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의 무관 전권대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8일 09시49분    조회:685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330명 국가원수를 인터뷰한 《외교》잡지사 임덕규회장

외국 외교관에게 반기문총장특집《외교》월간을 증송하는 임덕규회장(왼쪽)

지난 여름 서울에서 있었던 한 행사에서 한국 영문월간 《외교》잡지사 임덕규회장과 자리를 같이했다.
내가 중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듣고 그는 호금도주석과 리명박대통령이 친절히 손잡은 사진을 앞표지에 크게 올린 《외교》(디플로머시)잡지를 나한테 선물하였다.

올해 73세인 임회장은 한국서 영문잡지가 전무하던 1975년에 집을 담보하고 영문월간지 《외교》를 창간,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34년째 표지인물에 각국의 대통령, 국왕, 총리 등 정상들만 올리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의 《무관전권대사》였다.

                  하늘 같은 어른님의 말씀 따라

그가 《외교》를 꾸리게 된데는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2대 외무장관과 유엔대사를 지난 임병직박사를 만난것이 계기로 되였다.
1960년에 동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중이던 1963년에 집안의 아저씨벌인 임병직박사가 귀국하자 임회장은 자진해 임박사 시중을 들기 시작하여 10년간 임박사의 연줄로 당대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알게 되였고 그들로부터 나라사랑을 배우게 되였다. 임박사가 인도 대사로 지내며《한국. 인도친선협회》를 창설한 후 임회장은 간사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외교를 경험하였다.

1972년 뮨헨 올림픽을 계기로 임박사가 세상에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예술단을 이끌고 유럽순방을 떠나던 날 임덕규한테 이런 당부를 하였다.
《앞으로 먹고 살 생각만 하지 말고 영어로 잡지를 만들어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여 국가에 큰 도움을 주라》고.

하늘 같은 어른님의 말씀에 임덕규는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잡지를 만들어 본 경험, 영어수준, 자금 등으로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에는 영문으로 문장을 쓰는 인재가 몇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걸 다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말한 대로 안한다면 죄인이 될것 같은 자책감이 앞섰다. 다행히도 4년간(1968-1971)신아일보 론설위원과 동화통신 출판부국장, 론설위원을 지낸 밑천에 배짱이 생겨 전화를 잡혀 3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서울 무교동에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그 때 합작동지라고는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화통신 사진부 차장 백남식뿐이였다.

3년 남짓이 백남식과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1975년 8월에 창간호를 발간, 창간호의 표지스토리는 한미 관계에 력점을 두고 포드대통령 가족사진을 싣고 성조기변천사, 력대 미국 대통령의 친필서명, 력대 주한 미국대사 사진 등 내용으로 특집을 꾸렸다.
창간호가 나오니 미친 짓이라며 극구 말리던 사람들마저《된장냄새가 안나게 잘 만들었다》고 격려하니 죽자 살자 뛰여도 힘이 드는줄을 모르며 광고를 얻기 위해 아침밥 거르기를 밥먹듯하며 기업체 사장들의 출근길을 지켜섰단다.

곧 문을 닫을줄 알았던 영문월간잡지가 계속 발간되니 사회에서 중앙정보부 기관지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렇게 4년쯤 버티니 《외교》가 명성이 생기며 자리가 잡혔다.

                        《무관 특명전권대사》

임회장은 지금까지 《외교》에 국왕, 대통령, 총리만 380명을 모셨는데 그 중 330여명은 직접 인터뷰를 하였다. 방한하는 지도자들은 방법을 다 하여 서울서 만나고 5대양 6대주를 넘나들며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로씨아, 프랑스, 독일 등 대국들은 물론 피지, 지부티, 등 이름조차 낯선 오지나라까지 찾아 간 나라가 100개를 넘었다. 지금 그의 서울 사무실에는 30여년간 만난 세계지도자들의 사진들로 벽 한면을 메웠다.

임회장은 30년전의 일까지도 그대로 외우는 타고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해박한 지식, 림기응변의 기지와 순발력, 어려움을 모르고 감히 맞서는 담력으로 방금전까지의 적을 단숨에 동지로 만드는 타고난 친화력을 가지고있다. 이런 바탕으로 하여 그는 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86년부터 3년간 세계국제법법회(lLA)회장을 력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제가 남보다 뛰여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다만 누구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제가 맡았기에 어떻게 하든지 해내야만 한다”며 지금까지 버친다》고 대견스럽게 말한다.

임회장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500여명의 쟁쟁한 고문이 있단다. 그 역시 만났던 각국의 정상과 장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관계자, 유명 대학총장,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석학, 대기업총수들의 자문에 수시로 응하며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거나 기고를 통해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오늘의 《외교》는 세계적인 종합 월간지로 부상되고 그에 따라 임회장은 유엔 등 국제 외교무대의 유명인사로 발탁되였다. 그는 서울에 앉아서도 이 같은 안테나를 가동해 세계외교의 흐름을 가늠하고 나름대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데서 직업외교관들도 혀를 내두른단다. 그래서 그의 별호가 세계외교관들의  《교두보》, 한국의 《무관 전권대사》다.

 《70년대는 한국을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었는데 90년대부터는 외국 지도자들이 오히려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될수 있느냐며 조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일이 비일 비재다》 《세계 200여 국가 중 170여개 나라가 한국을 모델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외교>도 주가가 올라 주간지를 만들 정도로 각국에서 자기네 지도자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이 분분하다》

임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호탕한 웃음으로 《외교》의 위업을 과시하였다.

                       반기문총장 당선에 큰 역할

그와 반기문과의 인연은 1972년부터다. 당시 임회장은 한-인(인도)친선협회 간사로, 반기문은 인도대사관 3등 사무관으로 지내며 사업적으로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다.

2004년 1월 반기문이 한국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지낼 때 임회장이 반장관에게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하라고 권하니 반장관은 《어떻게 제가 합니까?》며 그냥 웃고 지났단다. 그 후부터 임회장은 반장관의 유엔사무총장출마를 계속 설득하였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그는 주한 외국대사들과 유엔 주재 각국 대사를 상대로 《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회》 (반사모)를 조직, 외국 대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한국말로 “반사모!”를 복창시키도 했단다.

《반사모》의 노력으로 주한 외국대사 96명중 70여명이 《반사모》에 가담, 뉴욕에 있는 여러 나라의 유엔대사들중에도 《반사모》가 많다. 임회장은 34년간 《외교》월간을 꾸리면서 직접 인테뷰를 했던 330여명의 외국 국왕, 수상, 대통령들을 대상으로 《반사모》를 위한 네트위크(网絡)도 가동했단다.

세차례의 예비투표에서 반기문이 1위를 차지 한것을 지켜본 뒤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선거운동을 했으니까 오죽했으면 반기문총장이 당선된 다음날에 바로 임회장의 문병을 왔겠는가.

《200여개 유엔회원국이 돌아가며 한차례씩 사무총장을 맡는다면 수자적인 계산으로 1000년은 걸리는데 게다가 전임 총장들의 재임(再任)을 감안하면 대략 1500년 정도가 걸려야 한다》 《한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다시 나오기는 향후 10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해도 어려울것이다》 《그래서 반총장의 재임을 위한 반사모의 노력은 지금부터다.》

 이를 목적으로 그는 반기문총장특간을 꾸려 외국외교관들에게 배포하며 반기문총장  홍보를 시작했단다.

《나는 천만년뒤 지구상에 가장 많이 남아 있을 책은 단연 <외교>라고 장담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외교>의 표지인물이 모두 각국의 최고지도자들이므로 각국의 기념관에서 우리의 <외교>를 장서로 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에도 부끄럽지 않을 잡지를 만들려는 생각에서 갈수록 어깨가 무거워나며 매일 아침 6시면 집을 나선다.》고 임회장은 자랑한다.

/오기활기자
  길림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미국 뉴욕의 일원지역은 조선족의 급속한 류입으로 어디를 가나 조선족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특히 조선족의 90%이상은 한국인사회에서 생활하며 한인가게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야채장사나 식당, 네일가게(손톱관리) 등 한인들이 하는 곳마다 조선족 직원이 한두명씩은 있다.대부분이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평을 받고있...
  • 2006-01-16
  • [원제: 녀자축구팀 로장 손문의 청혼광고] “남자가 나이 들면 장가가기 마련이고 녀자가 나이들면 시집가기 마련”이라고 올해 33살인 손문도 청혼광고를 내 사회상에서 반향들이 크다. 청혼광고의 내막을 보면 본인이 집필한것이 아니고 “상해수요일”신문사의 편집으로 있는 그의 친구가 몸소 기획하고 집필하였던 것이...
  • 2006-01-16
  • 황우석 "용서를 빈다…참담한 심정" 서울대 황우석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문조작에 대해 사과 하고 있다. /외신 한국 황우석교수는 12일 “서울대 조사위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대한 론문과 관련한 허위 데이터 사용은 제1저자인 제가 모두 책임질 부분으로 모두 인정하고 사...
  • 2006-01-13
  • 황우석은 1953년 12월 15일, 한국 충청남도의 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를 좋아했고 커서 꼭 수의사가 되고야말겠다고 작심했었다. 1972년, 그는 소망대로 서울대학 수의약학원에 입학, 1982년까지 그는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따냈다. 졸업후 그는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
  • 2006-01-13
  • 품팔이녀자애로부터 연길시인대대표로 되기까지, 월수입 5000여원의 업주로부터 500여원의 로임을 받는 사회구역위원회서기로 되기까지 갖은 세파를 겪어온 조국영(34살)은 《사회구역사업을 하면서부터 진정으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있다》고 말하고있다. 1986년 12월, 16살에 나는 조국영은 호북성의 한 편벽한 농촌에서...
  • 2006-01-11
  • [원제: 어머님의 손맛으로 고객 감동] 이제까지 없었던 새 업종이나 서비스를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둬보자는 블루오션전략, 가치혁신으로도 통하는 이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약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있다. 그제날 따뜻한 온돌방에서 온 집 식구가 단란히 모여앉아 먹던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칼국수, 생각만 해도 어...
  • 2006-01-11
  • 일전 북경에서 있은 2005년 중국기획년회 및 제2기《제갈량》기획평의활동에서 연변오늘기획연구소 소장 겸 연변오늘상무광고유한회사 리사장 박준덕이 《2005년 중국10대기획전문가》명예를 받아안았다. 소개에 따르면 박준덕사장은 길림성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영예를 받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조선족가운데서 《기획전문가...
  • 2006-01-10
  • [원제: 전통산업에 인터넷 나래를 달아]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 오철웅총경리 사업담 “대형국유기업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비표준장비제조의 거대한 시장잠재력을 노리고 접어들었지요." 2000년말 등록자본금 50만원으로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를 일떠세운 오철웅(43세, 고급공정사)총경리가 밝히는 창업동기이다. 일...
  • 2006-01-10
  • "마음의 고향 한국에 와서 기쁩니다." [세계일보 2006.01.08 13:00:19]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그리워하시는 제 마음의 고향 한국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중앙아시아·러시아 동포청소년 연수단으로 6일 모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거주하는 한국인 4세 라가이 베라양(17). 라가이 양은 고려인들이 한국어...
  • 2006-01-09
  • [원제: 잣왕 조이철의 삼단도약] 장백산자연부원에 의탁해 세계를 도모한다 조이철은 누구? 그의 창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이철, 길림송보생물기술산업유한책임공사의 리사장. 길림성 정우현 사람.올해 47세. 1985년 장춘사범학원 력사학부 졸업. 1990년 경제관리 연수. 1996년 주식회사 길림송보공사 창설. 길림성 특색기...
  • 2006-0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