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90세 할머니 물구나무서기 척, 알고 봤더니 공훈 로전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8월14일 08시12분    조회:218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금선

장춘정월담공원 물구나무서기 다리찢기 척척 하는 90세 로익장 알고 봤더니 국내해방전쟁 항미원조 참가한 공훈 할머니

 

90세에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 윤금선할머니.

 

장춘정월담국가삼림공원은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이 적격한 장소다. 이른 오전 삼림공원 서쪽 숲속에 뺀 나무잔도를 따라 걷노라면 두 손을 꼭 잡고 오른발 왼발 한발이라도 차이 날세라 보조를 딱 맞춰서 걷고 있는 고령의 로부부 모습이 보기 좋게 눈에 안겨온다. 이렇게 로부부는 한참을 다정히 걷다가 멈춰서 나무잔도에서 내려 허리 굽히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등을 나무에 대고 가볍게 쳐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이제는 몸이 풀렸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물구나무서기도 척척 하고 다리찢기도 하는데 례사롭지 않은 그의 움직임에 모두들 입이 떡 벌어진다. 정월담국가삼림공원 서쪽동네에서는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를 감탄케 하는 이 할머니가 바로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모두 참가하여 포연탄우 속을 헤치면서 싸워 온 올해 90세에 나는 ‘공훈 할머니’ㅡ윤금선 로전사다.

격정세월, 국내해방전쟁에서 항미원조까지

"일본이 투항하고 16살을 먹던 1946년 우리 고장에 동북민주련군이 들어왔어요. 저는 오빠를 따라 입대하겠다고 함께 지원해 나섰어요. 그런데 나이가 어린데다 한집에 둘씩이나 동시에 군대에 가려고 하니 모집일군은 동의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해는 못가고 이듬해 또 응해 끝내는 가고 말았지요. 이렇게 집에는 부모님만 남고 우리 두 형제는 모두 군대에 나가 싸웠어요.”

1947년 2월 윤금선은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고 단기강습을 거쳐 간호병으로 되였다. 그는 사평전역과 장춘해방전투에 참가하고 부대를 따라 료심전역 그리고 평진전역을 겪었으며 계속 남하하여 장강을 건너 도강작전 후 3대 전역으로 불리는 중남전역에 참가하였다가 모주석이 북경에서 새중국 창립을 선언하는 희소식을 접했다. 윤금선은 소속한 대부대를 따라 계속 서남으로 진군하여 광서를 해방하는 전투까지 치렀다. 포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점차 성장한 윤금선은 1948년 11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간호병으로부터 간호 반장, 패장으로 승진하였다.

 

 

 

 

“중국해방전쟁에서 희생자와 부상병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요. 부상병들에게 수혈할 피가 없어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들의 피를 뽑아 그들에게 수혈하기도 하였지요.”

윤금선할머니는 료심전역중 금주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키가 155센치메터밖에 안되는 그녀가 쓰러진 우리 부상병을 간신히 업고 포화 속을 뚫고 달려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등에 업힌 전사의 인기척이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며 안전한 지대로 피해서 업었던 전사를 내려놓고 보니 이미 희생되고 윤금선의 등은 전사의 선혈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내가 왜 구하지 못했지!" 너무도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군의는 “금선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래도 네가 목숨을 내걸고 우리 전사를 끝까지 업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그 것만으로도 너는 대단한거야!”라고 하면서 위안해주었다.

격정세월의 국내해방전쟁에서 윤금선은 자신의 생사와 안위를 전혀 돌보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했으며 그가 거느린 30여명의 간호병들은 대오에서 한명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선후로 4차례에 거쳐 공를 세웠다.

“새중국이 성립되였지만 또 다른 전쟁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1950년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윤금선과 이미 포병련장까지 된 그녀의 오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이 가렬처절한 전쟁에 참가하게 되였다.

 

일전‘8.1’절을 맞으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에서는 윤금선할머니를 찾아 위문하고 감사패를 드렸다.

 

“군대에 입대한 후로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오빠를 만났어요. 제가 국내해방전쟁에서 탄 메달을 조선전쟁터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오빠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금선아, 너 대단하구나, 이 오빠보다 메달을 더 많이 탔구나, 참 잘했어!’라고 말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후 얼마 안돼 오빠는 희생되였어요. 이 몸은 다행스럽게 살아서 귀국했지만 오빠는 한장의 렬사증이 돼서 돌아왔지요.”

윤금선할머니는 전쟁의 그 아픈 추억들을 저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윤금선은 조선전쟁에서 하늘땅을 진감하는 포성에 고막까지 다쳤지만 마지막까지 부대를 따라 움직이다가 1953년에 귀국하여 선후로 길림성료양원과 장춘시 관성구 철남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에 리직하였다.

“나이야 저리 비켜라”,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유지하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 나니 윤금선할머니의 건강상태는 몹시 나빠졌는데 하는 일은 비록 의사였음에도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관절염, 목디스크에 흉막염, 간에도 이상이 생겨 몸은 그야말로 ‘종합병원' 신세가 되였다. 그는 아픔을 견지하면서 가까스로 일터를 지켰다. 그후 약물치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양생운동을 시작하였는데 놀랍게도 기적 같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윤금선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자신이 터득해 온 양생방법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견지해왔는데 지금 비록 90세의 고령이지만 10대 체조선수마냥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가 하면 다리찟기도 거뜬히 해내며 무게가 한참 나가는 훌라후프(呼啦圈)도 단숨에 저그만치 500개 씩이나 돌린다. 뿐만 아니라 아령을 두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운동하는데 이 모든 동작이 90세 할머니가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는 윤금선할머니.

 

윤금선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아침 3시가 되면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간단히 든 후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곧바로 정월담공원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하다가 11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건강비결에 대해 윤금선할머니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좁쌀에 보총을 갖고 정신력으로 싸워서 승리했지요. 제대 후 사업에 참가해서도 정신력으로 일해왔어요. 정신력이 있었기에 소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저는 공부를 해서 간호원으로부터 중의사로 될 수 있었어요. 로년에도 역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늙어서 이 것도 안되고 저 것도 못한다고 정신력을 놓아버리면 더 빨리 로화가 오는거지요. 늙어도 할 수 있다는 정신력 즉 의지를 가져야 해요.”라고 말한다.

두 로인의 나이를 합치면 저그만치 182세, 그럼에도 이들은 그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고 오늘까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원앙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신혼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겐 요즘 또 새로운 꿈이 있다. 윤금선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정월담공원 근처의 아빠트에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계획 중이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온천이 집까지 들어온다는 새 아빠트단지를 찾아가서 직접 알아보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은가며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윤금선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로인님 지금은 백세시대입니다. 이대로라면 백세는 거뜬히 넘길 수 있어요.” 라고 하자 “그러네요. 그렇다면 신체단련에 더욱 힘을 내야지요!”하며 동안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활짝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길림신문 리철수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2
  • 청도시 리창구 백통형원사회구역 김성룡로인의 여가생활이야기 맘에 드는 수집품을 구했을 때가 가장 기쁘다는 김성룡로인 올해는 모택동 탄신 120돐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모택동 탄신 120돐에 따른 여러가지 다양한 경축기념행사들이 올 한해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12월 5일, 청도시에 살고있는 한 조선...
  • 2013-12-06
  •   -800점 만점에 756점, 평균 94.5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 -불과 6개월 준비 끝에 이뤄 낸 기적같은 인간승리   전신에 95%의 화상을 입고 30번의 전신마취수술을 거쳐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조선족 최려나 양(21세. 길림성 용정시)이 지난 4월 20일 경상북도 교육청이 실시한 대학입학학력검정고시...
  • 2013-05-21
  • 잭 마 ‘알리바바’ 회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일주일 전, 잭 마 회장(48)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야외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들고 있었다. 자산이 42억달러로 추정되는 마 회장의 재산은 알리바바가 상장되고나면 더 불어날지도 모른다. 마 회장은 1...
  • 2013-05-13
  • 하루 8시간 연습하지만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셰익스피어 문학이었다 [사람 속으로] 중국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朗朗)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한 랑랑이 2010년 발매된 ‘랑랑 라이브 인 비엔나’ 앨범 수록곡을...
  • 2013-05-11
  • 류하현 삼원포조선족진 박수만진장에 대한 이야기   류하현 삼원포조선족진 박수만진장 오늘날 류하현 삼원포조선족진을 찾는 사람들은 삼원포조선족진의 변화한 모습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깨끗하고 생기발랄한 새로운 거리모습이 한눈에 안겨오고 새로운 아빠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기업들은 고리윤을 창출하면...
  • 2012-12-03
  • 기획-길림신문이 만난 사람 -중한 수교의 공훈특사 중국주한교민총회 총회장 한성호의 이국생활 60여년을 더듬어   한성호(韩晟昊)프로필(简历) 1927년 8월 28일 중국 길림성 장백현 출생 1948년 7월 조선을 거쳐 한국에 정착 위만시기 길림사도대학 수업 한국 경희대학 한의과 수업 신동화한의원 원장 미국 캘리포니...
  • 2012-11-16
  • 재일조선족사이트《쉼터》운영자 김정남사장을 만나다 《쉼터》김정남사장 일자리때문에 찾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찾고 고향생각이 나 찾는 한마당이 있다. 힘든 타향살이에 찌들어있을 때 언제나고 들려서 쉬여가고싶은 곳ㅡ 《쉼터》, 재일조선족 김정남씨가 운영하는 우리 글 사이트이다. 재일조선족이라면 적어도 ...
  • 2012-10-30
  •  "중한수교20주년, 미래 10년을 말한다."     한.중21C교류협회 김한규 회장 인터뷰           김한규 회장 프로필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   1940년 대구광역시 출생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러시아사회과학원 정치학박사   대구한의대학교명예보건학 명예...
  • 2012-08-15
  •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단결 모범개인 김순자할머니 매스컴의 취재를 받고있는 김순자할머니 학생시절의 김순자(모자를 쓴 학생) “북해상점”서 한족딸 문영이와 장려(안경을 건 학생)를 데리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김순자할머니(흰위생복을 입은 사람) 령감과 함께 문영이의 아들 심붕곤을 안고 사진을 찍은 ...
  • 2012-06-14
  •   중한 수교 20주년 기획-《고마운 한국인들》(1) 40명 중국 선천성심장병어린이들에게 재생의 은혜 베푼 이기영사장 [편집자의 말] 래년은 중한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제 분야에서 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중국상주 한국인 60여만명, 중국에 다녀오는 한국인은 해마다 300만명을 초과하...
  • 2011-12-0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