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4월 2025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사진은 미화되지 않는 기록
2016년 01월 15일 23시 20분  조회:3270  추천:0  작성자: 죽림
대만 嘉義시에서 (유리구두 교회).

 
한국 다큐사진의 첫 장을 연

                            이경모 선생
격동기 한국현대사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
 
   
 

 사진은 기록이다. 그것도 윤색되고 미화되지 않는 기록이다.

특히 다큐사진은 그 자체가 역사의 재현이자 하나의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다큐의 첫 장을 연 고 이경모 선생은 한국사진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 역사현장에 근접해 있었고 목숨을 위협 받는 순간에도 쉼 없는 카메라를 눌렀다. 다큐사진작가로써 고 이경모 선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순사건이다. 격동의 해방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기이자 민족의 암흑기였다.

해방이후 좌우익이라는 이념의 악령이 한반도를 휩쓸었고 그 악마적 대치는 수많은 무고한 인명의 살상과 비극을 잉태한 것이었다. 형제도 없고 이웃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시대가 결국 폭발한 것이 바로 여순사건이다. 그는 바로 그곳에 있었고 그 참혹한 학살의 현장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경모는 광양읍 인서리에서 나고 자랐다. 본래 그는 화가 지망생. 1944년 18세의 광주서중 학생 이경모는 제23회 선전(鮮展)에 입선했다. 당시 상당한 화제감이었던 이 행운으로 중학생이던 이경모는 일본 우에노 미술학교 진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전남 광양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지방유지인 부친은 경성법전 진학을 권유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처지의 젊은 이경모는 야외에서 그림 스케치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당시 공개추첨 방식으로 겨우 구입할 수 있었던 값비싼 카메라를 메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해방직전까지 광양에 눌러앉아 소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해방직후부터 전혀 예기치 못했던 ‘현대사 격동의 현장’을 운명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그의 사진이 없었더라면 우리 현대사의 이미지들은 얼마쯤은 황량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듣는 사진작가 이경모. 이경모가 사진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돼 한반도가 소용돌이 치던 1946년 1월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의 사진부장이 되면서 부터다. 이경모의 나이 스무 살 되던 해다.

호남신문은 일제시대 도 단위 신문이었던 전남신보를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 전남건준위가 접수해 문을 연 것으로 사장은 당시 전남 건준위장이었던 박준규가 맡았고 부사장겸 주필은 노산 이은상이었다.

입사한 계기는 노산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1938년 이후 은둔해 온 노산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광양에 내려왔고 여기서 광양지역의 유지였던 부친과 교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부친의 심부름으로 키도 작고 볼 품 없는 사람에게 쌀 봉지를 갖다 주고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노산’이었다. 노산은 이후 1945년 5월 경찰서를 기습할 계획을 세웠다가 정보가 누설돼 붙잡힌 후 광양유치장에서 해방을 맞았고 호남신문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이경모를 사진기자로 불러올렸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이경모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전남 광주와 여수, 순천, 광양 등지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가 1945년 8월 시점에 찍은 광양의 사진은 해방 직후 벌어졌던 보편적 상황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한국 사진사에서 바라본 ‘이경모 사진’의 진수는 무엇보다 여순사건의 기록이다. 1946년 1월부터 호남신문의 유일한 사진부 기자로서 부장직을 겸임했던 그는 이 신문사 근무중 여순사건과 맞닥뜨린다. 여순사건은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48년 10월19일 밤에 제14연대 1개 대대병력이 일으킨 봉기가 그 시발이다. 이튿날인 20일 출근하면서 이 소식을 접한 그는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판단에 따라 곧바로 시가전이 한창인 순천을 찾는다.

취재장비는 필름을 단 한 장만 장착해 단발승부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일제 오토프레스 미놀타. 순천지검에 설치된 반군토벌사령관 송호성 준장의 22일 기자회견장에 유일한 사진기자로 참석한 것도 그다. 그가 좌우익 충돌의 참상을 담은 중요한 사진을 연속적으로 얻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신발이 가지런히 비어져 나온 채로 멍석에 둘둘 말려 지게 위에 올려져 대강 수습된 시신, 그 앞에서 석양으로 그림자를 길게 늘인 아낙이 자신의 옷고름을 쥐고 울음을 삼키고 있는 비통한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전시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학살, 살육, 그것도 동족간 살육현장을 한 걸음 비켜선 채 포착한 이 사진이 전해주는 고발정신과 휴머니즘은 오늘날에도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극의 리얼리티가 생생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신의 주인공이 이경모의 손아래 친구라는 점이다. 이경모의 증언에 따르면 시신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 김영배다. 당시 현장은 광양과 순천의 경계부근이었고, 이경모는 집안머슴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친구의 어머니를 달래는 한편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영배야,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연방 되뇌었다는 것이 그의 술회다.

이 때 잡은 여순사건의 현장사진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이미지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장면들이다. 여학생들이 죽창을 손에 쥔 채 사열을 받고 있는 대동처녀단 광양지부 결단식 사진 등 그의 사진은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경모 선생이 보도사진 작업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기간은 7년7개월에 불과하지만 그가 한국사진사에 남겨놓은 족적은 현장성과 역사성과 더불어 실로 재평가돼야 한다. 53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55년 국제보도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사진 일선에서 멀어지게 됐던 그는 50년대 중반이후의 사진활동에서는 문화재 사진, 풍경사진 등 ‘한국적 영상미’로 영역을 바꿨다.

그러나 그의 여수·순천반란사건 다큐먼트는 다큐멘터리사진의 시초가 됐다. 이후 국방부 정훈국 소속의 사진대 문관으로 활동하며 신탁통치 논란, 좌우익 격돌, 여순사건과 6.25등의 현장을 두루 증언하면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더나가 선생이 파인더에 올리던 대상은 광양과 순천, 전남 지역의 농촌 스케치에 실린 정겨운 고향의 풍물들, 정통성이 훼손되기 전 우리 문화 유산과 문화재 등 다양했다.

복원되기 직전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서울 뚝섬과 나주 가마니 공판장 등 전국을 누비면서 찍은 사진들은 전시된 사진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으로, 다큐사진 작가로써뿐 아니라 예술작가로써의 평가가 수반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해준다.

한편 이경모 선생은 이화여대, 서라벌예술대, 동신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카메라 수집가였다. 그 역사의 편린들은 1996년 동신대 영상박물관이 세워지면서 집대성됐다. 선생은 국내 카메라 제작사인 대그룹의 유혹을 물리치고, 사진예술의 후진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 내에 카메라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모든 사진 관련 소장품을 기증했다. 만년에는 젊은 시절의 다큐사진들을 모아 두 권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이경모 사진집’을 펴내 자기정리도 마무리했다.

변변한 사진집 한 권 갖지 못한 작가들이 상당수인데 비해 이런 자기정리는 큰 행운이다. 또 사진집이 나오면서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92년)을 받았고, 백상출판문화상을 두 차례(90, 96년) 수상했다.

한국 다큐 사진의 시조로 평가 받아온 선생은 일흔 다섯의 나이로 지난 2001년 5월 17일 타계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3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13 상상을 초월하는 "콜라주" 작품들... 만들고싶어지다...(2) 2017-10-22 0 8373
412 매력적으로 미쳐라... 그리고 상상속에서 살아보쟈... 2017-10-22 0 2091
411 새들에게는 두번 다시 반복되는 하루가 있을가... 2017-10-22 0 1857
410 [이런저런] - 소금으로 조각품 만들다... 2017-10-21 0 1754
409 시작도 극적인 성격과 조각적인 성격을 융합해야... 2017-10-21 0 2168
40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자연아, 이야기하라... 2017-10-21 0 3432
407 상상을 초월하는 "콜라주" 작품들... 만들고싶어지다... 2017-10-21 0 2080
406 상상을 초월하는 "콜라주" 건축물들... 살고싶어지다... 2017-10-21 0 2920
405 지도를 오려 붙혀 그림 작품 탄생시키다... 2017-10-21 0 3112
404 그림과 그림 밖에서 봐야 할 그림과 그림 밖... 2017-10-21 0 4783
403 독일 녀성 화가 파울라 최초로 누드 자화상 낳다... 2017-10-21 0 3843
402 시작에서도 이미지의 무게가 손에 잡히는 느낌을 주어야... 2017-10-20 0 2743
401 [쉼터] - 사진으로 보는 세상 요지경... 2017-10-19 0 2341
400 조형언어가 추상적으로 표현된 형태시의 력작 그림... 2017-10-19 0 2596
399 전생애에 오직 4점의 풍경화만 그린 "인물화가" 2017-10-19 0 2315
398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3D 벽화 마을"이 있었으면... 2017-10-16 0 2280
397 시작에서 자아(自我)의 결산을 발달된 색채의 극치로 보여주기 2017-10-16 0 1933
396 거대한 마음의 상징물들을 그림화한 "귀를 잘라 버린" 화가 2017-10-14 0 2568
395 사군자화(四君子畵) =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린 그림 2017-10-13 0 3182
39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나무 구멍 사이에 그려진 그림들... 2017-10-13 0 2463
393 시작을 토속적인 방언으로 영원한 시의 지평을 열어야... 2017-10-13 0 1882
392 시작도 형(形)과 색(色)의 교향(交響)의 조합을 실현해야... 2017-10-12 0 1987
391 시인들도 시작에 자아도취하지말고 평생 만족할줄 몰라야... 2017-10-12 0 2102
390 시작도 실제 경험과 모순되는것의 합리적 느낌으로 쓰기... 2017-10-11 0 3087
389 시와 그림은 사촌지간이다... 2017-10-11 0 2234
388 2차원의 평편 위에 3차원 공간을 만든 화면의 연금술사- 에셔 2017-10-11 0 1899
387 네덜란드 판화가, 초현실주의 화가 - 에셔 2017-10-11 0 2404
386 [이런저런] + "그림의 마술사" =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 2017-10-11 0 2727
385 詩도 세로가로 이등분법(二等分)적 그늘과 양지로 표현해야... 2017-10-10 0 2548
384 한글, 우리 민족 이어주는 위대한 공동 유산 2017-10-09 0 1617
383 그림의 여백부분이 훌륭한 웅변적 표현력을 과시, 암시효과 2017-10-09 0 2306
382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그리기... 2017-10-08 0 2177
381 [쉼터] - 같은 사진을 찍어도 좀 남다르게... 2017-10-05 0 2365
380 [쉼터] - 위인 초상화 2017-09-29 0 1820
379 [이런저런] - 마광수님, "문인화" 범주에서 "외도"해보기... 2017-09-26 0 1643
378 [중국 이모저모] - 중국 하르빈 "건축예술광장"에서- 2017-09-25 0 2663
377 [고향자랑] - 중국 연변 황금가을 구경 오이소... 2017-09-25 0 1580
376 [그림한점] - "인생아리랑" 2017-09-23 0 1656
375 [미술시장] - 청록색 전면점화 "무제" 새 주인 찾았다... 2017-09-19 0 1561
374 마광수님은 화가의 꿈도 꿨었다... 2017-09-14 0 2523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