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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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필 때까지(2)
2016년 05월 18일 13시 04분  조회:4940  추천:1  작성자: 김정룡


진달래꽃 필 때까지(2)

 

2. 후보자등록과정 번갯불에 콩 볶듯

얼마 전에 5월 5일 어린이날 목요일이어서 이튿날인 5월 6일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는 과정에 논란이 있었다. 임시공휴일을 끼워 넣어 4일 연휴 같은 국가적인 사항을 적어도 미리 수개월 전에 결정해야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잡든지,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광이나 뜻 깊은 이벤트를 마련할 것인데 불과 며칠 앞두고 부랴부랴 결정하니 국민들이 몹시 당황해 하였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공휴일은 미리 적어도 연초에 몽땅 정해놓고 움직인다. 한국처럼 며칠 앞두고 공휴일 정하는 사례는 기본상 없다. 일본사람들은 뭐나 자세하고 세밀하게 움직이는데 비해 한국은 뭐나 대충대충, 빨리빨리 하는 관습이 심각하다. 중국인의 성격은 대체적으로 느긋한 편이어서 ‘만만디’라는 별명이 있다.

한국인은 무슨 일을 착수하는데 있어서 준비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다그치는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나 빨리빨리 결과를 보기를 원한다. 한국지하철역에서 오르내리는 손님들을 보면 저마다 마치 집구석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뛰어다니듯 빨리빨리 움직인다.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과정도 번갯불에 콩 볶듯 불과 며칠 사이에 머리가 쥐나고 다리가 마비될 지경으로 빨리빨리 다그친다.

3월 16일 나는 비례대표 추천전화를 받고 그날 오후 이력서를 휴대폰으로 먼저 전송하고 나서 비례대표 후보 관련 서류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튿날인 3월 17일 여러 관공서를 돌면서 후보자등록 관련 서류를 발급받았다. 관련 서류로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범죄경력증명서, 납세증명서, 재산증명서(가족 전체 포함)들이 있었다. 그래서 동사무소, 세무서, 경찰서를 찾아다니면서 서류준비를 하여 여의도 정당사무실로 달려갔다.

아무리 대한민국 관공서들이 민원처리가 잘 되어 있어도 이곳저곳, 이 서류 저 서류 발급 받으려면 하루 종일 걸린다. 잔등을 땀에 흥건히 적시며 이리저리 뛰어다녀 겨우 완성된 서류를 갖춰 갖고 여의도 정당사무실에 달려갔다. 내가 조금 약빠른 성격이니 망정이지 느릿느릿한 성격이면 하루 내내 뛰어다녀도 다 발급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고생고생 준비한 서류를 사무국직원에게 보였더니 전부 퇴자를 맞았다. 이유는 공직자 후보등록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일반 서류를 갖췄기 때문이란다. 헐~, 나미아비타불! 다시 여러 곳을 다니면서 새롭게 여러 서류를 발급받아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새카매 났다. 그러나 아무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는 것이 나의 생활철학이다.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동사무소, 경찰서, 세무서 등 여러 관공서를 쳇바퀴 돌듯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일이 나를 괴롭혔다. 공직자후보등록 관련 서류는 신청하여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기다려야 한다. 세무서에서는 가족 전체 서류를 신청했는데 이튿날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8일까지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은 촉박하고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이 타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이 중대한 일을 사전에 여유를 두고 미리 한두 달 시간차, 적어도 2주쯤의 여유를 갖고 준비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무리 빨리빨리 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여느 마을 동네 통장을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반장 선출도 아니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출하는 아주 중대한 일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지지고 볶아대니 머리가 휑해 나기 시작하였다.

어찌되었든 모든 요구서류를 들고 여의도 정당사무실로 달려갔다. 나절로 차를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무리시간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엔 서류들이 문제없겠지. 이렇게 혼자 스스로 자아위안하면서 사무국 직원에게 서류뭉치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문제가 생겼다. 사무국 직원이 서류를 검토하더니 ‘재산신청서류가 불합격이니 다시 작성하라’고 한다. 즉 자세하게 재산이 10원이라도 모두 기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배기량 1600CC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단다. 자동차등록증에 보면 나의 차 쏘울 1590CC로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가족들 한 명 한 명 보험부터 통장까지, 그리고 합산 계산~ 그리고 법인회사, 투자회사, 타인명재산 등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다시 참빗질해도 또 빠진 것이 있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그날 정당사무실에 오후 3시 도착하여 준비해간 서류를 바쳤다. 아침부터 그 때까지 나는 곡기 구경 못해 위를 굶겼다. 굶주린 위는 강력한 항의를 제기한다. “빈곳에 빨리 ‘내용물’을 채워 포만감을 달라고.” 나의 몸에 달린 위이지만 제때 채우지 못하고 굶겨서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래서 서류접수 완료되면 금세 여의도 근사한 음식점에 달려가 폭식할 계획이었다.

하나님, 맙소사! 내 딴에는 빈틈없이 준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잘못된 것을 수정하고 또 새로 보충하고 하느라 서류 두께는 마치 중·장편소설 분량이었다.

머리는 속여도 배는 속이지 못한다. 배가 고프다 못해 현기증이 났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위는 쉼 없이 항의해온다. 빨리 밥 달라고. 그렇지 않고 계속 몰라라 방치해두면 심한 위경련을 일으키겠다고.

하루 종일 곡기를 끊은 이유도 있고 또 처음해보는 일이고 게다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서류를 손보느라 긴장감에 휩싸여 머리가 어지러워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다. 국회의원도 먹고 살자고 하는 노릇이 아닌가? 이렇게 배를 굶겨가면서까지 하필!

“아무리 바빠도 저는 밖에 나가 식사하고 돌아와 계속 서류를 완성하겠습니다.”

정당사무국 담당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빵과 샌드위치를 주문했으니 그냥 여기서 드시면서 서류를 마무리 하세요.”

나는 구세대도 아니고 신세대도 아닌 40대 여자다. 빵과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빵과 샌드위치는 서양음식으로서 나에겐 배가 그토록 고프지 않을 때 간혹 간식으로 맛보는 식으로 먹는 것은 괜찮겠지만 당금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내가 서양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분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남들이 모두 불만의 소리 없이 동의하는데 나만 티 나게 놀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날 저녁 먹기는 먹었는데 뭘 어떻게 먹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위에 미안하지 않게 채우는 임무를 완성한다는 사명감으로 먹은 것 같다.

막바지에 후보자들이 몰려 컴퓨터 한 대씩 차지하고 서류준비에 분주했다. 그나마 경험 있으신 후보자들은 잘해 왔지만 나와 같이 초보자들은 당연 기각될만했다.

후보자들이 많으니 서류준비에 나타난 폐단들이 각양각색이었다. 오후 4시경 00후보는 서류를 행정관리 하는 분께 맡겼는데 여러 차례 자꾸 기각되니 화가 나서 “저 내일까지 전 재산 청산하고 서류접수를 하든지 포기를 하던지 할 겁니다.”고 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저녁 10시경이 되어서야 서류가 완성되었다. 손에 쥐니 두툼하게 느껴졌다. 1990년대 초반 내가 흑룡강신문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원고 분량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내가 컴퓨터 다룰 줄 알아 그나마 그 시간에 완성한 것이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면 혼자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아예 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저녁 10시 되어 서류는 완성하였으나 다른 후보자들과 그 과정 경험담을 수다 떨다보니 어느덧 시계바늘은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귀가하려고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손이고 발이고 감각이 나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나의 몸에 달린 손과 발이 마치 동네 사람의 손과 발처럼 느껴졌다. 긴장이 풀리니 눈까풀이 처지고 온몸이 나른해나 운전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한강을 지나며 차창을 내렸더니 시원한 강바람이 무겁던 머리를 자극하여 조금 정신이 들게 만들었다. 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강바람을 여전히 변함없이 일으키고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변함없이 여전히 깜박인다. 자연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나만이 지쳐 파김치가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되어간다. 연로하신 엄마는 잠들지 못하고 이 딸이 귀가하기를 고이 기다리고 계신다. 작년에 중병을 앓고 난 엄마는 맘이 굉장히 여려지셨다. 웬만한 일에도 큰일 난 것처럼 근심과 걱정에 휩싸이곤 하신다.

천근만근의 몸을 끌고 겨우 집에 들어선 이 딸을 보시던 엄마는 놀라서 묻는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나?”

“아니요.”

나는 대답조차 할 힘이 없어 들릴까말까 하게 모기소리로 한마디 했다.

엄마는 나를 전장에서 패배한 패장을 바라보는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금방 시작인데 그토록 지쳐서야 버틸 수 있겠나? 관두는 것이 좋을 듯 싶구나.”

엄마는 이 딸의 지친 모습을 보고 그만두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도 내가 뭐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음이 생겼다.

답은 하나였다. 나는 남들(재한조선족사회)이 경험해보지 못한 좋은 공부를 한 것이 나의 자산이 될 것이며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좋게 생각하니 맘의 위로가 조금이나마 생겼다. 물론 자아위안으로 그치겠지만 말이다.

내일이면 면접 보는 날이다. 육신이 힘들고 정신이 힘들어도 좋은 일이니 견뎌내야지 하는 결심을 갖고 희망찬 내일을 바라며 힘내야 한다는 도리는 빤하지만 잠이 쉽게 들지 못한다.

 글 박옥선

 중국동포타운신문 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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