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정체성 문제 다룬 소설 주로 써
이방인 아닌 주체로 사는게 동포들 꿈
1년에 두차례 방문…뉴스 모두 챙겨봐
“연변이 ‘연용도’라는 시로 바뀐다고 한다.”
“연변이 ‘연용도’라는 시로 바뀐다고 한다.”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조선족 여성 소설가 허련순(52)씨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조선족 인구 감소로 자치주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이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돼야 하는데, 조선족은 한국 등지로 많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한족이 메우고 있다. 연용도는 연변, 용정, 도문의 머리글자를 따서 합친 것이다. 길림성 정부의 5개년 계획 가운데 하나로 들어 있다.”
그의 얘기를 듣노라면 연변 자치주 인구 감소와 지위 하락은 돌이킬 길이 없어 보인다. 그곳 조선족의 한국행은 돈을 벌겠다는 경제적 이유에서만 감행되는 게 결코 아니다. 조상들의 기억이 서린 모국 회귀본능과 정체성 혼란 등도 끝없이 그들을 한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허 작가 자신이 1년에 적어도 두어번 정도는 온다. “한 번 올 때마다 3개월 비자로 오는데, 이번 여행은 한 달 남짓으로 줄여잡았다.” 한국문학 번역 등 일이 있지만 꼭 무슨 일이 있어서만 오는 게 아니다. “가서 석달쯤만 지나면 다시 여기 오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올 때는 꼭 한국이 초행인 동료 작가를 한 명씩 데려온다. “나라 바깥에 나라가 있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자신처럼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도록 해 주고 싶어서다.
중국작가협회 회원이며 연변여(女)문인협회 회장인 그는 국가 1급 작가다. 1급 작가면 우리돈으로 2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중국내 조선족 작가 670여명 가운데 중국작가협회 회원은 50여명, 1급 작가도 50명 정도다. 그는 올해 조선족단체(사단법인)가 제정한 ‘김학철 문학상’ 첫 수상자가 됐다. 수상작은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최근 그를 연변에 가서 만나고 이날 한겨레신문사도 함께 방문한 서경식 교수에 따르면, 이 작품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한국으로 밀항을 시도한 조선족 동포들의 실패한 도항 얘기다. 연변 조선족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주제라고 허 작가는 말했다.
“우리는 중국 국적자고 중국어와 중국문화 속에 살지만 영원히 한족이 될 순 없는 존재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이란 것 자체가 실은 완전히 중국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설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늘 소수자의 외로움, 고독을 느낀다. 우리 문학은 중국 문학과 정서가 다르다. 우리 문학을 우리말로 써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은 그게 슬픔이다. 차라리 중국인으로 태어나거나 한국인으로 태어났어야지. 난 뭔가? 중국 주류도 한국 주류도 될 수 없는 이방인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 문학작품들을 더 많이 읽고 문화유적지도 더 많이 찾고 한국 뉴스는 빼지 않고 꼼꼼히 챙겨 본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보다 두루 더 많이 알 것이라고 장담했다. 투표권을 주기만 하면 “좋은 대통령 뽑는 것도 자신 있다”는 그의 얘기에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등 어려운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1996년에 낸 〈바람꽃〉도 조선족 동포 정체성 찾기를 다뤘다.
1918년 회령에 살던 그의 할아버지가 농사지으려 강을 건넌 뒤 가족 이주사가 시작됐다. 어릴 때 건너간 아버지는 여섯 형제였는데 삼촌 한 분은 문화혁명 때 맞아죽었다. 지금 남과 북에 한 분씩 삼촌이 살고 계시다.
“인정 많고 아기자기하고 서비스도 좋고 남자들이 너무도 친절한(중국에 비해) 한국은 천국”이라는 허 작가는 한국의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정치는 되게 저질”이라며 덧붙였다. “더 크게 보고 좀더 멋있게 하지.”
한겨레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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