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동해안을 따라 기차로 평양을 방문한 일이 있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금강산 모향산에 갔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였다. 묘향산 만폭동을 오르면서“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글에서나 읽던 말구절을 새삼스레 느낄수 있었다. 전체 조선이 그대로 하나의 공원같다는 느낌이였다.
90년대초 한국을 처음 방문했었다. 만 메터 고공에서 내려다 본 한국은 푸른 산으로 뒤덮혀 있었다. 서울에 이어 대전 그리고 대구 포항 경주 다음은 청주 이어서 부산 설악산 제주 등 등이였다. 거칠게 나마 팔도 강산을 두루 돌아본셈이다. 역시 전체 한반도는 그대로 하나의 공원같다는 느낌이였다. 어디가나 푸른산 맑은물이였다. 조선사람은 왜 냉수를 마시는가를 알았다.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발견이였다.
조선사람은 옛날부터 바다를 가까이 하고 산을 가까이 하고 맑은 물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느낌이였다. 그러기에 먹는 음식에 해물이 많고 무쳐먹는 산나물이 많았던 것이다. 산이 많은 곳의 흐르는 물이요. 흐르는 물은 맑은 물일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태여 끓이지 않고도 그대로 냉수는 마셔왔겠구나 하는 느낌이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중대한 발견이였다.
90년대중반 미국 포드재단의 경비지원으로 “중국촌민자치와 농촌관리연구”팀이 묶어져 전체 중국대륙을 몇개 지역으로 나누어 조사연구한바 있다. 나는 중원지역(中原地區)을 맡아 몇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이끌고 산동 하남 하북의 농촌지역을 3년 연속 조사한바 있다. 전형적인 농업지역이였다. 드넓은 평야에 공업자원이 별로 없으므로 해서 농사에만 종사하는 마을 마을들은 대체로 “농호+촌민위원회”의 관리 모델이였다.
강남(江南)지역과 비교하기 위해 상해시의 淸浦현을 선택하였다.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대도시 주변덕에 공업자원이 많음으로해서 淸浦현의 마을들은 가공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돼 있었다. “농호+公司”형 모델이였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상당규모의 수익을 올리고있기에 촌에서는 주택, 교육, 의료 등 여러면에서 농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있었다. 그러므로 해서 농민들은 촌에 많이 의지하고있는 상황이였다. 바꾸어 말하면 집체에서 통제하고 있는 자원이 많았기에 집체는 농민에 대한 상당한 통제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중원지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였다.
이번 조사는 나에게 중국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중국의 변혁과정을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였다. 물론 짧은 시간안에 주어진 과제를 완성해야만 했기에 여흥은 별로 없었으나 중원지역과 강남지역사이의 지리적 지형차이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우량이 적은 중원지역에서는 밀농사밖에 할수 없었고 강우량이 많은 장강이남 지역에서는 벼농사가 많았다. 이런 차이는 나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2001년 나는 산동성에 1년간 파견되여 어깨에 견장하나 달고 현직간부신분으로 제남시 117개 향진중 28개향진을 돌아볼수 있었다. 한마을에 며칠씩 묵으면서 농민들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20여명으로 무어진 조사단을 이끄노라 별 여가는 없었지만 향진과 마을에서 먹고 자고 하다보니 그나마 생활의 구석구석을 볼수 있었다.
집집의 마당은 대체로 경사지고 제일 낮은 끝머리에는 벽돌과 세멘트로 잘 다듬어진 구덩이들이 있었다. 바로 비물은 받아두는 작은 수고(水庫)였다. 일상생활용수는 수도물을 쓰지만 택지주변의 채소밭에는 그 물을 쓰고 있는 것이였다. 물이 그토록 귀한 것이였다. 전체중원 지역의 지하수위가 136-137메터라 한다. 전체 중원지역은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라 산이 안 보인다. 흐르는 물이 너무나 귀한 평야에서 생활용수는 거의 지하수였다. 현재가 그러니 옛날에는 어떠했을가? 마을마다 큰 구덩이를 파고 비물은 받았다 한다. 고여있는 물이라 깨끗한 물은 아니였을것이다. 그러니 그 물을 끓여서 마실수 밖에 없었음은 밤중에 불보듯이 뻔한것이다. 끓여서 마시는 물이니 뜨거웠을 것이고 뜨거운 물이라 식혀서 마셨을것이다. 훌훌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셨을것이다.
황하중하류에 위치한 산동, 하남, 하북은 중국문화의 본산지다. 그러니 뜨거운 물을 마시는것과 중국 전통문화는 직결되여 있다고 보아도 큰 탈은 없을 것이다. 물이 너무나 귀한 중국이다. 현재 중국인구당 물자원 보유량은 세계 평균 수준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북경시는 3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물에서 산생됐다고 하는 인간에게 물자원은 얼마나 귀중한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강조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서부 어떤 지역에는 물이 하도 귀한 나머지 평생 세 번만 목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태여나 한번 결혼 때 한번 죽어서 한번 어느 민족의 문화도 선진 락후로 2분화하면 무단적일것이고 다만 각자 자기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해야 할것이다.
물이 귀했던 중국인들은 고인 물을 끓여서 마셨으니 “慢慢地”였을 것이고 마실 물도 귀한 중국인들이라 청결에는 관심이 적었을것이다. 평야에 살았으니 산나물을 생으로 무쳐 먹을 수 없었을 것이고 거의 모든 음식물을 대개 볶아서가 아니면 끓여서 즉 익혀서 먹는것이 위주였을 것이다. 모든것은 천천히 하는 인간들에게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역이나 로자철학같은 것이 나올수 있었지 않을가 싶다. 로자철학이나 주역같은 깊이를 갖춘 문화였기에 넓이와 무게도 동시에 갖추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산좋고 물맑은 곳에서 살아온 조선인들은 밝고 맑고 빠른 반면 깊이와 무게와 넓이가 중국인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다.
수백 만평방키로메터의 크나큰 대륙 그것도 동서, 남북사이여서 너무나 큰 거리적 지형적 내지는 문화적 차이를 가진 대륙을 통일된 하나의 공동체로 수천년 지속해 왔으니 깊고 넓은 문화가 아니였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쪽 끝에 눈이 펑펑 쏟아질 때 남쪽 끝에서는 발 벗고 모를 심는다. 최고 당국은 하나의 같은 이념과 같은 원칙으로 동서남북중을 골고루 아울러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까지 중국은 서남과 서북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인적이 드문 산과 초원 그리고 사막으로 막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로 막혀 있는 봉페된 환경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관리하여 왔고 19세기 말까지는 그 주변국들이 중국을 많이 모방하여 왔었다.
그런데 현재 전체 지구는 하나의 망으로 되여가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들어서고있다. 그리고 중국의 주변국들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고 일부 나라들은 중국을 훨씬 앞서 있다. 크나큰 도전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 세계가 주목하는 바가 있다. 중국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변할 것인지 중국은 이 도전에 잘 적응해 가리라 믿는다. 깊고 넓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문화가 역사적 부담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 문화가 깊고 넓음으로 해서 그 부담은 더욱 큰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부담만이 아니다. 창조라고 해서 모든것이 전부 변하는것만은 아니다. 물론 창조란 파괴와 갱신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창조는 계승을 내포한다. 옛날 중국은 불교를 받아들여 완전히 중국화시킨 경험이 있다. 동서양 문화를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것이다. 물론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말이다.
덩치만 크다고 꼭 대국이 되는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봤을 때 대국은 반드시 세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추어야 만 한다. 첫째 규모이다. 인구, 영토, 경제규모가 커야 한다는것이다. 크다는것을 남을 도울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둘째 새로운 제도는 창출할수 있어야 한다. 일사천리로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있는 요즘 세상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새로운 제도 창출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새 제도를 부단히 만들어 낼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제도를 안받침 할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부단히 생산해 낼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천천히”지만 중국은 그런 대국으로 변신하리라 믿는다.
냉수마시는 조선인도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크게 한몫 할것이다. 정보화시대의 생산은 표준화 대량생산이 아니다. 공업화시대에는 표준화 대량생산이 필수적이다. 새기술 탄생주기(周期)가 걷잡을 수 없이 단기화(短期化)되고 있는 이 세상에 표준화 대량생산은 벌써 물건너 갔다. 냉수 마시는 조선사람은 머리가 잘 돌고 또 빨리 돌아가기에 순발력이 있다. 정보화시대에 잘 적응할수 있는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
10여년 전 어느 언론사로부터 “정보혁명”(信息革命)을 설명해 달라는 인터뷰요청을 받은 바 있다. 정보란 우선 지식이다. 지식이란 불확실 요소를 최대한 걷어낸 사실의 체계이다. 즉 “무엇이냐”“무엇때문에”“어떻게 될 것이냐”등의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지식이다. 그런데 그 지식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지식이고 그 지식이 여러 사람사이에 교류될 때는 정보로 변신되는것이다. 즉 교류과정에 들어 간 지식이 바로 정보인 것이다. 정보혁명이라 함은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지식생산과정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변두리 학과(邊緣學科)들이 우후죽순마냥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식교류 과정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지구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몇초사이에 교류과 완성될수 있다. 이를 가리켜 정보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인은 넓지 못하고 깊지 못한 약점을 지닌 반면 빠르고 밝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정보화시대에 잘 정응해 나갈것이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밝은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물 마시는 중국인과 냉수 마시는 조선인은 서로 장단점을 배우고 보완하면서 잘 어울려 야 하고 또 꼭 잘 어울릴 것이다. 같은 자들만 잘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자들이 일정한 마찰을 동반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은 법칙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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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성자 : 박경애
날자:2008-02-02 10:46:11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중국인과 조선인의 문화의 차이점을 아주 생동하게 그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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