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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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2013년 11월 28일 14시 18분  조회:1369  추천:3  작성자: 김학송

1

해빛을 훔쳐 먹고

세월조차 훔쳐 먹고

흘끔할끔

슬그머니 키를 세운다

갈데말데

슬그머니 따라 나선다

2

강물이 가면 그도 간다

구름이 서면 그도 선다

가다가 지치면 자기를 벗고

맨 물에 몸을 씻고

바람의 흉내를 낸다

사람의 흉내를 낸다

3

투자가 들지 않는다

땀도 흘리지 않는다

주인의 꼴을 흉내내며

주인보다 더 주인인척 한다

적자는 없고 늘 흑자이다

손해 볼리 없어 가벼운 모습을 하고

그게 좋다고 그렇게 산다

4

어찌 보면 위대한 은자이기도 하다

소리없는 침묵이

호사롭기도 하다

메달을 주어도

목에 걸지 않고

박수만 짊어진 채

바람의 길을 따라

어두운 골목으로 도망친다

5

허영으로 공해를 부르지 않는다

목에 힘을 주고

무게를 잡으며

잘 난척 하지도 않는다

집도 없이

자연에 몸을 맡긴다

아무런 걸림이 없이

아무곳이나 간다

로자도 필요 없다

그래서 너의 발걸음은 가볍다

6

때론 주인이

그림자가 된다

마음이 마음을 벗어나면

때론 그 사람이

그 사람의 그림자가 된다

7

언덕이 옷을 벗었다

내물이 옷을 벗었다

옷을 벗지 않은 나무들만이

제 손으로 낯을 가리고

자기의 슬픔을 덮어 감춘다

올망졸망한 절망의 항아리에

어둠이 발효되어

행복의 술이 되어 가고 있다

8

여러 가지 색갈의 얼굴들이

그림자와 손 잡고

삼바 탱고 왈쯔에 열을 올린다

시대의 오락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위스키 모태주 칭키스칸

눈부신 타락이 누군가의 뒤란에

꽃을 피운다

벤츠, 오우디, 비엠 떠블류에 높이 앉은 도시가

어디로 질주하는지 누구도 모른다

부유와 가난을 함께 파는

시대의 레스토랑은 지금 한창

성업중이다

9

세로 가든 모로 가든

내 갈 길은 내가 간다

내가 심은 인생 내가 거둔다

만취한

바람의 손을 잡고

설면한 꿈속으로 걸어가는

저 그림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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