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황영애-연변주군중예술관 성악교수겸 전직가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23일 10시14분    조회:97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주군중예술관 성악교수 겸 전직가수 황영애의 이야기

장백의 꾀꼬리 식을줄 모르는 인기

천년을 찧었느냐 만년을 찧었느냐
장백의 폭포수야 너는야 절구방아
……

연변인민들에게 더없는 친근감을 안겨주었던 노래 《장백의 폭포수》로 널리 이름을 날린 가수 황영애, 그가 이 노래를 부른지도 어언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때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황영애가 지금은 연변주군중예술관의 전직가수, 국가 2급가수로 활약하고있는데 그 인기가 장백의 폭포수처럼 식지 않고있다.

타고난 꾀꼬리목청의 꼬마가수

1965년 6월 11일, 연길시 한 지식인가정에서 태여난 황영애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노래를 잘 불렀다. 특히 타고난 꾀꼬리목청으로 일찍 소학교시절에 레코드(唱片)에 노래취입을 했다. 텔레비죤이 없었던 그 시절 황영애는 연변인민방송국 소년아동프로에서 수많은 노래를 불렀다. 방송을 즐겨들은 청취자들이라면 아직도 소년아동프로에서 그가 불렀던 노래 《해님》을 기억하고있을것이다. 그뿐만아니라 그는 소학교음악교과서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노래를 전부 혼자 록음한 기록도 창조하였다.
연길시 3중에서 초중, 고중을 다닌 황영애는 5년간이나 학교 음악부장직을 맡아했고 여러가지 공연에 참가하였으며 크고작은 노래콩클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때까지 부모님들은 딸이 노래를 부르는데 별다른 의견이 없었지만 노래보다는 공부로 출세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노래에만 집착하는 딸을 입이  닳도록 말렸지만 이미 가수로 되려는 마음을 굳힌 황영애로선 그 말을 들을리 없었다. 그녀는 고중을 졸업하고 중국인민해방군81036부대 문예공연대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 부대에서 나온후 황영애는 연변사범학교 유사반에 입학했다. 그 시절 그녀는 연변예술학교의 최승덕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노래기교를 익혔다.

힘들지만 보람찼던 과외가수시절

황영애가 사범학교를 갓 나온 그때는 연길에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마냥 일어설 때였다. 그녀는 나이트클럽을 음악교실로 삼고 노래기교를 갈고 닦으리라 마음먹었다. 나이트클럽이 많던 그때 그녀는 하루저녁에도 여러곳에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 황영애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노래기교를 높일수 있어 기뻤고 거기다 수입 또한 좋아 재미있었던 시절이였다》고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1987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펼친 대중가요무대에 올라 노래 《청수동》을 불러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던 황영애는 1991년 음력설을 맞으면서 중앙인민방송국 문예부에서 주최한 조선족가수음악콩클에 참가하여 과외가수로서 우수가수란 영예를 받아안기도 하였다.

황영애는 밤무대를 뛰는 한편 자신의 음악재질을 보다 한층 끌어올리고저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연수생으로 들어가 피타는 몸부림을 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노래 《장백의 폭포수》를 작곡한 황상룡선생이 하루는 그녀를 불러 《영애의 목청이 이 노래에 딱 알맞으니 불러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매주일가로 정하고 준비하였는데 노래가 하도 좋아서 1993년 음력설야회에서 부르게 되였다.  또 음력설이 지난후에는 인차 매주일가로 방송되였는데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여 황영애 또한 노래와 함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전직가수로 발돋움

1995년 황영애는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전직가수로 되였고 허광가수와 함께 노래 《이 밤도 달은 둥글다》를 불러 성공시켰다. 1996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가진 10대 인기가요에 그녀가 부른 노래가 무려 3수나 뽑혔다. 《장백의 폭포수》, 《이 밤도 달은 둥글다》외에 《참회》도 인기가요로 뽑혔던것이다. 

한번도 배움의 열을 식힌적이 없는 황영애는 1996년부터 조선평양음악무용대학의 최정대선생님한테서 민족성악을 배웠고 1999년에는 조선공훈배우 전순옥선생한테서 가르침을 받으며 자신의 기량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여 그녀가 부른 《부모님》, 《연변녀자》 등 노래는 연변TV방송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였고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가요로 되였다.

전직가수로 있으면서 늘 음악교원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온 황영애는 1998년에 연변주군중예술관 문예부 성악교원 겸 전직가수로 전근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되였다.

피타는 노력으로 얻은 주렁진 결실

1999년은 황영애에게 있어서 아주 보람찬 한해였다. 그해 그녀는 큼직한 상을 2개나 받아안았다. 9월에는 건국50주년 길림성군중문예공연에서 노래 《처녀의 노래》로 성선전부, 성문화청, 성총공회로부터 금상을 받아안았고 11월에는 국가문화부에서 주최한 전국 제9회 《군성상》결승에서 노래 《바다의 노래》를 불러 국가문화부로부터 동상을 받아안았다.

황영애는 일찍 1993년과 1995년에 개인록음테프를 내놓았고 2004년에는 음반 《장백의 폭포수야》를 출판하였다. 

이외에도 2002년에는 중국조선족가수콩클에서 독창 3등상을, 중한전통가요콩클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에는 《예술전당》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 《장백산천지》를 발표하였으며 조선 평양에서 있은 《4월의 봄축제》에서 노래 《4월에 봄이 왔네》를 불러 금상을 받아안았다. 2005에는 한국 포항에서 열린 《해병인축제》에 참가하여 한국의 인기가수 남진, 현숙, 윤도현과 무대를 같이하였고 2007년과 2008년에는 한국 MBC 《교통방송》프로에서 생방송으로 된 취재를 1시간반이나 받았다.

금년 4월에는 새 노래 《장백산은 어데가나 춤과 노래라네》로 길림성문화예술간부실무콩클에서 연변지역 1등상을 수상하였다. 또 6월 28일 열리게 되는 북방관광교역회 대형문예공연에서 독창 《장고야 울려라》를 선보이게 된다.

아들에게 음악을 시키고싶은 엄마

1994년 한동네에 살았던 고향오빠와 결혼한 황영애는 늘 일에 들볶다나니 결혼한지 7년이 되도록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때는 참 생각이 단순했다. 아이를 낳으면 마음껏 노래를 부를것 같지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늦어졌다. 아들을 낳은후에야 일찍 낳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부모들이 조급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남편만은 한번도 불만이 없이 묵묵히 황영애의 사업을 지지해주었다. 남편은 록음테프를 낼 때에도 음반을 출판할 때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뿐만아니라 새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함께 연구하고 노래련습을 할 때에는 피아노반주도 해주었다. 

황영애는 《믿음직한 남편이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수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아들이 태여나서 말을 배워주면서는 아예 호칭을 〈오빠〉로부터 〈아빠〉로 바꾸었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워낙 일욕심이 많았던 황영애는 해산하는 날까지 노래를 불렀다. 2001년 10월 20일 연변TV방송 20시 생방송프로 《사랑으로 가는 길》에 참가하기 위해 화장을 하던중 진통을 느꼈지만 참고 노래를 부른후에야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결과 아들은 예정일보다 15일이나 앞당겨 그날 22시 40분에 태여났다. 

이렇게 태아때부터 노래를 너무 들어서인지 아들 안위림은 음악을 싫증나했다. 부모한테서 유전을 받아서인지 목청도 좋고 음악적감각도 뛰여났지만 흥취가 없어한다. 아들을 위해 그랜드피아노까지 갖춰놓았는데 아들은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듣기 싫다면서 엄마보고도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한다. 

얼마간 마음이 상했지만 강요할수도 없는 황영애가 아들에게 《그럼 커서 뭘 하고싶어?》라고 물으면 《아빠처럼 운동할거예요. 그러니 저 피아노랑 다 팔아버리세요》하며 대수롭잖게 말한다.

그러다가도 집으로 찾아온 학생들에게 노래를 배워줄 때면 시키지 않아도 옆에서 함께 배우는데 제법 잘 배워낸다는 아들을 두고 황영애는 《앞으로 계속 목청이 좋으면 성악을 시키고싶은 생각이 많지만 생각대로 되겠는지 두고봐야 한다》며 은근히 욕심을 내비치였다.

음악의 길을 향해 쉬임없이 달려온 황영애는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을 포함한 군중문화를 위해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이 한차원 올라선다면 그만큼 보람찬 일이 없을것이다》면서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부단히 배우면서 지금까지 아껴주고 사랑해준 대중들께 보답하고싶다》고 앞으로 타산을 밝혔다.

연변라지오TV신문    최설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허동활선생은 중국조선족연극계의 제1대 원로예술가로서 60여년을 하루와 같이 중국조선족연극예술의 발전에 모든것을 바쳐왔다.장장 60여년의 연극생애에서 배우,연출가로 활약하면서 무수한 예술형상을 창조한 선생은 2007년 4월 《중국연극 100년》축제에서 공화국의 연극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한 리묵연 등 30여명 원로...
  • 2008-11-19
  • 박규찬선생은 우수한 공산당원이며 저명한 중국조선족 교육가, 교육학가이며 연변대학 창시인의 주요한 일원이며 연변대학의 로교장이다. 1918년 7월 7일,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5남매중 셋째아들로 태여난 박규찬선생은 째지게 가난한 환경에서도 서당공부를 시작하여 항상 우수한 성적을 냈으며...
  • 2008-11-17
  •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에 성공한 한 조선족 괴짜대학교에서 배운 화학섬유전공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을 독학으로 성공한 한 조선족 괴짜가 있는데 그가 바로  연길시에 자리잡은 무궁화소프트웨어개발회사의 대표이자 중국조선족온라인커뮤니티 연변모이자 대표이며 또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
  • 2008-11-14
  • —연변대학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주임 오광  신경병학 림상교수, 과학연구사업에 종사한 26년간 연변대학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주임 오광은 신경정신질병의 진단치료에서 풍부한 림상경험을 루적했고 시종일관하게 매 한명의 환자, 매 한부의 병례를 참답고도 세심하게 대해 명실상부한 신경계통학자형전문가로 부...
  • 2008-11-13
  •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 미디어아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한국에서 세계로 향하는 중국동포 인재를 찾아서<3> 손 봉 (숭실대 미디어학과 석사과정) 한국에 유학 나온 중국동포 유학생의 꿈을 들어보는 시간이다. 간혹 자녀를 한국에 유학을 보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되냐는 문의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학교...
  • 2008-11-13
  • “화상대회 벤치마킹 조선족 활용하길” 김문일 옌볜청년기업가연합회 회장 김문일 옌볜청년기업가연합회 회장(35·사진)은 “중국 화상대회가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중국 최고의 기업들이 참가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상대회가 중소기업들의 대회...
  • 2008-11-13
  • ◆ 2000년 봄 그는 화원조선족향토지관리소 소장직을 사직하고 하남촌 300무의 논을 임대경작하면서 직업농민으로 탈바꿈하였다. ◆ 올해 7월 김정환의 정환농업기계화생산전문회사는 길림성 성당위 왕민서기의 부축 항목으로 되였다.대부분 조선족들이 외국과 도시로 진출하는 이때, 향토지관리소 소장의 직책을 미련없이 ...
  • 2008-11-13
  • 현모량처형의 만능연기자 장미옥재담,소품 등 구연종목은 물론 텔레비죤련속극에서도 배역을 맡고 가수나 사회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면서 이르는 곳마다에서 장끼를 자랑하는 장미옥,독자들은 뭇사람들로부터 만능연기자로 호평을 받고있는 장미옥이 량가 부모님들에게 효도하고 남편과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잘하면서 원만...
  • 2008-11-11
  • 탁월한 지역우세로 만방을 매료할터 일전에 기자는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이 창립 50돐을 맞아 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이 현 정형일현장대리와 인터뷰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였다.정형일현장대리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중화 10대 명산중의 하나인 장백산의 남쪽기슭...
  • 2008-11-11
  • 中 조선족 미래, 여성이 디자인한다이란 北京애심여성네트워크 회장 각오(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 조선족의 미래는 여성이 디자인해 나갈 것입니다."중국 베이징(北京)에 진출한 조선족 여성들의 모임인 '베이징애심여성네트워크'의 이란(50) 회장이 설계하는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장대하다. 지난해 ...
  • 2008-11-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