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우리 전통무용의 미래는 밝습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2월16일 10시21분    조회:84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선화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의 찜통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던 대형무극 “아리랑꽃”은 그 인기만큼이나 출연배우들에게도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무대우에서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아릿다운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무용수 김선화(34살)씨이다. 전률이 흐르는 그녀의 춤자태는 우리 민족의 무용이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이 아름답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춤사위는 가락을 타고 물 흐르듯 흐르다가도 끊어질듯 이어질듯, 완급이 조절된 몸놀림이 애간장을 녹인다.
 

“어쩜 ‘아리랑꽃’은 제가 현역 무용수로 무대에 설수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

7일, 10월에 있은 제8회 진달래문예상 예술류 새별상을 수상한 김선화씨를 만나 자리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생글생글 웃고는 있지만 그녀의 얼굴에 깔린, 수명이 짧은 무용수가 가지고있는 아쉬움과 고뇌를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 있었다.
 

사실 김선화씨가 지금처럼 무용수로 립지를 굳히게 되기까지는 그렇다 할 특별한 사연도 없다. 누군가처럼 어려서부터 남달리 춤추기를 즐겼던 끼있는 소녀도 아니였다. 그저 사춘기 중학생시절 우연하게 무용수모집으로 학교를 찾았던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선생의 추천이 그녀를 “춤쟁이”로 묶어두는 “끈”이 됐다.

모든게 순탄했던것만은 아니였다.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속에 우리 민족무용이 점차 외면받고있음은 피할수 없는 현실이 되였다. 다들 점점 밀려나기만 하는 전통무용의 처지에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이젠 다른 진로를 생각해보라는 주변의 말림이 없었던것도 아니였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무용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만은 꺽지 못했다. 이 빠른 변화에서 잠시 비켜선 김선화씨는 묵묵히 그녀만의 춤행진을 이어갔다. 춤 때문에 기뻤고 춤으로 생각하고 집중하는 그녀의 춤연습은 텅빈 무대를 사용할수 있는 늦은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시작한 무용이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고 춤을 출때 비로소 열정이 생긴다는 그녀는 뒤늦게 찾은 자신의 재능으로 내실을 다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4년 제6회 전국무용콩클 군무표현 3등상, 2006년 제8회 “제자컵” 무용콩클 표현 1등상, 2014년 제1회 전국소수민족우수무용작품콩클 은상, 2016년 제4회 전국고등학교렴정문화콩클 금상, 2016년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 금상 등 크고작은 대회에서 묵직한 영예를 받아안으면서 그녀의 끈기는 결국 빛을 발했다.
 

“우스개소리로 들리겠지만 저는 우리 민족 전통춤을 출때 ‘그분이 오신다’는 표현을 써요. 춤속에 빠져들면 무릉도원에 있는것처럼 오로지 춤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요.”

춤을 사랑하는 그녀가 하는 말에는 망설임이란 없다.
 

지난 2008년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과 석사과정을 끝마치고 여기저기서 온 러브콜을 마다하고 김선화씨는 “하고 싶은 일이 뭘가, 무엇이 되고 싶나”는 고민끝에 민족무용 강사로 학교에 남았다.

현역 무용수로서 무대우에서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무대 밖에서도 우리 전통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관객에서 감동을 주고싶다는게 그녀의 결코 소박하지않은 바람이였다.
 

“나의 선생님으로부터 이어오는 우리의 전통춤을 뿌리삼아 오늘 나의 춤이 있게 됐고 또 고맙게도 곁으로 모여들어 함께 하는 동행이 있고 제자들이 있기에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우리 춤이 피여날수 있다는걸 깨닫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녀는 대중이 잘 몰랐고 외면했던 우리 전통춤에 대해 그들이 먼저 가까이 다가가 리해해줄 때 가장 가슴 뿌듯함을 피부로 느낀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춤군”으로 사는 김선화씨에서 “춤군”이 갖춰야 할 덕목을 물었다.
 

그녀는 “첫째도 둘째도 련습이 아닐가요. 춤은 많이 하면 할수록 몸이 먼저 기억합니다. 춤은 내 자신을 찾아가는 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전통무용의 미래는 밝습니다. 앞으로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열정의 다하는 우리 전통무용의 황홀한 장관에 다들 넋을 잃고 보게 될겁니다.”라고 덧붙인다.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60년대 중반부터 왕청현 왕청진 왕청대대에서 창작과 예술지도에 종사하며 농촌문예사업에서 한몫을 톡톡히 감당하던 작곡가 전승길선생이 지난 2월 1일 66세(음력 1월 7일) 생신날에 음악생애 50돐 기념 및 첫 음악작품선(CD)발행식을 펼치였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음악계인사들은 전승길선생이 50년 음악생애에서 거둔...
  • 2009-02-16
  • 화룡시예술단 업무부단장《연변의 조본산》최중철《평생 연기하는것이 제일 행복합니다》표정만으로도 사람들의 폭소를 이끌어내여 《연변의 조본산》으로 친근하게 불리우는 최중철, 소품에 빠져 굽이굽이 걸어온 힘든 인생고개, 고개마다 정절이 많고많았지만 오로지 《힘이 닿을 때까지 무대에서 대중한테 웃음을 선사하...
  • 2009-02-15
  • “동포들 위한 농업기술 교육 실시하겠다” 뜻 밝혀"중국정부 농촌부양책 발표 중국동포들에겐 好氣”   한국 농업발전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전국농업기술자협회(회장 윤천영)가 조선족농촌 살리기에 관심을 갖고 활동에 들어갈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 21일 협회 회장으로...
  • 2009-02-12
  • 《청춘원무곡》,《두만강천리》,《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타향의 달밤》 등 대중애창가요를 많이 창작한 작곡가 최연숙선생이 최근에 《중국개혁개방문예종신성과상》과 《2008년 중화예술종신성과상》 및 《공화국 걸출한 예술가상》을 따내는 영예를 안아왔다. 녀자의 이름으로 태여난 작곡가 알고보면 최연숙(崔 ...
  • 2009-02-12
  • 이비인후수술은 고도의 정밀성 요구 "이비인후는  구조가 미세한 기관이고 또한 머리신경과 련계돼있기에 수술시 자칫 소홀했다가는 실명되거나 기타 대형사고로 이어질수 있기에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비인후과 의료일군들은 끊임없이 학습해 자신의 의료기술수준을 제고시켜야야 합...
  • 2009-02-11
  • 앞으로 세계를 더 놀래우련다-녀자이종격투기 세계우승자 심영희사범“녀자표도르”세계우승은 누구나 해낼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꼭 해낼수 있다는 신심을 갖고 죽어도 영광이라는 정신으로 노력에 노력을 가하면서 앞으로 내달리는 강자만이 세계우승에 등극할수 있다.이처럼 어려운 일을 심영희(1964년생)...
  • 2009-02-11
  • ㅡ화룡시예술단 홍미옥배우의 이야기 보름달같은 얼굴에 호함진 함박웃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폭소탄을 안겨주는 뛰여난 연기, 바로 화룡시예술단 미녀배우 홍미옥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제나 대중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는 배우이지만 그녀에게도 그 웃음뒤에 삶과 모지름을 썼던 남모르는 슬픈 과거가 깔려있었...
  • 2009-02-10
  • 《연변을 말하고 세계를 말하다》는 내용을 주제로 매달 1회 정기적으로 기획되는《두만강정상포럼》첫회에 세계녀성격투기 챔피언인 심영희씨가 초대되여 그녀의 드라마와도 같은 인생로정과 성공의 비결 그리고 성공이후의 삶과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심영희씨는 열심히 노력하면 꼭 성공한다는 굳은 삶의...
  • 2009-02-10
  • 연변TV 소년아동방송의 개척자 김선녀 장장 35년간 방송인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연변텔레비죤방송 소년아동프로그램의 발전에 바쳐온 녀성이 있으니 그가 바로 다년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주임으로 사업해온 김선녀선생이다. 연변TV의 첫 녀성기자로 되기까지화룡현 이도구의 토봉산기슭에 자리잡은 가난한...
  • 2009-02-07
  • 기자는 일전에 연길시 애단로(愛丹路)에 위치하여 있는 연변항공승무원학교에 가서 최옥금 교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최 교장은 사십대 중반에 키가 작은 여인이지만 그녀가 걸어온 걸은 길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 홍콩배우 성룡과 함께 최옥금은 1964년 10월 30일 흑룡강 밀산시에서 출생하였다. 부...
  • 2009-0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