 식당이래야 벽돌장같이 시뻘건 수수떡이 있었다. 그나마 늘 사먹을수 있는게 아니다. 동녀모는 나에게 이것 저것 자꾸 물었다.    ㅡ 총각은 딱 누구를 닮은 모습인데 얼핏 생각나지 않네, 전에는 어데서 살았소?    ㅡ 예, 저 룡문교건너 룡강촌이 태생지입니다.    ㅡ 에구, 그렇구나!그럼 부친의 명함이 정묵이지, 자넨 애명이 야조이구?!    ㅡ 예, 어렸을때는 마을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수꾸마.    나의 확답에 동녀의 어머니의 얼굴에 미묘한 그늘이 얼핏 비껴갔다.    ㅡ아이구, 그랬구만. 그래 이애가 누군지 몰라보았소? 하기사 야가 여섯살때 토성포로 이사했고 세월이 10여년이나 흘렀으니까 그럴만도하지…쯧쯧….     나도 놀랐거니와 동녀는 더구나 눈이 올롱해졌다. 아득히 흘러간 동년시절이 불현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ㅡ 아이, 참, 이제보니 오빠구나, 어쩐지…물어본다 물어본다 하면서…그랬구나. 야, 정말 꿈만같네.    우리는 이렇게 알고나서야 옛그날의 모습들을 다시 확인하며 계면쩍게 웃었다.    ㅡ 세월이 빠르기두 하지. 너희들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목재판에 다 굴러다니구, 그래 작은 엄마는 지금 생존이신가? 할빈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그리구 형들은 다 함께 있는가?    ㅡ아닙니다. 할빈에서 식모로 고생하다가 3년전에 돌아갔습니다. 형들은 제각기 다 흩어져있습니다. 큰형은 조선에 나가구 둘째형도 할빈에 있수꾸마.    ㅡ 에구 그 에미네는 고생두 많더니 끝내 락두 못보구 말았구나. 쯔쯧쯧…그럼 큰 어머니를 뫼시구 있겠구나. 원 저런….     동녀모는 나를 다시다시 건너다 보면서 어두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집이 잘 살때에는 나의 생모와 형님동생하던 사이였는데 두집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남편들을 전염병으로 잃은데다가 두과부는 일송정아래 서덜밭에서 김도 함께 매고 겨울이면 함께 허드레장사랑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나갔던것이다.    ㅡ우리 또 만나요. 네?    동녀의 얼굴은 유난히 흥분에 젖어있었다. 여느때보다 정차게 깜박거리는 정찬눈, 긴속눈섭에 기쁨이 흘러넘치였고 선이 또렷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입술은 이슬을 기다리는 꽃망울처럼 방싯이 벌려있었다.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들은 사랑이라는 황홀 한 이성지합의 세계에 끌리기만 하면 모든것을 사랑으로 느끼는 법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우에 후광을 씌워줌으로써 백마왕자로 만들어버 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애정으로 남자를 속속들이 물들이려 한다. 소녀들의 실수란 언제나 착한것이라 밀어부치는데서 온다는것을 모른다. (그래, 산사람이니까 만날수야 있겠지, 그러나 마주보는 청산같을거야…)나는 이렇게 대답하려다가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동녀는 나를 오래오래 눈박아보았다.                                                                               7. 애욕의 피리       동녀모녀와 갈라져서 해저문 강둑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의 머리속에는 흘러간 어린시절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두집 어른들이 하도 친하게 지내서 그 런지 나와 동녀도 사이가 자별했다. 눈만 뜨면 서로 찾아다녔고 함께 놀다가도 한이 불속에서 자기도 했다. 너는 각시, 너는 신랑재하며 붙어다니 던 소꿉동무였던 동녀가 그처럼 사랑스러운 처녀로 변한것을 떠올리며 가슴이 클클해 났다.    비록 새 사회의 테두리밖에 뿌리워진 가련한 두씨앗들이였지만 모든 아이들이 가지는 제나름의 동년세계가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닫는 개꼬리도 밟는다고 먼지속에 나딩굴던 랑만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런 동녀를, 고향의 죽마고우를 다시 만나게 되였으니 기우가 아닐수 없었다. 유년의 작은 세계는 더큰 세계의 모델이 될수 있다.    그 친밀성이 동심에 강하게 인상지어지면 질수록 성인생활의 더 큰 세계에서는 그 옛날의 장난과도 같은 세계가 더정하게 느껴지는법이다. 이것은 의식의 발전이 아니라 리성의 발전이라 할것이다. 아무튼 나의 생활에서 동녀와의 기우는 가슴이 설레이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깊고 얕은 내심의 상처가 있지만 그 아픔은 저 혼자만이 감내하게 되여있다. 나의 상처를 두고 누군가 동정의 눈물은 흘수는 있어도 나의 상처의 아픔을 체험할수 없고 입술을 깨물어줄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이 내아픔이고 내상처가 되는것처럼 따뜻이 보듬어줄 사람이 어데 있으랴!      룡정이 지척이였지만 농사일에 뒤몰린 우리는 그동안 편지가 두어번 오갔을뿐 만 나지 못했다. 동녀는 편지에 새벽농대에 입학했다고 소식을 전해왔고 내가 한번 만나 러 간다고 하는 편지에 아직은 잠시 자기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였다. 동성 중학교 나의 동창들도 여럿이 있는데 겨우 학교에 들어온 자기에게 몹시 불리하다는것이였다. 물론 리해하여 달라고 해석을 얹었지만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해가 지나고 이듬해 초겨울 재차 고동하 목재판에 들어가 다섯달을 일하고 나오니 3년 세월이 훌쩍 지난셈이다.    “9.3” 광신공사 운동대회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녀는 길흥대대 배구선수로 나왔고 나는 유신대대 축구대원으로 출전하게 되였다. 동녀는 배구를 잘 쳤다. 갈켠 한 몸집처럼 동작이 날썌였다. 2일간 운동대회를 하는기간 한번 렬군속식당에 가서 국수를 함께 먹고는 서로 찾을 겨를도 없었다. 운동대회가 끝나서 어둑어둑 날이 저물었는데 동녀가 찾아와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었다.    ㅡ 집에 엄마가 별랗게 보겠는데?    ㅡ 걱정마, 엄마는 지금 저 명동공사 공소부식당에서 화식원으로 가있어요.    ㅡ 그럼 더구나 못가지,    ㅡ 누가 밤을 자고가라고 붙들줄 아나베, 피ㅡ    오래동안 그리워하기만 하던 동녀였는지라 나는 속으로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들 어 온다고 은근히 좋아했다. 식당에서 동녀가 좋아하는 국수를 먹고 길흥촌 7대에 있 다는 동녀의 집으로 갔다. 작은 골목길에 허수룩한 초가집이였는데 그나마 한칸이 그 의 집이란다. 방안에 들어서니 눈에 띄일만한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서발막 대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다는 그런 정도의 가난한 살림이였다. 하긴 나도 까래가 없 어서 가마니짝을 쪼개서 방에 펴고 살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아니였다.    우리는 드디어 방애군이 없는 곳에서 단둘이 마주앉았다. 두눈이 딱 마주쳤다. 한쌍의 흑진주에 다시 한번 눈이 부시였다. 현혹하리만큼 매혹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창백하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들말이 네굽을 놓고 들뛰였다. 열기띤 나의 심장의 급 촉한 박동이였다. 뒤따라 전신에 련속 짜릿한 환희의 전류가 굽이치면서 틈새리가 있기만 하면 분수처럼 솟구쳐올라올것 같았다. 공기도 응고되고 시간도 걸음을 멈추고 온 세상이 장미빛에 싸인듯 느껴졌다.     떨어질줄 모르는 두쌍의 눈길들이 방전하는듯 싶더니 화산용암같은 열기가 뿜겨 나오는것을 서로 확인하며 대방을 녹이고있었다. 간다간다하며 아이 셋을 낳고 간다더니 내사 일어난다 일어난다 하며 어둠을 맞았고 밤길에라도 돌아간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하다하다 밤이 깊어지니 나는 주저앉았고 동녀도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좁은 가마목에 나란히 누웠다. 이 시각을 위해서 동녀가 당돌하게 이런 밤을 마련한것일가? 그러나 아무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감히 녀자의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볼 계책도 없었고 두렵기도 하였다. 사랑하는 녀자를 지척에 두고 거세여지는 숨을 죽여야 하는 나의 가슴은 끓어도 백도로 끓어 사품치고있었다. 시시각각으로 기습해오는 호기심과 신비와 추구와 만족감 등 온갖 잡념들이 줄끊어진 구슬마냥 흩어지고 다시 한줄에 뀌여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이성과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마음을 다잡는 숫총각이 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동녀를 사랑하게 되였다는것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차지할수 있다는것, 그런 아름 다움을 받아안은 나야말로 량성으로 얽혀도는 이 인간세상에서 녀자복이 있다는것, 아무도 방애할것도 없는 깊은 밤, 생생한 녀자의 몸을 가슴넘치게 껴안고 신비의 처 녀지를 열수도 있다는 욕망에 시간은 달리고 가슴은 벌겋게 후끈 달아오르고있다.     혈기방장한 젊은 남녀는 좋아졌을 때 아무짓이나 저지를수 있다. 가마안에서 펄펄 끓는 물을 식히려면 퍼냈다, 다시 넣었다 할것이 아니라 아예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개비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꺼낼수 있단말인가? 나는 제좋은 멋으로 자기를 동원하고있었다. 사랑하는 남녀끼리 억제하려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몸에도 해롭다. 남녀의 감정은 시내물을 막는것과 같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왜냐하면 진실한 감정은 한가지 좋은 점 즉 애정생활을 가미하는 불가결의 조미료이기때문이다. 사랑은 선사하는게 아니라 육체와 함께 바치는 일이다.     오직 생활자체가 그 어떤 의의를 가질때만이 지식도 명예도 보람이 있는것이다. 농민인 나로서는 사치한 앞날을 지향할수는 없지만 삶의 원초적인 의미만은 느끼며 살권리는 있다. 그런 막연하던 생각이 갑자기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해석해주고 있다. 지금 나의 삶의 가장 진실한 의미는 무엇인가? 왜 생에 대한 애착이 이 시각 더없이 강렬해지는것인가?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원천을 찾았다.     바로 이것이다. 동녀의 말랑말랑한 입술과 아름다운 가슴과 그리고 그 신비의 미개척지였다. 나는 언어의 빈곤증을 느끼고있다. 말은 비록 마음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이성간의 오묘한 감정을 곧이곧대로 형상적으로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천진하고 순결하고 록음방초 우거진 숲속에 밑바닥을 알수 없는 작은 호수를 품고있는 오아시스같은 녀자라고 믿고싶었다. 처음 신비의 갑문을 여는 청년남녀들은 미칠듯 열렬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누가 썼더라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정욕과 흥분에 온몸이 전률할 때 어느 청년이 감정상에서의 은밀한 활동을 하지 않을가? 나는 그의 내의밑으로 손을 넣어 하미과같이 잔뜩 농익은 젖무덤을 보듬어 보다가 손으로 전달받는 향수로는 성차지 않아 옷을 훌쩍 걷어올리고 녀인들에게만 있는 아름다운 가슴의 풍경선을 보고싶었다. 분명 금방 시루에서 쪄낸 잘 부풀어오른 만두빛 같을 하얀 두봉우리, 그리고 그 두봉우리사이에 얼굴을 묻는다…간지럼 잘타는 동녀가 방울새의 울음같은 소리를 내며 가슴을 들먹이였다…     …동녀의 급촉한 숨소리가 나의 혈관속에 불을 확 지폈다. 그녀의 속살이 파르르 떨리는듯싶었다. 동녀도 나를 힘껏 아래로 당겨안으며 미쁜 신음소리를 내였다. 나의 머리는 터질듯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당장이라도 팡ㅡ하고 터질것같다. 우리는 감정 의 격류속에 빠져들어 자기 완성을 재촉하고있었다. 무겁게 느껴질만큼 부풀어오른 동녀의 젖무덤이 내 가슴아래서 뭉클거린다.     동녀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물을 샅샅이 빨아넘기였다. 눈물샘이 터진듯이 살폿이 감은 눈가에 곧 질벅해지는 눈물, 눈물은 짭짜름했다. 나는 그가 괴로워서 그 러는줄로 알고 팔을 풀려고 약간 움쭉거렸다. 내목을 감았던 동녀의 오동통한 두팔 이 힘을 주어왔다. 나는 내심 그의 열정에 놀랐다. 자기를 절제하려던 나의 미동은 잠시였다.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동녀의 가슴에서 한초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상상은 해보았지만 이렇게 너무 빨리 동녀와 살을 섞을줄은 바라지 못했던 나인 지라 더는 놓쳐버릴수 없는 희열이 내육신에 굽이굽이 파도쳐갔다. 농익은 동녀의 육체가 나를 끝없는 무아의 안개속으로 빨아들였다. 녀자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과 더 불어 간간히 탄성이 터져나온다. 너무도 아름차게 안겨드는 격정 그 자체인가?...     이제 부끄러울것도 구애될것도 없다. 우리는 다시, 또 다시 뜨거운 열정을 불태 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련속 불길을 내뿜는 활화산같은 욕정이였다. 동녀는 지칠줄 모르는듯 나를 받아들이였고 더 깊숙히 빠져들게 하였다. 창문이 희붐하게 밝아서야 우리는 몸을 풀었다. 방안은 썰렁했건만 나는 땀에 촉촉이 젖어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런 가동작도 필요하지 않은듯 무아경지에 잠겨 누워있었다…….     ㅡ정우오빠, 악몽을 꿨는가요? 어찌 그리 무서운 소리를 내요? 아이, 무서워… 잠기어린 동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밑창없는 환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놀래우기에는 족하였다. 와뜰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내가 한창 미친 환각에 빠져있었고 저도 모르게 짜낸 신음같은 오열이 그녀에게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으르 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을가? 나는 혼자 좋다가 만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끼였다.    ㅡ 아, 내가 꿈을 꾸었나? 꿈을 꾸지 않은것같은데…    ㅡ 새벽이 오는것같아요. 오빠…나…이렇게 누웠는데 아무 감각도…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해서 결정한것인데…오빠는 감정이 도끼등이였나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할게요. 오늘 나를 다 가져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지금 내가 오빠와 한평 생 같이할수 있는 방법은 이러는것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오빠가 룡강촌 최씨네 널대문집에 아들이란것을 알고 질색해요,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국이 시국이라서 오빠와는 안된다고 딱 말리는거예요. 나도 밑바 닥은 오빠와 다를게 없지만 엄마가 내가 어릴때 성분이 좋은 사람에게 재가한후 지금 내성분은 빈농으로 돼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나 앉으려는데 동녀의 팔이 내가슴을 눌렀다.     ㅡ 움직이지마, 그냥 이렇게 누워있어요.     ㅡ 나도 동녀엄마의 마음을 알고있어. 그렇게 할수밖에 없겠지? 운명같아, 나… 그런데 내가 동녀말대로 하면 후과가 어떻게 될가? 오늘은 동녀가 좋아서 그러자고 해도 곧 후회할지 누가 알게? 내가 혼자 괴로워한줄 너도 알았지? 그러면서도 자는 체하고 내가 폭발적인 동작을 할가봐 경계하였지?    ㅡ 바보, 이러는 내가 저절로도 부끄러워 죽을지경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동녀가 내 이불안으로 홀짝 건너오더니 내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꼼짝마…) 나는 다시 장소도, 시간도 잊고 고요한 수면위에 누워 함께 떠내려가는듯한 황홀경속에 빠져버렸다. 동녀의 머리카락이 나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다시 질풍노도가 내몸의 밑으로부터 밀려오고있었다. 분명 내밀고있을 그녀의 조그마한 입에서 달콤한 열기가 뿜기고 숨을 할딱거리고있다. 동녀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나를 제몸위에 끌어당기려는 몸짓을 했지만 나는 그냥 부등켜안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ㅡ 야, 오늘 우리 그저 이렇게 하고있자, 더두 말구, 나 이렇게라도 너무 좋아… 지금 일을 치면 쓴죽이 될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린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니? 그리고 정말 모르지 세월이 더 험해지면 너의 마음도 어떻게 별할지…     나는 스므살 청년답지 않게 스스로에게 자신의 처지를 일꺠우며 피를 역류시키 고 있는 격정의 정수리에 갖지않은 리성의      랭수를 끼얹고 있는것인가?내 얼굴은 분명 보기싫게 이그러지고 있었을것이다. 동녀는 내 가슴우에 엎디여 창문으로 새여드 는 희미한 빛을 빌어 나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그러는 동녀를 올려다보는데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내얼굴에 떨어졌다. 가슴속에는 한없는 비애가 고패쳤다. 그 처량한 기운이 점점 팽창하며 가슴을 조이는듯했다. 동녀는 다시 자기의 풍만한 가슴으로 나를 있는 힘껏 짓눌렀다. 그러면서 연신 ( 바보야, 바보야…)하고 뇌까렸다.     나의 가슴밑에서 숫처녀의 철옹성을 열어주려던 동녀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르 나 오히려 그 보드라운 손으로 나의 맨가슴을 더듬고있었다. 나는 그러는 녀자를 부서져라 거칠게 휘감았았다. 그러나 짜릿한 부딪침속에서 무언가 폭발하가봐 이를 악물며 그렇게 엉켜있기만 하였다. 육욕은 서정이 아니며 이성에게서 부단히 전달되 는 신비한 감각은 리성을 얼마든지 무너뜨릴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육신은 더 이상 태동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너무 크낙 한 충격에 웅성을 잃고 이발빠진 호랑이가 되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혹시 병신인지도 모르지…)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뜨겁고 쫀득쫀득한 동녀의 입술이 내입을 덮어버렸다. 오래오래…또 다른 욕정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들고있었다…     ㅡ믿어지지 않을만큼 이상한 남자야, 고마워,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오는 나를 몰라주니 너 정말 괴짜야? 오늘은 좋아, 나 오빠에게 시집가고말테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요. 내가 농대를 졸업하고 우리 같이 살자, 응?! 동녀가 내가슴에서 슬며시 물러나자 나도 일어나서 부엌봉당에 걸터앉아 담배 한대를 뽑아들었다. 동녀한테 온다니까 큰 마음먹고 산 30전짜리 영춘담배다.     ㅡ 불을 때줄래? 아침을 일찌기 해먹고 우리 함께 해란길로 내려가자. 나 오늘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응? 내가 부엌에 내려가 석탄불을 피우려고 한참이나 부시럭거리는데 동녀가 홀짝 뛰여들어 내곁에 비비고 앉았다. 가뜩이나 좁은 부엌이 꽉찼다. 온 부엌안이 뭉글거 리고 따스한 육감으로 가득차올랐다.     ㅡ 나무만 때던 촌바이가 석탄불 피울줄이나 알겠나? 자, 이렇게 내가 불을 피워 줄테니 풍구를 살살 돌리며 천천히 석탄을 떠넣으면 돼…     동녀는 배구선수답게 가벼운 동작으로 부엌에서 뛰쳐나가더니 토기함밖에 쌀을 씻어서 가마에 앉혔다. 가마가 싱싱 끓어번졌다. 검댕이가 묻어있는 내얼굴을 내려다 보는 동녀의 정찬 눈길에 나와 그의 온세계가 담겨있었다. 그옛날 일송정 산기슭에서 달래랑, 밥조개랑 캐놓고 세감지를 놀던 일이 방불히 떠오르며 나는 빙긋이 웃음을 물었다. 동녀도 하얀 두볼에 붉은 볼우물을 파고있었다. 웃음이란 전염되는법이다. 나도 바보처러 벌쭉 웃어버렸다.     ㅡ 왜 웃어요? 어릴때도 그렇게 웃을 때는 딱 바보같더라니까 호호호…     ㅡ 우리 그때 먹지도 못하는 밥을 많이도 지었지?     ㅡ 그때 심술도 많이 부렸지요?     ㅡ 얘, 밥이 타는것같구나.     ㅡ 좀 타면 어때요? 가마치랑 나눠먹지뭐, 선밥보다 낫지 않아요?     인제 제법 유모아까지 해댄다. 내게 이렇게 고운 녀자가 있게 되였다는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와 함께 살며 나를 의식해주는 동녀가 나에게 있다는것은 한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목수가 재목을 가늠하듯 동녀의 말쑥하고 곱살한 얼굴을 새삼스레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일부러 지어내는것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미안해 하는 표정과 래일을 약속하는 밝은 미소가 9월의 국화꽃처럼 피여있었다.     사랑하는 녀자가 생겼다는것은 한 청년의 생활과 운명에서 획기적인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며 현명해질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지…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앞에서 현명해질수 없어도 좋았다. 동녀를 보면 우울한 기분, 슬픈생각, 운명의 장난에 대한 억울한 생각도 잠시 사라지고 그대신 인생을 사랑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것만 같았느니 말이다.     우리는 나란히 집을 나서 룡정발전창 뒤 일컬어 련애공원이란 백양나무숲을 지나 해란촌을 꿰지른 길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만남이 없으면 우정과 사랑이 없듯이 리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 우리는 룡산다리에 란간에 기대여 조용히 흐르는 해란강물결을 굽어보며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ㅡ 동녀, 출신이니 계급이니, 문벌이니 하는것을 초월해서 불행한 두운명이 서로 결합한다면 어떠한 인생고도 겪어나갈수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도 자기 생명의 빛을 발산할 권리마저 포기할수는 없지, 나를 믿고 따라주오. 개살구, 호박꽃에도 봄볕은 따사로울때가 있으리마 믿소. 동녀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나의 호소는 절절하였고 눈물겨움도록 진심이였다. 무참히 서리맞은 순정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 기쁨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나는 동녀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그렇게 헤여진후 우리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과 그리움을 체크하군 하였다.    그렇게 또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9.3”명절을 앞둔 어느 날 동녀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여느때보다 얇다란 봉투가 어떤 예감을 안겨주는듯 싶었다. 오가는 련정을 편지의 길이로 흥량할수는 없지만 여태껏 이렇게 엷은 편지봉투를 보낸적이 없는 동녀였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기가 겁이났다. 내가 동녀의 순정과 충성을 의심한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별스러운 감각이 들뿐이다. 과연 길게 쓰지 않았다.         정우오빠,          이렇게 불러보는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콱 죽어버리기도 싶지만 그렇게 강한 녀자가 못된 자신이 저주스러워요. 눈물로 마음를 딖아내고 또 수백번 딖아내도 견딜수가 없어 가슴이 먼저 울고있으니 몇글자 적지도 못합니다.     오늘 따라 하늘이 새까맣게 흐려있군요. 불붙는 가슴을 찬비에 적시며 눈물를 삼키고 억지로 써요. 내마음에속에서는 언녕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 편지를 정서적으로 쓸 경황도 없고 그렇게 쓸 필요도 없게 되였어요. 내가 왜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해야 하는지 나도 모릅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다 미워집니다. 당신마저도…     정우오빠, 작별입니다.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꿈에나 생각했겠어요? 그러나 운명은 우리를 여기서 갈라놓는것 같아요, 아니, 모든게 제잘못이에요, 배반 하고 가는 년이 무슨 구실이야 없겠어요. 그러나 나는 배반하고싶어 배반하는것이 아 니라는것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고 묻지도 마세요, 그것을 해석할 힘도, 용기도 없어요, 그리고 해석을 한다 하더라도 오빠는 납득되지 않아할것이고 이미 엎지른 물사발, 아니 내가 잘못해서 떨어뜨린 꽃병이 된 나. 죽을때까지 오빠를 생각하겠지만 만나는 일이 없이 산골에 처박혀 살다가 죽을것입니다.     부디 좋은 녀자를 만나 행복하시라고 축원할 마음의 여지도 없어요. 내가 좋아서 등을 돌리는것이라면 가면으로라도 축복하겠지만 나 거짓을 말할수 없군요. 너무너무 사랑했던 나의 남자. 그러나 가져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나를 잊어주세요. 눈물 이 자꾸 나서 더 쓰지 못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좋은 앞날을 개척하기를 빌고 빌어요. 잘있어요.                                                                   1963년 8월 21일                                                                                                        당신을 사랑했던 동녀      그런줄 모르고 나는 알뜰한 사랑의 정을 보듬으며 동녀를 만날 일만 생각하면서 나날을 보냈으니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몽둥이에 호되게 얻어맞은듯 얼이 쑥 빠져버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란 말인가? 나는 동녀를 내사랑의 천사로 새기 며 나의 에덴동산을 그려보았는데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 녀자의 마음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사랑의 천사란 없는것인가?     사랑에는 중간계단이란 없다. 사랑이 요람으로 되지 않으면 무덤으로 되고말뿐이다. 나는 동녀에게 저주를 퍼부을수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고 그녀를 저주의 기둥에 매달수야 없지 않은가? 어떤 불안을 앞세운 사랑이였지만 이렇듯 싱겁게 끝날줄은 꿈 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을수도 없이 어정쩡한채 나는 뜨거눈 눈물을 삼킬수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천구백구심삼년 사월, 새해 사범지망생의 면접시험을 보기 전날 점심무렵이였다. 한사무실에 있는 문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만났는지 복도에 한 녀자손님이 찾는다고 일렀다. 문을 열고 나서자 눈에 안겨오느니 낡은 코트를 입은 늙수그레한 녀인이 어 줍어하며 마주 다가왔다.     ㅡ아이구, 믿기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왔더니 정말이였네,     알듯말듯한 얼굴이였다. 그러나 그녀자의 입에서 내이름이 나오자 그가 누구인지 를 떠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나온 내삶의 궤적이 엿가락처럼 한꺼번에 뒤틀려버리는듯한 허탈감과 고통스러움이 나를 어리둥절하에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깡그리 잊지는 않아으나 다시 기억의 노트에 이름이 올려질 가봐 겁나던 녀자의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동녀였다.     ㅡ렴치없이 찾아왔지만 제가 동녀라구요,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동녀에게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수국처럼 탐스럽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이 아니였다. 녀자들이 나이들면 으례히 그러하겠지만 옛날의 아름다운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생고를 많이도 겪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련민의 정이 왈칵 솟아났다. 말아삼킬듯 서글서글하던 눈은 어데로 가고 눈물이 그들먹하게 고인 한쌍의 빛을 잃은 눈은 마주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옛날엔 할낏 쳐다볼때마다 전기에 닿인것처럼 심장마저 쩌릿해났는데 왜 내가 이렇게 무감동의 상태에 굳어지는가? 반가움과 신비의 대신 슬픔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오르면서 울화만 타래쳐올랐다. 나도 무정세월에 언뜻 중늙은이가 다되였지만 동녀에게만은 세월이 유독 잔혹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멍청해 선 내모습과 딱한 표정 을 지은 한 농촌녀인의 모습이 남의 눈에 걸릴가봐 교문밖을 빠져나와 연집강 강둑 아래로 내려가 앉았다.     ㅡ이렇게 찾아올줄은 몰랐지요? 나도 죽어도 찾아오고싶지 않은 길이였어요. 용 서해달라는 말도 할수 없어요. 다만 에미된 마음은 속일수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우리 막내딸이 도문5중을 졸업했는데 이 사범학교에 온다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키가 표준에 말랑말랑해서 반주임이 정우선생님을 소개해주더군요. 몇해전까지 한교연실에 있다가 연길로 전근해 간 선생이라며 제이름 대고 청들라고 해서…    내게는 지금 면접시험에서 보지도 못한 동녀의 막내딸을 위해 힘을 쓸것인지 말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나긴 세월의 갈피갈피에 얽혀있을 그녀의 이왕지사를 캐여물을 생각도 없었다. 해보아야 모두가 지난 이야기요 들어봐야 속만 상할 일이 아닌가? 무어라 할말이 없다는 동녀를 넌지시 지켜보는 내마음은 그저 착잡하다는 메마른 단어로 형용하기엔 너무 역부족이였다.     동녀는 팔도서 살다가 도문시 벽수동으로 이사가고 나그네가 술중독으로 맨날 주정을 패다가 죽은후 도문시내에 들어가 양복점을 하며 산다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많은 말을 했지만 나는 위로해야 할지, 축하해야 할지 몰랐다. 한때 너 무너무 깊이 사랑했던 녀자의 처경이 불행하게 되여있다면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가? 잘코사니를 불러야 하는가?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처절한것이였다.     얌치만 군밤처럼 주어먹은 그런 입살 드센 농촌아낙네가 된것같지 않은 동녀였지만 어째 순수의 인간의 정이라도 달아오르지 않을가? 동녀의 시린 가슴에는 삼검불 로 얽혀진 번뇌의 덩어리로 가득차 있을것이다. 그냥 목이 메여하고 숨이 가빠하는 모습이 그것을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젯날 동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싫증을 모르는 끝없는 감각속에서 두심장이 조 화로운 희열을 만들어내는것이였다. 동녀도 아름다운 동경이 폭풍우에 휘말린 쪽배와 같이 뒤집어질수 있다는것을 자각하였으리라. 그녀는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일어섰다. 나는 그를 바랠 성의가 나지 않았다. 강둑길을 따라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 의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며 나는 망두석처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동녀의 편지.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나의 정다운 당신,     며칠을 벼르고 며칠을 두고 이렇게 쓴 편지를 당신에게 두고가니 읽어주세요. 이 편지를 쓰는 며칠동안 몇십년 동안의 일들이 안개처럼 눈앞에 피여올랐어요. 부끄러 움과 자기 미움은 구름처럼 밀려오고 아름다운 추억은 벌떼처럼 밀려들었어요. 모든 것이 뒤엉키여 한덩어리를 이루는 통에 어느것도 쫓아버릴수 없었어요. 나는 인생을 실패하고나서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깨달았어요.     이제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려운 세월 그렇듯 조심조심 지켜오고 소중히 간직해온 처녀의 순정을 열어놓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아들딸 낳고 무더기 사랑을 쏟으면 살아가고 싶었던 이 동녀였습니다. 출신이라는 보이지 않으나 무서운 바줄을 사랑의 도끼로 툭툭 끊어버리고 고독과 외로움을 모르는 순박한 농민의 안해로 살아 도 원망하지 않을 저였어요. 당신이 그렇게 내행복과 사랑을 마련해줄 사람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내인생이 이렇게 꼬일줄을 정말 몰랐어요, 저를 저주해도 좋아요..     이 동녀가 마음먹고 당신을 배반하려 한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자세하게 쓰면 오히려 구차한 변명으로 생각되겠지만 꼭 당신에게만 하는 호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절규이기도 하니 끝까지 읽어주면 노여움이 조금 풀릴지… 그렇게 제가 생각하지 않은 때, 생각하지 않은 곳으로, 그리고 생각하지 않던 남자에 게 시집을 가지 않으면 안되게끔 악몽을 꾼후 나는 평생 눈물을 삼키며 살았어요.     내인생의 비극이 막이 열릴 문어귀에서 제가 똑똑한 녀자답게 처신하지 못한 죄값이지요. 일이 그렇게 되니 나는 당신에게 더 무엇을 바랄수 없는 찢어진 녀자가 되였고 수없이 가슴을 치며 짓씹은 후회라도 다 거짓말처럼 들릴거예요.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나서 시들어버린 내사랑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줄로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어 요. 당신이 없는 행복이란 내게 없다는것을 내내 생각하며 이렇게 늙어버렸어요…     운명은 사람을 잘 조롱한다고 하였지만 내가 인생을 잘못 리해한것이였어요. 당신과 밤을 패며 입방아만 찧고 아침을 함께 지어먹었던 그날, 우리가 함께 집을 나설때 옆집에 아주머니가 보았던거예요. 그걸 후에 우리 엄마한테 얘기한후 일이 심상치 않다며 하루빨리 남자를 찾아 시집을 보낸다고 서둘렀어요.     엄마의 견결한 반대에 두언니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갈팡질팡하던 때 내가 그만 실신하게 되였으니 나의 몸과 마음은 물이 몽땅 새여나간 나무통처럼 텅비여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터갈라지고 쪼각쪼각 박산나있어요. 다행히 참한 아들 딸들이 있어 위로되지만 애들이 내 아픈 과거를 돌려줄수 없고 내가 사랑한 남자에게 서 받으려던 잃어버린 사랑을 메꾸어줄수 없으니 나는 그냥 괴롭고 슬퍼요…     왜 그날밤 그렇게 머저리처럼 있었던가요? 사랑하는 녀자를 곁에 눕혀놓고도 혼 자 끙끙거리는 당신의 괴로운 인내를 녀자의 피부로 느끼며 나는 마음의 속옷을 하나 하나 벗어던지며 기다렸어요, 끓고있는 당신의 뜨거운 육체에서 금시라도 폭발할 격정이 봇도랑물처럼 터지리라는 예감에 내살이 포르르 떨리고있었다는것을 몰랐던 가요? 아,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부끄럽고 그래서 더 슬퍼지는것입니다…      더 읽어내려갈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것 같았다. 마른 하늘에 천둥소리, 지진, 때 아닌 안개…나는 머리속이 헝클어졌도 가슴이 답답해 났다. 하늘이 너무 창백하였고 층집과 나무들과 강물이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았다. 나는 강둑에 박아놓은 커다란 돌 처럼 그자리에 굳어졌다. 구중천에 날아가버린 황당하고도 허무한 사랑의 꿈, 나는 연거퍼 담배를 붙여물었다. 담배에 암을 초래하는 물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지골로 되여있다. 너무 여러대를 피워서 입술이 씁쓸해났고 혀바닥이 뻣뻣해 나고 속이 메슥메슥해났다. 동녀가 앞에 있다면 거칠고 거친 욕을 퍼부을것 같았다.     마음을 조금 갈아앉힌후 편지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잘 알수 없는 몽골문편지나 읽는듯이 간신히 한줄한줄 읽었다. 동녀가 왜 나에게 이런 만장지서를 남겨주었는지 모른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옥생각으로 사범생이 되려는 자기 딸에게마저 관 심의 손길을 거두지 말라는 절절한 내심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로서의 리 유인지 변명인지의 전후사연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9.3”에 또 룡정에서 가만히 만날 기대를 안고있는데 팔도에 있는 잘 아는 집의 남자가 놀러왔다는것이였다. 그는 룡정 토성포에서 살때 이웃이 되여 자기 엄마와 언니동생하며 살던 집의 아들이였는데 그때 벌써 로총각이였다. 동녀는 어릴때부터 친척오빠처럼 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들이 팔도로 이사간후 엄마를 따라 팔도에 가서 살구랑, 왜지랑 가져다 먹군하다보니 무랍없는 사이가 되였단다.     남자가 자기네 집에가서 왜지도 먹고하면서 놀러가지 않겠는가고 말을 꺼내자 엄마가 적극 나섰단다. 별로 가고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왜지를 먹어본지 오래다며 기어이 다녀오란다. 그래서 그 남자를 묻어갔는데 가고보니 딴판이였단다. 온마을 사람들이 그집에 모여앉아 있는데 자기가 들어서니 시내새기가 이런 산골에 시집을 오려하니 조련찮다는둥 로총각이 어디서 선녀를 데려왔다는둥 하며 치하하는데는 무슨 감투끈이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남자의 누이되는 아주머니를 끌어 내다 따지니 이미 엄마랑 의논이 된 일인데 모르고 따라왔느냐고 하였다. 지금 한창 약혼택을 내는중이라는 말에 기혼할번 했단다.     동녀가 길길이 뛰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고집을 쓰자 그 누이되는 녀자가 자기 집에 데려다놓고 해석에 해석을 가하다가 정 마음에 없으면 그저 집안망신을 한셈치 고 밝는 날 곱게 집에 돌려보냈겠다고 구슬렸단다. 그래서 저녁도 굶은채 밤새 흐느 끼면서 잠못들다가 밤중에 가슴이 답답하고 몸의 어딘가 찢기는듯 아파서 깨여나 보니 술내가 진동하는 그 남자가 이미 자기를 짓뭉개고 있더라는것이였다. 동녀가 발악을 하며 뿌리쳤지만 일은 이미 돌이킬수 없게 되였다고 한다…그리고 한달후 자 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이다.     …그때만도 처녀가 어떻게 실신했든 한남자에게 몸을 맡겼으면 울며겨자먹기라도 시집을 가야 하던 시대였으니 조금 리해될것같으면서도 이건 무슨 3류소설을 엮는 것같아서 놀림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편지사연은 그러했다. 이제 그녀 를 위해 애석해 하고 분노하고 통탄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동녀가 자기의 인생을 변명하기 위해 녀자의 잔머리를 굴려 황당한 이야기로 연막을 치려하는것 같 지도 않아서 나는 더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누군가는 사람이 과거를 회억하는 기쁨때문에 살아가고 또 그것때문에 고통도 지워버릴수 있다고 썼더라만 내게는 어느것도 아니였다. 우리의 이번 만남은 실로 황 당하고 진저리쳐지는 만남이였다. 인생길은 선회라고 리해해야 하는가?굽이굽이 돌아 올라가기도 하고 또 에돌아 내려올수도 있는건가?     이미 해빙이 된 연집강에 산등을 타고 내려오는 봄바람이 훈훈하였지만 내게는 강물이 다시 얼어붙고 나는 그 살얼음 위를 맨발로 헤매는 환각이 왔다. 인생이란 얼마나 고약한가? 동녀의 딸을 가르치게 될수도 있으니 참으로 내 인생은 지그재그라 할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초라한 내모습이 아닐수 없다.    무릇 사랑이란 유감과 고통만을 안겨준다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더구나 치명적이 아니겠는가? 어긋난 사랑의 갈림길에서 세월은 많이도 비껴갔지만 나의 사랑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었고 내 사랑의 보루는 어디에 있었던가? 어쩌면 숙명이기도 한 우리 의 사랑이라 하겠지만 아름다운 사랑도 이토록 헤여날길이 없는 슬픔이 되는것을 다시한번 새겨주고 간 나의 미운 동녀야, 해저문 인생길은 평안무사하기만 바란다….                                        1963년  9월 ㅡ 1993년 8월                
194    시래기찬가 댓글:  조회:8720  추천:1  2012-12-06
시래기찬가   □ 최균선   해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웬간한 잎은 다 뜯어버리고 하얀 속괭이만 알뜰히 다듬어서 댕그랗게 쌓아놓은 통배추들을 보면서 먹음직스러운 생각을 앞세우기전에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눈길이 쏠리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묵은 세기 90년대 초까지도 가을이면 감자캐기거나 배추장만하기가 사업단위별로 대사로 되였다. 간혹 제비를 쥐여 차례진 배추이랑이 남의것보다 좀 못한듯 싶으면 은근히 왼심이 쓰이던건 세대탓인가? 그래서 지금 세월에는 그때처럼 신경쓸 일은 옛기억으로 물러갔지만 언젠가 읽었던 한국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르며 회심의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물려질 때가 많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시래기를 시적소재로 인간을, 인생의 어떤 면을 철학적으로 시사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차분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어 감칠맛을 돋군다. 가장 오래동안 세찬 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그렇게 버리우는 떡잎사귀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의 의미를 심어주기도 하거니와 더우기는 자기 성찰을 하도록 말없이 편달하고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래기를 두고 가을에 무우를 뽑고나서 김장을 하고 그때 남은 무청을 말린것이라고도 해석한다. 해석이야 어찌 되든 습관대로 배추떡잎을 그냥 시래기라 불러두자. 요는 시에서 련상되는 삶의 현장과 인생자세이다. 먹을 때만 질감을 느끼다가도 하찮게 여기는 시래기를 두고 시를 지은 사유가 참으로 멋지다고 해야 하리라. 어려운 나날을 살아온 로세대들치고 시래기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게다. 나도 밭 갈고 씨 뿌리며 살던 그때 소똥으로 바른 음달진 벽에 걸어둔 시래기가 더 맛있다길래 해마다 생소똥을 바른 벽에 걸대를 만들어놓고 시래기다래를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겨울 한철은 거의 때마다 “시래기국”을 먹었건만 왜 시상을 못떠올렸는지…어렵게 살아야 했던 세월, 겨우나이로 시래기 한가지만은 넉넉하게 마련하느라고 떡잎 하나에도 왼심을 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종종 안겨왔을뿐이다. 제일 먼저 해볕을 본만큼 또한 오래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버림 받고 먹혀버리는 떡잎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을 상기시키며 자기 성찰을 하도록 편달한다는 점에서 시래기는 더욱 의미롭다. 시래기에는 어렵던 그 시절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밀착되여있다. 나는 가끔 시래기같은 어머니의 그 손을 생각하며 끈끈한 비애에 잠기곤 한다. 온갖 번뇌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숙연히 서있는 겨울나무가지같은 내 어머니의 손. 굵은 정맥사이로 주름잡힌 손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그리 가슴이 시려오던지. 그 손 또한 락엽이 되여 추억속으로 깊이 묻혀만 가고있다. 지난 세월, 무조건적으로 베푼 어머니의 사랑을 되씹어보며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건져내게 된다. 시래기같은 생을 살아오시며 자식을 보듬던 어머니가 황천에서 고달픈 꿈을 풀고계실가?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다. 인간이 어머니의 헤아릴수 없는 마음을 짐작할 때 인간의 존재가치가 형성된다고 할수 있다. 어머니와 동고동락을 해왔던 시래기의 미학을 통해서 돌이킬수 없는 자신의 불효도 검토해보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는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해줄뿐만아니라 부끄러움과 회한을 되찾아주고있다. "시래기"'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형상은 령혼의 노래로, 삶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아있다.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겨우내 찬바람 맞는 시래기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인가   시래기처럼 살다가 죽고싶어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그러한 생명관은 슬프다. 시래기같이 살았던 어머니의 영상이 늘 내마음에 머물고 있는것은 그것때문이다. 내가 생명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다 갚을수 없는 덕택이니 보은은 섭리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고생을 숙명인양 삼키며 그렇게 긴 세월동안 인고로 영위해온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키우는것이 바로 인간성회복의 길이 아니랴! 하찮은 시래기를 통해서 삶의 진수를 꿰뚫고 생의 기쁨을 느끼는 그런 인생순응적 삶에서 어찌 악이 나오며 탐욕이 생기겠는가. 이런 생활이야말로 참을 희구하는 눈물겨운 삶의 표본이 아닐수 없다. 서리맞은 배추의 떡잎들은 축 처지여 볼품이 없다가도 따스한 해볕이 내리쪼이면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는 그 끈덕진 생명의욕에 가슴이 쓰리고 안스럽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쌓아놓은 하얀 통배추들을 보면서 그보다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왼심을 쓰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시래기”—우거지에는 확실히 우리 조선족어머니들의 삶의 미학이 푹 배여있음은 잊을수 없으리라.
193    (중편소설) 아름다운 착각 댓글:  조회:11454  추천:1  2012-11-29
 (중편소설)                      아름다운 착각                                                                                          최 균 선                                                                                                  실락자의 봄       세상만사가 조화라더니 내운명이야말로 조화가 아닌가, 그렇듯 모질게도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던 설한풍을 간신히 몰아내고 뒤늦어 깃든 두번째 봄날에 사랑의 꽃나무를 알뜰히 가꾸고있는데 실종된지 8년이나 되는 안해 경이가 어느 구름에서 비방울이 떨어질지 알수 없는 비운을 몰고왔으니말이다.     나는 3년전에 벌써 경이의 사망신고서를 내였었다. 그런데 새안해가 될 리미와 막 결혼하려는 때에 경이의 사망신고를 취소해야 하였으니 신혼차야에 구곡간장을 찢는게 아니고 무엇이냐, 내곁에서 자취를 감춘 기나긴 세월, 지지리도 나를 울리였던 그녀가 저때도 아니고 딱 이때에 살아서 돌아왔으니 일희일비라고 해야 할지?    10년전, 나는 친구안해의 소개로 경이를 알게 되였다. 듣던바처럼 기막히게 매혹적인 미녀였다. 인형처럼 정교한 얼굴에 살갗은 우유빛인데 꿈꾸는듯 몽롱한 눈길, 조금은 파리하고 우울한 기색은 가슴저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다병한 미인을 련상시켰다. 몸매는 물찬제비처럼 매끈하게 쭉 빠졌지만 너무 가냘프고 온몸에 애수가 뚝뚝 흘러서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도전이라도 하려는듯 유별나게 높은 가슴을 쑥 내밀고있어서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은 곡선미속에 미인의 도고함을 과시하고있었다.     그녀는 일찍 부모의 사랑을 잃고 외할아버지손에서 어렵게 자라왔다고 한다. 동정의 닭알에서 여러번 사랑의 암탉이 기여나왔다지만 남자인 내가 오히려 애틋한 동정심으로부터 녀자애를 아껴주고 싶었고 목숨으로 지켜주고 싶었으니 동정의 닭알 에서 수탉이 기여나왔다고나 할가부다. 아무튼 나는 하늘이 점지해준 가연이라 생각하고 즉석에서 맺고끊었다.      그런데 흥소리가 방간이라고 경이를 본 아버지는 별스러운 선견지명을 내놓았다. 사상학의사인 아버지는 계집애가 얼굴이 저렇게 요망스러울만큼 생기고서야 력사가 복잡하지 않을수 있느냐고, 녀자의 과거는 곧 미래이기도 하다면서 그만큼 사연많은 녀자는 믿음성도 없다고 점이라도 친듯이 딱 찍어말했다. 그야말로 되는 호박에 손가락질이였다.     마가 한자 오르면 도(道)도 한자 오르는법이다. 워낙 쇠힘줄인 내가 부득부득 우겨대자 아버지는 마지못해 응낙은 했지만 밤이 길면 꿈자리 사납다면서 내막을 캐여볼새도 없이 총망히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다. 그런데 사랑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오해이던가?결혼후 나는 너무나 담담한 경이에게서 인차 향기없는 모란을 련상하였다. 어쩌면 아버지의 예감이 맞아떨어지는지 몰랐다.     동방화촉의 밤은 서먹서먹해 그렇더라도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그냥 새초롬한 얼굴이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경이는 웃음을 잃은 천사였다. 말하지 않는 그 내속을 어찌 알랴만 나는 무턱대고 신혼의 불붙는 정열로 경이의 마음속 고드름을 녹여 주려고 왼심썼다. 포사를 한번 웃기려고 봉화대에 불을 질러 제후들을 롱락했다는 주유왕이 부러웠다. 만약 경이가 한번이라도 웃을수만 있다면 내사 골목길에 불이라도 확 싸지를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경이의 얼굴을 아직 철이 되지 않아 망울을 터치지 않은 한송이 꽃으로 좋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세괃은 성미를 싹 죽이고 장비바느질같이 서투르나마 경이의 웃음을 창출하기 위한 애정유희도 많이 구상했다. 모두 허사였다. 다행 이도 이성지합의 필연적결과는 속이지 않아서 이듬해에 옥동자를 낳아주었다.     모성애가 녀자를 새롭게 태여나게 한다더니 경이에게 차차 반가운 변화가 생겼다. 고운웃음은 종시 피여날줄 몰랐지만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고 내게도 더없이 곰살갑게 굴었다. 너무 유순했고 얼이라도 빠지지 않았나 의심이 갈만큼 절대순종이여서 그만하면 옥에 티라고 사랑더하기만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변함없는 사랑의 열화속에 살을 섞으며 사노라면 그녀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봄이 오고 웃음꽃도 만발할 날이 있을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만큼 나는 성애에 들어가서는 경이가 고달파할 정도로 극성을 부렸고 왕후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는 나를 두고 어머니가 무골충같이 색시버릇 잘못 굳힌다고 야단이였지만 나는 오히려 더 엎어졌다. 미인안해를 얻으면 단명하다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의 결혼생활의 전부의 내용은 미인안해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그속에서 나도 이성지합의 락을 누리는것이였다.      내가 하도 귀중한 꽃병을 다루듯 매사에 극성을 부렸기에 우리의 신혼생활은 고요한 늪처럼 평온했다. 하긴 버젓한 남편으로서 전혀 웃지 않는 안해의  얼굴을 마주하는것보다 더 속상한 일이 없었지만 얼음장속에서도 해동의 봄물이 흐르지 않던가, 내심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렇게 죽을둥살둥 모르게 경이를 사랑했던것이다. 사랑의 계산식에는 더하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렇게 출중한 인물이면 돈많고 지위높은 사람을 톡톡 튕겨가며 고를수 있었 으련만  미남도 아니요 가진것도 없는 남자에게 일생을 기탁해준것이 은근히 고마워 서 더하기에 더하기 사랑만 샘솟았는지 모른다. 나는 바보같이 경이를 위해서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다고 아들애가 돌을 잡던 그해 어느날 아침 슬며시 집을 나간 경이가 종시 돌아오지 않을 줄이야, 그렇게 귀애하던 아들마저 내버리고 훌쩍 떠나갈 독종일줄은 정말 몰랐다. 하루아침에 안해를 잃은 나는 미칠것 같았다. 실종신고를 낸후 몇년을 두고 공안국에서 확인해보라는 녀자시체란 시체는 다 보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속에 잦아들었는지 경이는 그냥 종무소식이였다. 가슴찢기는 하루하루의 사연을 일기로 적었다면 아마 애정3부곡은 되였을것이다.                                            운명의 숨박곡질       그동안 수십번이나 가택수색을 하듯이 집안을 발칵 뒤집고 책장속도 몇십번이나 뒤져냈지만 이렇다 할 선색을 찾지 못하다가 집을 바꾸게 되여 낡은 침대를 마스면서 비자를 받지 못한 한국려권과 웬 려행지도책이 나졌다. 지도에는 광동까지 색필로 붉은선이 그어져 있었고 한귀퉁이에 (불산) 두글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어떤 직감의 충동하에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무작정 광동으로 떠났다. 그러나 감자밭에서 바늘찾는격으로 반년남아 고생만 죽게하고 안해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려비도 다떨어져 날품을 팔며 근근득실하다가 우연히 만난 고향친구를 따라 청도에 와서 한국기업의 잡역으로 취직하였다. 차차 나의 내속을 알자 사장이 정식직원으로 써주었고 몇년후 시장개척부경리로 발탁시켜주었다.      무정세월은 모든것을 망각의 푸른 이끼속에 지워버린다지만 나는 내내 경이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조화많은 내운명속에 두번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한 녀자가 불쑥 뛰여들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리미라는 청순하게 생긴 처녀가 비서로 들어왔던것이다. 매일같이 상종하면서 서로에게 어떤 자기감응이 있었던지 우리는 얼마후 친해졌다. 하지만 애숭이 젊은이들처럼 그렇게 서뿔리 염정에 빠져들어 죽자살자 할 그런 심리여유는 없었다.     나이도 들고 아이도 커가는지라 나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내내 분촌있게 대하면서 사업적인 일이 아니고는 그 이상으로 가까이하지 않기로 작심했던것이다. 그런데도 리미가 집요하게 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나로 말하면 호박이 절로 넝쿨채 떨어진격이였지만 그냥 경이의 그림자를 느끼다보니 덥석 받아안을수 없었다.    어느 비오는 날 저녁, 그가 나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내가 말없이 우산을 받아 들고 사무실문을 나설 때 리미도 따라나섰다. 숙소까지 묻어설 잡도리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쏘파에 걸터앉았다. 역시 그녀가 비슷한 대화의 계주봉을 먼저 내밀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걸어가려 하지요?》 《리미, 난 너보다 열살이나 년상이고 아이두 있는 나그네야, 넌  아직 너무 젊고 예쁜데 너로서의 행복이 따로 있을거 아니야, 나를 자꾸 딱하게 굴지말아주렴, 그러지 않아도 죽을것만같은데…》 《지나간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건 사내답지 않아요. 자기 심장을 속이지도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아요. 더구나 군자연하는 자세로 나를 거절하지도 말구요. 난 경요소설에 홀린 그런 애숭이소녀가 아니라요. 그리구 감각에 떠밀려 갈팡질팡하는 정이 헤픈 모던껄도 아니구요. 난 진우씨의 인생그라프와 마음의 골짜기를 다 훓고있고 나의 선택에도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어요. 나 진우씨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요.》 《어쭈, 이 엉뚱한 아가씨야, 한국물이 잘들었네. 내가 무슨 네가 가지고 싶으면 가지는 물건이라구 포기고 아니고야, 나 참, 한국 련속극들에서 그런말 들을때면 정말 우습더라.》    말은 가볍게 받아챙겼지만 속으로 웬간히 당황했다. 지금 계집애들의 감각지상주의를 조금 경험해보기도했지만 이런 막밀어부치기에는 왼고개가 탈리지 않을수 없었다. 《우스워도 이 리미아가씨는 절대 포기안해!이렇게 꽉 잡아둘거야, 알아서 하라요.》     리미는 기관총쏘듯 단숨에 말을 내뱉고는 어느새 나의 가슴에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나도 본능적으로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작은 입에서 굵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마 내가 어망결에 숨이 막히도록 그러안았던 모양이다. 나는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며 그녀를 밀어내며 길이 탄식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러는 그녀가 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때아니게 일찍 시들어버린 사나이가슴에 청춘의 불길을 지펴주는듯 싶어지면서 은근히 기대되기도 했던 극적장면이였다. 리미는 얼굴이 아주 잘생긴것처럼 속창도 알짜배기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도 투철하게 보아냈고 무엇하나 빗보지 않았다. 세워놓고 눈빼먹을 장사판에서 판단도 빨라서 경험을 쌓았다는 나로서도 혀를 내두를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비서로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찾아도 못찾을 당찬 처녀였고 유능한 사업형이 면서도 현숙하고 다정다감한 녀자였다.    녀자들이란 천성적으로 뛰여난 관찰력이 있는걸가, 그리고 본능적으로 부드러운 심정을 갖추고 있는걸가? 하는 생각을 리미에게서 계발받았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였다. 그녀가 일상적인 말을 할 때에도 그렇게 하는것이였다. 사실 나는 녀자들이 부드러우면서도 심오한 말을 얼마나 잘 하는가에 대해서는 경험결핍자였다.     리미에게 매료되면서도 나는 처음엔 제딴에 아주 순결한 인간애에 만족할뿐이라고 자긍하고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리쳐버릴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펄쩍 놀래군하였다. 세상에서 기침과 가난과 사랑 세가지를 숨길수 없다더니 사랑이야말로 첫째로 숨길수 없는것이였다. 리성은 단속의 채찍질을 하자만 남자의 야성적인 본능은 야릇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서히 내육신을 뜨겁게 달구고있었다.      제아무리 결백한 넋이라도 아릿다운 이성과의 오랜 교제에서 언젠가는 련인만이 갖게되는 신비스럽고 격렬한 감정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가뭄이 든 밭에는 작달비가 제격이듯이 멍이든 마음에 수요되는 녀성의 사랑과 애무는 아무도 말릴수 없는 욕구인것이다. 리미가 늘 내곁에 있으므로해서 어둡고 황페하던 나의 정신가원에 꽃피고 산새우짖는 두번째 봄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즈음 제나름의 애정론으로 자신을 변호하고있었다. 나는 사람이 일생동안 오직 한번만 사랑해야만 한다는 신조를 그리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사랑합니 다》를 껌처럼 씹는 빙충맞고 야비한 인간도 질색이다. 이른바 사랑의 차수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사랑의 용량은 한사람의 참된 심령의 용량이 아니겠는가?만약 한사람의 마음을 심곡이라 한다면 한차례 사랑은 한 갈래의 강물과 같은것이고 여러차례의 애정은 수많은 파도와 같다. 한사람의 마음이 모래톱과 같다면 한차례 사랑은 다만 한가닥 작은 홈채기만 낼것이요 여러차례 애정은 수많은 물거품에 불과할것이다,    성패로 전반 인생을 론할수 없듯이 성패로 사랑을 론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기실 잊지 못하는 사랑이란 바로 실패한 사랑으로서 한생을 두고 미련이라는 무거운 보따 리를 지고다닐것이고 만약 자기가 싫증난것이라면 곧 잊고 새로운 추구를 할것이다. 사랑은 한사람의 인생마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성공한 꿈만 꾸었다고 장담할수 없다.    사랑이냐 아니냐에 금을 긋게된다면 좀 너그러워서 안될것 없다. 그러면서도 인생길에 있을수 있는 종종의 아름다운 조우를 보류할 권리가 있는것이다. 항구의 풋사랑같은 잠간의 해후이든 백년을 기약한 장구한 얽힘이든, 그리고 늦게 만난것을 한탄할 행운스러운 인연이든 잃어버린 녀자에 대한 끈끈한 정이든, 서로 용서못하는 오해이든 사소한 분규이든 사랑에서 출발한것이라면 모두 관용의 대문안에 일이다.    살아서 펄펄 뛰는 사람에게는 애정생활이란 불멸의 기념비가 아니라 흐르는 물결과 같은것이다. 그러기 우리들은 서로 지난날의 한단락의 애정생활에 숨겨진 아픈 사연을 자백하고 철저히 망각하도록 대방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은 리미가 나에게 계발해준것이기도 하다.   사랑에 정의를 내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한사람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마음이 아파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깊고 진정일수록 거의 부성애나 모성애 비슷한 감정이 끼여든다는것을 지성적인 사람이면 절실히 느겼을것이다. 그저 성적 으로 반했다면 그것은 동물의 발정과 다를배 없으며결코 사랑때문에 마음이 아파하지 않을것이다.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여서 격렬한것 같지만 깊이가 없으며 원천이 없는 시내물처럼 미구에 고갈되고말것이다.    사랑이란 이성세계의 탐험으로서 새록새록의 발견이 가져다주는 희열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다. 바로 그 희열이 이성의 신변에 정착하게 하며 가정에 안녕을 가져다준다. 지금 리미가 그것을 안겨주고있다. 그러나 사랑은 렵기도 아니고 려행도 아니며 더구나 점유로 끝나는 등산과 같이 후회없이 내리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훌륭한 사랑은 서로의 해탈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랑의 자유를 람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흔히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떠난다고 말들 하는데 기실 아름 다운 거짓말이다. 그러기에 경이가 나를 사랑하기에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진통제라더니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그렇게 이갈리게 밉게만 생각되던 경이가 지금은 마음의 뒤뜨락에 묻혀지고 분하다는 마음도 색바래여서 그저 회색바탕우에 새겨진 그림자를 보는 그런 느낌으로 가끔씩 그녀와 더불어 보내버린 청춘을 회고하게 되였다. 하지만 사랑의 나무는 쉽게 심어지는것도 아니고 간단히 뿌리를 뽑을수도 없다는것을 내가 배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버리고 만사가 엉뚱하게 번져진후이다. 사람은 항상 뒤늦게 배우고 경험선생은 언제나 꿩구 어먹은 자리에서 강의해 주는법이던가,      경이가 존재하지 않아도 지구는 잘만 돌아간다. 나와 리미사이에서는 화제가 샘물처럼 솟아났고 내삶과 희망이 새로운 빛갈로 물들어갔다. 비록 한사람이 시련의 강을 건너서 늦게 만났지만 우리는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녀가 된셈이다. 어느날, 함께 광주에 갔다가 호텔에 든 밤이였다. 늦도록  이야기하다가 가서 자겠노라고 일어서는 그녀를 뒤에서 와락 그러안았다. 한껏 성숙한 처녀의 젖무덤이 두손에 가득 넘쳐났다…나의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기다릴것 없다는듯 어느새 껍질을 홀랑 벗어버리고 알몸이 된 리미의 옥체가 리성을 송두리째 뺐다. 리미의 아름다운 가슴에 얼굴을 묻은 나는 오로지 성에 허기진 넋뿐이였다. 뜨거운 불덩이가 속깊은 곳을 태우는 작열이 정염의 불길을 지폈는지 리미도 고운신음을 물고 몸부림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였다. 고통과 불행의 페허우에 세워준 사랑 탑에 어찌 감격해 하지 않으랴!사랑!이 얼마나 감미로운것인가, 어쩌면 삶이란 또 수없이 반복되는 성애의 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새로운 삶의 내용을 쓰고있다고 생각하며 미친듯 열정을 달구었다. 섹스가 사랑이라는 잠옷을 입고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행위로 착각되는 법임에랴! 이제 밝는 날 마주앉으면 서로 머쓱해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젊은 생명력의 확충을 만끽하며 서로를 즐기는것뿐이였다. 이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남녀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꽃도시라더니 그야말로 그윽한 꽃향기가 실린 밤바람이 별빛과 함께 방에 흘러들었다. 그런 향기속에 남녀의 포옹은 사랑이상의 의미를 가지고있다. 봄밤은 깊어가는데 열정은 조을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애무하며 서로의 마음도 보듬어 주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두번다시 얻을수 있은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나는 드디어 리미와 결혼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녀도 나의 불쌍한 아들 진표의 좋은 새어머니로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고 가슴을 밀착시키며 개간된 처녀지에 행복의 새씨앗을 뿌려가는것이다. 그러나 재미난 곳에 늘 범이 나온다고 내가 망각속에 그 모든 한과 눈물을 겨우 묻어두고 결혼을 준비하는 나날에 난데없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얼핏 보아도 눈에 익은 글발이였다. 환한 대낮이였건만 나는 저승사자의 최후통첩이나 읽는듯 떨리는 손으로 겨우 봉투를 찢었다. 거의 단편소설원고에 해당한 만장지서였다.          ㅡ안녕하세요?저 경이예요. 너무 놀라지 않았는지요?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쓸 자격이 없는 저인줄 알아요. 지난 8년동안 당신이 저를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망령으로 여겨주길 바랐어요. 당신은 두말할것없이 나를 세상에서 더없이 랭혹무정한 몹쓸년이라고 저주했을거예요. 달갑게 받겠어요. 그래요. 제가 한일은 저로서도 량심적으로 용서할수 없는것이예요. 다만 정에 약한 녀자의 첫사랑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것만 알아주세요.     이제와서 할말이 없지만 생각되는것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하든 당신과 내아들에게 입힌 상처와 손실은 미봉할수 없는거예요. 이제 저승에 가서 다시 당신의 곁에 갈수 있다면 저를 하녀로 받아주세요. 진우씨, 난 여러번 당신의 눈빛에서 당신이 저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걸 직감했어요. 제가 당신곁을 떠나 조용히 말없이 사라져버리기로 마음먹은 리유도 바로 나의 말못할 과거와 태산같은 감정빚 때문이였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갚을수 없는 빚이야말로 감정의 빚인가바요……     유식한 멍청이는 무식한 멍청이보다 더 심한 멍청이라더니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멍청인가 싶다. 나는 편지를 읽다말고 얼이 쑥 빠진 멍청이처럼 경이가 걸어왔을 지나간 시공간속을 환각속에서 방황했다…                                     꽃은 누구를 위해 피였는가,       딸은 제어머니의 운명을 답습하기 일쑤라더니 경이도 뛸데없이 어머니의 인생길을 답습했다. 경이의 어머니는 자기 미모와 다혈질적인 그 기질때문에 처녀때부터 뒤소리를 달고다닌 녀자였다. 그러다가 가다오다 만난 남자와 결혼은 했지만 늘 뜬 구름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경이도 실은 남편의 씨앗이 아니였다. 마침내 그녀는 어린 딸을 남겨두고 영영 떠나가버렸다. 후에야 안일이지만 그때까지 그냥 그리워 하였던 자기의 첫사랑과 만나 함께 도주해버린것이다.    그들은 수만리나 떨어진 광동 불산속의 절에 가서 이승의 마지막 정을 다 불태우 고 함께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것도 희한하게 두몸이 한데 친친 감긴채 수면에  떠올라 기문을 남겼던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한이 되여 한짓이였는지 그네들 두넋만 알고있을 일이였다.      그후 경이의 아버지는 정신타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이지는 순간까지도 경이를 자기의 피줄로 알고 매정하고 불충한 안해의 뒤를 쫓아가고말았다. 그런데 피는 못속이는 법이라 할지? 운명이 미리 써놓은 인생극본이라 할지, 경이도 커서 드디어 제어머니의 운명을 답습하게 될줄이야. 경이는 워낙 머리가 남달리 좋아서 공부를 잘했지만 경제난에 시달리는 외할아버지의 고집대로 대학꿈을 포기하고 지구사범 학원에 지망하고말았다. 역시 운명신이 쓴 경이의 인생각본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경이는 자기를 가르친 문학선생을 사랑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곧 중년이 될 남자였고 꽤 큰 딸도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손꼽는 수재로서 박학다재하였고 한창 풍도가 넘치는 멋진 정열의 시인이기도 했다. 경이는 숙명처럼 자기 선생님의 그 멋과 뜨거운 정열에 매료되였던것이다. 그는 경이만이 아니라 조숙한 녀학생들이 은근히 따르는 우상이였다.     그렇게 점잖고 우아했던 남자가 본의 아니게 한 소녀의 감정의 건반을 세차게 두드렸고 그로해서 아직 꼭 닫겨있던 그녀의 사랑방을 기둥채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미구에 신들린것처럼 소녀가 살며시 열어놓은 사랑방속으로 서서히 끌려들 어가고 말았다. 교정은 에덴동산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회를 타서든지 만나기마련이다. 그들은 만나면 약속한듯 침묵속에서 몇시간이고 앉아있을수 있었고 경이가 스승으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여기고 기대여 울때 그는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도 한창 멋모르고 덤벼치는 녀자애를 인간적으로 좋아했지만 결코 본분이 무너지는것을 원치않았고 덕성과 명예가 부서지는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량심과 책임감으로부터 가정을 버릴수 없다는것은 무엇보다 명백했다. 그러나 경이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파소녀들의 그런 무서운 정애로 끈덕지게도 추구했다.    사랑에 갓 눈이 뜬 처녀애들의 직감은 무서우리만치 예리하고 관찰도 세심하다. 경이가 바로 그런 직감과 사랑의 눈으로 시간마다 교묘하게 선생님을 훔쳐보면서 많고 많은것을 읽었고 또 자기가 읽은 그 내용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듯 유능하고 경험많은 박사처럼 강의에 막힘없이 침착하고 당당하게 자가의 해박한 지식을 펼쳐 보이는 자신감속에서 얼핏얼핏 드러나는 고달픔의 정체는 무엇일가?열림과 닫힘의 기묘한 부조화와 열정과 허무가 교차하는 미묘한 표정은 어째서 나올가? 물론 경이 혼자만이 느끼는 리성과 정감의 뉴앙스였다.      경이자신은 자기 사랑의 감정이 그동안 받은 그 고마운 물심량면의 관심과 배려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고 고집했지만 백설 (그 선생의 필명이 백설이였다)은 어쨌든 사전에 꾸민 불명예스러운 감정교역과 같이 황당하다면서 내켜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는 철저한 도덕가였고 엄연한 스승이였다. 그럴수록 심혼을 달군것은 녀자애였다. 그녀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엉뚱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 세상에는 열려진 녀성의 신비의 문앞에서 무릎꿇지 않을 군자란 없다고 믿는 그녀 자신의 말대로 한다면 류행 소녀애들의 유치한 불장난이 아니라 운명을 내건 비상한 그런 사랑이였던것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사랑계산식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던 은밀한 정을 용케도 감춰온 긴5년이 지나가고 마침내 그녀는 학교문을 나서게 되였다. 이젠 가슴을 조이면서 선생님의 사무실에 새여들 필요도 없었다. 사제간에 지켜야 할 법규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무서워할 일도 없고 낡은 인습이 내리는 불륜이라는 평판도 두려울것 없었다.     숨기고 감추고 쌓이고 포개졌던 정한이 드디어 화산처럼 폭발해 세인을 깜짝 놀래워도 좋았다. 그저 사랑하는 남자와 녀자가 남았을뿐이다. 나차이가 현격하면 어떠랴. 지금 세상에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사는 애젊은 녀자가 어디 한둘인가?다른 녀자애들은 돈잎에 순정을 말아먹기가 일쑤이지만 경이ㅡ자기만은 순수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는터이다.     그렇게 정열에 넘친 멋진 남자, 감정은 늙을줄 모르며 사랑은 퇴직을 모른다고 말하던 남자가 아닌가, 또 사실 선생님은 나이 보다 너무 젊어보이고 어느모로 보나 쨍그랑 소리가 나는 분이다. 불가사의한 일이란 없이 막되는대로 번져가는 이 시대 에 단 직업도덕감에 얽매여 자기를 찾지 못하고있는 불쌍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경이는 그래서 더구나 숭배로부터 샘솟은 자기 사랑이라고 설교하고있었다.     경이는 고향에 가지않고 선생님의 숨결이 흐르는 K시에 영원히 남아있으려고 마음먹었다. 돈 만원쯤 어느 교장의 옆채기에 찔러주면 이 도시의 어느 교단에 오를수 있었지만 그렇게 구지레하게 놀고싶지 않았다. 일단 담임을 맡아 일이년쯤 약삭 빠르게 돌면 만원 하나 쏙 빠져나온다는 선배들의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했지만 혈혈 단신이나 다름없는 그가 어디서 목돈을 마련하랴,     사랑하는 자기 님은 고향에 돌아가서 수속을 제대로 밟고 훌륭한 인민교원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교직도 사기밥통인데 어느놈의 배를 채우라고 아까운 돈을 망탕 밀어넣는단말인가, 그렇게 옥생각을 먹고 결단을 내린 경이였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광고회사에 취직하였다. 급한 돈부터 좀 벌어놓고 백설씨가 기어이 교원이 되여야 한다면 아까운대로 돈을 먹일 타산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 사랑책의 첫페지에《즐거워라!》를 썼지만 부록에《괴로워라!》를 써야 한다는것을 안것은 졸업하고난 뒤였다. 그저 졸업하면 만사대길인줄 알았던 그녀는 괘씸한 선생님이 자기를 그냥 울릴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말로 자기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느낄때 참인생이 시작되였다고 기뻐했으나 뒤미처 고뇌의 수렁에 빠지게 된것이다. 잘 만나주지 않는 선생님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비록 회답이 올가말가했지만 경이로서는 그 이상으로 사랑을 할수가 없었다. 이젠 모교에 들어설멋도 없고 더구나 선생님의 사무실에 살짝 새여들어갈 리유도 없었다. 전화도 감히 걸지 못하고 그저 편지지만 죽어났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엇이 바쁜지 회답도 잘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되고 사랑의 편지는 곧 결말이 없는 서정시가 되는법이라던가, 경이는 이밤도 자취방에서 숨벅찬 편지를 썼다. 번마다 새로 시작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이어서 쓰는 편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이어가는 대화가 좋았다. 그래서 안녕히도 절대 쓰지 않는다.     …돌아서서 가없는 하늘과 넓은 대지사이에 조그마한 점으로 서있는 외롭고 무력한 저를 느낄때마다 전 먼저 선생님을 생각해요. 오색령롱한 희망과 꿈과 발발하는 야망이 저멀리 아득한 지평선으로 흘러가버릴가 두려워요. 이러는 제가 싫어요. 내 작은 가슴엔 하소연과 탄식만 남았어요. 선생님 말처럼 이 모든것이 시작만 있다가 훌쩍 깨져버리는 허황한 꿈이란 말인가요?한순간의 신기루란 말인가요?     선생님은 이 시대엔 오직 계산된 감정이 있을뿐이지 사랑의 기적은 없는법이라고 했지요?아니예요. 나. 이 경이가 사랑의 기적을 쌓아서 온세상에 자랑할거예요!선생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저의 인생마당은 웃음꽃도 없고 기쁨의 잔물결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였고 동토대였으니까요. 선생님이 바로 행운스럽게도 만난 나의 유일한  오아시스예요. 감로수가 흐르고 행복의 숲이 무성하는 오아시스이예요.     너무 방종하다고 핀잔해도 두렵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에게서 한녀자애가 응당 차지해야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선생님은 스승으로가 아니라 한남자의 신분으로 말없이 가르쳐주었지요. 물론 선생님의 잘못은 조금도 없어요.     아무튼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기전까지는 저는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자신을 맡겨볼가, 고요한 작은 저수지처럼 소리죽여가며 한생을 살아볼가, 하고 생각하였어요. 그러나 선생님을 알고부터는 잃어버렸던 내인생에 대한 신념과 랑만을 되 찾았어요. 그보다 더 소중한것은 남자의 진실한 이미지를 알았고 그것이 발산하는 거대한 추진력을 가슴으로 느낀것이예요.     저의 인생항로에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외에는 딴길이 없고 내사랑의 동산밖에는 엉겅퀴만 무성하다는걸 예감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 늪에 뛰여들어 나에게만 속하는 대안에로 노저어가기로 목숨을 내걸었어요. 사랑은 애꾸눈, 미움은 장님이라지만 이 경이는 장님이 되고 바보가 되여도 좋아요. 선생님이 곧 제 인생항로의 등대예요. 사랑의 심연에 빠진 저에게는 해도 달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한껏 좁아진 선생님과 나만의 공간이 있을뿐, 이미 맨발이 되여진 마당에 물을 두려워할가요?     저를 어린애로만 보지 말아요. 처음엔 자신도 기약없이 불쑥 뛰여든 사랑에 불안하고 당황했어요. 아지랑이같은 꿈과 동경속에 (꿈과 동경은 그렇게도 비실체 적이여서 흔히 물거품이 되기가 십상이라고) 귀에 못박히도록 말씀했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선생님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소원이 마술사의 손에서 굴러다니는 불덩이처럼 내작은 가슴에서 나날이 커가고있는것을 말려낼수 없었어요.     사랑은 생명의 성스러운 첫연소가 아닐가요? 처녀애들이 사랑에 깊이 빠지면 으례히 겪게되는 애틋한 번민, 때도없이 솟구치는 눈물, 쓰거운 단맛, 아름다운 괴로움과 슬픔이 내작은 가슴을 꽉 채워서 선생님을 마주하면 그냥 그렇게 울고싶었던거예요. 고독하고 외로운 소녀가 흔히 뜨거운 사랑독에 잘 빠진다더니 아마 저를 두고 한 말같아요. 사람이 그리워 울면서 자란 나, 그저 속절없는 정많고 눈물이 많고 가진것이란 선생님에 대한 숭배와 애모뿐이였던 풋병아리같던 소녀, 그게 저였지요, 지금은 아네요. 선생님의 이 경이는 인차 멋진 숙녀로 탈바꿈할테니 지켜보세요.     인젠 알았죠?그런데 여보세요!(이렇게 불러보는 제 얼굴이 얼마나 빨갛게 달아 오르고있을가를 좀 상상해 보세요.) 아,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혼신을 다바쳐 노를 저어왔건만 대안은 보이지 않아요?왜 뽀얀 안개만 감돌뿐 빛이라곤 한가닥도 없나요?내 마음의 등불은 언제 밝혀지나요?     나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날마다 눈물로 하소하고있어요. 선생님은 이슬머금은 한송이 순정의 꽃이 불쌍하지도 않아요?이러다가 자칫 스러져버릴 내희망의 꽃을 살뜰하게 일구어줄 마음이 정녕 없나요?사랑해주세요.《경이야!》하고 불러보세요. 그러면 제가슴에서 터져나오는《자기야ㅡ》하는 절규가 메아리쳐갈거예요. 저는 때때로 선생님에게서 제가 그렇게 목마르게 동경하던 부성애같은 감정도 느끼며 혼자 감동에 울기도했어요. 얼마나 비장하고 어마어마한 사랑인가요? 이런 사랑은 나, 경이만이 할수 있는거애요.      이제 우리 손잡고 사랑속에서 꽃피는 인생의 봄을 즐기고 우리 둘이 가꾼 사랑의 열매가 주렁질 인생의 가을을 흔상할 때 나 경이는 너무 행복해서 기절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인생의 막바지에 오를 때 제가 당신을 부축하면서 걸어간다면 우리는 헛되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겠지요. 이것이 저의 숙명적인 인생그라프라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이 경이가 왈칵 울어버릴테니까. 녀자의 눈물은 말없는 웅변이라는걸 잘 아실 당신이 아닌가요?                 …경이가 이렇게 결말없는 편지를 수없이 날려보내도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락심할줄 모르는 경이는 그냥 편지를 이어간다.      ㅡ너무도 하늘이 맑아었요. 너무도 하늘이 맑아서 슬퍼졌던가봐요. 눈물이 나온걸 보면, 눈물을 흘리고나니까 제마음도 하늘처럼 맑아진것같아요. 이제부터 맑은 하늘을 볼때마다 맑은 하늘이야말로 선생님이 맑게 웃으면서 힘내라고 보낸 선물처럼 생각할래요. 그런데 또 갑자기 맑던 하늘이 시꺼멓게 흐려지면서 비가 쏟아지네요. 선생님 창가에 흐르는 비물이 다 흘리지 못한 저의 눈물이라고 여겨주세요. 부디 매정하게 닦아버리지 말구요.     …홀로 세방에 앉아있으면 너무너무 외롭고 슬퍼요. 이런 밤이면 하늘에는 별하나 유별나게 밝게 속삭여요. 저 별이 선생님이 아니고 누구겠어요?별을 바라보노라면 안개속같은 혼미함이, 꽃밭같기도 한 현란함이, 별같기도 한 찬란함이, 파도 같은 격렬함이 선생님 숨결과 뒤섞여 휘감기며 소용돌이치고있어요.     소녀같은 감상이라고 웃지말아요. 나는 대낮에도 선생님의 꿈을 꾸고있어요. 선생님이란 존재때문에 아침은 항상 보라빛으로 밝았고 낮은 장미빛으로 물들었고 밤은 달과 별무리로 장식되여있어요. 내운명이 구멍이 숭숭한 우산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기워주는 손이 되여 주셔야 해요? 아니면 나 못살테니까요.    언제면 만나주실지 알수 없지만 세월의 흐름에 서로를 떠내보내지 말자요, 시간속에 허물어질 저의 사랑탑이 아니니깐요. 터무니없는 고집이라고 하지 마시고 서로 생각하는 기쁨으로 새날을 기약하자요. 선생님생각에 너무 힘겨울 때 지꿎은 그 생각을 잠시나마 떨쳐버리려고 눈을 꼭 감아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잠을 청하기도 무서운 일이예요. 꿈속에서 그냥 울다가 님이 탁 밀쳐버리면 울면서 깨여나고 깨여나서는 그냥 울어야 하기때문이예요.    그러나 랭장고문을 쾅 닫으며 먹어서는 안돼! 하고 으름장을 놓을 때 그게 무얼가?금하는 음식일수록 구미가 더 당기듯이 잊어버리려고 애쓸수록 놓치기 싫은 마음, 추억의 불씨로 솟구쳐 정감의 사르개를 활활 태운다구요.    ㅡ선생님의 뜨거운 숨결이 방불히 들려옵니다. 저의 가슴속에 선생님께서 살아계시여 숨소리는 그냥 울리고있습니다. 저는 학교때 방학이 제일 두려웠어요. 긴긴 방학간에 선생님이 나모르게 어데론가 훌쩍 사라져버릴가봐서요. 력서장을  뜯으면서 난 어쩔줄 몰랐어요. 지금 가까이 살면서도 볼수 없으니 더 보구싶어요…울고싶어요.      그렇듯 황홀한 사랑에 혼신을 맡기고 있음에도 저의 마음속에 이름할수 없는 애수가 차분히 깃들어 눈물이 샘처럼 솟는것을 선생님은 해석할수 있나요?더없이 숭고한 사랑의 표식이 때에 따라서 억누를수 없는 애틋한 슬픔이 되는때가 있다는 것은 녀자애들만의 수수께끼이지요. 언젠가 선생님이 이 신비한 수수께끼를 풀어주기를 기다릴테예요…     …어느새 또 귀뚜라미 구슬프게 울어싸는 서러운 가을이 왔군요. 선생님, 정다웁던 시내물속에도 가을의 찬기운이 흐르네요.  불러봐도 울어봐도 대답이 없는 나의 무정한 선생님! 졸업하고 선생님곁을 떠나 두번째로 맞는 이 가을은 그리움때문에 참을수가 없어요. 단풍은 불타다못해 저렇게 검누렇게 보기싫어져가고…     불치의 사랑병도 세월속에서는 숙어든다고 하지만 내사랑은 영생의 상록수래요. 밤마다 이맘때면 우썩 키돋움하는 내그리움의 꽃나무를 뿌리채뽑아 체념의 칼로 오리오리 찢어서 한숨으로 삶고 짓이겨서 이렇게 엷은 종이장마다에 바르노라면 밤하늘에 오락가락하는 저 구름처럼 내 속절없는 편지들도 흘러가버리고 영영 소식이 없을가봐 가슴이 미여져요.     베여버리면 더구나 무성하게 자라서 온몸을 짓눌러 숨도 못쉬겠기에 이렇게 편지에 덜어내야 하고 그 덜어낸 사연들은 미처 보내지 못하고 서랍속에서 박정한 주인에게 침묵의 항의를 하고있지요. 림대옥이 울기위해 가보옥의 신변에 왔다면 저는 운명적으로 선생님 한분만을 사랑을 위해 이 세상에 온것이 아닐가요? 선생님에게는 저의 사랑이 인생의 삽화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인생의 전부이며 삶 그 자체예요.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믿으니까요.    ㅡ선생님, 저 하늘에서 깜박이던 별하나가 영문없이 사라져버리고나면 제마음이 평온할가요?내사랑이 끝끝내 용납되지 못한채 묵묵히 고통을 짓씹어야 함을 처음부터 알기에 여태 제나름의 소망을 안고 이 슬픈 계절도 용케 넘겨왔겠지요.    선생님, 지금 나는 그런 황이든 슬픔과 속절없는 미련때문에 내마음 그대로가 참사랑이였음을 믿으면서도 더는 지탱하기 어려워졌어요. 정말 사랑의 극치가 체념이 되는거나 아닌지, 혜지로 빛나는 선생님의 눈에 넘치던 미소도 이제 겨울이 오면 가을을 잊고 봄이 오면 또 겨울을 잊듯이 그렇게 조금씩 잊을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먼곳으로 훨훨 날아갈거예요.     이럴때면 선생님이 우스꽝스레 곡을 붙이며 느러지게 읋던 “청산별곡”이 생각 나고 그것을 내좋도록 “사랑별곡”으로 고쳐읊어요. 열번, 스므번…         살어리 살어리랏다. / 사랑애 살어리랏다./그림움이랑 눈물이랑 먹고 / 사랑에 살어리랏다. /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내님이여. // 울지마, 울지마 비둘기야 /         마당앞에 구구구하는 비둘기여./ 너처럼 시름많은 나는 /자나깨나 우니노라. /야속해 야속해 야속한 님 어서오세요 얄라 // 이렇게 저렇게 하여 / 낮은 어정쩡 보냈지만 / 편지도 전화도 없는 / 밤에는 또 어찌하리까 / 누구를 맞히려던 살인가 / 쥬피터의 살은 아니네 / 맞지도 맞히지도 못하고 / 혼자서 우니노라.    이렇게 나혼자 외우는 사랑시는 끝나는듯 그냥 이어지고 그리움은 갈수록 가슴에 씨앗처럼 알알이 차네요. 만약 저 하늘에서 희미한 별찌 하나 떨어지면 (믜리도 괴리도 없을)테지요.    …언젠가 사랑은 영원히 미완성인것을 사람들이 완성으로 만들려한다고 하셨지요. 유한한것을 무한으로 만들려는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러나 저의 사랑은 저의 생명의 불꽃이 꺼져버리는 순간까지 타고야 말거예요. 목숨을 건 사랑은 청춘의 정열과 신념의 기름을 한방울도 남김없이 불사른 뒤에야 꺼지는법. 이것이 사랑의 운명이라고 하겠지요. 인간의 본능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왜서 자신의 모든것을 기꺼이 내바치려 하는데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혼자 속썩야 하나요?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사랑때문에 죽을수도 없는 어려운 인생의 짐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저는 돈이 흩날리고 순정이 팔려가는 어지러운 이 시대의 풍조에 둥둥 떠가는 그런 허랑한 녀자애가 아니예요.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저는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을 진정 사랑하기에 지칠줄은 모르고 살아요. 진실한 령혼과 령혼, 뜨거운 가슴과 가슴의 운명적인 만남이 허무하게 무너진다는것은 죽기보다 더 슬픈 일이 아닐가요?      …그러나 언제면 나 할말이 궁해져 사랑시도 시들어질가요? 아니예요. 충정은 시작만 있고 끝은 없을거야요. 내것인줄만 알고 사랑하는 그날까지 들숨과 날숨이 있는한 정다운 당신의 이름을 부를거야요. 언젠가 혹시 누구에겐가 시집을 가야한다 면 정없이 돌아서는 박정한 당신을 더는 잡아둘수 없음을 확인하며 나는 울어야겠지요. 그리고 주어진 내운명만큼 만족해야 하겠죠. 할말은 다한듯싶건만 쓸모없는 편지나마 자꾸 써내려가야하는 저 너무 가슴아파요. 한사람 사랑하는 일 너무나 신이 날텐데 왜 이렇게 힘이 드나요?오가는 세월에 생각은 많이 달라지고 불붙던 정애도 사그라지면 눈물이 핑 돌아 추억에 매달리겠지요?     아, 내 심장이 다 빠져나간 그때에 허전해진 마음을 누가 달래줄수 있을가요? 당신이 곁에 없는 길따라 슬픈 내인생길에 나혼자 그림자만 밟으며 걸어가야겠지요? 길잃은 유령처럼 정처없이 ……                                    사랑은 2×2는 5인가?       백설씨는 경이의 편지들을 매번 감동없이는 읽을수가 없었다. 그저 련정의 편지가 아나라 자기로서도 그렇게 진지하게 쓸수 없는 한편 또 한편의 서정수필이여서만이 아니였다. 푸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것은 일종 행복의 노을빛이 아닐수 없었다.     기실 회답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백설씨도 경이를 잊고있는것은 아니였다. 처음 경이에게서 색다른 기미를 감촉했을 때 그저 생활에서 소설을 읽게 되였다며 웃어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련정이란 한 처녀애의 몸에 기묘하고도 명백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것을 처음 발견하고 놀랐다. 그저 앳된 풋병아리로만 보아 오는새에 마치 꽃이 하루아침새에 활짝 피듯이 훌쩍 커버린것이다. 온몸에 둥그스레 살이 오르면서 갓왔을때의 모나던 부분들이 부드러워져갔고 녀성미에 자신만만함이 은근히 내비치고있었다.     어쩌면 자기 생활에 전설같이 뛰여든 이 불나비소녀는 자기를  골려주려고 이 세상에 태여난것인가? 골샌님의 가슴속 골방에 속절없이 쌓아둔 량심과 도덕을 송두리채 빼앗아갈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참으로 의상하게 변해가고있음을 자각할 때 체념을 웨쳐댔지만 자기를 이겨낼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애와 함께 있으면 오가는 말이 없어도 주위의 생물은 더 말할것 없고 죽은 사물도 생기가 살아났다. 창가로 내다보이는 낮다란 서쪽산등성이까지도 룡처럼 꿈틀대는 것같은 환각을 주었고 사무상우에 올려놓은 그애의 하얀손도 보잘것없는 책상도 조화로운 배경으로 되여주는것 같았다.     사무실의 지저분한 분위기도 경이가 뿜어내는 신비한 힘때문에 향기로 가득차 버린다. 그애의 얘기를 듣는것은 일종의 생명감과 정감의 향수였다. 경이에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형의 장치가 있어 그 장치를 풀어놓으면 무심히 내뱉는 평범한 말도 일종의 환희를 느끼게 하니말이다. 그애가 소리없이 울때는 더구나 어쩔줄 모르고 그저 자기 가슴에 기대는대로 가만히 지켜볼수 있을뿐이였다. 흔히 녀자의 한방울의 눈물이 남자의 깊은 동정을 살수있다더니 경이의 눈물은 방울방울이 그대로 눈의 웅변이였고 말없는 명령이였으며 그대로 련민이였고 동정심을 초월시키는 신비였다.     그러나 그는 애써 자기를 다잡아야 했다. 그럴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메마르기 시작한 자기 마음의 보리밭에 모닥불을 질러놓고 언젠가는 포르르 날아가버리고말 한마리 파랑새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진실이 침묵하고 돈이 란무하는 세월에 세대차이를 무시하고 년장자에게 달라붙는 녀자애들이 그래 돈냄새에 취해서 하는 선택이 아니던가? 정애도 돈으로 빚는 세월이 아니던가?     돈도 없고 지위도 없는 일개 서생에게 녀자애가 련정을 가진다면 그게 무엇인가?결과는 후회로 얼룩진 쓰디쓴 악과일뿐이 아니겠는가?그게 아니라면 정말 사랑의 기적이라도 생기는걸가?알수 없었다. 알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했디. 언젠가 동년의 꿈을 다시 찾고싶다며 응석부리는 경이의 고집에 못이겨 스키장으로 갔었다. 호되게 추운 일요일이였다. 그는 경이가 뺨을 에이는듯한 눈보라쯤은 아랑곳없이 눈동자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며 이글거리고 있는것을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채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눈발속으로 시선은 엉켰고 어쩌다 호젓한 곳에서 시름놓고 바라보고 싶었다는 표시를 서로 말없는 미소속에 확인했다. 경이가 그의 가슴에 차분히 기대여 정차게 올려다보았다.    《사랑해요, 선생님!》   《얘, 그런 말은 그렇게 가볍게 내뱉는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애매하게 했지만 눈에서 불꽃이 튀였다. 경이의 눈에서도 광채가 이는것을 그는 확인했다. 녀자애의 입김은 천도복숭아의 새콤한 향기같이 유별나게 싱그러웠고 그 향기는 그를 후끈 달게했다. 그는 폭발할것같은 정열을 리성의 마지막 방선으로 자제하며 심장에 압축된 호흡을 조금씩 쏟아냈다. 그러자 경이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막으며 말하는 인형처럼 쏙닥거렸다.   《불씨를 당기면 저는 재가 되여버릴거예요. 전 자신이 류별나게 뜨거운 체질을 가진 녀자라는것을 잘 알고있거든요. 그 후과를 지금의 선생님은 감당해낼수 없을거얘요. 안그래요?나의 훌륭하신 서ㅡ언생님!》     그 순간 그는 스스로 얼굴이 확 달아오를는감을 느꼈다. 심장속에서 끄르륵 소리가 나는것같았다. 정녕 피가 쫄아붙는 소리였을가?그는 경이를 말없이 굽어보았고 경이는 아직 삭이지 못한 열기가 그의 눈동자속에 흔들거리는것을 보자 금방 하늘에 날아올라 울어대는 종달새처럼 까르르ㅡ하고 웃으며 새매처럼 그의 팔에서 빠져나가 눈발위를 달려갔다.《날 붙잡아요ㅡ》생긴 그대로 청춘의 폭발력이였다. 그는 달리는 녀자애의 뒤모습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북국의 설원에서 붉은 여우에게 홀린듯한 짜릿한 전률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하얀 은세계속에 멀리 사라져가는 이 유별난 처녀애의 웃음저편에서 자기를 기다리는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것같았다.    그해 겨울방학은 경이에게서 아무소식도 없었다. 옳았다. 오는가 하면 어느새 훌쩍 사라져버리고 이제 다시 안오나 싶을 때 나타나서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 시치미를 뚝 뗀다. 가는새없이 가버린 청춘이 아쉬워 주눅이 들어있는 남자의 가슴에 무지개를 띄울듯말듯 하다가 씻은듯 소식을 끊었던 아지랑이같은 소녀…한 순간의 회오리였으려니 생각하고 겨우 잊을만하니 개학에 홀연 다시 나타났고 그렇게 티없이 밝게 웃어주었다.   《안녕하세요?제가 오지말았으면 했죠?》    …참된 사랑은 거의 사색을 대신한다. 사랑은 그밖의 모든것을 불사르는 세찬 불길이다. 정열에다 론리를 요구하는것은 범에게 날고기를 먹지 말라는것과 같은것이다. 천체력학에 완전한 기하학적 형태가 없듯이 인간의 정욕에도 절대적인 론리적판단이 있을수 없다. 지금은 다 제잘난 멋에 사는 시대이다. 모든것이 멋대로이고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부도덕이 도덕화되는 때에 사랑이 2×2=5가 되지 못한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는 불현듯 다 퇴근하고 혼자남아서 무엇인가 끄적이고있는 사무실로 처음 찾아왔던 소심스러운 처녀애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그는 그저 놀랐을뿐이였다. (먼지바람 사나운 이 세상에 어쩌면 저렇듯 청초한 아름다움이 존재할수 있단말인가?) 순간순간 마주치는 소녀의 눈빛은 전혀 때묻지 않은 수정 그자체였다.     아직 보슴털도 채가시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보드랍고 우아한 관능미를 구비한 애련한 얼굴은 비너스니 선녀니 요정이니 하는 잡스러운 말로는 그 표현이 절대 충분하지 않는 그런 미모였다. 몸매는 아직 야위였으나 한마디로 금방 물속에서 나온 인어를 방불케했다. 소녀는 분명 어리였지만 지금껏 그가 보아왔던 귀염성있는 녀자애들과는 완연히 다른 타잎의 미소녀였다.    《선생님,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방해되지 않나요?》     열여덟 햇병아리의 입에서 나오는 인사치례도 제격이였다. 말끄러미 건너다보는 시선은 아편꽃처럼 애련하기만한것이 아니라 어떤 신비의 그것이였다…소녀는 정색해서 응시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정이 서린 시선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나에게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ㅡ경이는 처녀애들이 다 그러하듯 강추위에 앵두볼이 되여가지고 그냥 깔깔거리며 눈속에서 딩굴어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백설씨는 완전히 시적경지에 빠져들며 아무 구속도없는 대자연속에서의 그들 둘만의 만남을 련상하였다. 진달래꽃 붉은 불길이 대지의 묵은 가슴을 불태우는 봄날, 어느 산등성이 꽃떨기속에서 산들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나비처럼 팔랑이는 경이의 뒤모습이며 뒤를 돌아보며 쌩긋 웃는 맑진 그 미소는 순결무후한 순정의 표시일것이다.     자기의 두눈처럼 그윽해진 가을하늘을 머리에 떠이고 불타는 단풍을 바라볼때 사색하는 그 모습은 성숙에로 치닫는 조약일수도 있고 그리고 오늘처럼 눈보라치는 어느 겨울 밤거리에서 갑자기 가볍게 손저으며《선생님, 잘있어요, 나는 가요.》할 때 그것은 이미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 패필(败笔)일것이다…하지만 그는 도덕과 인격을 버리고 황당한 추리로써 자기의 불가사의한 사랑에 연막을 치기시작했다. 그후부터 기회를 만들어가면서 사랑의 기적을 야금야금 쌓아갔다. 정다운 눈길로 남이 알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사소한 일로 녀자애를 울리고 오해도 하고 얼굴도 붉히며 탄식하기도 하였고 의미심장한 침묵도 지키였다.     그러면서 경이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일단 녀자를 진짜 좋아하게 되면 녀자의 아무리 버릇없는 행동도 애교로 받아들이는게 나이 든 남자들인것이다. 그래서 경이가 걸맞지 않게 당신이라 한던가 별스럽게《자기야,》하고 불러도 그저 빙그레 웃으 며 묵인했다. 스스로도 바보가 된것이 면괴했지만 웃음이 전염되는데야,                                              아름다운 착각      백설씨는 드디어 경이를 데리고 경박호로 갔다. 그는 호젓한 호수가 숲속에서 경이가 내미는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자기의 커다란 손안에 감싸쥐였다. 서로 바라보며 눈길로 많은 정회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아릿답고 천진하고 활발한 녀자애인가, 다정 다감하고 청신한 그 얼굴에서 내비치는 청춘의 희열이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있다. 경이가 끌리듯 던지듯 상체를 실어왔다.     생생한 육체에서 풍기는 체취는 향그럽고 달콤하였다. 그는 눈을 꼭감고 엉뚱한 화면들을 떠올렸다. 그는 도덕, 명예, 신분같은 거치장스러운 장애물우로 둥ㅡ둥 떠올랐다. 그는 벌써 해가 지지않는 행복의 만리창공에 날고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갑자기 호수물이 쫙 갈라지면서 거울을 잃었다는 전설속의 공주가 사뿐사뿐 걸어나와 자기곁에 다가서는 황홀경밖에 없었다.     그들은 달이 솟을때까지 호수가에서 거닐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신비하고 매혹적인 신화속의 밤이였다. 밝은 달빛은 수림을 야릇한 몽환경으로 색칠하고있었다. 그들은 발길가는대로 정처없이 걸었다. 마음을 한껏 취하게 하는 현실의 동화속을 걷고있는 그들은 자신의 사랑과 무시무시한 정적속에 숨이 막힌듯 말한마디 없었다. 경이는 그것이 좋았다.    그들은 밤이 이슥해서야 하숙방으로 돌아왔다. 며칠 세맡은 집은 마을과 떨어져 호젓하였다. 밤, 곡조가 전혀 맞지않는 개구리합창만이 이 마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것을 알리고있는 산촌의 깊은 밤이다, 정부가 없는 남자는 반병신이라고 여기는 열려진 시대에도 백설씨로 말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샌님이였다. 그러나 열광의 녀자애는 청교도같은 사내를 가만두지 않았다. 녀자애의 달콤한 목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찢어놓았다.   《이런 밤을 꿈속에서도 기다렸어요. 선생님… 》   《여긴 선생이 없잖아…》조금 떨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우습게 들렸다. 녀자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감싼다.  《그래요, 여기엔 제멋대로 풀어놓은 자아감각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그 고전적인 틀을 마사버리는거예요. 한 남자와 한 녀자의 데이트, 이것만이 진실이죠. 이밤은 우리 둘꺼야…》     그랬다. 경이로서는 힘겹게 마련한 이 밤이 너무너무 행복하였고 성스러웠다. 겁이 많던 그의 마음은 그토록 당돌해졌고 구속이 없어졌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동안 진정 우수를 몰랐고 애달픈 눈물을 흘린적이 없었던것처럼 느꼈으며 오로지 환락에 찬 눈부신 해빛만이 있었던듯 싶었다.  《너 인젠 제법이구나. 지금 계집애들이란…》 《그래요. 제가 제법인게 있다면 이렇게 선생님을 내꺼로 만들게  된거예요. 저의 사랑은 눈앞에서 가물가물하다가 스러지는것이 아니였어요. 씨실과 날실이 한코한코 얽혀서 베천이 되듯이 그렇게 엮어온거예요. 당신이 생각한것처럼 현대소녀의 불장난 이 아니였어요. 이래도 안믿을래ㅡ요?》     경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남자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어린 눈, 따뜻한 웃음이 남실거리는 타는듯한 입술, 그렇게 청초하고 다정스럽게 보이는 경이의 얼굴에서 백설씨는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호소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것을 느끼면서 몸을 떨었다. 두눈길이 허공에서 작열했다. 녀자애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경이는 진실을 말할 때 눈속에 밝은 빛이 움직였다. 이 시각엔 또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자 더욱 진한 색갈을 띠고있었다. 《오늘 절 마음껏 차지해요. 당신에게만 주려고 고스란히 지켜온 저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예요. 그리고 제가 줄수 있는 유일하고 영원한 선물이기도 하구요》    숨을 할딱거리는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갈대처럼 한들거렸다. 백설씨의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이 솟구쳤다. 《이러면 안되는거야, 그리고 너도 곧 후회하며 나를 원망할것이고…난 널 사랑하기에 허무게 망가뜨리고 싶지않은거야. 한송이 청초한 꽃그대로 곱도록 지켜보는것으로 만족하자꾸나. 내마음을 알겠니?이 못된 계집애야!》 《선생니ㅡ임ㅡ나ㅡ안…난… 당신꺼예요. 그리구 당신도 다 내것이야!당신의 이 심장도, 그 상상력도, 멋진 미소도…》     그의 가슴에 쓸어지듯 안겨든 녀자의 입술이 막 벌어진 석류처럼 빨갛게 물들면서 소로록 뜨거운 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배설씨는 참지 못할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금방 터져버릴것같은 흥분을 억지로 짓누르며 조용히 천천히 녀자애의 동실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랑해요!정말 후회없이…》귀가에 산새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따가운 입술이 솟구쳐왔다. 녀자는 아직 경험이 없으련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입술을 맡겼고 남자는 그녀의 심연속에서 솟아나오는 명주오리같은 보드라운 숨결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경이는 다급한듯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더듬었다. 위에서부터 네개의 단추, 그 하나하나가 따일때마다 처녀의 마지막 방선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표식이련만 아무 미련도 없는듯이 손길이 더 빨라졌다. 앞섶이 열리자 눈이 부시게 선명한 물방울 무늬가 시선을 빨아버렸다. 두개의 풍만한 봉우리가 숨을 쉬고있었다.     마침내 라체가 된 순백의 육체가 환영처럼 눈앞에 조용히 펼쳐졌다. 그것은 완연한 조각예술품이였다. 분명 그것은 생동하는 한폭의 명화 그대로였다. 장엄한 신의 걸작이다.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유연하게 뻗어내린 상체 의 곡선미는 어떤 유능한 화가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것이다. 허리의 연한 곡선은 둔부를 따라 휘영청 타고돌아 비단실이 끌려내려간것럼 발끝까지 줄달음 쳐내려갔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라기보다 너무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성스럽기까지 한 절대적인것이였다.      백설씨는 경이가 이끄는대로 부드러운 몸위에 올랐다. 경이가 머리를 부둥켜안으며 입안에 달콤한 노래를 넣어주자 문득 그 노래는 시간이 생겨나기 이전에 처음 부른 그 입으로부터 자기에게까지 전해온것이며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한 계속 불려질 애욕의 노래를 경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른 입에 넣어주려고 온몸을 불태웠다.    …경이는 어느새 끝없는 신비의 세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마음속에서 남성에 대한 놀라움이 눈을 뜨기시작했다. 남자!자기 가슴우에서 느껴지는 그 남성의 힘에 대한 첫감각과 동시에 자신의 성결한 처녀성이 떠나가는 마지막 몸짓으로 격정을 숨기며 눈물을 흘렸다. 아ㅡ아ㅡ!그녀가 그렇게도 목마르게 바라던 사랑의 전부의 내용이 그렇게 씌여지고있었다…     경이는 자꾸 선생님을 부르며 달큰하게 속삭였다. 아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라고, 행복해서 짓는 줄끊어진 구슬이 흐른다고, 오래동안 사무치게 마음속으로만 풀리기 바랬던 그 안타까운 정한이 비로소 희열속에 풀리는 소리라고…  《아이, 난몰라, 어쩜 좋아!사랑해요. 선생니임ㅡ》     오래오래 하나로 녹아붙었던 육체가 둘로 나뉘여졌을 때 경이는 얼굴을 가리고 울다가  이윽해서《선생님, 나의 님…우린 지금 어데 있나요?》하고 부르며 남자의 가슴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밤을 육체와 령혼을 달근질하는 황금시간이라고 좋아한다, 그러나 밤 그자체는 그저 랭담하게 인간사회의 치부를 덮어버리는 장막일뿐이다.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음양의 인간들이 뒤엉켜 뒹굴면서 구비구비 풀어내는 그 욕정의 신음에도 눈이 멀어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은 수치란말을 만들지 않았을것이다.     남자의 넓은 가슴에서 어린애처럼 엎드려 자는듯 꼼짝도 않던 경이가 잠꼬대같이 속삭이였다. 비둘기가 구구하는 소리를 알아들을수 없어도 싫지  않은것처럼 그 종알대는 소리가 듣기좋았다. 그 소리는 정에 달뜬 녀자가 내는 노래의 곡조와 시가 어울린 기묘한 애욕의 피리가 아니겠는가?녀자는 뇌까리고 남자는 침묵으로 답복해도 서로의 가슴에 전파로 전해지기에는 충분하였다. 정애에는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없는 법이다. 백설씨는 잠기가 실린 경이의 상기된 얼굴을 조심스레 받쳐들었다. 《저 하늘에 별들을 봐, 별들이 몇억광년의 아득한 하늘에서 너의 눈동자속에 고이기 위해 건너온것이 아닐가?나는 늘 너의 눈에서 별을 보고있었지!너의 눈이 그대로 한쌍의 별이거든, 저 하늘에 별들은 새날이 밝으면 사라져버리지, 그러나 경이야, 너의 눈동자속에  별들은 언제나 나를 향해 반짝이겠지?응! 》 《새날이 밝아오면 별들이 사라진다구요, 기막히게 처량하고 심각한 서정이예요. 새빛이 우리에게 이를때면 별들이  숨어버린다구요?이 행복한 순간이 아득한 별처럼 사라질가봐 이 경이가 두려워하는데 무슨 그런 다짐을…으응! 당신과 난 죽을때 까지 꼭 하나인거야, 알았지?! 》    둘이는 다시 가슴과 가슴을 녹여붙였다. 그렇게 온밤 밀려오고 밀려가는 격정의 파도속에서 밤을 하얗게 빨래질했다. 창가에 내려앉았던 별들도 무색해서 서둘러 숨어버렸다…그러나 치정에 빠진 남녀는 그런줄도 몰랐다.                                    별은 왜 창백해졌을가?       그러나 그들이 진실한 넋으로 이룩한 사랑의 기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았다. 백설씨의 안해가 남편의 염사를 알게 되자 사태는 더 수습할 여지가 없게되였다. 그녀는 리혼을 제기하고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작은 도시가 들썽했다. 비록 법에 걸리는 일은 아니였지만 백설씨는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풍문에는 남방에서 떠돌다가 절친한 동창의 연줄로 미국으로 날아가버렸다고 했다…     경이만 끈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되여버렸다. 진우가 그녀를 소개받았을때가 바로 그 무렵이라고 편지에 쓰고있다.     ㅡ진우씨는 몰랐지만 저는 껍데기만 남은 녀자였지요. 이미 자기를 잃고있는 녀자를 진우씨는 좋아했지요. 물론 그것은 저의 잘못이여요. 진우씨도 많은 녀자들이 진우씨와 결합하여 아이를 낳고 싶어할 그런 훌륭한 남자였지요. 진우씨의 살뜰한 사랑에 목이 멜때가 많았지만 이미 한남자에게 쏟은 감정의 격류를 돌려세울수가 없었어요.     진표가 생긴후 저는 꿈에서 깨여났어요. 전 그애만을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미음먹고 진우씨를 사랑하려고 무척 노력하였어요, 그러나 그게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진표가 돐을 잡던해에 멀리계신 그이께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어요. 몇십장의 편지였어요. 그이는 자신이 살아서 숨쉬는 한 심장속에 새긴 새별을 잃을수 없다며 자기 신변에로 불렀어요.    저는 항거할수 없는 그이의 사랑의 힘에 끌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나는 날개라도 돋혀 한달음에 그이의 품속으로 날아가고싶었요. 렴치없는 말이지만 진심이 그랬어요. 시인도 아니건만 시줄이 엮어질만큼 그렇게 격동되여 곧장 회답을 했어요. 이몸이 죽어 열백번 죽어서 넋이라도 있고없고 날아가겠노라고….                                                    나혼자 애모쁘게 생각한 사람                          끝끝내 마음닫고 떠나간 당신                          눈물로 슬픈사연 헹구던 일을                          세월이 흘러간들 잊을수 있나                            두번을 다시못할 내사랑 당신                          나몰래 혼자떠난 무정한 님아                          아픔에 찢기여도 가슴을 치며                          혼자서 당신만을 그리던 나야                            아직도 소원하나 있으라 하면                          두몸이 하나되여 사랑을 하며                          당신을 보듬다가 죽어갈 때에                          내곁을 지켜줄이 당신이 하나                                                    다시는 찾지못할 내사람 그대                          그리워 가슴곳곳 피멍이 들고                          가슴타 재되여도 몾잊을 당신                          세월도 씻어가지 못하는 사람     나 미친년이지요. 그만큼 그이는 내게 둘도없이 소중하고 귀중한 분이였어요. 설사 그이의 정식안해가 될수 없더라도 가고싶었고 한평생 그이만 바라보며 살고싶었어요. 그러나 천진란만한 우리 진표가 불쌍해서 차마 훌쩍 가버릴수 없었어요. 지어내는 거짓말같지요 ?     어떤 때엔 엄마처럼 호수밑에 푹 갈앉아 세상의 모든 영욕을 잊고싶기도 했어요. 죄많은 어머니의 넋이 몸부림치고있는 차디찬 그 호수물로 내가슴을 태우는 괴로움의 불을 끄고싶어서 정말 지도에 그려져있는 그 이름모를 절로 가는길에 오를번 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에 대한 나의 참을수 없는 마음이 내발목을 잡았어요.    그러면서도 이승에서 단하나의 선택이 허용된다면 아무리 굴욕적일지라도 그이와 함께 생활하고싶었어요. 저는 그이 모르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고쳐생각했어요. 나는 그이 먼저 떨어지는 별이 되지 않겠다고 그이의 눈을 보며 맹세를 했어요. 그리고 그이도 내허락없이는 죽을수 없어요. 그이는 나를 꼭 불러들일 그런 훌륭한 분이라고 믿고 기다렸어요. 나는 죽을때도 그이의 품속에 안겨서 눈을 감을거예요.     나는 먼저 한국에 가려고 로무송출수속을 했어요. 그러나 일이 생각대로 되여 주질않았어요.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밀항이라도 해서 한국땅에 들어서고 그이를 오라고 부를작정을 했어요. 나는 모든 사연을 당신에게 말할수 없었어요. 정직하고 선량한 당신이 내가 기로에 빠지는것을 말렸을거니까요. 그래서 간다온다 소리없이 집을 나갔어요. 진표때문에 울면서 떠났다고 한다면 진우씨는 믿지 않겠지요. 사랑은 배반했지만 모성애야 배반할 있겠나요. 비웃어도 좋아요…     사랑을 각양각색의 책이라한다면 저의 애정사야말로 사연많은 한부의 심령소설이라 할수 있겠죠. 이런 말을 새겨들을 진우씨의 심정이 아닌줄 알지만… 저로서는 소녀시절의 활발했던 사랑은 한부의 재미나는 련화화였어요. 진우씨가 저에게 쏟아부은 그 장중하고 자중하던 애정은 수정본이라 할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사랑을 받을 체질이 못되였어요.     그이와 파란곡절속에서 동고동락한 사랑은 한글자 한글자 내 심혈로 쓴 초사본이라할수 있어요. 헤여졌다가 다시 맺은 저의들의 사랑은 수정보충한 재판서라고 하겠구요. 우리의 생사불변의 사랑은 절판이 난 책일것이예요. 무슨 정신여가가 있어 서 글장난인가고 불만이시겠지만 진우씨가 이제라도 그이에 대한 경이의 사랑이 어떤것이였는가를 리해해 달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니 그렇게 알아줘요. 저로서는 달리 표현할수 없어요.     이제 본제를 말씀드리겠어요. 사랑한다는것은 곧 둘이서 하나를 완성해가는것이라지만 나에게는 행복과 고통과 슬픔이 함께 그려진 모순된 미완성의 풍경화라고나 할가요. 그이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니 진표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 그을린셈이랄가요, 그이를 만나고 저는 제가 환상하던것처럼 완미하게 행복해질수 없는것이 한없이 슬펐었어요. 모성애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그냥 도덕의 견책을 받으며 시달렸으니까요. 역시 사랑을 받는 녀자와 사랑을 주어야 할 엄마는 이률배반적인가봐요.     진표가 보고싶어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제가 직접 당해보고서야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뜯으며 사랑하는 애인 우론쓰끼와 아들사이에서 방황하던 안나 까레니나의 심정을  절실히 알았어요. 그이가 아무리 따뜻하게 품어주어도 도저히 아들을 잊고 살수가 없었요. 내같은 몹쓸년에게도 모성애만은 살아있다고 한다면 세상사람들이 비웃을테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였어요. 진우씨만은 믿어주길 바래요. 엎지른 물같은 과거지사이지만도…     …마침내 저는 절로 자기 신체를 망가뜨린셈이 되였어요. 너무 울고 속을 태워서 심장병에 걸렸어요. 그것도 아주 가망이 없는 정도이지요. 업보라고 말해도 할말이 없어요. 그러나 나는 그이에 대한 나의 사랑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의심해본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 모든것이 다 내손으로 씌여진 인생극본이니까요.     다만 마지막 소원하나가 있어요. 이번에 제가 여기로 온것은 꿈에도 보고싶던 진표를 딱 한번만이라도 볼수 있을가해서였어요. 허락해주세요. 초롱속에 새의 울음은 처량하고 곧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은 선량하다하지 않나요. 그저 친척아줌마의 신분 으로 한번만 보고가면 전 죽어도 눈을 감을거예요.     당신앞에 용서못받을 죄인이지만 마지막 소원을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허락을 기다리겠어요.…                                                 에필로그            편지를 간신히 다 읽은 나는 분통이 터졌다. 가슴속에서 증오와 저주가 화산처럼 치솟았고 나중엔 자기 마음같지 않게 련민과 관용이 화산재로 갈앉았다. 경이는 긴 편지를 넘을수 없는 골짜기 저쪽에서 쓰고있었다. 결혼후 당신이라 불러준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까지 새삼스레 나면서 이가 뿌드득 갈렸다. 그러나 리미가 빤히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을 잃을수는 없었다. 나는 그 진정책으로 자기를 달랠수 있는 온갖 구실을 찾았다. 애정이란 대방을 리해해주고 그의 의사에 따라 순응하는 유순한 정이며 리기와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의 모든 용기를 대방에게 바치는것이다. 이런 정과 용기야말로 특이한 애정이라 할수 있다…그럴수밖에 있으랴!그렇게 흔하게 들리는《당신》소리도 그녀는 아끼고 있지 않은가, 경이에게는 오직 하나의《자기야!》가  있을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생각해도 분하고 절통했다. 나의 눈속에 쌍심지가 거꾸로 서는듯 싶었다. 아래위 이가 맞쫓기면서 덜그럭소리가 나서 자신도 몸서리쳐졌다. 열이 올라서 얼굴이 주홍빛이 되여버렸을것이 분명했다. 가슴속에 무서운 복수의 우뢰가 울었다. 나의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리미가 련민의 정으로 젖어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랭정하세요. 오늘은 정말 당신답지가 않네요. 남자들은 첫사랑을 잃은후에도 자신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닌가요?그렇지만 마지막사랑을 잃는다면 생활의 의의와 자기에 대한 신심과 삶에 대한 기쁨, 모든것을 잃게 되지 않을가요?물론 진우씨가 저를 진정 사랑하고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예요. 이 배속에 있는 아이의 장래를 봐서라도 너그럽게 대하세요.》    나는 잠자코 들으면서 그저 코김만 거세게 내뿜었다. 나는 끝내 자기를 다잡았다. 다행히도 나는 불을  달아놓기만 하면 극도로 흉악해지는 그런 악착한 성질의 남자는 아니였다. 《그의 사망신고를 철소하세요. 그로하여금 많지 않은 여생에 당당정정하게 이승에서의 인륜지락을 누리게 해주세요. 전번에 내가 당신 대신 비행장에 나가 마중했는데 정말 피골이 상접해서 내가슴이 다 찌르르해났어요. 그는 한남자의 팔에 매달려 겨우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다는 그 선생님이겠지요. 그의 표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었어요.… 》    욱하는 내성미를 랭철함으로 잘 조절할줄 아는 리미의 충고처럼 종용과 관용은 별개이다. 관용과 용서는 동전의 앞뒤면과 같은것으로서 진정 의지가 강한 사람만이 할수 있는 절제심 그 자체이다. 관용이란 마음가짐이요 용서란 력동적이고 적극적인 힘이다. 관용과 용서란 대방만이 아니라 자신도 수련시킨다. 나는 마침내 관용의 대문을 빠끔히 열고 그렇게도 저주했던 경이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용서하지 않으면 이제와서 무엇이 달라진단말인가, 사람은 완성된것도 없거니와 완성될수도 없다. 사랑에 완성이 없을진대 관용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것이 그녀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길인지도 모른다.     …며칠후, 나는 진표를 데리고 경이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갔다. 나는 경이의 망가진 모습을 측연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 있단말인가 련민의 정이 왈칵 치밀어오르면서 목이 꺽 메였다. 그녀에게서 이젠 곱게 생긴건 눈과 입뿐이였다 (무엇이 녀자를 그렇듯 사랑에 활활 불타오르게 했을가?이 녀자의 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수 있은 유일한 남자란 어떤 남자일가?지금 저 녀자는 몹시 괴로와하고있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괴로와 하는가?이제 바랄수 있는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한 남자애의 탄생은 한녀자가 두남자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던 말이 안타깝게 떠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워 전구들의 불빛이 반디불처럼 아롱거렸다. 눈물이 글썽한 그녀의 눈속에서 수천개의 별들이 반짝이는건만 같았다. 이 녀자는 세속의 관념을 물리치고 사랑에 자기의 전부의 운명을 걸고 떠났다가 회한을 안고 내앞에 나타난것인가?아닐수도 있다. 그녀에게서는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한것이였니까. 그러면 그게 무엇일가?오직 내가 절감할수 있은것은 미모는 스러졌으나 가치는 의연 히 눈부시는 극히 희소한 그런 녀자가 바로 경이라는것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토로할수 없었지만 이윽토록 바라볼수 있었다. 무슨 할말이 더 있으랴, 그저 마주보는 청산도 유정하다 하거늘…그러나 나는 그 이상 경이를 괴롭히고싶지 않아서 나와버렸다. 뒤에서 뼈를 깎는듯 오열을 토하는 소리와 흐느낌 소리가 뒤통수를 쳤다.    병실에서 멀리 걸어나왔지만 목덜미에 그냥 바늘이 꽂히는것 같았다. 어쩐지 따끔해지다가도 확대경의 초점에 모아진 해빛을 쐬는 그런 견디기 어려운 느낌이기도 했다. 그만큼 경이의 회한많은 눈길이 내뒤를 바싹 쫓고있는듯싶었다.     그렇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공간에서 오직 한사람에게만 확실한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지 않는 녀자는 독종이 아니면 너무 숭고하다 해야 하리라. 참된 사랑을 함에서 유일한 정신적기둥은 맑은 량심과 인격력량이다. 이왕자사를 돌이켜볼 때 유일하게 안위되는것은 자기 행위의 정직과 진정이다. 지금 내게 만약 이런 안위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 미쳐버릴것이다.     행복에로 가는 길은 따로 없다. 행복의 길은 현재 내가 걷고있는 이 길 자체일뿐이 아니겠는가?내가슴속에 별은 지지않았지만 리미의 손을 잡고 사랑의 페허우를 걸어가야 한다. 이제 더는 리미의 손을 놓는 일이 없어야 할것이다.    …한달후 나는 결혼식을 올렸고 건강이 조금 좋아진 경이와 그녀의 유일한 남자는 다시 한국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간다고했다. 머리우로 떠가는 비행기를 망연히 바라보는 나는 차라리 진표를 경이에게 딸려보냈을걸… 하고 후회해 보기도 했다. 그가 언제면 다시 자기의 생명을 탕진하면서까지 그리워한 아들을 볼수 있겠는지…그리고 아들은 커가면서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용서할런지…경이는 자기에게 첫사랑의 결실이 있다면서도 왜 진표를 못잊어 하는지…    누군가 인생의 의미는 사랑의 슬픔에서 깨우쳐지고 사랑의 의미는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 강화된다고했다  나는 그 모든것이 인생의 조화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착각이 빚은 인생희비극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별처럼 아름다름다웠던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나의 사랑이여,                                    잠간 머믈고 간 이른 봄바람처럼                              기약없이 멀어져간 아픈 사랑아,       아, 사랑은 타버린 불꽃이던가,             아, 사랑은 추억의 강물이던가,                      아, 한으로 까맣게 잊으려해도                                왜 나는 너를 못잊고 있는거냐,                                         2004년 10 월 5 일                《연변문학》 2005년 제 2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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