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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줄며 설 땅 잃은 치타처럼, 적응 못 하는 기업 ‘멸종위기’
2023년 09월 07일 14시 56분  조회:303  추천:0  작성자: 최고관리자

환경 변화의 역습

삽화 1

치타는 네 발 달린 육지동물 중 가장 빠르고, 참고래는 바다의 강자다. 다들 자신들이 속한 생태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위기 그 자체다. 멸종 위기에 몰려 있거나 간신히 명맥 유지하기 바쁘다. 보호정책이 없다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멀쩡한 듯한데 왜 생존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을까?

치타는 200만 년 전쯤 사자나 표범이 쉽게 잡을 수 없는 가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출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젤은 날렵한 몸 덕분에 순식간에 시속 80㎞ 이상으로 뛸 수 있어 덩치가 있는 사자나 표범으로서는 쉽게 잡기 힘든 먹잇감이다. 그래서 사자는 몇 시간씩 조용히 다가가 기습을 하거나 협동 사냥을 하고, 표범 역시 끈질긴 매복을 통해 사냥한다. 다른 방법은 거의 없다.

치타는 어떨까? 그냥 달리면 된다. 최고 속도 구현을 위해 온몸을 ‘구조조정’했기에 최대 시속 120㎞까지 낼 수 있다. 뛰었다 하면 세 달음 만에 시속 64㎞ 이상으로 달릴 수 있고, 3초 만에 시속 90㎞를 돌파한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전투기보다 빠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한 번에 6~7m씩, 그야말로 바람처럼 뛰는 ‘바람의 파이터’다.

구조조정은 힘들었겠지만 결과는 좋았다. 육지 최고의 속도를 구현한 덕분에 녀석들은 덩치가 큰 사자들보다 훨씬 쉽게 사냥할 수 있다. 사자들은 먹이에 접근할 때, 25m 정도까지 조심조심 접근해야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녀석들은 두 배 거리인 50m 정도에서 스타트를 해도 성공률이 더 높다. 사자는 열에 한두 번 성공하는 데 반해, 녀석들은 두세 번에 한 번 꼴로 성공한다. 엄청난 성공률이다. 덕분에 밤 사냥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사자는 덩치가 크니 어둠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밤 사냥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지만, 치타는 그럴 필요가 없다. 훤한 대낮에 사냥한다. 달리기에는 자신 있다는 얘기다.

녀석들의 스피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왜 멸종 위기를 맞고 있을까? 아프리카 초원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이 초원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인구로 경작지가 필요해진 사람들이 초원을 밭으로 만들거나 목축지로 사용하다 보니 치타의 활동공간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최고 속도의 전투기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듯, 빠르게 달리는 녀석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갈수록 이런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은 역시 초원이 줄면서 가젤의 숫자가 주는 것이다. 가젤 하나에만 전문화한 상황이라 가젤이 줄면 타격은 예정된 미래다. 더구나 공간이 좁아지다 보니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자나 하이에나들과 자주 만나는 것도 골칫거리다. 애써 먹잇감을 사냥해 놓으면 녀석들이 와서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이다. 무거운 중량에서 최고 속도가 나올 수 없기에 덩치를 최대한 줄였는데 그러다 보니 사자나 하이에나들과 대적할 수 없게 됐다. 사자는 보통 150㎏이 넘고, 하이에나는 60~70㎏쯤 되지만 치타는 40㎏ 정도에 불과하다. 덩치로는 대적이 안 된다. 최대 강점을 만들어 주던 게 환경이 바뀌자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변화가 워낙 빨라 신체 진화를 시킬 시간이 없어 현재로선 뾰족한 수조차 없다.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수밖에.

삽화 2

삽화 2

치타만이 아니다. 강력한 삶의 무기였던 것들이 환경이 변하면서 거꾸로 비수로 변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넓은 바다를 누비는 참고래는 영어 이름이 ‘Common Rorqual’이다. ‘흔한 고래’라는 뜻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몸에 지방을 많이 비축하면 물 위에 쉽게 뜰 수 있었기에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었고 그렇게 살아도 별일 없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언젠가는 끝나는 법, 예전 대양을 개척하던 시절 선원들 눈에 쉽게 띄다 보니 보이는 대로 죽음을 당해, 자칫 멸종할 뻔했다.

살아있다는 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살아있음이라는 게 여기서 생겨나는 까닭이다. 장점이란 게 뭘까? 어떤 환경에 잘 적응했기에 가지게 되는 삶의 장치, 더 잘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그 환경에 기반한 장점이니 환경이 변하면 당연히 장점도 사라지게 마련, 상황이 이런데도 장점만 붙들고 있으면 스스로 불행을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가 가파르면 치타나 참고래처럼 멸종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삶에서 적응은  완료 개념이 아니다. 완료될 수도 없다. 적응은 항상 진행형이어야 한다. 위기는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 순간부터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에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게 되는 까닭이다. ‘안다’라고 하는 순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적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적응을 멈추는 것이다.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멈추니 삶도 거기서 멈춘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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