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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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언론의 초여름 읽기
2009년 06월 13일 14시 07분  조회:4256  추천:65  작성자: 박문희


중·한 언론의 초여름이 뒤늦게나마 찾아왔다.


중·한 언론의 봄은 중·한 언론인이 약속에 따라 만난 그 무슨 "언론포럼”같은 데서가 아니라 중국에서 88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면서 얼음이 풀리고 1992년도 중·한 수교가 되면서 완연한 봄빛을 맞아온 것 같다.  


그런데, 봄을 맞아서 초여름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저그만치 17년이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로 지난 11일 북경에서 열린 언론인 포럼. 중국과 한국의 주요 언론사 고위 언론인들이 참가한 사상 첫 “중·한 고위급 언론포럼”.


17년 만에 만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량국 언론의 역할, 언론을 통한 량국 국민간 리해 증진 방안, 량국 언론교류 및 협력 채널 확대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한 이번 포럼을 나는 나름대로 중·한 언론의 초여름으로 상정(想定)해 본다.


중·한 고위급 언론인들이 사상 "첫 번째 교류의 장"을 량국 수교 17년 만에 만들었다면, 봄과 초여름의 거리가 이 정도로 멀다면, 누가 봐도 “적시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더 늦기보다는 그래도 일찍한 셈이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밖에.  어쨌거나 이런 포럼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무를 받는다.

그 17년 간 이른 바 동북공정, 올림픽 성화 봉송, 서장, 로무송출 등 적지 않은 문제로 음으로 양으로 티격태격 해오면서 “혐한론”이나 “반중론”까지 불거져 나오고 량국 국민의 감정도 상당히 다친 터라 량국 고위언론인들이 고민도 많이 한 끝에 서로간 해해년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게 그래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닌 것이다. 기다림에 조금 지치긴 했지만도.


실상 이와 같은 고위층 언론인의 만남의 필요성은 그간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경제 교류에 비해 문화나 교육 등 면의 협력이 너무 부진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럼에서의 발언을 통해서도 량국 국민들 간 상호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파생된 반한, 반중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언론이 정확한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 대해 양국 언론인들이 심히 공감하고 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발언 속에 더러 각자 자국 언론을 점검해보는 의식도 진하게 배여있고 서로 대방 국가를 더 깊이 알아야 하겠다는 의중도 보이고 자주 합동취재도 하면서 대방 나라의 실정을 자국 내에 제대로 알리자는 의지도 보이여 기분이 괜찮다.   


중국이 세계와 함께 올림픽을 치르고 또 이번 금융위기도 함께 겪는 사이, 그리고 양국이 제마끔 자기의 골칫거리들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중·한 양국 국민간의 갈등도 퍽이나 갈아앉은 이때 이와 같은 포럼이 열렸으니 모임의 분위기도 엄숙하고 평화롭기만 할 뿐 아주 화끈하거나 격동적이지 못할 건 당연하다. 늦겨울은 진작 옛날 일이고 그렇다고 땡볕이 지지는 한여름은 아직 아니니까. 하지만 발언 내용을 보면 모두가 따뜻하고 조금 따갑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일컬어 초여름이라고 한다.


물론 양국 국민들 간 감정이 한참 격화되고 있을 때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서라도 량국 고위층 언론인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모여 앉았더라면 문제 해결이 더 적시적이어서 훨씬 좋았을 것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매년 한차례씩 모여 앉을 계획이라니, 량국 국민들한테 무슨 “민감한 일”이 생긴다 해도 이번에 자리를 같이 한 근 30명 되는 고위층 언론인들이 이전처럼 나 몰라라 외면할까봐, 더구나 언론인 자체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마른 나무에 불이라도 달까봐 혹은 붙는 불에 키질이라도 할까봐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번 포럼에 대한 감상을 말하라면 논문이나 발언 내용의 중요성보다는 이른 바 고위 언론인들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코를 맞대고 앉아 얼굴을 익히고 친구를 사귀였다는데 의미의 비중을 더 두는 게 좋을 상 싶다. 일단 만나면 아무래도 말을 하기 마련인데,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아무래도 감정이 통하게 될 터이요, 그러다 가끔 삿대짓을 하고 침을 튕기며 다투더라도 싸움 끝에는 분명 정이 들게 될 거니까. 알륵이 있어도 끙끙거리며 5년이고 10년이고 곪아터질 때까지 묵새겨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일터이다. 중·한 양국은 리념과 제도도 다르고 문화차이도 작지 않아 언론이 그 제약에서 벗어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례컨대, 중국의 주류언론더러 한국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국 측에서 봐도 유익한 비판, 이런 비판도 중국은 감히 못한다, 흔히.)하라면 한국의 주류언론더러 중국의 문제점을 비판하지 말라(기실 정확한 비판은 중국도 필수)는 것만큼이나 힘들어 할 상황이니.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우선 중국이나 한국에서 발생하는 모종의 중요한 사실과 그 사실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포착과 그것에 토대한 책임성 있는 보도일 것이다. 이 점에 류의치 않는다면 사달은 아무 때든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량국 고위 언론인들의 책임성 있는 약속 리행으로 이런 생각이 부질없는 걱정으로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언론인들이 자주 소통을 하다보면 서로 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양국 국민이 서로 오해를 하더라도 그런 오해를 언론인이 나서서 풀어주는 그런 바람직한 언론으로 거듭나겠지.


아래 중·한 량국 11명 대회발언자들의 발언에서 몇 마디 추려 본다. --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유익한 진정한 이웃이 돼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에 량국의 책임 있는 언론들이 나서자.”


“량국이 문화 사대주의와 자기 문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문화를 편견 없이 인정하는 문화 상대주의로 나아가자.”


“량국 국민 간에 감정 문제가 생길 경우 정확히 주시하고 신속하게 해법을 찾자.”


“량국 언론이 서로에 대해 객관적으로,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보도하자.”


"량국 관계 발전과 교류의 방향을 잘 파악해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자."


보다시피 무슨 대단한 말들인 건 아니다. 이런 말쯤이야 할 줄 몰라 못하겠는가. 이런 말을 하려고 언녕부터 별러온 사람들이 과연 적었겠는가. 암만 별렀댔자 그게 무슨 소용 닿겠는가. 하지만 별로 대단치 않는 이런 말들이 오늘 조금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그런 말들이 양국 고위언론인 포럼석상에 올려졌고 아울러 서로에게 뜨겁게 안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중·한 언론의 초여름”이 늦게나마 찾아왔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욕하게도 화끈한 여름이 기다려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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