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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산업의 재발굴과 문화식품 시대 선도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15일 15시32분    조회:12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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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동춘


 
 
 
전통산업의 재발굴과 문화식품 시대를 선도하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리동춘 사장

“21세기는 문화식품시대이다라고 고취하는 사람이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의 리동춘 사장이다. 그는 우리민족의 전통식품인 된장과 전통술의 재발견을 통해오덕 장로주 된장술을 개발했다. 몇천년간 지속해오던 술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음주 영양음주 문화음주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것이다. 중국 중초약의 대가인 이시진은 자기의 저서본초강목에서 술은 백약지왕이라고 하였다. ,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데 있어 세상 어떤 약도 비교할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음하면 많은 질병을 유발 할뿐 아니라 무수한 사고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과학기술의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술이 가져다주는 이점과 건강상의 우려를 한번에  해결해 있는 술은 여직 개발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덕된장술의 탄생이 상기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가 된다고 주장 할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시장반응도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가 말하는 문화식품이란 어떤 개념일까? 궁금증을 가지고 리동춘 사장을 만나 그의 지난 세월과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우뚝서다
1955년 북한 평양에서 임신되여 6개월만에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에 건너와 태어난 리동춘 사장은 농사꾼 집안 7남매 중 셋째였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지식인들이 타격받는데다 워낙 틀에 얽매인 생활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아예 학교를 다니다 말다  하다 보니 정규 교육을 마치지 못했다. 
리동춘 사장은 "그러다 문득 공부를 못 다했다는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라며 "스무살 이후 틈틈이 독학을 했죠. 목까지 차오르는 열정을 쏟다보니 폐결핵과 결핵성 늑막염에 좌골신경통 등 못된 질병에 걸려 일어나 앉지도 못할 정도로 죽을 고비에 이르러 여북하면 어린 동생들더러 다리를 묶어서 붙잡아 달라하고 자체로 수십방의 쑥뜸을 뜨면서 이를 갈며 일어서는 연습을 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리동춘 사장은 스물 한 살 되던 해에 공산당에 입당해 청년돌격대장이 되었다. 당시 리동춘 사장은 논을 규격화하는 운동에 앞장서 새벽부터 오성붉은기를 들고 청년들을 줄세워 일터로 끌고 나섰다. 그러다보니 그는 어느 새 '청년지도자'로 부각되었다. 그렇게 그는 재생하고 성장했다. 회계학 까지 공부하며 학문을 넓혔다. 조선족농촌을 잘 꾸려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배움의 목마름을 느꼈던 리동춘 사장은 현재까지 자기의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조선족의 힘찬 미래를 위하여
리동춘 사장은 서른 살에 신합촌 당서기로 당선 되었다. 그리고 제9기 중국 전국인민대표의 대표로 당선되였다. 당서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모두를 아우르는 '어버이 관'을 갖지 않으면 자격 미달이다. 그렇게 그는 '조선족의 리더'가 되면서 집단기업인 촌기업을 세워 농촌경제발전을 시도하였다. 기업환경이 낙후하고 경험과 능력이 딸려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리동춘 사장은 1997년에 몇 개의 조선족촌을 통합하여 해림시에 조선족신도시인 '백두산 타운'을 건설했다. 
 
이는 중국조선족농촌해체위기를 대처하는데 좋은 처방이 되였다. 해체의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이 신도시를 모델로 조선족 신도시가 더욱 많이 늘어나야 합니다. 신도시 확산 성공의 열쇠는 바로 지도자에게 달려 있지요“라고 강조했다. “우선은 생각을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정신을 배우도록 길을 열어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리동춘 사장의 신념은 조선족농촌지도자 양성의 길로 이어졌다. “나라가 어려울 때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조선족사회가 혼란을 빚을 때 누구라도 나서서 수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생각해냈으니 아마 하느님이 나에게 준 사명일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 사업은 잠시 뒤로 미루고 가족들의 반대도 불구하고 3년간의 시간을 조선족농촌사회재활의 길을 모색하는데 투신하였습니다.” 리동춘 사장은 한국의 민화협과 농특위 전국농촌기술자협회, 양돈협회와 동포신문 등 단체들의 협조를 끌어내여 전국적으로 조선족농촌지도자 한국연수단을 6기로 조직하여 수십명의 농촌촌장들이 한국 새마을운동연수원으로부터 여러 농업현장을 견학하고 고찰을 하고 서로가 자매결연을 맺도록 길을 열어갔다. 
 
그리고 해마다 학술세미나를 조직하여 조선족농촌사회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였다. 2002년에는 길림성 장춘시에서 “21세기 중국조선족 녹색민족문화경제 기반구축과 농촌경제 발전전략”이란 주제하에 “제9회 중국조선족발전학술세미나”와 “제1회 중한 녹색경제기술 합작 교류회”를 조직하여 대회집행위원장을 맏고 전국적으로 최초로 조선족농촌지도자 150여명과 조선족지성인 50여명, 한국의 농업, 환경, 기업, 정치계 인사 50여명을 초청하여 성황리에 거행하였다. 
그번 대회에서 “21세기 중국조선족사회 재조합, 재정착의 새로운 삶의기반-집중촌 건설”과 “지성인과 경제인 촌간부와 농민이 함께 어울리는 민간리더집단 창출”,”민족 네트워크화와 인터넷 경제기반 구축”, “나눔문화의 정착과 고향땅 살리기 운동”등 현실적인 문제해결과 미래 지향적인 발전방향을 제정하였다. 
 
이후 몇년간 동북3성을 순회하면서 학술세미나형식으로 새로운 발전이념을 정착시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로서 전국각지의 조선족농촌들에서 집중촌바람이 불고 유기농업의 첫 스타트를 떼면서 사단법인 흑룡강성유기벼협회까지 탄생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렇게 그는 조선족이라는 자부심과 조선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에 한발 앞장서 나갔다. “조선족은 희망적입니다. 동북아 시대를 맞아 더욱 그렇습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자기 삶의 기반을 튼튼히 닦아 놓고 있습니다. 여기다 한국의 선진화된 기술과 경영노화우가 접목되면서 바야흐로 우수한 민족으로 부상되여가고 있습니다”라고 리동춘 사장은 말했다. 
 
동북아 시대를 맞아 중국에서 한국인들과 북한사람들과 조선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현재 조선족 3,4세대는 1세와 달리 한족들과 똑같은 원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에 조선족이 동북아 시대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건 더 이상 가상의 말이 아닙니다. 현실로 이룩해 낼 수 있습니다”고 피력했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에선 ‘조선족의 위상’ 이 격하되어있다. 이는 민족지성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표현이며 초국경적인 한민족발전 전략의 부재라고 리동춘 사장은 진단하고 있다. 
“조선족은 조선족일 뿐입니다. 한족인이나 한국인이 아닙니다”라며 “조선족은 조선족으로 존재해야만 중국과 한국에 모두 좋은 겁니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족의 중국정착사가 이미 150년이 넘고 정식 중국공민으로 인정받은 것도 환갑나이를 넘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지금보다 더한 질곡과 어둠을 뚫고 살아남은 조선족들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나라와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 조선족은 다시 번듯하게 일어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발 벗고 나서야 되겠지요”라고 강조했다. 
 
한편 리동춘 사장은 조선족 한국불법체류자 문제해결에도 기여를 했다. 2005년 한국법무부에서 새로운 불법체류자해결방안을 제시하였으나 워낙 정책변화가 심하여 조선족동포들이 믿지를 않아 시행에 어려움이 컸다.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설득시켜야하는 시점이였다. 
 
이에 리동춘 사장은 직접 이명박 서울시장을 찾아가서 조선족동포 한국불법체류문제 해결에 협조를 요청하여 서울시 장충체육관을 빌리고, 연변가무단과 연길시화극단의 배우 50여명을 초청하여 “귀향아리랑 위문공연”을 조직하고 학술세미나도 조직했다. 
리동춘 사장은 민주당 한명숙 최고위원을 찾아가서 조선족불법체문제는 초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을 대표하여 조선족동포들에게 태도를 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로서 조선족불법체류사상 처음으로 한국정부와 정당에서 공식적으로 불법체류문제해결방안을 공포하고 불법체류의 아픈 상처를 씻어 가는데 중요한 자리가 된 것이다. 
귀국하여 1년이 지나면 재입국비자를 준다는 기쁜 소식에 귀국길에 오른 조선족불체자가3개월간 무려 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설음 받고 한을 맺었던 불법체류시대를 종말하는 시작이 된 것이다.

역경과 우여곡절속에서 재생한장인합일 오덕문화
 
리동춘 사장의 사적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한국두레공동체 김진홍목사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사람을 파견하여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리동춘사장을 요청하여 연변으로 들어가서 함께 사업하자고 하였다. 
김진홍목사가 연길시정부로부터 심산계곡의 땅 120만평을 임대하여 회사를 설립하고 두레공동체운동정신의 확산범위를 넓혀가자는 것이였다. 그런데 돈을 벌수있는 마땅한 프로젝트가 없는데다 현장에 파견된 실무진의 불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이였다. 교회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만들어진 농장을 이대로 버릴수가 없었다. 김진홍목사는 이 난제를 풀수있는 방법으로 리동춘 사장을 중심으로하는 중국조선족사회에 땅을 기부해주는 방법을 택한것이였다. 
수차의 권유하에 김진홍목사로부터 모든 개발권한을 위임받고 우선 30만평의 땅을 인수받아 2005년 그 깊은 산속에다 '연변 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사업에 착수하였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한국두레공동체의 정신을 참고하고 중국의 현실적인 발전실태를 결부하여 글로벌 ‘생태마을’을 만들어가자는 계획이였다. 
 
농업과 산업의 결합, 생태와 과학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융합, 도시와 농촌이 통합되는  웰빙시대를 대비하는 탈이념적 제3형태의 생태산업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유기농법과 생태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건강한 먹거리와 자연 친화적인 주거 공간부터 시작해 생산, 생활, 문화, 오락과 교육이 일체화한 초록마을 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였다. 이는 모두 ‘조선족 농촌살리기’의 일환으로 리동춘 사장이 계획한 것이였다. 리동춘 사장이 김진홍목사와 선택한 첫번째 합작사업으로 된장생산이였다. 
 
주변 농가들과 연합하여 전통된장생산을 산업화시켜 나가데서부터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였다. 그런데 온 유월에 된서리 맞는 격으로 김진홍목사가 리동춘사장을 협조하라고 현지에 파견근무하려 온 실무일군이 리동춘사장이 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협조는커녕 오히려 김진홍목사와 리동춘사장이 제정하여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비현실적이고 실현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견결히 반대하고 저지해 나섰다. 
된장합작공장건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당대문을 닫아걸고 들어가지 못하게 저지하는가하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경찰에 신고하고 연길시와 자치주정부에 찾아다니면서 리동춘사장이 공산당원으로서 목사의 돈을 챙겨먹고 이제는 기업전체를 빼앗으려한다고 고발하므로 몇년간 리동춘사장은 파출소로부터 공안국 안전국 외사과 당 기율검사위원회 등 사법 검사하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단위마다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김진홍목사가 리동춘사장에게 기여해준 30만평의 땅도 기여하기 일찍 전에 현지 파견 근무하는 사업일꾼이 기업의 대표동사인 김진홍목사 모르게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 것이였다. 공장도 땅도 없어져 거지신세가 된 셈이다. 김진홍목사도 신도들의 거센 반발에 어쩔 수가 없었던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심지어 약속한 투자금까지 차단된 상태였다. 
 
이쯤되자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도 차가워지면서 떨어져나가기 시작하고 외지인으로서 연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앞길이 막막했다. 심지어 현지 실무자는 김진홍목사 몰래 법정소송을 걸어 자신들이 중국법을 어기고 땅을 잘못 주었으니 리동춘사장 더러 모든 것을 내놓고 나가라고 한다. 법적인 근거가 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심에서 리동춘 사장이 패소하고 2심에 상소하여 승소를 하였으나 또다시 재심, 발회, 다시 상소를 거쳤으나 그들과 밀착된 지방 세력의 관섭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앉을 수가 없었다. 타고난 고집과 끈질긴 성미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는 리동춘 사장은 “아하! 이것도 나의 운명이구나! 하느님이 또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해준다고 생각하자. 이제 가는 방법을 바꾸자. 바로 못가면 꺼꾸로라도 가자” 혈혈단신이된 리동춘 사장은 이렇게 자아 위안을 하면서 자그만한 집에서 된장을 담아 한편으로 연구개발하고 한편으로 직원을 시켜 버스타고 된장을 배달하여 생긴 자그만 한 수입금으로 연명해갔다. 
 

리동춘 사장은 된장에 미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된장은 이미 과학적으로 웰빙제품으로 인정되여 있다. 된장은 우리식단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초식품이면서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갈 수없는 신토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소실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일이 된장을 살려내는 일이라 생각하고 연구에 이어서 우수한 식품문화를 우선은 우리민족지성인들부터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태문화예술절과 전통된장페스티벌”을 해마다 개최해 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된장처럼만 살아라” 리동춘 리사장의 좌우명이라 한다. 
 
된장 먹고 위장질환을 치료했기 때문에 된장의 기능을 믿는다고 한다. 리동춘사장은 된장의 “된”자를 풀이를 하면서 “장인합일 오덕문화”를 도출해내였다. 즉,“글공부 많이 하고 아무리 높은 벼슬에 앉아 있을지라도 부모형제간에 우애가 메마른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저자식 덜’된’놈, 못’된’놈이라 한다. 꺼꾸로 공부도 못하고 몸에 장애까지 있으나 부모께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 이웃간에 우애가 좋고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저놈이 ‘된’놈이야 하고 칭찬을 한단다” 콩을 삶아 메주를 빚어 대들보에 달아 메여 적어서 3개월 동안 수백종의 미생물을 생성시켜서 다시 장독에 넣어 최하 6개월 동안의 자연발효 과정을 거쳐서야 된장이란 이름을 달게 된다고 한다. 대자연속에서 세월과 더불어 숙성되는 과정에 된장은 그 자체의 생존문화가 형성된다. 즉 다른 채소와 섞어 국을 끓여도 그들의 맛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 맛을 지켜나가는 화이부동 고수본성(和而不同,固守本性)의 단심문화, 다른  채소와 함께 끓일때 상대의 맛을 인정해주므로 오히려 더 좋은 맛을 나타내는 구동존이 관대포(求同存异,宽大包容)의 화심문화, 고추같이 매운 맛을 순화시켜 국맛을 조화시켜주는 동화열성 화합공존(同化烈性,和谐共存)의 선심문화, 물고기 비린맛과 육류의 기름기를 제거하여 담백한 맛을 지켜가는 거성제유 렴결봉공(去腥除腻,廉洁奉公)의 불심문화, 오래 갈수록 변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좋은 맛과 기능을 증식시키는 항구불변 송백절개(恒久不变,松柏气节)의 항심문화이다. 이것을 보고 우리 선인들은 장인합일 오덕문화(酱人合一五德文化)라고 하였다. 오덕이 살아 숨쉬는 된장을 먹고 살아온 우리 백의민족이 아닌가? 
 
된장의 오덕문화가 곧 백의 민족의 혼인 것이다. “장인합일 오덕문화”는 우리조선민족의 성격특징과 생존문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윤리도덕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포이어 바흐’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부터 그 사람의 성격특징 심지어 직업선택의 취향도 알아볼 수 있다고 역설한바 있다. 문화식품을 섭취하면 문화인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다. 이를 고취하기 위해 해마다 개최해온 페스티벌은 금방 9회를 마쳤다. 
 
그간 응모작품만 하여도 9,000여 편이 된다고 한다. 모든 민초 작가들의 열정을 도출해 낸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2008년에는 사단법인 연변생태문화예술협회를 설립하였다. 소수민족지역에서 사단법인을 설립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인 셈이다. 지금 회원만 해도 천 여명을 보유하고 민족전통문화의 정수를 재 발굴하여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는데 나름대로 모지름을 쓰고 있다. 다행한 것은 한국 재외동포재단의 이구홍 이사장과  한국두레공동체운동의 김진홍목사가 몇기의 지원금을 보내주어 새로운 생태문명을 선도하는데 도움이 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돌아가노라 돌아가노라 이 아들이 돌아가노라/ 고향산천 부모처자 그리워서 령을 넘어 돌아가노라/ 그 옛날 아리랑 고개런가 초록빛 푸른 얼 찾아가지고/ 우리 모두 아리랑 노래 부르며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노라" (리동춘 허동규 작사/허동규 작곡) “귀향아리랑”이다. 이 노래는 연변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의 주제가로 제3의 공동체로 가는 길이 단지 고향으로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것보다 인간본연을 찾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민족으로 돌아가자는 뜻도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된장과 술의 절묘한 만남
우리 민족은 "고기 없이는 살아도 된장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술과 함께해왔다. 그러나 술은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는 건강상의 문제로 조심해야하는 음료가 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 애주가들에겐 희소식이 들렸다. 
지난 2009년 리동춘 사장은 해마다 개최하는 생태발효식품 학술세미나에서 북한의 과학자와 지인으로 부터 된장과 술의 배합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여 건강까지 사로잡는 '오덕 장로주'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1년 동안 인민폐200여만 위안을 투자해 수십차례의 실험을 거쳐 개발해낸 작품이다.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오덕장로주'는 한번 마시면 다시 찾게 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시 찾는 이유를 물어보니 "마시는 동시에 해장도 할 수 있어 이튿날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한다. 잦은 술자리와 더불어 건강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제격인 술이다.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보통 흰술과는 달리 된장술은 이소플라본과 아모니산, 그리고 인체에 필요한 셀렌, 칼륨, 칼슘, 마그네슘, 아연, 나트륨, 동 등 미량원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그야말로 '웰빙 술'이다. 이 된장술은 비록 된장의 추출물을 주원료로 하고 있지만 술에서 된장 맛이란 찾아볼 수 없고 순하여 입에 대기 좋다. 특히 된장 술은 마시는 순간부터 위와 장에 단백질 영양가를 제공하게 되므로 위장이 윤활해 지면서 위장과 간이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에 다른 술에 비해 된장술이 숙취해소가 빠른 편이다. 우리민족의 음식 중에서 두 가지 식품이 오래 두어도 영원히 변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맛과 기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발효식품인 전통된장과 술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제품을 결합시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 가히 세계적인 제품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리동춘 사장은 판단했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 하나로 개발에 착수,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결과 오늘의 장로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로써 술의 수천 년 역사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전통의 정수를 전승하고 문화식품의 시대를 개척하려는 취지를 두고 된장술 개발에 몰두해왔습니다"고 리동춘 사장은 말했다. 리동춘 사장에 따르면 연변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산업은 된장산업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생산기지의 공동화와 식품산업의 세계화 조류의 충격으로 전통 된장산업의 발전이 느리고 심지어 소실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리동춘 사장은 연변전통된장을 '길림성무형문화재'로 등록시키고 몇 년 간 전통된장절과 연변생태문화예술제를 발족시키고 계승시켰다. 
 
리동춘 사장은 “생태과학적인 발전관에 입각하여 전통된장의 물질질적 기능과 문화적인 영성기능을 재발굴하여 인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라며“동시에 전통산업으로 농가기업을 육성하고 집산지발전전략으로 브랜드를 창출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민족생명산업기지 건설에 기여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지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리 사장은 농민들과 연합하여 복분자를 심어 복분자된장술을 개발하여 출시했다.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통발효식품을 세계인의 식단에 올려 놓아야한다는 것이 리동춘 사장의 지론이다. 지난해 리동춘 사장은 된장술 발명특허획득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나 개인의 발명이 아니므로 앞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한 분들, 그리고 무숙취 건강주를 제조하여 인류건강에 기여할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 기술을 공유하고 개발해 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된장술 대륙을 사로잡다
 
특허를 획득한 이후 2011년에 시장에 투입된 장로주는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시장점유율이 10만 상자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현재는 청도, 북경, 상해 그리고 조선, 한국 등지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에서는 지난해 1월 안휘성 합비시로부터 술 제조설비를 영입하여 확대재생산에 들어갔다. 중국인들의 입맛에 통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3일 연변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는 연변신흥공업집중구에서 '중국브랜드' 전략합작동반자결성 현판식을 진행해 '중국브랜드' 잡지사와 정식으로 전략합작협의를 맺었다. 이날 현판식에 참가한 중국술산업협회 이사장인 왕연재는 "독특한 품격의 된장술은 민족문화와 지역특색, 그리고 장향성백주의 이념을 잘 결합하면 큰 발전전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지난해 12월 7일에는 '오덕장로주'가 길림성공업정보화청에서 주최한 길림성급 신제품감정회를 순조롭게 통과하여 감정위원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CCTV 제 7 채널 '아름다운 중국 향촌 행'프로제작팀에서 연변민들레생태산업유한회사의 원료생산기지인 민들레마을에 와서 된장문화실태를 촬영하여 1월30일에 방송하였다. 중국 현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13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과학기술진보상에 입선되여 심사평을 마친상태이며, 2013두만강투자무역상담회에서 폭팔적인 인기를 한몸에 안고 수많은 오다를 따내기도 하여 한창 생산규모를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 MBC방송국에서 2009년 현지 촬영을하여 방송한데 이어 연합뉴스에서도 두차례 걸쳐 대서특필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리동춘사장은 금년제9회의 생태축제에  “중국연변 된장술 페스티벌”도 함께 기획하여 개최하였으며 명년에는 국제적인 민속전통술페스티벌도 기획중이라고 한다.
 

 
자랑찬 한국인 해외동포 대상수상
조선족을 위해 앞장서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려는 리동춘 사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바로 '자랑찬 한국인 해외동포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지난 1월22일 열린 '자랑찬 한국인 해외동포 대상'은 한국일보와 한국신문기자연합회에서 선정하는 대상으로, 이 대상의 획득은 민족전통의 정수를 전승하고 문화식품의 시대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품고 '오덕장로주'를 개발한 리동춘 사장에 대한 격려의 의미를 담았다. 
 
이날 한국신문기자연합회 관계자는 "누구도 상상 못하는 된장으로 술을 제조했다는 것은 위대한 발명이며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치하했다. 또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손동식 회장은 "리동춘 사장은 된장과 술의 접목으로 문화식품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극찬했다. 다년간 ‘영양음주, 건강음주, 문화음주'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리동춘 사장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껏 개발하지 못했던 연변의 브랜드상품인 사과배도 역시 “사과배된장술”로 연구개발에 성공하여 금년말전으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한 리동춘 사장은 민속발효식품을 발전시켜 전통과 현대, 생태와 과학, 문화와 산업, 농가와 기업, 관광과 레저를 하나로 합한 생태문화산업단지를 건설해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의 패기와 열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술에 우리의 문화를 접목시켜 예술식품의 경지에 이르게 한 리동춘 사장의 미래를, 그가 이끄는 조선족 사회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취재_최병우 국장, 신경진 기자
[출처]시사뉴스투데이- http://www.sntd.co.kr/bbs/board.php?bo_table=B10&wr_id=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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