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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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금선생의 진말(선역)
2008년 03월 11일 23시 05분  조회:2740  추천:81  작성자: 허동식

            파금선생의 진말(선역)

             남경대학교수 景凯旋


      우리는
로신은 기억하지만 파금은 별로 의론하지 않는다. 파금은 壽者로서 중국인들이 머리태를 남겼던 만청시대에 태여나 인터넷을 비롯한  소위 글로벌시대에 세상과 작별하였다. 그는 만년에 병으로 하여 사회생활과 리탈되여서도 작가협회주석을 지냈다. 그래서 간혹 파금에 대한 뉴스같은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신호에 불과했던 사실이다 .로신의 이름은 사람들의 격정을 불러일으켰지만 파금의 이름은 그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忠厚한 로인으로서 이 세상을 작별한것이 파금의 해탈이였을지도 모른다.


          파금은
소설 <파>으로부터 시작하여 만년의 <수감록> 이르기까지 일생동안 수많은 작품을 써냈다. 사람들에게 익숙된 작품은 구중국의 중국식대가족과 음울한 공관 그리고 청춘의 화원을 묘사한 력작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파금의 청춘시대인 중국대변혁시기의 산물이다. 시기는 중국의 언론자유시대로서  각성한 청년들이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불태우던 시기로서 파금도 편벽한 성도평원에 살면서도 <신청년>  <매주평론>  <소년중국> 잡지를 통해 신문화를 접촉하였다. 그러한 원인으로  파금의 작품은 인성에 대한 탐구보다도 사회개조에 대한 경향성을 내보였고 무정부주의에 대한 신조가 짙다. 시기 무정부주의는 하나의 사조로서 리대소 운대영 공산당활력자들도 영향을 받았다. 누군가 지적한바와 같이 시기 중국무정부주의 핵심사상은  모든 强权 반대하고 개인자유를 추구하는것였다. 파금이라는 필명은 巴枯宁克鲁泡特金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는 一設은 파금 본인의 부정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에서의 나젊은 주인공은 전제주의를 반대하고 서민층을 사랑하는 무정부자의 혼신이다. 당대의 나젊은 물욕주의자들과는 달리 富을 물론하고 정신귀족의 형상으로 표현되여 허무와 방종의 행위를 이룬다. 그러므로 파금의 작품은 시대와 청춘기반항정신의 산물이라고 할수있다. 기존세계에 대한 회손과 테로적인 희생적인 民粹主义英雄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의 반역심리에 응합했고 약자에 대한 동정과 강권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청년들이 파금의 작품을 읽고 혁명에 투신한 사실로부터 그의 작품은 中国式 《汤姆叔叔的小屋》로서 위대한 예술성은 결핍하지만 사회력사변혁에 참석한 작품이라 판명된다.


        파금은 종래로 순수예술작가로 되려고는 하지않았다
. 그는 원래 사회현실에 참석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심지어 희생될 각오도 지녔던 작가로서 그 연고로 40살에야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40년대  작품 《寒夜》를 발표한 뒤에는 더는 좋은 작품을 못써냈고 건국뒤에는 정계에 몸을 담고 각종 회의와 출국방문 국내시찰 등에 몸매이여 사회변혁을 갈망하던 작가로서 사회변혁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문학창작의 완전쇠퇴기를 보내게 되였다. 그래서 만일 문화대혁명중 파금에 대한 박해가 없었더라면 문화대혁명 뒤에 파금은 < 진말을 하자>는 언론을 할수 있었을가? 하는 의문도 성립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난뒤 창작된 파금의 <수감록> 다시 파금에게 작가의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파금은 본인도 자신의 제일作으로 생각한 < 수감록> 통하여 력차의 정치운동중에서의 자신의 언행을 회억하고 남한테 피해를 사실들을 자책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재부와 향락에 대한 추구에 일심할 , 파금은 도리여 청년시절의 성실하고 진지한 기백을 되살려 자신의 참회록을 또박또박 기록하여 문화대혁명재난을 잊지 말기를 호소했다. 파금의 참회록은 권력시스템이 인정하는 참회록이였기에 관방의 존중을 받았고 각종 사회활동에 다시 출면했으며 사회지성인의 형상으로 받들리였다. 파금이 세상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중국의 양심>이라 칭르고 그의 <진말을 하자> 파금의 제일 훌륭한 유산이라 하였다. 


     파금의
현대사에서의 위치로부터 보면 유력한 <진말> 할수 있는 능력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그의<수감록> 본질적으로 상처어루만지기에만 머물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목중에서 로신을 초월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파금의 차실이 아니라 시대의 차실이다.

 
        진실이라는
말은 문학 평론가들의 말밥에 오르기는 하지만 문학명제도 아니고 문화명제도 아닌 명제임을  우리는 모른다. 파금이 <진말을 하자> 의론을 진행할적에 체코의 작가 哈维尔 <진실한 생활을 하자> 주장을 보이면서 < <어느 과일가게에서 사회조류와 同步하기 위해 가게 문앞에 < 전세계 무산자는 연합하라> 프랑카트를 걸어놓았는데 행위가 가게주인의 진실한 생각이 아니다. 空泛한 이델레오기의 득을 보려고 했지만도 이델레오기에 순종하는 치욕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실례를 것처럼 우리 시대도 그러한 비진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대다수는 일상생활에서도 거짓말속에 살아가고 있다. 파금과  哈维尔는 계몽급 작가로서 허위를 증오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농후하고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지니어 문학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생활에 개입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結局은 조금 부동하다. 파금이 용감한 걸음을 멈추고 외부세계의 압력하에 침묵을 선택하였을 때 哈维尔은 숭고한 도덕용기로서 진실에 대한 더욱 완벽한 주장을 견지하면서 옥살이도 몇번 겪었고 또한 사람들에게 <진실한 생활의 가능성도>을 보여주었다.

 
        서구에서는 진실과 진리가 같은 낱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시인  赫西奥德 < 시의 목적은 진실을 제시하는것이다>는 언조로 시작해서 철학가 플라톤과 亚里斯多德을 통하여 희랍문화에서 진실을 종극가치라는 철학중심위치에 모셔왔다. 또 유태문화에서도 사람마다 하느님앞에서 진실에 대한 추구를 보이라는 종교문화지향을  크게 추구하였다. 荒诞派 戏剧家로서 哈维尔는 진실은 인류를 통치하는 <절대적인 지평선>으로서 진실추구를 형이상학적신앙의 위치에 놓았다. 하지만 중국문화에는 진실이라는 종극가치가 담백하다. 진실이라는 관념이 중국어에 나타난것은 불과 백여년간의 일이다. 절대다수의 중국인을 상대해서는 상술한 서구진실관념론이라든가 哈维尔이 든 事例는 분에 넘친 절대적인 ( 苛刻)  관념이고 자아보호를 위해서 < 세계 무산자는 연합하라> 프랑카트를 걸면 타인의 생각도 인신도 해치지 않았으니 가히 리해를 할만한 일이라고 판명을 하고 있다. 국내 어느 존경하는 학자가  講座에서 언술의 표준은--- 1 되도록이는 진말을 하자 2 진말을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침묵을 지키자 3 침묵권마저 소유하지 못해 부득불 거짓말을 때에는 타인을 해치지 말자 고취한 사실로부터 보아도 우리는 진실에 대한 문장도 쓰고 읽기는 하지만 진실의 함의에 대한 리해력이 결핍함을 설명하고 있다. 서구에서의 진실이란 이 력력한 인성추구이고 또한 서구문화는 진실에 대한 추구를 통하여 사람의 자존과 생존을  보존하는(진실앞에서 침묵을 지킴도 죄이다)  문화이므로  索尔仁尼琴 거짓말로는 살지 말자>> 언론이라든가 肖斯塔科维奇의 암암리에 창작한 <<证词》가 출현되였고 哈维尔의 사회진상을 통찰하는 괴력도 출현한다. 서구와 비교하면 상기 중국 학자의 말씀은 인성에 부합되기도 하겠지만 진실에 대한 그의 표준은 유아적이라 할수 있다. 진실이 형이상학적인 근거를(정신적인 추구적인) 근거를 잃으면 인성도 底线을 지키기 힘들다. 현재 우리는 많은 경우에 뜨르르한 套话를 사용하지만 현실의 不义에 침묵을 지키고 있음이 바로 后极权社会의 특점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마음속말이 아닌 거짓말로 또는 침묵으로 리상세계와 거리가 있는 현실에 순종하는 특점을 보이고 권력의 본질적결과를 묵시한다. 진실에 대한 이러한 리해와 태도는 우리들더러 인간의 자아근거를 회멸당하고 哈维尔가 이야기한것처럼 사람이 실패한 견증물에 지나지 않는 배역을 할뿐이다


          혹시는 일반인으로서 진말을 할 자격과 능력이 없기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파금이 우리 대신 이 시대의 진실을 이야기할것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감록>에서는 진실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힘들다. 문화대혁명뒤 파금이 赫尔岑 <<往事与随想》을 번역한 사실부터 러시아 위대한 작가를 따라배우려는 몸부림을 엿볼수도 있고 또 < 진말이란 마음을 독자들에게 드리고 마음속의 말을 하고 자신이 믿는 말을 하고 생각이 정리된 말을 하고> 하는 명언을 내놓기는 하였지만 파금은 만년에 이르러서도 중국을 대신해 진말을 할 자아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중에 거의 중국인 모두가 자아반성이 결핍한 사실과 대조해보면 파금의 아주 성실한 고백이 돋보인다. 파금은 < 호풍을 그리며>에서 심각한 자아반성을 진행했지만 문련회의에서의 정치립장표명과 동시에 진행되였다는 점으로 보면 어딘가 우리에게 유감을 남겨주었다. 큰 재난뒤에도 진말이란 기껏해야 선악에 대한 설교에만 머무르고 인성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없다면 철저한 반성으로 판명할수가 없다.  


         진실을
가치신앙에 저명하디 않는 경우 , 우리는 거짓말중에 살면서도 犬儒主义를 실행하게 된다. 또한 진실을 사물의 본질로 인지하지 않기에 기본적인 사실을 발견할수도 없다. 파금의 회억록 --<수감록>이 이러한 특점을 지닌다. 우리는 <수감록>독서중에서 파금의식세계에 존재하는 < 진말>과 현실과의 거리를 직감할수 있으며 그의 画地为牢식의 제한성과 진실한 태도를 표명하지 못하여 발로되는 莫名한 고통감을 직감할수 있다.< 수감록>은 파금의 개인경력이기는 하지만 인성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없다. 독자들에게 준 史實과 평가는 구속되였고 정치정확성이 강하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파금 개인의 소심성이라든가 인지정도라든가에 귀결이 될수도 있다. < 수감록>  落筆뒤에 파금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가 파금을 방문했는데 그적의 파금의 수심에 응고된 표정을< 어떤 악몽에서 깨여나지못한 얼굴표정으로서  정치투쟁에서 보였던  吞吞吐吐 欲言又止의 소위동방지혜인 얼굴상이였다> 기록하고 있다.


        파금의 진실에 대한 내재결핍증은 개인원인도 있고 시대적인 원인도 있다
. 파금은 5.4운동의 산물로서 서구의 자유관념과 사실주의창작법을 흡수하여 처음에는 <인성>이라는 시각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걸음을 시작했지만 과정에 새로운 科学观을 받아들이면서 自由와 진실의 神性에 아무런 리해력을 지니지 못했기에 종국은 그의 자유관념이  源之水로 변했고 세속세계의 革命이라는 강에서 말라들고 말았던것이다 . 파금 몸에서 나타나는 상술 부족점이 바로 新文化运动의 부족점이다 . 비록 시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넘치기는 하지만 무정부주의 영향으로 하여 어떠한 종교의식도 배척하고 형이하학투쟁에만 몰두하였기에 그의 작품은 인성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진정한 진실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40년대에 이르러 폭력투쟁에 실망을 지니고 현시대 서민들에게 눈길을 돌렸을 때의 작품이 파금의 진정한 력작으로 되여있다. 信仰智性이 없는 道德激情은 지속적인 흡인력을 지니지 못한다. 때문에 파금은 <나의 작품들이 로쇠했다. 어떤 분식과 가공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부입하지 못한다> 말을 남겼다.


        파금은
문화혁명박물관을 만들자는 건의도 내놓았고 계획경제시대에도 나라의 봉록을 먹지않은 일로부터우리의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사상대가는 아니다. 만년에 너무 신중했고 무정부주의를 신앙했다는 말도 감히 하지 못했다. 수호지 인물처럼 聚义堂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忠义堂에서 생명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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