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김춘수 - 꽃
2016년 05월 01일 18시 45분  조회:4958  추천:0  작성자: 죽림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243 중국조선족시인 정몽호 篇 2024-08-29 0 899
2242 중국조선족시인 황장석 篇 2024-08-29 0 845
2241 중국조선족시인 김태갑 篇 2024-08-29 0 817
2240 중국조선족시인 김동호 篇 2024-08-29 0 683
2239 중국조선족시인 홍군식 篇 2024-08-29 0 621
2238 중국조선족시인 김춘산 篇 2024-08-29 0 617
2237 중국조선족시인 전광훈 篇 2024-08-29 0 856
2236 중국조선족시인 김진룡 篇 2024-08-29 0 932
2235 중국조선족시인 허룡구 篇 2024-08-29 0 748
2234 중국조선족시인 전춘매 篇 2024-08-29 0 797
2233 중국조선족시인 박설매 篇 2024-08-29 0 776
2232 중국조선족시인 박화 篇 2024-08-29 0 588
2231 중국조선족시인 설인 篇 2024-08-29 0 659
2230 중국조선족시인 리욱 篇 2024-08-29 0 539
2229 중국조선족시인 한영남 篇 2024-08-29 0 616
2228 중국조선족시인 심명주 篇 2024-08-29 0 722
2227 중국조선족시인 전병칠 篇 2024-08-29 0 709
2226 중국조선족시인 박문파 篇 2024-08-29 0 794
2225 중국조선족시인 김인덕 篇 2024-08-29 0 686
2224 중국조선족시인 송미자 篇 2024-08-29 0 748
2223 중국조선족시인 리순옥 篇 2024-08-29 0 635
2222 중국조선족시인 리춘렬 篇 2024-08-29 0 719
2221 중국조선족시인 김현순 篇 2024-08-29 0 966
2220 중국조선족시인 리임원 篇 2024-08-29 0 473
2219 중국조선족시인 리성비 篇 2024-08-29 0 722
2218 중국조선족시인 주성화 篇 2024-08-29 0 704
2217 중국조선족시인 주룡 篇 2024-08-29 0 644
2216 중국조선족시인 전경업 篇 2024-08-29 0 690
2215 중국조선족시인 리상학 篇 2024-08-29 0 686
2214 중국조선족시인 리호원 篇 2024-08-29 0 801
2213 중국조선족시인 허흥식 篇 2024-08-29 0 689
2212 중국조선족시인 김문회 篇 2024-08-29 0 823
2211 중국조선족시인 리근영 篇 2024-08-29 0 669
2210 중국조선족시인 현규동 篇 2024-08-29 0 686
2209 중국조선족시인 김준 篇 2024-08-29 0 619
2208 중국조선족시인 김영능 篇 2024-08-29 0 717
2207 중국조선족시인 김동진 篇 2024-08-29 0 738
2206 중국조선족시인 김응준 篇 2024-08-29 0 675
2205 중국조선족 우화시인 허두남 篇 2024-08-29 0 931
2204 중국조선족시인 박문희 篇 2024-08-29 0 885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