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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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2 절 시문학 댓글:  조회:4261  추천:32  2007-08-13
                                                    제2절 시문학    1. 시의 내함     시란 무엇인가? 사전적의미로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전통적시론에서는 시란 간결하고도 세련된 운률적인 언어로써 강렬한 사상감정을 토로하면서 사회생활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쟝르라고 정의하고있다.     서방의 경우 “시”인즉 곧 문학이였는바 고대에는 운문형식과 련계되였다. 문학의 시조로서의 시의 개념은 희랍어에서 왔는데 “생산”과 “창작” 이라는 말이였다. 고대희랍시기에는 예술창작에 유관된 협의적의미로 연혁되여 일정한 범위내에서 사용되였는바 그 뜻도 광의적의미와 협의적의미로 나뉘여졌다.     시의 개념에 가장 이르게 그리고 분명한 질서와 체계를 부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로서 그의 ≪시학≫은 서양의 최초의 문학리론서로 되였다. 그에게서는 문학이라는 개념이 광의적의미에서 사용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자연의 모방이라고 하였지만 독일의 작가이며 평론가인 슐레겔의 예술론과 헤겔의 미학에서는 시가 자체의 고유한 원리에 의해 창조되는 자아발전적유기체라는 개념이 제기되였다. 광의적의미에서의 시는 거의 문학과 동의어로 되여 예술성을 구비한 소유의 언어작품을 다 포괄하였다.     다른 한 관점은 특수한 내용으로부터 오직 창조성이 있고 또한 사람들을 진실로 감동시키는 순문학작품만이 진정한 시라는것이였다. “과학이 부단히 자기 과거를 훼멸시킨것처럼” 예술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시학의 개념이 차차 달라지기 시작하다가 20세기초에는 상상력과 감정의 시학으로부터 구성의 법칙과 기술적책략의 시학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양의 경우, 시가 개인적정서를 표현한다는 전설적인 순임금에 의하면 “시란 마음에 바라는바를 말로 표현한것이며 노래란 말을 가락에 맞춘것”이다. 류협의 ≪문심조룡≫에서는 이런 표현적관점과 교훈적관점의 조화를 강조한다. 마음속에 들어있는것은 뜻(志)이고 말로써 표현될 때 그것을 시라고 했다. (诗者持也, 持人情性)이라고 하면서 시는 정과 성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시가 정서를 표현한다는 주장은 그후 김성탄에 의해 더욱 발전했는데 김성탄은 “시는 다만 마음으로부터 떠오르고 혀끝에 놀며 누구나 말하고 싶어하는 말일것이다. 따라서 학자들만의 특수한 재주의 소산은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그만큼 전통시는 창조라기보다 재현, 자연에의 모방, 복사에 가까웠다. 즉 시적대상을 보다 형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느낌도 곁들어 전달하기 위한 수사적형식에 신경을 썼다. 시는 시인의 심령의 외재세계이다. 시인은 외재사물에서 계발을 받고 그 외재형태를 내재공간에 이입시킨후 제련과정을 거쳐 심령의 메아리로 울린것이 시 특유의 선률이다.     시적감각은 때론 일종 사상의 지각화가 되는바 역시 시적감각이다. 시는 독특한 예술적인식이며 내면화된 인식으로서의 자기 성찰이다. 시적자아로서의 시인은 자연경물에 감탄하고 혼자 자각하는것만이 아니라 자기의 정감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싶어 한다. 이것이 시인의 핵심적기능이다. 레를 들어보자. 달빛 빛나는 밤 온몸으로 시멘트 담을 움켜쥐고 간신히 기어오른 저 하늘 끝 늦은 밤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나를 위한 한마디 잠언 나는 온몸이 뿌리다.     한국의 시인 강형철의 시《사랑을 위한 각서5ㅡ담쟁이덩굴》이다. 담쟁이가 닭밝은 밤, 몰래 기를 쓰고 높은 담을 기어오를 때, 서정적자아 “나”는 술에취해 늦은 밤길에 비틀거다가 찰나적인 깨우침을 받는다. “이 놈아 정신차려!” 하고 가슴을 후려치는 잠언, 지금 어느때인데 취생몽사인가? 담쟁이덩굴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나 한수의 시에서는 한가지 해석이면 족하다.    이처럼 시적정서는 개체정서의 즉흥적류출이지만 그것은 모종 깨우침을 내재한 보편화된 인류일반의 정서이다. 다만 시인이 마음의 눈을 먼저 떠서 잡을수 없는 무엇을 보이지 않는 정서의 그물로 건져올려서 현시하는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눈은 그저 렌즈가 아니라 투시경이다.     시인의 예술직각은 흔히 일반리성감각을 초월한 고도로 개성화된 심미판단이다. 수법상에서도 현념, 공백, 잠의식의 류동, 이미지교착 등 새로운 시적수단들이 나타나고있다. 시의 함의를 두고 쟁론되고 있으나 그 모든 관점과 정의는 결과를 제공했다기보다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할수 있다.     시는 상상의 불새가 물어온 감각, 정감을 지혜로 빚어 감동 혹은 감흥이라는 예술향수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문학이다. 환언하면 시는 자유분방한 정감을 지극히 세련된 언어로 예술경지를 창조하는 인류심령의 예술활동으로서 곧 심령의 음악이며 진, 선, 미의 결정체이다.     시가 먼저냐? 노래가 먼저냐?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대시가, 향가, 속요, 경기체가, 시조 등으로 명명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듯이 그 계선을 두부모베듯 할수 없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시이자 노래이다. 박목월의 시《청노루》는 시이지만 노래같기도 하다. 머언산(山) 청운사( 青云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시적대상물이 자하산, 청운사, 숲 그리고 청노루의 맑은 눈, 그것은 일상용 어이지만 정제하여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펼쳐보이고있다. 이처럼 시는 노래이면서도 또 그림이고 사물, 관념에 대한 해석만이 아닌 형상화된 철학이 되기도 한다. 현대시 모두가 언어로 된 그림이 아니지만 드문히 만나는 좋은 시들은 모종 사물의 내재적의미로부터 떠오른 련상으로 새로운 의미와 해석을 선물하고있다. 한국의 시인 안도현의 시《연탄》이 그렇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을 연탄재=쓰레기라는 등식을 깨뜨려버리고 연탄재를 곧 전에 뜨거웠던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확실히 독특한 시적발견으로서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는 철리를 설득하고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한국의 시인 리형기의《낙화 》첫련이다. 보통 꽃이 지는 모습을 조락으로 보며 애수는 느끼지만 시인은 지는 꽃의 양자에서 신구교체의 섭리를 읽으며 깨쳐버려야 할 인습과 편견에 대해 말하고있다. 이처럼 시의 진정한 함의는 재현보다 교훈성에 계시되여있는것이다.     2. 시의 특징     1) 시적감수의 특징     시적감각은 인간화된 자연이다. 아름다운 대자연에 도취하게 되고 그 경이로움에 정감활동은 치렬해진다. 그 흥분된 마음을 누를길없어 자기만 느끼는 미적세계를 시로 엮어서 자신을 나타내보겠다는 충동이 일었다면 그것이 시의를 격발시키는 정감의 불꽃이다. 달리 말하면 시의 종자가 생명의 꽃을 피운다.    시인은 그 독특한 감수를 타인들에게 가장 운치있게 전달할수 있는 언어를 발굴하게 된다. 가장 적절하고 생동하게 전달할수 있는 새로운 언어의 조합이 시구와 시련으로 이어진다. 그때 선택된 시어들은 거의 모두가 그때 시인의 정감세계를 장식하는 진주구슬로 된다. 생활하는 가운데 무시로 가슴을 끓이는 서정이 곧 시의 속성이다.    시적령감은 순간적인것이다. 령감이 떠오르게 된 환경, 시간 등에 의하여 각각 개성이 다른 시상이 되고 그때 떠오르는 그 시상에 따라 시의 특성이 결정되고 시의 생명이 탄생한다. 시의 핵은 시인의 본능이기도 한 감동의 세계에서 불새처럼 날아오른다.     시인본성의 핵심은 창조로 불타는 심정이다. 이 정감의 작용에 의하여 참됨과 선과 미를 추구하는 마음이 곧 시의 령혼으로서 가령 진달래꽃을 읊는다 할 때 시인의 론리적인 리성사유가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진달래꽃이 시를 쓴다. 그것은 시인의 령혼속에 그 진달래꽃과 같이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정열이 불타기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진달래꽃에서 온 오감을 얻을수 없다.     이는 마치 해빛속에 적 등, 황, 록, 청, 람, 자 칠색이 없다면 무지개의 고운빛깔이 나타날수 없고 또한 시신경이 고장났다면 그 빛을 분별하지 못하는것과 같다. 사물을 바라보고 일어난 감명을 시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평소에 탁마한 형용사나 수식어들이 총동원된다.     시인이 경물과 자기 감수가 일체감을 갖게 되는것은 시인의 기본성품인 상상력때문이다. 시인은 상상력에 힘입어 시에 속성을 불어넣는바 전도체에 전류가 흐르듯이 심정에 정서파장이 흐른다. 생명의 에너지는 령혼의 파장에 의해 사람들에게 즉흥적으로 전달된다.     시창작은 흘러넘치는 정서의 활동이다. 이 시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기능은 실제로 일어난것에 관여하지 않고 일어날지도 모르는것 즉 재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것에 관여한다.”고 말하였다. 시의 본질은 정서와 사상의 결합이다. 그러나 시의 효용은 감동과 쾌락에 있기에 사상이 정서를 앞설수는 없다. 사상은 지각, 지식, 신념, 의견의 결정이고 정서는 감화적요소로서 유기체의 전신적감각이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생명에 있고 생명의 의의는 감각에 있다. 시적감각은 생명의 감각으로서 시창작과정은 생명에 대한 일종 리해와 감수이다. 시가 최초에 로동과정에서 산생되였다고 할 때 노래와 무용이 결합되였을것이다. 시의 화제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서이고 복잡하고 심오하지만 한 찰나에 발발하는 즉흥적정서이기때문에 시는 정취로 시작되여서 지혜로 완성된다고 할수 있다.     사람들의 일상적감각은 시적감각이 아니다. 시에는 고정된 물질형식이 없지만 시의는 복잡한 심리현상으로서 감정의 범주에 속한다. 시적감각은 인화된 자연이다. 인화된 자연의 감각은 예민하고 기이하며 사물에 대한 리해가 독특하다. 누군가 문학가는 응당 철인과 어린애의 혼합체가 되여야 한다고 했다.    시적감각은 때론 일종 사상의 지각화가 된다. “사상의 지각화”도 역시 일종 시적감각이다. 오직 이런 감각은 더없이 깊은 통찰력이 수요된다. 비상히 추상적인 사물도 만질수 있고 냄새를 맡을수 있으며 눈에 보는듯이 표현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서방의 어느 시인은 “사상의 직각화 즉 사상이 직각으로 환원될 때 장미꽃 향기를 맡을수 있듯이 당신은 사상을 감지할수 있다.”고 하였다.     시적감각은 일반적정황하에서는 시속의 세절속에 존재한다. 착란되고 비틀어진 세절 혹은 “인화적”, “환몽식”, “사상이 지각화”된 세절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감각기관이 있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현실활동, 인간내심의 심리활동을 감각하는것이다.     시를 시구조 전체로 고찰할 때 시적구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면서 자체의 법칙을 스스로 가진다. 시인이 생활속에서 외재물의 촉발을 받고 외재형태를 내재공간에 이입시키고 전반 지식의 종합과 제련과정에 심령의 골방에서 스스로 류출된것이 시 특유의 선률과 절주이다.     시인의 이미지속에는 류달리 타오르는 불길이 있고 그 불길속에서 독특한 상징의미가 제련된다. 흔히 말하는 시이미지란 “리성과 감정의 종합체”로서 리성과 감성의 순간적결합이다. 사상은 피와 살이 있는 물체ㅡ시적감정을 격발시키는 대응물에 대한 반응결과로서 독자를 향한 시인의 의식, 정조, 사상이 투영되여있다. 시적이미지는 정신적이미지. 비유적이미지, 상징적이미지로 나눈다.    이미지의 일차적기능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각적의미의 내용이나 감정을 전달하는데 유익한 방식, 또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착상에서 시작되는것으로서 개연성을 전제로 한다. 예술은 예지와 투시에 의해 다채로운 자연을 재창조함으로써 자연의 질서가 반영된다. 또 예술은 자연에서 표현수단과 방법을 빌려온다. 이런 정서세계의 정수라 할수 있는 지혜의 결정체를 가장 작은 그릇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시이다. ≪새장≫이란 단시를 례로 들어보자 열었다. 새장의 문을 새가 날아 가도록 자유를 주었다. 새 장에     새장의 문을 열어 새에게 자유를 찾아주려 했다. 이것은 보통사람도 생각할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할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인의 지각과 감수는 그에 그친것이 아니라 더욱 깊은 심층적의미를 발견했다. 바로 해방된것은 오히려 새장이였다. 이는 독특한 상상이다.     이것은 시적발견이고 철학적사색의 섬광이였다. 마치 감옥간수가 범인의 자유를 속박하고있는 동시에 그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도리는 확실히 일종 깨달음으로서 시인의 이런 발견이야말로 이 서정시의 창조적특징이며 독자들이 감탄하게 되는 핵심이다.     시는 바로 이 정과 사색을 생명화한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의 원동력이란 시적충동이고 어떤 형상이 떠오르게 한것이 시상이며 시적경지를 펼친 힘이 시적표현력이며 독자의 마음을 흡인하는 시의 매력이다. 생명이 생명으로서 역할을 할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듯 시의 본질은 본성이 담길수 있는 그릇이다. 이 힘은 생명의 속성을 담고있는 바탕의 하나로서 시의 생명력이라고도 한다.     2) 시적언어의 특징     언어예술이란 어떤 소리가 입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말의 아름다움, 오묘함, 진실됨, 간절함 등이다. 시어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닐 때 미적가치와 예술가치를 지닌 언어로 거듭난다. 시는 시적소재로부터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힘과 시인의 경험과 그 사물로부터 새로운 가치창조성을 지니게 하는 은유와 상징과 아이러니를 지닌 언어를 창출하여 그것이 음악이 되게 하고 그림이 되게 하고 춤이 되게 하는 문학예술이다.     짧은 시어속에 보고 느끼고 생각한바를 명확하게, 풍부하고 깊게 또는 넓게 전달하는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본인의 심령에 사무친 소리가 외부로 나와서 독자의 마음의 귀와 눈속에 전달되고 그것이 독자자신의 정서처럼 되여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울리는것이기때문에 훌륭한 시를 일러 예언서라고도 한다.     원론적으로 시어란 시에 사용하는 언어로서 다양하여 부드러운 언어의 련결로서도 복잡한 내용을 나타낼수 있으며 또는 난해하게 생각되는 언어조합이 아니고는 작자의 이미지를 나타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근본은 단순하며 작자가 마주한 진실에 대하여 거짓을 말할수 없는 엄격한 시의 정신에 있다.     18세기의 서방시인들은 시어는 저급적이거나 전문용어, 범속한 용어여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우회적이고 보다 더 고상한 대용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워즈워즈는 산문의 언어와 운문의 언어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타당성있는 시어의 판단기준은 감정의 자발적류출이라고 하였다.    시적언어의 바탕은 일상적언어지만 또 일상용어가 모두 시어로 되는것은 아니다. 일상용어는 지시적의미를 갖지만 시어는 함축적의미를 가진다. 또 시어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의 질서에 의한 리듬을 가지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다의성 특징을 가지고있다.     이미지화된 언어야말로 시를 산예술로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리하여 존재를 개념으로 인식하느냐 이미지로 감지하느냐 하는 문제는 시와 철학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시어의 함축의미는 어떤 정서적효과를 취지로 알뜰히 선정된 의미이며 출발점은 지시적의미이지만 목적지는 새로운 형상적의미가 더 부여된 예술경지이다. 하지만 독자의 순통한 열독을 방애하기 위한 장치를 설정하는것이 현대파시의 언어구사 특징이다.     낯설음이 의미를 이동하는 방법으로 얻어지는것이 아니므로 비유적이미지의 인관관계를 차단하라고 주장한다. 시어의 함축적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어가 그 시에서 더 획득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례컨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번지”의 의미, “구획된 땅의 번호”라는 의미를 “문명, 자연적삶의 터전”으로 터득하여야 옹근 시의 의미도 리해할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여난 시어는 명쾌한것인 동시에 천하지 않은것”이라고 했고 발레리도 “아주 아름다운 문장에서는 구절이 떠올라있는것처럼 보이고 심정을 자동적으로 알수 있으며 물체도 정신화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 자고로 “시에서의 절주는 그의 외형이며 생명”이라는 특징은 시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규칙이 되였다. 이런 외재형식의 특질을 몇개 조목으로 귀납할수 있다.     첫째, 원래 지칭하려던 A를 B로 바꾸어서 A=B라는 수사법을 택하는것이 보통이다. 로씨야형식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A=B라는 설명적어법을 택하면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므로 독자들이 왜 A를 B라고 표현했을가 생각해 보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 스스로 원래의 형상을 떠올리도록 만들기 위한것이다.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의 마지막련 “이제는 저 달이 설음인줄은/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서 시인은 달을 보면 설음이 난다는것을 달이 곧 설음이라고 비유하고있다. 김춘수는 ≪나의 하나님≫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라고 읊고있는데 원관념 “하나님”을 “비애”로 “살점” 등으로 바꾸어 은유의 형식을 쓰고있다.    둘째로 시적대화에서 이런 어법때문에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외연이기보다 내포적으로 쓰인다. 시적어법은 표현과 의미가 1:1로 대응되는것이 아니라 한마디에 많은 의미를 담는 다의성을 띠며 무엇을 명백하게 해석하기보다 암시적으로 어떤 상태를 제시한다.     산문이 말을 최적의 순서로 엮은것이라면 시는 최상의 말을 최상의 순서로 배렬해 놓은것이라고 할수 있다.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에서 시는 더더구나 최적의 언어예술이 되여야 한다. 문학론에서 요구하는 언어의 형상성, 정확성, 음악성은 문학(시)의 영원한 세가지 법보이다.     시에서 리성이 형상을 압도해서는 안된다. 심각한 사상만 있어도 안되고 미사려구만 있어도 안된다. 리규보는 가르치고있다. “시는 의(意)가 주되므로 ‘의’를 잡는것이 가장 어렵고 말을 맞추는것은 그 다음이다. 의도 또한 기(气)를 위주로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바로 이 ‘기’의 우렬에 따라 의의가 깊고 옅음이 생기는것이다. 대체로 글을 깎고 다듬어 구(句)를 아롱지게 하면 아름다움에는 틀림없다. 허나 거기에 심후한 의의가 함축되여있지 아니하면 처음에는 볼만하나 다시 씹어보면 맛이 없어버린다.”     리규보의 말처럼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수 있어야 하고 듣는 이의 령혼을 뜻대로 이끌어나갈수 있으며 오직 사상이 언어로 전화되고 언어가 사상으로 전화될 때 훌륭한 시로 될수 있다. 만약 생활소재를 바다라고 한다면 문자, 사상은 그속에 용해되여있는 물질이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결정체의 형식으로 현연될 때 시는 곧 그 결정체로 나타난 소금이라 할수 있다. 그것은 일종 승화이며 응결이다. 현대파시인 발레리는 시속에 사상은 과실의 영양가와 같이 스며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일상생활용어에서 비유를 많이 적절하게 쓰면 담화내용이 운치를 돋우고 생동하며 풍부해진다. 그런데 대부분 경우에 표식의 류사성에 의하여 사물의 형태나 느낌을 표현한다. 그러나 시에서 만약 보이지 않는것을 가시적인 구체사물로 바꾸거나 리해하기 어려운 관념을 쉬운 관념으로 바꾸면 산문적인 비유의 차원에 머믈고만다.     셋째로 기타 쟝르보다 더욱 유기적이고 집중적이고 조직적이다. 시는 어느 한 순간에 연소하는 정서를 함축하여 말하는 쟝르이기에 시적이미지는 물론 말하는 어조, 형상창조를 위한 시어선택, 그런 시어들의 조직과정에 발생하는 리듬까지 보조관념에 맞추어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로써 유기적이고 집중적인 구조로 완성된다.     한키로그람의 장미기름을 얻으려면 2천근의 장미꽃송이를 압축해내야 한다는 비유가 있다. 한키로그람의 꿀을 빚기 위해 한마리의 꿀벌이 30만 공리의 길을 날아다니며 천만송이 꽃송이에서 채집하기에 꿀이 그처럼 달콤한것이다. 시는 라티움제련과도 같으며 장미기름을 짜내고 꿀을 빚는것과 같다.     넷째로 산문에 비해 음악적인 특점을 강구한다. 지금은 이것이 전통시에 국한되는 요구로 되였다. 현대시에서는 음악적속성은 홀시되고 파괴되여버린다. 이와같은 변화는 독자가 감각적리듬보다 감성상태에서 작품을 자률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때일수도 있다.     지금은 쩨마만 서정적이면 형식이나 기법에서 거의 산문화되는 사례들이 많다. 시인들이 어떤 실험의식에 몰입하여 새 틀도 마련하지 못하고서도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신록처럼 아름다운 풍취를 주는 리듬마저 외면한다면 시는 존재가치를 잃고 차차 자멸을 자초할것이다.    숨김의 원리에 의한 암시성의 본질을 몰각한채 원관념과 보조관념사이에 넘기어려운 장벽이 설치되여야만 좋은 시가 되는것은 아니다. 시란 자아와 세계의 만남에서의 미적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구원으로 나가야할 경우 호소하는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해득하는 의미로움만이 시의 미덕이고 미학이기때문이다.     3) 시의 내재적특징     (1) 정감성: 시에서 상상이 중요한것은 사실이지만도 정감과 격동이 없으면 시인도 없고 서정시도 없다. 그래서 “시인을 감정의 총아”라고 한다. 프랑스의 시인 볼라는 “서정시는 환호, 감탄, 흐느낌…의 선률의 발전이다.”라고 정채롭게 표술했다. 망울짓는 봄꽃을 보면 희열과 반가움속에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그것을 읊조려보고픈 표현욕과 더불어 마음이 설렌다. 때론 조용히 핀 꽃을 보며 까닭없이 애틋해지고 흘러가는 시내물을 보며 문득 알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될 때 이런 심리적동요ㅡ설레이는 정서가 감각을 통해서 대상물ㅡ곧시를 찾게 된다. 아, 시는 어디에서 찾을가? 잔잔히 내리는 보슬비속에? 꽃잎지는 애처로운 소리에? 솔솔솔 꽃바람에 실려올가? 정다운 저 물소리에 있을가?     시는 감동과 감정의 글, 가장 아름답고 짧은 말로 문자화된 사상 즉 사상과 형상의 융합으로서 곧 시인의 심령의 외재세계이다. 시인이 외재적사물에서 어떤 촉동을 받았을 때 외재적현상이 내재세계속에 이입되여 심령속에 침투되고 사상, 감정이 그속에 잦아들었다가 특유의 선률과 절주로 용솟음쳐 나온다.     따라서 시는 어디까지나 미적절주의 창조이고 시인의 정감의 연장선이며 심령의 노래,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것의 메아리이다. 그래서 시를 “감정의 왕국”이라하는것이다. 시는 용속사회학도 아니며 정치의 메가폰이 아니다. 시의 사상은 정감을 통해 체현되는것이지 선률을 통해 연장되는것이 아니다. 시가 추구하는것은 일종 경지이다. 유성유색(有声有色)의 시혼은 시의 절주와 음악적선률과 경지중에 존재할뿐이다.     고시로부터 신시에 이르기까지 의경을 시의 최고규범으로 삼는다. “의경”이란 원래는 불경에서 온 모종 감오의 경계를 의미하였다. 의경은 시인의 사상감정과 객관사물의 결합이다. 창조해낸 시적경지는 정신과 형상이 겸비된 예술경계로서 곧 “의”와 “경”의 화해의 통일이다. 즉 시적대상물에 대한 시인 특유의 감정침투를 말하기도 한다. 객체에 대한 주체의 침투는 다음 몇가지 정황에서 표현된다.     가) 감정이입: 시인은 주위의 사물을 자기중심으로 리해하려는 본능이 있으므로 생물과 무생물에 인격적요소를 이입하여 생각하게 된다. 시인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은 예술작품이나 자연, 대상 따위의 요소속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불어넣어 자기의 대상이 서로 통한다고 느끼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감정에 휩쓸려 들어가서 필요에 따라  자기 본성을 되찾을수 없는, 그리고 분리되지 못하는 불변의 화학적용해 현상이다. 심미주체는 자기의 풍격, 기질, 사상감정을 객체에 옮기여 인화(人化)와 심미화의 복합체를 이루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감정을 대상속에 이입시켜 마치 대상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것처럼 표현한다.     본래 감정이입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생물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유정물로 만들기도 한다. 전자를 본래적감정이입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본래적감정이입이라고 부른다. “객관화된 자기 가치감정”이라고 할수 있는 정감이입의 최고경지는 경물과 자아, 량자를 망각하는 상태 즉 교감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례를 들어보자. 님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여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 들렀다가 날잊고 깊이 든 잠 깨와볼가 하노라.     작자는 상사몽에 빠진상태여서 귀뚜라미가 되는것으로 객체를 주체화시킨다. 이렇게 객체가 주체화되고 다시 주체가 객체화되는것을 심미적감응이라 한다. 관상자가 어떤 경물에 완전히 매료되였을 때 물아(物我)의 구별이 소실되고 나의 생명과 경물이 서로 교류되는 경우가 시인에게는 보통일이다. 시인은 자연속에 푹 빠져버리고 대자연도 나의 심령속에 빨려 들어온다. 이리하여 나와 대자연은 혼연일체로 되여 함께 승화되고 함께 전률한다.     리백의 ≪촉도난≫은 놀라운 상상과 과장, 기발한 묘사, 생동한 형상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대자연을 노래하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운명을 근심하는 우국정신을 표현했다. 독자도 시에서 기이한 산천경개를 답사하는듯 현실감을 가지게 되고 감탄과 더불어 환상같은 예술경지에 도취되지 않을수 없다.     문학은 작가의 체험과 감수를 표현하지만 보통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형상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인간이면 거개 가지는 공성의 사상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새롭게 깨우치는것이 문학의 사명이다. 하여 사람들이 늘 보아 무심한 경물도 시인의 심장을 거치면 한폭의 풍경화가 되는것은 시적마술이다.     시인은 일상의 삶에서 체험하고 느끼고 사색한것을 제재로 하고 그것을 문학어로 형상화하여 새로운 예술적인생현장을 펼쳐보인다. 인간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들에서 보다 아름답고 보람있는것에로의 지향을 가지게 하는 이런 문학현상은 시인이 상상의 나래와 허구의 힘을 입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산이 날 에워싸고/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 넓은 뜻의 심적련합작용의 한 형식이다. 대상과 인간감정이 완전히 결합되여 혼연히 융합하는 경우, 미적감정이입이라 하고 이것을 미의식의 근본원리로 보는것이 철학자 립스 등이 명명한 이른바 감정이입미학이다.     사람의 감각에는 세가지가 있다. 본체감각기관에서 산생되는 감각에는 운동감각과 평형감각이 있다. 내부감각기관에서 산생되는 감각에는 기체각(机体觉)과 통각이 있다. 외부감각기관에서 산생된 감각에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과 취각이 있다. 사람의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 호상 옮겨지는것을 통감(通感)이라 한다. 통감은 사람의 련각(联觉)에 의해 형성된다.     련각이란 대뇌신경을 거쳐 형성된 각종 감각기관의 상호작용으로서 한가지 감각기관을 흥분시키는 동시에 다른 감각기관의 흥분도 야기시키는 련속적인 심리운동이다. 시인은 왕왕 통감에 의하여 객체의 침투를 더 순리롭게 완성하며 더욱 정확하게 심미정취를 체현시킨다. 통감을 떠나서는 심미반영이 불가능하다. 통감수법은 현대시수법이 아니라 고금중외에 다 있었다. 통감의 운용은 중국의 조기에 속한 시들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례를 찾을수 있다. ○ 나는 하늘 골짜기에서 풍겨오는 란향의 무거운 향기를 맡는다. (풍만초) “란향”이 무겁게 감수된다. 이는 취각과 기체감각의 전환이다. ○ 나의 꿈속에서/달콤함은 꿈속에 광휘였다. (서지마) “달콤함”이 “광휘”롭다. 량자는 미각과 시각의 소통이다. ○ 나는 그곳에 누워서/태양의 향미를 짓씹었다. (대망서) “태양”도 가히 짓씹을수 있다. 시각속에서도 맛을 볼수 있다.    “미”와 “향”은 또한 취각과 미각의 소통이다. 통감은 시의에서 일종 수법으로서 시의 예술감각에 속하는바 잘 리용하면 시의를 깊게 할수 있으며 더욱 미묘하게 사상감정을 토로할수 있다. 고대희랍의 시인들과 희곡작가들도 이 수법을 썼고 랑만주의시인들도 써보았다.     문학은 작가의 체험을 형상화하지만 그 형상에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한다. 순수경물을 읊은 시에 시인의 남다른 사상감정이 맥맥이 흐르고 독자는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질감을 가지게 되고 공명하게 되는것은 그때문이다.   나) 수의적변형: 수의적변형이란 작가가 자기의 의지, 념원에 따라 객체를 임의로 개변시키는것을 말한다. 사람의 사유는 시종 론리적일수 없다. 시인에게 있어서 인간화된 자연의 감각은 예민하고 기이한바 때론 시적감각이 일종 착각과 변형이기도 한것이다.     이리하여 리백에게 있어서는 “백발이 3천장”, “은하수 구천에서 떨어지네”도 너무나 당연한 느낌이 되였고 시인의 느낌 또한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울리기에 충분하다. 뭇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심히 보이지만 시인의 심령속에는 밝은 달이 그저 밝기만 한것이 아니라 빈정거림으로도 될수 있고 가로등은 비웃는듯 한눈을 껌벅거리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되기도 한다.    꽃은 웃고 잎은 반기고 열매는 향기로운 입술로 말한다. 새는 나를 부르고 별은 하늘가의 이슬로 보인다. 시적감각은 때로 일종 환각이다. 니체는 예술세계는 두가지 정신으로 구성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꿈”인데 그 꿈의 경계는 무수한 형상이라고 했다. 시는 일정한 환각상태에서 존재한다. 내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다. 방불히 정신환자의 신경착란처럼 일종 거대한 심리압력하에 형성된 일상의 도리에 맞지도 않고 알둥말둥 한것을 표현한다. 때론 주체를 객체화하기도 한다.     작가가 창작과정에 너무 사색에 몰두하게 되면 주객체가 혼연일체로 융합되는 경지에 이를수 있는데 이것을 주체의 물태화(物态化)라고 한다. 즉 주체의 사상감정, 심미취미가 불가피적으로 침투된다는것이다. 례로 들어보자.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세요? 문밖 오솔길로 달려오는? 아, 당신이였군요. 분명 당신이 발걸음소리지요. 문이 열리네요. 문이 열리네 락엽 한잎 방안에 날려드네요. 아, 바람이군요. 바람이 가을바람이 문밖에서 나무를 안고 몸부림치네요.     시에서 님을 기다리는 련인의 심경을 쓰고있다. 이 시에 착각이 관통되여있다는것을 쉽게 보아낼수 있다. 나무에 휘감겨 우는 바람소리가 님의 발자국소리로 들렸던것이다. 님을 기다리는 절절한 마음이 아주 감화력있게 안겨지는것은 바로 이 착각의 표현때문이다.     시적감각은 이처럼 일종의 환각이다. 이런 환각은 몽경과 같아서 일체감각우의 공간을 질주하는바 한절반 인간세상에 있고 한절반은 선경에서 헤맨다. 니체가 말한것처럼 꿈의 경계는 무수한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꿈이면서도 현실이기도 하고 새로은 정서세계에서의 감흥이다.     (2) 상상성: 상상은 형상과 전형을 창조하는 기교상 가장 본질적인 수법의 하나이며 형상창조의 필수조건으로서 한 작가의 예술적재능의 중요한 조성부분이다. 시는 상상의 총아이다. 벨린쓰끼는 “창작과정은 오직 환상(상상)을 통해서만 완성된다.”고 하였다. 상상의 전제는 진실하고 풍부한 생활체험이다. 상상이 작가의 풍부한 생활체험과 생활에 대한 심각한 인식을 기초로 하였을 때에만 그 상상에 의해 창조된 예술형상이 선명하고 진실한것으로 된다.     시인의 상상력의 세계를 중시한 리론가는 영국의 랑만주의자 코울릿지로서 그는 “상상력을 조형하는 힘” '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상상력은 인간의 사고에 존재하는 능동적요소와 수동적요소를 결합하는 중간적능력으로서 시의 경우, 이러한 능력이 의지에 의해 규제된다. 그에 의하면 제1상상력과 제2상상력이 존재한다. 제1상상력은 유한한 정신이 무한한 자아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창조행위의 반복을 뜻한다. 제2상상력은 전자의 메아리로서 인간의 의식적의지와 공존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일반인에게는 생경하고 심지어 사이비하고 경악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보들레르는 상상은 “일체 공능중에서 녀황제이다.”라고 하면서 문학, 특히 시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는 환상과 감정의 백열화이고 상상은 시가 불새로 되여 나래치게 하는 금빛날개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시적상상은 생활론리와 정감수요에 복종해야 하는 동시에 예술취미ㅡ상상주체의 예술취미를 체현해야 하며 흔상자의 예술취미도 고려해야 한다.     시적상상에서 예술취미를 추구하여 상상재료를 이식접목하기도 하고 변형시키기도 한다. 예술취미는 생활의 취미가 아니다. 전자는 주관적추구이고 후자는 객관적규정이다. 예술취미와 생활론리는 시적상상을 제약한다. 시의 형성에서 령감은 상상과 정감분출의 돌파구로 된다. 뿌쉬낀은 령감은 민첩하게 인상을 감수하는 일종의 정서라고 하였고 애청은 령감은 곧 시의 잉태라고 하였다.     상상의 주도적표현과 예술취미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예술취미는 상상의 내용을 제약할뿐만아니라 예술상상의 류형도 제약하기때문이다. 예술창작에서의 상상은 현실적상상과 정감상상으로 나뉜다. 현실적상상이란 바로 생활론리를 선행시키는 상상이다. 정감상상은 현실적상상과 다르다. 생활론리와 예술취미의 의거는 내용과 형식, 주객관, 리지와 심미의 필연적인 련계의 의거이다.     만약 소설에서 묘사하는것이 “전형환경중의 전형인물”이라면 시는 곧 “전형환경중의 전형정서”이다. 이는 시적감각이 때로 사상의 지각화라는 설명이 된다. 시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바 감각, 지혜로서의 시는 곧 인생의 비평, 인생철리의 해석이 된다. 그만큼 시의 사상은 정감속에 스며들어 정감을 통하여 체현되는 메아리이다.     통찰력이 있는 상상력은 외재사물의 현상에 머물지 않고 내면적인 형상속에 침투한다. 련합적인 상상력은 사물에 대한 관념, 정서에 정서적으로 친근한 심상들을 련합한다. 이런 시적경지는 사상을 억지로 붙이는것이 아니라 시적 절주와 음악선률의 경지속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중국의 시인 사백의 서정단시 ≪단풍≫을 흔상해 보자. 바람이 단풍잎을 발뒤꿈치에 던져왔다. 오, 가을이구나. 록색의 생명에도 더운 피가 있었음을 서리 맞은후에야 나는 알았다.     이 시에서 시인에게 가슴치는 충격을 준것은 저절로 지는 여느 나무잎이 아니라 찬가을 바람에 던져진 단풍잎이다. 이런 시적계기는 많은 시인에게 포착될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촉동받은것은 가을의 한 측면ㅡ흥망성쇠의 징표인 조락의 서글픔만이 아니다. 단풍잎, 그것은 한 인간의 생명의 파란만장한 력사의 상징물로서 누구에게나 해당한 감수인것이다. 그것을 초월하여 시인이 문뜩 깨우친것은 푸르던 그때(일상적생활상태)는 미처 몰랐던 하나의 섭리ㅡ준엄한 시련을 겪은후에야 생명의 열렬함과 그속에 내재된 충성의 마음이 “나” 혹은 사람들에게 자각되였다는 그 진리이다.     (3) 조약성: 시에서 조약성은 함축을 전제로 한다. 시의 조약성은 정감성과 상상에서 온다. 강렬한 정감은 시인의 생활체험, 생활 감수의 승화이고 농축으로서 그것이 격발시킨 상상력은 필연적으로 대폭도의 조약을 약속하게 된다. 즉 고도의 세련된 표달을 강요한다. 이 강요성이 곧 시의 조약성을 결정한다. 일체 문학형식에서 가장 정채롭고 가장 절약된 필묵으로 가장 풍부한 생활내용을 체현할수 있는 문체는 아마 시를 내놓고는 더 없을것이다.     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똑똑히 감수할수 있어야 하거니와 오묘한 뜻을 담고있어야 한다. 시는 우물처럼 깊어야 하지만 그 시원한 물맛을 볼수 있어야지 현대파시처럼 수수께끼가 되여서는 안된다. 김소월의 시 ≪만리성≫이야말로 시의 조약성을 보여준 시이다.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루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시에서 외재적표현이 시사하는 뜻은 일목료연하다. 그러나 파고들면 밤이 지새도록 쌓고 또 허물어버린 그 상념의 만리성ㅡ그 피나는 쌓음과 가슴 아픈 허물림의 과정에 담긴 심령세계는 무한하다. 따라서 독자가 감수하는 예술경지도 무한하게 펼쳐진다.     거기에 가버린 님에 대한 막무가내한 미련의 애모쁨도, 인생의 파란곡절에 대한 제시도, 반복무상한 인생마당에 세워지고 허물어지는 막연한 동경의 궁전도, 그것을 자각한 철리적사색도 혹은 빼앗긴 조국에 대한 옛정을 이룰수 없는 절망감도…다 가능하다. 이처럼 시는 시행의 대폭도의 조약이 진행되는바 심리적시공간은 실제시간과 공간의 계선을 파괴해버린다.     (4) 음악성: 시에 노래가 있다고 하는것은 시의 음악성을 두고 한 말이다. 시는 글속에 출렁이는 물결같은것이 있는 춤추는 글이다. 시의 음악성도 그것의 정감성에서 온다. 시가의 음악성은 여러가지 인소의 융합으로 이루어지지만 가장 주요한것은 절주와 운률이다.     시가의 절주는 정감절주의 반영으로서 정감의 기복이 시의 절주의 기복을 결정한다. 우리 말 시의 운률에는 정형률과 자유률이 있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전통적정형률은 시조로부터 시작되였다. 정형률에는 3. 3조, 3. 4조, 4. 4조, 4. 3조, 7. 5조 등 다양한 률조가 있다. 운률은 또 외형률, 내재률로 나누어 고찰할수 있다. 음수률의 전형적실례로 ≪고향의 봄≫을 들수 있다. 김소월시의 경우 운률조성에서 독창성도 찾아볼수 있다. 례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가 하니 그리워 그냥 갈가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이 시는 차마 헤여지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떠나야만 하는 사람의 망설임과 그리움을 전통적(민요조) 률조인 3음보(7. 5조)의 률격에 담아내고있다. 특히 유음과 비음, 그리고 모음으로 된 시어를 사용하여 음악적효과를 얻고있다. 특히 7. 5조를 이리저리 허물어 아름답게 분행한것으로서 그의 많은 시에서 이채를 띠고있다. 김소월의 일련의 시의 형식은 실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있다. 7. 5조와 그것을 기조로 한 변체, 3. 4조와 4. 4조 등 다양한 정형률의 구성, 압운, 반복, 반향, 굴절 등 시어와 아름다운 구사에서 실로 따를 시인이 없다.     ⓛ 음위률의 례: 돌각담에 속삭이는 해발같이/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이 시구에는 두운, 요운, 꼬리운이 운용되였다.     ② 음성률: 모든 시에 존재하는 운률로서 음의 고저, 청탁, 강약, 장단 등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생기는 운률이다.     시에서 행이나 련을 구분하는 근본원인은 바로 이런 운률 즉 시의 음악성에서 기인된다. 김소월의 시에 있어서 그 형식이 극치에 이르고 있는바 아름다운 시어와 가장 우아한 리듬이 시적정서와 조화되여 울려나온다. 김소월의 시 ≪삭주구성≫도 좋은 실례가 될수 있다.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구성은 산을 넘은 륙천리요 물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륙천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 합디까 들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있을텐고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륙천리     7. 5조, 3음보의 민요적가락에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이중적의미를 지닌 상징적시어를 사용하고있다. 그리고 물리적거리를 나타내는 시어로 정서적거리감을 조성하고있다. 그리고 우리 말의 음향적특성에 의해서 아름다운 운률이 형성된다는것은 주목할바이다. 양성모음 “ㅏㅡㅗ”는 명랑성, 개방성을 가진 어음으로서 그것이 들어간 단어를 잘 리용하면 밝고 여린 느낌을 준다. 례: “아름다운 강산에 아침노을 붉은데 사랑하는 내 나라 영예로 빛나라” 또 유향자음 “ㄹ”의 소리는 완급성, 처지는듯한 감을 준다. 례: ≪륙승정 련못가에 늘어진 버들은 실실이 날실로 늘여나 볼ㅡ가≫     여기서 알수 있는바와 같이 운률이 시적대화에서 발휘하는 기능은 다양하다. 이를 대체로 다섯가지로 귀납할수 있다. 첫째로 시와 산문적대화를 구별하는 뚜렷한 징표구실을 한다. 둘째로 독자의 미적쾌감을 자극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셋째로 시의 내용에 대한 독자의 리성적비판능력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발휘한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을 례로 들어보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녕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분히 지레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를 리듬이 없는 일상의 대화로 이야기한다면 듣는 이는 그토록 사랑하는 님을 왜 보내려고 하느냐? 정말 꽃을 뿌려줄 작정이냐고 따지고싶어질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공감하는것은 시의 아름답고 정교한 리듬에 신경쓰이고 매료되였기때문이다. 김소월의 대부분 민요풍의 시들을 읽으면 이 점을 감수할수 있다. 김소월만큼 조선말의 음향을 잘 살린 시인은 아직 없다.     넷째로 시적대화의 구성, 전개의 원리가 된다. 다섯째로 어떤 의미나 뉴앙스를 강화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운률에 대한 이상의 서술은 “시란 운률적인 언어로 시인의 사상감정을 표현한것”이라는 고전적정의나 운률학에 기점을 둔것이다. 우리 말 정형시에서 운률은 물리적으로 류사한 자질들을 배치하여 얻어지는 질서감이다. 즉 언어적, 내지는 어음적인것에 의거했다는것이다.     시에서 시로 하여금 생명을 갖게하는 가장 주요한 특징은 시적형상이지만 운률은 시에 형식상에서의 존재리유와 가치를 부여한다. 시는 형상을 떠날수 없다. “우리는 물론 다만 앵두나 배는 먹을수 있다. 그러나 과일을 먹을수는 없다. 한것은 추상적인 과일을 먹을수 있는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시의 구성을 이루는 요소의 일체화에서 감성에 직접적영향을 줄수 있고 감흥에 직접 자극을 줄수 있는것은 소리와 뜻이며 음악성이므로 음악성이 짙은 시일수록 감성자극이 크고 폐부에 전달되여 깊이와 넓이가 정비례된다. 전통적작시법상 리듬과 운률을 일시동인해 오면서 다루어왔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정형시가 자유시로 번지고 작시법의 초점은 운률에서 내재적인 리듬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낯설게 하기를 선호하면서 운률미는 뒤로 밀리였다.     4) 시의 구조적특징     시의 이미지의 구조는 시가 어떻게 변화든 기본구조이다. 한편의 시를 시구조 전체로 고찰할 때 시적구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면서 자체의 법칙을 스스로 갖는다. 현대시의 이미지가 의미거부의 경향을 띠는것은 순전히 이때문이다.     시의 내용이란 시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요소를 말하며 구조는 이러한 요소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구성되고 조직되는가를 말한다. 시가 구성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시어이다. 다음 운률로서 시가 시로 될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시는 문학예술의 결정체라고 한다.     시는 함축을 강구한다. 하여 “암시, 계발을 통하여 독자앞에 심각한 의미를 가진 경계를 펼쳐보인다.”따라서 내재결구는 이런 암시, 계발의 효과에 도달하기 위해 짜인다. 시의 내재결구는 문자, 구절의 배치가 아니라 의념, 의상의 배치이다. 이런 배치는 곧 문자, 사상의 배치가 아니라 문자화된 사상이다.     시는 시각적인것도 중요하다. 그 시가 외형적으로 보이는 문장구성의 형태미도 추구해야 한다. 눈앞에 나타난 한편의 시의 정서는 아기자기해야 한다. 세번째로 필요한것이 새 이미지이다. 시각적, 미각적, 후각적, 촉각적, 색채적, 감각적이미지를 기존의것에서 탈피시켜 력동적이며 파격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과거의것으로부터의 해탈, 새로운 이미탐색의 시에로의 전환 그리고 비전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이미지 창조는 시인에게 숙명적인 과업이다.     이미지는 시의 속성이 형상화되는 핵심이며 화자가 독자에게 직접적감화를 주어 정서적환기를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인력적구조는 곧 독자로 하여금 감명, 감동, 감화를 받도록 하는 힘을 말한다. 시어가 운률을 지니고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것은 곧 시적원동력이다. 길을 걷다가도 시어가 나오는가하면 잠결에 번개같이 스치는 무엇인가 있어 시를 읊조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란 근본적으로 계시적산물이다. 시인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독자로 하여금 오해없이 접수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전제이다. 머리에서 나온 시행조직은 머리로 풀이하게 되고 심장으로 피운 정감의 꽃은 페부로 그 향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리백. 두보, 도연명, 김소월, 박목월 등의 시는 지금도 향기만방한다.     이로써 현실적인것, 인간다반사의 희노애락을 정서적으로 표현하는것이 수필이라면 시는 그러한 정서들을 함축하여 새로운 정서적의미를 창출하고 창출된 그 새로운 가치는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속되는 최첨단의 예술창조세계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3. 시의 류형     시의 류형은 그 내면적형식에 따라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눌수 있고 외면적형식에 따라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나눈다. 그리고 대화내용의 길이에 따라 장시, 단시로 나누며 전체를 구성하는 작품들의 독립성에 따라 련시, 단시(单诗)로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문학의 발달변화에 따라서 서사시는 소설에, 극시는 희곡에 그 기능을 넘겨주고 서정시만 남은 형편이다. 그리고 서정시ㅡ정형시는 이미 영화를 다 누린 옛꽃이 되였다.    1) 서정시    희랍에 있어서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있는데 어원은 칠현금을 뜻하는것으로서 곡조를 가지고 노래되는것으로, 가창 내지 랑송에 적합한것으로 인식되여왔다. 따라서 음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오늘날 서정시는 어떤 심리상태나 사고와 감정의 과정을 표현하는 단 한사람의 화자를 제시하는 상당히 짧은 비설화적인 운문글로서 보통 1인칭으로 표현되지만 시속의 “나”를 시인 자신과 동일시하여서는 안된다.     서정시는 벙어리의 감각에다 말과 형상을 부여하며 그 감각을 밀페된 가슴속으로부터 예술적생명을 얻을수 있는 신선한 대기속에로 이끌어내여 그것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따라서 서정시의 내용은 이미 객관적사건의 발전인것이 아니라 주관 그 자체이며 그것을 거쳐 진행되는 일체의것이다.     서정시는 옮겨 이야기할수도 없으며 설명할수도 없다. 다만 읊고 느낄수 있을 따름이며 그것도 시인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대로 따라 외우면서 느낄수 있을 따름이다. 만약 말로 옮겨 이야기되거나 혹은 산문으로 고쳐 서술된다면 그것은 오색찬란한 나비가 방금 날아나온 보기 흉하고 껍질만 남은 고치로 변한것처럼 꼴불견이 될것이다.     서정시는 고정된 물질형식이 없다. 그러나 시가 문자로 고정되였을 때 “가장 훌륭한 문자의 가장 최적화한 배렬”이라고 할수 있다. “한수의 서정시는 정취로 시작되여 지혜로 맺힌다.”고 하는것은 서정시는 인간본성의 내면적인 본질을 구성하는 형상과 형태가 없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적형상과 예술적화폭을 창조하여야 하기때문이다.     미세한 정감의 불길은 사상의 부싯돌이 일으키는 불꽃으로부터 타오르는바 정감밀도가 높기에 단시의 예술적력량을 산생시킨다. 웽그리아의 시인 뻬뙤피의 명시 ≪너는 무엇을 먹느냐?≫를 흔상해 보자. 너는 무엇을 먹느냐? 대지여 너는 어이하여 그처럼 마시느냐? 이렇게도 많은 눈물을! 이렇게도 많은 피를!     이 시에는 단 두개의 물음이 있다. 그러나 짧은 넉줄속에 인간세상의 고통, 불행, 비애, 심지어는 학살과 략탈, 쟁투까지 담고있다. 시에는 전쟁에 대한 구체적묘사도 없고 인간과 인간의 박투도 묘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짧디짧은 넉줄의 시에 담겨있는 상징적함의는 많은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시는 상징해야 하며 허와 실사이에 대폭도의 조약을 해야 하며 소리밖에 소리가 있고 시구의 뜻밖에 뜻이 있어야 한다. 숭고한 격정, 힘, 생명력은 생활에 대한 초월이고 창조적초월이며 곧 생명의 상징이다. 서정시는 인류생명이 개인의 격정속에서의 꿈틀거림이기에 훌륭한 서정시는 그 생명력의 흐름이 독자의 마음의 터밭에 차분히 흘러든다. 그리고 예술향수로 비옥해진다.     시에는 허경이 있어야 하거니와 더우기는 실경(实景)이 있어야 한다. 즉 이른바의 진실한 시의의 실재적인 경계이다. 진실은 평용하게 직접 토로되는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형상으로 감동시킬것을 강조하고있다. 경물에서 정이 생성되여 즉흥적으로 시를 짓되 풍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것 모두가 실경이다.     시적정서의 대응물이 실경이고 그에서 생긴 감정, 정신 혹은 뜻을 “허경”이라고 한다. 허와 실은 예술정신의 두극이지만 많은 시속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있어 실속에 허가 있고 허속에 실이 있다. “시인은 자연과 인생을 대하여 반드시 그속에 들어가야 하며 또 반드시 그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속에 들어가매 능히 지을수 있고 그 밖으로 나오매 가히 볼만하도다.” “예술가는 심령으로 삼라만상을 비추어 산천을 대신하여 말하는바 그가 표현하는것은 주관생명의 정조와 객관적자연경상과의 상호융합, 침투로서 모든 동물이 즐겁게 살고 활발하며 못이 깊으매 령경(灵景)을 이루는것이다. 이 령경이 곧 예술이 예술로 되게 하는 ‘의경’(意境)을 구성한다.”(종백화)     물론 의경의 심층속에 숨은 뜻은 표층적의상자체에서 직접 체현되는것이 아니라 의상과 의상사이에 구성된 예술공간속에 존재하면서 비유와 상징과 암시 등으로 완곡하게 표현되여 느끼고 깨닫고 사상에서 얻음이 있게 한다. 백거이는 일찍 “시란 정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고 했다.    상술한바와 같이 의경은 정감을 주도로 한 정경융합의 통일체이고 “허”와 “실”의 결합이며 경물에서 형상이 창조되는 일종 심미예술공간이고 뜻이 함축되여 심미적운치가 무궁한 예술가경(佳境)인것이다. 즉 소설에서의 전형처럼 문학형상의 최고급형태의 하나이다.     의경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경계역시 일종 층차이다. 최저층차는 바로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이요 나무를 보면 나무요 구름을 보면 곧 구름자체이다. 그런 일호차착이 없이 곧이곧대로 묘사한 자연, 거울식의 완전한 현연은 예술이라 할수 없으며 그 이상 핍진하여도 태생적으로 죽은것이다.     시의 고층차는 오감의 경계일것이다. 바로 사물의 표층을 투과한 수정같은 정경이다. 이는 또한 인격, 개성, 기질이 시적형상속에서의 함축이며 일종 “허속에 “실”이 있고 “실”속에 “허”가 있는 내재선률과 절주이며 사상감정이 개성화, 육체화이며 대천세계에 독특한 특색이다. 이른바 “나는 산천을 대신하여 말하고 산천은 나의 정신과 만나는것”이다. 김소월의 시 ≪버리운 몸≫을 보자. 꿈에 울고 일어나 들에 나와라. 들에는 소슬비 머구리는 울어라. 풀그늘 어두운데, 뒤짐지고 땅보며 머뭇거릴 때 누가 반딧불 꾀여드는 수풀속에서 간다. 잘 살아라 하며 노래 불러라.     보다싶이 고독한 “나”는 소슬비가 내리는 들길을 혼자 걷는다. 이는 특정된 정감이고 형상이며 동시에 또 특수한 기분을 조성한다. 시에 비내리는 들판이 펼쳐있고 “뒤짐지고 땅을 보는” 하나의 커다란 돌처럼 독자의 마음의 못에 뚤렁 떨어지고 시행의 추진에 따라 잔잔한 파문이 일렁인다.     마치 반딧불 꾀이는 미궁같고 깨지 않은 꿈속같은 정경속에서 우리는 “뒤짐지고 머뭇거리는” 고독한 시인을 보며 떨어버릴수 없는 공허와 락담, 실락감에 가슴답답해진다. 이것이 김소월이 겪는 시대병이지만 독자도 시인과 함께 그 시대병을 앓게 된다. 시에서 보여주다싶이 인격의 층차, 경계를 제외하고도 의경을 창조할 때에 심경문제도 있다. 이런 심경(心境), 자연 역시 인격과 그 함양과도 유관된다. 그것을 무아지경이라 지칭한다.     2) 서사시     서사시는 운문형식으로 된 장편서사문학이다. 고대와 중세기의 주요한 문학형태로서 원래 음유시인들이 민간을 돌아다니면서 랑송하던 작품이였다. 고대서사시는 뭇신들과 영웅들의 행위를 중심으로 민족의 운명과 사건을 구가하였기에 기세가 웅대하였다.     서사시는 원시적서사시와 문학적서사시로 나눈다. 원시적서사시는 개인창작이 아니라 영웅전설이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다가 서사시화 된것이다. 반면 문학적서사시는 민족영웅을 읊었다 할지라도 시인의 예술적의식으로 창작된것을 말한다. 서사시적문예는 주관상태의 표백이 아니라 사건서술을 위주로 한다.     단떼는 이렇게 쓰고있다. “서사시의 흥미는 작자가 아니고 그 시속의 사건이다. 례를 들면 고대희랍의 위대한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개인적으로는 실제인물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을만큼 아무래도 좋은 인물이다. 다만 호메로스의 시속의 영웅들에 흥미를 느낄따름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듀쎄이아≫야말로 서사시의 전형이라 할수 있다. 영웅서사시는 바로 세대를 이어 구두로 류전되여오던 영웅전설로서 그 규모가 방대하나 얽음새가 교묘하게 잘 짜이였으며 언어는 형상적이고 정확하고 청신하며 표현력이 지극히 풍부하고 감화력이 강하다.     작자는 과장, 비유와 반복수법을 능란하게 운용하였다. 많은 비유는 일상생활과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하였고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인물을 그렸기에 개성이 두드러지게 하였다. 이 서사시는 거대한 예술적힘을 갖고있는 걸작일뿐만아니라 고대희랍사회를 연구하는 진귀한 력사자료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사시란 실제상에서는 서정서사문학으로서 질적방면에서든 량적방면에서든 모두 서사인소와 서정인소의 결합이다. 서사시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서정과 서사의 결합이다. 시라하면 일반적으로 서정을 위주로 하기에 서사시도 례외가 아니다. 서정이 결여한 서사시는 시행을 나눈 이야기글에 불과하며 오히려 산문같은 미적향수도 주지 못하게 된다.     결구상에서 서사시의 이야기정절과 세절에 응당 전형성과 개괄성이 있어야 하며 이야기는 될수록 간결해야 한다. 만약 시행이 빈번한 교대, 복잡한 정절과 많은 인물속에 빠져버린다면 시의를 희석시킨다. 그러므로 대표성적인것, 중요한 정절과 세절을 설치해야 하며 인물설정도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    서사시에서는 서사와 서정이 어떤 때는 물과 젖처럼 융화되지만 많은 경우에 질적통일이 있어야하거니와 량적구별도 있어야 한다. 시에 어떤 부분은 옹근 서사이고 어떤 부분은 전부 서정이기도 하다. 리백의 ≪장한가≫가 그렇게 구성된 시이다. 서사시에서 서사와 서정은 내용의 중요성에서는 평등하다.     그러나 이런 균등한 요구도 작품의 옹근 편폭속에서 서정부분이 서사부분을 훨씬 초월하는 정황하에서만이 실현될수 있다. 이를테면 네크라쏘브의 서정서사시 ≪대문앞에서의 사념≫은 모두 117행인데 90행이 서정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한 묘사로 되여있는데 독자들은 사실보다 진지한 서정에서 감동받는다     고리끼는 “풍경화외에도 풍속화도 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풍속화에 대한 묘사는 결코 장식도 아니고 렵기성도 아닌 시의 혈육ㅡ령혼과 통일된 혈육이다. 그리고 간단한 풍토인정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생활ㅡ지방특색과 민족특색, 시대특색이 있는 생활이여야 하며 생활에 특유한 색채와 흙냄새가 풍겨야 손색이 없는 서사시라 할것이다.     제재의 선택외에 어떤 시인은 그물식으로 사건을 엮는데 만족하면서 인물이 “무엇을 하는가”를 쓰지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묘술이 없고 더우기 “어째서 이렇게 하는가”에 대한 묘술이 없다. 혹 “영웅의 행위”를 쓰면 인간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쓰지 않는다. 이야기의 흥취성에 편향했기때문이다. 시가 심령의 선률의 연장선일진대 서사시도 례외가 아닌바 심령과 외재사물의 결합이 되여야 하고 응결된 수정체가 되여야 한다. 서사시에서 때론 심리묘사를 할수도 있는데 장편서사시《백두산》에서 감동깊은 한 장면을 보자. 꽃분이 주저앉아 두손으로 꽃잎 거둔다. 한줌 거두어 돌우에 놓고 두줌 거두어 돌우에 놓고... 산란하고 들뜨는 마음 (만날 수 있을까? ㅡ 샘물을 바라보는 처녀의 생각, 거울같은 물속에서 어글어글한 두둔 수심을 낱낱이 말하는듯ㅡ 에그! 내 무슨 생각을! 낯을 붉히는 처녀 (하략)     시인은 인물의 심리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묘사하고있다. 위험이 따르는 긴박한 시각이지만 있을수 있는 처녀의 절절한 련모의 심정이다. 이것은 복잡한 감정의 침투와 얽힘으로서 시행으로 하여금 감정과 심리상태와 더불어 기복을 이루며 진전시키는것이지 사건의 선후순서에 따라 진전되는것이 아니다.이것은 서사시에 고유한 서정성의 특성에서 결정된것이다.     3) 산문시    “산문시”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류행되기는 19세기이다. 산문으로 시적요소를 갖춘 서정시의 하나로서 정형시처럼 시적운률이 없고 자유시와 같은 현저한 리듬, 련과 행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산문체로서 쓰인것이 특징이다. 비록 문장구조상에서 산문형식을 취하고있지만 풍부한 서정을 가지고 시적 으로 생활을 묘사하므로 산문미와 시적인 미감을 풍기고있다.     산문시는 산문과 시의 특점을 겸유한 문체이다. 첫째로는 반드시 시이고 둘째는 산문의 특점을 흡수한 시이다. 즉 시적정감 및 세련미와 음악미는 산문의 령활하고 다양한 표현력과 하나로 융화되여있다. 산문시는 어디까지나 령롱하고 청신하고 간결할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성은 령활하여 산문과 비슷하다.     산문시는 전통적인 작시법규범의 제한을 크게 받지 않는바 시련과 시행과 글자수를 따지지 않는다. 산문시는 흔히 반복, 상징, 비유, 련상, 강조, 대구 등 표현수법을 포만된 감정으로 전형적인 생활현상이나 사물을 묘사하면서 의론을 전개하거나 서정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철리성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산문시와 서정산문은 엄격한 계선이 없어 때로 가리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산문시의 내용은 더욱 집중되고 언어는 더욱 간결하고 편폭도 더욱 작다. 서정색채가 매우 농후하고 언어가 시적인 서정산문은 산문시로 본다. 우수한 산문시는 짧고 세련되여있다. 로씨야의 뚜르게네브의 산문시 ≪문턱≫이 귀감이다.    시적정서와 생동한 화폭, 철리성이 결합되고 정경과 경물이 융화되여있어야 독자들의 련상과 상상을 불러으키면서 심미적향수를 안겨준다. 산문시는 재래의 작시법에 얽매임이 없이 비교적 자유롭기에 행과 련을 나눔에도 자유롭고 활발하여 마치 흐르는 물같으며 내재적으로 일종 자연스러운 절주를 이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이기에 무슨 수법을 쓰든 시의 기본특점을 구비해야 하며 격정이 있고 련상, 상상이 있어야 하며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시적언어로 씌여져야 한다. 그러나 속담이나 경구, 우화류와 또 다르다. 그것은 그것들에 시의가 없기때문이다. 로씨야의 뚜르게네브, 인도의 타고르 등은 모두 세계적인 산문시의 대가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문시의 각도에서 본다면 한편의 우미한 산문시는 우아한 분행시에 비해 또 다른 흥미를 끌며 자체의 감화력을 고유하고있다. 시의 형식이 문제가 아니다. 시인은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전달할 때 한편의 시는 정체적으로 에너지의 결구로 되여야 하며 시종 에너지를 방사해야 한다. 형식 역시 신축성을 가진다. 행을 나누고싶으면 행을 나눌수 있는바 고정적격식이 없으며 전통적시형식과 격률을 접수할수 없다고 한다.     4. 시창작원리     1) 보이는것과 보아내는것     시창작의 목적과 시의 존재의 리유로 말할 때 전자는 개체적인 자아실현 의 목적이고 후자는 전체적인 목적이 그 리유가 된다. 시창작의 본질을 론함에서 먼저 제기되는것은 시적대상에 대한 시인의 인식문제다. 시인의 예술직각은 흔히 일반리성감각을 초월한 개성화된 심미판단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 어떤 형상과 색채와 소리를 남다르게 파악하여 그것을 다시 표출하여 여러사람의 정서와 융합되는 공성의 정감으로 구체화한다.     시는 생활에서 받은 충격에 의한 그 시인의 내면화된 인식, 자아성찰로서 시인의 의식을 통해 반영된 세계의 구체화이다. 시의 출발은 시인이 시적대상물을 보고 느끼는것을 표현하는것이며 독자는 시인의 정감에 감응하는것이다. 이때 대상세계는 수동적으로 감지되는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각된다.     시적감동을 “경이로움”에 둔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지금껏 보여져 온 세계가 아니라 새롭게 투영된 특별한 세계, 우리가 무심코 보아넘겼던 일상의 경험에 대해 새로운 경지를 펼친것으로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정경을 재인식하게 한다. 즉 어떤 대상이나 현상의 복제품에 대한 일상적인식이 아니라 시적인식으로서 이미 표상된 대상을 부정하면서 새롭게 본 인식이다.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그 례로 해석할수 있다. 봄가을  없어도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맘 밝아도 쳐다 볼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의식의 대상이 되였을 때 달의 의미는 의식의 변화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무의적인 달이 유의적인 달로 다시 보인것은 무엇때문일까? 그것은 곧 지금에 와서 내의식이 작용하고있다는 뜻이고 그 의식이 작용할 때 비로소 달이라는 시적대상물은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였다는 뜻이다.     달은 지금까지 무관심의 상호관계에서 새 의미를 가진 세계, 새로운 경지로 펼쳐졌다. 이처럼 시인이 세계를 인식하는것은 새로운 존재로 시사된것이며 새 의미를 부여받음으로 해서 시적예술 경지로 부상하게 된것이다. 이처럼 한수의 시에서 중요한것은 그 시대에 산 시인의 인식과 체험과 평가이다.     시는 경험해석이 아니라 감수의 형상화이다. 시인이 인식한 세계를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해냈을 때 독자는 자기의 경험세계에 묻혀있던 그 대상의 새로운 정경을 인식하고 공명하게 된다. 예술적인 정감체험이라는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즉 시인이 남다르게 인식한 대상물을 표현해 내여 독자가 재인식하게 하며 그속에서 이채로운 정감체험을 실현하게 한다.     2) 세계관과 시의 정조     궁극적으로 시는 시인의 세계관에 따라 특수한 정조로 물들게 되고 독자는 그 물든 세계에 공명하게 된다. 말하자면 부정적세계관이 선행할 때 “달”은 슬픔의 대상이 될수도 있고 긍정적세계관에 의해 환락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새는 노래하는것으로 느껴지고 애처롭게 우는것으로 감지될수 있다. 이는 시인의 개성, 주관에 의해 특수한 정조로 물들기때문에 가능한것으로서 개성이 독특한 시인일수록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역설적진리가 성립된다.     시인의 개성은 주관적세계관에 의해서 나타난다 하더라도 보편성이라는 시대적흐름 우에서 벗어날수 없다  시인이 주관에 따라 세계를 자신의 정조에 맞게 채색한다는 말은 곧 세계와 자아의 동일시를 의미하는데 방법상 부동해도 세계는 자아에 적절하게 변용되며 이 변용된 세계가 곧 서정의 본질세계이다.     례1.  —成浑— 시조      말업슨 靑山이요 태업슨 流水로다      갑업슨 淸风이요  님자 업슨 明月이라      이중에 病업슨 이몸이 分别 업시 늙으리라     례2.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으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 .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례1)의 경우에 세계와 자아가 분별, 감동이 없이 혼연일체가 되여있음을 본다. 이 시에서는 주객일치, 천인합일의 경지가 실현되였는데 이는 내가 의식한 자연,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순리에 따라 흘러가고있음을 의식하기에 더 이상의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례2)의 경우는 자아와 세계는 분리되여있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저항하고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있음”에 대해서 “있어야 함”을 주장하고있다. “있어야 함” 의 당위적세계가 결여되여있기때문에 격정, 방황하는 마음이 되고 세계에 대한 적대적감정이 나타난다.     례1)의 세계는 순응의 세계이기때문에 목소리는 부드럽고 우리에게 안락한 서정적감동을 주고 례2)의 세계는 목소리가 높고 거칠며 강한 욕구를 인식하게 하여 감동을 주게 된다. 서정시의 원래 모습은 례1)의 세계라고 하겠으나 현대시에 있어서 우리는 례1)의 목소리로만 만족하지 못하기에 례2)의 세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곧 분렬된 현대사회의 모습, 그리고 쟝르의 순수성만 고집할수 없는데서 기인되였다고 할수 있다.     3) 시적표현기교    시에는 시로서의 표현기교를 가진다. 시의 예술적특성은 시적언어가 발휘하는 독특한 미적기능에 의해 실현된다. 시어의 구조는 구조지향성, 비유성, 문맥성으로 결성된다. 산문작가는 도구로써 언어를 사용하고 시인은 사물로써 언어를 사용한다. 전자는 실제적효용성,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있고 후자는 비실제적인 효용성 곧 심미성을 강조하고있다. 시인은 화가나 음악가처럼 하나의 사물의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이 창조하는 세계는 어떤 외부적대상을 지적하는것이 아니라 시인의 분노, 고뇌, 희열이 그대로 슴배여있는 또 다른 아름다운 동경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령혼이 깃들어있다. 그러면서 창조된 세계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그것은 육체화한 감동, 감정의 미분화상태에서의 뒤엉킴과 생생하게 현연되는 “사상”이다. 결국 시인은 언어를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언어에 봉사한다. (1) 직유적표현: 시적표현에서 직유법도 어떻게 쓰는가에 달린것이지 결코 진부한것이 아니다. 직유와 은유의 차이는 비유의 효과적차이다. 따라서 직유가 축적된것이 은유이고 반대로 은유가 부연된것이 직유라고 말할수 있다. 한국의 시인 변영로의 ≪론개≫를 례를 들어보자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우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 시는 전적으로 직유에 의하여 이루어진 시로서 분노와 종교, 정열과 사랑, 강낭콩 꽃과 푸른 물결, 양귀비꽃과 붉은마음 등이 모두 류사한것으로 비교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매우 쉽고 독자들이 바로 알아볼수 있지만 시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불분명하고 비논리적이어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너무 작위적이고 기괴한 비유는 결코 좋은 비유가 아니다.     (2) 은유적표현: 은유는 하나의 관념, 이미지 혹은 그 이상의 관념, 이미지 혹은 상징들이 사용됨에 따라 선명성, 함축성이 높아지는 압축된 표술이다. 은유는 비교, 대조, 류추, 류사성, 동일성, 융합의 원리로 다양하게 기술되여 비유에서 고층차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은유는 기지의것으로 미지의것 혹은 불완전한 지(知)를 명료하게 깨닫게 하고 그 본질을 정의하고 서술하는 힘을 가진다. ≪꽃≫ 박두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하략)    이 시에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원관념은 꽃이다. 그 꽃은 여러가지 다양한 사물에 바로 맺어져있다. 그리하여 시적인 긴장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의미의 함축성도 높여주고있다. 원관념인 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개념이지만 이것이 “속삭임”, “울음”, “피흘림”, “피방울”, “정적”, “호심” 등 상대적으로 구체적이고 이미 잘 알려져있는 여러개 보조관념과 동일성을 근거로 결합되여있다.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는 외형상의 류사나 동일성보다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이며 가치가 있는 동일성이 된다. 이렇게 시에 있어서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사이의 동일성이 희박할수록 좋은 시가 된다. 현대시는 두사물사이의 류사성이 없이 이질적인 사물과 결합시켜 더욱 시의 매력을 얻는다.     (3) 인유(引喻)적표현: 동서를 막론하고 인유는 널리 쓰인 표현법으로서 동양에서 고대중국의 문헌이라든지 서양에서 고대희랍과 로마의 신화 및 성경 등은 시와 산문을 통털어서 널리 사용되여 왔다. 례: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东学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략)     시에서 1련의 “4월”은 4. 19학생혁명을 비유한것이고 제2련의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은 민중의 자각이 봉기했던 동학혁명의 함성을 뜻하며 제3련의 “아사달 아사녀”는 신라시대에 불국사의 무영탑을 조각하느라고 비연을 감수한 석수와 그 아내를 두고 말한 인유이고 “한라에서 백두”는 한반도 3천리강산을, “쇠붙이”는 모든 무기를 말한 대유이다. 신동엽은 특히 “진달래 산천”을 노래하고 평화를 추구한 저항시인이었다.     (4) 역설적표현: 역설적상징의 구조는 시적긴장을 유발한다. 시 구조의 본질이 이 긴장미에 있다고 볼 때, 이런 시작품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긴장의 류형을 따르고있다. 역설적상징은 결국 경험의 복잡성과 모순성들을 구조화하는 하나의 기법이다. 한룡운의 시《님의 침묵》은 시종 역설로 씌였다.     ≪님의 침묵 ≫ 한룡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여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뒤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론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것을 념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것을 념려하는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5) 상징적표현: 상징이란 개념의 어원은 희랍어로서 고대희랍인들의 비밀조직의 성원들을 위해 만든 조건부적인 표식부호이다. 상징수법은 시어에서 생활현상, 개념 및 사물의 명칭을 지적할 대신 그러한 생활현상을 어떤 점에서 상기시키는 비유적이며 조건부적인 말로 표시하는 비유의 일종이다. 례하면 노을, 아침은 청춘과 인생의 출발을 상징하며 밤은 죽음, 인생의 종말을 상징하며 얼음, 눈은 추위, 랭정, 랭혹 등을 상징한다.     어떤 현상의 특징들과 그 현상을 규정하는 사상을 가장 선명하게 구현하는 예술적형상도 역시 상징이라고 한다. 상징은 근본적으로 둘이 결합 혹은 련결됨으로써 비로소 자률적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양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학에서의 상징이란 용어는 류추적으로 가시적인 세계, 곧 물질세계가 련상의 힘에 의해 불가시적인 세계, 곧 정신세계와 일치한 표현형식이 된다.     례: 사과 한알이 떨어졌다.           지구는 부셔질 그런 정도로 아팠다.           이내 어떤 정신도 발아하지 않았다.     “사과”는 도입해온 보조관념이다. 원관념도 쉽게 알수 없으나 상상을 통해서 사과의 의미는 죽음을 암시할뿐이다. “떨어지다” “부서지다” “움트지 않음” “아픔”“은 죽음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동일성이다. 그래서 원관념의 “최후”인 죽음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김수영의 ≪눈≫에서 상징의 동일성을 보자.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우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하략)     눈이 생명을 가진다. 눈과 기침의 내부관계의 공통성을 찾기어렵다. 다만 상상력으로 눈과 기침은 상징으로서 이 감각적이미지는 순결과 진실성이라는 관념과 밀착된 상징이라는것을 느낀다. 눈의 생명성은 이 순결의 생명성이며 기침을 하는 행위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성의 관념과 밀착되여있다. 한국시인 김수용의 시≪풀≫을 보자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져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하략)     “풀”이 지닌 드러냄은 감춤과 조화를 이루고있다. 이 조화는 리듬이 빠른 템포로 흐르면서 주술성의 어떤 오묘한 맛을 내고있는데서 발생한다. 특히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울고 일어난다는 반복되는 론리적모순과 융합되여 이 시의 철리성을 느낀다. 이 주술의 리듬속에 풀은 민중을 감추고 바람은 그 민중이 살고있는 실존적상황을 감추고있는 상징의 의미를 느낄수 있다.    (6) 의성의태어수법: 우리 말은 의성의태어가 비상히 발달되여 있다.    ≪청산도≫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해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골어 흰구름 걷는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7) 시적표현에서의 화법(话法)과 토: 토가 가지는 기능을 령활하게 운용해야 한다. 시의 내용에서 사용하는 화법에는 1인칭 화법, 2인칭 화법, 3인칭화법이 있다. 1인칭화법은 화자로서 자기의 얘기를 들려주듯이 표현하는 방법으로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나는 보았노라.”, “내 푸른 동년의 그 언덕에는”, “나의 고향은 두만강변에 있노라”와 같이 내가 중심이 되여 말하는 화법이다.     2인칭화법은 화자의 상대를 말하는데 시적에서 본다면 “못잊어 꿈에도 생각나는 당신”, “당신의 뒤못습 바라보며”, “당신은 알고도 모른체 하셨지요?”, “당신은 제게 사랑의 가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이 2인칭의 화법이다. 3인칭화법은 객관적인 제3자에게 말하는 화법으로 표현하는것을 말한다.       “산은 진분홍 치마에 불을 지피고있다.”,       “침묵에 습관된 산은 하늘과만 속삭이는걸가?”       “두만강은 구슬픈 노래를 흘리고있다”     상기한 시구와 같은 표현이 3인칭화법이다. 훌륭한 시는 매우 조직적이기때문에 제요소 상호간의 관계가 체계있게 시인의 사상으로 수렴된다. 한용운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시 전개방식은 바로 ‘역설”의 기교다. 그의 시에서 역설은 모순을 극복하고 시적초월과 비약을 성취시키는 원동력으로 된다. (8) 반어적표현: 작가가 의도와는 전혀 다른 표현을 하여 날카로운 멋과 예리한 감각을 발휘하는 기법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반어적구조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9) 자동기술법: 인간 내면의 깊은 생각, 관념을 아무런 제재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출시키는것이 인간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 믿고 꿈을 꾸는 자가 그 순간 그대로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듯이 무의식의 세계를 기술하는 기법이다. 인간의 의식은 때론 몽환세계에 잘 빠져든다.     4) 시에서의 시간 공간     록수는 흘러가도 청산은 의구하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가도 공간은 의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시속에서는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흘러간 시간도 돌려오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도 당겨다가 현실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며 심리시공간형식으로 시속에 자유자재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현실에만 머물지 말아야 하고 눈앞에 경물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이를테면 신화, 력사, 현실, 미래를 사유의 예리한 칼로 잘라내고 깁기도 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심령, 인생의 의미를 형상화해야 시창작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된다. 그 시공간이 상상력의 활무대로 된다.     시는 응당 조각상이 되여야 하지만 사상은 공간을 질주해야 하며 감정은 공간속에서 설레여야 한다. 그것이 환각의 공간이든, 현실의 공간이든 자기가 창조해낸 하나의 조각상에 응결시킬수 있다. 상징시에서 시적상상은 거칠것없이 날아옌다. 하여 정서의 파동에 초점을 두고 복잡한것을 단순하게 만들지만 생활경험이 담겨지게 한다. 그리하여 다종다양한 감수가 병존하게 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과 재창조의 여지를 충분히 제공하며 시적용량을 최대한 확대하여 시의 다의성을 확보하고있다.     5) 시창작자세     생명이 존재해야 할 새로운 리상이 곧 시의 지향이 되고 시가 독자들에게서 읊어져 많은 감명을 줄 때 자체 내지는 개체의 유지목적이 달성되여 시적가치가 실현된다. 시인이 시를 쓰는 목적은 결코 하느님에게 기도하거나 참회하는 식의 은밀한 고백에 있지 않다. 시는 소리없는 납함이 못될 리유가 없다.     시인은 시로써 독자로 하여금 감명을 받게 하는 모습을 보며 창조의 희열을 향수하기 위해 시를 쓸것이다. 진달래냐, 살구꽃이냐, 사랑이냐, 자유냐? 하는 시의 제목 즉 그 이름이 곧 그 시 자체이다. 그러나 진달래나 살구꽃이나 사랑이나 자유가 기존의 의미도 전달하지 못했다면 시창작은 무효로동이다.    물론 살구나무를 그대로 사진 찍으라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살구나무의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그것이 새로운 살구나무로 탄생한 개성이 오해받지 않도록 완미한 시가 되여야 한다는 말이다. 공성이 부재한 개체취미의 교류에만 매달린 시의 열매는 맛이 없다.    시인의 자아도취라는 말은 시인의 가슴에 희노애락의 감정으로 와닿아 시를 낳지 않으면 안되게 한 그 내속을 옳바르게 전달하라는것이다. 시인의 감정을 움직인것이 동기가 되고 시대적요청과 사회적정서가 시의 존재의 의의로 되고 시가 지향하는 방향 등이 제대로 전달되여야 시의 존재리유가 있게 된다. 따라서 독자들의 감정들에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더욱 예민한 시인의 선지선각이 선행되여야 하고 “낯설음”이 전제되여야 한다.    시인은 언어창조자이다. 그렇다고 없는것을 만드는것이 아니다. 일상의 언어가 생명력을 갖도록 하는데 시인의 직능이 있다. “서산에 지고있는 저녁해”라기보다 “산마루에서 얼굴을 붉히고있는 저녁해”라고 표현하면 더욱 실감난다. 붉게 타는 석양보다 미학적가치가 있는 표현이므로 그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게 될 때 그 말은 곧 생명력을 갖게 된다.     시인은 자기의 시를 자기화시키려하고 제2의 자기 모습으로 나타내여 그 시로 하여금 자기를 대신하게 하려한다. 나아가서 자기의 시를 흔상하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자기와 같은 그러한 감미로움을 체험하게 하고싶어한다. 이와같이 시창작의 목적은 자아표현을 달성하는것으로서 참됨과 선과 아름다움을 심어주어 읽고 읊으면 무한한 감명과 기쁨을 새겨줄수 있는 여건이 요긴하다.     정신은 곧 언어로서 언어가 실재를 형성하는 존재의 집이다. 베르그송은 “시인이란 이미지에 의해 그 감정과 생각을 기른다”고 하였다. 추상적의미보다 시적대상을 순진 그대로 감각하고 인식하도록 자극하는 말이 바로 좋은 이미지다. 그러므로 시인은 바로 진실한 감각을 진실한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이미지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이나 정서를 구체적이고 개성적인것으로 보여주는 시의 가장 근본적인 표현방법이다. 시는 심장에서 분출한 정감의 결정체이다. 시에서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그린다는것은 이미지창조이다. 따라서 개인의 주관정서를 한수의 시속에 이미지를 통해 응축시켜야 한다.     시적인식은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우주의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단순히 보고 지각하는 일상적인식과는 달리 시적인식은 이미 있어온 대상을 부정하면서 새롭게 보아내는 인식이다. 가령 대자연속에 진달래꽃이나 별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서 시적으로 인식될 때 이른 봄, 산속에 피여있는 진달래꽃이나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지시하는것이 아니라 그것은 떠나가는 님에 대한 정한의 서정을 일깨우며 그리운 얼굴들을 상기시켜주는 대상으로 인식되고있다. 이 경우 진달래꽃이나 별은 그 본래의 일상적의미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재현된다.     시적능력이란 바로 어떤 의미를 두고 사물과 자신과의 사이에 새로운 질서나 관계가 성립되고있음을 말한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련쇄반응도 사물을 응시한 기억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졌다고 할수 있다. 시의 리듬이 발생하는 지점은 행갈이, 련의 나눔, 음절과 음운의 반복, 고저, 장단, 강약, 문장부호의 배치 등으로 알려져있다. 한편의 시짓기는 집을 짓는 일과 같으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즉흥적으로 미궁을 지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미궁은 신비감은 줄수 있지만 감동 그자체는 아니다.     시를 불러일으키는 마음 즉 시적감동이나 감흥은 스스로 어떤 모습과 질서를 보존, 전달하려는 에너지를 안으로 지니고있고 이 에너지를 능동적으로 발동시켜 그 자연발생적감동과 감흥을 어떻게 표현하여 정착시키느냐 하는것이 바로 시의 작업이요 그 방법과 심장으로 하는 기술(记述)의 문제이다. 그래서 시짓기의 작업으로는 먼저 어떤 대상물에서 받은 감흥이 무엇인가를 알고 현실적경험을 시적경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독일의 반(反)나치스시인 요한네스의 시 ≪봄≫을 흔상해 보자.               호젓한 나루터에/보트가 한척               환하게 맑은 호수를/산들바람이               흔들고 선명한 록색으로/서로 칠한 벤치               여름은 지난해와/다를바가 없을테지(하략)     얼핏보면 쉽게 쓴것같지만 자세히 음미해보면 예리하고도 세밀한 관찰과 그 취사선택이 이루어져있음을 알수 있다. 시란 그저 우연히 떠오른 마음의 설레임을 그대로 써놓으면 되는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제재로하여 새로운 감동 의 세계를 펼쳐보이는것으로서 읽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이다. 그만큼 시적인 능력이란 바로 어떤 의미를 두고 사물과 자신과의 사이에 새로운 질서나 관계가 성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릇 시인은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수 없다. 시도 또한 그 사회생활에서 떠날수 없다.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현실에 직면하여 거기로부터 끊임없이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 재래로 시의 사회성이라면 시인이 일반 사회인으로서의 공통성우에 서고 사회의 제반현상을 주제로 다루고 또는 능동성을 나타내는것이다. 현대시라도 사회적불안감이나 위기감 또는 거기서 탈출하기 위한 항쟁, 희망같은것을 다양한 형태로 표출하지 않을수 없다.     어떤 시이든 시는 어디까지나 감동이 물결쳐야 한다. 독자들이 시인의 시적감각을 접수하기 어렵고 리해하려 하지도 않는것은 독자들의 마음에 감동과 감화를 안겨주지 않기때문이며 시가 독자의 정서생활에 어떤 유익한 점을 주는 공성의 이미지가 결여하기때문이다. 이는 결코 독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시각이나 청각에 의존한 감각적즐거움은 순간적이며 단순하지만 지각에 의존한 즐거움은 직선적으로 전달되지 않기때문에 비밀이 얼핏 리해되지 않는 현념이 있고 그것을 터득하는데 시의 재미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기쁨을 “재인식의 쾌감”이라고 하였는데 훌륭한 시는 감각보다 더 큰 물결같은 감동을 독자들의 심장에 전달한다.     자연경물을 읊는 시에서는 흔히 서술적시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형용사나 색채어를 통하여 시적대상의 양태나 색다른 감수를 묘사하거나 진술한다. 그러나 인식의 내용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며 외적현상만을 제시하지 않은 내면화된 현상이다. 이 점이 시적인식의 울림으로 전달되는 근거이다. 시는 인식의 공명을 확보하고있으면서도 시적상상력의 폭이 좁을수 있다.     진정 감각화된 시들은 느낌을 립체화시키고있다. 시인은 언어를 이미지로 갈고 닦는 련금술사로서의 재능을 보여야 한다. 시는 문자조합이 아니며 그로써 시인이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 정감의 총아로 태여나는것이다. 쉑스피어와 동시대인이였던 극작가 존 벤슨은 “시인이란 태여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했지만 시가 억지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볼품이 없게 된다.     시는 본질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받은 감수가 격동을 불러일으켜 소리를 지르거나 환호성, 사색, 조소 등을 유발하는 기능과 성격이 있다. 그리하여 함께 흥분하고 즐기게 하는것이 시이다. 물론 개체의 삶이 우선이고 시로 자아를 표현하지만 세상에 홀로의 삶이란 있을수 없다.     시인은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토하는 누에와 같다. 그러나 시행이라는 비단실에 자신이 묶일수도 있다. 많은 시인들이 굳어진 자기 사유공간과 시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파를 가져오지 못해 고민하고있다. 확실히 매 시편마다에서 똑같은 얼굴이 비쳐지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시에는 특유의 모호미도 고유되여있다. 시적전달에서 볼 때 시창작은 시의 내적언어형태의 기호화이고 시의 향수는 기호분석의 과정이다. 그러나 시에서 모호미는 결코 언어학적인 낯설기에서만 오는 애매모호함이 아니다. 시의 난해성을 단순히 독자의 열독에서의 장애, 고정된 양식에 대한 기호분해의 난해, 흔상능력문제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철학적인 주제나 내용을 시로 형상화할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적형식을 취했을뿐 철학적사변에 머물러있는 글은 철학적서술이지 철리시는 아니다. 례를 들어보자. “먹고 사는 일이 다 뭔가 / 자주, 내가 나에게 던지는 낡고 지친 질문 / 굶주림이란 말이 없었대도 가난한 주인은 있는 법 /배고플수록 /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 이 시는 나름대로 삶의 무언가에 대해 철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해답이 막연한 상념뿐이다.     주지하다싶이 시의 탄생은 어디까지나 민족성, 시인의 생활경험, 지식결구, 성격, 기질과 생활에 대한 인식정도 및 감각의 민감정도, 지역특점 그리고 인문환경과 깊이 관련되여있다. 이런 전제가 있기에 서방현대주의 시풍격에 맹종해서는 아니되는것이다. 그 어떤 시를 쓰든 민족성까지 마멸할수 없다.     시의 민족화란 비교적 큰 범주이다. 민족의 문화심리결구, 사상의식, 심미리상과 예술취미상에서 공성을 고유하지만 민족문화의 핵심인 민족혼은 분명 구별된다. 물론 민족특징은 일종 모식이 아니다. 예술에서 형식미의 추구는 마치 모태주는 반드시 도자기 술병에 넣고 탁배기는 옹배기에 담고 와인은 굽높은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그런 형식적인 추구와 같은것도 아니다.  
                                                제1장 독립형태의 문학양식                                                  제1절 형태로서의 분류 1. 쟝르의 연혁 문학의 분류란 흔히 말하는 쟝르(장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체재의 분류로서 문학예술의 형태를 가를 때 가장 세부화된 개념 혹은 형태전반을 가리킨다. 체재란 문학작품의 결구조직의 어떤 온정된 형식이다. 다종다양한 쟝르의 발전은 문학발전을 일목료연하게 시사하는 일람표이기도 하다. 문학은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쟝르로 나누어졌다. 호메로스에 의해 대표되는 서사시, 사포에 의해 대표되는 서정시, 3대비극의 시인(아이스큘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에 의한 비극,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한 희극이 기원전 5세기무렵에 확립되였다. 여기에 철학, 륜리, 력사 등의 산문이 생겨났으며 중세기에 로맨스, 동물담시 등 서민적인 이야기문학이 번성했다. 18세기에 드라마가 출현되였으며 또 모든 장르를 포용할수 있는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서사문학과 서정문학은 현실세계의 서로 정반대되는 추상적인 두극단이다. 극문학은 이 두극단을 생동하게 결합한 독자적인 제3의것이다. 서사적형식은 자연속에 있는 화폭과 형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에 과거로부터 전개되여 오는 사건들을 묘사하며 서정적대화는 현재에 내재한 감정을 나름껏 토로한다. 력사적인것이 사시적대화에서는 이야기되고 드라마적형식에 있어서는 창조되며 서정적대화에 있어서는 감수 혹은 체험시킨다. 독일의 한 시인은 서정시는 모든 문학형식을 선행한다고 하면서 그것은 모든 형상을 소생시키는 무정형의 프로메테우스의 불같은 온갖 문학의 불씨이며 모체라고 하였다. “충동, 희망, 시도, 생각이 온갖 외면적인 현상보다 앞서 오며 온갖 외면적인 현상이 가슴속 깊이 간직되여있는 내재력의 작용결과일 때 문학은 사건의 제2의 내면에로, 외면적인 현실, 사건과 행동을 전개시키는 이 힘의 내부에로 침투한다.” 일반적으로 표현방식과 양태에 의해 서사적대화, 서정적대화, 극적대화로 분류한다. 독자나 관객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내용을 전달하는지를 분류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것이다. 상술한 류별은 문학의 기본류형의 구별일뿐 호상교차되고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분기된 서정서사성쟝르도 있으며 더 세분하여 수필, 잡문, 실화문학, 평론, 영화문학, 드라마 등 쟝르가 있다. 2. 서정적양식 서정적대화양식은 주로 주관적이며 내면적인 대화이며 서정적자아의 표백이다. 서정적형태에서는 주관이 대화내용을 자체내로 옮겨와서 용해시키고 침투할뿐만아니라 주관속에서 충돌을 야기시킨 모든 감각내용을 내심심처로부터 끌어내기도 한다. 서정적작품은 내용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 내용이 없는듯한 감을 준다. 즉 황홀한 감각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면서도 말로써 옮기지 못하기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하지 못한다. 서정문학은 어느 세기, 어느 시대이든 생활과 의식의 모든 단계를 기초로 하여 발생한다. 서정시들에서 시인의 주관능동성은 완전히 개성적인 감각외에 보다 일반적이며 무의식적인 현상들에 대한 독특한 관찰과 감수, 사색, 발굴과 상상력에서 발휘된다. 여기에서 문학은 서사문학과 대립되는 새로운 종류로 나타난다. 이것은 주관의 왕국이다. 이는 자체속에 그냥 남아있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내면세계이며 생각의 세계이다. 여기에서 문학은 내면적요소 즉 느끼고 사색하는 생각속에 남아있다. 벨린쓰끼는 쓰고있다. “정신은 외면적인 현실에서 유리되여 자체속으로 들어가고 자기의 내면생활의 뉴안스와 다양한 변화를 문학에 부여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개성이 제일면에 나타나며 따라서 독자들도 작가의 개성을 통하여 그 모든것을 감수하고 리해할따름이다. 이것이 서정문학이다.” 서정적양식은 음악과만 비교할수 있을뿐만아니라 심지어 문학과 음악의 계선을 거의 지워버리는 그런 문학형태이다. 례를 들어 우리 민족의 많은 민요는 그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어들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음악성, 시행들의 리듬, 그리고 가요들의 모티브에 의하여 감미로움을 안겨주며 세세대대로 전해내려오고있다. “서정문학은 문학의 기본요소이고 생명이며 정신이다. 서정시는 주되는 문학이며 문학의 문학이다. 서정적작품의 내용을 이루고있는것은 시인의 마음을 떨게 하는 찰나적감각이다. 서정적작품은 오직 감정만을 표현하면서 우리의 감정에만 작용한다. 서정적대화는 현재에 내재한 감정을 나름껏 토로한다. 문학에서 독자의 리성을 사로잡은 다음에야 감정에 작용하는 객관적사실을 가지고는 서정적작품이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며 아무 호기심도 일으키지 못한다.” 서정문학은 시인이 자신의 체험속에서 감정이 고조에 달했을 때 직접 표백한다. 서정적작품들에서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리성적판단 보다 감각이 우위에 놓인다. 서정적대화는 관조와 재현될것이 아니라 촉발된 감정의 폭발로 고상한 분노와 우뢰와 번개로 되기도 한다. 서정문학에는 가요, 찬가, 송가, 애가, 목가, 민요, 풍자시, 단가, 애정시, 산문시 등이 포괄된다. 3. 서사적양식 서사적대화의 본질로 말할 때 일정한 사건발전을 서술하는 문학적대화의 일종로서 서술문학 혹은 서술예술이라고도 한다. 서사시가 고대사회의 전형적형식이었으나 그것을 대체한 장편소설이 등장하여 근대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쟝르로 부상했다. 문학은 사상의 의미를 외면적인것으로 실현하며 정신세계를 아주 확정적이고 조형적인 형상들로 만든다. 내면적인것과 외면적인것은 분리되여 보이는것이 아니라 총체로서 자체속에 들어있는 확정적인 현실사건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작가는 나타나지 않고 조형적이고 확정적인 세계가 저절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작가는 저절로 수행된것의 서술자에 지나지 않는듯이 보인다. 이것이 오묘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심령세계를 거울처럼 비춰보이는 서사문학이다. 서사문학과 서정문학이 다른 점은 주관적상태성을 표백하지 않으며 객관대상, 사건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것이다. 서사문학은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작가와 독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이며 외면적이다. 서사문학에서는 세계와 생활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작가나 흔상하는 독자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서사문학은 이처럼 관조하는 대상을 보이는대로 조명하면서 그 대상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전개한다. 사시적대화에서는 유관된 사건들을 교대하는것을 중추로 매 인물의 행위, 대화 등을 대체하여 서술 혹은 묘사한다. 서사문학의 이런 사건전개의 창작특징을 “서사의 종합”이라 한다. 4. 극적양식 희곡이란 어원적으로 말자체가 놀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동일하며 행동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며 “본다. 구경한다”는 뜻을 가지고있다. 연극의 대사가 다름아닌 희곡이다. 희곡은 문자로 기록되면 문학이고 무대에서 상연되면 연극이다. 극문학이란 상연을 목적으로 쓰이는 연극의 대본으로서 인간의 행동과 의지의 갈등을 대화형식을 빌어서 표현하는 문학이다. 연극을 종합예술이라 한다. 희곡적대화의 목적은 인간본질의 정당하고 생생한 이미지로서 인간정서의 본질과 기질들을 재현하며 사람들에게 기쁨과 교훈적내용을 주려는데 있다. 그런데 인간의 본질은 현상이 아니라 이미지이다. 이미지라는 말속에는 본질을 모방한다는 개념이 들어있다. 따라서 그것은 생활진리에의 모방을 지향한다. 또한 인간의 정신적특성들을 재현함으로써 극이 샹생한 이미지로 되여진다. 다음 교훈과 확인의 명제도 제시된다. 극을 보고난 기쁨은 인간의 본질이 생생하게 재현되는 감동에서 온다. 또한 주인공이 구현하는 기본적인 심리학적진리를 재확인에서 온다. 사람들은 그런 진실을 제 눈으로 보려고 희곡을 선호하는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상상력을 가지고있다면 희곡을 읽은것으로도 무대상연을 보는것과 같은 예술체험을 할수 있다.
10    제 3 절 문학언어 댓글:  조회:3358  추천:22  2007-08-12
                                       제3절 문학의 언어    “문학의 제1요소는 언어이다. 언어는 문학의 기본도구이며 사실 및 생활현상들과 더불어 문학의 재료이다. …문학은 언어로써 형상, 전형, 성격들을 창조하며 언어로써 사건, 자연풍경과 사유과정을 반영한다.” 문학언어는 사상교류의 일종 도구만이 아니라 문학이 구비해야 할 품격과 자질이다.     물론 문학을 위한 언어가 따로 존재하는것은 아니다. 일상용어를 정교하게 다듬고 독자적인 생명을 불어넣어 새롭게 조직할 때 비로소 문학언어로 거듭난다. 문학언어에는 광의적의미와 협의적의미가 있다. 협의적의미에서의 문학어란 문학작품의 언어 및 대중의 구두창작에서 다듬어진 언어로서 선명하고 생동하며 감정색채와 음악미, 감화력 등을 갖고있다.    아. 똘쓰또이는 문학어를 “신기한 전파”라고 하였다. 작가는 바로 이런 신기한 전파를 리용하여 자기의 감정, 미묘한 환상과 각종 사상을 발사해 내보낸다. 고리끼는 “언어는 일종 마력이고 예술은 곧 일종 기적”이라 했다.    2. 문학언어의 속성     문학작품의 예술형상에 매료되여 울고웃는것은 상상을 거쳐 마음속에 그려진 형상때문이지 직접적, 시각적 감수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문학형상은 간접성특성을 가진다. 문학형상의 간접조형의 특성으로 하여 강렬한 직관성은 없으나 대신 사상적구체성이 있기에 독자들에게 상상과 재창조를 진행할수 있는 광활한 천지를 제공할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편 동일한 인소로 하여 문학형상에는 모호성특징도 고유하게 되였다. 말하자면 언어의 매개로 인해 산생되는 상상의 차이성과 불철저성, 불가모방성은 때문에 작가들은 흔히 암시의 방식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형상을 부각한다. 그러나 이 간접성, 모호성이 가져다주는 상상의 자유성, 풍부성과 핍진성이 언어예술의 표현력을 가강해준다.    1) 생활반영의 광범성     고리끼는 “언어는 꿀이 아니지만 온갖것에 붙어다닌다. 이것에 의하여 확증되는것은 말로 불리워지지 않으며 이름할수 없는것이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그 사실이다.”라고 했다. (고리끼 문학론 4권 56페지)바로 이런 언어를 도구로 창작하는 문학은 기타 예술형식에 비해 보다 령활하게 다양한 형상을 부각해낼수 있으며 더욱 강한 표현력을 행사한다.     례하면 력사사시 ≪3국연의≫는 3국시기의 전후 수십년간의 광범한 사회생활 화폭을 전시하고있으며 웅위로운 력사변화과정의 생활장면이 있는가 하면 규방속의 염사도 있고 산수간에 노니는 정취도 있고 취중에 시를 읊는 선비다 운 일상생활장면도 있다.    조선의 홍명희의 력사소설 ≪림꺽정≫은 력사적현실에 대해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조선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민족적특성과 사회적, 계급적조건에 대해 탐구하였고 해당 력사시기와 환경속에 있는 인간들을 재현하였다. 많은 일화속에 조선사람들의 옛풍습의 다양한 세태와 계급갈등의 력사상황 등 서사적화폭도 펼쳐보였다.   2) 사상의 선명성    유고는 ≪레미제라블≫의 서문에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아 어떤 영겁의 사회적처벌이 존재하여 인위적으로 지옥을 문명의 한가운데 만들고 성스러운 운명을 세상의 인과로써 분규시키는 동안은 즉 사회최하층에 의한 남자의 실추, 기아에 의한 녀자의 타락, 암흑에 의한 아이의 위축과 같은 시대의 세가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동안은 다시 말해서 어떤 방면에서 사회적질식이 있는 동안은 그리고…더한층 넓은 견지에서 말한다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존재하는 동안은 본서와 같은 성질의 서책도 노상 무익하지는 않으리라.”라고 썼다.    이것은 유고의 선언이다. 그런 선명한 창작사상을 소설에서 설교하지 않고 생동한 문학형상을 통하여 체현하였다. 문학언어는 다의미적이다. 문학언어는 사물에 대한 지시, 지식의 주입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감관을 자극하여 무엇인가 깨우쳐주고 보편적인 진실한 감동을 확대시켜주는 선정된 언어들이다.    3) 형상성     문학언어의 첫째가는 특징은 형상성이다. 작가는 비유, 과장, 의인법 등 온갖 가능한 여러가지 예술수법을 운용하여 언어의 표상공능으로 예술형상을 부각한다. 조선의 저명한 소설가 리기영의 장편소설 ≪고향≫에는 이런 정채로운 풍경묘사가 있다.     솔밭우로 넘어가는 우중충한 달 그늘은 마치 조수물처럼 마을안으로 밀려나온다. 그러나 달빛을 받은 길건너편은 훤하게 딴 세계를 이루었다. 그것은 마치 이 지구를 두쪽으로 갈라놓은것과 같이 어둠과 광명은 딴 색으로 갈라있다. 어둠은 광명을 향하여 돌진한다. …미구에 원터동네는 그의 시꺼먼 아가리속으로 들어가고말것같다. …그러나 들건너편에 큰 희망을 안은 월세계는 넓은 땅을 그의 빛나는 광채로 껴안고 거기에 위대한 리상과 생명의 기쁨을 불어넣는다.     이런 자연풍경묘사는 그야말로 한폭의 풍경화를 방불케 한다. 이 풍경자체의 아름다움도 감미롭거니와 명암의 두세계, 그것은 이제 곧 벌어질 사회투쟁에서 암흑과 서광의 투쟁에 상징과 암시적의의를 띠고있음을 알수 있다. 이렇듯 문학언어는 비유, 형용어 등 다양한 수단들로 표현의 의미상의 뉴안스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빛나게 수행하면서 예술경지를 개척해 나가고있다.     문학언어는 인물의 복잡하고 은페되여있는 내심세계를 제시할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상의 섬광, 정감의 불꽃은 천변만화하며 종잡을길 없기에 문학언어는 순간적으로 천변만화하는 령혼의 섬광점을 더 깊이 발굴해야 하며 인물자신의 언어로 마음의 파동과 굴곡을 실감있게 그려내야 할 사명을 지닌다.     문학작품에서 구체성은 사물의 본질적속성으로서 그것을 떠나서 양상의 구체성, 선명성을 생각할수 없다. 형상이 구체적이여야 색갈이 나타날수 있다. 장편소설 ≪피바다≫에서 문학언어의 형상성이 잘 체현되고있다. 비록 전통적인 수법이지만 아주 생동한 꽃분이의 외모묘사를 보자.       몸매가 물기오른 봄버들처럼 호리호리하게 자라났다. 목이 쑥 빠져올라가고 얼굴은 어린때의 군살을 벗으면서 그대신 맑고 훤하게 피여났다. 도드라지게 이쁘게 생긴데는 없으나 얼굴륜곽으로부터 함함하고 윤택있게 잘 자란 새까만 머리카락에 반쯤 가리워진 복스럽게 생긴 귀며 도두룩한 코날이며 볼우물을 지으며 수태를 감추려는듯 꽉 다문 입이며 언제나 정이 흐르고 따뜻하고 청신해보이는 맑은 눈동자이며 모든것이 부드럽고 은근하고 속 깊이에서 슴새여나오는듯한 아름다움을 풍기였다.     비록 전통적인 묘사수법이긴 하여도 보다싶이 주인공의 초상묘사에서 우리는 문학언어의 형상공능이 안겨주는 매력을 실감할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복잡하고 생활의 색채도 천태만상이다. 문학어는 더욱 형상적이며 구체적이고 정서성으로 하여 형상의 색갈을 살리는 결정적수단으로 된다.     문학언어의 형상성은 곧 회화성이다. 언어의 회화성은 언어문장이 여러가지 색갈을 내고 구체적이고 직관성이 강하고 표현이 선명한데서 나타난다. 언어의 생동성은 여러가지 감정을 한문장안에 굴절시키면서도 간결하고 선명하며 단어의 배렬에서 중복을 피하고 규정어를 반복하여 쓰지 않으며 잔잔한 묘사를 하다가 극적인 장면에서는 폭발적이며 격렬한 표현을 하는데서 발현된다.    4) 음악성    문학어의 음악성이란 음조가 조화되고 절주감이 뚜렷하며 읽으면 입에 잘 오르고 들으면 귀맛 좋은 그런 특성이다. 문학어의 음악성은 직접어음에서 체현되지만 단순히 음향조합에서만이 아니라 음향과 뜻의 결합에서 생성되는바 특히 운문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소월의 민요풍의 시들은 시적정서가 차분하면서도 음향의 조화가 풍부하고 아름답다. ≪금잔디≫를 보자.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보는바와 같이 목적의도적으로 도입되는 다양한 음향성은 그대로 자발적인 률동감을 주면서 노래처럼 정겹고 그 애수에 사무친 정서에 깊이 빨려들게 한다. 이렇듯 시적표현의 특징은 시어의 뜻빛갈과 정서적색채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성음요소를 가지고있기에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음향미를 띠고있다.     시어의 음향미는 언어의 성음적요소와 음향적으로 울리는 정서적발로서 성음적요소에 의하여 규정된다. 시어만이 아니라 문학언어 일반에도 음향미는 형상성과 예술성의 속성으로서 독자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문학언어에 류의하는 작가들은 자기가 쓰는 문장에 감정과 박력을 주기 위하여 음향가가 높고 강한 음절을 선택하고 거센소리, 된소리의 단어들을 고르며 감정이 진한 어휘들과 힘있는 본딴말을 잘 쓴다. 글에 박진력을 주기 위한 문장의 간결성도 문학언어의 음향미를 살리기 위한 기법들이다.     5) 정감성     문학언어의 정감성이란 언어에 담긴 이미지 및 정감력량과 정감색채를 가리킨다. 로사는 “한편의 작품에는 어쨌든 모종 정감기조가 있게 된다. 정감기조는 비애 혹은 격정, 장엄성을 띨수 있다.”고 했다. 즉 문학언어의 정감공명 기능에 의해 미움, 분노, 기쁨, 비애 등 정서를 느끼게 되는것이다. 조선의 재능 있는 시인 리상화의 시 ≪통곡≫을 흔상해 보자.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발을 못뻗는 이 땅이 애달퍼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말아, 달도 뜨지 말아,     시인의 통곡은 일제치하에서 빈궁과 무권리에 처한 당시 인민의 통곡이다. 시형상의 힘은 정서적공감이다. 서정성이 시적형상의 정서적공감을 보장하는 본질적인 요인이라면 문학언어의 정감성은 모든 문학작품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며 문학의 존재와 성패와 운명과 관련되는 핵심적문제이다. 시적언어란 바로 특이한 정감성을 아우른다.    시는 인간과 생활을 화폭으로 펼쳐보이지 않는다. 시에서 서정을 느끼는것은 시인 자신만이 아니고 독자들이다. 시인자신이 어떤 정서에 감흥되고 어떤 사색에 가치를 느낀다고해도 독자들의 심미취미와 정서지향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벌써 서정으로 되지 못한것이다. 공성이 없는 정서는 예술정서가 될수 없 기 때문이다. 정감성이 결여된 서술언어는 문학어도 아니다. 중국의 저명한 산문가 주자청의 산문들은 제재의 독특성에도 매력이 있지만 언어조합이 시적이여서 독자들은 어감상에서부터 감화되여 문감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정감지향성을 확보한다. 서정산문《봄》의 서두단을 보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바람이 불어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온다, 새봄이 온다. 삼라만상이 방금 잠에서 깨어난듯 넘치는 기쁨 안고 눈을 뜬다. 산은 산뜻이 단장을 하고 개울물은 찰찰 넘쳐흐르고 해님은 얼굴에 홍조를 띤다. 연두색 풀싹이, 파란 풀싹이 땅속에서 뾰족뾰족 고개를 쳐든다.     봄은 방금 태어난 갓난애처럼 모든것이 새롭다. 봄은 처녀애처럼 아릿답기 그지없다. 봄은 건장한 젊은이처럼 무쇠같은 팔다리를 가졌다. 봄은 바야흐로 우리를 이끌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원문도 좋지만 우리 말로 번역해 놓으니 더구나 음향미가 넘친다. 특히 반복수법으로 시에 운률미가 가첨되여 색채도 있고 소리도 있게 하다. 이렇듯 문학언어의 정감성은 문학예술작품에 혈액과 같이 흐르는 중요한 속성으로서 문학형상을 생동하게 하고 정서적공감력도 강화한다. 소설에서 순수한 자연묘사도 작품의 정서성을 강화하는 아주 좋은 형상수단이 되고있다. 소설의 결말도 정서성이 강하게 철학적으로 맺아주어야 바람직하다.     최서해의 ≪탈출기≫에 결말은 아주 정서적이다. “나는 이러다가 성공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원한이 없겠다. 아아 김군아! 말은 다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누나!” 이렇게 정감적일뿐만아니라 침중하고 비장하며 사색적인 여운을 남겨주어 박군의 형상이 종시 잊혀지지 않게 하였다.     6) 함축성     함축성이란 문학작품의 “유한성”으로 “무한”을 표현하는 문학어의 기능이다. 즉 글로 직접 나타낸 뜻보다 글속에 보이지 않는 더 깊은 뜻을 담게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말은 다하였으나 정은 오히려 무궁하다.”는것처럼 문학어는 독자들에게 되새기고 음미하고 사색할 광활한 공간을 남겨주는 특성이 있다.    문학언어는 비문학성언어에 비하여 어음과 어의(뜻)라는 두개 층차외에 세번째 층차 즉 심층의의에 대해서도 강구한다. 문학작품을 흔상할 때 언어의 표층의의를 터득한 후 문학언어의 정체적언어풍격을 통하여 특정된 언어환경속에서의 심층의의를 파악할수 있다.    서정적인 문학작품의 특징은 함축과 여운이다. 함축은 시인의 시적사색에 기초를 두고있다. 체험된 정수적인 주정자체가 집약되고 함축된 성질을 고유하므로 그것은 짧은 형식에 담는 적합한 특성을 가진 문학언어의 함축성을 능란하게 리용해야 한다. 시에서 대담한 비약과 생략, 표현의 간결명료성은 문학언 어의 함축성이라는 고유의 특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소설, 희곡에서도 언어를 가능한껏 함축해야 글에 박력이 있게 된다는것은 자명다.    언어의 함축미는 우선 문학어의 세련성에서 기약된다. 마야꼽쓰끼는 “글자 하나를 적절하게 쓰려면 몇천톤의 언어광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특히 서정적표현은 생활속에서 느낀 감수가운데서 정수만을 토로하기에 함축과 생략을 요구하게 된다. 서민시조의 선구자인 황진이의 시조를 음미해 보면 문학언어의 함축미를 육감으로 쉽게 발견할수 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헤내여 춘풍이불 아래 셔리셔리 너헛다가 어루신님 오신날 밤이여드랑 구뷔구뷔 펴리라      이런 애정시조는 풍부한 서정으로 하여 유교적멍에밑에 거의 질식상태에 놓여있던 인민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킬수 있었다. “산은 옛산이로되…”라든가 “청산리벽계수야” 등 시조도 단순한 련정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유교적멍에로부터 개성을 해방시키려는 지향으로 관통되고있으며 자유로운 정서의 발양을 구속하려는 유학자들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상술한 문학언어의 제 특징들이 일상적인 언어와 의미적으로 구별되게 한다. 소설이 경험의 언어적재현이라고 한다면 이 재현은 두가지 종류를 포함한다. 행동과 사건의 재현이 그 한가지이고 사물과 인물의 재현이 다른 한가지이다. 서술은 이 두가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전자와 후자는 서술이라는 언어경영의 상이한 두국면이다.     3. 문학언어의 갈래    1) 화자의 언어와 인물언어     화자의 언어란 작품에서 화자가 이야기를 하고 인물을 그리고 정경을 묘사하고 정감을 토로하고 평가, 의론하는 말을 가리킨다. 화자의 언어는 예술형상부각에 직접 참여할 뿐만아니라 작품속에 각양각색 인물들의 언어를 련계시키면서 유기적정체로 융합시킨다. 화자의 언어가 개성화되여야 함은 물론, 서술언어에서도 화자의 언어풍격이 체현되여야 한다.    체호브는 “자기를 완전히 회피시켜야 한다. 자기를 소설인물속에 억지로 끼여넣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반시간만이라도 물러서게 하는것이 좋다”고 하였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경계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어떤 인물이면 어떤 말을 하게 해야 한다. 화자의 언어를 개성화함은 물론, 서술언어에서도 화자의 언어풍격이 체현된다.     최서해의 소설언어는 강렬한 주정토로가 특징적이고 정확성, 생동성, 명료성을 개성특질로 하면서 함경도방언을 그대로 살려썼기에 인물의 개성도 잘 살려지고있다. 리기영의 소설언어는 평이하고 소박하여 구수하며 민족적, 향토적색채가 짙은것이 특색이다.     인물언어란 작품속에 인물의 외부적언어와 내심의 언어를 말한다. 대화, 독백, 일기, 련서, 내심속의 혼자말 등을 인물언어로 볼수 있다. 그것의 작용은 인물자신의 각도에서 화자가 인물성격을 표현하는데 있다. 인물언어는 독특한 개성특색이 살려져야 하는바 그 인물의 년령, 기질, 신분, 직업, 교양정도, 습관, 등 특징들이 체현되여야 한다.     고리끼는 인물언어의 개념화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비평한바 있다. “매개 인물은 모두 자기의 생물학상의 의지가 있다. 그들은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로서 욕망이 있고 추구가 있으며 꿈이 있고 애호가 있으며 습성이 있다. 자기의 주인공을 강간하는 사회적천성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말을 하게 하고 그들이 근본적으로 해낼수 없는 행동을 하도록 시킨다. 이것은 곧 자기의 재료를 유린하는것이다.”     인물과 인물사이에 발생하는 화자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순수한 발화를 대화라 한다. 대화는 작중인물의 성격, 기질, 개성 등과 함께 여러 정보를 제공하주며 작가의 설명적인 개입을 차단시키고 사건을 극화, 장면화시킴으로써 이야기의 실재감, 현실감을 높여준다.     희곡인물들의 사상감정, 개성특점은 대화 혹은 독백에 의거해야 한다. 이를테면 인물은 자기 언어로써 자기의 가치를 제시해야 하며 자기의 존재를 긍정한다. 극중인물지간의 모순충돌은 극렬한 동작성에서보다 대화속에서 더 질감적으로 현시된다. 인물언어ㅡ대화에서 다음 같은 점에 류의해야 한다.     첫째, 인물의 전형성이 보다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대화묘사에 탄성과 폭발력, 색채미, 조각성과 질감을 부여해야 할것이다.     둘째, 대화는 될수록 간결생동해야 하며 뜻이 깊으면서도 명철하고 류창해야 하며 두고두고 음미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대화묘사에서 진부한 표현을 삼가하고 창조적이 되여 신선감이 있어야 한다. 명구라 해도 그대로 옮기면 새로운 멋이 나지 않는다. “매 한마디 대화가 마치 한알의 앵두 혹은 사과알처럼 독특한 제맛이 충만되여있어야 한다.”     넷째, 대화묘사는 절주감이 있어야 하며 음조가 화해롭게 하여 독자들이 소리내여 읽어도 입에 잘 오르게 해야 한다.     말은 마음의 메아리이다. 말은 꿰뚫어볼수 없는 인간의 내재세계이므로 미묘한 심리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변하는 그 언어적반응을 실감나게 표달하여야 한다. 대화중에는 드러난 뜻의 대화도 있거니와 잠재사도 있다. ≪햄리트≫에서 햄리트와 그의 어머니간에 오가는 이런 한단락의 대화를 보자.  햄리트야, 너는 너의 아버님을 대단히 노엽혔다. 어머님은, 어머님은 저의 아버님을 대단히 노엽게 하셨소. 이봐라, 너는 허튼소리로 대답하는구나. 저봐요, 어머님은 악한 소리로 물으시는구만요.     이 대화에서 한글자씩 바꾸어놓았지만 두사람의 남에게 털어놓을수 없는 복잡한 심리와 정감이 있기에 말하려는 뜻이 완전히 다를수밖에 없는것이다. 얼핏 보기엔 랭랭한 화답인것 같지만 대화의 용량이 극히 크고 내함이 자못 깊으며 간결하고 의미심장하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모자의 심리상의 격돌을 얼마든지 엿볼수 있다.     2) 경물언어와 정서언어    경물언어란 서정류작품에서 경물을 쓰고 사물을 쓰는데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구체적작품에서는 량자를 가려낼수 없다. 서정적작품의 본질이 주정에 있고 정감토로의 방식이 다종다양하기때문이다. 주정언어에는 내심의 독백이 포괄되는데 일종 무성언어로서 인물의 심령의 오묘한 자아발설이기에 적당하고 교묘하게 운용하면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는듯이 그려낼수 있어 다시각, 다측면적으로 인물형상을 립체감이 나게 하는 목적에 도달할수 있다.    현대시대에 들어와서 “상규를 벗어난 언어”라는것도 출현되였는데 이 리론은 작가가 문학창작에서 운용하는 예술언어는 비일상적언어라고 주장한다. 문학은 실용적인 혹은 학술적언어의 운용이 목적이 아니라 언어가 가지고있는 내함의 독특한 공능을 최대한도로 발휘시켜 예술세계를 표현하는데 운용하기에 “비상규언어”라는것이다.     그들은 문예작품의 심미표준은 바로 예술언어의 “차이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의 일상적언어의 반응은 오직 일종의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상규적반응”일뿐이라는것이다. 예술언어를 비상규적인 언어방식으로 경이로움을 느끼도록 조직할 때 비로소 그것의 심층적함의를 똑똑히 알수 있다고 하였다.     무릇 어떤 종류의 예술부호이든, 그리고 어떻게 파격적이든 문학언어의 주요공능은 감정과 정보전달에 있다. 문학언어ㅡ예술부호는 실제상에서 자체공능의 변형체인것이다. 문학언어는 지시나 지식의 주입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관을 자극하여 무엇인가 깨우쳐주고 그리하여 보편적인 진실한 감동을 확대시켜 주는 극히 선정되여 구사되는 언어의 정화들이다. 례하여 “국화”라는 단어를 사전식으로 해석하면 객관적인 지식을 그대로 해석하여 전달할뿐이다. 이런 언어를 외연적언어라고 한다.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라는 시를 보자.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이런 표현에서 언어는 함축적이고 내포적이며 상징적, 암시적이라는것을 터득할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어감에 민감한 독자들은 “밤”이라 하면 단순히 낮의 반대로만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그속에 담긴 다의적의미를 련상한다.    4. 문학언어의 공능풍격     풍격은 곧 문풍을 의미하는바 실제상 그 사람의 사상풍격과 그것의 작품에서의 표현으로서 특정된 사회환경, 시대의 산물이다. 즉 정치, 경제, 문화의 연혁이 문풍의 변화를 결정한다. 따라서 한 작가의 작품의 풍격, 지방특색의 형성은 환경기분과 취재문제만인것이 아니며 지리학상의 향토개념과의 등호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언어예술가로서의 작가의 풍격 그 자체이다.    무릇 어떠한 종류의 예술부호이든지 주요공능은 감정정보전달에 있는바 일컬어 예술부호—문학언어는 실제상 자체공능의 최적화된 변형체라 말할수 있다. 문학언어의 공능풍격은 우선 특정된 인문환경속에서의 문화심리의 자연적표출로서 되돌아와 독자들을 감복시키는것을 그 심미가치척도로 삼는다.     작가들이 대화효익과 표달효과의 최적화의 목적밑에 알심들이여 선정하는 상응한 언어수단 즉 표달방식의 계통질을 문학언어의 공능풍격이라 하는데 곧 문체풍격이다. 문학언어공능풍격에는 언어흐름마당에서 체현되는 모종의 어조와 어투, 그리고 언어의 뜻마당에서 산생되는 암시, 상징 등 요소가 포함된다.    어조는 작가의 창작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서 그 실질은 분위기 조성 내지는 자기정감표현 형식인바 짙은 주관성을 띠고있고 창작주체의 개성특질이 집중적으로 체현된다. 문학적대화의 전략에서 어조의 기본은 작품에 관통될 작가의 정감기조로서 작가—화자를 개성적으로 만들어줄뿐만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정서와 욕망, 또는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문학장치로도 된다.     뚜르게네브는 “중요한것은 생동하면서도 특수한 작가개인소유의 음조이다. 이런 음조는 다른 사람의 후두에서는 절대 울려나올수 없다.”라고 론술한바있다. 사실상 어조의 기본은 작가의 정감기조이다. 문학적대화의 전략에서 어조는 화자를 개성적으로 만들어 줄뿐만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정서와 욕망, 또는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문학장치로 된다.    예술에서 반복은 죽음이라 한다. 그리하여 고금중외의 작가들은 누구나 늘 쓰는 일반생활어휘로 자기 작품을 구사하는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가능한껏 창조적으로 생신하고 독특하게 언어조합을 하려고 고심참담하게 경영해 왔다.     조명희의 ≪락동강≫어조는 유유한것 같지만 그 기저에서 무겁고 비장한 강음이 은근히 고패지고있다. 그리고 항쟁을 부른 최서해의 ≪탈출기≫의 문장들은 글줄과 어휘마다에 힘찬 맥박이 느껴지지만 결말은 평온한 그속에 절절한 호소와 비애에 넘친 부르짖음이 메아리치고있다. 작가는 문장에 감정과 박력을 주기 위해 음향가가 높고 강한 음절을 많이 선택하고 거센소리, 된소리의 단어들을 고르며 감정이 진한 어휘들과 본딴말을 길게 쓰고있다. 그는 동시대 소설가들중에서 그 누구보다 짧은 문장을 제일 많이 쓴 작가이기도 하였다.    어투는 어조와 같이 문학언어공능 풍격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어구들의 횡적련계로 구성되는 언어의 흐름마당에서의 일종의 표현이다. 어조가 객체에 대한 창작주체의 정감평가에서 기원되여 개체성이 생활소재에 대한 표현이라면 어투는 창작대상에 대한 형상적서술로서 생활소재자체가 창작주체에의 반작용이다. 문학언어로 체현되는 스찔은 지역문화의 영향을 벗어날수 없다.
9    제 2 절 문학의 형식 댓글:  조회:3780  추천:22  2007-08-12
                                        제2절 문학의 형식    1. 형식의 내재함의    형식이란 사물의 제요소의 조직, 결구와 표현형태로서 구체적인 존재방식이다. 문학의 형식은 작품의 내부결구, 표현수단과 외부형태의 유기적결합으로서 언어, 결구, 체재, 표현수법 등 요소로 구성된다. “형식에는 내형식과 외형식이 있다. 내형식은 대상성사물의 내부 조직의 련계를 가리키며 외형식은 사물형상의 구체형태이다.”    문학리론의 력사가 시작된이래 의연히 거론되고 있는 시비거리의 하나가 문학에서 우선하는것이 내용이냐 아니면 형식이냐 하는 문제이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일지라도 훌륭한 형식에 담겨지지 않을 때 훌륭한 문학이 가능할수 없다는것이 형식우선론자들의 주장에고 반대로 내용중시론자들은 형식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내용이 충실하지 않고는 속빈 감정에 다름아니라고 맞서왔다.    초기에세이《현대희곡의 발달》에서 웽그리아 맑스주의적비평가 게으르그 루카치는 문학에서 진실로 사회적인 요소는 형식이라고 하였다. 그는 맑스주의비평은 전통적으로 모든 종류의 문학적형식주의를 반대해 왔으며 순전히 기술적특성에만 관심을 기울여 문학에서 력사적의의를 빼앗고 문학을 하나의 미적게임으로 환원시키는것을 반대해왔다고 피력하였다. 맑스는《형식은 내용의 형식이 아닌 한 무가치하다.》고 론평한바 있다.     헤겔도 자기의《예술철학》에서 “모든 일정한 내용은 그것에 알맞은 형식을 결정한다. 형식의 결함은 내용의 결함에서 발생한다. 내용은 형식이 내용으로 변형된것에 지나지 않으며 형식이란 내용이 형식으로 변형된것에 불과하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맑스주의비평은 형식과 내용이 변증관계를 지닌것으로 보지만 결과적으로는 형식을 결정하는데서는 내용의 우위성을 주장했다.     비록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지만 형식은 소극적이고 피동적인것은 아니다.형식은 자신이 형상화하려는 내용의 종류에 의해 결정된다. 형식화된 방식은 언어에 따라 다르다. 문학에는 한결같이 제민족의 삶의 슬기가 스며있는바 언어형식은 그 어떤 형식에도 선행되는것이다.    ≪청산별곡≫이나 ≪가시리≫는 한문학적으로는 도저히 복사할수 없는 민족적색채가 오롯이 깃들어있다. 정철이나 윤선도로 대표되는 시조나 가사작품의 우미함은 그 어느 민족의 언어도 미칠수 없는 아름답고 풍부한 우리 민족언어만이 이룰수 있는 유산이다. 2. 형식과 내용의 관계     문학에서 내용과 형식을 바늘과 실의 관계로 비유한다. 비록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지만 형식은 소극적이거나 피동적인것이 아니다. 내용은 형식속에서 풍부해지고 형식은 내용을 통해 찬란해진다는것은 기성리론이지만 내용과 형식의 융합방식은 쉽게 리해거나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문학리론계에서 시종 시비거리로 남아있게 되였다.    내용과 형식의 력동적인 상호관계에서 문학창작과정과 수용과정을 리해하는것은 력사와 사회의 변화속에서 변모하는 당대문학의 본 모습을 찾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참된 모습을 어떻게 보다 생신한 형식에 담을것인가 하는 창신성문제이다.     벨린쓰끼는 “만약 형식이 내용의 표현이라면 그는 반드시 내용과 긴밀히 련계되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형식을 내용과 분리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내용의 훼멸을 의미하며 반대로 내용을 형식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면 형식을 훼멸시키는것과 같다”라고 쓰고있다.     예술작품은 형식적측면이 탁월할수록 그 내용도 역시 더 높은 진리를 가지게 된다. 예술에서의 “형식의 결함은 또 내용의 결함에서도 비롯”하게 된다. “리념의 추상성과 일면성은 형상을 외적인면에서 결함이 있는것이자 우연적인것”으로 만들기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토속적으로 비유하고있다. 수정꽃병에 꽂아도 꽃은 의연히 그 꽃이지만 더 돋보일수 있다. 형식과 내용은 동전의 앞뒤와 같고 달리는 마차의 두바퀴와도 같다고 할수 있다. 꽃병에 풀을 꽂아놓아도 의연히 꽃병이라 부르지만 꽃을 꽂아도 요강은 의연히 요강인것이다. 이처럼 형식은 내용에 의해 규정되지만 상대적으로 독립성도 가진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할진대 사회생활내용의 변화는 문학내용의 변화를 가져오며 동시에 형식을 개변하려는 수요와 추구도 불러온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낡은 술병에 새 술을 담을수 있고” “새 술병에 묵은 술을 담을수도 있다.”     문학의 내용과 형식은 불가분리적인것으로서 어떤 내용이 산생되면 동시에 형식이 뒤따르게 된다. 심각한 사상과 완미한 형식의 결합만이 진정한 예술작품을 낳을수 있다. 내용에 걸맞는 형식이 아니라면 심미적으로 손상을 야기할것이고 형식이 내용보다 더 크면 작품은 무게를 잃을것이 자명하다.    3. 형식으로서의 예술수법     문학창작에서 생활을 반영하며 형상을 창조할 때 쓰는 구체적인 묘사방법을 예술수법 혹은 표현수법이라 한다. 표현수법은 작품의 구성과 슈제트 전개, 인물형상 구성, 언어표현 등 작품의 전반에 작용한다. 표현수법에는 묘사, 서술, 서정, 의론 허구, 과장 등이 있으며 또 다양한 수사학적수법들이 망라된다.     형상적표현이란 표현적묘사의 계선을 뛰여넘어서 남이 다 보고있으나 말로 형언하지 못하는것을 놀랄만큼 재치있게 생동한 미적대상으로 구체화하는것이다, 시는 창조적표현, 줄글은 구성적표현이라 할수 있다. 특히 시는 류추작용에 의한 비유세계에 속하는것으로서 단순히 감별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융합하는 재능에 의해 창조된다.     묘사는 문학창작에서 형상창조의 기본적인 방법 혹은 표현수법으로서 인물이나 경물, 장면, 정경 등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지는듯하게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그린다. 묘사는 크게 환경묘사와 인물묘사로 나누며 직접묘사와 간접묘사, 정태묘사와 동태묘사로 나눈다. 환경묘사는 자연묘사, 풍물묘사, 사회환경묘사들을 포괄하고있으며 인물묘사에는 초상, 심리, 행동, 언어 묘사가 있다.   (1) 초상묘사: 초상묘사는 인물의 개성적인 성격특징을 나타내는데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 잘된 초상묘사는 인물의 년령, 출신, 사회지위, 생활경력, 및사상, 성격, 내면세계까도 력력히 보여줄수 있다.   (2) 심리묘사: 심리묘사에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제3자의 시점에서 인물의 심리활동의 변화를 직접묘사하거나 인물자신이 자기의 내면세계를 직접 토로하는것이 있다. 그리고 측면묘사 즉 인물의 외부특징이나 동작 혹은 환경묘사로인물의 심리활동을 암시하기도 한다. 때론 량자를 결합해 쓰기도 한다.   (3) 행동묘사: 인물의 행동은 인물의 사상감정, 도덕품성과 성격특징의 구체적표현이다. 인물형상이 생동하다는 말은 정태적인 초상묘사로써만 완성되는것이 아닌 살아서 숨쉬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상을 말하는것이다.    (4) 언어묘사는 인물의 독백, 또는 대화를 통하여 인물의 성격을 그려내는 수법으로서 대화묘사라고도 한다. 인물의 어투, 목소리, 표현방식은 그 사람의 년령, 직업, 취미, 애호, 문화정도, 수양, 습관 등을 알아볼수 있게 한다.    (5) 환경묘사: 인물성격이 이루어지고 인물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사회시대적배경이나 구체생활환경, 장소, 정황들을 묘사하는것을 말한다. 소설에서의 배경은 사건의 환경이며 사건이 일어나고 전개되는 직접적인 세계이다. 소설은 묘사에서 시작되고 묘사에서 끝난다고 하여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묘사는 크게 객관적묘사와 주관적묘사로 나눈다. 주관적묘사는 문학적묘사라로서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것을 생동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수법이다. 소설이 다른 쟝르를 제치고 왕좌에 앉아서 각광을 받는것은 바로 다양한 묘사의 매력때문이다. 듀마의 ≪동백꽃아가씨≫에 마르그리트의 외모묘사를 보자. 례: 그가 바로 꽃의 서울 빠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녀인 마르그리트이다. 한없이 아릿다운 얼굴에 물찬 제비같은 몸매, 말소리와 걸음걸이, 몸가짐조차 남달리 고상하고 우아해보이는 그 녀인은 후작부인이라고 하여도 의심할 사람이 없는 녀인이다.    고골리의 ≪죽은 넋≫에서 치치꼬브의 눈에 비친 쁠류쉬낀의 서재에 대한 묘사는 유명하다. 소설에서 보통 객관적묘사가 너무 길지 않지만 쁠류쉬낀의 린색한의 형상을 안받침해주기 위하여 작가는 세부묘사를 하였다.    2) 서술: 서술의 시점은 곧 인칭문제이다. 서사결구는 정체적형태로서 표층적결구와 심층적결구가 있다. 서술방식에는 1인칭서술, 3인칭서술방식이 있다. 소설에서 작가의 주정토로도 한몫을 담당한다. 주정토로를 서정토로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인 주정토로와 간접적인 주정토로가 있다.    서사적작품에서 주정토로에는 직접적주정토로와 간접적주정토로가 있는데 인물, 사건, 경물, 의론 등을 빌어 토로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주정토로는 작가의 사상감정을 직접표현하거나 혹은 묘사된 생활현상들에 대한 태도로서 작가의 변상적개입이다. 주정토로는 성격형상과 작풍의 사상적기백을 돋구는데 이바지한다. 심각한 의론과 결합된 주정토로는 작품에 색다른 감을 주고 정서적무게를 누르기도 한다. ≪탈출기≫에서 주정토로의 매력을 음미해보자.    례: ≪김군! 나는 이때로부터 비로소 무서운 인간고를 느꼈다. 아아, 인생이란 과연 이렇게도 괴로운것인가 하는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이때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 하면 적당할가?…아아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안해를 나는 의심하였구나!이 몸이 어찌하여 그러한 안해에게 불평을 품었던가?…≫     사회최하층에서 겪었던 작가의 극한 정서체험에서 칠정륙욕을 가진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나이라면 가히 분출될만도 한 가슴저린 주정토로이다. 스탕달의 ≪붉은것과 검은것≫에서 의론과 결부된 주정토로도 인상적이다.    아!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그 고귀한 아씨가, 그 활홀한 미모의 령양이, 보잘것 없는 비천한 한 시골청년을 사랑하다니!그것은 꿈아닌 현실이기는 하나 그들사이에는 구경 뛰여넘을수 없는 깊은 홈이 가로놓여있었다.    형식에 비해 내용의 발전변화가 더 활발하고 신속하나 내용에 비해 형식의 변화는 완만하며 상대적으로 온정성을 가지고있다. 새로운 내용에 적응되는 새 형식은 왕왕 옛형식의 기초상에서 혁신을 거쳐 형성된다. 새로운 내용도 잠시 옛형식으로 표현될 때가 많다. 내용과 형식의 모순의 통일과정은 새것과 옛것의 대립통일중에서 발전하는 과정이며 문학혁신의 장거였다. 4. 형식문제와 이데올로기    문학의 형식문제에 대한 론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있다. 부동한 관점은 대체상 세가지이다.    첫째, 문학예술의 내용이 형식보다 더 중요하다는것이다. 그 전형적인 대표로 체르늬쉡쓰끼를 꼽아야 할것이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예술의 미는 내용에 있다. 그는 “예술작품은 어느때이든 현실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다. …객관현실미야말로 철저한 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상기한 관점과 반대로 로씨야형식주의자, 영미의 신비평, 프랑스의 결구주의자들은 예술작품속에 생활, 력사, 사회, 심리내용 등은 모두 문학의 “외계”로서 오직 예술형식만이 예술작품의 본체이므로 예술형식은 자연히 형식우에 놓인다고 주장하였다.    로씨야형식주의자 야꼽슨은 “문학과학의 대상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성’으로서 한부의 작품이 문학으로 되게 하는것이다. ‘문학성’은 근근이 문학작품의 형식이며 더우기는 언어형식, ‘문학형식’은 문학언어의 련계와 구조속에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문예연구는 오로지 형식분석에 몰입해야 과학적경지에 이를수 있다.”라고 력설하였다.     셋째, 상술한 두가지 관점과 달리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예술의 내용은 리념이며 예술의 형식은 감각적이자 구상적인 형상화”라고 쓰고 ≪예술철학≫에서 “모든 일정한 내용은 그것에 알맞는 형식을 결정한다. 형식의 결함은 내용의 결함에서 발생한다. 내용은 형식이 내용으로 변형된것에 지나지 않으며 형식이란 내용이 형식으로 변형된것에 불과하다.”고 쓰고있다.    웽그리야의 철학자, 문예리론가 루카치는 초기에세이 ≪현대희곡의 발달≫에서 문학에서 진실로 사회적인 요소는 형식이라고 선언했다. 루카치에게서 전형적인것은 어느 사회에서든 력사적으로 가장 의미깊고 진보적인, 그리고 사회의 내적구조와 원동력을 드러내주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리얼리즘론의 핵심은 내용과 형식의 통일성이다.
8    제 3 장 문학의 내용과 형식, 제 1 절 문학의 내용 댓글:  조회:3151  추천:20  2007-08-12
       제3장 문학의 내용과 형식                                        제1절 문학의 내용    1. 내용의 함의    문학의 내용이란 작품을 구성하는 제요소의 총화이며 문학작품의 내용은 객관인소와 주관인소의 통일체로서 작품속에 포함된 작가의 주관평가를 내린 객관현실생활이다. 문학의 내용은 형상창조를 통하여 작품에 생동하게 반영된 현실생활 및 그것이 포괄하고 체현하고있는 작가의 사상감정, 제재, 주제, 정절 등 요소로 구성되여있다.    2. 형상과 사상    문학작품에 묘사된 구체적이며 생동한 인간생활의 화폭을 형상이라 하고 좁은 의미에서 작품속에 묘사된 인물의 성격을 형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문학형상은 미감을 환기시키는 형식이다. 형상을 생활을 반영하는 문학예술의 기본특징에 귀속시켜 론술하기도 한다. 문학형상은 궁극적으로 작가의 미학적견해를 체현하는바 생활에 대한 작가의 평가와 사회적리상들이 형상에 체현되며 형상의 피와 살속에 고착된다.    인물성격에 침투된 감정은 바로 작가 자신의 감정으로서 작품의 인물이 살아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문학예술은 인간을 묘사의 중심에 놓고 인간의 다양한 성격과 인간들의 관계, 그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사건, 인간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사회적, 자연적 환경을 생생한 화폭으로 만들어 묘사하기에 이런 인간생활의 화폭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문학형상이다.     문학형상의 총체적특징을 구체적인 감성재료, 예술적인 개괄성, 심미리상성, 심미속성으로 개괄할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적향수를 안겨주고 추악한것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심미향수를 추구하게 하며 루추한 사회와 인생의 황당함을 전시하고 아름다움을 더 지향하게 하며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선행을 지향하는 인성을 회귀시킨다.    문학형상은 작품의 예술성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인소로서 살아숨쉬는 인간자체의 모습이다. 형상성은 주로 작품속에 묘사된 구체적인 인물형상에서 체현된다. 작가가 형상을 창조하고 생활을 반영하는 과정이 형상화이고 또한 형상창조에서 달성된 구체성, 생동성의 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문학의 사상성이란 바로 문학문본의 예술형상을 통하여 체현되는 문본의 사상적의의와 경향성이다. 사상은 문학형식의 령혼으로서 문학작품의 인식적, 교양적의의와 사회가치를 규정하는 주요한 표지이다. 사상성은 작가의 세계관의 제한을 받는바 생활반영의 심각성, 진실성의 여하를 가늠하는 좌표이다.    작가의 창작사상은 문학의 령혼이다. 문학의 가치는 문본가치와 사상가치를 포괄한다. 문학은 한마디로 작가의 사상의 승화이고 사상의 표현형식이다. 문학의 사상성의 척도는 인민성이다. 문학의 사상성의 근원은 언어의 사유성에 있다. 똘쓰또이가 ≪부활≫을 구상할 때 몇년간 집필할 엄두를 못낸것은 사상적설계도가 완성되지 못했던 탓이라고 한다.     3. 문학의 제재    제재란 개념은 어원상에서 운동의 원인을 의미하며 예술개념이 되여질 때도 역시 창작표현의 동기를 가리킨다. 부동한 예술에 따라 부동한 내용들이 부여되고있지만 더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관념이 내재화된 소재요소 혹은 모부분이 표현동기나 인소로 되여 각종 인물과 상황을 조합하고 정절을 전개하려고 준비할 때의 소재가 바로 제재이다.    소재란 예술작품을 이루는데 동원되는 모든 재료와 원료의 총칭으로서 표현대상과 표현수단의 의미를 함께 가진다. 문학소재는 곧 언어로서 언어의 조직화가 문학의 본질을 규정짓는다. 표현대상으로서의 소재를 보통 제재라고도 한다. 례하면 단순하고 다정다감하며 다혈질적인 소자산계급녀자인 엠마는 개인의 순결한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길에서 길을 잃고 타락하며 나중에 버림받고 빚더미에 눌려 절망속에 자살한다. 이런 처절하고 막무가내한 사회비극이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의 제재이다.    비교적 긴 작품에서는 몇개의 제재가 복합적으로 표현되는바 중심제재와 차요제재로 나누기도 한다. 제재는 유기적으로 통일된 피와 살이 있는 생활정체이며 작가의 심층적사유의 성과와 선명한 정감경향으로 조직된 생활재료이기에 제재에는 소재가 구비하지 못한 심미특징이 과일속에 씨앗처럼 배겨있다.    협의적의미에서 제재는 작품의 인물, 경물, 슈제트, 정감(작가의식) 등으로 조성된 일체 생활재료를 말한다. 서정시에서는 사람과 자연간의 각종 관계를 제재로 삼는게 통례이다. 리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빼앗긴 들이 제재이며 김소월의 ≪접동새≫와 ≪진달래 꽃≫에서는 접동새, 진달래꽃이 제재이다. 서정적작품의 제재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정절이 없으며 완정한 인물성격도 없다. 개별적인 작품에 있긴 해도 작가가 감정을 토로하는 수요에 복종한다.    둘째로 서정적작품의 제재는 왕왕 어떤 국부적생활의 찰나에 대한 조약식구에서 표현되는바 서사작품에서 상대적으로 완정한 환경묘사와는 달리 생활의 한 모퉁이로서 깊고 넓은 배경을 암시한다.    셋째. 서정적주인공은 혹은 형체가 있거나 혹은 무형체로서 작품속에 관통되여있으면서 감정의 흐름이 시종 편단적 국부적 생활경상과 련계되여있다. 그속에서 사회, 인생에 대해 표현하고 비판하고 해석하고있다. 쉬빠쵸브의 ≪사랑과 자유≫를 보자.          사랑과 자유             이는 내가 념원하는 모든것          내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쳐 아낌없으리.          그러나 내 자유를 위해서라면             사랑이여, 너마저 버리리라.    시는 이렇게 비약되고 함축된 시행속에 긴 생활내용, 인생추구는 오히려 깊고 넓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과 자유는 전부의 인생추구를 표징한다. 즉 인간의 오만가지 념원과 욕망, 추구는 결국 단두마디ㅡ사랑과 자유에 귀결는것이다. 시인은 인간심령의 핵심적추구를 고도로 함축시켜 인생의 전부를 담았다. 다시 미끼로후의 ≪입맞춤뒤에≫를 흔상해보자.                “잠이 들었나?”                       “아니”라 한다.                           꽃피는 한나절.                              호수가 잔디우 해볕아래서                                 “눈감고 죽을래.”                                        그대는 대답한다.    시에서는 생활에 흔히 있을수 있는 찰나적인 국부적정경을 간결하고 재치있게 보여준다. 비록 시행은 상상의 공간을 훌훌 뛰여넘고 있지만 꽃피는 5월도 한나절, 아늑한 호수가 잔디우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련인의 행복의 절정, 극치를 펼쳐보이고있다. 이런 정서의 극치는 단순히 두사람의것만으로 남지 않는공성의 정감이라는데 주제의 적극성이 있다.    햇볕아래에서 “눈감고 죽을래”하는 그 한마디에, 그 속삭임속에 사랑에 도취된 행복한 순간을 영원으로 연장시키려는 련인의 오묘하면서도 일반적이기도 한 심경이 독자에게도 감동깊게 전달되고있는바 사랑에 취해 있는 련인들이면 다 갖고싶어하는 심경이다.    서정적작품에서 시인의 화제와 그 작품의 내용에 해당하는 화자의 화제는 결코 같은게 아니다. 시인의 의도가 작품속에 완전히 수용되여 고착되기까지는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야 하기때문이다. 흔히 대화의 주되는 내용을 화제라고 하는데 제재의 뜻으로 리해할수도 있다.    소기의 대화내용을 목적성있게 어느 한 방향에로 끌고나가면 지향성화제가 되고 무슨 내용을 중심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화제의 초점 혹은 주제성화제가 결정된다. 이 시점에서 주제성담화는 주제 혹은 주선률의 의미를 가지는 테마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문학작품에 어떤 주의, 사상이 주입되면 테마(쩨마)소설 혹은 주제소설이라 한다.    제재가 광의적의미에서 작품에 묘사된 대상의 범위를 의미할 때 흔히 공업제재, 농업제재, 군사제재, 력사제재라는 개념들이 파생되여 나왔다. 시간을 의거로 당대제재, 현대제재,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공간을 의거로 중국제재, 외국제재, 서부제재, 농촌제재, 도시제재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광의적의미에서의 제재로서 문학작품의 구성과는 무관하다.    4. 내용의 구성    구성의 어원은 라틴어(편성, 정리)에 있다. 작품의 내용을 하나의 통일체로 만드는 조직작업에서 구조, 구성부분의 배치, 사건서술의 순서이다. 구성의 실질은 무슨 내용을 무엇때문에, 어떻게 엮을것인가? 하는 작업이다. 부분과 전체를 맺어주는 원리로서의 구성은 작가에게는 실제 창작과정의 지침이고 독자에게는 작품 전체를 리해하는 질서가 된다. 작가는 구성의 도움으로 인물을 특징지으며 관심을 가지고있는 범위의 생활현상을 리해한대로 묘사한다.    문학작품에서 전개되는 구성의 공통적인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동서양에 큰 차이가 없다. 즉 동양에서의 “기승전결”과 서양의 “피라미드 5단계”의 구성단계는 원리상 비슷하다는것이다. 이런 원리는 지금까지 공동하게 지켜져왔다. 사건의 도입부(발단), 상승(또는 전개), 전환(또는 절정), 하강(또는 해결), 결말(또는 대단원) 등의 구성원리는 근본적으로 같은 립장에서 출발한것이다. 신비평으로 넘어오면서 에피소드를 진술하는 순서의 의미이던 구성은 구조라는 개념으로 확정되기 시작했다.    상기한 서술에서 알수 있다싶이 가령 문학이 의식형태라면 사상정감이 핵심이 되고 그 표현이 곧 형식이 되며 가령 문학이 언어활동이라면 언어의 운용이 곧 내용이 된다. 즉 무엇을 토로하고 무엇을 묘사하는가가 내용이며 어떻게 토로하고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는가는 형식이다. 내용과 형식은 이처럼 규정성과 통일성을 고유하고있다.  
7    제 3 절 문학의 기능 댓글:  조회:3349  추천:23  2007-08-12
                             제3절 문학의 기능    1. 문학기능의 함의    문학기능이란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감수, 감정을 매개로 정서체험을 하며 심미교육을 받게 되고 사상을 고양하고 삶의 총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거대한 작용력이다. 문학은 진, 선, 미를 주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자유와 직관적완정성을 추구한다. 문학기능은 작가가 지닌 세계관과 전사회의 보편적세계관이 등이 독자의 심미의식과 어우러진 리념의 감각형상화이다.    문학적대화내용의 구성과 요소는 단일한 체계가 아니다. 지적요소, 정서적요소, 상상적요소, 기교적요소 혹은 구성과 문체요소가 포괄된다. 문학적대화는 어떤 한 작가의 독창성이나 특수성에 귀속되는것이 아니라 기존의 개별적인 텍스트들 및 일반적인 문학적규약과 관습들에 의존한다. 이것을 문학활동을 좌우지하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라 한다. 문학작품에서 추구하는 정서란 미적정서가 중심이 되는 예술정서로서 이것이 문학적대화의 성격을 규정한다. 즉 함께 문명의 새아침을 열어가는 가장 문화적이고 지적이며 정서적인 대화이다.    맑스는 “인간은 예술행위를 통하여 자기 자신, 자신의 삶, 실재와 자신의 관계 등을 형상적으로 표현하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전면적으로 자기화한다. 예술의 주요대상은 인간이 객관적실재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기 자신속에 있는 본질적인 능력을 실현하는것이다. 인간은 활동 그 자체를 의욕과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밝히고있다.    작가는 지적인 도덕적교훈을 주기 위해 창작하고 독자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작품을 읽는다. 문학작품은 그저 인쇄품이 아니다. 작가는 물론, 독자에게도 문학은 생명운동이고 생존방식이며 생활태도이고 생활내함이며 생명의 넝쿨이 휘감기는 정신기둥이기도 하다. 문학의 기능을 보통 인식적, 교양적, 심미적기능이 숭고한 그런 묵결속에서 진행된다.     2. 인식적기능     문학의 인식기능이란 형상적으로 독자들에게 인류의 사회생활에 유관된 내용 즉 인성의 력사형태, 인간의 정감, 심리, 운명 등을 다른 각도로 인식시켜 생활에 유조한 각종 지식을 얻게 하거나 직관적으로 혹은 깨달음으로 인류생활의 진실한 본질을 파악하게 하는 기능이다. 환언한다면 문학작품에 대한 지각화, 정서화, 심령화이다.    더 부언한다면 문학은 다각도, 다층차적으로 사회, 력사, 인생, 자연계에 대해 알게 하고 자아를 인식하게 한다. 독자들은 문학작품속의 예술형상을 통하여 일정한 력사시대, 타민족의 삶의 양상을 알게 되고 동시에 정치, 경제, 문화, 륜리, 사회풍속습관 등 방면에 대해 알게 되며 사회와 인생을 더 깊이 사색하며 삶의 질적향상을 기약한다.    문학의 인식공능은 기실 문학의 진실성의 가치실현이며 그 목적과 기능문제는 문학의 생성문제이면서도 문학의 의미문제이기도 하다. 한것은 문학은 강렬한 감정효과와 다양한 사회기능도 있거니와 가장 효용적인 교화와 교육수단으로 리용되며 대표적인 심미가치는 진귀한 문물로 소장되여 인류문명의 발전을 도모하기때문이다.    문학은 삶의 진실과 력사현실의 본질적인 문제 등에 대해 가르치고 깨우쳐주는 기능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력사가 개별적인것을 말하는데 반해 시는 보편적인것을 말하는 경향이 많기때문에 시가 력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문학의 핵심적기능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예술적인 정서체험과 인식, 그에서 얻는 깨우침에 있음을 제시하고있다.    한부의 문학작품의 해독을 통하여 작품에 반영된 어느 한시대, 한지구, 민족의 민속풍습 등을 해석할수 있으며 그로써 인식범위를 넓히고 가치함량을 높이게 된다. 원시문학은 원시인들의 집단로동과 생활을 반영하였고 계급사회의 문학은 계급투쟁을 반영했다. 포송령은 ≪료재지이≫에서 꽃요정, 여우귀신 등을 묘사하였지만 현실의 어떤 방면에 대하여 타매의 채찍을 휘두르고있다.    사람들은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 추상적개념의 형식으로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규률을 표달할것을 수요할뿐만아니라 구체적형상을 통하여 생활속에서의 감수와 념원을 현실화시킬것을 수요한다. 문학의 목적은 작가가 독자에게는 생소한 새로운 인간상을 탐구, 부각하여 제시하려는데 있다. 고리끼가 문학작품은 “한세대의 풍속과 기분의 력사”라고 한것이나 체르늬쉡쓰끼가 “인간생활의 교과서”, “인간의 정신량식”이라 한것은 다 문학기능을 두고 한 말이다.     엥겔스는 발자끄의 ≪인간희극≫을 “이 중심적인 화폭을 놓고 거기에 프랑스사회의 전 력사를 집약하고있는데 여기에서 나는 심지어 경제학적인 세부, 례컨대 혁명후의 동산과 부동산의 재분배라는 의미에서도 이 시기의 력사경제학자와 통계학자를 전부 합친 모든 전문가들의 저서에서보다 더 많은것을 알아냈습니다.”라고 하였는바 문학적대화의 효능을 고도로 평가한것이다.    레닌이 레브 똘쓰또이를 “로씨야혁명의 거울”이라고 한것이나 맑스가 영국의 사실주의작가 쌔커리를 “현대 영국소설가들의 빛나는 일파는 그 명확하고도 류창한 묘사에 의하여 모든 정치가, 정론가 및 륜리학자들이 모두 달려붙어도 당하지 못할 정치적 및 사회적진리를 세상에 폭로하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쌔커리의 ≪허영의 시장≫에는 통일적인 줄거리가 없으며 전개되는 사건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도 없다. 작자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황금외에는 그 어떠한 주인공도 없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허영의 시장≫의 주인공은 곧 황금이다. 우리는 소설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주인공인 황금이 어떻게 무절제한 폭군으로 인간들을 타락시키고 기로에로 끌어가는가를 보게 된다. 또한 항금만능주의가 어떻게 현대인의 인성을 비틀어버렸는가를 다시 반성해보게 한다.    고전명작 ≪춘향전≫을 읽으면서 당시 봉건사회에서의 량반과 서민사이의 신분적불평등, 량반계급의 전횡과 부패성, 봉건적속박을 반대하고 투쟁하는 청춘남녀의 감동적인 사랑 등 그 시기 조선사회생활의 여러측면을 들여다볼수 있다. 이렇듯 그 모든 우수하고 진보적인 문학작품은 생활을 보다 심층적으로 폭넓게 인식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인생을 충실하게 한다. 이렇듯 문학은 새롭고 바른 삶의 원리를 창조하려는 생산적의도의 산물이다.    문학의 인식기능은 문학의 기능에서 첫 자리에 놓이는 주요공능이지만 문학의 본질적공능은 아니다. 그보다 기본적인 효능은 교화공능이다. 문학에 정반면의 감화력이 없다면 력대봉건통치자들이 문학의 교화, 감화공능으로 사상통치를 도모하려 하지 않았을것이다.    3. 교양적기능    문학의 교양적기능이란 독자들이 문학작품에서 새 세계를 발견하고 주위의 사물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고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게 하는것을 의미한다. 감동을 유발하고 감동의 여파속에서 자기 행위에 대해 성찰하거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하는것은 문학만이 지닌 교시적측면이다.    문학의 교양적기능은 또 “세계는 응당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가치목표에 해당하는 기능이다. 문학은 생활에 대한 독자의 태도와 의식, 품성을 바람직하게 형성하는 교양적기능을 갖는다. 교양기능은 객관존재이며 문학정감과 형상의 력량을 빌어사람들에게 인류의 생존과 향수, 성장과 발전에 더욱 합당한 가치취향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고 전면발전한 정신분위기와 인문환경을 창조하게 한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생활은 어떤 모양인가를 알려줄뿐만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되여야 하는가도 가르쳐준다. 즉 예술적찬미, 편달, 견책, 폭로 자아격려, 자아위안, 자아도취, 서술, 호소 등으로 처세함에서의 자세와 도리를 설득시키 면서 인생교과서의 구실을 착실하게 해왔다.    훌륭한 작품은 인생의 진리, 당대의 현실을 진실되게 반영하므로 독자는 작품의 감상을 통하여 자기의 삶에 필요한 지식과 깨우침을 얻을수 있다. 작품속에 묘사된 인간생활을 보면서 독자는 생활의 여러방식을 배우고 혹은 그에 대해 비판하면서 사회생활에 유익한 도덕과 규범을 익히게 되는것이다. 뿐만아니라 작품속에 현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혁신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 력사현실의 발전을 기획하고 실천하게도 된다.    문학의 제일 기능을 쾌락보다는 교훈에 두는 사람들은 대체로 교훈주의적문학관을 가졌다. 교훈적작품은 인상적이고 설득력을 가진 상상적, 허구적인 형식으로 리론적, 도덕적 또는 실제적지식의 한 분야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한것이거나 또는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인 테마나 강령을 예시할 목적으로 꾸며진 작품을 말한다. 문학작품에 아무런 교훈성도 없다면 그것은 무가치하다.    존 밀턴의 대서사시 ≪실락원≫등은 교훈적문학이지만 문학적걸작으로 평가된다. 문학작품을 흔상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며 평가하게 되고 인간의 행위를 새로운 차원에서 분석하게 된다. 똘쓰또이는 ≪부활≫에서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관념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직접 설교하지 않았다. 자기가 망그러뜨린 까츄사의 운명의 참혹함에 자책을 느끼고 시베리아까지 따라가면서 겪는 네흘류도브의 견딜수 없는 내심의 갈등, 고통의 모대김을 현실로 보여주어 인생의 진실과 사랑의 의미를 독자들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문학은 해당시대의 기존체제와 가치취향을 비판할수도 있거니와 작가적리념의 실현을 위해서 그 시대의 도덕재판관으로 나서서 직간접적으로 새로운 도덕건설을 추구하며 독자들도 그것을 절실히 감수하게 함으로써 문학의 인식적, 교양적기능을 체현시킨다.    례하면 다니엘 띄포의 ≪로빈손크루소≫는 무인도에서의 기나긴 세월속에 고군분투를 통하여 인간의 삶의 욕망이란 얼마나 강렬하며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한사람의 로동이 구경 어떠한것들을 만들어낼수 있는가 하는 등을 시사하면서 유익한 교훈을 주고있으며 자본주의원시축적시기 신흥자산계급의 정신면모를 보여주는 인식적기능도 훌륭하게 담당하고있다. 소설은 생동하고도 흡인력이 있는 이야기로써 오로지 기개가 있고 의력이 있으며 로동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평범하지 않은 사업을 훌륭하게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로빈손의 형상이 오늘도 생생히 살아있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4. 심미적기능    심미의식이란 심리각도에서는 미적태도에서의 인식과정이고 철학관점에서 말하면 미적가치에 대한 직접적체험을 의미한다. 미와 미감에는 두가지 표현형식이 있다. 하나는 표현대상이 구비하고있는 미로서 긍정적전형에서 표현되여 미적향수를 안겨준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전형을 통하여 진,선미에 대한 지향성과 미적감응이 더욱 강렬해지게 하는 표현목적의 미이다.    문학은 구체적이고 생동한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아름다움과 추악함, 숭고미와 골계미 등을 판정하게 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흔히 오락적기능과 결부하여 설명하지만 작품의 언어와 문체, 인물의 행동이나 사고, 작품의 전체적균형이나 조화 등을 감상하는중에 사물의 아름다움을 판정하는 기능을 가리킨다.    사실상 독자들은 작품을 읽을 때에 개인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동시에 그작품이 주는 충격에 의해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작품의 공리성과 오락성에 대한 레브 똘쓰또이와 오스카 와일드의 주장이 대표적이라 말할수 있다.    고대에는 아름다운것, 착한것, 참된것의 삼위가 하나를 이루는것이 최적으로 치부되였으나 프랑스상징주의 이후로 아름다움에 대한 경향이 압도적이 되였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극단적인 명제까지 내걸고 아름다운것만을 그리라고 하였지만 똘쓰또이는 도덕적으로 타락되여있는 퇴페적인 작품을 격렬하게 비평했다.    문학의 오락기능과 심미자체가 교육인소와 내용을 수반하는것을 거절할수 없다. 미육은 정감교육의 훌륭한 무기이다. 인간의 감정, 정서가 없다면 진리에 대한 추구도 있을수 없다. 작가는 일정한 심미관념에 따라 선재하여 우미하고 생동한 예술형상을 부각해낸다.    독자들이 작품인물의 행위, 운명과 종종의 생활정경에 정감상 강렬한 반응이 생기고 아름다운것, 숭고한것, 비렬한것, 그리고 비극성과 가소로움 등을 선별하는데로부터 정신상 자극과 촉동을 받고 인생을 더 깊이 알게되고 사색하게 된다. 이와같은 감동을 주는것은 작가의 성공이고 그러한 감동을 작품에서 받는것은 독자의 성공이다.    이렇듯 문학의 전제적효능은 재미와 기쁨과 즐거움이다. 비록 비극에서는 모순되는 두가지 정서, 공포와 련민의 정을 통해 독자는 흥분하고 슬픔속에서 인생의 비극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그러나 비극의 예술적쾌락이란 인위적으로 고조되였던 감정들이 스스로 풀릴 때 이름못할 쾌감을 느끼게 되는 그것이다.    미의 본질은 참된것과 착한것의 통일이고 감성과 리성의 통일로서 거짓된것으로부터 참된것을 사랑하도록 충동하는것이다. 조선영화 ≪꽃파는 처녀≫는 수많은 관람자들을 울렸다. 심지어 서로 다른 리념세계의 자본가들의 가슴에도 인간성과 인도주의 정신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문학작품이 이렇듯 미적정감을 가지게 할수 있는것은 예술형상이 작가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사상에 의해 “미의 법칙에 따라 창조된 까닭”이다.    미적체험의 심도로 말할 때 순수한 쾌감으로 충만된 표현보다는 반대로 더 강렬하다. 부정인물들의 그 야비하고 잔악한 품성들에 대해 분개하고 증오심을 품게 되고 진, 선, 미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심미기능의 력동적효능이다. 이렇듯 심미의식은 단순한 정관적인 관조의식이 아니라 동시에 평가의식으로서 그에는 인류본성의 보편성경향이 전제로 된다.    문학적대화내용에 관통되는 심미의식은 독자의 봉페적인 개체의 체험범위를 초월하도록 한다. 이것을 개체주관성의 초월이라 한다. 여기서 전제는 흔상취미이다. 취미의 높고 낮음은 한 사람의 심미흔상능력의 고저를 의미한다. 칸트는 인간의 흔상판단을 “취미판단”이라고 하였다. 예술창작은 영원히 예술가의 자아표현이다. 그렇다면 생활속에 추악한것들이 어떻게 예술미의 일부분으로 바뀌는가? 작가가 이런 추악한것들을 “마술사의 지팽이”로 한번치면 미적인것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예술가의 “련금술”이라 지칭했다.   비극 ≪멕베스≫에서 야심가 멕베스부부는 도덕법정에서 도저히 용서받을수 없는 악인들이며 몰리에르의 ≪따르뜌프≫에서 따르뜌프는 전형적인 사기군, 인간패류의 전형으로서 독자들의 심목속에 락인찍혀있다. 그처럼 위대한 속성을 지닌 인물들이 겪은 운명적고통을 표현한 비장미, 거기에서 드러나는 거짓된 사회현실, 억압된 사회, 부당한 지배에 항거하는 리념가치는 긍정적이다.    문학은 선전, 선동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전은 문학을 대체할수 없다. 문학에 교육기능이 있지만 교육으로 문학을 대체할수 없다. 문학의 효용은 제한적이나 문학의 특수가치는 그 어떤 사회의식형태로도 대체할수 없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아내게 하는바 문학은 예술적찬미, 편달, 견책, 폭로, 자아격려, 자아위안, 도취, 서술, 호소 등 형식으로 처세의 지남으로 되여 착실하게 인생교과서의 구실을 한다.    한편 문학이라 해서 다 훌륭한것이 아니며 작가라 해서 다 인류령혼의 공정사인것은 아니다. 나쁜 작가는 자기의 우매함을 드러내고 훌륭한 작가는 독자들이 우매함을 보게 하며 위대한 작가는 우매함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원형을 인식하고 스스로 비애를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문학작품은 정신적지도서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탐구성독자를 제외한 독자일반에게 독서가 심심풀이로 되였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문학도 다양해졌으나 “문학”의 홍수가 범람하여 신성함을 상실하고 광환을 잃었으며 오락기능만이 문단의 주류로 된것이 문학의 현주소이다.  
6    제 2 절 문학의 지향성 댓글:  조회:2880  추천:15  2007-08-12
                                          제2절 문학의 지향성    세계에 대한 남다른 통찰과 인식, 평가는 작가가 지닌 철학의 소산이다. 문학에 반영되는 세계ㅡ인생현장을 고찰할 때, 문학작품에 투영된 다양한 여타의 가치지향성을 고유함을 읽게 된다.    1. 력사에의 지향성    문학은 력사의 일종 캐리어(载体)이다. 력사는 객관존재로서 만약 사람들이 력사에 대해 알려한다면 전파수단이 수요된다. 문학과 력사는 문명의 두가지 부동한 곁가지로서 얼기설기 얽혀있지만 그것들은 출발점과 도달점이 다르다. 력사가 최종적으로 얻어내는것은 규률이고 문학이 선양하는것은 영향력이며 력사는 사회형태를 위주로 하고 문학은 의식형태를 위주로 한다.    문학과 력사의 또 하나의 큰 구별점이라면 문학은 멀리 내다보지만 력사는 그러지 못하고 뒤돌아보기만 하는것이다. 문학은 허구할수 있기에 문학가에게는 무한히 넓은 공간이 제공된다. 그들은 사회발전을 예측할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어떤 암시와 깨우침을 줄수 있다.     력사는 허구할수 없으며 허구해서도 절대 안되거니와 임의대로 주관억측을 하여서도 안된다. 력사학가에게서 가장 주요한 임무는 고증과 확인이며 총화와 귀납이다. 그러나 력사학속에도 문학인소가 존재하며 마찬가지로 문학작품속에도 력사사실이 반영되고있다. 사마천의 ≪사기, 진세가(史记·晋世家)≫에 조둔과 자객의 이야기가 있는데 자객이 왕의 명령을 받고 조둔을 죽이려다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것은 력사사건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미수에 그쳤는가 하는것은 력사이야기로 된다.    력사속에 문학과 비슷한것이 있어야 하듯이 문학도 력사를 수요한다. 하지만 문학과 력사가 별로 구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개 문학가들이다. 반대로 력사학가들은 보편적으로 문학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력사소설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취급한다.    문학에 력사가 있지만 사가들이 보건대는 문헌재료도 아니고 사료도 아니다. 그러나 신화전설은 분명 문학이다. 례하여 ≪산해경≫을 황당하다고 보았기에 사마천도 ≪사기≫를 쓸 때 리용하지 못했으나 중국력사상에서는 오히려 문학과 사학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문학비평과 문학창작에서는 모두 문학과 력사의 소통성을 강조하고있다. 심지어 력사의 진실과 문학의 진실은 마땅히 더욱 밀접하게 체현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력사의 진실은 력사사실의 진실만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력사관을 가지고있는가에 달려있다. 력사는 일종 객관적인 진실로서 문학의 존재와 문학의 내용을 결정한다고 인정하였다. 때문에 량자사이는 누가 누구를 결정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반영하는가 하는 관계로서 상호증명하고 상호인증하는 관계로 인식하고있다.      문학의 진정한 정신은 력사를 짊어지는 책임감에 있다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문학은 마땅히 일종 정신이 구비되여야 하는바 그 정신은 가히 정치에 소급되지 않을수는 있지만 도덕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력사야말로 일종 도덕”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력사현장에 돌아가서 “죽은” 력사를 문학적형식으로 부활시켜 후대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2. 심리학에의 지향성    문학은 정감의 소산이다. “예술은 곧 감정이다.” 문학과 심리학은 불가분리적인것으로서 문학창작을 하려면 인간의 정감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고금중외의 대문호들은 거의 모두 심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리론연구가이면서도 심리학자였다.    현당대, 인간에 대한 인식과 발견에 따라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인류의 내심세계에 주의를 돌리고있다. 문학작품에서 순수형상상의 모방은 이미 한물 지난것으로 되여져 많은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서 인간의 심리결구 및 그 변화를 탐색하려고 시도하고있다.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범성론(泛性论)에 관한 리론이 나오자 문학과 심리학은 20세기에 이르러 더욱 불가분리적인 통일체가 되였다. 20세기 문학대가들로 볼때 아무도 프로이드리론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인류의 인식과정은 모두 외향적인것에서 내향적인것에로 전변한 곡절많은 과정이였다.      인류의 생명운동은 외부운동과 내부운동으로 갈라볼수 있다. 문학은 내부운동이다. 인류문화발전사에서 문학은 시종 시대의 전렬에 섰다. 외부세계의 변이는 작가로 하여금 인간의 내심세계에 관심을 쏟으면서부터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인류자신의 내부세계에 대한 인식전환을 하고있다. 심리학연구는 일보일보 심입되면서 전인류를 위하여 더욱 풍부한 내재세계를 밝혀보였다.    문학의 내부세계로의 전환하는 경향과 현대심리학의 발전은 문학과 심리학을 물과 젖처럼 융화시켜버렸다. 이리하여 문학창작을 지도하는 문학리론의 층차는 전문적으로 심리학각도에서 문예창작과 접수의 교차학과인 문예심리학(예술심리학)을 산생시켰다.    3. 종교에의 지향성    문학은 종교에의 지향성을 고유하고있다. 한것은 형상과 상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있고 인간이 종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문학작품속에 담긴 종교가치는 문학의 문화가치에서 비교적 중요하고 심층적인 가치해석이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주제적양상을 추출하여 그것을 종교적원인으로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작품을 통칭하여 “종교문학”이라 한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서 유불선적성격 등 종교적소재에 바탕을 두었는데 무릇종교적리념에서 착안한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범주에 귀속될수 있다.    종교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어떻게 한 작가의 생존감각과 더불어 순수한 직관을 통한 창조성을 획득하느냐가 문학에 일으키는 종교의 작용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소설들은 진실한 신앙적체험과 심미적가치가 통합되고 형상화된 정신경계이다. 종교관념의 침투력은 문학이 인간의 경험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리념을 통해 종교적충동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문학에서 종교적이라고 하는것은 경험적내용을 토대로 하는 소재적 또는 주제적상태이지 특정된 어떤 형식적인 원칙인것은 아니다.    4. 소비에의 지향성    문학과 문학수용이란 대체상 20세기에 흥기하여 류전된 현대문학리론술어로서 곧 문학흔상활동이다. 수용미학을 생산미학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문학리론가 야우스에 의해서 기틀이 잡혔다. 문학연구는 종래의 문학사에서 작품의 종적관계만을 라렬하는식에서 탈피하여 독자에게 새로운 미적감각을 줌으로써 작품수용을 새롭게 하는 창조적기능도 지녀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문학접수와 문학소비는 내재적의미상에서 다소 구별되고있다. 문학소비에 대한 연구는 종합적이고 다시각적인 특점을 고유하고있고 문학접수에 대한 연구는 심미경험 혹은 예술심리라는 독특한 시각에 치중하고있다.    문학소비연구는 문예사회학과 문예경제학령역에 소급되는 동시에 또한 철학, 미학, 심리학 등 다시각에 소급된다. 문학접수는 순수정신 문화범위에 속하는 활동이다. 문학소비와 문학생산은 변증관계이다. 문학생산이 문학소비를 결정한다는것은 문학생산이 문학소비의 방식을 결정하는것을 말한다.    문학생산이 없다면 문학소비도 없거니와 반대로 문학소비가 없다면 문학생산도 없다. 문학소비는 문학소비의 최종완성이고 가치실현의 확증이다. 문학소비는 특정된 사회, 민족, 계급, 계층 및 집단의 리익과 관계되는바 심미의식형태의 소비이다. 문학생산이 문학소비를 규정하는 주요 표현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학생산은 소비대상인 텍스트ㅡ문본을 공급한다. 따라서 문학소비자가 어떤 류형의 문학을 소비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둘째로 문학생산은 문학소비의 방식을 결정한다. 전통의의에서의 열독은 보통 문자열독을 의미했다. 셋째로 문학생산이 문학소비의 수요를 규정한다. 혹은 새로운 소비자를 생산한다. 최종적으로 문학소비는 문학생산의 목적과 동력으로 체현된다.    문학과 사회제령역과의 관계는 리론문제이면서도 실천문제로서 의식형태문제는 되돌아와서 문학의 문제로 된다. 문학의 기초와 전제로 말할 때 의식형태는 핵심문제이며 중추이기도 하다. 문학연구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경험기제이고 의식형태연구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심리기제이다. 그러나 그 목적성은 시종 맥을 같이 해왔고 또 그럴수밖에 없다.  
5    제 2 장 문학과 제령역의 관계. 제1절 문학과 제사회관계 댓글:  조회:3084  추천:15  2007-08-12
                                       제2장 문학과 제 령역의 관계                                        제1절 문학과 제 사회관계    1. 문학과 경제    문학이 반영하는 사회생활은 생산발전과 생산관계의 모순투쟁속에서 발전한다. 사회생활의 발전과정에 새로운 사물이 출현되며 혹은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면서 문학창작에 새로운 사회내용과 새로운 표현형식을 제공해 준다.    14—16세기에 새로운 생산력발전에 호응하여 이미 해체되기 시작한 봉건사회의 어깨를 디디고 자본주의생산방식이 생성되였다. 이런 중세기문학의 내용으로부터 형식에 이르기까지 개혁은 바야흐로 굴기하고있는 새 경제기초와 신흥계급의 리익을 대표하였다.    서방현대주의문학에서 볼수 있는바와 같이 사람들의 정신적모순, 무어라 말할수 없는 초조와 불안, 그에 상응한 의식의 흐름, 심리분석 등 문학표현형식도 바로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생산력의 고속도발전, 과학기술의 돌비맹진, 지식주기의 단축, 생활절주(리듬)의 부단한 가속화, 그로부터 조성된 사람들의 긴장감, 위기감과 중력중심을 상실한 심리의 절실한 반영인것이다.     물론 문학발전의 연변과 발전과정이 경제발전과 완전히 동보하는것은 아니며 경제의 성쇠와 문학의 흥망성쇠가 인과관계가 있는것은 아니다. 예술생산과 물질생산은 불평형이 생길 때도 있다. 어떤 종류의 예술은 그 고봉이 생산력발전의 저급계단에 나타나기도 했다. 고대희랍예술과 중국의 당송시기의 문학성과가 그 례증으로 된다.     19세기 로씨야의 물질생산수준은 영, 미 등 국가에 비하여 퍽 락후했지만 문학은 전례없이 번영하여 뿌쉬낀, 레르몬또브, 고골리, 뚜르게네브, 똘쓰또이, 도쓰또옙쓰끼, 체호브 등 세계적으로 영향을 일으킨 작가들을 배출하였는바 오늘까지도 인류문화의 화원에 뭇별들처럼 찬란한 빛을 뿌리고있다.    이런 불평형의 현상에서 사회경제가 문학에 끼치는 최종적인소이긴 하지만 유일한 인소는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문학은 그 발전에서 경제기초와 발생하는 관계와 정치, 철학, 종교, 륜리도덕 등 상층건축의 기타 부분과도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다.    2. 문학과 정치    문학과 정치가 다같이 상층건축범주에 속하지만 경제기초와의 관계는 등거리적이 아니다. 문학은 정치보다 더 높게 경제기초위에 놓인다. 경제는 문학과 직접관계를 발생할수 없으며 문학에 대한 경제영향과 제약은 늘 정치를 매개물로 실현한다. 력사적으로 정치가 문학에 주는 영향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개 방면에서 표현되였다.    우선 계급사회에서 정치란 계급의 투쟁으로서 문학은 시종 일정한 계급에 속하게 되며 격렬하고 첨예한 계급모순 및 그 투쟁속에서 매 계급은 문학으로 본계급의 정치사상, 정치주장을 선양하며 적대계급의사상, 주장을 반대하였기에 계급투쟁의 발전변화가 필연적으로 문학발전변화에 영향주지 않을수 없었다.     인류사회가 노예제사회로 진입하면서부터 문학에 계급대립의 내용이 표현될수밖에 없었다. 례하면 ≪시경≫, ≪벌단≫이나 ≪석수≫ 등에서 벌써 첨예한 계급모순이 반영되였다. 일반적으로 력사상 통치계급의 상승기에 비교적 개명한 정치를 베풀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문학은 계단성적인 번영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의 당조의 상승기가 그 례로 될수 있다. 반대로 통치계급이 몰락하고 사회적대모순이 치렬해지면 문학에 대한 압제, 토벌이 심해졌는바 문학령역에서 만마가 울부짖고 백화가 조락했다. 중국의 봉건사회말기의 명, 청시기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있다. 물론 이는 문단의 총체적정황에서 하는 말이다.    고서에 “치세지음 안의락이요 란세지음 원이노요 망국지음은 애이사(治世之音 安以乐 乱世之音 怨以怒,亡国之音 哀以思)”라는 말이 있는데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른 문화의 메아리라 할것이다. 다른 한방면으로는 압박이 심할수록 반항이 심해지고 문학창작에서도 반동통치계급의 죄악을 폭로비판하는 작품들도 용솟음쳐나와 새 국면을 형성하고 문학예술발전을 촉진하였다.    부동한 시기의 정치는 문학의 내용과 풍격에 영향준다. 내용상에서 례를 든다면 전쟁이 문학에 끼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한바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이 출현되였다. 구쏘련의 ≪청년근위대≫, ≪여기 려명은 고요하여라≫와 ≪인간의 운명≫ 등이 그 실례로 될수 있다. 이처럼 문학의 계급성은 부인할래야 부인할수 없는 일이다.    문학에서의 계급성이란 문학작품에 체현된 계급적성격 즉 어떤 리념에 따른 경향성을 말한다. 즉 문학작품에 체현된 대항성이 바로 문학의 계급성이다. 계급사회에서 작가는 일정한 계급의 성원으로서 언제나 해당계급의 립장, 관점으로부터 생활을 인식하고 평가하고 반영한다. 그러므로 문예는 언제나 일정한 계급의식(사상, 감정, 심리, 기질, 기도, 희망 등)을 표현하게 된다.    고리끼는 문학은 “계급의 눈이고 귀이며 목소리”라고 했다. 계급사회에서 계급관계가 복잡한만큼 문학적대화에서 표현되는 계급성인소는 복잡하고 다양할수밖에 없다. 우선 표현정도에서 강약과 농후성정도의 구분이 있다. 두보의 “부자집엔 술과 고기 썩어나건만 길가에 얼어 죽은 시체 널렸구나”는 빈부의 차이성에 대한 울분을 토해낸 당시 사회의 최강음이라 할수 있다.    풍격상에서 본다면 일반적으로 태평성대에는 송가가 많고 정치몰락기에는 폭로성이 강해진다. 그러나 문학이 비록 정치의 영향에서 벗어난적이 없었지만 정치적 “문학화”가 아니며 정치사상, 정치태도가 문학의 가치척도일수도 없다.    3. 문학과 철학    문학은 철학과 근친성이 많은 쟝르이다. 그래서 세계대문호들가운데는 철학자이자 동시에 문학가인 사람들이 많다. 싸르트르도 그렇고 또 니체도 시인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였다. 그런가하면 플라톤은 철학이 시보다 한층 더 우위에 속하며 시는 철학에 비해서 조금 낮은 차원의것이라면서 철학과 시, 철학과 문학의 관계는 친연성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쟁적인 관계에 있다고 암시했다.     문학과 철학은 분류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절은 문학적이고 어떤 구절은 철학적이라고 딱 밝힐수 없다. 문학만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에는 일종의 철학적요소가 있고 철학적인 욕망이나 필요에 의한 표현이다. 철학과 예술은 진리문제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철학자와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장 투명하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냥 느낌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밝히고자 하는것이 철학자이다. 그런데 예술적인 표현의 토양은 분석적이 아니라 상당히 감성적이고 종합적이다.    철학은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문학은 원리에서 떠나 잡다한 경험적인 현상에 관심을 두는것이 근본차이라고 할수 있다. 인생의 보편적본질을 추상적개념과 사상으로 표현하는 철학과는 달리 문학은 인생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예술적수법으로 형태화한다.    철학은 하나에 관심이 있고 문학은 많은것에 관심을 둔다. 문학은 많은데에서 하나로 가려고 말하는것이고 철학은 하나로부터 많은것에로 내려와 보려고, 한원리를 가지고 많은것을 설명해 보고자 하는것인데 량자는 방향이 다를뿐 근본적인 관심은 같다.    륜리적시점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관심을 가진것이 철학이라고 볼수 있는데 제임스 죠이스라든지 헨리 제임스 같은 사람들의 철학적인 소설은 매우 특이한 력사적인 현상으로서 문학과 철학은 별개의것으로 존재해왔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같은 작품에도 겉에 드러나지 않았을뿐 그속에 모종의 숨은 철리가 있다.    철학과 문학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문제를 일반화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립증하고 설득시키려 한다면 철학적인것이고 예술적인 신선한 표현으로 놀라운것을 묘사하여 사람을 매료하거나 경이롭게 하거나 감동하고 감화받게 하는것은 문학적인것이다. 달리말하면 언어의 표현방법에 초점을 두는 텍스트가 문학이고 일반적인 명제에 대해 초점을 두는것이 철학이다.     철학적인 언어는 추상화된 리성에 초점을 둔다. 진리는 리성적이고 보편적인것이지 감각적인것은 아니다. 력사적으로 철학은 문학에 선행했다고 볼수 있다. 한시대의 철학사조는 문학사조, 창작경향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기때문이다. 구라파 17세기 고전주의는 데까르트의 유일리성주의를 기초로 하고있으며 19세기 자연주의는 콩트의 실증주의를 기초로 하였다. 서방현대주의는 베르그송, 프로이드의 신비주의, 비리성주의를 기초로 하고있다. 일정한 시대의 철학사상은 작가의 세계관과 예술관의 형성에 영향주며 부동한 풍격도 형성시킨다.    철학의 영향은 우선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설교하는데서 표현된다. 레브 똘쓰또이의 ≪전쟁과 평화≫의 결말부분이 이런 형식에 속한다. 이는 소설과 작가의 력사관에 대한 독자의 리해에는 지적으로 유조하지만 열독 흥취, 심미적희열을 불러일으키는데 어느정도 제약성이 있다.     구체적형상 혹은 이미지를 부각하는것으로 철학적사색을 표현하고 철리를 체현한다. 철리란 인생에 대한 사고ㅡ인간과 인간의 운명, 환경, 인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독특한 견해이다. 심미가치가 높은 명작들은 철리를 핵심으로 한다. 철학이 문학에 진입하면 문학작품도 널리 전파되고 철학도 그에 수반해 전파되는바 문학은 철학형상을 통하여 철학의 보물고가 풍부해지게 하였다.    4. 문학과 도덕    문학사상 소설쟝르의 출현과 시가의 질적변모, 전문적인 작가들의 등장, 근대산업사회가 초래한 물질주의와 인간의 소외현상에 대한 문학의 예민한 반응, 그리고 사회학의 발전과 린접학문에의 확산으로 하여 문학은 거부할수 없는 사회적활동으로 인식되였다. 오늘날 문학을 사회륜리와 관련시켜 리해하려는 비평가들은 다음 같은 명제하에서 작품을 해석하고있다.    1) 문학작품은 그것이 산생된 사회적, 문화적환경과 분리해서는 바르게 리해될수 없다. 모든 문학작품은 문학적요인과 사회적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소산이며 그 자체가 복합적인 문화적대상이다.    2) 문학작품에 체현된 관념이나 주제는 그것들을 구현하는 형식이나 기법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학의 형식과 기법은 작품이 다루는 리념(주제)을 형상화하는 방법이며 문학이 표현하는 모든 주제는 정도차이는 있으나 불가결의 사회성(력사성)과 륜리성을 띠고있다.    3) 문학은 륜리적체험의 기록물이라고 할수 있다. 모든 가치있는 문학작품은 그것을 산생한 시대, 사회와의 관계 및 그것을 읽는 독자와의 관계에서 볼 때 륜리적이며 계몽성적이다.    4) 각 시대의 문학작품은 그 사회의 경제적조건이나 사회집단의 정신적, 문화적전통과 경향을 반영한다. 인간의 사물화와 현대사회의 각종 비인간적인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있는 현대시도 문학의 사회성격을 규정한다.    5) 문학은 생활에 대한 단순한 심미적관조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문학은 생활에 참여하여 사람들의 륜리와 도덕과 정조의 함양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익한 정신활동이여야 한다.    6)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를 발굴하고 조명할 사명이 있으며 과거의 생활에서 현재에 유익한것을 선택하여 재현하는 한편, 동시대의 생활에 특히 류의하여 독자사이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여야 한다.    도덕륜리는 문학의 사상내용과 예술감화력에 영향주고 사회생활에 대한 문학의 인식공능 및 심미가치에 영향주는바 도덕륜리가 문학에 주는 영향은 사랑, 가정 등 인간관계를 제재로 한 작품들에서 뚜렷하게 표현된다. 과거 조선민족의 혼인은 부모가 도맡았고 한번 시집의 문턱을 넘어서면 죽어도 시집귀신이 되여야 한다는 유교사상, 렬녀는 두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도덕규범에 따라 충효렬녀를 부각한 작품이 적지 않다. ≪춘향전≫이야말로 전범이 될수 있다.    물질이 일체를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적라라한 금전관계로 변하고 금전만능, 리기주의가 사회도덕준칙과 규범으로 된다. 진보적작가들은 비판적태도로 이런 사회비리와 무치한 인간들의 몰골을 그려내고 추악한 수단들에 대해 타매의 채찍을 휘둘러왔다. 바로 발자끄나 디켄즈 등 위대한 비판적사실주의작가들이 그리하였다. 문학과 도덕관계는 정치의 관계, 경제관계, 종교관계, 법률관계보다 더욱 보편적이고 더욱 무거운것이며 어느것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꾸어 말하면 륜리도덕의 내함은 왕왕 선악에 대한 평가이다.    상술한바와 같이 문학과 도덕은 비상히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문학의 도덕속성은 문학의 사회속성의 하나이며 문학의 도덕교화작용도 문학기능의 하나이다. 문학과 도덕은 얼기설기 얽혀서 돌아가는바 도덕문제는 우선 문학에 풍부한 재료를 제공하며 되돌아와서 인물의 행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4    제 3 절 문학의 속성 댓글:  조회:3160  추천:17  2007-08-12
                                         제3절 문학의 속성    1. 문학의 속성    문학은 특정된 시대와 사회에서 형성되므로 력사성과 사회성을 기본속성으로 한다. 언어는 문학을 다른 예술과 구별해주는 기본속성으로서 사람의 지각에 호소할수 있는 개별적이고 구체형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개성적인 인식을 전달하는 유력한 매체이다.    문학적표현이란 매체인 언어의 성질의 제약속에서 체험내용을 지각할수 있게끔 하는 형상화과정이다. 그만큼 문학은 구체형상을 통해 보편성을 지닌 인식내용을 전달하는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가 된다. 문학의 기본속성은 이 복합체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1) 일반성과 개성    문학은 통시적개념인 항구성(시간성, 력사성)과 더불어 공시적개념인 일반성(보편성, 공간성)과 개성(독창성, 특수성)을 가지고있다. 예술적일반화는 예술의 객관법칙이다. 문학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성립되지만 완성된 작품은 보편성을 갖춤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할수 있다. 문학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향수할수 있는것은 작품의 고유한 인식내용과 심미감의 보편성에서 비롯된것이다.     작가는 이런 창작법칙에 따라야 개별적인것에서 일반적인것을 해명할수 있으며 개별적인것에 대한 자연주의적서술에 제한되지 않고 예술일반화를 하는 조건하에서만 문학창작이 가능하다. 그만큼 문학형상은 구체성과 일반성의 통일로서 감각상 그것을 파악할수 있고 미감을 느끼게 하며 정감상 공명을 가지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것은 인간정서의 일반적특질이다. 우리가 고대의 명시들을 다시다시 읽어도 새롭게 감동받는것은 그 까닭이다.    문학은 주관체험의 표현으로서 개성적인 형상을 지니고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그 인식내용은 개연성을 지닌 보편적인것으로 승화된다. 작품은 보편적으로 인정될수 있는 사물의 개연성에 기반을 둠으로써 문학은 작가의 개인적체험만을 표현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통적사상과 정서를 표현한것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된다.    벨린쓰끼는 “만약 예술작품이 시대의 지배적정신에 자기의 기초를 가지는 온갖 위력한 주관적충격이 없이 단지 생활을 묘사하기 위해 묘사한다면, 만약 작품이 고통에 대한 통곡이거나 환희에 대한 송가가 아니라면, 만약 예술작품이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거나 해답이 아니라면 그것은 죽은것”이라고 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것은 인간의 사랑의 감정만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 공포와 경이로움, 분노와 환희 등 모든 정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변함이 없는것이다. 인간의 정서나 감정의 내함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수 있지만도 인류의 기본정서는 보편적이고 항구적이다.    위대한 문학예술은 개체의 생명을 넘어서 보편적인 생명으로까지 확대되여 사회성을 얻음으로써만 문학의 보편성도 가능해진다. 인류의 생명에서 보편성이란 사회적특질, 사회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체의 정서는 순간적이지만 인간일반의 정서는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예술적일반화는 예술의 객관법칙이다. “위대한 시인은 자기 자신, 자기의 ‘나’에 대해 말하면서 일반적인것ㅡ인류에 대해 말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비탄속에서 모두가 비탄을 알아차리며 그의 령혼속에서 모두가 자기의것을 느끼며 그속에서 시인뿐만아니라 인간 즉 인류적인 자기 형제를 보게 된다.”     예술형상은 작가의 심미정감의 결정체이다. 그리하여 정감을 형상의 혈육이라 하고 사상을 형상의 령혼이라고 비유하기도 하는것이다. 서정적작품에서 형상의 감화력은 작가의 정감과 사색이 경물로 전화되는 과정에서도 표현된다. 이런 경물은 곧 “정감화형상”이 되여진다. 황진이의 시조를 보자.         청산은 내 뜻이요 록수는 님의 정         록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소냐,         록수도 청산 못잊어 울어네여 가는고.    서정적작품에서 형상의 감화력은 작가의 정감과 사색이 경물로 전화되는 과정에서도 표현된다. 이런 경물은 곧《정감화형상》이 되여진다. 이 시조에서 시인이 천년을 산, 만년을 산 청산을 자기 지조에 비하고 흘러가는 록수에 님을 비유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시인의 정감화의 결과이며 또한 심층적으로 표현된 뭇사람들의 정감이기도 한것이다.     작가는 자기가 창조하는 인물과 함께 울고 웃는다. 발자끄가 고리오령감이 죽는 장면을 쓸 때 완전히 작품속에 빠져 혼자 방안에서 대상없는 분노를 터뜨렸다는 이야기나 똘쓰또이가 안나 까레니나가 기차에 뛰여들려는 장면을 쓸 때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이는 영화배우가 자기 배역과 정감상에 일치화를 넘어 완전히 융화되는 경우와 같다고 할수 있다.    문학의 특질은 개성이다. 개성이란 곧 자기 개성적정서이며 이를 향수하는 독자의 개성적정서도 가리킨다. 문학은 작가의 주관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기에 작품에 표현된 작가의 사상과 정서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내용일뿐만아니라 외면적으로 표현된 형상의 성질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여서 독특하게 된다. 모든것은 변증관계에 처해 있다는 과학적인 객관적서술에는 서술자의 개성의 개입이 불필요하지만 문학은 작자의 주관과 개성이 거의 절대적이다.    프랑스의 미학가 고티에는 자기의 ≪예술의 의의≫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작품의 독자성, 독특한 인상, 독창력 등은 그 작가가 작품속에 쏟아넣은것—그의 꿈, 그의 슬픔, 그의 야심, 그의 희망 등 모두 그의 가슴에 또 그의 심금에 와닿는것을 그 작품속에 쏟아넣는데서부터 생겨난다. 참다운 예술품인 한, 그 선과 가락에 있어서 작가, 그 사람의 마음의 세계를 표명하지 않은것은 하나도 없다.” 이처럼 문학의 보편성과 개성은 호상의뢰, 보충해주는 관계이다.    2. 문학의 진실성    문학의 진실성은 작품내용에 반영된 현실생활의 타당성과 정당성으로서 문학의 본질적속성이며 문학의 효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의 전제이며 문학이 진정한 문학이 되여지게 하는 담보이다. 또한 문학의 효능을 가늠하는 시금석 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서 문학작품에 부여되는 생명력이기도 하다.    1) 창작의 동태적과정에서의 진실성    문학의 진실은 창작ㅡ작품ㅡ감상의 동태과정우에서 고찰해야 한다. 문학창작에서 제1단계는 구상단계다. 문학은 철학, 과학적인식과는 달리 작가의 주체성이 개입되는바 여기서 예술의 진실과 생활의 진실에 분수령이 생긴다.    문학의 진실이란 우선적으로 작품에서 묘사된 경험, 감정, 행동, 상황의 진실에 속한것이다. 예술적인식은 명확하고 엄밀한 개념,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인 구체형상, 직각인상, 정감반응 등이 융합된 심리적체험과 감수이기에 그것은 몽롱한 감지이고 뜻은 알지만 말로 표달할수 없는 인식으로서 그속에는 작가의 뜨거운 피가 맥맥히 흐르고있다.     작가의 직책은 현실을 사진찍는것도 아니고 자초지종을 기록하는것도 아니다. 작가는 상상과 환상의 방법으로 사실을 창조한다. 다시 말하면 허구된 사실이 독자에게 허구라는 느낌을 주지 않을 때 그것이 곧 문학의 진실이다. 상상과 재건설이 의거하는것은 생활현상이 아니라 주체심리의 복사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정감론리와 상상의 론리이다.     2) 문본의 본질단계에서의 진실성     문본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이 아니며 가능한 정도의 모방이나 재현의 진실이 아니다. 포에르바하는 예술은 작품을 현실로 삼을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술은 그 기원으로부터 벌써 현실생활을 초월하는 일종의 추향이였다. 예술작품본체의 진실성에서 첫째 규정성은 주관성으로서 예술의 진실이 곧 주관진실이다. 두번째 규정성은 가정성으로서 주체의 가상 설정으로 구축된 이미지세계를 가리킨다. 그것은 예술세계가 형성될수 있는 일계렬의 조건과 관계를 체현한다. 이 세계속에 전부의 생명운동, 론리, 규률은 모두 가정성을 전제로 하고 결국 가정성적진실이 되는바 보편적의의를 가지는 하나의 미학범주이다.    가정성환경은 의상체계속에 주체(인간 혹은 의인화된 신선, 괴물, 자연물 등)를 위해 설치한 구체환경을 말한다. 그속에서 생활하는 주체가 특정된 방향, 방식으로 활동하게 하는 기회, 연분, 감정정세를 형성시켜준다. 이런 가정성환경에서 유발되여 나오는 주체의 활동에 대응되는것도 역시 가정성활동이다.     가정성관계란 작품의 주체대상을 위해 가설한 각종 구체적사회관계를 말한다. 우화, 동화에서는 흔히 먼저 동식물을 의인화해 놓고 그들을 대신하여 인간생활과 류사한 구체관계를 가설해 준다. 조선의 우화작가 림제의 고전적명작≪재판받은 쥐≫를 그 례로 들수 있다.     례하여 똘쓰또이의 ≪부활≫에서 마슬로바는 작품에 규정된 전형환경ㅡ루추하고 험악하며 암흑한 사회환경속에서 핍박에 의해 한걸음한걸음 타락하여 드디어 기생의 길에 들어서는데 이런 형상은 작품의 가정성환경의 산물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석으로 똘쓰또이의 ≪안나 까레니나≫의 초기의 구상과 그후의 창작결과도 례로 들수 있다. 작가는 처음엔 ≪안나 까레니나≫에서 순전히 가정도덕문제를 다루면서 안나를 남편에게 불성실하고 타락한 녀성으로, 까레닌을 선량한 관리로, 우론쓰끼를 총명한 귀족청년으로 묘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70년대 로씨야의 현실은 똘쓰또이의 최초의 구상을 뒤엎어놓았다.    작가는 12차의 대폭적인 수정을 거친후에야 소설을 세상에 내놓게 되였는바 수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주요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변하였으며 작품의 내용도 최초의 가정도덕적규범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심각하고 폭넓은 사회적문제를 표현하였다.     녀주인공 안나의 자유롭고 진지한 애정의 추구, 행복한 생활의 추구가 기본사건으로 제시되고있으며 주인공들의 비극적운명을 추구하면서 그들의 비극을 산생시킨 19세기 로씨야 사회생활의 전 면모를 심각하게 폭로하였으며 귀족자산계급사회의 죄악을 규탄하고 그 사회제도의 필연적인 멸망을 보여주었다.     환상성이 다분한 문학작품들에서 예술의 진실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조선의 고전명작 ≪심청전≫에서 심청이 림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환생후 왕비가 된 사실, 쉐익스피어의 ≪햄리트≫에서 망령의 출현과 산인간과의 대화 등은 현실이 아닌줄 알면서도 어찌하여 진정으로 주인공들과 한마음이 되여 울고웃게 되는가? 이는 생활의 모종 본질과 론리성을 정당하게 보여준 예술의 마력ㅡ예술의 진실성이 독자들의 정서세계에 자연스럽게 침투되였기때문이다.    예술의 진실성은 텍스트에서 근근이 절반 실현된다. 가령 감상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런 진실은 근근이 반잠재적인소일뿐이기때문이다. 이런 의의에서 텍스트의 진실은 예술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며 단지 예술의 진실의 실현과정에 한개 중요한 환절이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3) 문본본체의 진실성     제1보는 작가의 예술정서와 직각체험의 진실이다. 이는 텍스트의 진실에 믿음을 산생하는 동인(同认)이며 감상자 지간에 놓는 교량건설이다. 이렇듯 문학의 진실은 인식론상의 반영 혹은 재현의 진실만이 아니라 예술창조로부터 감상심리 운동과정에 형성된 일종의 심미가치실현이다.    제2보는 작품의 가정성의상의 재건과 재창조이다. 이는 본체진실을 주체화하고 감동화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보취이다. 예술감상은 피동적접수나 반영과정이 아니라 감상주체의 독특한 문화심리결구를 배경으로 한 재창조과정이다. 례하면 ≪햄리트≫를 감상하는 천명의 독자, 관중속에 천명의 햄리트가 있을수 있다고 한다. 문학감상중의 이러한 재창조를 “구체화” 혹은 “재건”이라한다.    재건활동의 주요한 특점이라면 감상주체의 강렬한 감정색채이다. 감상자는 자기의 체험, 감수, 취미, 기질, 습관 등으로 보충, 개조하며 심지어 작품의 이미지체계를 다시 건립하기도 한다. 이렇게 문본본체의 진실과 감상자의 심리속에 소통, 대화, 교류의 금다리가 건립된다.    제3보야말로 본질적진실에 대한 동인이 된다. 체험, 깨우침을 거치여 작품의 가정성정경에 들어가면 동(同)이 되며 또 작품이 가정성의상에 대한 “구체화”와 “재건”을 거쳐 최후단계인 인(认)에 도달한다. 이 단계에서 동인은 이미 작품본체 진실의 중복이 아니라 작품의 가정성과 감상자의 재건의 가정성통일이다. 이 세개의 보조가 합쳐서 감상주체의 예술진실감 즉 감상진실을 이룬다. 감상진실의 실질은 작품본체의 진실에 대한 “재건”속에의 확정적인 동인이다.    이렇듯 예술의 진실은 인식론상의 반영 혹은 재현의 진실만이 아니라 예술창조롤부터 감상심리운동에 이르기까지의 온 과정에 형성된 일종 심미가치이 다. 그것은 또한 정지되고 봉페적계통이 아니라 동태적이며 개방적인 계통으로 독자앞에 현연된다. 졸라는 “문학작품의 진실성을 론하면서 소설의 묘미와 운치는 신선하고 기괴한 이야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야기가 보통이고 일반적일수록 더욱 전형성을 띤다.”고 하였다. 지나친 분식은 자연미를 잃게 한다는것과 마찬가지 도리이다.     문학의 진실은 이렇듯 역설적으로 허구성에서 나온다. 허구성이란 곧 개연성이지만 비반복적인것이다. 소설에서는 어디엔가 있을수 있는 일이 보편성을 규정한다. 례하면 심청이의 효도에서 사건의 특이함은 부차적이다. 심청의 지극한 효도라는 그 주제가 보편성을 띠고있기에 자연스럽게 보편성을 가지게 된것이다. 그것이 고전명작 ≪심청전≫이 가지는 감화력이고 세월따라 색바랠줄 모르는 예술감화력을 확보하게 하고있다.    한석봉의 어머니의 이야기나 리순신의 이야기는 아무도 대체할수 없는 개체의 이야기이기에 믿을수밖에 없지만 보편성은 결여되여있다. 이때문에 문학은 의도하든 않든 진실성을 추구할수밖에 없고 그로써 자기 생명력을 확보하려고 천방백계를 다하게 되는것이다.    3. 생활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    1) 생활의 진실    생활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이라는 이 론제는 새삼스럽지만 문학리론에서 항구한 의제로서 재래의 문학리론서에는 예술의 진실의 래원은 생활의 진실에 있다는 명제가 간결명료한 기본창작규률로서 창작의 좌표로 되여있다.    우수한 작품들에 반영된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보다 더 높다. 협의적의미에서의 “생활의 진실”은 주요하게 실제생활에서 객관적존재인 인간과 사건들을 말하는바 인물과 사건들이 인간의 상정과 생활도리에 아우르는것을 가리킨다. 즉 생활의 본편적인 규률과 법칙이다.     광의적의미에서의 “생활의 진실”은 협의적의미에서의 생활의 진실과 력사진실과 정감의 진실을 포괄한다. 생활의 진실을 떠나서 조작된 문학작품은 원천이 없는 물이며 화려하지만 창턱에 놓인 도자기꽃병속에 뿌리없는 인조꽃과 다름없게 된다. 국내외의 력사제재의 련속드라마에서 씨나라오작가나 연출들이 력사적진실을 임의대로 외곡한것이 확연히 보이는데 생활의 진실을 떠나서는 예술의 진실성도 없다는것을 몰라서가 아닐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일찌기 력사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이라는 이 화제가 제기된것은《삼국연의》가 세상에 나오자 시작된 “허실(虚实)”에 관한 쟁론에서부터였다. 그리하여 력사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을 둘러싸고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창작형태와 리론의 취향에서 력사극이 시종 가지가 무성한 한그루 쟁론의 상록수로 되여졌다. 쟁론의 초점문제는 우선 력사상의 중대한 사건과 중요한 인물에 대해 허구할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는 전반 “예술의 진실”에서 핵심문제인 허구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20세기 80년대에 력사극에 새로운 탐색이 있었는데 성과작이라는 텔레비죤극《누르하치》,《강희황제》,《옹정황제》,《태평천국》등이 나왔고 동시에 혁명력사제재의 영화들도 출품되였다. 례하면《손중산》《천지개벽,》《주은래》,《서안사변》,《료심전역》、등등이다. 새 시기 력사제재의 작품들에 대한 반성과 연구는 그 시기의 창작경험에 대한 총결이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쟁론성적인 열점화제로 남아있다.    2) 예술의 진실     예술의 진실이란 예술가가 생활의 진실속에서 제련하고 가공하고 개괄하여 창조해낸것으로서 예술형상을 통하여 일정한 력사시기의 본질적이고 규률적인 사회생활의 진실한 면모를 집중적으로 반영한것을 이르는 말이다. 예술의 진실은 예술작품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중요한 품격이며 예술직능이 효률적으로 발휘될수 있는 주요한 조건이며 작가가 추구하는 종국적인 목표이다.     또한 예술작품의 착함과 아름다운것의 전제조건이고 작품의 예술생명의 담보이기도 하다.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을 정화하고 심화시키고 미화한것으로서 생활의 진실보다 더욱 집중되고 더욱 심각하게 생활의 본질을 현시한다. 중국의 경우 ≪홍루몽≫을 생활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이 완미하게 통일된 고전명작으로 추대하고있다.     예술의 진실은 예술가의 주관사상과 객관생활의 진실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된 결정체이다. 리백의 시에서 련상과 과장은 그의 시가예술의 독특한 풍격을 조성했다. 이처럼 예술의 진실은 예술상상과 허구를 배척하지 않는다.    3) 생활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의 구별 및 련관성 생활의 진실과 예술의 진실은 비록 두개의 개념이지만 구별되면서도 필연적인 련관성을 가지게 된다. 생활을 등진 예술이란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1) 생활의 진실은 자연형태이고 순객관적인 사물이며 예술의 진실은 관념형태로서 주객관의 통일체이다. 례하여 ≪서유기≫에서 인간의 실제생활과 너무나 동떨어진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처럼 손오공은 실재인물이 아니지만 인간의 성격과 특점을 가지고있고 사람의 사유와 행위를 가지고있기에 완정한 예술전형이 될수 있었고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인물로 다가온다.    (2)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의 전형화와 심미화의 반영이다. 량자의 련관성을 말한다면 생활의 진실은 기초이요,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을 제련하고 가공하여 승화시킨것이다. 예술의 진실이 생활의 진실보다 더 높다는 말의 리론근거가 여기에 있다.    생활의 진실이 곧 예술의 진실이 아니라는것은 널리 알려진 명제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작가의 두뇌는 가공기계이고 증류기이며 생활의 려과기라고 할수 있다. 작가가 체험하고 감수한것을 제련하여 특수로부터 일반에로 이르고 현상으로부터 본질에로 뚫고들어갔기에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보다 더욱 진실한것으로 독자들에게 기꺼이 받아들여지는것이다.     량자가 같지 않은것은 우선 생활과 예술사이에는 어디까지나 일정한 거리가 있기에 작가의 혜안과 명지한 두뇌가 수요되기때문이다. 중국의 시인 리단평(李丹平)은 ≪맹랑고(孟良崮)≫에서 이렇게 읊고있다.             여기서 제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제일 높은 묘비이다             총소리는 사라졌지만 무덤들은 총총하다             온 산기슭에 바위돌들은 모두             산꼭대기를 우러러 무릎을 꿇고있다    누구나 눈으로 볼수 있는 현상에서 이 시인만이 감수하고 사색한 남다른 풍경이지만 보다 더 생명적인 예술경지이다. 예술의 진실에는 작가의 주관경향성을 띤 생활의 진실이기에 작가의 사상의식과 의식형태가 들어있다. 하여 소재는 이미 제재로 되였고 세절은 이미 전형화된 세절로 되였으며 언어도 이미 예술화된 문학언어로 바뀌여있다. 이는 작가가 고취하고 동경하는 일종 도덕경계일수 있으며 혹은 이미 발굴된 사상의 심도일수도 있다.     문학의 본질은 진, 선, 미를 표현하고 거짓되고 추하고 악한것을 채찍질하며 인간의 생활의 지향을 보다 나은것에로 이끄는데 있다. 예술의 진실에 대한 추구는 결코 사과에서 사과즙을 짜내듯이 생활을 그대로 작품에 옮기라는것이 아니다. 이런 작품은 기실 벨린쓰끼가 “동물계와 총림계에서만 믿는 진리”라고 칭한것처럼 량지가 있는 독자들의 반감과 염오를 자아낼뿐이다.     어떻게 하여야 예술의 진실이 생활의 진실을 리탈하지 않도록 할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일찍 “보건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을 응당 잘 감독해야 할것같다. …한것은 그들이 말하는것은 전혀 진실하지 못한것으로서 미래의 전사들에게는 유해무익한것들이다. 우리는 마땅히 진실성을 일체의 우에 놓고 보아야 할것이다.”라고 제시하고있다.     체르늬쉡쓰끼도 “생활을 재현하는것은 예술의 일반성격의 특점이자 그것의 본질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예술의 진실의 담보로는 역시 전형화이다. 이는 창작관념, 창작사상문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가 보는만큼 감수하고 인식한만큼 표현하게 되므로 멀리 내다보고 발아래를 깊이 꿰뚫어보는 창작자세를 가져야 바람직하다.    4. 문학의 공리성과 비공리성   “문학의 공리성”이란 개념이 서방에서 인입된후 쟁론이 많았다. 문학의 공리성을 문학의 사회효용으로 리해할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사회공리성은 문학의 사회적효용보다 더욱 확실하다. 한것은 “효용”이라는 단어에는 목적지향성이 결핍하지만 문학의 취지는 사회분위기 내지는 인류의 사상을 개조하는데 있기때문이다.    작가가 제공하는 문학적대화는 공리적이면서도 비공리적이다. 문학을 심미적이라고 말할때 비공리적이라는것을 의미한다. 문학에서의 비공리성이란 작가가 독자와의 문학적대화에서 직접적인 실익을 바라지 않는 특성을 말한다. 작가들은 직접적실익을 위해 창작에 자기를 불태우는것이 아니며 독자들도 물질리익을 위해 작가와 대화하는게 아니다. 이렇듯 문학은 직접적으로는 비공리적이지만 한편으로 간접적 혹은 내재적으로 공리성을 고유하고있다.    문학의 공리성은 비공리성을 현실생활을 반영하는데 특수한 수단으로 삼고 공리성목적에 도달하려는것이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실제리익을 바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현실을 파악하려는 개체생명의 수요를 간접적으로 만족시킴으로써 공리성에 이른다.    현대적안목에서 새 시대 문학의 특성으로 되여진 상품화문제는 시대가 던져준 엄숙한 과제이다. 문학의 예술성과 상업성은 부단히 마찰을 빚고있다. 상업주의의 기치아래 문학이 심미추구를 탈리하고 자극을 추구하면서 단순히 정감소비로 전락한것이다. 문학의 상업성은 일정한 정도하에서 문학예술의 발전을 추동하는것도 사실이나 문학작품의 예술성과 상업성은 바로 작품의 가치와 가격문제이다. 20세기 90년대 이후 문학의 상품화현상은 문학을 변연문학으로 내몰았는바 문학의 변연화는 곧 문학가치의 변연화를 의미한다.     문학이 전적으로 상업화된다면 되돌아와 문학에 고유한 인성을 압살하는 회자수로 될것이다. 인성의 결핍은 문학의 본질적속성을 섹바래게 할것은 물론, 걸림돌이 되고 나아가서 자승자박이 될것이다. 물욕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고 명리에 대한 추구에서 해탈되여야만 문학이 진정으로 문학이 될것이다.    문학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된 상황에서 문학의 성결성과 사명감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상품성의 론리가 문학의 탈이데올로기성을 가속화하 였기때문이다. 특히 시장경제가 현시대의 “최대정치”로 되여지면서 새 일대 작가들의 붓대가 아무 정신내함도 없이 물질화되고 육욕화된 인성에로 돌려지는 이런 문학현상은 마침내 중국문학으로 하여금 문학의 랭각시대를 불러왔고 미구에 본의아니게 저곡에 들어서게 하였다.     문학작품이 상품이 되여진 이후 론쟁중의 하나가 문학의 공리성과 오락성이다. 어떤 극단론자들은 문학은 독자들에게 옳바르고 선한것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어떤 극단론자들은 문학은 단순한 오락에 불과하다는 유희오락주의를 주장한다. 공리주의적인 립장에는 교훈성이 고양되고 유희적립장에서는 오락성이 강조되고있는것이다.    문학에 대한 숭고한 지향은 이미 물을 건너갔다. 곤혹스러운것은 문학이 정치수요에 얽매인적은 있었으나 물욕의 하녀로 된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문학의 비애라기보다는 선택된 정영들이라 자긍하는 작가들의 비애이다.
3    제 2 절 문학의 제특징 댓글:  조회:3402  추천:20  2007-08-12
제2절 문학의 제 특성    1. 문학의 대상성 특징    문학적대화의 특수대상은 인간이다. 문학세계란 인생을 탐구하고 표현해낸 창조세계이다. 따라서 심미적의의가 있는 형상으로 재현한 생활을 대화내용으로 하는것은 문학의 기본특징이다. 공통성으로 말할 때 문학과 철학, 정치경제학, 력사학, 사회학, 륜리학 등 사회과학은 모두 인류가 세계를 인식하고 파악하는 정신형식이고 정보교류의 캐리어(载体)이다.     과학은 인간에게 실용성, 리해성, 예견성을 제공하고 철학과 종교는 속세를 벗어나는듯한 초연성을 느끼게 하며 문학세계는 미적희열을 느끼게 한다. 생활반영의 형식상에서 본다면 철학, 사회과학은 추상적개념으로 보편적결론을 제공하지만 문학은 생동한 형상을 제공한다. 전자는 리성적설명을 하고 후자는 감성적인것을 현시한다. 인간과 주위세계의 관계로 말할 때 문학은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긴밀하고 광범한 련계속에서 생활을 조명하여 생생하게 시사한다.     그 과정에 감성인식으로부터 리성인식에 이르는 일반적규률이 관통된다. 문학의 내용도 리념이긴 하지만 예술로서의 문학은 설교가 아니다. 학설은 사색하게 하지만 문학은 정감을 더해준다. 더우기 인간이 생존환경에 의뢰하고있는 현실을 중시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정체적으로 묘사하여 인간은 사회관계의 총화이며 자체의 특성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실증한다. 생활에 영향주는 방식도 다르다. 문학이 보여주는것은 형상이고 움직이는것은 정으로서 형상속에서 도리를 깨닫고 도리속에서 행위를 지도받게 한다.     문학창작은 심미파악의 방식으로서 구체적인 산인간과 생활을 정체적으로 반영함에서 문학의 대상은 단순히 인식대상이 아니라 정감체험의 대상이 되고 텍스트는 발자끄가 언명했듯이 “인간중심의 력사”로 된다. 포에르바하도 “예술의 지고무상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단언하고있다.     2. 문학의 경향성 특징 인간의 운명, 비환리합, 희노애락, 인간과 인간사이의 복잡한 관계 등이 문학적대화의 핵심내용이다. 그만큼 문학창조활동은 반드시 전인류의 각도에서 고려되기에 문본과 독자사이에 부가적련계를 건립할수밖에 없다.    우리는 구체적인물 박군을 떠나서는 최서해의 소설 ≪탈출기≫가 반영한 당시의 생활상을 그려볼수 없다. 문학은 상상과 감정으로 독자의 상상과 감정에 호소하여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환기시킨다. 최서해의 ≪혈흔≫에서도 작가의 예술수요가 얼마나 절절한가를 읽을수 있다.   “나는 글을 사랑한다. 글을 짓는다. 그러나 글재주가 없는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지으려고 애쓴다. 나는 다만 내 가슴에 서리서리 엉킨 뜨겁고 괴로운 정을 쏟으면 족할뿐이다. 세상이야 웃거나 욕하거나 나는 내 아들을 사랑한다. 내 아들이 잘 나서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내 고통을 말하여주는것은 오직 내 아들(창작)뿐인 까닭이다. 내 아들은 참말 못났다. 세상에 보이기 무섭게 못생겼다. 그러나 그는 내 고통을 알고 말하여준다…”    작가의 고백처럼 그러한 창작관념을 가지고 시작한 그의 창작활동에는 시종 대상성이 투명하게 관통되여있다. 그 대상성의 기저에는 문학의 인민성이 깔려있다. 인민성은 문학의 대상성의 기본특징의 하나이다. 문학의 인민성이란 작가의 정감립장으로서 문학이 민중의 지향을 반영하고 그네들의 사상감정을 대변하는것을 뜻한다.    인민성의 높이는 작가, 예술인들이 작품을 통해 당대 근로인민의 리해관계를 얼마나 심오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얼마나 충실하게 복무했느냐에 따라 금이 그어진다. 인민성은 부동한 력사시기에 있어서 부동한 내용과 형식들을 가지고 표현된다.     벨린쓰끼는 고골리의 중편소설을 평론하면서 “인민성이란 만일 그것이 이러저러한 인민, 이러저러한 나라와 풍속습관, 성격 등에 대한 묘사의 진실성을 의미하는것이라면 우점이라기보다 필수조건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시대의 목소리를 전파하고 인민을 동정하며 그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한 작품은 모두 인민성을 가지고있다.     전위적인 문학작품은 전지구적인 인민들의 애대속에서 영생한다. 뿌쉬낀, 레르몬또브, 고골리 및 특히 네끄라쏘브, 체르늬쉡쓰끼 등 작가들의 작품들은 로씨야민족성격들이 반영된 인민성의 특징들로써 이채를 띤다. 특히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이리가 쓴 유명한 장편소설 ≪뿌리≫가 미국사회 전체를 뒤흔들어놓은 진동력은 소설에 관통된 인민성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인민의 립장에서 비교적 진실하게 현실생활을 반영하고 사회본질과 규률을 제시한 작품들은 인민들의 마음속에 새겨져있다. 쌔커리의 ≪허영의 시장≫, 발자끄의 ≪우줴니 그랑데≫, 레르몬또브의 ≪현대의 영웅≫ 등이 그 례로 된다. 그리고 리념이 아닌 인민성으로부터 민족분단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민중의 정서와 아픔을 보듬고자한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좋은 실례이다.     기실 인민성은 작가의 경향성과 관계된다. 시내암의 ≪수호전≫과 유만춘의 ≪탕구지≫가 좋은 대조가 된다. “분수에서 나오는것은 모두 물이고 혈관에서 나오는것은 모두 피”라는 절창은 이에서 나온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찬성 혹은 반대의 투쟁으로서 이를 알은체 않는 예술은 없거니와 또한 있을수 없다. 한것은 예술가는 사진기가 아니며 현실을 그저 사진 찍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는 현실을 긍정하거나 혹은 개변하거나 훼멸시킬뿐이다.”    “신경향파”라고 불리운 조명희, 리기영, 최서해 등 작가들은 다양한 특색을 가지고있지만 사상예술적으로 공통한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탈출기≫에서 박군의 처절한 절규는 곧 밝은 세상, 인간다운 삶을 갈구한 작가의 납함이였다. 최서해의 소설이야말로 불행과 고통이 낳은 반항작가로서의 호소였고 서리서리 얽혀있은 지성인의 한과 얼의 몸부림이였다. 그것이 최서해로 하여금 경향작가로 되게 하여 복마전같은 사회를 성토하는 소설세계를 펼쳐보였다.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를,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시려고 하는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생의 충동이며 확충이라고 본다. 나는 여기서 무상의 법열을 느끼려고 한다. …” 이는 곧 당대 조선인민의 절규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랭담과 관조가 없으며 무맥함과 완만성이 없다. 그 어느 작품에서나 박진력이 넘치고 정열이 끓어번지고있다.     3. 문학의 원칙성    문학에 자기의 특수한 반영대상이 있으므로 해서 자체의 창작원칙이 세워지게 된다. 그 원칙이란 곧 창작과정에서의 인간학원칙, 생명성원칙, 정체성원칙, 정신성원칙이다. 이 원칙은 창작의 도식주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1) 인간성원칙 인간성이란 인간의 본성인 식색, 감정, 도덕습관, 미적취미, 자유적삶에 대한 갈망, 추구 등의 체현이다. 문학에서의 인간성 체현이란 인간의 본능적속성과 리해관계, 공통한 사상감정 및 지향을 가리킨다. 문학은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본질적특징을 가지는가? 등을 자문하는 탐색의 정신형식이다.    인류가 자아를 관조하는 방식으로서의 문학이 철학처럼 심각하고 간명할수는 없어도 철학이 미칠수 없는 자체의 장점을 가지고있다. 철학은 인성을 론증하지만 문학은 인성을 탐색하면서 인류가 객과적외재세계를 인식하도록 도와주며 자아를 인식하도록 이끌어준다.     철학에서의 인성과 문학에서의 인성은 일정한 거리가 있다 인성은 과학적으로 처리할수 없고 권력으로도 처리할수 없이 오묘하다. 문학예술은 인류의 자아인식 및 자아발전의 기점이고 통로이며 또한 자아심미활동의 최고형식으로서 문학창작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문학은 문예부흥시기에 이르러서야 진정으로 ≪자각한 시대≫에 진입하였는바 인간의 감정, 욕망, 약점, 권리 등 문제를 투철히 제시하였다. 문학의 력사발전과 문학현상이 보여주다싶이 문학에서의 인성은 여러면에서 표현되며 부동한 력사시기 부동한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살아숨쉬는 인간형상으로 표현된다.     박애를 권장하며 인간생활과 감정을 반영하여 인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있는 작품은 모두 인간성을 고유한다. 이 문제를 재치있게 해명한 구쏘련의 라쁠레예브의 소설 ≪마흔한번째 포로≫에서 심미적사색을 얻을수 있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로인≫에서도 어느 계층의 독자라도 그의 인간적의지력에 탄복하게 되고 동정하게 되며 고급령장동물로서 인간의 우월감과 자호감을 가지고 정신적희열과 건강한 정서를 얻게 된다.     하근찬의 소설 ≪수난시대≫는 심도있게 조선전쟁후 사회현실을 조명하면서 인간성을 발굴하고있다. 특히 그 어떤 의도적인 리념의 개입이 없이 진실한 인간상을 관조하면서 인간성을 사색해보게 한다. 모종의미에서 인간성문제는 세계관문제이다. 인간성의 발굴을 지향하는것이 현대문학정신의 세계관적본령이며 이것을 실천하는것이 문학이 문학다워지는 길이다.     작가의 창작적사색은 구체적이고 감성적이며 개성적인 형식의 탐구과정이며 그속에서 일반적인것을 표현하기 위한 연구과정이다. 경물, 사물에 대한 묘사도 감성적이고 체현되는것도 인간주체의 생명성이다. 프랑스의 문필가이며 철학자인 디드로는“예술은 곧 감정”이라 하였고 레브 똘쓰또이는 “사람들은 언어로 자기의 사상을 전달한다면 예술로 전달하는것은 감정”이라고 하였다. 하기에 예술수요는 정감특성으로 자체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것이다.     문학이 인간학일수밖에 없는것은 인생현장의 다양한 정경속에 인간이 조명대상이고 독자와 함께 하는 쌍변활동이기때문이다. 텍스트의 접수는 감수, 정서, 정감과 사상심도 등 면에서 독자를 매료하고 감화시키며 인격의 자유, 심령의 정화를 가져다주는 가치속성의 실현이다.    이처럼 문학예술의 중심문제는 인간문제로서 작가가 주목하는것은 곧 구체적인간이며 제시하려는것은 인간심령의 오묘한 비밀이다. 과학도 진실과 미를 추구한다. 그러나 문학이 추구하는것은 인간정감의 진실이고 과학이 추구하는것은 객관규률의 진실이다. 과학은 반드시 무엇인가 선택해야 할 때 진리를 선택하고 미를 희생시킨다. 그러나 문학은 진, 선, 미를 재치있게 통일시킨다.     2) 정체성 원칙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서 현실의 실제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지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매개로 필연성과 개연성을 지닌 허구의 세계로 표현된다. 이 상상의 세계는 작가가 개성적인 세계관에 의해서 현실을 독창적으로 재구성하여 이루어진것이다.    또 다른 문학의 내용적특성으로는 문학이 삶의 양상을 분석적으로 제시하는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형태와 같이 총체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다. 사회학이나 경제학, 정치학이 삶의 한 국면과 관련된다면 문학은 삶의 모든 국면과 관련되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문제삼는 점에서 다른 학술활동과 구분된다.     문학작품에 표현된 작가의 체험의 내용은 질서화되여야 문학작품이 된다. 즉 일정한 단위의 체험을 개연성의 법칙에 맞게끔 질서화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적관계와 발전법칙들을 보여준다. 작품은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완성된다. 완결되였다는것은 수미(首尾)가 상응해서 일관될뿐만아니라 각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유기적으로 통일되여 있음을 말한다.    작품이 여러요소를 풍부하게 포함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견지하는것은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속에 창조된 삶의 질서는 실제현실과 차이를 지닐수도 있으며 보다 높은 차원에서 교정된 현실을 제시할수 있다. 완결된 구조의 의미와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이 얼마만큼 다양한 요소를 포괄해야 하는가 하는것은 문학의 갈래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례컨대 장편소설은 현실세계의 다층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대화폭속에 총체적으로 보여줄수 있다.     문학활동은 창작으로부터 교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개 환절도 생략될수 없는 정체성을 고유하고있는바 문학의 존재방식과 상태, 운동의 전 과정을 말한다. 창작과정을 거쳐 텍스트ㅡ감정실체로 전화하고 독자의 접수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현실생활속으로 회귀한다고 할 때 완정한 흐름과정이 형성된다.     첫단계는 현실생활로서의 대화의 본원과 대화의 정신적풍모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인문환경이다. 문학창작활동에서 이 단계는 원초적인 실제적의의를 가진다. 아무리 뛰여난 작가라해도 사회의 총화로서 당대사회의 인문환경을 떠나서 자유롭게 가치로운 문학창작활동을 전개할수 없음은 자명하다.     둘째단계는 대화주체인 작가의 심미의식을 산생시키고 대화의 내용을 준비시키는 결정적인 여건인 심미대상이다. 문학의 모체인 현실생활, 삶의 현장, 천층만층의 인간들의 양상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감각일반이 예술감각이 아니듯 모든 시각적, 정서적 감각대상이 다 심미대상이 될수는 없다. 여기서 작가적혜안과 더불어 독특한 감수가 일반 감수와 구별되는것이다.     셋째단계는 대화내용의 준비과정에서 작가와 심미대상사이에 진행되는 쌍변활동이다. 작가로 말할진대 가장 힘들고 그러면서도 가장 보람있는 무사봉공의 작업이 진행되는 창조적단계로서 작가적인 재능이 검증되고 자아가치실현이 기약되고 나아가서 확증되는 단계이다.     넷째단계는 텍스트, 작가의 신근한 로동에 의해 문자화된 감성실체인 작품이다. 독자에게는 텍스트가 그저 열독대상일뿐 그속에 슴배인 작가의 필사적로력과 창조의 진통이 있었다는것을 다 알지 못하며 또 깊이 알려하지 않는다.     다섯째단계는 사회, 독자와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교환ㅡ문학적대화이다. 매 한부의 문학작품은 작가가 일방적으로 완성하는것이 아니라 독자군과 공동히 완성되기에 독자를 외면한 문학은 존재의 리유를 잃는다. 독자는 미적인것에서 쾌락을 느끼고 미의 마술같은 힘에서 자기의 국한성을 망각할수 있는 숭 고한 예술경지에 도취되기때문이다.     여섯째단계는 사회실천으로서 문학대화의 사회적작용의 체현을 말한다. 이 여섯개의 단계ㅡ원소는 문학정체의 론리구성에 들어있다. 이는 문학의 정체를 구성해주는 현실세계, 표현세계, 허구세계, 가치세계 등 네개단원을 형성하며 또 허물수 없는 기초이고 기틀이 된다.     매 구체적과학은 분공의 수요로부터 세계 및 인생의 한방면을 착중해 연구한다. 철학은 세계의 일반문제와 보편규률을 연구하고 륜리학은 인간의 행위준칙과 륜리관계를 연구한다. 작가는 인간과 인간의 생활을 정체상에서 구조적으로 관조한다. 정체성은 결국 문학작품의 결구문제이다. 례하면 ≪홍루몽≫을 중국봉건사회의 백과전서라 하는데 족장제도를 비롯한 문화교육, 사상관념, 풍속습관 등 그 사회의 일체를 작품속에 다양한 층차의 인물형상에서 정체적으로 접촉하고 정감상에서 기꺼이 접수할수 있게 하였다.    고전명작 ≪수호전≫의 결구도 정체성의 원칙이 너무나 잘 지켜지고있다. 조선의 ≪림꺽정≫의 결구도 치밀한 결구는 아니다. 주요인물들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적이지만 엉성하다는 느낌대신 엄밀한 정체감을 가지고 읽게 된다. 희곡에도 정체성이 보장되여야만 흥미진진하게 되고 정체성이 압축되여야 짧은 시간에도 사람의 심경을 울리고 무아의 예술경지에로 이끌수 있다.    사람들은 지각대상에 대하여 정체적으로 인지하려 한다. 우리는 프랑스의빅또르 유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때로는 비애와 고통과 환상과 투쟁의 희열을 느낀다. 때로는 죽음과 같은 침울함을 체험하게 되고 때로는 마치 맑은 아침 청풍을 맞으며 서있듯이 유쾌하다가도 뒤미처 분노를 안고 주인공과 함께 거세게 숨쉬며 항쟁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속에 엮어지는 렵기적인 이야기의 파편들이 작가의 심오한 의론과 사상의 심각함에서만 오는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의 결구의 규률에 좇아 구성된 정체적인 예술경지에서 온것이다. 그러면서도 주체의 착안점이 부동하거나 대상인소의 부동한 점을 포착하거나 동일한 주체의 부동한 수요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예술의 일반성에 이르는 도경이기때문이다.     3) 정신성 원칙     문학창작활동을 결정하는 기본인소는 작가정신이다. 작가는 우선 생명개체로서 문학창작에 종사하는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정신수요를 만족시키려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정신적수요에서 첫째는 자아실현이고 둘째는 억눌렸던 정감의 발설이다. 문학정신에는 또한 일련의 종합적정신이 들어있다.    철학관념상에서는 고전주의, 인문주의, 계몽주의, 인도주의 등이고 문학리론상에서는 사실주의, 랑만주의, 비극정신, 희극정신 등, 그리고 작품에 체현된 철학정신, 종교정신, 인문정신, 생태정신, 주체정신, 사실주의정신, 비판정신, 민족정신, 전통적문화정신 등등이다.     소설창작의 목적은 소설이 정신의 최고 종합으로 되게 하려는데 있다. 문학의 정신성원칙은 작가정신에서 체현된다. 작가는 인류와 시대, 삶에 대하여 철학적사고를 하게 된다. 그 심각한 사상과 예리한 투시력, 폭로와 비판, 풍자 등 비장한 창작태도는 문학정신의 중추로 된다. 문학의 생명이 창조라 할 때 작가적인 담략과 뛰여난 식견은 문학정신의 기본이다.     영국의 녀류작가 샬러트 부론티의 ≪제인에어≫에서는 어릴 때 고아가 된 한 녀성의 운명과 조우를 통하여 녀성에 대한 편견을 반대하고 녀성의 인격과 존엄을 옹호하면서 인격과 존엄을 지키려는 인간의 자주적인 지향에 대한 작가의 긍정, 기독교적박애사상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이 소설이 담고있는 중요한 사상내용의 하나로서 곧 빛나는 문학정신이자 작가의 정신이다.     4. 사유방식의 특징     문학적대화에는 형상성과 리성사유 요소가 고유되여있다. 문학형상의 심미직각특성의 표현은 감성적이지 리성적이 아니며 간접적이 아니라 직접적이며 분석적이 아니라 체험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리성적이기도 하여 정감활동보다 리성판단이 더 많게 된다.    다만 리성이 여기서는 특수방식으로 존재할뿐이다. 형상이 문학작품에 들어가 있기에 문학의 직접적인 존재방식으로 된다. 문학의 내재적세계는 형상에 속한것으로서 바로 심미세계이다. 작가경험의 특성은 바로 정감의 시적의미화, 의의의 심각화, 감수의 인성화이다.     벨린쓰끼는 “철학자는 3단론법으로 말하고 시인은 형상과 화폭으로 말하지만 그들 량자는 동일한 내용을 말한다. 전자는 증명하고 후자는 보여주는바 량자는 다같이 설득한다. 전자는 론리적결론에 의하여, 후자는 화폭에 의해…그러므로 과학이나 예술은 꼭같이 필요하지만 과학이 예술을 대체할수 없고 예술이 과학을 대체할수도 없다.”라고 쓰고있다.     그러나 형상사유과정도 실질상 론리사유과정과 같은바 역시 현상으로부터 본질에 이르고 감성으로부터 리성에 이르는 인식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옹근 사유과정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는 감성형상의 예술활동이고 예술상상이다. 이 과정에 형상적상상은 더욱 구체적이고 생동하고 개성적이 된다.    하여 형상사유는 개성화와 본질화와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이 바로 엥겔스가 말한 전형창조이다. 형상사유의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사유과정에 시종 미적감수태도가 수반한다는것이다 이런 태도가 작품속에 체현된 작가의 선명한 심미태도이다. 예술상상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고유하고있다.    1) 예술상상의 론리성     예술상상은 인류지혜의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문학작품(특히 시)은 상상의 산아이기때문이다. 정감성이 없는 상상은 예술상상이 아니다. 상상이 예술의 특징으로 될 때 예술의 진실은 곧 상상의 진실이 된다. 예술상상에는 현재 생활하고있는 인간과 그 인간의 정신생활과 상관된 두가지 특수재료가 있다. 예술상상이 일반상상과 다른것은 정감성이 개입되여 있다는것이다.     고리끼는 문학은 어디까지나 생활을 따라 걷는다고 하였다. 문학은 인간의 생활표상을 재료로 하므로 이런 재료들이 예술정체로 얽혀질 때 반드시 상호조합되는 자체의 규정성에 부합되여야 한다. 나라가 불행하면 시가 흥하고 인생에 불평이 많아도 시가 흥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일것이다.    발자끄는 문학은 사회를 반영하는 국가의 거울이라고 하면서 문학의 사명은 사회를 묘사하는것이라 하였다. 벨린쓰끼는 예술은 현실의 복제로서 예술의 임무는 수개하는것이 아니며 생활을 미화분식하는것이 아니라 생활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을 현시하는것으로서 어디에 생활이 있으면 어디에 시가 있고 그로부터 시의 내용이 있게 된다고 했다.     생활의 론리는 추상사유의 론리와 다르다. 그것은 생활내용 자체의 호상련계와 호상제약속에서 체현된다. 예술을 낳는 예술상상은 생활에서 나오지만 생활을 초월한다. 예술상상이 생활을 초월한다는것은 능동적으로 창조한 생활 즉 “제2의 자연” 혹은 “제2생활”을 가리킨다. 문학창작에서 상상의 주요특점은 표상의 분해와 종합을 진행하는것이지만 시종 생활론리의 제약속에 있다.    첫째로 예술상상은 인물의 성격규정에 부합되여야 한다. 둘째로 부동한 성격들은 생활의 규정성에 부합되여야 한다. 어떠한 성격이든 그의 발현과 발전은 생활적원인이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늘 말하는 인물과 환경의 관계이다. 셋째로 부동한 성격의 인물지간에 필연적으로 생활규정성의 상호관계가 체현되여야 한다. 넷째로 생활의 총적발전추향에 부합되여야 한다.    2) 예술상상의 정감성     무릇 정감성이 없는 상상은 예술상상이 아니다. 그러나 생활론리에 복종하는 피동성을 고유한다. 예술상상의 규정성은 생활론리에 복종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정서는 주요하게 인간의 생리수요에서 기인되고 정감은 주요하게 인간의 사회성 수요에서 발원된다. 정서의 산생은 일찍하고 정감의 산생은 정서보다 뒤지는데 사회교류가운데서 점차 형성된다. 그리고 정서는 일정한 정경속에서 인기된다. 정감에는 정경성도 가지고있거니와 온정성도 가지고있다.    예술정감과 자연정감은 다르다. 자연정감은 일상생활속에서 출현되는 인간의 심리체험으로서 주체와 객체사이의 리해관계에 대한 공리성평가에서 기인된 심리체험이다. 예술창작각도에서 본다면 예술정감은 심미정감으로서 자연정감의 승화이다. 즉 현실, 표현대상에 대하여 특정된 심미태도를 수반하는 정감체험이다. 심미대상은 정감전달의 매개물이자 문학작품의 모체가 된다.    이외에도 정치정감, 도덕정감, 종교정감 등 형태들이 있다. 정치정감은 정치리익과 관련된 정감으로서 일정한 정치사상관념의 기초우에 건립된다. 그것에는 강렬한 공리성이 있으며 모 사회집단사이의 리해관계속에서 산생되는 심리반응이다. 도덕정감은 도덕규범, 도덕관념의 심리반응이며 종교정감은 신앙에 위탁하여 인간의 심령을 허무하고 묘망한 자아세계에로 인도하는 정감이다.    종교정감은 인간의 심령을 허무하고 묘망한데로 이끌지만 예술정감은 인간의 정신을 자유와 화해에로 인도한다. 종교정감도 예술정감과 같이 공통성, 초월성을 가지고있어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보장하며 본질상에서 비교적 접근되여있지만 신앙에 위탁하고 있으므로 허무한것이라 하는것이다.    자연정감은 사인성이 있지만 예술정감은 공통성이 있고 정치정감은 공리성을 가지고 예술정감은 초월성을 가지고있다. 도덕정감은 선량을 지향하고 예술정감은 미적인것을 지향한다. 도덕정감은 본질상에서 일종 리성원칙으로서 예술정감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문학작품의 중추작용을 하는 정감이다.     그러나 예술정감의 심리효응은 미감이고 도덕정감의 심리효응은 미워하거나 좋아하는것이다. 예술정감은 사람들의 긴장한 심리를 해소시켜 각종 심리기능을 화해와 일치를 가져오게 하며 사람을 인도하여 심령의 자유로운 경계에로 들어가게 한다. 도덕정감은 사람의 심리에 대하여 강제성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인간의 모 부분의 심리기능을 제한하기에 압박감과 긴장감을 준다.     상상이 예술의 특징으로 될진대 예술의 진실은 곧 상상의 진실이 된다. 그러므로 예술상상은 반드시 일정한 규률에 좇아야만 예술의 진실을 창조해낼수 있다. 반면에 생활론리에는 예술상상을 변형시키는 능동성도 있다. 예술상상에 정감성이 개입되여 융화되면 딱딱한 생활론리를 관용적이고 조화로운것으로 변화시킨다. 소설의 경우 인물성격을 개변시키는 능동성이다.    체호브의 단편소설 ≪관리의 죽음≫에서 작가는 슬프면 불행으로 여기고 분노해도 감히 다투지 못하는 주인공의 그런 정감특징으로부터 권귀를 두려워하게 된 그들의 성격규정성을 강화하고 기타 규정성은 의식적으로 묻어버렸다. 하여 신경이 비정상적일만큼 가련한 소관리가 재채기로 튕긴 침방울때문에 죽게 만들었다. 이것을 독자들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일수 있는가? 인물은 만화식 묘사로 부각되였지만 인간사회에 존재할수 있는 진실한 인물로 독자들의 머리속에 새겨지게 된다. 정감은 이렇게 상상주체의 상상이 대상의 성격결구에 간섭하여 전형적인 인물을 부각해 낸다.    예술상상에서의 정감성은 인물의 성격변화의 과정을 긴축시키기도 하는바 대가들은 인물성격의 변화를 처리함에서 성격변화에 내재적, 외재적인 의거를 가지고 충분하고 유력하게 성격변화과정을 재현했다. 례하면 ≪수호전≫에 림충의 성격변화 과정이나 ≪비참한 세계≫에서 쟝 바르쟝의 성격변화의 과정, 최서해의 ≪탈출기≫에서 박군의 탈가 리유 등이 좋은 실례가 된다.     이렇듯 정감은 소설에서 성격변화의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혹은 긴축시킬수 있다. 례를 든 작품들은 모두 예술상상주체의 강렬한 정감에 좇아서 전개된것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부활≫에서 네흘류도브가 마슬로바의 재판에 참석함으로써 량심이 발현되게 하는 내용처리는 작가의 상상정감이 격앙된 고조부분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소설의 사상적성격이 체현되고있다.     예술상상에서의 정감성은 인물관계를 조화시키는 능동성도 가지고있다. 이를테면 인물관계의 간단화라든가 인물관계의 처리에서 선택성적강화 등이다. 고골리는 풍자희극 ≪검찰관≫에서 짜리통치계급들의 타락과 파렴치한 본성을 폭로하였다. 당시 짜리통치권내에는 부동한 층차에 류류별별의 저렬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들 모두에게 절치부심하고있던 작기였기에 대담한 상상을 펼치여 정절을 구상하고 독특한 희극인물을 부각하여 짙은 풍자성을 띠게 하였다.    예술상상에의 정감개입은 상상주체로 하여금 생활론리에 대한 능동성을 획득하도록 한다. 그러나 정감이 인물성격에 어떻게 능동작용을 하든 성격결구를 전제로 한다. 인물성격을 부각하는 예술상상의 정감화는 생활론리에 대한 리지의 피동적복종과 정감의 능동적인 복종과정이 된다. 례를 들어보자.     붉다못해 황금빛으로 물든 단풍으로 수놓아진 산은 한폭의 풍경화처럼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서늘한 바람이 가끔씩 불어와서 한잎두잎 떨어져서 오솔길에 딩구는 락엽을 즈려밟으면 처연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조락의 섭리에 가슴이 알알해지며 눅잦힐길없는 련민의 정이 가슴에 그들먹해질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철학가의 인생론 열권을 볼필요가 있겠는가? 인생의 의미는 문학이 정서적으로 잘 가르치고있다.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철학가의 심오한 글을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사랑은 리론적인 설명으로나 추상적인 해명으로서는 그 본질을 심장으로 파악할수 없다.    사랑이란 추상적실체를 감동적인 구체정경속에서 부딪치게 한다. 남의 사랑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련민은 문학만이 줄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서이며 주인공의 심장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도록 계발하고 인도한다. 이것이 문학에 특유한 정서감응력이다.   “살고 쓰고 사랑하였다”는 묘비명을 남긴 프랑스작가 스탕달은 비록 생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였지만 그는 열심히 그리고 자신만만한 자부심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은 자기의 생존의 양상이였고 자기의 삶의 실현을 위한 려정이였으며 사후에 영원한 리정비로 솟았다.    사람은 누구든 살고 쓰고 사랑하고 싶어한다. 자기 생명운동을 위하여 인내와 끈기와 노력은 물론, 자신의 사랑으로 삶의 질을 더욱 높이고 의미롭게 표현하는 정감활동이 바로 문학창작이다.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취미를 지적인 자아교양으로 생각하고 독서에 정감을 불태우면서 자기완성을 도모해왔다.    문학은 동질적인 삶의 현장을 펼쳐보이고 조명하여 우리의 생활감정을 풍부히 해주고 우리들을 정감적으로 더한층 즐겁게 해준다. 오늘을 살면서도 과거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읽는다는것은 그들의 사상과 인생경험 및 리상을 정서적환경속에서 만나고 그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우리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고 접목하면 미래에 대한 계시가 되고 행복한 정서체험이 되기도 한다.    3) 예술취미의 추구    문학은 예술취미를 추구한다.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예술적즐거움을 주는것은 문학의 기능이다. 문학은 비록 경제학이나 사회학처럼 사회발전에 직접적인 용도로 존재하는것은 아니지만 자체에 고유한 예술향수로 하여 우리가 가까이 하고 정열을 쏟고 사랑하는 예술형태이다. 문학은 구체적형상으로 인생현장을 보여주고 인생의 진실을 제시하며 그 위대한 사상을 정서화시켜서 삶의 의미를 새겨주므로 “구제의 문학”, “문제 제시의 예술”이라고 한다.    영국의 드퀸시는 문학을 지식의 문학과 힘의 문학으로 나누었는데 “전자의 기능은 가르치는 일이요, 후자의 기능은 감동시키는 일”이라고 하였다. “지식의 문학”은 과학을 지칭하고 “힘의 문학”은 곧 협의적의미의 문학을 지칭한다.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킬뿐”이라며 힘의 문학이 주는 감동과 감화력을 말하고있다.    쾌락은 희노애락을 모두 수용한다. ≪젊은 웨르스터의 번뇌≫를 읽고 웨르스터의 슬픈 사랑에 감동되지 않는 청년이 없을것이다. 지순지고한 사랑과 그 열병같은 그리움때문에 죽음을 택한 그가 련민의 형상으로 모두의 가슴에 깊이아로새겨질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독자들도 그런 열병에 걸리게 할수 있다.     문학정서야말로 지성적인 정서이다. 농촌의 일상은 누구나 익숙할수 있다. 봄날이 한창 흐드러져 산에산에 개나리 피고 살구꽃, 배꽃이 화사할 때 환희롭던 가슴이 뒤미처 락화의 애절함으로 가득차 오르는 감각은 아무나 간직할 수 있다. 피는 꽃 저 너머에 지는 꽃의 처연한 서정성은 문학이 알려주고 또 리해시키고 가슴으로 접수하게 한다.    또 모내기가 끝난 논벌에서 바야흐로 키돋움하는 푸른 벼포기들이 련이어 록파만경을 펼친 풍경은 새로운 생성의 도약과 성숙을 준비하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이와같이 충만되고 다시 비워지는 자연의 다양한 서정이, 그 감동의 파장이 문학의 서정이 되고 문학의 매력의 연장선이 되고 감화력의 신장이 된다. 문학은 그것을 미처 체험못한 사람들에게 생생한 정서적체험을 마련해주는 기능을 가지고있다. 문학은 비감한 내용을 보여줄 때 더 감동을 준다.    한국의 시인 정영자의 정서적인 시《통영, 그 바다》를 례로 들어보자 순수는 그저 아름다운 것이다 세월에 세월이 밀리는 기슭 좋아한다는 것은 행복한 출렁거림이다    순수는 그저 아름답다는 시의 내용을 구태어 해석할 필요는 없다. 순수=아름다움이라는 등식이 성립될수 있는것은 정서적순결함과 정신적고결성을 다 지녔기때문이 아니겠는가? 동년의 추억은 순수로 수놓아지고 흘러간 세월과 인생 의 공간에 세워지는 이미지는 독자성, 자률성, 고결성이 유지되고있는 바다에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러한 정서는 예술정감이 풍부한 사람만이 가진다.    이처럼 감정 모두를 문학적정서 즉 미적정서라고 하지는 않는다. 미적정서는 어떤 대상을 접했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본능적인 원시감정을 절제하고 걸러냄으로써 생겨나는 창조성적정서이다. 한마디로 문학의 기본요건이자 일련의 속성을 감동성, 평이성, 쾌락성, 언어성, 개연성이라고 함축할수 있는데 작가의 상상력에서의 지적요소와 미적요소가 융합되여 예술상상을 이룬다.    문학의 형상화에는 인간의 공성의 사상과 감정이 체현되여있다. 례하면 순수경물을 읊은 시라도 그에는 시인의 남다른 사상감정이 맥맥이 흐른다. 정철의 기행가사 ≪관동별곡≫은 금강산과 동해안의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있다. 금강대 맨 위층에 학두루미 새끼치니 봄바람 옥저소리에 첫잠을 깨었는가 나래 펼친 저 두루미 하늘 높이 솟아떠서 서호의 옛주인을 반겨서 넘노는듯 소향로 대향로 눈아래 굽어보고 정양사 진헐대에 다시 올라앉으니 금강산의 참모습이 여기서 다 뵈누나 아아 조물주의 그 재간 놀랍기도 하구나 날거든 뛰지 말고 섰거든 솟지나 말지 련꽃을 꽂았는듯 백옥을 묶었난듯 동해를 박차는듯 북극을 괴었난듯 높을시고 망고대 외롭구나 혈망봉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아뢰는가 천만년 지나도록 굽힐줄 모르누나 아아 너로구나 너 같은 이 또 있는가     문학표술은 항구성을 가진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시대, 세기를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 이것은 문학이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담아 독자에게 감동을 줄수 있는 감화력을 가지고있기때문이다. 문학의 개연성은 독자와의 접근성이다. 김소월의 시 ≪산≫을 통해 문학의 개연성의 특징을 확인할수 있다. 산새는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령넘어 갈라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나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리 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归),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叁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년 정분은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산새도 울어싸는 시메산골, 삼수갑산 가는 험난한 고개의 길을 허위허위 방황하는 나그네의 설움을 산새도 운다. 눈이 내리여 덮이는 고개의 길, 두루마기에 보선감발, 행전을 치고 괴나리봇짐을 둘러멘 나그네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도 쓰리게 한다. 방황하는 나그네의 심정을 시에 옮긴 시인의 내심세계는 독자에게 활짝 열려져있다.  
2    제 1편 본질론, 제 1장 문학의 본질, 제 1절 문학의 내함 댓글:  조회:2976  추천:14  2007-08-12
                                                       제 1편 본 질 론                                                          제1장 문학의 내함                                                         제1절 문학의 본질   1.문학의 함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양상은 어떠한가? 인간의 정감활동이란 무엇인가? 하는 또 다른 물음을 이끌어내여 한마다로 된 정답이 있을수 없다. 문학의 정의는 다만 문학의 어제와 오늘에 비추어 학술적의의를 가질뿐이다.   문학이란 그 어원이 라틴어에 있다. 중국의 경우, 문학의 원초적함의는 문장과 박학(博学)이였다. “문학”이라는 단어가 처음 출현된것은 ≪론어≫였는데 문채(文彩)의 함의를 내세우면서 동시에 학식의 함의도 가지고있었다. 문(文), 사(史), 철(哲), 학예(学艺)를 총칭하는 말로 쓰였던것이다. 이렇듯 문학은 넓은 뜻으로는 학문을 가리켰지만 좁게는 시(诗),서(书),례(禮),악(樂)을 가리켰다.   위진시기에 문학에서 “박학”을 배제하고 풍부한 언어로 감정을 표달하는데 주의를 돌리면서 문학은 보다 단일한 함의를 가지였다. 즉 문학은 인간의 감정표달을 위주로 하는 문채있는 언어작품을 가리켰다. 무릇 문채가 뛰여난 작품과 연박한 지식을 현시하는 서사작품을 모두 일컬어 문학이라고 지칭한것이다.   전통적으로 말하면 문학예술은 작가가 투시한 삶의 현장과 생활상을 언어를 기본수단으로 하여 형상적으로 관조하고 반영하는 사회의식형태로서 문학의 네가지 요소로 세계, 작가, 작품, 독자를 말하고있다. 문학은 우선적으로 작가의 자아가치실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새로운 정신세계이며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예술적인 대화의장(场)을 제공하는것이 목적이다. 문학을 현실의 재현이라고 할 때 모방성을 가지게 되며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때 실용성을 가지게 된다. 문학이 작가의 사상감정의 표백이라 할 때 표현성을 가지게 되며 문학이 문학작품 그 자체라고 할 때 객관존재가 된다.   사회학이 인간들의 집단생활의 양상을 파악시키려 한다면 문학은 종합적으로 인간을 파악하므로 삶의 진실한 현장이고 인류정감의 화랑이다. 사무엘 존슨은 ≪쉐익스피어론≫에서 “쉐익스피어의 희곡은 인생의 거울임과 동시에 무생물계의 거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쉐익스피어의 장점이다.”라고 했다. 똘쓰또이는 문학을 인간의 심층에 숨은 진실과 비밀을 샅샅이 분석하여 보여주는것이라 하였고 아놀드는 시 즉 문학은 인생의 비평이라 하였는바 비평성은 곧 문학의 강장제이다. 문학은 일상적체험에서 벗어난 상상에 의거하여 새로운 체험을 독자에게 제시하면서 인생의 의미나 존재를 밝혀낸다.   사회와 시대의 발전에 따라 문학창작은 인류의 가장 격렬하면서도 치밀한 생명운동으로, 가장 다채롭고 풍부하며 가장 오묘한 심리교류의 장이 되고 일체예술의 풍만한 모체가 되였기에 인류문명사를 눈부시게 장식하고 힘있게 떠밀어준 가장 유용한 예술이라 한다.   다종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치렬한 정감을 독특한 예술방식으로 표현하고 그것들을 체험시키고 인식시키며 울고웃게 하는것이 바로 문학이다. 그러기에 풍부한 문학의 화랑은 단순히 과거에서 발굴하는 정보적차원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미래와 더불어 자체의 미래를 가늠하는 참조계로 부상되였다.   2. 문학의 본질   문학은 작가가 생활속에서 얻은 체험을 글로 표현한 예술이다. 이 정의에는 문학이 하나의 예술적형상을 갖는 구조물로 성립된다는 내용이 함축되여있다. 따라서 문학의 본질을 구조, 내용과 형식에 따라 여러가지로 살펴볼수 있다. 문학의 본질을 규정함에서 미와 서술을 전제로 크게 세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로 예술작품의 객관적존재를 주요착안점으로 하는것, 둘째로 작가의 주관창작작용을 주요착안점으로 하는것, 셋째로 문학 자체를 문화령역 혹은 문화가치의 일종 형태로 보는것이다.   문학예술은 문화의 특수령역으로서 일정한 리념을 지도원리로 한 정신가치창조의 형식이다. 문학은 정신, 사상과 리념속에 본질적이고 숭고하며 고귀하고 참된것의 찬란함을 인간의 감정과 직관에 제공하여 향유하게 하며 불행과 죄악, 선과 미, 인생현장의 참상, 욕망과 기쁨을 알도록 제시한다.   문학은 독자를 전제로 할 때 가르치면서 기쁨을 선물하는 예술형식이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내적사상감정을 외면화한 결정체이지만 객관화과정에서는 리성화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체험요소를 운치있게 배렬하는 조직화작업을 마친 보다 높은 층차의 생활화폭이다.   즐거움은 미적측면이고 정신적깨달음은 공리적측면이다. 문학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아의 완성을 도모한다. 즉 개인과 사회, 개인과 력사간의 관계를 함께 아우르는 총체적인 삶을 체험하게 된다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있다.   문학의 또 다른 본질적인 규정은 정감을 순화시키고 교훈을 주며 도덕적으로 완성시켜주는것이다. 즉 한편으로 감정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속에서 공포와 련민, 고통스런 감동, 놀라움을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만족을 주고 또 그런 감정과 열정적인 관심을 일으키고 작품이 표현한것의 효과에 대해 쾌감, 만족,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주는데 있다. 그로써 더 높은 삶의 가치실현을 기약한다.   문학은 해당 시대의 기존체제와 가치취향을 비판할수도 있거니와 작가적리념의 실현을 위해 그 시대의 도덕재판관으로 나서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새로운 도덕건설을 추구하면서 독자들도 그것을 감수하도록 함으로써 문학의 인식적, 교훈적기능을 체현시킨다. 문학은 심미의식형태의 성질을 가진 개체경험으로 창조된 가상세계이지만 인류의 공통정서를 다루기에 보편적감동을 준다. 누군가 두보의 경물시를 읊는다고 하자.        꾀꼬리는 버들숲에서 우지짖고        백로는 푸른 하늘에 줄쳐오르네.        창문은 먼산에 천년설 머금고        문밖엔 동오의 배 만리길 오가네.   문학언어는 청각에 호소하고 시간속에서 진행되는 동작도 핍진하게 묘술하지만 직관형상은 조성할수 없고 간접적형상이 될수밖에 없다. 랑송자의 목소리에서나 혹은 문자속에서 꾀꼬리, 버들숲, 백로, 푸른 하늘, 배를 볼수 없지만 음향은 청각을 통하여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경험적련상을 불러오며 감정활동을 촉동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언어예술의 본질이자 독특한 매력이다.   문학의 본질적속성에는 이처럼 대상요소, 의미적요소, 성음요소가 포괄된다. 언어는 인간의 사상의 직접적현실이므로 인간의 내심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복잡한 사회현상과 인생현상을 묘술한 문학은 인생의 해석 혹은 비평이 된다. 문학은 현실인식과 현실가치의 국한성을 극복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적의식을 얻게 하며 현실적인 인생결함과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게 함으로써 더욱 바람직한 인생을 추구하게 한다. 인류는 리상의 실현과 현실과의 일치와 조화를 기대한다. 작가들은 현실에서 만족시킬수 없는 념원을 문학활동으로 깨우쳐주어 현실개조의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인류에게 불가결의 생명활동방식이 되는 주요한 원인이고 본질적속성이다. 그러나 문학의 가장 본질적속성은 바로 미적가치실현으로서 문학의 가치인소의 총체적인 심리효응이다.   3. 대화로서의 문학   문학을 대화라고 한다. 문학적대화는 일상적인 대화의 연장선우에 있으며 그 산생과 전달과정, 구조가 비슷하기때문이다. 그만큼 문학은 작품을 매개물로 독자들과 진행하는 진지하고 다양하며 폭넓고 심도깊은 생명대 생명의 지적인 대화이다. 문학문본(텍스트)에서 작가는 은페되여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자신의 지향과 감정의 표현이다. 문학창작은 작가가 처한 사회에의 대항성에서 산생되는것으로서 사회적대화를 전제로 하고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수도 없다.   작가의 매 한차례의 창작행위는 독자와 대화하고싶은 충동 혹은 내심의 괴로운 정서, 독자와 나누는 모종 희열감, 사회, 력사, 인성에 대한 감수를 독자와 교류하고싶은 자아표현욕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창작행위는 세계에 대한 작가의 정신적반향을 전달하는 행위로서 개성적인 감수와 비평을 담게 된다.   문학적대화는 반복적으로 자행된다. 례컨대 쉐익스피어와 독자들의 대화는 세기를 넘어도 수없이 진행되고있다. 텍스트가 시이든, 소설이든, 작가의 사색을 진솔하게 표백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모습을 자화상처럼 내비춰보인다. 김소월의 시 ≪길≫을 례로 들자. 어제도 하루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십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 말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차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길은 하나 없소.   이 시는 기질적으로 류랑인의 생리를 타고난 소월의 삶의 투영이며 개인의 정한을 토로한것으로 볼수 있다. 소월은 실제로 삶의 터전을 찾아 여러곳을 옮겨다니면서 살았다.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는 령혼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돌고있다. “오늘은/또 몇십리/어디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내게 바이 갈길은 하나도 없소”등의 고백속에 고향을 상실하고 류랑하는 나그네의 쓰라리고 애달픈 심정이 절절하게 토로되고 있는것이다. 나그네가 가는 길은 끝이 없는 려정, 뚜렷한 목적지가 없이 가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시는 식민지상황에서 떠돌아다닐수밖에 없는 실향민의 비애를 대변한것이라 할수 있다. 길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비유적으로 쓰이는 인생길이나 운명의 갈림길일수도 있으나 이 시에서의 길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류랑민의 눈물겨운 삶의 행로의 표상이다.   시 ≪길≫은 ≪랑인의 봄≫이나 ≪버리운 몸≫등 일련의 시작품들과 같이 바로 집과 고향, 님과 조국을 잃고 떠도는 나그네의 방황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갈곳이 없는 나그네는 나라를 잃은 조선인민의 상징인 동시에 인민을 나라를 잃은 슬픈 무리로밖에 인지하지 못한 시인의 제한된 정신자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대의 기분속에서 시인과 정감교류를 하며 공감하게 된다.   4. 문학적대화의 형태   문학적대화는 작가와 독자간의 대화에 그치지 않는다. 문학문본과 문본간에도 대화가 진행된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읽고나서 촉동받고 원작의 맥락을 이어 창작한 실례가 많다. 조설근의 ≪홍루몽≫의 80회본이 세상에 나온후 고악이 원본에서 시작된 대화의 계주봉을 자각적으로 이어받아 120회본을 집필하였는데 대화를 연장시켜 훌륭한 력사적인 대화의 장으로 완성시켜놓았다.   중국작가 고효성의 ≪진환생이 도시에 들어가다≫가 세상에 나온후 ≪진환생의 전업≫, ≪진환생이 입당하다≫, ≪진환생이 출국하다≫등 작품들이 뒤이어 세상에 나왔다. 다음 문본간의 대화의 지속이다. 이를테면 번안소설이라는것인데 외국소설을 자국의 현실에서 맞게 각색해서 옮긴 일종 대화형식이다.   번안소설은 번역과는 달리 번안자의 주관적, 상상적개입이 두드러지고 심지어 원작의 상당부분이 변형되거나 첨삭되기도 한다. 대체로 사건이나 줄거리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인명, 지명, 풍속, 인물의 정서, 말씨…등을 자국의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우리 말의 번안소설로 ≪장한몽≫, ≪설중매≫ 등이 있다.  
1    문학원론 (최종수정본) . 머리글을 대신하여 댓글:  조회:3438  추천:53  2007-08-11
                              문학원론 (최종수정본)                             머리글을 대신하여        현시대에 와서 문학리론은 더는 단일한 정체가 아니라 호상립되는 부동한 리론체계로 구성되고있다. 그러나 범위와 주장들이 그렇게 다름에도 각양각색의 관점들은 일정한 련계성을 가지고있다. 이것이 현대문학리론의 뚜렷한 특징이다.   20세기 80년대 이후 세계문학권이 한마당이 되고 호상교류됨에 따라 우리의 문학연구령역에도 전례없이 참신한 국면이 나타나게 되였다. 특히 서방 각학파들의 리론이 수용되면서 우리가 그렇듯 절대적진리로 신봉하던 전통적창작방법, 비평방법은 준엄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다.   우리앞에는 가급적으로 해답을 촉구하는 세가지 심각한 과제가 제기되고있다.즉 과거의 문학리론을 어떻게 재평가하여 더 합목적으로 발전시킬것인가? 서방세계에서 반입된 문학리론들을 어떤 학술태도로 대하고 어떻게 수용할것인가? 보다 완정하고 현대적인 문학리론체계는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 이는 문학관념갱신에 소급되는 문제이고 혁신이 요청되는 거창한 작업이다.   과거 우리의 문학은 사회력사학을 유일한 참조계로 삼았는바 그로하여 자연히 두가지 고정불변의 사유모식을 형성하였다.하나는 우리의 문학리론은 정통파인 문학리론으로서 맑스주의를 대표한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들의 문학리론체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확한 절대적진리였다는것이다.   건국후 중국문학은 “혁명적공리주의” 가치관념을 강화함으로써 문예가치기준, 가치취향, 작품의 총체적인 사상감정을 상급에서 미리 규정하였기에 무조건 집행해야 하였다. 그리하여 창작의 길은 한갈래이고 넓지 않았지만 방향이 명확하고 목표가 뚜렷하였으며 언어표현방식도 비슷해서 문제가 생겨도 하나의 틀속에서 대동소이하였다. 마치 한강물속에서 실조개를 잡아먹고 함께 배앓이를 하거나 간염에 걸리는격이였다. 그러나 그런 문학현상은 영구불변일수 없다.   드디어 시대가 바뀌였다. 사상상, 예술상, 미학추구상에서 작가들이 나아갈 길은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문학은 본연에로 회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혼란도 생기여 우왕좌왕하게 되였다. 문학의 망망대해에서 우리가 탄 배는 서방문학을 등대로 삼아야 하는가? 민족고유의 전통성을 계승발전시킬것인가? 정치화의 문학으로부터 계속하여 문학의 정치화로 나갈것인가? 문학의 대중화를 견지할것인가? 사인화할것인가? 시장화할것인가?   두말할것없이 자유문학의 가치관과 그것의 실현이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문학은 결코 무목적의 문학이 아니며 무취향, 무표준의 문학이 될수는 없다. 자유상태와 중력중심을 상실한 상태는 전통적인 사회주의문학과도 벌써 별개의 문제이다.   원래 문학관념과 리론체계는 다원화적이고 복잡한 문학현상이다. 현재는 종합이 총적경향이다. 종합이란 연구과정에서의 부동한 방법을 채용하는것을 의미한다. 보다 전면적이고 보다 더 완정한 문학리론체계를 세우는것은 문학발전의 기본추세이다. 문학발전추세가 세계적문학을 지향하는것이라면 문학리론에도 국계가 없게 된다.   그러나 서양의 조류에 맹종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의 희로애락은 우리들이 딛고있는 대지와 더불어 두어깨에 놓인 력사를 떠날수 없기때문이다. 우리의 문학은 더는 리념의 도해식이 아니라 진실하고 예술적인 흡인력을 가진 문학으로 세계문학지림에 새롭게 세워져야 할것이다. 무엇보다 문학의 정체적결구, 구성방식, 조성원소 및 각 원소지간의 관계공능에 대한 분석을 선행시켜야 순리일것이다.   새시기 문학리론연구의 취향은 중외문학과의 비교연구이다. 비교속에서 우리는 자아반성과 탐색을 거치게 되였고 마침내 문예의 주체성과 아우르는 초월성에 정력을 집중하게 되였다. 주체성이 대상에 대하여 자아가 능동적이며 실천적인것을 의미한다면 문예의 주체성이란 곧 문예가 체현하는 본질적력량을 충분히 긍정하는것이다. 문예의 주체성과 초월성은 력사발전의 필연성이다.   전통적문학리론은 가치론적인 본성을 제쳐놓고 인식론을 기초로 하였다. 부동한 력사단계에서 어느 한방면에 무조건 편향했기때문이다. 객관성에 편중하면 인식론의 관점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주관성에 의거하면 곧 절대가치관이 상위를 차지하게 된다.   문학은 일종 경험형식이며 문학의 존재는 영원한 력사적과정이다. 변혁의 시대는 변혁의 문학을 낳는다. 우리의 문학리론 재건설에 수요되는것은 문학관념을 인식론의 기초에서 가치론의 차원에로 추진시키는것이다. 문학리론, 창작사상상에서 대전환을 가져오면서부터 문학리론기초는 인식론으로부터 기치론적인 차원에로 전이되였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당연한 행보이다. 연구방법의 갱신과 다양화의 추세는 리론상의 승화의 징표이고 창작실천에서의 혁명이다.   그러나 문학에 고유한 인식성질과 가치실현을 전면 부정하는것도 편파적이거니와 박래품을 려과없이 고스란히 옮겨오며 맹종하는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잃고있었던 주체성은 본질상에서 현실에 대한 초월로서 곧 주체성의 본질적규정이 된다.   문예의 충분한 초월에는 현실주체에 대한 초월과 현실객체에 대한 초월, 현실에 대한 의식ㅡ문화적초월이 포함된다. 자기 문학수준에 대한 자아평가는 세계에 낯을 돌린다는 기본참조계를 떠날수 없지만 동시에 고유의 주체성도 상실할수 없다. 새로운 문학체계는 권위의 주관념원이나 의지에 의해 구성되는것이 아니라 정체적비교속에서만 보다 실용적으로 구축될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진부한 물음으로부터 문학은 무엇때문에 존재하게 되였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고 이 사로에 따라 문학적대화의 특성, 내용, 방식, 그리고 창작원리 등 일련의 문제들을 기술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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