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주된 의제는 인구유동으로 인한 집거지의 해체와 민족의 동화 가능성일 것이다. 민족의 발전과 존속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할 우리들에게 있어서 조선족사회의 해체와 민족동화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극히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조선족사회의 인구유동으로 나타난 집거지 해체라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 보도록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동시에 나타난 급속한 인구유동은 농촌집거지의 해체, 교육의 침체, 인구의 감소, 혼인난 등등의 문제점들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즉 조선족사회의 인구는 왜 다른 민족사회와 달리 급속한 유동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구유동은 본질적으로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을 밝혀야만 조선족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인 인구유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사회가 인구유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간 것은 단순한 경제적인 원인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쉽게 분석해 낼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모국의 존재가 배경으로 될 때 조선족인들의 인구유동은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 남보다 더 잘살아 보겠다는 욕망으로 인해 한국에로 진출하고 또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에 가담하여 중국내지에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내지에로 진출한 조선족인은 무려 40여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유동 추세가 20여년만 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조선족사회의 해체는 시간적인 문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인구유동을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거니와 그것을 막아야만 할 도리 또한 없다. 왜냐하면 개방사회의 발전은 특징적으로 일정한 인구유동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정도의 인구유동은 발전의 필수적인 형태라는 시각에서 보면 조선족사회의 인구유동은 사회발전의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동성이 없는 한 개 사회는 봉폐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 발전은 운운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기에 조선족사회의 인구유동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족사회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구유동을 지목하는 것은 이론적인 무리를 빚어 낼 수 있다. 필자는 조선족사회의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 인구유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구유동의 구도와 성격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조선족사회의 인구유동 구도를 살펴보면 單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조선족집거지를 떠나 타향에 진출한 대부분 사람들이 되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출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인구유동구도가 집거지 해체와 같은 문제들을 유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간단한 상상을 해보도록 한다. 만일 한국과 중국내지에로 진출한 조선족인들이 원 집거지에 되돌아들어 온다면 우리들이 논의하고 있는 집거지 해체, 민족정체성 상실, 교육의 침체 등등의 문제들은 문제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문제로 되는 것은 그들이 타향에 진출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되돌아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은 왜 생사이별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에로 돌아오지 않을 가?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할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타향에로 진출한 조선족인들이 원 집거지에 되돌아들어 올 수 있는 전제는 그 집거지의 일정한 흡인력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데 연변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사회는 아직까지 이러한 흡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즉 조선족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집거지의 흡인력의 부족으로 인한 단향적인 인구유동구도에 있다는 것이다.
소위 한 개 사회의 흡인력이란 경제, 문화, 정치 등 분야의 優勢로 인구, 자본, 기술 등을 일정한 구역에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리킨다. 만일 한 개 사회가 막강한 흡인력을 형성한다면 주변의 사회들을 자신의 영역에로 끌어들여 부단한 확장을 이룰 수 있다. 거꾸로 일정한 흡인력을 형성하지 못한 사회는 다른 사회를 자신의 영역에로 끌어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에 흡인되어 점점 위축상태를 보인다. 이러한 흡인력은 주요케 정치, 문화, 경제의 축적과 지역적인 우세로 형성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북경은 정치문화 중심이라는 우세로, 상해는 경제적인 교류의 중심이라는 우세로 그 흡인력을 형성한 것이다.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조선족인들의 해외진출의 실질은 조선족사회 자체의 흡인력 상실로 이루어진 다른 경제, 문화적 중심에 흡인된 현상이라는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족사회가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즉 조선족사회의 대규모의 인구유동은 결국 조선족사회의 흡인력의 상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조선족사회가 일정한 흡인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구유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조선족사회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조선족사회의 자체의 흡인력을 어떠한 방법으로 조성 하는가 하는데 있다고 인정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선족사회의 위기로 지목되고 있는 민족동화의 핵심적인 문제를 논의하여 보도록 한다. 연변대학의 이홍우교수는 소수민족의 동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일곱 개로 나누어 열거하고 있다. 첫째, 주체민족과의 집거시간이 길면 길수록 동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집거지역을 확보한 민족의 동화는 쉽지 않다; 셋째, 민족의 동화란 그 민족자체의 폐쇄 혹은 개방상태와 관련되는데 폐쇄적일수록 민족특성을 보존하기 쉽다; 넷째, 주변민족이 상대적으로 선진적일 경우 동화의 가능성은 커 진다; 다섯째, 거주국이 어떠한 민족정책을 실시하는가 하는 것도 동화의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한 개 요인이다; 여섯째, 모국의 존재여부와 모국과의 관계여하는 동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일곱째, 민족의 영수인물과 공동한 신앙이 있는가 하는 것도 동화가 이루질 수 있는가 하는 이념적인 기반이다. 참조: 이홍우 『조선족의 전망』,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6. 16쪽.
필자는 개방상태에로 진입한 조선족에게 있어서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의 핵심은 일곱 번째 요인 즉 모국과의 관계여하와 모국의 상황이라고 인정한다. 만일 한반도가 막강한 정치, 경제, 문화적인 파워가 있다면 조선족인들의 문화적인 지향은 한반도에로 쏠릴 수밖에 없기에 문화적인 성격을 보존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거꾸로 만일 한반도가 쇠퇴한다면 조선족인들의 문화적인 지향은 한반도에로 쏠릴 수 없으므로 민족의 동화란 시간적인 문제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경 속에서 조선민족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반도의 막강한 문화적인 흡인력과 한반도와의 부단한 교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이전 조선족사회가 민족적인 문화를 잃지 않고 존속하게 된 이유는 중국 제반사회의 봉폐적인 상황과 민족정책에 있다. 그런데 지금 조선족사회는 개방상태에로 진입하였으므로 더 이상 봉폐된 상태에서의 민족문화정체성을 논의할 수 없다. 이러한 개방상태에서 조선족사회 자체의 상황을 근거로 그 문화정체성을 존속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조선민족으로서 존속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중요한 배경으로 영향을 끼칠 모국의 상황과 모국과의 관계에서 모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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