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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산문적 운문(韻文)으로서 문학의 가장 핵심 장르이다...
2017년 05월 22일 23시 02분  조회:254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창작이론.2

1) 시 읽기와 쓰기

① 운문(韻文)으로서의 시

시는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장르이다. 문학이 언어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시가 언어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차원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산문 문학이라고 하는 소설의 경우 언어는 작가가 구성한 허구적인 세계를 짓는데 필요한 재료로서의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면 시에서는 언어 자체가 형식이요, 내용이며 표현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고로 시에 동원된 언어는 그 언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언중(言衆)이 가장 아끼고 즐겨 쓰는 어휘들이며, 표현법에서도 가장 친밀감을 주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시는 산문의 상대 개념으로 운문(韻文)이라고 부른다. 운문, 즉 시는 음악이 한 소절씩 마디로 끊고 화음을 유도해 발전해가듯 표면상의 시구가 주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각종 비유나 상징, 이미저리 따위들을 동시에 이끌고 발전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설가들이 습작기엔 시짓기를 병행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운문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된다. 즉, 다듬고 고치며, 정확하고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데는 시를 짓고 퇴고할 때의 연습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문으로서의 소설과 운문으로서 시라는 맥락에서 각각의 개념이 정리될 수 있다.

소설은 많은 어휘를 무제한으로 동원, 형상화하려는 큰 주제를 감안 설명적인 문장이나 묘사적인 문장을 취할 수 있다. 또 대화체의 형식과 지문(地文)으로 변화있는 전개가 가능하다.

시는 많은 어휘 중에 해당작품에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는 대신 함축과 온갖 수사적 표현이 요구된다. 시 한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휘 하나하나가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시는 노래 가락으로서의 의의도 있다. 그래서 작게는 어휘 하나하나의 음조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언어로써 써진다는 사실, 언어의 본질을 깨우치며 다양한 성질을 갈고 다듬는 작업인 것이다.

② 읽고 모방하기

시를 짓는다는 것은 일차로 남의 작품을 모방하는 단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이 읽고 어떤 점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 내지 몇 권의 시집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좋게 느끼는 점들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즉 시의 전체 분위기, 시의 내용, 특정 어휘나 구절에 대한 표현법 등을 분석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 A의 시집을 읽으며 습작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A의 아류화되는 경향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빠지는 것이 좋다. 그다음 B의 시집을 읽을 때는 B의 아류에 가깝게 스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같은 과정을 몇 차례 넘기면 신통하게도 어느 누구의 아류도 아닌 자기만의 특유한 개성으로 독립하게 마련이다. 시인은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사물을 대하는 심성이나 경험세계, 문화의 향수등 모든 인간 조건에서 상이하기 때문에 모방이나 아류화란 있을 수 없다. 의도적으로 모방하기 전에는 말이다.

비교문학에서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어떤 종족이던 어느 시대이건 상관없이 비슷한 상상혁과 추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지어낸 신화 등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 짓기에서도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며 습작할 때 그 시의 장점들을 내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자라면 연습하는 곡을 사전에 명인(名人)이 연주한 것을 비교 감상하여 피아노곡의 진수를 깨우치면서 자기 연습이 이루어질 때만 빠른 발전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③ 쓰고 보여주기

스스로 시라고 지어 본 것은 누구에겐가 보여주어야 한다. 보여주지 않고 수백편을 지어본들 그것은 시가 되기는 어렵다. 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자기 스스로는 분별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설령 분별해 낸다고 생각하더라도 객관성이 부족하다.


국화 한송이
평탄한 오솔길로
곱게 단장한 처녀가
연분홍
곱게 물들이네.

사랑따라 제비오고
남아따라 가오리오
뾰족한 입술엔
한없는 사랑이 깃들어라.

가슴에 담뿍 안고 온
쓸쓸히 죽어가는
침실엔 전기가 왔노라.

이 작품은 한 사업가 Y씨가 군대생활 중에 써놓은 작품 중의 한편이다. 그는 시골에서 떠나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이어 군에 입대하여, 고향을 그리며 또 군대생활이란 특수 사회에서 느끼게 되는 향수병에 젖어 있을 때의 작품이라고 했다.

Y씨가 필자에게 가져온 원고 뭉치는 대학노트 두 권에, 군대용 화장지에 쓴 원고 두 뭉치 등 한 보따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업에도 성공했고 연륜에 맞춰 젊은 시절에 쓴 시들을 정리하여 한 권의 문집을 내겠다는 포부였다.

위에 인용한 시는 작가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 즉 시로 쓸 당시의 심정을 인지(認知)하기에는 충분하다. 즉, '어떤 심정에서 썼구나'하는 정황 정도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우선 맞춤법이 안 맞고(제시된 예문에서 교정을 보았음), 구문도 원활하지 않다. 첫 연 3행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1행인 "국화 한송이"를 별개의 구문으로 처리하던지, 아니면 2행에서 처리되어야만 3행의 독립된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국화 한송이"와 "처녀"가 동격으로 들어온다. 국화를 처녀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도 구문 전개상 모순이 있다.

또 둘째연의 제2행에서 느닷없이 "남아따라 가오리오"라고 표현한 것은 시상의 전개상 큰 무리이다. "뾰족한 입술에"의 표현은 국화꽃의 꽃잎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한 듯하나 너무 진부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셋째 연에서도 1행은 무엇을 '알고' 왔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 행에선 "침실엔 전기가 왔노라"라고 했다. 시 전체의 분위기를 깨어버리는 대목이다.

이 시를 연별로 내용을 뜯어보면 1연은 들국화를 처녀의 모습으로 비유하고, 2연에서는 그 처녀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이라는 흘러간 시간에 얹어 놓았다. 3연에서 그리움의 추억을 현실로 자각하는 것으로 맺었다.

위의 Y씨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개작(改作)해 보았다. 가능한 한 원작자의 심경이 되어 보고, 나타난 구성과 전개에 충실하게 고쳐 본 것이다.


들국화 한송이
오솔길에 발돋움하고
밤이 가듯 밝은 아침에 편다
발길 멈추는 고운 처녀의
손끝에 물드는
연분홍빛 아픔
사랑의 빛깔이 이런건가
사나이의 그리움이
저렇게 피어있는 고
오솔길따라 十里를 가며
내 그리움 구비치는 사연
가슴에 한 아름
피어나는 들국화
언제 보아도 너는
내 사랑, 내 그리움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쓸 때보다 남의 작품을 퇴고하거나 완전히 개작을 할 경우, 이것이 더욱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든다. 결과도 좋은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작품을 쓴다는 것은 작자의 특유한 감각과 발상에 의해서만 구상되고 완성시킬 수 있는 고유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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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락(黃落) 
―김종길(1926∼)

추분(秋分)이 지나자,
아침 저녁은 한결
서늘해지고,

내 뜰 한 귀퉁이
자그마한 연못에서는
연밤이 두어 개 고개 숙이고,

널따란 연잎들이
누렇게 말라
쪼그라든다.

내 뜰의 황락을
눈여겨 살피면서,
나는 문득 쓸쓸해진다.

 

 

나 자신이 바로
황락의 처지에
놓여 있질 않은가!

내 뜰엔 눈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다시
봄은 오련만


내 머리에 얹힌 흰 눈은
녹지도 않고, 다시 맞을
봄도 없는 것을!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서늘한 감각으로 그 옛날 문학청년들 가슴에 뜨거운 선망과 감탄을 불러일으킨 ‘성탄제’의 시인 김종길. 미수(米壽)에 이르신 선생이 시 전문지 ‘유심’에 최근 발표한 작품이다.
 

 

황락(黃落)은 한 해의 성장을 마친 식물이 누렇게 물든 잎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가을이 깊어져 황락의 풍경을 보이는 뜰을 둘러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바로/황락의 처지에/놓여 있질 않은가!’, 새삼 깨닫는 화자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내 뜰엔 눈 내리고/얼음이’ 얼겠지. 그래도 뜰엔 다시 봄이 오련만,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아라. ‘내 머리에 얹힌 흰 눈은/녹지도 않고, 다시 맞을/봄도 없는 것을’…. 선생이 이 시의 시작노트에서 밝혔듯 ‘인생의 일회성이 인생 황락기의 애수의 근원’일 테다. 하지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나날들이다. 봄도 한 번이지만 가을도 한 번, 겨울도 한 번이다! 계절은 저마다 아름답다. 쓸쓸하게, 그러나 거칠지 않게 맞이하는 시인의 황락의 계절.

선생님, 몇 해 전 얼핏 뵌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숱지시더군요. 제 주위에는 ‘흰머리라도 많이만 있었으면 좋겠네!’ 하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랍니다.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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