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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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시리즈]《단군신화》의 발상지 문제
2008년 03월 13일 23시 16분  조회:4960  추천:90  작성자: 박문희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는가?(6)


《단군신화》의 발상지 문제



《단군신화》를 보면 460여자 되는 짧은 글속에 수천년간에 걸친 아름찬 력사내용을 압축해 담고있다. 환웅의 삼위태백 강림, 단군의 탄생, 조선국 창설, 백악산아사달 천도, 장당경 은둔...하다면 환웅이 내렸다는 삼위 태백은 진실일가, 허구일가? 아니면 태백의 수식어에 불과한 것일가? 진실이라면 그 위치는?


《尚書·舜典》에 “三危”란 지명이 追記된 이래 력대의 문헌기록과 후세 사람들의 연구자료를 보면 “고삼위”의 존재는 확실하며 위치도 서북지역임이 분명하다. 北魏의 酈道元 등은 “삼위산은 돈황현 남쪽에 있다”(《水經注》)고, 唐의 리태 등은 “삼위산은 沙州(돈황)의 동남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括地志》)고,《한서》,《후한서》,《상서정의》,《상서법》,《태평어람》등은 “三危가 감숙과 청해성 경내에 있다"고 기술했고 동한시기 마융의 《상서주》와《한서·공안국전》, 唐나라 공영달의《尚書正義》등 史籍은 “三危”가 서부지역에 있다고 기록했다. 그중 “대삼위”, “대돈황”설과 최신판《辭海》력사지리 분책에 올린 감숙성 롱서현(隴西縣) 서북부 지역설 등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얻고있다. 봉우리가 세개 있는 산을 삼위산이라고 한다는 설을 망라해 다양한 견해들이 나타난것은 옛날의 방위측정이나 거리 계산방법 등에 변화가 많고 분명치 못한 점이 있어 그 구체적인 위치 확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삼위산이 서북지역에 있는건 틀림없지만, 구체적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각종 설이 병존상태이며 최종 결론은 아직 없다.


《단군신화》연구의 경우, “삼위”의 구체적 위치보다는 우선 “삼위”가 “태백”의 수식어인가? 아니면 중국 고전에 나오는 “삼위산”인가? 그것도 아니면 묘향산이나 한반도의 다른 산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것부터 갈라야 한다. 구체 위치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삼위산”의 위치를 어디로 보느냐, 이는 실상《단군신화》의 발상지가 한반도 안이냐 동북지역이냐 서북지역이냐 한마디로 이런 문제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 력사에 대한 일부 해석은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다. 한반도로 보는것과 서북쪽으로 보는것, 이 량자가 가져다 주는 결과가 같을수는 없는것이다.


례를 들어 보자. 삼위태백을 묘향산에 비정한다면 단군조선의 력사는 조선 본토로부터 주변국(중국 대륙, 시베리야, 일본 등)으로 부단히 확장해 나간 력사로 해석될수 있다. 사실 이런 시각에 의해 기술된 력사론저들이 여러 권 있는데, 그 가운데는 력사상의 한반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단군신화》의 삼위를 중국 서북부지역의 삼위산에 비정한다 할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대이동의 선상에서 우리 선인들의 력사를 고찰해야만 하는것이다. 바로 이런 리유 때문에 삼위에 대한 연구는 결과를 볼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중요하고 또 여전히 진행형인것만금 문헌자료와 고고학성과에 대한 면밀한 주의를 필요로 하며 “확인가능성”에 대해 경연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다.


먼저 우리 민족과 관련시켜 삼위를 연구한 중남민족대 남방소수민족연구중심의 연구원 楊萬娟의 말을 들어본다--


양만연은 三危의 위치문제에 대해 “한국 학자들 중에는 백악산설과 감숙 돈황 남부 삼위산설이 있고 삼위태백을 통털어 조선 평안북도의 묘향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중국 학자들 중에는 돈황 부근 삼위산설 등 네가지가 있다”면서 그 자신은 “川甘 접경지역의 민강, 민산 일대설에 동감한다”고 했다. 양만연의 이런 주장은 조선민족은 동이족에서 나온 민족으로서 蚩尤, 三苗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삼묘족이 거주했던 삼위와도 깊은 련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아래에 한국학자들의 견해를 알아본다--


한국 효성녀대 박은용교수는 중국 淸나라 乾隆 28년(1763년)에 편찬된 지리서 《欽定西域同文志》에서《단군신화》의 태백산 위치를 규명할 수 있는 “三危” 관련 기록을 발견하여 공개했는데《흠정서역동문지》4권(卷之四) “天山南北路山名”에 적힌 삼위에 대한 설명은 “古天山東盡境(山海經)三危山西三百五十裏曰天山…(一統志)天山一名白山 自哈密東北境綿亙而西…” 등으로, 三危山의 위치와 삼위산이 곧 天山이며 이를 白山이라고도 한다고 “산해경”과《大明一統志》등의 고서를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흠정서역동문지》는 박교수가 30년 전 일본 도꾜대 객원교수 시절 우여곡절 끝에 입수한 지리서로 漢字와 만주어, 몽골어, 아라비아어, 타밀어, 서장문자 등으로 된 희귀본이며 “삼위”에 대한 기록을 남긴 현존 유일의 고서라 한다. 그는 또 “우리 학계가 현재 민족의 기원신화에 나오는 ‘삼위’란 글자가 ‘태백’을 수식하는 관용어인지 별도의 지명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규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天山 일대의 위글족 등과 우리 민족은 인종적, 언어풍속학적으로 류사점도 많아 력사, 언어, 문화인류 학계의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용교수가 제시한 자료는 민족의 유래를 중국의 西域으로 확대시키면서 신강위글족자치구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민족의 동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한국 상고사학회 회장 율곤 이중재선생은 2002년 3월 “下視三危太白 三危山名 非今外興安嶺也 叉非今文化九月山也 乃今支那甘肅界燉煌縣所在地三危山也 本黎苗祖盤古初降之地 是也” 등 삼위의 위치와 관련된 옛기록이 있는 력사희귀본《神市開天經》을 입수, 공개해 력사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중재선생은 저서《한민족사》에서 이 자료를 포함한 대량의 자료를 근거로 삼위산이《삼국유사》에서 말한 “태백산”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북아 전체를 놓고 삼위산이 중국의 서북지역에 한곳 밖에 없는 이상《삼국유사》가 환웅에 대한 기록에서 삼위산을 언급한 것은 함부로 넘겨 버릴수 없는 사안이며 앞으로 우리 민족의 근원을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조선의 유명한 학자 리지린의 말을 들어본다--


리지린은 저서《고조선연구》에서 삼위산의 위치에 대한《尙書》舜典·禹貢의 기술과 고힐강(顧頡剛) 등 중국학자들의 고증자료를 대량 인용, 분석한 뒤 “삼위산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아직 딱히 말할수 없”지만 “현 중국 서북방의 산인 것만은 틀림없다”면서 “단군신화에 ‘삼위산’이 관련되여 있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고 했다.


리지린은 “《단군신화》에 어찌하여 삼위산이 관계되여 있을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古記》의 편찬자들이 三危를 고대 중국의 유명한 산임을 모르고 썼다고 보기는 곤난하다. 기원전 1세기 초 樂浪사람들이《서경》을 통달했다는 것이 확증되니 고조선인들이 ‘삼위’가《서경》에 보이는 山名임을 알았을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고기》의 편찬자들이 어찌하여 그 먼 곳에 있는 산 이름을 단군신화와 결부시켰는가? 이것을《고기》편자들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의 표현이라고 지적할 근거는 없다. 그들은 단군을 고조선의 창건자로 인정한 것이며 결코 그가 한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였다. 단 고조선족의 선조가 삼위산과 관련되고 있었다는 것을《고기》편찬자들이 인정했다고 볼수 있다. ”


《동국여지승람》의 저자가 삼위 태백을 황해도 구월산으로 인정한데 대해서와《삼국유사》에서 태백산을 묘향산이라고 쓰고있는데 대해 리지린은 “삼위라는 지명을 우리 나라 지리 문헌들에서 찾아볼수 없음”을 리유로 들면서 “이러한 설”은 “후세 사람들의 부회에 불과한 것”이며 “(묘향산을) 고조선 국가 형성시의 명칭이라고는 도저히 볼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어떤 史家”가 “삼위산을 알타이산으로 비정”한데 대해서는 “일본 사가의 설은 부정확하기는 하나 삼위산을 대체로 알타이산과 련계되는 현 중국 서북방의 산으로 비정한것은 틀림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리지린:《고조선연구》P119~122. 조선과학원출판사, 1963년.)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학자들 중《단군신화》의 탄생과 관련해서 삼위를 해석할 때 이상의 관점들과 다르게 풀이하는 사례도 있다.


례컨대《단군신화》에 나오는 삼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단군신화》원문을 번역할 때 아예 三危를 빼놓고 太伯만 넣어가지고 해석하거나 심지어 “下視三危太伯”을 “가장 큰 산들을 내려다 보니” 등으로 번역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의 소산이다. 이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아득히 먼 서쪽 땅에서 이동해 왔다는 것에 대한 몰리해, 혹은 우리 민족 “본토발생설”을 유일한 출발점으로 삼음으로 해서 초래된 필연적 결과라고 볼수 있다.  


만약 “본토발생설”을 연구의 유일한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허다한 의문이 설명불가능한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인류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에 들어왔다는 관점으로 문제를 본다면 우리 민족 조상들의 서부로부터의 동진은 절대로 리해불능의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로 이어진 환인, 환웅과 단군의 존재는 아프리카주에서 발생한 천손집단의 북상 동진을 의미하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며, 천산산맥을 지나온 선인들이 하서주랑을 거쳐 남하, 渭水와 황하를 따라 동으로 산동지역에 이르렀다고 할 때《단군신화》에 나오는 “三危”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지역으로까지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력사연구의 시야는 오래동안 한반도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근년래 조금씩 원 울타리를 벗어나 타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현재 문헌 및 고고자료의 새로운 발굴과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우리 력사 탐구시야의 폭은 한반도와 길림성 지역으로부터 료동, 료서, 내몽골, 산동, 하북, 강소, 산서, 섬서 등지로 무한정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단군신화》는 460여자의 짧은 글속에 수천년 간에 걸친 력사내용을 압축해 기록했는데, 환웅이 삼위 태백에 내리자마자 “평양성”에 “조선국”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수천년 간《단군신화》에 언급된 력사는 적어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전개됐다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찮아도《단군신화》를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리해한 견해들이 있다.


례를 들면《단군신화》를 4단계의 력사적 발전단계가 압축된 것으로 보는 견해, 말하자면 무리사회 단계인 환인시대, 부락사회 단계인 환웅시대, 부락련맹체사회 단계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 국가사회 단계인 단군시대로 보아 한민족의 력사적 체험, 즉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그중의 하나이고,

또, 4단계가 아니라  3단계가 압축돼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그것인즉 최초의 단순한 씨족토템사회 단계, 그후 “군사 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하는 단계, 계급국가형성 후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하는 단계로 보는 견해이다. (《한국사사전》: “단군신화에 관한 여러가지 학설들” 참조)


이러한 견해는 물론 보다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겠지만 그래도 일정한 타당성이 있으며 적어도 우리에게 흥미로운 의문과 계발을 준다. 이 3단계 혹은 4단계의 거창한 력사창조활동이 구경 어떠한 범위에서 벌어졌을가?


우리 민족 발생발전의 시발점이 절대 한반도나 그 북쪽의 한 모퉁이였을 수는 없다. 중국 서북지역으로부터 중원을 거쳐 산동, 동북과 한반도에 이르기까지의 민족 선인들의 족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게 무얼가? 우리 민족의 선인들은 삼위지역과 동진연도에 대관절 어떠한 족적들을 남겼을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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