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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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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태양을 삼키다...
2017년 08월 17일 02시 16분  조회:1967  추천:0  작성자: 죽림


 2. 

  디카詩를 탈경계의 문학, 크로스오버 문학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문학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디카(혹은 디카 사진)와 시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과 문자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서화 일치의 전통을 생각하면 전통의 맥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디카詩는 디카로 찍은 사진과 함께 쓴 시라고 볼 수 있으나, 그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고, 즉흥적으로 명명된 것도 아니다. 디카詩는 예로부터 시서화 일치의 전통성에 기저를 두고 있는 것이다”3)). 

  ‘디카詩의 디카 사진과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이다. 시 없이 디카詩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혹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사진 예술로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상옥은 그러나 디카詩에서의 ‘사진에 대한 시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시로 쓴 것”이라는 포탈사이트 파란의 용어사전에 등재된 디카詩에 대한 정의를 부인하고, 디카詩를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언어로 재현하는 것”(강조는 발제자)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4) 문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이고, 그리고 이것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다. 시적 형상[혹은 시적 이미지]의 포착이 먼저이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시적 형상의 포착’이 없으면 언어로 재현하는 것도 없다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옥이 그렇다고 ‘시에 대한 사진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옥은 디카詩에서 시와 사진이 상호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주기를 요청한다. 혹은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간주해주기를 요청한다. 나아가 상호 융합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를 요청한다. 디카와 詩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디카詩는 말 그대로 디카詩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라는 것이다. 인터넷 상의 한 대담에서 이상옥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진을] 문자화하는 과정은 일종의 번역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혹은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대언자(에이전트 agent)의 기능으로 보아도 좋고요. 사진영상(날시)과 문자는 동일성의 개념으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5) 




‘동일성의 개념’이라는 말에 주목하는 것이다. 사진에 대한 시의 우위․시에 대한 사진의 우위가 아닌 ‘상호 융합적 성격’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옥의 디카詩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 대해, 즉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대해 김규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응원하고 있다. 




  디카시는 […] 디지털 카메라로 자연과 사물의 시적인 장면을 포착하고 그 사진(이미지)에 걸맞는 문자시를 덧붙이는 것이다.6) (강조는 발제자) 




넓은 의미의 디카詩와 좁은 의미의 문자시를 말하였다. 

  “시적 장면”(혹은 시적 형상)의 “포착”은 전통적인 창작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시적 충동’과, 혹은 詩魔와, 다를 바가 없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충동 말이다. 시적 충동이 시적 충동을 불러일으킨 자연이나 사물에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고, 시인은 그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문자시로 재현한다. 발제자는 시적 충동이 시에서 중요한 만큼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시적 충동이나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神性의 영역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상옥의 디카詩에 대한 정의, 즉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언어로 재현하는 것’ 중 뒷부분 ‘디카 사진을 언어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언어’를 - 넓은 의미의 디카詩에 대해 - ‘좁은 의미의 (문자)시’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상대적 이미지 시, 관념시, 절대적 이미지 시, 무의미시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도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시를 또한 묘사적 이미지의 시와 서술적 이미지의 시로 나눌 수 있다. 디카詩의 ‘문자시’는 묘사적 이미지의 시에 일견 더 가까워보인다. 묘사는 ‘객관적 묘사’이고 서술은 ‘주관적 서술’이기 때문이다. 혹은 사진(술)은 객관적 묘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 예술에서도 객관적 묘사보다는, 절대적 이미지보다는, 주관적 서술이 강조될 수 있다. 레이M. Ray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레이의 다다이즘 및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디카詩의 ‘문자시’를 ‘사진 속의 재현물’과 동일화시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디카 사진을 주관적으로 서술(혹은 해석)할 수 있다. 

  디카詩의 ‘묘사적 문자시’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①비 내리는 봄날 늦은 오후 

    구형 프린스는 통영 캠퍼스로 달린다 

    차창을 스치는 환한 슬픈 벚꽃들 아랑곳하지 않고 

    쭉 뻗은 고성 가도(固城 街道)의 가등은 

    아직 파란 눈을 켜고 있다. 

    ― 이상옥, 「고성 가도(固城 街道)」 




  ②이름 모를 꽃나무가 드리워진 

    녹색의 녹색 

    근심 없는 

    벌들만 잉잉거리는 

    산중 허니문 

    나뭇꾼과 선녀가 잠시 

    머물렀을 것 같은 

    ― 이상옥, 「빈집」 

      

주관적인 서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① 디카에 나타난 “통영 캠퍼스”를 향해 “달”리는 “구형 프린스”, “차창을 스치는 […] 벚꽃들”, “쭉 뻗은 고성 가도(固城 假道)의 가등”들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환한 슬픈 벚꽃들”이라고 한 것이 주관적 서술일까. 

  ② 역시 디카에 나타난 “산중” “빈집”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름 모를 꽃나무”, “벌”들과 함께. “근심 없는/ 벌”, “허니문”, “나뭇꾼과 선녀가 잠시/ 머물렀을 것 같은”이라는 표현이 주관적 서술일까. 

  이번에는 ‘서술적 문자시’의 예를 들어보자. 역시 이상옥의 「낙조」이다. 전문이다. 




  하루치의 슬픔 한 덩이 

  붉게 떨어지면 

  짐승의 검은 주둥이처럼 

  아무 죄 없이 

  부끄러운 산(山) 

   

‘언어 너머 시’(날시 raw poem)7)에 화자가 개입되어 날시에 새로운 내포를 부여한 경우이다. 간단히 주관적 문자시, 서술적 문자시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행의 “붉게 떨어지면”을 제외하고 전부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 “하루치의 슬픔 한 덩이”가 주관이고, 특히 ‘슬픔 한 덩이’가 주관이고, “짐승의 검은 주둥이처럼/ 아무 죄 없이/ 부끄러운 산(山)”이 주관이다. 압권은 “짐승의 검은 주둥이처럼/ 아무 죄 없이/ 부끄러운 산(山)”이라고 한 것이다. 세월을 가게 한 것이, 하루치의 태양을 떨어뜨리게 한 것이, 마치 산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산이 태양을 삼키는 ‘시적 장면’을 포착하였기 때문일까. 

  ‘시와 소통’이란 테마로 문제를 국한시킬 때 ‘묘사적 문자시가 소통을 더 용이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을 옆에 두고 시를 감상할 때 이 소통은 훨씬 더 용이해진다. 서술적 문자시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동의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같은 디카 사진을 보고 독자들에게 시를 - 주관성을 가미해서[혹은 느낀 점을 가미해서] - 만들어보라고 할 때 전혀 다른 시들이 나오게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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