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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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2016년 01월 27일 15시 05분  조회:4741  추천:10  작성자: 김정룡


불편한 진실

 

서울에서 알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강남 청담동에 유명한 불고기집이 있다. 음식점 치고는 규모가 커 종업원도 많다. 홀에만 여덟 명의 서빙이 있고 주방에 요리사와 참모 및 설거지 아줌마까지 합쳐 20여 명이 뱅뱅 돌아친다. ‘조선족아줌마가 없으면 서울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3명 이상 종업원이 있는 아무 음식점에 가보아도 조선족아줌마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다. 음식점 규모가 클수록 내국인종업원 구하기 힘들어 조선족아줌마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구인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불고기집에도 전체 종업원 30여 명 가운데 조선족아줌마가 삼분의 일이나 된다.

한국아줌마든 조선족아줌마든 돈 벌기 위해, 한국인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 음식점에 취직하여 근무한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목적은 똑 같으나 한국아줌마들과 조선족아줌마들이 지나온 문화 환경이 달라 자주 마찰을 빚고 갈등을 일으킨다.

매일 점심때면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손발이 나른해나고 배가 허전하기 짝이 없다. 배는 심하게 고프지만 매일 반복해 먹는 식당 음식이 질려 힘들어도 때론 자기네절로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는다. 재미나는 것은 음식 해 먹을 때면 가재는 게 편이요 오리가 오리무리 따르듯 한국아줌마들과 조선족아줌마들이 두 무리로 쫙 갈린다. 조선족아줌마들은 한국에서 기름기 번지르르한 음식을 먹지 못해 속이 사막이 되는 느낌이어서 ‘차오차이(볶음요리)’를 해 먹는다. 한국아줌마들은 기름이 번지르르한 ‘차오차이’를 보고는 처음에는 “니글니글 거리는 음식 어떻게 먹느냐?”고 주춤거리다가도 정작 맛보고는 볼이 미여지게 잘도 먹는다.

한국아줌마들은 흔히 해먹는 음식이 바로 쌈 싸 먹는 것이다. 어느 하루 한국아줌마들이 호박잎을 데쳐 쌈을 싸 먹는 모습이 마치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기분으로 맛나게 먹고 있었다. 처음 이와 같은 광경을 목격한 한 조선족아줌마가 못마땅하다는 눈길로 째려보면서 낮은 소리로 “한국 것들은 잘 산다고 하면서 별 것 다 먹네.”라고 말한다. 언어표현에 굉장히 서툰 조선족아줌마의 ‘한국 분’도 아니고 ‘한국사람’도 아닌 ‘한국 것들’이라는 말은 굉장한 실례였다. 한국 사람들은 ‘00것들’이란 말을 매우 혐오한다. 왜냐하면 양반과 상놈의 차별문화가 심각했던 조선시대에 양반가문 사모님들이 일반백성들을 쩍하면 ‘상것들’이라고 욕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족아줌마들이 자기네끼리 하는 소리였는데 한국아줌마들이 홀깍 들어버려 크게 화나게 만들었다. 한국아줌마들이 화 난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즉 “별 것 다 먹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기가 세고 말발이 센 한 한국아줌마가 매우 흥분되어 묻는다.

“임자네 중국에서 호박잎을 안 먹노?”

평소에 괜히 자격지심으로 피해의식에 젖어 있던 조선족아줌마는 단 1초의 머리회전도 거치지 않고 툭 한 마디 내뱉는다.

“우리 중국에서는 이런 걸 돼지 먹여요.”

이 말을 들은 한국아줌마들이 열이 상투밑까지 치밀어 올랐다. 한국인 자기네들이 졸지에 돼지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굴러온 돌들이 배긴 돌한테 큰소리 빵빵 치니 더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무식하고 야만스럽게 머리채 잡아끌면서 싸움을 벌일 수는 없고 하여 한 마디 뼈 있게 쏘아붙인다.

“임자네 그렇게 잘 살믄서 와 한국에 돈 벌려 왔디야?”

이 말을 들은 조선족아줌마들은 꿀 먹은 벙어리 꼴이 되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위 사실을 필자는 일명 ‘호박잎 사건’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자아, 이 ‘사건’에서 조선족아줌마가 한국아줌마들을 ‘한국 것’들이라고 비하하는 식의 표현이 잘못되었으나 “중국에서는 호박잎을 사람이 먹지 않고 돼지 먹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고 진실이다. 필자도 연변 동불사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릴 적 집터 주변에 호박잎이 흔해 빠져 있었으나 먹어본 기억이 없고 데쳐서 돼지 먹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니까 조선족아줌마의 말은 사실이고 진실이었다. 동시에 한국아줌마의 “임자네 그렇게 잘 살면서 왜 한국에 돈 벌려 왔느냐?”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고 진실 된 표현이다. 그 환경에서는 맞는 대응이라는 뜻이다.

조선족아줌마와 한국아줌마 사이 오고간 말들이 서로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진실을 진실대로 표현해 버리면 서로 불편해지고 마찰을 일으키고 갈등을 불러온 화근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호박잎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는데 일명 ‘김치 사건’이다. 물론 필자가 지어낸 사건명이다.

조선족종업원아줌마가 음식점에서 밥 먹으면서 배추김치 푸른 잎을 가려내 버리고 흰 것만 골라 먹는 것을 보고 한국종업원아줌마가 “임자, 푸른 잎이 영양가가 많은데 왜 버리는 거요?”라고 하자 조선족종업원아줌마가 “우리 중국에서는 김치 담글 때 푸른 잎을 잘라내어 돼지 먹여요.”라고 대포처럼 쏘아댄다. 이 말을 듣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까? 아무 고려도 없이 말이다. 이 말을 들은 한국종업원아줌마는 “임자, 지금 우리 한국 사람들을 돼지 취급하는 거요?”라고 거칠게 나오자 조선족종업원아줌마는 전혀 기가 죽지 않고 “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왜 화를 내요?”라고 맞받아친다. 맞는 말이다. 사실 중국조선족은 김치 담글 때 푸른 잎을 쳐내고 맨 흰 잎으로만 담근다. 이것이 진실일지언정 진실을 진실대로 말해버리면 서로 불편해지고 갈등을 빚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이다.

현시대에 있어서 진실을 진실대로 말해버리면 불편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KBS2 채널에 <불편한 진실>이란 개그코너까지 생겨났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불가사이한 일들이 많고도 많다. 사실이 아닌 일이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사회에 널리 퍼지면 그것이 사실이 되고 진실처럼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족 노무일군들이 한국에 밀물처럼 몰려들자 한국사회에 다음과 같은 말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조선족들이 한국에 돈 벌러 와서 아무리 돈을 쫓는 돈벌레라고 하나 단 돈 5만원 더 준다고 철새처럼 일자리 옮겨버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족은 돈이라면 오금 못 쓰고 의리도 지키지 않는 못 믿을 족속이라는 것이다. 이 ‘유행어’ 때문에 조선족이 일자리 옮기는 것이 단 돈 5만원을 위해서라는 것이 진실이 되어버렸다. 어느 한 번 술자리에서 대한민국 권위 있는 매체 기자조차 필자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조선족이 한국직장문화에 적응 못해 부득이하게 자주 직장을 옮겨 다니는데서 생겨난 거짓풍문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즉 한국에서 노무에 종사하는 조선족 다수가 농민 출신이고 가령 도시출신이라 해도 직장체험을 해보지 못했거나 혹시 도시 직장문화를 경험해보았다 해도 그것은 사회주의 큰가마 밥 직장에서 세월을 보냈을 뿐이어서 일을 더 해도 그만 덜 해도 그만, 정해진 월급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경쟁이 무엇인지?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회사가 수입이 증가되고 나중에 나에게 그 만큼 한 보수가 더 차려진다는 직장의식이 없었다(요즘에는 중국도 많이 변했지만). 또 한국처럼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는 일이 없고 상사가 부하직원을 자기 동생이나 자기 자식을 대하듯 내리 막 대하는 직장문화가 중국에서는 없는 일이다.

조선족이 한국에서 직장을 자주 옮기는 이유는 한국직장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월급 더 준다는 조건에 유혹되어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있긴 하겠지만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 돈 5만원 때문에 돈 쫓는 돈벌레이기 때문에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직장에서는 오너가 직원보고 그만두라는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진짜 그만두게 될 경우에만 말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직장에서는 오너가 직원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밥 먹듯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영업 구멍가게 사장님들은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음식점들은 점심 한때와 저녁 한때, 이렇게 시간 때에 따라 갑자기 볶아친다. 한국인들의 말대로 하면 “진짜 정신없다. 미치겠다.” 사장은 정신없이 미치겠는데 시골출신 조선족아줌마 종업원은 손님들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사장님의 전라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외래어도 알아먹지 못해 얼어붙은 사람처럼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종업원이 이쯤 되면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주문하고 요구하기도 하고 서비스가 따라가지 못해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데 사장은 진짜 미친다. 그래서 사장은 홧김에 “아줌마 내일 당장 그만둬!”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이튿날 점심 손님이 들이닥칠 시간이 되었는데도 조선족아줌마 종업원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사장은 진짜 미치겠다. 전화로 “이게 몇 시인데,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사장님 어제 저보고 그만두라 했지 않았나요?”

사장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참, 기가 막혀!”

사장의 입장에서 진짜 직원을 그만두게 하려면 퇴근 시간에 불러 여차여차하여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그 동안 보수는 내가 알아서 얼마 챙겨줄게.” 합의가 되면 사장이 한마디 보탠다. “미안하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함께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그냥 해보는 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직장문화를 모르는 조선족아줌마들은 흔히 사장이 홧김에 한 말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튿날 바로 실행에 옮겨버려 말없이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사직을 알리는 것이다.

사직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보자.

한국직장에서는 직원의 의도이든 고용 측의 뜻이든 하여간 직원이 그만두게 될 경우 사직서를 작성하여 상사에게 바친다. 이와 같은 직장문화를 모르는 조선족아줌마들은 사직서는 고사하고 그냥 말없이 출근하지 않는 행위로 사직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사장님들이 이 때문에 숱한 골탕을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계는 돌려야 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렵사리 전화 연락되면 돌아오는 대답은 진짜 골 때린다. “저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였어요.” 사장이 새로운 일군을 모집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로 이직한다. 코리안드림 바람을 타고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아줌마들, 건설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조선족남자직원들도 말없이 그만두는 일은 마찬가지로 비일비재하다.

이래저래 한국직장문화를 모르고 있는 조선족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지만 한국인은 조선족사회 이와 같은 사정을 모르고 그냥 단 돈 5만원 더 줘도 철새처럼 직장을 쉽게 옮겨버린다고 말하고 있고 또 이 말이 진실처럼 한국인들은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크든 작든 세 사람 이상부터 모인 직장에서는 처세술이 능해야 한다. 사장님에게 적당히 잘 보여야 하고 직원과 직원 사이 각을 세우지 말고 두리뭉실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조선족들은 너무 직설적이고 자기 감정을 숨길 줄 모르고 보면 본대로 말해버리다 보니 미움을 살 때가 많다. ‘호박잎 사건’도 ‘김치사건’도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족직원과 한국인직원 사이 마찰을 빚고 갈등이 생겨나면 손해 보는 쪽은 십 중 팔구 조선족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니는 이유가 주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인과 조선족 직원 사이 갈등이 생겨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서로 상대방의 과거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박잎 사건’과 ‘김치사건’은 조선족아줌마들이 직설적인 성격문제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 과거를 전혀 모르고 있은 데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조선족아줌마들이 한국음식점에 근무하면서 이 ‘두 사건’ 외에 목격한 ‘사건’들이 많고도 많았고 때론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중국에서 사람이 먹지 않고 돼지를 먹이는 무 이파리, 돼지비늘 풀, 고양이풀 등등의 식물들을 한국에서는 사람이 다 먹는다. 조선족아줌마들의 눈에는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하다는 눈길로 바라본다. 한국의 과거사를 모르는 조선족아줌마들에게는 실로 수수께끼였다.

한국은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끝나고 국토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고 먹을 것이 턱 없이 부족하여 나무껍질 벗겨서 먹을 지경이었다. 아무 식물이든 독이 없으면 다 먹었을 만큼 어려운 세월을 겪었다. 그러므로 호박잎쯤은 어찌 보면 좋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김치 담글 때 배추가 없어서 문제이지 푸른 잎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 김치 담글 때 푸른 잎을 쳐내지 않고 그대로 담그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고, 호박잎을 데쳐 쌈을 싸 먹거나 무 이파리, 돼지비늘 풀, 고양이풀 등등을 먹는 것은 현재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옛날 먹었던 추억을 되살리고 또 매일 하루 세끼 쌀밥만 먹기보다 어떤 음식은 가끔 먹으면 맛이 있을 때가 많다. 보리밥을 가끔 먹으면 별미이지만 하루 세끼 먹으면 진짜 미칠 지경이다. 서울에 보리밥집이 여러 곳 있는데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 손님들이 가끔 먹으므로 하여 과거 맛을 되새겨 보고 추억도 해보는 장소여서 장사가 꽤 잘되고 있다.

‘호박잎 사건’과 ‘김치 사건’의 두 주인공 여성인 조선족종업원아줌마들이 만약 한국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온 과거사를 알고 있었더라면 불편한 진실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인들로부터 미움을 사서 직장을 옮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같은 도리로 거꾸로 한국종업원아줌마들이 중국에서 조선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문화를 알았더라면 그토록 갈등을 빚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족은 한국인과 같은 문화뿌리를 두고 있지만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중국문화가 몸에 배어 한국인과 생활방식, 생활방법, 생활양식이 다른데서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완전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직장생활이 어설플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몸에 배인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못한다. 조선족이 한국에서 올바르게 정착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해결될 것 같다.

 <연변여성 2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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