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정룡철 (43)
칭다오청산도모강재유한회사 사장
칭다오조선족기업가협회 부회장
헤이륭장성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출신
1994년 7월 요닝성푸쑨석탄공업학교 기계설계 전공 졸업
1994년 8월~1995년 옌타이한국미싱기업 근무, 기술 과장
1996년~1997년 텐징한국기업기술과장 근무
1998~1999년 탕원현 탕왕향 농업은행 근무
2000년~2011년 칭다오서 칼날 대리점 경영
2012년 한국 칼날생산회사 인수
(흑룡강신문=하얼빈)이수봉 박영만기자 = 칭다오청산도모강재유한회사 정룡철 사장은 10년간 대리점을 경영하면서 다른 회사의 칼날을 판매하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었지만 '한우물만 판다' 는 의리를 지켜 모 한국회사의 칼날만 전문적으로 판매했다.
정사장은 "양다리 걸치다 떨어지면 죽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기업 사장에게 믿음을 주었다. 결국 '악은 악으로 끝나고 선은 선으로 끝난다'는 말처럼 정사장한테 하늘에서 복이 떨어졌다. 2012년 10년 넘게 '한우물만 판다'며 의리를 지켰던 모 한국기업이 칭다오서 철수하면서 정사장한테 헐값에 기업을 넘겨주었다.
또한 그 한국기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기술지원을 받기로 약속했다. 칼날의 노하우는 열온도에 있는데 아직 기술난으로 국내에는 칼날 생산기업이 몇곳 없다고 한다. 정사장은 기술노하우가 있기때문에 미래를 보장받는 복까지 누리고 있다.
정사장은 칼날을 생산하는 사장이지만 성격은 칼날이 아니라 칼등처럼 '둥글둥글' 한 편이었다.
정사장은 '멋진 인생' 노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로서 한번 태여나서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인생도 즐기고 싶다고 실토했다. 그래서 정사장은 옌타이, 텐징 등 한국기업에서 기술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남들보다 생활이 보장됐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은행에 근무했었다. 안전한생활이 보장되는 직업이었지만 정사장은 그것도 때려치우고 2000년 칭다오를 진출했다.
그때 고향친구의 소개로 칼날 판매에 뛰여들게 되었다. 장장 10년동안 열심히 뛰여다니며 모 한국기업의 칼날만 판매했다. 칼날은 한국기업들에서 가방, 신발, 완구, 차안장 등 원단을 절단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정사장의 말에 따르면 핵심인 열처리 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내 칼날생산기업은 절강성에 4곳, 광동성에 2곳,복건에 1곳 , 그리고 금방 오픈한 상하이 한곳 등 총 9개 기업이 전부이다. 칭다오에는 정사장 회사 한곳이다. 중국 전체 칼날시장 규모는 연간 1000만미터, 복건 한곳이 600만미터 시장을 점유하고, 나머지는 각자가 점유하고 있다.
정사장 회사는 전부 A급 칼날을 한달에 6~7만미터씩 판매, 한달에 5만미터씩 더 판매하는것이 목표라고 한다. 칼날은 품질에 따라 A, B, C급으로 나누는데 한개 등급에 가격이 1미터당 0.5위안 차이가 난다고 한다.
칼날은 수출만 가능하고, 수입은 가격이 높아 불가능하며, 가방, 신발, 완구, 차안장 등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하는데 전부 1회용이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안정적이다. 그리고 칼날은 운송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성이 강하다. 현재 칼날을 칭다오, 지난 등 공장에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우세가 있어 정사장 회사에서 생산한 칼날을 많이 가져다 쓰고 있다.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는다
'의복은 추위를 막으면 족하고, 음식은 공복을 채우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성인에게는 걱정이 있을수 없다.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는다. 정사장은 바로 이런 족함의 도리를 알고, 행동에 옮겼기때문에 하늘에서 복이 떨어졌다고 할수 있다.
정사장이 대리점을 경영하며 거래했던 한국기업은 30년간 한국 칼날시장을 거의 독점하다 싶이하는 기업이였다. 정사장은 이 한국기업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꾸준하게 이 기업의 제품만 판매했다.
"다른 기업에서 찾아와 우대조건을 내걸고 자기 기업의 제품을 팔아달라고 로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타회사의 제품을 판매하면 당분간은 돈을 더 벌수 있지요. 그런데 양다리를 걸치다가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하나만을 고집했지요. 남들이 보면 고집불통이라고 할수 있지요. 잘못이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 있다는 말처럼 오늘 거래회사를 바꾸면 또 내일 다른 회사를 바꿀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고 말지요"
정사장은 남들이 이해못할 정도로 고집을 부리며 10년동안 한 우물만 팠다. 그 덕분에 물주기를 찾게 되었다
2000년 칼날 시장을 개발하면서 정사장은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문전박대도 수없이 많이 당했고 무참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대문밖에서 들어도 못가고, 몇시간씩 기다렸다가 겨우 사장을 만날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한번, 두번 , 몇번씩 찾아가는 일도 밥먹듯 했다.
아마 동북지역에서 살다 칭다오로 간 사람이라면 동감이 갈것이다.7-8월 칭다오의 날씨는 찌물쿤다. 그래서 홀몸으로 몇분간 걷다보면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칭다오의 기업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때문에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경우 1-2시간씩 걸린다. 초창기 때라 차도 없어 뻐스를 타고 다닐때도 있었지만 때론 뻐스가 없어 몇시간씩 걸어다녔다. 옷이 땀에 폭 젖었다. 그때는 신이 달아서 한달에 2컬레씩 바꾸었다고 한다.
정사장은 "어려울 때는 다 때려치우고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고 회억했다. 그때 가정이 많은 힘이 됐다고 한다. 아내가 여름철에 땀을 흘리며 같이 걸어다니며 판매했다. 장사장은 "아들과 딸 자녀 둘을 둔 가장으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고생을 모르게 했다"고 말했다.
"칼날 한놀(卷)의 무게가 70킬로 됩니다. 이런것을 아내와 둘이서 들어서 빌려온 차에 실었어요. 어떤 때는 옌타이 회사에서 주문이 들어와 칼날을 뻐스에 실어 보냈는데 위험하다고 말려도 기사가 운송비를 더 받으려고 칼날을 들다 손을 상해 병원에 데리고 가 서 깁어주고 처리해준 적도 있고 , 배상해준 적도 적지 않습니다"
정사장은 어느 한번은 칼날 60놀을 주문받았는데 그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정사장은 "그날 일은 그날 마무리하라. 일을 미루면 자신의 인생에 마이너스가 생긴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일을 절대 뒤로 미루지 않았다.
'졸졸 흐르는 냇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처럼 정사장의 매출량도 점차 늘어났고 입소문을 타고 고객도 점차 늘어났다. 끝내 서광을 보게 되었다.
천리를 달리는 말의 기능은 먼 길을 간 연후에 알려진다
좋은 칼날을 생산하려면 열처리 온도를 900도 보장해야 되는데 바로 열처리기술이 가장 핵심이라고 한다. 열처리기술 노하우가 없으면 칼날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사장은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모 한국회사로부터 열처리 등 기술을 지속적으로 지원받기로 약속했다. 열처리 노하우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쉽게 치고 들어올수 없다는 장점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사장은 미래를 보장받은것이나 다름없다. 중국 전체에 칼날 생산공장이 단 9개라는 것이 이 점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특히 북방지역에 칼날생산공장이 없다는 점이 정사장한테는 좋은 기회로 된다.
정사장은 설비투자를 늘이고 공장 규모도 확대하며 특수칼날을 개발해 시장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고급가방, 고급신발을 만들려면 반드시 A급 칼날을 사용해야 한다. A급 칼날만 고집하는 정사장을 놓고 말하면 기회이기도 하다. 정사장은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참말로 '천리를 달리는 말의 기능은 먼 길을 간 연후에 알려진다'는 속담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알듯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