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北에 첫합영회사 세운 천용수회장3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3일 09시22분    조회:861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가 이탈리아 출신 갱단에 나를 죽여달라고 청부살인을 부탁할 정도였답니다. 언젠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문안을 갔더니 단체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는데 사진마다 내 머리 위에 점을 찍어놓았더군요.” -선식(船食)사업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화물선 에이전트들이 정보를 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항구에 나가서 배가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고향 생각을 참 많이 했지요. 또한 주문받아서 납품하느라 장시간 트럭운전을 했는데, 그때 여러 가지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지금도 선식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1996년에 매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식 비즈니스에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서 오늘의 코스트 그룹을 일으켰으니 잊을 수가 없지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신문용지 수출 및 환경 관련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건 ‘아시안 십 서플라이’ 덕분이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1990년대 초부터 대북(對北)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고요.” 총리 추천서 들고 북한으로 -대북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있다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정부(이하 ‘서부호주 정부’)로부터 북한 관련 광산업을 하던 센추리 광산회사를 소개받은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1989년에 창업한 ‘그린 리사이클링 코퍼레이션(Green Recycling Co.)’이 서부호주 정부와 계약을 맺어 진행하는 사업이라서 정부 관계자들을 자주 만나야 했거든요.” 센추리 광산회사는 1980년대 초부터 북한에 진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사업 전망은 좋지만 북한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호주 사람들로선 북한의 정서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이런 점이 천용수 회장이 대북사업에 뛰어든 동기가 됐다는 대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북사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1992년 그는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36만 호주달러에 호주 광산회사로부터 모든 자료를 인수하고 북한으로 들어간 것. 그러나 그의 첫 방문은 몹시 조심스러웠다. 사전 정지작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매사에 혈혈단신으로 부딪혀야 했다. 로렌스 당시 서부호주 총리가 김일성 주석 앞으로 써준 추천서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로렌스 총리는 추천서에 “천용수 회장은 서부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기업인이다. 또한 서부호주정부 관련 사업을 포함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아주 모범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어 적극 추천한다”고 썼다. 그런데 천 회장은 무엇보다 신변 안전을 염려했다. 군복무 시절, 누구보다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그인지라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게다가 대북정보를 다루던 정보장교 출신인 그를 북한이 선뜻 받아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북한으로 떠나던 날, 부인 공씨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친정이 평안북도 벽동인 것도 남편의 외가가 함경남도 함흥인 사실도 왠지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당시 호주는 북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터였다. 그러나 천 회장은 북한 당국자들에게서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그가 평양 근교의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북한을 떠나올 때까지 해외동포영접총국 직원들이 모든 일정을 잡아주고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북한 당국은 “조총련을 제외하면 당신이 북한을 맨 처음 방문한 해외동포 사업가”라면서 “해외에서 기업을 세워 크게 일으킨 경험으로 북한에서도 크게 성공하기를 바란다. 적극 돕겠다”고 했다. 호주 광산회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던 ‘이해하기 힘든 북한 정서’는 없었다. 다만 하루빨리 북한 당국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 그는 사업을 빠르게 진척시켰다. 천 회장은 1992년 5월 북한을 첫 방문한 이래 그해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했다. 6월에는 두 번째로 북한에 들어가서 코스트(KOAST) 평양사무소를 설립했다. 세 번째 방문 때는 북한 출신 지사장을 임명했으며 사옥 신축을 결심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첫 방북 후 1년4개월 만에 코스트 평양사무소 사옥을 완공했다. 북한 당국자들은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옥을 신속하게 완공한 것은 물론, 사옥 옆에 병원과 편의점을 지어서 기증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 공장을 지어 제조업에도 진출했다. 남한 기업의 옷을 임가공하는 회사를 만들어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을 남한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대우그룹이 독점하고 있던 북한산 아연괴(塊) 독점수출권을 따냈다. 거기까지는 천 회장에게 ‘북한 정서’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계속)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