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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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꽌시(關係)는 ’식(食)‘을 토대로 이뤄진다
2013년 11월 01일 10시 43분  조회:5478  추천:3  작성자: 김정룡
 
‘꽌시(關係)는 ’식(食)‘을 토대로 이뤄진다
 
1992년 중국과 한국이 수교를 맺은 후 한국인이 중국진출이 많아짐에 따라 중국에서 사업하는데 있어서 우선 중국의 ‘꽌시문화’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 애로를 겪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중국의 ‘꽌시문화’에 대해 담론을 많이 하게 되고 아울러 ‘꽌시문화’에 대한 글도 많이 발표하고 있다.
중국의 ‘꽌시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중국 국가모습은 ‘가(家)’의 확대모델이다. ‘가’ 내에서 부모의 의무는 가족의 식을 해결한다. ‘국’의 천자는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을 치국방침 중 으뜸의 대사로 간주하고 백성들의 식을 해결하는 최고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군부(君父)’, ‘국부(國父)’, ‘황모(皇母)’, ‘국모(國母)’란 말은 바로 이렇게 생겨났다.
천자가 ‘민이식위천’을 실천하는 상징물이 바로 보정(寶鼎:보귀한 가마솥)이다. 중국인의 시조인 황제(黃帝)가 만년에 보정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鼎)은 소, 말, 양, 돼지, 닭, 물고기 등 가축을 삼는데 사용되며 수요에 따라 대소가 다르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큰 보정은 은허무관촌사모무대방정(殷墟武官村司母戊大方鼎)인데 높이 133센티, 길이 110센티, 넓이 78센티, 무게 875키로다. 가마솥인 정(鼎)은 고대에서 국가정권을 의미하는데 삼국정립(三國鼎立)이란 곧 세 나라 정권의 대치를 뜻한다. 권력자들이 정(鼎)을 둘러싸고 연회를 베푸는데 주요자리가 주석(主席)이다.
천자가 직접 보정을 챙기지만 구체적으로 관리하는 자의 직급은 재상(宰相)이다. 재상은 가축도살을 책임진 자를 뜻하는 말인데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용 가축도살을 맡은 자로서 그 직책이 매우 중요했으므로 오늘날 총리급에 해당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였다. 역중천 교수는 “내각을 주방 내 설치하고 요리사를 파견하여 재상을 맡게 하는 것은 실로 ‘중국특색’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천자를 중심으로 재상 및 조정대소신료들은 ‘보정을 둘러싸고 각자 맡은바 소임을 다 한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식을 중심으로 내각이 구성되고 조정에 근무하는 크고 작은 여러 관직도 역시 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국(國)’의 구조가 ‘가(家)’의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은 패턴이라 보면 된다.
‘가(家)’는 부모를 중심으로 식을 공동으로 영위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은 곧바로 사회 성인이 되기 전까지 먹여 키웠기 때문이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각별히 친해지는 이유가 역시 바로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큰 이유는 자녀에게 젖을 먹였고 밥 지어 먹였기 때문이다. 동부이모(同父異母)의 형제자매보다 동모이부(同母異父)의 형제자매끼리 더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역시 같은 엄마의 젖을 먹고 컸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 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다. 여러 가지 관계 중 혈연관계가 가장 굳건한 것은 역시 식을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통 사회에서 팔촌까지 한온돌에서 살았다고 한다. 한온돌에서 살았다는 것은 식을 공유했다는 뜻이다. 가난했던 시절 형제간에 누룽지를 빼앗아 먹으면서 서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식을 공유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서로 우애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팔촌 사이도 한온돌에서 살면서 먹거리 때문에 많이 싸우기는 했겠지만 종국적으로 식을 공유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서로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대가족문화가 혈연관계를 굳건히 하는 장점이 있으나 너무 번잡하여 분가하는 문화가 생겨났지만 고대사회에서는 멀리 떠나지 않고 한마을에 지내는 경우가 다수였다. 비록 분가해서 다른 살림을 차렸으나 한마을에서 살다보면 서로 식을 공유하는 일이 타남보다 빈번하여 여전히 정이 끈끈할 수밖에 없었다. 근현대화사회에 진입하여 형제, 사촌이 고향을 떠나 멀리 낯선 곳에 이주하여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식을 공유할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났다는 속담은 이웃은 식을 해결하는 농사일을 서로 돕고 맛 나는 음식이 생기면 서로 나눠먹는 데서 정이 깊어 유래된 말이다.
지연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는 역시 어릴 적 짜개바지 친구이다. 짜개바지 친구는 서로 상대의 집에 가서 음식을 얻어먹는 기회가 많다. 사회친구가 배신을 때리면 나 혼자 속을 앓지만 짜개바지 친구가 배신을 때리면 엄마보기 미안해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엄마가 짜개바지 친구에게 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또 어릴 적 짜개바지 친구가 세상 그 어떤 관계 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어릴 적 누룽지를 함께 나눠 먹었고 차매 서리를 함께 해 나눠먹었고 콩밭에 가서 콩서리를 함께 해 먹었고 미꾸라지를 잡아 함께 먹었던 추억이 그 어떤 추억보다 가장 머리에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친구배신보다 짜개바지 친구한테 배신당하면 흔히 상처를 크게 입게 되는 것이다.
짜개바지 친구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흔히 한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근하게 느끼는 감정은 한고장의 물을 함께 마셨고 같은 강물을 먹고 살았으며 같은 흙을 파먹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식’을 매개체로 서로 친근한 감정이 쌓여지게 된다.
학연이란 관계는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패턴이 달라질 수 있는 것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릴 적 동창도 학연에 속하고 대학동창도 학연에 속한다. 하지만 어릴 적 동창과 대학동창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거리가 멀다. 어릴 적 동창은 한고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식을 공유하며 성장해 왔기에 정이 더 끈끈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 대학동창은 사면팔방, 방방곡곡에서 모이기 때문에 성장기 식을 공유했던 감정이 없어 정이 쉽게 들지 못한다. 대학동창은 다만 서로 이익관계를 우선으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진출해 서로 각자 다른 위치에서 서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생기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직장을 단위(單位)라 하는데 중국인의 직장은 하나의 가정과 같은 존재이다. 오너는 직원들의 식을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직원의 부부갈등 사생활까지 책임지는, 마치 부모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단위를 확대된 가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한직장 내에서 서로 다투다가도 일단 다른 단위 직원들과 시비 붙으면 모두 한편이 되는 것이 바로 식을 토대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동양 삼국에서 일본인은 상대적으로 한국인과 중국인에 비해 혈연, 지연, 학연관계의식이 빈약하다. 한국인이 일본인에 비해 위 삼대 관계를 매우 중시하지만 중국인의 ‘꽌시문화’에 비하면 역시 빈약하다. 이 지구상에서 ‘꽌시문화’를 가장 중시하는 민족은 중국인이라 말해도 전혀 어폐가 없다. 중국인은 ‘꽌시’를 하나의 네트웍으로 인식하고 ‘꽌시왕(關係网)’이라 부른다.
한국인이 중국진출 초창기에 “중국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되는 일도 즉석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적고 차일피일 미룬다. ‘꽌시’를 통하지 않는 한 그렇다는 뜻이다. 일단 ‘꽌시’를 통하면 해결이 쉬운 것이 중국사회 보편적인 현상이다.
참고로 밝히자면 세상의 다수 민족들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일이 성사되면 축하의 의미로 연회를 베푸는데 비해 중국인은 사무실에서 매듭지을 일도 미뤄 술상에서 성사시키는 사례가 많은데 이 또한 중국특색이 농후한 비즈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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