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맨발의 청춘으로 펼쳐낸 맛과의 전쟁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28일 13시26분    조회:717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광호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 가진건 청춘의 열정과 두둑한 배짱뿐이였다. 일찍 18살부터 조리기술을 배워 음식업계에 첫발을 들여놓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시골사나이는 남다른 분투와 끈기로 25년간 맛과의 전쟁을 펼쳤다. 그가 설립한 심양신창음식유한회사는 현재 산하에 8개의 브랜드를, 전국적으로 100개를 웃도는 점포와 7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료녕성호텔음식업 10대 기업가와 10년 공훈인물, 중국호텔협회청년기업가위원회 리사를 지닌 윤광호(44세)는 지난 시간들동안 음식업의 수갈래 골목길들과 점포들을 누벼오면서 온몸으로 음식개발에 부딪쳐 이제는 자기만의 길을 펼쳐놓았다.

  학도에서 주방장까지꿈을 요리하다

  1976년 흑룡강성 수화시 수릉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8살 되던 해에 무술영화에 빠져 무작정 ‘무술의 길’을 찾아 료녕성 본계시의 한 무술학교로 떠났단다. 어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돈 4000원을 바느질한 내의호주머니에 집어넣어주며 철부지아들의 선택을 응원했다. 그러나 도착하여 료녕성 반금시에 사는 이모의 집에 들렸는데 사촌형과 친척들은 하나같이 무술학교로 가는 것을 반대하면서 조리기술을 배워두라고 조언하며 그를 ‘감금’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도 생각을 바꾸어 료녕성 구방자진에서 조리기술을 익혔으며 할빈으로 돌아가 대형샤브샤브가게인 홍명에서 500원의 월급을 받으며 학도로 열심히 배웠다. 여기저기 떠돌며 고생할게 뻔한 아들이 마음에 걸린 어머니, 집에서는 한사코 그를 고향에 돌아오라고 하여 돌아가긴 했지만 시골학교의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썩 탐탁지 않았다. 다시 생활에 대한 열정과 높은 월급을 찾아 ‘로무의 길’에 선뜻 올랐다. 북경, 홍콩, 발리를 거쳐 마침내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낯선 나라 수리남에 이르렀다. 그때 나이 23살, 현지 어민들과 선박에 올라 새우잡는 일을 하게 된 그는 하루 네시간도 못자고 손발이 팅팅 붓기면서 7개월을 견지했다. 분투하는 청년은 게으를 새가 없이 늘 길위에 있는 법이다. 꿈은 무엇인지, 자신은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지구반대편까지도 멈추지 않은 발길, 이역시 끊임없는 배움과 련마의 과정이였다.

  다시 할빈의 홍명에 돌아온 윤광호는 1년간 료리사로 여러 조리기술을 익혔으며 급한 마음에 곧바로 인생 첫 가게인 로북경훈제고기빵집을 열었다.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 100평방메터좌우의 여덥 테이블로 시작한 창업이였다. 그는 가게안에 작은 다락방을 만들어 밤이면 그곳에서 자면서 첫도전을 써내려갔다. 간고한 환경에서 지속된 6개월간의 창업, 벌지도 밑지지도 않았다. 자신의 부족점을 깨우치고 더욱 많은 배움을 얻고자 또 길을 떠났다. 홀연단신으로 무작정 북경으로 가 로무시장의 컴컴한 길거리에서 이틀을 꼬박 기다려 겨우 맞춤한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하여 가게 된 곳이 월급 1400원인 삼천리불고기집. 한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였던 그는 비록 일자리는 찾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요리를 자세히 가리쳐주지도 않았으며 매일이 치열했다. 주방장이 하는 것을 관찰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노하우를 노트에 어김없이 필기하였고 음식에 대한 집념은 그렇게 점점 커져만 갔다. 국을 만드는 비례는 어떠한지, 양념장을 어떻게 만들면 더맛있을지, 하루 두가지씩 꼭꼭 필기해두었다가 연습을 거듭하면서 결국 음식의 맛과 모양을 성공적으로 낼 수 있었다.

 

 

  그후 2003년 그는 북경수복성특급식당에 지원했다. 그때는 ‘대장금’이 한국의 식문화를 들고 중국안방을 강타한 시기였다.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음식문화에는 변화의 물결이 나타났다. 기름에 튀기고 볶은 음식을 즐기던 사람들이 궁중의 담백한 건강요리와 찜요리를 알게 된 것. 수복성은 혀끝의 한류를 자랑하는 특급 한식당으로 두산그룹이 2000만원을 투자한 기업으로 철저한 기술지도와 엄격한 기업관리로 실습기간만 2달이였다. 대부분 한국인들도 견디기 힘들어 포기한 상황에 그는 ‘마’의 훈련을 이겨냈으며 최종 부주방장으로 승급했다.

  그후 6년간 윤광호는 상해한림판점과 심양한성식당의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부지런히 꿈을 요리해나갔다. 한식과 중식의 만남, 중식과 일식의 만남을 아우르는 음식문화의 융합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맛의 도전을 시작했으며 그것은 먹을 것의 핵심이 되는 바로 맛에 대한 전쟁이고 혁명이였다.

  창업으로 일궈낸 맛의 승리붐이 되다

  2012년, 심양시 태원가 만달광장의 ‘이름없는 중경찜닭’은 그가 세운 전통음식을 개량하고 자체개발한 양념장으로 찜요리와 샤브샤브를 한가마에서 즐길 수 있는 맛집이였다. 맛의 승리와 소비자 및 직원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독보적인 이념으로 매일 만석을 이루며 6개월만에 네곳에 분점을 냈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이였다. 맨몸으로 음식업에 몸을 던진 이 이름없는 사나이는 유명한 성공가도를 내달리고 있었으며 또 한번 고기뷔페브랜드 천로연을 창업해 미식이라는 독특한 요리예술의 조류를 움직였다.

 

 

  그가 개발한 음식은 곧바로 붐이 되였다. 2015년에는 심양 심료로 만달광장에 쑈주쑈뉴(小猪小牛——章鱼水煎肉)를 창업했고 2016년에는 심양신창음식유한회사를 정식 설립하였다. 쑈주쑈뉴는 회사의 주된 공략브랜드로서 3년 사이에 흑룡강, 길림, 북경, 상해, 광동 등 전국 방방곡곡 10개넘는 성에 100개가 넘는 분점이 생겨나며 료녕성10대음식업체로 선정되고 회사는 중국의 신외식(新餐饮)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체로 성장했다. 년매출액 1.3억원을 돌파한 회사는 시종 직원주식제를 도입하여 맛의 승리와 팀원들의 발전에 동시에 심혈을 쏟는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결국 사람을 얻는 것이 진정한 창업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꿈이란 어느 한곳에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였다. 열정가득한 한발자국을 내딛으면서 진창길을 지났고 숨가쁜 한계단을 오르면서 고빗길을 넘었다. 그러면서 마침내 윤광호는 저만의 맛의 외길을 열어제꼈으며 누군가는 또 그가 만들어놓은 이 탄탄대로위에서 꿈을 그려갈 것이다. 그것이 또한 그의 꿈이기도 하겠다. 한편 갓 심양시조선족사회에 몸담근 그는 민족공동체의 비전과 화합을 위한 길에서 사명과 책임, 헌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예술인으로부터 고위간부로 승진한 현송월은 개별적 사례가 아니지만 특수상황이라고 할수 있다.      3월1일 윁남 하노이에서의 현송월   사진:시각중국       현송월 문화대사로부터 김정은의 "비서"로         천천히 걸어가던 현송월은 판문점군사분계...
  • 2019-07-22
  • '무역업의 대부' 이영현 세계한인무역협회 명예회장 "제2의 손정의 육성하는 데 여생 바칠 것" 맨손으로 매출 1억弗 기업 일군 40년 해외사업 경험과 노하우 《메이드 인 코리아》 담아 출간   “세계 각국에서 땀 흘리는 젊은 한국인들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알리바바의 마윈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더...
  • 2019-07-19
  • 오상시벼협회 회장 리수철     리수철 회장이 푸른 논밭을 바라보며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한동현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기자= 리수철 농민은 흑룡강성과학기술협회, 흑룡강성텔레비전방송국에서 주최한 ‘흑룡강성 10대 농업기술협회(농기협)선두주자’평의활동에...
  • 2019-07-18
  •   동북항일련군 로전사이며 우리의 경애하는 항일련군 녀영웅인 리민 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흑룡강신문=하얼빈) 2018년 7월21일 새벽, 동북항일련군의 가장 어린 조선족 녀전사 리민 동지가 별세했다는 비...
  • 2019-07-17
  • 전정혁 심양항일역사자료전시관장 “자전거 타고 시골마을 돌며 독립군가 채록했어요” 90년대 채록한 노래들로 책도 펴내··· ‘독립군용진가’를 차 안에서 구성지게 부르기도 전정혁 심양항일역사자료전시관장 버스가 통화(通化) 유하(柳河)현 삼원포(三源浦)를 떠나 광화(光華...
  • 2019-07-14
  •     해림시 무해농산물유한회사 김정남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채복숙 기자= 해림시 ‘무해(茂海)농산물유한회사’ 김정남(55) 사장은 1993년 농산물 가공, 수출업에 투신하면서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 업계에서20여 년을 쭉 견지왔다.   현재 무해(茂海)농산물유한회사는 년간 생산액이...
  • 2019-07-08
  • 최근 습근평 중국 국가주석이 황문수 동지의 선진사적에 대해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지시에서 습주석은 황문수 동지의 불행한 조난에 마음이 아프다면서 가족에게 진심으로 되는 위문을 전했다. 습주석은 황문수 동지가 연구생 졸업후 대도시에서의 발전기회를 포기하고 의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빈곤퇴치 제1선에서 한 몸...
  • 2019-07-05
  •       가목사시조선족기초교육중심 서홍매 교사   (흑룡강신문=하얼빈) 남석 기자= 교사직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초심을 잃지 않고 숨가쁘게 달려온지 27년, 가목사시조선족기초교육중심 서홍매(47) 교사는 조선어문교사, 담임교사, 교연조장을 두루 지내면서 지나온 발자취를 되새겨 성공의...
  • 2019-07-05
‹처음  이전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