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간단한 법률 지식이라도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만 손을 내밀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곤란한 처지에 빠지기도 하죠.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안타까운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에 한중법률지원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생활에 필요한 법률 상식을 알려주는 법률 아카데미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법무법인 정세의 한중법률지원센터를 이끄는 조은정(36) 센터장은 국내 중국동포는 물론 한국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이나 중국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한국 기업의 법률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다. 변호사 자격증은 없지만 전문 법률가 못지않은 법률 지식과 현장 경험을 지니고 있어 그를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동포(조선족)라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사례를 많이 봤어요. 저도 그런 시선을 받기 싫어서 티를 안 내려고 애썼죠. 리더십 강사로 일할 때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연변 말투가 튀어나올까 봐 젓가락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 센터장은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옌지(延吉)에서 회계사의 둘째 딸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자랐고 옌볜대를 졸업했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말에 만주로 건너가 옌볜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는 지금도 그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고, 부모님은 2009년 한국으로 와 서울 목동에서 조 센터장과 함께 살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한국에 가서 꼭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돌아가실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제가 혼자 임종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자랐죠. 그래서 대학 전공도 국문학을 택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아무런 준비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옛날 주소와 이름만으로 춘천에서 할아버지 누님(대고모)들의 후손들을 만날 수 있었죠."
조 센터장은 여느 중국동포 여성처럼 우선 식당에서 일하다가 한국크리스토퍼 리더십센터의 한용현 사무총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옌볜에 있을 때 국제적인 체인을 거느린 크리스토퍼 리더십센터를 다녔는데, 수료식에 참석한 한 총장이 그를 좋게 보고 연락해온 것이다.
교육 과정을 마친 뒤 2년 넘게 리더십 강사로 생활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2010년 법무법인에 취직하게 됐다. 법무법인 KR와 바로법률의 실장(사무장)을 거쳐 2015년 9월부터 법무법인 정세의 한중법률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국 국적은 2012년에 취득했다.
"500만 원 넘는 벌금형을 선고받아 추방될 처지에 놓인 중년 여인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체류 기한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죠. 제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으며 도와달라고 하는데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서류를 뒤져보니 한국인과 결혼한 적이 있어 합법적으로 체류할 조건이 됐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를 잘못 만나 애꿎게 돈만 날렸던 거죠. 지금은 한국 국적까지 얻어 잘살고 있습니다. 이런 보람 때문에 무료 법률 상담이 힘들어도 그만둘 수가 없답니다."
조 센터장은 국내 중국동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내국인보다 범죄율이 낮은데도 마치 중국동포들을 범죄집단처럼 여기는 시선이 쏟아질까 봐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동포들의 생활이나 체류 자격이 비교적 안정돼 불법체류자의 문제는 사라지고 생계형 범죄도 줄었다. 그 대신에 마약이나 음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전화 부대로 동원되는 사례도 여전하다고 한다.
"우리 중국동포들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한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내자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국인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희 조상들은 자의로 조국을 등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것이잖아요. 그래도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살아왔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그의 관심사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법률 지원과 상담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 간의 상호 교류나 공동 협력을 중개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장래 목표는 한중 기업 교류의 플랫폼을 만들어 모든 관련 서비스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5년 8월 KBI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차려 대표를 맡았다가 1년 뒤 증자와 함께 법인명을 굿컬쳐로 변경하면서 이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샤오미·바이두·텐센트 등 중국 IT(정보기술) 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제4회 서울 앱 페스티벌을 개최했고,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들을 이끌고 중국 기업 시찰과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주선하기도 했다.
조 센터장은 클럽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베이징마네초지국제예술센터의 한국사무소 대표, 한중의료미용교류협회 사무총장, 웨이하이(威海)라베트전자상무유한회사 한국 대표, 중강(中康)연합다이어트의학연구원 부원장 겸 한국 원장 등 다른 직함도 수두룩하게 갖고 있다.
"IT나 문화 콘텐츠 말고도 건강·미용 분야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인들도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어느 정도 부는 이뤘으나 정작 건강을 돌보지 못해 모든 것을 잃은 사례가 많답니다. 이제는 건강과 미용 등에 신경을 쓸 때가 됐죠. 건강과 미용 분야에서는 한동안 한국 열풍이 식지 않을 겁니다."
조 센터장은 올 2월 베이징에서 중국 관계자들과 함께 다이어트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의 전문 강사 2명을 데리고 가서 포럼도 마련한다. 앞으로 중국에서 정기적인 의료 아카데미도 개설할 계획이다.
한국(Korea)과 중국(China)의 상생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결성한 국내 중국동포들의 싱크탱크 모임 KC동반성장기획단의 부단장도 맡고 있다. 2년의 부단장 임기를 마친 뒤 지난해 10월 연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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