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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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
2010년 10월 13일 10시 38분  조회:5713  추천:17  작성자: 김정룡

은행통장 빌려주었다 낭패 ··· 범죄자로 몰려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 사건에 휘말려 고충을 겪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 부근 가정집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족 박모 여인(58세)은 2010년 9월 초경 하루, 주인집 3살 되는 아이를 목욕시키고 있던 중 웬 경찰이 찾아와 “아주머니 금융사기 혐의가 있어 조사에 협조해주시오.”라고 말해 몹시 당황해 났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박모 여인의 명의로 개설한 은행통장이 금융사기에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통장주인이 박모 여인이므로 일차적으로 범인으로 지목 받고 조사를 받기 마련이다. 통장을 타인에게 빌려주고 이익금을 챙기면 금융사기공모자로서 공범이 되며 마땅히 민·형사처분을 받게 된다. 조사 과정에서 박모 여인이 억울하게 휘말려 조사 받는 고초를 겪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명의도용을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나 결백이 밝혀졌으나 심적으로 받았던 압력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연변에서 온 최모(50세)는 작년 2009년 8월 귀국하였다가 1년이 지난 2010년 9월 8일 재입국하자마자 반갑지 않는 법원의 서류를 받았다. 부당이익금반환청구소송 건의 피고로 되어 있었고 반환금은 육백만원이었다. 알기 쉽게 말하면 2010년 8월 9일 문모 여인이 금융사기전화를 받고 최모 등 네 사람에게 이천만원이 넘는 거액을 분산해 계좌이체로 입금했다.

최모는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 파출소에 찾아가 하소연 했다. “언제 어디서 은행통장을 누구한테 준 적이 없느냐?” 경찰의 질문이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최모는 2009년 3월경 건설현장 반장이 월급을 주겠으니 통장을 바치라 해 15명 되는 일군들이 주었다. 한 달이 지나 최모는 다리를 다쳐 회사를 그만두고 치료하다가 중국에 갔다. 그동안 통장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이스피싱 사건에 휘말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은행통장을 타인에게 빌려주었다가 신세를 망친 사례들이 꽤나 있다. 유학생 혹은 젊은 중국인(한족 포함)들이 푼돈을 벌어보려고 일명 대포통장을 타인에게 빌려주고는 사례비를 챙긴 것이 범죄에 휘말려 드는 경우가 많다. 한심한 것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남을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본 사례들이다.

목단강에서 온 신모(39세)는 2009년 12월경 사촌형수가 잠깐 사용할 일이 있어 은행통장을 빌리라 하여 아무 생각 없이 주었다.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경찰이 집에 찾아와 다짜고짜로 수갑을 채우고는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신모의 통장으로 289차 되는 국제환치기사건이 발생하였단다. 신모는 아무리 억울하다고 호소하였으나 3개월 구속되었고 끝내 사백만원의 거액 범칙금을 납부하고 풀려났다. 하지만 체류만기가 되어가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명령>이 내려졌다.

정리하자면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게 명의도용을 당해 보이스피싱 사건에 휘말린 것이고 일부 사람들은 친척친구를 믿고 무심하게 통장을 빌려 준 것이 화근이 되어 변을 당한 것이다.

해외에서 고생스레 살아가는 동포들이 자신의 신상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외국인등록증을 잘 챙기고 은행통장관리도 잘 해야겠다.

출처 중국동포타운신문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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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조선족N
날자:2010-10-22 17:37:56
김문학은 신일본인이지.개념이나 똑똑히 알고 글 써라.
3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22 16:00:55
김무학 글 읽어보니 이건 뭐 완전히 류망이구마... 이젠 갈비를 들이대고 막가파 건달짓을 하는구나...휴ㅠㅠㅠ
2   작성자 : 쓴소리 한마디
날자:2010-10-14 20:34:53
김 문학이가 니카에 숨어서 비겁하게 노는군. 조글로에서 비판에 정면으로 해명 할 용기마저 없는가? 김 문학에 아첨꾼질 하는 뉴욕의 대문호가 안쓰럽다. 망가지는 지 사이트를 그런 식으로 주목끌어봐야 세인의 웃음거리나 되고 말지. 사이버 퍼나르기 너무 하고다니니 누가 나서서 법정소송 할 것 같다. 결과야 뻔하지. 미국추방, 중국접수.
1   작성자 : 하도 재미있어서
날자:2010-10-14 08:18:00
신조선족의 3과 나 그리고 시대의 행운아 김문학 현재 졸작 '新조선족 월경론'이 찬반양론의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계란"을 낳은 "암탉"에 대한 평가전으로 편향되는 흐름이어서 "역시"하고 "개조론"때와 유사한 양상이구나 하고 나는 10년 전과 동일한 苦笑를 머금는다. 인물은 10년 후의 변한 나인데 웃음은 10년 전의 웃음이어서 나는 또 쓴웃음을 금할길없다. 역사의 순환일까. 아이러니일까. 못 믿겠다는 친구가 밤중에 전화를 걸어온다."자네 '월경론'을 잘 보고 있네. 전부 작품을 다 컴퓨터가 아닌 육필로 쓴 거라 하던데 정말인가?" 하고 심야에 전화 걸어오니 무슨 대희사라도 있을 까고 짐작했으나 이작은 일로……. 대답을 물론 당연히 yes다. 연재중인 "월경론"은 금년 4월-6월사이에 틈틈이 탈고한 것이다. 세상이 아는바와 같이 나는 지금도 글을 모두 육필로 쓴다. 지독하게 컴맹인 내가 기계취급에 워낙 약한 터여서 진짜"21세기 최후의 수공업자"로 自嘲하면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필로 쓰는 일은 천지개벽이 안 일어나는 한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 역시 내 글쓰기의 스타일이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나는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자여서 잉크의 향기가 풍기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글을 쓰고 싶다. 건판을 요란스레 때리는 "打家"가 아니고, 손으로 쓰는 "作家"이다. "월경론" 집필중인 5월 초경에 나는 밤에 신기할 만큼 재밌는 꿈을 꾸었다. 어느 심산오지에서 목이 말라 샘물을 찾아 헤매는 나를 보았다. 내 앞에 느닷없이 백발성성한 노자가 나타났다. 분명 장수의 선인이 아니면 성인(聖人)이 내 앞에 느닷없이 있었다. "젊은이 여보게 자네가 왜 헤매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 내 가르치는 대로만 따르게. 여기서 부터 東으로 3천리 밖을 나가면 3자 달린 나라가 있느니라. 그곳엔 또 3자 달린 성문이 있으니, 성문을 열면 3자 달린 서재가 있는데 거기엔 3자 달린 붓이 있다. 그 붓으로 '나는 3의 자식이다'고 쓰면 자네는 샘물이 아니라, 온 세상을 얻고 형통하여 3천리가 아니라 3만 리 3만만 리도 삼라만상을 누비는 인물이 될 수 있노라" 그 인자하고 선인풍모의 백발노자에게 나는 깍뜻이 대절을 올리고 "대단히 고맙습니다. 할아버님, 그럼 제가 어떡해야 그 3천리 밖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고 가르침을 청했다. "허허, 과히 초조해 말구, 내가 이 지팡이를 줄 테니, 이걸 손에 쥐면서 손오공의 곤봉처럼 되어서 구름타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느니라……." 결국 나는 그 지팡이를 받아 쥐고 선인의 가르침대로 3자 달린 나자에 이르렀다. 과연 성인의 말씀같이 황홀한 광경이 하나 또 하나씩 펼쳐진다. 지팡이를 자세히 보니 거기엔 "지성, 진실, 월경" 3단어가 전자체로 새겨져 있었다…….아침에 깨보니 간밤에 마신 맥주로 숙취했던 나는 과연 목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 . 3과나, 나는 왠지 3과 불가사이의 연이 있는 자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늘 3국문화에 3국어, 3개 이름에 3국생활에 3국요리, 3국을 넘나들면서 3국어로 3국비교연구,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3국 정취에 푹 젖어 있다. 그런 3자, 나는 3을 럭키수자로 간주하고 또한 그것을 즐기고 있다 6년 전 동아시아 3국문화를 두고 한국의 지적 거인 이어령 선생님과 대담을 했을 때, 선생님은 3국이 "가위 바위 보"와 같은 3元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셨다. 3국이 유연한 역학구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제어, 추진, 영향주면서변해간다는 3국의 3원원리. 서양의 양자택일 원리가 아닌 "3원 원리"의 이론을 문명사적 조감으로 제기 하셨다. 동아시아 문명론에서 서로 동일한 인식과 이해를 갖춘 선생님과 나는 "梅花매화문화권"등 3국공동발전의 이론적 비전을 제시 하는데 지대한 의의를 느꼈다. 이 문명대담을 정리하여 연말 아니면 내년에 한국에서 공간 할 예정이다. "김문학3국문화, 문명연구시리즈"에도 이 책이 포함되있으니 한국, 중국, 일본 3국에서 발간이 가능 하게 되었다. 이렇게 3은 나, 나아가서 신조선족에게는 신비로운 인연으로 닿아있다. 바로 며칠 전 나의 극성팬인 O씨로부터 여러 차례의 국제전화를 받았다. O씨는 "신조선족"이란 개념 제시를 대찬성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신조선족" 개념과 아울러 사상적, 이론적으로 "신조선족"을 리드해가고 있는 글쓰기 인물을 "신조선3재사"또는 "3文士"로 귀납함은 아주 의의가 크다고 제언한다. "일본의 김문학 선생님과 미국의 유순호 선생님, 그리고 한국의 김정룡선생님을 저는 '신조선족 3才士', '3文士'로 부르고 싶습니다. 조선시대에 보니 '조선의 3대天才'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가 있는 것과 같이 '신조선족3재사' 개념 이미지도 이제는 구축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고 O씨는 자설을 펼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흥미로운 발상이시군요. 요전번 날에 전화 통화에서 김정룡씨가 '우리 셋을 두고 인터넷 네티즌이 3각 편대를 형성해서 나동을 부리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3각편대지요. 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셋이 나름대로 신조선족으로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O씨는 또 이렇게 덧 붙인다. "신조선족 3문사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2K입니다. 뭔지 아세요? 2K란 바로 김관웅선생님과 김광림 선생님입니다. 제 딴에는 학력이 높다고 와늘(매우)세상 다 안다고 떠들어 대도 연변 모아산 기슭의 논도랑의 개구리 입니다."고 웃는다. 나는 가볍게 웃었다. K하면 "구린내 난다" "개구리" "가짜" "가랑잎" "가볍다" "간姦, 관寬, 광光, 광狂, 犹犬狂 犬 " 등의 이니셜론 통하지 않냐고 답하자 O씨도 킬킬 웃는다. "3재사"와 "2K투사"라……. 역시 3이란 吉数가 수호령 같이 붙어 다닌다. 나를 반대하는 보수파, 극우지식인들도 내 책을 "3탕" "재탕"으로 비웃고 3천 번, 3만 번 타매하기에 비범한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우리 신조선족 3사람을 같이 싸잡아 비난, 중상하기에 3생을 바칠 듯 덤벼드는 k씨 老k 小k 그래서 2로 불어났나? 나와 유순호님, 기정룡님이 3자와 2k사이의 갭은 한마디로 식견, 사상, 시야 이 "3s"의 깊고 깊은 격차가 있는 까닭이다. O씨와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미처 사색하지 못한 "발견"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볼 찬스를 얻었다. 원체 신경이 좀 무딘 "무낙" 이 나는 "신조선족의 3문사"란 자신들에 대해 특별히 깊은 성찰을 하는데 미치지 못했다. 매일 먹는 백미 밥에 별 특별한 생각을 안하듯. 황차 나 자신은 용속적인 結義 친구, 조폭 같은 의리나"结邦拉伙"적 행위에 별 흥취를 못 느껴 보았으며 별 관심도 없는 위인이라서. 그룹이나 단체보다도 잇삐끼오오카미(홀로 있는 늑대)의 성미가 강한 나는, "6적"이니, "오적"이니 하는 그런 결의 형제적 호칭 자체에도 관심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런 저차원의 무슨 帮, 派 보다도 나는 정신적, 동차원의 내심적 상호 인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마음이 통하는 지기적 벗이 좋다. 근대중국의 괴물 지식인 고홍명 (辜鴻銘)은, 옛날 자신을 방문한 영국 작가 모옴이, 고홍명서재의 등불이 너무 어둡다고 투정을 부릴 때 모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 동방사람들은 明心見性을 추구하여 그 등불이 저절로 밝아지니, 당신네 같은 서양인처럼 겉치레만 따지지 아니 하외다." 그 "명심견성"적인 마음이 밝아서 통하는 친구, 벗을 나는 추구한다. 해외에서 신조선족의 글쓰기로 맹활약중인 유순호씨, 김정룡씨에게서 나는 마침내 "명심견성"적 의미의 외우(畏友)를 만난 듯하다 앞으로 일은 내가 예지력이 결해서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이런 文友, 畏友가 한분도 아닌 두 분씩이나 있어서 럭키라고 생각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고군분투 해온(물론 국내에는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현재 두 분이 나타나 주셔서 나는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마음이 통한 벗을 나는 소중히 하고 싶다. 조선족 사회에 있어서, 조선족 지식계층에 있어서 이 두 분은 다 귀중한 존재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더구나 신조선족의 "정신적 리더"로서의 두 분의 글쓰기에서의 역할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것이라 사료된다. 조선족의 불운은 문화적 축적이나 그 토양의 척박, 빈약에 있다. 일찍 북경대의 김경일 선생이 "조선족 문화론"이란 노작에서 지적하다시피, 감농 꾼의 후예로서 문화적 토양이 빈곤한 것은 우리자신의 운명이었다. 이제 이런 불운의 운명을 신조선족의 월경을 통해 활발한 글쓰기 등 여러 분야에서 개변시키고 있음은 우리 자신의 축복이다. 누가 신조선족의 생기발랄한 글쓰기, 계몽, 정신적 활동을 더러운 꾸정물로 비방하는가? 어림도 없다. 가십 적으로 씹을 순 있어도 역량, 수준 대결은 진짜 막말로 표현하면 "게임도 안 된다." 역사인식, 기성사고의 틀을 깨고 대중을 계몽하는 영역에서 신조선족의 유순호씨는 실로 귀감 같은 존재이다. 연변에서는 유 씨의 인격, 저학력 운운하면서 비방, 평가 절하시키지만, 그런 지엽적인 것보다 나는 그가 진행 중인 근현대사의 진상을 밝히고 진실을 말하는 작업이 전 조선족을 통해 지극히 소중한 일이며, 따라서 그 인물자체는 가볍게 부정, 조소할만한 존재가 아닌 우리에게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런 유순호씨에게 진정어린 주문이라면, 기왕 하는 바에는 좀 계통적으로 저작으로 펴내어 많은 대중에게 읽히게끔 하시길 바라는 바다. 해서 조선족의 척박한 문화공간, 특히 연변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주시길. 유순호씨는 독학력이 지극히 강한 지식인으로서 독학으로 그 자신의 지적센스를 활용하여, 지식을 흡수 하여 조선족 사회에 발설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김학철선생님과 정판룡선생님이 나에 대한 평가에서 말씀하시고저했던 취지는 역시 신세대에 대한 희망과 기대였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도 두 분의 격려를 한시도 망각하지 아니 하고 있다. 가끔 두 분 같은 거물이 연변에 좌정하고 계셨으면,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나군 한다. 나와 유순호씨, 김정룡씨가 선대들의 기대대로 조선족을 위해 분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자부한다. 유순호씨와 대조적인 인물이 김광림씨다. 유순호씨가 온전히 고졸로 독학으로 지성인으로 거듭난데 반해, 김광림씨는 동북사대-연변대-동대박사로 학력의 금의를 입은 교직자이다. 현재까지 이들의 각기 발설 하고 있는 글쓰기에서 보는 한, 양자의 지적 접근방법, 역사적 지견, 탐구, 시야 등 분야에서 정반대의 대조를 형성한다. 이들이 흥미로운 점은 각기 자신의 학력의 반대로, 수준이 반비례 된다는 점이다. 유순호씨가 국제적 시야에서 조국, 내지 우리자신을 他者化시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지적 탐구를 하고 있다. 그의 논고, 비평, 잡문, 칼럼, 소설, 에세이 등 대량의 작품이 그것을 입중해 주고 있으며, 작품과 실적으로 말하는 지식인이다. 학자를 자칭 하지 않는 그에겐 모종의 학자로 스스로 거만해지는 이들보다 오히려 학자적 기질과 탐구를 노정하고 있다. "학자"에 대해 잠간 살펴보자. 학자라고 스스로 자칭하는 者와 또 대중들은 일종의 보편적 착각에 빠져 있다. 즉 "대학교수=학" 또는 "학위=학자"식의 안이한 관념에 사로잡혀있다. 그러나 대학교수자, 학위 취득자라고 해서 꼭 학자와 등호를 치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대학교수는 변호사, 운전사, 은행원 등과 같이 지극히 일반적 직업,(전문직)이며, 교육자, 교직자에 속할 뿐이다. 연구 실적이 없거나, 거의 실적이 없는 교수는 다만 교직자일 뿐 학자와는 준별된다. 꾸준히 연구하고 여러 가지 책으로 연구 실적이 쌓일 때만 학자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다. 실제적 연구가 지극히 빈약한 채로 20여 년 동안 학위논문 한두 편에 쓴 것이 외국기행문이나, 인신공격의 잡문으로 채운 자는 직업적 교직자일지언정 "학자"는 아니다. 김광림씨가 바로 그런 전형인물이다. 그는 제 딴에는 위대한 학자인양 자처하나, 사실 그의 실력, 실적으로서는 아직 "학자"앞에 "반숙란(半熟卵)"이란 3자가 붙는다. 우선 그의 어학 수준을 보면 이렇다." 일본어 하면 연변어 같고, 한어하면 한국어 같고, 한국어 하면 영어 같고, 영어하면 영 말이 아니다. 그가 가장 잘 숙달된 말은 토박이 연변이 일뿐이다." 물론 이것은 좀 익살의 표현이다. 그가 20여년이나 중국어 어학 시간 강사로 띈 사실은 수치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이해 할 수 없다. 언젠가 동경서 만났을 때 내가" 당신 같은 한어사성(四声)이 엉망이인 강사가 일본애들 가르치면 误人子弟가 아니냐" 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 농담에 불쾌를 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대학자인양 떠들어도 결국 십여 년 동안 실제로 전공분야의 과목을 강의했는가 하면, 어학위주의 강의를 했을 뿐이다. 게다가 미공간 학위논문 고려신사와 일선동조론에관할글이 있지만 공간된 단행본은 한권도 없다. 논문도 달랑 3편, 그야말로 "老三篇", 역시 3자와 인연이 두터운 지식인일까. 그의 박사 학위논문도 일독했는바, 학위논문으로서의 중요한 오리지널 티가 결락된 채, 오히려 현재 집필중인 "김문학-해체신서"가 더 질이 고수준이다. 그는 잡글에서 더 능력을 내보이고 있는듯하다. 나는 후배 김광림씨의 몸에서 자연 銭鍾書(진종서)의 명작 "園城"에 등장하는 "클레이딩 (克莱登)대학서 위학위(僞學位)를 딴 지식인 方鴻渐이란 인물이 연상된다. 야유적이고 엉큼한 성격이나 그 겉모양도 다 닮았다고 느낀다. (김관웅씨와 닮았다고 하지만, 김관웅님의 일당백의 불요불굴의 만용은 김광림님에게는 티끌만치도 없다. "김관웅의 후계자"라 풍자하는 네티즌도 있는데, 김관웅님은 기질적으로 후계자 선발을 잘 못했다.) 방홍첨이 귀국해서 고향 모교의 의뢰로 강연하게 되는데, 결국 "매독과 서양문화"에 대해 도도히 얘기를 하다가, 청중의 반감으로 중단시키고 만다. 김광림씨 역시 "벌거숭이"벗긴다는 해체신서 얘기를 벌이다가, 결국은 자신의 알몸만 벗겨지고 말았다. 그렇게 알몸이 좋은가? 에로스 전문가? 아니면 편집광? (물론 역시 익살이다) 아니면 "조선족의 방홍첨"의 탄성? 물론 그런 담략이 없는 인물이다. 왠지 어딘가 외모에서는 李蓮英의 풍모가 풍기는 느낌이다 . " 吞吞吐吐,鬼鬼祟祟,不懂装懂,自以为是" 이 16자가 김광림의 알몸의 참모습이다. 결국 그는 방홍첨에도 못 미친 인물로서, 중국어 유행어로 직설하면 " 装孫子"식 인물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거다. "你别再装孫子!" , "不要怱悠 把自己怱悠没了!" 김광림님이 나를 헐뜯는 것으로 사닥다리로 삼아 절망(切望)해 마지않는 명성을 떨치려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빈약한 어깨를 빌려 주겠다. 나를 짓밟고 내가 육병(肉餠)이 되더라도 높은 명성과 명예와 지명도의 최고봉에 오르기를 바란다. 황차 동문의 후배가 매우 수집은 소녀인양 짐짓 얼굴을 붉히면서라도 나를 누르고 발판으로 삼고 있으니 나 어찌 동정심이 아니 동하랴!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한손으로 사타구니를 가지고 알몸을 비틀면서라도 마리린 몽로같은 자세로 무비의 정열로 뛰어드는데 내 어찌 동문의 선배로 일말의 측은심이 동하지 안내하리까! 그러하오니, 동문이란 측음 심에서 선배인내가 광림 씨의 아픈 치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가싶다. 사실 무명의 김광림이 선배를 물고 늘어지는 얄팍한 수법으로 이미 조글로에서는 그만큼의 지명도가 오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중국 근대지성사의 에피소드가 있다. 1918년인지 거물 양계초와 장백리(蔣百里)가 유럽을 순방하고 귀국했다. 그 뒤 장씨가 "유럽문예부흥사"를 집필하여 양씨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양씨는 유럽문예부흥에 맞먹는 청조 학술사조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판단하여 그 면에서 대발휘하여 8만자 남짓의 장문을 써서 보내 왔다. 울도 웃도 못한 장 씨는 양씨더러 단행본 출판을 제안 했다. 그것이 유명한 '中国近代三百年学術史'이었다. 장장 25만자나 된 거작의 탄생이었다. 나도 광림 씨가 '벌거숭이 김문학- 김문학 해체신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를 권장한다. 왜냐하면, 본인의 학술 논문에 비해 이 작품이 월등히 명작이기 때문이다. 출판을 원하면 내가 적극 출판사를 알선해드리겠으니 쑥스러워 하지마시고 선뜻 말씀해 주시길. 십 년 전에 나더러 학위논문 출판을 알선해 달라던 광림님의 부탁이 새삼 상기되었기에 이 미완의 일을 한 건지 마무리 짖고 싶은 심정도 있다. 농담이 아니다. 그러면 저작이 제로라는 "치욕"을 씻어 버릴 수 있고, 또 큰 실적이 아닌가! 일조이석의 절호의 호사를 마다하시기 마시길. 후배가 각고의 노력으로 이토록 단행본 한권 분량의 "김문학론"을 써 주셨는데, 나는 선배로서 해 드린 일이 없어 자책감으로 사로잡혀 있는 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외다. 자, 그럼 좀 정색한 말을 하자. 김광림씨의 대조적 인물이 또 한분 계신다. 바로 신조선족의 명칼럼니스트로 한국에서 대 활약 중인 김정룡씨다. 학력과 실력이 꼭 정비례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입증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고학력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2k들이 비방, 조소하는 만큼 경계를 느끼게 하는 실력자이다. 단지 김정룡씨는 이른바 "학자랍시고 "상아탑"에 올 방자를 틀고 앉아서 써내는 "논문"이란 렛데르를 단 형식이 아닌 문화비평, 에세이의 형식으로 써낸다. 그 글에서 반영된 지적 수준, 사고, 시야는 김광림, 김관웅, 2K임들은 유순호씨의 표현대로 "백번 죽어서 재생해도"못 미칠 것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수차례 대면하여 진지한 담론을 펼치면서 나는 김정룡씨의 지식수준, 독서량, 사고, 시야 등 면에서 흔히 말하는 대학교수님들의 수준을 능가한 참모습을 발견했다. 나 역시 "말이 통하는" 그가 있어서 좋았다. 한류의 원류에 관한 논고,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등 논문은 조선족 하계논단에서 앞서가는 김정룡씨의 지견을 잘 나타낸 쾌작이다. 역사에 대한 세계사적 시야의 통찰력, 분석력에서 나 역시 지(知)적 자극을 받았다. 유순호씨와 같이 김정룡씨가 읽은 책, 그리고 역사에 대한 사고력, 중국 기성의 사고체계, 가치관, 역사관을 탈피한 논점들은 조선족 연변 학자나 김광림씨는 전혀 못 미친다. 사실 이런 얘길 하는 나 역시 후배이면서 박사인 그가 좀 더 정진하여 실력으로 해내는 진짜 학자로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후배에 대해 시기도 질투도 더구나 원한, 미움은 없다. 의식, 지견의 차이일 뿐 죽일원쑤는 아니니까. 이렇게 이른바 고학력 "학자"라 폼 잡는 아집과 기성수준에 머무른 "박사"님께 비해 월등 앞서 달리는 지견과 사고를 읽을 수가 있었다.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 김광림씨는 "학위"라는 "운전면허증"만 땄지, 실제 운전은 게을리 했기에 운전수준은 엉망이다. 그러나 김정룡, 유순호씨는 "학위"라는 운전면허증은 없으나 실제 운전기능수준은 2K보다 아득히 앞서고 있다. 유순호, 김정룡씨가 실전에 강한 "真枪真刀"의 실력자라면 김관웅, 김광림 2k 씨는 "秀拳花腿"의 비실력자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궁극적이면서 극명적인 차이다. 또 한분 신조선족의 대서 특필 할 인물이 있다. 중앙 민족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20년있는 일본사립명문대학(日本私立名门大学)박사출신의 교수 이강철 (李鋼哲)씨다. 나보다 수년 연상인 이 교수는 일본 조선족에서 나의 지기이며 뜻이 통하는 学兄이다. 그는 전공분야의 아시아경제, 동북아 지역협력, 국제넷트워크 연구와 건설적 언론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일본 후쿠다 관방장관을 만나 고이즈미수상에게 동북아 협력을 위한 정책제언을 하는 등 굵직한 일을 했다. 더욱이 조선족연구학회 회장으로 국제 조선족의 네트워크 구축에 장원한 비전을 제시한 굴지의 신조선족 정신적 지도자의 한분이다. 그가 인솔하는 조선족 연구학회는 신조선족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피얼 하는 지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학술단체이다. 나는 공식 회원은 아니지만, 늘 이교수와 연락을 취하면서 그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신조선족"의 국제적 활약에서도 나와 공감을 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 등 유력 매스컴에서는 이 학회의 활발한 활동에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나 자신은 성격상 조직, 단체의 리더로서의 재질이 약하고 "잇삐끼오오카미"로 홀로연구, 글쓰기에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 인듯하다. 그러나 이강철씨는 조직력과 통솔력을 갖춘 신 조선족의 리더로서 사회적으로 일본의 신조선족을 단합, 협력하여 그 역량을 잘 발휘하는데 힘을 경주하고 있는 신조선족의 귀감이다. 이런 선배님이 자랑스럽다. 이외에도 이상철 교수, 강광문박사 등 재일 조선족의 쟁쟁한 인물이 많지만,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기회가 닿으면 이분들과도 적극 교류하고 싶다. 내가 알기로 어딘가 괴팍한 성격의 후배 김광림씨가 자신을 배후에서 험담을 해도 너그러운 아량으로 조선족학회 이사로 끌어들이고 글을 쓰라고 권유 한 선배역시 이강철씨다. 신조선족의"채원배(蔡元培)"식의 인물로 평가 하고 싶다. 이제 이 졸문은 바야흐로 결말로 들어선다. 이 못난 김문학이가 유연 의식사고를 갖춘 유순호님, 예리한 정론을 잘 쓰시는 김정룡님, 그리고 강철같이 자신의 신조로 조선족을 위해 활약하시는 이강철님. 이밖에 이상철 교수와 강광문 박사 등 또 많은 우수한 개명적인 신조선족의 형제자매가 있으니 나는 이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시대의 행운아이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10년여 일의 요문원(요놈의 문학이를 원수처럼 죽이려는)임이 계시지, "김문학 죽이기" 문죽유한공사가 김관웅대형님의 인 솔하에 10년이란 성장기를 거쳐 바야흐로 장대하여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불기 시작했으니 또 역시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아닌가! 그 회사의 鸡的屁(GDP)가 억 단위라나 뭐라나. 10년 전 김관웅대형님은 이미 나라로부터 문죽유한공사의 잉예즈쪼우(营业执照)를 허가 받았으나, 최근 8월부터 문죽유한공사 동경 및 주미영업소의 소장으로 발탁된(세간에서는 김관웅 사장이 곧 정년퇴직으로 인해 후계자로 김광림씨를 엄선했다고 전해지는데...) 김광림님의 그 영업소는 아직 불법이다. 불법이란 의미는 심장하다. 나를 비판한 그의 글에는 그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과 어긋나는 왜곡, 감정적인 인신공격과 비방, 그리고 "명예훼손"이란 법적인 죄명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날조, 증상이 있다. 이렇게 법을 범하면서 무명인 그가 이름 내려는 그 음험한 심보가 참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나 그 불법을 취제하지 않고 사흘이 멀다하게 쪽노문(쪽발노친같이 긴 문장)의 기록을 창조해낸 그 공을 감안하여 영업 집조를 아무 수속 없이 무료로 드리기로 했다. 영업즈쪼우의 문구는 이렇다. 김광림소장 박사 귀하: 귀하께서는 불법으로 문죽유한공사의 동경, 주미영업소를 내오고, "구이구이 쑤이쑤이"의 모습으로 구멍 쑤시고 바지 벗고 벌거숭이 막가파(막내리까는)가 아닌 주까파(올리추는척하면서 내리까는) 김문학 안티영역을 개척했습니다. 비록 8월전까지 해외에서 아무런 실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김관웅 대형님의 9단에 비교해 비록 또한 말단의 수준이긴 하나, "추까파"란 "벌거숭이" 연구자로 급성장했습니다. 이런 공로를 염(念)해서 이번에 상패는 못 증정하오나, '린스잉예즈쪼우'(임시영업집조)를 무기한으로 비준, 허가 했습니다. 대선배님 "막가파"를 능가하신 "추까파" 김문학 연구자로 하루 속히 대가를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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