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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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편지 (외 6수)
2018년 01월 24일 23시 29분  조회:1845  추천:0  작성자: 박문희

 

아득한 편지 (외 6수)

 

허공을 정처 없이 맴도는 왕잠자리

까맣게 탄 기다림에 날갯짓 짙붉다.

 

팔매질에 수면을 뛰어가는 조약돌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간다.

 

이제 바람의 등에 실려 온 낙엽

창턱에 살포시 쪽잠이 든다.

 

발밑으로 맨발 밑으로

보랏빛 그리움이

한길 반 높이로 쌓였는데

왜가리 유리병

깡마른 꽃가지 초리 끝에

가녀린 상념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린다.

 

 

중국화 

 

개나리 화사한

선경대 벼랑 가에서

붓대 타고 계곡 내리다가

머루넝쿨에 걸렸다.

머루 한 알 따먹고

잎 한 잎 머리에 쓰고

넝쿨에 퍼더버리고 앉아

주르륵 미끄럼질 했다.

빠알간 노을을 등에 업고

코스모스와 들국화 길섶에서

놀고 있었다.

 

붓 자루 마디에

빨간 잎이 생긋 피어난다.

 

 

딸내미의 피아노

 

아기자기 울긋불긋한 꽃밭에서

백조 한 쌍 유유히 헤엄치며

사랑을 지저귀고 있다.

 

정답게 도란거리는 예쁜 침묵

불처럼 타오르는 빨간 다리야

귀맛 좋게 찰랑이는 꾀꼬리 나비춤

담장 기어오르는 나팔꽃 열띤 강연.

 

검푸른 바다 하얀 물 바래 딛고

꽃사슴이 바람 속을 질주한다.

정원에 흐드러진 향연에

천년폭포 왕림하여

은쟁반에 살포시 옥구슬 한잔 따른다.

 

하아얀 백조 한 쌍

천지간에 가로걸린 무지개 넘나들며

은빛 영롱한 무아의 경지를

주름잡는다. 

 

 

천년의 위기

 

천년을 내처 걷던 강물이

걷지를 아니하다.

의족을 만들어 신겨주었지만

이제 걸으면 죽는다고

딱 버티다.

 

천년 잠잔 바위

여전히 깨지를 아니하다.

물로 잠그고 불로 지졌건만

꿀꿈 세월 좀 좋으냐고

잠에서 깰 염 않고 딱 버티다.

 

묘 자리 봐달라고 하다.

묘 자리가 좋으면

한걸음 걷겠다고 하다.

기념비 세워달라고 하다.

기념비 세워주면

하루만 깨겠다고 딱 버티다.

 

만년소나무에 매달린

풍경(風磬)이 울다.

 

 

아 침

 

강아지 품은 달걀에서

번개 태어나 기지개 켠다.

낮달 발뒤축에 매달린 오솔길

팔자걸음으로 걸어온다.

달걀껍질 구름을 몰고 다니며

번개 길이를 잰다.

 

구렁이 고슴도치 먹고

민들레 홀씨 날려

까맣게 하늘 칠하는 사이

냉장고에서 불에 구운 시간 꺼내

앞산 벼랑 젖꼭지에

양자우편으로 부친다.

 

창가에서 서성이던 오솔길

꼬리를 사리더니 슬쩍

구름위로 뛰어오른다.

 

 

세 상

 

삼베 무명 모시 명주

씨줄과 날실 강산을 짜고

우주 그물에 걸린 모루위에서

꺼이꺼이 함마가 운다.

 

살진 줄기에서 건진 지평선

멀리 흔들리는 작은 배

갑자기 가라앉은 바다 섬

선인장 가시에 나부끼는 빨간 피

소라나팔 되어 화톳불로 타오른다.

 

실북 뛰는 그물구멍에서

청룡이 웃으며 달려 나온다.

허리 잘록한 개미

태산을 밀고 간다.

 

 

천당의 문

 

벼랑 한 꺼풀 뜯어내고

모래톱 한 장 벗겨내고

번개 아지 한대 잘라내고

구름장 한 송이 꺾어들고

화과산 수렴동에서 물 한바가지 떠다가

 

하늘에 궁전 짓는다.

 

봉황이 예쁜 주둥이로

산호의 비취빛 보석 갈고 닦는다.

음양이 빙글빙글 도나니

풍진세월 꾸역꾸역 모여든다.

백마 탄 꿀벌 장미꽃 꼬나들고

보석 대청으로 돌진하다가

눈부신 벽에 수염 들이 받는다.

 

오리산에서 고개 갸웃하며

구조주의자 수석제자 왈---

영, 혼, 육이 온전한 모든 생령의 거처는

속이 비어야 실용 가능하거늘.

 

구조주의자 큰 형 보완조로 가로되---

속만 비면 약에 쓰나? 숨막혀 죽느니라.

물방울형, 라운드형, 다각형 빈 구멍을

벽에도 많이 뚫어야 하는 법이거늘......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문고(5)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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