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황영애-연변주군중예술관 성악교수겸 전직가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23일 10시14분    조회:975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주군중예술관 성악교수 겸 전직가수 황영애의 이야기

장백의 꾀꼬리 식을줄 모르는 인기

천년을 찧었느냐 만년을 찧었느냐
장백의 폭포수야 너는야 절구방아
……

연변인민들에게 더없는 친근감을 안겨주었던 노래 《장백의 폭포수》로 널리 이름을 날린 가수 황영애, 그가 이 노래를 부른지도 어언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때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황영애가 지금은 연변주군중예술관의 전직가수, 국가 2급가수로 활약하고있는데 그 인기가 장백의 폭포수처럼 식지 않고있다.

타고난 꾀꼬리목청의 꼬마가수

1965년 6월 11일, 연길시 한 지식인가정에서 태여난 황영애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노래를 잘 불렀다. 특히 타고난 꾀꼬리목청으로 일찍 소학교시절에 레코드(唱片)에 노래취입을 했다. 텔레비죤이 없었던 그 시절 황영애는 연변인민방송국 소년아동프로에서 수많은 노래를 불렀다. 방송을 즐겨들은 청취자들이라면 아직도 소년아동프로에서 그가 불렀던 노래 《해님》을 기억하고있을것이다. 그뿐만아니라 그는 소학교음악교과서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노래를 전부 혼자 록음한 기록도 창조하였다.
연길시 3중에서 초중, 고중을 다닌 황영애는 5년간이나 학교 음악부장직을 맡아했고 여러가지 공연에 참가하였으며 크고작은 노래콩클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때까지 부모님들은 딸이 노래를 부르는데 별다른 의견이 없었지만 노래보다는 공부로 출세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노래에만 집착하는 딸을 입이  닳도록 말렸지만 이미 가수로 되려는 마음을 굳힌 황영애로선 그 말을 들을리 없었다. 그녀는 고중을 졸업하고 중국인민해방군81036부대 문예공연대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 부대에서 나온후 황영애는 연변사범학교 유사반에 입학했다. 그 시절 그녀는 연변예술학교의 최승덕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노래기교를 익혔다.

힘들지만 보람찼던 과외가수시절

황영애가 사범학교를 갓 나온 그때는 연길에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마냥 일어설 때였다. 그녀는 나이트클럽을 음악교실로 삼고 노래기교를 갈고 닦으리라 마음먹었다. 나이트클럽이 많던 그때 그녀는 하루저녁에도 여러곳에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 황영애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노래기교를 높일수 있어 기뻤고 거기다 수입 또한 좋아 재미있었던 시절이였다》고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1987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펼친 대중가요무대에 올라 노래 《청수동》을 불러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던 황영애는 1991년 음력설을 맞으면서 중앙인민방송국 문예부에서 주최한 조선족가수음악콩클에 참가하여 과외가수로서 우수가수란 영예를 받아안기도 하였다.

황영애는 밤무대를 뛰는 한편 자신의 음악재질을 보다 한층 끌어올리고저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연수생으로 들어가 피타는 몸부림을 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노래 《장백의 폭포수》를 작곡한 황상룡선생이 하루는 그녀를 불러 《영애의 목청이 이 노래에 딱 알맞으니 불러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매주일가로 정하고 준비하였는데 노래가 하도 좋아서 1993년 음력설야회에서 부르게 되였다.  또 음력설이 지난후에는 인차 매주일가로 방송되였는데 시청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여 황영애 또한 노래와 함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전직가수로 발돋움

1995년 황영애는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전직가수로 되였고 허광가수와 함께 노래 《이 밤도 달은 둥글다》를 불러 성공시켰다. 1996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가진 10대 인기가요에 그녀가 부른 노래가 무려 3수나 뽑혔다. 《장백의 폭포수》, 《이 밤도 달은 둥글다》외에 《참회》도 인기가요로 뽑혔던것이다. 

한번도 배움의 열을 식힌적이 없는 황영애는 1996년부터 조선평양음악무용대학의 최정대선생님한테서 민족성악을 배웠고 1999년에는 조선공훈배우 전순옥선생한테서 가르침을 받으며 자신의 기량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여 그녀가 부른 《부모님》, 《연변녀자》 등 노래는 연변TV방송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였고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가요로 되였다.

전직가수로 있으면서 늘 음악교원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온 황영애는 1998년에 연변주군중예술관 문예부 성악교원 겸 전직가수로 전근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되였다.

피타는 노력으로 얻은 주렁진 결실

1999년은 황영애에게 있어서 아주 보람찬 한해였다. 그해 그녀는 큼직한 상을 2개나 받아안았다. 9월에는 건국50주년 길림성군중문예공연에서 노래 《처녀의 노래》로 성선전부, 성문화청, 성총공회로부터 금상을 받아안았고 11월에는 국가문화부에서 주최한 전국 제9회 《군성상》결승에서 노래 《바다의 노래》를 불러 국가문화부로부터 동상을 받아안았다.

황영애는 일찍 1993년과 1995년에 개인록음테프를 내놓았고 2004년에는 음반 《장백의 폭포수야》를 출판하였다. 

이외에도 2002년에는 중국조선족가수콩클에서 독창 3등상을, 중한전통가요콩클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에는 《예술전당》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 《장백산천지》를 발표하였으며 조선 평양에서 있은 《4월의 봄축제》에서 노래 《4월에 봄이 왔네》를 불러 금상을 받아안았다. 2005에는 한국 포항에서 열린 《해병인축제》에 참가하여 한국의 인기가수 남진, 현숙, 윤도현과 무대를 같이하였고 2007년과 2008년에는 한국 MBC 《교통방송》프로에서 생방송으로 된 취재를 1시간반이나 받았다.

금년 4월에는 새 노래 《장백산은 어데가나 춤과 노래라네》로 길림성문화예술간부실무콩클에서 연변지역 1등상을 수상하였다. 또 6월 28일 열리게 되는 북방관광교역회 대형문예공연에서 독창 《장고야 울려라》를 선보이게 된다.

아들에게 음악을 시키고싶은 엄마

1994년 한동네에 살았던 고향오빠와 결혼한 황영애는 늘 일에 들볶다나니 결혼한지 7년이 되도록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때는 참 생각이 단순했다. 아이를 낳으면 마음껏 노래를 부를것 같지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늦어졌다. 아들을 낳은후에야 일찍 낳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부모들이 조급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남편만은 한번도 불만이 없이 묵묵히 황영애의 사업을 지지해주었다. 남편은 록음테프를 낼 때에도 음반을 출판할 때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뿐만아니라 새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함께 연구하고 노래련습을 할 때에는 피아노반주도 해주었다. 

황영애는 《믿음직한 남편이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수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아들이 태여나서 말을 배워주면서는 아예 호칭을 〈오빠〉로부터 〈아빠〉로 바꾸었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워낙 일욕심이 많았던 황영애는 해산하는 날까지 노래를 불렀다. 2001년 10월 20일 연변TV방송 20시 생방송프로 《사랑으로 가는 길》에 참가하기 위해 화장을 하던중 진통을 느꼈지만 참고 노래를 부른후에야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결과 아들은 예정일보다 15일이나 앞당겨 그날 22시 40분에 태여났다. 

이렇게 태아때부터 노래를 너무 들어서인지 아들 안위림은 음악을 싫증나했다. 부모한테서 유전을 받아서인지 목청도 좋고 음악적감각도 뛰여났지만 흥취가 없어한다. 아들을 위해 그랜드피아노까지 갖춰놓았는데 아들은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듣기 싫다면서 엄마보고도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한다. 

얼마간 마음이 상했지만 강요할수도 없는 황영애가 아들에게 《그럼 커서 뭘 하고싶어?》라고 물으면 《아빠처럼 운동할거예요. 그러니 저 피아노랑 다 팔아버리세요》하며 대수롭잖게 말한다.

그러다가도 집으로 찾아온 학생들에게 노래를 배워줄 때면 시키지 않아도 옆에서 함께 배우는데 제법 잘 배워낸다는 아들을 두고 황영애는 《앞으로 계속 목청이 좋으면 성악을 시키고싶은 생각이 많지만 생각대로 되겠는지 두고봐야 한다》며 은근히 욕심을 내비치였다.

음악의 길을 향해 쉬임없이 달려온 황영애는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을 포함한 군중문화를 위해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이 한차원 올라선다면 그만큼 보람찬 일이 없을것이다》면서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부단히 배우면서 지금까지 아껴주고 사랑해준 대중들께 보답하고싶다》고 앞으로 타산을 밝혔다.

연변라지오TV신문    최설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저에게 있어서 무자년인 2008년은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사진전과 수상 그리고 촬영가협회 사업 등 여러 면에서 모두 결실을 이루었지요.” 남개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사진작가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쌓았고 또 성촬영가협회 부주석의 자리에 오른 리종걸씨이지만 지난해 거둔 성과들은 의미...
  • 2009-01-22
  • 흑룡강성 (黑龙江省) 닝안(宁安) 출신으로 한국에서 12년을 생활한 박춘근 씨(57). 껑충한 키에 길쭉한 얼굴이 인상적인 그에게서는 타향살이로 지친 기색은커녕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눈빛만이 반짝인다. 꿈을 가진 그는 재한 조선족들에게는 귀감이 될만한 '성공한 인물'임에 틀림없다.'외래어사전' ...
  • 2009-01-21
  • 함순녀 그녀가 선택한 무용인생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후에도 출중한 무용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독차지하던 이름난 무용배우 함순녀-연변의 첫 국가1급무용배우로 활약을 펼쳐가던 그녀는 지금 연변가무단의 단장조리로 사업하는 한편 전국인대 대표, 길림성인대 대표로 나라를 위한 사업에서 한몫을 톡톡히 담당해가고있...
  • 2009-01-21
  • 평범한 회사일군이 외화벌이 능수로●년간 수출액 600만딸라 ●550호 농가에 치부기회 제공● <<회사+기지+농호>> 경영모식 형성 불경기로 파산의 변두리에 처했던 민영기업을 왕청현에서 외화벌이 중점기업으로 부상시킨 녀강자가 있다.그녀가 바로 올해 51세에 나는 허춘희씨이다. 30년전 왕청현 토산과일회사...
  • 2009-01-19
  • 중국인민은행 연변주중심지행의 조사통계과에 근무하는 리선자씨가 중국 유수의 금융잡지 -《중국금융》2009년도 제2호 표지인물로 나왔다. 《중국금융》잡지는 1950년에 설립된 잡지로서 중국인민은행,중국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중국보험감독관리위원회의 관리감독하에 중국금융출판사가...
  • 2009-01-17
  • 우리 학계에서 《신문학》 하면 금방 떠오르는 한분이 계신다. 바로 연변대학의 신문학교수이며 우리 《신문학교육의 개척자》인 최상철교수(70세)이다. 청춘시절에는 작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연변대학 조문학부만을 선택해 연변에로 왔고 졸업후에는 15년간 문학교수와 창작 및 평론에 전념, 왕성기를 맞다가 돌연 신문학...
  • 2009-01-16
  • 14일,중국국가체육총국 남용을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으로 정식 임명조선족 사나이 남용, 과연 중국축구를 낭떠러지에서 구해낼수 있을가?1월 14일, 중국국가축구대표팀이 2011년까타르아세아컵축구대회 예선 제1륜경기에서 D조중 가장 약팀이라 불리는 수리아에 2:3으로 무릎을 꿇어 팬들의 비난이 빛발쳤다.2009년 들...
  • 2009-01-15
  • 중국 저명한 조선족 시인이며 길림일보신문업그룹 길림조선문신문사, 장백산잡지사 사장 겸 총편집인 남영전씨는 줄곧 토템문화연구와 토템시가작품창작성과로 문단에서 이름을 크게 떨치고있다. 최근년래 남영전씨는 새로운 연구와 창작성과로 갈수록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2008년 10월, 그의 론문 "토템문화가 현대...
  • 2009-01-15
  • 산재법 몰라 불이익 당한 재한중국동포 위한 킬러“한국에 입국하는 80%이상의 중국동포들이 한국의 산업재해법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고 또 회사측은 형사,법률책임을 지지않기 위해 협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더욱이는 산재로 인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난해 11월달에 서울에...
  • 2009-01-15
  •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 조선족 강 연 양학비 부족 중국 명문 연변 제1고 자퇴민족사관고 특례입학 학업의지 다져“한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고 중국을 이끌어 나가는 조선족이 되고 싶습니다.”동해시와 자매 도시인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신의 조선족으로 민족사관고로 유학온 강 연(18·사진)학생. 강 양...
  • 2009-01-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