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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호 / 주자청
2018년 04월 16일 00시 53분  조회:2537  추천:0  작성자: 죽림
 

                                 백  마  호

                                  白  馬   湖

 

 

                                               주 자 청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백마호白馬湖가 생각난다. 내가 백마호에 처음 왔을 때가 바로 산들바람이 살랑거리던 봄날이었기 때문이다. 백마호는 용소俑紹 철도상의 역정驛亭 정거장에 위치한 아주 작은 시골 구석에 있다. 북방에서 백마호를 이야기하면 필시 백이면 백 사람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긴 괜찮은 곳이다. 이름부터가 괜찮은 이름이다.

 송宋나라 때인가 어느 주周씨가 백마를 타고 호수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단다. 이런 전설 역시 괜찮은 이야기다. 당신이 이런 전설을 수집하여 한 권의 소책자로 엮어낸다면 북신서국北新書局에 넘겨 출판해도 좋다.

 

 백마호는 둥그렇거나 네모진 호수가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는 크고 작은 호수들을 모두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호숫물은 지극히 맑다. 역시 짐작했겠지만 진정 거울 같다고나 할까. 철길 따라 흐르는 호숫물 중에 이곳 보다 맑은 물은 없을 것이다. 이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름철 가뭄이 들게 되면 다른 곳의 호수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데 이곳만큼은 여전히 깨끗하니 맑다.

 

 백마호 중에서 가장 넓고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았던 집 대문 앞이다. 그곳은 호수가 작은 것도 아닌데 호수 입구가 양쪽 산자락에 포위되어 있어 겉으로는 그저 푸른 물결만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널찍한 호수 면이 있을 줄이야. 호수의 저쪽 끝은 서서요西徐岆라 불린다. 서徐씨가 많기 때문이다. 이 촌락과 외부는 원래 교통이 두절되어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려면 배를 저어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춘훈春暈중학교가 호숫가에 세워지자 귀여운 나무다리가 한 쌍 생기고 조악한 길도 하나 뚫리면서 역정驛亭 정거장으로 곧장 연결 되었다.

 그 길은 좁디좁은 인도인데 꾸불꾸불 돌아가는 것이 항상 행인도 드물지만 걷노라면 그리 외롭지도 않았다. 특히 가랑비가 내리는 봄날, 이곳에 처음 오는 손님은 이리저리 기웃거리느라 즐겁기만 할 것이다.

 

 춘훈중학교는 가장 경치 좋은 호숫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가 않다. 학교 건물은 반양옥식이었다. 호수의 경치와 산의 기운이 문틈과 벽 사이로 들어와서는 우리의 창문과 책상에 다가온다.

 우리 동네 몇 가구는 모두 나란히 접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하면존夏丏尊 선생댁이 가장 멋지게 꾸며져 있다. 집안에는 유명인사의 서예와 그림이 있고, 또한 오래된 도자기에 동불銅佛이 있으며 정원에는 꽃들이 만발하다. 또한 집안 장식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항상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 선생은 이렇게 멋진 집에 있으면서 또 소님을 목숨처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시에 쳐들어가 묵은 술을 축내버린다. 하 선생 부인의 요리 솜씨 역시 일품이어서 매번 접시 가득 음식을 내오면 항상 빈 접시를 가져가게 된다.

 

 백마호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황혼 무렵이다. 호숫가의 산들이 한 줄기 푸른색의 옅은 안개를 머금고는 호숫물에 길고 짧은 모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결은 잔잔하게 흔들리며 어두워지는데 마치 오래된 동경銅鏡 같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잔주름이 한 줄기 두 줄기 일다가 이내 평온해 진다. 하늘에는 가끔 둥지로 돌아가는 새가 몇 마리 보이는데 멀리멀리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곤 한다. 이때쯤 되면 우리는 슬슬 술을 마실 시각이다. 우리는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등불을 켜게 되면 비로소 조금 말이 많아질까. 그러나 모두들 이미 술이 얼큰해졌기 때문에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어버린다. 달빛이라도 있다면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면 취한 채 더듬으며 귀가하게 되는 것이다.

 

 백마호의 봄날은 물론 최고로 좋다. 산은 푸르른 게 파란물이 떨어질듯 하고 물은 가득차고 부드럽기만 하다. 조그만 길 양편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가 사이사이 심어져 있다. 작은 복숭아나무에는 두꺼운 꽃술의 홍화紅花가 몇 점씩 수놓아져 있는데 밤하늘에 드문드문 떠있는 별들 같다. 버들은 훈풍에 쉴새없이 흔들린다.

 길을 걷다보면 이따금씩 날카롭긴 하지만 유장한 기적소리가 들리는 게 또한 이채로운 맛이다. 봄날 맑은 날이든 흐린 날이든, 달밤이든 캄캄한 밤이든 상관없이 백마호는 항상 좋다. 비가 오는 가운데 밭이랑에 핀 채소꽃의 색깔은 신선하고도 요염하여 봄날의 첫 신호이기도 하다. 어두운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은근히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여름밤도 좋은 점이 있다. 달이 뜨면 사면이 온통 푸른 안개로 뒤덮여 있는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보기도 한다. 배에서 다른 마을을 바라보면 신기루처럼 물에 떠있는 것 같아 아련하고 황홀한 느낌에 젖어든다. 간간이 들리는 사람 소리나 개 짖는 소리에 무릉도원에 와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달이 없는 밤이라면 야외로 나가 반딧불을 보면 된다. 반딧불은 도시에서 보는 한 점 두 점이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다. 반딧불이 지나가면 마치 황금 실로 짠 망사나 불붙인 밧줄 같다. 단지 한 가지 속상한 일은 그곳에 논이 많아서 모기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다.

 모기가 사납고 드세게 보이는 게 한결같이 말라리아모기인 듯싶다. 우리 가족들도 온통 말라리아에 걸렸었는데 지금에 와서도 삼사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후유증이 남아있다. 모기가 많아서 야외 정담이나 밤 뱃놀이의 기분을 족히 망쳐놓는데, 이것은 곧 다 좋은 가운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나 해야겠다.

 

  백마호를 떠난 것은 삼년 전 가을이었다. 전날 밤 ‘송별연’ 자리에 하夏 선생과 운雲이가 있었다. 나는 하 선생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진지하고도 호탕한 친구였다. 그러나 운雲이 또한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다. 운이는 귀여운 아이였다고.

 

                                            < 1929년 7월 17일 북경에서 >

 

                                   

 

 

                              주자청朱自淸 (1898~1948)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 출생으로

 

                                                       북경대학 철학과졸업, 청화대학 중국문학과 교수

                                                       중국현대문학의 저명작가이며 학자.

                                                       대표작 <아버지의 뒷모습> <여인> <봄>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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