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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조선족 성공시대] (26) 신선영 선영식품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2월12일 08시09분    조회: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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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신선영
김밥 배달·세차·식당 서빙·사우나 청소 등 안해본 일 없어
만두공장 취직했다가 회사 인수, 7년만에 연매출 10억대로 키워
다문화 봉사단체 설립·운영 "피눈물 흘려봐서 봉사에 더욱 매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건물 2층에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 사무실이 있다.

이 단체의 신선영(여·56) 회장은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서 '원보'(圓寶)라는 브랜드의 중국식 만두와 순대를 제조·유통하는 선영식품의 오너 경영인이다.

전국에 중국 식품을 파는 마트나 중국 식당 가운데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과 경기지역의 200여 개 업체에는 냉동탑차 4대로 직접 납품하고 나머지 지역은 12개 업체가 대행을 한다. 연 매출액이 10억 원을 훌쩍 넘기면서 경기도 광주에 물류센터도 세웠다.

지난 9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곳은 성남이 아닌 수원이었다. 오전에는 성남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연합회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수원역 앞에 있는 중국동포복지센터를 찾아 고령의 중국동포(조선족)를 돌보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생활 패턴 때문이다.

신 대표는 지난해 6월 경기지역 중국동포들의 맞춤형 교육과 일자리 제공, 법률·노무·세무 등의 무료 상담지원, 기타 행정지원 서비스를 위해 연합회를 설립했다. 사비를 털어 중국동포복지센터를 연 것은 지난 9월의 일이다.


'원보' 만두 제조판매하는 선영식품 신성영 대표

그는 "이들 단체의 운영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수원생활'을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아들과 딸이 사업을 도와주긴 해도 오후에는 출근해 직접 해야 할 일이 많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했다.

본업을 오히려 뒷전으로 제쳐놓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선천성 퍼주기 바이러스' 탓으로 돌렸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그랬어요. 동포가 힘들다면 막 나서서 해결해줬고 한국 와서도 마찬가지죠. 동네 사람 사고가 났을 때도, 나쁜 일이 터졌을 때도 달려가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전화가 와요. 지금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만도 1천500개가 넘어요. 대부분 한두 번씩은 도와준 사람이에요. 오지랖이 넓은 팔자여서 그런가 보네요."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스(佳木斯)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을 졸업해 교사가 되기를 바란 부친의 뜻과 달리 고교를 마치자마자 미용 공부를 했다. 공부보다 장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졸업 이듬해인 1978년 시내에 미용실을 차렸다. 수완을 발휘해 미용실을 키워가면서 조선족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등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1992년 남편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나가면서 변화가 왔어요. 미용실을 꾸려나가는 일도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러던 차에 광저우에 있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 좋은 사업이 있다며 전화가 왔어요. 자무스시 생활을 접고 중국돈 1만위안을 챙겨 달려갔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였어요. 돈 많이 벌어오겠다고 호기 있게 말하고 고향을 떠나왔으니 돌아갈 수가 없었죠. 친구들에게 긴급히 SOS를 쳐 돈을 빌렸고, 5층 건물을 임대해 '조선족 호텔'을 차렸습니다."

호텔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지만 대책없는 '퍼주기'가 발목을 잡았다. 조선족 노숙자나 광저우에 진출했다가 망한 한국인들을 데려다 재우고 밥 먹이고, 심지어 돈까지 빌려주면서 서서히 경영에 구멍이 났다.

빌려준 돈을 떼이고, 적자가 이어지자 1999년 호텔업을 접고 자무스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빈손 귀향은 자존심을 많이 구겨놓았다. 그때 선택한 것이 남편이 있는 한국이었고, 2000년 10월 양말공장 연수생으로 서울땅을 밟았다.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를 설립해 운영하는 신선영 회장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를 설립해 운영하는 신선영 회장

 

하지만 한국 생활은 남편의 배신으로 시작됐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사이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던 것이다. 낯선 서울에서 중국에 두고 온 딸(당시 16살)과 아들(13살)의 학비를 벌어야 했지만 당장 입에 풀칠도 쉽지 않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는 한국에 온 바로 다음 날부터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김밥집에 취직해 배달일을 했다.

"식당에 걸려 있는 동네 지도를 한번 훑어보고는 머리에 스캔한 뒤 여기저기 김밥을 날랐어요. 시장에 있는 상인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그분들이 아주 친절했죠. 저도 고향 분들 대하듯 잘해줬고요. 그러다 시장 안에 가게가 났다는 정보를 듣고는 해장국집을 냈어요. 아침 일찍 해장국 끓여 그동안 잘해준 시장 상인들에게 공짜로 제공했지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것도 잠시, 사람을 잘 믿는 그는 해장국집을 하며 번 돈을 사기로 몽땅 날렸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기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택시회사에 나가 세차 일을,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식당 서빙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온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가 왔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우나 청소부로 직업를 바꾸는 것이 전부였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비자 만기가 지난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국적이 필요한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주변에 부탁했고, 다행히 성남에 사는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2004년 삼양동에서 성남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만두 공장에 취직했다. 가맹점도 많이 낸 잘 나가는 회사였지만 그가 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동업자 간 분쟁이 일면서 부도가 났다. 그는 2009년 자금을 긁어모아 회사를 인수했고, 상호도 자신의 이름을 따 '선영식품'으로 바꿨다. 그러고는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회사를 키워 나갔다.

이 회사는 현재 샐러리만두, 부추만두, 배추만두, 배추절임만두, 삼선만두, 훈둔 등 6종류의 만두와 찹쌀 순대를 만들어 '원보'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배짱과 담력 그리고 신용을 무기로 그는 7년 만에 선영식품을 재정이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사가 자리를 잡게 되자 동북재정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광저우의 삼성전자에서 회계일을 하던 딸과 하이난대를 졸업한 아들을 한국으로 불렀다. 현재 생산라인은 딸이, 유통은 아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그는 성남에 재한동포활동실을 세워 조선족들의 자립과 생활을 지원했다. 지금은 이 활동실이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 성남지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연합회는 경기지역에 11개 지회를 두고 있다.

재한동포상인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평택시에 '원보주점'도 운영하고 있다.

"진짜 맨주먹으로 성공했어요. 피눈물 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더 봉사에 매달리고 있어요. 저도 제가 어디까지 봉사를 할지 모릅니다. 저는 전생에 인어공주였대요. 그러니까 퍼줄 팔자지요. 앞으로 우리 동포들을 위해 이렇게 살 겁니다. 그리고 동포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중국동포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싶다"는 신선영 회장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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