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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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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복 / 리육사
2018년 02월 28일 01시 09분  조회:2637  추천:0  작성자: 죽림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예고한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 친필원고 '편복'.
'편복'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작품으로 당시에는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다.
2018.2.27

 

 

편복/이육사

 

 

 

 

 

광명(光明)을 배반(背反)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채(城砦)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에 왕자(王者)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고(庫)간으로 도망했고

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世))에 상장(喪裝)이 갈갈이 찢어질 긴 동안

비둘기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박쥐여! 고독(孤獨)한 유령(幽靈)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어 보지도 못하고

딱짜구리처럼 고목(古木)을 쪼아 울리도 못 하거니

만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 외일 고민(苦悶)의 이빨을 갈며

종족(種族)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

가엾은 박쥐여! 영원(永遠)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제 정열(情熱)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不死鳥)는 아닐망정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杜鵑)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心琴)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肝)을 노려도봤을

너의 머―ㄴ 조선(祖先)의 영화(榮華)롭던 한시절 역사(歷史)도

이제는「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박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運命)의 제단(祭壇)에 가늘게 타는 향(香)불마자 꺼젓거든

그많은 새즘승에 빌붓칠 애교(愛嬌)라도 가젓단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洞窟)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妖精)이여!

 

 

 

 

<편복> 역시 반어적 현실과 당위적 가치 사이의 대조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영탄조로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돌아다니는
어둠의 왕자,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번도 속악여 보지 못한
고독한 유령 박쥐는 일제 식민지 통치로 국권과 터전을 상실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는 것이 쉽게 드러난다.


첫연에서 시인은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돌아다니며 광명을 배반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박쥐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는 광명을 상실하기 전에
박쥐가 가지고 있던 화려한 터전을 의미한다. 현재 이 터전은 검은 세기의 어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박쥐는 광명과 모든 권력을 상실한 채 고독한 유령처럼 무너진 옛 터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다.


두번째 연에서는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국권과 나라를 상실하고 갈 곳조차 없는 무력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제시하고

3연에서는 불사조, 두견새와 박쥐를 비교하여 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지도 못하고
두견새처럼 심금을 흔들어 사람의 눈물을 짜내게 하지도 못하는 박쥐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불사조처럼 제 목숨을 던져 버리지도 못하고 두견새처럼 피울음 울어
남의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못하는 박쥐는 당시 우리 민족의 굴욕적이고
처참한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4연에서는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과 현재를 대조시켜
아이누 족속처럼 멸망해가는 우리 겨레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 박쥐는 이 땅의 왕자로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암사슴의 간을 노려도 봤음직하다.
그러나 이 검은 세기에 종족과 터전을 박탈 당하고 무너진 성채 위를 배회하는
박쥐는 광명의 세계로부터 쫓겨난 어둠의 왕자에 불과할 뿐이다.
멸망해가는 아이누 족처럼 언제 흔적 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 우리 민족의 운명이며
그것은 바로 퇴화한 박쥐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박쥐의 비극성은 극에 달한다.
이미 운명의 제단의 향불마저 다해 버린 시간에 박쥐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어둠의 동굴 속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정도로 무력하다.


광명을 상실하고 어둠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겨레를 어둠의 왕자인 박쥐에 비유하여 표현한 시이다.
운명이 다한 박쥐는 과거의 화석일 뿐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어둠 속에서 사는 우리 민족 역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유물이며 검은 화석의 요정일 뿐이다.
박쥐 역시 퇴화하기 전에는 왕자다운 모습을 지녔을 것이고 영화롭던 시절 또한 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 역시 그처럼 영광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지금 박쥐의 신세나 다름없는 것이다

 
 

 

편복(蝙蝠

 

蝙蝠은 박쥐를 말한다박쥐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이육사의 이 <편복>

시는 1930년대 말에 쓴 것으로 사료되지만 당시에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이다당시에

이 작품이 발표되었다면 이육사는 아마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이 시는 1956년에 낸 <육사시집>에 발표한 작품인데올해 3,1절을 맞아서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었다. <편복>의 육필 원고는 유족들이 보관해 오다가 <이육사 문학관>

기증했다.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은 일제 시대의 암흑 속에서 갈았던 한국인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햇빛이 눈부신 세계를 두고 억압받고 살았던 민족을 박

쥐로 보았던 것이리라동굴 외에는 살 곳이 없는 가엾은 박쥐영원한 보헤미안.

두견새처럼 空山에서 울어보지도 못하는 것이 박쥐다옛날 영화롭던 시절그런 역

사의 과거를 지녔던 선조의 영화를 꿈꾸고 있을 뿐가엾은 박쥐는 멸망하는 겨레

라고 했다모든 새들이 자유의 세계에서 노래하고 푸른 하늘을 날건만 어두운 동굴

로 돌아가야 하는 검은 화석의 요정그게 박쥐의 삶이며 운명이다이육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저항시를 3,1절에 읽게 되었다나라가 없는 민족의 울분의 시를 우리에

게 선물한 이 시를 간직해야 하리라.

 

 

 

 

 
 
  이육사 선생의 시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편복'(蝙蝠).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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