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남태생인 그에게 심양은 물설고 낯선 곳이였지만 손에 대학본과 졸업장을 쥐고있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직장을 찾을수 있었다. 먼저 찾은것이 코카콜라회사였고 후에 찾은것이 선달과학기술유한회사였다. 그러나 그때 상해(商海)물결이 전국을 휩쓸고있는 시대여서 거기서도 오래 못하고 결국 하해를 결심하게 된다. 1995년 그는 친구와 함께 심양의 실리콘벨리라 불리는 삼호가에서 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를 차렸다. 메모리칩 등 닥치는대로 전자제품을 팔아보았지만 그것도 3년 될가말가 해서 접고말았다.
부부가게에만 안주할수 없었다는 박성갑씨는 2000년부터 미국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친구의 초청으로 미국에 간 그는 미국기업과 상담하고 2002년부터 중국의 마그네샤크링카(镁砂)를 미국에 수출하며 수출무역을 시작하였다. 2007년에는 건축자재의 수출무역을 전담하는 료녕풍성(丰城)공업기술유한회사를 꾸리고 중국의 건축재를 미국에 수출 했다. 그러나 별로 재미가 없자 2011년부터 정식 미국덕신회사와 계약하고 이 회사에서 공급하는 액체고화제(地坪, 바닥도료)의 중국총판자격을 따냈다. 점차 미국회사와 거래하면서 좋은 미국상품을 선정해 국내시장에다 팔면 괜찮다고 판단한것이였다. 중국총판계약으로 5만딸라의 상품을 들여와서 반년시간에 다 팔았는데 국내서 시장반영이 괜찮자 그는 이 제품의 수입에서 시공까지 할수 있는 팀을 꾸렸다. 국내부동산의 불경기전만해도 년간 40~50만딸라를 팔았다.
그는 이 미국제품의 슈퍼하드(SUPER HARD) 영문명을 제품이 내구적이고 수명이 긴 특성을 살려 “백고”(百固)라는 중문명의 상품명을 등록하고 국내시장을 개척하며 경제기반을 다져나갔다. 가격이 국내 동류제품보다 비쌌지만 침투형액체고화제로 수명이 25년 보장할수 있는 제품이라 국내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다. 수입에서 시공일까지 맡고 공사를 따다보니 그의 실적도 늘어갔다.
박성갑씨는 미국에서 제품만 수입한것이 아니라 선진적인 시공시설과 관리기술을 도입했고 전문적인 관리인원과 숙련된 시공인원을 초빙하여 회사를 제품의 판매와 시공을 일체화한 전문적인 공정회사로 성장시켰다. 회사가 이 몇년간 따낸 굴직한 실적을 보자. 2012년 부터 현재까지 북경현대자동차제3공장, 인민일보사 인쇄공장, 할빈회의전시센터, 심양계획빌딩(현재의 심양시정부빌딩), 길리자동차회사, 상주월마트, 심양유색야금기계공장, 남차시대전동자동차주식유한회사, 상해자동차그룹의징승용차유한회사 공장개조, 화신금배상용차총조립차간, 북경국세금전지하주차장, 장춘신풍차용에어콘유한회사 생산차간, 중국공업박물관주물관 등 공사에서 모두 그의 백고 고화제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러한 공사를 따내는데 치렬한 경쟁이 붙기도 하지만 결정적인것은 인맥보다도 탁월한 경쟁력있는 제품과 신용이라고 못박았다.
“추세를 알고 아이템을 선정해야 하지만 대학을 나와 무작정 홀로서기에 급급해서 시행착오를 무수하게 겪었다”는 박성갑씨는 “영원한 성공과 영원한 실패는 없다. 포기하지 않고 견지해나가노라면 기회가 온다”며 성공담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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