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정인갑교수, 그는 이런 사람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1월24일 15시50분    조회:828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선족사회 제반에 대해 바른 말, 쓴 말을 많이 하여 직통배기교수로 유명한 정인갑교수(62)를 만난것은 지난 11월 8일 저녁무렵, 북경 망경부근의 조선족음식점에서였다.

마침 일요일이여서 협회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왔다는 등산복차림의 정인갑교수는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혈기왕성하였고 북경에 거주한지 30년이 되여 오지만 기타 조선족 학자나 문화인들이 다 그러하듯 우리 말 언론매체에는 관심이 매우 많은 분이였다.

료녕성 무순시 태생인 정인갑은 고중을 졸업하는 1968년도에 문화대혁명때문에 대학입시를 놓지고 그 이듬해에 참군하여 5년동안 군영생활을 한다. 1976년에 연변문예잡지사에 입사, 편집으로 있다가 1978년 대학입시가 전면 회복되자 31세의 나이로 대학입시에 참가한다.

그때의 정경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학구열에 불타던 수많은 청년들이 10년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험이였지요. 하다보니 입학률이 몇십분의 일로 경쟁이 매우 치렬했어요. 아이가 있는 아빠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까지 있었지만 대학에 가고픈 생각은 굴뚝같았어요.》 당시 연변문예의 책임자로 있던 김해진이 간곡히 만류하였지만 그는 그냥 한번 대학시험을 치고 싶다고 말한다. 대학시험을 친 그는 대학시험이 생각밖으로 너무 쉬웠기에 경쟁적수가 구름처럼 많은 첫해에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다.

그때는 대학시험에 합격된 사람이라야 신체검사에 참가할수 있었는데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남모르게 두번이나 해당 부문에 찾아가 신체검사여부를 알아본다. 이름이 없다는 대답에 《못 붙었구나!》 생각하고 남들이 웃을가봐 일에 몰입하는데 함께 편집으로 있던 리상각시인이 싱글벙글하며 어깨를 툭 치더란다. 총점 344점으로 연변지역 문과장원으로 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된 에피소드다.

그는 중국 최고학부인 북경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하여서야 신입생중 자신이 최고령인줄 알게 된다. 진취심이 있고 책임성이 강한 그는 각종 학생활동과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하면서 자기의 재능을 한껏 과시한다. 대학생신분으로 북경시제1회조선족운동회를 적극 조직하여 1981년 9월 14일에 운동회를 개최하게끔 한것이 그중의 한 실례다.

1982년 1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시 문턱이 높아 한족들도 흠모하는 유명한 《중화서국(中華書局)》에 배치받는다. 《중화서국》은 고서적을 정리출판하는 권위성 전문출판사로 중국에서 력사가 가장 오랜 출판사중의 하나이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중화서국》에 근무하는 사이에 그는 선후로 언어문자 편집부 주임과 사전편집부 주임을 맡고 학술저서 수십종을 편집하고 현대한어 교과서 1종, 고대한어 교과서 3종과 각종 사전 15종을 집필하거나 편집하였다.

활동범위가 넓고 사유가 민첩한 정인갑은 편집사업외에도 놀라운 창작력과 활동력을 보인다.

창작방면에서 그는 십여권의 론문집과 저서를 집필하고 400만자에 달하는 번역작품, 그리고 수백편의 칼럼을 발표한다. 그의 론문이 《고문관지 역주》, 《경전석문 색인》 등 학술가치가 높은것이 위주라면 저서와 번역작품은 《한국경제핸드북》(중문), 《한국관광 가이드》(중문), 《중국문화COM》(조문), 《HSK(한어수평고시)응시지남》(조문), 《나의 아버지 등소평》(중역), 《명성황후》(한역) 등 중국과 한국을 소개하는 저서들이 위주다.

최근 들어 활발해진 그의 창작코너는 칼럼이다. 칼럼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처럼 곧은 인간 정인갑이 그려진다. 그는 주간신문《북경저널》에 칼럼 305편을, 주간신문 《북경뉴스》에 칼럼 50여편을, 조글로 명사미니홈에 80여편의 쟁론가치가 있는 칼럼을 발표하였다.

조선족의 현황과 미래, 그리고 대안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정인갑교수는  다수가 공인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담하게 도전하는 자기의 견해를 칼럼들을 통해 피력한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들의 도시와 해외진출로 집거지가 줄어들고 산재구가 많아진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사회의 《위기》론을 들고 나올때 그는 《이런 변화는 우리 민족의 위기와 비이면서도 또한 도약과 희》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 민족이 대도시로, 해외로 확산되고있는 현상은 발전과 진보의 표징이다.》고 확신한다.

그의 사회활동분야도 광범하다. 사업의 여가를 리용하여 그는 1986년부터 선후로 중앙민족대학, 청화대학 중문학부, 하남성 남양사범대학 등 학교들의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한중번역, 음운학, 한국어 등 학과와 학사, 석사 론문지도를 해왔다. 그 외에도 그는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의 부회장 겸 사무국장, 북경조선족중장년협회 회장, 주간신문인 《북경저널》과 《북경뉴스》의 부주필, 주필, 북경삼강학교(사립조선족소학교) 교장 등 사회직에 있으면서 각종 활동들에 참가했고 한국재벌그룹 중국지사, 한국대학 등에서 중국문화에 관한 특강도 수십차 진행하였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그는 고대한어와 현대한어, 중세조선어와 현대조선어를 두루 섭렵하는 음운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와 중장년협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동시에 인터넷과 간행물들에 민족문제에 관계되는 칼럼활동을 계속할것이라고 밝혔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학 총장조선족동포를 위해 1993년 연변에 과학기술대학을 건립하고 2001년에는 북한동포를 위해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 북한에서 간첩혐의로 40일간 억류돼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순수하게 북한동포를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북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  ...
  • 2011-01-21
  • [동포신문 오재범 기자] 강산불변은 재봉춘이요~ 임은 일거에 무소식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님의 화용이 그리워 나 어이 할까요~ 황해도, 평안도를 대표하는 서도소리 인 ‘수심가’의 일부분이다. 서도소리가 분단 이후 남한에선 명창 오봉녀, 김광숙 등을 통해 계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연변 출신의 한 조...
  • 2011-01-18
  • 수도 조선족대학생들의 믿음직한 어머니  [길림신문 2011-01-17 유경봉 박광익 특약기자]-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 리란사무총장의 이야기 북경 조선족들가운데서 리란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리란은 《스타》급 인물이다. 그럼 리란은 도대체 누구일가? 북경에는 10여년동안이나 줄곧 경제상황...
  • 2011-01-18
  •  "결혼이주 여성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다문화 가정 자녀에겐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중국 조선족 출신 결혼이주 여성인 안순화(46) 씨는 17일 결혼이주 여성들의 자조 모임인 '생각나무 BB센터'를 설립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모임 이름에서 BB는 '이중언어, 이중문화...
  • 2011-01-17
  • 퇴직후부터 서화공부를 시작해 예술가의 길을 가다 ‘중국제하예술명가’ 김련숙녀사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헌 특약기자 = 81세의 고령에도 컴퓨터에 마주앉아 불타는 정열과 희열로 인생을 보람차게 살아가면서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김련숙(金莲淑)녀사, 상해엑스포행사에서 ‘중국제하예술명가...
  • 2011-01-17
  • 고적발굴은 민족의 사업, 조선족고적 연구에 일익 최문식 연변대학고적연구소 소장의 이야기   '전국 소수민족고적사업 선진개인'에 당선   (흑룡강신문=연변) 길림성 윤운걸특파원 = 최문식(사진) 연변대학고적연구소 소장은 최근 지린성에서 유일하게 '전국소수민족고적사업 선진개인'에 당선되어 상장과 상금을 받았...
  • 2011-01-14
  • [길림신문 2011-01-11 유경봉 기자 박광익특약기자] 북경에서 무역회사와 미용원을 경영하면서 무역회사를 경영하고있는 오빠, 언니와 함께 우씨(禹氏)그룹회사 설립을 꿈구는 담찬 조선족 녀기업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북경우씨창의무역회사 사장, 북경심청수국제미용유한회사 원장인 우선옥(45세)이다. 내몽골 칭키스칸시...
  • 2011-01-11
  • [길림신문 2011-01-08 김학송] 중국 조선족의 저명한 연출, 웃음의 설계사 고 최인호선생이 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3년세월도 넘었다. 하지만 마냥 소품야회공연이나 안방텔레비죤화면에 그이가 연출을 맡았거나 출연한 소품을 볼 때면 이 가슴 허전함 감출수 없다. 그가 남긴 웃음과 연기는 항상 영원한 미소와 유머로 우...
  • 2011-01-10
  • [연변일보 2011-01-10 허국화 기자]역경속에서 음악은 정신적기둥이 였다—김창호선생 음악인생 편린 기자가 찾아갔을 때 김창호선생은 한창 컴퓨터앞에 앉아있었다. 회원들의 작품을 편집하는중이였다. 김창호선생은 기자에게 《음악과 문학》라고 적혀진 잡지를 건네줬다. 김창호선생이 회장을 맡고있는 중국민족예술...
  • 2011-01-10
  • 허영인국장은 당면 민족사업의 도시화경향을 주목하고 민족간부의 양성에서 도시화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본사기자  정책연구로 민족경제발전 특혜 '유치'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 허영인국장의 사업 진로 더듬어   (흑룡강신문=하얼빈) 박백림기자 = 최근 몇년간 민족사업에서 큰 실적을 쌓고 있는 흑룡강성 ...
  • 2011-0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