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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자춘(일한번역문)
2015년 07월 09일 09시 30분  조회:3534  추천:0  작성자: 망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번역:김정웅(연변대학 일어계)
 

 
어느 봄날의 저녘 무렵이였다.
당나라의 수도 낙약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멍하니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두자춘이라고 하며 원래는 부자집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날그날  살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가련한 처지가 되였다.
여하튼 그 때 즈음 낙양이라고 하면 천하에 어깨를 겨룰만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번창한 수도였기에 사람과 차들이 끊임없이 다녔다. 노인이 쓴 비단모자라든가 토이기 여성의 금귀걸이 그리고 백마에 장식한 색실로 만든 말고삐들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도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답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성문 옆의 성벽에 몸을 맞긴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이미 가는 달이 나부끼는 운무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마치도 손톱 자욱처럼 어렴풋이 하얗게 떠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있고 배는 고프고 게다가 이젠 어디를 가더라도 재워줄 곳은 없을 것 같고……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살 바엔 차라리 강에라도 몸을 던져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자춘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이렇게 목숨까지 버릴가하는 가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어디에서 왔는지 갑자기 그의 앞에 외눈박이 작은 눈을 한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고 서있었다. 그 노인은 석양 빛을 받아서  큰 그림자를 성문에 드리우면서 지그시 두자춘의 얼굴을 보더니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하고 건방지게 말을 걸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밤 잘 곳이 없어서 어쩌면 좋을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인이 갑작스런 질문에 두자춘은 눈을 내리 깔고 생각없이 정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런가. 가엽기도 하구나》
노인은 잠간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길가는 사람들을 빛추고 있는 석양 빛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내가 좋은 생각을 하나 가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약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면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반드시 한 수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황금이 묻혀있을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두자춘은 경악해서 내리 깔았던 눈을 올리 떻다. 그런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 노인이 어디를 갔는지 이미 근처에는 그와 비슷한 그림자도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창공에 걸린 달빛은 방금 전보다도 더욱 밝아지고, 쉴줄모르고 오가는 행인들의 위에는 이미 성급한 박쥐 두 세 마리가 펄펄 춤추고 있었다.
 

 
두자촌은 하루 사이에 낙양성에서도 제일로 가는 부자로 되였다. 그 노인의 말과 같이 석양에 그림자들 비추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을 밤중에 살그머니 파보았더니, 큰 수레에도 다 못 실을 정도의 황금이 한가득이 나온것이다.
큰 부자가 된 두자춘은 인츰 훌륭한 집 한 채를 사서 현종황제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사치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란릉의 술과 계주의 용안을 사들이고 정원에는 하루에도 네 번씩 색갈을 바꾼다는 목란을 심고 백공작새 몇마리를 풀어놓고 사육했다. 그리고 옥을 모으고 비단 옷을 짓고 향목으로 된 마차을 만들고 상아된 걸상을 사들이는 등 그 사치함을 하나하나 쓸려면 언제까지나 이 이야기가 끝이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자 이러한 소문들을 듣고, 지금까지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도 하지 않던 친구들이 조석으로 물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날이 지나면서 그 수는 불어나서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에는  이름 있고 재능 있는 남자와 미녀들이 많다고 하는 낙양성에서 두자춘의 집에 오지 않은 것은 한사람도 없을 정도로 되여버렸다. 두자춘은 손님들을 상대로 매일과 같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주연의 성대함은 이루다 입으로는 말할 수가 없다. 극히 일부분만 말하더라도, 두자촌이 금술잔에 서양에서 가져온 와인을 부어마이고 인도태생의 마법사가 칼을 삼키는 쇼를 열심히 보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20여명의 여자들중 10명은 비취로 만든 연꽃을, 또 10명은 마노로 된 목란꽃을 머리에 장식하고 피리와 거문고를 재미있게 연주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부자라 할지라도 돈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그 대단한 부자인 두자촌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는 사이에 점점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것은 박정한 물건이므로 어제까지 매일과 같이 오던 친구들도 오늘에는 문앞을 지나도 인사하로 조차도 오지 않는다. 끝내 3년째의 봄, 두자촌은 또 다시 이전과 같이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가 되고보니, 넓은 낙양성내에서도 그에게 잠자리를 빌려주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아니 잠자리를 내여주기는 커녕 지금은 물 한 사발도 베풀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저녘무렵, 또 한 번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로 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하고 서있었다. 그러자 역시 옛날 처럼 외눈박이 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뭘 생각하고 있냐?》라고 말을 거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자춘은 노인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듯이 눌길을 아래로 향한채로 잠간동안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날도 친절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이쪽도 전과 같이
《나는 잘곳 조차도 없기에 어떻게 된 판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주뼛주뼛 대답했다.
《그런가. 그것은 참말로 불쌍한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그르쳐 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황금이 묻혀 있을 것이다》
노인은 이런 말은 남기고는 이번에도 인파 속으로 깜쪽같이 숨어버렸다.
두자춘은 그 이튿날부터 즉시로 천하 제일의 대부자로 되돌아 갔다. 부자가 된 동시에 그는 변함없이 마음껏 사치한 생활을 시작했다. 정원에 피어있는 목란꽃,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백공작새, 그리고 칼을 삼키는 인도에서 온 마법사, 모든 것이 여전 그대로인 것이다.
때문에 한 수레 가득했던 그 엄청난 황금도, 또 3년이 지나는 사이에 깨끗이 없어져버렸다.
 

 
 《너는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외눈박이 노인은 세전째로 두자춘의 앞에 와서 같은 말을 물어왔다. 물론 그는 그때도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서 갸날프고 연약한 모양새로 운무를 비집고 나오는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저 말입니까. 저는 오늘 밤 잘 곳도 없어서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가. 그것은 가엽은 일이로구나. 그럼 내가 좋은 일을 하나 가르쳐주리라. 지금 이 석양빛 속에 서서 너의 그림자가 땅에 비추어지거던 그 배에 해당하는 부분을 밤중에 파보면 좋을 것이다. 틀림 없이 한 수레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노인이 여기까지 말하자 두자춘은 급히 손을 들어 그 말을 가로챘다.
 《아니, 돈은 이젠 필요없는 것입니다》
 《돈이 이젠 필요 없다고? 음…… 그럼 사치를 누리는 것에도 끝내는 실증이 났다는 말이네》
 로인은 의심스러운듯한 눈길을 하면서 지그시 두자촌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사치에 실증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입니다 》고 두자춘은 불평 가득한 얼굴로 돌견빈(突慳貪)에게 말했다.
 《그것 재미있네. 왜서 또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가?》
 
《인간은 모두 박정합니다.내가 큰 부자로 되였을 때는 간살부리며 빌붙지만은, 일단 가난해지면 보세요 상냥한 얼굴 조차도 보여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만약 또 한번 대부자가 되더라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노인은 두자춘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아니 넌 젊은 놈 답지 않게 기특하게 사리를 아는 사내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가난하게 살지라도 안온히 살 작정인가》
두자춘은 조금 망설이였습니다. 하지만 인츰 단념한 듯이 눈을 올리뜨고 호소라도 하듯이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것도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제자로 되여 선술을 수행할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숨겨서는 않됩니다. 당신은 덕행이 높으신 신선입니다. 신선이 아니라면 하루 밤 사이에 나를 천하의 대부자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나의 선생이 되여 불가사의한 선술을 가르쳐 주세요》
노인은 양미간을 찌푸린 채로 잠간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듯 하더니 이윽고 썽긋 웃으면서
《어찌 됐든 나는 아미산에 살고 있는 철관자(鉄冠子)라고 하는 신선이다. 처음 너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딘가 빨리 깨닫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두 번이나 대부자로 되게했지만 그 정도로 신선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나의 제자로 받아 들이기로 하리라》고 흔쾌히 응낙해 주었다.
두자춘은 기쁘기 그지 없었다. 노인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에 이마를 붙이고 몇번이나 철관자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니, 그렇게 례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의 제자로 되였다 할지라도, 훌륭한 선인이 될수 있는가 없는가는 너한테 달려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하여튼간에 우선 나와 함께 아미산 산중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다행히 여기에 대나무 지팡이가 하나 떨어져 있네. 그럼 서둘러 여기에 타게나, 단숨에 하늘을 날아보세》
철관자는 거기에 있던 푸른 대나무 한대를 주어 올리고서는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두자춘과 함께 그 대나무 가지에 말이라도 타듯이 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탔다. 그러자 불가사의하게도 죽장은 금세 룡이나 된듯이 기세 사납게 창공으로 날아올라서 맑게 개인 봄날의 밤하늘을 아미산의 방향을 향하여 날아서 갔다.
두자춘은 감담이 서늘하여 겁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래에는 단지 푸른 산들이 저녘 어스름 속에 보일 뿐으로서 그 낙양성의 서쪽 성문은(운무에 가려진 탓에) 어디를 찾아도 보여지지를  않았다. 그 사이 철관자는 허연 턱수염을 바람에 나붓기면서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엔 북해서 놀고 해질녘에는 창오
소매의 안감은 청사로되 성질 또한 조잡하구나
세 번이나 악양에 들어갔건만 사람조차 모르고
시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지난다   
 

 
두 사람을 태운 청죽은 어느 틈에 아미산에 날아내렸다.
거기에는 깊은 계곡에 인접한 폭이 넓은 하나의 큰 암석의 위였다. 너무나도 높은 곳이여서 창공에 드리워져 있는 북두칠성이 사발 만큼씩한 크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인적이 끊긴 산인지라 주의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겨우 귀에 들어오는 것은 절벽에서 자라고 있는 구불구불한 한 그루의 솔나무가 밤바람에 내는 소리 뿐이다.
둘이 이 바위의 우에 오자 철관자는 두자춘에게 절벽의 아래에 앉힌다.
《나는 지금부터 하늘에 가서 서왕모를 뵙고 올테니 너는 그 사이 여기에 앉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도리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내가 없어진 사이 여러가지 마성이 나타나서 너를 속이려고 할것인데 예를 들어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소리를 내여서는 않된다. 만약 한 소리라도 내면 너는 절대 선인이 될수 없다는 것을 각오하라. 알아들었어. 천지가 찢어지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거야》라고 말했다.
《괞찮아요. 결코 소리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이 잃더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 참을 것입니다》
《그런가 그말을 듣고 나도 안심했다. 그럼 나는 다녀오겠으니》
노인은 두자춘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 그 죽장을 타고서 밤 어둠에 자취를 감춘 산들을 떠나 하늘로 깜쪽 같이 없어져 버렸다.
두자춘은 단지 혼자서 바위 위에 앉은 채로 조용히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럭저럭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심산의 차건운 밤 기운이 엷은 옷을 스며들 즈음에 갑자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있는 자는 누구냐?》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두자춘은 선인의 가르침대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또 잠간 지나니 역시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목숨이 끊길 것을 각오하라》고 위엄있게 위협하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물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어디에서 왔는지 반짝반짝 눈빛을 번뜩이는 호랑이 한 마리가 공연히 바위 위에 뛰여올라서 두자춘을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사납게 날뛰였다.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솔나무 가지가 격심하게 와삭와삭 흔들린다고 생각할 찰나, 뒷켠의 절벽의 꼭대기로부터는 큰 나무통 정도 굵기의 뱀 한 마리가 불길 같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순식간에 가까이에 내려오는 것이였다.
하지만 두자춘은 태연히 눈썹 하나 찌프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범과 뱀은 하나의 먹이를 겨낭하고 서로 틈만 노리고 있는가 싶더니,잠간 서로 노리다가 이윽고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것 없이 거의 동시에 두자춘에게 덤벼들었다.하지만 범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리우는가 아니면 뱀에게 삼키우는가. 두자춘의 목숨이 순식간에 없어지리라고 생각할때 범과 뱀은 미치 안개 처럼 밤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오직 절벽의 솔나무만이 방금 전과 같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소리만은 내고 있는 것이였다. 두자춘은 안도의 숨을 몰아 쉬면서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것인가를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자 한 가닥의 바람이 불어치고 먹장과 같은 검은 구름이 일면을 뒤덮으면서 연한 자주색의 번개가 어둠을 두 가닥으로 째면서 굉장한 천둥이 울었다. 아니 우뢰 뿐만 아니였다. 그것과 함께 폭포와 같은 장대비가 갑자기 죽죽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자춘은 이 천변의 속에서 무서움도 없이 앉아있었다. 바람 소리와 장대비 그리고 끊임 없는 번개 빛, 잠간 사이에 그 유명한 아미산도 전복되는가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사이 귀청을 찢는 듯한 큰 번개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구름 속으로 부터 시뻘건  한 줄기의 불기둥이 두자춘의 머리 위에 떨어져내렸다.
두자춘은 무심결에 귀를 막고 바위 위에 엎드렸다. 하지만 인츰 눈을 뜨고 보니 하늘은 여나 다름 없이 맑게 개이고 저켠에 치솟은 산의 위에도 사발 만큼한 북두칠성이 변함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볼라니 방금전의 대폭풍우도 저 범과 하얀 뱀도 모두다 철관자가 없는 틈을 타서 마성의 못된 장난질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끝내 안심하고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또 한번 바위 위에서 자세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그 한숨 소리가 멎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가 앉아 있는 앞에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신장이 3장이나 될것 같은 엄숙한 신장(神将)이 나타났다. 신장은 손에 세 가닥이 달린 극(戟)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극의 끝은 두자춘의 가슴에 대면서 눈을 부릅뜨고 욕하는 것을 들으니,
《이놈아, 너는 도대체 누구냐? 이 아미산이란 산은 천지개벽한 이래 옛날부터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것도 꺼리낌없이 단지 혼자서 거기에 들어오리라고는. 설마 보통 인간은 아닐 것이다. 자! 목숨이 아까우면 한시라도 빨리 다답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자춘은 노인의 말대로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을 않하는가? 않하네. 좋다. 하기싫으면 말던지 마음대로 하라. 그 대신 나의 권속들이 너를 갈기갈기 베여버릴 것이다.》
신장은 극을 높이 들고 저쪽 켠 산 위의 하늘을 불러왔다. 그 찰나에 어둠이 슬쩍 갈라지면서 놀랍게도 무수한 신병이 구름과도 같이 하늘을 채웠는데, 모두들 손에는 창검을 번뜩이면서 당장이라도 여기에 눈사태 처럼 공격해올것 같은 태세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두자춘은 엉겹결에 ‘앗!’아고 소리를 지를뻔했지만, 인츰 철관자의 말씀을 생각하고선 노력을 다해 참고 있었다. 신장은 그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선 화가 칠밀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강심장을 가진 놈아! 아무리 하여도 대답하지 않으면 약속대로 목숨은 가져갈테야 》신장은 이렇게 큰소리로 웨치면서 세 가닥의 극을 번뜩이여 한 칼에 두자춘을 죽였다.  신장은 아미산에 울펴퍼질 정도로 높은 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어딘가에 없어졌다. 물론 이때에는 무수한 신병도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와 함께 꿈과 같이 사라진 뒤였다.
북두칠성은 또 다시 차겁게 바위 위를 비추기 시작하였다. 절벽의 솔나무도 여나 다름 없이 스륵스륵 나무가지들이 부닥치는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두자춘은 숨이 끊어져 엎드린 채로 그곳에 누워있었다.
 

 
 두자춘의 몸은 바위 위에 뒤집힌 채로 넘어져 있었지만, 두자춘의 혼은 몸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지옥의 밑바다으로 떨어져내려 갔다. 이 세상과 지옥과의 사이에는 암혈도(闇穴道)가 있어서 거기에는 일년내내 어두운 하늘에 얼음처럼 차거운 바람이 휙휙 불어대고 잇는 것이다. 두자춘은 그 바람에 휘말려 잠간사이에 나무잎 처럼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얼마 안 있어 심라전(森羅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훌륭한 대궐 앞에 이르렀다.
  대궐 앞에 있던 많은 귀신들은 두자춘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섬돌 계단 앞에 끌고 갔다. 계단의 위에는 한 왕이 시꺼먼 의복에 금으로 된 관을 쓰고 위엄있게 주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 들은 염라대왕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춘은 어찌 될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품고 그 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 있었는가?》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뇌성과 같이 계단 위에서 부터 울러퍼졌다. 두자춘은 인츰 그 물음에 대답할려고 했지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절대 입을 열지 말라》는 철과자의 훈계였다. 그래서 오직 머리를 수그린 채로 벙어리 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손에 쥐고 있던 철로된 홀(笏)을 들고서 얼굴의 수염을 곤두세우면서
  《네 놈은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빨리 대답을 하면 좋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곧 지옥의 가책을 받게 될것이다》고 기고만장해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두자춘은 여전히 입술 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염라대왕은 인츰 마귀 무리들 쪽을 향하여 거칠게 뭔가를 명령하니 마귀들은 황공해하면서 즉시로 도자춘을 억지로 끌고 가서 심라전 위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옥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칼산과 피못 외에도 초열지옥과 같은 화염협곡이거나 극한지옥라고 하는 얼음바다가 시꺼먼 하늘 아래에 늘어서 있다. 귀신들은 그런 지옥 속에 번갈아 가며 도자춘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도자춘은 무참히도 검에 가슴이 관통되고, 화염에 얼굴이 타고, 혀를 빼우고, 겁질을 벗기우고, 철절구에 찧기우고, 기름가마에 튀기우고, 독사에 뇌수를 빨기우고, 뿔매에게 눈알을 먹히우는 등 그 고통을 수를 세자면 도저히 끝이 없을 정도로 모든 질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도자춘은 인내력 있게 꾹 입을 다문 채로 한 마디도 입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그 대단한 귀신들 조차도 질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한번 칡흙 같이 어두운 하늘을 날아서 심라전 앞에 돌아오니, 방금 전과 같이 두자춘을 계단 아래에 끌러내면서 대궐 위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에게
  《이 죄인은 아무리 하여도 말할 기색이 없습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을 올렸다.
염라대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간 생각에 잠긴듯 하더니 이윽고 뭔가 생각난듯 보였다.
  《이 사내의 부모는 축생도에 전락하여 있을 것이므로 어서 여기에 끌고 오너라》고 한 놈의 귀신에게 명령했다.
  귀신은 곧 바람을 타고서 지옥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별이 흐르듯이 두 놈의 귀신이 짐승을 강제로 끌고와서 날렵하게 심라전 앞에 내려왔다. 그 짐승을 본 두자춘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마리 모두가 형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여윈 말이였지만, 얼굴은 꿈에도 있을 수가 없는 죽은 부모와 똑 같았다.
  《여봐라 네놈은 왜서 아미산 위에 앉아있었는가? 똑바로 자백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네놈의 부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리라》
  두자촌은 이런 위헙을 받아도 여나 다름없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불효자 놈아. 네놈은 부모가 고통스러워도 네놈만 좋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염라대왕은 심라전이 무너질 정도로 무서운 소리를 질렀다.
  《때리라. 귀신들이여. 그 두 마리의 짐승을 피골이 상접하도록 때려 부수라!》
  귀신들은 일제히 《예》하고 대답하면서 철채찍을 쥐고 일어나서 사면팔방에서 두 마리의 말을 미련없이 때려눕혔다. 채찍은 윙윙 바람을 가르면서 분별없이 말의 가죽과 살을 쳐부셨던 것이다. 말-짐승으로 변한 부모는 고통스러운 몸을 몸부림치면서 눈에는 피눈물을 머금은 채로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떻냐. 아직도 네놈은 자백하지 않을터인가?》
  염라대왕은 귀신들에게 잠간 채찍질을 그만하게 하고 다시 한번 두자춘에게 대답을 촉박했다. 이미 그때는 두 말의 말도 살이 찢기우고 뼈가 부수러져 숨도 끊일학 말락한 상태로 계단 앞에 엎어진채로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두자촌은 필사적으로 철관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굳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그의 귀에는 거의 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의 미약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근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너만 행복해진다면 그것 보다 더욱 좋은 것은 없으므로. 천왕이 뭐라고 말씀하더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참고 있으라》
  그것은 틀림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두자촌은 생각없이 눈을 떻다. 그리고 한 필의 말이 맥없이 땅에 넘어진 채로 서럽게 그의 얼굴을 꼼짝 않고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아들의 마음을 배려하여 귀신들의 채찍에 맞은 것을 원망하는 기색 조차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대부자가 되면 아양을 떨고 거지가 되면 말도 걸지 않는 세상의 인간들과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런가. 얼마나 건전한 결심이런가. 두자춘은 노인의 훈계를 잊고 굴러가듯이 그 곁에 달려가서 양손으로 반죽음이 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들어 보니, 두자춘은 여나 다름 없이 석양 빛 속에서 낙양성의 서쪽 성문 아래에 멍하니 서있었다. 희미한 하늘 그리고 하얀 초생달,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인파와 차량-모두가 아직 아미산에 가기 전과 똑 같은 것이였다.
《어떤가. 나의 제자로 되긴 했지만, 아무리 해도 선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외눈박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될 수가 없습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되지 못한 것을 도리여 기쁘다는 감이 듭니다》
두자춘은 아직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엉겁결에 노인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선인이 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 지옥의 심라전 앞에서 채찍을 맞고 있는 부모를 보고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만약 네놈이 말하지 않고 있었더라면……》라고 철관자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로 꼼짝 않고 두자춘을 응시했다.
《만약 네놈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나는 즉시로 너놈의 목숨을 끊을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은 이미 선인이 되고싶다는 욕망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고 큰 부자가 되고저 하는 것은 원래부터 정나미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럼 네놈은 지금부터 무었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느냐?》
《무었이 되더라도 인간 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작정입니다》
두자춘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후련함이 슴배여 있었다.
《그 말을 잊지 말라. 그럼 나는 오늘을 끝으로 두번 다시 네놈과는 만나지 않을테니》
철관자는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이미 걷기 시작하였지만, 급히 걸음을 멈추고선 두자춘을 뒤볼아보면서
《아아, 다행이도 지금 생각났지만 나는 태산의 남쪽 기슭에 집 한 채를 가지고 있다. 그 집을 밭 채로 네놈한테 줄테니, 서둘러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쯤은 마침 집 주위의 복숭아꽃들이 온통 피여있을 것이다》고 아주 유쾌한 듯이 덧붙여 말했다.
2015년6월23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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