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로풍무꼬치점 김춘화사장의 창업스토리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은 대륙의 중화료리에 비해 다양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는 못해도 독특한 맛, 더우기 근년에는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며 갈수록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있다. 중국이란 드넓은 대륙땅에 분포된 조선족음식업체수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심양지역의 조선족음식업체수가 천여집 된다하니 그 방대한 수자를 가히 상상해볼수 있다. 이들은 음식업을 통해 주류사회에 우리의 음식문화를 전파하고 아울러 부를 축적해나가고있다. 심양로풍무꼬치점의 김춘화사장 역시 그중의 한사람이다.
흑룡강성 오상시 두가진 광명촌에서 농사짓던 김춘화(50), 정도진(52)부부는 지난 1990년 어렵게 한국행을, 남편은 노가다판에서, 안해는 식당일하며 악착스레 돈을 벌어 1993년에 귀향하였다.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오상시에서 랭면점을 차려 3년간 경영, 1997년에는 대도시에 진출해 식당업을 보다 크게 경영해볼 일념으로 낯선 심양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심양에 오기전 먼저 연길에 가 조선족음식점들을 고찰, 당시 연길에서는 꼬치점들이 한창 붐을 이루고있었다. 그때 심양에는 꼬치점이 별로 없었기에 랭면점보다 꼬치점이 더 인기있을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 부부는 꼬치점을 꾸렸다. 서탑 연변가에서 30여평의 집을 임대해 하객 한사람없이 조촐하게 오픈하였지만 손님들이 찾아들지 않아 일매출이 평균 300원도 되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남편이 음식점을 당장 때려치우고 한국행을 주장하자 “만사는 시작이 어렵잖아요. 열심히 해나가노라면 잘될 날이 있겠지요. 여보, 잘해봐요”라고 하며 김춘화씨는 남편을 달래였다.
그리고 식당경영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소고기, 양고기 등 꼬치원료들은 항상 신선하고 품질 좋은것들만 구입하고 20여종에 달하는 기타 꼬치종류들을 개발해 손님들의 선택범위를 넓혀주었다. 또 밑반찬개발에도 공력을 들여 식당의 특색을 살렸는데 그들의 무우김치는 인기만점이였다. 심양시에서 가장 먼저 옥수수면을 도입, 역시 식당의 간판음식으로 되였다. 상냥하고 붙임성좋은 김춘화씨가 항상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상마다 서비스음식을 올려주자 단골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1년에 연변가에서 100평짜리 건물을 임대해 자리를 옮겼으며 이어 역시 연변가에서 300평짜리 건물을 임대해 2호점을 오픈하였다.
지난해부터 서탑대개조가 시작되면서 그들 부부는 부득불 황금알을 낳아주던 둥지를 떠나야 했다. 새로운 경영장소를 물색하던 김춘화씨는 최종 철서구 북3동로에 180여평에 달하는 건물을 임대해 지난해말부터 영업을 시작하였다. 아직은 손님이 별로 많지 못하였지만 식당경영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축적한 김춘화씨는 연변가에서 하던 방식대로 운영해나간다면 단골손님들이 늘어나는건 시간문제라고 믿고있다.
로풍무꼬치점에는 도합 10명의 복무원이 있는데 안휘, 길림성과 성내 여러 지역에서 온 한족들이다. 이 식당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평아줌마는 이미 10년이 넘었고 대부분이 8년 이상이란다. 주인과 일군들이 한가족이여서인지 김춘화씨는 전적으로 계산도 그들에게 맡기고 복무원들도 제일처럼 일을 해준다고 한다.
“민족이 달라도 공통한것은 정(情)이고 믿음이란것이지요. 제가 복무원들을 자매처럼 대해주니 그들도 자연히 저를 믿고 따르기마련이지요.”김춘화씨는 복무원들에게 평소에도 잘해주거니와 매개 복무원들의 생일날을 적어놓고 생일단설기를 사주는 전통을 이어오고있으며 복무원이 결혼하거나 가정에 대사가 있을 때는 꼭 부조돈을 쥐여주군 하였다. 이런 그를 동년배들은 언니라고, 처녀애들은 이모라고 부른다. 그리고 처녀애들은 결혼하고도 다시 찾아온다. 아마 이것이 김춘화사장의 성공비결이고 매력인것 같다.
료녕신문/최수향, 리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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