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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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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것도 있는거야"...
2018년 03월 27일 00시 23분  조회:2437  추천:0  작성자: 죽림

<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 시 모음> 


+ 별과 민들레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 이상함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파란 뽕나무 잎새 먹고 있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박꽃이 
혼자서 활짝 펴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 


+ 벌과 하느님 

벌은 꽃 속에, 
꽃은 정원 속에, 
정원은 토담 속에, 
토담은 마을 속에, 
마을은 나라 속에, 
나라는 세계 속에, 
세계는 하느님 속에, 

그래서, 그래서, 하느님은, 
작은 벌 속에. 


+ 나와 작은 새와 방울 

내가 두 팔을 벌려도 
하늘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 뛰지는 못하지. 

내가 몸을 흔들어도 
예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예쁘게 울리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를 알지 못하지. 

방울과 작은 새, 그리고 나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좋네. 


+ 보이지 않는 것 

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엇인가가 있다. 

연한 복숭아 색 꽃잎이 
마루 위에 떨어지며 쌓이고 
눈을 떠보면 홀연히 사라진다 

그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다 

하얀 천마天馬가 날갯짓을 하며 
흰 깃으로 만든 화살보다 빠르게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 쌓인 눈 

위의 눈은 
추울 거야.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밑의 눈은 
무거울 거야. 
몇 백 명이 지나고 있으니. 

가운데 눈은 
쓸쓸할 거야. 
하늘도 땅도 볼 수 없으니. 


+ 참새의 어머니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 물고기 

바다의 물고기는 가엾다. 
쌀은 사람이 만들어 주지, 
소는 목장에서 길러 주지, 
잉어도 연못에서 밀기울을 받아먹는다. 

그렇지만 바다의 물고기는 
아무한테도 신세지지 않고 
심술 한 번 부리지 않는데 
이렇게 나에게 먹힌다. 

정말로 물고기는 가엾다. 


+ 풍어 

아침놀 붉은 놀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다 속에서는 
몇 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 
열리고 있겠지. 


+ 초원 

이슬의 초원 
맨발로 가면, 
발이 푸릇푸릇 물들 거야. 
풀 향기도 옮아올 거야. 

풀이 될 때까지 
걸어서 가면, 
내 얼굴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날 거야. 


+ 내일 

시내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 
잠시 엿들었다 
"내일" 

시내의 변두리는 
저녁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하루. 

웬일인지 나도 
즐거워져서 
생각이 났다 
"내일" 


+ 흙과 풀 

엄마가 모르는 
풀 아기들을, 
몇 천만의 
풀 아기들을, 
흙은 혼자서 
키웁니다. 

풀이 푸릇푸릇 
무성해지면, 
흙을 숨겨 
버리는데도. 


+ 별의 수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가자. 
언제언제 
까지나. 


+ 연꽃과 닭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다 

그리 하는 것은 
연꽃이 아니다 

달걀 속에서 
닭이 나온다 

그리 하는 것은 
닭이 아니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 깨달음 또한 
나의 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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