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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질의(質疑) (정인갑)
2011년 03월 13일 21시 59분  조회:5570  추천:41  작성자: 정인갑
'다문화' 질의(質疑)


정인갑



1980년대에 있은 일이다. 그린카드(綠佧)를 취득하고 미국에 사는 한 친구가 북경에 왔기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가 환경미화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기에 필자는 그에게 아파트 단지의 조경에 관한 화첩 한 권을 선물하였다. 꾀나 비싼 책인데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므로 좀 섭섭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호텔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업이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화장실 청소도 환경을 미화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말이 적절하지 않다. 어떻게 적절하지 않는가는 한 두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돈지갑에 넣으면 될 지폐 몇 장을 마대에 넣어서 메고 다닌다는 감을 준다. 사용한 개념이 너무 크다.

최근 20년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주요하게 한국에 시집온 여인)이 110만 명을 돌파하여 한국 인구의 2.2%를 차지하며 2020년에는 5%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변화된 한국 가정과 사회를 ‘다문화가정’, ‘다문화사회’라고 이름 짓고 있다. 필자는 ‘다문화’로 이름 짓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위의 ‘화장실청소 업종’을 ‘환경미화 업종’이라고 말한 것과 성격이 같은 듯하다.

‘문화’는 인류 사회의 발전과정 중에서 창조한 물질 재부와 정신 재부의 총화를 일컫는다. 이 정신 재부는 그 개념의 범위가 크건 작건 모두 ‘문화’라는 한정어를 붙여 표현할 수는 있다: 서양문화, 동방문화, 종교문화, 사회문화, 민족문화, 종친문화, 교육문화, 판소리문화, 명절문화, 음식문화, 젓가락문화, 포크문화, 의상문화, 거주문화, 혼인문화, 교제문화, 음주문화, 화장(化粧)문화, 화장실문화, 쌍소리문화….

천태만상의 문화현상 중 크고 중요할수록 ‘문화’라는 단어만으로 대체할 수 있고 작고 중요하지 않을수록 ‘문화’라는 단어만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문화+**’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쪼그리고 대변을 보다가 앉아서 대변을 보는 변기에 부딪쳤을 때 ‘새 변기에 습관 되지 않다’고 하거나 ‘새 화장실문화에 습관 되지 않다’고 하면 했지 ‘다문화에 부딪쳤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크고 중요할수록 직접 ‘문화’만으로 표현한다. 어느 만치 커야 하는가? 보통 ‘문명’과 ‘종교’정도로 커야 한다.

미국의 미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 이론>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이데올로기 대립의 냉전체제가 해체된 후 세계는 문화적 요인에 의한 결속과 대립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며 이 ‘문화’적 요인에 ‘문명’과 ‘종교’ 두 단어를 반복 사용하였다. 그 중심에 기독교 서구문명권, 이슬람교 문명권 및 아시아 유교문명권을 거론했다. 즉 ‘문화’, ‘문명’, ‘종교’ 이 3자를 거의 대등한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이런 취급은 헌팅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의 상례로 되고 있다. 작년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대한 세계 언론의 표현법을 보자. 프랑스에서 이슬람 여인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현상을 금지시킨 일, 미국의 모 목사가 9.11에 이슬람 코란경 한 권을 불태워버리겠다는 일을 모두 문화 충돌, 타문화에 대한 기시로 표현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집시 민족을 내쫓기로 결정한 일은 작은 문제이므로 ‘문화’ 충돌로 표현하지 않고 민족 기시, 인권침해로 표현했다. 개념상의 급수를 말할 때 ‘민족’ 위에 ‘이데올로기’이고, 그 위에 ‘종교’이며, 또 그 위에 ‘문명’이다. 그중 ‘종교’와 ‘문명’ 정도라야 한정어 없는 ‘문화’로 표현한다.

한국의 다종교는 이루어진지 오래된다. 몇 천 년 전에 이미 토착종교 사만교가 있었다. 2천 여 년 전에 유교가 들어왔고, 신라 중반에 불교, 고구려 말년에 도교가 들어왔다.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도 생겼다. 약 200년 전부터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와 이슬람교도 생겼다. 즉 한국의 다문화는 몇 천 년 전, 적어도 200년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

최근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이 많이 생겼으나 그들이 한국 사회의 종교나 문명에 별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만약 어느 이슬람교를 믿는 며느리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며 단식을 하거나, 또는 그 며느리가 돼지고기 음식을 해주지 않아 시집이 곤혹을 치른다거나, 어느 기독교신자 외국인 며느리가 시집의 제상을 밀어버렸다거나…이런 현상이 사회의 큰 이슈로 되면 ‘다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문화가정’이 아닌 집에서 ‘기독교신자 며느리를 얻었다가 제사를 안 지내주면 어쩐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있다.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서울본부 및 경기, 강원, 충청 등 6개 지역 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에서 발생된 사건 1,467건의 종류는 이러하다.

외국인 아내에 대한 폭력 등 부당한 대우52%,
경제 갈등 26.1%,
생활양식 및 가치관 차이 20.5%,
배우자의 부정과 악의적 유기 6.8%,
가족 갈등 4.9%,
성격차이 2.9%
알코올 중독 2.2%,
결혼 조건 속임 1.7%,
도박 1.2%,
성격갈등 0.6%,
의처증 0.5%.

상기 11가지 불화 중 종교나 문명과 관계되는 건수는 하나도 없다. 풍속 습관상의 차이, 언어 소통상의 불편, 도덕 품행상의 문제, 생활 방식상의 마찰,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며 천대, 인권침해 등이 주된 원인이다. 한국 남편들이 알코올에 중독되고, 마누라를 구박하고 속이고, 도박에 미치고…등이 한국 고유의 ‘문명’이고, 이 ‘문명’이 시집온 외국인과 맹렬한 충돌이 생겼다면 ‘다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를 한국 고유의 ‘문명’이라고 하면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사회에 대한 모독밖에 될 것 없다.

‘다문화’라고 하던 뭐라 하던 이름 자체를 따질 필요 있는가 라며 무관심의 태도를 표시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신생사물이 생겼으면 그의 본질속성에 맞는 과학적 명칭을 지어주는 것은 십분 중요하다. 그래야 그에 견주어 정확한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이롭다. "이름을 바르게 짓지 않으면 말이 바르게 서지 않고, 말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 事不成). 위에 예로 든 그 미국거주 친구가 만약 ‘미국에서 화장실 청소의 일을 한다’라고 말했더라면 필자는 싸고 좋은 중국산 세척제를 선물하며 ‘이런 것들 미국에 팔아 보아라. 잘 팔리면 우리 같이 세척제 장사나 해보자’라고 하였을 것이다.

‘다문화’가정의 문제점과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장본인, ‘다문화가정’ 성원 외에는 잘 모른다. 게다가 ‘다문화가정’에 존재하는 문제점과 별 관계가 없는 너무 큰 이름까지 지어 놓았으니 다른 사람들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해결하러 접어들지 못할 것이다. 즉 ‘조경관련 화첩을 선물하는’ 식의 실수를 면하지 못한다. 지금 한국은 ‘다문화’의 문제점을 잘 해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할 해결책도 없는 것 같다.

어떤 이름이 적절한가는 본문의 취지가 아니지만 참고로 ‘다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주 적절한 이름은 아니지만 ‘다문화’보다는 좀 낫다. 중국은 민족문제에서 종교적인 성분이 적지 않아 한국 지금의 상황보다 ‘다문화’라고 부를 근거가 더 충분하다. 그러나 민족차별에 착안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어 ‘다민족’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의 민족문제는 잘 처리되어 가고 있다. 시집온 외국인 중 중국조선족이 절반을 차지하므로 ‘다민족’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이 자체는 ‘다문화’ 모순 중 중국조선족이 중점이 아님을 시사하고, 중국조선족도 중국이주 150년이므로 동족 한국인과 성격상 차이점이 있으며 이 차이점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다민족’에 포함시켜도 큰 모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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