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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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산빛 자물쇠 (량춘식)
2017년 05월 27일 16시 29분  조회:984  추천:0  작성자: 량춘식
단편소설 

산빛 자물쇠


량춘식

 
 
밤낮을 기차와 뻐스를 갈아타고 정신없이 장의장에 다달았을 때는 무너질듯 치솟은 산아래로 먹물처럼 어둠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전날 저녁 전화에서 분명히 3호령구실이라고 부고를 접했는데 혹여 내가 잘못 듣기라도 한것인가. 령구실에는 령구만 찬 바닥에 누워있을뿐 문상객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고 손발이 떨렸다. 푸들푸들 떨리는 입술로 “엄마…”를 불러냈건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니, 인제사 오능기가…”
령구가 놓인 어둑한 구석에서 쉰 소리가 울려나왔다. 화들짝 놀랐다. 그쪽으로 시선이 굴러갔다.
“초… 촌장!” 
나는 령구뒤에서 씨나락 까먹은 귀신처럼 나온 로촌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로촌장의 눈에는 눈곱이 끼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기고있었다. 로모의 시신을 염습하고 안치하느라 밤새 숱한 고생을 한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외성에서 공작이 바쁘다는 핑게로 그것도 꼬빡 몇해나 어머니를 못 보고 산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 같은 불효한 놈팽이가 역겨웠던지 촌장은 너의 어머닌 가스렌지를 잘 닫지 않은탓에 가스중독으로 돌연사했다는것, 곁에 사람들이 없다보니 그저 예전에 마을에서 함께 살았던 몇 사람이 와 시체를 돌봤다는것만 말하곤 지친 몸을 끌고 장의장을 휭 떠나버렸다.
소한때라 칼날같이 예리한 눈보라는  점점 더 무섭게 아우성치고있었다.
령구실문이 탕 닫긴다. 갑자기 관속에 갇힌 놈처럼 나의 눈에 별이 아물거린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나의 시야에 익숙한 실물이 희미하게 안겨들었다. 너무나 작은 사진이였다. 광목치마저고리를 입은 누렇게 부황 든듯한 얼굴의 녀인이 사진속에서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있었다. 다름 아닌 어머니셨다. 아아! 자식들이 얼마나 불효했으면 령구앞에 놓을 영정마저 준비 못해드리다니…
“엄마, 이 불효한 자식이… 억 흑흑.”
난 2촌짜리 사진앞에 풀썩 무너져서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해대면서 어린애처럼 울었다.
사자를 전송하는 울음소리… 15년전, 아버지가 세상 떴을 때는 4일장을 치르는 낮과 밤을 그 숱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차고넘쳤는데… 이 순간 황금과 돈보다 더 귀한것이 슬픔을 나타내는 울음소리건만, 나 혼자 내는 울음소리로는 사자를 전송하는 슬픔을 가셔내기에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고독하다. 질식할만큼 적적하고 외롭고 무섭다.
어머니의 령구를 지키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였다. 아마도 하느님이 인간답지 못한 이놈에게 내린 벌일것이다. 안해는 리혼하고 아들은 호주에, 남동생은 미국에, 녀동생 셋도 외국에 가있다. 외로움과 적막으로 가득 찬 령구실은 부모를 여의였다는 슬픔을 찾아볼수 없었다.
령구실안은 이발이 맞쪼이도록 춥기만하다.
“엄마, 춥지?” 
그런 소릴 내면서 플라스틱꽃들로 둘린 령구를 만진다. 또 한번 설음을 토해낸다. 목젖이 도려내도록 아파났다. 이 아픈 느낌과 함께 아래도리에서 방광이 찡찡 저려오기 시작한다. 방광결석에 걸린지 수년이 된다. 진종일 앉아버텨온 술놀이와 마작판에서 얻은 병이다. 비가 내리거나 날씨가 추워 엉덩이나 허리를 차겁게 굴라치면 배뇨 동통이 오고 지어 혈뇨까지 생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떨었다. 홍문과 고환 사이를 움켜쥐고 눌렀다. 그래도 바늘로 쑤시듯 아프다. 그렇게 심한 동통이 지난 후라야 배뇨가 찔끔찔끔 시작이 된다.
장의장실내 위생실들은 모두 사용할수 없게 봉해버려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어둠속으로 나서야 했다.
현성에서 꽤 거리를 둔 산골에다 지은 장의장이기에 밤은 지독하게 캄캄하고 공포스러웠다.
흐드득 떨며 쭈그러든 살덩이를 꺼내여 배뇨에 힘썼다. 방광에 오줌이 찼건만 오줌줄기는 가늘다못해 똑똑 떨어진다.
령하 40도의 혹한속에도 오줌을 소방용물총처럼 갈기던 그 젊은 나날들이 사무쳐온다. 젊은 놈들이 단 몇초면 끝내는 소변을 십여분도 넘게 갑자르는 동안 온몸이 얼어서 동태가 된듯싶었다.
설음마저 얼어 얼음이 된 몸을 끌고 령구실앞에 다달았을 때였다. 분명히 3호령구실에서 목쉰 울음소리가 새여나오고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귀기울여도 나그네귀신이 내는 누덕누덕한 목소리였다. 순간 공포감과 슬픔에 잠긴 캄캄하던 긴 턴넬 저켠으로부터 한가닥 빛이 발산하고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쩜 귀신이라도 와서 고독한 내 처지를 동무해주는게 아닌지… 난 령구실문을 열지도 못한채 그냥 얼음덩어리처럼 굳어있었다.
“어… 어허… 내가 있었더라도… 그날만은 잘 모르는 가스렌지를 쓰지 말고 투닥투닥 토막나무를 땔것이지, 하긴 이놈이 미처 나무를 패드리지 못한때문이지요… 어흐흑… 이 못난 놈때문에…”
어? 저 목소리가 째보외눈이!
친구, 친구가 생겼다! 혈육의 시신을 함께 지켜주는게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친구임을 절감하면서 눈물로 량볼을 흥건히 적시며 령구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야, 오재수-”
저도 모르는 사이 이름을 부르며 그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런데 이건 뭔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어도 분수지. 그는 내가 시체도적이기라도 하듯이 한걸음 물러서며 사나운 표정을 짓고 나를 향해 손사래를 쳐댄다.
“아… 아니, 네가 왜 여길 나타나? 무신 자격으루… 니가 다 아들이냐구…”
천만뜻밖이였다. 천리밖에서 달려온 내가 그것도 친어머니의 령구앞에서 친아들이 아닌 놈에게 아들자격이 없다고 줄욕을 먹다니, 분하고 억울했다.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으으엇다, 잘한다야! 아들, 그것도 맏아들이란것이 꼬빡 네해나 발길을 끊었다면서? 고향을 배반한 놈! 친어머니를… 에익, 열쇠도 버리고 사는 반편이 같은 놈 같으니라구…”
“열쇠”가 없다니? 한번 더 째보외눈이가 외눈을 치뜨고 바다사자같은 입술을 너불거릴 때 난 순식간에 바보가 된듯 머리가 뗑해났다.
술과 마작을 너무 가까이 한탓에 간, 위가 나쁜데다 방광결석에까지 걸린 놈. 갈수록 몸도 아프고 일이 되는게 없다보니 나와 30여년을 가난하게 살아온 안해는 나의 변태적인 행패질에 굴욕을 참다못해 결국 가버렸다… 급기야 난 소릴 질렀다.
“날 그렇게 대하지 말아! 나… 난 머리를 들수 없게 창피한 놈이란 말이야. 하는 일이란 되는게 없구 설상가상으루 리혼까지 당하구 개처럼 사는 놈이잖아… 에씨… 행복했다면 왜 어머닐 모셔가지 않았으며 해마다 설명절때 고향을 펄럭거리고 놀러와 즐기지 않았겠냐구… 어흐흑, 너마저 날 무시한다면 여기 천국 가시는 울 엄니 좋아할턱 있겠냐구. 응?”
난 눈보라속에서 어미를 잃고 우는 한마리의 송아지 같았다.
나의 말이 그의 말갈기를 틀어잡았던지 그는 대뜸 노함을 누그러뜨리고있었다.
난 령구앞에 몸을 내동댕이친채 자신의 뺨을 호되게 때리고있었다.
“난 죽어야 해! 죽어얀다구! 어머니께 효도대신 맘속 고통만 쌓아준 후레아들이라구. 난 죽어싸단 말야… 어머니, 나두 엄마따라 갈가유…”
내 코에선 선지피가 흘러내렸다.
그때 갈퀴같은 손이 나의 손목을 거머잡았다. 그리고 왜소한 내 몸뚱아리를 가볍게 일으켜 세워서 자기 가슴에로 끌어당겼다. 난 거쿨진 그의 가슴에 안겨서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의 코구멍으로 내쉬는 숨소리는 늦가을 기러기 홰치며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 둘은 령구를 마주하고 놓인 낡은 쏘파에 엉덩이를 부렸다.
설한풍이 장의장 창문들을 세차게 두드려대고있었다. 차거워나는 엉덩이에 36도의 온기를 가해주면서 우리 둘은 어느덧 서로의 오래동안 묻어두었던 얘기들을 화토불씨처럼 빨갛게 달구어내고있었고, 영정 속의 어머니는 광목치마저고리를 입으신채 멀리서 웃으시며 걸어나오시고, 이 한밤을 지새면 어머닌 화장이 되시고 그러면 이 아들은 그 하얀 뼈가루를 품에 안고 몇십리 상거한 내 배꼽 떨어진 고향의 강에 뼈가루를 뿌리러 가야 한다.
문상객은 그예 단 한사람도 없었다.
“너 병신 꼴값하는구나…”
“병신 꼴값한다 왜? 하긴 너처럼 에미 배속에서 떨어질 때부터 병신 꼴값이 되야 하능긴데 이건 뭐야, 병신이 아닌 놈이 병신 꼴값하구 살게 되는 릉욕을 당하느니…”
둘은 30여년만의 상봉임에도 짜개바지시절처럼 진짜병신이 가짜병신이 쌔고쌘 세월을 빈정거리고있었다.
우리는 담배불과 연기로 얼굴과 입안과 손을 덥히고 문상객들이 부어야 할 술병을 가져다 찔끔찔끔 마셔대면서 속과 정신을 덥혔다. 그러나 술병에 입술을 댔다마는 정도였다. 오재수도 술군이고 나도 술에 인이 박힌 놈이지만.
단둘뿐일지라도 화장전 추도회는 의례 치러야 하는 어느것도 하나 빼놓을수 없는 일이였다.
우선 추도사를 쓰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수 없었다.
“넌 대학을 나온 인테린데 추도사는 무슨, 입으로 서정서사시를 할것이지.”
“조상의 령전에 정중히 추도문을 읽어드리는것이 효도가 아니겄냐구.”
난 급한 성질이라 필을 꺼내 요지를 적어내려갔다.
“고 최복순… 1937년 4월 21일…” 금방 거기까지 적었는데 벌써 글길이 막히고있었다. 그저 고난 속에서 자식들을 바득바득 키워냈다는 식으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아쉬웠던것이다.
“왜 멍청해졌어? 쓸게 궁해졌다 그거여? 다른건 몰라도 늬 엄닌 죽을적까지 고향을 지키다 가신 그런 위대한 분이셨거든…”
그 말에 막혔던 글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30대, “인재초빙”에 발탁되여 천리밖 개방도시로 나가 초가집신세로부터 아빠트를 타게 되여 그렇게 간곡히 어머니를 모시겠다 했을 때, 그후 나이 40대, 50대에 접어들면서 여러번 어머니를 모시려 했을 때에도 번마다 “고향이 좋아. 나 아무데도 안 갈란다”며 고집했던 어머니. 몇해전에 리혼을 하고나서 어머니를 불렀을 때에도 “하긴 네 혼자 얼마나 외롭겠냐. 하지만 그게 다 네가 가정이란 자물쇠를 지키지 못해 그런것이란걸 난 알어… 난 이제 되려 부담이 될게야. 저 높은 산과 넓은 들이, 저 강과 소와 못들이 날 가지 말라 하누나…”하시면서 고집 부리던 등 굽은 로모셨다.
나의 추도문이 거의 끝날무렵 오재수가 중얼거린다.
째보입술사이로 밤바람소리를 내는 그의 발음은 엉망이였지만 어머니의 영정을 들여다보면서 천국의 꽃같은 플라스틱꽃들을 어루쓸고 사그라드는 향불을 바꾸고 바깥의 사나운 눈보라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눈물 둬방울 떨구기도 하면서 원고처럼 뱉아내는 이야기는 어느덧 나의 마음을 흠뻑 적셨다.
그는 안해가 있었고 엄동에 안해가 집을 뛰쳐나갔기에 향내 9개 마을을 찾아헤매느라 그만 어머니의 별세를 빚게 되였다고, 다 자기탓이라고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퍽 미안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안해는 왜 집을 뛰쳐나갔는지, 향내 9개 마을은 온통 한족동네인데 왜 그토록 우왕좌왕 찾아헤매야 했는지 궁금해나기도 했다.
“아니여! 내 안해는 집을 뛰쳐나간기 아니구 남편인 날 찾아나온기여. 미처 잠그지 못한 문으로…” 
이는 나를 더욱 의아케 만들었다.
“내 안해는 참으로 미인이라니깐…” 
그의 입에서 기여나오는 말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려고 치밀하게 짠 음모 같기도 했다.
“다 니 엄니 공로라니깐, 참말로!” 
자기를 친아들처럼 지켜봐주시고 관심해주신 분이 바로 복순어머니, 나의 어머니셨단다.
내가 반문할 사이 없이 그의 이야기는 나의 뜻밖의 의혹과 고민과 사유들을 결박한채 깊고깊은 옛날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나이 10살을 먹던 그해부터 그는 벌써 장가들고싶은 생각으로 간절했다.
고향동네 개들이 혀를 빼물고 드러누워버리는 삼복철이면 산은 더욱 높고 깊었다. 온갖 꽃들을 품속에 감춘채 푸르다못해 검기까지 한 산은 한낮에도 동맥속의 피처럼 수액이 흐르는 소리, 꽃과 나무들이 내는 향기, 그리고 산노루, 승냥이, 오소리, 뱀, 다람쥐, 토끼, 산새들과 벌레들의 교미의 향은 눈알이 짠하고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게 한다.
소박맞은 며느리 슬픔이나 짝사랑에 속이 타는 야밤이면 산은 여위여 창백한 낫가락같은 쪼각들을 업고 잔별들을 거느렸고 홀애비 과부 눈이 맞았거나 처녀 총각 사랑의 언약이 이뤄진 밤이면 대야같은 둥근 달과 은하수가 걸린 산, 그 산아래 포근히 들어앉은 백여호의 고향마을-조양촌.
산이 높아서 가려주는 그림자 크고 산이 길어서 자손들을 무우 뽑듯한다는 조양촌. 아버지네들은 주정뱅이 많고 엄마네들은 가수도 많았다. 하지만 암탉이 알을 낳듯 낳아대는 자식들 가운데는 절름뱅이, 벙어리, 외눈이, 륙손, 고환이 하나 없는 아이에 자지 둘이나 가지고 태여난 병신들로 우글거리는 동네였다. 째보에 외눈을 가진 오재수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데 모인다지만 재수는 어려서부터 같은 축의 기형아들과 한데 어울리지 않았다. 재수는 천성적인 기형아였지만 천성적이라 할만큼 못된 궁리만 하는 애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 가면 공부는 뒤전이고 앞뒤와 곁에 앉은 녀학생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어린나이에 난 앞으로 장가들수 있을가, 어느 가시내가 나의 색시감일가… 하는 생각이 그의 일과의 전부였다.
재수는 언제부턴가 무더운 여름의 한낮보다 밤을 좋아했다. 그때는 “가난할수록 영광스럽다”, “고아, 불구자는 우선권이 있다”는 문화대혁명시기라 재수는 겁나는게 없었다.
그는 밤마다 마을의 7선녀네 집근처에 숨어서 집안을 훔쳐보는것이 큰 락이였다. 큰딸은 18살이고 막내딸이 6살이다. 저녁마다 딸들은 등잔불에 둘러앉아 열심히 이를 잡느라 제정신이 아니였다. 넌들거리는 창호지로 얼이 나간채 훔쳐보느라면 보리알같은 이들이 손톱사이에서 딱, 딱 하고 터지는 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았다. 재수는 딸 일곱중 자기보다 3살이나 우인 14살인 셋째딸 보옥이가 젤 맘에 들었다. “이가 많은 녀잔 복이 있고 살림을 잘한다”고 어느 웃반 형님이 해버린 말이 명언으로 기억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번마다 보옥이는 고개아래 가슴에 딱 붙어 피를 빨고있는 보리알보다 퍽 큰 이 두마리를 시종 잡지 않고있지 않는가.
“…그 콩알만한 이 두마리를 왜 안잡죠?” 
그날 그렇게 복순어머니와 물었다가 “…소녀의 젖꼭지를 이로 착각을 해버리니 원. 공불 해 공불! 공부가 너에게 돈 주고 색시감 마련하는게야…”하고 톡톡히 꾸중을 당하기도 했단다.
그의 동년은 이처럼 변태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녀자들이 드문 마을에서 미인을 데리고 산다니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네 안해가…”하고 말이 나오려 할 때였다. 곁령구실들에서 쪼각쪼각 울음소리들이 일시에 일어나는가싶더니 그것들은 차츰차츰 통곡소리로 번져지기 시작했다.
“새벽이야. 귀신을 물리치고 저승길에 꽃을 뿌리라는거지. 곡을 내야 한다고…” 
재수가 향을 갈고 술을 붓고 절 세번을 하고나서 넉두리하며 호곡을 내기 시작했다.
“어이어이고… 김장철이면 김장을 담그시고… 내 아이들도 보아주시고… 어이어이고오… 떠나갔어도 떠난 농군들의 토지문서들랑 꼼꼼히 보아주시기도 하면서… 토지야 언젠가도 우리 토지라면서… 어이어이야아…  어이어이고오…” 
나도 울려고 했다. 그런데 울음이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재수가 엉덩이를 콱 차주고싶도록 미워났다.
네깟 눔이 뭔데 친아들보다 더 한단말이냐. 아무리 세상 뜬 어머니라도 그렇지, 이건 친아들 뺨치게 나오구 있잖아. 어디 그뿐이야. 네깟 눔에게 안해, 그것도 미인을 데리구 살구있다니… 네가 내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죽이잖아… 
나는 갑자기 안해가 그리워졌다. 처음으로 느끼는 안해에 대한 정감이였다. 령구앞에서는 남자들보다 녀자들의 울음소리가 제격이니 말이다. 응당 있어야 할 세 녀동생과 제수, 그리고 이제는 남의 녀자가 된 아내. 그들은 대체 왜 어머니의 령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여야 하는것인지…
나는 째보외눈이를 의혹에 서린 시선으로 째려보았다. 눈물코물로 범벅 된 그는 쉬여가는 소리로 울고있었는데 친자식이면 이보다 더하랴싶게 슬픔에 잠겨있었다.
나는 아까와는 달리 내 기억속의 째보외눈이를 찾아헤매이고있었다.
1975년, 문화대혁명이 결속되던 해에 소학교 분수도 풀줄 모르는 수준으로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지 않고있었던 세월에 생산대에 내려와 귀향지식청년으로 일할 때까지 그에 대한 인상이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을의 불구자들과는 근본 어울리지 않았고 그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에 대한 인상이 있을리가 없었다. 하기야 출세하여 가난한 고향마을을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달이 올랐던 나의 청년시절이였음에랴.
그러나 재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칼날같이 추운 새벽에 한나절이나 낑낑거리며 배뇨를 하고 들어온 나를 무섭게 들여다보던 오재수는 “너라도 알아둬!”란듯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해살, 녀인들은 해살과 같다고 허두를 뗄 때 작가나 아나운서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의 귀를 도사리게 했다.
동년시절 마을에 많고많던 가시내들땜에 앞날은 희망에 넘쳤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따스한 해살아래 잔디밭에 누워 달콤히 잠들었다가 싸늘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을 때 해가 지고 어둠이 뒤덮이듯 문득 실망의 낭떠러지에서 헤매이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큰가마밥”도 깨여지고 출국바람에 빈집들이 어수선한 바람소리로 기승을 부릴 때까지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채 허망한 소릴 했다.
“복순어멈요, 기러기들은 가을에 떠났다가 이듬해 봄이면 날아오능긴데 우리 마을 그 숱한 가시내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능기 없어유? 아마 래년에 올려고 그러능긴지?”
“그거 무신 소리고? 떠나가 언녕 애기 낳고 아기자기 잘살건데 오다니. 뜨물에 달 뜨나 기다리능것과 같어. 맨날 누워서 환상, 상상, 망상을 하고 사느니… 쯧쯧.”
그날 복순어머니의 꾸중은 그로 하여금 밤잠을 못 이루게 했단다.
봄날의 종다리처럼 노래도 구성지던 여름날의 제비처럼 날씬하니 춤도 잘 추던 가을하늘에 아른아른 날으던 고추잠자리, 제비잠자리, 된장잠자리들처럼 흔하던 가시내들을 더는 볼수조차 없게 된 무정한 현실 앞에 고개가 숙여지고 슬픔만 괴여올랐다.
결국 모든것을 포기하고 술만 죽여대다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산에 올라 페허나 다를바없는 동네를 굽어보고 늙은 느릅나무에 목을 매였다. 죽어서 천당에 갔다. 천당에서 7선녀네 셋째딸 보옥이가 자기와 키스를 해주려 했다. “아, 보옥이-”라고 부르며 행복감으로 눈을 크게 떴을 때는 천당이 아니고 헛간 같은 자기 집안에서 늙은 복순할멈이 자길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원래는 복순어머니네 똥개가 복순어머니를 불러왔기에 자기의 목숨을 구할수 있었단다.
“복순어멈요, 나 어떻게 하면 장갈 들수가 있죠?”
“허송세월하지 말고 돈, 돈을 벌어야 해. 그게 바로 행복의 자물쇠를 구한다는 뜻이지… 넌 고향에서 행복의 자물쇠를 구할수 있어. 또 그 자물쇠를 잘 관리하는 열쇠의 주인이 될수 있을거야.”
애초에는 복순어머니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뭔가 돈 벌 구멍을 노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페허가 다 된 마을옆 강건너로 간이역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렬차가 단 1분동안을 정착하는, 철로가속들이 살고있는 자그마한 역이지만 강 량안의 몇십리 구간내의 십여개의 마을과 진의 보따리장사군들이 간이역을 리용할게 불보듯한 일이였다. 그러니 저 깊은 강에 줄배를 놓는다면 돈을 벌수 있다고 여긴터였다. 그런 생각도 복순어멈이 알려준거라고 했다.
그 기회를 놓칠수 없었다. 맘먹고 접어드니 바쁜 일도 아니였다. 건장한 한족장정들을 동원해 강 량안에다 깊은 구뎅이를 파고 기둥을 세웠고 마을의 창고에 있던 긴 와이야줄에 긴 바오래기를 매여 소에게 맨 다음 강을 건너게 했다. 헹야헹차! 그렇게 굵은 와이야줄이 넓은 강에 드리우자 밤도와 만든 줄배가 놓이게 된것이다.
그날밤, 사공이 된 재수가 돼지 잡고 잔치를 벌린건 말할것도 없다.
“넌 이제부터 자물쇠를 가진 사내야!”
재수는 복순어멈이 한 말의 뜻을 다는 알수 없었지만 자신은 비로소 인간축에 드는 일을 잡게 되였음을 자랑스럽게 느꼈다고 했다.
나는 재수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있었다.
재수는 강 량쪽 언덕에 가격표 패말을 세웠다고 한다.
 
가격규정표
 
사람, 개, 돼지, 염소… 1원,
소, 말, 당나귀, 락타… 2원,
경운기, 크고작은 수레… 3원!
 
재수는 사공이 된 다음부터 차츰 돈 버는 재미에 날이 가는줄 몰랐다. 얼음이 녹아서부터 얼음이 떵떵 얼 때까지 매일매일 수입이 짭짤했다. 어떤 날에는 하루당 수입을 70원씩이나 올릴 때도 있었다. 배를 몰아 매달 수입이 많으면 천오백원, 적으면 천원씩이나 번다는게 믿을수 없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돈을 벌게 되니 그에 따르는 고민도 커가고있었다. 쩍하면 노로 강물을 철썩 때리기도 하면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돈 벌면 뭘하노? 자랑할 녀자도 없는 이…”  
어느날 복순어멈이 그런 재수를 마주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사공이 된지 몇달째니? 금방 녀자가 널 찾어올끼다…”
“복순어멈의 짐작은 마치 귀신이 조화를 부리듯 잘 맞아떨어졌어.”
그날도 그는 어둑새벽녘에 벌써 강으로 나갔다. 배도 몰고 물고기도 잡아 이중으로 돈을 번다.
강에는 물고기들이 우글거렸다. 재수가 배에 마련한 작은 가스난로에 금방 잡아 밸 딴 메기 한마리를 끓였다. 흥얼흥얼 코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스난로의 알루미늄냄비에서 벌렁벌렁 끓는 메기탕을 떠서 밥을 먹으려 할 때였다.
“어허헉!”하고 기절초풍을 하면서 뒤로 벌렁 나동그라진것은 재수였다. 나루터의 언덕에는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하얗게 웃어주는 미인이 서있는것이 아닌가. 앗, 귀신이다!
해골같은 흉물스런 귀신이 아니였다. 칠흑같이 까맣게 윤기 흐르는 폭포머리, 희고 동탕한 얼굴, 풍만한 가슴과 파도 치듯 굴곡을 이룬 허리와 엉덩이, 미끈히 빠진 다리는 볼수록 섹시했다.
“귀신”은 재수를 향해 웃음지으며 오고있었다. 가쯘한 흰 이발들은 아침해살에 비수처럼 비발쳤는데 “난 생총각의 피를 마실래요.”라고 하는것 같았다.
재수가 한번 더 “으아아앗!”하고 비명을 뽑으며 나루에 정박한 배를 콱 당겼다. 배가 단번에 십여메터나 언덕과 거리를 두며 멀어져갔다. 그런데 저쪽 언덕에 미녀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졌다. 휘여휘여 고개를 주억거리며 살피고있을 때 “꺄륵”하고 등뒤에서 웃음소리가 나고있는것 같아 홱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뭔가, 뒤에 “귀신”이 자기를 향해 활짝 웃고있지 않는가.
“아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기를 향해 그 귀신이 뭐라고 소릴 지르더니 품속에 감춰두었던 종이를 펼쳐보이고있었다. 거기엔 뜻밖에도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너무 서툰 그림이였지만 쉽게 안겨왔다. 그림은 열려진 자물쇠였다. 그리고 그아래로 “난 벙어리야요”란 글씨가 비뚤비뚤 씌여있었다.
순간 귀신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미인, 의혹투성이 녀인만 자기를 애처로이 바라보고있었다.
“열려진 자물쇠와 벙어리처녀”가 재수를 못살게 굴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도 풀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재수의 눈길이 가멎는 곳이 있었다. 처녀의 목에 난 이발자국 같은 허물이였다. 몇시간전에 낸 자국 같았다. 그는 추측되는바가 있어 처녀의 팔을 걷어올려보았다. 붉고 검푸르게 이물이 있었는데 담배불로 지진 상처도 있었다.
모든걸 알수가 있었다. 밤마다 짐승 같은 놈들이 집안에 쳐들어와 벙어리처녀를 릉욕한게 불보듯 뻔했다. 그러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났다. 원, 세상에 자기같이 못난 놈을 다 찾아오다니… 벙어리는 륙십일동안이나 재수의 됨됨이를 숨어서 지켜보았다고 손가락을 폈다 꼬부려보였고 세상 천지에서 아저씨 한사람만 믿는다고 왕손가락을 내들어보이고 그렇게 믿어달라고 앞가슴에 손을 대였다가 갸웃한 고개의 왼뺨으로 고운 손바닥을 살풋 얹어뵈였다. 더우기 조실부모한 후 할머니와 살다가 한해전 할머니까지 저세상에 가니 벙어리라고 밤마다 술주정뱅이들이 기생집처럼 자물쇠까지 마스고 쳐들어와 못살게 군 일을 알고보니 벙어리라고 걸레짝처럼 막 대하는 그놈들이 저주되고 처녀가 한없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벙어리처녀를 안해로 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고 했다. 그것은 18세인 그녀보다 자기가 17살이나 더 먹었고 보고 또 봐도 잎 피기전의 솜뭉치같은 흰 꽃을 피우는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여우버들같이 미끈한 그녀가 깨질가 념려되는 유리상자속의 옥같이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날, 재수는 처녀의 요구대로 처녀 집에 쇠빗장을 지르게 큰 자물쇠를 만들어주어 더는 “처녀도적”들이 못 기여들게 만들었고 그렇게 처녀는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줄배에 올라 하루 또 하루를 재수의 곁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러나 어느날, 복순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그냥 그렇게 오라버니꼴루 보낼것 없이 단김에 소뿔 빼듯 오늘저녁으루 집에 데려가 살아, 응?”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어슬녘에 손목 잡혀 순순히 따라온 처녀를 구들에 눕히고 옷 벗기니, 구름속을 헤치고 달 따는 일이 정신이 잃어지도록 상상밖이더란다… 
복순어머니의 더욱 크나큰 격려와 지지는 그 며칠후에 있었다.
“이걸 채워! 소가죽팬티야. 말하자면 네 안해를 도적맞지 않게 하는 자물쇠인거야.”
그리고 그냥 두눈이 뚱그래 선 그를 터득시켰다.
“네 안해는 네가 지켜야지. 남들이란 그저 욕심내고 도적질하는 객관요소가 될뿐이야. 알았어?”
다시 보아도 생전 못 들어본 그런 신기한 제작물이 아닐수 없었다. 엷어도 찢을수 없게 질긴 소가죽팬티였는데 허리를 질끈 조이는 가죽끈에 자물쇠를 잠글수 있게 만든것이였다.  
그후에 있은 일이였는데 어느 한번은 우연히 이웃동네의 70고령의 돼지 치는 령감태기가 10원짜리 돈으로 안해를 유혹해 버들방천에 끌고 들어갔다. 주정뱅이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희롱하려 들면 항거하는 안해지만 돈이라면 10전짜리도 입이 벙글하는 안해였다. 미녀의 사타구니에 자물쇠를 찬줄 모르는 령감태기는 음욕을 채우지 못한채 돈만 떼우고 가버렸는데 그후 얼뜨기 남정들이 돈으로 자기 안해를 “맛있게 먹어보려” 했지만 번마다 돈만 떼우고 어쩌지 못한건 말할것도 없다고 하면서 오재수는 이런 약점 때문에 녀자들에겐 “자물쇠”를 채워야 하고 또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남자들이란 가정을 책임질줄 아는 “열쇠”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령구실이란것도 잊은채 킬킬 웃어제꼈다. 이는 마치도 술과 도박에 인이 박혀버린 나때문에 쩍하면 나가돌며 마작도 놀고 동창모임에 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던 안해와 자주 싸웠던 자신를 풍자하는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재수가 그런 남편이였기에 색시는 그 자물쇠를 열고 잠글적마다 자물쇠에 그려진 산을 가리키며 자기를 보배처럼 대하는 남편을 변함없이 한곳에 선 산처럼 은혜로와하군 했다.
난 왜 째보외눈이보다 못하지?
나는 자신의 용모와 총명을 너무 믿었다. 한낱 조장자리 하나 못 얻은 일반 중학교원에 불과한 놈이고 설상가상으로 40대에 안해의 배신까지 받은 처지이니, 나를 앗아간 귀신이 있다면 그건 곧 술이다. 나는 수없이 파티를 벌렸다. 생일파  티, 축하파티, 계절파티, 형형색색의 명절파티… 그런 술놀이에 밤을 새우면서 안해의 곁을 비웠던 날이 일년 365일에 265일도 넘었고 게다가 월급 한푼도 안해에게 쥐여준적이 없이 다 써버렸으니 안해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한이 서렸으랴.
“복순어머닌 가끔씩 이런 말씀을 하군 했어. 저 높은 산은 영원히 젊은 내 맏아들처럼 뵈여. 내 맏아들… 난 내 젊었을적 그런 아들과 못 갈라져…”
재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난 더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진정 그땐 그 얼마나 어머니의 참된 아들이였던가. 난 우리 동네 첫번째로 대학생이였고 무비의 영광을 안겨드린 “개천의 룡”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생전에 효도를 못하고 례의를 지키지 못한 놈이다.
“에이에이… 이 살기 좋은 세월에, 과학이 발달하여 집안에서 다 대소변을 누는 ‘아빠트’에 산다면서… 에이… 죽긴 웨 죽겠다고 지랄을 부리노…” 
재수가 면박을 주었다.
그는 오열로 실성까지 해 뒤번져지는 나를 부축하고 문상객이 없는 텅 빈 빈의관에서 마지막 절차인 추도문까지 대신 읽어버렸고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시키고나서 이놈의 몰골을 측은히 여기게 된걸 꿈같이 여겨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래, 가자. 우리집으로 가 하루밤 묵고 랠 아침, 고향 아니, 엄니강에다 유골을 뿌리자꾸나.”
그가 날 끌었다. 난 싸움을 말려준 형님인듯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장의장의 령구실 앞마당까지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그 대부분은 한족들이였다. 형제들, 자매들, 안해들, 친척들… 그러나 조선족으로 뵈는 한 령구실에는 나처럼 녀인이란 볼수 없고 기죽은 남정 서넛만 목석처럼 앉아있을뿐이였다. 저들도 나처럼 “열쇠”없이 마음의 떠돌이로 사는 신세들인 모양이겠지. 그러자 더욱 슬펐고 가슴이 아팠다.
“어서 여길 떠나야지.” 
그런 중얼거림이 떨어지기도 전에 난 재수의 행동에 소름이 끼쳤다. 택시나 뻐스도 아닌 재수의 오토바이짐받이에 앉아야만 했던것이다. 혀를 내밀면 당금이라도 베여갈것만 같은 칼날같은 바람이 부는 혹한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니… 난 재수가 준 벙어리장갑을 낀 왼손으로 어머니의 골회함을 안고 오른손으로 오토바이짐받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야, 눈 크게 뜨고 앞을…”
그의 외눈잡이때문에 안전이 걱정되였던터라 불쑥 이런 말이 튕겨나가다가 중동무이하고말았다.
“이래뵈도 자기 안해도 몰라본다는 그런 두눈들보다는 멀리 내다뵌다는거 알어!”
난 할말이 없었다.
그래, 시력 좋은 두눈을 가진 출신 좋고 학벌 높은 우리들의 외기러기신세가 미녀를 품고 사는 째보외눈인 재수보다 행복하다고 말할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생활의 왼눈과 오른눈이 안해와 남편이 아니겠는가. 그러고보니 진짜 삶의 고독한 외눈이는 나인것이다. 아아, 슬퍼!
오토바이는 눈 깜짝할사이 몇키로메터 떨어진 시내로 접어들었다. 슬픔으로 엊저녁과 아침까지 거른지라 눈앞에 노란불이 반짝이며 기아의 변주곡이 울었다. 그보다는 배뇨기관이 팽창되고 찡찡 저려나는 통증때문에 이를 사려물 정도였지만 어머니의 유골이 추워할가 저어하는 “효심”이 그것들을 물리치고있는것 같았다.
이놈은 정말 지독했다. 현성에서 30여리나 떨어진 산골 오지길을 그 낡아빠진 오토바이로 내처 짓쳐댔다. 아마 며칠전처럼 안해가 자기를 찾아간다고 깊은 눈길을 헤치고 나가 실종되는 일이 다시 생길가봐서일지도 몰랐다. 그는 고집을 부리고 먹을줄밖에 모르는 녀자일지라도 후대를 이어주고 밤마다 비단요같은 존재이니 제 잘났노라 씽하고 비행기놀음을 하고 세상을 누비고 사는 그런 년들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냐고 했다. 이에 나는한마디도 대꾸할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마구 구겨지더니 그저 악몽이였으면 하고 바랄뿐이였다.
눈섭에 하얗게 서리 내려 앞도 잘 분간할수가 없었고 코구멍으로 얼음덩어리가 져 입으로 숨을 쉴 정도였다. 방광속의 오줌마저 얼어버렸는지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상태로 감각이 없었다.
산이 들인지 들이 산인지 대지가 하늘인지 하늘이 대지인지 모든게 흰 눈에 덮여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귀를 웅웅하게 때려대던 엔징소리가 뚝 멎었다.
“내려라!”
재수가 서너번이나 큰소리로 불러서야 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난 커다란 눈덩이처럼 오토바이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골함만은 품에 꼭 안은채로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양 큰산이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산이 내는 숨소리가 아뜩하니 동년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몇 집 없는 고향의 비참함때문에 울컥 눈물이 났다.
 산마저 재수의 편이 되여 내 꼬락서니를 희롱한다는 창피스런 느낌을 감지하며 난 벌써 재수네 집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잡동사니들로 찬 널직한 구들에서 세 아이가 엄마와 이불을 쓴채로 한창 텔레비죤를 시청하고있는 중이였다.
풍만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구들에 선채 두눈이 뚱그래서 나를 주목하는 녀인은 듣던바와 같이 동탕한 녀인이였다.
재수가 손짓으로 뭐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이내 나를 향해 웃음인사를 지어보였다. 난 일시 몸둘바를 몰라하며 휘청댔다. 너무나 부러운 집안이였다. 입에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직장에 나갔고 퇴근길은 역시 기다리는 안해를 등지고서 술친구들의 부름소리에 흥분을 감출길 없었던 지난 시기 언제 안해의 반가운 기색을 본적 있었던가? 산추위처럼 마음을 얼구어주었지만 또한 부럽고 화목한 집안 풍경이였다.
짜개바지적 옛 정분을 생각해서라도 산비둘기찜과 기름개구리튀김에 소발통국에다 기어이 술 한잔이라도 굽내자고 드는 재수의 드센 고집에도 난 술에 입술만 젖혔을뿐이였다. 젖무덤이 다 드러나있는 재수의 안해가 상에 마주앉아 벙실벙실 웃어주고 술도 따라주었건만 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주질 않았다. 해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었다는 고추장과 배추김치, 천반 대들보에 주렁주렁 달린 메주덩어리들에 눈길이 걸리며 눈물만 솟구쳤다.
이튿날, 아이들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나의 깊은 잠을 깨웠다.
아침상을 쓰기전에 우린 어머님의 령전에 애도를 드렸다. 유골함우로 영정을 모시고 어머니께서 한평생을 즐겨 드셨다는 산포도술과 말린 물고기튀김을 놓고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어리둥절해있던 재수의 세 딸도 슬픔속에서 할머니를 찾았다. 아홉살 경희가 “할머니, 왜 안 나와?”하고 영정을 향해 울랴울랴 할 때, 일곱살 경화가 “할매, 우리 오늘 어데가 놀가” 할 때, 다섯살 경순이가 할머니의 영정으로 튀긴 물고기를 갖다대면서 “할머니, 이거 먹어, 응?”할 때 재수의 안해는 왕왕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영정 속의 어머니는 여전히 웃고계셨다. 질병에서 오는 고통, 정 많은 마을사람들과의 수많은 리별을 해야 했던 고통, 텅 비여가는 동네를 바라만 보아야 했던 고통, 고독감을 이겨야 했던 고통, 아들이 제구실을 못하고 사는것을 어쩔수 없이 묵인해야만 했던 고통, 무력과 무능에서 온 괴로움들, 고통을 고통으로 맞이해야 되는 고통스러움들을 묵묵히 웃음으로 맞이하시던 어머니셨다.
오전 10시경, 유골함을 안고 강으로 향했다. 그토록 사납던 눈보라도 잠자고 해살이 유난했다.
아홉살때 두만강을 건너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강물에 빨래하고 낚시하고 미역 감고 터밭에 물 길어주고… 더불어 살아온 강은 물살이 얼마나 세던지 이 혹한에도 강심으로 살얼음을 밀어낸채 그 시커먼 물갈기를 날리며 소리치며 흐르고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의 짜그르르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루터에 얼어붙은 배우로 벙어리녀인이 세 딸과 가위바이보를 노는 풍경이 그려졌다.
아아, 자물쇠를 찬 녀자- 녀인은 자유를 박탈당한 셈인가?
난 시선을 거대한 산에 주고있었다. 산은 수없이 계절이 바뀌여도 한자리를 지킨다. 자기의 몸에서 숨쉬는 나무숲은 얼마나 울창하고 동물들은 얼마나 자유스러운가를 그만이 알고있을뿐이리라.
어머니의 유골은 어머니의 빨래터에서부터 뿌려졌다. 내 뒤에는 재수가, 그 뒤로 그의 안해가, 그 뒤로 세 아이들이 줄을 서서 남쪽으로 움직이고있었다.
나의 손에서 유골 한줌이 뿌려질 때마다 재수의 울먹이는 호곡소리가 울려퍼졌다. 대개 사위 셋을 삼아서 외손들을 그득 둘것이며 저마다 참된 인간으로 성장시켜 토지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가 바라던 “조선족자물쇠집”으로 새 동네를 이뤄가리란 뜻으로 들려왔다.
난 아주 오래만에 내 어깨와 다리에 기운이 오름을 느끼고있었다. 나도 유골 한줌씩 날릴 때마다 간곡한 기대를 담아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하늘 새 동네로 가실 때 이 못난 아들놈의 술버릇 뚝 떼여가시옵소서.
-새 동네로 가실 때 이 세월 리혼을 장난처럼 대하고 지남침에 쇠막대기 들어붙듯 재미처럼 불법동거를 즐기는 부녀자들의 개버릇 뚝 떼여가옵소서…
-어머니, 가시거들랑 새 동네의 얼떨떨한 사내들한테도 “자물쇠의 주인”이 응당 뉘여야 한다는걸 똑똑히 배워주옵소사. 그리고 누구든 “열쇠”를 잃게 되는 현실의 “3인”이 바로 술과 도박과 리혼이란걸 험하게 꾸중하옵소사…

도라지 2015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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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알려주지!
날자:2017-05-28 08:50:13
얼마나 질투하면 뒤에서 암전을 쏘는가ㅡ, 그런 비루먹고 수치스런 삶을 사시지 말구려 나가는 사람은 칭찬보다 뒤욕을 더욱 재밋게 귀엽게 여긴다구!ㅎㅎ 떳떳이 본명을 대라!하긴 비슷이 알구있지만...바라건대 더 험한 욕을 하라...
1   작성자 : 알려주지
날자:2017-05-28 03:42:13
빼기없으면 명작도 건불보다 봇해
기억하시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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