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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과 장뇌삼
김학송
산삼이 몸에 좋다는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몇해전 백두산에서 천년산삼이 발견되여 세상을 놀래우기도 했다. 지네처럼 생기고 실근이 되게 많아 보기에도 의아하고 신기했다. 그런 초특급산삼은 보는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과시 국보급이요 자연문화재에 속할만도 하다.
신농본초경에 따르면 산삼은 약초의 으뜸이라고 한다. 오장을 돕고 눈과 정신이 맑아지게 하고 건강장수에 유익하다고 한다.
산삼은 산중보물이요 신의 뜰에서 자라는 선약이기도 하다. 그만큼 희귀하고 존귀하다는 말로도 된다. 요즘은 공해가 극성을 부리는지라 산삼같은 자연약초가 더없이 그리워질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릇 귀한것은 흔치 않은 법이다. 산중에도 아주 깊은 산,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만 자생하는게 산삼이니 그 값이 천정부지로 뛰여오름도 리해할만한 일이다. 산삼은 늙을수록 명품으로 친다. 그러나 짐승에게 짓밟히고 뜯기우고 하다보면 온전히 오래 살아남기가 조련찮다고 한다. 산삼이 귀한 대접을 받는것은 원체 희소하기때문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일정 수량만이 자생하고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기때문이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아주 천천히 크기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이슬을 마시고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아주 서서히 자라기에 무공해약초의 으뜸으로 각광을 받는다.
신령한 산기와 신비한 구름을 마시며 면벽수도하는 수도승처럼 내면의 깊은 곳에 은밀한 에너지를 다져가는 신선초! 그런 산삼이니 어찌 귀하지 않을손가?
산삼이 좋다 하니 산삼을 흉내내는 약초가 있다. 장내삼이나 양삼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장내삼은 산삼의 흉내를 아주 그럴사하게 낸다. 생김새도 꼭 산삼을 닮았는데 산삼보다 신수가 더 멀끔하게 생겼다. 진짜 프로가 아니면 진위를 분별하기가 참 어렵다. 장내삼의 특점은 쾌속성장, 대량생산이다.
계산이 밝은 사람들이 깊은 산속 여기저기에 산삼씨를 뿌리고 인공적으로 키워낸다. 일부 얌치족들은 그런 장내삼을 진짜산삼으로 둔갑시켜 폭리를 챙기기도 한다. 장내삼이 가짜산삼이라면 문단에도 그와 류사한 례가 있다. 인공적으로 조작해낸 무병신음의 시가 그것이다. 온갖 양태의 가짜시들이 진짜시인척하는게 현실인듯하다.
진짜시를 쓰자면 산삼이 자라듯이 맑은 령혼의 토양이 있어야 한다. 오염을 등진, 깨끗한 정신의 뜰이 마련되여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에 운명처럼 떨어진 시정의 씨앗이 맑은 꿈과 처절한 아픔을 마시며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 사색의 뿌리를 키우고 형상의 잎을 펼치고 서정의 열매를 맺는다. 관건은 뿌리이다. 우선 뿌리가 튼실해야 한다. 뿌리가 약한데 줄기만 도장하면 비바람에 쓰러진다. 중요한것은 불결한것으로부터 자기의 순결을 지키는 일이다. 어느 싱거운 사람이 성급한 마음에 화학비료를 뿌리거나 생장자극소를 분무한다면 대바람에 슈퍼산삼이 될수는 있지만 그 시각부터 산삼은 산삼이 아니다. 장내삼이나 양삼으로 퇴락하고만다.
장내삼이나 양삼과 근사한 사이비시가 생산되는 원인은 시인의 생리에 대한 무지거나 극단적인 허영심 또는 어떤 탐욕에서 온다. 시인의 영예는 유혹적이지만 장기간의 피타는 노력은 원치 않으니 아예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취하는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차차 그게 습관이 돼버린다.
문단이 허위나 가짜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성역임을 모르고 하는 유치한 장난이다. 진짜시는 산삼을 닮았다. 오랜 시간의 시련과 함께 자라난다. 삶의 처절함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된장이 발효하듯 오랜 숙성을 거쳐야만 마침내 아름다운 맛― 개성적인 서정으로 피여난다.
평지돌출이나 일확천금은 있을리가 만무하다. 문학은 가장 진실하고 가장 맑은 령혼만이 그곁에 다가설수 있는 성역이다. 신의 뜰에 자라는 산삼처럼.
<<연변문학>>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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