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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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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쓰면서 질문을 계속 던져라
2016년 02월 21일 05시 28분  조회:443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 김정환, 공적인 죽음을 말하다
공적인 죽음, 인문주의적 파르티잔의 욕망
글 김도언 | 사진 이흥렬
죽음이 있으니 인생에 불가능은 당연히 있고 문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불가능인가, 불가능한가다. 죽음이 끊임없는 (불)가능의 변증법을 모두 치르거나 겪고 난 후에도 있는 마지막 불가능이고 가능이다. 그 이전 불가능은 대개 지쳤거나 게으른 것에 다름 아니다. 잔당(殘黨)의 울화를 닮은. ―김정환 산문 ‘현실의 물증, 접속사로서의 죽음’(《21세기문학》 2015년 봄호)에서.

“모든 시는 정치적이다”
합정동에서 양화대교로 한강을 건너면 곧 당산동이다. 거기 오래된 아파트에, 거실 한 가운데 놓인 책상 앞에 ‘그’는 정물처럼 그대로 있다. 그는 그냥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를 마음대로 사용했다. 신기한 것은 수많은 이들의 손을 탄 이후에도 그는 그대로, 처음처럼 닳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닳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는 사람, 시인 김정환 얘기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시인 서효인과 가진 인터뷰(《21세기문학》 2015년 봄호)에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모든 시는 정치적이야. 김수영이 모든 좋은 시에는 죽음의 리듬이 있다고 말한 것, 그게 바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야. 정치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나누는 일인데, 공적이라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한 자기 죽음 같은 거거든. 일단 죽음을 통과해야 당대의 미학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건) 공적인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공적인 죽음과 공적인 희생. 그가 죽음과 희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어딘지 심상하지 않게 다가왔는데,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의 입으로 발음한 그 단어들이 자기가 끌고 나갔던 문학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가 연역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그가 해 온 모든 방대한 작업이 공적인 죽음을 이해한 자의 의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는 앞서 얘기한 강변동네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수십 년째 살고 있다. 이 한결같음은, 시인으로서, 저술가로서, 그리고 번역가로서 그의 삶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제법 중요한 실마리 구실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매우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다. 그 행위의 구체성이 시인과 작가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일 테다. 시인은 군인이나 경찰처럼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행위적 존재라는 말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행위란 운동성을 지니는 것이어서 지속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게 사유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일임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내 생각에 글쓰기라는 ‘행위’ 속에서 가장 적확하게 정의되고 있는 시인이 바로 김정환인 듯하다. 그 말고 누가 중단 없는 ‘행위’의 운동성을 통해 자신이 시인인 것을, 당대의 지식인인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 보였는가.
그가 그동안 펴낸 책은 물경 200권. 1년에 한 권씩 펴내도 200년, 1년에 두 권을 펴내도 100년이 걸리는 놀라운 양이다. 글만 쓰는 게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셰익스피어 전집과 세계 현대 시인들의 전집을 번역하고 있다. 이 멈추지 않는 운동성의 행위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객관적 타자성을 탈색해야 가능하다. 객관적 타자성이란, 수요를 계산하는 공급자의 시각이다. 그런데, 시인 김정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면의 각성에 의한 공적인 죽음을 수행하는 행위여서 수요와 공급의 ‘관제성’을 일치감치 뛰어넘는다. 그에게 글쓰기는 차라리 회의와 성찰과 자기긍정이 극적으로 통합된 아니 애초부터 무화된 주술성과 즉물성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도 보인다.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로운 삶.
내가 인터뷰어가 되어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관제성을 뛰어넘는 순수한 정치 행위자로서의 시인의 삶과, 죽음까지 엮어내고자 하는 그의 ‘총체적’ 노력이 오늘 우리 문학의 조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지 부족한 것 같고, 인문주의적 파르티잔이라 칭할 만한 그의 비정상적인 에너지에 대한 원색적인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아무려나, 이 인터뷰는 100퍼센트 실패가 예정된 것이다.
콤플렉스와 분열
문청 시절부터 그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압도적인 괴물 같은 능력의 소유자에게도 혹여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 인간이라면 열등감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상처에서 꽃을 피운다는 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래서 인터뷰어로서 그 앞에 섰을 때 작심을 하고 첫 번째 질문을 통해 그의 콤플렉스를 유인해보고자 했다. 그에게 콤플렉스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 그의 출생지 ‘서울’이라는 향토성이 거세된 공간의 어떤 한계로부터 촉발되는 건 아닐까라는 짐작을 했다. 그래서 예의를 가장해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가 담배를 빼어 물 때, 그러니까 방심할 때를 기다려.
김도언 : 선생님은 서울에서 태어나셨잖아요. 비교적 서울의 전통적인 정서가 남아 있는 마포라는 곳에서 태어나셨는데, 보통의 지방 출신 시인 예술가들이 각각 자신의 고향을 독자적인 감수성의 전진기지로 삼아 문학을 시작하고 심화시키는데, 대한민국의 중앙이자 수도인 서울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다른 작가나 시인들의 문학적 고향을 부러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김정환 : (다소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지금은 풍토가 달라졌는데 옛날에는 문단 어른들이 내가 술 잘 먹고 잘 노니까 좋아하다가도 서울 출신인 걸 언급하면서 너 글 쓰기 힘들겠다. 그러다 또 몇 달 지나면 내가 서울대 나온 것까지 곁들여 너 정말 글쓰기 힘들겠다, 이런 말씀들을 했어요. 거기에다가 난 또 영문과잖아. 그러니까 문단 어른들 말씀은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잘난 척하다가 글을 제대로 못 썼던 서울대 출신 문인들의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한 거였지. 사실 뭐, 서울대 출신들이 문학에 약하긴 하지. 그런데 지금은 달라진 게 요즘 젊은 작가들은 50퍼센트 이상이 서울 출신이에요. 그만큼 서울이 넓어졌지. 내가 마포 살 때는, 사실 사대문 안이 아니면 서울로 쳐주지도 않고, 마포 촌놈이라고 했거든. 그래서 시골 출신 그리고 서울 사대문 출신 양쪽에서 모두 날 안 쳐줬지.(웃음)
근데 내가 성격이 뻔뻔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런지 후회한 적도 없고, 서울 출신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았어. 그리고 내가 서울을 좋아해요. 서울이 내 고향이니까 말야. 물론 내 세대에는 서울과 지방에 대한 구분이 좀 있었고, 근대화된 도시에서 산다는 것과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데, 나는 오히려 서울 출신인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경상도, 전라도가 정치적으로만 경쟁심이 있는 게 아니라 워낙 역량이 엄청나. 서울이나 충청도도 별로 내색을 못했을 때부터요. 나보다 한 열 살 정도 위로 가면 경상도랑 전라도 문학이 정말 쎄지.

여기까지 들었을 때, 그로부터 콤플렉스를 유인해보겠다는 내 졸박한 의도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 문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향토로서의 농촌이 와해되고, 그곳을 탈주하는 자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수용하고 배려하면서 성장해 온 측면이 있다. 김정환이 지적한 것처럼, 그의 바로 윗세대에서 내로라하는 전라도 경상도 출신 문인들이 배출됐는데, 그들이 상경해 각기 문학의 정부 역할을 자임하면서 한국문학 특유의 에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서울 출신의 희귀한 시인이 위축됨 없이 자기 문학을 밀고 여기까지 온 것은,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파르티잔의 정부를 세운 것은, 사실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이색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김정환이 덤덤하게 말한 것처럼, “뻔뻔스러운 데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 역시, 그가 말했던 공적인 죽음과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콤플렉스란, 사적인 죽음이나 삶의 세계를 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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