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룡석-성실신용은 금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0월13일 10시15분    조회:866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성실신용은 금이다
도문시 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 인터뷰

일전 기자는 30여명의 종업원들을 이끌고 팽이처럼 돌아치는 도문시보이라공장 김룡식공장장(55)을 만났다. 월동준비때라 꺼질줄 모르는 핸드폰, 할빈서 온다는 손님들… 여하튼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가 밤 약속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지나온 17년간 눈에 차지도 않는 작은 공장에서 크고 작은 보이라를 1000여대나 생산해 주내외에 공급했다니 그에 따른 추적봉사만 해도 얼마나 벅차겠는가!

《불공평한 운명》

《내 운명은 불공평한 운명입니다》

첫눈에 정직하다는 인상을 안겨 주는 그가 떼는 화두에 필자는 저으기 당혹하였다.

광복 3 년전에 닥치는대로 일해 번 돈으로 땅을 사 지주로 된 무식쟁이 할아버지, 《력사반혁명분자》 에 《현행반혁명분자》 모자까지 쓰고 투쟁을 받은 아버지(김한역, 연변한어사범학교, 연변고중 교도주임 력임), 부농의 딸 어머니로 하여 룡식이는 기죽은 《불행아》로 될수밖에 없었다

가정정치배경으로 로동자모집에 늘  《왕따》만  당하던 룡식이는 《지식청년을 모두 귀성시키는 정책》에 따라 농촌에 하향하여 8년이 지난 1978년 1월에 국영기업소(도문시 윤활유공장)로동자로 배치를 받았다. 그런데 또 그에게는 《집체편제》라는 꼬리가 달려 그의 전도에 거침돌이 되였다.

그는  《집체편제》때문에  간부편제로 넘지 못하다 보니 13년간 용접봉과 씨름을 했고 남들은 공비로 하는 연변대학(함수)도 그만은 자비로 졸업하였다. 그에게 글재간이 있다고 여러 문화계통에서 욕심을 냈으나 단 《간부 아닌》 리유로 길이 막혔다. 아무리 밀어봐도 당 《문》이 안 열리니 입당을 포기하였다.

《무》에서  《유》를

1991년 11월, 교육개혁과 더불어 《학교에서 공장을 꾸리는》 열풍이 일자 룡식이는 《용접기술이 높은》 덕분에 도문시기공학교에서 초빙, 날개를 편 룡식이는 정보를 얻고 보이라공장을 꾸렸다.

그제나 지금이나 룡식이의 창업밑천은 《의욕, 정신, 책임》 이란다.

《창업으로 불공평했던 운명을 보상받겠다》는 그의 창업의욕과 하늘을 찌르려는 분발정신,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은 날이 갈수록 빛을 내고 힘이 되였다.

그는 《발열량이 낮고 연소시간이 짧으며 체적이 큰》 연변석탄의 특성에 맞는 보이라를 설계, 제작한데서 룡식이네 제품이 《가격이 싸고 질이 좋다》는 평가가 뒤따라 도문시보이라공장이 《연변조선족자치주보이라생산 지정공장》으로 부상되였다. 하여 연변변방지대 병영에 이 공장제품을 보급(15대)하였다. 지난 9월 21 일 서란시정부물자구입처에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이 공장을 고찰하고 《당금 5대를 보증해 달라》고 재촉한데서 룡식이는  《즐거운 고민》으로 모대기고있다.

 《내가 하면 되고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지난 17년을 창업련습으로, 지금부터를 창업실천으로, 지나온 련습이 너무 길다보니 아직까지 종업원들에게 복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안 해도 잘 돌아가는 공장을 기어코 만들겠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의 호언장담이다.

《성신위금》

룡식이는 사무실에 《성신위금(誠信槨쏜)》을 정중하게 모신다. 《성신위금》은 그가 명망이 높은 서법가(란해)한테 특별히 부탁한 서예작품이기도 하다.

《성신위금》은  그의  좌우명이고 생활과 사업의 신조란다.

부모들의 《정치불결》로 《오직 정직하고 온순했다》는 그는 《성신위금》을 가보(家괜), 장보(낍괜)라 한다. 그의 말 몇마디를 적어 본다.

―내가 말하는 책임은 사회를 책임지고 종업원을 책임지며 가정을 책임지는것으로서 나의 인격을 책임지는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정부공무원들이 기업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련계시켜 공정집권, 공평집권도의를 지키라는 부탁입니다.

―《인간답게 살려면 불의와 도전하고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라》는 김학철선생님의 유언도 《성신위금》이라고 생각됩니다. 《의욕, 분투, 책임, 성신위금》은 그의 인격이고 창업밑천이다. 도문시보이라공장의 번영발전을 기원하며 필자는 맘속으로 《10자 밑천》 만세를 불러본다.

길림신문 오기활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